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제1권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1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 그 연결의 본질
1.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향하게 함
2.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우리 자신의 진면목을 깨닫게 함
3.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인간의 모습
제2장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를 아는 지식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가
1.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경건의 관계
2.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신뢰와 경외로 이어짐
제3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본성적으로 심겨졌음
1.본성적으로 심겨진 신에 대한 관념
2.종교는 인위적으로 꾸며낼 것이 아님
3.신에 대한 지각은 없어지지 않음
제4장 무지에 의해서나 악의에 의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짓눌리거나 더럽혀짐
1.사람의 무지와 미신
2.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부인
3.진리와 결합하여야만 순전한 종교임
4.악인의 외식이 신에 대한 지각을 억누름
제5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주의 창조와 그 지속적인 운행에서 분명히 드러남
(하나님이 그의 창조하신 만물에 드러내셨음, 1-10)
1.하나님의 영광의 증표가 세상 만물에 분명히 새겨져 있음
2.하늘과 땅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의 증거
3.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의 탁월한 증거임
4.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의 배은망덕함
5.창조주와 피조물을 서로 혼동하는 오류
6.우주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바라보게 함
7.사람을 향한 섭리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8.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9.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는 올바른 길
10.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목적
(사람은 하나님을 깨닫고 경배하지 못하며 미신과 혼란 속에 빠짐, 11-12)
11.세상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가 사람에게 유익이 없음
12.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인간의 미신과 철학
(오류 가운데 있기를 고집하므로, 도저히 핑계할 수 없음, 13-15)
13.인간이 만들어낸 그릇된 종교는 오류 가운데서 하나님을 거역함
14.하나님의 영광이 자연에 밝히 나타나 있으나 사람은 자기의 길을 고집함
15.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처신은 변명의 여지가 없음
제6장 창조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데에는 성경이라는 안내자와 교사가 필요함
제7장 성령의 증거가 성경의 권위의 확립에 필수적임. 성경의 신빙성이 교회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논리는 사악한 거짓임
제8장 성령의 신빙성은 인간의 이성 범주 내에서도 충분히 입증됨
제9장 성경을 버리고 계시들을 좇는 광신자들은 경건의 모든 원리를 파괴시킴
제10장 성경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제시하여 모든 이방 신들을 물리치고 모든 미신을 교정함
제11장 하나님께 눈에 보이는 형상을 부여하는 것을 불경스러운 행위이며, 우상을 세우는 것은 참되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임
제12장 하나님은 우상과 전적으로 구별되시므로 오직 그에게만 완전한 존귀를 드려야 함
제13장 성경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한 본질이시며 그 안에 삼위(三位)가 계심을 가르침
제14장 우주와 만물의 창조에 있어서까지 성경은 명확한 표지들로써 참되신 하나님을 거짓 신들과 구별지음
제15장 사람의 창조된 본성, 영혼의 기능, 하나님의 형상, 자유의지, 원시의(原始義)
제16장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그의 권능으로 양육하시고 유지하시며, 그의 섭리로 그 모든 부분을 다스리심
제17장 섭리 교리의 올바른 적용
제18장 하나님은 불경한 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심판을 시행하시며, 동시에 스스로 부정함이 없이 순결을 유지하심
제2권 율법 아래에서 조상들에게 나타나셨고,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구속주 하나님,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제1장 아담의 타락과 반역으로 온 인류가 저주를 받았고 원시상태에서 부패하였음, 원죄론(原罪論)
제2장 사람의 비참한 현 상태 : 의지의 자유를 빼앗긴 채 종의 상태에 매여 있음
제3장 사람의 부패한 본성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저주받을 것뿐임
제4장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제5장 자유 의지를 변호하여 제기되는 흔한 반론들을 반박함
제6장 타락한 인간은 마땅히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구해야 함
제7장 율법이 주어졌으나, 이는 구약 백성을 그 아래 가두어두기 위함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 대한 소망을 그가 오시기까지 견고히 하기 위함이었음
