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성서 학당 원고(1. 세례, 2. 죽음, 3. 천당과 지옥, 4. 하나님의 이름,


수요성서학당 주제별 순서

1. 세례(洗禮)(마태복음 3:11) /  06-10-20

2. 죽음(히브리서 9:27) / 06-17-20

3. 천국과 지옥(누가복음 16:19-31) / 06- 24-20

4. 하나님의 이름(잠언 18:10) / 2020-07-01

5. 하나님의  / 07-08-20

6. 하나님의 이름 / 07-15-20

7. 하나님의 이름 / 07-22-20

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 08-05-20

9.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 08-12-20

10. 창조주 하나님(엘로힘)

11. 하나님의 침묵 / 08-26-20

12.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 09-02-20

13. 합심기도(마태복음 18:18-19) / 09-09-20

14. 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 09-16-20

15. 예정론(로마서 8:29-30) / 09-23-20

16. 사탄 마귀 귀신(요한계시록 12:9)  / 09-30-27

17. 왜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는가?(디도서 1:1∼3) / 10-07-20

18. 면류관(冕旒冠)(베드로전서 5:4) /  10-14-20

19. 믿음이란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하박국 2:4) / 10-21-20

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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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1 (06 / 10 / 20)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세례에 대한 세 가지 정의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물 세례
둘째는 성령 세례
셋째는 불 세례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입니다.
신약의 첫 번째 책은 “마태복음”입니다.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 사이는 “대략 400년” 이란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의 400년의 기간을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 라고 합니다.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를 “신구약 중간 시대”라고도 합니다.

기독교 이외에 가톨릭교회와 유대교에서는 신구약 중간 시대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여 “외경”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사용합니다.

오래 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던 때에 어느 날 광야에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 거주하는 낯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광야로 나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 바로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나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 다만 물로 세례를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실 그 분은 너희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며 실망하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신앙을 깨우쳤습니다.
요한의 외침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서 세 종류의 세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 : 회개와 구원을 위한 세례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 : 구원의 확신과 보증을 위한 세례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 : 심판을 위한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하는 세례(불심판)

그런데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분명하게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셨을까요?

세 종류의 세례를 베푸셨던 수여자(授與者)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복음 3:5∼6,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에서 목사가 세례를 베풉니다.

주 예수를 믿는 (아무개)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세례는 요한의 증거대로 분명히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성령세례를 베푸셨으며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사람들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보혜사(保惠師)” 라고 합니다.

“보혜사(保惠師)”란 무엇인가?
-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

보혜사란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란 뜻입니다.

보혜사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NIV에서는 “상담자(the Counselor)”, KJV에서는 “위로자(the Comforter)”, NASB에서는 “돕는자(the Helper)” 라고 합니다.

보혜사를 헬라어 성경에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paraklétos)” 라고 합니다.

1. 옹호자(an advocate), 중보자(intercessor),
2. 위로자(a consoler), 위로자(a comforter), 돕는자(helper),
3. 변호사(Paraclete)

예수님께서 언제 누구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셨습니까?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날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세례도 함께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자세히 관찰하면 성령과 불이라는 용어가 마태복음 3장누가복음 3장에서는 사용하였으나 마가복음 1장요한복음 1장에서는 성령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라고 모든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면 불세례도 오순절 날 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러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세례자 요한에 의하면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성경을 폭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과 불세례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불세례”는 불로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복음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9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리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누가복음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요한복음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참조 / 성령세례(사도행전 1:5, 11:16, 고린도전서 12:3)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해서 언급한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외 성경에서는 오직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에서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분명하게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진다는 것은 불이 다양하게 갈라져서 오순절 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 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불세례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사도행전 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을 때 마치 성령은 강한 바람 소리로 들렸습니다.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바람이 아닙니다.
성령은 불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은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βαπτίσει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
- will baptize with the Spirit Holy and fire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많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장차 오실 그 분께서는 “성령(프뉴마)과 불(푸르)”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요한의 증언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그 분이 그토록 기대하던 “메시아”라고 기다렸으나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사십일 후에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사도행전 1:3).

이렇게 번역된 데는 헬라어 접속사 “카이(καὶ)”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카이”는 “등위 접속사”로서 “그리고(and)” 라고 하여 앞의 것과 뒤의 것을 동등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령과 불”이라고 할 때 성령과 불을 동등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제까지 성령과 불을 이렇게 등위 접속사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등위 접속사가 아니라 "우위 접속사"로 해석하면 전혀 그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세례는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위 접속사”인 “또는(or)”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바로 우위 접속사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성령과 불로'로 번역된 “엔 프뉴마티 하기오 카이 퓌리(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는 “성령 또는 불안에서” 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본문의 문맥과 사(四)복음서를 비교하여 연구해보면 더욱 확실히 증명됩니다.
먼저 우리는 “성령과 불로”라는 말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성령과 불로”가 아닌 “성령으로” 라고만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에서도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여 불에 대한 언급 없이 “성령으로” 라고만 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1:16고린도전서 12:13에서도 역시 “성령으로”라고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성구들을 참조할 때 주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세례는 오직 “성령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의 의미는 별도의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라는 것은 “성령 안에 잠기운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보더라도 “침례” 라는 말이 의미를 더 잘 통하게 한다.
만일 “세례”라고 하면 “성령으로 씻긴다”는 말이 되므로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성령은 영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요 14:18∼19)이므로 '성령 안에서 침례'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하되 '생명의 연합'을 뜻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령 안에서 침례'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행 2:38, 행 19:2)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고전 3:16-17)'과도 같은 말이 되는데 결국 우리와 주님과의 상호내주(Inter-Residence)를 뜻한다.

한편 요한복음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에서 '신령으로'라는 말은 “엔 프뉴마”로서 원 뜻은 “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

이 말씀의 의미 역시 '성령을 받음'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이 되며 이는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 예배를 드려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는 아무리 열심히 예배드려도 소용없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주님과 하나가 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요 3:5)'고 할 때 '물'과 '성령'의 의미가 모두 해석되는 것이다.

즉 '물'은 죄를 씻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물 안에 잠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연합'을 상징하는 뜻이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령 안에 잠긴다는 뜻은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죽었다가 살아나는 원리가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불로 세(침)례를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볼 차례가 되었다.
'불로 세례를 주신다'라는 말씀은 직역하면 '불 속에서 세례를 주신다'는 말로서 신자와는 전혀 관계없고 불신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다.

즉 불신자는 성령 안에 잠기게 하는 대신에 '불 속에 잠기게 한다'라는 의미로서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제 세례에 대한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례(밥티조)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물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올 때는 과거의 나 즉 옛 사람은 죽었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회개와 구원의 표를 받았지만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될 때 사탄은 정말 네가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느냐? 하며 조롱하고 비난할 때 정말 내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는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세례가 구원을 보증합니다.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고린도후서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성령세례가 보증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불세례는 심판 즉 소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 요약 자료

주제 ; 세례
- 세례(씻을 세, 예도 예)와 침례(잠길 침, 예도 예)
- 밥티조(물속에 잠기다)

성경 ; 마태복음 3:11

종류 ;

 1. 물세례(회개와 구원) 베드로전서 3:21

 2. 성령세례(생명의 보증) 보혜사(요한복음 15:26)
 - 로마서 8:2, 요한복음 6:63, 고린도후서 1:22, 5:5, 히브리서 12:29

 3. 불세례(심판, 알곡과 죽정이)
- 신명기 4:24, 히브리서 12:29
- 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 전치사 "과"(카이)
 등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을 같은 것으로 이해
 우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은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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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2 (06 / 17 / 20)

죽음이란 무엇인가?
- 성경적 죽음에 대한 이해

죽음이란 사회적 연결망이 끊어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연결망은 연결되는 것이다!

연결망이 끊어지면 ‘대체(代替) 불능
오직 그 사람과는 더 이상 앞으로는 어떤 추억도 관계도 가질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슬퍼합니다.

여러 해 전에 송재천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아들 송천호군이 제게 카톡으로 아버지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아들 송천호군이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아버지와 연결되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서로 연결하던 연결망이 죽음으로 끊어졌기 때문에 아들이 대신하여 연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세상에서 연락하던 사회적 연결망을 끊어졌지만 주님 나라에서 신령한 연락망은 개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크리스천인 한 의사가 중병에 걸린 어떤 환자를 찾아 갔습니다.
그 환자가 "의사 선생님, 제가 회복할 수 을까있요?"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글쎄요, 아마 어려울 겁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나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무덤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선생님은 아세요?" 하고 물었습니다.
의사는 솔직히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열리더니 의사가 기르는 개가 뛰어 들어와 주인에게 뛰어올라 꼬리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때 의사는 환자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셨지요. 이개가 이 방안에 들어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자기 주인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아무 두려움 없이 뛰어 들어온 것입니다. 죽음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지만 한 가지 사실, 곧 우리 주님께서 그곳에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족합니다. 아무 생각마시고 그를 믿기만 하십시오. 문이 열릴 때 두려움 없이 들어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본 훼퍼"
"이것이 나에게는 마지막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새로운 삶은 시작이다!"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나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Just as man is destined to die once, and after that to face judgment.   

죽음은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할 과정이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죽음은 죄의 결과이다.
어떤 질병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다.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Precious in the sight of the LORD is the death of his saint. 

모든 사람들이 죽어야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죽음은 귀중하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hears my word and believes him who sent me has eternal life and will not be condemned; he has crossed over from death to life.

성도의 죽음이 귀중한 것은 이 세상에서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약속에 믿음으로 동의했기 때문이다.

죽음의 세 가지 의미

죽음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가르치는가? 
인간의 생명은 인간 속에 본래부터 주어져 있는 내재적 생명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욥기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교제할 때만 인간은 참된 삶을 살 수 있다. 

성경적 의미에서 죽음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어 그로부터 분리되는 상태”를 뜻한다.
성경은 죽음의 이러한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서 제시한다.

첫째, 육체적 죽음(Physical death)

육체적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멈추었지만 영혼은 여전히 활동합니다.
- 창세기 3:19, 시편 146:4, 전도서 12:7; 야고보서 2:26

창세기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시편 146: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러나 육체적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나 중지가 아니라 생명과 결합된 육체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는 죄의 형벌로서 인간의 생명에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이를 죽음이 죄로 인해 인간 세계에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한다(롬 5:12, 17).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성경은 죽음이 인간이 누리는 생명과는 대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낯설고 이질적이며 심지어 적대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죽음은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시 90:7, 11), 심판(롬 1:32), 정죄(롬 5:16), 저주(갈 3:13)로 표현된다. 

시편 90: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시편 90: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로마서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로마서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그 결과 육체적 죽음에는 일반적으로 두려움과 공포가 수반된다. 이 고찰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원래 상태가 해체나 사멸의 씨앗을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이 완전히 전적으로 배제된다는 사실은 옳은 생각이다. 또한 죄의 결과와 형벌로서 육체가 죽음을 맞게 된다는 사실에서 육체적 죽음은 영혼의 죽음의 결과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둘째, 영적 죽음(Spiritual death)

영적 죽음이란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죄의 결과와 형벌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그로 끊어져서 영적 생명을 상실한 상태를 가리킨다.
- 에베소서  2:1∼2; 에스겔 18:4, 20; 로마서  6:23

에베소서 2:1∼2,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스겔 18: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 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에스겔 18: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영적 죽음은 영혼의 멸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 죄의 형벌로서 죄책을 짊어지고 고통을 받게 되며 삶의 모든 측면에서 죄로 오염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영적 죽음으로 인해 인간은 참된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망각하고 그분을 떠나 자신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고 자기중심적 삶을 살아가게 될 따름이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상실한 채 죄악의 깊은 수렁 속에서 번민과 방황으로 점철되어지는 삶이 아닌가?

인간의 영혼은 수많은 사상, 열정, 욕망으로 인해 뒤엉켜서 삶은 혼란과 실망의 장이 되어 버렸고 그 결과 피조물 전체가 인간이 초래한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되었다(롬 8:20, 22). 죄의 결과로 주어진 삶의 엄청난 고통과 번민과 방황은 인생의 참되고 유일한 희망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요청할 따름이다. 

로마서 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셋째,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

영원한 죽음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둘째 사망(the second death)” 이라고 합니다(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Then death and Hades were thrown into the lake of fire. The lake of fire is the second death.   

영원한 죽음을 다른 말로 둘째 사망(the second death)이라고 합니다.
영혼의 죽음의 최종결과로 모든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생명력을 상실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의 진노아래 거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가장 두려운 의미에서의 죽음이며 여기에는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영혼의 고통, 즉 양심의 가책과 회오가 지속적으로 뒤따른다. 

요한은 이를 고통의 연기가 영원토록 타오르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영원한 죽음은 결코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멸절(annihilat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소멸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과 무서운 진노 아래서 영원히 고통당하지만 결코 죽지 아니하고 불가피하게 영원히 살게 되는 상태, 죽기를 아무리 원해도 죽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non mori)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영원한 죽음의 상태가 가시화되고 현실화되는 상태가 바로 성경이 반복적으로 가르치는 ‘지옥’에 해당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창세기 4장 26절의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노스(Enos)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노스”라는 이름의 뜻은 “남자” 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 라고 합니다.
에노스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세상과 구별된 삶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이름은 "예수"라고 하셨습니다(아버지의 이름 - 요한복음 17:6, 11-12, .26)

왜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을 불러야 할까요?

요한복음 14:2-3,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In my Father's house are many rooms;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I am going there to prepare a place for you.
And if I go and prepare a place for you, I will come back and take you to be with me that you also may be where I am.

죽은 후에 어디로 갈지 모른다는 것은 내가 있을 집을 찾지 못한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 집을 찾지 못할 때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 병을 "치매"라고 한다면 죽은 후에 갈 곳을 모르는 사람은 "영적 치매"에 걸린 것이라고 하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은 '에노스'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오늘날도 내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될 때 예수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죽음, 그 자체가 메시지

사람의 일생을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생로병사(生老病死)” 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것처럼 “생로병사(生老病死)”란 “태어나서 나이가 들어 병들고 죽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생로병(生老病)”까지는 늘 가깝게 생각하면서도 “사(死)”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시간 속에 있는 네 개의 기둥’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생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노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간이 지나면 지난만큼 육체가 약하고 쇄하여 가는 것입니다.
병은 약한 육체가 회복할 수 없는 질병이 걸려 고통하는 것입니다.
사는 마지막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못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암에 걸려 수술을 받은 후에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도 죽는구나!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하고 배워야 하겠다.
그 결과 죽음 앞에서는 내가 예수를 진실하게 믿었는가?
이 질문에 진실한 대답을 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첫째는 내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
둘째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
셋째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

죽음은 두렵다. 그래서 대면하고 싶지 않다. 죽음이 보내는 시선을 피하려고만 한다.

반대로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도 세 가지 있다.

첫째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둘째는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셋째는 죽을 장소를 알지 못한다.

*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호라티우스”의 라틴어 시 한 구절로부터 유래한 말이다.
현재를 잡아라(Seize the day)” 라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본래, 단어 그대로 “카르페(Carpe)”는 “뽑다”를 의미하는 “카르포(Carpo)”의 명령형이었으나, “오비디우스”는 “즐기다, 잡다, 사용하다, 이용하다” 라는 뜻의 단어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디엠(Diem)”은 “날”을 의미하는 “디에스(dies)”의 목적격으로, “디에스”의 목적어이다. 

“호라티우스”의 “현재를 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의 부분 구절이다. 이 노래는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라티우스”가 에피쿠로스 학파에 속하였으므로, 보통 이 구절은 그와 연계하여 이해되고 있다.

카르페 디엠이란 내가 살아있을 때에 예수를 진실하게 믿으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한편 이러한 맥락에서 17세기 네델란드 정물화 화풍인 ‘바니타스 화풍’도 영향 받았다고 여겨진다.

메멘토 모리란 사무엘처럼 사망과 나의 사이는 한걸음 뿐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0:3b,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나바호 인디안 족들의 메멘토 모리 

나바호 인디언 부족에게서도 이와 같은 “메멘토 모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인도의 독립운동가 "간디"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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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에서 "죽음"

- 10회(1:18, 2:11, 23, 6:8, 18:8, 20:6, 13, 14, 21:4,8)

- 사망(死亡) : 죽을 사(사), 망할 망(亡), 잃을 망(亡)

1:18(네크로스) 3498 / νεκρὸς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I am the Living One; I was dead, and behold I am alive for ever and ever! And I hold the keys of death and Hades.

* dead, lifeless, a dead body, a corpse.

2:11(다나토스) 2288 / θάνατος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He who has an ear, let him hear what the Spirit says to the churches. He who overcomes will not be hurt at all by the second death.

* death, physical or spiritual death

2:23, 6:8, 18:8, 20:6, 13, 14, 21:4, 8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6:8, 내가 보매 청황색 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참조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요한계시록에서 "죽음(死亡)"이란 단어는 "(네크로스) 3498 / νεκρὸς" "(다나토스) 2288 / θάνατος"라고 합니다.
그런데 '네크로스'는 육체

참고 자료 /

* 법륜 스님은 “인간은 되어 가다가 죽는다.”

인간의 삶을 됨의 과정이라고 합니다.
죽음은 됨의 과정의 막을 내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죽음은 됨의 과정을 끝내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과 같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뭐든지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고 이것은 바로 궁금증이라고 하며
새로운 것을 알아 가려는 본능이 있다

인간에게는 배움의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교육학에서는 배움의 본능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죄
둘째는 알면서 행하지 않는 죄
셋째는 알면서도 가르치지 않는 죄 인간은 죽음에 대해서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죽음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기회에 성경적인 죽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죽음은 주로 장례식장에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죽음에 대한 가르침이 없다면 어디에서 죽음에 대한 지식을 얻겠습니까?

나이로 살지 말고 생각으로 살라”는 말도 있다.
이는 나이가 아닌 열린 생각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으로 고착화된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사망(死亡) - 죽을 사(死), 잃을 망(亡), 망할 망(亡)

1.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
2. 자연인이 생명을 잃음

영어 - Death
헬라어 - 네크로스(nekros, νεκρός, 3498) dead  

죽음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겠습니다.
서거(逝去), 별세(別世), 타계(他界), 영면(永眠), 작고(作故) 등이 있다.

서거”는 사거(死去, 죽어서 세상을 떠남)의 높임말로 주로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 위대한 예술가 등 사회적으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 사람에게 사용된다.

별세”는 '세상을 하직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에게 가장 많이 쓰인다.

타계”는 귀인의 죽음을 말하는데 서거를 쓸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에 적잖은 기여를 했거나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인물에 쓰인다는 점에서 별세와 차이가 있다.

영면”은 영원이 잠들다는 뜻으로 주로 유명한 사람의 죽음을 뜻한다.

작고”는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각 종교에서 죽음을 높이는 말도 있다.
가톨릭에서는 “선종(善終)”, 개신교에서는 “소천(召天)”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승려의 죽음을 “입적(入寂)” 이라고 표현한다.

한자어 외에 동사나 관용구로는 “숨지다” “돌아가시다” “하늘나라로 가다” “밥숟가락 놓다
땅보탬”이라는 말도 있는데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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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3 (06 / 24 / 20)

천국(天國)과 지옥(地獄)

지식(知識)을 얻는 과정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배움의 과정(學習)
둘째는 체험의 과정(經驗)
셋째는 믿음의 과정(信仰)

배움의 과정을 통하여 어느 정도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배움으로 얻지 못하는 지식을 직접 체험하므로 얻기도 합니다.
그런나 배움과 체험으로도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은 "죽음"과 더불어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겠습니다.
죽음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죽음과 천국과 지옥을 알려주면 좋을텐데 간혹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약간의 공통점은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므로 그 이야기도 신빙성이 적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도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배움과 경험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은 "신앙"으로 터득해야 합니다.

한글개역 성경에서
“천국(37회)” 신약에서만 사용된 단어
“지옥(13회)” 신약에서만 사용된 단어
“음부(81회)” 구약에서 69회, 신약에서 12회
“불못(2회)” 요한계시록에서 2회(20:14, 15)
“스올(1회)” 요나서에서 1회(2:2)

구약과 신약에서 사용한 단어를 살펴보면 성경을 번역할 때 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천국과 지옥이란 주로 동양문화권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음부와 스올은 주로 서양 문화권에서 들을 수 있는 용어라고 하겠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가지려면 먼저 "믿음에 대한 정의"를  다져야 합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믿습니까?”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믿습니까?”

믿음이란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믿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어느 누구도 천국과 지옥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보았다고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간증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천국과 지옥의 실체일까요?
저는 실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오는 중에 비행기 안에서 잠시 쓰러졌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깨어난 후에 이런 때에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중국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이 마침 뉴욕을 방문하여 함께 교제하던 중 비행기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만일 그런 때에 천국과 지옥을 보여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교사님은 아직도 그런 것을 봐야 믿습니까?
환상을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한 것이 이미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었는데 다른 무엇을 왜 기대합니까?
그렇습니다. 성경 보다 더 좋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것에서 찾을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순복음교회 어느 원로목사님께서 자주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교회가 운영하는 기도원에서 일을 하던 어느 목사님이 환상 중에 천국을 다녀왔는데 환상 중에 본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조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내게 환상을 보여주셨다면 나는 세계 곳곳에 다니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생생하게 증거 할 텐데 하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내용을 성경 이외의 것에서 확인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신앙입니다.
신앙의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다른 간증이나 서적은 참고하는 것으로 만족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천국과 지옥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환상을 보여주시며 믿어야 한다고 깨우칠까요?

천국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이해는 “아브라함의 품” “낙원" 이라고 하겠습니다.
지옥에 대한 이해는 “음부" "불 못” “게헨나” 이런 정도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씀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그 이상은 무리하게 넘겨보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신약 성서에서 천국과 지옥을 가장 분명하게 묘사하는 성서의 기사는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누가복음 16:19∼31).

부자는 죽어서 음부(Hades, 하데스)로 갔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갔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죽은 후에 즉시 가는 곳(22절) - 천사들에게 받들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둘째, 의식이 살아 있는 곳(23절) - 고통 중에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음부라는 곳은 본래 영어에서 “헤데스” 라는 곳입니다.
하데스(Hades)라는 곳은 가장 쉽게 신학자들의 정의를 빌면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아직 지옥은 아니예요.
그러나 그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러나 음부와 지옥의 차이는 종이한 자의 차이입니다.
그것은 마치 '유치장과 교도소의 차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죽은 다음에 우리의 영혼은 없어진다고 가르칩니다.
단지 부활 때,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다시 살아나지마는 그러나 내가 죽는 그 순간 모든 것은 다 없어진다.
영혼도 없어진다 라고 가르칩니다

셋째, 두 개의 대조적인 장소(22절, 23절) - 아브라함의 품, 음부

22절,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절,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음부와 낙원 혹은 지옥과 천국. 두개의 대조적인 세계로 영원한 세계는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옥을 한마디로 말하면 두 가지의 단어가 오늘 본문에도 이 음부, 지옥의 전철인 음부(하데스)라는 장소를 묘사하면서 계속적으로 거듭 출연한 단어가 두 단어입니다.
고통, 하나는 고민. 고통의 장소, 그리고 고민의 장소 끝없는 번민의 괴로움의 장소.

성경이 말씀하는 천국

이사야 11:6-8, 그 때에(메시야 재림 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무엇을 말합니까? 타락으로 인해 파생되었던 온갖 무질서와 약육강식의 혼란이 제거되고, 죄로 말미암은 적대관계가 완전히 제거되고, 완전한 평화가 넘치는 곳임을 소개합니다.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서의 삶이 힘들고 고달파도 참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18
,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주님계신 너무나 좋은 천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1-5,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성경이 말씀하는 지옥

마가복음 9:43,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8-4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불이 꺼지지 않는 장소, 벌레가 득실거리는 장소, 불속에서 고통 받는 장소를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3:40-42,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요한계시록 14:11-12,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지옥은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곳, 고통이 그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땅에서 지켜야할 것,

12절,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8-9,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절,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넷째, 왕래가 불가능한 곳(26절) -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큰 구렁이"란 첫째는  "거리적으로 아주 멀다"

둘째는 "영적으로 전혀 다른 곳"이다.

마태복음 22: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지옥은 내 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잡혀서 가게 되고 손발이 묶여서 강제로 구인이 되고 지옥에 마침내 도착해서도 누가 환영해주거나 누가 영접해주는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캄캄한 무저갱에 던져지게 됩니다.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미리 예비해 놓으신 처소로 데려 가셔서 거기서 살게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지옥에는 들어가기만 하지 거기에는 하나님이 인봉을 해 놓았기 때문에 빠져나오는 출구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23, 25,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낮에 성문들을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베드로후서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마가복음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제 누가복음의 본문을 읽어가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성경적인 믿음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이해 한다.
지옥을 음부라고 이해한다.

지옥이 과연 있느냐?
선하신 하나님이 지옥을 미리 만들어 놓으신 것이냐?

성경은 최후의 심판 다음에 인류가 둘로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구원받은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되고,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불 못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성경은 최후의 심판 이후 불신자가 불 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세하게 이야기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지옥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영원히 형벌을 받는 장소
(마 5:29-30, 23:15, 23:33; 막 9:45-47)

둘째, “지옥 불”, “꺼지지 않는 불”, “영원한 불
(마 5:22: 마18:8-9).

셋째, “바깥 어두운 곳” “울며 이를 갈 것”
(마 8:11-12, 25:30).

넷째, 세상 끝 날이 될 것
(마 13:40-42, 49-50).

다섯째, 몸과 영혼이 모두 고통 받는 곳
(마 10:28).

여섯째, 불신자와 마귀와 마귀의 부하인 타락한 천사들도 함께 던져질 곳
(마 25:41).

일곱째, 영원할 고통을 받는 곳
(막 9:43-49).

사도들의 가르침도 모두 지옥이 “불”과 “어둠”으로 상징되며, 지옥에서의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에 강조점을 둡니다.

첫째, 지옥의 형벌은 죄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입니다(롬 2:5)
둘째, 지옥은 “맹렬한 불” 또는 “불 못”,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불립니다(히 10:27-31; 계 19:20; 계 20:10, 14-15, 21:8)
셋째,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벧후 1:17; 유 13절)
넷째, 지옥의 고통은 영원합니다(살후 1:7-9; 유 7절, 계 14:9-11)

이처럼 예수님과 사도들이 말한 지옥의 특징에 대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묘사는 “불”과 “어둠”입니다.
지옥은 불타는 곳이며, 어두운 곳입니다.
여기서 이런 “불”과 “어둠”은 문자적이 아니라, 은유적인 표현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만약 문자적인 불과 문자적인 어둠으로 해석하면 모순과 혼란이 생깁니다.
지옥이 불인 동시에 어둠일 수는 없습니다.
불과 어둠은 불신자들이 영원히 받을 형벌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 상징입니다.

불과 어둠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지옥은 인간의 몸과 영혼 모두가 고통을 받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불이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는 자들의 외적인 고통, 육체에 대한 고통을 강조하는 측면이라면,
어둠은 내적인 고통, 영혼에 대한 고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몸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와 마음에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에 대한 대표적 이미지로서 “불”과 “어둠”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성경이 말해 주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의 비참함은 참으로 말로 다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의식적인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 이런 전통적인 ‘지옥 교리’를 부인하는 기독교인도 오늘날 많습니다.

영원한 지옥에 대한 부인은 두 가지의 부류로 나타납니다.

첫째, 보편 구원론자들입니다.

보편 구원론자들은 하나님이 결국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사후에도 구원의 기회를 주어 결국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 소멸론자 또는 조건적 불멸론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은 신자는 영생을 누리지만(조건적 불멸론),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는 궁극적으로 존재가 없어진다(소멸론)고 생각합니다.

즉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소멸되는 것이 곧 불신자에 대한 형벌이라는 주장입니다.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곧 지옥에 대해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인은 지옥에 대한 성경의 계시, 지옥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대한 성경적 교훈

1.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아야 한다.

2. 죄 값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3. 영원한 형벌에서 구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지옥에 대한 성경의 이런 가르침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첫째, 죄가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야 하며,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 기간이 몇 십 년 밖에 안 되는데,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는 기간이 영원하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소멸설과 같은 이론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와 심판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죄의 크기는 죄를 짓는 기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대상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평생 세금을 조금씩 떼먹은 죄를 지은 사람과, 한순간 왕을 살해하고 반역한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한순간 왕을 살해한 죄의 크기는 한평생 조금씩 세금을 떼먹은 죄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죄입니다. 일반 세상에서도 왕에 대한 반역죄는 가장 크고 무서운 형벌로 다스려집니다.

그런데 죄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우주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의 왕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반란입니다. 존재와 지식과 능력과 거룩함과 공의와 선함과 진실이 무한하시고 영원하시며 불변하신 하나님을 반역한 죄에 대한 처벌은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에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한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신 대속적인 죽음의 가치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죄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인간을 대표해 인간 대신 죽는 것이 아니고는 다른 방법으로는 처리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자인 우리가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예수님이 나 대신, 우리를 대표해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가 받을 지옥의 고통을 ‘영원히 단번에’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십자가를 지신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크기는 우리가 건짐 받은 지옥의 영원한 형벌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지옥의 영원한 불, 영원한 어둠의 고통과 형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우주에서 가장 크고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식어지는 것은 우리가 건짐 받은 지옥의 형벌과 고통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음부(지옥)의 특징

음부(81구절) : 구약 69회, 신약 12회
지옥(13구절) ; 신약 13회


1. 만족함이 없는 곳(잠언 27:20)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Death and Destruction are never satisfied, and neither are the eyes of man.
(현대인의 성경) 죽음과 멸망이 만족함을 모르듯이 사람의 눈도 만족할 줄 모른다.

2. 구덩이 맨밑(이사야 14: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밑에 빠치우리로다.
But you are brought down to the grave, to the depths of the pit.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너는 지옥의 가장 깊은 구덩이에 빠질 것이며.

3. 일, 계획, 지식, 지혜가 없는 곳(전도서 9:10)

무릇 네 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Whatever your hand finds to do, do it with all your might, for in the grave, where you are going, there is neither working nor planning nor knowledge nor wisdom.
(현대인의 성경) 너는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라. 네가 앞으로 들어갈 무덤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으며 지식이나 지혜도 없다.

4. 감사가 없다(시편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No one remembers you when he is dead. Who praises you from the grave?
(현대인의 성경) 죽으면 아무도 주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누가 무덤에서 주를 찬양하겠습니까?

5. 슬퍼하는 곳(창세기 37:35)
- 위로 받지 못하는 곳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All his sons and daughters came to comfort him, but he refused to be comforted. "No," he said, "in mourning will I go down to the grave to my son." So his father wept for him.
(현대인의 성경) 그의 모든 자녀들이 그를 위로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내가 슬퍼하다가 저 세상에 있는 내 아들에게 가겠다' 하고 계속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

6. 불타는 곳(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But I tell you that anyone who is angry with his brotherwill be subject to judgment. Again, anyone who says to his brother, 'Raca,' is answerable to the Sanhedrin. But anyone who says, 'You fool!' will be in danger of the fire of hell.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형제에게 이유 없이 화내는 사람은 재판을 받고, 자기 형제를 어리석다고 욕하는 사람은 법정에 끌려가게 될 것이며 '이 미련한 놈아!' 하고 말하는 사람은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다.

- 마가복음 9:43(까지지 않는 불)
- 야고보서 3:6(지옥불)

7. 어두운 구덩이(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For if God did not spare angels when they sinned, but sent them to hell, putting them into gloomy dungeons to be held for judgment.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깊은 지옥에 던져 심판 때까지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두셨습니다.

천국의 특징

천국(37회) : 신약 37회

1.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only h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현대인의 성경) 내게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모두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 들어갈 것이다.

2. 침노하는 자의 곳(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has been forcefully advancing, and forceful men lay hold of it.
(현대인의 성경)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침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침략하는 사람이 그 나라를 빼앗는다.

3. 어린아이들의 것(마태복음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And he said: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change and become like little children, you will never enter the kingdom of heaven.
(현댕인의 성경)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마태복음 18:4(낮추는 자의 것)
- 마태복음 19:14(어린 아이들의 것)

4. 구원받은 자가 들어가는 곳(디모데후서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The Lord will rescue me from every evil attack and will bring me safely to his heavenly kingdom. To him b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현대인의 성경) 주님은 모든 악한 일에서 나를 건져내시고 또 하늘 나라에 들어가도록 나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길이길이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참고 자료 /

“양과 염소의 비유”


양과 염소로 구분되는 기준은 분명하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를 환대했느냐의 여부다.
주님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와 당신을 동일시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그 환대를 행위로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 행위는 존재의 변화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런 행동이다.
양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염소로 구분된 사람들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을 간과한 사람들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난한 자들이 항상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없이 할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다, 이 단순한 말씀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인간이 인간인 한 불평등은 세상의 일부이다.
가난한 자와 부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난한 자는 단순히 세상에 실패한 사람들이 아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자들이 될 수밖에 없는 가난한 이들은 모든 제자들에게 구원의 방편이다.
그러니까 모름지기 제자라면 가난한 자들을 모른 척 할 수 없다.
제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예수님을 섬기는 것처럼 섬겨야 한다.
그런 그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열리고 임한다.
핍절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 새로운 사회가 불평등한 세상에 빛이 되고,
그 빛이 바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다.

나는 천국과 지옥이 없는 복음을 상상할 수 없다.
어쩌면 그래서 주님이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의 의미와 다르지만 나는 천국과 지옥이 복음의 중요한 핵심요소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특징

한국 역사는 오래동안 특정한 종교에 의해서 사회가 형성되었다고 하겠다.
고대 사회 때는 무속종교의 영향을 받았다.
삼국 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조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신앙의 밑바탕에는 다른 종교의 신앙을 유지하면서 다른 종교로 형식을 바꾼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교육과 치료를 통하여 사회에 영향을 미쳤으나 기독교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준에 멈추고 말았다.
이러한 신앙적 배경에서 드러난 한국교회의 신앙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기복적(祈福的)
2. 타계적(他界的)

“기복적 신앙”의 특징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축복에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기복신앙에만 매달려 있고, 또 하나는 이 세상에 관심이 없고 너무 천당 생각만 한다.

“타계적 신앙”이란 오직 천국에 가서 잘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도 크게 관심도 없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도덕과 윤리를 무시한 신앙생활을 인정하고 교회 안에서 존경받을 만한 신앙적 행동이 마치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것처럼 무비판적인 대상이 되었다고 하겠다.

어떤 목사님이 경각심을 느껴서 매우 심각하게 어느 날 지옥과 천당에 관한 내세의 설교를 했더니 교인들이 앉아서 픽픽 웃고 만 있더래요. 그래서 너무나 좌절이 되어서 자기 친구 배우 코미디언이 있는데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순전히 가짜만 말하는데도 어떤 때는 슬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울기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심각 한 소리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웃기 만 하니 어떻게 된 거냐고?

코미디언 친구가 목사님에게 이렇게 대답하더래요.

"그거야 뻔하지. 자네는 진리를 꼭 거짓말처럼 말 하고 나야 거짓말을 진리처럼 말하니까 그런 거지"

이런 대답을 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성경은 내세를 가르칩니다. 그것을 심각한 진리로 가르칩니다. 

그것은 영원한 운명을 주제로 하 는 결코 우리가 피해가서는 안 되는, 피할 수도 없는, 피해서도 안 될 성경의 가장 중요 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영원한 운명의 상태는 죽을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예요. 죽을 때 결정하면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결정하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떤 결단을 하느냐, 그것이

나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 직전에 보면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 16장이죠. 16장의 첫 머리에 보면 소위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라는 매우 난해 한 성경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그런 데 이 비유의 구절에 보시면 이런 말이 나와요.

누가복음 16장 9절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 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지혜롭게 삶을 사느냐, 못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영원한 처소 다시 말하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 이렇게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아무도 보내지 않습니다. 보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왜 가야 합니까?
마태복음 25장 41절에 보면 본래 이 지옥이란 장소는 마귀와 마귀들을 따르는 그의 졸개들. 귀신들을 위해 예비 된 곳 이예요.
그런데 불행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스스로 이 마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사단을 자기의 주인으로 알고 하나님이 아닌 마귀를 선택해서 그를 추종하다 보니까 마귀가 가있는 곳 마지막도 가 있는 것 이예요.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천국은 어떤 곳 입니까?
천국은 영원한 위로와 그리고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곳.


계시록 21장에 보시면 천국의 카텐을 하나님이 조금 열어줍니다. 우리가 천국에 막 도달하자마자 거기에 우리의 발걸음이 막 도달하자마자, 우리의 영혼이 육체를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자마자 즉각적으로 경험할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가 있어요. 거기에 보면 '하나님 이 저희들과 함께 계셔서 저희의 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자마자 경험하게 될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달려 나와 나를 안아주십니다. 내가 알아. 네가 세상에 있는 동안 얼마나 아파하고 슬퍼했는지를 알아. 그리고 주께서 내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내 눈물이 씻겨지는 장소. 그리고 이어서 천국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다시는 아픔이 없고 다시는 애곡함이 없고 다시는 슬픔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성경은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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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4(07 / 01 /20)

하나님의 이름(시편 9:10, 잠언 18:10)

*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한다.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가장 잘 알았던 인물 중에 다윗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온 이스라엘 나라에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용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터에 나갔던 용사가 아닙니다.
전쟁터에 나간 형들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심부름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아주 거대한 장군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용사가 없느냐?
너희들이 섬기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와서 나와 겨루어 이기는 자의 신이 참신이 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무도 적군의 장수와 맞서지 못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은 잊어버리고 내가 나가서 싸울 것이라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진두지휘를 하던 사울 왕은 자기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보려 했으나 너무 커서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주었으나 다윗은 도저히 휘두를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평소에 사용하던 물맷돌을 들고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David said to the Philistin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결국 다윗이 이겼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무도 맞설 수 있는 용사가 없었기 때문에 다윗이 나섰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싸움에서 사용하는 칼과 창과 단창이 아닙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 진영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었을까요?

*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아는 것은 의지할 때에만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례 1)
온산에서 교회를 시작 할 때 마을을 장악하고 있던 서울 무당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을에 450년 된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 소나무가 사라호 태풍이 불어왔을 때 마을은 모두 물에 잠겼는데 유일하게 소나무는 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마을을 지키는 당수나무로 마을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사라호 태풍
1959년 제14호 태풍으로,  1959년 9월 12일에 발생하여 9월 17일 3등급 세력으로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아직도 노인들 특히 경상도나 제주도 지역 노인들에게는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특히 9월 17일은 추석이어서 일기예보 같은 것도 없던 시절에 아무 것도 모르고 차례 지내다가 휩쓸려버린 집도 많다고 한다.
차례상이고 뭐고 내버려두고 허겁지겁 도망쳐서 집이 휩쓸리고 마을이 무너져 버린 후에야 태풍인 줄 알았다고.
경상도 지방의 어르신들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호'라고 하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당수나무 옆에 당시 부산 대성교회 여전도회에서 7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하고 교회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당수나무 옆이라 마을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문제는 땅 주인은 땅을 팔았으나 주민들을 당수나무 옆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도저히 그곳에서 교회를 할 수 없다며
개척 지원을 받고 시작했던 서기태목사님은 부산으로 사역지를 옮겨버렸습니다.
마침 제게 연락이 와서 주말에 내려가서 설교만 하고 올라오기로 하였는데 결국은 첫 목회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마을을 장악하고 있던 서울무당이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여 마을을 지키려면 큰 굿판을 벌여야 한다며 당시 2-300만원의 비용을 요구한 것입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돈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축소하여 작은 굿판을 벌였는데 무당이 몇날을 굿판을 벌이다가 예수신 때문에 마을 수호신이 당수나무를 떠났다고 하며 그 마을에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례 2)
한번은 대학의 친구들과 후암동 어느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 길가의 집에서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서 그 굿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서울에서 아직도 저런 굿판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주여, 저 무당이 굿을 하지 못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굿을 하던 무당이 집주인에게 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들을 가져오게 하더니 물을 가득 담은 후에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물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신이 오지 않는구나!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적용)
다윗의 시대에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을까요?
온산에서만 하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을까요?
저는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늘날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다만 주를 믿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것은 믿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확신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을 소개합니다.

*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The name of the LORD is a strong tower; the righteous run to it and are safe.

- 견고한 망대(Strong Tower)를 "안전지대"라고도 합니다

시편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Because of the oppression of the weak and the groaning of the needy, I will now arise, says the LORD. I will protect them from those who malign them.

견고한 망대와 같은 안전지대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8:10 -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달려가야 합니다.

시편 12:5 - 탄식을 인하여(the groaning)

* 출애굽기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During that long period, the king of Egypt died. The Israelites groaned in their slavery and cried out, and their cry for help because of their slavery went up to God.

탄식하는 사람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달려가서 부르짖는 일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점 상황이 심각해 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6월 22일 세계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 전체 감염자의 수는 904만 5천명, 사망자는 47만 1천명
미국의 경우는 235만 7천명, 사망자는 12만 2천명이라고 합니다.
여름철이 되면 다소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는 말씀은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며 도저히 자기들의 힘으로 애급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때 탄식하며 부르짖었을 때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리가 하늘  보좌에 상달하려면 여호와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다윗과 같이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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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5(07 / 08 /20)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
- 참조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지난 수요일 성서학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지난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저희 어머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7월 6일).

6. 25가 일어나기 전에 저희 아버님은 안양교도소 형무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제도는 형무관은 군에 안간다고 하였는데 군인이 부족하여 형무관들도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료 형무관들 50여명 군에 입대했었는데 대부분 전사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당시에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는데 막상 전쟁터에서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면서 오직 한가지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우리들은 지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 던져졌습니다.
물론 약을 찾을 수 있고 의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과 의사가 내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오직 믿고 찾을 것은 하나님이었다는 고백처럼 우리들도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님이 직업 군인으로 부대가 있는 지역에서 영외 거주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어머니와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항상 아버지가 함께 지냈지만 저희는 아버님이 출장이나 휴가 때에만 잠시 집에 들렀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하루는 제가 어머니와 동생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나 오늘 아버지를 봤다!” 라고 말을 했더니 모두들 “언제,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남의 아버지!” 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의 아버지는 거리에 나가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버지!" 하고 부른다면 아마 그 사람이 나를 "미친 놈이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란 "인격적 관계"를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와 분명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맹무상(群盲撫象)

- 무리 군(群), 소경 맹(盲), 어루만질 무(撫), 코끼리 상(象)

열반경(涅槃經)에 소개된 이야기로 맹인(盲人) 여럿코끼리만진다는 으로, 사물좁은 소견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

어느 왕이 하루는 소경 열사람을 모아 잔치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잔치 도중에 한 대신을 불러 코끼리를 끌어내어 소경 아홉사람에게 만져보게 하고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소경들은 코끼리인 줄을 모르고 이빨을 만진 소경은 "무" 같다고 대답하고,
귀를 만져 본 소경은 "키짝" 같다고 대답하고,
머리를 만진 소경은 "바위돌"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소경은 "기둥"같다고 하고,
옆구리를 만진 소경은 "담벼락"과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코끼를 만저보지 못한 소경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도무지 종잡을 없어 모두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왕이 말하기를,
“선남자(善男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와 몸뚱이를 제대로 말하고는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코끼리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코끼리불성(佛性)을 비유해서 말한 것으로, 소경은 모든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여러 명의 장님들이 코끼리를 어루만져 보고, 배를 만진 장님은 담벼락과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과 같다고 하는 등 자기가 만져 본 부분에 의하여 의견을 말하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가 쓰고 있는 뜻은, 못나고 어리석은 범인(凡人)들이 위대한 인물이나 사업을 비판한다 해도 그것은 한갓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평으로, 전체에 대한 올바른 평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과 좁은 소견으로 그릇 판단한다는 뜻이다.

소경과 코끼리의 이야기에서 코끼리의 다양한 모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제까지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만졌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 대한 부분적인 이야기와 한 하나님에 대한 제 각기 다른 경험의 이야기는 실체는 하나이지만 느끼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로 계시지만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하나님을 불렀던 이름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알려지고 불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은 각 사람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육체의 질병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체의 질병만 고쳐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의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굶주린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먹을 것을 제공하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먹을 것만 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주방장과 같다 또는 요리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 “임마누엘” 이란 이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고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많은 이름들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이 완전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다, 지혜롭다, 사랑이시다, 존귀하다, 기묘자, 공의롭다 등과 같은 말로 설명할 뿐입니다.

언어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떤 이름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떠함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의 언어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거룩하기 때문에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시대별 성품을 대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나타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신비한 영적 체험에 갇혀 그 체험을 갖고 일생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나에게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다른 어떤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궁금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특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이때 계시하셨던 대표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을 "여호와"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성경을 읽었던 두 가지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명기적 역사관(신명기 28:1-6)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적 역사관이란 모세 오경 중에서 신명기를 성경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명기의 핵심은 순종하면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레위기적 역사관(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e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참조 / 베드로전서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레위기적 역사관은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를 주축으로 생각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민족을 애급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구속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죄에서 구원하실 자"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형성되려면 반드시 "피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참조 / 사도행전 13:33, 히브리서 5:5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경적 근거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낳았습니까?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진리는 "예수" 예수는 곧 "예수의 보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고 불러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출애굽기 3:14)
신약에서는 "예수"(마태복음 1:21)
요한계시록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요한계시록 1:8, 21:6, 22:13) 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에는 반드시 구원에 대한 약속이 내포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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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서 10:13
- 참조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veryone who calls on the name of the Lord will be saved.

지난 수요일 성서학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소개할 때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지난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저희 어머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7월 6일).

6. 25가 일어나기 전에 저희 아버님은 안양교도소 형무관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회제도는 형무관은 군에 안간다고 하였는데 군인이 부족하여 형무관들도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료 형무관들 50여명 군에 입대했었는데 대부분 전사했다고 합니다.
저희 아버님이 당시에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는데 막상 전쟁터에서 많은 군인들이 전사하는 것을 보면서 오직 한가지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기도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우리들은 지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 던져졌습니다.
물론 약을 찾을 수 있고 의사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과 의사가 내 생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치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오직 믿고 찾을 것은 하나님이었다는 고백처럼 우리들도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쟁터에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주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아버님이 직업 군인으로 부대가 있는 지역에서 영외 거주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어머니와 서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집은 항상 아버지가 함께 지냈지만 저희는 아버님이 출장이나 휴가 때에만 잠시 집에 들렀기 때문에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습니다.
하루는 제가 어머니와 동생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나 오늘 아버지를 봤다!” 라고 말을 했더니 모두들 “언제, 어디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남의 아버지!” 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의 아버지는 거리에 나가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버지!" 하고 부른다면 아마 그 사람이 나를 "미친 놈이구나!" 생각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하나님과 나 사이에 분명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네가 누구냐? 나는 너를 모른다 라고 하신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 가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재 가치란 "인격적 관계"를 말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와 분명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 제일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찾고 부르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맹무상(群盲撫象)

- 무리 군(群), 소경 맹(盲), 어루만질 무(撫), 코끼리 상(象)

열반경(涅槃經)에 소개된 이야기로 맹인(盲人) 여럿코끼리만진다는 으로, 사물좁은 소견주관으로 잘못 판단함을 이르는 .

어느 왕이 하루는 소경 열사람을 모아 잔치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잔치 도중에 한 대신을 불러 코끼리를 끌어내어 소경 아홉사람에게 만져보게 하고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소경들은 코끼리인 줄을 모르고 이빨을 만진 소경은 "무" 같다고 대답하고,
귀를 만져 본 소경은 "키짝" 같다고 대답하고,
머리를 만진 소경은 "바위돌"같다 하고,
다리를 만진 소경은 "기둥"같다고 하고,
옆구리를 만진 소경은 "담벼락"과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코끼를 만저보지 못한 소경은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도무지 종잡을 없어 모두가 자기를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왕이 말하기를,
“선남자(善男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와 몸뚱이를 제대로 말하고는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 코끼리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코끼리불성(佛性)을 비유해서 말한 것으로, 소경은 모든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이 불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여러 명의 장님들이 코끼리를 어루만져 보고, 배를 만진 장님은 담벼락과 같다고 하고 다리를 만진 장님은 기둥과 같다고 하는 등 자기가 만져 본 부분에 의하여 의견을 말하는 일을 가리킨다.
우리가 쓰고 있는 뜻은, 못나고 어리석은 범인(凡人)들이 위대한 인물이나 사업을 비판한다 해도 그것은 한갓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평으로, 전체에 대한 올바른 평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과 좁은 소견으로 그릇 판단한다는 뜻이다.

소경과 코끼리의 이야기에서 코끼리의 다양한 모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이제까지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만졌던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코끼리에 대한 부분적인 이야기와 한 하나님에 대한 제 각기 다른 경험의 이야기는 실체는 하나이지만 느끼는 방법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온전한 하나로 계시지만 하나님을 알고 만나고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대마다 하나님을 불렀던 이름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게 알려지고 불렸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 것은 각 사람의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육체의 질병에 시달리던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육체의 질병만 고쳐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의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면 굶주린 사람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은 먹을 것을 제공하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먹을 것만 주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주방장과 같다 또는 요리사와 같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양한 이름들 중에서 “임마누엘” 이란 이름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이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임마누엘이란 이름으로 하나님을 완전하게 계시하고 나타낼 수 있을까요?

어떤 이름도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많지만, 많은 이름들조차도 그의 모든 성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람들이 완전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다, 지혜롭다, 사랑이시다, 존귀하다, 기묘자, 공의롭다 등과 같은 말로 설명할 뿐입니다.

언어 표현력이 절정에 이르렀지만, 사람은 아직도 분명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어떤 이름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어떠함은 너무나 많은데, 사람의 언어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단어 하나와 특정한 이름 하나로 하나님의 전부를 전혀 대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거룩하기 때문에 시대에 부합하는 이름으로 자신의 사역을 개괄하고, 시대적 의의를 지닌 특정한 이름으로 그의 시대별 성품을 대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인류의 언어로 표현하도록 나타내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신비한 영적 체험에 갇혀 그 체험을 갖고 일생동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일 누가 나에게 “도대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을 다른 어떤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궁금증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특별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이때 계시하셨던 대표적인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을 "여호와"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교회에서 성경을 읽었던 두 가지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명기적 역사관(신명기 28:1-6)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적 역사관이란 모세 오경 중에서 신명기를 성경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명기의 핵심은 순종하면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고 순종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레위기적 역사관(레위기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I am the LORD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 to be your God; therefore be holy, because I am holy.

참조 / 베드로전서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

레위기적 역사관은 모세오경 중에서 출애굽기를 주축으로 생각합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히브리민족을 애급에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구속하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라고 부릅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죄에서 구원하실 자" 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형성되려면 반드시 "피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시편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참조 / 사도행전 13:33, 히브리서 5:5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성경적 근거

야고보서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고 하셨습니다.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낳았습니까?

요한복음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한복음 17: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진리는 "예수" 예수는 곧 "예수의 보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분명한 의미를 갖고 불러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와"(출애굽기 3:14)
신약에서는 "예수"(마태복음 1:21)
요한계시록에서는 "알파와 오메가"(요한계시록 1:8, 21:6, 22:13) 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에는 반드시 구원에 대한 약속이 내포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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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6(07-15-20)

지난 수요성서학당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아무나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지하려면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혈연관계
둘째는 양자관계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신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구약과 신약과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다르게 부르는 것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의 이름이 필요한가?

첫째, 이름은 존재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둘째, 이름은 존재 능력 및 가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갖는 존재를 찾는 것으로 그 이름의 능력과 가치를 깨닫게 합니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참조 / 사도행전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3:6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셋째, 이름은 구속의 은혜

구약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은 “여호와” 라고 합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이름은 “예수” 라고 합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 라고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문자적인 의미로 소개합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은 히브리 알파벳 4자로 표현합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24자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히브리 알파벳으로 “요드(י), (ה), 바브(ו), (ה)”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aton)” 이라고 합니다.
“테트라그라마톤”은 “(τετρα, tetra)” “글자(γράμματον, grammaton)”라는 뜻의 헬라어 단어입니다.
“테트라그라마톤”을 우리 말로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라고 합니다.
“신명사문자(神名四文字)”란 “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문자”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을 히브리 알파벳으로 “요드, 헤, 와우, 헤” 라고 합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숫자 값이 있고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드(י)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10”, 상징은 “하나님의 손” “능력”
헤(ה)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5”, 상징은 “보다” “내 쉬는 숨” “생명을 주다”
바브(ו)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6”, 상징은 “못” “연결” “갈고리” “실제화하다” 
헤(ה)란 알파벳의 숫자 값은 “5”, 상징은 “보다” “내 쉬는 숨” “생명을 주다”
여호와 라는 히브리 알파벳의 숫자값은 10+5+6+5=26이라고 합니다.
여호와 라는 히브리 알파벳의 상징은 “하나님의 손을 보라, 못 박힌 손”
따라서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출애굽기에서 스스로 있는 자 라고 소개하였지만 감추어진 의미는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속하기 위한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할 예수님의 손을 상징으로 예언하며 계시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돌보며 호렙 산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에서 불이 타올랐습니다. 모세는 들판에서 가끔 일어나는 들불인 줄 알았으나 불이 꺼지지 않아 가까기 다가갔을 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은 모세를 애급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며 부르짖는 히브리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분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출애굽기 3:11∼15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한 이름입니다.
“여호와” 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이름)니라.

영원한 이름을 바뀔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
이름이 바뀐 것일까요?
아닙니다. 발음은 다르게 표현하지만 이름이 갖는 속뜻 본래의 의미는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은 곧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깨우쳤습니다.

요한복음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요한복음 10: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 하는 것이어늘. 

요한복음 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한복음 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한복음 17:11∼12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알파와 오메가”

알파와 오메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헬라어 알파벳의 첫 문자 “알파”와 마지막 문자 “오메가”를 말합니다. 알파벳을 시작하는 첫 문자와 마지막 문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에서 여호와로 불렀고 신약에서 예수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이름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첫 번째 이름이며 또한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마지막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에고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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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7(08-05-20)

에고 에이미(내가 그니라)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Jesus of Nazareth, they replied. I am he, Jesus said. And Judas the traitor was standing there with them.   

“내가 그니라”(I am he)
헬라어 -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ego eimi)”  
ἐγώ(1473. egó) ; 인칭대명사, 영어의 아이(I)
εἰμί(1510. eimi) ; 동사, I am, I exist     
히브리어 - “에히야(אֶֽהְיֶ֑ה) 에쉘(אֲשֶׁ֣ר) 에히야(אֶֽהְיֶ֑ה)”

요한복음 18:1∼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그 곳은 가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 곳을 알더라.  

우리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오래 동안 성경을 읽었고 설교를 들었으며 성경공부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씀이 오늘 함께 읽은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기도하셨던 장소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 대한 말씀을 복음서에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마가복음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누가복음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곳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요한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또는 감람산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라고 그곳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요한복음에서는 기드론 시내 건너편이라고 하셨을까?

요한복음 18:5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Jesus of Nazareth," they replied. "I am he," Jesus said. (And Judas the traitor was standing there with them.

"내가 그니라"(I am he)
헬라어 성경 -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ἐγώ(1473. egó) ; 인칭대명사, 영어의 아이(I)
εἰμί(1510. eimi) ; 동사, I am, I exist     
히브리어 - 에히야 에쉘 에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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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드론(Gidron) - 암흑, 백향목의 시내

예루살렘성벽과 감람산 사이에 있는 이 골짜기는 약 5km에 걸쳐있다.

1.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하여 이 시내를 건넜다(삼하 15:23)

온 땅 사람이 대성통곡하며 모든 인민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 로 향하니라.

30절,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 

2. 아사와 히스기야는 우상을 이 시내에서 불살랐다(왕상 15:13, 왕하 23:6)

또 그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서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또 여호와의 전에서 아세라 상을 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다가 거기서 불사르고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리고.

3. 예수님이 겟세마네와 베다니를 다니시느라고 자주 이 시내를 건넜다(요 18: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 거기 동산이 있는데(1절) :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하여 감람산과 성전산 중간을 흘러서 사해로 들어간다.
기드론의 뜻은 ‘암흑’, ‘백향목의 시내’로서 골짜기의 무성한 나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동산은 겟세마네 동산을 가리키는데, ‘겟세마네’는 기름 짠다는 뜻이다.
이곳에는 감람나무가 많아 그 열매의 기름을 짰을 것이다.

"여호사밧의 골짜기" 라고도 하는 기드론 골짜기는 성경에 12번 정도 나오는데, 시내, 골짜기, 와디 등으로 소개된다.
오늘날의 지형은 과거보다 3~12m 정도 높아져 있다.
기드론 골짜기는 천연 요새와 같은 지형이다.

'여호사밧 골짜기', '브라가 골짜기', '판결의 골짜기' 등과 어우러지기도 하는데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루살렘 북서쪽의 전망산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성과 감람산을 가로지른다.
성 동문을 지나 성전에 들어갈 때에나 겟세마네 동산이나 감람산으로 올라 기도할 때에나, 또 배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갈 때에도 매번 이 계곡을 건너셨다.
훗날 부활을 위한 최후의 심판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해서인지 사후에 이곳에 묻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면 힌놈의 골짜기와 맞닿는 기드론 골짜기에 이른다.
오늘날은 아랍인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감람산까지 이동하면 걸어서 10~15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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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에 나타난 나는 ∼이다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ego eimi)

요한복음의 공관 복음서와 다르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집중한다. 일곱 가지의 기적이나 다른 복음서에 비해 과하게 많은 설교 등은 이것을 반영한다. 또한 신학적 표현 중의 하나님 ‘나는 나다’(에고 에이미)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정확하게 ‘나는~이다’ 형태를 띤 구절은 일곱 번 사용된다.

Ⅰ.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Ἐγώ εἰμι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직후에 하신 말씀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고대 이스라엘의 광야시절에 비유될 수 있다. 광야에 식탁을 베풀 수 있을까?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로 응답하신다. 요한복음은 주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 뒤에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는 반석의 생수 사건을 연상시키는 은유적 표현을 덧붙이신다. 그렇다면 이 표현은 정확하게 사십 년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을 상징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광야의 떡과 예수님 자신의 ‘떡’과 비교되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시며, 먹는 자는 영적으로 주리지 않을 것이다. 즉 영생을 얻을 것이다.

Ⅱ.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온 후에 주어진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다그치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시고, 땅에 글을 쓰신다. 다시 재촉하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나이든 사람으로부터 시작 젊은이까지 모두 떠난다. 여자 외에 아무도 없자 여자에게 묻는 ‘너는 정죄한 사람이 있느냐?’ 그러신 후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신다. 그리고 이 말씀이 주어진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생명과 진리, 하나님의 영광으로 비유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상의’ 라는 표현이다. 세상은 예수님의 사역의 장소이며, 구원할 타락한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신다. 세상은 악한 자들의 소굴이며, 사단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세상을 구원하기 원하신다. 그래서 세상(κόσμος)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Οὕτως γὰρ ἠγάπ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κόσμον, ὥστε τὸν Υἱὸν τὸν μονογενῆ ἔδωκεν, ἵνα πᾶς ὁ πιστεύων εἰς αὐτὸν μὴ ἀπόληται ἀλλ’ ἔχῃ ζωὴν αἰώνιον.(Nestle 1904)

‘세상의’는 ‘세상에서’ 또는 ‘세상을’이란 의미를 내포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 세상에 있고, 세상을 위한 존재인 것을 드러내신다. 

Ⅲ. 나는 문이다(10:7, 9)
ἐγώ εἰμι ἡ θύρα τῶν προβάτων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문은 출입구다. 또한 부여된 자격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문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다. 제한된 사람, 출입이 허가된 존재들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다. 즉 양들이 출입하는 곳이다. 양이 아닌 다른 동물은 들어갈 수 없다. 모든 양도 아니다. 오직 예수님의 양이다. 그것은 주인의 목소리로 구분될 것이다.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자는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나, 알지 못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다. 다음 구절들은 양의 문으로 들어간 결과에 대한 것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

예수님은 문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가를 설명하신다. 먼저는 ‘구원’을 얻는다. 문은 구원의 문이다. 둘째는 ‘꼴’ 즉 양식을 얻는다. 먹을 것이 풍부하다. 이 부분은 문인 동시에 생명의 떡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세 번째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다.

Ⅳ. 나는 선한 목자라(10:11)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직역하면, '나는 이다. 그 목자 그 선한' 

목자는 양들을 돌보는 사람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목자로 소개함으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는 그러낸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다르고, 강도와 반대된다. 당대 종교지도자들은 겉으로는 목자였지만 강도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제사를 빌미로 백성들의 재물을 탐했고, 과부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오히려 양들을 위해 존재한다. 목숨을 바치고, 꼴을 준다.

여기서 선한(καλὸς)이란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리유(Rieu)는 ‘나는 아름다운 목자다’ 라고 번역하도록 권유한다. 요한이 말하는 ‘선한’이란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 성경의 용례들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먼저 로마서 7:16에서는 ‘율법이 선하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1:8에서는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율법은 선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디모데전서 4:6에서는 약간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좋은’이란 단어로 번역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좋은 교훈’을 자신이 가르치는 복음,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된다. 

마태복음 13:24로 넘어가면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농부가 나온다. 그가 뿌리는 씨앗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8:8에서 ‘더 낫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롬 7:16 νόμῳ ὅτι καλός
딤전 1:8 δὲ ὅτι καλὸς ὁ νόμος
딤전 4:6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καλὸς ἔσῃ διάκονος

영어 성경은 칼로스(καλός)를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다.(beautiful, as an outward sign of the inward good, noble, honorable character; good, worthy, honorable, noble, and seen to be so.) 이러한 의미를 볼 때 ‘좋은’이란 뜻은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완전한 상태이거나, 흠이 없고, 일반적인 어떤 상태보다 월등한 것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은 양자 삼으신다. 양들은 아무런 힘이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 그들은 느리고, 둔하다. 목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동물들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관계는 이처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포용으로 가능하다.

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Ἐγώ εἰμι ἡ ἀνάστασις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 선언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 나사로의 집에 갔을 때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나의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다가 말한다. 마지막 날에 대한 부활의 확신은 있지만,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마르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자신을 부활과 생명이라고 소개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는 부활이다. 그리고 생명이다’라는 표현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선언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룬다. 부활과 생명을 하나로 보며, 예수님을 진정한 생명이라고 재선언한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11:4은 생명과 빛이 연결된다. 이제 부활과 연결되고, 부활은 새로운 생명이다. 이로서 생명의 정체가 드러나며,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님의 영원한 능력이 완전하게 드러난다. 죽음까지 정복하신 예수님이시다.

Ⅵ.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강론이 시작되는 곳이다.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강론을 길게 넣는다. 도마는 예수님의 가시는 길을 모른다고 투덜거린다.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무엇인가 확실하게 알고 싶었을 것이다. 그 때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11장에서 부활과 생명이 만났다면, 14장에서는 생명이 길과 진리와 만난다. 세 개의 정의에 모두 관사(ἡ)가 붙어 있다. ‘내가 그 길이고, 그 진리고, 그 생명이다.’라고 번역해야 한다.

예수님은 여러 개의 길 중의 하나가 아니다. 바로 ‘그 길’이다. 길은 곧 진리와 만나, 예수님의 배타성과 진리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 진리는 다시 생명으로 나아간다. 

Ⅶ. 나는 참 포도나무다(15:1. 5)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요한복음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곳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도의 관계를 드러낸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1절). 예수님은 농부가 기르는 포도나무다(1, 5절). 성도는 무엇일까? 예수님은 ‘가지’라고 말씀하신다(5절). 성도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포도나무이시다.

요한복음 15:1
내가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 I am the vine  
헬라어 원문은 ‘참’에 관사(ἡ)가 있어, 포도나무와 구분된다. 이러한 구분은 하나의 동사를 취함으로 앞선 문장을 설명한다고 할 수 있다. ‘참’이라는 표현은 다른 거짓된 것과 구분된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거짓된 포도나무, 즉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다른 것과 구분하고 차별화 시킨다. 

이사야와 예레미야에 나타난 포도나무는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돌포도나무다. 그들은 거짓되고, 악하며,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 빈약하다.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그릇된 포도나무다.

‘안에 있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가지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원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붙어있다.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열매 없는 가지(성도)를 잘라 낸다는 말은 종말론적 심판을 상징한다. 이곳에서 선택된 백성이 버려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요한은 붙어 있다는 의미는 겉으로 드러난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 듯하다. 즉 교회에 있으나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 아니라면 그는 심판의 때에 제해질 것이다. 그가 진정한 제자인지는 열매가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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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게 이들 종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이슬람 신자들은 예수님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그런데 이슬람교 신자들이 예수님을 존경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더라.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를 무슬림이라 부른다.
무슬림은 예수님을 ‘하느님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한다.”
  뜻 밖이다. 그럼 무슬림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무슬림이 예수님을 존경하긴 하는데,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지는 않는다고 했다. 복잡하다. 이슬람교는 ‘알라’를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믿는다. 둘은 엄연히 물과 기름 아닌가.  
  
“하나씩 짚어보자.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에서는 ‘하느님’을 무엇이라고 부르나. ‘GOD(갓)’이라고 부른다. 한국말로는 어떻게 부르나. 개신교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라 부른다. 그럼 아랍어로는 하느님을 뭐라고 부르나. ‘알라’다.”
 

아랍권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지 않나. 그들은 ‘하느님(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나.
  
“맞다. 중동 지역에도 기독교 신자가 있다. 이집트에도 콥트 기독교인 있다. 그들이 하느님을 부를 때 ‘알라’라고 부른다. 그들이 보는 아랍어 기독교 성경에도 하느님은 ‘알라’라고 적혀 있다. 이슬람교 신자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르고, 아랍의 기독교인도 하느님을 ‘알라’라고 부른다. 그러니 하느님과 알라는 서로 다른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하나의 신을 섬기는 건가.  
  
