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nykcn.org,2013:/posts 뉴욕나사렛교회 / New York Nazarene Church (718)361-0844. (917)597-2322 2017-10-19T00:50:25Z tag:nykcn.org,2013:Post/1199321 2017-10-19T00:49:52Z 2017-10-19T00:50:25Z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레위기 23:4-8) / 수요성경공부(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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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8653 2017-10-16T14:57:55Z 2017-10-16T14:57:56Z 성경의 저자와 기록 연대

모세오경을 쓴 모세를 비롯해서, 구약성경은 대략 32명의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었고
신약은 바울을 포함하여 8명의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구약의 모세오경은 대략 주전1500년에 기록되었고 마지막책인 말라기는 주전 약400년에 기록되었다.
구약은 모두 1100여 년에 걸쳐 완성된 반면, 신약은 50여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전체 성경이 완성되는데는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이행되던 시기인 400년을 포함하여
대략 1500년에서 1600년의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여기서 주전은 기원전, B.C 이고 주후는 기원후, A.D 입니다.)

구 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신명기, 여호수아, 사시기, 룻기, 사무엘상,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사, 역대상, 역대사,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 약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선,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 구약

▶ 창세기

1) 저자 : 모세 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가 기록하였다.
애급 궁중에서 양육을 받은 그는 학자요, 정치가요, 장군이었다.
세상의 관념에 따르면 그는 종교 지도자였다. 


2) 장소 : 그는 이 오경을 시내 산과 광야에서 기록하였다. 


3) 시기 : 이 책에서 기록한 사건들은 주전 4004년과 주전 1689년 사이에 발생한 것이며, 그 기록은 주전 1500년경에 했다.


▶ 출애굽기

1) 저자 : 성경의 처음 5권은 모두 모세가 쓴 것으로 `모세 오경`이라 불린다. 출애굽기 17장 14절과 34장 27절은 이 책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쓰도록 명하신 것임을 증명한다. 

2) 시기 : 이 책에서 기록한 사건들은 주전 1706년과 1490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 레위기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모세이다. 전체의 내용이 모두 모세에 대한 여호와의 `고하여 이름`, `분부`이다. 

2) 장소 : 장소는 시내 광야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서 머물렀고 조금도 이동하지 않았다. 


3) 시기 : 이 책에 기재된 법도와 명령은 하나님께서 일 개월 반에 걸쳐 모세에게 분부하신 것으로 그 기간은 대략 이스라엘의 정월 일 일, 곧 회막이 건축될 때(출 40:2, 17, 레 1:1)부터 2월 20일, 즉 그들이 시내 광야를 떠날 때까지이다(민 10:11-12). 


▶ 민수기

1) 저자 : 모세가 기록하였다.
2) 장소 : 시내 산과 광야이다.
3) 시기 : 이 책에서 기록한 사건들은 주전 1490년부터 1451년 사이에 발생하였다.

▶ 신명기

1) 저자 :`신명기(Deuteronomy)`라는 단어는 `제 2의 율법`을 의미한다. 즉, `다시 말해 주는 것`, `되풀이해 말하는 것`, `다시 들려 주는 것`이란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의 종인 모세가 분명하다. 처음에는 입으로 전하다가 이후에 책으로 쓴 것이다(1:3, 31:24-26 참조). 

2) 장소 : 이 책은 앞의 민수기의 마지막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이 두 권의 책의 기록 시기와 장소는 같다. 모두 출애굽 이후 제 40년이고 장소는 모압 평원이다. 


3) 시기 : 이 책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시간은 약 사십 년으로 주전 1491년부터 주전 1451년까지이다. 


▶ 여호수아

1) 저자 : 여호수아서의 저자는 여호수아이며(1:1), 그의 이름은 `여호와 구원자`, `여호와의 구원`을 뜻한다(민 13:16). 

2) 장소 : 여호수아서를 쓴 장소는 모압 평지이다(신 34:8-9). 


3) 시기 : 이 책을 쓴 시기는 주전 1451년에서 1426년까지이다. 


▶ 사사기

1) 저자 : 사사기의 저자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으나 그것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많은 권위자들은 사무엘이 기록한 것으로 추정한다. 

2) 시기 : 사사기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는 주전 1425년경에서(여호수아의 죽음 후) 주전 1120년경까지(삼손이 죽었을 때―16:30-31)로 약 305년간이다. 다음 목록은 역사에 따른 연대순이다. ① 2:6-9(주전 1426년경) ② 1:1-36(주전 1425년경) ③ 2:1-5(주전 1425년경) ④ 2:10-13(주전 `) ⑤ 17:1-21:25(주전 1406년경) ⑥ 2:14-16:31(주전 `-1120년경)


▶ 룻기

1) 저자 : 룻기는 역사와 시기에 있어서 앞의 책 사사기와 다음의 책 사무엘서와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무엘이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2) 시기 :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는 말씀에 따라(4:22) 저작 시기는 사사들의 통치 이후 열왕의 때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의 기간은 주전 1322년경부터 1312년경까지 약 11년 간이다. 기록한 역사는 모압과 유다에서 발생했다(1:1, 22). 


▶ 사무엘상

1) 저자 : 사무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들으심` 또는 `하나님께 구함`을 의미한다. 사무엘상 1장부터 24장까지는 사무엘이 쓴 것이다. 사무엘상의 나머지 부분과 사무엘하 전부는 선지자 나단과 선견자 갓이 썼다(대상 29:29). 

2) 장소 : 저술 장소는 에브라임과 유다였다. 


3) 시기 : 사무엘상`하의 저술 시기는 주전 1171년에서 1017년경이다. 


▶ 사무엘하

1) 저자 : 기록자들은 나단과 갓이었다. 

2) 시기 : 가나안 땅에서 주전 1056년부터 1017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하였다.


▶ 열왕기상

1) 저자 : 열왕기의 저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나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가 그 저자라고 생각한다. 

2) 장소 : 이 책은 아마 가나안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3) 시기 : 열왕기상에서 기록된 것은 주전 1015년부터 897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 열왕기하

1) 저자 : 예레미야가 이 책을 썼을 것이다.

2) 장소 : 아마도 가나안 땅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3) 시기 : 이 책에 기록된 일들은 주전 896년부터 588년 사이에 일어났다. 


▶ 역대상/하

1) 저자 : 역대상`하의 저자는 아마도 에스라였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역대하 36장 22절과 23절을 에스라 1장 1절에서 3절 상반절까지와 비교해서 보아야 한다. 이 두 부분이 반복된 것은 역대상`하를 에스라서의 저자인 에스라가 썼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2) 시기 : 상권은 주전 1056년에서 1015년까지 약 사십일 년이라는 기간을 포함하고 있는데, 열조의 계보를 포함하지 않는다. 하권은 주전 1015년에서 536년까지 약 사백칠십구 년이라는 기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 두 권의 책은 아마도 에스라가 포로됨에서 귀환한 후에 예루살렘에서 썼을 것이다


▶ 에스라

1) 저자 : 에스라서의 저자는 `도움` 또는 `돕는 자`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에스라였다. 그는 아론의 자손으로서(7:1-5) 모세의 율법에 능한 제사장이요, 서기관이었다(7:6, 11-12). 

2) 장소 : 그의 책들은 예루살렘에서 기록되었다. 


3) 시기 : 이 책의 내용은 주전 536년부터 457년까지 약 팔십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 느헤미야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느헤미야로 그의 이름은 `여호와의 위로`를 뜻한다. 그는 왕의 술 관원이었다(1:11하). 

2) 장소 : 이 책 전체는 느헤미야가 그의 대적들의 시험과 공격을 받는 가운데서 위로이신 하나님을 신뢰한 내용으로 예루살렘에서 기록되었다. 


3) 시기 : 이 책의 내용은 주전 446년부터 434년까지 약 십이 년의 기간을 다루고 있다. 


▶ 에스더

1) 저자 : 에스더의 저자는 아마 모르드개였을 것이다(에 9:20, 23). 에스더의 삼촌인 그는 그녀를 양육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유대인들을 사랑한 자였다. 

2) 장소 : 아마도 수산 성에서 기록됐을 것이다.


3) 시기 : 이 책의 내용은 아하수에로가 통치하던 기간(주전 486-465년) 중 적어도 10년의 기간을 다룬다.


▶ 욥기

1) 저자 : 이 책의 제목은 저자인 욥의 이름을 따라 붙여졌다. 욥은 `미움을 받다`또는`핍박을 받다`를 의미하는데, 이는 욥이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에게서 어떠한 고통을 겪었는지를 나타내 준다. 에스겔 14장 12, 14, 20절과 야고보서 5장 11절은 이 책을 욥이 썼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2) 장소 : 이 책이 쓰인 장소는 에돔에 속하는 우스 땅으로서(애 4:21) 아라비아 광야 서쪽이다. 


3) 시기 : 이 책이 쓰인 시기는 욥의 유목 생활(욥 1:3)과 그가 자녀들을 위해 번제를 드린 방식(욥 1:5, 창 22:13, 31:54)에 따르면, 주전 약 2000년경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이다.


▶ 시편

1) 저자 : 시편의 대부분을 다윗이 기록하였기 때문에 시편을 다윗의 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편의 머리말에 따르면 다윗이 일흔 세 편을 기록하였고, 아삽이 열두 편을, 그리고 헤만과 에단이 각각 한 편씩을 썼다. 또 고라의 자손이 열 편, 솔로몬이 두 편, 모세가 한 편을 기록하였으며, 머리말이 없는 것도 오십 편이 된다. 머리말이 없는 것 중에서 몇 편 예를 들면 시편 2편(행 4:25), 95편(히 4:7), 96편(대상 16:23-33), 105편(대상 16:8-22)은 다윗이 기록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편을 썼지만, 그것은 모두 한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2) 장소 : 시편은 모세가 광야에서 기록한 90편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이스라엘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3) 시기 : 가장 초기의 시편은 주전 1500년에 모세가 쓴 것(시편 90편)이며, 마지막 시편은 137편일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로 잡혀간 뒤 기록한 것이다.


▶ 잠언

1) 저자 : 잠언은 현자들의 말을 모은 것이다. 주된 기자와 수집자는 솔로몬으로서 그는 삼천 개의 잠언을 지었다(왕상 4:32, 전 12:9 참조). 또한 히스기야는 25장에서 29장까지에 있는 열조들의 몇몇 잠언들을 추가하였다. 

2) 장소 : 잠언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쓰였을 것이다.


3) 시기 : 솔로몬의 잠언들은 주전 1000년경에 쓰였고, 히스기야의 잠언들은 그로부터 약 삼백 년 후에 쓰인 것이다. 


▶ 전도서

1) 저자 : 전도서의 저자는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다(1:1, 12, 12:9, 왕상 4:32).

2) 장소 : 그는 이 책을 예루살렘에서 썼다(1:1, 12). 


3) 시기 : 저작 시기는 주전 977년경으로 솔로몬이 타락한 후이다.


▶ 아가서

1) 저자 : 아가서는 솔로몬이 말년에 이스라엘에서 기록한 것으로 잠언이나 전도서보다 이해하기가 어렵다. 

2) 시기 : 솔로몬의 통치 시기는 주전 970-931년이었다


▶ 이사야

1) 장소 : 이사야서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다. 일반적인 성경 해석가들은 흔히 이사야를 선지자 중에서 가장 큰 선지자라고 칭한다. 그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가장 상세하고 광범위하게 썼기 때문이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이스라엘 왕국의 선지자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유다 왕국의 선지자 미가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역사가였던 그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에 이르는 네 왕조에 걸쳐 가장 긴 기간 동안 선지자로서 사역했다(1:1). 유대인들 사이에서 믿을 만한 유전(tradition)과 2세기의 몇몇 랍비들의 저서에 따르면 그는 므낫세의 재위 기간에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했다(왕하 21:16, 24:4, 마 5:12, 행 7:52). 

2) 장소 : 예루살렘에서 기록되었다.


3) 시기 : 이사야서는 주전 760년경부터 698년 사이이다.


▶ 예레미야

1) 저자 :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는 아나돗 사람이었다(1:1). 그는 제사장으로 태어났으며 요시야 왕 십삼 년에 선지자로 부르심받았다. 그는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힐 때까지 주님을 위해서 예언했다(1:2-3, 5-7). 그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핍박을 많이 받은 선지자로 왕과 지도자들과 제사장과 백성들 중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가 그를 반대하고 증오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체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특히 그의 예언에 관하여 그릇되게 말하고 반박했으며 아사랴와 요하난과 같은 친 애굽파들이 그를 억지로 애굽으로 가게 했다(43:2-7). 

2) 장소 : 이 책의 대부분은 유다에서 기록하였고, 마지막 장들은 애굽에서 썼다. 


3) 시기 : 그 기간은 주전 629년부터 588년까지이다


▶ 예레미야애가

1) 저자 : 예레미야 애가의 저자는 울며 애통해 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이다(대하 35:25 참조). 이 책은 한 때 예레미야서의 일부였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예레미야 제 2권`으로 불렸다. 유대의 전통과 70인 역의 번역가들에 따르면 이 책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마지막으로 함락시킨 후에 예레미야가 기록하였다. 

2) 장소 : 이 책은 대부분이 예루살렘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갈보리로 불리기도 함) 맞은편에 예레미야의 동굴로 불리는 감춰진 동굴이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예레미야가 거기 앉아서 황무한 성을 바라보고 애통해 하면서 애가를 기록하였다고 한다.


3) 시기 : 이것으로 볼 때 그 책은 주전 588년에 쓰였을 것이다.


▶ 에스겔

1) 저자 : 에스겔은 부시의 아들로 제사장이었다(1:3). 에스겔이란 이름은 `하나님께서 강화하실 것이다` 혹은 `전능자가 너의 힘이다`를 의미하며, 부시는 `경멸받은`이라는 뜻이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멸받은 선지자 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강화시키셨다. 

2) 시기 : 그는 사역을 주전 595년부터 574년까지 바벨론에서 수행하였다. 


▶ 다니엘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유다 지파의 후손인 다니엘이다(1:6). 그의 이름은 `하나님은 심판자`라는 의미이다. 

2) 장소 : 이 일이 발생한 장소는 바벨론 성과 엘람 성 등이다. 


3) 시기 : 이 책의 내용이 포함하고 있는 시간은 약 73년간으로 주전 607년부터 주전 534년까지이다. 


▶ 호세아

1) 저자 : 저자인 호세아는 브에리의 아들이었다(1:1). 그의 이름은 `구원` 혹은 `여호와는 구원`을 의미한다.

2) 장소 : 그의 사역의 장소는 북이스라엘이었다.


3) 시기 : 호세아의 사역 시기는 주전 785년부터 725년까지 육십 년 동안이며, 그가 사역하던 때에는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 두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호세아의 사역의 대상은 음란하고 변절한 이스라엘 왕국이었다. 음란은 이스라엘의 상태를 말하며, 변절은 이스라엘의 위치를 가리킨다. 상태로 말하자면 그들은 간음했으며, 위치로 말하자면 그들은 변절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내인 이스라엘의 상황이었다.


▶ 요엘

1) 저자 :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이었다(욜 1:1). 그의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2) 장소 : 요엘은 이 책을 유다에서 기록하였다.


3) 시기 : 그 기간은 대략 주전 870년부터 865년 사이일 것이다.


▶ 아모스

1) 저자 : 히브리어에서 `아모스`는 `짐을 진 자`를 의미한다. 

2) 장소 :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벧엘에서 사역했다. 


3) 시기 : 아모스의 사역 시기는 주전 787년경이었고(1:1상), 그의 사역의 대상은 북이스라엘이었다(1:1하). 


▶ 오바댜

1) 저자 : 오바댜는`여호와의 종`을 의미한다. 

2) 시기 : 오바댜는 이 책을 아마도 주전 880년에 유다에서 기록했을 것이다. 


▶ 요나

1) 저자 : 히브리어로 요나는 `비둘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요나가 평강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비둘기처럼 나아가기 원하셨음을 상징한다. 

2) 장소 : 요나의 사역의 대상은 앗수르의 수도인 큰 성 니느웨 사람들이었으며, 사역의 장소 또한 니느웨였다.


3) 시기 : 요나의 사역 시기는 선지자 엘리사 시대인 주전 862년경이었다.


▶ 미가

1) 저자 : 모레셋 사람 미가는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예언하였다(1:1). 그는 이사야와 호세아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사 1:1, 호 1:1), 아마도 아모스와도 동시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라는 뜻이다(7:18). 

2) 장소 : 유다에서 기록되었다.


3) 시기 : 이 책은 주전 약 750년에서 710년 사이이다.


▶ 나훔

1) 저자 : 히브리어에서 나훔이라는 말은`위로`와`보복`을 의미한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민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에게 보복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2) 장소 : 나훔의 사역 장소는 유다였다. 그는 큰 성 니느웨를 대상으로 사역했다. 바벨 성과 니느웨 성은 니므롯이 건축한 것으로(창 10:8-11) 바벨론과 앗수르의 수도가 되었다. 적그리스도의 첫 번째 예표인 니므롯은 하나님을 반대한 첫 번째 사람이었으며, 이 나라들 둘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인류의 강한 예표들이었다.

시기 : 나훔의 사역 시기는 주전 713년경이었다. 그것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해였다. 

▶ 하박국

1) 저자 : 하박국이라는 이름은 `품에 안다`혹은`달라붙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고 그분께 달라붙을 필요가 있다. 

2) 장소 : 그가 사역한 장소는 유다였다. 


3) 시기 : 하박국의 사역 시기는 주전 626년경이었다. 이것은 바벨론이 침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간 시기와 매우 가깝다. 


▶ 스바냐

1) 저자 : 스바냐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혹은 `여호와께서 보배로 여기신 자`라는 의미이다. 

2) 장소 : 그는 유다와 수도 예루살렘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3) 시기 : 스바냐의 사역 시기는 하박국과 예레미야의 시대인 주전 630년경으로 사역 장소는 유다였다.


▶ 학개

1) 저자 : 학개는 스가랴와 동시대에 살았으며(스 5:1), 다리오 왕 이 년에 하나님을 위해 예언하였다. 그의 이름은 `나의 절기` 혹은 `여호와의 절기`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가 일찍 고국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절기를 회복하기를 얼마나 사모했는가를 보여 준다. 

2) 시기 : 이 책에서 기록한 일들은 주전 약 520년에 예루살렘에서 석 달 스무나흘 동안에 발생한 것이다.


▶ 스가랴

1) 저자 : 스가랴는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슥 1:1)로서 포로된 땅에서 태어났다가 스룹바벨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다. 잇도는 돌아온 최초의 제사장 무리에 속해 있었다(느 12:4, 16). 그러므로 스가랴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처럼 제사장 겸 선지자였다. 
잇도는 `정한 때`를 베레갸는 `여호와께 복을 받음`을, 스가랴는 `여호와의 기억하심을 입음`을 의미한다. 이 세 이름을 함께 모아 볼 때 `정한 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고 기억하심`이란 뜻이 나타난다. 분명히 하나님은 정하신 날에 백성에게 복 주시고 기억하실 것이다. 

2) 장소 : 유다에서 기록했다. 


3) 시기 : 이 책은 주전 520년이다.


▶ 말라기

1) 저자 : 말라기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나의 사자(使者)`를 의미한다. 이는 말라기가 여호와의 말씀을 그분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사역하는 하나님의 사자였음을 나타낸다. 

2) 시기 : 그의 사역 시기는 주전 400년경으로서 느헤미야 시대였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사역했다. 



♣ 신약

▶ 마태복음

1) 저자 : 레위라고도 불리는 마태는 세리였는데 사도가 되었다(9:9, 눅 5:27). 이것은 9장 10절의 `그 주인`과 10장 3절의 `세리`라는 특별한 언급에 의해 증명된다. 

2) 장소 : 유대 땅일 것이다.


