호흡이 있는 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시편 150편) / 설교원고(2018-12-21)


              금요찬양기도회 / ①. 2018-10-11 시편 150:1 찬양하는 장소
                                          ②. 2018-11-9 시편 150:2 찬양하는 이유
                                          ③. 2018-11-30 찬양을 위한 도구
                                          ④. 2018-12-21 찬양을 위한 존재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하여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값어치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시편(詩篇, תְהִלִּים 테힐림, Ψαλμός 프살모스, Book of Psalms)은 유대교에서 쓰는 타나크(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구약 성경)의 일부이다. 각 장을 지칭 할 때는 특별히 ‘장’이 아닌 ‘편’이라는 단어를 쓴다. 시편을 주제로 하여 부르는 노래는 시편가(Psalter)라고 한다.
 
시편 150:1∼2
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 Praise the LORD. Praise God in his sanctuary; praise him in his mighty heavens.

* 할렐루야 -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 ; 찬양하라, 루 ; 너희들, 야 ; 하나님

* 찬송하는 장소
- 성소에서(성막, 성전, 교회, 성도의 몸)
- 궁창에서(하나님의 주권, 통치아래, 온 세상 어디든지)
- 내 삶의 현장에서(가정, 일터)

☞ 찬양하는 생활 -

* 교회에서 찬송이 회복된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찬송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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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찌어다. - Praise him for his acts of power; praise him for his surpassing greatness.  

* 찬송하는 이유 ;

- 능하신 행동 : 능력(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
- 광대하심 : 크고 넓은 것

능(能)하신 행동(acts of power)
* 능할 능(能)
- 빼어난, 뛰어난, 우수한, 비상한, 놀랄만한
1. 잘하다, 2. 견디다, 3. 능하다
-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는 재주와 능력

지극히 광대(廣大)하심(surpassing greatness)
* 광대(廣大)
- 넓고 큼
- 중대, 중요, 거대, 웅대, 저명, 탁월
* 넓을 광(廣)
1. 넓다, 2. 넓히다, 3. 퍼지다.
* 클 대(大)
1. 크다, 2. 많다, 3. 고귀하다, 4. 훌륭하다 - 넓고 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넓고 크신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넓고 크신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찬양하는 것이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넓고 크신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매우 기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얼마 전 어느 모태신앙의 교인이 전화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일 마다 교회에 가면 예배 시간에 찬양하는데 거의 모든 교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들고 찬양하는데 자신은 그런 행동에 익숙하지 않아 조용히 앉아서 찬양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부인이 ‘왜 당신은 손을 들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느냐?’ 다른 교인들 보기에 민망하다” 이렇게 타박하더랍니다. 이런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합니다.

예전에는 예배는 경건하게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고 또 그러한 분위기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요즈음은 경배와 찬양이란 열린 예배가 새롭게 소개된 후에는 두 손을 들고 때로는 일어나서 찬양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조용히 앉아서 찬양 할 수 있고 두 손을 들고 일어나서 찬양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것이 성경적이냐 어느 것이 맞느냐 이런 식으로 논쟁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 일어서는 것도 두 손을 드는 것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닙니다. 일어서지 않고 손을 들지 않는다고 신앙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고 일어서거나 두 손을 든다고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넓고 크신 능력 때문입니다. 죄악의 멸망할 구덩이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격스럽습니다. 이런 마음이 솟구칠 때는 일어나서 손을 들고 춤을 출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지난 날 받은 은혜가 분명하지만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워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찬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찬양의 감격이 회복되는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사사기의 시대와 오늘의 시대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사시대의 특징은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동하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사사기 21:25)

오늘의 시대가 자기 생각대로 주장하고 목소리가 큰 사람이 마치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드온(Gideon) ; “벌채” “벤다” “베히는 자”
- 므낫세 지파 요나스의 아들
- 제 5대 사사
-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사사기 6:12)

기드온은 큰 용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미디안 군대가 추수한 것을 빼앗아 가는 것이 두려워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드온을 향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기드온과 같이 큰 용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광대하시고 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광대하시고 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기드온과 함께 하셨을까요?
기드온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기도할 기도 제목입니다.

포도주 틀 속에서 밀을 타작하던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으면 아멘 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여호와의 사자에게 하나님이 우리 민족과 함께 하신다면 왜 미디안 군대가 우리를 괴롭게 합니까? 이전에 애급에서 우리 민족을 나오게 하신 이적이 어디 있습니까? 왜 우리를 미디안 군대의 손에 붙이셨습니까?

기드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우리에게 시련과 고통과 아픔을 주셨습니까?

그때 여호와께서 “너는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그러자 기드온은 여호와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기드온은 여호와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오늘 이 자리에서 넓고 크신 능력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증거를 갖고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게 어떤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극히 약하고 제일 작은 사람입니다.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다면 은혜의 표징을 내게 보여주시옵소서!