“이들 세 종교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개의 가지와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말을 하면 심기가 불편한 기독교 신자도 있지 싶다.”
 
왜 그런가.
  
“기독교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른다. 사람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좀 전에는 이슬람교 신자들도 예수님을 존경한다고 하지 않았나.
  
“무슬림은 예수님을 선지자로서 존경한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 노아, 모세, 아브라함, 다윗처럼 말이다. 예수님 역시 그런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본다. 그런데 구세주, 다시 말해 메시아로는 보질 않는다. 이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결정적 차이다.”
  
이슬람교는 왜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질 않나.
  
“이슬람교에서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굳이 아들을 따로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왜 그럴까. 하느님이 직접 하면 되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세상을 직접 구원하면 되지, 굳이 아들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건 좀 따져봐야겠다. 기독교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인간에게 원죄가 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우리에게도 원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죄를 대신 없애주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인간의 원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기독교에는 원죄 개념이 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서 태어난다. 반면 이슬람교에는 원죄 개념이 없다. 가령 이슬람교에서 갓난아기들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이 점점 자라면서 에고가 생기고, 죄의식도 덩달아 생긴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지만, 이슬람교의 죄사함은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다. 중간에 누구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기독교인은 받아들이기 힘들겠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이유로 이슬람교에는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예수’라는 구원의 징검다리가 없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기독교는 반드시 대전을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 대전이 예수 그리스도다. ‘대전을 거치지 않고서는 부산에 갈 자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슬람교는 교리 체계가 다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바로 가면 된다고 믿는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된다고 믿는다. 나와 하느님의 직통 관계니까.”
 
그럼 이슬람교는 예수님을 평범한 인간으로만 보는 건가.
  
“그건 또 아니다. 이슬람교도 예수님이 처녀의 몸,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걸 받아들인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기적)들도 인정한다. 그러니까 비범한 선지자로 보는 거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역시 그런 선지자로 본다. 무함마드를 구세주로 보지 않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어떻게 다른가.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이게 유대교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아들’이 등장한다. 삼위일체론을 통해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한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더 닮았다.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이슬람교다.”  
 

 
그럼 유대교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나.  
  
“한국 기독교는 유대교를 사촌 정도로 생각한다. 가까운 친인척의 느낌이다. 그런데 정작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 구세주로 보지도 않고, 선지자로 보지도 않는다. 유대교의 경전은 구약 성경이다. 원래부터  ‘바이블(성경)’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기독교가 생기면서 유대교의 경전을 ‘구약’이라 고쳐 부르고, 자신들의 경전을 ‘신약’이라 불렀다. 이런 명칭에 대해서도 유대인들은 오히려 불쾌함을 느끼더라.”
  
이슬람을 테러와 폭력의 종교로 아는 이들도 꽤 많다. 어떻게 보나.  
  
“불교에도 어떤가. 착한 불교 신자가 있고, 나쁜 불교 신자도 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착한 기독교인이 있고, 나쁜 기독교인도 있다.
이슬람도 마찬가지다. 착한 무슬림이 있고, 나쁜 무슬림이 있다.
제가 만난 무슬림들은 테러와 폭력을 일삼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누구보다 싫어하더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무슬림 전체로 보면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테러나 폭력을 일삼기에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 때문에 모든 이슬람이 그런 것처럼 비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본다.”  
 

[출처: 중앙일보]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믿는다”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유대교의 상징인 다윗의 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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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성서학당 #. 8(08-12-2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祖上)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 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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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주 성경(貫珠 聖經)





출애굽기 4:5,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열왕기상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가복음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열왕기상 19: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사야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불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불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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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요성서학당 시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

첫째는 언약(言約)의 하나님
둘째는 생명(生命)의 하나님
셋째는 순종(順從)의 하나님

첫째, 언약의 하나님

언약이란 약속하신 땅으로 반드시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복음 14:2-3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처소(τόπος. 토포스, topos) -  a place

* 종교통합을 위한 계획
 1. 2018년 9월 26일(수) 발표
 2. 2020년 6월 23일(화) 발표 - 네델란드 유엔 평화의 궁전(Peace Place)에서 세계 종교대통합 발표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연기
 
4-5년 후에 역학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찾아오셨다며 선교하라는 명을 받아 아프리카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흑인들 어울려 일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학원을 차렸으나 코로나에 의해서 문을 닫을 위기를 맞았다.
너무 답답하여 무당 점집을 찾아가서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자 무당이 여자가 문으로 들어올 때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하며 노래를 한다.
그리고 점을 치는데 "당신은 실력이 없다!"
하나님을 믿으려면 끝까지 죽도록 믿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문제는 끈기가 없다.
그러므로 사주에 따라 무녀가 되든지 아니면 절에 가서 스님 밑에서 글을 써주는 일을 하라.

오늘은 두번째 "산 자의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소개합니다.
산 자의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산 자(The Living) - 자오(ζάω, 2198. zaó: to live)
Cognate: 2198 záō – to live, experience God's gift of life.

조에(
ζωή, 2222. zóé: life) - both of physical (present) and of spiritual (particularly future) existence.

산 자라는 용어 자오에서 조에라는 단어가 파생합니다.
조에는 성경에서 현실세계에서는 육체적인 생명을 말하지만 부활 때에는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2:26,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을 의논할찐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하였느냐.

누가복음 20:37,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산 자"를 영어 성경에서(마태복음 22:32) 찾아보겠습니다.

I am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e is not the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산 자"는 "the living"이라고 합니다.
"the living"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 생명(生命,  ζωή)
* (主, ἀρχηγός) - archégos : founder, leader
* 생명의 저자, 생명의 지도자, 생명의 창설자

성경을 해석할 때 어느 한 구절만 인용하는 것보다 그 말씀의 전후 배경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읽어보겠습니다(마태복음 22:23-32).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
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유대의 전통적인 풍속에 여러 형제들이 있을 때 맏형이 결혼 후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다음 형제가 형수를 아내로 맞아 후사를 이어주는 "계대결혼(繼代結婚)" 이란 전통이 있었습니다.

계대 결혼

 계대 결혼이란 고대 중근동 문화권 내에서 주로 행해지던 풍습으로서 죽은 형제에게 자손이 없을 경우 그 대를 이어주기 위해 죽은 자의 남은 형제가 미망인과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이는 가계의 보존과 재산권을 중시하던 당신의 상황 속에서 생겨난 풍습이다.
이때 그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아이는 법적으로 죽은 형제의 자손이 되어, 그 죽은 자의 모든 권리를 이어받게 된다.
한편 이 계대 결혼의 풍습은 사회적으로 아주 강한 구속력을 갖는 것이었으며, 만약 남은 형제가 이 결혼을 거부할 경우 심한 사회적 비난과 수치를 당해야만 했다. 이후 이 풍습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하나의 율법으로 정착되어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져 내려왔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예 / 창세기 38 : 6-11
유다는 큰 아들 엘이 죽어 둘째 아들 오난에게 큰 며느리 다말과 결혼하게 된다.
이 관습을 이행치 않은 오난은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로 보아 하나님께서도 이 관습을 허용하신 듯 하다.

룻기에 소개된 계대결혼 및 기업 무르기(고엘)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형제가 계대결혼에 따라 모두 한 아내를 맞이했는데 만일 부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라는 질문을 합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시한 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며 부활 때에는 시집이나 장가를 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부활 생명의 하나님" 이란 뜻입니다.

조화(造花) 생화(生花)
조화가 아주 멋있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잘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조화가 잘 만들었어도 생화보다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조화와 같은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죽은 신앙이란 그 안에 부활생명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살아있는 신앙이란 교회 안과 밖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별로 신앙이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부활생명이 분명한 것을 말합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란 가사를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의 간증에서 천국에 올라갔을 때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이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 있겠구나 하던 사람이 천국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사람은 천국에 없겠구나 하던 사람이 천국에 있다고 합니다.
셋째는 나와 같은 사람의 이름이 천국에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갖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아주 열심히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모든 가족들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열심도 없고 잘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직장이나 가정에서는 모두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물론 직장에서 가정에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때로는 당황하게 됩니다.

부활 생명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주님께서 사데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Sardis)란 "남은 물건" 이란 뜻입니다.
사데란 남은 물건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죽었다는 것은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있는 것 같았는데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고 수고했어요.
그러다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데 천국에서 여기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비참합니까?
이런 믿음이 죽은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봅시다.
우리는 믿음이 살아 있습니까?
아니면 죽었습니까?

전도서에 보면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전 9:4).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죽은 자가 되지 말고, 산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살아서 생기가 넘치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생화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
죽은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나하고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은 제한된 세상이지만 저 하나님 나라는 제한을 받지 않는 영원한 세상이거든요.

본문에서 겉으로 볼 때는 산 자처럼 보이지만 그 속 내면은 죽은 자인 사두개인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인들이 세 부류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율법을 고수하고자 하는 철저한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엣세네파들 입니다.
타락한 세상을 거부하고 동굴 속에 들어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수도사같이 사는 은둔주의자들이었습니다.

셋째는 사두개인들입니다.
모세오경을 믿으면서도 세속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논리는 ‘하나님을 잘 믿으면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권과 결탁해서 종교정치를 일삼았습니다.
당시에 대제사장들이 대부분 사두개파였습니다.
그들은 종교 귀족들이요, 기득권층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 곳, 현실이 좋았기 때문에 사후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과 사후 세계를 인정하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되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면 부활도, 천사도, 내세도, 심판도 없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25 -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실제로 죽은 나사로를 살려 내셨습니다.
이 땅의 삶보다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19-20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예수님은 분명히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29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세상 권력자들과 적당히 타협해서 지금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는 사두개인들에게 이 예수님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서 제거하고자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부활을 부정하고 내세가 없다고 할 것인가?
며칠동안 고민 끝에 한 가지 기발한 스토리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당시 이스라엘에는 계대결혼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형이 결혼했는데 자식이 없이 죽으면 가문을 보존하고, 과부된 여자의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사는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극히 일부분의 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이런 일이 한 가정에서 7형제 사이에 계속해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적인 세계를 부정하고, 부활과 영생, 내세와 심판을 부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의 별 이상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나와서 반박을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세상에 불행이 존재하는가?”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면 왜 세상이 이처럼 불공평하고 불쌍한 사람, 장애인들이 있는가?”

자꾸 세상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적세계를 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자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본문의 사두개인들처럼 주로 비극적인 스토리만 늘어 놓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현대판 사두개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활이나 하나님 나라의 상급, 그리고 마지막에 있을 심판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습니다.
“주님, 그저 자녀들 공부 잘하고, 남편 사업 잘 되고,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부처님에게 비는 것인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제목이 자기와 현실문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그런 것은 관심 없습니다.
정말 내 인생에 기적이 나타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양성하고, 태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고, 척박한 오지를 개척하는 세계선교를 감당하고, 그래서 한 나라, 한 캠퍼스가 뒤집어지고.
그런 꿈과 기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겨우 이 땅에서 나 한 사람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앙이라면, 하나님을 현실의 상자 속에 가두어 두는 현대판 사두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너희가 성경을 잘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곡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세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가 부활하게 되면 전혀 차원이 달라지게 됩니다.
시집도 장가도 아니가고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활 후의 세계를 1차원적으로 평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부활한 뒤에 천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입체적이고 다차원적인 세계입니다.

성경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신앙의 삼대 원칙은 무엇일까요?

창조 신앙
구원 신앙
부활 신앙.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절. 이 말씀은 하나님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7절.

우리 하나님은 흙덩이에 불과한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 있는 존재, 영의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신비 아닙니까?
창조의 신비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실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역사를 이루실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인정하였는데 모세오경 안에 부활에 대한 기사가 없기 때문에 부활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오경 안에 분명히 부활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증거로 출애굽기 3:6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다같이 26절을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모두 현재형을 사용하셨습니다.

I am the God of Abraham, I am the God of Isaac, I am the God of Jacob.

‘I am’ 모두 현재형입니다.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400년이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자신을 현재형으로 소개하신 것은 하나님이 현재,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도 지금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I am’ 입니다.
지금 살아계십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도, 모세시대에도, 예수님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항상 ‘I am’ 입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단절이 없고, 죽음이 없습니다.
항상 살아 계시고, 항상 능력이 충만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항상 살아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 영이 생명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영이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육체도 살아날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을 담고 계시기 때문에, 그에게 붙어 있으면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이 다 있었습니다.

로마서 4:17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며’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고자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조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라의 태가 말라서 전혀 임신할 가능성이 없었지만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이미 창조신앙과 부활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부활을 믿어야죠.

 창세기 1:1절, 창조는 믿는데 부활은 못 믿는다.
그게 말이 됩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지 못하시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을 반쪽으로 만드는 심각한 죄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상자 속에 가두어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좁은 자기 생각, 자신의 얄팍한 경험과 이성의 세계에 가두어 두고자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고, 크나큰 죄악입니다.
도덕적인 죄보다 더 큰 죄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시키고, 하나님을 자기 생각의 범주에 가두어 두고, 마음대로 하나님의 존재를 제단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때 마르시온이라는 유명한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하나님이요, 신약의 하나님은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툭 하면 화를 잘 내시고, 심판하시고, 진멸하시는 무서운 하나님, 신경질적인 하나님, 진화가 덜 된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신약의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 더 발전된 하나님, 업그레이드 되고 진화한 하나님,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우습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잘 모르니까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당하기 직전에 쓴 디모데후서 4:6-8절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그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의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생각할 때 조금도 죽음이 두렵거나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청년의 스피릿으로 복음역사를 진두지휘하며 이 곳 저 곳에 흩어져 있는 복음의 동역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처럼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되었을 때 아들을 주셨다면 지금 나에게도 왜 지금 나에게도 소원있는 양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기근 가운데서도 이삭에게 100배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이라면 왜 내 인생과 장래를 책임지시지 않겠습니까?
사기군같은 야곱도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로 변화시키고 키우신 하나님이라면 왜 나를 변화시키셔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실 수 없겠습니까?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 貫(꿸 관, 당길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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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슬 주) 
    1. 구슬 2. 진주() 3. 방울 4. 붉은색(--) 5.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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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9(08-12-20)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출애굽기 3:6)


    창세기는 모두 50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창세기전편 후편으로 구분합니다.
    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1장부터 11장까지를 말하며 "세속사(世俗史)" 라고 합니다.
    후편에 해당하는 부분은 12장부터 50장까지를 말하며 "구속사(救贖史)" 라고 합니다.
    구속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네 사람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입니다.
    이 네 사람의 이름의 첫 글자를 모아 "아이야요" 라고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가시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난 후에 애급으로 돌아가서 내 백성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때 모세는 애급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누가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누구라고 말해야 할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때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여호와)" 라는 이름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의 하나님은 히브리민족 공동체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으로 역사속에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여호와, 예수의 이름을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이라고 하셨는데 속뜻은 구원의 시작과 구원의 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세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이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조상의 하나님" 이라고 합니다.
    조상의 하나님이란 신앙이 대를 이어가며 계승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께서 왜 모세를 부르셨을 때 나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할 민족을 이 땅에 세우고 그 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실현하시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조상의 하나님으로서 세 가지 의미를 갖게 됩니다.

    첫째는 언약의 하나님
    둘째는 생명의 하나님
    셋째는 순종의 하나님

    이와 같은 세 가지 의미를 통해서 민족 공동체를 세우셨고 민족 공동체가 발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려는 것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순종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했습니다.


    순종(順從)에 대한 대표적인 성구는 사무엘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어떻게 순종해야 할끼요?

    신명기 13:4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It is the LORD your God you must follow, and him you must revere. Keep his commands and obey him; serve him and hold fast to him.

    순종하며 - 따르며(follow)
    첫째, 경외하며(revere)
    둘째, 명령을 지키며(keep)
    셋째, 청종하며(obey)
    넷째, 섬기며(serve)
    다섯째, 부종하고(hold)

    (현대인)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만을 따르며 그분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고 그 명령을 지키며 그분에게 순종하고 충성하십시오.

    (새번역)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을 따르고 그분만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잘 지키며, 그분의 말씀을 잘 들으십시오. 그분만을 섬기고, 그분에게만 충성을 다하십시오.


    순종하며 - 따르며(follow)

    마태복음 16:24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첫째, 경외하며(revere)
    - 악에서 떠나라

    *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셨던 여호와 하나님

    잠언 3:7b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찌어다.
    Fear the LORD and shun evil.

    둘째, 명령을 지키며(keep)
    - 간직하라

    * 유대인의 전통 쉐마를 출입문에 기록하여 들어가며 나오며 보고 읽고 마음에 새기게 하라.

    잠언 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My son, keep my words and store up my commands within you.

    셋째, 청종하며(obey)

    - 하나님 만을 듣는 것

    시편 81:13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


    * 성전의 어린 사무엘에게 들린 음성

    넷째, 섬기며(serve)
    - 자기를 낮추는 것

    시편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찌어다.

    * 섬김의 자세는 기쁨이다.
    억지로 하는 것에도 복을 주셨다(구레네 사람 시몬)

    다섯째, 부종하고(hold)
    - 예수만 바라보라

    히브리서 12:2a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 삭개오의 부종

    * 부종하고(신명기 13:4, 11:22, 30:20, 열왕기상 9:22, 역대하 7:22)
    부종이란 단어가 개역 한글 성경에서 5회 사용되었다.
    부종(附從) - 붙을 부() , 쫓을 종()셋째, 순종(順從)의 하나님


    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에게 순종

    이삭의 하나님 -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

    야곱의 하나님 -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


    첫째, 아브라함의 하나님 - 하나님에게 순종

    창세기 12: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은 175세를 향수하고 죽었습니다.
    고향을 75세에 떠나 100년을 더 살았습니다.
    75년 동안 태어나서 자라났던 고향을 떠나는 것은 결코 쉽게 결정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고향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삭의 하나님 -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순종
    The God of Isaac/ God who gives blessing of Obedience

    창세기 22:9∼10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아브람이 고향을 떠날 때의 나이는 75세 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을 낳은 때는 99세이었고 이삭을 번제물로 바칠 때는 대략 세 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람의 나이는 세라고 한다면 이삭은 기력이 왕성한 나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묶고 번제물로 바치려 할 때 아들 이삭이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아버지에게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3일 길을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브엘세바에서 헤브론, 헤브론에서 베들레헴 그리고 베들레헴에서 모리아산(오늘날의 예루살렘)으로 3일 길을 옮겨갔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 22:3∼4).

    일반적인 그 시대의 여행 방식에 따라, 아브라함이 길을 가는 속도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른 아침 먼동이 틀 무렵(3절에 나타난 시간은 그렇다)에 길을 나서서 해가 지기 전에 머물 장소를 찾고 밤을 지새우고, 다시 그 다음날 이른 아침 길을 나섰을 것이다.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4절이다.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서 바라본지라.” 베들레헴에서 하루 밤을 지낸 아브라함 일행은 셋째 날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선다. 베들레헴 지역에서 예루살렘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 지역 까지는 10킬로 안팎이다. 2∼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여기서 성경 내러티브의 흐름을 따라, 그리고 그 때 그 자리의 시간과 공간을 반영하여 상상해 본다. 아브라함 일행이 모리아 산에 도착한 시간대는 언제였을까? 이른 아침(물론 성경 본문에 글로 적혀 있지 않다)에 길을 나섰던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정확한 시간대는 몰라도, 오전이었음은 분명하다. 모리아 땅의 그 산기슭에 도착하여 땔감을 메고, 불과 칼을 들고 이삭과 아브라함이 이동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언덕까지 오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창세기 22: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 유대인들은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아케다(aqedah)" 라고 합니다.

    * 함께(에하드, echad) - 한 마음으로, 한 사람처럼
    이삭은 제물을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의지한 것처럼 동일한 믿음으로 아버지를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삭은?

    이제 이삭이 제물로 바쳐지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바쳐질 제물로서 이삭의 처지를 떠올려보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이삭이 순종한 것을 두고 많은 독자들은 부전자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아들이 더 나았다고 평가한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고 했을 때, 이삭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물론 성경은 이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사라가 90세 때에 이삭을 낳았고 127세에 죽었다. 어머니 사라가 죽었을 당시 이삭은 37살이었다. 혹자는 이삭이 번제물로 드려질 뻔했을 때의 나이를 37세 직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맥락으로 볼 때는 무리한 계산으로 보인다.

    모리아 산(정확하게 표현하면, 모리아 땅에 있는 하나님이 일러준 한 산)으로 향하던 당시 이삭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이삭은 아버지와 함께 사흘 길을 갔다. 물론 나귀를 타고 가기도 했을 것이고 걸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나귀를 이용하였고 수행원도 동행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왕복 엿새 길을 여행을 할 만큼 자란 나이였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등에 제물을 불사를 나무를 짊어지고 모리아 산을 올라가게 하였다. 묘하게도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은 나귀도 사용하지 않고 이삭과 더불어 맨몸으로 제사 장비를 챙겨가지고 산에 오른다.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하면 이삭의 나이는 사춘기가 지난 무렵으로 보인다. 장거리 여행길을 어린아이를 동행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았던 것과 이삭의 출생 후 이스마엘이 쫓겨나고 브엘세바로 이주하고 재정착하는 시간들들 염두에 둘 때 그런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에 여자 아이들의 경우는 사춘기 나이부터 결혼이 가능했던 조혼 풍습이 엿보이지만 사내아이들의 결혼 허용 연령은 불분명하다. 어쨌든 이삭이 그 나이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사춘기의 사내라 하여도 110세가 훨씬 넘었을 노인의 물리력을 제압할 힘은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아브라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당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묶는다고 해서 그저 묶일 나이도 아니었고, 칼을 들어 내리친다고 그냥 당할 그런 나이는 아니었다.

    2. 이삭을 마주하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다. 이삭이다.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읽을 때면, 그의 순종과 헌신, 자식을 포기하는 희생을 칭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삭은, 이삭은 또 어떤 존재인가? 이삭의 의견, 의중, 감정, 생각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이삭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 번제 시도 사건을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동행하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창 22:6).

    위의 구절에서 “동행하다” 또는 “함께 나아가다”는 표현을 두 번씩 반복하여 사용되고 있다. 많은 경우 아브라함과 이삭이 한마음을 갖고 이 일을 행하였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풀이한다. 사실이 그랬다. 이삭은 어떤 이유에서든 아브라함의 행동에 복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행’이 연합된 마음으로 함께 걷는 걸음이었다고만 볼 필요는 없다. 동행은 외형적인 형태이지만, 동행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성경이 침묵 가운데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동행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동행이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이삭은 장차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알았다고 하여도 운명으로 체념하였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전통, 관습, 운명 또는 숙명의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폭력이 있다. 게다가 그 폭력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기도 한다.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만행이 그것이다. 여성성기절제술이 그렇게 버젓이 자행된다. 그 가운데서 고통 하는 어린 소녀들과 여성들을 떠올린다. 이 악행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하여 고통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저항할 힘을 갖지 못한 이들의 체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세기 22:7)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어떤 대화들이 오고갔을까? 아브라함은 그와 동행하는 종들에게는 어떤 말을 했을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한 것 말고, 주고받을  대화가 있었을까? 사실 종과 왕 같은 주인 사이에 오고갈 대화가 무엇이 있었을까? 아브라함의 기분과 생각은 어떠하였을까? 동행으로 표현된 그 단어 안에 가득히 흐르는 무거운 침묵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최소한 즐거운 여행, 축제의 분위기는 아니지 않았던가?


    3. 트라우마 신앙인 조장을 멈추는 성경읽기


    잠시 뒤 이삭은 손발이 묶인 채로 돌 단 위에 놓여진다. 이삭의 얼굴은 어떻게 자리 잡혔을까? 엎어져 있었을까? 눕혀져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눕혀 있었을 것이다. 눕혀져 있던 이삭의 얼굴에 해 빛이 강하게 내리쬔다. 해는 점점 중천에 떠올랐고, 그 강하고 눈부신 햇살을 이삭을 위협적으로 내리쬐고 있었다. 이삭은 혼란스러웠다. 공허했다.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삭이 눈을 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눈부심은, 죽음을 앞둔 이삭에게는 그 밝은 빛도 깊은 흑암, 어두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이삭은 죽어갔다. 아니 그는 이미 죽었다. 그리고 그가 죽음으로 그의 아비 아브라함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어디에? 이삭의 하나님은 아니었던 것일까?


    이삭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고, 다시 눈을 떴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하나님도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이 이야기를 읽는다.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 길, 아브라함과 이삭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갔을까? 전형적인 가부장제 질서 속에서, 어리거나 젊은 자식과 가부장(아버지) 사이에 오고갈 대화가 아기자기할 것은 아니었을 듯하다. 그 시대는 그랬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조차 저항하지 않는 것을 순종이라 말하던 시대였다. 부당한 악행조차 “관행이다” “운명이다” “신의 뜻이다” 고백하던 시대였다.


    아름다운 순종의 이야기로 무덤덤하게 회자되는 이 이야기 안에 담긴 무거운 침묵, 그리고 하나님의 아픈 사랑을 떠올려본다. 마침내 자식까지 번제로 바치는 우상숭배, 전통, 관습, 운명의 신이 아닌 것을 아브라함이 깨우치기를 기다리신 하나님을 바라본다. 맹목적인 종교의 신이 아닌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챈 아브라함으로 인해 눈물 흘리셨을 하나님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이삭을 바라본다.


    이 사건 이후, 성경 창세기는 이삭을 어떤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이삭은 자기 자신, 아내 리브가, 두 아들 에서와 야곱 그리고 그의 며느리들, 아버지 아브라함, 하나님, 그랄 왕 아비멜렉 같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갔을까? 아브라함의 나이도 들어가고 이삭의 나이도 늘어갔다. 그의 아내도 아브라함이 맺어주었다. 성경 내러티브에서 이삭의 의견이나 의중,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다만 24장 67절에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담백하게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시도) 사건을 읽으면서 가르치면서, 자기 목에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칼이 들어오던 순간이 그에게 트라우마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를 않는다. 죽음에서 살아난 이의 공포로 전혀 생각하지를 않는다, 때때로 우리의 성경공부가 참 차가운 성경읽기, 무서운 성경 이해라는 생각을 한다.


    쓰나미로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건강과 삶의 빼앗겼을 때, 믿지 않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였다고 쉽게 선언하는 그런 담대함은 고통스럽다. 누군가를 희생해서 내가 의로워지는 그런 종교가 아니라, 예수의 삶을 따르는 신앙을 다시 생각한다. 당사자의 자리에 서지 않는 묵상은 유체이탈 고백(만)이 가득하게 만든다. 스스로 절망하는 것을 내려놓음, 헌신이라 말하게 하지 말라. 이삭이 갖게 된 고통스런 기억을 아파하는 하나님 생각도 하고 싶다.

    아브라함 125∼136세, 이삭 25∼36세

    아브라함은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함으로 언약의 최종 확증을 받았습니다(창 22:1∼18). 이 모리아 산은 훗날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곳이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장소입니다(대하 3:1, 대상 21:18∼28).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은 이삭의 나이 37세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소개된 사건 이후에 사라가 127세를 향수하고 죽는데, 이때 이삭의 나이가 37세입니다(창 23:1). 창세기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린 때는 사라의 죽음 이전이었고, 이때 이삭의 나이는 37세 전이었으므로 약 25∼36세 정도에 행하여진 사건으로 추정됩니다.

    이미 장성하여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산에 오를 정도로 힘이 왕성한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아버지의 신앙에 대한 신뢰와 자신이 섬기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에 이삭과 아브라함이 동행했다는 말씀이 두 번이나 언급된 것은 이 일에 두 사람의 믿음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창 22:6, 8).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모리아의 한 산으로 올라가 제물이 되기까지 순종하는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 마침내 인류의 대속 제물로 순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합니다(마 20:28, 요 1:29).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의 한 산에서 드린 후에 아브라함이 언약을 확증 받았듯이(창 22:16∼18, 히 11:17∼19),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요 1:18, 3:16, 롬 5:8).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2:12에서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이레의 축복’(창 22:14), ‘큰 복의 축복’(창 22:17), ‘네 씨가 크게 성하여 그 대적의 문을 얻는 축복’(창 22:17),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는 축복’(창  22:18)을 주셨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도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창 22:2)와 같은 시험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큰 믿음으로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드려 헌신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시험들은 놀라운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 파스칼은 젊어서부터 질병이 있었다.  몸이 약했다. 그걸로 일찍 죽게 되었다.  죽기 얼마 전 마지막 그의 기도다. 2가지가 인상적이다.

     “이 질병의 고난 앞에서 믿지 않는 자처럼 행동하지 않게 해주소서.” 

     “이 고난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찬송할 뿐입니다.” 

     우린 다 모른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른다. 믿음은 반응이다. 

     “고난당하면 기도하라. 즐거운 일이 있으면 찬송하라.”(약 5:13)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 외아들을 하나님께 남김없이 번제로 태워드리려 했던 이삭의 순종을 배워야 한다. 번제로 바쳐졌던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에게 모든 복을 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렇다. 내가 할 것은 순종뿐이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뿐이다. 결박에 순종했던 이삭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번제보다 순종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역사가 이루어지며 모든 복이 임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순종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 - 어머니 리브가에게 순종

    창세기 27:13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오라.  

    순종(順從)

    민수기 32:11
    애급에서 나온 자들의 이십 세 이상으로는 한 사람도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을 정녕히 보지 못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온전히 순종치 아니하였음이니라.  

    사무엘상 15:22b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마태복음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마태복음의 말씀 한 구절만 생각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란 조상은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을 어느 나한 구절만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방법입니다.

    마태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말씀은 전후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또는 이렇게도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으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었어도 살아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말씀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일곱 번 결혼한 여자가 부활하면 도대체 누구의 부인이 되느냐고 질문한 내용에 대한 답변의 일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9∼3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께서 강조하셨던 것은 “부활”이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말씀의 시작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죽은 사람들이 현재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시고 그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의 순종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말라
    창세기 35:9∼15

    야곱은 변했습니다. 야곱의 삶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변화는 결단과 행동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변화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의심하거나 주저하거나 갈등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변화받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고민하는데 씁니다. 의심하고 갈등하는데 시간을 사용합니다. 결정하기까지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갈등하고 고민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 야곱은 그의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가 거기서 ‘단을 쌓고 나를 예배하라 이 말씀은 야곱에게 있어서는 복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듣자 야곱의 영안이 열렸고 수많은 갈등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5장 6-7절을 보면 야곱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게 됩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야곱은 즉시 순종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모아놓고 결정을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순종보다 더한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절정은 순종으로 표현 됩니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은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 라고 합니다. 믿음을 갖고 변화받은 사람은 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 불신이 싹트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교만이 자리잡고 있을 때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야곱은 가족을 이끌고 벧엘로 올라갑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은 벧엘을 가리켜 엘 벧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벧엘의 하나님 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놀라운 변화가 엿보이는 말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사실을 묵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백년을 살고도 완벽해지지 않습니다. 허물도 있고 실수도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떻습니까 이들도 마찬가지로 허물과 실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연연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특징은 과거와 단절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완벽하고 허물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에 허물이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미래를 향해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말씀에 의지해서 권면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지금까지 좌지우지 해왔던 과거와 단절하십시오. 과거는 과거가 되게 하십시오. 그 과거가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의 미래를 만드십니다.

    과거가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래를 만드신다!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바꾸지 못합니다. 우리가 애를 쓰고 노력해도 과거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도움을 구하면 미래는 바뀌게 됩니다.

    과거와 단절되는 것이 야곱의 복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과거와 공포와 불안에서 탈출합니다. 일어나라 이 말씀처럼 여러분이 현실에서 일어나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쫓기듯 조급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줍니다. 그렇게 야곱이 믿음을 갖게 되면서 그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놀랍기만 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야곱이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 리브가에게는 유모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드보라 입니다. 성경에는 이 구절에 대한 다른 설명이 없이 갑자기 돌출되듯이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유모 돌보는 성숙함으로의 변화리브가의 유모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 리브가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유모로서 야곱을 돌보았던 드보라는 달리 갈 곳이 없는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을 것입니다. 이 드보라의 말년을 야곱이 행복하게 거두어 주었던 것같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정성스럽게 장사지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드보라를 장사지낸 곳의 상수리나무의 이름을 알론바굿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은 굉장히 상심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드보라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야곱이 성숙해졌음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그래도 쉽지만 그 어머니의 유모를 돌보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숙이란 무엇입니까 하찮은 사람을 돌보는 것입니다. 가치 없는 사람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사람만 돌봅니다. 유명한 사람만 골라서 사귀는 사람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만나는 사람은 미숙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무시해도 되는 사람까지 사랑하고 죽음의 순간을 지켜주고 장사 지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이렇게 성숙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얼마나 이기적이고 손해 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을 돌보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에게까지 여러분의 사랑을 전하기를 바랍니다. 주위에 돌보지 않아도 되고 무시해도 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여러분이 부리는 아랫사람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쉽게 해고도 시키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들을 돌보는 마음이 성숙하고 믿음이 있는 마음입니다.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복이 그림의 떡이었다면 이 무렵부터는 복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은 야곱에게 한 사건을 회상 시키십니다. 그것은 몇 년 전에 야곱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야곱에게 약속하신 일이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입니다.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옥과도 같습니다. 이 두려움은 급기야 그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형 에서에게 뇌물을 보냅니다. 그렇게 하고도 불안합니다. 그래서 하인들과 가족들까지 보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가지 못합니다. 야곱이 에서를 얼마나 많이 두려워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가족을 모두 보낸 후에 그는 얍복강 강가에서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하나님은 찾아오십니다. 그런 순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절망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단절 의미하는 거듭남 그렇지만 당신이 눈을 들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그 절망 속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야곱은 바로 그때 천사를 만납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습니다. 새벽이 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해주고 가기 전까지는 놓아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묻고는 이름을 바꾸어 줍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때서야 야곱은 천사를 놓아줍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었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아내가 불러준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속이는 자”라는 의미가 담긴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야곱의 느낌은 어땠을까요? 야곱이라는 이름 가지고는 좌절과 인생의 어려움을 막을 수 없습니다. 새 이름을 주겠다고 천사는 말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거듭남 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말로 구원 이라고 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연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참된 구원은 과거와의 단절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수를 믿어도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과 단절하지 않고 그리고 그 상태에서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잘해보려고 하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미래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나쁜 포도주가 좋은 포도주가 된 것이 아니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참된 구원은 우리 신앙의 발전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우리가 거듭나고 예수 믿어도 변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옛사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나기 바랍니다. 이름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은 야곱에게 야곱이라는 이름을 쓰지 말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쓰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을 이겼다”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인정받은 야곱 하나님은 야곱의 존재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야곱의 믿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셨다고 믿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인정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남편한테 인정받지 못한 아내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한 남편은 불행합니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녀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다고 해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인정하고 배우자를 인정하고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치유가 일어날 것입니다. 창세기 35장 10절의 끝부분을 보면 야곱의 이름을 불러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자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겨서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 가지고 살면 팔자가 사납다고 작명소에 가서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어도 별로 나아지는 바가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바뀐 이름을 불러주셔야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시몬이 베드로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을 때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바꾸어주신 사실을 아십니까?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악마의 자녀였던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땅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상속을 받는 사람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름을 바꾸어주시고 그 이름을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에 네게서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이름을 바꾸어주신 하나님 새 이름을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자신을 세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첫째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입니다
    약속은 능력이 있는 자가 할 때 지켜질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주실 줄을 믿습니다. 전능하다는 뜻은 하나님에게 불가능이 없고 부족함이 없으며 그 능력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처음에는 있고 나중에는 사라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자 끝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도 영원토록 동일하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고 후회도 없으십니다. 전능한 하나님이 지키시는 약속

    둘째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축복의 원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은 풍성함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복을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복 받을 그릇이 못된다 할지라도 그를 변화시켜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1-2절을 보면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나오리라 내가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주리라.

    이 말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이삭이 이어 받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로 이어져야 하는데 야곱은 복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20년 동안 그를 고생시켜서라도 기어코 그를 복 받을 만한 그릇으로 바꾸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아닐지라도 여러분을 고쳐서라도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변덕이 많고 어리석고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하신 신실한 약속을 지키십니다. 결국 야곱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의 복은 계속됩니다. 그분은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시고 상처 나면 싸매 주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하나님은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마치고는 가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기서 하나님의 속성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 침묵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또 오시는 하나님 떠나시는 하나님 드러내시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기쁩니다. 그러나 그분이 떠나셨다고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는 괴롭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왜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는가? 라고 생각하면 괴롭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속성을 알면 이 문제가 풀립니다. 하나님은 오시고 또 가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나 떠나시는 것 말씀하시거나 침묵하시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동전의 앞과 뒤에 불과할 뿐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오셨을 때 믿음을 얻고 기쁨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떠나셨어도 그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이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날마다 동행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기 계시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병들고 죽어가는 것 같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야곱이 그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떠났을 때 야곱은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됩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고 복과 위로가 계속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붓고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라 나는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 벧엘 여러분의 가정에서 예배가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찬양이 멈추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는 계속되어질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이것이 벧엘입니다. 벧엘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찬양이 불처럼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약속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신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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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順從)과 순명(順命)

    순종은 창세기 22장의 중심 주제이다.
    학자들은 창세기 22장의 모리야 산 이야기를 일컬어 “아케다 사건”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한 것을 가리켜서 편의상 붙인 명칭이다.
    결박하다”란 히브리어 동사는 “아카드”이며 그 명사형은 여성명사로서 “아케다”이다.
    “아케다 사건”을 “결박 사건”이라고 옮겨도 좋을 것이다.

    * 아케다 사건
    아케다는 히브리어로 '묶기'라는 뜻이다(여성 명사형).
    아카드는 히브리어로 '묶다'는 뜻이다(동사)
    아브라함이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 제단 위에 묶어 올려놓은 사건을 총체적으로 지칭한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겨우 얻은 외아들 이삭을 밧줄로 결박하였다(아카드).
    늦게 낳아서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던 아들을 결박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그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 있는 한 산으로 가서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내렸던 것이다.

    * 모리아 산의 사건이 있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 : 116세
    사라의 나이 : 107세
    이삭의 나이 : 16세

    -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이때 아브라함은 136세였고 이삭은 36세였다.
    사라가 91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았음을 기억하자.
    아케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삭이 16세, 아브라함이 116세, 사라가 107세였다.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라가 죽었다.
    이 2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마침내 부부 사이는 별거하기까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다.

    이 명령의 목적은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데 있었다(창 22:1).
    시험은 연단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서 무엇을 시험해 보시려고 했나?
    이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은 어떻게 연단을 받았는가?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지 여부를 하나님은 점검하신다.
    아브라함은 너무나 불합리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지만 이에 순종하여 이삭에게 나무 짐을 지워 산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이 일러 주신 그 장소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외아들 이삭을 결박한다.
    막상 아들을 희생 제물로 잡으려는 찰나에 야훼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아브라함의 행동을 제지한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한 제물을 친히 준비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 대신에 수풀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을 잡아서 번제물로 바쳤다.
    하나님의 시험 결과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중히 여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무난히 통과한 것이다.

    아케다 사건은 이삭의 나이 16세 즈음에 발생하였다.
    그렇다면 그해는 아브라함 116세, 사라는 107세 되던 해였다.
    사라는 향년 127세로 헤브론의 기럇 아르바에서 사망하였기에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째 되던 해에 죽은 셈이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다.
    이 무렵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살고 아내 사라는 헤브론에 살고 있었다(창 22:19, 23:2).
    두 사람이 부부이지만 서로 별거하고 있던 중에 사라가 죽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창세기 23장 2절에 나오는 사라의 죽음 보도를 보면 '아브라함이 들어가서'라는 이상한 표현이 나온다.
    우리말 역본을 읽어 보면 남편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빈소에 들어가서 애곡하는 장면처럼 읽힌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서를 읽으면 그 느낌이 확 다르게 다가온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창23:2a, "와야보 아브라함 리스포드 러사라 월리브코타흐"

    '와야보 아브라함'을 직역하면 '아브라함이 왔다'가 된다.
    그리고 '리스포드'를 직역하면 '문상하러'가 된다.
    그리고 '월리브코타흐'의 동사 '바카'는 '울다'는 뜻인데 거기에 '그녀를'이란 접미어가 붙어 있다.
    아브라함은 사라로 인해 통곡했다는 말이다.
    위의 구절을 잘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가 죽었다는 부고를 접하고 아내의 빈소를 찾아 와서 문상하는데 사라의 시신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는 말이 된다.

    종래의 주석가들은 '와야보 아브라함'이란 구절이 아브라함이 먼 데서 빈소로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아내 사라와 함께 살던 중 사라가 죽으니 그녀의 빈소를 차리고 그 시신 앞으로 가서 애곡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왔다'란 뜻의 동사 '야보'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가 별거하고 있는 상황이 뚜렷하게 감지되므로 이러한 종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살다가 아내 사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를 문상하러 헤브론의 기럇아르바로 왔다.
    이 점을 창세기의 저자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아브라함 부부는 별거하게 되었을까?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러 갈 때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다.
    사라가 천신만고 끝에 노년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포기할리는 만무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속이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갔다.
    사라는 이삭이 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번제를 드리는 법을 배우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아케다 사건 이후에 사라는 진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삭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려고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사라는 자기를 속인 남편 아브라함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들을 죽이려 한 남편에게서 아들 이삭을 떼어 놓아야 했다.
    그래서 아내 사라는 이삭을 데리고 헤브론으로 이사하였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서 혼자 살았다.

    사라가 127세에 죽었으니 이때 아브라함은 136세였고 이삭은 36세였다.
    사라가 91세 되던 해에 이삭을 낳았음을 기억하자.
    아케다 사건이 발생한 때는 이삭이 16세, 아브라함이 116세, 사라가 107세였다.
    아케다 사건 이후 20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 사라가 죽었다.
    이 20년 동안에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많은 갈등이 있었고 마침내 부부 사이는 별거하기까지 파경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사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감당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사별한 후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브엘세바에 버려두고 브엘라해로이로 떠나간다.
    아버지와 별거한 것이다.
    자기를 찔러 죽이려 했던 아버지가 못내 무서웠을 것이다.
    이삭은 40세에 혼인하였다(창 25:20).
    아케다 사건 이후 24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140세였을 것이다.
    아내를 사별한 아브라함이 아들의 배필을 구하려고 늙은 종을 메소보다미아 고향 땅으로 보냈다. 그
    런데 늙은 종은 하란에서 리브가를 데리고 돌아오는 도중에 마중 나온 이삭에게 리브가를 넘겨준다.
    이상한 것은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마중을 나왔다는 점이다(창 24:62).
    늙은 종은 브엘세바에 사는 아브라함에게 며느리를 보여 주지도 못했다.
    브엘세바로 돌아가기도 전에 네게브 지역의 브엘라해로이에서 마중 나온 이삭에게 리브가를 아내로 넘겨준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브엘라해로이에서 20년을 자식 없이 살다가(창 25:21),
    이삭이 60세가 되던 해에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창 25:26).
    이때는 아브라함이 160세 되던 해이다.
    아브라함이 175세에 죽었으니까 브엘라해로이에서 에서와 야곱이 태어날 때에는 아브라함이 살아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창세기 25장 11절의 아브라함 사망기가 에서와 야곱의 출생기보다 먼저 보도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140세에 아들을 결혼시켰고 20년 후인 160세에 손자를 보았으며 향년 175세로 죽었다.
    아브라함은 116세 이후로 175세가 되기까지 물경 59년 동안이나 아들 이삭과 떨어져 살았다는 말이 된다.
    이삭은 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브엘세바에 그냥 버려두었다.
    아브라함이 노인이 다 되었을 때에도 별거 상태는 지속되었다.
    이삭은 왜 이처럼 불효막심한 짓을 했을까?

    이삭도 아버지처럼(창 20장) 그랄 도성에 들어가 살았다.
    이때 이삭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 했다.
    창세기 26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은 흉년을 만나서 브엘라해로이를 떠나 그랄 도성으로 들어간 것이다.
    여기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아직 에서와 야곱이 출생하기 이전의 시점으로 보인다.
    자식을 둘이나 거느린 남녀가 어찌 오누이 사이라고 속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에서와 야곱의 출생기는 그랄 도성 이야기의 바로 앞에 보도되기 때문에 이러한 추측은 근거를 잃는다(창 25:26).
    아무튼 이삭은 아버지 사후 브엘세바를 떠나 그랄 도성으로 들어갔다가 마침내 아버지가 살던 브엘세바로 돌아간다.

    아내를 여읜 아브라함은 “그두라”를 후처로 맞이한다.
    그두라에게서 무려 여섯 명의 아들을 더 본다.
    그들은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로서 나중에 이스라엘의 철전지 원수가 되는 미디안 족속의 조상이 이 아들 중에 들어 있다.
    그리고 또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불구대천의 원수인 앗수르 족속이 욕산의 아들 드단에게서 나왔다.
    여섯 아들이 장성하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큰 재산을 상속해 주고 서자들에게도 상속분을 주어 모두 동방으로 이주시켰다.
    그 후 아브라함은 죽었다.
    그가 죽었을 때 이삭은 이스마엘과 함께 아버지를 어머니가 묻힌 막벨라굴에 합장하여 장사하였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도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에게서 이삭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머니 사라가 그러한 아버지를 떠나 이삭을 데리고 별거에 들어갔을 때 이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진 시험을 이겨내고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인정을 받은 아버지 아브라함이지만, 정작 그 가족 성원들의 마음에는 어떤 상처를 남겼을까?
    게다가 어머니를 여의고 아내 리브가에게서 위로를 찾던 이삭(창 24:67)에게 아버지의 재혼은 어떤 충격을 주었을까?
    게다가 새 어머니가 아들을 여섯 명이나 줄줄이 낳았을 때 그 과정에서 이삭의 마음에는 어떤 변화가 일고 있었을까?
    아브라함은 이 여섯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이삭에게 마음이 쓰였어도 어쩔 수 없이 생활에 매여 아들 이삭을 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로 바쁘게 사는 사이에 부자지정은 점점 희미해졌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험을 이긴 아브라함에게서 어떠한 행복한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진 시험을 이겨낸 결과는 가족해체의 아픔뿐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사라는 아케다 사건을 듣고 충격을 받아 일찍 죽은 듯하다.

    사랑했던 남편은 애급에서 자기를 누이라고 속였고(창 12장) 그랄에서도 자기를 누이라고 속이더니(창 20장) 마침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또 속였던 것이다.
    사라의 가슴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기를 또 속이고 금지옥엽 키워 청소년이 다 된 이삭을 몰래 납치하여 죽이려고 했다니!
    사라는 남편과 별거하며 살다가 임종을 맞았다.
    그녀는 임종을 두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결과는 끔찍하다.
    온전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해체의 아픔을 겪은 것이다.
    이삭의 출생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은 눈물을 머금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추방해야 했다.
    아내 사라의 외아들 사랑이 너무나 끔찍하였다.
    오직 자기 아들밖에 모른 인간으로 사라는 변모해 갔다.
    사라에게는 야훼 하나님보다도 아들이 우선이었다.
    자기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이삭을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남편도 모든 주변 사람들도 다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어머니 사라!
    이 여인으로 인해서 아브라함의 가족에는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애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그 아들 이삭으로 하여금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끼치는 복덩이가 되게 하려고 계획하셨다(창 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그런데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한 집안에 용납할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기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육적인 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가족 이기주의를 해체하기로 작정하시고 아케다의 시험 사건을 일으키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더욱 넓은 보편의 바다로 끌고 가시는 역사를 하나님은 기획하셨다.
    사라를 일찍 데려 가신데다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에게서 많은 이방 민족이 생겨나게 하시고 급기야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 사이에도 더욱 덤덤한 보편적 인간관계로 발전시키셨다.
    이로써 나중에 이스마엘도 장례식에 참여하러 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족주의에서 생긴 셈 민족주의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유대 민족주의는 아케다 사건으로 인하여 여지없이 무너진다.
    만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 앞에서 개인주의와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마침내 하나님 자신이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게 내어 주셨다.

    지금까지 아케다 사건을 문맥 속에서 되짚어 보았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들과 기독교 법인 단체들과 기독교 사회 운동가들이 좌나 우를 막론하고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설교가들이 복을 약속하면서 가족주의를 부추기지나 않았는지?
    사회운동에 나선 목회자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자기 입장에 맞추어 성경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만민에게 두루 복을 끼치는 교회의 보편주의적 본질을 오늘의 교회나 교역자들이 얼마나 잘 보전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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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 문학 구조로 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hav_yeshua&logNo=50087293541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공통점

    1. 믿음의 사람(히브리서 11:8-10)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

    -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장'에 그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결박에 순종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속임수에 순종

    3. 실천의 사람


    4. 제사의 사람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
    창세기 27:1∼40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빌어줄 테니 별미를 만들어오라는 장면과 리브가가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라고 지시하는 장면만큼 자식을 둘러싼 부부 사이의 편애를 극단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도 없을 것이다.

    이삭은 에서를 자기 아들로 간주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자기 아들로 간주한다.
    히브리어로 된 성경 원문을 보면 에서는 “그의 아들”(5) 곧 이삭의 아들로 불리고, 야곱은 “그녀의 아들”(6) 곧 리브가의 아들로 불린다. 각각의 아들을 부를 때 이삭도 리브가도 자신의 아들에게만 내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여 선별적으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축복의 대상이 “에서” 한 사람뿐이었다는 점이다.
    성경의 많은 예문이 보여주듯 죽음을 앞에 둔 아버지는 장남을 포함한 아들들을 모두 불러 마지막 유언과 함께 축복을 준 다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이삭은 이러한 규범을 무시하고 장남에게만 축복을 주려 한 것이다.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을 베풀어 줄 테니 사냥을 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라고 명할 때 리브가는 이삭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우리말 번역에 ‘들었다’로 되어 있는 ‘엿듣다’라는 히브리어는 그 시제가 분사 형태로 되어 있다.
    그것은 일회적인 동작이 아니라 계속적 행위를 나타내는 시제이다.
    리브가는 항상 이삭과 에서가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는 말이다.

    리브가는 눈먼 남편을 속여서 에서 대신 야곱이 축복을 받아낼 수 있도록 계략을 꾸민다.
    리브가는 야곱이 에서가 되어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도록 세 가지 방안을 실천한다(8∼17).

    첫째는 에서가 사냥감을 잡아와 요리한 것처럼 염소 고기를 요리한다.

    둘째는 눈먼 사람은 냄새에 예민하기에 야곱에게서 에서 냄새가 나도록 에서의 옷을 야곱에게 입힌다.

    셋째는 야곱의 매끄러운 살결을 가리기 위해 새끼 염소의 가죽을 야곱의 손과 목에 감아 준다.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할 수 있다.
    장남이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 자신이 편애하는 작은 아들이 받도록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리브가의 행위는 몇 가지 합당한 이유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리브가가 꾸민 책략은 야곱에 대한 편애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임신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마음에 품고 20년을 살아왔다.
    그녀가 받은 계시는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이삭이 이 신탁을 몰랐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리브가에게만 주어졌고, 성경 어디에도 리브가가 이 계시를 남편 이삭에게 전했다는 말이 없다.

    그런데 남편 이삭이 야곱이 아닌 에서를 축복하고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임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리브가는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신탁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속임수, 즉 '거룩한 속임수'를 쓰려는 것이다.

    이렇게 리브가의 행위를 해석한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남편을 지배하고 조종한 여자.
    남편을 속인 여자로 낙인찍기보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행동한 여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눈먼 남편을 속이고 야곱에게 속임수를 쓰도록 지시한 리브가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변명할 길이 없다.
    또 세상 속에서 당신의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보다 자기 손으로 그 계획을 성취시키려 한 허물도 변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리브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행동한 여성, 신탁의 주인공인 야곱을 위해 저주받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13) 믿음의 여성이다.
    아브라함이 시련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리브가 또한 시련을 통해 믿음의 여인이 되었다.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순종하였다면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신탁에 순종한 것이다.
    그래서 리브가는 훗날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세워진다. 야곱이 나중에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어머니로서 두 아들의 품성과 자질을 잘 알고 있다는 점도 그러한 책략을 꾸밀 수 있었던 이유이다.

    셋째, 에서가 동족 여인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것도 리브가의 행위를 정당화해 줄 수 있다.

    창세기 기자는 본문 배치를 통해서 그 정당화를 시도한다.
    기자는 에서가 두 명의 이방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기록한 다음 즉시 야곱이 에서 대신 축복을 받아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에 부족한 존재임을 알리면서 동시에 속임수를 써서 축복이 야곱에게 돌아가도록 한 리브가의 행위를 옹호하기 위한 의도적인 배치다.

    게다가 에서는 부모에게 반항적이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취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라 하였고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좇아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 아비 이삭을 기쁘게 못 하는지라.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취하였더라" (창 28:6-9).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을 보고 이미 장가를 들었으면서 또 장가를 들었다.
    큰아버지의 자식이니 동족이 아니냐는 시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이미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한 인물이었다.

    말라기에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 1:2-3).

    하나님께서 미워하신 것은 에서가 아니라 에서의 그릇된 행위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속물적인 태도, 반항적 태도를 미워하신 것이다.
    에서가 부모를 거스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장자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이방인 여자와 결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넷째, 장자 상속권이 실제로 준수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도, 유다의 쌍둥이 아들 세라도,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도,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도 모두 장자가 아니었다.
    다윗도 솔로몬도 장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리브가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다.
    에서가 분노하여 야곱을 죽일 계획을 세우자 리브가는 멀리 친정 오빠가 있는 하란으로 야곱을 보낸다.
    야곱이 떠난 뒤 리브가의 말년은 비참하고 공허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신뢰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에서에게 구박도 받았을 것이다.
    이방 며느리들의 냉대도 받았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보지 못해 힘들었을 것이다.

    성경은 리브가의 말년이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는가를 상징적인 방법으로 보여 준다.
    리브가의 이름이 28장 5절과 35장 9절에 등장하는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에 대한 기사이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성경은 리브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유모의 죽음은 언급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언급하지 않는다.
    다른 족장들과 족장의 아내들의 죽음은 모두 다 기록하면서 리브가의 죽음은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왜 성경은 리브가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부부 사이에 한쪽이 죽으면 남아 있는 사람은 먼저 간 배우자를 애도한다.
    사라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이 그랬고, 라헬이 죽었을 때 야곱이 그랬다.
    하지만 리브가가 죽었을 때 이삭은 애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은 리브가의 죽음을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치른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이 사실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리브가는 기구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리브가의 이야기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은 그 삶 속에 스며든 하나님의 손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는 일이 이루어진다.
    약점, 조급함, 어리석음 등 수없이 많은 인간의 제약 속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셔서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이기적인 편애라는 잘못된 선택 속에는 리브가의 올곧은 헌신이 담겨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려는 의지와 노력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셔서 계획하신 대로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남편 하나 믿고 고향을 떠났던 리브가는 하나님의 신탁을 붙들고 야곱을 선택했고, 야곱과 다시 만나지 못하고 잊힌 여인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나라 역사에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영원히 기록되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하고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해주지만, 사실 믿음의 가문의 초기에 살았던 리브가에게는 배울 만한 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믿음의 길을 달려갔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희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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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서와 야곱은 형제인데 왜 야곱만 복을 받았는지요.

    : 이삭이 낳은 큰아들은 에서, 둘째는 야곱입니다.
    그들은 태 속에서부터 서로 싸우는 사이였고 태중에 두 국민이 있다고 했습니다.(창 25:22~23)

    두 형제는 장성한 후 장자의 명분 때문에 싸워야 했고 야곱은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사람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창 28:1)는 이삭의 당부를 따랐고 에서는 따르지 않았습니다.(창 28:8~9)

    훗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왔고(창 33:18) 에서는 가족과 소유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창 36:6)
    둘의 거주지와 길이 달라진 것입니다.
    주경가들은 에서가 야곱을 떠났다는 것은 신앙의 거점을 떠났다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6장은 에서(에돔)의 계보를 기술하고 있는데, 단 한 사람도 명사나 위인이 없습니다.
    예언자 오바댜는 “야곱 족속은 불이요 에서 족속은 지푸라기 그래서 남은 자가 없으리라”고 했습니다.(옵 1:18)

    야곱은 허물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숱한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떠났습니다.
    에돔이라는 무신론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원수가 돼 공격도 되풀이했습니다.

    오바댜서의 예언 중심은 에돔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나간 사건이 아닙니다.
    진행형이고 미래 완료형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회개한 사람들은 구원과 회복의 은총을 받았지만, 에서처럼 떠난 사람들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 위해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생육 번성하고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는 복을 받았습니다.(창 35:11)
    복 받을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원로)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50774&code=23111619&sid1=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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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0(08-19-20)

     
    창조주 하나님(창세기 1:1)

    "창조주 하나님"을 히브리어로 "엘로힘(Elohim)"이라고 합니다.
    엘로힘(Elohim)이란 "창조주우주의 심판자"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엘로힘의 하나님을 "크고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엘로힘의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엘로힘"이란 단어가 복수명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엘로힘)”만 언급되며,

    창세기 2:4에서 비로소 “(LORD)” 가 언급된다.
    여호와 하나님천지창조하신 때에 천지창조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영어로 the Lord God 이라고 번역하였다.

    (LOR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웨이며,
    자비를 베푸는자긍휼을 베푸는자용서하는 자구속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분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읽어야 합니다.
    한글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습니다.
    * 히브리어에는 원래 모음이 없었습니다.
    자음만 표기되었지만 전통에 따라 모음이 있는 것처럼 아주 정확하게 읽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בראשית)  바라(ברא)         엘로힘(אלהים)  에트(את),  하샤마임(השמים), 베에트(ואת),  하아레츠(הארץ)  
    처음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                      과                   땅을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
    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
    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습니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쉬트(בראשית)  바라(ברא)         엘로힘(אלהים)  에트(את),  하샤마임(השמים), 베에트(ואת),  하아레츠(הארץ)  
    처음에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이                           하늘                      과                   땅을

    히브리어로 창세기 1장 1절은 일곱 단어입니다.

    처음” 이라는 히브리어는 "레쉬트(ראשית)" 이다.
    레쉬트의 관주구절을 살펴보자.
     
    이사야 46:10,
    (개역 한글 성경) 처음
    내가 종말을 처음(레쉬트)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처음(레쉬트)부터 결말을 밝히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들을 옛적부터 밝히 알리고 이르기를,
    나의 계획이 설 터이니 내가 나의 기뻐하는 일을 모두 이루리라 하였노라.
     
    레위기 23:10 
    (개역 한글 성경) 첫 열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레쉬트)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 그 땅의 수확물을 거둘 때에 너희 수확물의 첫 열매(레쉬트)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고린도전서 15:20 
    (개역 한글 성경) 첫 열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레쉬트)가 되셨도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레쉬트)가 되셨도다 ·         

    골로새서 1:18 
    (개역한글 성경) 레쉬트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레쉬트)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예수님께서는 몸 곧 교회의 머리(레쉬트)시니라.
    그분께서 시작이시요 죽은 자들로부터 처음 난 자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에서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레쉬트(처음)첫열매이시고 교회의 머리되시는 바로 예수님이시다.


    처음에”에서 ”~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트(ב) 이며,
    그 의미는 “~안에”, “~통하여”, “~때문에”, “~위하여” 등이다.
    따라서, 창세기 1:1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될 수 있다.

    창세기 1:1,  예수님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하나님(Go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엘로힘 이며,
    창조주우주의 심판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만 언급되며,

    창세기 2:4에서 비로소 “(LORD)” 가 언급된다.
    (LORD)” 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웨이며,
    자비를 베푸는자긍휼을 베푸는자용서하는 자구속자 등의 의미가 강조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시고, 그 분의 긍휼이 필요함을 아셨다

    "에트"는 히브리 알파벳의 첫 문자 알렢(א‎)과 마지막 문자 타브(ת‎)
    에트(את)는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이 에트는 동사전치사의 의 목적어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데,
    영어에는 이러한 용법이 없기 때문에 번역이 되지 않았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A)와 오메가(Ω )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헬라어로 알파(A)와 오메가(Ω )는 히브리어로 알레프(ת, Tav)타브(ת, Tav) 이다.
    바로 이 번역되지 않은 에트(תא)가 알레프( א, Alef)와 타브(ת, Tav)이신 예수님인 것이다.
    예수님은 창세기 1:1절의 히브리어 일곱글자 가운데 정 중앙에 위치하신다.
     
    “~과(and)” 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베에트(ואת)이다.
    이 단어의 맨 앞(우측)글자인 바브(ו, Vav )는 못(nail)이라는 뜻을 가진 상형문자이며,
    字價 가 6인데, 창 1:1절에서  여섯번째 단어에 사용되고 있다.
    그 다음에 다시 알레프( א, Alef)와 타브(ת, Tav)라는 문자는 역시 예수님을 나타낸다.
    즉, 예수님께서 天地를 붙들고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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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1(08-26-20)

    하나님의 침묵(Silence of God)

    (도입 이야기 #.1)
    어느 마을 뒷산에 신비한 굴이 있었다.
    그 굴에 들어가면 말을 하지 않아야 살아나올 수 있는 굴이었다.
    그 마을의 바보 삼형제가 우리가 그 굴에 갔다오겠다고 다짐을 한 후 굴에 들어섰다.
    첫째가 "너희들 여기서는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첫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둘째가 "거봐 말하면 죽는다고 했지!"
    그리고 둘째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번에는 셋째가 "나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을 것야!"
    이렇게 말을 하고 셋째도 죽고 말았다.

    인간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교훈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1)
    일본의 작가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를 소재로 만든 소설입니다.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므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십자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잠겨서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며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침묵(沈默)”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에 관한 특별한 명칭이 소개됩니다.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여호와(창세기 22:14)
    “여호와 닛시” -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출애굽기 17:15)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여호와(출애굽기 15:26)
    “여호와 살롬” -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사사기 6:24)
    “여호와 삼마” -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에스겔 48:35)

    오늘 소개하려는 “하나님의 침묵”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워싱톤 주 스포케이에 위치한 “휘트워스(Witworth)” 대학의 종교 철학 교수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의 이야기입니다.

    * 제럴드 L. 싯처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시카고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
    워싱턴주 스포케이에 있는 휘트워스(Whitworth) 대학의 종교 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휘트워스의 졸업생들은 7회에 걸쳐 그를 가장 영향력있는 교수로 선정했다.
    그 전에는 아이오와 주 오렌지 시티에서 대학 교목으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목사로 사역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뜻」,「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 「사랑의 짐」 (이상 성서유니온선교회),
    「하나님 앞에서 울다」(좋은씨앗) 등이 있다.
    「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로는 ECPA(복음주의기독교출판연합회)의 Gold Medallion을 수상했다.

    어느 날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이 승용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던 중에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부딪쳐 딸과 아내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가족들의 안전을 기도한 것은 개인의 욕심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의 실수에 의해서 사고를 당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믿음의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눈가?

    이런 의문에 대한 신앙적인 방법을 위한 성경적 대답을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태복음 6:33).

    가족들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한 것에 어떤 인간적인 욕심이나 잘못이 없었던 기도를 했는데도 가족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트럭에 부딪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딜레마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침묵"이란 신학적 주제로 답을 찾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침묵이란 세 가지 주제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왜 하나님은 기도에 침묵하시는가?
    둘째는 왜 하나님은 고통에 침묵하시는가?
    셋째는 왜 하나님은 정의에 침묵하시는가?

    이런 신앙적인 갈등에서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침묵” 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지난 8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국민들의 정부의 정책과 방향에 대한 반대 집회가 열렸는데 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염자들이 갑자기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지도자와 그 집회에 참여한 교회를 공개적으로 집중 수사하며 심지어 대면예배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언론에 이렇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마치 목사와 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나쁜 사람이며 집단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정직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후에 정확한 내용을 발표하는 유투브 방송의 내용을 정리하면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처음 우한 바이러스는 S형이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대구 지방에서 신천지 집단에 의해서 감염된 바이러스는 V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갑자기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GH형이라고 합니다.
    GH형은 다른 바이러스보다 확산력이 6배 강하다고 합니다.
    GH형이 시작된 것은 4월말부터 5월이었는데 이태원 동성애클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GH형 바이러스가 동성애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흰쥐를 사용하여 연구한 결과 수컷 쥐의 항문에 “프로스타글란딘 E2(Prostaglandin E2)”를 넣은 것과 암컷에게 넣은 것을 관찰한 결과 수컷에게 넣으면 면연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면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전염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흰쥐를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성이 항문성교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남성과 남성이 항문성교를 하면 면연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쉽게 감염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동안 동성애클럽은 단속하지 않아 주말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동성애자들이 주말을 즐기고 다시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이렇게 해서 전염된 바이러스가 일반인들에 전염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8월 15일 국민대회를 위해 모였던 사람들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퍼졌다고 하며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목사이었고 교회이었다고 하며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을 금한다고 긴급명령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침묵합니다.
    만일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 않고 무슨 표적을 보여주신다면 잘못된 통계와 방법으로 예배를 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침묵을 “여호와 하사”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란 “침묵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란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여호와 살롬과 같이 어떤 사건을 통하여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간섭과 임재가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나타났던 사례들을 종합할 때 찾을 수 있는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성구들을 소개합니다.

    시편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편 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사오니 내게 귀를 막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나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성경은 명료하고 시원한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그것을 신비라고 합니다.
    성경의 가장 큰 미스터리, 신비중의 하나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분명한 해답이 있다면 고민하고 갈등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이 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두가 수긍하는 정답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바탕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 만능주의

    한국교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앙의 특징입니다.

    믿습니까? 하고 소리치면 반드시 아멘! 하고 응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아멘! 하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만일 아멘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판단합니다.

    믿음 만능주의는 성경의 중요한 내용이지만 성경 전체가 아닙니다.