3) 시기 : 이 책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지 얼마 되지 않은(28:15) 주후 37년과 40년 사이, 성전이 파괴되기(24:2) 전에 유대 땅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평범한 유대인들을 위해서 기록되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유대의 관습과 절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 마가복음

1) 저자 : 이 복음서의 저자는 요한이라고도 불리는(행 12:25) 마가다. 그는 여러 마리아들 중 한 마리아의 아들이자, 바나바의 조카(골 4:10)였다.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사역에 동행했는데(행 12:25) 바울의 첫 번째 이방을 위한 사역 여행에 함께했다가 버가에서 그를 떠나 돌아왔다(행 13:13). 그 때문에 바울의 두 번째 여행에는 거절당했다. 그러자 마가는 바나바와 함께 일하러 갔다. 이 시점에서 바나바는 바울과 갈라섰다(행 15:36-40). 그러나 마가는 바울의 후반기에 이르러 그와 가까웠으며(골 4:10, 몬 24절),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그에게 유용했다(딤후 4:11). 베드로가 그를 아들로 간주한 것으로 보아(벧전 5:13) 아마도 그는 베드로와도 줄곧 가까웠던 것 같다. 

2) 장소 : 기록은 로마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딤후 4:11). 


3) 시기 : 이 책은 주후 67년에서 70년 사이에 쓰였다. 13장 2절의 내용은 이 책이 성전의 파괴전, 아마도 사도 바울의 죽음 후에 기록되었음을 증명한다. 마가의 책은 유대의 이름과 관습과 절기들을 많이 설명한다(3:17, 5:41, 7:3, 11, 14:12, 15:42). 이것은 이 책이 이방인들, 특히 로마인들에게 쓰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 누가복음

1) 저자 : 초대 교회는 누가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로 간주했다. 이 두 책의 문체와 작문을 볼 때 누가가 저자임이 분명하다. 누가는 의사였으며 아마도 아시아계 헬라인이었을 것이다(골 4:14). 그는 드로아에서부터 바울의 사역에 동참했으며, 바울의 세 차례 사역 여행에 동행했다(행 16:10-17, 20:5-21:18, 27:1-28:15). 그는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그의 신실한 동반자였다(몬 24, 딤후 4:11). 그러므로 그의 복음은 마가가 베드로의 관점을 대표한 것처럼, 바울의 관점을 나타냈을 것이다. 

2) 시기 : 이 책은 사도행전이 쓰이기 전인, 주후 약 60년,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의 감옥에 있을 때 썼을 것이다. 이 책은 데오빌로에게 보내졌다(1:3).


▶ 요한복음

1) 저자 : 이 책은 사도 요한이 기록했다(21:20, 24). 그는 세베대의 아들이었고(마 10:2), 그의 형은 야고보, 어머니는 살로메였다. 살로메는 주님을 따르고 섬기던 자매이다(마 27:55-56, 막 15:40).

2) 장소 : 에베소이다.


3) 시기 : 이 책은 아마 주후 약 9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유대와 이방의 모든 믿는 이에게 쓴 것이다. 1장 38절과 5장 2절, 그리고 19장 13절의 설명으로 보아 이것을 알 수 있다. 


▶ 사도행전

1) 저자 : 이 책은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자신의 여행 기록을 기초로 해서 기록한 것이다. 

2) 장소 : 이 책은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됐을 것이다(몬 24, 딤후 4:11).


3) 시기 : 완성 시기는 아마 이 책에 쓰인 사건들이 끝난 직후인 주후 67년과 68년 사이로 추정된다(1:1). 수신자는 데오빌로였다(1:1, 눅 1:3).


▶ 로마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고린도이다.


3) 시기 : 이 책은 사도 바울이 주후 60년경 제3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 고린도에서(15:25-32, 행 19:21, 20:1-3) 3개월간 머무는 동안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1:7) 쓴 것이다.


▶ 고린도전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1:1, 9:1-2)이다.

2) 장소 : 기록장소는 에베소(행 19:21-22, 고전 16:3-8, 19)이다.


3) 시기 : 부르심받은 지 이십오 년 후(행 9:3-6, 15-16), 이방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지는 십사 년이 지났을 때(행 13:1-4, 9) 이 서신을 썼다. 대략 주후 59년경이라고 보는데 그 시기는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렀던 삼 년간의 기간이 끝나갈 무렵이다(행 20:31, 고전 16:8)


▶ 고린도후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1:1). 

2) 장소 : 기록 장소는 마게도니아이다(7:5-6, 8:1, 9:2, 4).


3) 시기 : 기록 시기는 대략 주후 60년경으로 로마서를 쓰기 이전이다. 고린도후서 2장 13절을 볼 때, 이 서신은 바울의 제 3차 전도 여행 때 에베소에 체류한 후 마게도니아에서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 갈라디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기록 장소는 고린도이며, 바울이 일 년 반 동안 거기에서 머무는 중에 썼을 것이다(행 18:1-11). 


3) 시기 : 이 책은 대략 주후 54년경 바울이 두 번째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 곧 갈라디아를 통과하여 여행하고 고린도에 도착한 후에 썼을 것이다


▶ 에베소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1:1).

2) 장소 : 이 책을 쓴 장소는 로마로서, 그때 바울은 투옥되어 있었다(엡 3:1, 4:1, 6:20, 행 28:30). 


3) 시기 : 이 책을 쓴 시기는 대략 주후 64년경이다


▶ 빌립보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이다(1:1).

2) 장소 : 기록 장소는 로마로, 바울은 그때 투옥 되어 있었다(빌 1:13, 행 28:30). 


3) 시기 : 이 책을 쓴 시기는 대략 주후 64년경으로 아마도 에베소서를 쓴 다음에 이 서신을 썼을 것이다(1:25, 2:24 참조).


▶ 골로새서

1) 저자 : 이 책은 사도 바울과 형제 디모데가 썼다.

2) 장소 : 로마 감옥


3) 시기 :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후 64년에 빌레몬서와 거의같은 시기에 썼다(4:9-10, 몬 10-12).


▶ 데살로니가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머무르면서(1:1, 3:6, 행 18:1, 5) 쓴 것이다.


3) 시기 : 이 책은 주후 54년경이다


▶ 데살로니가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와 같은 장소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연이어 기록되었다. 즉, 주후 54년경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동역자 실루아노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머무르면서(1:1, 3:6, 행 18:1, 5) 쓴 것이다


▶ 디모데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이 책은 바울이 로마의 첫 번째 투옥에서 풀려난 뒤인 주후 65년경, 즉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후에 마게도니아(1:3)에서 썼다.


▶ 디모데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와 시기 : 바울이 순교 직전인 주후 67년경, 2차 투옥시 로마 감옥에서 썼을 것이다


▶ 디도서

1) 저자 : 사도 바울이다.

2) 장소 : 1장 5절과 3장 12절을 볼 때 기록 장소는 니고볼리이다. 


3) 시기 : 대략 주후 65년경 바울이 첫 번째로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후 그레데를 거쳐 니고볼리에 도착했을 때(1:5, 3:12) 썼을 것이다.


▶ 빌레몬서

1) 저자 : 이 책의 저자는 사도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이다(1절).

2) 장소 : 로마 감옥이다.


3) 시기 : 대략 주후 64년경, 바울이 처음 로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나기 바로 전에(9, 22절) 썼을 것이다


▶ 히브리서

1) 저자 : 이 책의 풍부하고도 깊은 내용을 볼 때 바울을 저자로 추정할 수 있다. 13장 23절에서 디모데를 언급한 것과 분위기로 보아 그가 저자임을 알 수 있다. 

2) 장소와 시기 : 이 책은 사도 바울이 로마 투옥에서 풀려난 후인 주후 67년경 밀레도에 머물 때(딤후 4:20 참조) 기록했을 것이다.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13:24)이라는 언급에서 이 책은 로마에서 쓰지 않았다는 것을 본다. 내용에 따르면 이것은 분명히 히브리 신자들에게 쓴 것이다.


▶ 야고보서

1) 저자 : 이 책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1:1, 마 13:55)인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쓴 것이다(1:1). 

2) 장소 : 야고보가 어느 때 예루살렘을 떠났다는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것은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쓰였을 것이다.


3) 시기 : 그 내용에 교회의 하락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은 주후 5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 베드로전서


1) 저자 :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가 이방 나라들에 흩어져 있는 유대 믿는 이들에게 쓴 것이다(1:1). 

2) 장소 : 기록은 유프라테스 강의 큰 도시인 바벨론에서 이루어졌다(5:13). 


3) 시기 : 쓴 시기는 바울의 순교 이전임이 분명하다(5:13). 그러므로 이것은 주후 64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 베드로후서

1) 저자 :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베드로가 이방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의 믿는 이들에게 쓴 것이다(벧전 1:1). 

2) 시기 : 2장의 교회의 타락한 상태와 3장 15절에서 16절의 사도 바울에 관한 천거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바울의 순교 후인, 아마도 주후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전인 주후 69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의 순교 직전에 기록되었음이 틀림없다(1:14).


▶ 요한일서

1) 저자 : 이 서신의 구성과 분위기와 어조에 따르면 요한복음을 쓴 그 요한이 이 책을 기록했다는 데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서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은 모든 믿는 이들에게 쓴 것이다(5:11-13).

2) 장소와 시기 : 교회 역사와 이 서신 전체의 내용에 따르면 요한이 밧모 섬의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인 아마도 주후 90년과 95년 사이에 그가 마지막으로 사역했던 에베소에서 기록했음에 틀림없다.


▶ 요한이서

1) 저자 : 이 책은 장로인 요한이 택하심을 입은 자매와 그녀의 자녀에게 쓴 것이다(1절). ` 장소와 시기 : 이것은 분명히 요한일서 이후에 쓰여졌을 것이다(요한일서의 이 부분을 참고하라). 교회 역사는 이 책이 기록된 당시, 요한이 에베소의 장로였음을 명확하게 진술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에베소에서 기록됐음이 틀림없다

▶ 요한삼서

1) 저자 : 이 서신은 요한이 에베소의 장로였을 때, 그곳에서 가이오에게 쓴 것이다(1절)

▶ 유다서

1) 저자 : 이 책은 주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였던 유다(마 13:55)가 기록하였다. 

2) 장소 : 기록 장소는 예루살렘이거나 유대일 것이지만 어느 곳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3) 시기 : 이 책에 분명히 나타난 교회의 타락한 상태는 베드로후서를 기록한 당시의 상태와 유사하므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 70년 이전인 주후 69년경에 베드로후서와 거의 동시에 기록했을 수 있다.


▶ 요한계시록

1) 저자 : 사도 요한이 썼다.

2) 장소와 시기 : 이 책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당시인 주후 90년경에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1:1, 4, 9)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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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8410 2017-10-15T15:54:33Z 2017-10-15T15:54:33Z 여섯째 인 어린 양의 진노(요한계시록 6:12-17) / 주일설교(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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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7687 2017-10-12T00:44:06Z 2017-10-12T00:44:06Z 여호와의 절기(레위기 23:1-3) / 수요성서연구(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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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6787 2017-10-08T15:56:50Z 2017-10-08T15:56:50Z 다섯째 인 순교자들의 호소(요한계시록 6:9-11) / 주일설교( 2017-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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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6103 2017-10-05T01:21:46Z 2017-10-05T01:21:46Z 재사장과 성물 규례 (레위기 22장)

성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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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5126 2017-10-01T15:50:13Z 2017-10-01T15:50:13Z 넷째 인 청황색 말(요한계시록 6:7-8) / 주일설교( 2017-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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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4504 2017-09-28T08:07:28Z 2017-09-28T08:07:28Z 레위기 21장(제사장에 대한 규례) / 2017-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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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3501 2017-09-24T16:11:19Z 2017-09-24T16:11:19Z 개종인가 중생인가?(고린도후서 13:5-9) / 주일설교( 2017-9-24) 정지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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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2830 2017-09-21T14:29:57Z 2017-09-21T14:29:58Z 죽어야 할 죄(레위기 20장) /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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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1966 2017-09-18T11:31:28Z 2017-09-18T11:31:29Z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제 1문

제1문 : 삶과 죽음 사이에서 당신의 유일한 위로(행복)는 무엇입니까?

답 :
 나의 삶과 죽음에서 나의 몸과 영혼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의 피로 나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지불하셔서 죽음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성령으로 확신시켜 주셔서 이후로는 그분을 위해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종교개혁도 하나의 역사다.
우리가 종교개혁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종교개혁은 과거의 사건에 불과할 뿐이다.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종교개혁’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이 없다.
루터와 칼뱅을 영웅적 인물로 칭송하고 ‘이신칭의(以信得義)’를 논하는 것도 그렇다.
힘겨운 삶의 굴레를 견뎌내는 이들에게 좀 더 울림을 주는 ‘우리의 이야기’를 종교개혁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 영주들의 영지에서도 이들의 토지 독점에 반발해 기사들이 반란(1522)을 일으켰다.
또 루터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뮌처는 농민전쟁(1524)을 이끌었다.
당시 ‘헬 독일’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이야기다. 


이를 위해 먼저 16세기 독일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루터는 1517년 종교개혁을 일으켰으나 1521년 이단으로 법정에 소환됐다.
그러나 독일 내에서 그를 지지하는 귀족이 늘어나면서 정치 세력을 형성했다.
1526년 제1차 슈파이어 회의에서 종교적 자유를 허락받았고,
1547년 슈말칼덴 전투에서 가톨릭의 공세를 막아낸 후,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和議)에서 정식 종교로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루터파’는 가난한 하급기사들, 굶주린 농민들, 소수의 유대인을 배척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상대적으로 칼뱅파는 약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칼뱅은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가지든지 그것은 신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므로 최선을 다하라는 ‘직업소명설’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층민들의 지지를 받은 칼뱅파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배제된 후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때까지 사회에서 ‘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1563년 탄생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바로 이런 칼뱅파의 목소리를 담아 작성됐다.
암울한 시기에 그들이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인생의 위로(행복)에 대한 것이다.
칼뱅파 기독교인들에게 참된 위로는 무엇이었을까?
갑이 되는 것일까?
정치적으로 군림하는 위치에 서는 것일까?

그런 그들에게 주어진 답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우리 인생은 그리스도의 것이며, 그분을 위해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직업소명설과 연결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귀족이건 농민이건, 부자이건 빈자이건, 어떤 직업을 가졌든지, 신의 부르심으로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다(고전 7:24, 살후 1:11).  

그들을 통해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태동했다.
신을 위한 삶은 사회의 윤리적 영향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사회 속에서 가져야 할 사명이며, 그 결과가 위로와 행복의 근거가 돼야 한다. 

우리는 ‘개인의 성취’를 ‘행복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의 관심사를 ‘기도제목’으로 주고 받으며, 신앙을 행복을 위한 들러리로 삼고 있지 않은가.

하이델베르크 1문의 위로는 단순히 개인적 관심사를 뜻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윤리성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부문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이 20세기 독일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1875∼1955)이다.
그의 형 하인리히 만(Heinrich Mann·1870∼1950)과 토마스는 둘 다 작가의 길을 걸었다.
독일의 독실한 루터교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었지만, 문학적 지향점은 사뭇 달랐다.
하인리히는 ‘작가란 사회 속에서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반면,
토마스는 인간 개인의 내면, 고뇌, 행복 등을 소재로 삼았다.
두 사람의 입장 차이는 한동안 그들의 관계를 단절시켰다.
두 형제의 갈등은 오늘날 교회에서 벌어지는 신앙 논쟁 같아서 결코 낯설지 않다.

토마스 만의 초기작 ‘행복에의 의지’(1896)는 그의 문학적 지향점을 반영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파울로’는 병약한 청년이었지만 모진 반대를 무릅쓰고 지극히 사랑하던 여인과 결혼한다.
이것이 그에겐 행복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취되는 순간 그가 죽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행복에 대한 파울로의 의지가 채워졌을 때,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한국 기독교의 자화상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행복의 조건을 위해 기도하지만 응답을 경험하면 더 이상 신앙생활의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사회 속에서 양심의 소리를 내는 것은 ‘신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늘진 주변에 대한 시선을 닫는다. 

토마스 만이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고 형 하인리히와 한 목소리를 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독일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헌법 위에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몰락하고,
종교개혁의 후예였던 독일 교회가 나치 정권의 시녀가 되자 토마스 만은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192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그는 ‘마리오와 마술사’(1929)를 내놓았는데,
사회를 환각상태에 빠뜨리는 인물로 히틀러를 묘사했다.
그의 용기 있는 목소리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독일인의 양심’이란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위협으로 인해 1938년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토마스 만은 “사람은 개인으로 살아가지만, 타인들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가 시대의 악에 너그럽다면 범죄의 동조자일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젊은 시절의 토마스 만처럼 한국교회의 관심은 인간 개인의 내면과 고뇌, 행복에만 머무는 건 아닐까.
파울로처럼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위로’라면 ‘쟁취하고 나면 공허해질’ 신기루에 불과할 것이다.
개인에게도 위로일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위로가 되어야 진정한 위로다.
내 자리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 의식을 고취하고, 사회의 양심으로서 소금이 되는 것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위로이자 행복이다.  

과연 우리는 시대의 양심으로, 시대의 불의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500년 전 그들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흔적을 남겼듯이, 부르심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또 다른 ‘사회의 윤리’를 세우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델베르크 제1문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나눔과 적용

☞ 당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위로와 행복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기도제목’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인생의 위로와 행복은 무엇일까요?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817572&code=23111638&sid1=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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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90152 2017-09-10T15:57:05Z 2017-09-10T15:57:05Z 둘째 인 붉은 말(요한계시록 6:3-4) / 주일설교( 201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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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89689 2017-09-08T09:03:02Z 2017-09-08T09:03:23Z 한글 성경 개역 개정


한글 개역 개정 성경에 대하여

1. 개역개정판

「개역개정판」(1998)은 한국교회가 1961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사용하고 있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56/61)을 개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13개 교단이 공식사용을 결의하였다.
기독교대한감리회(1998)       
기독교한국침례회(1998)
한국기독교장로회(1999)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1999)
기독교대한성결교회(2000)     
기독교대한복음교회(2001)
대한예수교장로회(대신)(2004) 
기독교한국루터회(2004)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2004)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2005)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2005)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2005)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국제)(2005)

2. 개역개정판 어디를 얼마나 고쳤나?

「개역개정판」 성경은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감안하여 꼭 고쳐야 할 부분만을 개정하였기 때문에, 「공동번역」이나 「새번역」처럼 변화한 곳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는 「개역한글판」 성경의 번역을 최대한 존중하였으며, 개역 성경의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신약 12,823곳, 구약 59,889곳이 수정되었으며 수정내역도 오역을 개정하고 어려운 말을 쉽게 개정하였으며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에 따라 표기를 올바르게 고쳤다. 원본의 번역문제, 장애인 용어의 수정, 음역문제와 우리말 표현을 다듬고 뜻을 더욱 분명하게 밝혔다.

3. 「개역개정판」의 특징

(1)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고려하여 꼭 고쳐야 할 부분만을 개정함으로써,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의 번역성격을 최대한 존중하였다.

따라서 같은 번역 내용을 표현을 달리하여 개정하는 일은 삼갔다. 예를 들면, '주의 기도'(마6:9-13) 같은 것을 개정할 때도 "나라이 임하옵시며"를 "나라가 임하시오며"로, "오늘날 우리에게"를 "오늘 우리에게"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를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정도로 개정하였을 뿐, 번역의 내용이나 표현이나 문장 구조나 문체에 있어서 「개역」의 특징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2) 「개역」 성경의 옛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하다'체를 사용하여 현대화하지 않고, '하느니라'체를 그대로 사용하여 고어체를 유지하였다. 이것은 아직도 경전의 권위를 고어체 활용과 연관시키는 「개역」 독자들의 취향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1:1-4을 보면, '하시니라', '좋았더라' 등의 표현을 '하셨다', '좋았다 등으로 고치지 않았다.

