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Ⅵ(요한계시록 20:6) 설교 원고(2019-08-25)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Ⅵ(요한계시록 20:6)


-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의 복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19장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은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이 이십니다. 신부는 예수님이 주인 되신 교회이며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가 동일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내용에서 모든 교회에 공통된 말씀은 두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교회
둘째는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교회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신 교회는 반드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교회는 반드시 예수 이름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려 몇 가지 중요한 용어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첫째는 첫째 부활(復活)

둘째는 둘째 사망(死亡)
셋째는 천년왕국(千年王國)

먼저 이러한 용어들을 정리하기 전에 구원에 대한 믿음을 성경적으로 확실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믿음입니까? 아니면 행위입니까? 믿음에 의한 것을 구속론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행위에 의한 것을 도덕론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구속론적(救贖論的, redemptional) 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속론적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께 죄 값으로 지불되어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속론적 구원이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신앙입니다. 

도덕론적(道德論的, ethical) 구원이란 무엇인가?

도덕론적 구원이란 믿음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위(行爲)가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도덕론적 구원이란 모든 종교에 적용되는 보편적 속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즈음 문제가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것은 다른 종교를 무시하고 화해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기독교를 편협한 종교라고 하기 때문에 종교다원화주의와 같은 사상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는 변질 될 수 없으므로 오직 예수의 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혼돈과 갈등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구속론적 구원인가 아니면 도덕론적 구원인가를 서로 혼합하여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은 마치 구원을 도덕론적 구원의 근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한번 받은 구원은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은 구속론적 구원의 근거에 의하여 사람이 선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기 때문에 사람의 행위가 구원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속론적 구원을 근거로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면 첫째부활과 둘째사망과 천년왕국이란 개념을 잘 몰라도 분명히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과 천년 왕국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부활(復活)이란 무엇인가?

첫째 부활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된 첫째 부활에 관한 성구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부활이란 용어를 20장 5절과 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5∼6,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첫째 부활이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둘째 사망의 해는 무엇일까요? 둘째 사망(死亡)이란 용어가 2:11, 20:6, 14, 21:1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에서 ‘둘째 사망’이란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불못이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을 말합니다(21:8). 불못에 던져지는 것들은 사망과 음부(20:14) 그리고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행음자들, 술객들, 우상숭배자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21:8).

흔히 ‘지옥(地獄)’을 마치 “유황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전에서 정의하는 지옥(地獄)이란 “아주 괴롭거나 더없이 참담한 환경이나 형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현실에서 악한 일을 한 사람이 죽어서간다고 하는 세계.” “큰 죄를 짓고 죽은 사람이 그 죄를 용서받지 못하고악마와 함께 영원히 벌을 받는다고 하는 곳.” 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활이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예수님께서 재림의 심판주로 오셨을 때 유황불 못에 던져지는 것은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무엇인가?

‘천년(千年)’이란 단어가 한글개역성경에서 9번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시편에서 1회(90:4), 전도서에서 1회(6:6).
신약에서는 베드로후서에서 1회(3:8), 요한계시록에서 6회(20:2, 3, 4, 5, 6, 7)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된 ‘천년(千年)’에 관한 말씀들을 중심으로 과연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용어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이해를 소개하려고 한다.

2절, 일천년 동안(a thousand years) - χίλια ἔτη.  

3절, 천년이 차도록(till the thousand years)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4절, 천년 동안(a thousand years) - χίλια ἔτη.      

5절, 그 천년이 차기까지(until the thousand years)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6절, 천년 동안(a thousand years)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7절, 천년이 차매(the thousand years are expired) - τὰ χίλια ἔτη. (the thousand years)

* τὰ /  ὁ, ἡ, τό. 3588. ho, hé, to. the  
* χίλιοι. 5507. chilioi, a thousand     
* ἔτος. 2094. etos. a year    