    둘째는 기도 만능주의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신앙 까닭에 기도를 오래하거나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오래하고 큰소리로 하는 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기도에 대한 침묵
    둘째는 고통이 올 때 침묵
    셋째는 정의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침묵

    기도는 사람의 영역 응답은 하나님의 영역

    기도할 때 응답 받을 수도 있지만 응답받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성경에서 응답받는 것만 본문으로 설교를 하고 가르치면 성경 전체의 신앙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렇게 부르짖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내 몸에서 제거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예수가 아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도는 응답해야 한다고 억지소리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응답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고통의 은혜

    고통의 은혜의 대표적인 사건은 십자가라고 하겠습니다.
    고통의 은혜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약속을 믿는 은혜

    내가 기도하고 내가 응답받는 것도 있지만 내가 기도하고 다음 세대가 응답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실망하지 않고 반드시 응답될 것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일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6-9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은 너희 과 달라서.
    하늘이 보다 높음 같이 내 은 너희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결론을 위한 이야기 #.1)
    일본의 작가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를 소재로 만든 소설입니다.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므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십자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잠겨서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며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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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2(09-02-20)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는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신다.”고 가르치는 사례가 자주 소개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합니다.
    그렇다고 "여호와 삼마"를 확장 해석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은 본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겔서에서 “거기”는 “예루살렘”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다.” 라고 이해하면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너무 과장 확대 해석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해석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바른 해석을 위해서 먼저 본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에 집중하려면 시작하는 말씀과 마지막 말씀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어떤 책으로 분류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선택한 본문은 선지서 "에스겔"입니다.
    "에스겔(Ezekiel)" 이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심"이란 뜻입니다.

    부시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제사장이며 4대선지중의 한 사람으로
    유대왕 여호야긴과 같이 포로가 되어 갈대아땅 그발 하수가에 거주하는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다(겔 1:1-3).

    그 글에서 그의 비범한 인물 됨을 발견할 수 있고 기재를 나타냈으며
    곧 목이 곧 고 마음이 강팍한 그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함을 담대히 공격한 기록에서
    대선지로서 적임자임을 보여 주었고 종신토록(20년간) 선지의 직무 에 진력한 것은 일대 특색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정신적 종교가임에 반하여 에스겔의식적, 형식적 방면에 중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예언의 요지는 예루살렘의 망할 것과 장래의 구원으로 본국이 회복될 것으로 포로된 동포를 위로 하였다.
    그의 죽은 시기는 알수 없으나 바벨론에서 같은 지도자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이락의 수도 바그닷드 근처의 한 건물을 가리켜 에스겔의 분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에스겔은 성경학자들이 "대선지서(大豫言書, Major Prophets)"라고 설명합니다.
    대선지서란 그 내용이 소선지서보다 많기 때문이지 선지자가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선지서에 속한 성경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 1:1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In the thirtieth year, in the fourth month on the fifth day, while I was among the exiles by the Kebar River,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제 삼십년 사월 오일이란 현대인의 성경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서른 살이 되던 해 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사로잡힌 자 즉 포로가 되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에 따라 행해야 할 삶이 있습니다.

    10세 때는 유(幼)라고 하여 이때부터 배움을 시작합니다.
    20세 때는 약(弱)이라고 하여 비로써 을 쓰게 됩니다.
    30세 때는 장(壯)이라 하여 집을 갖고 결혼을 합니다.

    사람은 자기 나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선지자 에스겔30세장(壯)에 해당하므로 집을 갖고 결혼하여 아내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론 땅으로 끌려온 포로 선지자로 그발 강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합당한 삶이 아닌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에스겔 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 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여호와 삼마"를
    "야훼 삼마"(공동번역)
    "여호와 샤마"(새번역)
    "아도나이 샤마"(히브리 성경) 라고 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에스겔을 비롯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성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임마누엘의 의미가 아닙니다.
    더구나 여호와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깨닫지 못하였을 때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돌이켜 보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예루살렘에 대한 은총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 “그발 강”가에 모여서 예루살렘을 회상할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야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일까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심각한 전염병에 의해서 이전에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새로운 것들로 인하여 깨닫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주일 예배

    매주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던 성도들이 이제는 함께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 유튜브를 이용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뉴욕에서는 어느 교회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예배를 시작했으나 감염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였다고 합니다.

    한동안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던 중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족들도 같이 앉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예배할 때 처음에는 매우 감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송을 하는 사람도 마스크를 사용하고 설교자도 마스크를 사용하는 낯선 광경을 보며 예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어 차라리 온라인 예배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합니다.

    그 결과 매 주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예배하던 “대면 예배(對面 禮拜)”가 금지될 때에 비로써 주일마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둘째는 가족 모임

    저희 가족들은 매월 마지막 주일 저녁 시간에 저희 집에 모두 모여서 식사하며 지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 3월 이후부터 가족 모임조차도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 환경 때문에 가족의 만남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셋째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과 일터

    자영업자들 특히 음식점의 경우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하면 출입구에서 찾아가므로 영업에 상당한 손실이 크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세 자영업자들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예로부터 “철들자 노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나 깨달은 것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기 전에 정신이 흐려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몰랐구나! 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는 후회가 없는 신앙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근거 없는 희망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에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까달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70년 후에 돌아가게 될 것" 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예레미야 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꾸어 말하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멈추거나 아니면 백신을 발명하여 다시 예전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근거없는 희망을 버리고 분명한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70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70이란 숫자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첫째, 종심(從心)

    사람의 나이 70을 “종심(從心)”이라고 합니다.
    종심이란 사람의 나이가 70이 될 때 비로써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지만 절대로 법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종심을 신앙적으로 설명한다면 철저한 회개를 거쳐야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이란 과거에 예루살렘에서 누렸던 모든 것들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이었으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므로 다시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 마음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징적인 수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7은 매우 신성한 의미를 갖는 수라고 하겠습니다. 
    창조 후 7일째 안식하셨으며
    속죄의 상징으로 제물의 피를 일곱 번 뿌린다.
    7은 맹세와 동의어를 의미합니다.

    숫자 '70'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그것의 기본수인 '7'에서 찾을 수 있다.
    '7'은 일반적으로 완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7'의 어원적 의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메르어아카디아어에서 숫자 7은 '온전함' '전체'를 뜻하고,
    우가릿어에서도 '완성' '완결'을 의미한다.

    7은 완전을 의미하는 34의 결합이기도 하다.
    3은 삼위일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늘의 완전수이다.
    반면 4 땅의 완전수인데, 그것은 사방으로 땅 전체를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7은 하늘의 완전수와 땅의 완전수가 결합된 최종적인 완전수라 할 수 있다.

    숫자 7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쉐바'는 명사뿐만 아니라 '저주하다' '맹세하다'라는 의미의 동사로도 사용된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내용에서 '맹세'와 함께 '일곱'(암양 새끼 일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나,
    그곳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브에르쉐바; '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의 우물')라고 한 것은 숫자 7과 그 숫자가 지닌 의미를 긴밀하게
    연관시킨 좋은 예이다(창 21:28-31).

    둘째, 노역 기간으로서의 70년(이사야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를 인하여 여호와의 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것은 노역의 때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죄악이 사함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노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바'는 전쟁을 위하여 강제로 동원된 병역기간을 의미한다.
    표준새번역에서 이것이 '복역기간'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한 복역의 때였다.
    그것은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곧바로 원래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도 예레미야서에서와 같이 '끝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 '말레'를 사용하고 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곧 복역의 기간이 채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사야가 선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별도의 조건이 따로 필요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이사야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셋째, 이스라엘 회복 근거로서의 70년(스가랴 1:12, 7:5, 8:19)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8:20-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스가랴서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스가랴서의 첫 번째 환상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여호와께서 폐허화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70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슥 1:12).
    그런 스가랴의 입장은 70년 동안 지켜온 다섯 차례의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슥 7:5).
    그에 대한 스가랴의 답변은 더 이상 금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의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금식은 오히려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었다는 것이 스가랴의 최종적 선언이다(슥 8:19).

    넷째, 땅의 안식년으로서의 70년(역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바빌론에서의 70년 포로기간을 땅의 안식년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황폐되었던 본토의 땅은 오히려 안식을 누리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땅은 새로운 축복의 잠재력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빌론에서 보낸 포로기간은 외견상 절망의 시기로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시는 기회 곧 땅의 안식년인 셈이었다.

    70년과 관련된 성경에서의 실제적 적용

    1. 인간 수명으로서의 70년(시편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70세종심(從心)
    80세팔질(八耋), 장조(杖朝)
    - 장조(杖朝)는 중국 주나라 때 여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 것을 허락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 지팡이 장, 아침 조
    - 팔질(八耋)여덟 팔, 늙은이 질
    90세
    졸수(卒壽) 마칠 졸, 목숨 수

    시편 90편은 인간의 한평생 수명을 70으로 보고 있다.
    성경이 사람의 수명을 그렇게 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을 통해 이 시편의 저자는 모세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인간 수명을 70으로 설정한 것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출애굽 당시 전쟁에 출전할만한 장정들의 나이는 20세에서 40세였다.
    이들은 모두가 광야방랑기간인 38년 안에 그들의 생애를 마쳤다.
    그렇게 되면 출애굽 당시의 장정들은 대략 60세에서 80세를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모세는 사람의 일반적 수명을 70으로 보았고, 강건하면 80까지 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2. 한 왕의 연한으로서의 70년(이사야 23:15)

    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70년과 관련된 또 다른 성경의 언급은 한 왕의 연한이다.
    여기에서 왕이란 개인 아니라 그 왕이 통치하는 전체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곧 한 왕의 통치를 받는 한 국가 공동체의 운명이 70년으로 제한된다는 성경적 관점이다.

    그와 같은 성경적 관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20세기의 최대 사건이기도 한 공산주의의 발흥과 쇠퇴가 70년 주기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20세기는 소련의 공산주의혁명으로 시작되어 소련 공산주의의 해체로 마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과 몽골의 공산주의 정권 모두가 70년 만에 종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는 모두 우리의 인접국이면서 우리나라의 분단역사와 긴밀하게 연관된 나라들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에스겔서 예언과 성취 

    성구

    예표,  예언

    하나님의 뜻

    성취 

    1:4~28 

    보좌 환상

    ( 폴풍과 큰 구름, 네 생물의 형상, 바퀴, 궁창과 보좌)

      

      

    2:1~ 3:15

    두루마리를 먹음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을 고하라

      

    3:22~27 

    말 못하는 자가 되다

    무리가 에스겔을 죽일까하여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심

      

    4장 

    토판 위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그림을 그리다.

    390일동안 왼쪽으로 누워있다. 오른쪽으로 사십일을 누워있다.

    인분 불에 떡을 구워먹다. 

    이스라엘이 죄악 390일을 감당하고 유다의 40년의 죄악을 감당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시니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5장 

    머리털과 수염을 깍다

    1/3 성읍 안에서 불사름

    1/3 성읍 사방에서 칼로침

    1/3 바람에 흩으라

      

    1/3 전염병과 기근으로죽다

    1/3 사방에서 칼로 엎드러짐

    1/3 사방에 흩어버리고 뒤를 따라가며 칼을 뺌

    8장 

    불 같은 형상과 질투의 우상, 담 속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그려져있는 벽과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다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10~11장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다. ( 네 생물과 바퀴, 보좌)

      

    예루살렘의 심판

    12:1~16 

    포로 될 것을 나타내는 상징행위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다)

      

    이스라엘 족속이 바벨론으로 끌려감

    12:17~20 

    떨면서 먹고 마시며 보이는 징조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그들이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

    13장 

    거짓선지자의 종말

      

      

    15장 

    불에 던질 땔감 같은 예루살렘 주민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17:1~21 

    독수리와 포도나무비유

      

    예루살렘의 왕과 고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고 거기에서 죽을 것이다.

    20:45~49 

    불타는 숲의 비유

      

      

    21장 

    여호와의 칼

      

    네가 지음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25:1~7 

    암몬 족속에 대적하여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주겠다.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5:8~11 

    모압 족속을 대적하여

    암몬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25:12~14 

    에돔 족속을 대적하여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

      

    25:15~17 

    블레셋 족속을 대적하여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 즉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시니라

    26:1~28:19 

    두로를 대적하여

    두로에 관한 일련의 예언

      

    28:20~26 

    시돈을 대적하여

    전염병을 보내며,

      

    29:1~32:32

    애굽을 대적하여

    바로를 대적한 심판

     애굽 땅의 황폐함

    포로에서의 귀환이 약속됨

      

    34:1~31 

    선한목자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음

      

    35:1~15 

    에돔의 산들

    이스라엘의 산들

    에돔을 대적하는 예언

    네 성읍을 무너뜨리며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36:16~38 

    내적갱신 

    정결하게 하되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걸하게, 또 새 마음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7:1~14 

    마른뼈의 환상

    (죽은 자들의 뼈가 살아난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37:15~28 

    마른뼈의 환상

    (재통일)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난가 되리라,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40:1
    ~48:35 

    이상 중에 본 성읍

    성전에 관하여

    성전 의식

    그 땅을 분배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수요성서학당 #. 13(09-09-20)

    오늘 수요성서학당의 주제는 "합심 기도"입니다.

    '합심 기도'를 주제로 결정한 동기는 백혈병 환자와 심장 수술을 받을 환자 그리고 암 환자를 위한 기도 제목을 소개하면서 합심 기도의 성경적 의미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품앗이 기도(祈禱)

    "품앗이"란 농경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모내기를 할 경우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모내기에 동참하여 일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생활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합심 기도"가 마치 "품앗이 기도"처럼 생각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로 동참하면 이 다음에 내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나를 위하여 기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심 기도가 아닙니다.
     
    둘째는 합력 기도(祈禱)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면 바다가 모여 대양을 만드는 것처럼 나와 같은 힘이 없는 기도일지라고 힘을 더하면 능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생각하며 오늘 함께 읽을 말씀 마태복음 18:18-20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에서 20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회당 예배를 시작하려면 성인 남자 10명 이상이 참여해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성인 여자 20명이 모였고 성인 남자가 9명이 모였으면 회당 예배를 시작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회당의 제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예배를 시작하는 기준은 성인 남자 10명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얼마든지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과연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예배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오늘 이 말씀에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겠습니다.

    20절을 다시 한 번 더 함께 읽어보게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러분, 온라인으로 예배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실까요?
    아니면 함께 하지 않을실까요?

    이제 합심 기도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 1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함께 읽은 말씀에서 "매면" 그리고 "풀면"이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매면이란 묶는다는 뜻이고, 풀면이란 묶은 것을 푸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할 때 묶는 것은 무엇이고 푸는 것은 무엇일까요?
    합심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묶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합심 기도를 마치면 기도하는 사람을 푸는 것도 아닙니다.

    매는 것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본문의 배경을 자세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첫째,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둘째,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셋째,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넷째,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17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 일을 두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용서와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는 어떤 어려운 일을 위하여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땅에 풀어야 할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이와 같은 일에 열심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부록) 합력(合力)과 합심(合心)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합력(合力)이란 "힘을 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할 (合), 힘 (力)

    * 합력하여 / 판타 수네르게이(πάντα συνεργεῖ) all things work together
    - 판타(πάντα) /  πᾶς(pas) all, every. Adjective
    - 수네르게이(συνεργεῖ) /  συνεργέω(sunergeó) to work together. Verb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合) : 사람 (人) + 한 (一) + 입(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심기도의 본질  
    - 합심 기도는 기도의 방식이며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합심 기도는 합력이 아니다.
     합심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살펴야 할한다.

    신자가 동료 성도나 불신자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꼭 두 세 명 이상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심이 갈 수 있습니다.
    혼자 집에서도 열심히, 간절히, 성실히 이웃을 위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해하듯이 합심 기도의 목적과 효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여럿이 모여 기도하므로 하나님 보좌를 흔드는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셋째는 힘을 합해 기도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합심기도에 이러한 요소들이 분명히 작용합니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기도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도의 본질을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독립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다른 어떤 가르침과도 연결되지 않는 말씀이라면 합심으로 중보 기도만 하면 응답이 잘 된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다른 가르침을 주시는 가운데 나온 말씀이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본문 앞에 어떤 기사가 나옵니까?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큰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먼저 낮아져서 소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자여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네 형제 중에 누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권면, 증참(證參)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했습니다.(마18:1-17)    

    그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에서 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합심 기도(마태복음 18:19∼20)

    (관주성경)
    19. 眞實(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中(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合心(합심)하여 무엇이든지 求(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爲(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中(중)에 있느니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한글개역성경)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합(合) : 사람 인(人) + 한 일(一) + 입 구(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입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언어(言語)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로 구분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모두에게 유익하고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언어는 모두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둘째는 음식 섭취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에도 건강한 음식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음식으로 구분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말에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말에 책임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이야기는 거짓말장이 소년 양치기는 자기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재미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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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4(09-16-20)

    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공동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쇠약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와지고 있습니다.

    새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 겉 사람 속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시간" 이라고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겉 사람은 누구나 약하여지고 쇠하여 갈 것입니다.
    반면에 속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철이 들기도 하고 반성하며 후회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결단합니다.

    - 옛 사람 새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신앙" "거듭남" "중생" "구원" 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도 내 안에서 옛 사람의 삶의 습관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모습을 일컬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케 된 후에는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렇게 고백합니다.



    * 자연인과 성도 모두에게 공통된 것은 "겉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후패(쇠약해 가는 것)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새로워 집니다.
    어떻게 새로워 집니까?
    자연인의 경우에는 "정신을 차린다" "철이 들었다"
    성도의 경우에는 "회개" "깨닫는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You were taught, with regard to your former way of life,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by its deceitful desires;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용어                          영어                                      성구          헬라어                  의미





    겉 사람

        outward man, outwardly, outer man

      고후 4:16

         ἔξω

           육에 끌리는 사람

    속 사람

        inwardly, inward man, inner man

    고후 4:16

         ἔσω

           영에 끌리는 사람

    옛 사람

        the old man, the old self   

    엡 4:22  

      παλαιός

            중생 이전의 사람

    새 사람

        the new self, the new man

    엡 4:24

       καινός

             중생 이후의 사람

    대부분의 설교자는 겉 사람은 옛 사람이며, 속 사람은 새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은 거듭난 후에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옛 사람의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이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모습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겉 사람은 육체 끌리는 삶의 양식이라면 속 사람은 영에 끌리는 삶의 양식 즉 선한 양심에 의하여 갈등하며 고민하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NEET족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한국어로 방콕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깨달은 자는 자신에게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죄 지은 것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을 깨달은 자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 없이 슬퍼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구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혜에만 의지한다.

    무덤 속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부패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한 것은 “나사로야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자기도 그렇게 구원받았음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자이다.
    죽은 시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걸어 나온 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수의로 칭칭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자는 자기가 구원 받기 전에는 물론, 구원 받은 후에도 행한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베드로처럼 절규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율법주의자와 행위주의자들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이교도들일 뿐이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때는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고 겸손히 고백하는 때이다.
    그 때가 어서 왔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그들로 인해 큰 기쁨의 잔치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박군의 마음’ 이라는 전도지

    박군이라는 청년에게 전도를 하는 내용인데 박군의 마음속에 있는 일곱 가지 악한 성향,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짐승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을 주님이 온전하게 들어오심으로 일곱 짐승이 다 나가고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 되는 것을 설명한 전도지입니다.

    영적 전쟁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 이 전도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적으로 많이 열려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짐승의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다쟁이 영 / 개구리

    말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의 안에서 개구리가 쉬지 않고 개굴개굴 하고 울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개구리는 입에 관련된 것으로 설명됩니다(요한계시록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말이 많은 사람은 절제하지 못하고 수없는 말들을 입에서 쏟아냅니다.
    그리하여 영적 에너지를 잃게 하고 주변에 악한 기운으로 가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들은 침묵을 배우고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 높여야 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는 대화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사랑하고 세속에 깊이 물든 대화가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 있는가 하면, 남을 비방하고 또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날카로운 말도 있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절제되지 못한 말들이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말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축복의 말은 반드시 축복으로 돌아오지만 저주의 말을 하면 나쁜 저주가 임합니다.
    이것이 혀의 권세입니다(잠언 18:21).
    말한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둘째, 교만의 영 / 공작새

    공작새가 그 날개를 활짝 펴서 자랑을 하듯이 교만의 영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선하고 지식이 많으며 영적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이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만은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또 다시 대홍수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불신앙이 가장 큰 교만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가지요. 이 사실이 부당한가요?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사람들 안에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심지어 공산당들도 죽을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하나님, 잘못했어요. 하나님,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무신론자라도, 부처를 섬기는 사람이라도 죽기 직전엔 하나님을 찾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악독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순순히 그분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셋째, 간교한 영 / 뱀

    뱀은 간교한 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세기 3:1).

    간교한 영의 사람은 지혜가 많고 머리가 좋아서 말을 잘 하며 사람들을 잘 속입니다.
    잘못을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추궁하면 교묘하게 변명하여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영은 “배신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유혹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강자 앞에서 약하며 약자 앞에서 잔인합니다. 영안이 열린 이들에게 이들은 뱀의 형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야곱은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겨우 한 끼 먹을 팥죽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권리)을 빼앗았습니다.
    그의 지혜는 분명히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사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악한 영의 도구가 됩니다.
    간사하게 부리는 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다듬어져야 합니다.
    야곱은 그로 인해 험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넷째, 음란한 영 / 염소

    염소는 성적으로 더러우며 정욕이 강하다고 합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이 시대에 음란을 피해가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생활이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과거에 없던 것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문제도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들은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문제입니다.
    죄를 짓는 데에도 쉽고 빠릅니다.
    음란과 세속에 빠지는 죄는 지금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베드로전서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다섯째, 혈기의 영 / 호랑이(사자)

    사자 또는 호랑이는 분노의 영 또는 화의 영을 상징합니다.
    속에서 폭발적으로 분노와 혈기가 일어나는 이들은 속에 호랑이나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성질이 강하고 사나워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성경에서 최초의 살인 사건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왜 죽였을까요? 미움과 혈기를 참지 못해서 죽였습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이 학교에서 왜 일어날까요? 혈기 내는 영이 사람 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여섯째, 탐욕의 영 / 돼지

    돼지의 영을 “탐욕의 영”이라고 합니다. 돼지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면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며 그 욕망으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이 있어도 남들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주려고 하지 않으며 더 많이 얻으려고 합니다.

    나발이란 사람은 부자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데 인색했습니다. 굶주린 다윗과 그의 일행을 먹이기는커녕 조롱하는 말로 다윗을 노하게 했지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몸이 돌처럼 굳어져 며칠 후 죽었습니다.

    누가복음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일곱째, 게으름의 영 / 거북이

    거북이와 같은 게으름의 영의 지배를 받으면 항상 나태하고 게을러서 모든 것을 미루며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명을 받았어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You wicked, lazy servant!)” 라는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죄의 종류와 마귀의 역사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죄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일곱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디도서 3:4-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새 사람은 도덕과 윤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그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시편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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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정론이란 무엇인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
    만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지 않으려고 하여도 반드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할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으려고 아무리 노력하고 힘쓸지라도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요? 이와 같은 이야기가 "예정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소개한다면 예정론이란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과 섭리(攝理, Πρόνοια, providence)라고 하겠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예정(豫定, Αναμενόμενος, prefetermined)과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셨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을 자들을 예정하셨습니다.
    누구를 예정하셨을까요?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의 구원을 깨우치시려고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은 율법에 따라 먹을 수 없는 짐승과 새들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그것들을 먹으라고 하였으나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것은 언제든지 먹지 않았다고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게 되었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누구를 예정하셨습니까?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느 특정한 민족 아니면 어느 특정한 교회와 교주를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족속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을 예정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정론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정을 받았지만 예정을 받은 사람이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택해야 합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정론이란 "하나님의 예정(豫定, Αναμενόμενος, prefetermined)"과 "사람의 선택(選擇, Επιλογή, choice)" 또는 "사람의 결정"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8: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도다.

    예정론이 성경적으로 의미하는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예정(豫定) / 미리 예(豫), 정할 정(定)
    1. 이제부터 할 일에 대하여 미리 정하여 두는 것  
    2. 미리 예상(豫想)하여 두는 것

    성경에서 “예정되었다” 라는 헬라어 "프루리조(προορίζω, proorizó. 4309)"는 "사전에 결정하다”, “미리 명하다”, “미리 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to predetermine, foreordain). 따라서 예정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정하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1. 사도행전 4:28, 예정하신
    2. 로마서 8:29-30, 정하셨으니, 정하신
    3. 고린도전서 2:7, 미리 정하신
    4. 에베소서 1:11, 예정을 입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미리 정하셨을 까요?

    로마서 8장 29-30절에 따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첫째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고
    둘째는 부르심을 받고
    셋째는 의롭게 되고
    넷째는 영화롭게 되는 것

    이러한 것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합니다.

    (성경 이야기)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인하여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애급에서 요셉의 삶은 참혹한 생활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었지만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갇혔던 요셉이 바로의 궁에서 술맡은 관원과 떡맡은 관원이 감옥에 들어왔을 때 두 관원이 꿈을 꾼 후에 그 꿈을 해석했습니다.
    술맡은 관원은 복직 되어 바로의 궁에서 다시 왕을 섬기게 됩니다.
    어느 날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 때문에 모든 술객들을 동원하였으나 꿈을 해석하지 못할 때 마침 술맡은 관원은 감옥에 갇혀있던 요셉을 생각하고 요셉을 바로에게 추천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였고 애급의 총리가 되어 7년 대가뭄의 때를 대비하는 지혜로운 관원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의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양식을 구합니다.
    요셉은 지난 날의 모든 고통과 괴롭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의 신분을 알리고 앞으로 가뭄이 더 계속될 것이므로 모든 가족들을 애급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창세기 45:5-8).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급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에서 "예정론"이란 요셉의 삶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겠습니다.


    예정론(豫定論)이란?

    1. 하나님의 예정(豫定)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로마서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디모데후서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어느 시골 동네에 한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나라의 왕자가 이 시골 처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처녀를 사랑한 왕자는 임금님과 의논해서 이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느 날 왕자는 시골 동네로 그 처녀를 찾아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왕궁으로 갈 것을 청했습니다.
    처녀는 어떠한 반응을 할 수 있을까요?

    왕자의 청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왕궁으로 따라가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청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절당한 왕자는 거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격과 덕망이 높은 분이기 때문에 처녀를 기다리며 계속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이런 노력과 수고로 인하여 마침내 처녀는 왕자의 사랑에 감동하고 그의 인격과 수려한 용모에 사로잡혀 왕자를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왕자의 아내가 됩니다.

    그러면 이 처녀가 왕자비가 된 것은 처녀가 결정을 잘했기 때문입니까?
    처녀의 결정이 아니라 왕자의 사랑과 왕궁에서 작정된 결정 때문입니다.

    예정론은 이와 같이 선행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전하려는 교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어느 날 우리가 결정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고, 찾아오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선행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을 언급하는 것이 예정론입니다.

    2. 사람의 선택(選擇)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정은 이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심으로 확증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죄인된 내가 그 십자가의 주님을 인정하고 믿고 따라가므로서 구원의 대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예정론은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 하나님에 의해 이끌려 지고(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구원받기 위해 믿는(로마서 1:16) 사람들과 밀접하게 역사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하나님은 구원 받을 자를 예정하시고,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그리스도를 선택해야 합니다.

    두 사실은 동등한 진리입니다.

    로마서 11장 33절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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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6(09-23-27)

    사탄 마귀 귀신(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The great dragon was hurled down that ancient serpent called the devil, or Satan, who leads the whole world astray.
    He was hurled to the earth, and his angels with him.

    요한계시록 20:2,
    을 잡으니 곧 옛 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He seized the dragon, that ancient serpent, who is the devil, or Satan, and bound him for a thousand years.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사탄과 마귀의 정체에 대한 성경의 결론은 큰 용, 옛 뱀, 사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합니다.

    (도입 이야기)

    인도 설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파라문교인 한 사람이 제사에 쓰려고 산양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을 본 악인 세 사람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그가 오는 길목에서 각각 떨어져 기다리고 있었다.

    파라문교도가 가까이 오자 첫 번째 악인이 그 앞에 나타나자
    '오! 성자여 당신은 무엇에 쓰려고 그 더러운 개를 메고 가십니까?' 라고 말했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이 가지고 가는 것은 산양이라고 대꾸했다.

    조금 후 두 번째 사람이 똑같은 말로 물어왔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의아심이 생겨 메고 가던 산양을 내려 살펴보고는 그제서야 안심하였다.

    조금 걸어가다 세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자 그도 똑같은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정말인가 하여 결국 그는 산양을 땅바닥에 버려두고 황급히 가버렸다.
    이를 본 악인들은 기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들의 귀에 들리는 이야기들 중에는 무고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몇 번 듣다보면 우리 안에서 진실인 것 마냥 자리 잡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단은 이런면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사탄의 전술 전략에 대해서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사탄과 마귀 그리고 귀신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정체성을 성경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사탄과 마귀(魔鬼)는 성경적으로나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귀신(鬼神)’과는 다릅니다.

    귀신은 헬라어로 다이몬(δαιμων)인데 여기서 영어의 ‘demon’(악령)이 파생합니다.

    성경은 ‘사탄’과 ‘마귀’를 단수로 기록하고 있지만 ‘귀신’은 단수와 복수로 모두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단인가? 사탄인가?

    한글 성경은 악한 영들의 존재를 ‘사탄’ ‘사단’ ‘마귀’ ‘귀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탄’과 ‘사단’은 같은 말이며 발음상의 문제이다.
    정확히 말하면 성경 원문이 두 단어를 혼용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다른 음역(音譯)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1961년에 개정된 개역한글성경은 ‘사단’이라고 번역했지만 98년에 개정된 후 대부분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성경과 공동번역, 현대어성경, 표준새번역 등은 ‘사탄’으로 번역했다. 둘 중에 더 정확한 음역은 ‘사탄’(Satan)이며 ‘대적’ ‘대적자’ ‘고소자’라는 뜻이다.

    마귀(魔鬼)’는 히브리어인 ‘사탄’의 뜻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디아볼로’(διαβ λλω)이다.
    다시 말하면 ‘사탄’은 히브리어이고, ‘마귀’는 헬라어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은 마귀와 사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시러 광야에 가셨다(4:1)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때는 “사탄아 물러가라”(마 4:10)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 지역에서 귀신을 쫓아냈을 때 많은 귀신이 귀신들렸던 사람에게서 나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기도 했다(막 5:13).

    마가복음 5: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예수님께서 ‘마귀와 그 사자들’(마 25:41)이라고 언급하신 것과 성경의 여러 본문을 고려할 때 ‘귀신’은 ‘사탄’ 혹은 ‘마귀’가 부리고 있는 낮은 등급의 악한 영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順服)할지어다 마귀(魔鬼)를 對敵(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避)하리라

    * 마귀(魔鬼)를 대적(對敵)하라!

    베드로전서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에베소서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에베소서 6: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 대적하다(안디스테미, anthistémi.  ἀνθίστημι) : to set against, i.e. with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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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7(10-07-20)

    왜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는가?(디도서 1:1∼3)

    디도서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사도(使徒)란 누구인가?

    * 사도(使徒) : 부릴 (使), 무리 (徒)
    - 예수가 복음(福音)을 널리 전(傳)하려고 특별(特別)히 뽑은 열두 제자(弟子).
    - 보냄을 받은 자

    *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 apostolos, 652) : a messenger, one sent on a mission, an apostle
    - 아포(ἀπό. apo. 575) : from, away from
    - 두로스(δοῦλος. doulos, 1401) : a slave
    - 히브리어 "샬리하(Shakicha)"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란 뜻으로 모세,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 등에 사용되었다(출 6:11, 왕상 18:1).

    출애굽기 6:11, 들어가서 애굽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열왕기상 18:1, 많은 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를 지면에 내리리라.

    * 사도란 좁은 의미로는 예수님으로 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넓은 의미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특별한 임무를 부여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사도행전 1:21-26, 바사바(유스도, 요셉), 맛디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사도행전 9:15-16, 고린도전서 9:1, 7-15, 15:8).

    제자(弟子)란 누구인가?

    * 제자(弟子) : 아우(第), 아들 (子)

    * 마데테스(μαθητής. mathétés, 3101) : a disciple

    사도(使徒)”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주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실 때에만 부름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던 사람들로 제한 됩니다.

    제자(弟子)”라는 말은 “배우는 자” 또는 “따르는 자”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근거에 의하면 바울은 사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가 고린도교회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은 바울이 사도가 된 것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고린도후서는 모두 13장으로 구성되었는데 8장과 9장은 헌금에 관한 교훈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하 논쟁이 고린도교회에서는 심각한 문제로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는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유대인들로부터 제기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동안 예수님을 따랐던 12명의 추종자들을 제자라고 불렸습니다.
    열 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고, 그분으로부터 배웠으며, 그분에 의해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에, 주님은 그분의 증인으로 제자들을 내보내셨습니다(마 28:18∼20. 행 1:8).
    그 때 그들은 열 두 사도로 언급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아직 이 땅에 계셨을 때조차, “제자들” 그리고 “사도들”이란 용어는 어느 정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에 대한 좁은 의미 :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던 제자들을 말합니다.

    원래의 열 두 제자들(사도들)은 마태복음 10:2∼4에 나열되어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사도에 대한 넓은 의미 :

    성경에서는 사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 사람들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역사적인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 자신을 사도라고 강조합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은 부활의 증인으로 특별하게 부름을 받은 경우에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도리의 사도"라고 합니다(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신약 성경 27권 중에 바울이 기록한 것은 13권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기독교의 중심 인물은 예수님과 바울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도와 제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바울은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합니다.
    (롬 1:1, 갈 1:1, 고전 1:1, 고후 1:1, 엡 1:1, 골 1:1, 딤전 1:1, 딤후 1:1, 딛 1:1).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른 제자들과 다르게 특별한 은혜라고 합니다.

    첫째는 택정함(갈 1:15-16, 롬 1:1)
    둘째는 다메섹 도상의 사건(행 9:4-6)
    셋째는 아나니아의 예언(행 9:15-16)
    넷째는 환상(행 22:21)

    디도서 1:1∼3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

    첫째, 믿음
    둘째, 지식
    셋째, 영생
    넷째, 전도

    첫째, 믿음
    - 택하신 자들의 믿음

    로마서 3: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믿음이란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더프 선교사(1806-1878)는 안식년을 맞아 영국으로 귀환한 후 가는 곳마다 현대 선교사의 아버지 윌리암 캐리 선교사에 대하여 칭찬과 그의 업적을 자랑하는 일에 몰두했었습니다.
    한번은 윌리암 캐리가 더프에게 부탁하기를 이제부터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더프는 계속하여 윌리암 캐리에 대한 칭찬을 계속하여 말했다고 합니다.
    윌리암 캐리가 임종하기 전에 더프를 만났을 때 다시 말하기를 "내가 죽은 후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만 이야기를 하십시오."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더프는 윌리암 캐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깨닫기를 내거 전할 이야기는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둘째, 지식
    -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지식이란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지식 그노시스를 말합니다.

    빌립보서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셋째, 영생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

    영생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신앙의 큰 위로가 됩니다.
    예로부터 자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에게는 영생의 소망이 있기 떄문에 자식을 가슴에 묻는 것이 아니라 주님 품에 안겨드린 것으로 위로 받으며 다시 만날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이유가 없습니다.

    넷째, 전도

    사도행전 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고린도전서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바울을 가리켜 성경은 이방인의 사도(롬 11:13, 갈 2:8) 또는 이방인의 스승(딤전 2:7)이라고 합니다.

    복음이 유대 지역을 벗어나 더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바울의 업적입니다.
    이와 같은 바울의 전도에 대한 열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아래에서 항거하던 본 훼퍼 목사님과 마틴 미네르 목사님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본 훼퍼 목사님은 사형을 당했지만 마틴 미네르 목사님은 8년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후에 몇 차례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여러 차례 환상을 본 후에 "전쟁백서"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그 책의 내용 중에 이런 고백이 소개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열을 이루고 심판대 앞에 길게 늘어섰는데 한 사람씩 그 앞에 나가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심판을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침 마틴 미네르 목사님의 차례가 되어 그 앞에 섰을 때 누군가 노려보며 마틴 목사님에게 항의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그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힛틀러이었다고 합니다.

    힛틀러는 마틴 목사의 죄 때문에 내가 심판을 받게 되었다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독재 정권에 대한 항거를 하면서도 한 번도 힛틀러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하더랍니다.
    이런 환상을 경험하고난 후에 마틴 목사님은 힛틀러가 악독한 독재자가 된 것은 내가 그에게 전도하지 못한 죄 때문이라고 전쟁백서에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전염병의 원인을 찾아 그 원인을 제거하려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복음을 사마리아 땅 끝까지 전하라고 말씀하신 부활의 주님이 분부하신 명령에 온전하게 복종하지 못한 죄가 더 무섭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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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보(捐補)와 헌금(獻金)(고린도후서 8:1-5)

    1. 형제
    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아멘

    고린도후서 8장9장을 "연보장" 또는 "헌금장" 이라고 합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연보(捐補)헌금(獻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13구절입니다.
    구약에서 2구절(역대하 34:9, 14) 신약에서 11구절입니다.

    헌금(獻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2구절입니다.
    신약 누가복음에서만 2구절 사용되었습니다(누가복음 21:1, 4).

    연보와 헌금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 중에 "십일조 절대 바치지 마라!" "연보는 신약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헌금은 인위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영상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코로나 19에 의해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던 교회 전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 장소에 대한 생각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 성전이냐?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라고 합니다.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실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둘째는 헌금에 대한 생각

    교회 설립의 목적이었던 선교와 구제보다는 인건비와 관리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CBS(기독교방송국)의 보도에 의하면 서울에서 10여개 교회가 강제 경매 위기를 당하고 있으며,
    교회 파산이 급증하여 전국적으로 100여개 교회들이 경매의 매물 물건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은행의 융자를 받았으나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일 수 없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적은 헌금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뉴욕의 작은 교회 사역자들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렌트비를 내지 못해서 교회 간판을 내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인들의 가정과 직장을 찾아다니며 헌금을 거두고 있다고도 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 할 때는 예베 순서에 따라 모든 예배자들이 헌금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각 가정에서 개인별로 또는 가족단위로 예배하므로 헌금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연보와 헌금에 대한 정의를 소개합니다.

    연보(捐補)란 한자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 라는 (訓)으로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訓)이란 "가르칠 훈(訓)" 으로 "한자(漢子)의 뜻의 새김. 예를 들면 "해(海)"를 "바다 해(海)" 라고 할 때 "바다"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 할당하다)”는 뜻입니다.

    헌금(獻金) “드릴 헌(獻), 쇠 금(金)” 이란(訓)으로 “드리는 금” 즉 금은 예로부터 재물을 상징하므로 "드리는 돈" 이란 뜻입니다.

    연보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놓은 것을 말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파트리스교회에서 헌금 내역으로 헌금 봉투에 적혀 있는 내역은 "십일조, 감사, 주일, 선교, 구제, 옥합, 생일" 이렇게  7개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헌금 내역 중에서 연보에 해당하는 것은 "구제, 선교, 옥합"이라고 하겠습니다.

    헌금에 해당하는 것은 "십일조, 주일, 감사, 생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파트리스교회에서 헌금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거래 은행에서 파트리스교회 구좌로 송금하는 방법
    둘째는 인터넷으로 계좌 이체하는 방법
    셋째는 수표를 발행하여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
    넷째는 헌금을 모아 직접 전달하는 방법

    코로나 19라는 팬데믹(Pandemic)이란 시대를 살아야 하므로 어떻게 헌금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8:1-5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절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 후 50년 경쯤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 편지를 보낼 때 당시 상황은 세계 교회의 모교회이었던 예루살렘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이방교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네아볼리, 아볼로니아)이 힘을 모아 영적 복음이 출발한 발원지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나선 것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냐교에 있는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진출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어느 날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며 바울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시아로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막고 유럽으로 가라는 것으로 깨닫고 복음의 발길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사도행전 16장에 소개됩니다.

    마게도냐 지역에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네아볼리, 아볼로니아"와 같은 교회입니다(사도행전 16:9-10).
    당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신앙적으로는 극성스런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2절 참조).

    2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들도 예루살렘 교회처럼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모교회유대인의 교회라고 한다면 마게도냐 교회이방인의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헌금은 은혜를 깨닫게 될 때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깨닫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지난 목요일(15일) 다니엘과 함께 노던 164가 응급 진료센터에서 코로나 감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17일) 오전 10시경에 전화를 하였더니 방금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하며 담당자가 "음성"이라고 하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2주일 전부터 호흡을 하려면 가슴이 답답하고 약간의 통증을 느껴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음성이란 결과를 받았지만 만일 양성이라고 하면 치료를 위한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응급 진료 센터를 찾았을 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실내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은 거리를 두고 앉아서 기다리지만 실내로 들어오지 못할 때는 거리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사하는 방법은 먼저 체온과 혈압을 측정한 후에 어떤 증세가 있는가 확인을 한 후에 긴 면봉을 코속으로 집어넣은 후 균을 채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긴 면봉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콧구멍이 참 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19에 의해서 세상을 떠났고 또 감염자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니엘에게 물었습니다.
    "다니엘아!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은혜를 구하겠느냐?"
    다니엘이 구하는 은혜가 있듯이 여러분들이 구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 은혜가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깊고 넓고 높게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헌금의 은혜가 따르지 못한 은혜는 참 은혜가 아니다.
    영국의 설교자 '요한 웨슬리'는 "나는 너의 돈주머니가 회개하기까지 너희 회개를 믿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 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장면이 소개됩니다(마가복음 14:3). 그런데 이 여자를 누가복음에서는 그 동네에 죄를 지은 여자라고 설명합니다(누가복음 7:37). 그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만일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겠느냐? 하며 여자의 행동과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 여자는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 모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행한 것이라며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용서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발을 닦는 여자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며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방인으로 구성된 마게도냐 교회가 모교회 유대인의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바울로부터 들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이방인 교회 마게도냐 교회들을 흔들었습니다.
    비록 우리들도 어렵지만 우리를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게 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강제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을 모았습니다(3절 참조).

    3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 자원하다는 단어의 원 뜻은 "스스로 선택하다" 라고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힘에 넘치도록 돈을 모았습니다.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첫번째는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깨닫게 하는 원동력은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헌금은 자원하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을 위하여 무릎을 꿇습니다.
    누군가 슬픔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길을 걷다가도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위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자기 힘과 능력에 맞도록 자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넘치게 받은 사람만이 넘치도록 자원할 수 있습니다.

    죄 않은 여인이 아주 값비싼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이 머리레 순식간에 부어버린 것은 그 여인이 그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원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시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가 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힘입어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목회 초기 교회를 함께 시작했던 집사님께서 어느 공장의 3교대 근무자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만 실족하여 거대한 탱크로리 차 위에서 바닥을 떨어졌습니다. 병원에 진단 결과 허리 뼈가 상하여 4급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 판정에 따른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상금의 절반을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가족들이 동의한 줄 알았는데 부인 집사님이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장애 등급 판정을 받으면 근무하기가 어려운데도 정년 퇴직할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정말 하나님만을 위한 일에 보탬이 되겠다고 결단하셨기 때문에 그 이후에 전개되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풀무불에 던져지는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이란 유대의 젊은이들은 풀무불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우상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거대한 코로나 19라는 괴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습니다.
    왜 전염병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왜 육신의 몸이 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의 것이로다.

    헌금은
    은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헌금은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입니다.

    세번째는 헌금은 섬김의 신앙입니다.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헌금을 하는 이유는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이방인 교회 중에서 가장 먼저 참여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매월 파트리스교회가 후원하는 기관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후원하는 기관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트리스교회도 결국 줄어드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후원하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아버지 하나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이여!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이여!

    연보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물질입니다.
    헌금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물질입니다.
    어떤 내역으로 물질을 드리든지 바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동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좋아서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섬겼듯이 우리들도 섬김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화) 자신을 바치는 헌신

    영국에 부흥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 말엽 영국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리더는
    그리스도교회의 마이어목사(F. B Meyer. 1847-1929)
    침례교의 대부흥사 스펄전(Charlson Spurgeon. 1834-1892)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켐벨 몰간목사(Campbell Morgen. 1863-1945)

    그런데 이 세 목사님 중에서 마이어 목사님의 인기가 제일 약하였습니다.    

    마아어 목사님의 일기장에는 "왜 그런지 나는 기도하려면 스펄전 목사와 몰간 목사님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자꾸 일어난다고 할 정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어 목사님은 그들을 시기하거나 질투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질투와 시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만 했을 뿐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축복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마이어 목사님은 크게 뉘우치며 두 목사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마이어 목사님의 일기장에는
    "나는 이제 자유함을 얻었다. 평안을 얻었다. 내 마음 속에 기쁨이 샘솟는다.
    하나님! 이제 내게 다시는 비판하는 종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계속하여 사람을 축복하며 살도록 도와 주소서"하고 기록하고 있다.

    (예화) 고름을 빨다

    중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김요석 선교사 간증입니다.
    친구와 같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등에 고름이 들어있는데 아직 덜 곪아 쉽게 짤 수 없었습니다.
    김선교사는 그 부분을 입으로 핥았습니다.
    자꾸만 빨았더니 그 부분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고름을 짰습니다.
    고름이 터지면서 옆에 친구 얼굴에 튀었습니다.
    순간 그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센병에 전염될까 봐 울었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네 고름을 빨 때 예수님이 옆에 와 계셨다.
    나는 그 주님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고름이 터져 내 얼굴에 튀는 순간 예수님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아쉬워서 울었다”

    사랑할 때 예수님은 임재하십니다.
    사랑할 때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


    오늘의 묵상(10-17-20) 토요일

    ♦ 10월 1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8: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연보(2절)
    ♦ 성구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Out of the most severe trial, their overflowing joy and their extreme poverty welled up in rich generosity.   

     “연보(捐補)와 헌금(獻金)”

    “연보(捐補)”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라는 훈(訓)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는 뜻입니다.

    “헌금(獻金)”은 “드릴 헌(獻), 쇠 금(金)”이란 훈(訓)으로 “드리는 쇠(money)”이란 뜻입니다.

    헌금(獻金. offering)은 성경에서 주로 ‘고르반(qorban)’과 ‘도라(dora)’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레 1:3, 민 31:50, 마 5:23∼24, 막 7:11)” 또는 “예물(레 1:2, 2:1)” “헌물(민 7:10)”이란 뜻이다.

    “도라”는 “예물(마 2:11, 5:23∼24, 8:4, 23:18, 19장, 히 5:1, 8:3∼4, 9:9, 11:4, 계 11:10)” 혹은 “헌금(눅 21:1, 4)” 이라고 개역 한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본문에서 사용되든 “고르반”과 “도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연보(捐補)”의 한자 의미는 “남을 돕기 위해 내어 놓는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로기아(collection, 모금)” “하플로테스(generosity, 관대)” “유로기아(blessing, 축복)”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고전 16:1)” 또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회의 연보(고후 9:5)”라는 말에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성도를 돕는 일과 교회 간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코이노니아(친교, 협력)”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연보”라는 말보다는 “헌금”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하겠습니다.

    파트리스교회의 설립 목적은 선교와 구제를 중요시 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지원하는 기관은 다섯 곳입니다.

    1. 북한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유진벨 재단(대표 인세반회장)

    2. ”북한어 성경을 보급하는 “모퉁이돌 선교회(대표 이삭목사)”

    3. 뉴욕국제장애인협회(대표 임선숙사모)

    4. 뉴욕밀알선교단(대표 김자송)

    5. 은퇴 여자 선교사들을 안식관을 건축하는 “세빛 자매회(대표 김화자목사)

    ”비대면 예배로 인하여 헌금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매월 꾸준히 후원금을 송금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협조와 후원에 의한 이와 같은 선교와 구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를 바쳤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았는가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부자가 성전에서 쏟아 붓는 많은 양의 헌금 보다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바쳤을 때 부자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친 양으로 계산하면 부자가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없는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힘차게 달려봅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에 감사합시다!

    ♪ 찬양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연보에 대한 성구


    마가복음 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고린도후서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요한복음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마가복음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누가복음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고린도전서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후서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역대하 34: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고린도후서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헌금에 대한 성구


      누가복음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누가복음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수요성서학당 # 18(10-14-20)

    면류관(冕旒冠)에 대한 신앙(베드로전서 5:4)

    (도입 이야기)  - 개털 모자와 영광의 면류관

    독립문성결교회에서 시무하셨던 임영재 목사님께서 부흥회 중에 개털모자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소개했습니다. 

    1954년경 경상도 어느 시골 산기슭에서 개를 200여 마리 키우던 계씨 성의 장로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예배당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교인들 모두가 작정 헌금을 하게 되었고 계 장로님도 작정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농촌 마을에서 개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개를 팔아서 건축헌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를 키우려고 이것 저것 제하고 나면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아시고, 목사님도 아실 것이니 개 한 마리 값을 헌금하기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계 장로님께서 건축헌금을 작정하신 헌금 내역을 보셨던 목사님께서 대단히 실망하셨습니다.
    장로님께서 겨우 개 한 마리 값을 작정하시다니 교인들에게 본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밤 계 장로님께서 꿈을 꾸었답니다.
    천사의 인도를 따라 면류관이 진열된 방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종류별로 진열된 면류관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모두 갖고 싶었습니다.
    내 것은 금 면류관일까?
    은 면류관일까?
    동 면류관이나 철 면류관은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어느 것이 저의 면류관입니까?

    천사가 말하기를 "계 장로님 머리에 꼭 맞는 것이 장로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면류관을 들고 머리에 써보았으나 머리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머리에 맞는 것이 없다고 말하자 천사가 장로님에게 그러면 저 쪽에 있는 것들을 살펴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그곳에는 개털모자만 진열되어 있었답니다.
    "저것을 쓰라고요?"
    "어떻게 쓰겠습니까?"
    그래도 한 번 써보라는 천사의 말에 개털모자 하나를 집어 들고 머리에 써 보니 딱 들어맞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명색이 장로인데 이것은 아니야!" 하고 소리치고 깨보니 꿈이었답니다. 

    계 장로님은 전 교인들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하고 키우던 개를 모두 팔아 건축헌금으로 드렸고, 밭도 예배당을 짓는 터로 바치고 예배당을 아주 잘 짓고 수년 동안 진실하게 봉사하다가 천국에 가셨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소개하며 임영재목사님께서는 부흥회를 인도할 때마다 "여러분은 절대로 개털모자나 받는 성도가 되지 말라"고 설교하셨습니다.

    (도입 이야기) -

    토인비(Arnold Toynbee)에 의하면 지구상에 등장한 문명은 스물여섯 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문명들은 거의 대부분 몰락해서 폐물이 되어 용도 폐기되어 버렸다.
    이러한 문명의 몰락은 외적인 힘에 의한 침략에 그 원인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부패가 문명의 기반을 삼켜버려 일어난 것으로 토인비는 진단하였다.
    내부의 부패는 그들에게 닥쳐온 여러 가지 도전을 창조적으로 대응치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로마는 외침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부의 타락이 멸망의 주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로마 문명뿐이겠는가. 이집트나 바빌로니아, 사라센 문명도 그 몰락의 직접 원인은 내부의 타락에 있었다.
    남의 이야기로만 느껴진다면 이 땅의 왕조들의 멸망 원인을 조사해 보아도 동일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슈펭글러(Oswald Spengler)도 ‘서구의 몰락’에서 같은 결론을 제시했었다.

    신학과 교회를 혁신하지 않으면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역사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많은 신학자들이 경고하였었다.
    몰트만(Jurqen Moltmann) 같은 이는 그 징후가 이미 서구교회에 나타나고 있음도 지적하였었다.
    기독교의 적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힘은 사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부패와 타락에 있음을 모르는 목사들은 아무도 없으리라.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은 가룟 유다였다.
    예수님을 적대하던 자가 아니라 가까운 데서 따라 다녔던 자였다.

    지난 주일 황목사님께서 "부활과 생명"에 대한 설교에서 아주 강렬하게 마음에 꽂히는 성구가 있었습니다.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데살로니가후서 3:2b)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for not everyone has faith.

    믿는 자를 보겠느냐?
    누가복음 18:8b
    인자가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믿음이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면 면류관도 모든 사람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팬데믹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은 반드시 믿음을 회복해야 하고 면류관도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사용된 면류관에 관한 구절

    한글 개역 성경에서 면류관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을 살펴보면 56구절로 검색됩니다.
    구약에서 34구절
    신약에서 22구절

    베드로전서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And when the Chief Shepherd appears, you will receive the crown of glory that will never fade away.

    * 영광의 면류관(δόξης στέφανον, of glory crown)

    면류관은 무슨 의미인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면류관은 세 가지 단어로 구별되어 있다.
    그런데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구별 없이 사용해버려 진정한 그 뜻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아쉽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단순히 표면적인 내용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디아데마(diadehma, διαδήματα) - 계 12:3, 13:1, 19:12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1238) - royal crowns, a diadem, a crown
    Usage : a head-wreath, crown, diadem. 

    통치와 지위를 의미하는 왕관, 머리띠라는 뜻이 있는 데 diadewo(디아데오, 둘러매다)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스테파노스(stefanos,  στέφανος)

    * 면류관(stephanos. 4735) : that which surrounds, i.e. a crown
    Usage : a crown, garland, honor, glory.


    나뭇가지와 잎으로 엮은 것으로 승리한 자만이 받는 우승관을 의미한다.
    특히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의 이름의 음역과 똑같은 발음이며 뜻도 동일하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1. 가시 면류관(마 27:29, 막 15:17)
    2. 썩을 면류관(고전 9:25)
    3. 기쁨의 면류관(빌 4:1)
    4. 소망, 기쁨,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
    5. 의의 면류관(딤후 4:8) 
    6.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약 1:12)
    7.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8. (흰말 탄자)면류관(계 6:2)
    9. 면류관(계 3:11)
    10. 금 면류관(계 4:4)
    11. 자기의 면류관(계 4:10)
    12. 금 같은 면류관(계 9:7)
    13. 열 두별의 면류관(계 12:1)
    14. 금 면류관(계 14:14)  

    미국의 작가 토마스 불핀치(Thomas Bulfinch, 1796. 7. 15~1867. 5. 27)의 신화(Mythology) 라는 작품은 희랍과 로마의 신화를 이야기식으로 발표한 것입니다.
    신화라는 작품 중에 "아폴로(Apollo)와 다피네(Daphene)"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아폴로는 전쟁이 영웅입니다.
    어느 날 아폴로가 개선장군으로 거리를 행진할 때 마침 작은 소년 에로스가 활과 화살을 갖고 있습니다.
    아폴로 장군은 에로스에게 활과 화살은 장난감이 아니라고 비웃습니다.
    그런데 에로스가 갖고 있는 화살은 금촉과 납촉으로 아주 신비한 화살입니다.
    에로스가 쏜 화살을 맞은 사람은 내가 무슨 화살을 맞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에로스는 이폴로에게 금촉 화살을 쏘았고 다피네에게는 납촉 화살을 쏘았습니다.
    이때부처 아폴로는 다피네를 사모하여 다피네를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다피네는 아폴로를 보기만 하면 소름이 돋고 보기싫다고 도망다닙니다.
    어느 날 아폴로가 작정을 하고 다피네를 추격합니다.
    아폴로의 손에 다피네가 붙잡힐 때 다피네는 숲의 신 아버지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외칩니다.
    그 순간 다피네가 상록수라는 나무로 변합니다.
    아폴로가 분명히 다피네를 붙잡았는데 눈을 떠 보니 나무가 된 것입니다.
    아폴로는 그토록 사랑하던 다피네가 나무가 된 것을 안타까워 하며 "영원히 푸른 나무가 되어라!"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이 나무를 월계수라고 합니다.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마라톤 경주의 우승자에게 월계수 나무를 엮어 머리에 씌워주므로 영원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스테파노스 라는 면류관은 우승한 사람에게 씌워주는 면류관이라고 하겠습니다.

    스템마(stemma, στέμματα) 꽃으로 엮은 화관(행 14:13)

    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 화관(花冠) - στέμματα 
    -  στέμμα(4725. stemma) 
    Definition : a wreath
    Usage : a garland, wreath, crown   

    이같이 구별된 헬라어처럼 번역에서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특히 계시록을 연구할 때도 구별하여야 합니다(계 6:2, 9:7, 12:3, 13:1)

    면류관이라는 단어를 분석하면 새벽이라는 단어와 아침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뜻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다니는 분들에게도 면류관을 얻게 되는 은총도 되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자에게 그리고 깨달은 진리를 하나님의 씨를 뿌릴 수 있는 밭을 가진 자를 찾아가서 전하는 차원으로 발전되어질 때 얻어지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면류관을 아니 우승관을 받는 은총이 있기를 바란다.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면류관(冕旒冠)의 다양성
    - 요한계시록에 11회 사용되었다.

    * 면류관(στέφανον
    - 생명의 면류관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 στέφανος(4735. stephanos) ; 2:10, 3:11, 4:4, 4:10, 6:2, 9:7, 12:1, 14:14
    Definition : that which surrounds, a crown
    Usage : a crown, garland, honor, glory.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 διάδημα(1238. diadéma  ) ; 12:3, 13:1, 19:12
    Definition : a diadem, a crown
    Usage : a head-wreath, crown, diadem.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면류관(στέφανον) 
    - 생명의 면류관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 στέφανος(4735. stephanos) 
    Definition : that which surrounds, a crown
    Usage : a crown, garland, honor, glory.   

    요한계시록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 면류관(στέφανόν) 

    요한계시록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금 면류관(στεφάνους χρυσοῦς) 
    요한계시록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 면류관(στεφάνους)

    요한계시록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면류관(στέφανος)

    요한계시록 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 금 같은 면류관(στέφανοι ὅμοιοι χρυσῷ) - crowns like gold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 면류관(στέφανος)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 διάδημα(1238. diadéma  )
    Definition : a diadem, a crown

    Usage : a head-wreath, crown, diadem.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 금 면류관(στέφανον χρυσοῦν)

    요한계시록 19: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 면류관(διαδήματα) - royal crowns

    사도행전 7:59∼60,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스데반(Στέφανον) 

    -  Στέφανος(4736. Stephanos)  ,
    Definition : "crown", Stephen, the first Christian martyr

    Usage : Stephen, one of the seven original deacons at Jerusalem, and the first martyr.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William Yi 

    계시록에서 디아데마는 계시록 12:3, 13:1, 19:12에 3번 쓰였습니다.
    주로 왕관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이 세 번 사용된 문맥도 왕적인 힘과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스테파노스는 대부분 신약성경 전반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면류관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관 또는 왕관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계시록에서는 신분을 나타내는 용도로 많이 쓰였습니다.
    승리, 기쁨, 영광, 등의 의미로도 쓰였지만 이것도 신분적 상태를 나타내는 간접적인 용도로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면류관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   



    1. [마태복음 27: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며

    2. [마가복음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3. [요한복음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4. [요한복음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5. [고린도전서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6. [빌립보서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7. [데살로니가전서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8. [디모데후서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9. [디모데후서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0.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1. [베드로전서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12. [요한계시록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3. [요한계시록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4. [요한계시록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15. [요한계시록 4: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6. [요한계시록 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17. [요한계시록 9: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18. [요한계시록 12: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19. [요한계시록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20.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21. [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22. [요한계시록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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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요성서학당 # 19(10-21-20)

    믿음이란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NIV)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KJV) Behold, his soul which is lifted up is not upright in him: but the just shall live by his faith.
    (NASB) Behold, as for the proud one, His soul is not right within him;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소개하기 전에 최근 제가 경험했던 한 사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느 의사는 방문하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의사가 이런 기독교 용어를 자주 사용하면 마치 믿음이 좋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 누가 자기 집 근처에 약국을 시작했는데 진찰을 받은 환자들의 약 처방전을 동의도 없이 그 약국으로 보냅니다.
    원래 약국은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이 D약국에서 60% 정도 라고 합니다.
    결국은 가족이 운영하는 약국을 위하여 이미 지정된 약국을 마음대로 변경한 것입니다.
    마치 믿음이 좋은 것처럼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일을 처리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가?
    과연 이런 것이 믿음일까?

    결론부터 소개합니다.

    " 믿음이란 기준을 바르게 정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성경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1st. 하박국 2:4b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믿음"이란 단어에 "" 라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 라는 정관사가 사용될 때는 "믿음"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일부분을 말합니다.
    제한된 믿음을 말합니다.

    킹제임스 한글 성경에서는 "그 믿음"을 "자기 믿음"이라고 번역합니다.
    믿음의 기준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의 기준이 사람이 될 때부터 이미 복음에서 어긋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믿음을 히브리어로 "에무나" 라고 합니다.
    에무나의 뜻은 "진실" "성실"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진실하게 살리라" 또는 "성실하게 살리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방법도 진실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믿음의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따라야 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익과 유익을 따라 살아갈 때는 이미 복음의 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를 남 유다북 이스라엘로 구분합니다.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라고 하겠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라고 하겠습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지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오놋(3:1)" "영장(3:19)"과 같은 전문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레위 자손으로 측정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좁은 생각과 의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날 것이고 실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현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파 정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장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법대로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도록 법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치안을 맡은 경찰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부까지도 때로는 판단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제는 기도할 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물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은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 이라고 서두에 소개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발생했던 문명들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고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때문에 무너지고 망했다고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문명고 한국의 문명도 무너질 때는 외부의 침략적인 전쟁보다는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의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25%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라고 한다면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체재를 갖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체재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의라고 하겠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한 마디로 "공감(共感)"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Sympathy, Empathy 라고 하겠습니다.
    공감대(共感帶)를 Bond of Sympathy
    공감이란 단어의 뜻은
    1. 다른 사람의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에 대하여 자기(自己)도 똑같이 느끼는 것.
    2.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같는 것.

    예를 들면 아직도 남한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자기 집을 온갖 쓰레기로 채워놓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기관의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하여 동네 부녀회와 청소 업체에서 발벗고 나서 그 사람은 병원으로 안내하여 검사를 받게 하고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모두가 힘을 모아 쓰레기가 선더미처럼 쌓였던 집을 깨끗하게 청조하고 정리한 후 심지어 새로운 가구까지 들여놓고 다시는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남한 모두 먼저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2nd. 데살로니가후서 3:2b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 For all men have not faith.)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특히 불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세계삼대 종교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이지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에 에 따라 신앙생활을 할 경우의 믿음과 생명으로 믿는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생명의 믿음이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먼저 생각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3rd. 마태복음 5:26-30

    공중
    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란 첫째는 도덕, 둘째는 상식, 셋째는 양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산상복음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 17을 다락방 복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준을 바르게 찾고 정하려면 먼저 산상복음과 다락방 복음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4th. 고린도전서 12:9a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To another faith by the same Spirit.)

    기독교를 생명으로 믿는 성도들은 믿음을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은사로 받은 믿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많은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분쟁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 당파를 만들었습니다(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방언의 종류에 따라 분쟁했습니다(어떤 방언을 하느냐?)

    - 김종수목사님(태능 영세교회), 천국 방언(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 왜 방언이 필요한가?
      (어느 농촌교회의 목회자와 가정부의 아들)

    5th. 누가복음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And the Lord said, If ye had faith as a grain of mustard seed, ye might say unto this sycamine tree, Be thou plucked up by the root, and be thou planted in the sea; and it should obey you.)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라고 하였는데 겨자씨는 모든 씨앗들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아마 채송화 씨앗처럼 아주 작은 씨앗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겨자씨 한 알을 방바닥에 떨어트린다면 마치 먼지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씨앗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가 뿌리채 뽑혀 바다에 던져질 수 있다고 합니다.

    6th. 디모데전서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Holding on to faith and a good conscience. Some have rejected these and so have shipwrecked their faith).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양심을 버리면 그 믿음은 파선한 믿음입니다.

    7th. 야고보서 2:26

    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이란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죽은 믿음은 무엇일까요?

    8th.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

    죽은 믿음이란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하박국서소선지서에 속한 책으로 3장으로 구성된 비교적 내용이 짧은 말씀입니다.
    하박국이란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 라고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를 남 유다북 이스라엘로 구분합니다.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라고 하겠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라고 하겠습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지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오놋(3:1)" "영장(3:19)"과 같은 전문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레위 자손으로 측정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좁은 생각과 의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날 것이고 실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현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파 정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장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법대로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도록 법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치안을 맡은 경찰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부까지도 때로는 판단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제는 기도할 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물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은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 이라고 서두에 소개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발생했던 문명들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고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때문에 무너지고 망했다고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문명고 한국의 문명도 무너질 때는 외부의 침략적인 전쟁보다는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의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25%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라고 한다면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체재를 갖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체재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의라고 하겠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한 마디로 "공감(共感)"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Sympathy, Empathy 라고 하겠습니다.
    공감대(共感帶)를 Bond of Sympathy
    공감이란 단어의 뜻은
    1. 다른 사람의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에 대하여 자기(自己)도 똑같이 느끼는 것.
    2.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같는 것.

    예를 들면 아직도 남한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자기 집을 온갖 쓰레기로 채워놓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기관의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하여 동네 부녀회와 청소 업체에서 발벗고 나서 그 사람은 병원으로 안내하여 검사를 받게 하고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모두가 힘을 모아 쓰레기가 선더미처럼 쌓였던 집을 깨끗하게 청조하고 정리한 후 심지어 새로운 가구까지 들여놓고 다시는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남한 모두 먼저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파트리스교회가 후원하는 기관들의 후원을 멈추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후원을 받는 기관의 책임자의 말이 흔들렸던 제 마음과 생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도록 멈추게 했습니다.
    "너무 많은 후원자들이 더 이상 후원을 할 수 없다"며 후원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19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는데 파트리스교회마저 끊어야 하겠는가?
    정말 끊어여 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후원을 계속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적은 믿음과 큰 믿음

    믿음이 자은 자들은 누구인가?