가정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건강의 문제, 나라와 민족의 문제까지도 내려놓고 기드온과 같이 기도할 수 있는 찬양기도회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주가 되신다는 믿음의 표징을 갖고 기드온처럼 큰 용사가 되어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기도의 용사로 찬양의 용사로 쓰임 받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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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위한 도구(시편 150:3∼5)

③.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 ④.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찌어다. 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찌어다.   
③. Praise him with the sounding of the trumpet, praise him with the harp and lyre, ④. praise him with tambourine and dancing, praise him with the strings and flute, ⑤. praise him with the clash of cymbals, praise him with resounding cymbals. 


찬양을 위한 도구
1. 나팔(trumpet)
2. 비파(harp)
3. 수금(lyre) - 고대 현악기
4. 소고(tambourine)
5. 현악(strings)
6. 퉁소(flute)
7. 제금(cymbals)

찬양 할 때에 도구를 사용한 것에서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다양한 방법 -  다양한 사람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다양하게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다양한 도구들은 독특한 소리를 갖고 개별적인 특성을 드러냅니다. 문제는 독특한 소리가 하나만 드러내면 소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독특한 소리가 서로 화합할 때 특별한 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찬양하는 사람들도 다양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여 놀라운 찬양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조화(和音) - 영광을 하나님께

다양한 표현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노래방을 가라오케라고 합니다. 가라오케는 ‘가짜오케스트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이 가라오케가 되면 안 됩니다. 규모는 작아도 오케스트라가 되려면 서로 조화를 이루는 화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합주처럼 다양한 악기들이 화음을 만들어 낼 때 굉장한 소리가 되는 것처럼 찬양하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똑같은 소리와 똑같은 방법은 개성이 없어질 것입니다.

찬양기도회는 비록 작은 교회들이 독립적으로 찬양할 수 없을 때 마치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최고의 찬양을 만드는 것처럼 여러 교회들이 모여 각자의 개성과 독특한 소리를 섞어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므로 최고의 찬양을 향한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한국교회의 찬양과 경배의 모델은 미국 일리노이 주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가 ‘구도자 예배(The Seeker Service)’를 시작하면서 소개되었습니다.

‘구도자’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영적 교감을 갖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구도자 예배가 한국교회에서는 구도자라는 말이 낯설기 때문에  ‘열린 예배’ 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열린 예배는 구도자 예배와 같이 교회 밖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기도회의 목적은 기존 교인들은 회복을 위한 찬양으로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는 교인들에게는 영접을 위한 찬양으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부산 용두산 공원에 위치한 동광교회에서 80년대 초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친 후에 청년예배를 시도했습니다. 청년부에 소속한 회원들을 용두산 공원으로 내보내 공원에 있는 청년들을 초청하여 청년예배를 시작하며 설교는 아주 간단하게 선포하고 찬양하는 것과 찬양 후 초청한 청년들과 친구가 되도록 다과와 차를 준비하여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게 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결과 교회가 청년들로 채워지고 심지어 십일조의 1/3은 거의 청년들이 분담하고 있었습니다.
찬양을 위한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찬양의 대중화
둘째는 찬양을 통한 영적 깊이를 개발
첫째, 찬양의 대중화

찬양의 대중화는 처음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적음하기 어려운 것은 찬송 부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만났던 어떤 사람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배에 참여하면서 다른 순서는 따라 갈 수 있는데 찬송 부를 때는 전혀 함께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여름날 우이동 도선사를 지나 북한산을 오르는데 여름 불경학교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경내에서 귀에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와서 가까이 가서 들었는데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이란 찬양에 부처님 찬양 부처님 찬양하며 가사를 바꿔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찬양 할 때 다양한 악기들을 사용하므로 평소에 익숙하던 소리와 연주를 생각하며 대중적인 찬양을 

불교의 대중화는 원효 대사라고 합니다. 신라 시대 때 불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일반서민들이 아니라 귀족 계급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원효 대사가 불경을 외울 때 일반 서민들이 쉽게 외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깊이 생각하며 착안한 것이 불경을 당시 민요에 맞춰 암송하는 시도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란 불경을 외울 때 모든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이런 민요에 운율을 맞춰서 불경을 외우도록 하였는데 그 때부터 불교에 대한 서민들의 폭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나무 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나무 아미 타불 관세음 보살......

불낙지교회는 불신자 낙심자 지체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교회로 발전해야 합니다.

둘째, 찬양을 통한 영적 깊이를 개발

찬양을 위하여 각종 악기를 사용한 것은 찬양에 참여하는 인원이 증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인원이 증가함에 따라 찬양에 참여하는 대중들도 증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원만 증가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영적 깊이가 개발되어야 합니다.