(3) 인명과 지명, 기타 외래어의 음역은 「개역」의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다만 「개역」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되었던 것들만 개정하였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의 이름이 「개역」에서는 '바실래'와 '바르실래'로 나오는 경우, 「개역개정판」에서는 '바르실래'로 통일하였다.

(4) 「개역」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서는 번역 내용의 일부를 고쳤다.

예를 들면, '주기도'(마 6:9-13)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로 고쳐서 다음에 나오는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와 수동태의 문법 형식이 일치하게 개정하였다.

(5) 오늘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어와 한자어는 쉬운 말로 고쳤다.

예를 들면, 창세기 24:22절의 '약대'는 '낙타'로, 창세기 15:4의 '후사(後嗣)'는 '상속자(相續者)'로, 이사야 25:5의 '훤화(喧譁)'는 '소란(騷亂)' 등으로 고쳤다.

(6) 국어 맞춤법이 달라진 곳을 고쳤다.

'일찌기'는 '일찍이'로, '-찌라도'는 '-지라도'로, '찌어다' 같은 것은 '지어다'로, '추숫군'은 '추수꾼'으로, '수염소'는 '숫염소'로 고친 것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이 밖에도 문법에 맞지 아니하는 문장이나 어색한 문장을 다듬었다. 예를 들면, 창세기 3:7의 '치마를 하였더라'는 '치마로 삼았더라'로, 마태복음 3:2의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로 고쳤다.

(7) 장애인 기피/차별 용어를 고쳤다.

예를 들면, '문둥병'은 '나병'으로, '소경'은 '맹인'으로, '곱사등이'는 '등 굽은 자'로, '난쟁이'는 '키 못 자란 사람'으로, '절뚝발이'는 '다리 저는 자'로, '벙어리'는 '말 못하는 사람'으로, '귀머거리'는 '못 듣는 사람'으로, '앉은뱅이'는 '못 걷는 사람'으로, '불구자'는 '장애인'으로, '병신'은 '몸 불편한 사람' 등으로 표현을 바꾸었다.

4. 「개역개정판」 주기도문

(1) "나라이 임하옵시며"에서 "나라가 임하옵시며"로

그 동안 옛 국어문법에 따라 "나라" 뒤에 주격조사를 "가"가 아니라 "이"로 사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흔히 "나라에 임하옵시며"로 오해를 했던 부분이다. 이제 60여 년만에 현대의 어법을 따라 개정한 것이다.

(2) "오늘날 우리에게"에서 "오늘 우리에게"로

'오늘'의 성경원어는 분명히 24시간의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 여러 날 또는 한 시대를 가리키는 '오늘날'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오늘'의 뜻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요즈음의 시대'를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이라는 표현은 낯설게 느껴지거나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기에 '오늘'로 개정하였다.

(3)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에서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로

옛 국어문법에서는 겸양을 뜻하는 '옵시'라는 어미로 존칭까지 함께 포함했지만, 현대의 문법에서는 '시오'가 존칭과 겸양을 함께 뜻하는 어미로 쓰이게 되었다. 또 이런 쓰임새가 주기도문에도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주기도문 전체에 반영하여 어법의 통일을 기하였다.

(4) "대개"는 삭제

"대개"라는 말은 "호티(hoti)"라는 성경원어에 대한 번역이다.
이 말은 이유를 설명하는 접속사인데 우리말에는 이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뜻을 나타낼 수 있다. 실제로 바뀌기 전 개역성경에서도 마태복음 안에 있는 주기도문에는 "대개"라는 말이 없다. 또 공동번역, 새 번역에도 "대개"는 없다. 그래서 개역개정판에서도 주기도문에서 "대개"를 삭제했다.

5. 개역개정 4판이란?


"개역개정판" 본문은 한국 교회 각 교단에서 파송 된 대표들의 합의로 원문에 따라서 개정하여 채택한 본문이다.
그 중 "본문 9곳"과 "각주 1곳"을 장로교 합동 교단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해서, "개역한글판" 본문으로 환원하였다.
그 예가 창세기 30:33이다.

"나의 의가 나의 표징이 되리이다"(개역한글판)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개역개정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개역개정 4판)

이는 어느 한 교단이라도 반대하면 개역한글판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했던 개정 당시의 원칙과 정신을 따른 것이다.
물론 개역개정 4판은 최종적으로 확정된 본문이기 때문에 추가로 환원할 계획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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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89437 2017-09-07T12:09:44Z 2017-09-07T12:09:44Z 거룩한 백성의 성 윤리(레위기 18장) / 수요성서마당(20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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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71708 2017-07-08T21:22:52Z 2017-07-08T21:24:22Z 2017년 전반기 오늘의 성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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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오늘의 성구


1월 1일(주일) 요한일서(1John)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Everyone born God overcomes the world.
This id the victory that has overcome the world,
even our faith.

믿음(信)이란 반드시 어떤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신뢰(信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믿음(信)
신뢰와 믿음의 매개체는 말(言語)입니다.
한자어의 믿음(信)이란
사람(亻)과 말(言)이 하나가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말이 아니라
복을 줄 수 있고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복된 관계가 형성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경의 가르침보다 더 확실히 검증된 과학은 없다.
There is no science that is more clearly proven than the Bible teaches.


1월 2일(월) 히브리서(Hebrew)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Now faith is being sure of what we hope for
and certain of what we do not see.    
믿음(信)이란?
철저하게 맡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 뿐인 생명까지도........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을 맡길 수 없는
육체의 감옥에 갇혀 있는 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제는 생명까지도 맡기려 합니다.
주님,
초라한 모습이라도 받아주세요.

오늘의 말씀으로
지난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 날을 바라봅니다.
맑은 하늘에 새겨질
믿음의 조각들을 맞추며
오늘 이 하루가
내 생에 최고의 날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를 흉내 내는 것이 기독교인이 되는 비결이다.
Imitating Christ is the secret to becoming a Christian. 

1월 3일(화) 로마서(Romans)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복음(福音)이란 기쁜 소식을 말합니다.
기쁜 소식은 좋은 소식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가장 좋은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이런 복음을 믿는 사람을 의인(義人)이라고 합니다.
의인이란 한자의 의미는 ‘옳을 의(義)’ ‘사람 인(人)’
즉 옳은 사람을 말합니다.
옳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가(我) 양(羊)이 된 사람(人)입니다.
세례 요한은 양이 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요 1:29b).

‘보라 세상 죄(罪)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羊) 이로다.’

따라서 복음이란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의인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의로운 사람으로 오늘도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크리스천과 낙타는 무릎을 꿇고 짐을 받는다.
Christians and camels are kneeling and burdened. 

1월 4일(수) 에베소서(Ephesians)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Do not give the devil a foothold. 

마귀는 여자의 후손 즉 예수를 공격합니다.
최초의 공격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하와와 아담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공격한 마귀의 정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창 3:1).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The serpent was more crafty)’ 

간교(奸巧)하다는 말은 ‘교활(狡猾)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컨닝(cunnung)’ 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아담과 하와를 공격한 마귀는 요한계시록에서 그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요한계시록 2:10,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요한계시록 12:12,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요한계시록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마귀의 일은 사람의 약점(弱點)을 잡아 그 약점을 이용하여 괴롭히는 역할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께서 마귀의 일을 완전하게 멸하셨습니다(요일 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오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갖 교활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 없이 기독교 원리를 체득할 수 없다.
We can not learn Christian principles without Christ.


1월 5일(목) 로마서(Romans)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God's gifts and his call are irrevocable.  


은혜의 선물은 구원입니다.
은사의 선물은 능력입니다.
부르심의 선물은 사명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소명).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맡겨진 일을 확신해야 합니다(사명).

척추 암 말기에 살 소망이 끊어졌을 때 “하나님이 고쳐 주시면 주를 위해 큰 일을 하면서 일평생 살겠습니다.” 하며 간구했던 ‘스테니나’의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원칙을 소개합니다.

1. 하나님께 평생을 두고 감사하며 살리라.
2.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살리라.
3. 결코 성내지 않고 기쁨으로 사람들을 대하리라.
4.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매일 세 가지씩 하리라.
5.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마음이 은혜의 불로 뜨거워졌을 때 순종하리라.


오늘도 후회 없는 신앙의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영혼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Every soul in this universe is the object of God's judgment. 

1월 6일(금) 이사야(Isaiah) 58:11a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The LORD will guide you always; he will satisfy your needs in a sun-scorched land and will strengthen your frame.    

철학자 파스칼은
사람의 깊은 곳에는 채울 수 없는
텅 빈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공간을 채우려고 합니다.

영적 공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영적 공간을 채우는 것이
영혼의 만족입니다.

영혼이 곤고할 때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만족을 위한
대용품을 찾는 것은
오히려 더 큰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영의 주인이 되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영혼의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타고난 능력이 있다.
이것이 은사이다.
Everyone has the ability to be born of God.
This is a God's gift.

1월 7일(토) 출애굽기(Exodus) 9:16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But I have raised you up for this very purpose, that I might show you my power and that my name might be proclaimed in all the earth.


애급 왕은 자신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력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애급 왕에게 천하의 왕은 네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급 땅에 재앙을 내리신 것은 하나님께서 왕이 되심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가축들은 악한 종기로 죽어갑니다.
이번에는 우박으로 재앙을 내리려고 합니다.

더 큰 재앙이 닥쳐오기 전에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재앙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참 미련한 사람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찾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주여,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이란 마음속의 앎이요.
증거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앎이다.

Faith is knowing in the heart.
It is knowing beyond the boundaries of evidence. 

    

1월 8일(주일) 욥기(Job)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Your beginnings will seem humble, so prosperous will your future be.

2017년 새해 첫 주간을 마감합니다.
첫 주간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다.
독일의 문호 궤테의 말입니다.
52개의 단추 구멍 중
이제 남은 구멍은 51개뿐 입니다
구멍은 누가 채워주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구멍을 찾아 채워야 합니다.

시간은 중단 없이 흘러갑니다.
시계는 멈추는 일이 있지만 시간은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시간은 무척 빠르게 흘러가며
흘러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자원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귀한 보화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은 어지럽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헛된 일에 시간을 낭비하기 쉽습니다.

인생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
그 중 잠자는 시간,
철부지의 시절,
활동할 수 없는 노년,
세수하고 밥 먹고 하는 필수적인 일상생활을 제하면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20여년에 불과합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뚜렷한 방향과 목적을 갖고
오늘도 내게 맡겨진 시간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2017년은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독교는 무상의 은총이고, 구원의  종교이다.
Christianity is a free grace and a religion of salvation. 

1월 9일(월) 예레미야(Jeremiah) 1:5a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Before I formed you in the womb I knew you, before you were born I set you apart.

성별(聖別)이란 거룩한 구별을 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이미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세상 속에
나라고 하는 작은 존재가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별이란 숨어 있는 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 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금수저와 은수저 그리고 흙수저로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 거룩한 자녀라고 말씀합니다(聖수저).
세상의 가치관에 의하면 나는 초라해 질 수 있습니다.
말씀의 진리를 따르면 나는 이미 구별된 존재입니다.

내가 나를 무시하면
어느 누가 나를 존경할 수 있을까요?
주 안에서 나를 사랑하고
사랑받은 내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류의 구원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과 목적에 따라 정한 것이다.
The salvation of mankind is determined by God's good will and purpose.

1월 10일(화) 시편(Psalms) 134: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May the Lord,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bless you from Zion.

복(福)이란 한자어를 분석하면
보일 시(示)
한 일(一)
입 구(口)
밭 전(田)

보일 시(示)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제단의 모양)
한 일(一)과 입 구(口)는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밭 전(田)은 에덴동산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복(福)이란
한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복이란 영생(永生)’입니다(시편 133:3).

영생은 곧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복음 17: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의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가장 귀한 복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적인 가치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영생의 은혜를 자랑하고
영원한 그 날을 기다리며 행복하게
나를 다스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만 할 수 있다.

We can not do great things.
I can only do small things with great love. 


1월 11일(수) 고린도전서(1Corinthians) 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Each one should remain in the situation which he was in when God called him.

                                                                     

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나와 같은 사람을 부르셨을까요?

정신분석하자 에릭 프롬(1900∼1980)은 ‘미숙한 사랑’과 ‘성숙한 사랑’으로 설명합니다.

미숙한 사랑이란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숙한 사랑은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사랑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온전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사람을 불러주신 것은 미숙한 인생을 사용하여 성숙한 사랑을 실천하도록 인도하시는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성숙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믿음을 간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표현한다.
We express our hearts to God through prayer. 

1월 12일(목) 마태복음(Matthew) 4:19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낚시를 하려면 미끼를 사용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합니다.
미끼가 되려면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즈음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은 진실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루하루를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진실한 생각에서 진실한 언어와 삶이 드러납니다.
누구를 믿는다는 것,
더구나 말(言語)을 믿는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기 전에
나는 진실한 사람인가 생각해 봅니다.
서로 믿고, 믿어주는 일이
특별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그 날을 위하여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은 행위의 뿌리이다.
The faith is the root of action.

http://www.cportal.co.kr/bbs/board.php?bo_table=pds&wr_id=3398&sca=%EC%98%88%ED%99%94&page=172



모두가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필요한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며
악한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순종하는 백성에게
모든 일에 복을 주신다.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우리 곁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중심과 삶의 방향이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분단의 상처를 받았지만, 예수의 보혈로 치유함을 받아, 상처 입은 치유자'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것이다.

 


1월 13일(금) 시편(Psalms)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He is like a tree planted by streams of water, which yields its fruit in season and whose leaf does not wither. Whatever he does prospers.    

‘오늘 밤 열 두 시에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에 웨슬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설교준비와 심방을 하겠소. 그리고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겠소.’ 


믿음의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평소에 행하던 것을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 와 같은 일이 열매를 맺게 하며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복음의 특권은 나눔으로 주어진다.
The privilege of the gospel is given by sharing. 


1월 14일(토) 로마서(Romans)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May the God of hope fill you with all joy and peace as you trust in him, so that you may overflow with hope by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여는 순간
그 안에 숨어있는 온갖 더럽고 추악한 것들이 뛰쳐나옵니다.
깜짝 놀라 그 뚜껑을 덮는 순간
상자 안에는 오직 단 하나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소망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위로를 기다립시다.
그리고 모두에게 성령의 임재가 임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간의 회개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가장 위대하고 귀중한 축복이다.
A man's repentance is the greatest and precious blessing God has given him.

1월 15일(주일) 욥기(Job)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어떤 석공이 무릎을 꿇고 비석에 각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느 목사가 지나가다가 말했습니다.

‘내가 돌같이 단단한 사람의 마음을 당신과 같이 힘써 내려칠 수 있었으면 좋겠소.’


그러자 석공이 말합니다.
‘당신이 나와 같이 무릎을 꿇고 일을 하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정금(正金)이란 아무 것도 섞이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이란 그릇 안에 너무 많은 것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요?
이제는 신앙이 아닌 것들을 가려내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신앙으로 무장하고 진리를 위하여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마음과 영혼 속에 조용히 거하는 자는 천국에 있는 것이다.
He who dwells quietly in heart and soul  live in heaven.

1월 16일(월) 빌립보서(Philippians)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Being confident of this, that he who began a good work in you will carry it on to completion until the day of Christ Jesus.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착한 일을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의 사람 크리스소톰이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이 감옥에도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있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셨다.’

내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착한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경배와 찬양 그리고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죄는 죄에 대한 슬픔이 없을 때 커다란 슬픔을 가져온다.
Sin brings great sorrow when there is no sorrow for sin. 

1월 17일(화) 시편 43(Psalms) 4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모두 거짓에 갇혀 있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것도 배움이 높은 사람들에 의해서 나타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매우 무겁습니다.
그런데 잠시 눈을 돌려 오늘의 성구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는 곳에서 소망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소망이 있는 곳에서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시각장애로 태어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먼저 바라볼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소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오히려 내게는 행복의 시작이었다.

소망이 있는 곳을 찾아
그곳에서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고난과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
Without suffering and the cross, there is no crown. 

1월 18일(수) 히브리서(Hebrews) 6: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We want each of you to show this same diligence to the very end, in order to make your hope sure.

무슨 일에 부지런해야 할까요?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일본 작가 미우라 아야꼬가 구멍가게를 열었을 때의 일입니다.
날로 가게가 번창했는데 그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옆집 구멍가게들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던 것입니다.
아야꼬는 남편에게 ‘우리 가게가 잘 되는 것이 옆 가게를 망하게 하는 것인 줄 몰랐어요. 가게를 줄입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일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게를 축소하고 손님들을 옆 가게로 보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남게 되었고
그 시간에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이 ‘빙점’ 이라는 소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는 진리를 체험한 것입니다.

진리를 입으로만 주장하지 말고
몸으로 보여주고 실천하므로
진리의 등대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늘나라의 입성은 죽음의 관문이 아니라 회심의 순간이다.
The entrance of the kingdom is not a gateway to death but a moment of conversion.

1월 19일(목) 잠언(Proverbs)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Humility and the fear of the LORD bring wealth and honor and life.


링컨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링컨 대통령인 것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 쩔쩔매며 말을 꺼냈습니다.

‘각하, 이게 어찌된 노룻입니까?’

‘어찌된 노릇이라니?’

‘일국의 대통령의 존귀하신 몸으로서 천한 사람이나 하는 구두닦이를 손수 하시다니 이게 될 법한 일입니까?’ 

이때 링컨 대통령이 말하기를,  

‘제임스군, 자기 구두를 자기 손으로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이게 무슨 잘못된 일인가? 또 구두 닦는 일은 천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세.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다 같이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야. 어찌 천하다 할 수 있겠는가?’ 

진실하고 겸손한 지도자가 세워지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랑은 사람들을 결합하도록 만들고 이성은 그 결합을 완성한다.

Love makes people join and Reason completes that combination. 



1월 20일(금) 예레미야(Jeremiah)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For I know the plans I have for you, declares the LORD, plans to prosper you and not to harm you, plans to give you hope and a future.   


런던의 한 길모퉁이에서 구두를 닦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빚 때문에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가족들을 위하여 구두를 닦아야 했습니다. 새벽부터 나와서 밤늦도록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닦으면서도 그 소년은 얼굴에 밝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늘 노래를 부르는데 밝은 노래만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구두 닦는 일이 뭐가 좋으냐?’

그때마다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지금 구두를 닦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닦기 때문입니다.’


이 소년이 ‘올리버 트위스트’ 라는 작품을 쓴 작가 ‘찰스 디킨스’입니다.

아무리 먹구름이 짙어도 그 먹구름 뒤에는 빛나는 태양이 있습니다. 환경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 모든 것을 다듬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에 조국의 앞날은 어둡지 않습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런 세상에서도 희망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희망은 하늘나라의 사업이다.

Hope is the work of the kingdom. 

1월 21일(토) 골로새서(Colossians)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Set your minds on things above, not on earthly things.    


사람이란 헬라어는 ‘안드로포스’ 라고 합니다.
‘안드로포스’는 ‘위를 바라 본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아래를 보는 존재가 아니라 위를 바라보는 존재입니다.
위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반드시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의 은사는 밑으로 굽혀야만 닿을 수 있는 낮은 선반 위에 있다.

The gift of God is on a low shelf that must be bent down. 

1월 22일(주일) 잠언(Proverbs)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Commit to the LORD whatever you do, and your plans will succeed.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도움을 구하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사람의 도움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사람보다 먼저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먼저 주님을 찾을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능력을 가지고 온다.

Prayer brings with 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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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월) 에베소서(Ephesians)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Till we all come in the unity of the faith, and of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unto a perfect man, unto the measure of the stature of the fullness of Christ.   


믿는 것과 아는 것이 일치하는 신앙
믿는 것은 마음
아는 것은 머리
일치하는 것은 행동 즉 삶을 말합니다.
성숙한 믿음이란
온 몸으로 믿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존재입니다.
한 사람의 삶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맡기는 믿음은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하나가 될 때 비로써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평정을 찾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고요히 머물라!
Stay still before God until you find peace!