    첫째,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힌 자(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적은(a little faith)

    둘째, 문제에 당면했을 때, 무서워 하는 사람(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셋째, 두려워하는 사람(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믿음이 큰 사람은 누구인가?

    첫째,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 이만한 믿음 (Great Faith)

    둘째, 주인을 아는 사람(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 손에 손톱이 있습니다. 발에는 발톱이 있습니다.
    손톱과 발톱이 누구 것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톱과 발톱이 내 손과 내 발에 있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입니다.
    왜 착각이냐 하면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톱과 발톱이 내 말을 듣습니까?
    내 삶의 내 생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내 삶의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주인입니까?

    개들의 주인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주인도 있습니다.
    그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설득하는 믿음을 보며 그과부가  큰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면서 그딸을 고쳐 주었다 (마 15:21-28)

    (예화) 바람 몸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바람 몸살이란 나무를 옮겨서 이식할 때 옮겨진 곳에서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려면 악력(握力)이 4배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악력(握力, 쥘 握. 힘 力. Grip)이란 "물건을 쥐는 힘"을 말합니다.

    성경적 믿음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리려면 얼마의 힘이 필요할까요?
    나무가 4배의 악력이 필요하다면 사람은 그 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대략 10배가 더 필요하다고 환산하면 약 40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적인 믿음을 내 삶에 적용하려면 성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악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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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지 않음과 믿음의 결핍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믿지 않음 즉 불신(不信)이라고 하겠다.
    불신이란 믿음의 결핍 현상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예수님도 기적을 일으킬 수없었다(마가복음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요셉유다시몬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그의 부활을 본 증인들의 말을 믿지않은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결핍했다고 꾸짖기도 하였다(마가복음 16:14).

       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믿음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완악한 증거라고 하겠다.


    약한 믿음과 강한 믿음(로마서 14:1-23)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이는 신앙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많아서 분별력이 있어서 현실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이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약한 믿음을 가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서 처신할 것을 권하는 의도가 있다.   

    믿음은 바뀐다

    성경이 제시하는 믿음은 바뀐다.
    일시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누가복음 8:13).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또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제자들이 자신을의 믿음을 증가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과
    예수님이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는 것(누가복음 17:5-6)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믿음의 조심성

    성경은 믿음이 선별적임을 보여 주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곧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 아무거나 다 믿으나 지혜있는자는 행동하기전에 심사숙고 한다는 것이다(잠언 14:1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정리

    믿음은 봄으로, 체험으로, 실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인정하고 의심않는 것뿐만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미리 알지 못했어도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증언이나 말만으로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는 경우이고 우리 삶에서 겪는 것이다.
    어렸을 때, 또 자라면서, 우리는 부모를 비롯해서 많은 권위적인 사람들과 상징들, 선생님들, 정치 사회 지도자들의 교훈, 우리가 읽는 고매한 사상가들의 책들, 전통, 풍습, 언어 등, 문화의 영향에 무의식적으로 믿음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천차만별의 자기만의 믿음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곧 “마음으로 꼭 그렇게 인정하거나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각하는”과정에서 무한한 각자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확인해 간다.
    “생각하는” 나는 이 믿음이라는 창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통해서 일생동안 나의 사고의 틀과 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믿음에 대해서 기독교의 성경은 훨씬 특정된 의미의 믿음을 정의하고 있으니, 곧 천지 창조자와 그가 보내서 세상에 온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곧, 그전능자와 그가 인간에게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인류에게 전해 준 모든 교훈과 그 장래에의 약속에 대한 신앙과 신뢰라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모든 것, 곧 믿음의 결과인 복종의 요구, 행동에의 필연성, 또 모든 선택과 결정이 믿음을 선행해야 한다는 조건의 논리는 결코 신중한 사고와 행동에의 책임을 묻는 데서 성숙을 기대한다.
    그러나  참으로 격려적인 것은 신앙은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신앙에 수준이 있는 데, 곧 갓태여난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철이 들고 분별력이 생기고 성숙해지면서 지혜자가 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간다는 것이다.
    신앙 정도가 있어서 약한 믿음이 지식을 얻음으로 강한 믿음, 성숙하는 믿음, 큰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이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허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과정은 일생에 걸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믿음에는 첫믿음이 있다.

    이것은 시작인 만큼 미약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생애를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사전 지식이 있던지, 없던지 간에, 믿음은 관계의 시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게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경우도 그러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도 관심을 가져 보기로 작정하는 것의 중요성. 이것은 아주 쉬운, 가벼운 정도의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않을 것인가하는 기로에서, 파스칼의 제안은, 하나님이 있다는 가정에 도박하라는 것은, 이런 첫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단 있다는 쪽을 선택해서 계속 찾다 보면,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음을 본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경우 그내용은 믿음의 정도, 수준의 문제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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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로운 사람은 그 믿음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
    악인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므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나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11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합니다.

    1. 형제
    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장에서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합니다.
    은사의 종류를 헤아려 보면 9가지로 소개됩니다.

    1. 지혜의 말씀
    2. 지식의 말씀
    3. 믿음
    4. 병 고치는 은사
    5. 능력 행함
    6. 예언함
    7. 영들 분별함
    8. 각종 방언 말함
    9. 방언들 통역함

    다양한 은사들 9가지 중에 네번째 은사를 "믿음" 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이야기)
    어느 가정에서 할머니는 시골에 거주하시며 절에 다니시는 불자(佛者)입니다.
    손녀딸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데 서울에 거주하며 교회에 다니는 신자(信者)입니다.
    할머니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손녀딸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므로 대학에 입학해야 하므로 매일 불공을 드리고 부처님에게 손녀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기도합니다.
    손녀딸과 어머니는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딸을 위하여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불자인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아니면 며느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생각하니 가슴디 답답하여 사찰의 주지 스님을 만나서 집안 사정 이야기를 하며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사찰의 주지 스님께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실력이니 열심히 공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소문난 사찰의 스님을 찾아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그렇게 속이 좁지 않다.
    그러니 할머니가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기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이러한 사례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은사라고 합니다(고린도전서 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데살로니가후서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And pray that we may be delivered from wicked and evil men, for not everyone has faith.


    믿음이란 기준을 하나님(성경)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동일한 업종의 가게를 운영하는 업주가 있습니다.
    한 가게의 업주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게가 잘 운영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다른 가게의 업주는 부처님을 향하여 가게가 잘 운영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가게의 업주가 기도하는 것이 응답될까요?

    아마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는 업주의 가게가 잘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반면에 절에 다니는 불자들은 부처님을 믿는 업주의 가게가 잘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태복음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태복음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태복음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하박국
    -
    하나님과 대화로 의심의 해답을 찾은 선지자

    1. 인적 사항
     (1) 하박국은 '껴안은 자', '매달리는 자'라는 뜻.
     (2) 남유다의 선지자(합 1:1).
     (3) 하박국서 저자.
     (4)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 또는 성가대원으로 추정(합 3:19) 

    2. 시대적 배경
    하박국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와 신바벨론 제국의 창건자 나보폴라살(B.C.625-605년)과 메대의 시악사레스(B.C.625-585년)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B.C.612년부터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제1차 침입을 당했던 B.C.605년 사이에 주로 활동한 선지자다.
    이 시기에 남유다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의 통치 시대로서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이다.

    3. 주요 생애

     (1) 출생
     (2) 남 유다의 종교적 도덕적 죄악의 심각성을 인식함  1:3-4
     (3) 남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의로 BC 612-605, 1:2-4
     (4) 갈대아로 인한 남유다의 심판에 대한 항변 1:12-2:1
     (5) 하박국서 기록 1:1
     (6) 죽음

    4. 성품
     (1) 자기 백성의 죄악 됨을 보고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만큼 진정한 애국심의 소유자(합 1:2-11)
     (2) 이해할 수 없는 신앙문제로 혼자 고민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하나님께 아뢰고 해답을 찾고자 한 것을 볼 때 용기 있고 지혜로운 자(합 1:2; 2:1)
     (3)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에 재차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변을 기다리고 바랄 만큼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사색가(합 2:1).

     

    5. 구속사적 지위
     (1) 구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송 중의 하나인 송시(頌詩)를 남긴 선지자(합 3장)
     (2)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위대한 진리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선포한 자(합 2:4) 

    6. 평가 및 교훈

     (1) 하박국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일어날 때에 혼자 고민하며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해답을 얻고자 하였고 하나님께만 끈질기게 매달렸다(합 1:2-4).
     오늘 우리도 성도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앙문제로 심각한 고민과 낙심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주와 역사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줄을 알고 그 분께 매달리는 하박국과 같은 참된 지혜자가 되어야 하겠다(롬 11:33).

     (2) 자기 백성의 범죄 함을 보며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박국처럼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의 범죄 함을 볼 때 안타까움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가? 혹 온 사회에 만연하는 불의함 때문에 오히려 넘어지고 마는 힘없는 자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3) 하박국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증거 한다(합 2:4).
    이는 단지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외치는 교리적 선언이 결코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과 문제를 실제로 체험하고 깊이 상고해 본 결과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하는 신앙고백이다.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이같은 신앙고백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하바국

    하박국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3장(구약 929장), 56절(구약 23,191절), 670단어(구약 304,901단어), 약 2,500자(구약 약 116만자)로 이루어진다.

    하박국서의 히브리어 이름은 ‘하박국( חֲבַקּוּק )'이다.
    칠십인역에서 ‘암바쿰(Ἀμβακούμ)'이라고 한다.
    불가타에서는 ‘Habacuc’, 영어성경에서는 ‘Habakkuk’, 그리고 중국어성경에서는 ‘哈巴谷書’이라 불린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박국 1장 5절(행 13:41), 2장 3~4절(히 10:37~38), 2장 4절(롬 1:17, 갈 3:11, 히 11:1~12:2)이 인용된다.
    사도 바울은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하박국을 인용한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은 오직 이 책의 표제와 시에만 나오며(1:1; 3:1)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하박국은 왜 주님의 정의는 이렇게 악하고 부패한 시대와 사회와 인간들에게 시행되지 않는가 묻는다.
    야훼 하나님은 불의한 백성과 왕들은 반드시 벌을 주고 징계할 것이라고 대답해 주신다.
    갈대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범죄한 유대 민족과 왕들을 벌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하박국은 종교적 세계관의 중심 문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궁극적 대답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이다(하박국 2:4).


    역사적 이해

    하박국은 이스라엘 역사 구분에서 분열왕국시대라고 한다.
    하박국은 갈대아 우르 사람들이 일어난 때인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6세기 초까지 쓰여졌다.
    이 때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하박국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그리고 요엘 등과 동시대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비평학계 일부에선 갈대아 인들을 깃딤인 곧 헬라인으로 간주하여 극단적으로 늦은 시기로 잡는 사람들도 있다.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난 시대(1:6)를 고려할 때, 이 책의 내적인 증거는 저작 연대에 대한 확고한 시기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비평학계는 이러한 자료에 언제나 만족하지는 않았다.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보다 이전의 판본이 정말 3장의 시로 끝이 났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는데. 이 시가 현재처럼 이 책의 결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구조와 개요

    구조는 글의 구성요소를 규명하는 단계, 각 요소의 배열을 분석하는 단계, 구조의 의미를 파악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하박국 장르 이해는 설화, 시, 예언, 신탁 등에 대한 분석이다.

    첫 부분은 선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선지자는 애가의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함으로 시작한다.
    악인의 형통에 대한 불평에 대해서 주님은 갈대아인을 통해서 벌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보다 더 큰 불평이 이어진다.
    주님께서 악인을 들어서 선민을 치시는 것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에서 주님은 그 심판의 확실성을 재차 확인하셨다.
    3장은 고어체적인 히브리 시로 구성되어 있다.

    1. 일반적인 하박국 구조 : 하박국서의 선형 구조

    A  최초의 대화(1:2~11)
     a 선지자의 불평(1:2~4)
     b 주님의 응답(1:4~11)

    B 두 번째 대화(1:12~2:5)
     a 선지자의 불평(1:12~17)
     b 주님의 응답(2:1~5)

    C 압제자들에 대한 저주의 신탁(2:6~10)
     a 노략자가 노략될 것임(2:6~8)
     b 정복자가 수치를 당할 것임(2:9~11)
     c 건축자가 헛됨(2:12~14)
     d 수치가 없는 자가 수치를 당할 것임(2:15~18)
     e 우상 숭배자들이 잠잠할 것임(2:19~20)

    D 하박국의 순종의 시(3:1~19)
     a 기도(3:2)
     b 용사이신 하나님의 등장(3:3~15)
     c 믿음으로 사는 선지자(3:16~19)

    하박국의 대칭 구조

    A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1:2~4)
    B 야훼의 첫 번째 대답(1:5~11)
    C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1;12~17)
    D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됨(2:1~5)
    C' 두 번째 불평에 대한 주님의 대답(2:6~20)
    B' 야훼의 마지막 대답(3:1~5)
    A' 첫 번째 불평에 대한 하박국의 마지막 대답(3:16~19)

    이 책의 첫 부분(1:2~2:5)은 하나님과 선지자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1:2~4와 1:12~17에서와 같은 애가 양식은 시편의 애가시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시편에서는 보통 이러한 애가시들은 주님께서 그 시편 기자의 불평을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고, 보호하시며 그나 이스라엘의 적들을 심판 하실 것을 확약하시는 주님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하박국은 “왜 악인이 번성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며, 유다에 힁행하고 있는 악과 불의와 폭력에 대해서 불평했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선지자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되, 이를 위해서 유다의 악보다 더 악한 악을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며, 보다 악한 이들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 선지자의 두 번째 불평을 도입하는데(1:12~17)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참아 보실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 자신들보다 의로운 자들을 집어삼키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가(13절)?
    그들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그들의 그물을 채우며, 계속해서 사치롭게 살 것인가(16~17)? 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보려고 파숫군처럼 인내하며 기다린다(2:1).

    2. 돌시의 하박국 구조 : 돌시는 에스델 구조를 7중 대칭구조로 분석한다. 돌시의 하박국 구조

    A 1:2~4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
    B 1:5~11 야훼의 첫 번째 응답
    C 1:12~17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
    D 2:1~5 기다리라는 권고
    C′ 2:6~20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에 대한 야훼의 응답
    B′ 3:1~15 야훼의 마지막 응답
    A′ 3:16~19 야훼의 첫 번째 응답에 대한 깨달음

    돌시는 하박국을 7중 대칭구조로 보았다.
    이 구조에서는 핵심부분(D, 2:1~5)이 ‘기다리라는 권고’를 한다.

    신학적 이해

    하박국은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다.
    내적으로는 부패하였으며, 신흥하는 바빌론의 세력으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선지자는 이런 정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시다고 불평을 하고 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나아가서 온 땅에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했다.
    결국 하박국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며,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하박국은 내적인 부패로 썩어 있었으며 새롭게 부각하는 바빌론의 세력이 곧 성전과 도성을 멸망시킬 운명에 있는, 역사적 마지막 시기의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지만, 선지자의 시각으로는 이러한 이중의 악이 힁행하는 가운데 주님은 활동하시지 않고 무관심 하신 것처럼 보였다.

    많은 학자들은 하박국의 불평들을 욥기와 비교 했는데, 욥처럼 이 선지자도 아무리 현상이 반대로 된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정황이 어려워 보여도 계속해서 주님의 약속들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온 땅의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함을 배웠다.

    또한 믿음으로 사는 법과,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까지 배웠다.
    이후 수백년 후에 다시 악과 불의가 전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흥왕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은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징되는 성전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조롱하였지만, 이 선지자는 주님을 신뢰했으며(마태복음 27:43: 히브리서 10:35상),
    주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서 그를 변호하셨다(로마서 1:4).
    예수의 부활은 멀리 계신 게 아니며,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이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노예 매매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집에 죠(Joe)라는 노예있었는데 일을 잘했다.
    그래서 주인은 죠를 사랑했고, 무엇을 하든지 의논을 해서 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사기 위해서 노예 시장을 죠와 같이 가게 되었는데 상품처럼 진열된 많은 노예 중에 늙고 야윈 검둥이 노예가 하나 있었다.

    "죠"는 잠시 바라보다 주인에게 저 늙은 노예를 사라고 했다.
    그때 주인이 아니 살찌고 젊은 노예가 많은데 왜 늙은 것을 사야 하느냐고 하면서 거절을 하였다.
    그러나 "죠"는 계속 우겨 결국은 사오게 되었는데 "죠"는 정성스럽게 잘 돌봐 주었다.

    이것을 주인은 먼 거리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느 날 "죠"를 불러 너는 왜 늙은 노에를 사라고 했으며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돌봐주는데, 혹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죠"는 아닙니다. 주인님! 그는 "나의 원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 그는 나를 유괴해서 지금 주인님께 판 자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나갔던 그날 거기서 그를 보았을 때, 한 작은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 왔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이마르거든 마시우라"(로마서 12:20)
    저는 크리스챤이 되었는데 그를 돕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를 초월한다.

    마태복음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6-28,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3536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Be merciful, just as your Father is merciful.)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사랑의 기준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기록된 말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거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오늘의 묵상(10월)


    오늘의 묵상(10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1

    고린도전서 10:1∼33

    신령한 반석(4절)

    10

    2

    고린도전서 11:1∼34

    주의 만찬(20절)

    10

    3

    고린도전서 12:1∼31

    더욱 큰 은사(31절)

    10

    4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1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0: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신령한 반석(4절)
    ♦ 성구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신령(神靈)한 반석(磐石) The Spiritual Rock”

    사도 바울은 히브리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영적 생활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은 것은 신령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또한 반석을 쳐서 물이 나와 모든 사람들이 마셨던 것을 신령한 음료라고 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경배한 것은 간음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신랑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향한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 죄가 되어 장대에 구리 뱀을 만들어 매달고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회복되었지만 거부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오실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광야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히브리 백성을 신령한 백성으로 다듬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략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전략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듬고자 합니다. 전염성이 강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세 가지 기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읽지 않는 기적
    둘째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는 기적
    셋째는 성경을 읽지도 않고 전도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기적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전염병이 닥쳐오기 전에 우리들의 약점을 지적하는 세 가기 기적을 생각하며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노인들과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지켜주시옵소서.
    빈곤층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 계층에게 그들의 필요가 공급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 할 기회가 없어 삶의 염려에 붙잡힌 사람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 찬양 / 전능왕 오셔서

    https://www.youtube.com/watch?v=tySNuzGINh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1:1∼34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만찬(20절)
    ♦ 성구 :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When you come together, it is not the Lord's Supper you eat.

    “주의 만찬(晩餐) the Lord's Supper”    
    주의 만찬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실 때, 떡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합니다. 주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 안의 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심으로써 주를 기념하며 주의 만찬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행하므로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합당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이는 물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을 통하여 약속하신 은혜를 확신하며 그 은혜 안에서 함께 성장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원인 중 하나가 성찬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찬예식과는 다르게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만찬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진행한 결과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은 만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지요. 먼저 참석하는 사람들은 생활이 넉넉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던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부유한 계층과 늦게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소외된 계층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분쟁 소식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은 음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위한 것이라고 깨우칩니다.

    주의 만찬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베푸셨던 유월절 만찬을 생각하며 함께 나누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깊이 참여하겠다는 고백적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곧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오직 주님만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학계 종사자들과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를 위한 백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를 내려주셔서 속히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이 질고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 찬양 / 예수 따라가며

    https://www.youtube.com/watch?v=5epxlhsh5O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3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2: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더욱 큰 은사(31절)
    ♦ 성구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더욱 큰 은사란 "아가페 사랑(agape)"을 말합니다.
    왜 아가페 사랑을 더욱 큰 은사라고 하였을까요?
    은사란 선물을 말합니다.
    "카라" 라는 헬라어는 기쁨을 말합니다.
    기쁨이란 카라에서 "카리스(은혜)"라는 단어가 파생하였고, 카리스에서 "카리스마(은사)"라는 단어가 파생합니다.
    따라서 은혜와 은사는 기쁨의 열매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큰 기쁨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청춘 남녀가 서로 만나 교제하다 결혼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이란 희생적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10월 1일 조카 이동훈목사(Jacob Lee, 36세)를 Long Island Pinelawn 공동묘지에 안장을 했습니다. 조카며느리가 라헬(Rachel, 31세)입니다. 세 명의 어린 자녀들(5세, 3세, 1세)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할 텐데 참으로 대견스럽게 하관예식을 지켜보며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랑의 힘과 신앙의 힘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하여 나를 버리고 희생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랑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믿음도 선물 즉 은사라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지 못하지만 은사로 주신 믿음은 믿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라헬이 태어났을 때 병원의 간호사가 산모에게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 것이냐? 라고 물었을 때 마침 비가 오는 날이라 "레인(Rain)" 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간호사가 그런 이름이 어디 있느냐? "라헬(Rachel)" 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라헬(Rachel)이 야곱(Jacob)을 만났습니다.
    버팔로 대학에서 서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고 믿음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라헬에게 우리 집안으로 시집을 오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고 하였을 때 기꺼이 승낙하고 결국에는 두 사람이 필라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과 기독교 상담 심리학을 마치고 미국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하여 열정적으로 일을 하던 중 먼저 동훈목사가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믿음은 은사로 주어진 것이라고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된 믿음의 동지들이여!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믿음을 회복하여 남은 때를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섬길 수 있는 은총의 삶을 위해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팬데믹이란 수용소에 갇혀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내가 젊기 때문에 어떤 질병도 이길 수 있다는 무모한 용기를 버리고 자기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늘 조심하며 질병을 퍼뜨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옵소서.
    또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돕고자 하는 마음을 자극하여 주옵소서.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5

    고린도전서 13:1∼13

    제일은 사랑이라(13절)

    10

    6

    고린도전서 14:1∼40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1절)

    10

    7

    고린도전서 15:1∼58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10

    8

    고린도전서 16:1∼24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절)

    10

    9

    고린도후서 1:1∼24

    위로의 하나님(3절)

    10

    10

    고린도후서 2:1∼17

    그리스도의 향기(15절)

    10

    1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5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제일은 사랑이라(13절)
    ♦ 성구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제일은 사랑이라(The Greatest Love)”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
    믿음과 소망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아가페)이라고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사랑을 강조하였을까요?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은사는 초대교회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핍박 가운데서도 굳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의 몸이 되는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할 성도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서로 자기의 은사가 제일이라고 분쟁하는 고린도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사랑이 식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4:12).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들에게 사랑이란 가장 위대한 힘이 될 것입니다.
    먼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과 사랑이 부딪치며 소리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누가 18:8).
    올바른 믿음을 회복합시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합시다.
    등과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등은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기름이 없으면 등을 밝힐 수 없겠지요?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며 오늘은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국민들을 혼란 가운데로 빠트리지 않는 정확하고 신속하며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찬양 / 세상 모두 사랑 없어

    https://www.youtube.com/watch?v=OtPdHLf3h4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6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4: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1절)
    ♦ 성구 :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Follow the way of love and eagerly desire spiritual gifts, especially the gift of prophecy.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desire spiritual gifts)”
    신령한 것이란 영적 은사를 말합니다.
    영적 은사를 사모하되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신령한 은사가 강할지라도 사랑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사를 받았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덕(德)을 세우는 것입니다(고전 8:1)
    신령한 은사도 덕을 세워야 합니다.
    만일 신령한 은사를 덕으로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 은사는 오히려 해(害)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쟁(分爭)하는 교회이었습니다(1:12).
    분쟁의 원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바울, 게바, 아볼로, 그리스도파와 같은 분파로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음행(淫行)하는 교회이었습니다(5:1).
    아버지의 아내를 아들이 범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 잘못이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우상(偶像) 제물(祭物)을 마음대로 사용했던 교회이었습니다(8:1).
    믿음이 약한 사람은 우상 제물을 먹을 만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만일 그런 모습을 보면 신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먹을 수 있는 지식과 믿음이 있을지라도 먹지 않을 수 있는 절제가 더 중요하다고 깨우칩니다.

    세속적인 사상이 오늘의 교회를 위협합니다.
    마치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수용하는 것이 폭넓은 신앙처럼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인 미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멈출 수 있는 것도 신앙인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정부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이 자기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코로나 전염병을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여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감염자들에게 신속한 의료지원과 회복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가 실현되어 모두가 함께 건강한 사회를 자랑하게 하옵소서.

    ♪ 찬양 / 전능왕 오셔서

    https://www.youtube.com/watch?v=lb6ZWhitJO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7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5:1∼58
    ♦ 묵상을 위한 주제 :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 성구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나는 날마다 죽노라(I die everyday)"
    - 카드 헤메란 아포드네스코(καθ’ ἡμέραν ἀποθνῄσκω)(every day I die)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합니다.
    왜 날마다 죽어야 할까요?
    날마다 살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날마다 죽어야 하는 인생은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는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장사지낸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야고와 모든 사도들 또한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오늘날도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함께 하십니다

    둘째는 주의 강림(降臨)을 믿는 사람

    강림(降臨)이란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라는 헬라어로 "현존(presence)" 또는 "다시 오심(coming)"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들은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주의 강림하실 때에 새로운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신령한 몸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가 가장 좋은 것이라며 서로 분쟁하며 다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바울은 내가 받은 은사는 날마다 죽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주님의 부름을 받고 사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은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사람을 아직도 건강하게 지켜주신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아직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며 그 일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없는 노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노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모든 필요한 것과 충분한 시설이 제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들이 협력하고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저희들과 조금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찬양 /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WmBJY_d0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8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6: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절)
    ♦ 성구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 a curse be on him. Come, O Lord!   

    “주께서 임(臨)하시느니라!”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에 대한 영어 성경을 살펴봅니다.
    NIV에서는 “Come, O Lord!”
    NASB에서는 “Maranatha”
    KJV에서는  “Maranatha”

    “마라나타”라는 말은 헬라어를 음역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헬리어 성경에서 “마라나 타(Μαράνα θά, marana tha)”라고 기록한 것을 영어 성경에서 음역에 따라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사건을 “초림(初臨, First advent)”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본 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재림(再臨, Second Coming)”이라고 합니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말씀은 “재림(再臨, Second Coming)”을 말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초림의 사건 때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이 세상에 재림의 메시아가 이미 오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려면 그 교회에 소속한 자들만이 알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진리(眞理)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6∼9)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 때”는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를 말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온갖 동물들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재림의 주님은 아직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위장(僞裝)하고 그럴듯하게 포장(包裝)된 가짜에 의해서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위험(危險)한 요소가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격리 수용되어 고립되고 불안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비록 일시적으로 격리되는 기간일지라도 불안하게 지내야 하는 저희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주님께서 강한 팔로 붙들어 주셔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하시고 이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찬양 / 하나님의 나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e2GGYNfEGK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9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위로의 하나님(3절)
    ♦ 성구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compassion and the God of all comfort.   

    “위로의 하나님(The father of comfort)”
    “위로(慰勞)”란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paraklésis, παράκλησις)” 라고 합니다.
    “파라클레시스”란 “곁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에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까?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둘째는 자비의 아버지
    셋째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은 사람은 모든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쳐나게 됩니다.

    위로는 격려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상대방을 향한 나의 가장 작은 격려와 칭찬의 말이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큰 용기가 되어 소망의 끈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어느 성실한 간호사가 있었습니다(그녀의 이름은 ‘뷸라’). 그런데 갑자기 그녀에게 급성 관절염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몸은 손을 쓸 새도 없이 굳어졌습니다. 오른쪽 손가락의 신경만 살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하늘과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오른쪽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오른손으로 전화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뷸라”는 병실에 전화를 설치하고 병상의 환자들과 가족 그리고 친구를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새로운 삶을 다짐했습니다. “뷸라”의 전화는 “위로의 전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장애가 오히려 봉사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너무 깊숙이 감추어 놓고 잊어버리고 살아갈 뿐입니다.

    이제는 팬데믹의 혼돈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그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혜를 기도합시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직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시고,
    교회가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찬양 /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https://www.youtube.com/watch?v=6ffl463-TT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0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2: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향기(15절)
    ♦ 성구 :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For we are to God the aroma of Christ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those who are perishing.

    “그리스도의 향기(香氣) the aroma of Christ”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더구나 가장 유명한 명품 향수보다 더 좋은 최고의 향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겠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합니다.
    냄새로 생명의 주를 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는 냄새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사랑(Love)”
    둘째는 “순종(Obedient)”
    셋째는 “용서(Forgive)”

    이와 같은 냄새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풍기므로 사망을 따라가는 냄새로부터 생명을 쫓는 냄새로 옮겨가게 할 것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문턱을 넘어가는 계절에 짙은 그리스도의 향수를 선물합니다. 모두 향수를 뿌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팬데믹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감염률이 높은 지역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전염성이 강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찬양 / 성자의 귀한 몸

    https://www.youtube.com/watch?v=PfJmoa0yivk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12

    고린도후서 3:1∼18

    그리스도의 편지(3절)

    10

    13

    고린도후서 4:1∼18

    질그릇과 보배(7절)

    10

    14

    고린도후서 5:1∼21

    하나님과 회목하라(20절)

    10

    15

    고린도후서 6:1∼18

    은혜 받을 만한 때(2절)

    10

    16

    고린도후서 7:1∼16

    세상 근심(10절)

    10

    17

    고린도후서 8:1∼24

    연보(2절)

    10

    18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12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편지(3절)
    ♦ 성구 :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You show that you are a letter from Christ, the result of our ministry,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    

    오늘은 미국에서 “컬럼버스 데이(Columbus Day)”라는 공휴일입니다.

    공휴일 아침에 읽어야 할 오늘의 묵상을 위한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편지(便紙) a letter from Christ” 라는 주제를 살펴봅니다.

    편지는 주로 종이에 쓰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편지 중에 어느 출판사와 작가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작가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 Marie Hugo, 1802. 2. 26∼1885. 5. 22)가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단 한 문자로 “물음표(?)”만 적어서 보낸 것입니다.

    작가의 편지를 받고 출판사에서는 “느낌표(!)”만 적어서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작가는 “이번에 출판한 내 책이 얼마나 잘 파리고 있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출판사는 “너무 많이 잘 팔린다!”는 대답입니다.

    이 편지가 세계에서 가장 간단하고 짧은 편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는 종이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에 중국 집안 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무덤)과 기념비를 직접 방문하였을 때(1996년) 거대한 돌비에 새겨진 글자가 많이 흐려진 것과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들의 색이 퇴색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바위에 새겨진 것도 세월이 지나면 흐려지고 지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새겨진 것은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심령에 새겨진 것은 무엇일까요?

    새 언약의 일군(ministers of a new covenant) 이라는 약속입니다.

    일군이란 단어를 NIV 성경에서 “minister” 라고 합니다.
    “미니스터”란 단어가 정부에서는 “장관(長官)”을 의미합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장관으로 이 세상에 파견된 일군입니다.

    인도에서 한 선교사가 어느 크리스천 여인과 이야기를 할 때 두 다리를 몹시 절고 있는 걸인이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동전과 함께 그들의 언어로 된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당신의 전도지를 그에게 허비하지 마세요. 그는 결코 크리스천이 될 수 없어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3일 후에 선교사의 집 문 앞에 나타난 걸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전도지를 읽은 후에 이곳까지 오기 위해 불편한 걸음으로 8마일의 먼 거리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도지를 원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전도지를 받은 뒤, 그 집 문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전도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에게 성경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세례까지 받고 기독교 서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책꽂이의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의 전도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생명을 구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팬데믹 시대에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만유의 주가 되신 하나님,
    부모가 협력하여 자녀를 돌보고
    모든 가정이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편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도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필요한 것들이 공급되고
    지원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찬양 /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3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질그릇과 보배(7절)
    ♦ 성구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jars of clay to show that this all-surpassing power is from God and not from us.   

    “질그릇과 보배(Jars of Clay and Treasure)”

    보배는 복음(예수 그리스도)을 말합니다.
    질그릇이란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기 때문에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약한 그릇이 아니라 보배로운 그릇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질그릇을 보배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이 세상 신을 물리쳐야 합니다(4절)

    이 세상 신이란 사탄을 말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둘째는 예수를 전파해야 합니다(5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는 세상의 주가 됩니다.

    셋째는 낙심하지 않습니다(8절)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핍박과 괴로움과 난처한 일을 당하며 심지어 죽음에 넘겨질지라도 예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속사람의 능력(16절)

    세상 신 사탄의 핍박과 유혹으로 인하여 겉 사람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고 강한 사람으로 세워지므로 질그릇에 담긴 보배의 가치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성령의 전과 같습니다(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건강을 관리하려고 운동을 하듯이 성령이 거하는 몸을 관리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마음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로마서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질그릇이 깨어질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질그릇에 담긴 보배가 깨진 틈새로 새어나와 보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조카 이동훈목사님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그를 만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사랑의 손길을 펼쳐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했기 때문에 비록 일 년 동안 암 투병으로 인하여 육체의 고통은 깊어갔지만 속사람은 영생의 소망이 뚜렷하기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주 하나님의 측량 못할 은혜가 오늘의 묵상으로 신령한 교제에 참여하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찬양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jLuhZ5o_yU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4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5: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과 화목하라(20절)
    ♦ 성구 :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 as though God were making his appeal through us. We implore you on Christ's behalf: Be reconciled to God.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Be reconciled to God!)”
    화목(和睦)이란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 이란 뜻입니다.
    “화목하라(καταλλάγητε)”는 동사 원형은 “카탈라소(katallassó. καταλλάσσω)”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땅의 장막(the Earthly House)”과 “하늘의 집(an Eternal House in Heaven)”에 대한 말씀입니다.

    “죽음(死亡)”이란 “땅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땅의 장막’이 무너질 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성령(聖靈)께서 보증(保證) 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머물 때에 하나님과 화목한 신앙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몸을 갖고 영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육신의 몸으로 영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위하는 대상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위하는 대상이 바뀐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 이라고 합니다.

    산소는 산소이고 수소는 수소입니다.
    그러나 산소와 수소가 합쳐지면 전혀 새로운 물로 바뀝니다.
    죄인이었던 내가 예수님과 합쳐지면 의로운 사람이라는 존재가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새로운 변화” 라고 합니다.

    뱀은 껍질을 벗어도 뱀입니다.
    그러나 누에는 껍질을 벗으면 나비가 됩니다.
    전혀 다른 생명체가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때 우리 모두 새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화해”를 헬라어로 “카탈라게”라고 합니다(롬 5:11, 15, 고후 5:18, 19).
    “화해하다”는 헬라어는 “카탈라소”라고 합니다(롬 5:10, 고전 7:11, 고후 5:18, 19, 20).

    “카탈라게”는 “완전히”라는 뜻의 “카타(kata)”와 “변화하다”, “변경하다”, “교환하다”는 뜻의 “알라소(allasso, αλλάσσω)”가 합성된 것입니다.

    화해란 어원적인 의미는 “양자 간에 불편했던 관계가 어떤 대가를 서로 교환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변화되어 그 불편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Reconciliation”이라고 합니다(다시 re + 조정, 회유 conciliation).

    고대 그리스의 결혼문서들을 보면, 결혼한 부부의 별거를 “아팔라소(apallasso)”라고 하며, 그들이 다시 합쳐서 화해를 할 때 “카탈라소(katallassó)” 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전승에 따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11절에서 별거한 아내는 “그 남편과 다시 화해하도록 하라(카탈라소)”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화해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 및 세계와 완전히 다시 화해하셨다”는 뜻입니다.

    화해란 죄 많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호의로 변해서 완전히 적의가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십자가 신앙이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도 십자가 신앙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는 화목의 은혜가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https://www.youtube.com/watch?v=ePKu-JG1dW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5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6: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은혜 받을 만한 때(2절)
    ♦ 성구 :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은혜(恩惠) 받을 만한 때”

    은혜의 특징을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 은혜는 받는 것입니다.
    둘째, 은혜는 받을 때가 있습니다.
    셋째, 받은 은혜는 베푸는 것으로 나눠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나눌 때 세상은 창조의 목적에 따라 회복될 수 있습니다.

    “때”를 NIV 성경에서 “시간(time)”이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두 가지로 사용합니다.
    하나는 “카이로스(kairos. καιρός)” 라는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 χρόνος)” 라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간 거실의 벽시계가 멈추었습니다.
    고장 난 줄 알고 버리라고 하지만 건전지를 바꿔주었더니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계가 고장이 나서 멈췄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이러한 시간을 “크로노스” 라고 합니다.
     

    팬데믹의 시간이 점점 더 길게 늘어나면서 일상생활의 리듬은 깨지고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전의 생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며 나를 바꾸는 것을 “카이로스” 시간이라고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 라고 합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 보면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라고 하셨는데 ‘시기’ 라는 단어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카이로스를 기회(機會)라고도 합니다.
    팬데믹 시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찾아 내 것으로 누리는 기회로 붙잡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https://www.youtube.com/watch?v=sAlN4ylQS8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7: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세상 근심(10절)
    ♦ 성구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Godly sorrow brings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 and leaves no regret, but worldly sorrow brings death.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 근심을 생각합니다.
    첫째는 세상 근심(worldly sorrow)
    둘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godly sorrow)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NIV 성경에서는 “경건한 근심”이라고 합니다.
    얼핏 읽어보면 “근심”이 주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회개(悔改)”를 강조하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물질과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물질이 아니라 회개라고 합닏아.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1935. 9. 4∼2013. 5. 8)”라는 미국의 기독교 영성 형성(Christian spiritual formation)에 관한 글로 잘 알려졌던 철학자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죽기 직전에 내 삶은 무엇이 될까?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몇 날 몇 시간밖에 안 되는 이 땅의 실존 중에도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는데, 영원히 그분의 임재 안에 사는 것이 나에게 정말로 편하게 느껴질까?”

    천국에 들어갈 것이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분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질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변화 없이, 회개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변화는 죽어서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연장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는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참된 회개와 삶의 변화가 없는 신앙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회개는 구원을 얻기 위한 것과 세상과 구별된 삶의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는 주님을 닮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삶을 회개해야만 합니다.

    팬데믹 시대는 기독교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다듬어지기 위한 특별한 연단의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지만 삶의 자리에서 경건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영적 자세를 훈련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예배 중에 드려지는 헌금에 익숙해 있었지만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예배 중에 드리는 헌금처럼 똑같은 방법과 자세로 주님의 것을 주님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믿음을 점검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결정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디에서든지 어느 때이든지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건한 근심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 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찬양 /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https://www.youtube.com/watch?v=f3AWtl8eC_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8: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연보(2절)
    ♦ 성구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Out of the most severe trial, their overflowing joy and their extreme poverty welled up in rich generosity.   

    “연보(捐補)와 헌금(獻金)”
    “연보(捐補)”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라는 훈(訓)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는 뜻입니다.

    “헌금(獻金)”은 “드릴 헌(獻), 쇠 금(金)”이란 훈(訓)으로 “드리는 쇠(돈)”이란 뜻입니다.

    헌금(獻金. offering)은 성경에서 주로 ‘고르반(qorban)’과 ‘도라(dora)’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레 1:3, 민 31:50, 마 5:23∼24, 막 7:11)” 또는 “예물(레 1:2, 2:1)” “헌물(민 7:10)”이란 뜻이다.

    “도라”는 “예물(마 2:11, 5:23∼24, 8:4, 23:18, 19장, 히 5:1, 8:3∼4, 9:9, 11:4, 계 11:10)” 혹은 “헌금(눅 21:1, 4)” 이라고 개역 한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본문에서 사용되든 “고르반”과 “도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연보(捐補)”의 한자 의미는 “남을 돕기 위해 내어 놓는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로기아(collection, 모금)” “하플로테스(generosity, 관대)” “유로기아(blessing, 축복)”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고전 16:1)” 또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회의 연보(고후 9:5)”라는 말에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성도를 돕는 일과 교회 간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코이노니아(친교, 협력)”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연보”라는 말보다는 “헌금”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하겠습니다.

    파트리스교회의 설립 목적은 선교와 구제를 중요시 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지원하는 기관은 다섯 곳입니다.
    북한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유진벨 재단(대표 인세반회장)”
    북한어 성경을 보급하는 “모퉁이돌 선교회(대표 이삭목사)”
    뉴욕국제장애인협회(대표 임선숙사모)
    뉴욕밀알선교단(대표 김자송)
    은퇴 여자 선교사들을 안식관을 건축하는 “세빛 자매회(대표 김화자목사)”

    비대면 예배로 인하여 헌금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매월 꾸준히 후원금을 송금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협조와 후원에 의한 이와 같은 선교와 구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를 바쳤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았는가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부자가 성전에서 쏟아 붓는 많은 양의 헌금 보다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바쳤을 때 부자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친 양으로 계산하면 부자가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없는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힘차게 달려봅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에 감사합시다!

    ♪ 찬양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19

    고린도후서 9:1∼15

    즐겨내는 자(7절)

    10

    20

    고린도후서 10:1∼18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18절)

    10

    21

    고린도후서 11:1∼33

    광명의 천사(14절)

    10

    22

    고린도후서 12:1∼21

    낙원(4절)

    10

    23

    고린도후서 13:1∼13

    자신을 확증하라(5절)

    10

    24

    요한계시록 1:1∼20

    속히 될 일(1절)

    10

    2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19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9: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즐겨내는 자(7절)
    ♦ 성구 :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Each man should give what he has decided in his heart to give, not reluctantly or under compulsion, for God loves a cheerful give.     

    “즐겨내는 자(a cheerful give)”
    즐겨낸다는 것은 기분 좋게 바친다는 뜻입니다.

    미국 어느 교회의 특별한 집회에 참여 했을 때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예배 인도자가 순서에 따라 헌금하는 시간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 즐겁게 헌금합시다.”

    모든 성도들이 줄을 서서 강단 앞에 놓여 있는 헌금함으로 춤을 추며 나와서 한 사람씩 헌금을 하고 들어가는 집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순서에 따라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돕기 위한 특별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교에 동참하도록 인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팬데믹(Pandemic)의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비대면 예배는 지속될 것입니다.

    전통적인 예배는 예배하는 장소를 거룩한 곳으로 성역화 했습니다. 그 결과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한 코로나 19의 기습으로 웅장한 예배당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마치 그곳에서 예배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영적 욕심을 순식간에 무너트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고 그리심 산도 아니라 오직 영과 진실함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팬데믹 시대는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예배당보다는 성도들이 흩어져서 생활하는 장소가 더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 비대면 예배가 계속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는 교회와 사역자들 그리고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즐겨낼 수 있는 손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주일마다 감사와 선교 헌금을 바치는 성도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교인은 매 주일 사랑하는 손자와 손녀의 이름으로 감사 헌금을 바칩니다.

    그 헌금에 새겨진 믿음의 어른이 후손들을 위한 사랑과 기도가 진하게 새겨져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모여서 예배하든지 개별적으로 예배하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변함이 없다면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의 종교개혁자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헌금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니다.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올바른 회개가 아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으며 나는 어떤 믿음의 사람인가 생각해 봅시다.

    몸과 마음과 물질까지도 믿음의 사람으로 신앙의 본이 되는 은혜의 씨앗을 코로나 19에 붙잡혀 팬데믹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뿌려 봅시다.

    ♪ 찬양 / 성자의 귀한 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0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0: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18절)
    ♦ 성구 :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For it is not the one who commends himself who is approved, but the one whom the Lord commends. 

    “주께서 칭찬 하시는 자(The one whom the Lord commends)”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받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칭찬은 하는 사람도 변화시킵니다.
    칭찬은 분위기를 변화시킵니다.
    칭찬은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칭찬을 많이 합시다.

    주님께서 칭찬하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교만한 사상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둘째는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는 겉모습 보다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 주신 은혜로운 손길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성공의 감격에 도취한 나무지 너무도 자신만만해져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시는 은총을 깨닫지 못했고, 몹시 교만에 빠져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잊었습니다.”

    도가니에 은을 넣어서 끓이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한 은이 나옵니다. 또한 풀무불에  금을 넣어서 재련하면 찌꺼기가 분리되어 순도 높은 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도가니와 풀무가 은과 금을 제련하는 것처럼 칭찬은 사람을 시험하여 평가하는데 쓰이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칭찬 받을 때 보이는 반응에 우리의 인격과 마음의 자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낮추시고 겸손한 사람을 높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칭찬을 받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알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다만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엎드려야 합니다.

    주께서 칭찬하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추천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필요한 자리에 주님께서 추천하므로 그 자리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jLuhZ5o_yU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1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1: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광명의 천사(14절)
    ♦ 성구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And no wonder, for Satan himself masquerades as an angel of light.

    사탄이 “광명(光明)의 천사(天使)(an Angel of Light)”로 가장하여 나타났습니다. 영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그 모습에 끌려 다닐 것이 분명합니다.

    광명의 천사가 등장한 것은 “가짜 예수를 전하고” “거짓 영을 가르치고” “거짓 복음 전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광명의 천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항상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를 품는다는 것은 십자가 목걸이와 귀걸이를 몸에 장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호흡이 멈추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신령한 사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말세에 교회 안에 나타나게 될 사탄의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디모데전서 4:1∼3).

    사탄의 시험과 속임수와 공격하는 방법은 항상 그 모양을 바꾸면서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항상 그 원리는 똑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사용한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공격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확실하게 무장하는 것뿐입니다.

    현대인들에 쉽게 접근하는 다양한 SNS의 매체를 통하여 잘못된 영상과 정보가 홍수 몰려오듯 밀려오고 있습니다.

    귀에 솔깃하고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나를 인정하는 그러한 내용 보다는 내 마음을 찔러 쪼개며 내 양심의 소리를 듣게 하는 진리의 외침에 관심을 갖고 팬데믹 시대에 지금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2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2: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낙원(4절)
    ♦ 성구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낙원(樂園. Paradise)이란 단어가 헬라어로는 “파라데이소스(παράδεισος)”라고 하며, 뜻은 “공원(a park), 정원(a garden), 낙원(a paradise).” 이라고 합니다.

    기독교(基督敎)를 생명(生命)의 종교(宗敎)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호흡은 세상에서 멈추었지만 죽음 이후에도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을 영원한 생명(永生)이라고 합니다.

    “유신론(有神論, Theism)”이란 신(神)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무신론(無神論, Theism)”은 신(神)이 없다고 합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차이는 단지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영역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신학(神學, Theology)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반면에 과학(科學, Science)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서 창조의 원리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신학과 과학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연구하거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탐구하여 각각에 내재된 계시를 찾고 해석하는 일을 합니다. 띠라서 신학과 과학은 하나님 계시의 다른 측면을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일 뿐 결코 서로 배타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마치 신학과 과학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주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낙원이란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낙원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 목사님의 둘째 아들 “범”이가 대장암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동대 Law School과 미국 USC Law School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장래가 촉망되던 43세의 젊은이였습니다.

    아들의 장례를 마치고 아들 범과 작별하며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께서 열 가지 감사에 대한 간증에서 영감을 얻어 열 가지 감사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1. 아들이 그 지독한 암의 통증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2. 영광의 나라 천국에 입성하여 감사합니다.

    3. 그동안 유머가 많았던 아들을 인해 누린 기쁨을 인해 감사합니다.

    4. 단 한 번도 불평 없이 자랑만 하던 아내와 애교덩어리 손자를 남겨주어 감사합니다.

    5. 어려서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변호사가 된 것 감사합니다.

    6.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하심 감사합니다.

    7. 아들의 암 투병을 통해 수많은 암 환자의 고통과 연대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8. 또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수많은 부모들의 고통과 연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9. 아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수많은 중보 기도자들과 한 지체가 되어 감사합니다.

    10.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하게 되어 감사 감사합니다.

    (2020년 10월 가을 하늘 아래, 아들 범을 천국으로 보내는 목사 아빠 이동원)

    모든 사람은 반드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다만 그 시간과 장소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죽음 후에 믿음으로 가야 할 낙원을 생각하며 오늘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아픔까지도 믿음으로 용납하며 저 좋은 낙원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팬데믹(Pandemic)이란 무대 위에서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주인공으로 등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저 좋은 낙원 이르니

    https://www.youtube.com/watch?v=GEl3-8J0dr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자신을 확증하라(5절)
    ♦ 성구 :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you not realize that Christ Jesus is in you--unless, of course, you fail the test

    “자신(自身)을 확증(確證)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계속하면 나도 모르게 정말 내가 믿음에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다양한 은사를 자랑하고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지 분명하게 주장하는 교인들이었지만 그들의 자랑과 주장은 정말 믿음이었을까?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고(examine) 확증하라(Test)”

    “필립 얀시”는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 활동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니 하나님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그 책에서 여러 사람의 체험을 소개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몰트만의 체험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독일인으로서 2차 대전 때 징집되어 독일군으로 참전합니다. 그런데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는 히틀러가 병사들에게 나눠준 책 중에 두 권을 가지고 갔습니다. 괴테의 책과 니체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은 생과 사가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쟁 중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3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냅니다. 포로들 중에는 절망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몰트만은 군목이 전해준 성경을 읽고 큰 위로를 받습니다.

    특히 시편 139장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8∼14).

    그는 후에 “포로 수용소 철조망 뒤에서도 하나님은 존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불안 가운데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본래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고자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해서 “희망의 신학” 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합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진정한 희망이라고 합니다.

    팬데믹의 전염병이 지구촌 사람들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내몰고 있는 때에 내가 정말 믿음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므로 어려운 때에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펼쳐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어려운 일 당할 때

    https://www.youtube.com/watch?v=ugfWx_541m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4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1: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뜻을 정하여(8절)
    ♦ 성구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은 왕의 진미(the Royal Food)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음으로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에 음식을 주관하는 환관장(the chief official)에게 부탁합니다.

    다니엘은 제1차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 왔습니다(기원전 605년 여호야김 제3년(혹은 4년)(1:1 참조). 1차 포로 때는 귀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왔습니다(1:3).

    포로의 신분으로 왕궁에서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 왕이 제공하는 궁중 음식과 포도주를 오히려 먹지 않고 오히려 채식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모든 음식과 마실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때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잘못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결심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여러 동료들과 함께 왕의 음식을 맡은 관리에게 “열흘” 이란 기간을 정하고 왕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먹지 않는 우리를 비교한 후에 판단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하므로 감독하는 관리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고 실천한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였고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으며 모든 이상(visions)과 몽조(drewm)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팬데믹 시대에 하나님께서 전염병이란 바이러스를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기 위하여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분명한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예배는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입니다.
    헌금은 사람 앞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입니다.
    전도는 신앙의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오늘도 뜻을 정한 다니엘의 승리한 기쁨이 팬데믹이란 지구촌 수용소에 갇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이 왕성하게 전달되어 더 많은 생명들이 주님 앞으로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 찬양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https://www.youtube.com/watch?v=O7zmjMpKTM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25

    다니엘 2:1∼49

    뜨인 돌(45절)

    10

    26

    다니엘 3:1∼30

    사람을 구원할 신(29절)

    10

    27

    다니엘 4:1∼37

    거룩한 신들의 영(8절)

    10

    28

    다니엘 5:1∼31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25절)

    10

    29

    다니엘 6:1∼28

    사자굴(7절)

    10

    30

    다니엘 7:1∼28

    큰 짐승(3절)

    10

    3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나는 누구인가? / 이승혁목사 자서전

    나는 누구인가?(Who am I?) #. 1

    나는 누구인가?(Who am I?) #. 1

    나는 1949년 10월 16일에 태어난 "이승혁(李勝赫)" 이라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가족의 배경은 할아버지(祖父) "이성봉(李聖奉)장로"와 외할아버지 "김창하(金昌河)장로"가 만주에서 북한 원산으로 피난을 내려와서 원산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던 중 노회에서 만나 자신의 아들과 딸을 혼인시키자고 약속한 후  아들(이영복)과 딸(김은신)에게 알려주므로 시작됩니다(대략 1947년).

    당시 조부 이성봉장로와 외조부 김창하장로는 "아들을 낳으면 목사로 바치고, 딸을 낳을 경우 평생 독신 여자 전도사로 살도록 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만일 내가 딸로 태어났다면 나는 평생 결혼도 못하고 독신으로 살아야 할 인생이었겠지요!

    당시만 하여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미덕인지라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아 첫 아들이 태어나므로 "장래 목사" 라고 하셨답니다.

    부모님이 원산교회에서 합동 결혼식을 하셨는데 다른 한 쌍은 박계로(부산 수영로교회 정필도 원로목사의 사모의 부친) 부부였다고 합니다.  훗날 박계로씨는 목회자가 되었고 카나다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계도를 먼저 소개하는 이유는 신앙의 배경을 알면 그 사람을 좀 더 친근하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의 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철인(哲人) 소크라테스의 명언(名言)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라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그의 제자들과 델포이 신전을 거닐던 중 신전 기둥에 누군가 낙서처럼 적은 말에(  γνῶθι σεαυτόν) 관심을 갖고 즐겨 사용하므로 마치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된 것처럼 저의 조부 이성봉장로와 외조부 김창하장로의 첫 손주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기에 이름을 "승혁(勝赫)" 이라고 작명하셨다고 합니다.

    "승혁(勝赫)" 이란 이름은 "이길 승(勝)" "빛날 혁(赫)" 이라는 한문자 이름이다.

    이겨서 빛이 나야 할 이름을 갖고 2000년 7월 4일 전 가족이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습니다.

    이주하게 된 이유는 앞으로 설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2020년 10월 23일을 맞으면서 아직도 이겨서 빛을 내지 못한 나는 누구일까?

    새롭게 나를 생각해 봅니다.

    다음 서신에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10-23-2020. 오후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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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인가?(Who am I?) #. 2

    내 이름은 한국식으로 "이승혁(李勝赫)" 이라고 합니다.
    뉴욕으로 이주하여 Langusge Course에서 몇 개월 수업을 하던 중 어느 수업 시간에 수강생들이 각자 자기 소개를 할 때 제 차례가 되어 내 이름을 칠판에 한글과 한자로 적은 후에 한자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당시 저희 반에는 여러 명의 중국인 학생들이 있어서 쉽게 한자를 이해하더군요.
    마침 당시 수업을 맡았던 미국인 선생은 내 이름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영어식으로 "Victor" 라고 불렀습니다(2001년 4월 경).
    그 때부터 미국에서 제 이름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이승혁"이 아니라 "Victor Lee" 라고 불렸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facebook을 열었을 때 당시 나에게 영어 이름을 지어주셨던 선생이 친구로 등록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선생의 이름은 "David Frak"입니다.
    지금도 내 facebook에는 절친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함께 수업을 하던 학생 중에 한국인 학생이 있어서(그의 이름은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뉴역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중국 여자와 동거하는데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서로 시간이 허락되면 David Frak이 한국에서 일년 동안 머물렀을 때 콩국수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세 사람이 한국인이 경영하는 콩국수 식당을 찾아가서 콩국수를 맛있게 먹기도 했습니다.

    콩국수가 여름철 즐겨 찾는 음식인지라 식당 주인에게 콩국수를 맛있게 만드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더니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것은 땅콩 버터를 녹여서 콩물에 넣는다고 하며 다른 재료는 자기들만의 비법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 마침 뉴욕 맨하튼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911 사건.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납치 동시다발 자살 테러이다. 이로 인해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붕괴되었고, 버지니아주 알링턴 군의 미국 국방부 펜타곤이 공격받아 일부가 파괴되었으며, 약 2,996명의 사람이 사망하고 최소 6천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이민자의 삶은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과 우리교회를(Woo Ree Presbyterian Church) 시작하였기 때문에 주일과 수요일 심지어 금요기도회 및 새벽기도회를 준비해야 하므로 영어를 심도 있게 배워야 할 시간은 점점 나의 삶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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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훼퍼목사






    독일의 설교가요 신학자였던 본 훼퍼 목사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 앞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몸소 보여준 참신앙인이었다.

    16세때 이미 신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깊은 사고력과 성찰력까지도 겸비해 그의 나이 20세 때 이미 신학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당대에 뛰어난 학자였다. 

    후대에 그를 평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본 훼퍼를 존경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의 타고난 능력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한평생을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로서 한순간 한순간을 아낌없이 삶을 살았다는 점에 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본 훼퍼는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강단에서, 교회에서, 방송에서 쉼 없이 외치며 선포했다. 이 때문에 그는 히틀러 정권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연금되며, 감옥에까지 갇히는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아까워 하던 미국 유니온신학교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 의해 1939년 6월 12일에 초대되어 교환교수로 미국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미국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히틀러가 그해 9월 1일에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키자 본 훼퍼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동료들과 독일 백성들이 미치광이 히틀러 때문에 전쟁의 노예가 되고, 살상과 피흘림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을 보면서 그는 다시 독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 때 그의 독일행을 만류하며 미국에 남아 살 것을 권했던 라인홀드 니이버 교수에게 본 훼퍼는 이런 편지를 남기게 된다.

    나는 독일의 역사에서 어려운 시기를 독일의 크리스천과 함께 보내야겠습니다.
    만일 내가 나의 동료들과 같이 이 고난의 시기를 보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난 후에 독일 크리스천의 재건에 동참할 권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본 훼퍼는 그 독일에서 주님이 자신을 부르신 그 목적대로 히틀러를 향하여 준엄한 신앙의 양심을 선포하다가 히틀러가 자살하기 20일 전인 1945년 4월 9일 39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순교당한다.

    20세기가 낳은 가장 탁월한 학자로서 자신의 뜻과 명예를 얼마든지 펼칠 수 있었던 본 훼퍼가 이런 삶을 살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내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그리스도인일 수 없다.

    신약의 초대교회 시절에 비로소 안디옥에 살던 성도들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된 것은 저들의 모습 속에 무엇인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들이 믿는다고 하는 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남들이 아무리 상대방을 속이고 실속을 챙기는 그 순간에도 결코 남의 것을 취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손해보고,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그 이상한 모습 때문에 드디어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성도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게 될 때에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본 훼퍼의 삶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 훼퍼는 독일의 격변기에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살았던 용기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 틀림없다.

    2020년은 종교개혁 503주년을 맞이한다.
    1517년 마틴 루터가 중세의 교회를 향하여 외쳤던 95개조 반박문의 핵심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이 단순한 구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모습을 위해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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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에 대한 이해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삶의 시작
    본회퍼 목사의 고백 담긴 CCM ‘선한 능력’



    CCM 워십팀 위러브(WELOVE)가 최근 앨범 ‘위러브 리터치드(WELOVE Retouched)’를 발표했다.
    앨범에는 ‘내 마음을 가득채운’ ‘나를 향한 주의 사랑’ 등 총 5곡이 수록됐다.
    이중 주제곡인 ‘선한 능력’에 담긴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간증이 주목받고 있다.

    위러브는 “작가(가사)에 대한 저작권은 보호 기간이 만료됐으나 국내 작가에 의해 한글로 번안됐다”며
    “작곡(멜로디)에 대한 권리는 유효함에 따라 독일 회사 ABAKUS(Siegfried Fietz 소속사)와 독일 저작권협회 GEMA가
    한국의 저작권 대리중개사인 카이오스와 1년의 소통 끝에 저작물 사용승인을 받았다”고 23일 밝혔다.

    작사가인 본회퍼 목사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다.
    1933년 독일교회는 집권한 나치의 독재에 대해 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했다.
    본회퍼 목사는 이 같은 현실을 한탄하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일교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45년 4월 9일 39세 나이로 새벽에 처형됐다.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

    본회퍼 목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과 약혼녀에게 보낸 시가 ‘선한 능력으로’이다.
    그는 유언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고 말했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문장은 ‘디트리히 본회퍼–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위러브는 “지금 한국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능력”이라며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 상황이라 할지라도 주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이 우릴 이끄신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곡이 시대를 넘어선 우리의 고백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선한 능력으로
    작사 : Dietrich Bonhoeffer
    작곡 : Siegfried Fietz
    노래 : WELOVE

    1. 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2. 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내 영혼 짓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3. 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4. 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후렴.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믿음이란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하박국 2:4) 수요성서학당 #. 19(10-21-20)

    수요성서학당 # 19(10-21-20)

    믿음이란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NIV)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KJV) Behold, his soul which is lifted up is not upright in him: but the just shall live by his faith.
    (NASB) Behold, as for the proud one, His soul is not right within him;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믿음에 대해서 말씀을 소개하기 전에 최근 제가 경험했던 한 사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어느 의사는 방문하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할렐루야! 아멘! 하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의사가 이런 기독교 용어를 자주 사용하면 마치 믿음이 좋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가족 중 누가 자기 집 근처에 약국을 시작했는데 진찰을 받은 환자들의 약 처방전을 동의도 없이 그 약국으로 보냅니다.
    원래 약국은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들이 D약국에서 60% 정도 라고 합니다.
    결국은 가족이 운영하는 약국을 위하여 이미 지정된 약국을 마음대로 변경한 것입니다.
    마치 믿음이 좋은 것처럼 기독교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일을 처리하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가?
    과연 이런 것이 믿음일까?

    결론부터 소개합니다.

    " 믿음이란 기준을 바르게 정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성경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1st. 하박국 2:4b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믿음"이란 단어에 "" 라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그" 라는 정관사가 사용될 때는 "믿음"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일부분을 말합니다.
    제한된 믿음을 말합니다.

    킹제임스 한글 성경에서는 "그 믿음"을 "자기 믿음"이라고 번역합니다.
    믿음의 기준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의 기준이 사람이 될 때부터 이미 복음에서 어긋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믿음을 히브리어로 "에무나" 라고 합니다.
    에무나의 뜻은 "진실" "성실"입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진실하게 살리라" 또는 "성실하게 살리라"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방법도 진실해야 합니다.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믿음의 기준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세워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따라야 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익과 유익을 따라 살아갈 때는 이미 복음의 의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를 남 유다북 이스라엘로 구분합니다.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라고 하겠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라고 하겠습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지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오놋(3:1)" "영장(3:19)"과 같은 전문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레위 자손으로 측정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좁은 생각과 의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날 것이고 실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현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파 정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장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법대로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도록 법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치안을 맡은 경찰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부까지도 때로는 판단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제는 기도할 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물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은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 이라고 서두에 소개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발생했던 문명들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고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때문에 무너지고 망했다고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문명고 한국의 문명도 무너질 때는 외부의 침략적인 전쟁보다는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의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25%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라고 한다면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체재를 갖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체재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의라고 하겠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한 마디로 "공감(共感)"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Sympathy, Empathy 라고 하겠습니다.
    공감대(共感帶)를 Bond of Sympathy
    공감이란 단어의 뜻은
    1. 다른 사람의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에 대하여 자기(自己)도 똑같이 느끼는 것.
    2.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같는 것.

    예를 들면 아직도 남한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자기 집을 온갖 쓰레기로 채워놓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기관의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하여 동네 부녀회와 청소 업체에서 발벗고 나서 그 사람은 병원으로 안내하여 검사를 받게 하고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모두가 힘을 모아 쓰레기가 선더미처럼 쌓였던 집을 깨끗하게 청조하고 정리한 후 심지어 새로운 가구까지 들여놓고 다시는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남한 모두 먼저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2nd. 데살로니가후서 3:2b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 For all men have not faith.)

    세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습니다.
    특히 불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세계삼대 종교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이지만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분류에 에 따라 신앙생활을 할 경우의 믿음과 생명으로 믿는 것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생명의 믿음이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먼저 생각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3rd. 마태복음 5:26-30

    공중
    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믿음에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란 첫째는 도덕, 둘째는 상식, 셋째는 양심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산상복음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장, 16장, 17을 다락방 복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기준을 바르게 찾고 정하려면 먼저 산상복음과 다락방 복음을 다시 읽어야 합니다.

    4th. 고린도전서 12:9a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To another faith by the same Spirit.)

    기독교를 생명으로 믿는 성도들은 믿음을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은사로 받은 믿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은사가 많은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받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분쟁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 당파를 만들었습니다(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방언의 종류에 따라 분쟁했습니다(어떤 방언을 하느냐?)

    - 김종수목사님(태능 영세교회), 천국 방언(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 왜 방언이 필요한가?
      (어느 농촌교회의 목회자와 가정부의 아들)

    5th. 누가복음 17: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And the Lord said, If ye had faith as a grain of mustard seed, ye might say unto this sycamine tree, Be thou plucked up by the root, and be thou planted in the sea; and it should obey you.)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라고 하였는데 겨자씨는 모든 씨앗들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을 말합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면 아마 채송화 씨앗처럼 아주 작은 씨앗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겨자씨 한 알을 방바닥에 떨어트린다면 마치 먼지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씨앗만한 믿음이 있다면 뽕나무가 뿌리채 뽑혀 바다에 던져질 수 있다고 합니다.

    6th. 디모데전서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Holding on to faith and a good conscience. Some have rejected these and so have shipwrecked their faith).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양심을 버리면 그 믿음은 파선한 믿음입니다.

    7th. 야고보서 2:26

    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As the body without the spirit is dead, so faith without deeds is dead.)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죽은 믿음이란 결국 믿음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죽은 믿음은 무엇일까요?

    8th.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

    죽은 믿음이란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하박국서소선지서에 속한 책으로 3장으로 구성된 비교적 내용이 짧은 말씀입니다.
    하박국이란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 라고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활동 무대를 남 유다북 이스라엘로 구분합니다.
    남 유다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오바댜, 요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라고 하겠습니다.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했던 선지자들은 "요나, 아모스, 호세아" 라고 하겠습니다.

    하박국서의 특징지혜문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특이한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시기오놋(3:1)" "영장(3:19)"과 같은 전문 음악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레위 자손으로 측정합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정의"라고 하겠습니다.
    왜 이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고 살아야 하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대답은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좁은 생각과 의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는 나타날 것이고 실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 대통령 트럼프를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현 대통령 문재인과 여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파 정당을 지지해야 하느냐? 이런 의견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언론에서 국민들에게 장확하게 알려야 합니다. 사법부에서는 잘못된 것을 법대로 판단하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도록 법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그런데도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 심지어 치안을 맡은 경찰과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부까지도 때로는 판단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제는 기도할 때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주장합니다.