제8장 도덕법(십계명)의 해설
제9장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에서 유대인들에게도 알려지셨으나 오직 복음 안에서 분명히 알려지셨음
제10장 구약과 신약의 유사점
제11장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제12장 그리스도께서는 중보자의 직분을 행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셔야 했음
제13장 그리스도께서 인간 본성의 참 본질을 취하셨음
제14장 중보자의 두 본성이 한 위격을 이룸
제15장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목적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지자직, 왕직, 제사장직 등, 그의 세 가지 직분을 보아야 함
제16장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구속자의 기능을 어떻게 행하셨는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논의
제17장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우리를 위해 얻으셨다는 진술은 올바르고도 적절함
기독교 강요 (중) 목차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제1장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령의 은밀한 역사로 말미암아 베풀어짐
제2장 믿음 : 그 정의와 특성
제3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중생, 그리고 회개
제4장 스콜라 신학자들의 회개론 : 복음의 순결성과는 전혀 다름 : 고해와 보속에 대한 논의
제5장 보속설을 보충하기 위한 장치들 : 면죄부와 연옥
제6장 그리스도인의 삶과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제7장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체 : 자기를 부인함
제8장 십자가를 지는 일 : 자기 부인의 일부
제9장 영생에 대한 묵상
제10장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세
제11장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 용어 정의와 문제의 요점
제12장 값없는 칭의의 교리를 확실히 납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우러러 하나님의 심판대를 바라보아야 함
제13장 값없는 칭의의 교리에서 유념해야 할 두 가지 사실
제14장 칭의의 시작과 그 이후의 과정
제15장 행위의 공로에 대한 자랑은 의를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무너뜨림
제16장 칭의의 교리에 오명을 씌우기 위한 교황주의자들의 거짓 비난에 대한 반박
제17장 율법의 약속과 복음의 약속의 일치
제18장 행위의 의는 상급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됨
제19장 그리스도인의 자유
제20장 기도: 믿음의 주요 활동, 그리고 기도로써 얻는 일상적인 유익
제21장 영원한 선택 : 하나님은 이로써 어떤 이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또 어떤 이들은 멸망에 이르도록 예정하셨음
제22장 성경적 증거들을 통하여 선택 교리를 확증함
제23장 이 교리를 항상 공격해 온 거짓된 비방들에 대한 반박
제24장 선택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확증되며, 악인은 그들에게 정해진 공의로운 멸망을 자초함
제25장 최후의 부활
기독교 강요 (하) 목차
제4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회(會)에 들이셔서 그 속에서 지키시는 외적인 수단 혹은 목표
제1장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로서 연합을 유지해야 할 참된 교회
(신자의 어머니인 거룩한 공교회, 1-4)
1.교회의 필연
2.가시적 교회와 보편 교회
3.교회의 통일성
4.신자의 어머니인 가시적 교회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사역자들, 5-6)
5.교회를 통한 교육, 그 가치와 의무
6.인간의 사역과 그 한계성
(가시적 교회: 그 구성원과 표지, 7-9)
7.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
8.인간의 판단의 한계와 하나님의 배려
9.교회의 표지
(교회에 이런 표지가 있는 한 아무리 다른 결점들이 있더라도 거거서 분리해서는 안됨, 10-16)
10.무시해서는 안 될 교회의 권위
11.교회의 표지의 중요성
12.교회의 표지를 근거로 부당한 분리를 방지하여야 함
13.도덕적인 결점도 분리의 이유가 될 수 없음
14.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의 예
15.악인과의 교제
16.분열을 조장하는 자들의 거짓된 동기
제2장 거짓 교회와 참 교회의 비교
(참된 교리와 예배에서 벗어난 사실이 참된 교회의 주장을 무효화시킴, 1-6)
1.교회의 존재 여부를 가늠하는 기본 원리
2.로마 교회의 주장
3.거짓 교회의 모습: 말씀을 청종치 않고 인간적인 계승만을 주장함
4.교회는 말씀 위에 세워짐
5.분열과 이단의 비난에 대한 답변
6.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이 교회의 연합의 근거임
(로마 교회와 고대 이스라엘 비교, 7-11)
7.로마 교회와 패역한 이스라엘 교회의 상태
8.유다와 이스라엘의 비교
9.로마 교회의 부패성
10.로마 교회는 교회가 아님
11.교황제도 아래 남아 있는 교회의 자취
12.로마 교회와 남은 자들
제3장 교회의 교사들과 사역자들 : 그들의 선출과 직분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 그 높고 절실한 기능들, 1-3)
1.하나님께서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목적
2.사람의 사역의 의의
3.사람의 사역의 위엄과 특권
(성경에 나타난 교회의 각종 직분들, 4-9)
4.에베소서 4장에 나타난 교회의 직분들
5.일시적인 직분들과 영구적인 직분들
6.사도와 목사
7.목사와 개교회
8.장로
9.집사
(사역자를 세우는 정당한 질서, 10-16)
10.정당한 질서의 필요성
11.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
12.사역자의 자격과 세울 때의 자세
13.누가 사역자들을 택하는가?