1월 24일(화) 마가복음(Mark) 16:15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철학자 하이덱거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다고 하였다.
첫째는 물질에 대한 고민
둘째는 사람에 대한 고민
셋째는 자신에 대한 고민이라고 한다.

물질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에 대한 고민을 해결한 사람을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기 문제는 자기 안에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 하므로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찬양이 있는 곳에는 악이 머물 수 없다!
Where there is God's praise evil can not stay!

1월 25일(수) 디모데후서(2Timothy)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But you, 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discharge all the duties of your ministry.  


전도(傳道)는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를 어떻게 전해야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요?

어느 명문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학생의 고민입니다.
나는 날마다 기도합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암송합니다.
예배는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대부분의 성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는 농부처럼
오늘도 묵묵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열매 맺게 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기도하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경건한 예배는 영혼의 위로를 얻게 한다!
Spiritual worship gives comfort to the soul!

1월 26일(목) 디모데전서(1Timothy)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For it is for this we labor and strive, because we have fixed our hope on the living God, who is the Savior of all men, especially of believers.    

무슨 소망을 갖고 살아갑니까?

어느 가정에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를 바라보던 한 노인이 아기를 위한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아기 엄마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 아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사랑할 줄 몰랐습니다.
아이는 점점 교만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된 소망을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줄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의 비밀은 받는 것보다 나눠줄 때 그 기쁨이 커집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경의 희망의 창문이다.
그 창문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본다.
The Bible is the window of hope.
We'll see the eternal world through the window.

1월 27일(금) 사도행전(Acts) 2:28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s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생명의 기쁨은
신혼 가정에서 첫 아기가 태어날 때 느낄 수 있는 감격입니다.
그 이외에 생명의 기쁨을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요?

런던의 영국 수상관저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습니다.
연설문을 작성하던 윌리암 글래드스톤(William E.  Gladstone.  1809-1898)이
문을 열었을 때 그 앞에는 낯선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글래드스톤은 왜 찾아왔느냐고 물었습니다.

‘나의 형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오셔서 천국에 이르는 길을 보여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글래드스톤은 소년의 형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소년의 형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글래드스톤은 서재로 돌아와서 그가 준비하고 있던 연설문의 맨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는 영국 런던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생명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령으로 채워진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여 달아오른 사람이다.
The sou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is ready to work for God.

1월 28일(토) 로마서(Romans)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What, then, shall we say in response to this? If God is for us, who can be against us?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라나타’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심으로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이 오실지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두려움이 아니라 감격과 기쁨으로 그 날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지옥이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이다.
Hell is God's hatred of sin. 

1월 29일(주일) 시편(Psalms)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n ever present help in trouble.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 이라는 말입니다.
매일의 삶이 즐겁습니까?
무엇 때문에 즐겁습니까?
사람은 보람을 느낄 때 즐겁습니다.

‘오늘이 네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살라’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입니다.

‘오늘이 네 인생의 최초의 날이요 최후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살라’
탈무드에 소개된 말입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린 날입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날입니다.
오늘만이 내게 중요한 날입니다.
가장 중요한 날에
가장 중요한 일은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안식보다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즐거워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두신 말은 희망이다.
The word God has carved into the hearts of all is hope. 


1월 30일(월) 로마서(Romans)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For in this hope we were saved. But hope that is seen is no hope at all. Who hopes for what he already has?

소망이 없는 사람의 얼굴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넘치는 사람의 얼굴에는 삶의 활력과 희열을 봅니다.
요즈음 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요?
조용히 거울을 드려다 봅니다.
그리고 성경을 펼쳐 구약의 전도서를 읽습니다.
마음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삶의 의욕이 얼굴의 창에 나타날 때
또다시 마음을 다스리고
가던 길을 묵묵히 걸어가렵니다.
오늘도 소망이 넘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인간과 성령님 사이의 무선 연락이다.
Prayer is the wireless communication between the man and the Holy Spirit. 
   

1월 31일(화) 잠언(Proverbs) 23:18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There is surely a future hope for you, and your hope will not be cut off. 

2017년 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달을 보내는 마음이 어떠하신지요?
만족하십니까?
아니면 서운하십니까?
만족도 서운함도 모두 내 탓입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서운함과 아쉬움만 남습니다.
얼룩진 서운함과 아쉬움을
2월의 계획으로 지워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나와 함께 동행 하시는
주님과 함께 길을 걷는
즐거움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신앙을 가지고 싸우면 우리의 힘은 두 배가 된다.
If we fight with faith, our strength doubles. 

2월 1일(수)  고린도후서(2Corinthians)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은혜는 생각을 넓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기 전에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자기 꿈에 도취되어
형제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즐거움에 만족했던
요셉은 온갖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에는
나를 애급으로 인도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나는 누구를 용서할 자격도 없으며
형제들을 기근 때에 보살필 것을 약속하는
성숙한 사고로 모두를 감동시켰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따라
서로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그 날을 기다리며 기도합시다.

온 땅에 주의 평화가 임하기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라!
Praise God, the source of all blessings! 


2월 2일(목) 에베소서(Ephesians)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Made us alive with Christ even when we were dead in transgressions-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가난한 여인이 병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포도를 찾아다녔습니다.
마친 왕의 정원에 탐스런 포도가 달려 있었습니다.
여인은 동전 몇 개를 꺼내 정원사에게 포도 한 송이만을 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정원사는 왕의 포도를 팔 수 없다고 합니다.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어머니의 마음은 정원 입구에 앉아 큰 소리를 울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의 통곡 소리가 공주의 귀에 들렸습니다. 공주는 여인에게 왜 여기서 울고 있느냐? 물었습니다. 공주는 정원사에게 포도 한 송이를 따오라 하더니 여인에게 주며 얼른 가서 아들의 병을 고치라고 위로했습니다.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돈을 받고 주신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십니다.
은혜로 받은 것을 은혜로 알고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참된 기도는 진심과 순수함을 요구한다.
True prayer requires sincerity and innocence.


2월 3일(금) 시편(Psalms) 119:155


구원이 악인에게서 멀어짐은 저희가 주의 율례를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Salvation is far from the wicked, for they do not seek out your decrees.  


구원 받았습니까?
이 질문에는 대부분 예라고 대답합니다.

구원 받은 삶을 살았습니까?
이 질문에는 많이 망설입니다.

그렇다면 구원 받았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성경적 증거(요한일서 5:11∼12)
둘째는 성령의 증거(로마서 8:16)
셋째는 생활의 증거(요한일서 3:14)


입으로만 구원 받은 증거를 주장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내 삶으로 구원을 증거 할 수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저희들의 마음에 부어주신 성령을 힘입어 저희를 강건하게 하소서!
Please May the Holy Spirit pour out in our hearts to strengthen us!



2월 4일(토) 고린도전서(1Corinthians)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For the message of the cross is foolishness to those who are perishing, but to us who are being saved it is the power of God.   


구원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요?

임종(臨終)을 맞이하던 어느 성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목사는 ‘어떻게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느냐?’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그 성도는 찢어진 종이 한 장을 보여줍니다.
그 종이에는 구원의 설교가 인쇄된 것이었습니다.
비록 쉽게 찢어질 수 있는 종이지만
그 내용은 영원히 찢어질 수 없는
진리와 생명이 새겨진 것입니다.
오늘날도 구원 받은 성도의 분명한 삶이
주위 사람들에게 읽혀질 때
구원의 역사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도의 삶을 통하여
구원의 종을 울릴 수 있는
은총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란 이름은 세계를 들어 올리는 지레와 같다.

The name Christ is like a lever that lifts up the world.


2월 5일(주일) 시편(Psalms) 31:19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How great is your goodness, which you bestow in the sight of men on those who take refuge in you.     

바닷물은 염분이 녹아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세상의 소금과 같습니다.
비록 소금의 농도가 강하지 않을지라도
소금이 세상에 녹아 있다면
세상은 소금물에 속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같은 작은 사람일지라도
구원 받은 성도의 본분을 바르게 감당하면
세상은 소금물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소금의 맛을 잃지 않도록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의 영이 사람에게 찾아오면 세계에 대한 안목이 생겨난다.
When the Spirit of God comes to man, an eye for the world is created.


2월 6일(월) 로마서(Romans)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Who will bring any charge against those whom God has chosen? It is God who justifies.    


죄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면 그 삶은 곧 하나님을 반사시키는 반사경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의(義)와 선(善)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의와 정직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거울 안에 우리의 얼굴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얼굴이 반사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통하여 의롭다 하신 하나님이 보여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지 이성이 아니다.
Feeling God is a mind, not a reason.


2월 7일(화) 베드로전서(1Peter)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It was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 lamb without blemish or defect.
  

우리는 본질상 부패했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선과 의를 부어 주심으로 우리가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므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선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는 교만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와 선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의 중심은 모든 곳이고, 하나님의 경계선은 어디에도 없다.
The center of God is everywhere, and there is no boundary of God. 


2월 8일(수) 마태복음(Matthew)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Jesus turned and saw her. Take heart, daughter, he said, your faith has healed you. And the woman was healed from that moment.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악한 질병이 괴롭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병을 고침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신하는 것은
병을 고치든지
아니면 병을 고치지 못하든지
주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들의 구원주가 되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좋은 것만 일어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때로는 나쁜 일을 통해서도
주님은 주님으로 역사하십니다.

모든 일에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모든 일에 기도하므로
믿음을 굳게 하는 은혜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은혜란 죄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자유를 주는 것이다.
Grace does not give freedom to sin, but to freedom from sin.


2월 9일(목) 요한복음(John)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In reply Jesus decla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see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again.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한 청년이 찾아와 묻습니다.
“신자가 되는 데는 몇 년이 걸립니까?”
테일러 선교사는 청년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램프 심지에 얼마동안 불을 붙여야 빛을 발합니까?”
그러자 청년은 대답하기를
“그야 심지에 불이 붙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거듭난 삶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새로운 삶에 비친 그 영혼에서 빛이 타오르게 되는 것이
곧 거듭난 거룩한 삶이 시작됩니다.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미신은 마음의 평화를 파괴한다.
Superstition is destroy the peace of mind.

 

2월 10일(금) 시편(Psalms) 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From the LORD comes deliverance. May your blessing be on your people.   


요한 웨슬리 목사는 안수를 받은 후에도 한동안 거듭남의 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거듭남의 체험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기적과 능력을 행한다고 예수를 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증거가 분명합니까?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증거를 행함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주를 믿는 나에게 행함이 있다면 구원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악인의 최후는 하나님과 영원한 분리이다.
The end of the wicked is eternal separation from God. 


2월 11일(토) 갈라디아서(Galatians)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Christ redee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 by becoming a curse for us, 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one who is hung on a tree.    


어제는 죄악 

오늘은 유혹 

내일은 지옥으로 난 

길을 가던 이가 

어제는 은총 

오늘은 축복 

내일은 영생으로 난 

새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탄은 성자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악한 일을 행한다.

Satan pretends to be a saint and does evil. 


2월 12일(주일) 로마서(Romans)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시루에 콩을 얹고 콩나물을 키울 때
먼저 흠 없고 온전한 콩을 골라야 합니다.
반 토막 난 것,
썩은 것,
벌레 먹은 것,
잘라진 것들은 콩나물로 자랄 수 없습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해바라기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자라야 합니다.

오늘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나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의 이적은 하나님의 일상적인 사역이다.

The miracle of Christ is the daily work of God. 


2월 13일(월) 에베소서(Ephesians)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In hi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the forgiveness of sins, in accordance with the riches of God's grace.


은혜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받은 은혜를 잘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받은 은혜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받은 것보다
받을 것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은혜를 누리려면
먼저 받은 것을 헤아려야 합니다.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할 때
주어질 것들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을 열기만 하면
내가 가져야 할 것들이
나를 향하여 미소 짓고 기다립니다.
은혜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무지의 특징은 허영과 자만과 교만이다.
The characteristic of ignorance is vanity, pride, and pride. 


2월 14일(화) 요한일서(1John)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I write these things to you who believe in the name of the Son of God so that you may know that you have eternal life.

영생이란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를 아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어느 나병 환자가 병에 걸렸을 때
제일 먼저 아내가 떠나가고
그 다음에는 부모도 떠나갔다고 합니다.
아무도 자기 곁에 없다는 것에 두려워할 때
주님이 찾아오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버리고 떠나갈 때
기꺼이 찾아오신 주님을 만남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삶이 곧 영생입니다.
영생의 삶을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기쁘게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소름끼치는 불신은 바로 자기 안에 있는 불신이다.

A creepy distrust is the distrust in myself.


2월 15일(수) 로마서(Romans)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정죄의 결과는 영벌 즉 영원한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영생 즉 정죄함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새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오늘도 새 생명의 삶을 시작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구원이
이웃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로 전달될 수 있도록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찬양은 최고의 헌신이며, 믿음의 증거이다.
Praise is the best devotion, a testimony of faith. 


2월 16일(목) 요한복음(John)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어느 묘지의 비석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소!”

“나도 전에는 당신처럼 그곳에 서서 그렇게 웃고 있었소!”
“이제 당신도 나처럼 죽을 준비를 하시오!”

아주 간단하지만 강한 의미를 던져주는 글입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의 준비는
지금 내가 살아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죽음의 준비를 어떻게 하였는지요?
오늘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후회 없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나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있다면 결코 평안하게 살 수 없다.
If there is sin between me and God, I can never live in peace. 


2월 17일(금) 시편(Psalms) 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As far as the east is from the west, so far has he removed our transgressions from us.   

어느 실험실에서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어 죽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서 고통 없이 죽어 가게 할 수 없을까?”
시험 삼아 한 마리를 뜨거운 물에 넣었더니 개구리는 얼른 뛰쳐나왔습니다.
또 한 마리를 넣었더니 빠져 나오지 못하고 무척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었습니다. 

다음에는 개구리를 적당히 차가운 물속에 넣었습니다.
개구리는 물속에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조금씩 불의 온도를 높였습니다.
물의 온도는 아주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는 아무런 소동을 부리지 않고 뜨거운 물에서 죽어 갔습니다.

서서히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그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갑니다.

나이가 들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인생은
서서히 죽어가는 가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도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의 물속에서 뛰쳐나와
영원한 삶을 바라보는
진리의 믿음 위에 일어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떠나는 것이다.
Sin is essentially a departure from God. 


2월 18일(토) 로마서(Romans)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All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인간 편에서 보면 구원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것은 하나님에게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행동(action)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입니다(reaction).
그러므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언제나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법은 우리가 추잡하다고 말하지만, 은혜는 우리를 깨끗하다고 말한다.
The law says we are scum, but grace says we are clean. 

2월 19일(주일) 골로새서(Colossians)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When you were dead in your sins and in the uncircumcision of your sinful nature, God made you alive with Christ. He forgave us all our sins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랴!”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나는 러시아를 어떻게 다스리는지 알고 있지만,
내 마음은 다스리지 못한다.

자기의 습관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술, 담배, 마약을 끓는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교만, 탐욕, 음란, 거짓, 시기와 같은 것을
사람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을 의지하므로
주의 능력으로 죄와 허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Leading us to heaven is not language, but action. 


2월 20일(월) 이사야(Isaiah)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I, even I, am he who blots out your transgressions, for my own sake, and remembers your sins no more.   


죄를 용서받았을지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용서의 효력은 사라져버립니다.

어느 살인범에게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살인범의 형은 지역사회에 많은 공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형은 판사를 찾아가서 동생을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사면을 간청했습니다.

주 법정은 형의 공로와 그의 보증을 참작하여
동생의 죄를 사면해 주었습니다. 

형은 사면장을 들고 동생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에게 묻기를,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여기서 나간다면 무엇을 하겠니?”


그러자 동생은 얼굴을 찡그리며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나간다면
첫째로 내게 사형 언도를 내린 판사를 찾아 죽일 것이고,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을 섰던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죽여 버릴 것이다.”

형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죄를 용서 받았으나 사면장을 받아드리지 못하여 용서받지 못하는구나!

회개하지 않은 죄는 하나님의 용서가 임하지 않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부흥은 일어난다.
Revival happens when we pray earnestly. 

2월 21일(화) 시편(Psalms) 33: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No king is saved by the size of his army; no warrior escapes by his great strength.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에게만
들려집니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은
들을 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식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소식을
허황된 신화처럼 생각한다면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없습니다.
좋은 소식을 듣고
구원 받은 사람으로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즐겁게 사용하는 것이다.

Thanks is a pleasurable use of what God has given to us.


2월 22일(수) 로마서(Romans)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For just as through the disobedience of the one man the many were made sinners, so also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one man the many will be made righteous.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는지요?
길가의 이름 모를 들풀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은 어느 때에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순종하며 따를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아프리카 람바네의 성자 슈바이처가 만일 도시에 머물렀다면
지금처럼 그의 이름이 알려질 수 없었습니다.
모두가 반대하고 싫어하는 그 곳을 향한
슈바이처의 선택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찾지 못하여 안타까워합니다.
이럴 때에 누구를 향한 원망과 불평을 내려놓고
먼저 하나님 앞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낙후된 곳으로 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좁은 길 좁은 문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원하신다면 기꺼이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일어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능력을 얻는 길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Prayer is the only way to get a power.

2월 23일(목) 에베소서(Ephesians)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For it is by grace you have been saved, through faith and this not from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   


가장 좋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까?
그 선물을 내 안에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랑해야 합니다.
자랑하기 위해서는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삶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탈무드의 “현인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조건” 이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현명한 사람 앞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2.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끊지 않는다.

3. 대답을 침착하게 한다.

4. 항상 핵심만 뽑아 질문하고, 대답을 조리 있게 한다.

5.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분해 한다.

6. 모든 것은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한다.

7. 진실은 망설이지 않고 인정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목발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날개를 달라고 기도하라.
Do not pray for crutches, but pray for wings. 


2월 24일(금) 예레미야(Jeremiah) 31:34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I will forgive their wickedness and will remember their sins no more.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를
지워버릴 수 있는 비결은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려면 인간관계에 집중해야 합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십계명

1. 사람들을 환영하라.
2. 사람들을 웃음으로 대하라.
3. 사람들을 그 이름으로 부르라.
4. 친절하게, 그리고 도움이 되도록 하라.

5. 성심껏 대하라.

6.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
7. 칭찬에 관대하라.
8. 다른 이들의 감정을 잘 고려하라.
9.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 신중 하라.
10. 봉사는 민첩하게 하라.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들을
털어내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Fearing God is the beginning of wisdom.


2월 25일(토) 시편(Psalms)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Blessed is he whose transgressions are forgiven, whose sins are covered.   


‘탈무드’에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의 기준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키이소오(돈주머니)
둘째는 코오소오(술잔)
셋째는 카아소오(노여움)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자기의 죄와 허물을 용서받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용서받은 후에는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시작으로
멋진 하루하루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 없는 기도는 열매도 없다.
Unbelief prayer has no result.

2월 26일(주일) 요한일서(1John)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  

죄를 먼저 인정하지 않고는
진실한 회개를 할 수 없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축복과 평안이 아닌
하나님 없이 산 것에 대한
깨달음과 뉘우침입니다.

참된 회개로 죄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구원을 통한 죄 사함의 축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경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 속에 증거가 있다.
The Bible is a sure God's word.

There is evidence in the Word.


2월 27일(월) 이사야(Isaiah) 1:18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Though your sins are like scarlet, they shall be as white as snow; though they are red as crimson, they shall be like wool.   

‘킴 푹’은 베트남 여인으로 월남전쟁 당시 살을 태우는 무서운 네이팜 폭탄이 떨어진 마을에서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와 생존한 사람입니다. 그가 유명 인사가 된 것은 우연히 종군기자의 카메라에 그 도망치는 모습이 찍혀 전 세계 여러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1996년 워싱턴에서 월남전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는데 ‘킴 푹’이 초청되어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행한 연설의 내용은 ‘민간인 마을에 폭탄을 투하한 비행기 조종사를 만나면 그를 용서할 것’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존 머플러’ 라는 조종사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 조종사입니다. 저의 오판으로 고통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그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용서해 주시오!’