    미국이나 한국 물론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한 믿음의 정의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믿음은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 이라고 서두에 소개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발생했던 문명들이 외부의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고 망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때문에 무너지고 망했다고 강조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의 문명고 한국의 문명도 무너질 때는 외부의 침략적인 전쟁보다는 내부의 부정과 부패에 의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기독교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25%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정도라고 한다면 부정과 부패가 세상을 주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체재를 갖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물론 체재는 북한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주의라고 하겠습니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한 마디로 "공감(共感)"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표기한다면 Sympathy, Empathy 라고 하겠습니다.
    공감대(共感帶)를 Bond of Sympathy
    공감이란 단어의 뜻은
    1. 다른 사람의 의견(意見)이나 주장(主張)에 대하여 자기(自己)도 똑같이 느끼는 것.
    2.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자기도 같은 감정을 같는 것.

    예를 들면 아직도 남한에서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어느 동네에 자기 집을 온갖 쓰레기로 채워놓고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모두가 외면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기관의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의사를 비롯하여 동네 부녀회와 청소 업체에서 발벗고 나서 그 사람은 병원으로 안내하여 검사를 받게 하고 입원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모두가 힘을 모아 쓰레기가 선더미처럼 쌓였던 집을 깨끗하게 청조하고 정리한 후 심지어 새로운 가구까지 들여놓고 다시는 이웃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관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공감이란 것이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이나 남한 모두 먼저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치 기준을 바르게 세워야 할 때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파트리스교회가 후원하는 기관들의 후원을 멈추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후원을 받는 기관의 책임자의 말이 흔들렸던 제 마음과 생각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도록 멈추게 했습니다.
    "너무 많은 후원자들이 더 이상 후원을 할 수 없다"며 후원을 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19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는데 파트리스교회마저 끊어야 하겠는가?
    정말 끊어여 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후원을 계속해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적은 믿음과 큰 믿음

    믿음이 자은 자들은 누구인가?

    첫째,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힌 자(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이 적은(a little faith)

    둘째, 문제에 당면했을 때, 무서워 하는 사람(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셋째, 두려워하는 사람(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믿음이 큰 사람은 누구인가?

    첫째,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 이만한 믿음 (Great Faith)

    둘째, 주인을 아는 사람(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것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 손에 손톱이 있습니다. 발에는 발톱이 있습니다.
    손톱과 발톱이 누구 것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톱과 발톱이 내 손과 내 발에 있기 때문에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착각입니다.
    왜 착각이냐 하면 내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손톱과 발톱이 내 말을 듣습니까?
    내 삶의 내 생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내 삶의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주인입니까?

    개들의 주인이 있는 것처럼
    인생의 주인도 있습니다.
    그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예수를 설득하는 믿음을 보며 그과부가  큰믿음을 가졌다고 칭찬하면서 그딸을 고쳐 주었다 (마 15:21-28)

    (예화) 바람 몸살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바람 몸살이란 나무를 옮겨서 이식할 때 옮겨진 곳에서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려면 악력(握力)이 4배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악력(握力, 쥘 握. 힘 力. Grip)이란 "물건을 쥐는 힘"을 말합니다.

    성경적 믿음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리려면 얼마의 힘이 필요할까요?
    나무가 4배의 악력이 필요하다면 사람은 그 보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제 생각에는 대략 10배가 더 필요하다고 환산하면 약 40배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성경적인 믿음을 내 삶에 적용하려면 성령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은 악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권능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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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지 않음과 믿음의 결핍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믿지 않음 즉 불신(不信)이라고 하겠다.
    불신이란 믿음의 결핍 현상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예수님도 기적을 일으킬 수없었다(마가복음 6:1-6).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뇨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요셉유다시몬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그의 부활을 본 증인들의 말을 믿지않은 그의 제자들의 믿음을 결핍했다고 꾸짖기도 하였다(마가복음 16:14).

       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믿음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완악한 증거라고 하겠다.


    약한 믿음과 강한 믿음(로마서 14:1-23)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이는 신앙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많아서 분별력이 있어서 현실을 잘 처리하는 사람들이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서 약한 믿음을 가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는 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해서 처신할 것을 권하는 의도가 있다.   

    믿음은 바뀐다

    성경이 제시하는 믿음은 바뀐다.
    일시적으로 있다가 없어지는 것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누가복음 8:13).

       13.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또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제자들이 자신을의 믿음을 증가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과
    예수님이 믿음을 겨자씨에 비유하는 것(누가복음 17:5-6)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믿음의 조심성

    성경은 믿음이 선별적임을 보여 주면서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으니, 곧 오직 어리석은 자들만 아무거나 다 믿으나 지혜있는자는 행동하기전에 심사숙고 한다는 것이다(잠언 14:1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정리

    믿음은 봄으로, 체험으로, 실험을 통해서 무언가를 인정하고 의심않는 것뿐만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미리 알지 못했어도 신뢰할 만한 사람들의 증언이나 말만으로도 생기게 된다.
    이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보는 경우이고 우리 삶에서 겪는 것이다.
    어렸을 때, 또 자라면서, 우리는 부모를 비롯해서 많은 권위적인 사람들과 상징들, 선생님들, 정치 사회 지도자들의 교훈, 우리가 읽는 고매한 사상가들의 책들, 전통, 풍습, 언어 등, 문화의 영향에 무의식적으로 믿음의 자세로 대하는 것이다.

    과정을 통해서 우리 인간은 천차만별의 자기만의 믿음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곧 “마음으로 꼭 그렇게 인정하거나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각하는”과정에서 무한한 각자의 공통점과 상이점을 확인해 간다.
    “생각하는” 나는 이 믿음이라는 창을 형성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통해서 일생동안 나의 사고의 틀과 내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믿음에 대해서 기독교의 성경은 훨씬 특정된 의미의 믿음을 정의하고 있으니, 곧 천지 창조자와 그가 보내서 세상에 온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곧, 그전능자와 그가 인간에게 그의 사자들을 통해서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인류에게 전해 준 모든 교훈과 그 장래에의 약속에 대한 신앙과 신뢰라는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에 관련된 모든 것, 곧 믿음의 결과인 복종의 요구, 행동에의 필연성, 또 모든 선택과 결정이 믿음을 선행해야 한다는 조건의 논리는 결코 신중한 사고와 행동에의 책임을 묻는 데서 성숙을 기대한다.
    그러나  참으로 격려적인 것은 신앙은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신앙에 수준이 있는 데, 곧 갓태여난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철이 들고 분별력이 생기고 성숙해지면서 지혜자가 되듯이, 우리의 신앙도 성숙해간다는 것이다.
    신앙 정도가 있어서 약한 믿음이 지식을 얻음으로 강한 믿음, 성숙하는 믿음, 큰 믿음으로 바뀌는 과정이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허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과정은 일생에 걸쳐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믿음에는 첫믿음이 있다.

    이것은 시작인 만큼 미약한 것이지만, 이후의 모든 생애를 결정짓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사전 지식이 있던지, 없던지 간에, 믿음은 관계의 시작이냐 아니냐를 결정하게 한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경우도 그러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도 관심을 가져 보기로 작정하는 것의 중요성. 이것은 아주 쉬운, 가벼운 정도의 믿음이다.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않을 것인가하는 기로에서, 파스칼의 제안은, 하나님이 있다는 가정에 도박하라는 것은, 이런 첫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단 있다는 쪽을 선택해서 계속 찾다 보면, 없을 수도 있을 수도 있음을 본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기독교인들이 비난을 받는 경우 그내용은 믿음의 정도, 수준의 문제임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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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로운 사람은 그 믿음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
    악인은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므로 살아 남지 못할 것이나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고린도전서 12:1-11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합니다.

    1. 형제
    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 은사장에서 다양한 은사들을 소개합니다.
    은사의 종류를 헤아려 보면 9가지로 소개됩니다.

    1. 지혜의 말씀
    2. 지식의 말씀
    3. 믿음
    4. 병 고치는 은사
    5. 능력 행함
    6. 예언함
    7. 영들 분별함
    8. 각종 방언 말함
    9. 방언들 통역함

    다양한 은사들 9가지 중에 네번째 은사를 "믿음" 이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4:13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이야기)
    어느 가정에서 할머니는 시골에 거주하시며 절에 다니시는 불자(佛者)입니다.
    손녀딸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인데 서울에 거주하며 교회에 다니는 신자(信者)입니다.
    할머니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며 손녀딸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므로 대학에 입학해야 하므로 매일 불공을 드리고 부처님에게 손녀딸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기도합니다.
    손녀딸과 어머니는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딸을 위하여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불자인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
    아니면 며느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
    생각하니 가슴디 답답하여 사찰의 주지 스님을 만나서 집안 사정 이야기를 하며 누구의 기도를 들어주실까요?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사찰의 주지 스님께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실력이니 열심히 공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소문난 사찰의 스님을 찾아가서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스님께서는 부처님이 그렇게 속이 좁지 않다.
    그러니 할머니가 열심히 불공을 드리고 기도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이러한 사례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은사라고 합니다(고린도전서 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데살로니가후서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And pray that we may be delivered from wicked and evil men, for not everyone has faith.


    믿음이란 기준을 하나님(성경)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동일한 업종의 가게를 운영하는 업주가 있습니다.
    한 가게의 업주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게가 잘 운영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다른 가게의 업주는 부처님을 향하여 가게가 잘 운영되기를 기도합니다.
    어느 가게의 업주가 기도하는 것이 응답될까요?

    아마 기독교인들은 교회에 다니는 업주의 가게가 잘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반면에 절에 다니는 불자들은 부처님을 믿는 업주의 가게가 잘 되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이 된다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 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마태복음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태복음 8: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태복음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9:22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

    마태복음 9:29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마태복음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태복음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마태복음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마태복음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 21: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하박국
    -
    하나님과 대화로 의심의 해답을 찾은 선지자

    1. 인적 사항
     (1) 하박국은 '껴안은 자', '매달리는 자'라는 뜻.
     (2) 남유다의 선지자(합 1:1).
     (3) 하박국서 저자.
     (4) 레위 지파 출신의 제사장 또는 성가대원으로 추정(합 3:19) 

    2. 시대적 배경
    하박국은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와 신바벨론 제국의 창건자 나보폴라살(B.C.625-605년)과 메대의 시악사레스(B.C.625-585년)의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 B.C.612년부터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제1차 침입을 당했던 B.C.605년 사이에 주로 활동한 선지자다.
    이 시기에 남유다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의 통치 시대로서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 의한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이다.

    3. 주요 생애

     (1) 출생
     (2) 남 유다의 종교적 도덕적 죄악의 심각성을 인식함  1:3-4
     (3) 남 유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의로 BC 612-605, 1:2-4
     (4) 갈대아로 인한 남유다의 심판에 대한 항변 1:12-2:1
     (5) 하박국서 기록 1:1
     (6) 죽음

    4. 성품
     (1) 자기 백성의 죄악 됨을 보고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만큼 진정한 애국심의 소유자(합 1:2-11)
     (2) 이해할 수 없는 신앙문제로 혼자 고민하지 않고 그 문제점을 하나님께 아뢰고 해답을 찾고자 한 것을 볼 때 용기 있고 지혜로운 자(합 1:2; 2:1)
     (3) 자신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에 재차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그 답변을 기다리고 바랄 만큼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사색가(합 2:1).

     

    5. 구속사적 지위
     (1) 구약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찬송 중의 하나인 송시(頌詩)를 남긴 선지자(합 3장)
     (2) '이신득의'(以信得義)의 위대한 진리를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선포한 자(합 2:4) 

    6. 평가 및 교훈

     (1) 하박국은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왜 악을 허용하는가'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일어날 때에 혼자 고민하며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해답을 얻고자 하였고 하나님께만 끈질기게 매달렸다(합 1:2-4).
     오늘 우리도 성도라면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신앙문제로 심각한 고민과 낙심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우주와 역사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있는 줄을 알고 그 분께 매달리는 하박국과 같은 참된 지혜자가 되어야 하겠다(롬 11:33).

     (2) 자기 백성의 범죄 함을 보며 징계를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박국처럼 우리는 이 나라와 민족의 범죄 함을 볼 때 안타까움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가? 혹 온 사회에 만연하는 불의함 때문에 오히려 넘어지고 마는 힘없는 자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3) 하박국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증거 한다(합 2:4).
    이는 단지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외치는 교리적 선언이 결코 아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과 문제를 실제로 체험하고 깊이 상고해 본 결과 가슴 깊은 곳에서 말하는 신앙고백이다. 우리도 각자의 삶 속에서 이같은 신앙고백이 항상 있어야 할 것이다.

    하바국

    하박국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3장(구약 929장), 56절(구약 23,191절), 670단어(구약 304,901단어), 약 2,500자(구약 약 116만자)로 이루어진다.

    하박국서의 히브리어 이름은 ‘하박국( חֲבַקּוּק )'이다.
    칠십인역에서 ‘암바쿰(Ἀμβακούμ)'이라고 한다.
    불가타에서는 ‘Habacuc’, 영어성경에서는 ‘Habakkuk’, 그리고 중국어성경에서는 ‘哈巴谷書’이라 불린다.

    신약성서에서는 하박국 1장 5절(행 13:41), 2장 3~4절(히 10:37~38), 2장 4절(롬 1:17, 갈 3:11, 히 11:1~12:2)이 인용된다.
    사도 바울은 의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하박국을 인용한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은 오직 이 책의 표제와 시에만 나오며(1:1; 3:1)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하박국은 왜 주님의 정의는 이렇게 악하고 부패한 시대와 사회와 인간들에게 시행되지 않는가 묻는다.
    야훼 하나님은 불의한 백성과 왕들은 반드시 벌을 주고 징계할 것이라고 대답해 주신다.
    갈대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범죄한 유대 민족과 왕들을 벌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하박국은 종교적 세계관의 중심 문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궁극적 대답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것이다(하박국 2:4).


    역사적 이해

    하박국은 이스라엘 역사 구분에서 분열왕국시대라고 한다.
    하박국은 갈대아 우르 사람들이 일어난 때인 기원전 7세기 후반부터 기원전 6세기 초까지 쓰여졌다.
    이 때를 고려한다면 어쩌면 하박국예레미야, 스바냐, 나훔, 그리고 요엘 등과 동시대인이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비평학계 일부에선 갈대아 인들을 깃딤인 곧 헬라인으로 간주하여 극단적으로 늦은 시기로 잡는 사람들도 있다.

    갈대아 사람들이 일어난 시대(1:6)를 고려할 때, 이 책의 내적인 증거는 저작 연대에 대한 확고한 시기를 제시해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비평학계는 이러한 자료에 언제나 만족하지는 않았다.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보다 이전의 판본이 정말 3장의 시로 끝이 났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었는데. 이 시가 현재처럼 이 책의 결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했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구조와 개요

    구조는 글의 구성요소를 규명하는 단계, 각 요소의 배열을 분석하는 단계, 구조의 의미를 파악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하박국 장르 이해는 설화, 시, 예언, 신탁 등에 대한 분석이다.

    첫 부분은 선지자와 하나님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선지자는 애가의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함으로 시작한다.
    악인의 형통에 대한 불평에 대해서 주님은 갈대아인을 통해서 벌하실 것을 말씀하시자, 보다 더 큰 불평이 이어진다.
    주님께서 악인을 들어서 선민을 치시는 것에 대한 불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장에서 주님은 그 심판의 확실성을 재차 확인하셨다.
    3장은 고어체적인 히브리 시로 구성되어 있다.

    1. 일반적인 하박국 구조 : 하박국서의 선형 구조

    A  최초의 대화(1:2~11)
     a 선지자의 불평(1:2~4)
     b 주님의 응답(1:4~11)

    B 두 번째 대화(1:12~2:5)
     a 선지자의 불평(1:12~17)
     b 주님의 응답(2:1~5)

    C 압제자들에 대한 저주의 신탁(2:6~10)
     a 노략자가 노략될 것임(2:6~8)
     b 정복자가 수치를 당할 것임(2:9~11)
     c 건축자가 헛됨(2:12~14)
     d 수치가 없는 자가 수치를 당할 것임(2:15~18)
     e 우상 숭배자들이 잠잠할 것임(2:19~20)

    D 하박국의 순종의 시(3:1~19)
     a 기도(3:2)
     b 용사이신 하나님의 등장(3:3~15)
     c 믿음으로 사는 선지자(3:16~19)

    하박국의 대칭 구조

    A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1:2~4)
    B 야훼의 첫 번째 대답(1:5~11)
    C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1;12~17)
    D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됨(2:1~5)
    C' 두 번째 불평에 대한 주님의 대답(2:6~20)
    B' 야훼의 마지막 대답(3:1~5)
    A' 첫 번째 불평에 대한 하박국의 마지막 대답(3:16~19)

    이 책의 첫 부분(1:2~2:5)은 하나님과 선지자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1:2~4와 1:12~17에서와 같은 애가 양식은 시편의 애가시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시편에서는 보통 이러한 애가시들은 주님께서 그 시편 기자의 불평을 들으시고, 그를 구원하고, 보호하시며 그나 이스라엘의 적들을 심판 하실 것을 확약하시는 주님의 응답으로 이어진다.

    하박국은 “왜 악인이 번성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던지며, 유다에 힁행하고 있는 악과 불의와 폭력에 대해서 불평했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선지자가 기대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층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하나님은 악을 심판하시되, 이를 위해서 유다의 악보다 더 악한 악을 도구로 사용하실 것이며, 보다 악한 이들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이 선지자의 두 번째 불평을 도입하는데(1:12~17)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참아 보실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 자신들보다 의로운 자들을 집어삼키도록 허락하실 수 있는가(13절)?
    그들은 계속해서 번성하고 그들의 그물을 채우며, 계속해서 사치롭게 살 것인가(16~17)? 에 대한 주님의 대답을 보려고 파숫군처럼 인내하며 기다린다(2:1).

    2. 돌시의 하박국 구조 : 돌시는 에스델 구조를 7중 대칭구조로 분석한다. 돌시의 하박국 구조

    A 1:2~4 하박국의 첫 번째 불평
    B 1:5~11 야훼의 첫 번째 응답
    C 1:12~17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
    D 2:1~5 기다리라는 권고
    C′ 2:6~20 하박국의 두 번째 불평에 대한 야훼의 응답
    B′ 3:1~15 야훼의 마지막 응답
    A′ 3:16~19 야훼의 첫 번째 응답에 대한 깨달음

    돌시는 하박국을 7중 대칭구조로 보았다.
    이 구조에서는 핵심부분(D, 2:1~5)이 ‘기다리라는 권고’를 한다.

    신학적 이해

    하박국은 역사의 마지막 시기에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다.
    내적으로는 부패하였으며, 신흥하는 바빌론의 세력으로 도전을 받고 있었다.
    선지자는 이런 정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무관심하시다고 불평을 하고 있지만,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나아가서 온 땅에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했다.
    결국 하박국은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며,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하박국은 내적인 부패로 썩어 있었으며 새롭게 부각하는 바빌론의 세력이 곧 성전과 도성을 멸망시킬 운명에 있는, 역사적 마지막 시기의 처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말씀을 선포했지만, 선지자의 시각으로는 이러한 이중의 악이 힁행하는 가운데 주님은 활동하시지 않고 무관심 하신 것처럼 보였다.

    많은 학자들은 하박국의 불평들을 욥기와 비교 했는데, 욥처럼 이 선지자도 아무리 현상이 반대로 된 것처럼 보이고 아무리 정황이 어려워 보여도 계속해서 주님의 약속들을 믿고 신뢰해야 하며, 온 땅의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함을 배웠다.

    또한 믿음으로 사는 법과, 재난에 직면해서 자신의 구원자이신 야훼를 찬양하는 법까지 배웠다.
    이후 수백년 후에 다시 악과 불의가 전에 자주 그랬던 것처럼 흥왕하고 있었는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은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상징되는 성전이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조롱하였지만, 이 선지자는 주님을 신뢰했으며(마태복음 27:43: 히브리서 10:35상),
    주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로서 그를 변호하셨다(로마서 1:4).
    예수의 부활은 멀리 계신 게 아니며, 악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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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가?

    노예 매매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집에 죠(Joe)라는 노예있었는데 일을 잘했다.
    그래서 주인은 죠를 사랑했고, 무엇을 하든지 의논을 해서 했다.

    어느 날 주인은 몇 명의 노예를 사기 위해서 노예 시장을 죠와 같이 가게 되었는데 상품처럼 진열된 많은 노예 중에 늙고 야윈 검둥이 노예가 하나 있었다.

    "죠"는 잠시 바라보다 주인에게 저 늙은 노예를 사라고 했다.
    그때 주인이 아니 살찌고 젊은 노예가 많은데 왜 늙은 것을 사야 하느냐고 하면서 거절을 하였다.
    그러나 "죠"는 계속 우겨 결국은 사오게 되었는데 "죠"는 정성스럽게 잘 돌봐 주었다.

    이것을 주인은 먼 거리에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어느 날 "죠"를 불러 너는 왜 늙은 노에를 사라고 했으며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돌봐주는데, 혹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죠"는 아닙니다. 주인님! 그는 "나의 원수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 그는 나를 유괴해서 지금 주인님께 판 자입니다.
    우리가 시장에 나갔던 그날 거기서 그를 보았을 때, 한 작은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려 왔습니다.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이마르거든 마시우라"(로마서 12:20)
    저는 크리스챤이 되었는데 그를 돕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원수를 초월한다.

    마태복음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26-28,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누가복음 6:3536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Be merciful, just as your Father is merciful.)

    예를 들면 사랑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사랑의 기준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기록된 말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거북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6: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
























































    카톡 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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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과 이발소 주인

    어느 날 꽃장수가 이발소에 왔어요.
    이발을 하고는 얼마냐고 물었지요.
    이발사는
    이번 주는 마을을 위해 자선봉사를 하고 있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지요.

    꽃장수는 즐거운 맘으로
    이발소를 떠났어요.

    다음 날 아침
    이발사가 출근하니
    꽃다발과 감사카드가 꽂혀 있었지요.

    다음 날에는
    경찰관이 왔어요.

    이발사는
    또 이번 주는
    마을을 위해 자선봉사를 하고 있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지요.

    경찰관은
    즐거운 맘으로
    이발소를 떠났어요.

    다음 날 아침
    이발사가 출근하니
    도너츠 한 판과 감사카드가 꽂혀 있었지요.

    다음 날에는
    국회의원이 왔지요.

    이발사는
    또 이번 주는
    마을을 위해 자선봉사를 하고 있어
    돈을 안 받겠다고 했지요.

    국회의원은 즐거운 맘으로 이발소를 떠났어요.

    다음 날 아침
    이발사가 출근하니
    12명의 국회의원이 공짜 이발을 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겠어요?

    시민들과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 주는 것 같지 않나요?

    이래서 정치인과  기저귀는 자주 바꿔 줄 필요가 있는가 봅니다.

    만일 당신이
    이 메시지를 다른 분에게
    전달할 수 없다면
    당신은 유머 감각이 없으신 겁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사람들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다.

    - 희랍의 철인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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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 그리고 온라인 예배

    예루살렘 단 한 곳에만 있던 솔로몬 성전은 대제사장이 주도하는, 왕족 중심의 예배당이었지만
    건물 파괴로 1000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하지만 유대인 포로기 때부터 10명의 성인 남성이 모이면 어디나 만들던 회당은 말씀 중심으로 모임을 이어오며
    2500년 넘게 존속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에 의한 변화

    1. 정책 당회로 내년도 예산을 정하는 시기를 맞아 부교역자를 줄이거나 목회자들이 공동으로 임금 삭감을 감수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2. 작은교회 지원 및 해외선교, 기관선교 등의 예산이 줄고 있어 우려된다.

    3.  소그룹이 잘 세워진 교회들이 상대적으로 타격을 덜 받았다.

    4. “장애인 없는 교회가 장애 교회” 라고 말한 장애 신학자 울리히 바흐를 소개하면서 교회의 디아코니아(섬김)를 강조했다.

    5. 온라인 예배가 오프라인 예배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지만, 아픈 이들을 위한 쌍방향 온라인 예배 및 제한적 성찬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6.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예배와 성만찬, 교회 공동체 등에 대한 신학적 정의가 필요하다.

    7. 코로나19로 비대면예배, 비대면성만찬 등이 이뤄졌는데 이를 온전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신학적 연구가 꼭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내 생각이 신학으로 자리 잡아가는 위험 속에 살고 있어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8. 교회가 강화해야 하는 것은 ‘온라인’이다.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전국 만 19세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6.9%가 온라인 시스템 구축 및 온라인 콘텐츠 개발에 교회가 힘써야 한다고 답했다.)

    9. 온라인 예배로 인한 신학적 정의가 필요한 것들
      (1) 온라인 세례
      (2) 온라인 성찬예식
      (3) 온라인 헌금
      (4) 온라인 교제
     
    * 시급한 과제는 세례와 성찬예식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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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유행하면 백김치 많이 팔린다. 그 이유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세가 심해질 때마다 백김치 수요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보기앱 ‘마켓컬리’는 아이들이 집에서 식사를 하는 횟수가 늘면서 백김치 주문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마켓컬리가 지난 1월부터 이달 18일까지 포장김치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백김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 증가했다고 20일 밝혔다. 전체 포장김치 판매량 중 백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13%로 가장 컸다.

    특히 백김치 판매량은 코로나 사태가 확산할 때마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지난 2월과 3월 백김치 판매량은 전월 대비 각각 61%, 45% 증가했다.

    이어 4~6월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지 않거나 감소했던 백김치 판매량은 코로나 재유행이 본격화한 지난 7월과 8월 들어 전월 대비 평균 28%의 증가율을 보였다. 7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세배 이상을 기록했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코로나가 유행할 때면 아이들도 집에 머물며 집밥을 먹는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아이들 입맛에 맞는 백김치를 찾는 수요도 덩달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1월부터 이달 18일까지 전체 포장김치 제품 중 판매량 1위와 4위를 차지한 것은 짠맛을 줄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놓은 어린이용 백김치 제품이었다. 이들 어린이용 백김치 2종의 판매량은 전체 백김치 판매량의 59%에 달했다.

    포기 김치의 경우에는 전에 비해 더 많은 용량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기김치의 경우 작년에는 300g대 소포장 상품이 가장 많이 팔렸지만, 올해는 1kg 제품이 가장 많이 판매됐고, 이어 배추 약 2포기 양인 3kg 제품이 뒤를 이었다. 집밥을 먹는 횟수가 늘면서 기왕이면 더 큰 용량의 김치를 산 것이다.

    이색 김치를 찾는 이들도 많았다. 경상도식 김치인 콩잎김치와 신선한 깻잎에 양념장을 갓 바른 생깻잎김치는 제품별 판매량 순위에서 상위 20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무와 배추를 섞어 만든 섞박지도 전년 대비 판매량이 360% 증가했다.

    * 자료출처 /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0/20/20201020016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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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 코로나 극복 제일 좋은 방법
    이스라엘에서는 죽음 자 한명도 없음

    레몬차에 베이킹 소다(빵 제조시 사용되는 가성 소다)
    이스라엘에서는 C-19에서 죽음이 없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슈퍼 뉴스를 말했다.
    이것이 그것이 도착한 방법이며 이것이 내가 보내는 방법입니다.

    C19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법 또는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방법이 달성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이 바이러스가 사망하지 않은 정보

    레시피는 간단합니다 

    1.  레몬
     2.  중탄산염

    매일 오후 뜨거운 차로 섞어 마시면 더 뜨거운 베이킹 소다와 레몬의 작용은 즉시 바이러스를 죽입니다
    몸에서 완전히 제거합니다.
    이 두 성분은 밤이되면 시스템이 산성이되고 방어력이 낮아지기 때문에 면역계를 알칼리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이 바이러스에 대해 긴장을 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밤에 레몬과 베이킹 소다가 든 뜨거운 물을 마신다.

    나는 우리 가족 중 누구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모든 가족 및 친구들과 공유합니다.
    나는 당신의 기준에 맡깁니다.


    참조 #. 1

    베이킹소다가 몸에 좋을까요? 의학적 증거자료 (1편)


    참조 #. 2
    베이킹소다: 몸에 작용 기전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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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ollowing is from Irene Ken physician, whose daughter is an Asst.
    Prof in infectious diseases at Johns Hopkins University, quite informative.


    이글은 존스홉킨스 감염학과 조교수의 엄마이며 의사인 아이린 켄 이란 분이 올린 글입니다.

    *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but a protein molecule (DNA) covered by a protective layer of lipid (fat), which, when absorbed by the cells of the ocular, nasal or buccal mucosa, changes their genetic code. (mutation) and convert them into aggressor and multiplier cells.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고 지방껍질로 쌓여 있는 단백질 분자이고,
    눈, 코, 입안 점막의 세포 등에 흡착되면 유전정보가 바뀌게(변형) 되고, 공격인자와 중폭세포로 전환됩니다.


    * Since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but a protein molecule, it is not killed, but decays on its own. The disintegration time depends on the temperature, humidity and type of material where it lies.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고 단백질분자기 때문에 죽는게 아니고 스스로 부패됩니다.
    분해시간은 온도, 습도, 그리고 붙은 표면에 따라 다릅니다.


    * The virus is very fragile; the only thing that protects it is a thin outer layer of fat. That is why any soap or detergent is the best remedy, because the foam CUTS the FAT (that is why you have to rub so much: for 20 seconds or more, to make a lot of foam).

    바이러스는 외부 단백질막이 유일한 방어막이기 때문에 아주 약합니다. 바로 비누나 세탁제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는 이유인 것이, 비누거품이 지방을 분해하기때문입니다. (이것이 손을 20초이상 잘 씻어 충분한 거품을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By dissolving the fat layer, the protein molecule disperses and breaks down on its own.

    지방막을 녹이므로서 단백질분자를 녹이고 스스로 분해되게 합니다.

    * HEAT melts fat; this is why it is so good to use water above 77 degrees Fahrenheit for washing hands, clothes and everything. In addition, hot water makes more foam and that makes it even more useful.

    열은 지방을 녹입니다. 때문에 손 옷 등 무엇이던 씻을 때는 25C 이상 따듯한 물을 쓰도록 하고, 특히 거품이 잘 나면 더 이롭습니다.

    * Alcohol or any mixture with alcohol over 65% DISSOLVES ANY FAT, especially the external lipid layer of the virus.

    알콜이나 65프로 이상 알콜 혼합용액이 모든 지방을 녹입니다. 특히 바이러스의 외지질막을 잘 녹입니다.

    * Any mix with 1 part bleach and 5 parts water directly dissolves the protein, breaks it down from the inside.

    표백제 1 당 물 5을 희석한 용액이 단백질을 직접 녹이고 속에서부터 분해시킵니다.

    * Oxygenated water helps long after soap, alcohol and chlorine, because peroxide dissolves the virus protein, but you have to use it pure and it hurts your skin.

    바이러스 단백질은 비누 알콜 클로린 소독 후 산소화용액으로 지속적 효과가 있는데, 순수형태이야 하고 피부를 상하게 할 수 있슴

    * NO BACTERICIDE OR ANTIBIOTIC SERVES.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like bacteria; antibodies cannot kill what is not alive.

    항박테리아나 항생제는 소용이 없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같이 생물이 아님. 항생제로는 생물이 아닌 것을 죽일 수 없슴

    * NEVER shake used or unused clothing, sheets or cloth. While it is glued to a porous surface, it is very inert and disintegrates only
    -between 3 hours (fabric and porous),
    -4 hours (copper and wood)
    -24 hours (cardboard),
    - 42 hours (metal) and
    -72 hours (plastic).

    사용했거나 쓰지 않은 옷, 시트, 옷감을 절대 털지 마세요. 구멍있는 곳에 자리 잡으면 털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야 분해 됨.
    - 옷감, 구멍 3시간
    - 구리, 목재 4시간
    - 카드보드박스 24시간
    - 금속 48시간
    - 플라스틱 72시간

    But if you shake it or use a feather duster, the virus molecules float in the air for up to 3 hours, and can lodge in your nose.

    그렇지 않고 털거나 먼지털이로 털면 바이러스분자가 최고 3시간동안 공기중에 떠다니다 코속으로 들어가 자리잡을 수 있슴

    * The virus molecules remain very stable in external cold, or artificial as air conditioners in houses and cars.

    바이러스분자는 바깥 추위나, 집 차안 에어컨에서 아주 안정적임.

    They also need moisture to stay stable, and especially darkness. Therefore, dehumidified, dry, warm and bright environments will degrade it faster.

    또 놈들은 안정화되려면, 특히 어두운 곳에서, 습기가 필요함  따라서 습기가 재거된, 건조하고 따듯하고 밝은 환경에서 더 빨리 분해됨

    * UV LIGHT on any object that may contain it breaks down the virus protein. For example, to disinfect and reuse a mask is perfect. Be careful, it also breaks down collagen (which is protein) in the skin.

    자외선이나 자외선이 포함된 모든것이 바이러스단백질을 분해함. 예를 들어 자외선으로 마스크를 소독해서 다시 쓸 수 있슴. 하지만 피부도 콜라겐 단백질로 되어있으니 조심해야 함

    * The virus CANNOT go through healthy skin.

    바이러스는 건강한 피부를 통과할 수 없슴

    * Vinegar is NOT useful because it does not break down the protective layer of fat.

    식초용액은 지방보호막을 분해하지 못하니 소용이 없슴

    * NO SPIRITS, NOR VODKA, serve. The strongest vodka is 40% alcohol, and you need 65%.

    술, 보드카도 소용 없슴. 아무리 쎈 보드카도 40프로 정도임. 65프로가 필요함

    * LISTERINE IF IT SERVES! It is 65% alcohol.

    구강 가글 리스테린은 65%알콜이라 효과가 있슴

    * The more confined the space, the more concentration of the virus there can be. The more open or naturally ventilated, the less.

    밀폐된 공간일수록 바이러스 농도가 높을 수 있슴. 열린공간이나 야외 일수록 농도가 낮음

    * You have to wash your hands before and after touching mucosa, food, locks, knobs, switches, remote control, cell phone, watches, computers, desks, TV, etc. And when using the bathroom.

    점막, 음식, 자물쇠, 문고리, 스위치, 리모콘, 핸폰, 시계, 컴퓨터, 책상, TV 등을 만진 전 후 꼭 손을 씻을것. 그리고, 화장실도...

    * You have to Moisturize dry hands from so much washing them, because the molecules can hide in the micro cracks. The thicker the moisturizer, the better.

    손을 자주 씻기때문에 꼭 보습제를 쓰는데, 안 그러면 피부 미세 걸라진곳에 바아러스가 숨을 수 있슴.
    두텁게 보습제를 바를 수록 더 좋음

    * Also keep your NAILS SHORT so that the virus does not hide there.

    그리고, 손톱도 짧게해서 바이러스가 숨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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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들 정보통에서 받은 것 중요해서  알립니다.

    뉴욕 의과대학에서 온 것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비엔나 실험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환자들 대부분의 피에 애드빌(Advil. ibuprofen)이 들어있음이 발견됐고,
    바이러스 증상에서 회복된 사람들은 ibuprofen을 복용하지 않은 것이 발견됐으니,
    꼭 필요하시면 Acetaminophen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시래요.

    이 바이러스는 Advil이 10배는 증상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폐염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합니다.
    꼭 필요하시면 당분간 타이레놀(Tylenol)이나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세요.
    그리고 되도록 공중 화장실을 쓰시지 마시고 현재와 4월 첫번째 주까지 Virus가 창궐하는 시기라고하니 더욱 외출을 삼가고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로 오히려 걱정을 유발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조심스레 이 정보를 나눕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며 가까운 장래에 모든 동문님들을 반갑게 만나뵐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Doctor from NYU- FYI:
    Information from Vienna’s laboratory studying COVID-19 say vast majority of people
    who died had ibuprofen/Advil in thei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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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한균희교수팀이 하신 말씀

    현재 의약계에서는 코로나 2차 파동을 우려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코로나는 우한바이러스인 S형이고,
    이탈리아에서 번지고 있는 코로나는 이미 변형된 바이러스로서 우리보다 감염이 4배나 빠른 악성이라고 합니다.
    즉, 앞으로 2주간이 정말로 중요한 시기라고 하네요.
    그리고 지금 절대로 감기에 걸리면 안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몸 따뜻하게 하시고,
    절대 외출 삼가 하시고,
    건강에 많이 유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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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사프 비튼 박사(Asaf Bitton MD, MPH)
    (Executive Director, Ariadne Labs, Brigham and Women’s Hospital,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하바드 대 공중위생과 브릭햄 여성병원 디렉터가 미 국민에게 보내는 글 :

    학교와 스포츠 이벤트를 닫고 사회적인 불황을 가져오고 있는 예전에 없었던 이 팬더믹 기간에 우리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돈이 많이들 있는 줄 압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인포를 가지고 몇가지 기본적인 행동지침을 나누고자 합니다.

    의사로서, 그리고 공중위생 리더로서 제 의견으로는 온 국민이 앞으로 몇주간 무엇을 하고 안 하고에 달려 코로나바이러스의 사선에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이라 예상이 됩니다. 

    모든 현재 상황을 볼 때, 미국은 오직 11일만 있으면 이태리의 불행한 처지 쪽으로 pace 를 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빠른 방법으로 테스트를 하는 것은 오직 부분적인 해결 대책입니다. 
    지금은 빠른 속도로 번져가는 일을 막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래서 모든 밀집과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폐쇄하여 코로나 확산 그래프 커브를 가능한 평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 시스템은 앞으로 나올 중 환자들을 감당할 수용력이 없습니다. 
    현재로 미국 전체 병원에 4만 5천 ICU 침대가 있습니다. 
    이것을 위기 상황에 두배로 늘린다고 해도 지금 코로나 사선 경향으로 계속 간다면 4월 중순에는 이미 다 넘쳐 흐를 것입니다. 
    이 상태를 막는 오직 길은 당분간 서로 거리를 두고 사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적극적이고 극단적인 사회적 간격 두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하지 않으면 미국은 앞으로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에 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 전반적인 사회적 간격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가족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자제한다. 

    슬립 오버, 파티, 함께 모여 집에서 노는 이벤트를 중단한다. 
    가족 친지들 가운데, 특히 어린이들이 함께 만나 서로 모이는 걸 하지 않는 것은 극단적인 것 같지만, 한 사람도 내 직 가족 외에 접촉을 하게 되면 감염 찬스가 새롭게 열리게 됩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공공장소 모임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이런 모임을 가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증상은 4-5일 후에 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아무 증상이 없는 건강한 사람 같아도 옮길 수 있습니다. 
    음식을 나누는 것이 특히 위험합니다. 
    자기 직계 가족 외에는 같이 음식을 나누지 않는 것을 권합니다. 
    불편해도 일찍부터 사회적 간격 두기를 실행하면 우환과 이태리 같은 불행을 모면할 수 있습니다.

    2. 걷기운동이나 뛰는 혼자 운동하는 것은 밖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과 6피트 간격을 꼭 두기 바랍니다. 
    농구나 축구 같이 사람들과 같이 하는 운동은 금물입니다. 
    공공 장소에 있는 구조물을 될 수 있으면 만지지 말것
    – 바이러스가 쇠에나 플라스틱에 닿을 경우 3일 동안 살아 있습니다. 
    내 직계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은 접촉하지 마십시오. 
    밖에 나가도 사람들과 적어도 6피트 간격을 두십시오. 
    특히 아이들을 주의시켜 다른 아이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주십시오. 
    나이든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들이 제일 risk 가 높습니다. 
    병원도 emergency 아니면 당분간 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3. 스토어나 식당, 커피숍 등을 당분간 자제하고 마켓도 꼭 가야 할 때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없는 시간을 사용하십시오. 

    마켓을 갈 때에는 장갑 사용하십시오(메디컬 글러브 말고 씻을 수 있는 장갑). 
    쇼핑을 마치고 꼭 손을 씻기 바랍니다. 
    Take-out 음식은 집에서 만드는 음식보다 위험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의 접촉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4. 내가 아프면 집에서 나가지 말고 병원에 연락하십시오. 

    내가 아프면 될 수 있는 대로, 집사람들과도 간격을 두십시오.
    내가 코로나비이러스 테스트를 해야 할지 궁금하시면 먼저 병원에 연락을 하십시오. 
    절대로 먼저 병원에 먼저 들어가지 마십시오. 
    정 위험하거나 급하면 911 을 부르십시오.


    5. 모든 공공기관이나 이벤트는 닫고 공적인 장소에서 모이는 것을 즉시 폐쇄해야 합니다. 

    이 준비를 대대적으로 즉시 실행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 입니다. 
    위의 권하는 내용들이 많고 힘이 드는 일들이지만 사회적 간격 운동은 사회적으로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홈리스나,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겠지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대책을 정부가 세우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간격 운동은 특히 노약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데 있어서 필수입니다. 
    그리고 공공 건강을 위해서 지금은 절대적입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이 운동을 지금부터 펼치지 않으면 나중에는 강제로 해야할 날이 올 것이요 그 날에는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Asaf
    Asaf Bitton MD, MPH | Executive Director | Ariadne Labs
    Brigham and Women's Hospital | Harvard School of Public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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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우한 코로나 완치 여성의 체험기를 읽어보시고 예방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우한코로나에 걸렸다  완치한 20대 후반의 여성입니다.
    사람들에게 코로나에 대한 경각심과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 또 후유증에 대해 알리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별다른 약물 치료는 하지 않은 채 자연치유로 37일 만에 음성 두 차례 판정을 받고 퇴원하였습니다.
    물론 증상이 있었습니다.
    기침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 적도 있고 생리가 열흘이나 지속되고 설사, 후미각 상실 등의 증세가 있었지만 이것은 비교적 약한 증상에 해당되어 이 정도의 환자는 약을 복용하지 않은 경우가 회복이 빨랐다는 담당의 선생님의 임상적 소견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는 애초에 치료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제 고통은 퇴원 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현재 다니던 직장까지 관두고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치료 중에는 병실 안에 누워 쉬는 것 밖에 하지 않으니 몰랐던 후유증이 일상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찾아왔습니다.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고 갑갑해집니다.
    또 코부터 머리까지 울리는 것처럼 두통이 찾아옵니다.

    병원에서부터 있던 후각 이상 증상은 계속되어 음식 맛은 둘째 치고 이 음식이 상했는지 판단도 어려워 더운 날 빠르게 쉰 음식을 먹고 배탈도 한두 차례 났습니다.

    냄새를 못 맡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삶의 질의 저하를 가져옵니다.
    팔다리가 저릿저릿하고 온몸에 기운이 없습니다.
    두 세 시간이 안 되는 짧은 외출에도 이런 후유증이 올라오기에 일은 도저히 다닐 수가 없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렇게 방 안에만 누워있는 게 너무나 억울하고 몸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힘이 듭니다.

    저는 이태원 클럽 발 감염자의 직장 동료로 2차 감염이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코로나에 대한 공포심이 많았던 저는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였고 내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만지면 꼭 손소독을 했습니다.
    버스 손잡이도 가게 문 손잡이도 잡지 않고 어쩔 수 없이 만졌다면 바로 소독했습니다.
    또 사무실에서도 늘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켜왔지만 지키지 못한 단 한 가지는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은 모두 식사 시간에만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는데 저는 모두가 이때 코로나에 노출된 것이라 확신합니다.

    제발 많은 분들이 식사 자리와 카페에서 얼마나 본인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깨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스크의 중요성입니다.
    저는 제가 코로나에 걸릴까 무서워 마스크를 정말 빠짐없이 착용하였습니다.
    출근 전 방에서 나서기 전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퇴근 후 곧바로 손을 씻고 방 안에 들어와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그 덕에 가족들과 남자친구 및 저와 접촉했던 사람들 모두가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와 남자친구는 퇴근 시 몇 차례 픽업을 도와주며 차 안이라는 밀폐되고 좁은 공간에 일정 시간 이상 함께 있었음에도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여 3차 감염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지키기 위해 쓴 마스크였지만 결론적으로 제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로나는 생판 모르는 남한테 걸리는 경우보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 가족 동료로부터 걸리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끼리만 놀면 안 위험해. 내 친구, 가족은 안 걸렸을거야.' 라는 안일한 마음.
    그 틈을 코로나는 파고든다는 걸 항상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코로나가 단순 감기가 아니라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고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두 지키는 방법은 현재 마스크뿐이라는 걸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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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정체
    과연 독감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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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진자와 4인용 식탁 앉았다면···가장 위험한 자리는 어디

    14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일본 국립 이화학연구소와 고베(神戶)대 연구팀 등이 세계 최고의 연산 속도를 자랑하는 슈퍼컴퓨터 '후가쿠'(富岳)를 활용해 대화시 비말(침방울) 확산 상황을 예측했다. 
     
    4인 테이블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감염 위험은 감염자의 옆자리가 가장 높았고, 그다음이 앞자리, 대각선 방향 앞자리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일본 식당에 주로 놓여있는 가로 120㎝, 세로 60㎝의 표준형 테이블에 4명이 앉아 대화하는 상황을 상정했다. 네 명 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감염자는 정면, 옆자리 방향, 대각선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각 1분씩 대화했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산된 비말의 양을 계산한 결과, 앞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튄 침방울의 양을 1로 잡았을 때 옆자리로 튄 침방울의 양은 5로 다섯배 많았다. 
     
    대각선 방향 앞자리의 사람에게 닿는 침방울은 앞자리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즉 옆자리의 감염 위험은 대각선 방향 앞자리의 20배나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페이스실드(얼굴 가리개)나 칸막이 등을 활용하는 것이 코로나19 감염 방지에 효과가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습도와 비밀 확산의 상관관계도 분석했다. 습도 30%에서 대화할 때 테이블 맞은편으로 날아간 비말의 양은 습도 60%일 때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습도가 낮을수록 비말이 가벼워져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근거로 공기가 건조한 겨울엔 실내 습도를 높이는 것이 코로나19 감염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후가쿠'는 이화학연구소와 전자업체 후지쓰(富士通)가 공동 개발한 슈퍼컴퓨터로, 지난 6월 발표된 전 세계 슈퍼컴퓨터 계산속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출처 : 중앙일보] 확진자와 4인용 식탁 앉았다면···가장 위험한 자리는 어디

    https://news.joins.com/article/23894455?cloc=joongang-home-newslis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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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일상 방역망 ‘마스크’ 감염·증세·사망자 모두 줄여
    과학자들은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팬데믹) 시기에 인명을 구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아직도 마스크의 효용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과연 얼마나 더 증거가 필요한 것일까.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6일 마스크의 코로나 바이러스 차단 효과에 대한 과학 연구 결과를 집중 분석했다.

    마스크는 3500만 명의 환자와 1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의 상징과도 같다. 병원이나 의료 기관에서 사용되는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쓰는 다양한 형태의 마스크도 같은 효과가 있는지는 데이터가 중구난방이라 확실하게 말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일부 정치 지도자들의 부정적 언급도 마스크의 필요성에 대해 혼란을 부추겼다.

    과학자들은 이 같은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마스크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마스크는 착용자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과 함께 다른 사람에 대한 전파를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일부 연구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도 마스크를 썼다면 중증 증세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스크 의무화로 사망자 4분의 1로 감소

    의료 기관에서 쓰는 표준 마스크인 N95(한국의 KF94에 해당)는 0.3마이크로미터(1마이크로미터는 100만분의 1미터) 이상의 입자를 95% 차단한다. 비슷한 규격의 국내 KF94 마스크는 94% 차단 효과가 있다. 코로나 대유행이 일어나면서 이 마스크는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그러자 일반인이 의료진이 쓰는 마스크가 아닌 천 마스크를 써도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있는지 논란이 발생했다. 과학자들은 실험과 관찰, 다른 감염병의 사례를 통해 마스크에 대한 증거를 찾았다. 논란을 한 번에 잠재울 연구 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여러 증거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 6월 미국 미조리주 두 미용사의 사례가 마스크에 대한 확신을 제공했다. 두 사람은 모두 코로나에 감염돼 가족에게 바이러스를 옮겼지만, 두 겹의 천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해서 손님 중에 한 명도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또 미국의 흑인 인권 시위에서도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해 대규모 인원이 집결했음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지 않았다. 반면 6월 조지아주의 여름 캠프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가 아니다 보니 코로나 환자가 속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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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코로나 치명율변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시간(가로축, 단위 주)가 늘수록 1인당 치명율(세로축)도 늘어났다./메드아카이브

    좀 더 확실한 과학적 증거도 제시됐다. 지난 8월 미국과 캐나다, 폴란드 공동 연구진은 논문 사전 출판 사이트인 메드아카이브에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거나 의무화한 곳은 다른 곳보다 치명율이 4분의 1로 줄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0국을 조사했는데, 마스크 착용이 1월부터 실시된 몽골은 5월까지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논문에서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진은 뉴욕주 등에서 4월부터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면서 메일 코로나 확진자 증가를 2%씩 감소시켰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마스크 의무 착용이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다른 방역 대책과 함께 확진자 45만 명을 줄였다고 추정했다.

    ◇에어로졸 차단 효과 실험도 잇따라 나와

    마스크의 바이러스 차단 효과는 실험을 통해 좀 더 확실하게 입증됐다. 홍콩대 연구진은 햄스터 우리를 수술용 마스크로 분리하고, 한쪽 햄스터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감염시켰다. 그 상태에서 반대쪽 햄스터를 관찰했다.

    실험 결과 마스크 장벽이 없으면 반대 우리의 햄스터 중 3분의 2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반면 마스크로 가리면 25%만 감염됐다. 게다가 감염된 햄스터도 마스크 장벽이 없는 우리의 햄스터보다 증세가 덜 했다.

    * 자료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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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NA-1273백신' 인류를 구원할 신의 선물
    '워프스피드(Warp Speed)'작전 성공!

    미국이 또 해냈다 정말 놀랍다.
    전무후무한 일이 일어났다.
    사이토카인(cytokine storm) 면역폭풍 없이 'mRNA(핵산백신)-1273백신'을 사람 몸에 안전하게 집어 넣는 기술에 성공했다.
    정말 중요한 핵심기술인데 미국 정부의 '워프스피드 작전팀'이 그 어려운 걸 단 몇개월 만에 완성 시켜버렸다.
    임상3상 시험까지 이렇게 최단기간에 백신 물질을 안전하게 만들어낸 적은 이전에 없었다.
    이젠 제발 코로나 약도 없고,치료제도 없단 말 그만하라


    임상1상 45명 시험참가 전원 항체 성공!
    임상2상 600명 시험참가 전원 항체 성공!
    임상3상 코로나에 걸린적 없는 3만명 진행중(7월시작~9월 종료예정) 3만명 또한 무난히 항체형성 예정이고
    11월~12월 드디어 백신출시 대박 (당연히 美자국민 먼저겠지)

    이미 5억개 생산계획이 전부 완료 스탠바이 대기중에 있고, 곧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백신 부작용은
    다음과 같다 Fatigue 피로(80%),chill 오한(80%),headache두통(60%),myalgia근육통(53%) 그런데 독감접종과 비슷한 유형의
    부작용이 나타났고 쉽게 말해 이런 수준의
    부작용은 거의 부작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COVID-19바이러스 중화 항체가 첫 접종을 받은지 2주만에 임상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서 생겼다

    'mRNA-1273백신' 2차 접종 43일째 평균 중화 항체의 농도가 실제로 COVID-19에 걸렸다가 회복된 환자의 항체보다 무려 4.1배가 높게 나왔다 드디어 인류가 강력한 면역력을 탑재하게 되고 더이상 COVID-19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단 뜻이다
    이것의 의미는 일상이 회복되는 것이고,경제가 회복되는 것이고,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압할 명분과 근거들이 모두 사라진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오테크놀로지 역사상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백신개발이 완료된 적이 없다 'mRNA-1273백신'에
    올인한 백신개발팀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간섭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을 인류가 함께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워프스피드 작전'은 인류가 최초 달에 간것 만큼에 버금가는 백신개발 혁명사다.

    'mRNA-1273백신' 상용화 되는 그 날부터 더이상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경제셧다운,락다운 전부 해제다 이 백신은 빌게이츠 백신과 철저하게 구분되고 차별성을 띤 미국정부 주도의 민관협력의
    결과물이다 'mRNA-1273백신'은 미국을 구원할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신의 선물'이다

    나는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mRNA-1273백신'을 가장 먼저 맞을 각오가 되있다

    창조주로부터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권이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다 그 정부는 지금  'mRNA-1273백신'이라는 신의 신물을 받았고 ,미국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진리앞에 정렬되어 지고 있다 so help us God...

    (mRNA-1273 백신 임상시험 보고서 논문)
    https://investors.modernatx.com/node/8986/pdf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oa2022483?query=recirc_curatedRelated_article

    (올해 연말까지 백신3억개 제공 목표 美국방뉴스)
    https://www.defense.gov/Explore/News/Article/Article/2311177/operation-warp-speed-on-track-for-end-of-year-vaccine-deliv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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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뇌세포 공격 발작·정신착란 유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뇌세포를 공격해 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발작이나 정신착란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뇌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고, 인체 다른 부위의 감염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 있다는 예일대학교 면역학자 이와사키 아키코 박사의 논문을 보도했다.

    이와사키 박사는 코로나19로 숨진 환자의 뇌세포와 함께 실험용 생쥐, 줄기세포로 만든 장기유사체를 이용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뇌세포를 공격하는 과정을 연구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뇌세포의 복제 기능을 통해 번식한 뒤 산소 공급을 막아 신경세포를 괴사시킨다는 것이 이와사키 박사의 연구 결과다. 지카 바이러스처럼 뇌세포를 직접 공격하는 바이러스에 대해선 인체의 면역기능이 작용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것처럼 바이러스가 은밀한 공격을 할 경우엔 면역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와사키 박사의 연구는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에게서 산소공급 부족으로 인한 뇌세포 손상을 확인한 다른 연구 결과와도 부합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의학계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호흡기관과는 달리 두뇌 침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앤지오텐신 전환효소2(ACE2)를 이용해 세포에 침투하지만, 두뇌엔 ACE2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와사키 박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두뇌의 신경세포(뉴런) 연접부인 시냅스를 이용해 두뇌에 침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선 코로나19 환자가 발작 등 신경계 관련 증상을 보이는 것은 뇌세포가 바이러스에 직접 공격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인체 다른 부위의 염증이 뇌세포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http://eviewer.koreatimes.com/online_viewer.aspx?seq=7495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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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00907/102827202/1?ref=main

    “코로나19 완치 후 87% 후유증 시달려”
    가장 심한 증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완치된 후에도 피로감, 호흡곤란 등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7일자)에 따르면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바티칸가톨릭대 부속병원은 코로나19로 입원했던 감염자 중에서 완치돼 퇴원한 143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코로나19 증상이 나타나고 2개월이 지난 뒤 완전히 증상이 없어진 사람은 18명(13%)뿐이었고, 87%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후유증이 있는 사람 중 55%는 3가지 이상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답했고 1, 2가지 후유증을 가진 이는 32%였다.

    코로나 후유증(복수 응답)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피로감(53%)이었다. 이어 호흡곤란(43%), 관절통(27%), 가슴 통증(22%)이 뒤를 이었다. 후각이나 미각에 장애가 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후유증은 다른 국가에서도 확인됐다. 아에라는 “중국, 프랑스 등에서는 환자 상당수가 폐 기능이 저하돼 퇴원 후에도 숨쉬기가 답답하다고 고통을 호소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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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치료제 1순위 후보 렘데시비르 첫 임상, "68% 호전"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11/2020041100750.html

    가장 유력한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로 꼽히는 렘데시비르(Remdesivir)의 첫 인체 임상 실험 결과가 공개됐다.
    중증환자의 68%가 증상이 호전됐고, 47%완치돼 퇴원했다. 하지만 13%사망했다.


    항바이러스 치료제 렘데시비르./로이터 연합뉴스

    미 시나이산의대 조나단 그레이 교수 연구진은 10일(한국 시각)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슨(NEJM)지에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28일간 미 길리아드 사이언스사(社)의 렘데시비르를 코로나바이러스 환자에게 투약하는 임상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산소 포화도가 94% 이하인 중증환자 61명에게 최대 10일간 렘데시비르를 투여했다. 이 중 치료 데이터가 불분명한 8명은 제외됐다. 53명 가운데 30명(57%)은 투약 당시 스스로 인공호흡장치로 의지하고 있었고, 4명(8%)은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연구진은 53명 중 36명(68%)의 환자가 호전됐고, 완치된 환자는 25명(47%)이라고 밝혔다. 실험 전 인공호흡장치로 산소를 공급받고 있었던 환자 30명 중 17명은 장치를 떼어낼 수 있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증에 속하는 산소 치료 환자 집단에서 가장 좋은 효과를 보였다. 이 집단 7명 중 5명(71%)의 증상이 개선됐다.

    다만 53명의 환자 중 7명(13%)은 실험 중 사망했다. 32명(60%)은 장기능 장애, 저혈압 등 부작용을 보이기도 했다. 조나단 교수는 “현재 데이터만으로는 약효에 관한 결정적인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렘데시비르를 투약한 환자들의 관찰은 희망적”이라고 했다.

    연구진은 실험한 환자 수가 적고, 무작위 임상실험에서처럼 대조군과 비교한 데이터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세계적으로 1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승인된 치료법이나 백신은 아직 없다. 렘데시비르는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개발한 에볼라바이러스 치료제로, 현재 가장 유력한 치료제 후보로 꼽힌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개발한 제약사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 등이 렘데시비르의 코로나 치료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3건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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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여기 이렇게 글을 남기기가 좀 민망하지만 지금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글을 올립니다

    저는 메릴랜드에서 근무하는 중환자 및 호흡기 의사입니다.
    지금 미국은 점점 코로나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3/16 11:45 PM) 기준으로 4661 케이스입니다. 거의 이태리 그래프를 따라가고 있는 추세이고 이제 곧 아마 1주 이내로 1만 케이스 이상으로 넘어갈 것으로 추정됩니다. 밑에 사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전국민 보험이 아니기때문에 혹시 증상이 있으시더라도 state 에서 지정한 보건소라던지 검사 센터가 있는게 아닙니다. Primary care physician한테 전화하셔야합니다. 각 PCP office마다 protocol 이 아마 지금은 정해졌을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아직 정확한 protocol 이 없는 곳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오니 일단은 PCP 연락하시고 거기서 하라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대부분 큰 병원같은 경우는 이미 drive through site를 주차장이라던지 어떤 공터에 만들어서 그곳으로 환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많이 검사 kit가 없기 때문에 아직은 아주 strict 한 criteria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1>한국이나 이태리, 이란, 중국, 일본을 다녀온 사람중에 증상 있는 사람

    2>14일 이내 covid-19 확진된 사람과 contact이 있었던 경우는 검사를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증상이 없거나 mild 한 경우는 집으로 가서 14일 동안 자가격리하라고 합니다. 아주 아픈 경우는 입원시켜줍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집으로 보냅니다. 지난주 금욜에 press conference에서 검사 kit을 million 인가 만들었고 배급했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고 마스크가 저희 의료진들에게도 부족해질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지금으로써 virus 를 contain할수 있는 방법은 social distancing 밖에 없습니다. 모두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싶지만 그러면 정말 나중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없을 가능성이 다분히도 높기때문에 아예 사람과의 접촉을 말라는 것입니다 (=social distancing).

    중국과 한국 케이스에서 봤듯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중에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asymptomatic carrier 들 때문에 community spread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사람들은 검사도 안해주기 때문에 만약 social distancing (집에 있고 사람들 안만나기) 을 하지 않으면 계속 케이스 숫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 혹시 한국 다녀온 친구랑 놀고있나요? 아무 증상 없어도 carrier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social distancing이 중요합니다. 지금 유학생들이나 학생들 중에 왜이렇게 난리인가 하며 밖에 나가시는 분들 있으실수 있는데 그러면 계속 미국은 케이스가 늘어날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medical resources가 고갈되어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될수 있습니다.

    저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만약 지금대로 계속 가다가는 이태리랑 같은 상황이 될것입니다. 약 3주 이내에 미국 전역의 ICU bed는 차게 됩니다. 이태리가 병원보다 환자가 많아서 입원을 못하고 치료를 못받아서 그만큼 죽은 환자가 많은겁니다 (이태리 100명중에 8명 죽음. 한국 100명중에 0.9명 죽음. 미국 지금까지 데이터에 의하면 100명에 2명 죽음).

    이태리도 처음에는 사망률이 미국정도였습니다. 즉처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을때는 100명중에 2명 죽었는데, 점점 병원과 health care resources가 고갈되고 입원 및 치료를 못하게 되어 100명중 8명이 죽는 상태가 된겁니다. 미국도 지금대로 가면 그렇게 될것입니다.

    지금 미국 의료진들이 social distancing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빠, 레스토랑, 영화관 등등이 문을 닫은 이유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늘어난다면 곧 의료 시스템은 마비가 될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heart attack, stroke, shock 환자들은 ICU에 들어오지도 못할수도 있고 ICU bed를 기다리다 죽을수 있습니다. 또한 medical resource가 고갈되어 원래 받을만한 치료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할수있습니다.

    지금 이태리 그리고 심지어 시애틀에서조차 누구를 살릴지를 의사들이 결정해야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이태리는 60대 이상은 포기하고 어린, 가능성 있는 환자들을 선택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outbreak는 심각합니다

    현재 elective surgery는 미국 거의 모든 병원에서 이미 취소가 되었으며 routine follow up 또한 취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어디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시는 것을 권유드리고,
    wash your hands, stay away by 6 feet if you have to go out and meet someone. If you feel sick, don’t go to work and spread the virus and get other people sick. Thats how the virus spreads and conitnues to spread because the people that you work with are now exposed and they are gonna go home and expose to their familes and they will go out and expose/spread to others. This is extremely important that we practice social distancing!!!

    It will most likely not be under containment at least until June/July and maybe even through the fall season.

    이렇게 심각합니다.
    의료진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술실이 중환자실로 변환되고 있습니다.
    미국 모든 사람들이 social distancing 하지 않으면 정말 곧 제가 말하는 심각한 health care capacity saturation 상태가 올것입니다.

    이거 많은 곳에 퍼트려주세요.
    정말 social distancing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나하나쯤이야 했다가는 그로인한 파장이 너무 큽니다.
    모두가 같이 social distancing을 할때 그나마 flatten the curve를 할수 있고 그래야 저 그래프에서 빨간 라인을 넘기지 않을수 있고 그래야 ICU가 overflow되지 않고 그래야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제대로된 healthcare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노력합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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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북한에서 감옥살이 한바 있는 임현수 목사님께서 페북에 쓰신 내용을 공유합니다.

    코로나 방콕하면서 묵상한 글

    요즘 세상을 보면서 속수무책 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막강한 미국도 힘을 못쓰고, 거대한 중국도 맥을 못추고,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도 대책이 없습니다.

    떵떵 거리던 대기업도 주저앉고, 부자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최고로 건강하다는 세계적인 운동선수도 쓰러지고, 20 대 젊은이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린 아기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속수무책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잠18:14)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마음을 강하게 하라 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아니요 능력과 사랑과근신의 마음이라...(딤후1:7)

    오늘도 지구상에서는 매일 15만 명이상이 세상을 떠나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사실 몇 백명 죽는 것은 큰 이슈가 될 수 없지요.

    그러나 지금은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입니다.

    불과 지난 한 두달 동안 너무도 놀라운 변화가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예술 체육 등 모든 분야에 쓰나미 같이 엄청난 파도가밀려 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불황이 찾아왔고, 모든 사람들의 왕래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식당도, 극장도, 비행기도, 기차도, 버스도 텅텅 비었습니다. 공항은 패쇄 되다시피 되었고 200개 이상의 나라가 한국 사람 오지 말라고 쇠 빗장으로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100년 200년 만에 아니 500년 1,000 년 만에 예배당을 닫았습니다. 강제로 닫은 것이 아니고 교회 스스로 문을 닫았습니다.

    갑자기 일상 생활이 바뀐 것 입니다.
    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의 감옥에 갇히는 바람에 거의 3년 가까이 어둠의 길고 긴 터널을 걷게 되었습니다. 긴긴 어둠의 시간이 계속 되었습니다.

    정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한두 달이 아닙니다.

    독방에서 949일을 혼자 보냈습니다. 그래서 한 달 두달 집안에 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 입니다. 오히려 즐겁고 기쁩니다. 잘 먹고 잘 쉬고 운동하고 책 읽고 영화도 보고 찬송과 예배시간도 제한 받지 않고.... 너무 좋지요.  매일 8시간 씩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노동이 없는 안식이란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혼자서 3,000번 밥을 먹었습니다. 같이 식구들과 밥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지상천국이지요. 가정의 회복도 축복이고요. 주일을 134번을 혼자 예배 드렸습니다. 인터넷으로 유투브로 예배 할 수 있다는 것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이지요.

    많은 죄수를 수용할 수 있는 감옥 이었지만 저 하나 집어넣고 50명의 간수가 지켰습니다.....24시간 2 시간 씩 교대로 2.7개월을 .... 아무도 감독하지 않고, 자가격리라는 것도 2 주간만 지나면 자유니까 어려울 것이 없지요. 총 차고 옆에서 24시간 감사하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노래 할 일이지요.

    처음에 두 달 노동하면서 몸은 다 망가졌습니다. 12지장이 상해서 한 달 동안 배를 움켜 잡고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몸이 망가지지는 않지요. 12지장이 상할 일도 없지요. 정신상태만 건강하면 잠 못주무실 일은 없지요.

    엄청난 욕설과 스트레스로 3개월간 논스톱으로 설사를 하며 고생했습니다. 차가운 곳에오래 앉아 있으면서 병이 생겨 전신마취 하고 수술도 하였습니다. 끔찍한 병원에서 공포스런 분위기를 느끼면서 수술대 앞으로 갈 일도 없지요.