14.하나님의 택하심과 교회의 질서
15.회중의 선출
16.임직의 예식
제4장 고대 교회의 상태와 교황제 확립 이전의 교회 정치의 형태
(교회의 사역의 제도적 발전, 1-4)
1.고대 교회는 성경의 전례를 충실히 따랐음
2.감독과 장로
3.감독과 장로의 주요 임무
4.대감독과 총대감독
(집사직과 교회 재산의 운용, 5-9)
5.집사직
6.교회 재산의 용도
7.교회 수입의 네 가지 용도
8.교회의 재물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것임
9.사역자들을 위한 예비적인 훈련
(사역자들의 선출과 임직의 역사적 발전, 10-15)
10.사역자들의 임직 절차
11.감독 선출과 교인들의 동의
12.라오디게아 공의회의 법령
13.성직자의 선출과 정치적 통치자의 인준
14.임직의 절차
15.수도대주교가 임직을 거행함
제5장 고대 교회의 정치 형태가 교황제의 횡포로 인하여 완전히 붕괴됨
(사람들의 선택이 없이 무자격자들을 임직시킴, 1-3)
1.주교 선출에서 나타나는 부패함
2.주교 선출의 권한을 빼앗김
3.주교 선출권에 대한 군주들의 개입
(성직 수여 및 성직록과 관련한 악행들, 4-7)
4.사제와 부제의 서품과 관련한 부패상
5.성직 수여의 부패상
6.성직록의 비리
7.엄청난 악행들
(성직을 가진 수도사, 참사회원, 기타 성직자들의 부패상, 8-10)
8.수도사들의 성직 임명
9.세속 사제들의 부패상
10.성직의 남발과 부패상
(주교들, 사제들, 부제들과 관련한 부패상, 11-19)
11.교회와 상관 없는 주교와 교구 사제들
12.그레고리우스와 베르나르 시대의 형편
13.교황 제도 하의 교회의 실상
14.사제들의 부패한 행실
15.부제직의 부패함
16.교회 수입의 운영의 부패함
17.교회의 화려한 치장
18.교회 수입의 부당한 사용
19.성직자들의 보유 재산
제6장 로마 관구의 수위권(首位權)
(베드로의 수위권 가설 반박, 1-7)
1.로마 관구에 굴복해야 한다는 주장
2.구약의 대제사장직은 그리스도의 모형임
3.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도 교황의 수위권과는 관계 없음
4.열쇠에 대한 왜곡된 주장
5.베드로의 특권
6.교회의 터
7.베드로와 사도들의 관계에 대한 성격의 증거
(교회의 통치권은 오직 그리스도께 있음, 8-10)
8.교회의 통치권
9.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
10.교회의 하나 됨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해도 그것은 로마의 영구한 수위권과 무관함, 11-13)
11.베드로의 수위권과 로마의 수위권
12.수위권이 안디옥으로부터 로마로 옮겨졌다는 주장
13.교회들의 서열
(베드로의 로마 거주는 근거가 없고, 바울의 거주가 분명히 드러남, 14-15)
14.베드로의 로마 거주에 대하여
15.베드로의 로마 감독직은 그 근거가 희박함
(로마 교회가 칭송을 받았으나 전 교회에 대한 수위권은 없음, 16-17)
16.초기 로마 교회의 위상
17.교부들은 로마 관구의 수위권에 대해서 몰랐다
제7장 로마 교황제의 기원과 성장 : 스스로 최고의 자리로 부상(浮上)하여 결국 교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모든 제어 장치를 무너뜨리기에 이름
(고대의 로마 관구의 위상, 1-4)
1.니케아와 에베소 공의회에서의 로마 관구의 위상
2.칼케돈, 콘스탄티노플, 카르타고, 아퀼레이아 공의회에서의 로마 관구의 위상
3.초기에는 로마 주교의 교만한 칭호들이 없었음
4.'전세계적 주교'란 칭호에 대한 그레고리우스 1세의 태도
(로마 교황의 권위의 제한성: 황제 및 다른 주교들과의 관계, 5-10)
5.로마의 막강한 재판권의 기원
6.고대의 로마 관구의 권세의 특징
7.주교들 상호 간의 훈계와 견책
8.공의회 소집의 권한
9.상소와 관련한 부패상
10.로마 교황의 위상에 대한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
(로마 관구의 보상, 11-16)
11.거짓 조작과 월권 행위
12.그레고리우스 1세 때의 로마 관구의 위상
13.그레고리우스 1세 주교의 직무
14.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수위권 다툼
15.콘스탄티노플에 관한 공의회의 결정에 대한 레오의 반발
16.콘스탄티노플 주교의 교만과 그레고리우스의 태도
(왕위 찬탈자들과의 협력에 의한 로마 관구의 수위권의 확립과 강화, 17-18)
17.로마 관구의 수위권의 확립
18.베르나르 시대의 교회의 부패상
(후대의 교황주의의 주장은 그레고리우스와 베르나르의 원리들과 모순됨, 19-22)
19.오늘날의 교황들의 주장
20.교황권 확립을 위하여 거짓 문서들을 사용함
21.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정죄
22.부패한 교황제의 현실
(후대의 교황제를 고발함, 23-30)
23.로마에 과연 교회와 주교의 직분이 존재하는가?