그러자 킴 푹은 ‘용서합니다. 괜찮습니다. 저는 다 용서합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빌고 용서하는 감격스런 장면 앞에서 눈물을 훔치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용서받는 기쁨과 용서하는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고난은 인간의 잠든 양심을 깨우는 하나님의 소리이다.
Suffering is the voice of God awakening man's sleeping conscience. 


2월 28일(화) 잠언(Proverbs)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He who conceals his sins does not prosper, but whoever confesses and renounces them finds mercy.   

지난 날 자기의 죄로 인하여 늘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사람이 어느 초능력의 은사를 소유한 사람을 찾아가서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내가 젊은 날에 죄지은 일로 늘 마음이 괴로운데. 내가 무슨 죄를 범했는지 하나님 에게 물어볼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면 알 수 있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얼마 후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잊어버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면 그 죄를 얼마나 완벽하게 용서하시는가를 교훈하는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의 용서는 잊어버린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가장 고상한 모형이다.
Jesus Christ is the most gracious model of man. 


3월 1일(수) 고린도후서(2Corinthians) 1:22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Set his seal of ownership on us, and put his Spirit in our hearts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사순절을 시작하는 첫 날입니다.
오늘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의 잘못된 요소들을 찾아내어
철저하게 회개하므로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에배소서 4:30)
성령은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함께 하십니다.
비인격적인 요소로 강조되는 성령의 역사보다는
죄인을 사람답게 세워 가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며 사순절 첫 날을 의미 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보혜사 성령님이시여!
날마다 나와 함께 하셔서
나를 새롭게 하시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거룩하게 다듬어 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축복의 소나기가 내리는 것은 하늘의 먹구름으로부터 시작한다.
The rain of blessing falls from the dark clouds of the sky. 

3월 2일(목) 요한복음(John) 20:22
사순절 제2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And with that he breathed on them and said, "Receive the Holy Spirit.   

어린 아이에게 이야기를 하려면 어린이의 수준에 맞춰야 합니다.
성령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내가 성령의 수준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거룩한 사람이 될 때에
성령과 교통이 가능합니다.
성령과 교제하려면
먼저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순절 두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지난 날 나의 신앙생활에
잘못된 요소들을 찾아내어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 찌어다!
성령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갖고
오늘도 성령님과 더불어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의 힘만이 괴로움의 무거운 짐을 견디게 합니다.
Only the power of God endures the heavy burden of suffering.


3월 3일(금) 갈라디아서(Galatians)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no longer live, but Christ lives in me. The life I live in the body, I live by faith in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   

사순절 세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내가 철저한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 밖에서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람은
모든 문제의 원인이
바로 나에게 있음을 인식합니다.
주여,
나와 같은 죄인을 아직도 사랑하셔서
오늘도 호흡하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육체적인 호흡만 건강하게 유지하는 삶이 아니라
영적인 호흡이 건강해져서
주위 사람들이 나 때문에 받는 고통을
이제는 내 잘못을 깨닫고
그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가 행복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율법은 죄를 드러낼 수 있으나 죄를 제거할 수는 없다.
The law can reveal sin, but it can not clean the sin.


3월 4일(토) 에베소서(Ephesians) 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The fruit of the light consists in all goodness, righteousness and truth.   

사순절 네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밖으로 버려야 합니다.
빛이 그 성질을 잃어버리면 쓸모가 없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스도인의 맛을 지니고 있었는가?
빛의 성질을 드러내고 있었는가?
경건한 삶을 회복하여
참과 의로움과 착함의 사람으로
바르게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주여,
나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내와 신앙은 산이라도 움직인다.
Patience and faith move the mountains.


3월 5일(주일) 미가(Micah) 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But as for me, I am filled with power, with the Spirit of the LORD, and with justice and might, to declare to Jacob his transgression, to Israel his sin.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미가라는 이름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리요’ 라는 뜻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와 동시대의 사람입니다.
내용도 이사야서와 비슷합니다.

요즈음으로 말하면 촌뜨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놀랍습니다.
왕들과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부자와 같이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에 대하여
정치적 세력을 이용하여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을 책망합니다.

미가서의 삼분의 일은 동향인의 죄를 공개합니다.
다른 삼분의 일은 심판하실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마지막 삼분의 일은 한번 징계가 끝난 회복의 소망을 제시합니다.

온 나라와 백성들이 부정과 불의에 몸살을 앓습니다.
이런 때에 선지자 미가의 외침을 묵상하며
모든 성도들이 성경적 믿음을 회복하여
소망을 선물할 수 있는 축복의 날이 속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양심은 인간 내면에 있는 법정이다.
Conscience is a court within a human being. 
3월 6일(월) 고린도전서(1Corinthians) 12:7
사순절 제5일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Now to each one the manifestation of the Spirit is given for the common good. 


사순절 다섯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은사를 성령의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은사가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a).

사탄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지 못하게 합니다.
마치 컴퓨터의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는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를 주라고 믿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바이러스는
성령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사순절 경건의 시간에
주님이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며
삶으로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재능은 알려지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Talent is God's gift to us in an unknown way. 


3월 7일(화) 요한복음(John) 14:26
사순절 제6일


보혜가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But the Counselor,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all things and will remind you of everything I have said to you.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은 매우 엄격합니다.
아들이 곁길로 가면 무서운 체벌을 가합니다.
그러면 아들은 ‘저 사람이 정말 나의 아버지가 맞을까?’ 하고 의심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아들아, 네가 잘못할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 너를 때릴 때마다 아버지는 가슴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다.’고 말합니다.

보혜사란 이와 같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어주는 어머니의 역할과 같습니다.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나 이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하여 눈물 흘리고 있을 때 보혜사 성령께서는 아버지에게 맞은 아들을 위로하는 어머니처럼 눈물을 닦아주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어지러운 세상을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이란 주저 없이 의탁하는 것이다.
Faith is a commitment without hesitation. 

3월 8일(수) 마태복음(Matthew) 3:16
사순절 제7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As soon as Jesus was baptized, he went up out of the water. At that moment heaven was opened,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lighting on him.   


사순절 일곱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젊은 시절 어느 기도원을 방문했습니다.
어느 부흥사의 설교 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면 머리가 좋아져서
원하는 대학에 자녀들이 합격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러자 많은 회중들이 ‘아멘’ 하고
크게 화답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기도를 열심히 하면
머리가 좋아질 수 있을까요?
아무리 소원하는 것일지라도
주님의 뜻에 어긋난 것을 전하는 것은
바람직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성령은 머리를 좋게 하는 영이 아닙니다.
다만 지혜를 내려주셔서
마치 머리가 좋아진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사순절 경건의 시간에
조용히 머리 숙여 기도합니다.
지혜의 성령이여 우리 모두에게 오셔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교회는 용서받고 용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The church is a group of people who are forgiven and forgiving. 


3월 9일(목) 누가복음(Luke) 4:1
사순절 제8일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Jesus, full of the Holy Spirit, returned from the Jordan and was led by the Spirit in the desert.   


영국의 청교도 신앙가 존 번연이 국왕의 명을 어긴 죄로 감옥에 갇혔던 때에 어느 날 간수가 번연에게 윗사람 모르게 옥문을 열어주면서 집에 가셔서 사모님과 식구들을 잠깐 뵙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존 번연은 얼른 감옥을 나와 얼마쯤 가다가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습니다.
되돌아오는 번연에게 간수가 왜 돌아오셨는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번연은
‘당신의 호의는 고마우나 성령이 인도하시는 길이 아니라서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에 국왕이 직접 감옥을 시찰하면서 존 번연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때 간수는 ‘당신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셨기에 당신도 살고 나도 살았습니다. 이제 제가 언제 목사님께 가시라 오시라 하지 않겠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시고 싶을 때 가셨다가 오시고 싶을 때 오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결코 내 고집이나 방법대로 생활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생활하십시오.
양심에 비쳐오는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심에 비쳐오는 성령의 지시하심을 따라 행동하십시오. 


이런 삶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서로 사랑하는 두 인격의 대화이다.

Prayer is the conversation of two persons who love one another. 


3월 10일(금) 고린도전서(1Corinthians) 2:10

사순절 제9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But God has revealed it to us by his Spirit.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ep things of God.    


사순절 아홉 번째 날을 맞이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제명을 당한 교인의 이야기를 생각해봅니다.
그 사람이 제명을 당한 이유는 분명 교회법에 어긋난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들에게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교인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교회법보다 더 우월한 말씀입니다.

사순절 경건의 시간에
과연 나는 성령으로 충만한 믿음인가를 생각하며
이전보다 더욱 성령을 사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은총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나의 삶이 예배의 시작이다.
My life is the beginning of worship. 



3월 11일(토) 요한복음(John) 14:16

사순절 제10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And I will ask the Father, and he will give you another Counselor to be with you forever.    


성령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일까요?
이제는 성령님과 더불어
각자에게 맡겨진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다만 성령님과 함께 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입니다.


어느 아프리카인들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아프리카 추장이 선교 본부를 찾아와
‘우리 부족은 크리스천 교사를 원합니다.
그들을 보내주시겠습니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당장 그들에게 보낼 만한 선교사가 없었기에
‘미안하지만 지금은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2년 후에 추장이 찾아왔을 때 
마침 한 선교사가 그들의 부락을 찾았습니다.

주일 아침 마을에 도착한 선교사는
부족의 모든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선교사가 추장에게 물었습니다.

‘무얼 하는 겁니까?’

‘우리는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러자 추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매주일 아침마다
우리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여기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네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기도를 해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미 성령께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면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아프리카 사람들처럼
진지하고 끈기 있게 듣는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최선의 기도는 간절하게 찾는 것이다.
The best prayer is earnest looking for it. 


3월 12일(주일) 사도행전(Acts) 2:4
사순절 제2주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하루 한 끼 금식하고
한 끼에 해당하는 몫을
북한의 굶주린 사람들을 돕기 위한
사랑의 헌금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얼마가 되었든지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모두 참여하여
예수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충만은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넘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이제는 나눔으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한 영혼의 구원이 교리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The salvation of a soul is more important than teaching doct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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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3일(월) 갈라디아서(Galatians) 5:22∼23
사순절 제11일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람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The fruit of the Spirit is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gentleness and self-control. Against such things there is no law.

열매 맺는 나무를 심는 이유는 열매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시는 목적도 성도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는 삶을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열매란 헬라 단어는 ‘칼포스’ 라고 합니다.
‘칼포스’란 ‘행동, 이득, 결과, 열매’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성경은 다양한 열매들을 소개합니다.
회개의 열매(마 3:8)
입술의 열매(히 13:15)
전도의 열매(롬 1:13)
의의 열매(빌 1:11)
봉사의 열매(빌 4:16-17)
평강의 열매(히 12:11)
빛의 열매(엡 5:9)

나는 어떤 열매를 맺도록
이 세상에 심어진 나무인가를 생각하며
열매를 맺는 믿음의 나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간의 심성은 소극적인 은혜에 대해서는 감사할 줄 모른다.
The human mind is not grateful for the negative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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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화) 에베소서(Ephesians) 4:3
사순절 제12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Make every effort to keep the unity of the Spirit through the bond of peace.
    
컵 안의 공기를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컵에 물을 부어 채우면 공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온 나라가 탄핵에 대한 찬성파와 반대파로 시끄럽습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 다르게 표현된 것입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로 엮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방법이 정말 나라를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며
더 좋은 방법을 찾아
서로 비난하지 말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의 가르침에 따라
내 소리를 낮출 줄 아는
믿음과 지혜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것이 평온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
To believe in Jesus Christ is the secret to living a calm life. 

3월 15일(수) 고린도전서(1Corinthians) 3:16
사순절 제13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 충만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이 내재하는 사람은 성령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나님!
성령 충만하게 도와주십시오.
왜냐하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나는 너무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제가 성령 충만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말을 하면
말의 실수가 일어나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쉽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을 때
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저의 결정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드러나지 않은 죄의 성품은
성령으로 채워야만 쫓겨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리의 관점에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따라 판단된다.
It is judged according to the law of God, not from our perspective.  


3월 16일 에베소서(Ephesians) 6:17
사순절 제14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읽는 사람은 깨달아야 합니다.
애급에서 나온 히브리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무슨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찾거나 믿으려고 합니다.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읽고
깨닫는 마음을 기도하며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은혜는 죄인이 은혜롭게 되는 것이며 의인이 성화되는 것이다.
Grace is that the sinner is gracious, and the righteous is sanctified.




3월 17일 요한복음(John) 16:7
사순절 제15일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But I tell you the truth: It is for your good that I am going away. Unless I go away, the Counselor will not come to you; but if I go, I will send him to you.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성령께서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가 변화된 후에
나의 변화가
주위 사람들을 웃게 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은 웃을 일이 없다고 합니다.
웃게 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웃음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성령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복음은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
The gospel is a standard for distinguishing God’s people on the day of judgment. 


3월 18일 로마서(Romans) 8:16
사순절 제16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The Spirit himself testifies with our spirit that we are God's children.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삶과 성령을 받지 않은 삶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삶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엔진이 가동되고 연료가 가득 채워져 있어서  시동만 걸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은 삶은 엔진도 작동이 안 되고 연료가 떨어진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다면 그것은 쓸모없는 고철덩어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증거에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령 충만한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있다.

The heart of a person filled with the Holy Spirit contains the power of God. 


3월 19일 갈라디아서(Galatians) 5:16
사순절 제17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So I say, live by the Spirit, and you will not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    


건강한 생명의 특징은 변화와 성장이 일어납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진리의 말씀에 대해 눈이 열리면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이며
예수님이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고귀한 존재라고 깨닫는
내면적인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그 다음은 지난날 무가치하게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하고자 하는
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결과 이기적인 삶을 살았던 때에 느끼지 못한
기쁨을 맛보게 되며
모든 삶의 영역에서 행복과 보람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도 성령을 따라 행하므로
약속하신 은혜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은총의 삶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아무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는 것이 곧 은혜이다.
It is grace to believe without any dou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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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0일(월) 이사야(Isaiah) 4:4

사순절 제17일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The Lord will wash away the filth of the women of Zion; he will cleanse the bloodstains from Jerusalem by a spirit of judgment and a spirit of fire.


은혜를 받고 거듭났다는 것과 영적 생활을 하며 말씀을 깨닫고 변화되었다는 것은 사람의 기질 바뀌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더러운 옷을 세탁하여 깨끗한 옷이 되어 다시 입을 수 있는 것이 된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기질은 하나님께서 한 영혼에게 특별하게 베푼 능력이요 개성이요 은총입니다. 그 기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죄의 용서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구원이란 재창조 사역의 결과이다.

Salvation is the result of a second creation ministry.

3월 21일(화) 요한복음(John) 3:5
사순절 제18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   


거듭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내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면? 
내가 만약 선택받지 못한 자라면? 
나처럼 더러운 자가 어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의심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중에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라는 말씀에 마음이 붙잡혔습니다(골 1:20).

그때부터 마음의 갈등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식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존 번연의 거듭남의 간증의 일부입니다.
오늘도 환경의 평안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할 때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When you pray, you can enjoy peace of mind. 

3월 22일(수) 갈라디아서(Galatians) 5:18
사순절 제19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But if you are led by the Spirit, you are not under law. 


법아래 있을 때는 법에 따른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을 때는 은혜에 따른 판결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로마서 6:14)

죄를 지었지만
죄 값을 이미 지불한 은혜로 말미암아
죄 값을 지불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에 따른 죄의 판결을 받지 않고
은혜에 따른 용서의 판결을 받아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 아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할 때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하라.
When you pray, think you are standing before God. 


3월 23일(목) 사도행전(Acts) 2:38
사순절 제20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회개(Repent),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The name of Jesus Christ),
세례(Baptize)
죄 사함(Forgiveness of sins)
성령(The Holy Spirit)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자주 듣는 용어들입니다.
너무 자주 듣다보면 본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약속입니다.
새로운 관계를 위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증합니다.

죄를 용서받은 후에는
성령의 간섭하심으로
주님과의 관계를 늘 지속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거룩하신 성령의 지배를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기도가 위대할 수 있는 근거이다.

God's greatness is the basis upon which prayer can be great. 


3월 24일(금) 로마서(Romans) 14:17
사순절 제21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영원히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세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온 세상을 헤매던 어떤 사람은
피곤하고 지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비로써 그 파랑새가
바로 내 집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내 삶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찾지 못하면
내일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찾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용서받기 전에 용서하고
받기 전에 먼저 나눠주고
후회하기 전에
먼저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잠이 육체를 새롭게 하는 것처럼 예배는 영혼을 새롭게 한다.
Just as sleep renews the body, worship renews the soul. 


3월 25일(토) 고린도전서(1Corinthians) 12:3b
사순절 제22일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성령을 다른 말로 ‘보혜사(파라클레토스)’ 라고 합니다.
파라클레토스는 ‘대언자’ 라는 뜻입니다.

죄인이었던 내가 하나님의 아들을 향하여
주는 그리시도시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고백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보혜사 성령은 인격과 인격의 관계로 드러납니다.
완벽한 인격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경을 항상 펴고 있으라.
그대의 천국 가는 길도 늘 열려 있을 것이다.

Must to keep opening the your Bible all the time.

Your path to heaven will always be open.


3월 26일(주일) 디도서(Titus) 3:6
사순절 제4주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He poured out on us generously through Jesus Christ our Savior.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성령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靈)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신출귀몰한 능력을 나타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합니다.
세상의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누구를 탓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의 간섭이 없이 인류의 통일은 불가능하다.
Unity of mankind is impossible without God's intervention. 

3월 27일(월) 요한복음(John) 16:13
사순절 제23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The Spirit of truth, comes, he will guide you into all truth. He will not speak on his own; he will speak only what he hears, and he will tell you what is yet to come.   

밝은 태양이 하늘에 분명하게 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이 어둡다고 합니다.
무슨 빛이 없을까요?
진리의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진리가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실수가 있고
모두가 비난할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진리의 기준에서
그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모두가 존경하는 높고 귀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자기 잘못과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양심과 진리를 버린 사람입니다.

진리의 빛이 밝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준이 아닙니다.
나의 고향도 기준이 아닙니다.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오늘도 진리의 가치를 세워
모두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름이 없을지라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작품이다.
All saints are works of God's miracles. 

3월 28일(화) 베드로후서(2Peter) 1:21
사순절 제24일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Prophecy never had its origin in the will of man, but men spoke from God as they were carried along by the Holy Spirit.   


예언(豫言, 預言) 이란
미리 아는 것과(豫)
맡기는 것으로(預)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맡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여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예언보다는
바른 길로 인도하며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을
기대하고 사모하여
모두가 인정하고
좋아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나를 보탤 수 있는 삶을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때로는 예수께서 우리를 물속에 집어넣을지라도 결코 빠져 죽게 만들지 않는다.
Sometimes Jesus puts us in the water but never makes us die. 


3월 29일(수) 에베소서(Ephesians) 5:18
사순절 제25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성령 충만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을 다하여
성령 충만을 간구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생수가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곧 성령 충만 입니다(요한복음 7:37∼39).

성령 충만은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성령의 지배 아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사람과의 바른 관계를 맺어 주십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지옥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곳이다.
Hell is a place to deney God's Word.


3월 30일(목) 마태복음(Matthew) 12:32b
사순절 제26일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Anyone who speak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either in this age or in the age to come.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떻게 성령을 거역할 수 있을까요?

말과 행동으로
성령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성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사악한 세상의 풍조에 물들어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도록
우리 자신들을 다스리고
절제하는 경건의 삶을 위하여
영적인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선한 양심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이다.
A good conscience is the best place to hear the Lord's voice. 