    겨울에 석탄 창고에 들어가 하루 8시간 씩 중노동하며 얼어붙은 석탄을 까다가 손 바닥에물집이 생기고 피가 터지더니 열손가락이 전부 관절염이 걸려 접히지가 않았습니다. (손은 아직도 많이 아픕니다) 갈아 입을 옷도 없는데 석탄재로 더러워진 몸을 겨울에 찬물로 씻고 잘 이유도 없지요. 우리는 따뜻한 잠옷 입고, 침대에서 전기장판 갈아 놓고 자고, 따뜻한 온돌에서 자지요.

    몸무게는 23키로그램이 빠졌고 발가락은 전부 동상에 걸려 새까맣게 변했습니다. 2년 7개월 9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 할수가 없습니다. 두 달동안의 일을 말씀드린 것 입니다. 이런 고통이 15번 이상 계속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예기치 않은 일이 갑자기 나에게도 찾아 올 수 있다는 것 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감옥에 혼자 있다보니 함께하던 가족들, 교회 성도들, 함께 예배하던  성도들, ... 교제하던형제들이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가족들이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 싶었습니다.
    지나고보니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엄청난 축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누구나 이야기 하는 것처럼 평범한 삶의 축복을 알아야 합니다.

    날마다 먹는 평범한 식사를 감사해야 합니다.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온수 사용을 감사해야합니다.
    잘 모르고 매일 누렸던 평범한 자유의 소중함을 알아야합니다.
    요즘 방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있는 우리 국민들이 ... 지난 한 달전 평범하게 살던 삶의 귀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될 것 입니다.

    패쇄된 공간에서 해방된 것이 마치 죽음에서 해방 된 것 같았습니다. 요즘은 자유의 기쁨을 맘껏 누리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집안에서 1년을 꼼짝없이 지내라고 해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닙니다….

    • 가정의 중요성

    오랜만에 집에서 된장국에 집밥을 먹으며 가정을 느낍니다.
    겨우 산책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행복해하는 강아지들 모습도 보게 됩니다.

    무너져 가는 로마를 보면서 “ 애국자며 가정을 지키라” 고 했던 철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지금 가정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요즘사재기 하는 모습들을 보며 인간의 이기성을 봅니다.
    조금만 더 심해지면 사회 폭동이 일어나게 될 것 입니다.

    아이티는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사재기, 총기 소지, 주민 폭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총과 총알 사재기가 극성이고 수퍼마켓에서 사재기는 가관도 아니었습니다.

    나눔의 정신이 아직도 빈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입니다.

    • 영향력의 청지기

    병균의 급속한 전파를 보며 관계를 통한 영향력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스킨쉽을 통해, 대화 하는 가운데 코로나 19 가 전염 되듯이 ....
    반대로 우리는 이런 친밀함 속에서 복음을 편만하게 전파하는 영향력의 청지기가 될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초대교회의 영향력을 말하면서 성경은 “염병처럼 번져갔다”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이렇게 무섭게 번져가는 새로운 부흥을 꿈꾸어 봅니다.

    과소비 성향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물,식료품, 약 등 몇가지 라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너무 과소비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별로 필요없는 것들, 안 먹어도 안 사도 되는 것들이 너무 많지 않나요?
    오히려 몸에 해로운 것, 몸을 망치는 것도 살펴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집안에서 썩고 있는 것들, 곰팡이 생기고 있는 것들, 전혀 안쓰고 물건들, 한번도 입지 않고 있는 옷가지들, 신지 않는 신발등을 전부 내다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 자유의지

    나누는 삶을 살든가 내 것부터 사재기 하던가 우리들의 자유의지가 시험 받는 시간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지상천국이 될 것인가?
    세상 지옥이 될 것인가?
    자신을 살펴 볼 수 있는 시간 입니다.
    자유를 선용하시나요?

    • 생활습관 고침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개발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들면 우리는 화장지, 휴지, 물수건, 페퍼 타올, 냅킨 등을 너무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신문, 잡지, 책 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수없이 베야하고 그래서 지구의 사막화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현실화 시키는 것이 힘들겠지만 화장실 세척도 종이 보다는 물이 훨씬 위생적입니다.
    원시적인 방법도 있고 비대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북한 감옥에서 근 3년 동안 물로 세척한 경험이 있습니다.
    비대가 아니고 화장지도 모자랐지만 물로 세척하니 한결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개발 할 수도 있겠다는 말 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공장이 서고, 비행기가 서고, 자동차가 서니 지구가 건강해졌습니다.
    그동안 인간의 소유욕을 넘은 탐욕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았습니다.
    코로나가 지구 살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네요.

    • 양자택일

    더 악해질지 아니면 더 겸손하게 회개 할지? 사람은 고통을 겪게 될 때 두 극단으로 나누어 집니다.

    이런 기회에 겸손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인간이란 흙으로 만들어지고 코로 숨쉬는 연약한 피조물입니다.

    아직 인간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감기 바이러스가 무엇인지 아직도모르고 죽어 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부 모르는 것 뿐 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들은 대적 하십니다.

    • 시간 관리

    꼼짝없이 방콕하면서...그동안 너무 분주하게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그동안 우리는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갈 때 안갈 때 가리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려야 합니다.

    최선과 차선을 구별해야 합니다. 책 읽는 시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 신천지 심판

    신천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이비 집단 같은 것이 수 많은 젊은이들을 저렇게 바보로 만들어놓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번에 신천지의 모든 실체가 드러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나 상처는너무도 클 것입니다.

    신천지 뿐이 아닙니다. 만민중앙교회를 비롯해 적어도 200 만명의 영혼들이 사이비 집단에 도둑질 당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영적 무관심, 도덕적 해이, 정치적 타락, 육체만생각하는 물질적 가치관, 성적 부패로 사회가 혼란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 큰 소리치던 미국

    미국 조차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무상을 느낍니다.

    911사태에 이어 미국에게 주시는 두 번째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뉴욕은 굉장히 심각 합니다. 완전 공포 분위기 입니다. 죄가 많아서 그럴까요?

    • 공산당 심판...

    중국,이란, 이탈리야, 한국, 스페인, 등 친중 국가들이 먼저 매를 맞는 것을 보면서 공산당을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게 됩니다. 무신론 공산주의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백해무익한 집단입니다.

    미국과 호주 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가장 더럽고 추하고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동성애자를위한 미친 대 축제를 없애야 합니다.

    말세 징조

    다니엘 12:4누가복음 21:11절을 연결해 보면 코로나 19이 급속확산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세에는 교통이 빨라지고 지식이 급증 합니다.
    하루 동안에 수 천만명이 지구촌의 이곳저곳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세에는 전염병이 많아 질 것 이라고 말씀 하셨기에 전염병이 초고속으로 확산되는 것 입니다.

    모빌리티(mobility)라는 신용어가 현대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장 크게 변화 시켰을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분주합니다.
    좀 자제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전화위복의 경우도 있습니다.

    호경기는 7:3 그리고 불경기는 3:7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경기 때는 7명이 웃고 3명이 운다.
    그러나 불경기 때는 3명이 웃고 7명이 운다는 말 입니다.

    홈쇼핑 마켓, E 컴머스, 아마존을 비롯한 배달 사업체는 지금 호황을 누리고있습니다.
    마스크 만드는 업체도 대박이고, 식품점과 슈퍼마켓도 사재기로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소독제, 휴지 등도 마찬가지로 호황입니다.
    소규모 편의점도 잘 됩니다.
    피자를 비롯한 take out 비지니스 도 잘되네요.

    불경기 중에도 좋은 비지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빨리 감지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마스크 손으로 만들어서 팔아도 용돈 벌 것 같네요....

    •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신의 목소리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라는 말처럼 지금은 인류가 겸허히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주님과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죄와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 인간의 죽음 :

    코로나바이러스 입자 크기는 고해상 전자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80-100nm (나노미터)크기의 지극히 작은 입자입니다. ( 참고로: 나노미터 nm는 1/천만 센티미터cm )

    그런데 지금 지구는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 숨어있고 바이러스만이 죽음의 사자가 되어 자유롭게 활개치고 다닙니다. 기가막힌 노릇 입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는 정말 무력한 존재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내게 가까이오면 상황은완전히 달라 집니다.

    이탈리아에서, 중국에서 몇 명 죽었데 하면서 남의 얘기처럼 말하던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이 무서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입니다.

    죽음은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흑인이나 백인에게나 여전히 무섭고, 어둡고, 차갑고, 너무나 이질적이고, 가장 비자연스러운것 입니다.

    이번에 인류는 모두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엄밀히 말하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죽고 있는 것 입니다. 죽음은 이미 정해진 것이니까...

    그러나 이젠 어둠(패쇄된 공간) 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부활절을 기쁨으로 맞이 합니다.

    • 분주한 여행

    북한 산골 감옥에 혼자 감금되어 있으면서 자유가 축복이었음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안에 저 멀리 보이는 산 위의 오솔길을 너무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병원에 갇혀 있던 두 달간은 한발자국도 움직일수 없는 패쇄 공간이었습니다.
    완전한 고립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도 분주히 돌아 다녔던 삶을 뒤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다녔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내게 맡겨진 일에 불성실했고, 경건의 연습 시간을 제대로 갖지 못했고, 오히려 세상 구경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것도 사실 입니다.

    우리들도 너무 분주하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집 짓고 여행 다니느라 분주하며... 그러면서도....
    배고프고 굶주리고 외롭고 병든 자들에게 무관심 하지 않나요?

    혼자 즐기느라... 결혼도 안하고... 아이도 안낳고... 시간나면 온 세상 다니고... 심지어 섹스 관광까지 하며....라이따한.... 피코노.... 중국에..파라과이에.... 책임 지지도 못 할 아이들 낳게하고...... 얼굴도 모르는 한국 아버지 기다리게 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주님 말씀 하십니다.
    내게로 돌아 오라.
    이젠 나와 함께하자.
    내손 잡고 걷자.
    나와 동행하자.
    내음성을 들어라.
    너무 분주하게 살지 말라.

    제가 노동하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 가사입니다.
    나는야 친구 되신 하나님과 푸른초장 한없이 거니네.
    손을 잡고 기쁨을 누리면서 단 둘이서 한없이 거니네.

    지나간 일들 내게 말씀하며 앞날의 될 일 내가 들을 때 믿을 수 없는 꿈만 같은 사실 믿으니 이 세상 천국같애.
    나는야 친구 되신 하나님과 영원히 다정하게 지내리.
    천지는 모두 없어진다해도 우린 영원히 지내게 되리.

    이 찬송을 노동하면서 끝없이 불렀습니다.
    주와 함께 함이 축복 입니다.
    아버지 집에 거함이 축복 입니다

    너희가 정욕과 음란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자들의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뜻을 따라 살았던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지 않느냐?

    돼지가 다시 시궁창에 눕고,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살면 안됩니다.
    지금 어디에도 여행 다니지 못하고,
    돈이 있어도 비행기 타지도 못하고,
    텅텅빈 KTX 타고 시외버스타고 다니면서 국민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 200 개 이상 나라 한국인 입국금지

    강제격리, 입국금지, 왕따, 노 코리아 50억 인구 반대, 갑자기 죄인 취급....

    한국 사람들 남 무시 하는데는 일가견 있는 것 같습니다.
    흑인 무시하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 무시하고, 없는 사람 무시하고, 헌차 타는 사람들 무시하고, 셋방 사는 사람 무시하고...

    사람 쳐다 보지 않고 자동차 쳐다 보면서 인사하는 호텔 주차 요원들....

    그렇게 사람 무시 하더니 지금 갑자기 전 세계 200 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한국 사람들 입국 금지를 내리네요.

    동남아와 중동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 나라들까지도 한국인을 무시하고 강제 격리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철저하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무시해 온 것에 대한 정확한 인과응보 같이 느껴집니다.

    캐나다에서도 한국 사람에 대한 테러가 여러 차례있었습니다 (4.1일 캐나다 한국일보)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무시 하지말아야 합니다.
    흑인을 연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국에 가기도 힘든데 자기 발로 찾아온 외국인들을 귀중히 여기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제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 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 말씀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 마스크

    전 국민이 마스크 쓰는 것은 말을 적게 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너무 많은 거짓 뉴스를 퍼날르고,
    무책임한 욕설을 너무 함부로 내 뱉고,
    기도하기 보다 남 비난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 않았나요?
    침묵하고 자제하고 진실하고 의롭고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삶을 노력하라는 말씀 아닐까요?

    • 교회 예배 금지

    교회들이 갑자기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산국가의 지하교회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모이는 것 좋지만 흩어져 전도하는 사역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Coming structure 와 Going structure 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가라! 는 명령이 지상명령입니다.
    가서 제자 삼아라.
    모든 민족에게 가라.
    일어나 가서 외치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의 빛이다.
    교회의 소금이 아니다.
    우리의 사역의 현장은 세상이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 입니다.

    세상의 직업, 직장은 우리 크리스천 들의 사역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 예배당 교회 크기 자랑

    텅빈 허무한 예배당을 바라 보면서 우리는 한국 교회의 거품을 봅니다.
    사람 머리 수만 세면서 숫자가 많아지면 부흥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음을 깨닫습니다.
    신천지 같은 엉터리 이단안에 사람들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신천지 졸업식 장면)

    교회 지도자들이 기도하지 않고 졸며 자는 사이에 사탄이 가라지를 뿌려 수 많은 사람들이 미혹의 영에 걸려 이단에 빠졌습니다.

    예배당 자랑, 숫자 자랑, 늘어 놓으면서 교회 성장을 외적인 화려함에 두는 사이에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교회에서 대거 빠져 나가는 대이동을 했습니다.

    지도자들의 상업화된 사고 방식 때문 입니다.
    교회 중직자들의 세상적인 가치관 때문입니다.

    교파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각교단마다…파벌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좌우 보수 진보 중도…권위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나누는 잘못 차별의식을 회개해야 합니다.
    빈부차가 심해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일 지방차별을 회개해야 합니다.
    지방색 때문에 갈라지는 국력 교만 혈기 방자를 회개해야 합니다.
    사나운자도 회개해야 합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왕따 만든것 회개해야 합니다.
    용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통일을 앞두고 한국 교회부터 통일되고, 연합 되고, 화목해야 합니다.
    교단과 교파의 장벽이 무너져야 합니다.
    싸움이 그쳐야 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섬김의리더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형제우애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신에 대해 죽어야 합니다.
    자아의 죽음을 선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세상을 본 받지 않음으로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성령충만 해야 합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주 예수님 !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더러운 죄악에서 건져 주세요.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세요.
    교회의 거룩성이 회복되게 하소서.
    찬송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산기도 금식, 새벽, 철야 기도가 회복되게 하소서.
    성령의 역사로 교회가 다시 부흥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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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을 볼 때 장갑을 끼면 더 안전할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는 물론 장갑을 끼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마트의 과일 매대 앞에는 장갑 낀 손으로 오렌지를 만지고
    바나나를 고르는 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장을 볼 때 장갑을 끼면 더 안전할까?

    미국 ‘멘스헬스’가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세균학자 켈리 레이놀즈 박사에 따르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손을 통과해 몸에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손에 보호막을 칠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해도 마찬가지.
    손잡이가 오염된 카트가 있다고 하자.
    장갑을 끼고 카트를 밀면 좀 나을까?
    손잡이를 잡았다가 마요네즈를 만지고, 참치 캔을 만지고, 또 휴대폰을 만진다면?
    맨손으로 만진 것과 똑같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될 것이다.

    레이놀즈 박사는 장갑을 끼면 손을 덜 씻게 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맨손으로 장을 봤다면? 집에 들어와 장바구니를 내려놓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을 것이다.
    고기며 두부를 정리해 넣는 건 그 다음 일. 그런데 장갑을 꼈다면?
    바로 냉장고 문을 열고 계란과 딸기를 넣은 다음 장갑을 벗기 쉽다.
    즉 마트에서 묻혀온 바이러스를 부엌 곳곳에 퍼트리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장갑을 잘못 벗으면 거기 있던 온갖 바이러스가 몸에 묻게 된다.
    그런데 장갑을 제대로 벗을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계 종사자들 중에도 30%는 장갑을 잘못 벗는 오류를 범했다.

    혹시 일회용 장갑을 사용했다면?
    어떻게 벗어야 할까?
    우선 장갑 목을 잡는다.
    그런 다음 뒤집듯이, 즉 안이 밖으로 나오도록 벗어야 한다.
    그걸 다른 손, 즉 장갑 낀 손에 말아 쥐고 맨손으로 장갑 목을 잡는다.
    다시 조심스럽게 거꾸로 벗겨내서 두 짝이 공처럼 말리도록 한다.
    장갑을 벗어 휴지통에 버린 후에는 손에 비누를 묻혀 따뜻한 물에 깨끗이 씻어야 한다.

    장갑은 환자를 볼 때 필요하다.
    장을 볼 때는 장갑을 낄 이유가 전혀 없다. 장갑은 바이러스를 막는데 도움이 되기보다 해를 끼치기 쉽다.
    중요한 건 장을 보고 마트를 나설 때, 그리고 집에 돌아와 바로 깨끗하게 손을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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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에 걸려 입원 했다가 퇴원한 30대 여성의 이야기

    저는 코로나 걸려서 3주를 죽음을 넘나들다 지금은 회복단계에있는 30대 여자입니다.
    제 증상은 아래와 같았어요.

    1. 미열 시작 되면서 , 냄새 입맛등이 없어지는데. 그수준이 배에서는 꼬르륵되고 어지럽고 난리가나는데
    입에 음식이 들어가질 못합니다. 목이 말라서 물을 찾게되는데, 밥은 뱉어내거나 토하구요.. 물도 역해서
    단맛들어간 게토레이만 주구장창 먹었어요..

    2. 미열이 시작된후 3일이 흘렀고 열이 점점 오르는게 느껴졌을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전트 케어를 갔습니다.
    가서 진단을 받고 닥터가 플루검사 먼저해보자고 플루검사를 했으나 네거티브(플루아님) 으로 나와서 닥터는
    감기증상 같다고 혹시모르니 집에서 일주일 격리하라고 했고 만약 열이 가라앉지않고 증상이 악화되면 일주일후에
    병원응급실로 가라고했어요.. 그래서 격리했습니다.

    3. 일주일이 지났고. 미열이던저는 고열로 바뀌고 어마무시한 두통이 동반되기 시작됬어요. 
    두통은 뇌를 쪼게서 딱아내고 싶을만큼 아팠습니다. 당연히 일주일동안 밥은커녕 게토레이만 마셨구요..
    저는 너무 초반에 걸려 타이레놀대신 에드빌을 먹었고, 그로인해 제상태는 악화되었어요.
    에드빌..절대 먹지마세요.
    * 추가 : 이때, 엄청 추웠어요.. 너무추워서 침대 가 같이 덜덜덜 떨릴정도로 추워요..

    4. 남편이 너무 놀라서 저를 홀리네임병원 으로 데려갔으나, 제 상태를 본 응급실 레지스터 분은 소리를 지르면서
    빨리 마스크 쓰고 나가라고, 너희한테는 코로나 검사 안해준다고 하더군요.. 그분...덕분에 저는 다음날 죽을 고비를 맞았습니다.
    그래도 간호사 어떤 분이 나와서 코로나 검사 해주긴 할꺼지만, 여러 상황때문에 너네가 여기서 걸려갈수있고 입원은 당연히 안되고 등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말듣고 저는 그냥 됬다고 집에가자고 했죠...

    5. 이날은... 제가 두통때문에 계속울고 기침을계속하며, 가슴통증이 너무심했고 일주일넘게 물만마신저는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어요.. 다행히 저희 회사사장님이 저 처음아플때부터 하루에 한번씩 전화해서 관리 해주셨는데.. 에드빌먹었다는사실에 너무놀라면서 타이레놀만 먹으라고하셨고 안되겠다며, 잉글우드 병원으로 가라고 말씀주셔서 저희는 잉글우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6. 잉글우드 병원에서 한국 간호사 분을 만나 증상을 체크하고 바로 폐사진을 찍어보더니 폐에 인펙션이 너무심해서 당장 입원하고 코로나검사하라고하고는 산소튜브를 끼고 바로 입원을했어요...

    7. 코로나검사 그때는 결과가 2주정도 걸렸거든요... 아직 확진은 모르지만.. 폐 인펙션이 심하고 고열에 면역력이 너무약해 노인같다라는말씀하시고, 모든증상은 코로나와 일치한다하여 다음날 안되겠다며, 코로나 확진으로 하고 바로 약투여를 시작하는데.. 모두 아시다시피.. 지금 약이 없어요.. 그래서 비타민씨를 미친듯이 IV로 맞구요...  저는 말라리아 그 약 한번 투여 받았었습니다( 저도지금생각하면 .. 이해가 가질않는데 그땐 fda승인전이었고, 트럼프가 승인됬다고 거짓말 했던 그 시기에요.. 그래도 그약덕에 산거같아요 저는 ㅠ). 엄청난 두통은 계속 타이래놀과 안티바이오틱스?항생제 같은약을 계속 먹었구요.. 엄청난 설사와 두통그리고 산소로 병원입원하고 5일정도 힘들었어요... 저녘에는 산소투브때문인지 제가 패닉어택이온건지 너무무서워서 숨이 멈추는듯하게 놀라서 깨는데 잠을 못자요  ㅠ 깨면 두통이 어마무시하게 오구요...

    8. 여러 닥터들과 여러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저는 5일째 저녘즘부터는 두통도 사라지고 산소포화도 도 87~90% 를 와따가따햇고 혈색도 좋아졌어요.. 설사는 계속했지만, 저혼자 IV끌고 화장실 와따가따 할정도로 좋아졋어요..
    그리고 저는 그다음 일요일에 아직 다 나으진 않았지만 퇴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병실도 부족하고 간호사 의사분들도 부족한 상황이라.. 저처럼 나아지는게 보이고 산소포화도만 올라가면 바로 퇴원시키더라구요...

    9. 퇴원 하고 저는 집앞계단도 못올라가 쓰러질뻔했지만, 집에돌아와 몇주만에하는 샤워를하고 사람처럼 침대에 앉을수있어서 너무편햇어요..
    그날이후 2~3일후부터 저는 밥을먹기시작했고 폐가 쪼그라드는 바람에 숨쉬는 연습을 해서 폐를 펼쳐야 해서 지금도 연습중이에요.. 아 그리고.. 기침은 현재 2주정도 지났는데도 계속 합니다. 아직 다 낫진 않았지만~ 지금은 재택근무도 수월하게 하고 스트레칭?정도 할수있을만큼 건강올라왔어요...


    제 경험담이구요...아직 무서워하면서 집밖으로는 안나가고있지만..
    여러분....저는 30대 중반 여성이었고 그래도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여러분들의 아이와 부모님을 생각해주세요 ㅠ 그들은 견디지못하고 죽을 확율이 너무큽니다... 약도없어 비타민씨만 어마무시하게 퍼붓기때문에.. 아픈걸 다 견디고 혼자 이겨내야 살수있는 형태에요...
    어떤분들은 회사에 나가야하는 현실인걸 알고있습니다. 그런분들은 마스크 꼭 끼시구요.. 집에돌아오면 아이있는 집은 아이에게 다가가지 마세요... 바로 옷갈아입고 샤워부터 하세요...

    저는.. 아직도 왜 걸렸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회사 집 회사집 이었던 저는 지하주차장에서 회사로 올라가는 버튼 한번눌렀다고.. 혹은 남편에게 옮았다고 그렇게 추정할수밖에없구요.ㅠ

    난 무증상일꺼야. 감기처럼 지나가겠지 하는분들은 명심하세요... 당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중한 가족들이 문제이며, 가족이 없으신분들은 .. 이 바이러스는 혼자서 이겨낼수없어 혼자 죽어갈수밖에 없어요.. 지금 뉴저지 병원들은 혼자서 걸어오는 코로나환자들을 받지 않습니다. 쓰러져 구급차 혹은 실려와야 받아줘요....

    저 입원하고 퇴원을 일요일날했는데 , 저랑 같은 증상으로 다른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월요일아침에 죽었다더군요.. 심지어 나이차도 얼마 나지않는데...

    너무 무섭습니다.. 근데 아직도 산책하겠다며 오버펙 공원을 걸어다니는사람이 그렇게 많더군요...

    가족..꼭 생각하세요..
    지금은 가족을 챙길 시기에요...

    약간 증상이 있으신분들은 오렌지주스나 비터민씨를 많이 드시는걸 추천드려요..
    저처럼 몰라서  증상 끝까지 가셨다 하나님이 삶을 한번 더주셔서 다행히 돌아왔지만,
    그렇게까지 않가고 모두 건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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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 알림

    저희가 의사들 정보통에서 받은 것 중요해서 알립니다.
    이것은 뉴욕 의과대학에서 온 것인데,
    코로나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비엔나 실험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환자들 대부분의 피에 애드빌 (Advil/ibuprofen)이 들어있음이 발견됐고,
    바이러스 증상에서 회복된 사람들은 ibuprofen을 복용하지 않은 것이 발견됐으니,
    꼭 필요하시면 Acetaminophen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시래요.
    이 바이러스는 Advil이 10배는 증상을 악화시키고, 이것이 폐염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합니다.
    꼭 필요하시면 당분간 타이레놀(Tylenol)이나 바이엘 아스피린을 복용하세요.
    그리고 되도록 공중 화장실을 쓰시지 마시고 현재와 4월 첫번째 주까지 Virus가 창궐하는 시기라고하니
    더욱 외출을 삼가고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로 오히려 걱정을 유발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조심스레 이 정보를 나눕니다.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라며 가까운 장래에 모든 동문님들을 반갑게 만나뵐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

    Doctor from NYU- FYI:
    Information from Vienna’s laboratory studying COVID-19 say vast majority of people who died had ibuprofen/Advil in their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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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 걸려서 죽을뻔하다
    살아난 경험담 이야기


    3주전에 기침나고, 열나고, 머리아프고, 두통있고, 설사도하고, 병원에 갔더니 받아주지도 않고
    집에만 있으라고하며 약도 없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습니다.

    그 친구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니 자신이 병을 고쳐야된다며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워서
    승리한 처방 이야기를 적어 올립니다.

    1. 생강을 껍질까고 깨끗이 씻어서 아주 얇게 썰어서 말린다.
    ( 말리는 이유는 한방에서 생 생강 보다 말린것이 효력이 4배나 많다고해서 말림) 말린 생강 한주먹.

    2.생 마늘 20개를 반씩 자른다.

    3.큰 커피컵으로 물 10컵.

    4.1.2.3.번을 냄비에 넣고 1시간을 끓여서 하루에 5. 6컵을 마시는데 마실때는 꿀을 꼭 넣어서 마시는데
    단맛이 더 좋다고 하네요. 그렇다고 너무 달게는 말구요 (적당히) 그리고 삶아진 생강은 말고 삶아진
    마늘 4. 5알씩 씹어서 울킨 물이랑 잡으수세요.

    * 곁들어서 먹은 약은 Echinacea complex와 열 떨어지는약과 몸살 감기약을 먹고 완전히 났다고 합니다.

    *코로나 걸리지 않으신 분들은 미리 예방하기 위에서는 위에 1번부터 4번과 Echinacea complex 2알씩 잡수시면 코로나바이러스가 와도 물리칠 수 있다 합니다.

    Echinacea complex는 화학제품에서 만든 약이 아니고 (Herb)약초로 만든 겁니다.



    * 참고로 제가 잘 아는 어느 화백(집사님)께서는 스웨덴에서는 Echinacea complex를 잘 사사용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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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본토가 지난 며칠 동안 감염된
    사람의 수를 크게 줄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루에 3번 식염수로 입을 헹구기만 하면 됩니다.
    완료되면 5분 동안 물을 마신다.

    바이러스는 목구멍과 폐를 침범 할 수 있기 때문에 식염수의 공격을 받으면 바이러스가 죽거나 위에서 흘러 나와
    위장에서 파괴 될 수 있습니다.

    약은 구입하지 마십시오.

    종합 아동 병원 왕 S 박사 :
    폐렴에 새로운 폐렴이 오기 전에 4일 동안 목구멍에 살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기침과 인후통을 시작합니다.
    그가 가능한 한 많은 따뜻한 물과 소금 또는 식초를 마실 수 있다면 세균을 제거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대로 이 메시지를 전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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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스크


    NY Times에서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부족해 일반인 마스크 사용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N95가 아닌 home-made 마스크라도 사용함이 절실한 때입니다.  마침, 어제 저녁 TKCTV 내용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급속히 확산 되었다고 합니다.

    전염병 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가 코로나19초기부터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등
    대재앙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김세연 기자의 보도입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네바다주 정부로부터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연방정부, 그리고
    네바다주 보건당국자간에 주고 받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메일을 공개하고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혼돈과 재앙 그자체 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5명이 발생, 위기가 현실화 될 무렵인 지난달 13일에야 세계 각국의 코로나를 추적하고 관련문서를 검색 할 전문인력을 긴급채용한다고 공고를 냈고, 그뒤 2주간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로 확산돼 커뮤니티를 위협할 때도 명백한 혼돈 상태였다고 이 매체는 밝혔습니다.

    또 네바다주 보건당국이 코로나 잠재 감염자 80명이 발생했다고 질병통제 예방센터에 알렸으나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지난 4일에도 네바다주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정보가 부족하다. 미안하다’고 답하자, 네바다주는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답장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외에도 지난달 17일 앤소니 파우치 전염병 연구소장은 USA투데이 기고문을 통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손만 깨끗이 씼으면 된다’며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뉴욕 등지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우치박사가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자 미국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미국내 최고 전염병 전문가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대서특필했으며 이에 따라 엄청나게 붐비는 뉴욕시 지하철등이 코로나19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또 파우치박사는 미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후인 지난 8일 CBS 60미닛에 출연,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걸어다닐 이유가 없다. 마스크를 써야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메르스 상태 당시 한 여성 확진자가 2천여 명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마스크를 쓰고 다녀 단 1명도 전염시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뒤 마스크의 중요성이 알려졌고, 서울 등에서도 대부분이 마스크를 씀으로써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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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정부에서 지급하는 현금에 대한 업데이트

    많은 혼돈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현금지급 발표 후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불확실 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3월30일에 IRS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1) 현금지급은 어떤 해의 세금보고를 기준으로 하나?
    답) 현금지금은 2018년이나 2019년 중 한 해라도 세금보고를 했으면 가능합니다. 싱글은 $75,000까지는 100%가 지급되지만, 초과되는 매 $100마다 $5씩 금액이 줄어 듭니다. 따라서 $99,000이 넘어가면 전혀 받지 못 합니다. 부부의 경우 $150,000까지 100% 지급, $198,000 이 넘어가면 전혀 받지 못합니다.

    2) IRS에서 어디로 돈을 보낼지 어떻게 파악하는가?
    답) 2019년 (2019년 세금보고가 아직 안되었다면 2018년) 세금보고에 나타난 소득을 기준으로 계산된 금액을 세금보고에 사용한 은행계좌로 입금합니다.

    만약, 세금보고에 은행계좌 정보를 보고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IRS에서는 몇 주안으로 은행계좌 정보를 접수 받기 위한 웹사이트를 새로 만들어서 올릴 겁니다. 그 웹사이트에서 계좌 정보를 접수하시면 은행계좌로 현금 지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3) 세금보고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현금 지급을 어떻게 받을 수 있나?
    답) 저소득측, 노약자, 사회보장금 수급자, 장애수당 수급자 등 세금보고를 일반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번 현금 지급 자격이 되려면, IRS가 제공하는 간단한 세금보고 양식 (현재 IRS에서 준비 중)을 접수해야 합니다. 이때 은행계좌 정보도 같이 제공해야 합니다.

    4) 2018년이나 2019년 세금보고를 아직 하지 않았다면?
    답) 지금이라도 2018년이나 2019년 세금보고를 하시면 현금 지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현금 지급은 2020년 동안 계속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안심하시고 차근차근 준비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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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vid 19백신을 위해,
    UH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의 친구로부터...

    빈의 COVID-19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의 정보에 의하면 사망한
    사람의 대다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해열제
    "이부프로펜" 계열의 "애드빌" 등을
    복용했습니다.

    회복된 사람은
    "이부프로펜" 계열의 약을 복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증상이 있는 경우
    "아세트아미노펜"만 복용하세요!

    이 바이러스는 "이부프로펜"에서 번영시켜
    버립니다.
    복용하지 말아주세요.

    이 정보를
    각 가족 모두에게 전해주세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공유합시다.

    또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세요.

    나는 밴쿠버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VGH(VGH, 밴쿠버에서 간호사이다)

    제 친구와 이야기했어요.
    그들은 "애드빌"이 폐에 바이러스를
    10배 악화시킬 것을 알았어요.

    또, 40대와 50대 이전의 건강하고
    환기장치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
    "애드빌"을 복용했기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진 사람들을 발견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타이레놀"은 당분간 복용하기에
    적합합니다.

    VGH의 4명의 의사가 현재 감염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의사들은 이러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온라인으로 몇 가지 기사가 있어요.
    네그린 박사의 병원에서

    중국인은 현재 부검 결과
    Covid-19 바이러스의 거동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기도와 폐를 고화시켜 차단하는 점액으로,
    점액으로 호흡 경로를 방해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을 적용할 수 있게 하려면
    이러한 기도를 열고
    차단을 해제해야 하므로
    미래에 치료에 사용할 수 있어 유효해질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는 아직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권장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많은 뜨거운 액체를 마시다
    커피
    수프

    온수

    입을 축이고,
    위액으로 입에 들어가는 바이러스를
    씻어내기 위해 20분마다 온수를 한 모금
    드세요.
    바이러스는 폐에 도달하기 전에 중화됩니다.

    2. 온수로 방지제가 되는 것을 사용해
    양치질을 합니다. 매일입니다.
    식초,
    소금,
    레몬 등을 사용합시다.

    가글약은 때로는 목 좋은 균도
    죽여버리는 일이 있으니까,
    자주 가글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바이러스는 폐에 들어가기 전에 목구멍
    속에 3~4일간 머무를 겁니다.
    가글은 바이러스 공격에 적합합니다.

    3. 바이러스는 머리카락이나 옷에 부착합니다.
    세제나 비누는 그것을 죽입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목욕이나 샤워를 해야 합니다.
    어디에도 앉지 않도록
    만지지 않도록 해
    욕실이나 샤워실로 바로 갑니다.

    매일 세탁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바이러스를 중화하다
    직사광선에 쬐세요.

    4. 바이러스는
    9일간 계속 감염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금속면을 주의 깊게 살균해 주십시오.

    내 집 안의 난간이나 문 핸들 등에
    만지는 것에도 주의하세요.
    그것들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닦아내세요.

    5. 흡연하지 말아주세요.

    6. 거품이 이는 비누를 사용하여 20분마다
    20초간 손을 자주 씻습니다.
    (Happy Birthday의 곡 2회 정도의 시간)

    7. 과일과 야채를 먹다.
    비타민C 레벨 뿐만 아니라
    아연 수준을 취하고,
    자신의 면역력을 높이도록 하세요.

    . 동물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아요.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됩니다.

    9. 또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에
    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차가운 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10. 목의 통증 등 목에 불쾌감을 느꼈을 때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바로 바이러스를 공격하세요.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


    *어느 교인의 코로나 바이러스 일지*

    3/19/20 목요일 새벽 3시 쯤  아들이 몸이 아프다고 깨워서 보니
                   아들이 열이 많이 남.( 집에 체온계가 없어서 정확히 알수 없음 ) 머리도 아프다고 해서 아침에  혹시나 코로나 인가 ? 겁이나서 아들을 데리고 littleneck urgent care( 코로나 검사 해주는  장소 )  방문 하였음.
            Drive through 라서 차들이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온라인으로 예약 안되면 검사 안해 준다고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온도계 찾으니 하나도 없고 타이놀 한 박스만  손님당 팔기에 사서 가지고 왔습니다.
      오후에 온도계 준비 해서 아들 열을 재보니 99.7 - 103 왔다 갔다 함
    저도 오후 부터 몸이 무겁고 머리가 몹시 아프고 귀도 먹먹해지고 타인놀을먹어도 가라앉지 않아서 저녁 7시에 northern urgent care 방문하여 flu 검사하니 negative 라고 합니다.
    낮에는 CDC, 311, urgent care 다 전화를 했는데 숨쉬기 힘들고 입술이 파래 지면  ER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지켜 보면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비상으로 CDC에  우리 전화 번호를 남겨 놓있지만 한번도 우리 상태가 어떤지 전화로 확인 안 옵니다. ㅜㅜㅜ  그만큼 미국 보건부가  혼란 스러운 상태 였습니다.
     Urgent care 의사는 자기네는 코로나 검사를 못하고 아들과 저의  증상이 혹시 코로나 일줄 모르니 체크 해보라고 의사가 말하면서 본인도 코로나 바이러스라 솔직히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들이랑 일단 아무도 만나지 말고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자고 했습니다.

    3/20/20  금요일  잘때는 기침 약이랑 5시간 마다 타이놀을 복용. 간간히 기침을 하면서 잤습니다. 두통과 근육통이 엄청 났고 억지로 물도 마셨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키면 눈 부심 때문에  오래 보지를 못했습니다.
    두통이 심하니까 속도 미쓱 됐습니다.  아들도 자기 방에서 중간 중간 약을 먹으면서
     계속 자더라구요.  남편은 근육만 조금 뻐근 하고 기침만 하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 식구 3명 다 입맛이 없고 입맛이 씁니다.

    3/21/20 토요일 아침에 아들과 저의 열이 내려 가고 두통도 없어지고 몸도 가벼워져서  독감이었나 보다 하고 안도를 하며 좋아 했습니다.
     그날밤에 아들이 머리가 아프다고 다시 타이놀을 먹고는 일찍 잠이 들고 저도 몸은 뻐근했습니다. 

    3/22/20 일요일 아침 예배를 드리려고 준비 하는데 순간 몸이 조요 오는것 같고 손가락 끝까지 저릿 하면서 다시 근육통이 심하게 왔습니다.  다행히 열은 없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고 다시 침대에 누워 하루종일 아들도 자고 저도 잤습니다.

    3/23/290 월요일 몸이 기운은 없지만 두통이 느낌만 있고 심하지 않았습니다.
     약간 귀도 먹먹한 상태 는 지속 되었습니다. 다행히 열은 계속해서 없었습니다 .
    아들은 자택 근무를 하다가 중간에 침대에 드러눕고 저도 누워 있다 너무 지겹고 좀 나은을 같으면 화장실에 가서 청소를 하였습니다
    크로락스를 여는데 이상하게 냄새가 하나도 안나서 남편과 아들을 불러 냄새를 맡아 보라 하니 들다 냄새가 안 난다고 이상하게 생각 했습니다.  다시 알코올을 가져다 코에다 대니
    냄새가 안 났습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니   후각, 미각을 잃어 버리는 것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아는 중요한 단어라는 것을 읽고는 아 !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구나 !! 했습니다.
    3/24/20-3/27/20
    아들은 정상 자택 근무를 하면서 중간 쉬는 것을 봤는데 본인은 다 나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중간 중간에 가벼운 두통, 근육통과 기운 빠짐이 왔지만 견딜만 하고 타이놀도 하루에2번정도 복용했습니다. 기침도 많이 줄었습니다
     남편은  전혀 통증도 없고 근육통도 없고 기침만 간간히 하면서 후각만 기능을 못했습니다.

    3/28/20 아들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저는 토요일 아침 하루종일 다시 기운이 빠지고 근육이 아파서 침대에서 있고 중간 중간 물도 억지로 마시고 식사도 맛 없어도 기운을 내기 위해서 먹었습니다

    3/ 29/20 일요일.  최고로 컨디션이 좋고 입맛도 돌아왔습니다.
         약간의 두통이 있지만 머리속은 깨끗해졌고 몸 상태는 다 낫지만 근육에 이상한 느낌은
        지금도 있습니다.

    앞으로 2주 더 자가 격리를 하려고 합니다.  확실히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것은 아니지만
    ( 중증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저희 처럼 경증 상태는 병원서 안 받습니다 ) 코로나 증상 이었던 것을 알려 드리고 나누어서
    혹시라도  코로나에 걸려도 당황하시지 말고 자가격리를 하시면 됩니다. 

    어제도 롱아일랜드에서 저희 식구랑 똑같은 증상을 가진 분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많이 이런 증상들이 생기는 것 같으니 재 경험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험을 교회에서 교인 들에게 나누어 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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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리의 코로나 비밀

    이태리 북부 프라토의 천년도시가 차이나 타운이 되어 5만여명의 중국인이 섬유업체 4000여개를 설립하여 메이드인 이태리 옷을 찍어내고 주말이면 수천명의 유럽 보따리상이 이곳에 몰려옵니다.

    중국인이 많다보니 중국마피아도 진출하여 도박 마약 매춘 불법 등 등, 돈이 되는 모든곳을 관여하고 있음.
     
    중국직항로를 차단해도 중국갱단이 알선하는 밀입국자를 막지 못하게됨.

    이태리 프라토는 중국인 근로자 5만명 가운데 90%는 중국유태인이라 부르는 저장성 출신으로 상술이 우수함.

    원저우는 우한에 이어 두번째로 봉쇄된 곳이며 프라토 중국인은 금년 춘제때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년간 300만명의 중국인이 이태리 관광을 실시하는 것을 알려졌는데 이태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다가 전국민 이동중지라는 최악의 사태를 격고있습니다.

    이제 이태리 의문 풀리셨지요.

    윈저우 얘들이 손기술이 좋아서 이태리 명품을 만들고 있다합니다.

    중국은 이미 이태리의 많은 명품 회사들에 참여하거나 인수를 했습니다.
    ( 곳곳에 차이나 타운을 만들어 이태리의 치안 밖에 놓이게 했으며, 이태리 경찰과 중국 공안이 같이 현지에서 치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태리 정부는 이렇게 하는것을 감추고선 전 세계에 이태리 명품이라고 팔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태리 명품이란게 Made in China 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태리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적극 참여하여 4개의 항구를 중국에게 개방하였습니다.

    이태리, 이란, 한국은 친중의 댓가로 이런 참담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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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트럼프 발표

    US는 국가 비상 사태에 들어갑니다

     해당 측정에는 136이 포함됩니다.  가장 효과적인 조항은 미국이 필요로하는 모든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할 수 있으며 가격이 얼마인지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정부는 적절한 보조금 계획을 제시 할 것입니다.  이는 미국 제조 회사가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으로 수출하여 저렴한 돈을 버는 일부 국가는 사망 할 것이며 미국에 필요한 모든 의료 제품은 미국에서 완전히 생산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 주식 시장에서 2,000 포인트 급증의 근본 원인입니다.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삶입니다. 

    1.  누구나 무료 코로나 바이러스 테스트를 수락 할 수 있습니다.  개인 진료소를 포함한 모든 병원은 이제 검사 예약을 할 수 있으며 많은 약국이 이번 주말에 검사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들어갈 필요가 없으며 테스트를 위해 밖에 운전할 수 있습니다.  3 월 말까지 미국 전역의 모든 약국에서 무료로 테스트 할 수 있습니다.

    2.  바이러스 증상으로 진단 된 사람은 집에서 14 일의 검역 기간 동안 비용을 지불 받게되며 3 개월 동안 휴식을 취해야하는 경우 동일한 비용을 지불합니다. 

    3.  개인 세금 시즌은 4 월 15 일부터 6 개월 동안 10 월 15 일 이전에 정부에 납부해야하는 세금으로 연기됩니다. 

    4.  전국의 학교에는 가정에서 수업이 있으며, 학생에게 iPad가없는 경우 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합니다.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은 학교 시간 동안 학교에서 집으로 점심을 무료로 제공 할 것입니다 ( 미국에서는 가난한 것이 좋습니다). 

    5.  인터넷 회사는 모든 저소득 가정에 2 개월의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여 텔레비전의 전염병에 대해 적시에 배울 수 있습니다. 

    6.  신용 카드 회사와 은행은 모든 소비자에게 가장 낮은이자 대출을 제공하여 위기를 통해 모든 사람을 지원합니다.  (Bank of America는 현재 자금을 잘 지원하고 금융 시스템은 강력합니다.)

     National 미국 국가 비상 법의 공포는 2 차 세계 대전 진주만 사건 이후 미국 대통령이 발표 한 발표와 다소 유사하다.  이 특정 단계에서 대통령은 미국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제 2 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 경제가 급등하는 것과 같으며, 미국 경제는이 전염병의 발달로 인해 확장이 가속화 될 것이며, 일부 사람들과는 달리 전염병이 미국 경제를 쇠퇴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염병은 미국 사람들을 더욱 통일시키고 세계에서 그가 가장 강한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할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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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여기 이렇게 글을 남기기가 좀 민망하지만 지금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글을 올립니다

    저는 메릴랜드에서 근무하는 중환자 및 호흡기 의사입니다.
    지금 미국은 점점 코로나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3/16 11:45PM 기준으로 4661 케이스입니다.
    거의 이태리 그래프를 따라가고 있는 추세이고 이제 곧 아마 1주 이내로 1만 케이스 이상으로 넘어갈 것으로 추정됩니다.
    밑에 사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미국은 한국처럼 전국민 보험이 아니기때문에 혹시 증상이 있으시더라도 state 에서 지정한 보건소라던지 검사 센터가 있는게
    아닙니다.

    Primary care physician한테 전화하셔야합니다.
    각 PCP office마다 protocol 이 아마 지금은 정해졌을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아직 정확한 protocol 이 없는 곳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오니 일단은 PCP 연락하시고 거기서 하라는대로 하시면 됩니다. 대부분 큰 병원같은 경우는 이미 drive through site를 주차장이라던지 어떤 공터에 만들어서 그곳으로 환자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처럼 많이 검사 kit가 없기 때문에 아직은 아주 strict 한 criteria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1. 한국이나 이태리, 이란, 중국, 일본을 다녀온 사람중에 증상 있는 사람

    2. 14일 이내 covid-19 확진된 사람과 contact이 있었던 경우는 검사를 해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증상이 없거나 mild 한 경우는 집으로 가서 14일 동안 자가격리하라고 합니다. 아주 아픈 경우는 입원시켜줍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집으로 보냅니다. 지난주 금욜에 press conference에서 검사 kit을 million 인가 만들었고 배급했다고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실정입니다.

    지금 미국은 케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이고 마스크가 저희 의료진들에게도 부족해질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지금으로써 virus 를 contain할수 있는 방법은 social distancing 밖에 없습니다. 모두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하고싶지만 그러면 정말 나중에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없을 가능성이 다분히도 높기때문에 아예 사람과의 접촉을 말라는 것입니다 (=social distancing).

    중국과 한국 케이스에서 봤듯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 중에 증상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asymptomatic carrier 들 때문에 community spread가 계속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사람들은 검사도 안해주기 때문에 만약 social distancing (집에 있고 사람들 안만나기) 을 하지 않으면 계속 케이스 숫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지금 혹시 한국 다녀온 친구랑 놀고있나요? 아무 증상 없어도 carrier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큼 social distancing이 중요합니다. 지금 유학생들이나 학생들 중에 왜이렇게 난리인가 하며 밖에 나가시는 분들 있으실수 있는데 그러면 계속 미국은 케이스가 늘어날것이고 그렇게 될 경우 medical resources가 고갈되어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게 될수 있습니다.

    저 그래프에서 보시다시피 만약 지금대로 계속 가다가는 이태리랑 같은 상황이 될것입니다. 약 3주 이내에 미국 전역의 ICU bed는 차게 됩니다. 이태리가 병원보다 환자가 많아서 입원을 못하고 치료를 못받아서 그만큼 죽은 환자가 많은겁니다 (이태리 100명중에 8명 죽음. 한국 100명중에 0.9명 죽음. 미국 지금까지 데이터에 의하면 100명에 2명 죽음).

    이태리도 처음에는 사망률이 미국정도였습니다. 즉처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을때는 100명중에 2명 죽었는데, 점점 병원과 health care resources가 고갈되고 입원 및 치료를 못하게 되어 100명중 8명이 죽는 상태가 된겁니다. 미국도 지금대로 가면 그렇게 될것입니다.

    지금 미국 의료진들이 social distancing을 매우 강조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빠, 레스토랑, 영화관 등등이 문을 닫은 이유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늘어난다면 곧 의료 시스템은 마비가 될것입니다.

    그러면 원래 중환자실로 입원하는 heart attack, stroke, shock 환자들은 ICU에 들어오지도 못할수도 있고 ICU bed를 기다리다 죽을수 있습니다. 또한 medical resource가 고갈되어 원래 받을만한 치료수준의 치료를 받지 못할수있습니다.

    지금 이태리 그리고 심지어 시애틀에서조차 누구를 살릴지를 의사들이 결정해야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이태리는 60대 이상은 포기하고 어린, 가능성 있는 환자들을 선택적으로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outbreak는 심각합니다

    현재 elective surgery는 미국 거의 모든 병원에서 이미 취소가 되었으며 routine follow up 또한 취소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 경각심을 가지고 어디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시는 것을 권유드리고,

    wash your hands, stay away by 6 feet if you have to go out and meet someone. If you feel sick, don’t go to work and spread the virus and get other people sick. Thats how the virus spreads and conitnues to spread because the people that you work with are now exposed and they are gonna go home and expose to their familes and they will go out and expose/spread to others. This is extremely important that we practice social distancing!!!

    It will most likely not be under containment at least until June/July and maybe even through the fall season.

    이렇게 심각합니다. 의료진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수술실이 중환자실로 변환되고 있습니다. 미국 모든 사람들이 social distancing 하지 않으면 정말 곧 제가 말하는 심각한 health care capacity saturation 상태가 올것입니다.

    이거 많은 곳에 퍼트려주세요. 정말 social distancing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나하나쯤이야 했다가는 그로인한 파장이 너무 큽니다. 모두가 같이 social distancing을 할때 그나마 flatten the curve를 할수 있고 그래야 저 그래프에서 빨간 라인을 넘기지 않을수 있고 그래야 ICU가 overflow되지 않고 그래야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들이 제대로된 healthcare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노력합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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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值得細看
    Worth reading.

    這是留美醫學教授黃建中先生發到同學群的微信。講的很好。
    This is a message from Professor Wong Kin-Chung, a medical professor in USA, to his students in a chat group. Very well said. (Translator Alice’s note: the original message was in Chinese, I am translating this for the benefit of my non-Chinese reading family and friends residing overseas. With apolgies to Professor Wong, I have made some editorial changes while not affecting the meaning of the original message.)

            現在.... 有很多的疑似或確診但病情輕微的病人住不進醫院。這個可以理解,因為任何城市都不可能在平時建設這麼多的傳染病醫院和傳染病床,還要有這麼多的傳染科醫護人員待命。
    Now ......there are lots of suspected and confirmed cases (of coronavirus) where the patients cannot be admitted into hospital.  This is understandable.  It is simply not possible for any city in normal times to build and maintain so many infectious disease hospitals and hospital beds, and to have so many qualified infectious disease control medical staff to be on stand by.

    其實去醫院也沒有針對性的特殊治療,主要還是支持療法。住不進醫院急也沒用。按照我下面說的,應該可以先延緩病情發展,等待進院。
    In reality, even if you go into hospital, they do not have any special treatment that target (the coronavirus), they only offer supportive therapy.  It won’t help to get frustrated if you can’t get into hospital. Do as I say below. It would help delay the progress of your condition, while waiting for admission.

    我是醫生多年,又是營養師多年,我的方法是有科學依據的,可以把我的這個微信發到有需要的群里,以便如果有人遇到這樣的情況時可以參考自救。
    I have been a doctor as well as a nutritionist for decades. My method is scientifically based. Please feel free to circulate my message to your other chat groups, my advice may help people who find themselves in the situations I describe.

    這不是鼓吹靠自己來治療,而是用這些生活中的方法給自己贏得時間等待 .... 整體條件改善時住進醫院治療。
    我寫的這些方法都是有依據的。
    I am not recommending self healing, only to use everyday actions to buy time.... to improve one’s general health condition while waiting for hospital admission.

    1. 患者家人全部進出門用鹽水漱口,要涼水,不要用熱水,涼水可以讓口咽部黏膜下血管收縮,減少病毒進入血液的機會。鹽水可以固定病毒表面的S-蛋白,使其不易附著到黏膜上。冠狀病毒只有先與黏膜上的特定蛋白 結合,才能進入到我們人體細胞,再大量複製。要經常漱口 ,用含酒精的漱口液更好。
    1.  Patients’ family members, on entering and leaving home, should rinse their mouths with salted water, using cold water, not hot.  Cold water will contract blood vessels in one’s mouth and throat, thereby reducing chances of viruses entering one’s blood stream.  Salted water can stabilise the s-protein on the virus’ surface, making it less easy to attach to the mucous membranes. To enter human bodies, the coronavirus first has to bind itself to certain specific proteins in the membrane and then self multiply massively.  So rinse your mouth frequently, it will be even better if you use mouth rinse that contains alcohol.

    2. 如果已經確診,但住不進醫院,只能在家自我隔離(單房間),時刻帶上口罩。家人也時刻帶口罩,只要沒有直接的飛沫傳播,就很難傳染。用75%酒精噴灑家裡,盡可能不留死角。傢具用酒精搽拭。這個病毒對酒精不耐受,用酒精可以滅活。家裡的衣服能用開水燙的就用開水燙,這個病毒能耐受的溫度是60度以下,高溫可以滅活。不能開水燙的衣服鞋子噴灑酒精消毒。
    2.  If you have been tested positive but cannot be hospitalised, your only option is to self-isolate at home (in a room by yourself), wearing a mask all the time.  Family members must also wear masks at all times. So long as there is no transmission via droplets, transmission of the virus is unlikely. Clean your house using 75% alcohol, clean every corner and even the furniture.  Alcohol kills this virus. As does high heat, so use hot water of over 60 degrees to wash your clothes. This virus cannot survive heat above 60 degrees.  For shoes or clothes that can’t be washed in hot water above 60 degrees,  clean them with disinfectant.

    3. 如果有症狀但不重,首先注意多喝水,每次喝水量不要大,幾口就行,頻繁的喝,保持水份平衡。大蒜生薑洋蔥都有抗病毒作用,生吃或煮水喝。尤其生薑可以煮濃姜湯,喝了加快血液循環,如果能出汗更好。可以喝一些白酒,加快血液。循環。血液循環對自身免疫功能非常重要。這個病即使住院,也是要靠自身免疫力來控制的。
    4.  Those tested positive but not too unwell, drink lots of water.  It doesn’t have to be lots of water each time, a few sips are sufficient. Drink frequently, keep the body hydrated.  Garlic, ginger and onions also have properties that help one’s fight against this virus, eat raw or make into drinks to consume. Ginger is best. Make drinks by boiling fresh ginger in water, it will help one’s blood circulation which in turn boosts the immune system. Good immune system is of overriding importance whether or not one gets hospitalised.

    4. 熱雞湯是美國傳統上抗感冒的,醫生也提倡,可以多喝。到藥房去買維生素C,大劑量服,每天4000毫克,維生素C既可以影響病毒複製,又可以穩定血管璧,減少肺部炎性滲出。紅酒里含紅酒多酚,有一定的類似激素作用,可以喝。因為中國國家衛健委的治療指南也是用短期的激素,紅酒多酚消炎是很有效的(紅葡萄酒,不是白葡萄酒)。
    4.  Hot chicken soup is a common American remedy for colds and flus, which even doctors recommend.  Drink more.  Go to the pharmacy to buy high dosage Vitamin C, 4000mg daily.  Vitamin C affects virus’ self duplication, and can also stabilise the blood vessels’ outer surface, helping to reduce seepage of infection from the lungs.   Drink red wine (not white).  Red wine contains polyphenol which acts like hormones to protect tissues against inflammation.  This is in line with the treatment recommendations issued by the health authorities in China.

    5. 好的蘑菇如花菇含有豐富的多糖類物質,可以刺激免疫系統,日本對花菇的研究很多,要多吃。烹飪之前,在水里多泡泡,去除蘑菇可能吸附的農藥殘留。如果家裡有靈芝等,那就更好,沒有就多吃花菇(不是平菇)。人參西洋參都可以煮水喝,對提高免疫機能有好處。可以和雞湯一起煮。
    5.  Eat more mushrooms.  Good mushrooms, like shiitake, contain properties that stimulate the immunity system. The Japanese have done much research in mushrooms.  Must soak well before cooking, in order to get rid of any remnants of agricultural insecticides. If you have Lingzhi, that’s even better. Eat good shiitake mushrooms (not the cheap produce).  Ginseng and american ginseng are also good for boosting the immune system. Cook with chicken to make soup.

    6. 西藥里的阿斯匹林可以服用小劑量(5-20毫克),既有消炎的作用,也有降低血液粘稠度的作用。資料顯示病毒感染者有的血漿二聚體增高,意味著血液粘度升高,血流流速減慢,這種情況不利於免疫細胞的運動,而有利於病毒複製。中藥里的黃芪黨參西洋參含類黃酮,可以保護各器官的細胞,避免出現器官嚴重損傷。實在沒有這些煮黃豆吃也有作用。
    6.  Small amount of aspirin (5-20 mg) also helps. Other than being anti inflammatory, it reduces the viscosity of the blood.  Available information suggests that confirmed patients’ blood contains elevated Plasma D-dimer Count, suggesting a higher viscosity and reduced circulation rate. Such is not conducive to healthy regenerative activities of one’s immunity system, but rather favours the virus’ replication.  In Chinese medicine, astragalus, codonopsis and American ginseng contain flavonoids, protecting cells from severe damage.  Without these, eating soy beans would help.

    7. 能進食是關鍵,胃口不好可以煮水喝,一切能開胃的方法都可以,只要能吃就問題不大。注意尿量。每天至少要上廁所幾次,排正常尿量。
    7.  The key is to keep eating (= nourishment).  If you have no appetite for solids, liquidise your food. Just eat anything that you fancy.  So long as you eat, the problem is manageable.  Monitor your urination (translator’s note: = body hydration).  You have to pee numerous times a day, in normal quantity. 

    謝謝!可轉發!照顧好自己和家人
    Thank you!  Can circulate! Take good care of yourselves and your fami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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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챠드의 아름다운 문인 "무스타파 달렙"의 글이랍니다.

    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인류.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

    코로나바이러스라 불리우는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집고 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인가가 나타나서는 자신의 법칙을 고집한다. 그것은 모든 것에 새로운 의문을 던지고 이미 안착된 규칙들을 다시 재 배치한다. 다르게..  새롭게..

    서방의 강국들이 시리아, 리비아, 예멘에서 얻어내지 못한 (휴전. 전투중지) 것들을 이 조그만 미생물은 해내었다. 알제리아 군대가 못 막아내던 리프지역 시위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기업들이 못해내던일도 해냈다. 세금 낮추기 혹은 면제, 무이자, 투자기금 끌어오기, 전략적 원료가격 낮추기 등.. 시위대와 조합들이 못 얻어낸 유류가격 낮추기, 사회 보장 강화 등등도 (프랑스경우), 이 작은 미생물 이 성취해 내었다.

    순식간에 우리는 매연, 공기오염이 줄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이 갑자기 생겨 뭘 할지 모르는 정도가 되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으며 일은 이제 더 이상 삶에서 우선이 아니고, 여행, 여가도 성공한 삶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약함'과 '연대성'이란 단어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모두 한 배에 타고 있음을.. 시장의 모든 물건들을 맘껏 살수도 없으며 병원은 만원으로 들어차 있고 더이상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들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서는 우린 모두 똑같이 연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도..

    외출할 수 없는 주인들 때문에 차고 안에서 최고급차들이 잠자고 있으며 그런식으로 단 며칠만으로 세상에는 사회적 평등(이전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였던)이 이루어졌다.

    공포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았다.

    가난한 이들에게서부터 부유하고 힘있는 이들에게로.. 공포는 자기 자리를 옮겼다.

    우리에게 인류임을 자각시키고 우리의 휴머니즘을 일깨우며..

    화성에 가서 살고, 복제인간을 만들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던 우리 인류에게 그 한계를 깨닫게 해주었다.

    하늘의 힘에 맞먹으려 했던 인간의 지식 또한 덧없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확신이 불확실로.. 힘이 연약함으로, 권력이 연대감과 협조로 변하는데에는..

    아프리카가 (코로나에)안전한 대륙이 되는 것, 많은 헛된 꿈들이 거짓말들로 변하는 데에는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인간은 그저 숨 하나, 먼지일 뿐임을 깨닫는 것도..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 이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나?

    하늘의 섭리가 우리에게 드리울 때를 기다리면서 스스로를 직시하자 .

    이 전세계가 하나같이 직면한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 우리의 휴머니티가 무엇인지 질문해보자.

    집에 들어앉아 이 유행병이 주는 여러가지를 묵상해보고 살아있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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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 Times에서는 의료진이 쓸 마스크가 부족해 일반인 마스크 사용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N95가 아닌 home-made 마스크라도 사용함이 절실한 때입니다.  마침, 어제 저녁 TKCTV 내용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미국에서는 코로나19 급속히 확산 되었다고 합니다.

    전염병 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가 코로나19초기부터 갈팡질팡하며 제대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는 등 대재앙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김세연 기자의 보도입니다.
     
    비영리 탐사보도 전문 매체 프로퍼블리카는 정보공개법에 따라 네바다주 정부로부터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연방정부, 그리고 네바다주 보건당국자간에 주고 받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메일을 공개하고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혼돈과 재앙 그자체 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15명이 발생, 위기가 현실화 될 무렵인 지난달 13일에야 세계 각국의 코로나를 추적하고 관련문서를 검색 할 전문인력을 긴급채용한다고 공고를 냈고, 그뒤 2주간 워싱턴주와 캘리포니아로 확산돼 커뮤니티를 위협할 때도 명백한 혼돈 상태였다고 이 매체는 밝혔습니다.

    또 네바다주 보건당국이 코로나 잠재 감염자 80명이 발생했다고 질병통제 예방센터에 알렸으나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지난 4일에도 네바다주가 도움을 요청했으나 질병통제 예방센터는 ‘정보가 부족하다. 미안하다’고 답하자, 네바다주는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답장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외에도 지난달 17일 앤소니 파우치 전염병 연구소장은 USA투데이 기고문을 통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 손만 깨끗이 씼으면 된다’며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뉴욕 등지에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파우치박사가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자 미국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미국내 최고 전염병 전문가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대서특필했으며 이에 따라 엄청나게 붐비는 뉴욕시 지하철등이 코로나19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또 파우치박사는 미국에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된 후인 지난 8일 CBS 60미닛에 출연,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걸어다닐 이유가 없다. 마스크를 써야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많지만, 미국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마스크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메르스 상태 당시 한 여성 확진자가 2천여 명을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으나 마스크를 쓰고 다녀 단 1명도 전염시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된 뒤 마스크의 중요성이 알려졌고, 서울 등에서도 대부분이 마스크를 씀으로써 코로나19가 확산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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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온 댓가

    프랑스에 93살 할아버지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서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그는 24시간 동안 산소공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뒤로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때 의사선생님이 할아버지께 50만 프랑의 의료 계산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할아버지를 달래면서 계산서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저는 지불하게 될 금액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치료비를 전부 지불할수 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고작 24시간 공급 받은 산소 금액이 50만 프랑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93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를 마시면서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한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아십니까 ?"라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도 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도 감사의 하루입니다.

    * 24시간 산소호흡기 사용료 : 50만 프랑

    1프랑 : 한화 160원(매일 경제신문)
    50만 프랑 : 8천만원
    8천만원를 24시간으로 나누면(1시간 산소호흡 사용료) : 330만원
     

    _____________________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이 1백만명의 기도 체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함께 하시지 안겠습니까?
     

    Good 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

    I was asked to be part of a 1million Lord's Prayer chain to slow and stop the Coronavirus.
    나는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를 늦추고 중지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1백만 명 기도 체인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The idea is you pray and then pass the message on to 8 other people.
    이 아이디어는 당신이 기도하고 이 메세지를 8명의 다른 분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Let me know if you can't, so we don't break the prayer chain.
    만약 당신이 할수없다면 내게 알려주십시요.
    그래서 우리의 이 기도체인이 끈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It took me 30secs to do it
    나는 이것 실행하는데 30초 걸렸습니다.

    Here is a prepared prayer you can pray or use your own:
    여기에 준비된 기도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기도문을 만들어하셔도 좋습니다.

    God our Father,
    하나님 아버지,

    please blanket our nation in protection from the Corona virus.
    우리나라를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예수의 보혈로) 덮어주소서.

    Heal our land and protect those who are most vulnerable.
    우리 땅을 고쳐주시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주소서.

    Give peace to those who struggle with loneliness and isolation,
    고립과 외로움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소서.

    and endurance to the many businesses that are affected by our feeble attempts to control Corona.
    코로나바이러스 통제를 위해
    여려움을 겪는 많은 사업체들에게 참고 견딜 힘을 주소서.

    Come to the bedside of those who are struggling with the effects of contracting the virus.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병상을 방문해주시고,

    Protect and give guidance to those healthcare workers who place themselves in danger caring for the sick.
    병자들을 돌보기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의료관계자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소서.

    Hear our prayer oh Lord.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We pray this through your son’s name, Amen.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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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 박민주
    가와사키 병으로 4살 때 부모님이 포기각서를 썼었다.