24.로마의 배교(背敎)
25.로마 교황은 적그리스도임
26.교황제는 교회의 질서와 정반대 됨
27.교황들의 사악한 행위와 이단적인 신앙
28.교황 요한 22세의 오류
29.교황들의 부패한 도덕성
30.추기경직의 문제성
제8장 신조에 대한 교회의 권세 : 교황제의 무절제한 방종으로 이한 순결한 교리의 부패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교회의 권세, 1-9)
1.교회의 권세의 목적과 제한성
2.모세와 제사장들의 권위
3.선지자들의 권위
4.사도들의 권위
5.하나님의 계시의 다양한 방법
6.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
7.아들을 통한 완전하고 영원한 계시
8.사도들의 사명
9.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의 한계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교리적 무오성의 거부, 10-16)
10.교회의 권세에 대한 로마 교회의 입장
11.교회와 신자들 개개인에게 주어진 약속들
12.교회는 무오하지 않음
13.말씀과 성령은 반드시 함께 역사함
14.사도들의 글과 교회의 전통
15.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함
16.교황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실례에 대한 반론
제9장 공의회들과 그 권위
(공의회들의 진정한 권위, 1-2)
1.두 가지 예비적 발언
2.참된 공의회와 거짓된 공의회
(목자들의 타락과 공의회의 부패, 3-7)
3.교회의 존재와 목회자
4.목회자들의 타락에 대한 성경의 예언
5.목자들을 분별해야 함
6.거짓된 공의회는 진리를 거스름
7.요 11:47의 공회의 실례
(공의회도 성경의 표준에서 벗어나 타락할 수 있으며, 또한 모든 공의회에는 인간적인 연약함이 상존함, 8-11)
8.공의회의 권위의 근거
9.공의회들 사이의 모순
10.공의회에서 범한 인간적인 과오들
11.공의회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에 대한 바른 자세
(공의회의 권위는 절대적이 아님, 12-14)
12.맹종은 있을 수 없음
13.공의회의 성경 해석의 의의
14.공의회의 성경해석권에 대한 그릇된 주장
제10장 법을 제정하는 권세, 그 권세를 빌미로 영혼들에게 저질러진 교황과 그 신복들의 극히 야만적인 횡포와 살육
(교회법과 전통,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신자의 양심, 1-4)
1.인간의 전통
2.양심을 얽어매는 로마 교회의 법들
3.양심의 본질
4.양심의 속박과 자유
(인간의 법과 양심의 문제: 오직 하나님만이 입법자이심, 5-8)
5.인간의 법과 양심
6.교황주의가 제정한 교회법의 부당함
7.다스림은 오직 하나님의 대권임
8.사람의 법의 타당성을 판별하기 위한 지침
(예배 의식에 관한 교회법들의 부당함과 어리석음, 9-18)
9.양심을 얽어매는 교회법의 부당함
10.하나님의 법을 저버리는 교회법
11.교회법의 무용성과 어리석음
12.로마 교회의 의식들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음
13.로마 교회는 무수한 전통들로 신자의 양심을 억압함
14.의식은 그리스도를 감추지 말고 그를 드러내어야 함
15.의식들의 부패성
16.인간의 법을 구별하는 영구한 진리
17.로마 교회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하지 말라는 금령을 무시한 것들임
18.로마 교회의 전통들은 사도들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님
(로마 교회의 무용한 온갖 의식들은 사도들과 관계 없음, 19-22)
19.사도 시대 이후부터 무용한 의식들이 생겨났음
20.한 가지 시례: 성수(聖水)
21.행 15:20의 사도들의 법령
22.사도들의 법령의 의의
(인간이 만든 예배의 전통과 의식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정죄를 받음, 23-26)
23.인간이 만들어낸 예배는 말씀에서 떠난 것으로 하나님께 가증한 것임
24.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들어낸 예배를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이유
25.사무엘과 마노아의 예
26.바리새인의 누룩에 대한 주님의 경계
(정당한 교회법의 필요성과 그 올바른 시행에 대한 지침, 27-32)
27.교회 질서 유지를 위한 법의 필요성