3월 31일(금) 갈라디아서(Galatians) 5:25
사순절 제27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Since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keep in step with the Spirit.   


어떻게 성령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성령은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의 내재는 영원합니다.
공기 중에 있다고 하여도
공기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성령께서 내재하여도
성령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살아가려면
성령 충만을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는 믿음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무거운 짐이 됩니다.

주여,
믿음의 도구로만 쓰임 받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지면 기쁨도 사라진다.
When you fall out of your relationship with God, joy disappears. 


4월 1일(토) 고린도후서(2Corinthians) 4:10
사순절 제28일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We always carry around in our body the death of Jesus,
so that the life of Jesus may also be revealed in our body.   

봄은 겨울의 껍질을 벗고
새싹이 솟는 것을 볼 수 있는
희망의 계절입니다.
생명의 신비함을 깨닫게 합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과 슬픔에 묶여 있다면
믿음으로 말씀의 씨앗을
마음에 뿌리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생명은
씨를 뿌리는 자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씨앗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씨앗입니다.

말씀을 마음의 밭에 뿌리고
기도로 거름을 주며
섬김으로 가꾸어
새로운 나를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은 믿음의 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Choosing the cross is choosing the right path of faith. 


4월 2일(주일) 로마서(Romans) 5:6
사순절 제5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You see, at just the right time, when we were still powerless, Christ died for the ungodly.    


스위스의 위대한 교육자 페스탈로치는 전쟁 후 고아들의 교육에 심혈을 기우렸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성경을 읽었습니다.
1815년 그는 아내를 잃었을 때 관 위에 성경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성경에 의한 사랑을 체험했고,
오랜 세월 동안 고난과 싸웠습니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
마른 빵을 먹어야 할 때도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우리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정신으로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는 모든 자가 살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우리들과
저 세상에 살아 있는 앞서간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금생과 내생을 함께 보시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삶의 문제를 성경에서 해답을 찾아라!

Find answers to your life questions in the Bible! 



4월 3일(월) 시편(Psalms) 126:6
사순절 제29일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He who goes out weeping, carrying seed to sow, will return with songs of joy , carrying sheaves with him.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갔던 시간은
반드시 기쁨으로 돌아올 시간이 있습니다.

울며 기도했던 시간이 있었습니까?
울며 봉사했던 시간은 있었습니까?
울며 복음을 전했던 시간은 있었습니까?
울며 찬송을 불렀던 시간은 있었습니까?
울며 회개했던 시간은 있었습니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울며 씨를 뿌려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눈물은 상한 마음을 위로하는 명약이다.
Tears are good medicine that comfort the broken.

4월 4일(화) 베드로전서(1Peter) 4:16
사순절 제30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However, if you suffer as a Christian, do not be ashamed, but praise God that you bear that name.   

예수를 믿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습니까?

예수를 믿기 때문에
물질의 손해를 본 경험은 있습니까?

예수를 믿기 때문에
모욕을 당한 경험은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당한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순간적인 실수와
잘못 때문이라면
이제라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 때문에 받은 고난은
참 평안과 기쁨이 됩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은
회개 할 때에
비로써 참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평강의 주님과
날마다 동행할 수 있는
믿음을 기도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죄는 사탄을 아버지로, 죄책감을 친구로, 죽음을 그 아들로 삼고 있다.
Sin is making Satan a father, guilt is a friend, and death is his son. 


4월 5일(수) 에베소서(Ephesians) 2:4∼5a

사순절 제31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Because of his great love for us, God, who is rich in mercy, made us alive with Christ even when we were dead in transgressions.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잘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적게 주셔서
문제가 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전히
은혜가 부족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받은 은혜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충만하게 받았을 때는
마음에 기쁨이 가득하고
모든 죄악에서 이길 것 같고
어떤 시험도 이길 것 같고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상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은혜의 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승리의 순간은 짧고
실패는 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은혜를 갚는 것은 자유를 파는 것이다.
To repay grace is to sell freedom. 


4월 6일(목) 고린도후서(2Corinthians) 1:10
사순절 제32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
He has delivered us from such a deadly peril, and he will deliver us. On him we have set our hope that he will continue to deliver us.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은혜 없이 살아가는 삶은
생수의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강물 속의 물고기 한 마리가
강물이 마를 것을 걱정하는 것과
무한한 은혜 가운데서
일상의 사소한 것들 때문에
염려하며 살아가는 인생들도
강물이 마를 것을 걱정하는
물고기와 같지 않을까요?

큰 사망에서 건져주신
큰 은혜를 묵상하며
오늘도 믿음의 삶에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남의 심판을 받기 싫거든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
If you do not want to be judged by others, do not judge others. 

4월 7일(금) 베드로후서(2Peter) 2:9
사순절 제33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The Lord knows how to rescue godly men from trials and to hold the unrighteous for the day of judgment, while continuing their punishment.  


몸에 한 가닥 실오라기를 감았거든
항상 베 짜는 여인을 생각하라.

하루 세 끼 밥을 먹었거든
농부의 수고를 생각하라.

옛 성인들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이 세상의 존재로 낳아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신유의 은사는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좋은 재료이다.

The gift of Divine is a good material to be used for the glory of the Creator.


4월 8일(토) 히브리서(Hebrews) 2:18
사순절 제34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예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을
갚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진 빚 전체를
다 갚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빚을 모두 갚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놀라운 주의 은혜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 짐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식물의 뿌리처럼 믿음도 더 깊어지지 않으면 말라 죽게 될 것이다.
If the faith does not grow deeper like the roots of plants, it will die.


4월 9일(주일) 로마서(Romans) 6:23
고난주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어떤 사람이 랍비를 찾아가 묻습니다.
“당신은 신으로부터 어떤 특별한 은혜를

받으셨다고 생각합니까?”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내가 오늘 저녁까지는 살아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 사람은 랍비에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그야 누구나 다 아는 얘기가 아닙니까?”

“물론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하지만 누구나 다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아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크게 은총을 입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은총의 날개를 타고
더 큰 것을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교회는 세상을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
The church must exist for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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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월) 베드로전서(1Peter) 4:13a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아멘
Rejoice that you participate in the sufferings of Christ. Amen   

고난주간 월요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 경건의 삶의 실천을 위해
하루 한 끼씩 금식하여
한 끼의 식사대금을 모아
북한의 결핵 환자들에게 결핵약을 보내는
유진벨 재단의 사역에 동참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에 동참하려는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이
열매가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십자가 부활의 사건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죽음이 없이는
부활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 끼 금식으로
오고 갈 수 없는 북한 땅의
생면부지의 결핵환자의 손에
결핵약이 전달되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은총의 기회가 활짝 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결핵 환자를 위한
한 달 치료약 값은 270불입니다.
작은 힘을 모아
생명을 살리려는 사업에
십자가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중보기도란 다른 사람에게 결핍된 것을 예수님께 알려드리는 것이다.

Intercession is to let Jesus know what is lacking in other people.

4월 11일(화) 고린도후서(2Corinthians)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given over to death for Jesus' sake, so that his life may be revealed in our mortal body.   


고난주간 화요일을 맞이합니다.
해골 모양의 바위 언덕
그곳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워졌습니다.
그곳을 라틴어로 ‘갈보리’
히브리어로 ‘골고다’라고 합니다.

십자가는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사형 도구입니다.
사형수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현장에 도착하면 옷을 벗기고
십자가 형틀에 두 손과 두 발을 고정시킵니다.
손과 발이 찢어지면서 몸속의 피가
몸 밖으로 흘러나와 결국 죽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 한마디는 대속의 은혜이며
기독교 복음입니다.

대속의 은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습니다.
오직 주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오늘도 고난당하신 예수를 바라보며
대속의 은혜에 동참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의 기도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Faith prayer is a life of faith. 


4월 12일(수) 야고보서(James) 1:12b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When he has stood the test, he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Go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Amen  

고난주간 수요일을 맞이합니다.


어느 농부는 예수를 믿지 않았지만
그의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전도자가 농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농부가 전도자를 닭장으로 안내했습니다.
닭장 둥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었는데
그 날개 밑에서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며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농부는 전도자에게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합니다.
전도자가 암탉을 툭 건드렸더니
그 암탉은 죽어 있었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그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도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전도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당신과 나는 멸망받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암탉의 희생을 통해서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예수께서는 당신의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Jesus prayed for your enemies.


4월 13일(목) 이사야(Isaiah)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아멘
See, I have refined you, though not as silver; I have tested you in the furnace of affliction. Amen   


고난주간 목요일을 맞이합니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머리와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 내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온 종일
그 은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십자가의 은혜로 인생을 설계하라.

Design your life with the grace of the cross. 


4월 14일(금) 시편(Psalms) 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아멘

Before I was afflicted I went astray, but now I obey your word. Amen 


고난주간 금요일을 맞이합니다.


두 개의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는 착각의 십자가
다른 하나는 복음의 십자가

착각의 십자가는
고난은 고난이로되
신앙 때문에 얻게 된 고난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죄로 인해서 생긴 고난입니다.

복음의 십자가는
신앙을 버리면 겪지 않아도 될 고난이지만
예수를 믿기 때문에 받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져야 할 십자가는
착각의 십자가가 아닌
복음의 십자가입니다.

당신이 지고 있는 십자가는
착각의 십자가 입니까?
아니면 복음의 십자가 입니까?     


착각의 십자가를
복음의 십자가로 세워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을 때 비로써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When you read the Bible in the Word of God, you can become a complete Christian.

 

4월 15일(토) 고린도전서(1Corinthians) 15:20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아멘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 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Amen


고난주간 토요일을 맞이합니다.

주님,
제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에
복을 내려주소서.
십자가를 짊어질 
힘을 내려주셔서 
사랑하는 기쁨으로
이웃을 만나
삶을 힘차게 이어가게 하소서. 


주님,
제가 만약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
영원에 이르려 한다면 
가슴 아프게 찔리는
벌을 내려주소서.

힘들이지 않고
평화를 얻으려 하거나,
누워서 하늘나라의 자유를 차지하려는
헛된 마음을 버리고 
오직 이웃을 용서하는
아픔의 기쁨
이웃을 위해 희생하는
아픔의 기쁨을 허락하소서.

십자가의 영광은
용서와 희생의 탑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심하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행복한 사람은 자기 가정에서 화평을 찾는다.

A happy man finds peace in his home. 


4월 16일(부활주일) 고린도후서(2Corinthians) 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아멘
We know that the one who raised the Lord Jesus from the dead will also raise us with Jesus and present us with you in his presence. Amen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패트 번즈 목사님에 대한 간증입니다.
교인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작년 부활절 예배를 끝내고 교인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교회 앞 계단에 서서 거리를 바라보며 목회 생활 십 년인데 자신을 잃고 목회를 중단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낯익은 꽃을 파는 할머니가 다가왔습니다.
꽃을 파는 할머니는 무척 즐거워 보였습니다. 


“할머니 무엇이 그렇게 즐거우세요?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걱정요? 목사님이 내 나이가 되어 보세요. 트럭 백대에도 다 못 실을 걱정이 생긴다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즐거운 낮으로 꽃을 팔고 다닐 수가 있습니까?” 

“나는 괴로울 때 예수님의 사흘을 생각해요. 그럼 기운이 난답니다.” 

“예수님의 사흘이요?” 

“예,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렇지만 부활의 기쁨이 눈앞에 있었어요. 무덤의 사흘은 기쁨을 기다리는 기간이었을 뿐 이예요.” 


번즈 목사는 할머니에게 꽃 한 다발을 사들고 곧 성전으로 돌아가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다리지 못했던 자신의 약한 믿음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사흘, 흑암의 사흘은 바로 부활의 기쁨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죽음과 형벌의 괴로운 이 시간이 없었다면 부활의 감격 또한 맛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덤의 사흘은 부활을 위한 매우 소중한 시간입니다.

무덤과 같은 암흑과 고통의 시간에 부활의 시간을 생각하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이고,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Man's despair is God's opportunity, and man's end is the beginning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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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월)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ians) 4: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We believe that Jesus died and rose again and so we believe that God will bring with Jesus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in him.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은 ‘소망 없는 은둔의 땅’처럼 불안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복음이 증거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두 젊은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이었습니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제물포항에 두 선교사는 도착했습니다.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첫 선교 보고서를 본국으로 보낸 내용입니다.

우리 주위에 복음이 없는 황무지와 같은 땅의 사람들이 없는지 살펴보며 이제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
There is only one happiness in life to love and to be loved. 

4월 18일(화) 요한복음(John)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He who believes in me will live, even though he dies; and whoever lives and believes in me will never die. Do you believe this?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서로 의논해서 예수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본심에 돌아갔더라면 예수의 부활이란 전부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순교를 하면서까지 입증한 제자들의 진실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벌써 그런 사람과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불란서의 심리학자이며 수학자이었던 파스칼(1623. 6. 19∼1662. 8. 19)이 남긴 말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의심의 문제가 아니라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믿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내 안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의심의 세계에 갇혀 있지 말고 부활을 믿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순종으로 가는 작은 한 걸음이 영생에 이르는 커다란 진보를 이룬다.

A small step toward obedience is a great step to eternal life. 


4월 19일(수) 에베소서(Ephesians)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인도의 독립 운동가이며 수상이었던 네루(1889. 11. 14∼1964. 5. 27)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창조주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헌신으로 꿇는 모든 무릎은 성스럽다.

All knees kneeling in dedication are sacred. 


4월 20일(목) 베드로전서(1 Peter) 1:3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He has given us new birth into a living hope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러시아의 공산주의 운동가 스탈린(1879. 12. 21∼1953. 3. 5)이 죽은 후에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유해를 국내에 안치하지 않으려고 프랑스 드골에게 나폴레옹의 묘가 있는 앙바리드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청했으나, 드골은 앙바리드는 영웅을 모시는 묘지라고 하며 허락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백악관에 알아보았지만 앨링톤 묘지도 스탈린만은 안 된다고 하였답니다. 또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영국의 영웅 이외에는 사절하겠다고 하였답니다. 할 수 없이 이번에는 이스라엘에 부탁했는데 뜻밖에도 유해를 인수하겠다고 회신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단 회신 끝에 이러한 추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믿을 만한 국제 통계에 의하면, 성스러운 이스라엘에서 사자(死者)의 부활은 그 확률이 세계 최고임을 알아주기 바람.’


고민 끝에 흐루쇼프는 스탈린의 유해를 소련 땅에 묻어 두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부활의 소망은 오늘의 절망을 내일의 소망으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The blood of the martyr is the seed of the church. 


4월 21일(금)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For the perishable must clothe itself with the imperishable, and the mortal with immortality.    

‘프랭크 모리슨’은 영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입니다. 그가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반박하는 글을 쓰기 위하여 세밀한 조사와 연구 끝에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연구를 종합하여 ‘누가 돌을 옮겼나?(Who moved the stone?)’ 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부활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입니다.

부활의 주를 따라

부활의 생명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천국 백성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십자가는 천국에 이르기에 충분한 사닥다리이다.

The cross is enough ladder to reach heaven. 


4월 22일(토) 욥기(Job)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I know that my Redeemer lives, and that in the end he will stand upon the earth.   


종교개혁자 칼빈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은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칼빈의 유언에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그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워 무덤 위에 ‘J. 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 놓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칼빈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합니다.

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도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고 다짐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랑은 사람들을 치료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를.

Love cures people, the ones who receive love and the ones who give it, too.


4월 23일(주일) 요한복음(John)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Those who have done good will rise to live, and those who have done evil will rise to be condemned.   


어느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려고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어보려고 하는데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입니다.
다시 살아난 생명입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을 잘 섬기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Faith is the assurance that God will keep his promises to you.


4월 24일(월) 빌립보서(Philippians) 3:10∼11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 나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I want to know Christ and the power of his resurrection and the fellowship of sharing in his sufferings, becoming like him in his death, and so, somehow, to attain to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하여
생각이 조급할 때에
큰 숨을 내쉬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사랑의 주님을
닮기 원하오니
주여,
늘 제 안에서
나의 모든 것을 주장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닮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이 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들려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4월 25일(화) 에베소서(Ephesians) 1:20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나라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He exerted in Christ when he raised him from the dead and seated him at his right hand in the heavenly realms.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라.
그리고 네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태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릴 수 있는
최고의 삶으로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시작하기 전에 끝을 생각하라.
Think of the end before you begin.


4월 26일(수) 데살로니가전서(1Thessalonians)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영원의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마지막 날에는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입니다.

선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
악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

생명과 심판으로 구분될
마지막 그 날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어느 부활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인가를
지금부터 생각하며
생명의 부활의 자리에서
모두가 함께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실행이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
Faith without deeds is useless.


4월 27일(목) 마태복음(Matthew)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The people living in darkness have seen a great light; on those living in the land of the shadow of death a light has dawned.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두움에 속한 사람이
아무리 밝게 만들려 하여도 밝아질 수 없습니다.
어두움은 모이면 모일수록 더 어두워질 뿐입니다.
어두움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빛입니다.
세상에는 빛과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 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두움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빛이 비추어질 때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
불의, 불공평, 잔인함, 착취 등이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밝고 빛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수용하라.

If you accept the reality that can not be avoided.


4월 28일(금) 히브리서(Hebrew) 3:1b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Fix your thoughts on Jesus, the apostle and high priest whom we confess.    


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단면을 일컫는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불공평한 세상을 향하여
이렇게 소리칩니다.

하늘과 땅을 웃기려면 고아를 웃기라.
고아가 웃으면 하늘과 땅도 함께 웃을 것이다.

가장 힘없고 불행한 사람 고아가 웃는다면
온 세상이 웃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힘없고 불행한 사람까지도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의 마음에는 행복이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불공평한 세상을
공평하게 세우시려고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은혜의 삶을 결단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적응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Only the adapted person survives. 


4월 29일(토) 마태복음(Matthew)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 which is poured out for many for the forgiveness of sins.   


언약의 백성들은 죄를 범하였을 때에
소를 잡고 양을 잡고 비둘기를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면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피는
완전히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혀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인생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고
그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으로써
죄 사함을 받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죄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십니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으시고
주 예수 앞으로 나와
죄 사함의 은총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순종은 신앙의 열매이다.
인내는 그 열매 위에 핀 꽃이다.
Obedience is the fruit of faith.
Patience is the flower that blooms on the fruit.


4월 30일(주일) 요한복음(John)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Whoever eats my flesh and drinks my blood has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명철이란 하나님의 방법을 아는 것입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방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갑니다.

세속의 사람들이 세상 가치를 찾을 때
지혜의 사람은 신령한 가치를 찾습니다.
신령한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서 도움을 얻고 갈 길을 찾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읽고 지키면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도 지혜의 근원이 되신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며
행복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적극적인 마음자세를 소유하라. 
Possess a positive attit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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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월) 고린도전서(1Corinthians)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The body is a unit, though it is made up of many parts; and though all its parts are many, they form one body. So it is with Christ.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왜 그렇게 교파가 많은가?
이런 질문을 생각해 보셨는지요?

몸은 하나이지만
여러 지체가 있듯이
각기 고유의 기능을 갖는 것처럼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과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몸이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지체가 많지만
몸은 하나인 것처럼
다양한 교회와 교파가
하나이신 주님을 찬양하며
그 주님을 증거 하는 일에

온전히 하나가 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실현되기 위하여
먼저 가정에서 모든 식구들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고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합시다.

5월 가정의 달을 시작하며.......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가정은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훈련시키기 위한 특별한 장소이다.

The home is a special place to train the Christian personality. 


5월 2일(화) 잠언(Proverbs)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As iron sharpens iron, so one man sharpens another.   

나는 어떤 친구일까요?

꽃과 같은 친구는
꽃이 피어있을 때는 좋지만
꽃이 지면 없어집니다.

저울과 같은 친구는
무게에 따라
이리 저리로 움직입니다.

산과 같은 친구는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을 유지합니다.

대지와 같은 친구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새로운 것을 드러냅니다.