    질환명 : [한글명] 가와사키병 [영문명] Kawasaki disease

    정의

    가와사키병은 전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급성 열성 혈관염으로 대부분 5세 이하의 소아에서 발생합니다. 피부, 점막, 임파절, 심장 및 혈관, 관절, 간 등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고, 위장관 장애, 담당수종, 드물게 뇌수막 등의 염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원인

    가와사키병의 원인은 아직 불명확하지만, 유전학적 요인이 있는 소아가 병원체에 감염되면 과민반응이나 비정상적인 면역학적 반응을 일으켜 가와사키병이 발생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증상

    전형적인 증상은 38.5℃ 이상의 고열, 사지말단의 부종, 피부의 부정형 발진, 양측 안구 결막의 충혈, 입술의 홍조 및 균열, 딸기 모양의 혀, 구강 점막의 발적, 비화농성 경부 임파절 종창, BCG 접종 부위의 발적이 있습니다. 발열은 대개 항생제에 반응이 없으며, 열은 치료하지 않으면 대개 1~2주 이상 지속되고, 어떤 경우에는 3~4주 동안 열이 있기도 합니다. 오랜 발열은 관상 동맥 합병증의 위험 요소입니다.
    가와사키병은 다음 3단계를 거쳐 나타납니다.
    ● 급성기
    첫 2주 동안 열이 나며 경우에 따라 설사, 복통, 두통 등을 보입니다.
    ● 아급성기
    2주~4주 사이로 특징적으로 손가락, 발가락 끝, 항문 주위에 막양낙설이 보이며 혈소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동맥류가 나타날 수 있는데 관상동맥류는 발병 1-2주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4-8주에 최대가 됩니다.
    ● 회복기
    1달에서 3달 사이로, 이때는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돌아오며 심장혈관인 관상동맥의 동맥류가 회복되거나 크기가 감소합니다.

    진단/검사

    ● 임상적 진단
    원인을 알 수 없는 38.5℃ 이상의 고열이 적어도 5일 이상 지속되고 다음에 열거되는 특징 5개 중에서 4개의 증상이 있으면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 양측성 결막의 충혈
    - 경부림프절 비대 (1.5cm 이상)
    - 피부발진
    - 입과 혀의 병화; 입술의 홍조 및 균열, 딸기 혀, 구강 발적
    - 손발의 변화; 급성기의 손발의 경성 부종과 홍조, 아급성기의 손발톱 주위의 막양낙설
    ● 검사
    -모든 의심되는 환자에서 심전도, 심초음파 시행하고, 지속적인 초음파 이상과 허혈징후 시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합니다.
    -염증의 정도를 반영하는 검사결과들이 높게 나타나고 혈액검사에서 적혈구침강속도(ESR)의 상승(대개 비슷한 다른 병들보다 높음), 백혈구수 증가, 빈혈(낮은 적혈구 수) 등을 검사결과들이 나타납니다.
    다.
    -혈소판 수치는 발병 2~3주에 걸쳐 급격히 증가하다가 이후 정상화 됩니다.

    치료

    급성기에는 면역글로불린의 다량 요법과 아스피린을 사용합니다.
    발병 후 1~2주에는 반드시 심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여 관상동맥의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관상동맥의 합병증이 없는 경우 아급성기에 접어들면서 저용량 아스피린으로 6~8주 투여합니다.
    관상동맥류가 있는 환자는 장기적으로 규칙적인 경과 관찰 및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치료적 심도자술이 요구됩니다. 일부 환자에서는 심장수술(관상동맥 우회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경과/합병증

    관상동맥 합병증이 없는 경우는 예후가 좋아서 현재로는 1년 이후에는 엄격한 추적 관찰은 시행하지 않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의 관상 동맥의 변화가 있으면 심초음파, 심전도, 운동 부하 검사 등을 통해 심근 허혈 유무를 정기적으로 추적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관상 동맥 조영술을 하여 관상 동맥의 협착 혹은 폐쇄를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를 하게 됩니다.

    예방/생활습관

    가와사키병 자체는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현재로서는 특별한 예방법은 없습니다. 진단 즉시 치료를 시작하여 심장의 합병증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FAQ

    Q. 가와사키병의 치료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A. 정맥 주사로 면역글로블린 치료를 12시간 하고 동시에 아스피린 복용을 시작하여 관상동맥의 이상이 없는 경우 2개월간 유지합니다. 그러나 관상동맥이 늘어나 있는 경우 관상동맥이 정상화 될때 까지 아스피린 혹은 항응고제를 복용합니다.

    Q. 가와사키병을 앓았을 경우 운동에 제한이 있나요?
    A. 심장 초음파상에서 관상동맥에 이상이 없을 경우에는 특별히 운동을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Q. 성홍열과 가와사키병은 어떻게 다른가요?
    A. 두 질환 다 열이 나고 발진이 생기고 입술이나 혀가 빨갛게 나타나는 등 비슷한 증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홍열은 세균 감염에 의해 발생하게 되고 가와사키는 면역에 의한 전신 혈관 염증이며 특히 관상동맥을 침범하게 됩니다. 치료는 성홍열은 항생제로 치료를 하고 가와사키는 면역 글로블린과 아스피린을 투여하게 됩니다.


    사람은 어려운 고비를 잘 견디고 넘기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고비를 누구나 다 겪어야 한다.
    여기서 살아 남는 자만이 위대한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다.
    왜냐하면 살아 있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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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일(수)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0/09/02/CIWVQOUC2NBQFCILEJIIYUWU54/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전세계 57개국 266개 종교·시민단체들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종교의 자유를 탄압하고, 교회를 희생양 삼고 있다”는 내용의 항의 서한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냈다고 1일(현지 시각) 밝혔다. 이번 서한에는 1만4832명이 참여했다.


    수잰 숄티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오종찬기자

    단체들은 A4용지 4장짜리 서한에서 “최근 수개월 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의 원인에 대한 책임을 교회에만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난 여름 수백만명의 한국인이 레스토랑과 카페, 노래방에 다녔지만 코로나 책임의 원인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고 마스크 착용 등의 규칙을 지킨 교회만 뒤집어쓰게 됐다”고 지적했다. 롯데리아와 남대문 시장 등 국내 여러 지역 감염 사례를 언급하며 “교회를 향한 거친 탄압과는 다르게 일반 대중들의 행동(secular activities)들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대중의 불만 등을 무마하기 위해 교회를 부당하게 희생양을 삼고 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전광훈 목사가 있는 사랑제일교회에 대한 압수수색 등을 지적했다.

        28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전세계 시민단체들이 28일 청와대에 보낸 항의 서한의 일부.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단체들은 “한국은 자유에 기초에 세워진 나라인데, 최근 정부가 보이는 일련의 행동들은 종교에 대한 관용을 약화시키는 한편 사회적인 연대도 허물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앤 부왈다 주빌리캠페인 총괄디렉터는 “지난 수십년 간 인권 신장을 위해 싸워온 한국에서 종교에 대한 박해가 벌어져 충격적”이라며 “문 대통령이 일련의 조치들을 재고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왈다 디렉터는 “종교적 자유는 빼앗을 수 없는 권리(inalienable right)”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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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일(화)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health/2020/09/01/H25H5VZS3VGQFEFBODVP7FBCUI/


    6개월 넘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을 앓고 있는 30대 영국 여성이 소셜미디어에 그림 일기를 올려 다른 장기투병자들과 증상을 공유하고 있다.


    모니크 잭슨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일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사망한 지인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본인의 모습을 그린 그림.

    1일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런던에 사는 모니크 잭슨(31)이라는 여성은 지난 3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판정을 받고 24주째 투병 중이다.

    모니크는 7월 중순부터 자신의 증상과 일상을 인스타그램 그림일기로 표현해오고 있다. 투병 6개월째인 모니크는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가 길게 잔존하는 ‘롱테일 코로나(Long-tail Covid)’에 걸린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으며, 롱테일 코로나는 바이러스에 대한 특이 반응으로 최근에 들어서야 의료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모니크 잭슨이 올린 인스타그램 그림일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후유증으로 구토 증상에 시달리던 모니크는 그림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날 밤 같은 자세로 (병이 낫기를) 기도했다"고 덧붙였다. /인스타그램 캡처

    ◇무에타이 단련했지만 코로나 6개월 만에 양치질할 힘도 없어

    외향적인 성격의 모니크는 평소 무에타이와 주짓수를 하고 직장인 런던 도심의 아트갤러리까지 자전거를 타고 약 20km를 달려 출퇴근했다. 그러나 친구와 지난 3월 기차여행을 떠났다가 코로나 증상이 나타났고, 급격히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모니크는 감염 후 첫 2주 동안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고열에 독한 감기 증상을 겪었다고 한다. 당시 런던은 겨울 날씨 같은 추위가 있었지만 겉옷을 걸치지 않고 지냈다고 하며, 생마늘과 고추를 먹었을 때 맛도 느껴지지 않았았다고 한다. 이후 호흡곤란과 가슴 통증-위장 통증이 차례로 찾아왔고, 6주 째에는 소변을 볼 때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결국 발병 4개월 후 모니크는 런던 동부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방 청소와 계단 오르기가 어렵고, 양치를 하기 위해 칫솔을 들 힘이 부족해 침실 벽에 ‘매일 양치할 힘을 남겨두라‘고 메모를 붙인다고 한다. 모니크는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7월부터 그린 그림일기엔 눈물, 공포 그리고 기도

    모니크는 그림 일기를 통해 장기투병자의 증상을 알리고 다른 장기투병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모니카 잭슨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일기. 잭슨이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장기 투병자들과 소통하고 있는 자신을 그렸다.

    영국의 모니크 잭슨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 일기. 목욕을 하는 도중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미국인들이 죽고있다"고 말하는 내용을 들으며 공포에 떨었다고 표현했다. /인스타그램 캡처

    그녀의 그림일기에는 코로나로 구토에 시달리다 변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 코로나로 숨진 지인의 소식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 목욕을 하다 코로나 확진자 사망 보도를 전하는 라디오를 듣고 공포에 떠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모니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내게 건강이 좋아지면 자전거도 다시 타고 복싱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런 말은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게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림일기를 그리면서) 비록 내 방에 갇혀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연결돼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4월 6일(월)

    관계를 위한 기도

    하나님,
    홀로됨은 힘든 일입니다.
    저희는 홀로됨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채 창조되었습니다.
    저희가 외롭다고 느낄 때에서도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인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희가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희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와 격리 상황이 임시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기억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 내고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심화실킬 힘을 주십시오.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당신으로 부터 오는 사랑, 평화, 희망 그리고 기쁨을 더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시고 이 땅을 치유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월 5일(주일) 오후 10:20

    고난주일 밤
    거대한 도시가 이렇게 조용할 때가 있구나!

    고난주일 아침을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받은 내용들을 정리합니다.

    한국은 모든 것이
    밥이면 다 통한다고 합니다.                                                               

    * 혼낼 때 : 너 오늘 국물도 없을 줄 알아!

    * 고마울 때 : 나중에 밥 한번 먹자.

    * 안부 물어볼 때 : 밥은 먹고 지내냐?

    * 아플 때 : 밥은 꼭 챙겨 먹어.

    * 인사말 :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 먹었어?

    * 재수 없을 때 : 쟤 진짜 밥맛 없지 않냐?

    * 한심할 때 : 저래서 밥은 벌어 먹겠냐?

    * 무언가 잘 해야할 때 : 사람이 밥값은 해야지

    * 나쁜 사이일 때 : 그 사람하곤 밥 먹기도 싫어

    * 범죄를 저질렀을 때 : 너 콩밥 먹는다!

    * 멍청하다고 욕할 때 : 어우!! 이 밥팅아!

    * 심각한 상황일 때 : 넌 목구멍에 밥이 넘어가냐?

    * 무슨일을  말릴 때 : 그게 밥 먹여주냐?

    * 최고의 정 떨어지는 표현 : 밥맛 떨어져!

    * 비꼴 때 : 밥만 잘 쳐먹더라~

    * 좋은 사람 : 밥 잘 사주는 사람.

    * 최고의 힘 : 밥심.

    * 나쁜사람 : 다 된 밥에 재뿌리는 넘.

    * 좋은 와이프 평가 기준 : 밥은 잘 차려 주냐?

    딱 맞는거 같죠?
    아무리 일이 바빠도 밥은 꼭 먹어야하니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지러운 요즘 모두들 밥 잘먹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카톡으로 연락을 주셨던 사람들
    1. 원순희목사
    2. 이복영사모
    3. 구은숙권사
    4. 우광하장로
    5. 서순선권사
    6. 김명화권사
    7. 김천일집사
    8. 이일모장로
    9. 양정숙권사
    10. 조욱영사모(일본)

    기억하고 연락을 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합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건강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의 부름에 합당한 일을
    감당하지 못하여
    그 앞에 서기가 부끄럽기 때문이지요.
    주님
    건강을 주시되
    주신 사명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를 더하여
    바르게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4월 5일(주일) 오전 7:45

    주님,
    고난주일 아침을 맞이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주님의 날에
    저희들이 각 가정에서
    온라인으로 예배할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주의 거룩한 영이
    온전히 하나로 묶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예배 가운데
    주님의 거룩한 손이 임재하여
    상한 자를 회복시키며
    약한 자를 강하게 붙잡고
    병든 자를 고쳐주심으로
    예배를 통한 주의 은혜를
    모두가 함께 체험하게 하옵소서.

    속히 이 땅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쳐주옵소서
    이와 같은 징조를 보며
    주님 오실 그 날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일어나
    구원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월 5일(주일) 오전 8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먼저 SNS에 들어온 메시지를 확인합니다.
    왜냐하면 혼자 거주하는 사람들의 근황을 알고 싶기 때문이지요.
    외출을 금하는 정부 방침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독거 노인들은 점점 몸과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응답이 늦어지면 마음이 불안한 것은 믿음이 없는 탓일까요?
    아니면 실제 상황이 어려운 형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이러한 일이 한 달 두 달  세 달 그리고 일년 이상 지속된다면 매우 심각합니다.
    만일 독거 노인들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아무도 없다고 하면 누가 응급전화를 할 것이며, 누가 보호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을 직시하며 생각해 봅니다.
    독거 노인들을 위한 작은 공동체를 마을에 형성하여 가까운 집들을 아침마다 방문한다면 이런 것이 21세기 목회의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
    이런 생각과 계획이 정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이런 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로 결단케 하셔서 오직 주님만을 기뻐하며 삶의 마무리를 공동체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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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4일(토) 오후 5:58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장 작은 수의 모임조차 심지어 가족들의 모임도 금합니다.
    저희 가족들은 매월 마지막 주일에 비록 뉴욕이란 울타리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한 번씩
    만남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것도 모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현상이 온 세상을 뒤흔들 때 유투브라는 카톡이라는 SNS가 발달되어 서로 연결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가 손안에 있다는 것도 감사할 조건입니다.


    시애틀 송재남사모의 카톡 내용

    여기 북쪽에 있는 교회에서 일주일전에 60명이 합창연습을 했는데 2미터 간격도 지켰고
    손도 닦었고 악수도 안했고 물론 허그도 없었고 다들 연습만 하고 갔는데 47명이 감염이 됐고
    2명은 죽었고... 공기전염이라고 비상...그당시는 아픈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나중에 나타났음....
    다들 조심하세요!



    내일 고난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이런 카톡을 교인들에게 발송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여
    최소한 6피트(1m 80cm) 거리를
    유지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하는 것도 금하고 있지요.
    특히 감염을 예바하기 위하여
    "자가 격리(隔離, Self isolation)"도 필요하지만,
    "자가 격려(激勵, Self encouragement)"도
    필요합니다.

    주일 예배를 온라인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자가 격리(隔離, Self isolation)"와
    "자가 격려(激勵, Self encouragement)"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4월 5일 고난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 위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719325

    ‘사회적 거리’ 두기

    스트레이트 암(straight arm)’은 ‘곧게 쭉 편 팔’이란 의미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팔을 곧게 펴고 기구를 끌어당기는 동작 등을 지칭한다.
    지난해 여성과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 때문에 논란을 빚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스트레이트 암 클럽’에 가입하라”고 충고하면서 회자했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타인과 적절한 ‘퍼스널 스페이스(개인적 거리)’를 지키라는 의미”라고 했다.
     
    개인적 거리’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이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소개한 개념이다.
    홀에 따르면 사람의 공간은 인간관계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친밀한 거리’(0~46㎝)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거리다.
    ‘숨결이 닿는 거리 46㎝’라는 카피를 앞세워 시판 중인 한 치약 제품이 이 개념을 차용했다.
    ‘개인적 거리’(46~120㎝)는 친구와 가까운 사람 사이에 격식과 비격식을 넘나드는 거리다.
    타인에게서 침범받고 싶지 않은 물리적 공간을 의미한다.
     
    ‘사회적 거리(120~360㎝)’

    사회생활을 할 때 유지하는 거리다.
    업무상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지키는 거리다.
    제3자가 끼어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이다.
    호텔 로비 커피숍의 좌석은 통상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다.
    ‘공적인 거리’(360㎝ 이상)는 무대 공연이나 연설 등에서 관객과 떨어져 있는 거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밀폐된 실내의 밀접 접촉으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 거리가 주목받고 있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은 최근 브리핑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 비말(飛沫)이 튀는 거리가
    2m 정도”라며 “(코로나19)의 피해와 유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개인위생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사회적 격리(거리 두기)”라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3월 첫 주를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익숙해지는 일주일이 되기를 제한했다.
     
    숨결이 닿고,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를 2018년 남북정상회담 테이블 거리(2018㎜)만큼 떨어뜨리려면 심리적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너무나 부지런하고 힘센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다.
     
    - 하현옥 복지행정팀장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때의 사회 구성원에게 강력하게 요구되는 감염 예방 수칙 중 하나로, 직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모임이나 집회 등 사교 활동을 최소화하여 집단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비말이나 신체 접촉, 에어로졸 등을 차단하려는 요령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표현 대신 물리적으로만 거리를 두면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istancing)'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요령의 중점은 '사회활동'이 아니라 '비말이 튈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고만 하게 되면 직장 등 일체의 경제활동까지도 포기하라는 식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으나, '물리적 거리 두기'라 하면 현장에서의 불필요한 회의 등을 줄이고 재택근무를 하라는 말이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2020년 2월경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급속한 확산에 따라, 대한예방의학회의 대책위원장인 기모란 교수가 해당 캠페인을 제안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3월 30일(월)

    가슴이 답답하고
    기관지에서 무엇이 올라오는 듯하여
    자주 뜨거운 물을 조금씩 마셔봅니다.
    혹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몸을 길게 눕혀 봅니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지만 입맛에 맞는
    먹거리가 없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는 마음이 허전하지요.
    그래도 살아야 하겠기에 사과 몇 조각
    입에 물고 씹어 봅니다.
    상큼한 맛이 침샘을 자극하여 눈이
    밝아집니다.
    오늘도 아무런 탈 없이 하루가 넘어갑니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이 되기를 소망하며
    어두워진 창밖을 주시하며 아무도 없는
    가로등 불빛만 외롭게 흔들리고 있지요
    마치 내 마음처럼........
    건강해야 만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가 진단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여기 저기 인터넷 사이트 뒤지며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증세를 비교해 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전능하신 주님의
    손길을 붙잡습니다.

    주여!
    건강한 내일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3월 31일(화)

    3월의 마지막 날
    주 거래 은행의 본부장이(홍종례) 확진자로 판명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합니다.
    또 파슨과 노던 사이에 거주하던 65세된 한인 남성이 감염된 환자로 사망했다고도 합니다.
    당국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또 어떤 교회 교인이 자가 진단과 치료하는 과정을 SNS에 올려 공유하며 미리 미리 대비하자는 의미로 글을 올리기도 합니다.
    매일같이 확진자의 수가 급증하고 심지어 뉴욕이 미국 전체 감염자의 1/2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지인들은 무슨 일이 없는지 궁금하다며 연락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혹시 내 몸에 나타나는 작은 반응에도 민감해지는 것은 분위기 탓이 아니라 마음이 약한 것도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가슴은 답답하지만 열이 없으면 감염자가 아니라 일반 감기라고 진단하라고 합니다.
    감염이 되면 열이 오르고 입맛이 없고 냄새도 못 맡는다고 합니다.
    오늘 하루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날이었는지 이전에는 정말 모르고 살았지요.
    어려운 고비를 겪으며 지극히 평범한 그 날이 최고의 선물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봅니다.

    SNS에 자주 올라오는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첫번째 이야기

    이것은 매일 코로나19의 증상입니다.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첫째날 ~3일째날
    1. 증상은 거의 감기와 동일
    2. 인후 약한 통증.
    3. 열없음, 피로도없음. 여전히 정상적으로 식사가능.

    ● 4일째날
    1. 인후 조금의통증, 온몸 아픔
    2. 쉰 목소리
    3. 체온은 평균 36.5 유지.
    4. 경증의두통
    5. 경증의 설사 혹은 소화계통 문제 .

    ● 5일째날
    1. 인후통증, 쉰목소리.
    2. 경도의 발열, 온도 36.5-36.7도
    3. 전신쇄약, 관절통증.

    ● 6일째날
    1. 경도발열, 37도
    2. 기침과 점액 혹은 마른기침 동반
    3. 식사, 말할 때, 혹은 침을 삼킬 시 인후통 동반
    4. 오심열, 피곤함.
    5. 때때로 호흡곤란
    6. 손가락 통증.
    7. 설사와 구토 동반

    * 오심열(五心熱) - 양쪽 손바닥, 발바닥, 가슴의 다섯 곳에 열이 나는 느낌이 드는 증상.
     
    ● 7일째
    1. 고열, 37.4-37.8
    2. 빈번한 기침 , 가래
    3. 신체통증와 두통
    4. 심한 설사
    5. 구토

    ● 8일째
    1. 발열, 38~ 38도 이상.
    2. 호흡곤란, 매번 호흡할 때 흉부묵직한 느낌.
    3 계속된 기침.
    4. 두통, 관절통과 둔부통증

    ● 9일째
    1. 증상은 변하지 않고, 더 악화가능.
    2. 발열 심해짐.
    3. 기침은 계속되며 전보다 더 심해질수 있음
    4. 호흡곤란, 반드시 자가호흡 하도록 노력이 필요함
    이럴 때는, 혈액검사와 폐부X레이 검사를 진행해야함.

    전파증상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운에 기대는 심리는 버려야 합니다.
    코로나 문제를 직시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문밖출입시 마스크 착용, 위생청결, 손씻기, 모임자제, 여행취소.

    * 직시(直視) -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정확히 봄.

    두번째 이야기

    살아온 댓가

    프랑스에 93살 할아버지가 코로나 19에 감염되어서 병원에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24시간 동안 산소공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뒤로 상황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때 의사선생님이 할아버지께 50만 프랑의 의료 계산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할아버지를 달래면서 계산서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달랬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저는 지불하게 될 금액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것이 아닙니다.
    저는 치료비를 전부 지불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고작 24시간 공급 받은 산소 금액이 50만 프랑이나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93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주신 산소를 마시면서 돈을 지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하나님한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아십니까 ?" 라고 말하자
    의사 선생님도 이 얘기를 듣고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도 감사의 하루입니다.

    주여,
    오늘도 건강하게 하루를 마감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도 오늘 저녁처럼 맞이하게 하옵소서.

    4월 1일(목)

    어제 저녁 주 거래 은행의 한우미과장이 카톡으로 연락을 했다.
    목사님, 나도 아파요.
    오늘은 나도 모르게 약해진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약하게 하여 무너트리는 것 같다.

    집에서 자가 진단과 치료를 해야하므로 많이 힘이 들겠지요.

    LA에 거주하는 박태옥 권사님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The following is from Irene Ken physician, whose daughter is an Asst. Prof in infectious diseases at Johns Hopkins University, quite informative.

    이글은 존스홉킨스 감염학과 조교수의 엄마이며 의사인 아이린 켄 이란 분이 올린 글입니다.

    *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but a protein molecule (DNA) covered by a protective layer of lipid (fat), which, when absorbed by the cells of the ocular, nasal or buccal mucosa, changes their genetic code. (mutation) and convert them into aggressor and multiplier cells.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고 지방껍질로 쌓여 있는 단백질 분자이고, 눈, 코, 입안 점막의 세포 등에 흡착되면 유전정보가 바뀌게(변형) 되고, 공격인자와 중폭세포로 전환됩니다.

    * Since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but a protein molecule, it is not killed, but decays on its own. The disintegration time depends on the temperature, humidity and type of material where it lies.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고 단백질분자기 때문에 죽는게 아니고 스스로 부패됩니다. 분해시간은 온도, 습도, 그리고 붙은 표면에 따라 다릅니다.

    * The virus is very fragile; the only thing that protects it is a thin outer layer of fat. That is why any soap or detergent is the best remedy, because the foam CUTS the FAT (that is why you have to rub so much: for 20 seconds or more, to make a lot of foam).

    바이러스는 외부 단백질막이 유일한 방어막이기 때문에 아주 약합니다. 바로 비누나 세탁제가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되는 이유인 것이, 비누거품이 지방을 분해하기때문입니다. (이것이 손을 20초이상 잘 씻어 충분한 거품을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By dissolving the fat layer, the protein molecule disperses and breaks down on its own.

    지방막을 녹이므로서 단백질분자를 녹이고 스스로 분해되게 합니다.

    * HEAT melts fat; this is why it is so good to use water above 77 degrees Fahrenheit for washing hands, clothes and everything. In addition, hot water makes more foam and that makes it even more useful.

    열은 지방을 녹입니다. 때문에 손 옷 등 무엇이던 씻을 때는 25C 이상 따듯한 물을 쓰도록 하고, 특히 거품이 잘 나면 더 이롭습니다.

    * Alcohol or any mixture with alcohol over 65% DISSOLVES ANY FAT, especially the external lipid layer of the virus.

    알콜이나 65프로 이상 알콜 혼합용액이 모든 지방을 녹입니다. 특히 바이러스의 외지질막을 잘 녹입니다.

    * Any mix with 1 part bleach and 5 parts water directly dissolves the protein, breaks it down from the inside.

    표백제 1 당 물 5을 희석한 용액이 단백질을 직접 녹이고 속에서부터 분해시킵니다.

    * Oxygenated water helps long after soap, alcohol and chlorine, because peroxide dissolves the virus protein, but you have to use it pure and it hurts your skin.

    바이러스 단백질은 비누 알콜 클로린 소독 후 산소화용액으로 지속적 효과가 있는데, 순수형태이야 하고 피부를 상하게 할 수 있슴

    * NO BACTERICIDE OR ANTIBIOTIC SERVES. The virus is not a living organism like bacteria; antibodies cannot kill what is not alive.

    항박테리아나 항생제는 소용이 없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같이 생물이 아님. 항생제로는 생물이 아닌 것을 죽일 수 없슴

    * NEVER shake used or unused clothing, sheets or cloth. While it is glued to a porous surface, it is very inert and disintegrates only
    -between 3 hours (fabric and porous),
    -4 hours (copper and wood)
    -24 hours (cardboard),
    - 42 hours (metal) and
    -72 hours (plastic).

    사용했거나 쓰지 않은 옷, 시트, 옷감을 절대 털지 마세요. 구멍있는 곳에 자리 잡으면 털어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야 분해 됨.
    - 옷감, 구멍 3시간
    - 구리, 목재 4시간
    - 카드보드박스 24시간
    - 금속 48시간
    - 플라스틱 72시간

    But if you shake it or use a feather duster, the virus molecules float in the air for up to 3 hours, and can lodge in your nose.

    그렇지 않고 털거나 먼지털이로 털면 바이러스분자가 최고 3시간동안 공기중에 떠다니다 코속으로 들어가 자리잡을 수 있슴

    * The virus molecules remain very stable in external cold, or artificial as air conditioners in houses and cars.

    바이러스분자는 바깥 추위나, 집 차안 에어컨에서 아주 안정적임.

    They also need moisture to stay stable, and especially darkness. Therefore, dehumidified, dry, warm and bright environments will degrade it faster.

    또 놈들은 안정화되려면, 특히 어두운 곳에서, 습기가 필요함  따라서 습기가 재거된, 건조하고 따듯하고 밝은 환경에서 더 빨리 분해됨

    * UV LIGHT on any object that may contain it breaks down the virus protein. For example, to disinfect and reuse a mask is perfect. Be careful, it also breaks down collagen (which is protein) in the skin.

    자외선이나 자외선이 포함된 모든것이 바이러스단백질을 분해함. 예를 들어 자외선으로 마스크를 소독해서 다시 쓸 수 있슴. 하지만 피부도 콜라겐 단백질로 되어있으니 조심해야 함

    * The virus CANNOT go through healthy skin.

    바이러스는 건강한 피부를 통과할 수 없슴

    * Vinegar is NOT useful because it does not break down the protective layer of fat.

    식초용액은 지방보호막을 분해하지 못하니 소용이 없슴

    * NO SPIRITS, NOR VODKA, serve. The strongest vodka is 40% alcohol, and you need 65%.

    술, 보드카도 소용 없슴. 아무리 쎈 보드카도 40프로 정도임. 65프로가 필요함

    * LISTERINE IF IT SERVES! It is 65% alcohol.

    구강 가글 리스테린은 65%알콜이라 효과가 있슴

    * The more confined the space, the more concentration of the virus there can be. The more open or naturally ventilated, the less.

    밀폐된 공간일수록 바이러스 농도가 높을 수 있슴. 열린공간이나 야외 일수록 농도가 낮음

    * You have to wash your hands before and after touching mucosa, food, locks, knobs, switches, remote control, cell phone, watches, computers, desks, TV, etc. And when using the bathroom.

    점막, 음식, 자물쇠, 문고리, 스위치, 리모콘, 핸폰, 시계, 컴퓨터, 책상, TV 등을 만진 전 후 꼭 손을 씻을것. 그리고, 화장실도...

    * You have to Moisturize dry hands from so much washing them, because the molecules can hide in the micro cracks. The thicker the moisturizer, the better.

    손을 자주 씻기때문에 꼭 보습제를 쓰는데, 안 그러면 피부 미세 걸라진곳에 바아러스가 숨을 수 있슴. 두텁게 보습제를 바를 수록 더 좋음

    * Also keep your NAILS SHORT so that the virus does not hide there.

    그리고, 손톱도 짧게해서 바이러스가 숨지 못하게 해야 함

    -JOHNS HOPKINS HOSPITAL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뉴욕으로 보내줍니다.
    뉴욕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하기 때문이지요.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성원하는 사람들 때문에라도 더욱 건강에 유의하여 살아남아야 합니다.

    오전 10시 아내와 다니엘이 우드사이드 치과 진료차 콜택시를 불러 떠났다.
    신용카드를 주며 사용 후 문제가 발생하면 전화하라고 하였으나 별일 없이 $1,800 계산서를 가져왔다.

    만일 내가 감염자가 되어 마지막을 기다려야 한다면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 순서를 결정해 보자.

    1. 은행 구좌 및 사인과 수표 사용 내용
     우리은행(Woori America Bank)
     구좌 번호 / 2343514
     예금주 / Victor S Lee(Hwa Son Lee)
     사인 / Victor S Lee
     인출카드 / 비밀번호 1016
     * 수표 2장 사인 하여 보관

    2. 우리교회(New York Woo Ree Presbyterian Church)
     구좌 번호 / 0207001173
     예금주 / Victor S Lee
     사인 / Victor S Lee, Samuel Lee
     인출 카드 / 비밀번호 1016
     * 수표 2장 사인 하여 보관

    3. 책을 정리할 것

    4. 옷을 정리할 것

    5. 유언을 작성하여 보관 할 것


    *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

    Covid 19백신을 위해, UH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의 친구로부터...

    빈의 COVID-19를 연구하고 있는 연구소의 정보에 의하면 사망한 사람의 대다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해열제 "이부프로펜" 계열의 "애드빌" 등을 복용했습니다.

    회복된 사람은 "이부프로펜" 계열의 약을 복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증상이 있는 경우 "아세트아미노펜"만 복용하세요!

    이 바이러스는 "이부프로펜"에서 번영시켜  버립니다.
    복용하지 말아주세요.

    이 정보를 각 가족 모두에게 전해주세요.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공유합시다.

    또는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세요.

    나는 밴쿠버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VGH(VGH, 밴쿠버에서 간호사이다)

    제 친구와 이야기했어요.
    그들은 "애드빌"이 폐에 바이러스를
    10배 악화시킬 것을 알았어요.

    또, 40대와 50대 이전의 건강하고
    환기장치를 사용하고 있던 사람이,
    "애드빌"을 복용했기 때문에
    호흡이 곤란해진 사람들을 발견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타이레놀"은 당분간 복용하기에
    적합합니다.

    VGH의 4명의 의사가 현재 감염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의사들은 이러한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온라인으로 몇 가지 기사가 있어요.
    네그린 박사의 병원에서

    중국인은 현재 부검 결과
    Covid-19 바이러스의 거동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기도와 폐를 고화시켜 차단하는 점액으로,
    점액으로 호흡 경로를 방해하는 것을
    특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약을 적용할 수 있게 하려면
    이러한 기도를 열고
    차단을 해제해야 하므로
    미래에 치료에 사용할 수 있어 유효해질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는 아직 시간이 걸립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권장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많은 뜨거운 액체를 마시다
    커피, 수프, 차, 온수

    입을 축이고, 위액으로 입에 들어가는 바이러스를 씻어내기 위해 20분마다 온수를 한 모금 드세요.
    바이러스는 폐에 도달하기 전에 중화됩니다.

    2. 온수로 방지제가 되는 것을 사용해 양치질을 합니다.
    매일입니다.
    식초, 소금, 레몬 등을 사용합시다.

    가글약은 때로는 목 좋은 균도 죽여버리는 일이 있으니까,
    자주 가글을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바이러스는 폐에 들어가기 전에 목구멍 속에 3~4일간 머무를 겁니다.
    가글은 바이러스 공격에 적합합니다.

    3. 바이러스는 머리카락이나 옷에 부착합니다.
    세제나 비누는 그것을 죽입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목욕이나 샤워를 해야 합니다.
    어디에도 앉지 않도록 만지지 않도록 해 욕실이나 샤워실로 바로 갑니다.

    매일 세탁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바이러스를 중화하다
    직사광선에 쬐세요.

    4. 바이러스는 9일간 계속 감염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금속면을 주의 깊게 살균해 주십시오.

    내 집 안의 난간이나 문 핸들 등에 만지는 것에도 주의하세요.
    그것들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정기적으로 닦아내세요.

    5. 흡연하지 말아주세요.

    6. 거품이 이는 비누를 사용하여 20분마다  20초간 손을 자주 씻습니다.
    (Happy Birthday의 곡 2회 정도의 시간)

    7. 과일과 야채를 먹다.
    비타민C 레벨 뿐만 아니라 아연 수준을 취하고, 자신의 면역력을 높이도록 하세요.

    동물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아요.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감염됩니다.

    9. 또 일반적인 인플루엔자에 걸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차가운 것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10. 목의 통증 등 목에 불쾌감을 느꼈을 때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바로 바이러스를 공격하세요.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4월 1일(목요일)

    하루를 마감합니다.
    무척 지루하고 답답한 하루이었지요.

    왜냐구요?
    사회적 거리가 앞으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할 거리로 자리를 잡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번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기회와 여건이 맞으면 또다시 새로운 형태로 인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가장 작은 그리고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것이 세상을 뒤죽박죽 흔들어 놓습니다.

    주일 예배의 형식도 이제는 새롭게 바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아니라 말씀의 내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될 것입니다.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는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 얼마든지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죽음이란 검은 그림자가 항상 기다리고 있기에 때로는 두렵기도하고 망설이게 합니다.
    쉽게 결정할 수 없도록 검은 그림자는 늘 따라 다닐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지냈습니다.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일시적으로 시작한 것들이 한정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처럼 계속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의 속도에 미처 따라갈 수 없어 당황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살아남아야 합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서 도 살아남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 밤에 모든 것을 맡기오니 지켜주시옵소서.

    4월 2일 목요일

    오늘도 건강하게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사랑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흔적까지도
    온 몸과 마음에서 사라지게 하옵소서.
    사회적 거리가 아니라
    사랑의 거리를 되찾는 세상으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치료의 이름 주 예수님으로 아멘.

    4월 3일(금)

    밤새 안녕이란 인사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아침입니다.
    정말 밤새 안녕하셨는지요?
    약간의 비가 멈추고 거리는 한산합니다.
    마음은 허전하고 집안에 사람들은 가득한듯 해도
    제 각기 자기 일에만 관심을 쏟는 텅빈 이상한 공간같지요.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지켜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유머 퀴즈


    1. 라면과 참기름이 싸웠습니다.
    얼마 후 라면과 참기름이 경찰서에 모두 함께 잡혀갔습니다. 
    왜 잡혔을까요?

    2. 이윽고 참기름도 끌려갔습니다.

    왜 끌려갔을까요?


    3. 구경하던 ‘김밥’도 잡혀갔습니다. 
    왜?


    4. 소식을 들은 ‘아이스크림’이 경찰서로 면회를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왜?


    5. 이 소식을 듣고 ‘스프’가 졸도했습니다. 
    왜?

    6. 덩달아 ‘달걀’도 잡혀갔습니다. 
    왜?

    7. 재수 없게 ‘꽈배기’도 걸려들었습니다.  
    왜?


    8. 아무 상관도 없는 ‘식초’도 일을 다 망쳐버렸습니다. 
    왜?


    9.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소금’ 때문이랍니다. 
    왜?


    10. 그리고 나서 결국 ‘고구마’가 모두 다 해결했답니다. 
    어떻게?


    집안에만 갇혀 있는 날
    유머 퀴즈 풀며 무료함을 다스려 보세요!

    1. 참기름 - 고소해서
    2. 라면 - 다 불어서
    3. 김밥 - 말려 들어서
    4. 아이스크림 - 차가 와서
    5. 스프 - 국물이 쫄아서
    6. 달걀 - 후라이 쳐서
    7. 꽈배기 - 일이 꼬여서
    8. 식초 - 초 쳐서
    9. 소금 - 다 짠거
    10. 고구마 - 구워 삶아서



    당신이였나요
    바람결에 고운미소 보낸사람이

    당신이었나요
    바람결에 꽃향기 날린사람이

    당신이었나요
    바람결에 안부전한사람이

    아! 당신이었군요
    바람결에 걱정해준사람이

    역시 당신이었군요
    바람결에 힘내라고했던사람이 .

    늘 소중한 당신이 있어
    내 삶이 향기롭고 행복합니다

    오늘 하루도 기쁨과 사랑으로
    쉼하는 행복한  하루 되세요 !

    항상 기뻐하며  웃으며 하루를 시작해요


    봄의 소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맑게 들리지 않는군요!
    그래도 4월을 맞이합니다.

    독서(讀書)는
    앉아서 하는 여행(旅行)

    여행(旅行)은
    서서하는 독서(讀書)

    성경(聖經)은
    천국 여행(天國 旅行)의 교과서

    4월에도 오늘의 묵상을 함께 읽어가며
    내 삶의 자리에서
    천국(天國)을 경험(經驗)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祝福)합니다.

    뉴욕 파트리스교회 이승혁목사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염이 될까? 두려워합니다.
    저희들도 두려워 할 수밖에 없지만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사오니
    두려움을 물리치고 담대하게
    주님이름 주장하게 하셔서
    몸 안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들아왔을지라도
    주 이름 때문에 소멸되게 하옵소서.
    주의 사람들이 세상의 전염병균에 무너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게 하옵소서.
    이 시간 주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건강케 하시고 평안케 하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로 믿음이 이긴다는 진리가
    선포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월 3일 하루를 마감합니다.
    하루종일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증상이 느껴져 많이 어려웠습니다.
    아직도 등에서 땀이 흐르고
    특히 뜨거운 물을 마시면 온 몸에 열이 느껴집니다.
    여전히 가슴이 답답합니다.
    숨을 쉬는 것이 답답하지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요
    감염될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장을 보긴 했는데........
    거리도 걸어서 대략 4분 정도
    마트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가장 필요한 것 몇가지만 선택하여 얼른 나왔거든요.
    거리에서 만난 사람도 없었습니다.
    타이레놀과 비타민 C를 복용합니다.
    평소에 복용하는 약은 혈압약뿐입니다.
    오늘도 조용히 하루를 마감합니다.


    4월 4일(토)

    주님,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 안에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빛을 보며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새롭게 다짐합니다.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
    온 인류의 미래를
    기쁨으로 바라보며,
    단지 지금만이 아닌
    영원을 사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진리로 우리를 가르치소서.
    가슴에 빛을 지닌 사람이 되어
    온갖 시험과 유혹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성령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온 세상 사람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날마다 깨닫게 하소서.

    오늘도 몸과 마음으로 새롭게 하심을
    감사와 찬양으로 보답하게 하소서.
    아멘.


    마스크(Mask)의 어원인 라틴어 마스카(Masca)

    "마스크(Mask)"의 어원인 라틴어 "마스카(Masca)"는 본래 공연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을 말한다.
    이탈리아어의 "마스케라타(mascherata·가면무도회)", 스페인어의 "마스카라르(mascarar·얼굴을 칠하다)", 속눈썹을 돋보이게 하는 화장인 마스카라도 여기서 파생했다. 요즘은 마스크라고 하면 먼저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의료용 마스크를 떠올리지만 본래는 얼굴을 가리고 화려하게 돋보이기 위해 썼던 셈이다.

    ▷천 마스크가 대부분이던 2003년 봄, 국내 한 대형마트에서 영국에서 처음으로 직수입한 일회용 황사 전용 마스크 4000개가 하루 만에 품절돼 화제가 됐다. 0.3μm(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입자를 95%까지 걸러낼 수 있다는 제품인데, 황사와 함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병 우려가 커지자 동이 난 것이다. 마트 측은 1만 5000장을 추가 주문했지만 언제 올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전 세계에서 동시에 1500만 장이나 주문이 폭주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사와 감염병이 고기능 마스크 시대를 연 것이다.

    ▷그냥 마스크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요즘 마스크는 고수준이다. 0.4μm 크기 입자를 94% 이상 차단하는 KF94 마스크가 평범할 정도다. 그것도 못 미더워서 0.02∼0.2μm 입자를 95% 이상 차단하는 미국 N95 호흡기를 쓰기도 한다.


    ▷코로나19 사망자만 1만 3000명이 넘는 이탈리아에서는 슈퍼카를 만드는 람보르기니가 마스크와 보호 장구 등을 생산해 기부한다고 한다. 마스크는 인테리어 부서에서 만드는데 역대 람보르기니 모델 중 가장 많이 팔린 가야르도의 대표 색인 오렌지색으로 만들었다. 명품 브랜드들도 마스크 제작에 나섰다. 구찌는 공장 설비를 개조해 마스크 110만 개, 보호복 5만5000벌을, 프라다는 마스크 11만 개와 의료작업복 8만 개를 만들어 기부할 예정이다. 아르마니는 일회용 의료용 작업복을 만든다. 프랑스에서도 샤넬과 디올이 마스크 제조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한정판과 마찬가지니 소장용으로 구입하고 싶다는 철없는 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적 거리를 강조하여
    심지어 가족들끼리도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때에 "자가 격리"도
    필요하지만
    "자가 격려" 또한 필요합니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당당하게 회복하거나
    자신있게 자신을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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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3-20(목)
    기본을 충실하게!


    70, 8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한국교회가 급 성장할 때 천주교회에서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천주교회는 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에 전국의 주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와 같은 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긴급 토론회의가 열렸습니다.
    물론 긴급회의를 주도한 사람은 당시 김수한 추기경이었습니다.
    이때 천주교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결정을 합니다.
    천주교회의 부흥을 위하여 "기본을 튼튼하게 세우자!"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은 든든하게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하고 기본을 철저하게 다짐으로 지금은 천주교회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개신교회가 다음 세대를 걱정할 때에도 천주교회에서는 기본이 잘 다져져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이 세상을 펜더믹(pandemic)이라는 용어 하나로 묶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겪을 때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점검하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는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다섯 개의 슬로건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기초로 정할 때 성경 전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신앙고백 즉 사도신조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주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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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4-20(목)
    신앙고백에 근거한 신앙


    신앙고백에는 다섯 가지 신앙의 기둥(核心)이 있습니다.

    첫째, 창조 신앙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둘째, 임마누엘 신앙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셋째, 십자가 신앙

    마태복음 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넷째, 부활 신앙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다섯째, 재림 신앙

    요한계시록 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마라나타 신앙)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재림).
    주님 오시기 전에 세상을 떠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명한 신앙이 있습니다.
    그것을 천국 소망 신앙이라고 합니다.

    재림 신앙을 다른 말로 "천국 소망의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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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9-04-20(금)
    천국 소망을 바라보며


    구약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창세기 마지막 50장 26절에서는 "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요셉의 죽음과 입관으로 마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4장 6절에서는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저주로 그 땅을 칠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창조로 시작하여 죽음을 이야기 한 후에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하며 땅을 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사망과 심판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약 마태복음 1장 1-2절에서는 "아브라함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삭을 낳고 이삭야곱을 낳고 야곱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소개하며 낳고를 강조합니다.
    낳고란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마지막 장 28장 20절에서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22장 21절에서는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생명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기원합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저주만 남았다면
    신약의 은혜에서는 생명이 기다립니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3-5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우한 폐렴이 지독하게 쫓아다녀도 천국 소망의 신앙으로 무장하여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 부르시면 주님 품에 안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온전히 회복하여 이 땅에서나 저 하늘 나라에서 믿음의 행복자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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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바람 불며 전 세계 코로나 폭증…하루 50만 육박, 사상 최고치


    인구가 밀집한 북반구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전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월드오미터 통계에 따르면 이날 전세계 코로나 일일 확진자는 47만 7,751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0월 이전 전세계 확진자는 30만명 대에 불과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사이 50% 이상 늘어난 것이다.  
     
    앞서 감염병 전문가들은 북반구가 동절기에 들어서면 2차 대유행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바이러스가 좋아하는 '저온건조'한 환경이 조성되면 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과 유럽에선 10월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미국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는 다시 7만명을 돌파,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이날 유럽 지역의 일일 확진자 수도 21만명을 넘었다.
    프랑스는 사상 최고치인 4만명을 넘겼고 영국 2만 1000, 스페인 2만을 넘어섰다.
    러시아에서도 하루 1만 5000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다.  
     
    이같은 환자 동시 급증에 유럽에선 병상과 의료진 부족 사태도 빚어지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특히 동유럽의 상황이 심상찮다.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는 전날 부분 봉쇄를 선포하며 다음 달이면 의료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놨다.
    의대생을 현장에 투입하고 해외에 거주하는 의사들에게 귀국을 요청했지만, 중환자 수가 느는 속도가 심상치 않아서다.
    페트르 슬라덱 모라비안 병원장은 "중환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암울한 상황"이라며 "마치 전쟁터에 파견된 것 같다"고 말했다.
     
    폴란드는 경기장과 컨퍼런스 시설에 임시 병원을 세우고 있고, 벨기에 정부는 직업을 잃은 식당 종업원과 난민 등을 의료 인력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의 손을 잡고 있다.[AP=연합뉴스]

     
    사정이 좀 나은 독일도 중환자 병상의 70%가 이미 채워진 상태라 코로나19 환자가 더 늘어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럽의 코로나19 2차 확산에 그동안 공개 행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교황도 지난 주말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미사를 집전했다. 이탈리아에선 이날 신규확진자가 1만명 이상 발생했다. 


    * 자료출처 /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902183?cloc=joongang-home-newslistle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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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크에 대한 주의사항 세가지
    - 홍혜걸 의사선생님께서 마스크 착용과 관리에 대하여 올린 글을 공유합니다.

    첫째 :  "비싼 마스크를 착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값이 싸고 숨쉬기가 편한 'KF 80' 이면 충분합니다."

    몇번이고 강조를 하지만 바이러스 입자를 거르는 것 보다 침방울을 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KF 80'은 2.5 마이크로미터 이하 초미세먼지의 80%를 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기는 침방울은 대부분 5 마이크로미터 이상의 크기입니다.
    침방울은 대부분 걸러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일부는 "마스크 틈으로 바이러스 입자가 새어나갈 수 있지 않느냐?" 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전달되는 바이러스는 아주 미미합니다.
    몇번이고 강조를 하지만 바이러스의 총량을 줄이면 감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침방울만 막아도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 "한번 착용을 하고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께서는 마스크의 유효기간이 8시간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경우에 따라서 다릅니다.
    8시간은 먼지가 자욱한 작업장을 기준으로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구입하는 마스크는 미세먼지용입니다.
    침방울을 타겟으로 제작이 된 것이 아닙니다.
    미세먼지용 마스크는 구기거나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정전기를 이용한 필터링이 약화가 되어 효과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침방울을 거르는 기능은 거뜬히 유지가 됩니다.
    저는(홍혜걸 ) 모양의 훼손만 없다면 잘 말려가며 일주일 이상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마스크를 구하기 힘들 때에는 마스크를 굳이 매일매일 새것으로 갈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셋째 : "마스크는 실외보다 실내에서 엄격하게 착용을 해야 합니다."

    야외에서 바깥의 공기를 통하여 전염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사무실(학교), 엘리베이터, 자동차, 대중교통 등등 갇힌 공간과 밀집 된 공간에서는 착용을 꼭 해야 합니다.

    특히 대화를 나누실 때에 자신의 말을 잘 전달하기 위하여 마스크를 벗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는 폐보다 상기도 점막에서 증식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서 기침 뿐만이 아니고 말을 하면서 침방울이 튀어나가는 경우도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답답하지만 말씀을 하실 때에는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P.S /   중요한 정보이니 많은 공유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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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께서 고기가 잘 안잡히면
    바다를 보면서 바람이 한번 불어야 할텐데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태풍이 불어와 바닷속 까지 뒤집히면
    산소가 풍부해지고 먹이가 많아집니다

    그러면 고기들은 활동을 많이 하게 되고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게 되지요

    우리의 삶에도 태풍이 불어 올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하늘이 높고 맑듯이
    우리의 마음도 깊어지고
    생각이 맑아져서 한층 성숙해 집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에게 고통이 없다면 무엇으로 만족을 얻겠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하나의 고통이 열 가지 감사를 알게하고
    하나의 감사가 열가지 고통을 이기게 합니다.

    우리님들에게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지금 어려움 속에 있거나
    앞으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것을 통해 얻게 될 새로운 성숙과 감사를 떠올리십시오.

    삶은 아픔보다 아름답고 위대 합니다.

    - 삶은 아픔보다 위대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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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행복해지는 10가지 방법

    1.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
    동전엔 양면이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2.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생활에 활력이 된다.

    3. 반갑게 마음에 담긴 인사를 한다.
    내 마음이 따뜻해지고 성공의 바탕이 된다.

    4. 하루 세끼 맛있게 천천히 먹는다.
    건강의 기본이요 즐거움의 샘이다.

    5.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핏대를 올릴 일이 없어진다.

    6. 누구라도 칭찬한다.

    칭찬하는 만큼 내게 자신이 생기고 결국 그 칭찬은 내게 돌아온다.

    7. 약속 시간엔 먼저 가서 여유있게 기다린다.
    오금이 달지 않아 좋고 신용이 쌓인다.

    8. 일부러라도 웃는 표정을 짓는다.
    웃는 표정만으로도 기분이 밝아진다.

     9. 원칙대로 정직하게 산다.
    거짓말을 하면 죄책감 때문에 불안해지기 쉽다.

    10. 때로는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한다.
    당장 내속이 편하고 언젠가는 큰 것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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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大韓民國 最强者들 ♦️

    * 궤변 선동은 촉새  유시민(柳時敏)이  최강이고,
    * 꼴 사납기는 심상정(沈相奵)이 최강이고,
    * 주제파악 못하기는 손학규(孫鶴圭)가 최강이고
    * 촌철살인의 최강은 진중권(陳重權)이고,
    * 정의로움은 윤석열(尹錫悅)이 최강이고
    * 후안무치에 위선은 조국(曺國) 부부가 최강이고,
    * 大韓民國 망치기는 문대가리(文罪人)가 최강이고,
    * 추악스러움은 추미애(秋美愛)가 최강이고,
    * 천박함은 김정숙(金正淑)이 최강이고,
    * 자기애적自己愛的(Narcissism)은 공지영(孔枝泳)이 최강이고,
    * 추악함은 손혜원(孫惠園)이 최강이고,
    * 교활함은 박지원(朴智元)이 최강이고,
    * 엉터리 강의는 김제동(金濟東), 김미화(金美花)  두 년놈들이 최강이고,
    * 음흉(陰凶)한 건 이낙연(李洛淵)이 최강이고,
    * 눈치 없기는 정세균(丁世均)이 최강이고
    * 얍삽 하기로는 주사파 主思派 임종석(任鍾晳)이 최강이고,
    * 자칭 동양 철학자라는 엉터리 붉은색 돌의 최강은 김용옥이고,
    * 헛소리로는 박능후(朴淩厚)가 최강이고
    * 애들 얼굴에 붙은 밥풀도 떼먹을 돈에 환장한 추한 인간 최강은 윤미향이다.

    이들을 통틀어,
    신천지(新天地)가 아닌 문천지(文天地)’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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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코비가 말하는 인생을 바꾸는 90:10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는 미국인으로서 코비 리더쉽센터의 창립자입니다. 
    타임지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된 사람입니다.
     
    '90대 10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90대 10의 원칙을 발견해 보세요.
    이것은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당신이 상황에 반응하는 방법을 바꿀 것입니다.
     
    이 원칙은 무엇일까요?
     
    당신 인생의 10%는 당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로 결정됩니다. 
    나머지 인생의 90%는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10%를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가 고장 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모든 일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비행기 연착도, 어떤 운전자가 내 차 앞에 끼어드는 것도, 우리는 이 10%를 전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90%는 다릅니다.
    당신이 그 남은 90%를 결정합니다.
    어떻게?
    바로 당신의 반응으로!  
     
    당신은 빨간 신호등을 조작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반응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속이게 두지 마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반응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예를 하나 보겠습니다. 
    당신은 가족과 아침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딸이 커피잔을 엎어서 당신의 정장 위에 커피를 쏟아버립니다.  
    당신은 방금 일어난 일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 다음에 일어날 일이 결정됩니다.  
     
    당신은 욕을 합니다.
    딸이 커피잔을 엎었다고 혼을 냅니다.
    딸이 웁니다.
    딸을 혼낸 뒤, 당신은 당신 아내에게 컵을 테이블 끝에 두었다고 비난합니다.
    작은 말싸움이 뒤따르겠지요.
    발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 입습니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당신의 딸은 우느라고 아침도 못 끝내고 학교 갈 준비를 제대로 못 마쳤습니다.
    통학버스를 놓칩니다.  
    아내는 지금 당장 출근을 해야 합니다.
    당신은 서둘러 차로 가서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줍니다.
    당신은 늦었기 때문에 시속 30마일 구간을 시속 40마일로 달립니다.
    15분이나 시간을 지체하고, 60불 속도 위반 벌금까지 물어가면 학교에 도착합니다.
    딸은 당신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학교로 뛰어 들어갑니다.
    회사에 20분이나 지각해서 도착하고 나서야 집에 서류가방을 놓고 온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엉망진창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진행될수록 더욱 상황은 악화되는 것만 같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싶을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면, 당신과 당신의 아내 그리고 딸사이가 조금 불편합니다.
    왜? 당신이 오늘 아침에 보여준 반응 때문입니다.

    당신은 왜 나쁜 하루를 보냈을까요?

    1.  커피가 원인입니까?
    2. 당신 딸이 원인입니까?
    3. 경찰관이 원인입니까?
    4. 당신이 원인입니까?  

    정답은 4번 입니다.  
     
    당신은 아침에 쏟아진 커피에 대해 아무런 통제를 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보인 5초간의 반응이 당신의 나쁜 하루를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보였어야 하는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커피가 당신 정장에 쏟아집니다.
    딸은 울음을 터트릴 듯 보입니다.
    당신은 다정하게 “괜찮아, 다음부터 더 조심하면 돼.”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타올을 집어 들고 2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습니다. 서류가방을 집어 들고 내려옵니다.
    창 밖을 보니, 딸은 통학버스에 오르고 있습니다.
    딸이 뒤돌아 보더니 손을 흔듭니다.
    당신은 5분 일찍 회사에 도착하여 동료들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차이를 느끼십니까?
    두 가지 다른 시나리오입니다.
     
    둘의 시작은 같았습니다.
    둘의 끝은 다릅니다.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인생의 10%인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나머지 90%는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90대 10 원칙의 몇 가지 응용 방법입니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부정적인 것을 말한다면, 그것을 묵살 해버리세요.
     
    물이 유리창에서 굴러 떨어지듯이 공격을 하지 마십시요.
    부정적인 의견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둘 필요가 없습니다.  
     
    제대로 반응하면 그것은 당신의 하루를 망치지 못합니다.
    잘못된 반응은 당신이 친구를 잃게 할 수도 해고를 당하게 할 수도, 스트레스를 받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운전 중에 누군가 끼어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화를 내십니까?
    운전대에 화풀이를 하십니까?
    욕을 합니까?
    혈압이 폭발하게 합니까?
    당신이 10초 회사에 늦는다고 누가 상관합니까?
    왜 다른 차들이 당신의 주행길을 망치게 합니까?
     
    90대 10의 원칙을 기억하고 걱정을 하지 마세요.
    당신이 해고를 당했다고 왜 잠을 설치며 괴로워합니까?
    잘 풀릴 것입니다.  
    걱정하는데 쏟는 에너지와 시간을 새로운 직장을 찾는데 쏟으십시오.  
    비행기가 연착되어 당신의 하루 스케줄이 엉키게 됐다고 해서 왜 비행기 승무원에게 당신은 신경질을 부립니까?  
    그녀는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신경질 부릴 시간에 공부를 하거나 다른 승객과 대화를 나누세요.  
     
    왜 스트레스를 받습니까?
    그건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제 90대 10의 원칙을 배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삶에 적용을 해보세요.
    아마 결과에 놀랄 것입니다.
    시도해 본다고 잃을 것이 없습니다.
     
    90대 10의 원칙은 굉장합니다.
    이것을 알고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 결과는?
    해보시면 아실 것 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받지 않아도 되는 스트레스와 시험과 문제와 골칫거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90대 10의 원칙을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다 읽으셨다면 반이상 성공입니다.
    90대10의 원칙을 실천하면 당신의 인생을 바꾸어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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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생 마중  불부직( 蓬生痲中 不扶直)

    쑥 봉(蓬), 날 생(生), 삼 마(麻),  가운데 중(中),  아니 불(不),  도울 부(扶), 곧을 직(直)

    굽어지기 쉬운 쑥대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이다.

     좋은 벗들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친구들과 교분 관계룰 맺으면서 생활하다  보면 거기에 동화 되어서  올 곧게 자라기 때문이다.

    *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한다.

    *  좋은 만남이 좋은 인연 을 낳고, 좋은 인연이 좋은 인생을 낳는다.

    *  올곧고 덕있는 당신이 나의 삼밭같은 인연입니다.

    -  한번 맺은 인연은 영원 하라.        


    굽어지기 쉬운 쑥대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저절로 곧아진다는 뜻.

    삼은 키가 크고 곧게자라는 식물인데,

    꾸불꾸불 자라는 쑥도삼밭 속에서 자라게 되면

    삼의 영향을 받아 곧게 자라게 됩니다.

    좋은 벗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훌륭한 친구와 교분 관계를 맺으면서 생활하다 보면 거기에 동화되어

    올곧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옆으로 퍼져 자라는 쑥도 삼밭에서 자라면 부축해 주지 않아도 똑바로 자라고

    흰 모래가 검은 흙과 섞이면 검은 모래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사람의 일생을 좌우합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인연을 낳고, 좋은 인연이 좋은 결과를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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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거나 말거나 유머

     각국의 국민성

    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프랑스 부인 ㅡ남편의 정부를 죽인다 .
    이태리 부인  ㅡ남편을 죽인다
    스페인 부인  ㅡ둘 다 죽인다.
    독일 부인  ㅡ혼자서 자살한다
    한국 부인  ㅡ유모차 끌고 광화문에 간다.
    영국 부인 ㅡ모른 척 한다.
    미국 부인 ㅡ변호사를 찾아간다.
    일본 부인 ㅡ정부를 만나 사정을 한다.
    중국 부인 ㅡ같이 바람을 핀다

     쇠고기 식성

    일본인 ㅡ소 한 마리를 19등분하여 절반 밖에 먹지 않는다.
    프랑스인 ㅡ소 한 마리를 25등분해서 60%밖에 먹지 않는다.
    한국인 ㅡ이빨과 털만 빼고 모두 다 먹는다.

     해외여행 도중 분쟁이 생기면

    중국인 ㅡ주변에 있는 동포들을 불러와 떼로 덤빈다.
    일본인 ㅡ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미국인 ㅡ대사관에 쪼르르 달려가 일러 바친다.
    한국인 ㅡ어떻게든 자기 혼자서 해결한다. 대사관에 찾아 가봐야 도움이 안되니까.


     술 버릇

    프랑스인 ㅡ포도주를 마시고 춤을 춘다.
    독일인 ㅡ맥주를 마시면서 노래를 부른다.
    영국인 ㅡ술보다 안주를 더 많이 먹는다.
    이태리인 ㅡ술좌석에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러시아인 ㅡ더 마시자고 떼를 쓴다.
    미국인 ㅡ시키지도 않은 즉흥연설을 하려든다.
    한국인 ㅡ서로 돈을 내겠다고 싸우다가 2차 간다.

     국민적 식성

    일본인 ㅡ바다 속에 있는 것중  잠수함만 빼고 다 먹는다.
    중국인 ㅡ날아다니는 것중 비행기만 빼고 다 먹고 ,다리 달린 것중 의자만 빼고 다 먹는다.
    한국인 ㅡ보신주의 자 답게 정력에 좋다면 뭐든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떠난 자리

    중국인 ㅡ거쳐간 자리에 음식이 남고,
    영국인 ㅡ거쳐간 자리에 2층 버스가 남고,
    미국인 ㅡ거쳐간 자리에 프로야구가 남고,
    프랑스인 ㅡ거쳐간 자리에 사생아가 남고,
    일본인 ㅡ거쳐간 자리에 상표가 남고,
    한국인 ㅡ 거쳐간 자리에 화투장이 남는다.

     주먹이 운다

    미국  ㅡ때리고 싶은 놈만 때린다.
    영국  ㅡ미국이 때린 놈을 찾아 또 때린다.
    이스라엘 ㅡ때리려고 하는 놈을 먼저 때린다.
    일본 ㅡ맞으면 미국에게 일러바친다.
    중국 ㅡ맞으면 돌아서서 욕을 한다.
    북한 ㅡ누구한테  맞아도 한국을 때린다.
    한국 ㅡ북한에게 맞아도 안 맞았다고 한다.

     언어의 적합성

    중국어 ㅡ음악적이어서 사랑을 속삭이는데 좋다.
    일본어 ㅡ자신을 낮추는 언어이므로 장사하는데 적당하다.
    한국어 ㅡ억양이 높고 직설적 이어서 싸움하는데에 그만이다.

     떼거리

    일본인 ㅡ한 사람이 말을 하고  아홉 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한다.
    중국인 ㅡ 5~6명이 떠들고 나머지는 얘기를 들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한국인 ㅡ 열 명 중 8~9명이 큰소리로 떠들어 댄다.

     인물

    일본인 ㅡ세계적인 플레이 보이가 없고,
    독일인 ㅡ세계적인 코미디언이 없고,
    미국인 ㅡ세계적인 철학자가 없고,
    영국인 ㅡ세계적인 요리사가 없고,
    한국인 ㅡ세계적인 지도자가 없다.

     어느 호텔의 룸 경고문

    영국인 ㅡ잘난 척 하지 마시요.
    이태리인 ㅡ제발 도둑질은 자국에서만 하시요.
    러시아인 ㅡ술 좀 작작 마시세요.
    중국인 ㅡ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아무데서나 사진 찍지 마시요.
    미국인 ㅡ밤에 여자를 객실로 끌어들이지 마시요.
    한국인 ㅡ밤새도록 화투치는 것은 좋은데 "고"소리 좀 살살 지르시오.

     정치인 이란

    중국 ㅡ진정 국가를 위한 지도자.
    일본 ㅡ나에게 이득이 될 때는 섬겨도 되는 사람.
    한국 ㅡ자기들 끼리 몰려다니며 짖어대는 존재.

     셋이 모이면

    미국인 ㅡ기다리며 서는 줄이 생기고,
    이스라엘인 ㅡ3개의 정당이 생기고,
    일본인 ㅡ3개의 상사( 商社)가 생기고,
    한국인 ㅡ고스톱 방석을 편다.

     남녀가 이별할 때

    미국인ㅡ서로 행복을 빌어 주고,
    일본인 ㅡ가끔씩 만나 안부를 묻고,
    한국인 ㅡ다시는 못 볼 원수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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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만도 못한 자식!

    얼마 전 미국의 한 노인이 자기가 기르던 강아지에게 우리돈으로 1,560억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돌보라고 부탁한 사육사에게는 1년에 5만불 씩, 5천만원의 연봉을 주겠다고 유언했습니다.
    개가 죽고 난후에는 개의 유산 1,560억원 중 남은 돈을 동물보호소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외동 아들에게는 100 만불 만을 유산으로 주라고 유언하고 서거했습니다.
    100만 불은 우리 돈으로 10억입니다.

    그러자 아들은 너무나 분(忿)을 못 참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내가 개보다 못합니까?
    개에게는 1,560억을주고 나에게는 10억을 주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판사님, 억울합니다. 바로잡아 주세요.’ 라며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 젊은이에게 판사가 묻습니다.
    “젊은이, 1년에 몇 번이나 아버지를 찾아뵈었는가?”
    “…….”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즐겨 드신 음식 아는가?”
    “…….”
    “전화는 얼마 만에 한 번씩 했는가?”
    대답을 못합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님 생신은 언제인가?”
    “…….”
    아버지 생신날자도 모르는 아들은 할말이 없습니다.