28.정당한 교회의 법들을 구별하는 표지
29.정당한 교회법들의 실례
30.정당한 교회법들과 관련한 위험 요소
31.정당한 교회법들의 시행 지침
32.오류를 방지하여야 함
제11장 교회의 재판권과 교황제에서 저지른 남용
(재판권과 권징: 열쇠의 권세와 국가의 관원들, 1-5)
1.교회의 재판권의 기초인 열쇠의 권세
2.매고 푸는 권세
3.교회의 재판권과 세속의 재판권
4.교회와 그리스도인 관원들의 관계
5.교회의 재판권은 영적인 성격을 띰
(감독들이 부당하게 권세를 취함으로서 나타난 부패한 현실, 6-10)
6.교회의 재판권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님
7.재판권과 권징의 부패
8.주교들이 세속의 권세를 갖는 것은 정도에 어긋나는 것임
9.주교들이 집권자들의 권세를 취함
10.주교들이 세속의 권세를 차지하게 된 경위
11.교황이 세속적인 권력을 소유하게 된 경위
12.콘스탄티누스의 헌정에 대한 어리석은 주장
13.하인리히 4세 황제와 힐데브란트의 관계
14.교회 재산 탈취에 대한 그레고리우스 1세의 조치
15.로마의 성직자들의 면책 특권
16.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실례
제12장 교회의 권징 : 징계와 출교로 나타남
(권징의 본질, 목적, 그리고 시행 절차, 1-7)
1.교회의 권징의 필연성과 그 본질
2.교회의 권징의 절차
3.은밀한 죄와 공개적인 죄
4.가벼운 죄와 무거운 죄
5.권징의 세 가지 목적
6.권징의 실제적인 시행 방법
7.권징의 대상에는 예외가 없음
(권징은 정도에 알맞게 온유함으로 시행되어야 함, 8-13)
8.권징의 시행은 가혹해서는 안 됨
9.권징은 온유하게 시행되어야 함
10.출교는 교정을 목적으로 하는 것임
11.권징 시행의 필수적인 지침
12.도나투스주의자들과 재세례파의 오류
13.권징 시행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권면
(금식의 용도와 목적과 본질, 그리고 금식과 관련한 오류들, 14-21)
14.권징의 나머지 부분들
15.금식의 세 가지 목적
16.금식과 기도
17.회개의 표시로서의 금식
18.금식의 본질
19.금식에 대한 그릇된 사고들
20.금식과 관련한 사순절 행사의 폐해
21.금식을 구실로 호사를 누리는 부패한 실태
(성직자의 결혼 금지 관행의 폐해, 22-28)
22.성직자들의 권징과 그 부패의 실태
23.성직자의 결혼 금지는 성경과 모순됨
24.교황주의자들의 그릇된 성경 해석
25.성경에 근거한 그릇된 논지에 대한 반론
26.고대 교회와 성직자의 독신
27.사제들의 독신에 대한 관행
28.고대 교회를 구실로 한 결혼 금지론에 대한 반박
제13장 서원(誓願) : 경솔한 서원은 자신을 비참하게 얽어매는 것임
(서원의 본질, 그리고 서원과 관련한 오류들, 1-7)
1.사람들의 불신앙과 경솔한 서원
2.서원은 하나님께 하는 것임
3.서원을 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4.감사의 서원과 회개의 서원
5.미래와 관련되는 서원들
6.정당한 서원들
7.서원과 관련된 미신
(수도사의 종신 서원과 수도원의 실태, 8-10)
8.고대 교회의 수도원의 실태
9.고대 교회의 수도원의 실태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
10.고대의 수도원주의와 후대의 수도원주의의 비교
(수도사 생활의 완전함에 대한 그릇된 주장들, 11-16)
11.수도원 지상주의의 허구성
12.그리스도 삶의 규범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됨
13.마태복음 19:21의 의미
14.수도원의 분파주의
15.수도사들의 타락상
16.고대의 수도원주의의 부족한 점
(수도사의 독신의 서원의 오류, 17-19)
17.수도사의 독신의 서원
18.디모데전서 5장의 과부들의 경우
19.수녀들의 경우
(부당하며 미신적인 서원의 폐기, 20-21)
20.부당한 서원을 했을 경우의 처신
21.독신의 서원을 폐기하는 문제
제14장 성례
(성례의 정의와 역할, 1-6)
1.성례의 정의
2."사크라멘툼"의 의미
3.성례의 역할
4.말씀이 외형적인 표징을 해명하여야 함
5.약속의 인(印)인 성례
6.언약의 표징인 성례
(성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갖가지 반론들을 반박함, 7-19)
7.악인들도 성례를 받는다는 사실에 근거한 어리석은 반론
8.성령의 역사하심에 근거한 어리석은 반론
9.성령과 성례
10.인간사의 사례를 통하여 성례와 성령의 관계를 설명함
11."씨"를 통하여 성례와 성령의 관계를 설명함
