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말씀을 공부하므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행함으로 복을 받는다.


야고보서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기도의 영을 구하라!

스가랴 12:10a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I will pour out on the house of David and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a spirit of grace and supplication.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기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는 "기도는 영혼의 호흡" 이라고 합니다.
호흡이란 생명이 있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호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영혼과 육이 하나로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호흡이 필수적인 것처럼 또한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정의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호흡을 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된 것처럼
기도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흔적과 같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를 합시다!

나의 하나님이여
그리스도를 보사
나의 작별의 순간을 평안하게 하옵소서!

내 비록 흙에 지나지 않사오니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옵기는
쾌락을 구함도 아니오며
금을 요구함도 아니오라
그보다 더 큰 것을 구하오
하나님이 내게 주실 가장 큰 선물
내가 누를 영원한 생명일세.

내 마음 이제 기도와 찬송으로 넘치네
그리고 부드러운 그의 마음에
내 마음 가까이 끌어올리는
그 한 숨결 한 숨결을
내 하늘 아버지는 알고 계시네
내 기쁨과 평안 여기 있고
내 구원 당신 안에서 보니
아, 내 영혼을 지키시는 이여.

* 기도의 영 p. 180, 181, 182
- 기도(오 할레스비)

삶의 지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인생 수업"에 나오는 일화 입니다.

어느 기분 좋은 여름날, 갓 결혼한 부부가 저녁을 먹고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둘이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꽥, 꽥!"

아내: "저 소릴 들어봐, 닭이 틀림없어."

남편 : "아니야, 저건 거위야."

아내 : "아니야 닭이 분명해."

남편 :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건 말도 안돼. 닭은 '꼬꼬댁 꼬꼬!'하고 울지만, 거위는 '꽥, 꽥!' 하고 울거든. 저건 거위라고."

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꽥, 꽥!"

남편 : "거봐 거위잖아!"

아내 : (한발로 땅을 구르며)  "아니야 저건 닭이야. 내가 장담할 수 있어."

남편 : (화가 나서)
 "잘 들어 여보! 저건 거위라니까! 당신은 정말이지..."

남편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내뱉으려는 찰나 또 다시 "꽥, 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눈물을 글성이며 말했다.
"저봐, 닭이잔아."

그 순간 남편은 아내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왜 그녀와 결혼했는가를 기억했다.
그는 얼굴을 누구러뜨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여보 생각해 보니 당신말이 옳아. 저건 닭이야."

그러자 아내는 남편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여보"

두 사람이 사랑 속에 산책을 계속하는 동안 숲에서는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꽥, 꽥!"

남편은 생각했다. '그것이 닭이든 거위든 무슨 상관인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기분 좋은 여름날 저녁 함께 산책을 즐기는 것이였다.

그렇다! 그것이 닭이든 거위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상대에게 상처주고 결국은 관계가 단절되는 이유 중에 많은 부분이 멀리서 들려오는 동물의 소리가 닭인지 거위인지 같은 사소한 분쟁에서 비롯된다.

내 신념을 저버려야 할 일이 아니라면 내게 회복하지 못할 손해가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면 인정해 준들 무엇이 문제일까?

- 인생수업 중에서 -

"찰리 채플린" 명언

88세에 세상을 떠난 "찰리 채플린"이 남긴 4가지 명언

1.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들의 문제 조차도.

2. 난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내 눈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3.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없는 날들은 웃지 않은 날 들이다.

4.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 6명은
* The sun ( 태양 )
* Rest ( 휴식 )
* Exercise ( 운동 )
* Diet ( 다이어트 )
* Self - Respect  ( 자존감 )
* Friends ( 친구 )

이 모든것들과 함께 당신의 삶을 즐기세요.
삶은 여행일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을 충실히 사십시요.
내일은 안 올지도 모르니까요.

찰리 채플린
웃음은 몸 안의 조깅 입니다.

찰스 스펄전
진정한 기도는 길이가 아니라 무게에 의해서 측정된다.

허버트 록키어 박사
성경에는 650편의 기도들이 기록되어 있다.
기도 중에서 요한복음 17장의 주님의 제사장으로서의 기도가 가장 으뜸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기도는 항상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대화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주기도문은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이야기하는데 도움이 되는 모범이 됩니다.
여기 도움이 될 만한  여섯 단계 기도 가이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다시 집중하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 다음 단어에 집중해 보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다음과 같이 말해 보세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러 번 반복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성품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그리고 또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초점을 맞추어 보세요.