좋은 친구를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친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화창한 하루가 펼쳐지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을 경외하라 그리고 네가 맡은 임무를 완성하라.
Fear God and fulfill your mission. 


5월 3일(수) 잠언(Proverbs) 3:33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The LORD's curse is on the house of the wicked, but he blesses the home of the righteous.

    

악(惡)이란 한자어는
작을 아(亞)자와 마음(心)이란
두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란
곧 작은 마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작은 그릇에는
작은 양으로만 채워집니다.

큰 그릇에는
큰 양으로만 채워집니다.

작은 그릇에
큰 것을 채울 수 없고
큰 그릇에
작은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작은 마음에는
하나님을 채울 수 없습니다.
큰 그릇을 준비하여
더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행복한 하루가 시작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한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은 곧 세상을 인도하는 것이다.
To lead a man to the Lord is to lead the world. 

5월 4일(목) 시편(Psalms)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Your wife will be like a fruitful vine within your house; your sons will be like olive shoots around your table.    


행복한 가정을 위한 H.L 멘켄 박사의 열 가지 비결

1. 결혼생활의 목표를 가지라. 

2. 결혼 전에는 두 눈을 뜨고 후에는 한 눈을 감으라. 

3. 비교 당하면 비참해지고 비밀은 비극을 잉태한다. 

4. 화를 품은 채 잠들지 말라. 

5. 마주 보지 말고 같은 방향을 보라. 

6. 돈을 사용하는데 하나가 되라. 

7.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 

8. 침실의 기쁨을 유지하라. 

9. 서로 격려하고 신바람 나게 하라. 그것은 놀라운 사랑의 묘약이다. 

10. 기도로 하루를 열고 기도로 하루를 닫으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행복이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Happiness is live with God. 


5월 5일(금) 마가복음(Mark) 10:14b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Let the little children come to me, and do not hinder them, for the kingdom of God belongs to such as these.   


어느 부부에게 의견 차이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조용조용 자기의 의견을 주장 하다가
화가 솟구쳐 말다툼이 되었고
결국에는 격해져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려 하자
그 아내는 욕질을 하면서 문을 박차고 도망쳤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남편이 뒤따라 쫓아가다가
부인이 보이지 않자
문 밖에서 놀라 눈이 동그래진 아들에게
“야 이놈아, 그년이 어디로 갔니?” 하고 묻자
겁에 질린 아들은
“예! 그년이 저쪽으로 도망쳤어요.”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의 거울입니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맑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가정교육의 현장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Without prayer, we can not become Christians. 

5월 6일(토) 요한일서(1John)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And he has given us this command: Whoever loves God must also love his brother. 


세상에 완전한 가정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먼지 하나 없는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한 환경을 가지고 있어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 좋은 환경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천국 가정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행복한 가정에는 주인공이 셋이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다.
There are three main characters in a happy family. 
They are Husband and wife and children. 


5월 7일(주일) 잠언(Proverbs) 27:6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Wounds from a friend can be trusted, but an enemy multiplies kisses.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과 같습니다.
친구에게 쉽게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한 번 두 번 계속되는 상처는
친구 관계를 파괴합니다.
친구가 당신에게 준
아무 의미 없는 상처는 잊어버리고
친구가 당신에게 준
도움은 잊지 말고
되돌려 줄 준비를 하며
사귐을 유지해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은 세상을 기도로 조성하신다.
God controls the world through prayer.


5월 8일(월) 잠언(Proverbs)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May your father and mother be glad; may she who gave you birth rejoice! 
탈무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마’ 라는 곳에 이방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금화 3,000개의 값이 나가는 아주 귀한 다이아몬드 한 개를 갖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당의 랍비가 사원을 꾸미려고 금화 3,000개를 가지고 그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부친은 다이아몬드를 넣어 둔 금고의 열쇠를 베게 밑에 넣고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난처해진 아들은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울 수 없으니 다이아몬드를 팔지 못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랍비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라도 낮잠을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우지 않으려는 것은 대단한 효도라고 감탄하며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하여 고민할 줄 아는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A person who honors parents is a happy person. 


5월 9일(화) 에베소서(Ephesians)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Fathers, do not exasperate your children; instead, bring them up in the training and instruction of the Lord.    


자식이 어릴 때는
그의 재롱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지만
자식이 자라서
부모의 고통거리가 되게 하면
부모의 마음과 몸을 아프게 한다.

불란서의 속담에
자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사람도 불행하지 않다.

나의 자녀들이 내게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나의 행복과 불행은 곧
내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이었나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자녀로서
부모에게 행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랑은 사람을 강하고 겸손하게 한다.
Love makes man strong and humble. 

5월 10일(수) 아모스(Amos) 3:3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Do two walk together unless they have agreed to do so?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하셨는지요?
사람들의 대답은 다양합니다.
물을 마신다.
화장실에 간다.
이메일을 확인한다.
TV를 켠다.
그리스도인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을 빼앗기 위하여
함께 일어나는 영적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라고 하겠습니다.
마귀가 나를 지배하기 전에
먼저 나를 다스릴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오늘도 나와 함께 동행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랑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를 서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Love is an invisible string that ties you and me together. 

5월 11일(목) 잠언(Proverbs) 18:8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The words of a gossip are like choice morsels; they go down to a man's inmost parts.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을 가리켜 보면
두 개의 손가락 엄지와 검지는
상대방을 향합니다.
그러나 세 손가락 중지와 인지와 약지는
나를 가리킵니다.
손가락의 방향에서
남의 말을 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살필 줄 아는
지혜로운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네 자신을 알라!

오늘도 나를 살필 줄 아는 지혜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사랑의 자비는 율법보다 크다.
평화의 자선은 제사보다 향기롭다.

The mercy of love is greater than the law.
The charity of peace is more fragrant than the sacrifice. 


5월 12일(금) 베드로전서(1Peter) 5:5a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Young men, in the same way be submissive to those who are older.   


신앙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리스도를 한평생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
그분은 우연히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를 구원하실 분,
평생 나의 삶을 주관하실 주인입니다.
주인을 섬기는 지체들로
순종과 겸손함으로
덕을 쌓는 은혜의 삶의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의 정신은 새 사람의 정신이다.
The spirit of prayer is the spirit of a new person. 

5월 13일(토) 창세기(Genesis)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The LORD God said, It is not good for the man to be alone. I will make a helper suitable for him.    

올바른 의식을 갖고
함께 하는 삶은 축복입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같고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면
서로 다르지만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함께 길을 가기 위하여
서로 돕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도움을 받기 보다는
먼저 도움을 주려는 생각으로
손을 내미는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고난은 기도를 가르친다.
Trouble teaches prayer. 

5월 14일(주일) 야고보서(James)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My brothers, as believers in our glorious Lord Jesus Christ, don't show favoritism.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의 정체성에는 순응의 원칙이 있습니다.
순응의 원칙이란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반면
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경쟁심이 생기고 질투가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으로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다시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참된 회개이다.
It is true repentance not to sin again. 

5월 15일(월) 에베소서(Ephesians)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In this same way, husbands ought to love their wives as their own bodies. He who loves his wife loves himself.   


남편이 미울 때마다 아내는 기둥에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바람을 피우거나 외도 할 때에는 큰 못을 박기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때리고 욕을 할 때에도 못은 하나씩 늘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을 불렀습니다.
자 이 기둥을 보세요.
여기 박혀 있는 못은

당신이 잘못할 때마다 하나씩 박았던 것입니다.
나무에는 크고 작은 못이 수 없이 박혀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나무를 안고 울었습니다.
그 후 부터 남편은 변했습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며 아꼈습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제는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직도 멀었소.
못은 없어졌지만 못자국은 남아 있지 않소!

아내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보이는 상처는 치유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마음 아픈 말을 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니었는지를 생각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승리하면 조금 배울 수 있고;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You can learn a little from victory;

You can learn everything from defeat. 


5월 16일(화) 마가복음(Mark) 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When you stand praying, if you hold anything against anyone, forgive him, so that your Father in heaven may forgive you your sins.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 되었습니다.
새 정부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입으로만 새 정부가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새 정부를 기대합니다.

스탠톤(Stanton)은 링컨에 대해서
‘저급하고 교활한 어릿광대’
‘고릴라의 원종’
이렇게 모욕하는 말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
스탠톤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링컨은 최선의 예절로 스탠톤을 대우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링컨이 흉탄에 맞아 쓰러졌을 때
링컨의 유해가 안치된 좁은 방에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습니다.

‘여기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누워있다.’

최고의 통치는 용서에서 시작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일 년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원을 가꾸고;
평생의 행복을 원한다면 나무를 심어라. 

If you want to be happy for a year, plant a garden;

If you want to be happy for life, plant a tree.


5월 17일(수) 잠언(Proverbs) 13:20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He who walks with the wise grows wise, but a companion of fools suffers harm.

평생을 동행해야 하는 부부 사이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만일 지혜가 없으면 동행하는 길이
가시밭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다면 동행하는 길이
행복할 것입니다.

행복한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불행한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오늘도
나의 선택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결정될 것입니다.
날마다 행복의 길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There are two ways of spreading light;
To be the candle or the mirror that reflects it.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촛불이 되거나 또는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5월 18일(목) 이사야(Isaiah)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All your sons will be taught by the LORD, and great will be your children's peace.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자녀 교육도 점점 어렵다고 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올바른 자녀로 양육하기 위하여 세 가지 제안을 생각합니다.
첫째는 부모의 가치관을 분명히 알려 준다.
둘째는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가르친다.
셋째는 자녀의 특성을 개발한다.

가정의 달을 맞아 모든 자녀들이 세상의 보배처럼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믿음은 주를 보는 눈이며,
주께 매달리는 손이며,
주를 소유하는 능력이다.
Faith is the eye to see the Lord,

Catch the hand of the Lord,

and the power to possess the Lord.


5월 19일(금) 시편(Psalms) 127: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Sons are a heritage from the LORD, children a reward from him.    


기업은 저절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필요합니다.
자녀들을 바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밑거름은 무엇일까요?
칭찬과 징계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징계할 때는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첫째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둘째는 일관성 있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거룩한 사람은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A holy person is a person who is praying a lot. 


5월 20일(토) 에베소서(Ephesians)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There is one body and one Spirit-just as you were called to one hope when you were called.    


소망이란 어떤 일을 바라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됩니다.

성경은 예수 안에서의 소망을 강조합니다.
예수 안에서의 소망이란 영생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현실의 어려움과 고통이 힘들게 할지라도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지금의 고통과 어려움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소망이 없다면
자기의 삶을 포기 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힘들게 합니다.
어떤 어려움이든지
예수 안에서 소망으로 생각하며
오늘도 승리하는 카톡의 벗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Knowing God is the best happiness. 

5월 21일(주일) 잠언(Proverbs) 20: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The righteous man leads a blameless life;
blessed are his children after him.  


의인(義人, righteous man)과 선인(善人, good man)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설교자 로이드 존스는 한 예를 들어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느 피아노 연주자가 악보대로 연주를 합니다.
모든 것이 정확합니다.
사람들은 정확하게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연주자는 똑같은 방법으로 연주합니다.
그러나 그의 연주를 듣는 사람들은 그의 연주에는 무엇인가 다른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의인과 선인의 차이는 정확한 연주를 하는 것과 영감을 느끼게 하는 연주의 차이라고 하겠습니다.
 
나라고 하는 악기를 갖고
오늘을 연주해야 합니다.
어떤 연주를 하느냐에 따라
의인으로 또는 선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십니까?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므로
선인으로 인정받는
축복의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하늘로 가는 길을 보여주며,
찬송은 이미 하늘에 들어가 있다.
Prayer shows the way to heaven,
and Hymns are already in heaven. 


5월 22일(월) 마태복음(Matthew)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Why do you look at the speck of sawdust in your brother's eye and pay no attention to the plank in your own eye?    


티와 들보는 크기가 다르다.
티는 눈 속에 들어갈 수 있지만
들보는 눈 속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티는 눈으로 보는 것이고
들보는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티는 다른 사람의 눈에 있지만
들보는 내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티는 생각해야 합니다.

들보는 예리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티를 생각하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들보는 보는 것은
철저하게 자기반성과 성찰입니다.

들보는 생각하고
티를 보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이제부터는
자기의 들보를 보며
상대방의 티를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삶의 기쁨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행복한 결혼이란 용서하는 두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Happy marriage is that two lives of forgiveness become one. 


5월 23일(화) 에베소서(Ephesians) 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Submit to one another out of reverence for Christ.    

복종(服從)이란 시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체는 반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외(敬畏)는 살아있는 시체입니다.
의식을 갖고도 반항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사랑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서로 복종할 수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기쁨의 문을 열 수 있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가깝게 지내야 할 존재가 둘이다.
하나는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는 나 자신이다.
There are two things that you have to live close to.

One is God and the other is myself. 


5월 24일(수) 로마서(Romans)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If it is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live at peace with everyone.   


우물에서 물을 긷던 여인들은 물 위에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얹고 머리에 이고 갑니다. 그 이유는 물동이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에 분노가 치솟고 흔들릴 때 마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분노와 갈등은 가라앉을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로 마음을 달랜 후에 서로 평화할 수 있는 삶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The prayer is to borrow the power of God. 

5월 25일(목)  갈라디아서(Galatians)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Carry each other's burdens, and in this way you will fulfill the law of Christ.

그리스도의 법이란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의 법은 죄를 판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법은 용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할 때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의로운 자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깝고,
자비로운 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가깝다.
The righteous are close to the hearts of men,
and The merciful ones are close to the heart of God. 


5월 26일(금) 잠언(Proverbs) 27: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Perfume and incense bring joy to the heart, and the pleasantness of one's friend from his earnest counsel.


현인이 되기 위한 일곱 가지 조건


1. 현명한 사람 앞에서는 침묵을 지킨다.

2. 상대의 말을 중간에서 끊지 않는다.

3. 대답을 침착하게 한다.

4. 항상 핵심만 뽑아 질문하고, 대답을 조리 있게 한다.

5.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분해 한다.

6. 모든 것은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한다.

7. 진실은 망설이지 않고 인정한다. 

오늘도 주위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축복의 삶을 계획하고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인간이 절망하는 곳에는 어떤 존재도 살아갈 수 없다.

Where human beings despair, no being can live. 


5월 27일(토) 요한복음(John)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Greater love has no one than this, that he lay down his life for his friends.

리더십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헤드십
둘째는 매니저십
셋째는 협의의 리더십

세 가지 리더십의 공통점은 십이라는 단어입니다.
배를 뜻하는 단어 ‘십(ship)’자가 친구라는 단어에 붙게 되면 우정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가야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 보다 먼저 상대방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오늘도 우정의 깃발을 흔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곤궁할 때의 친구가 정말 친구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5월 28일(주일) 에베소서(Ephesians)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

어머니의 존재가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를 생각할 때
자신의 삶을 무질서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효자는
부모의 충고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
성경은 효자가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 약속합니다.

오늘도 섬기는 마음으로
행복한 하루의 문을 열고
신나게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순종은 헌신의 기초가 된다.
Obedience is the foundation of devotion. 


5월 29일(월) 욥기(Job) 4:4


넘어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Your words have supported those who stumbled; you have strengthened faltering knees.

오늘은 미국에서는 공휴일입니다(Memorial Day).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친 용사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세 천사를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첫째 천사는 황금 홀을 들고 제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둘째 천사는 계산기를 들고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셋째 천사는 똥바가지를 들고 빈민촌에서 똥 푸는 일을 맡겼습니다.

세 천사들의 사명감에 차이가 있을까요?

각자에게 맡겨진 일은 고유한 일입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던질 수 있는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평화를 누리는 것처럼
믿음이란 누군가를 위하여
평화를 위한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축복받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감사하라!
To become a blessed person, be thankful first. 


5월 30일(화) 골로새서(Colossians)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Fathers, do not embitter your children, or they will become discouraged.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여야 하는
이집트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주신 아들에 대한 꿈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져야 합니다.

사명을 확인한 자녀들은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꿈을 묻는 부모는 많지만
하나님이 자녀의 삶을 통해 이루실
놀라운 계획과 비전을 알고자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주님 앞에
자녀의 꿈을 내려놓고
꿈을 실현할 지혜와 믿음을
간구하는 복된 삶이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기적을 창조한다.
Prayer creates miracles. 


5월 31일(수) 로마서(Romans)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You, then, why do you judge your brother? Or why do you look down on your brother? For we will all stand before God's judgment seat.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입니다.

아이언사이드 박사가 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을 때
청년 하나가 손을 들더니 큰 소리로
‘여러 이야기 하지 말고 법대로 합시다.’
청년의 말을 듣고
아이언 사이드 박사가 청년에게
‘여보게 젊은이,
법대로 자네를 다루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되었겠는가?
자네는 벌써 지옥에 가 있어야
마땅할 것일세.’  


그렇습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법대로 하면
당당하게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덮어주었기에
부끄러운 자리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게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회복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Prayer is the way to recovery. 


짖는 개는 절대 물지 않는다.6월 1일(목) 전도서(Ecclesiastes) 7:11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Wisdom, like an inheritance, is a good thing and benefits those


지혜는 모든 사람을 깨우치는 힘이 있습니다.
탈무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비록 얼굴은 못생겼지만 아주 총명한 랍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마의 황제와 그의 부인이 소문난 랍비를 궁으로 불렀습니다.
황제의 부인은 랍비를 보는 순간 그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뛰어난 총명이 이런 못생긴 그릇에 들어 있군!”
그러자 랍비는 “왕궁에 술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황제의 부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슨 그릇에 들어있습니까?” 라고 랍비가 물었습니다.
황제의 부인은 “술병과 항아리에 들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랍비는 깜짝 놀란 척 하며
“로마의 황제 부인같이 훌륭하신 어른이 금이나 은그릇도 많이 있을 텐데 어쩌면 그런 보잘것없는 술병과 항아리를 사용하십니까?”

랍비의 말을 듣고 황제의 부인은 당장 모든 술을 금과 은그릇에 담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술맛은 변해서 맛이 없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버럭 화를 내며 “누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느냐?” 라고 묻자 황제의 부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황제의 부인은 화가 나서 랍비에게 “당신은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을 권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랍비는 “나는 단지 대단히 귀중한 것이라 할지라도 싸구려 항아리에 넣어두는 쪽이 좋을 경우가 있다고 가르치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고 깨우쳤다고 합니다.

지식보다는 지혜와 총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날마다 지혜와 총명을 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A barking dog never bites.

6월 2일(금) 시편(Psalms) 119:98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Your commands make me wiser than my enemies, for they are ever with me.

전국시대의 명의였던 편작에게 의사 지망생이 찾아왔습니다.
“저도 선생님처럼 유명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젊은이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 본 편작은
“온 천하를 다녀서 약이 될 수 없는 풀들을 뜯어 오너라.”

젊은이는 산야를 헤매고 다녔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 온 천하를 다녀 봐도 약이 되지 않는 풀이 없군요.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명의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돌아서는 젊은이를 편작이 불렀습니다.

“그래 됐어, 하찮은 풀도 약으로 볼 줄 아는 것을 보니 유능한 의사가 될 수 있겠어”

편작은 젊은이를 제자로 받아 들여 의술을 가르쳤고 훗날 젊은이는 편작의 뒤를 잇는 당대 명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합니다.

약(藥)이라는 한자를 분해하면 풀이라는 뜻의 ‘초두머리(艹)’ 밑에 즐거움이라는 뜻의 ‘락(樂)’을 씁니다.

치료의 기쁨을 안겨주는 풀이 약이라는 뜻입니다.

들풀 하나도 유심히 살펴 쓰임새를 찾던 옛 사람들의 지혜가 부럽습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는 은혜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 deed.

6월 3일(토) 잠언(Proverbs)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The fruit of righteous is a tree of life, and he who wins souls is life.

어느 장사꾼이 거리에서
“인생의 비결을 살 사람 없습니까?” 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비결을 사려고 모여들었지요. 