    그때 판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찍어 놓은 비디오를 틉니다.
    “내 재산 1,560억을 내 사랑하는 개에게 물려주고 사육사에게는
    매년 5천만 원씩을 주고, 내 아들에겐 100만불 만을 유산으로 물려줍니다.
    혹 아들이 이에 대해 불평을 하거든 아들에게는 1불만을 물려주세요.”
    그리고 판사가 “자네에게는 1불을 상속하네.” 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얼마나 부모의 가슴에 한이 맺히게 하고 부모를 섭섭하게 했으면
    부모가 재산을 개에게 다 물려주고
    “아들이 원망하면 1불만 주라.” 라고 했겠습니까?
    우리가 대접받는 자녀가 되는 길은 부모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몆번이나 읽었는데 읽을때 마다 자신을 책망하게 되는 글이라서 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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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지켜주는 기도
    영상 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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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여수(心如水)


    같은 물이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같은 종이도 생선을 싸면 비린내가 나고
    국화를 싸면 향내가 나듯

    독과 비린내는 버리고
    우유와 향기가 나는 행복한 삶이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좋은 친구 한 사람 만나는 것이 
    일생에 다시 없는 자비이며 행운입니다.

    좋은 친구는 지위가 높은 친구가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이며 말이 통하는 친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친구는 서로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통하고
    함께 있으면 더욱 빛이 나고 서로에게 행복을 만들어 줍니다.

    오랜 친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친구 앞에서는 바보가 되어도 흉이 되지 않고
    다소 부족하고 미천해도
    모두 덮어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여수(心如水)입니다.

    * 마음 심(心), 같을 여(如), 물 수(水)
    - 마음이 물과 같다!

    https://m.cafe.daum.net/paradise460502/TLFR/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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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등 뒤에서

    한 아이가 자기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친구의 생일잔치에 초청을 받았다.
    집을 나서려는 데 심한 눈보라가 몰아쳐 모든 길이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날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을 내린 아버지는 아이가 나가는 것을 말렸다.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에게 졸라댔다.
    “아빠, 다른 아이들은 다 올거예. 다다른 아빠들은 자기 아이들을 다 보내잖아요”
    하도 아들이 졸라대니 아버지가 허락했다
    “그럼 좋다. 너도 가거라”

    아이는 너무 좋아서 옷을 잔뜩 끼어 입고 눈보라 속으로 뛰어들었다.
    몰아치는 눈 때문에 한 발자국 앞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는 드디어 친구 집에 도착했고 그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눈보라 속에서 아이를 쳐다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들이 안전하게 도착할 때까지 눈보라를 헤치며 자기 아들의 뒤를 따라왔던 아버지가 있었다.

    * 지금도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며 도우시는 손길이 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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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OSH 주립의대 교수 구루프라사드 레디 박사의 말씀

    "이 기별을 열명에게 전하면 최소 한명의 생명은 구한다.
    나는 내 소임을 다 했으니 이젠 그대의 소임으로 도움 베풀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뜨거운 레몬물을 마시면 암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설탕은 넣지 마세요.
    뜨거운 레몬물은 찬 레몬물보다 더 유익합니다.
    노랑고구마 빨강고구마 둘 다 암을 막아주는 요소입니다.

    1. 가끔이라도 밤늦게 저녁식사를 하는 것은 위암 발병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2. 주당 4개 이상의 계란을 결코 섭취하지 마세요.

    3. 닭 등살을 먹으면 위암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4. 식후에는 결코 과일을 먹지 마세요. 과일은 식사 전에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5. 여성분들은 멘스기간에 차를 마시지 마세요.

    6. 두유는 적게 마시되, 설탕이나 계란을 두유에 섞지 마세요.

    7. 위가 비어있을 때는 토마토를 먹지 마세요.

    8. 쓸개 담석을 예방하기 위하여 아침에 음식을 먹기 전에 맑은 물 한잔을 마시세요.

    9. 취침 3시간 전까지는 아무런 음식도 먹지 마세요.

    10. 술을 금하거나 줄이세요.  영양분도 없고 당뇨병과 고혈압의 원인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11. 오븐이나 토스터에서 꺼낸 빵이 따끈해져 있는 동안은 절대로 먹지 마세요.

    12. 잠자는 동안 핸드폰이나, 가전제품을 몸 가까이에서 충전하지 마세요.

    13. 방광암을 방지하기 위하여 매일 10잔의 물을 마시세요.

    14. 물은 낮에 많이 마시고, 밤에는 적게 마시세요.

    15. 하루 2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지 마세요. 불면증과  위염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16. 기름기가 적은 식사를 하세요.  기름은 소화하는데 5~7시간이나 걸려서 피곤하게 만듭니다.

    17. 오후 5시 이후에는 적게 드세요.

    18. 귀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음식 6가지 :  바나나, 그레이프프루트, 시금치, 호박, 복숭아 등

    19. 하루 8시간 이하의 수면은 뇌기능을 저화시킬 수 있다. 오후에 30분 정도의 휴식은 계속 젊어 보이게 활기를 준다.

    20. 요리된 토마토는 생토마토보다 더 좋은 치유제가 들어 있다.

    * 뜨거운 레몬물은 귀하의 건강을 유지시키고 장수하게 할 수가 있다.
    * 뜨거운 레몬물은 암세포를 박멸한다.
    * 두 세 조각의 레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매일 마셔라.
    * 레몬의 쓴맛은 암세포를 박멸하는 요소이다.
    * 찬 레몬은 비타민 C뿐이다. 항암효과가 없다.
    * 뜨거운 레몬물은 암종양의 성장을 조절한다.
    * 임상실험으로 뜨거운 레몬물의 효능이 이미 입증되었다.
    * 이런 형태의 레몬 추출물 치료는 유해 세포만을 궤멸시키고  건강세포는 다치지 않는다.
    * 레몬쥬스에 들어있는 구연산과 레몬폴리페놀은 고혈압을 낮추는데 조력할 수 있고  심한 정맥 혈전증의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혈액 순환을 증진시키고 혈전을 감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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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와 바이든의 정책비교

    1. 트럼프는 동성애 동성결혼 소아성애 근친상간 수간 난교 등등의 성소수자인권법을 반대하고 바이든은 찬성한다.
    이것을 LGBTQ 혹은 stigma free라 한다.

    2. 트럼프는 학교와 직장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찬성하고 바이든은 반대한다.

    3. 트럼프는 목사가 강단에서 성경에 기록된 죄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바이든은 반대한다.

    4. 트럼프는 총기소지를 찬성,바이든은 반대한다.
    찬성자는 사유재산과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정당방위이기 때문이고 반대자는 총기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5. 트럼프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중국공산당을 무너뜨려야한다고 생각하며
    바이든은 사회주의신봉자고 중국을 민주국가요 미국의 동맹국으로 생각한다.

    6. 트럼프는 미국의 제조업체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반대하며 바이든은 찬성한다.

    7. 트럼프는 낙태를 반대하고 바이든은 찬성한다.

    8. 트럼프는 불법이민 원정출산 이슬람난민유입 반대하고 바이든은 찬성한다.

    9. 트럼프는 감세 선택적 복지를 바이든은 증세를 통한 무상복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지지한다.

    10. 트럼프는 경찰강화 군강화 등 엄격한 법치국가를 바이든은 경찰해산 군축소 교도소해체 사형제도폐지 등 인권국가를 원한다.

    11. 트럼프는 기독교국가를 바이든은 이슬람국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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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방과 처방을 하면 가볍게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LA 차민영 내과, 안우성 내과 닥터들이 강의를 하면서 알려주는 내용이다.

    예방 :
    1.  Zinc 50mg,
    2. Vitamin D3 5000 iu.
    3. Vitamin C 1000-3000mg

    매일 먹으면 충분히 예방된다.
    모두다 건강보조약품으로 처방전 필요없이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zinc (아연), D3, C의 효능을 찾아보기 바란다.
    특히 Zinc가 예방 및 치료제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코비드 확정 판단이 나왔으면
    1. AZT 250mg,
    2. HCQ 200mg
    3. Zinc 50mg
    아침 저녁으로 1알씩 5일간만 먹으면 완치된다.

    실제로 환자들을 100%치료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이 소식을 보급하고 있다.
    예방을 위해 먹는 ZINC, 비타민D3. C는 건강에 필수적으로 반드시 먹어야 하며.
    혹시 확정 판단이 되면 주치의나. 두분에게 연락하면 즉시 처방전을 준다고 하니,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물론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세척은 항상 해야 하지만 이제 코비드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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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평로] ‘이니님’의 꿈만 이루어진다!
    입력 2020.10.12 03:00
    배성규 조선일보 정치부장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꿈을 주변에 수차례 얘기했다.
    “대한민국 주류 세력을 반드시 교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진보 정부의 정책이 잇따라 실패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선택을 한 것이 모두 주류 세력의 방해와 저항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국회부터 지방정부, 법원·검찰, 언론, 경제계까지 전 분야에 걸쳐 ‘주류 교체’를 이뤄내는 것이 필생의 과업이라고 했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은 기존 주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진보·운동권·친문(親文) 세력’으로 채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청와대 시절부터 문 대통령의 또 다른 관심사는 북한과 노동 문제였다.
    민정수석 시절 문 대통령은 별로 말이 없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대북 사업만 나오면 본인 업무가 아닌데도 열성적으로 나섰다.
    어떻게 해서든 남북 교류를 성사시켜 북한과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그 정도면 됐다”고 말릴 정도였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노동자 중심 정책’에도 가장 적극적이었다.
    집권 이후 문 대통령은 이를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추진했다.
    대선·총선·지방선거에 연승하며 국회와 내각, 지방정부를 장악했다.
    국정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과 공공기관은 철저하게 친여 인사로 물갈이했다.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무력화하고, 경찰청장과 국세청장은 과거 함께 일했던 인사를 꽂았다.
    사법부와 선거관리위원회, 감사원 등 독립적 헌법기관까지 친여·진보 인사들로 채웠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은 줄줄이 ‘우리법·국제인권법 연구회’와 민변·진보 진영 출신이 차지했다.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도 노골적으로 여당을 지지했던 인사들이 줄줄이 임명됐다.
    전 국가 기관이 ‘주류 교체’를 넘어 ‘친문 천하’로 바뀐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북·노동 정책에서도 본인의 뜻을 관철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지극히 불투명한데도 파상적인 ‘대북 드라이브’로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두 차례의 미북 정상회담을 이끌어 냈다.
    대선에서 자신을 밀어준 노동계엔 철저히 보은(報恩)했다.
    전교조 합법화에 이어 노동권을 대폭 강화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사이 대한민국은 국민 기대와 딴판으로 흘러갔다.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 민주당 윤미향·이상직 의원 등에 대한 의혹이 쏟아지고 ‘면죄부 수사’ 논란도 끝없이 이어졌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은수미 성남시장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판결도 ‘봐주기’ 논란에 휩싸였다.
    옵티머스·라임 사건에선 여권 핵심부에 대한 로비 진술이 나왔는데도 수사가 멈춰 섰다.
    문 대통령이 그리 강조하던 ‘정의와 공정’은 무너지고 ‘친문만 살맛 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탄도미사일을 쏘고,
    우리 국민을 사살해 시신을 불태워도 정부는 ‘맹탕 대응’으로 일관했다.
    북한 눈치를 보느라 ‘찍소리 한번 못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민노총이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을 저질러도 정부는 수수방관했다.
    기업 규제 법안은 줄줄이 쏟아내면서 ‘노동 개혁’은 한마디도 해선 안 된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꿈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국민 삶은 피폐해지고, 정의는 실종되고, 안보는 불안해졌다. ‘
    대통령의 꿈’에 국민이 짓눌려 힘겨워 하고 있다.
    그래도 여권과 문파들은 ‘이니님’(문 대통령 애칭)의 선정(善政)을 칭송하기 바쁘다.
    ‘잘사는 나라, 정의로운 나라, 안보 걱정 없는 나라’를 기대했던 국민의 꿈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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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보도본부에서 최종 정리한 내용입니다.

    어떤 유형의 바이러스라도 "면역체계"를 높이면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1. 잠이 보약
    (밤 24~03시 사이 T 임파구 면역활동 최고점, 하품날 때 바로 잘 것)

    2. 뜨거운 물 많이 마시기
    (모든 바이러스나 세균은 혈액속에 있는데 피를 묽게해야 혈액흐름이 좋아져서 바이러스 확산에 제약을 줌.)

    3. 자주 실내공기 순환
    ( 우리가 숨 쉴 때 마다 내뿜는 이산화탄소는 실내에 갇혀 있다가 다시 들여 마시므로 바이러스와 섞여서 다시 몸안에 들어옴, 창문 자주 열고 환기를 하자.)

    4. 햇빚 쪼이기
    (비타민 D는 많은 호르몬 작용에 작용하여 면역체계에 매우중요함.)

    5. 자주 움직이기
    (온몸을 움직이면 움직일 수록 몸 자체 스트래스 해소함.)

    6. 몸을 따뜻하게
    (샤워, 사우나, 땀나는 운동 등).

    7. 손은 뜨거운 물에 30초 가량 씻어줄 것.

    코로나바이러스 완치자 사례.
    주치의는 면역체계를 높이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는데 수액(물)을 입원내내 계속 주입했고,
    수면을 충분히 하도록 소량의 수면제를 넣었으며,
    특별히 세 끼 음식 영양섭취 및 흡수가 가능하도록 소화가 잘되는 식물성 위주로 제공하였으며,
    실내온도를 다른 병실보다 2도 이상 높여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 시켜준 것이 성과를 보았다는 것이니
    위의 7가지만 잘 지키면 절대 바이러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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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44번 버스 승객이 될 수 있다.

    글쓴이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나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
    나의 조국 ! 대한민국 !

    이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아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조국 대한민국 하나 뿐이다.
    대한민국이 없으면 나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도 대한민국을 비방하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
    그가 누구이건 한결같이 증오한다.

    그가 노조원이건, 교사이건, 교수이건,
    그대로 둘 수 없다.

    또 경상도 사람이건 전라도 사람이건
    대한민국을 헐뜯는 자는 내 원수이고,
    대한민국 안에 살려둬서는 안되는 인간 이라고 믿는다.

    국민의 70% 이상이 같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나는 우리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

    나도 44번 버스의 방조자는 아닌가?
    버스 44는 중국에서 상영된 영화 제목입니다.

    2011년, 중국에서 어떤 여성 버스 운전기사가
    버스를 운행하며 산길을 넘고 있었는데,
    양아치 2명이 기사한테 달려들어 성희롱을 하였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모른척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남자가 양아치들을 말리다가 심하게 얻어 맞았습니다.

    급기야 양아치들이 버스를 세우고
    여성기사를 숲으로 끌고 들어갔다가
    한참 뒤 돌아오더니
    여성 기사는 아까 양아치를 제지했던 중년남자에게
    다짜고짜 내리라고 하였습니다.

    중년남자가 황당해 하면서
    "아까 난 도와 주려고 하지 않았느냐?" 고 하니까,
    기사가 소리 지르면서
    "당신이 내릴 때까지 출발 안한다!"고 단호히 말합니다.

    중년 남자가 안 내리고 버티니까
    승객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짐도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고 버스가 출발했는데
    기사는 커브 길에서 속도를 가속해서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였습니다.
    전원 사망 ....

    중년 남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사고 현장을 목격합니다.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고 합니다.

    멀리 낭떠러지를 바라보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44번 버스였습니다.

    그 여성 운전기사는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유일하게 양아치들의 악행을 제지했던
    그 중년 남자를 일부러 버스에서 내리게 하고서,
    모른척 외면했던 승객들을 모두 지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 얘기는 중국에서 일어났던 실화입니다.

    "버스 44"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나 몰라라' 방조하고 있던 손님들이
    중년의 아저씨를 버스 밖으로 쫓아낼 때는
    모두 적극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는 버스안의 방조자는 아닐까 반문해 봅니다.

    다시 한번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침묵의 방조자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은 중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버스 44"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한 내용을
    토대로 연세대 김동길 명예 교수님이 인용한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멋진 성찰의 글이라
    생각하기에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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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속재산이란 무엇인가?

    귀속재산에 대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그 진실은

    귀속재산》이란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제가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그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일본인들이 놓고 간 국내 기업들

    두산그룹 OB맥주 하이트맥주 한화그룹 해태제과 동양시멘트
    SK그룹 삼호방직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화점 LG화학 쌍용그룹
    동국제강 삼성화재 제일제당 대성그룹 동양제과 대한조선공사
    동양방직 한국생사 한국주택공사 벽산그룹 한국전력 일신방직
    한진중공업 대한통운 한진그룹 대한해운 동양화재 해상보험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중외제약 ..

    《귀속재산》 (Vested Property)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이 바로《귀속재산》(Vested Property) 이다.

    <귀속재산>이라는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 연구; 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라는 700여 쪽의 저서를 냈다.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갔다.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북조선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이 횡재로 굴러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온 27명의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27명의 왕들은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 중 남한지역의 23억달러를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 로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벗겨 보냈는가?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정보일지>(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조선반도에서 이렇게 빈손으로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전후 일본의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 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조선 사람들에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쇼와 기린맥주’는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은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선경직물’은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는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한국저축은행’은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 이 되었다.

    ‘조지아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조선제련’이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가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생명’이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삼성화재’가 되었다.

    ‘조선연료, 삼국석탄, 문경탄광’이 김수근에게 불하되어 ‘대성그룹’ 의 모태가 되었다.

    ‘모리나가 제과와 모리나가 식품’이 해방 후에 ‘동립식품’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다가, 1985년에 ‘제일제당’에 병합되었다..

    토요쿠니제과’가 해방 후에 ‘풍국제과’로 상호 변경되어 운영되어오다가 1956년에 동양제과(오리온)에 병합되었다.

    ‘경기직물과 조선방직’이 대구에서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김성곤에게 불하되어 ‘쌍용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조선우선’이 직원이던 김용주에게 불하되어 ‘대한해운’이 되었다.

    ‘동양방직’은 관리인이던 서정익에게 불하되었다.

    ‘아사히견직’은 부산공장장이었던 김지태에게 불하되어 ‘한국생사’가 되었다.

    ‘조선주택영단’이 ‘한국주택공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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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탁법(鳥啄法)

    여러 해 전에 신기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었습니다.
    연세가 산수(傘壽, 80세)를 바라보는데,
    건강은 그야말로 만점이었습니다.

    염색을 하지 않으셨는데도 머리는 새까맣고,
    시력도 젊은이 못지않은 정상이었고,
    치아도 희고 멀쩡해서 처음에는 틀니를 끼고 계신 줄로 착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오장육부의 기능도 멀쩡해서 위장 대장 방광 등
    어느 것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진찰을 하면서 복부의 모혈 자리들을 눌러 보아도
    아픈 곳이 하나도 없는 분이었지요.
     
    노인 여성들에게 흔히 있는
    요실금 증세나
    퇴행성 관절염도 전혀 없는 분이었습니다.

    손발이 차거나 배가 찬 것도 없고,
    뼈에 바람이 든다는 등
    그런 것도 전혀 모르는 분이었지요.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대답이 바로 오늘 소개하려고 하는 조탁법(鳥啄法) 이었습니다.

    조탁법(鳥啄法) 이란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새 조(鳥), 쫄 탁(啄), 법 법(法)을 말합니다.

    양쪽 손의 10개 손가락 끝으로 머리 전체를 두드리는
    마치 새가 모이를 쪼듯이 가볍게 톡톡 두드리는 방법을 말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머리 전체를 두드려 주면 됩니다.
    팔이 아프면 그만 두시면 되구요.

    하루에 몇번을 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습니다.
    자주 하면 자주 할 수록 좋습니다.

    세게 두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해 보시면 알겠지만,
    머리 피부가 많이 아픈 사람은 세게 두드릴 수가 없습니다.

    많이 아픈 사람은 가볍게 두드리고,
    거의 아프지 않은 사람은 좀 강하게 두드리면 됩니다.
     
    몸에 병이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머리를 두드릴 수가 없을 정도로 어디든지 아픕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머리를 아무리 세게 두드려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러니 두드릴 때 아프던 머리가 점차 아프지 않게 된다면,
    이는 몸의 상태가 좋아졌다는 증거입니다.
     
    처음의 며칠간은 머리가 대단히 많이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지나면 점차 덜 아파집니다.

    아픈 부위도 머리 전체였던 것이 점차 줄어들어서 안 아픈 곳이 더 많아집니다.  

    꾸준히 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빼지 말고 꼭 해야 할 곳은 귀 주변과 뒷골 부위입니다.

    머리를 두드리라고 하면 대부분 머리 꼭대기 부분만 두드리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곳은 머리 꼭대기 뿐만 아니라 뒷골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잘 두들겨 주면
    중풍이 예방되며, 중풍이 걸린 사람도 점차 증세가 호전됩니다.
     
    중풍이 염려되는 사람이라면 특히 잘 해야 합니다.
     
    원래 조탁법은 머리카락이 난 부분만 두드려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들에게 머리통 전체를 두드리기를 권합니다.

    즉 머리카락이 난 부분은 물론이고,
    얼굴 부위와 귀 부위까지도 두드려 주라는 것입니다.

    얼굴 부위도 두드리다 보면
    이상하게 아픈 곳과 아프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아픈 곳은 무조건 많이 두드려 주면 됩니다.

    무조건 실천하셔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단순히 머리를 두드려 주는 것 만으로도 왜 건강이 좋아지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대답이 가능합니다.
     
    첫째, 경락 이론으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기가 흐르는 통로인 경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경락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12개의 정경입니다.

    이 12개의 정경은
    6개의 양경락과
    6개의 음경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양경락 6개는 모두 머리 쪽으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머리를 두들겨 주면 양경락 6개가 모두 자극을 받습니다.

    양경락 6개가 자극을 받으면
    해당 장부 6개가 모두 풀립니다.

    12장부 중에서
    절반이 해결되는 것이지요.

    또 기경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경인 독맥이
    머리 중앙선을 지납니다.

    독맥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독맥을 자극하되,
    특히 독맥의 상부인 머리 부분을 자극한다는 것은
    온 몸을 자극하는 것과도 같은 효과를 냅니다.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머리 꼭대기 부위를 손으로
    자주 두드려 주면 치질이 해결됩니다.

    아래 부위의 병은 위에서 치료한다는 한의학의 원리에 따라서 치질이나
    정력 부족 등등의 하복부 질환을 머리 꼭대기 부분에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둘째, 머리 부분에서만 치료하는 여러가지 치료법이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온 몸을 치료하되,
    머리 부분에서만 치료하는 치료법으로 두피침, 이침, 안침 등이 있습니다.

    즉 머리카락이 난 부분에만 침을 놓거나,
    귀에만 침을 놓거나,
    혹은 눈 주위에만 침을 놓아서도
    온 몸의 질병을 치료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머리 전체를 두들겨서
    머리 전체에 자극을 주면,
    온 몸이 좋아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도 정확한 침자리를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에, 병이 있는 부위는
    가볍게 누르거나 두드려서
    반드시 통증을 느끼도록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러니 머리 부위를 가볍게 두드려서 아픈 곳마다
    집중적으로 두드려 주면,
    두피침, 안침, 이침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무조건 건강은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셋째, 뇌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뇌입니다.

    뇌가 '根' 즉 뿌리라면,
    척추는 '本' 즉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팔 다리는 잘린다고 해도 삽니다.

    대부분의 장부의 일부를
    잘라내도 삽니다.

    그러나 뇌는 전혀 다릅니다.

    뇌는 조금만 손상을 받아도 치명적입니다.

    뇌 혹은 머리는 동양의학적으로 보면 '天' 즉 하늘입니다.

    몸통 전체가 '地' 즉 땅이지요.

    땅도 중요하지만,
    땅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늘입니다.

    그러니 몸통도 중요하지만
    머리가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넷째, 기와 단전의 논리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이라는
    3개의 단전이 있습니다.

    상단전은 머리 속 가운데이고, 중단전은 가슴 중앙의 속 부위이며, 하단전은 하복부의 중앙입니다.

    하단전에 문제가 생기면
    나쁜 기운들은 위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상단전 쪽으로
    나쁜 기운이 몰립니다.

    그 결과 목이나 머리 부위에서 열이나고 머리가 아파지며
    눈이 침침해집니다.

    이때 머리로 몰린 나쁜 기운을 제거해 내는 가장 단순하고도
    좋은 방법이 조탁법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상단전 부위를 이불이나 담요의 먼지 털듯이 털어 내는 겁니다.

    상단전의 나쁜 기운이 다 빠지면
    온 몸 전체가 맑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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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와 바이든의 정책비교

    1. 트럼프는 동성애 동성결혼 소아성애 근친상간 수간 난교 등등의 성소수자인권법을 반대하고 바이든은 찬성한다.
    이것을 LGBTQ 혹은 stigma free라 한다.

    2. 트럼프는 학교와 직장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하나님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찬성하고 바이든은 반대한다.

    3. 트럼프는 목사가 강단에서 성경에 기록된 죄를 죄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바이든은 반대한다.

    4. 트럼프는 총기소지를 찬성,바이든은 반대한다.
    찬성자는 사유재산과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정당방위이기 때문이고 반대자는 총기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5. 트럼프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중국공산당을 무너뜨려야한다고 생각하며
    바이든은 사회주의신봉자고 중국을 민주국가요 미국의 동맹국으로 생각한다.

    6. 트럼프는 미국의 제조업체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반대하며 바이든은 찬성한다.

    7. 트럼프는 낙태를 반대하고 바이든은 찬성한다.

    8. 트럼프는 불법이민 원정출산 이슬람난민유입 반대하고 바이든은 찬성한다.

    9. 트럼프는 감세 선택적 복지를 바이든은 증세를 통한 무상복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지지한다.

    10. 트럼프는 경찰강화 군강화 등 엄격한 법치국가를 바이든은 경찰해산 군축소 교도소해체 사형제도폐지 등 인권국가를 원한다.

    11. 트럼프는 기독교국가를 바이든은 이슬람국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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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금메달

    제2회 세계 문자올림픽대회에서 우리의 한글이 금메달 획득

    세계 문자학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태국방콕에서 열린 제2회 세계문자 올림픽대회에서 한글이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계 문자올림픽 대회는 세계 27개국 문자(영어, 러시아, 독일, 우크라이나, 베트남, 폴란드, 터키, 셀비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에티오피아, 몰디브, 우간다,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남아공, 한국, 인도, 울드, 말라야람, 구자라티, 푼자비, 말라시, 오리아, 뱅갈리, 캐나다)가 경합을 벌였다.

    각국 학자들은 대회에서 30여분씩 자국 고유문자 우수성을 발표했다.

    세계 문자 올림픽의 심사기준은

    ▲ 문자의 기원
    ▲ 문자의 구조와 유형
    ▲ 글자의 수
    ▲ 글자의 결합능력
    ▲ 문자의 독립성 및 독자성
    ▲ 문자의 실용성
    ▲ 문자의 응용 개발성 등을 기초로 평가됐다.

    세계 문자올림픽은 가장 쓰기 쉽고,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찾아내기 위한 취지로 열린다고 한다.

    한글은 16개국이 경쟁한 지난 2009년 대회에 이어 또 다시 1위를 차지하여 그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번 세계 문자올림픽에서
    1위는 한국의 소리 문자
    2위는 인도의 텔루구 문자,
    3위는 영어 알파벳이 차지했다.

    이번 세계 문자올림픽대회 마지막날 참가한 각국의 학자들은 방콕선언문’을 발표하고 자국대학에 한국어 전문학과와 한국어 단기반 등을 설치하는등 한글보급에 노력 하겠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또한 이날 채택된 방콕선언문은 인구100만명 이상인 국가들과 유네스코에 전달될 계획이라고 한다.

    566돌 한글날,
    제1회 세계 문자대회에 이어
    제2회 세계 문자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획득하여 세계 만방에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게 되었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 1위 한글
    세계에서 가장아름다운 음악 1위는 아리랑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 1위는 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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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불합 칠불교(六不合 七不交)
     
    홍콩에 '이가성(李嘉诚)이라는 부호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그리고 아시아에선 최고의 부자입니다.

    홍콩에서 1달러를 쓰면 5센트는 이가성에게 돌아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특히 홍콩 경제,
    더 나아가 전 중화권 경제와 아시아 경제에까지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현재 개인 재산이 약 30조원 인데
    세탁소 점원으로 시작해서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는 것이 첫 번째 배울 점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배울 점은
    지금도 5만원 이하의 구두와 10만원 이하의 양복을 입고 비행기는 꼭 이코노미석을 타면서 검소하다고 합니다.

    세 번째 배울 점은
    그 절약한 돈으로 아시아에서 제일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것도 회사 명의가 아닌 본인의 재산을 팔아서 기부한다는 점입니다.
    기부금 중엔 장학금으로 매년 3,000억원을 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양반의 어록중 교우(交友)관계에 관한 유명한 말은

     "육불합 칠불교(六不合 七不交)" 라고 합니다.

    여섯 종류의 사람과 동업하지 말고
    일곱 종류의 사람과 사귀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칠불교(七不交)

    1. 불효하는 놈과 사귀지 마라
    2. 사람에게 각박하게 구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3. 시시콜콜 따지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4. 받기만 하고 주지않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5. 아부를 잘하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6. 권력자 앞에 원칙없이 구는 자 사귀지 마라
    7. 동정심이 없는 사람과 사귀지 마라

    육불합(六不合)

    1. 개인적 욕심이 너무 강한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2. 사명감이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3. 인간미가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4. 부정적인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5. 인생의 원칙이 없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6.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 동업하지 마라

    이가성 회장과 운전기사 이야기

    이가성 회장의 운전기사는 30여년간 그의 차를 몰다가 마침내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가성회장은 운전기사의 노고를 위로하고 노년을 편히 보내게 하기 위해 200만 위엔(3억 6천만원)의 수표를 건냈습니다.
    그랬더니, 운전기사는 필요없다고 사양하며,
    저도 이천만 위엔(36억원) 정도는 모아 놓았습니다라고 하더랍니다.

    이가성회장은 기이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월급이 5~6천 위엔(100만원) 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거액의 돈을 저축해 놓았지?"

    운전기사는
    "제가 차를 몰 때 회장님이 뒷자리에서 전화하는 것을 듣고 땅을 사실 때마다, 저도 조금씩 사 놓았고요.
    주식을 살 때, 저도 따라서 약간씩 구입해 놓아 지금 자산이 이천만 위엔(36억) 이상에 이르고 있어요!"

    인생에 누구를 만났느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습니다.

    "파리의 뒤를 쫒으면 변소 주위만 돌아다닐 것이고,
    꿀벌의 뒤를 쫒으면 꽃밭을 함께 노닐게 될 것이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지지만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도록
    서로 소통하며 카톡도 자주 안부인사 나누어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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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 잡아 준다고
    넘어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손 내미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응원한다고
    삶이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힘 내라는
    당신이 고맙습니다.

    혼자 간다고
    다 길 잃은 건 아니지만
    기다려 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말 한마디 안 한다고
    우울해지는 건 아니지만
    말 건네 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고운 당신처럼
    고마운 분이 있기에
    우리들의 삶은 더욱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오늘도
    내 삶에 고마운 일
    내 삶에 고마운 분
    가슴속에 심으며
    고마움을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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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아두면 유용한 생활 팁

    변기가 막혔을 때 샴푸 몇 방울을 떨어뜨린 후 30분 뒤에 물을 내리면 뚫려요.

    욕조, 세면대, 싱크대는 베이킹파우더로 닦으면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 계란이 바닥에 깨지면 밀가루를 뿌려 닦으면 끝.

     상추를 말려 가루로 만든 후 치약에 뭍혀 이를 닦으면 새하얀 치아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상한 우유는 가죽쇼파, 구두ᆢ등을 닦으면 광택이 납니다.

     방바닥의 볼펜은 물파스로 닦으면 잘 지워집니다.

     주차스티커는 모기약을 뿌리고 닦으면 아주 말끔히 떨어집니다.

     전자렌지 청소는 물을 8분간 돌려 수증기를 만든 후 행주로 닦으면 끝.

     개미가 생기면 장롱 밑이나 구석에 소금을 뿌리면 퇴치.

     바퀴벌레가 생기면 가을 은행잎을 모아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 집안 곳곳에 두면 바퀴벌레가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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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智慧)

    어느 한 마을이 전쟁으로 인해 상대방의 군대에 포위당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꼼짝없이 포로가 될 형편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살길이 없을까 하고 두려워하고 있을 때
    적군의 장수가 마을을 향하여 소리쳤습니다.

    성인 남자들은 모조리 우리의 노예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특별히 풀어줄 것이니 이 마을을 속히 떠나라.
    그대들에게는 특별히 인정을 베풀어 줄 테니 소중히 여기는 보물 한 개씩만 지니고 나가도록 허락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마을을 떠나며
    모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 한 가지씩을 들고 나섰습니다
    그중에는 금반지, 목걸이, 은수저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허약해 보이는 한 여인은 이상하게도
    커다란 보따리 하나를 질질 끌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검문하던 장수가 수상히 여겨 보따리를 헤쳐 보니
    웬 남자 한 명이 보따리 안에 있었습니다.

    “이건 누군가?”
    여인은 대답했습니다
    “네, 제 남편입니다”
    “왜 그대는 명령을 어기는가?
    둘 다 죽고 싶은가?”
    적의 장수가 위협을 가하자 여인은 간절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제 남편입니다.
    명령대로 내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하나 지니고 나가는 것이니 나를 보내주십시오!”
    적군의 장수는 마음에 큰 감동을 입었습니다.

    그 여인의 지혜와 남편에 대한 사랑에 감동하여 남편을 데리고 나가도록 허락했습니다.

    누구나 신에게 받은 보물 한 가지씩은 있습니다.
    다만, 그 보물을 어느 순간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생의 소풍을 마치는 날까지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은 무엇입니까?
    어쩌면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는 가족들이
    가장 빛나는 보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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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자택 PC에서 엄청난 증거가 터졌다

    문재인 아니 김정숙과 관련된 뇌물문서들 충격적인 발견
    드디어 문재인의 탄핵 시킬 문서 발견

    대박이다
    청와대 ㆍ민주당 난리났다
    조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라
    제3자를 시켜서 청부살인이 일어날수 있다

    매년 김정숙에게 500억 보태
    그동안 조국뒤에 김정숙이 있었다 .

    검찰 윤석열은 청와대를 꼼짝마라 해라

    여차하면 문재인은 헬기를 이용해
    외국ㆍ동남아로 튈수도 있으니

    출입국관리법에 의거 못나가게 막고
    군도 모두 비상을 걸고
    문재인과 김정숙ㆍ핵심 심복들이
    전국의 공항ㆍ항만을  이용해 해외로 나가는것을 모두 막아라

    드디어 올것이 왔다

    보수ㆍ우파의 대규모 태극기 집회 단체들은
    청와대에 포진하여 주사파 빨갱이들을 꼼짝달싹 못하게 막아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방 이요! 사방팔방 알리시오!

    ♦️ 경기도에 살고있는 한 고교 3년생이 쓴 문재인  하야 청원 글입니다.
    정말 天才입니다.

    ️경제는 말아먹고!
    ️안보는 팔아먹고!
    ️외교는 구걸하고!
    ️세금은 탕진하고!
    ️곳간은 거덜내고!
    ️국채는 남발하고!
    ️원전은 팽개치고!
    ️국정은 파탄내고!
    ️민생은 외면하고!
    ️기업은 주눅들고!
    ️노조만 득세하고!
    ️알바는 별따기에!
    ️일자리 노인천국!
    ️서민층 피눈물에!
    ️중산층 무너지고!
    ️세대간 반목하고!
    ️동서간 분열하고!
    ️이념간 대적하고!
    ️진영간 칼겨누고!
    ️중국이 상전이고!
    ️북한이 우선이고!
    ️일본은 무시하고!
    ️미국은 멀리하고!
    ️동맹엔 고립되고!
    ️국격은 추락했고!
    ️통치는 어설프고!
    ️경영은 무능하고!
    ️연설로 사기치고!
    ️공약은 부도내고!
    ️특기는 내로남불!
    ️잘못은 언론탓에!
    ️실정은 개돼지탓!
    ️제편은 춘풍온실!
    ️야당엔 추상냉골!
    ️조국엔 마음의빚!
    ️국민엔 울화통병!
    ️측근은 우대일로!
    ️정적엔 조자룡칼!
    ️입법을 농단하고!
    ️사법을 유린하고!
    ️행정은 무능하고!
    ️체제는 문주주의!
    ️실력은 문맹정권!
    ️소통은 문이독경!
    ️역병은 창궐하고!
    ️재앙은 이어지고!
    ️민심은 폭발하고!
    ️하야는 기정사실!
    ️모든게 천추의한!
    ️국방은 무너지고!
    ️간첩은 활개치고!
    ️안보는 실추되고!
    ️나랏빚 늘어나고!
    ️백성은 살수없고!
    ️정신들 차립시다!


    아이고 큰일났다.
    진짜같은데
    ️방송에 안나온 뉴스 이거 안가본길 간다
    큰일 났습니다

    이래도 문정권을 지지할껍니까?

    ️한국+중국 안보협정 (지소미아)체결했다

    절대로 하면 안될 것을 했다니 이걸 어떻게 해야합니까?

    국내 언론에서 전혀 보도가 되지 않는 것이죠 이럴려고 한국 일본 지소미아 파기하는 것이네요

    공산당 중국과 국방합의라ᆢ언론은 미국이 방위분담금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부정적 뉴스만 도배하고

    물 밑에서 공산화가 많이 진척되었고 이제 국가안보와 외교 경제는 벼랑끝으로 정말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으니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각자도생'이지만 참 기가막힌다!!

    한글을 읽거나 들을 수만있다면 전 국민에게 퍼날라 주세요



    속보                        

    끝내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
    헌법 개정초안이 나왔습니다.

    1. 대통령제 4년 연임
    2. 지방 분권
    3. 선거연령 17~18세로 하향
    4. 개인토지소유권 박탈  재산균등분배
    5. 5.18, 세월호 헌법에 명시 등재
    6. 대기업 제재
    7. 자유민주주의 삭제하고, 인민민주주의 등재
    8. 각,구, 동, 인민소위원회 창설
    9. 동네 소위원회 구성(재판없이 인민재판 구성)
    10. 남한대통령이 유일체제로 가도록 개정

    이 글을 지금 읽고 계신 분은,
    제가 보내는 100만명 중 한 분입니다.

    각자 아시는 분 30분에게만 보내시면,
    3,000만명에게 전달됩니다.

    이런 작은 노력과 정성만으로도,
    충분히 나라를 구할 수 있습니다 !!

    지금 대부분 국민들은 뎁혀지고 있는,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초기의 따스함과
    평온함에 빠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 태영호 데뷰국회


     ҉ 태양왕 고용왕?
     
     ҉ 추미애 OUT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TEe3FF

    동의하시고  최소한
    8명에게 퍼나르셔요
    100만 돌파 빠르게 밀어올립시다
        
     ҉ 미국국방 수권법

    @박원순살해 전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웃어봅시다

    어느 경찰서에 잡혀온 도둑과 취조하는 형사와의 대화이다.

     직업이 뭐야?
     빈부 차이를 없애려 밤낮으로 노력하는 사회 운동가입니다.

     너는 꼭 혼자 도둑질을 하는데 짝은 없나?
     세상에 믿을 놈이 있어야지요.

     마누라도 도망 갔다면서?
     그거야 또 훔쳐 오면 되죠.

     도둑은 휴가도 안가나?
     잡히는 날이 휴가입니다.

     아들 학적부에 아버지 직업을 뭐라고 적나?
     귀금속 이동 센터 운영

     가장 슬펐던 일은?
     내가 훔친 시계를 마누라가 팔러 갔다가 날치기 당했을 때입니다.

     그때 마누라가 뭐라고 하던가?
     본전에 팔았다고 하더군요.

     형을 살고 나오면 뭘 하겠나?
    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도 모르세요?

     아이 교육은 어떻게 시킬 건가?
     우선 바늘 훔치는 법부터 가르칠 것입니다.

     가장 인상 깊었던 도둑질은?
     9급 공무원 집이었는데 물방울 다이아 훔쳐 도망가다 경찰한테 잡혀 그 집으로 다시 끌려갔는데
     주인놈이 당황하여'그건 내가 준 것이요' 라고 둘러대는데, 그때는 정말 장발장 생각이 나더군요.

     자네가 솔직해서 감형이 되도록 조서를 써주겠네.

     감사합니다. 형님!

     제가 훔친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오늘도 감사와 사랑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많이 웃고 복된 날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코로나19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예방과 처방을 하면 가볍게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LA 차민영 내과, 안우성 내과 닥터들이 강의를 하면서 알려주는 내용이다.

    예방 :

    Zinc 50mg,
    Vitamin D3 5000 iu.
    Vitamin C 1000-3000mg을 매일 먹으면 충분히 예방된다.
    모두 건강보조약품으로 처방전 필요없이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zinc (아연), D3, C의 효능을 찾아보기 바란다.
    특히 Zinc가 예방 및 치료제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코비드 확정 판단이 나왔으면

    AZT 250mg,
    HCQ 200mg
    Zinc 50mg을 아침 저녁으로 1알씩 5일간만 먹으면 완치된다.

    실제로 환자들을 100%치료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이 소식을 보급하고 있다.
    예방을 위해 먹는 ZINC, 비타민D3. C는 건강에 필수적으로 반드시 먹어야 하며
    혹시 확정 판단이 되면 주치의나 두 분에게 연락하면 즉시 처방전을 준다고 하니, 꼭 기억해 두기 바란다.
    물론 사회적 거리 두기,
    손 세척은 항상 해야 하지만 이제 코비드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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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fe is a dream
    (人生은 꿈이라오)

    宿命的으로 生老病死의 正course(코스)를 달려가는 人生!

    60代는 해마다 늙고!
    70代는 달마다 늙고!
    80代는 날마다 늙고!
    90代는 時間마다 늙고!
    100歲는 分마다 늙으며   

    젊은 時節은 다시 오지 않고
    歲月은 나를 기다리지 않으니

    먹고 싶은거 있음 躊躇(주저)말고 먹고
    입고 싶은거 있음
    재지말고 사서 입으세요!

    가보고 싶은 데 있음
    망설이지 말고 떠나며,
    後悔 없이 살아야 합니다.

    삶은 풀어야 할 宿題가 아닌
    즐겨야 할 祝祭이니까요

    오늘도 사랑과 感謝가 가득한 하루
    살맛 나는 하루가 되시길 祈願(기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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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답게  사는길
     
    기원전 399년 봄,
    70세의 노인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고 태연자약하게 그의 생애의 막을 내렸다.
    그는 자기에게 사형선고를 내린아테네의 5백명의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떠날 때는 왔다
    우리는 길을 가는 것이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간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 오직 신(神)만이 안다."

    나는 62년 7월과 82년 1월 두 번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은 그 유명한 감옥소의 유적을 찾아갔다.
    소크라테스는 40세에서 70세까지 약 30년 동안 아테네 시민의 정신혁명을 위하여 그의 생애를 바쳤다.
    부패 타락한 아테네사람들의 양심과 생활을 바로잡기 위하여, 교만과 허영 속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의 인격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그는 아테네 거리에 나가서 시민들과 대화하고 가르치고 질책하고 호소하고 계도하였다.
    그러나 아테네의 어리석은 민중은 그를법정에 고소했다.

    그 소장에는 이렇게쓰여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정한 신들을 믿지 않고,새로운 신神을 끌어들이고.
    또 청년을 부패 타락시켰다.그 죄는 마땅히 죽음에 해당한다."

    소크라테스는 ’불신앙과 청년의 유혹’이라는 두 죄명에 의해서 고소되었다.

    아테네 시민 5백명으로 구성된 법정에서 두 차례의 투표 결과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는가.
    아테네의 어리석은 시민들 이었다.

    민중은 사리사욕에 휩쓸리면 한심한 우중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군중심리에 사로잡히면 IQ 80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민중은 올바른 지각을 가지면 슬기로운 현중(賢衆)이 된다.
    민중은 우중이 되기도 하고, 현중이 되기도 한다.
    역사의 어두운 반동세력도 되고, 역사의밝은 개혁세력도 된다.

    누가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했는가.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민중들이었다.

    민중의 질(質)이 문제였다.

    아테네 시민의 무지와 악의와 오판이 위대한 철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던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것은 진리를 죽인 것이요, 정의를 죽인 것이다.
    진리와 정의가 죽는 나라는 반드시 쇠망한다.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아테네는기원전 338년 마케도니아에게 패망하고 말았다.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지 61년이 되는 때였다.

    아테네는 역사의 심판과 징벌을 받았다
    역사는 반드시 준엄하게 심판한다.
    우리는 역사의 이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테네의 사랑하는 시민들이여,
    여러분들은 가장 위대하고 지혜와
    위력으로 명성을 자랑하면서,
    될수록 돈이나 많이 모을 생각을 하고
    또 이름이나 명예에만 관심이 쏠려서
    지혜와 진리와 자기의 인격을 깨끗하게하는 일에 대해서는조금도 마음을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기 전 사랑하는 제자 플라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생존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어떻게’라는 말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도 매국노나 배신자나 변절자나
    살인범이나 패륜아나 강도나 매춘부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없을 것이다.

    누구나 인생을 바로살기를 원한다.
    바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첫째로 진실하게 사는 것이요,
    둘째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요,
    셋째로 보람 있게 사는 것이다.

    거짓되게 살고 추잡하게 살고무의미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세상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바로’라는 말이 제일 중요하다.

    말도 바로 하고,
    생각도 바로 하고,
    행동도 바로 하고
    생활도 바로 해야 한다.

    정치도 바로 하고,
    경제도 바로 하고,
    교육도 바로 하고
    모든 것을 바로 해야 한다.

    잘사는 것이 중요한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바로 살아야잘살 수 있다.

    바로 살지 않고는
    제대로 잘살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또 외쳤다.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은
    죽는 연습. 죽는 공부. 죽는 준비,죽는 훈련을 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언제 죽더라도 태연자약하게 죽을 수 있는 마음 자리를 준비하는 것이 철학이다.

    확고부동한 사생관을 확립하고 조용하게 죽을 수 있는 정신적 준비를 하는 것이 철학의 궁극 목표다.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하여라.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 에밀>을 쓴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한국인에게 철학이 없는 국민이라고 한다.
    철학이 없는 인생을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 혼탁한 난세를 당당하게 살기 위하여 우리는 투철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철학이 없는 생활은공허하고 빈약하다.
    우리는 인생을 바로사는 지혜와 태연하게 죽을수 있는 준비를 해야한다.
    이것이 철학적 정신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그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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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유럽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

    북유럽 문화에는 '얀테의 법칙 (Jante Law)이란 게 있습니다.
    동화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는 덴마크는 UN이 발표한 인류 행복지수에서 세계 200여개 국가중 해마다 상위권에 올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덴마크의 이상적인 복지와  교육 시스템도 그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국민 행복의 토대에는 ‘얀테의 법칙(Jante Law)’ 이라는 것이 절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얀테의 법칙’' 은 덴마크의 작가가 쓴 소설에 나오는 10 개조의 규칙입니다.(보통 사람의 법칙이라고도 함)

     《10 개조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째,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둘째,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셋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넷째,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자만하지 말라.

     ○다섯째,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여섯째,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일곱째, 내가 무엇을 하든지 다 잘 할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라.

     ○여덟째,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아홉째,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신경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열번째,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말라.

    위에 열거한 열 가지는 '내 스스로가 특별하다.' 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나를 남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다가 이것이 결핍되면 불행해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얀테의 법칙’ 요지는 ‘'너는 평균보다  낮은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어떤 누구라도 더 특별할 것이 없고, 모두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는 말로써 이는 타인에 대한 신뢰와 개개인을 존중하는 문화의 토대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평균 이상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평균보다 낮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평균적인 생활을 하더라도 만족 할 수 있고,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사회적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이 모두 충족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다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덴마크 국민들이 행복한 이유는 결코 부유해서가 아니라 ‘'평등’' 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신뢰, 공동체적인 문화가 뿌리내린 것이 그 열쇠인 듯합니다.

    행복은 결국 긍정에서 태어나고, 감사를 먹고 자라며,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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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친구가 너무 좋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자네도 빈손...
    나 또한 빈손으로 갈텐데..

    있다고 더 오래 살고
    없다고 더 적게 사는 인생도 아닌 것을..

    백년도 못 사는 짧은 인생길...
    천년을 살 것 처럼 욕심내고, 고민하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우리네 인생인데
    어찌 그리 욕망으로 남을 다치게 하고
    어찌 그리 욕심으로 세상을 등지는가..

    한번 왔다 한번 가는 인생
    즐기면서 "하하 호호" 살다가 웃으면서
    여행을 끝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누고
    베풀고
    감사하면서
    주위에 사람으로 넘치고,
    주위의 사람들과 하나 되어 살고,
    주위의 사람들과 사랑하며 사는"삶"이
    멋진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살면서 딱 한가지 욕심 낼 것이 있다면
    친구에 대한 욕심이 아닐까 싶은데..

    혹시 "친구 보험"은 들어 놓으셨나요.?

    보험료 인상 걱정 없고,
    재계약 절대 없고,
    100년까지 완전 보장되는
    "친구 보험"이
    나이 들어서는 최고의 상품이라는데요.?!

    우리의 "백년 여행" 중에
    언제 부턴가는 혼자 여행하기 버거운 때가 올테고
    그럴 때 가장 곁에 두고 싶고
    가장 그리운게 친구가 아닐까 싶네요.

    노년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노년에 친구가 많다는 것은 더 큰 행복이겠죠!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은 "친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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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원로회 서신 140호

    - K형, 문재인은 間諜이라네 -

    ■ 난생 처음 영어 이니셜로 상대를 호칭해 편지를 써보네.
    반어체(反語體)에 속할 '써보네'는 선배에 대한 광주 특유의 존칭(尊稱)이라 괜찮지?
    아무튼 금번 추석에 자네가 우리 아이들에게 베풀어준 호의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무척 고마웠고,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자네에게 글을 써야겠다고 작정한것은 자네가 내게 보낸 카톡 글속에

     "사람사는 정(情)이 있어 최고다야.
    엉뚱부대로 약간 맛(?)이 좀 별로인것 빼고는~" 이란 대목을 읽고서 였네.
    그 중에서도 '엉뚱부대' 라는 표현은, 태극기가 무슨 죄라고 그걸 소지하였다 해서, 그것도 개천절날, 검문검색을 받고 압수당하는 현실이라 해도 명문고교를 나온 자네 입에서조차 '태극기부대' 를 대신해서 그런말이 나올줄은 몰랐거든.

    시비(是非)를 걸려는건 아닐세.
    자네도 잘 아는 다른 두 동창들과도 비슷한 문제로 필담(筆談)을 나눈적이 있어서 처음은 아니라는거지.
    더군다나 자네를 나의 세치 혀로 설득시킬 생각 또한 추호도 없음을 미리 말하네.
    그냥 왜 이렇게까지 가장 가까운 친구들  사이도 이런 일로 서먹서먹 해져야 하는지, 제대로 털어놓고 말못할 이유가 무언지 그게 마냥 안타까워 우선 자네가 너무 잘 아는 우리 식구들 이야기부터 하고싶을 뿐이네.

    ■ 2017년 5월 어버이날로 기억하네.
    아이들이 부모 대접한다며 집으로와 점심때 복집에 갔었지.
    대통령선거 하루 전날이라 술이 한순배씩 도니 자연스레 후보자들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네.
    젊은 아이들이기에  어슴프레 짐작은 했었네만 문재인을 선호하는 느낌이었네.
    이건 아니다 싶었지.
    자네도 잘 알다시피 반공(反共)에 있어서 만큼은 직업 자체부터가 전문가인데 그런 아비 밑에서 큰 아이들이 결혼하더니 달라졌다면 말이나 되는가 싶었지.

    그렇지만 다 큰 애들에게 바로 대놓고 말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5학년이 되었지만 그땐 2학년인 손녀 딸에게 '문재인은요~ 빨갱이래요~'하는 즉석 동요를 불러주었지.
    그래, 주책을 부린거야.
    바로 큰사위한테 반응이 오더라고.
    '아버님, 아무리 그렇다고 아이에게 그런 말씀을'  
    나는 여기서 또 꼭지가 돌아버렸다네.
    탄핵의 부당성하며 문재인 등 주사파의 가증스런 운동권  행태가 너희들 눈에는 보이지 않느냐며 소리 지른 것도 모자라
    '너, 내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네.
    하빠 하빠 따르는 손녀딸만 울며불며 문 안팎을 왔다갔다 하던게 지금도 눈에 선해.

    그리고 실제로 우리 가족은 한동안 뜸했지.
    지들 엄마를 통해서, 그것도 전화상으로 주고받은 말을 듣고 대충 퍼즐 맞추듯 돌아가는 형편을 짐작하는거지.
    그해 10월 쯤으로 기억하네.
    속이 몹시 쓰려 삼성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지.
    입원실이 없었는데 큰 사위놈이 금방 찾아와서 병원에 있는 친구를 통해 해결하더군.
    뭐 가족사이에 돈 문제만 아니면 칼로 물베기라 하지 않던가,
    어디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 이 따로 있기에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나뉠수 있겠는가. 
    솔직히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 로 내 마음도 금방 변하더만.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만나는 편이지만 가급적 무거운 주제는 다루지 않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만 보며 무언가 특이한것이 보일라치면 이 얘는 이거하면 좋겠다,
    저 얘는 저거하면 좋겠다 등으로 소통의 장을 꾸려왔다네.

    그런데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은 확 달라졌지.
    이제 저희들이 피부로 느끼니까 아빠가 말할 필요가 없게 되더라고.
    집사람도 이제는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내 말에 크게 토를 달지 않는다네.
    그리고 5학년 짜리 손녀딸이 그때 상황을 지금에사 말하더만.
    "하빠가 그때 성질내니까 엄마와 아빠는 문재인 안찍고 대신 안철수 찍었어"

    ■ 올 4월이었지. '국가원로회 서신 91호'에 '955호 나와라, 오바!'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게 있어.
    자네도 보았는지 모르겠네만 내용은 실로 섬찟하다네.
    일국의 대통령이 난수표(亂數票) 수령인으로 등장하게 되니 말일세.

     "995호, 전문(電文)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조수 25조, 조수 25조, 8  5  3  2  5  6  7  1  5  9..."
    예전에 연속극 첩보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본,  간첩에게 보내는 섬찟한 북한여자 목소리다.

    문재인씨 트위터에 "ㅛQ qzq"라는 부호가 2013년 8월18일 오후 8시 56분에 잠간 떴다가 사라졌다.
    사라진 부호를 '토순이 유튜버'가 2020년 3월15일 쳐봤더니 위의 난수방송이 나온다고 해서 나라가 발칵했다.

    위 내용은 그때 서신(書信)의 서두(書頭)였네.
    문제는 청와대의 대응자세였지.
    그 뒤로 이봉규TV는 물론 수십개의 유튜버들이 이를 방송하고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을 올렸는데도 청와대는 아무런 해명도 안하고 삭제해 버렸다는거야.
    아니 장난도 유분수지 '대통령을 뒤에서 욕을하여 국민들 마음이 편해진다면 대통령은 괜찮다' 는 대응, 문이 정말로 착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어서 간첩이라해도 그냥 눈감아 주겠다?

    거기에다가 아무리 '망각(忘覺)'에 대하여 너그러운 조선피가 흐르는 백성이기로서니 이건 또 아니지 않겠는가?

    그때는 벌떼처럼 달겨들어 '대통령이 간첩이다' 며 눈에 핏발을 세우던 민초(民草)들 또한 '지금'과 '망각(妄却)'에 대하여 철저히 분리해서 오직 '지금' 만을 생각하고 지금,
    지금 일어나는 현상속에 어제,
    어제 일어났던 가공(可恐)할 일들을 망각속에 아무렇지도 않게 파묻고 있으니,
    하물며 그 서신 자체도 자네가 읽은바 없어 문재인이 간첩 혐의자라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게 무슨 흠이 되겠는가만,
    이제라도 앞뒤가 분명한 스타일로 이 나이까지 유수한 기업의 총수(總帥)에게 신임(信任)을 받고 살아온 자네가 한번 판단해보고 '엉뚱부대' 를 논했으면 한다네.

    ■ 그걸로도 반공정신(反共精神)이 투철한 세대를 살아온 우리에게 더 이상 문재인을 지지(支持)할 이유가 필요하겠는가만
    작금(昨今)의 행동거지 또한 간첩(間諜), 아니 그 이상의 직책(職責)이 아니라면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언행(言行)을 그는 지금 저지르고 있지 아니한가?
     
     신문에도 났더만.

    북괴군에게 사살(射殺)당한후 불태워진 47세 공무원 아빠의 죽음에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대통령님, 아빠가 잔인(殘忍)하게 죽임을 당할때 이 나라는 무엇을 했는가요? 대통령님 자녀라도 이렇게 했을까요?" 라고.

     신문은 계속 말하더만.

     ....이석기 前 통합진보당 대표의 釋放을 요구하는 수천대 차량 시위는 허용하고, 문재인 반대 집회는 차량 10대 '드라이브 스루'도 금지한다.
    대통령이 "어떤 관용(寬容)도 없을것" 이라고 하자 경찰 버스 수백대를 동원해 광화문 통행조차 막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사람이 빽빽한 백화점, 위락시설
    (慰樂施設)등은 허용한다. 대통령은 '재인山城' 을 쌓은 경찰에게 '잘했다'고 칭찬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국민의 힘' 을 믿는건 아니네.
    어떤면에서는 그것들이 더 내 증오심을 부추키지.
    김대중이나 김영삼 만한 인물 하나만 그쪽에 있었대도 진즉 판을 뒤엎어 버렸을게야.
    몇사람 빼고는 모두 '국개들'이라고 막말 들어도 싸네!

     K형, 너무 부담이 되는 글을 길게 써서 더욱 부담주나 싶지만, 그래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 소설 책 주인공이  한말을 인용해서 클로징 멘트를 대신하려 하네.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라고 할지라도' 말일세.

    "우리는 전쟁을 극복해야 된다고 믿어.”라고 나는 말했다.
    “한쪽이 싸움을 중단한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는것은 아니야.
    우리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그만 둔다면 그것은 단지 상황을 더 악화시키게 될 뿐이지.”

     결국 헤밍웨이는 이 책에서
    우리는 “무기여 잘 있거라”라고 전쟁을 향해서 작별인사를 할 수 없으며 개인적 평화협정을 맺을수도 없기에 차라리 전쟁에 대비해 전쟁의 발발
    (勃發)을 가능한 한 막거나 패전(敗戰)의 피해를 당하지 않는게 최선의 방책이라는걸 주인공을 통해 말했다고 생각하네.

    첨언(添言)하네만,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언가?
    역사상 국민을 위해 죽은 임금이나 대통령은 없었지만 적국(敵國)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일하는 대통령이 있으니 말일세.
    대통령이 들어 내놓고 하니까 일국의 총리나 여당대표는 물론 '가붕개'들까지 날뛰며 대통령 둘 죽인것도 모자라 100년 집권(執權)위해 적폐청산(積弊淸算) 美名下에 1,000만명은 도려내야 한다지 않는가?

    K형, 결코 남의 일이 아닐세.
    이런일로 우리의  우정(友情)이 금갈리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분명한 건, 지금도 저들한테 듣고 싶다네.
    문재인 대통령은 간첩이 아니며 그 난수표(亂數票)는 이러이러한 거였다는 해명을 말일세.

    2020년 10월 한글날 전일에 955호는 응답하라 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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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

    학습 장애 어린이를 위한 기금 모금 만찬에서 그 곳에 출석하였던 사람들은 어느 학생의 아버지가 한 연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학교와 교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한 다음, 질문을 하나 하였습니다.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한 자연이 하는일은 모두 완벽하지요.
    그러나 나의 아들 Shay 는 다른 아이들이 배우는 만큼 배울 수가 없고 다른 아이들이 이해하는 만큼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자연의 섭리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청중들은 그 질문에 조용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계속하였습니다.

    “ Shay 와 같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불구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진정한 인간성을 깨닫게 하여주는 계기가 오게 되지요.
    그리고 그 기회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 가에 따라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Shay 와 나는 공원을 산책하고 있던 중  Shay 도 아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어요.
    Shay가 묻더군요, ‘재내들 나도 끼어줄까?’
    비록 Shay 같은 아이를 자기편에 넣어 주려고 하는 아이들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만일 Shay가 자기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Shay에게 절실히 필요한 소속감과 자신감을 갖게 되리라 생각 하였습니다.  
    나는 구장에 있는 한 아이에게로 가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Shay도 같이 끼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진행표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 하더군요.
    ‘지금 8회인데 우리편은 여섯점이 뒤지고 있습니다.
    우리팀에 들어와서 9회에 타석에 넣을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Shay는 그 팀의 의자로 어렵사리 가더니만  팀셔쓰를 입고는 활짝 웃는 모습에 나는 마음이 흐믓하여 눈물이 나더군요.
    내 아들이 팀에 합류하게 되어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그아이들도 보았던 것 같습니다.
    8 회말에 Shay의 팀은 몇점 올렸으나 아직 3점이 뒤지고 있었지요.

    9회 초에 Shay는 오른쪽 외야에 서 있었는데 비록 공이 자기에게 오지도 않았지만 내가 스탠드에서 손을 흔들어 줄 때 그 아이는 글러브를 끼고 시합에 참여하여 구장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입이 귀까지 찢어지도록 웃으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9회 말에 Shay의 팀이 또 득점하더군요.
    이제 2아웃에 만루였어요.
    이기려면 다 들어와야 하는데, Shay의 타격 차례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Shay에게 타석을 내어주어 이길 찬스를 포기할까요?
    놀랍게도, Shay에게 타봉이 주어졌어요.
    Shay 는 공을 다루는 것은 고사하고 타봉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그 아이가 공을 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요.
    어떻든 간에 Shay 는 타석에 섰습니다.

    투수는 상대팀이 Shay의 생애에 이 순간을 위하여  이길 기회를 제쳐놓은 사실을 알고는 Shay의 타봉에 최소한 공이 닿기라도 하도록 몇발작 앞으로 와서 공을 뛰워 천천히 던졌습니다.   

    첫 공이 날아왔지만 Shay는 어설프게 헛치고 말았습니다. 
    투수는 몇 발자국 더 앞으로 와서는 공을 살짝 Shay에게로 던졌습니다.
    천천히 날아오는공을  Shay는 간신히 땅볼로 맞혀 공은 바로 투수 뒤에 떨어졌습니다.

    시합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죠.
    투수가 천천히 오는 땅볼을 집어 쉽사리 1루 수비에게 던 질수가 있었습니다.
    Shay는 아웃되고 시합은 끝날판 이었습니다.
    그런데, 투수는 공을 1루 수비수 머리위로 아무도 공을 잡을 수 없는곳으로 던지더군요.

    스탠드에 있는 사람들과 양 팀 선수 모두가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Shay, 1루로 뛰어! 1루로 뛰라구!
    Shay는 그렇게 멀리 뛴 적이 없지요.
    하지만 그 아이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는 선을 따라 지척거리며 뛰어 1루로 가게 되었어요.
    모두가 소리르 지르더군요. 
    ”2루로 뛰어, 2루로 뛰라구!“
    Shay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즐거워서 어설프게 뛰어 애써 2루에 다달았지요.
    Shay가 2루에 도달 할 즈음 오른쪽 외야수가 공을 잡았습니다.
    상대편에서 가장 작은 아이인데 자기 팀이 승리할 수 있는 영웅이 될 첫 기회였는데요.
    그 아이는 2루로 던져 2루 수비수가 충분히 Shay의 몸에 공을 댈 수가 있어 아웃시킬수가 있었을텐데,
    그아이 역시 투수의 의도를 알고는 일부러 공을 3루 수비수 머리 위로 높이, 멀리 던지더군요.
    앞의 선수가 홈으로 돌아 오는 동안 상대편 유격수가 달려와 Shay의 몸을 3루 쪽으로 돌리며 소리치더군요.
    ‘Shay, 3루로 뛰어! 3루로 뛰라구!‘  
    그래서 Shay는 어렵사리 3루로 향하여 뛰었습니다.
    모두가 소리쳤습니다.
    “Shay, Shay, Shay, 3루로 뒤어! 끝까지 뛰어!
    Shay가 3루로 뛰는 동안 양팀의 아이들과 관중들 모루 일어나 함성을 질렀습니다.
    “Shay, 홈으로 뛰어! 홈으로 뛰어!”
    Shay는 홈으로 뛰어 플레이트를 밟았습니다.

    Shay는 만루타를 쳐서 자기 팀을 승리시킨 영웅이 되어  무척이나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날” 그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가만히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은  진정한 사랑과 인간애를 이 세상에 보태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Shay는 그 다음 여름을 넘기지 못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그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났지요.
    그 아이는 그 날의 영웅 됨을 잊지 결코 못하하더니...
    집에 와서는 눈물 어린 엄마가 그날의 이 작은 영웅을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나는 참으로 행복하였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한 끝맺음 말
    우리는 이메일로 농담을 수도 없이 생각없이 보내지요.
    그러나 인생의 선택에 관한 글에 관하여는 주저하게 됩니다.

    거칠고, 천박하고, 때로는 음란물까지 거침없이 공중파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그러나 인생의 문제에 있어서는 학교나 직장에서 주로 무시되고 있습니다.
    귀하가 이 글을 보내고자 한다면, 이런 종류의 글을 받을만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보내리라 생각됩니다.
    이 글을 보낸 사람은 우리 모두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에게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수 많은 기회를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두 사람 간의 하찮은 일일지라도 선택의 여지가 생기게 되지요.

    이 작은 사랑과 인간애를 전달할 것인가요?
    아니면, 이 기회를 무시하고 이 세상사에 냉혹함을 남기겠습니까?
    어느 현자는 말하기를 “어느 사회이든 그 사회가 그 중 가장 불행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평가 된다” 라고 하지요.

    이제 당신의 선택이 있습니다.

    1. 지우시겠습니까?
    2. 보내시겠습니까?

    귀하의 날이 Shay의 영광의 날이 되기를

    Shay를 기억하며 이 글을 전달하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가호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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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가 많은 나무 아래 하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