근자에 윌로우클릭교회에서 그동안 구도자예배에 대한 사역에 대한 자기반성을 Where are you?  라는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책의 핵심은 구도자 예배가 인원을 많이 동원한 것은 분명하지만 정말 그들의 삶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길이는 1마일이상 길게 늘어났으나 깊이는 1인치도 안 된다고 하며 이제는 깊이를 개발해야 할 것이라며 사역의 방향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찬양기도의 확장

찬양기도회가 교회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자리로 확장시켜야 합니다. 예배는 찬양기도회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면서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황목사님께서 찬양기도회 자료를 올려주면 그 자료를 수시로 듣고 함께 부르면서 반복하여 익숙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기도 동지들과 연결하여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호승목사님이 지난 화요일 밤에 긴급 카톡으로 연락하기를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포기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몸에 변화가 있다면서 3일 후에 상태가 호전되면 다시 치료를 시작하겠다고 하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이목사님께서 “하나님이 간섭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11월 23일(금) 워싱톤에서 에릭 형제의 심장 대동맥 확장 수술을 시작하는데 무려 5시간 정도 수술 시간이 소요되며 그동안 3시간은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한다고 합니다. 긴급 기도 부탁을 받고 기도의 동지들에게 연락하여 동시 다발적으로 기도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23일 밤에 수술을 잘 마쳤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찬양기도회 시간에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성령의 임재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영적 부흥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몸으로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honor God with your body.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최고의 악기는 ‘몸(Body)’ 이다.
도구를 사용하기 전에 몸이 찬양의 도구로 드려져야 한다.

몸은 영과 혼과 육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몸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몸으로 찬양하는 사람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찬양하는 몸은 영과 혼과 육의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영과 혼과 육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이 내 안에 거주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찬송하는 장소
- 성소에서(성막, 성전, 교회, 성도의 몸)
- 궁창에서(하나님의 주권, 통치아래, 온 세상 어디든지)
- 내 삶의 현장에서(가정, 일터)

☞ 찬양하는 생활 -

* 교회에서 찬송이 회복된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찬송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

☞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생활 -

☞ 도구로 사용되는 생활 -

☞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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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위한 존재(시편 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Let everything that has breath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 말씀은 시편의 결론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도입 이야기)
대학 때 어느 여름 날 우이동 버스 종점에서 내려 대략 30분 산길로 올라가면 도선사라는 사찰이 있습니다. 사찰 경내를 지나 북한산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당시 산으로 가는 산행 코스이었습니다. 도선사 경내 옆을 지나는데 평소에 자주 듣던 복음송의 멜로디가 들려옵니다. 그 멜로디는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합시다” 라는 복음송 멜로디였습니다. 도대체 사찰에서 이런 멜로디가 들려올까 궁금하여 경내로 들어가서 멜로디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갔습니다. 그곳에 ‘여름 불경학교’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여름불경학교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찬양이라는 복음송에 부처님찬양이라는 가사를 개사하여 부르며 심지어 율동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사찰에서 교회학교에서 행하는 프로그램을 따라하는 것을 보며 인간의 본능은 절대자에 대한 경외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왜 호흡이 있는 자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지 두 가지 구조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첫째는 성경의 구조
둘째는 사람의 구조

성경의 구조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시편을 찾으려면 성경의 가운데에서 찾아야 합니다. 시편은 성경의 중심입니다. 시편의 결론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결론은 여호와를 찬양하라 입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The people I formed for myself that they may proclaim my praise. 


1973년 용태영변호사가 석마모니 탄생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해 달라고 제안하여 불교계에서 왜 성탄절은 공휴일로 제정하고 석가탄신일은 공휴일이 아니냐 하며 종교 차별화를 강조하여 결국 1975년 1월 14일에 열린 국무회의 결의를 거쳐 석가탄신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탄생과 석가모니의 탄생은 공휴일로 제정할 수 있지만 불교계에서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것이 부활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을 찬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구조

육체는 영과 혼과 육으로 구분합니다.
육은 세상과 교제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혼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형성되는 문화의 통로가 됩니다.
영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하겠습니다.

육체와 영혼의 관계에서 육체의 소욕은 나쁜 것이고 영혼의 소욕은 선한 것이라고 하면서 영지주의 사상처럼 영혼만을 위한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무소유를 주장할 때 아무 것도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면 먹을 것을 위한 음식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소유란 너무 과하게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서로 보완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육체만을 강조하고 영혼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고린도전서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빌립보서 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호흡이 있는 자는 살아서 숨을 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18∼19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음악적인 재능이 아니라 성령 충만의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 이란 내 안에 가득 채워서 더 이상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충만’ 이란 헬라어는 ‘플래래스’ 라고 한다. 플래래스란 내 안에 채워진 것이 외부로부터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넘쳐서 흘러나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사람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대표적인 세 가지는 무엇일까?

첫째는 기도
간구의 영을 기도해야 한다.

둘째는 찬송
찬송의 영을 사모해야 한다.

셋째는 말씀
말씀이 자연스럽게 나오기 위해서는 성경을 암송해야 한다.

2019년 로마서 8장을 외우려고 합니다.
모두가 로마서 8장을 암기한 후에 로마서 8장을 통한 기도와 찬송과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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