그 중에는 랍비도 몇 사람 있었습니다.
서로 다투어 “내가 사겠다!”고 나서자 장사꾼은
“인생을 참되게 사는 비결은 자기 혀를 조심해서 쓰는 것이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해야 할 말과 
내가 해서는 안 될 말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우물 안 개구리.

A big fish in a little pond.

6월 4일(주일) 시편(Psalms) 18: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As for God, his way is perfect; the word of the Lord is flawless. He is a shield for all who take refuge in him.

어느 랍비가 한 제자에게 시장에 가서 가장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자는 혀를 사왔습니다. 

며칠 후 랍비는 제자에게 오늘은 가장 맛없는 것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자가 또 혀를 사왔습니다.

랍비는 제자에게 묻기를
“맛있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혀를 사왔고, 가장 맛없는 것을 사오라고 했을 때도 혀를 사왔구나! 그 이유가 무엇이냐?”
제자가 대답하기를
“혀는 아주 좋으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고 또 나쁘면 그보다 나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여섯 개의 쓸모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세 가지 즉 눈과 귀와 코는 스스로 다스릴 수 없지만,
입과 손과 발은 스스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행운은 반복되지 않는다.

(여우는 같은 덫에 두 번 걸리지 않는다)

A fox is not taken twice in the same sn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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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월) 잠언(Proverbs) 5:2

근신을 지키며 네 입술로 지식을 지키도록 하라.
That you may maintain discretion and your lips may preserve knowledge.


유대인의 자녀 교육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질문으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아들아, 만일 적군이 쳐들어와 집에 불을 지르고 재산을 모두 훔쳐간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갖고 도망을 가겠느냐?”

자녀들의 대답은 거의 비슷하다고 합니다.

“금과 돈입니다. 값나가는 물건부터 챙겨야지요!”

그러면 어머니들은 다시 묻습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단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라. 그것은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지만 가장 소중한 것이란다.”

자녀들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답을 요구할 때에 비로써 어머니는 자녀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혜다. 지혜는 시련을 당할 때 이를 극복하는 길을 가르쳐준다. 지혜는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지혜는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명예를 선물한다.”

지혜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지혜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A watched pot never boils.
서두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6월 6일(화) 잠언(Proverbs)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Pride goes before destruction, a haughty spirit before a fall.

프랑스의 사상가 볼테르는 철저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글을 써 자신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책을 출판했을 때 프랑스 사람들은 볼테르의 다음과 같은 글에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100년 후에는 지구상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미신가들이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욕을 퍼붓는 나를 가만 두겠습니까?”

결국 볼테르도 병이 들어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몸을 떨며 의사에게 6개월만 생명을 연장해 달라고 애원하며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오, 이제 나는 지옥 불에 들어가는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기독교인의 수는 더 많이 증가했으나 볼테르가 운영하던 인쇄소에서는 성경을 찍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급히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Haste makes waste.
6월 7일(수) 잠언(Proverbs)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Wisdom is supreme; therefore get wisdom. Though it cost all you have, get understanding.

어느 날 사자와 나귀와 여우가 합동하여 사냥을 나갔습니다.
서로 협력해서 사냥을 했는데 사냥한 것을 앞에 놓고 사자가 말합니다.
“자, 우리 셋이 협력해서 이것을 얻었으니 이제 이것을 나누어 먹자.”
그리고 나귀에게  “네가 분배하여라.”
나귀는 사냥한 것을 공정하게 삼등분해서 분배했습니다.
사자는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내가 명색이 사자인데 나를 너희 둘과 똑같이 취급해? 몹쓸 놈 같으니라고!”
사자는 나귀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여우하고 사자가 남았습니다.
사자는 여우에게 “이제 네가 분배하여라.”
그러나 여우는 사양합니다.
“제가 나누다니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요. 사자님께서 다 잡수시고 남기시면 그것을 제가 먹어야지요.”
사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여우를 칭찬합니다.
“넌 참 똑똑하구나. 그런 지혜를 어디에서 배웠냐?”
여우는 “나귀가 죽는 걸 보고 배웠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남이 죽는 것을 보면 그것으로 배우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실패의 교훈을 무시하고 행동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뛰기 전에 걷는 법을 배워라.
Learn to walk before you run.

6월 8일(목) 잠언(Proverbs) 15:26

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The Lord detests the thoughts of the wicked, but those of the pure are pleasing to him.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합니다.

한 살이 되었을 때에는 5단어,
2세 때에는 260단어,
3세 때에는 800단어,
5세 때에는 약 2000여 단어의 말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면 하루에 한 남자가 쓰는 단어가 평균 2만 5천 단어나 된다고 합니다. 여자는 말이 더 많아서 3만 단어쯤 사용한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자신이 사용한 단어로 책을 펴내면 4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132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평생 이야기하는 시간을 따로 모아보면 대략 13년을 꼬박 말하는 데 소비한다고 합니다.  

언어를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
Rome was not built in a day.

6월 9일(금) 야고보서(James) 3: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는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The wisdom that comes from heaven is first all pure; then peace loving, considerate, submissive, full of mercy and good fruit, impartial and sincere.

어떤 농부가 논을 개간했습니다. 논에 댄 물이 많은 양분을 제공하므로 논은 기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논의 물이 이웃에 있는 다른 사람의 논으로 흘러가는 것이 못마땅하고 심통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음해에는 자기 논의 물이 어디에도 흘러나가지 못하게 틀어막았습니다. 농부의 논에는 다음 해에도 역시 많은 양분을 제공해 주는 물이 흘러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나갈 곳이 없는 물 때문에 벼는 모두 썩어 쌀을 얻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욕심쟁이는 결국 손해를 보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지혜는 베풀 줄 아는 것입니다.
서로 돕고 사랑을 나눌 때 우리는 더욱 풍성한 삶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더디더라도 착실히 하는 편이 결국 이긴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6월 10일(토) 잠언(Proverbs) 19:11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A man's wisdom gives him patience; it is to his glory to overlook an offense.

화를 잘 내는 것은 자기를 다스리지 못한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그 원인을 몇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욕구 불만
둘째는 약점
셋째는 성령이 떠났기 때문
넷째는 사탄의 노리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는 감추어진 폭탄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폭발하는 분노는 자신의 건강을 해롭게 합니다.
화는 무서운 파괴력으로 위궤양, 고혈압, 편두통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감정적으로는 우울증 심하면 정신이상도 일으킨다고 합니다.

화는 전염병과 같습니다.
화는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다스릴 수 있는 성령의 도움을 받는 기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천리 길도 한 걸음씩.
Step after step, the ladder is ascended.

6월 11일(주일) 야고보서(James)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If any of you lacks wisdom, he should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and it will be given to him.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했습니다.
몸을 머리와 가슴과 배로 구분합니다.
머리는 통치 계급,
가슴은 무사계급,
배는 서민이라고 합니다.
통치자에게는 덕이 필요하며 그 덕은 곧 지혜라고 강조했습니다.
지혜가 없는 통치자는 세상을 어지럽게 합니다.
어지러운 세상 보다는
맑고 투명한 세상을 원하십니까?
그러면 통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세요.
주여, 우리 모두에게 세상을 바르게 세울 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기도는 큰 능력을 얻는 지름길이다.
Prayer is a shortcut to get a great ability. 

6월 12일(월) 잠언(Proverbs)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A cheerful heart is good medicine, but a crushed spirit dries up the bones.

물질을 잃은 것은 일부를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절반을 잃은 것이면,
건강을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건강해도 의욕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의욕이란 마음의 평화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곧 마음의 평화에서 시작합니다.

오늘도 마음을 다스리는
진리의 성령의 도움을 받아
삶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회개는 영원의 궁전을 여는 황금 열쇠이다.
Repentance is the golden key to open the palace of eternity.


6월 13일(화) 시편(Psalms) 119:160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
All your words are true; all your righteous laws are eternal.

이야기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감동과 변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람을 인도할 것입니다.

스펄전을 움직인 것은 콜로체스터의 예배당에서 들었던 어느 설교자의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스펄전은 ‘나를 바라라 그리하면 땅 끝까지라도 함께 하리라.’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 설교자는 그다지 많은 것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로 하여금 계속 그 말씀을 되풀이하게 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말씀 이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나를 변화시킬 주의 말씀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으로 나를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세상을 방랑자처럼 살지 말고 변화된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회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십자가의 신학은 빛의 신학이다.
The theology of the cross is the theology of light. 

6월 14일(수) 디모데전서(1 Timothy) 4:12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Don't let anyone look down on you because you are young, but set an example for the believers in speech, in life, in love, in faith and in purity.

샘플이란 어떤 물건이나 제품을 대표하여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의 샘플과도 같습니다.
나의 말과 행실이 먼저 믿는 자에게 샘플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본이 되지 못하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이 되기 위해서
나를 다스려야 합니다.
나를 내가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으로부터 다스림을 받을 때 나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매 순간마다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 성령이시여!
지금 여기에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과의 연합은 사랑의 원인이 아니라 사랑의 결과이다.
Alliance with God is not the cause of love but the result of love. 


6월 15일(목) 잠언(Proverbs) 15:31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He who listens to a life giving rebuke will at home among the wise.

위대한 사람 옆에 내가 서 있다고 내가 위대해질 수 없습니다.
배부른 사람 옆에 내가 있다고 내가 배부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말씀을 따라다니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교회나 목사를 쫓아다니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십시오.
사람을 쫓아다니면 그 결과는 실망과 상처뿐입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나도 모르게 내가 변화된 자리에 머물고 있음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도는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초상화이다.
Saints are portraits of God walking around. 


6월 16일(금) 잠언(Proverbs)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리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but fools despise wisdom and discipline.

어느 법관이 취임석상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한 때 무신론자였지만 내가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아버지께서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로 차츰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되었으며, 성경이 내 삶의 나침반이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 어느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가르치고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바라보며 배우는 것이 자랑입니다.

말씀과 일치한 삶의 몸부림으로 오늘도 귀한 전도지로 쓰여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의 영은 나의 생활의 힘입니다.
The Spirit of Christ is the power of my life. 


6월 17일(토) 잠언(Proverbs)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When words are many, sin is not absent, but he who holds his tongue is wise.


허풍쟁이가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옛날 어느 검객이 집에다 칼을 놔둔 채 밖으로 나왔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칼을 든 강도가 검객에게 ‘있는 것  다 내 놓으라!’고 위협할 때 검객은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 이놈!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강도는 웃으면서 “잘 모르지만 내게 귀중품을 바칠 사람으로 안다”

검객은 “우리 집에 칼이 있다. 나는 검객이다.” 라고 말하자 강도는 “칼도 없는 검객이 입만 살았구나!” 하며 검객이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빼앗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습니다(엡 6:17).
검을 사용하려면 검을 가져야 하고 검을 뽑아야 합니다.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말씀은 집에 칼을 놔둔 검객과 같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의 마음은 나의 생활의 율법입니다.
The heart of Christ is the law of my life. 


6월 18일(주일) 시편(Psalms) 37:25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I was young and now I am old, yet I have never seen the righteous forsaken or their children begging bread. 
  

어떤 사람들은 악령을 쫓기 위하여 현관이나 문 앞에 부적을 부치거나 이상한 물건을 매달아 놓습니다.

캐나다 동북쪽에 사는 아이누이츠라는 에스키모족은 악령을 쫓기 위해 매의 깃털이나 동물의 가죽 혹은 독수리의 깃 등을 문에 달아놓는다고 합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강력한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비록 경제가 어렵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주의 자녀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받는 것은 내게 똑같이 작용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떠날 때 마귀는 제일 먼저 찾아옵니다.
마귀와 가깝게 지내시려면 주의 말씀을 멀리하십시오.
그러나 세상의 주인 되신 주님과 가깝게 지내려면 먼저 주의 말씀을 열고 그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께 모두 바치면 번민할 일이 없습니다.
There is nothing to worry about if we give it all to God. 

6월 19일(월) 잠언(Proverbs) 10:17


훈계를 지키는 자는 생명길로 행하여도 징계를 버리는 자는 그릇 가느니라.
He who heeds discipline shows the way to life, but whoever ignores correction leads others astray.


생명(生命)은 씨앗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씨앗은
뚫고 올라오는 힘이 강합니다.
죽음(死亡)은
뚫고 올라오는 힘이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곧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습니까?
생명이 있습니까?

무엇을 하려는 믿음입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분주하게 활동합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직장을 얻기 위하여,
지식을 얻기 위하여,
사람을 찾기 위하여,

믿음은 영원한 생명을 찾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찾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을 잡기 위하여
두 손을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생명의 길에서
온전한 믿음을 갖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감사는 고결한 영혼의 얼굴이다.
Thanks is the face of a virtuous soul. 
                                                         
6월 20일(화) 시편(Psalms)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Your word is a lamp to my feet and a light for my path.

넓은 땅을 소유한
땅 부자가 되기보다는
단 한권의 성경책을 갖고도
삶의 평강과 자족함을 누릴 줄 아는
영원한 부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감사는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Thanks is a shortcut to go heaven. 

6월 21일(수) 잠언(Proverbs) 12:25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
An anxious heart weighs a man down, but a kind word cheers him up.


‘근심은 생명의 적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입니다.

염려는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삶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인 일에 전념할 수 없게 합니다.

어느 의료 기관에서 65세 이상의 노인 1,064명을 대상으로 걱정 및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조사한 후 3년부터 6년이 경과된 시점에 이들 중에서 누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는지를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사람들일수록 노년기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근심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시작이 반이다.

Well begun is half done. 

6월 22일(목) 디모데후서(2Timothy)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All Scripture is God 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여러분의 꿈은 무엇인가요?
내 꿈을 말하기 전에 먼저 꿈을 갖게 하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Boys Be ambitious!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식물학자이며 농학자였던 미국 윌리엄 클라크 박사의 말입니다.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던 그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유난히 ‘큰 짐’을 본 장학관이 “무슨 짐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성경이지요.”

“성경은 가르칠 수 없는데요.”

“그러면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겠다는 말에 크게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시지요.” 라고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고별사에서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 삿포로농과대학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는 성경에는 인생을 살리는 꿈이 있다고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이에 맞는 꿈을 성경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칠전팔기

If at first you don't succeed, try, try again.


6월 23일(금) 잠언(Proverbs) 3: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Trust in the Lord with all your heart and lean not on your own understanding.


믿음(信)과 순종(順從)은 다른 단어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서로 통(通)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믿으면 자연스럽게 순종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순종은 믿음의 외적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은 다른 글자이면서 같은 뜻을 가진 한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같은 목적을 갖고 살아갑니다.
오늘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맡겨진 삶에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거두절미

Let's get to the point. 


6월 24일(토) 전도서(Ecclesiastes) 4: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

Better a poor but wise youth than an old but foolish king who no longer knows how to take warning.


여러분은 어디에서 지혜를 배우고 있는지요?

카우만(C.E. Cowman)은 제니 린드(Jenny Lind)의 전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9세기의 대표적 소프라노의 가수인 제니 린드의 경력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일은 그녀의 화려한 시기가 매우 짧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불과 2년을 노래했을 뿐이며, 실질적으로는 런던에 모습을 나타내고 5년 만에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수년간 가끔 자신을 위한 음악회에 모습을 나타냈을 뿐입니다”

젊은 여성으로 이토록 높은 인기를 버리고 시골로 은퇴해 버린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해변에서 성서를 읽고 있을 때, 그녀를 무척 아끼는 사람이 그녀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인기의 절정에서 그렇게 돌아서 버렸나요?”


제니 린드는 읽고 있었던 성서 위에 손을 놓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성경을 읽을 시간이 날마다 줄어드는데, 어떻게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므로 삶의 지혜와 연륜의 깊이를 다져가는 은총의 삶을 실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감언이설

Sweet talk.


6월 25일(주일) 잠언(Proverbs) 11: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The integrity of the upright guides them, but the unfaithful are destroyed by their duplicity.

생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생명의 길을 걷는다고 확신하면서도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정말 생명의 길을 찾아가고 있습니까?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 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해어질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버릴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오늘도 내일도
후회가 없는 그 길을 걷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매 순간마다
정직하세요!
성실하세요!
그리고 주님만 바라봅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As one sows, so shall he r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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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6일(월) 전도서(Ecclesiastes)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Do not say, Why were the old days better than these? For it is not wise to ask such question.


자기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개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의 자랑은 달리기를 잘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개가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그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망신스런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개들이 마구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토끼는 목숨을 위해서 뛰었고, 나는 그냥 재미로 뛰었다!”

지혜는 토끼처럼 목숨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호미로 막을 데 가래로 막는다.

A stitch in time saves nine.

6월 27일(화)
잠언(Proverbs) 10:29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
The way of the Lord is a refuge for the righteous, but it is the ruin of those who do evil.

추운 겨울날,
눈 내리는 거리에서 한 소년이 얇은 옷을 입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화가 치밀어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왜 이 소년을 그냥 보고만 계십니까?
무슨 대책이든 대책을 세워 주셔야지요.”

한동안 침묵하시던 하나님은
그 날 밤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틀림없이 대책을 세웠노라.
나는 너를 만들었으며
그곳에 네가 있지 않았느냐?”


비판만 하는 신앙보다는
정직하게 행동하는 신앙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Obeying God is not a duty but a privilege. 


6월 28일(수)
히브리서(Hebrews)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Keep your lives free from the love of money and be content with what ypu have.

행복이란 만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에 의존하는 사람은 물질의 풍요가 만족을 갖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혼의 만족이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만족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은혜와 은사를 실천할 때 비로소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세상에 보내신 존재의 이유를 깨닫게 될 때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동시에 만족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보이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비록 보이지 않지만 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믿고 주 안에서 참 만족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모든 것은 오직 마음먹기에 달렸다.
Every thing depends on only our mind. 


6월 29일(목)
잠언(Proverbs) 4:23

모든 지킬 것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it is the wellspring of life.

어느 마을의 부자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런 광고를 했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에게 40에이커의 풍요로운 농토를 주겠다.”

그 광고를 보고 한 농부가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농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참으로 만족하십니까?”

농부는 확신을 갖고 대답했습니다.

“그럼요!” 


“그런데도 왜 당신은 40에이커의 내 땅을 원하십니까?”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의 삶을 약속받았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누릴 더 많은 것들을 찾아 방황합니다.

이제 2017년 전반기를 마감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지나온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며 내가 가야 할 그 길을 찾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2017년 하반기를 맞이하여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큰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Whenever you faced a big trouble,
Think about someone's sight always.

6월 30일(금)
시편(Psalms)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The law of the Lprd is perfect, receiving the soul. The statutes of the Lord are trustworthy, making wise the simple.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모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다를 채우지 못합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말을 타면 종 부리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습니다.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사람이 자전거를 갖게 되면 자가용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내 집만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큰 소리쳐도 막상 단칸방 창문 너머 보이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가 눈이 시리도록 아른거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적당한 욕심은 발전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욕심이라는 승용차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무엇인가에 부딪쳐야 멈추게 됩니다.
브레이크를 밟으세요.
그리고 만족하세요.
또 감사하세요.
그래야 기쁨이 찾아옵니다.  

지혜는 멈추게 하는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찾으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Ask, and it will be given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it will be opened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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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67362 2017-06-25T16:05:16Z 2017-06-25T16:05:16Z 찬양의 회복(사무엘하 6:12-23) / 정지석목사 주일설교( 2017-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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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65071 2017-06-18T15:55:20Z 2017-06-18T15:55:20Z 두아디라교회(요한계시록 2:18-29) / 주일설교( 2017-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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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62828 2017-06-11T18:39:45Z 2017-06-11T18:39:45Z 버가모교회(요한계시록 2:12-17) / 2017-6-11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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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nykcn.org,2013:Post/1160581 2017-06-04T15:48:00Z 2017-06-09T20:09:11Z 서머나교회(요한계시록 2:8-11) / 주일 설교(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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