12.성례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함
13."사크라멘툼"이라는 단어는 용례
14.마술적인 성례관의 오류
15.물질과 표징의 구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16.성례와 관련하여 경계해야 할 두가지 악
17.성례의 참된 기능
18.넓은 의미에서의 성례
19.교회의 일상적인 성례
(구약의 성례들과 신약의 성례들, 20-26)
20.구약의 성례들: 그리스도를 지향함
21.할례, 결례, 희생 제사의 의미
22.신약 시대의 성례들이 그리스도를 더욱 충만히 드러낸ㅁ
23.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의 유사점과 차이점
24.할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25.구약의 의식들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에 대한 해명
26.구약과 신약의 성례의 비교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
제15장 세례
(세례의 목적과 세례를 통하여 얻는 세가지 도움, 1-6)
1.세례의 목적
2.세례가 주는 첫 번째 도움: 우리의 죄 씻음을 보증함
3.세례는 전 생애를 씻음 받는 표임
4.세례와 죄 사함의 관계
5.세례가 주는 두 번째 도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새생명을 얻는 표징임
6.세례가 주는 세 번째 도움: 그리스도와 연합을 보증함
(요한의 세례와 사도들의 세례,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세례의 상징물들, 7-9)
7.요한의 세례와 사도들의 세례
8.세례 베푸는 자가 달라도 세례는 동일함
9.구약에 나타난 세례의 상징물들
(세례 받은 신자와 원죄, 세례의 신앙고백으로서의 역할, 10-13)
10.세례와 원죄, 신자의 의
11.우리 속에 있는 죄와의 싸움
12.죄와의 싸움에 대한 바울 자신의 진술(로마서 7장)
13.세례는 공적인 고백의 표지임
(세례의 주인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재세례는 부당함, 14-18)
14.세례에 나타나는 주님의 역사하심
15.믿음을 확증케 하고 우리의 고백을 상징하는 세례
16.세례의 가치는 그 시행자에게 있는 것이 아님
17.회개가 지연된다 해도 세례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님
18.바울이 재세례를 시행했다는 논지에 대한 반박
(세례의 구체적인 시행, 여자가 세례를 베푸는 문제, 19-22)
19.세례의 구체적인 시행 방식
20.세례는 개인이 사사로이 행할 것이 아님
21.여자는 세례를 베풀 수 없음
22.십보라의 예를 따르는 것은 부당함
제16장 유아 세례 :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와 일치함, 그리고 그 표징의 본질
(유아 세례의 의미와 아브라함 언약을 통한 그 정당성의 입증, 1-6)
1.유아 세례에 대한 공격
2.세례의 의미
3.세례와 할례의 관계
4.세례와 할례의 차이는 외형적인 의식의 차이뿐임
5.유아 세례의 정당성
6.방식은 다르나 동일하게 언약을 확증함
(그리스도의 모범과 유아 세례의 유익, 7-9)
7.그리스도와 어린아이들
8.유아 세례는 믿음의 원칙으로 보아야 함
9.유아 세례가 주는 유익
(재세례파의 주장에 대한 반박, 10-16)
10.세례와 할례가 서로 다르다는 재세례파의 주장
11.할례의 약속은 영적인 약속이었음
12.육체적 자녀와 영적 자녀
13.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임
14.유대인들의 특권
15.약속의 문자적 성취
16.세례와 할례의 차이에 대한 주장을 반박함
(유아에게는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반론에 대한 답변, 17-20)
17.유아도 그리스도 안의 생명을 누려야 함
18.그리스도의 모범에 근거한 논지
19.유아에게는 지식이 없다는 반론
20.유아에게는 회개나 믿음의 능력이 없다는 반론
(택하신 유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 21-22)
21.세례의 표징이 그것에 대한 이해보다 앞선다
22.유아 세례를 공격하는 나머지 논리들
(초기 교회의 유아 세례, 23-24)
23.사도행전의 증거에 근거한 반론
24.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에 근거한 논지
(성경 본문에 근거한 각종 반론에 대한 논박, 25-30)