분명한 사실은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천년왕국’이란 용어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학교와 교회 그리고 성도들이 ‘천년왕국’을 언급하고 마치 머지않아 ‘천년왕국’이 도래할 것처럼 믿고 기다리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이란 용어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년’이란 ‘상징적인 수’로 사용한 것이다. 상징이란 증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요한계시록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이 말씀에서 ‘용’ ‘옛 뱀’은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다. 사단과 마귀에 대한 상징으로 표현한 것처럼 ‘천년’이란 단어 또한 상징으로 사용한 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년을 마치 천년동안 지속되는 어느 특정한 기간이라고 해석하므로 ‘천년왕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은 천년이라는 기간과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왕 노릇하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예수를 믿으면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서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질 미래의 사건입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이루어진 과거의 사건이었으며 지금도 계속되는 사건이고 또한 장차 미래에도 확실하게 증거 될 것입니다. 따라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는 것은 미래에만 이루어질 사건이 아닙니다.

과거에 실현된 사건은 지금도 계속되며 미래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천년동안이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지속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말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요한계시록에는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용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에 의해서 자주 천년왕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어왔기에 대부분의 교인들은 마치 ‘천년왕국(千年王國)’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깨우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태복음 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태복음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 왔다 하고.

* 천국(ἡ βασιλεία) - βασιλεία, 932. basileia.
kingdom, sovereignty, royal power  

천국은 하늘 왕국 즉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하늘의 왕국은 이미 이 땅에 임했습니까? 아직 임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미 하늘 왕국은 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왕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분명하게 하늘 왕국은 완성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늘 왕국이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왕국을 말합니다.
하늘 왕국이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아미 임했습니다.

다니엘 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마태복음 23:37∼39,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스가랴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이사야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시편 46:9∼10,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성경은 하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늘의 예루살렘 강하 사건(계 21:1~5)을 통해 본 하늘의 의미를 발표하고 “하늘은 더 이상 피안의 세계로서 이 세상과는 이질적인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이 세상과 통일돼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한 공간이 된다.”며 “새 예루살렘 강하 사건은 이러한 새 창조의 정황을 교회론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그림 언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새 예루살렘 강하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이 통합되는 새 창조의 환경에 대한 묘사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새 예루살렘은 장소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인 성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성경에서 일관성 있게 사용되고 있다”며 “이는 24장로(계 4), 14만 4000(계 7:1~8),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17)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초림과 재림 사이의 교회 공동체는 지상에서 전투하는 모습을 띠지만 동시에 하늘에서 승리한 공동체로 존재하는 이중적 특징을 지닌다”며 “이 땅은 우리가 버리고 떠나야 할 소멸의 결과를 기다리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하늘은 언제나 땅과의 통일을 이루도록 존재한다(엡 1:10). 하늘과 땅을 통합돼 온 우주가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지혜(세인트앤드루대) 박사도 ‘히브리서 12장 25~29절의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위한 하늘의 진동’을 주제로 발표하고 “해당 본문은 창조 세계가 진동해 멸망할 것이라는 마지막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창조세계와 하늘의 세계를 그의 백성들과 함께 거할 영원한 처소로 준비시킬 것임을 전하는 약속의 메시지”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종말 상태에 대한 전통적 경향은 죽어서 하늘로 가는 데 집중돼 왔지만 이는 땅의 환경문제나 세상의 사회적·구조적 불의를 무관심하게 만든 불균형적 신앙 모습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천년왕국(千年王國)

성경에서 중요한 주제 두 가지를 소개한다면 구원과 왕국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부분 구원만 강조하는 경향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읽어볼 때 왕국을 건설하고 그곳에 구원받은 백성들을 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에베소서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하신 은혜는 왕국 안에서 구속하신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에덴동산(왕국)에 거주할 수 없도록 쫓아내셨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사탄이 지배하는 곳에서 왕국을 다스릴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기원전 606년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후 다른 나라와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비록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기원전 4년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1:32,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한글 번역에서 살펴보면 마치 천년이란 기간이 채워져 지난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천년설 - 천년이 있기 전에 재림이 있다.
후천년설 - 천년이 지나고 재림이 있다.
무천년설 - 천년은 상징적인 수가 되어 천년은 없다.

* 천년의 기준에 의해서 시기가 다를지라도 중요한 것은 재림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