    여러분의 뜻을 다시 맞추어 보세요.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은 늘 그 분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뜻을 그분의 뜻에 맞추는 것은 그분의 나라를 찾는 일입니다.

    주변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시기를 기도해 보세요.

    염려를 내려 놓으세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언가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하나님께 여러분의 염려를 드릴 때 그분은 여러분께 무엇을 주실까요?

    여러분의 염려를 적어보세요. 그리고 하나씩 읽어 보세요. 염려를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세요.

    이 단계를 필요한 만큼 계속하세요.

    회개하고 응답하세요.

    사하여 준 것 같이.. 사하여 주시옵고

    여러분이 주님께 내려 놓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주님께 고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깊은 상처, 좋지 않은 행동, 어쩔 수 없는 중독, 반복되는 실수 등등일 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 생각을 그분께 말씀 드리고 그분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세요.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부터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셨나요?

    주님의 신실함에 감사 드리세요. 그리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씀해 보세요. 주님의 보호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보세요.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에도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 하세요.

    기뻐하며 돌아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을 기뻐하고 오늘 하루를 보내며 그분을 예배 할 방법을 찾으세요.

    그리고 잠시 하나님과 함께 한 이 시간을 곰곰이 돌아 보세요. 그분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보여 주셨나요? YouVersion기도 목록에 생각나는 것을 적어 보세요

예수님처럼 기도를 시작하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가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꿀 때, 우리는 언제든지 확신, 의뢰함,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께 다가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일용할 양식

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

"일용할 양식"에 대한 헬라어는 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이다. 
아르톤ἄρτον은 "빵"이다. 
신약의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던 음식이다.
여기서 빵은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제유법으로 사용되어, "양식" 일반 혹은 더 나아가 "물질" 일반을 의미한다. 

“일용할”로 번역되어 있는 헬라어 단어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은 주의 기도에 사용된 전체 헬라어 중에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이 단어를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경에 이 단어가 오직 주기도문에만 나오기 때문이고, 성경 밖에서도 그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잘 안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상당히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신 셈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테니, 더 세심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에피우시온”이 무슨 뜻인지를 밝히기 위한 많은 학문적 연구가 있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문제가 되었으니 긴 논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 안에 용례가 없으니, 성경 밖 문서나 비문을 다 뒤져서 이 단어가 사용된 흔적이 있으면 그것에 근거해서 뜻을 찾아내려 하였는데, 노력에 비하여 결실이 적다.

이 단어가 쓰여있는 비문이 그리스의 어느 섬(Rhodes)에서 새로 발견되었을 때 거기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쏟았고, 이 단어가 쓰여있는 파피루스가 런던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었을 때에도 학계가 들썩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뜻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말 주기도문이 “일용할”이라고 에피우시온을 번역했는데, 그건 기본적으로 에피우시온의 뜻을 “오늘”이라고 본 것이다. 영어로 daily bread라고 번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발견을 반영하면 에피우시온은 "다음"이라는 뜻이 된다.
에피우시온에 "날"을 뜻하는 헤메라가 붙여써진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문맥에서 볼 때 "다음 날 곧 내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발견을 주의기도 해석에 적용하면  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 "다음 먹을 빵"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의역하면 "생존에 필요한, 삶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빵이 된다.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한 해석 역시 이런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에피우시온은 "에피"라는 전치사와 "우시온"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에피(ἐπί)는 "~위에"를 뜻하는 전치사로 영어의 on이나 upon에 해당한다.
"우시온"이 나온 "우시아(οὐσία)"는 그리스 철학은 물론 삼위일체 교리에도 사용된 단어인데 그 기본 의미는 "존재(being, existence)"이다.

그러므로 에피우시온은 "존재를 떠받치는"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에피우시온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맥이 통한다. 

이런 이해를 고려한다면, 주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 하신 "일용할 양식"이 하루 먹을 양식이 아닌 것으로 조심스레 해석할 수 있다.

"일용할 양식"은 문학적 표현으로 참 좋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지 하루치 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물질",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물질 전반"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 하셨다. 

내게는 어디까지가 "일용할 양식"일까? 물어보고 묵상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