25.세례와 중생을 연관짓는 반론
26.세례가 구원에 필수 조건이라는 반론
27.세례에 대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근거로 한 반론
28.막 16:16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29.예수님의 수세(受洗)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30.세례와 성찬
(세르베투스의 반론에 대한 논박과 결론, 31-32)
31.세르베투스의 반론
32.유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에 대한 우리의 감사
제17장 그리스도의 성찬, 그리고 성찬으로 말미암아 얻는 유익
(성찬은 떡과 포도주를 통하여 신령한 양식을 제공해 줌, 1-3)
1.성찬의 신비
2.성례가 주는 확신과 기쁨
3.떡과 포도주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유사성
(성찬에 인쳐진 약속과 신비 - 이는 설명보다 느낌을 통해서 아는 것임, 4-7)
4.성찬과 십자가
5.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참여함
6.아우구스티누스와 크리소스톰의 진술
7.성찬의 신비는 인간의 말과 생각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
(생명을 주는 교제와 성령의 역사하심, 8-10)
8.그리스도의 내주하심
9.그리스도의 육체가 생명을 준다는 말씀의 의미
10.성찬의 상징과 그리스도의 몸의 임재
(외형적 표징과 영적 실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스콜라 학자들의 오해와 화체설의 허구성, 11-15)
11.성례의 실체와 표징의 효과
12.그리스도의 임재
13.떡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스콜라 학자들의 오류
14.화체설의 허구
15.화체설의 실질적인 근거와 그것에 대한 논증
(그리스도의 몸의 편재성 개념에 근거한 그리스도의 성찬 임재론에 대한 반론, 16-31)
16.또 다른 그릇된 주장
17.그리스도의 몸과 관련한 오류
18.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
19.그리스도의 임재를 생각할 때에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
20.성찬 제정시 하신 주님의 말씀
21.주님의 말씀에 대한 환유법적 해석
22."이것은 ...이다"라는 구문의 의미
23.완전한 문자적 해석은 불가능함
24.우리의 해석이 인간의 이성의 지배를 받는다는 비난에 대한 반박
25.말씀은 이해와 해석이 필요함
26.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한 해명
27."승천"의 의미
28.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
29.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30.그리스도의 편재성 개념의 허구
31.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마지막 정리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이 참여하는 육체적 임재의 참된 본질, 32-24)
32.그리스도의 임재는 하늘의 신비임
33.영적이면서 실질적인 그리스도의 몸에의 참여
34.불신자들의 성찬 참여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증언
(성찬물 숭배 행위에 대한 논의, 35-37)
35.성찬물 숭배 행위를 배격함
36.성찬물 숭배 행위는 미신이며 우상숭배임
37.성찬물 숭배와 관련된 미신적인 예식들의 허구성
(신자 간의 사랑, 말씀 선포, 합당한 참여, 성찬 시행의 적절한 형식과 횟수 등, 성찬과 관련하여 특별히 강조할 문제들, 38-46)
38.성찬과 신자 상호 간의 사랑
39.성찬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함
40.합당치 못한 자들이 성찬에 참여하는 문제
41.과연 누가 성찬에 합당한가?
42.믿음과 사랑이 합당함의 요건임
43.성찬의 적절한 시행
44.성찬은 자주 시행하여야 함
45.성찬 참여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와 크리소스톰의 증언
46.매년 한 차례 성찬을 시행하는 관례를 배경함
(평민에게 잔을 금하는 행위에 대한 반박, 47-50)
47.평민에게 잔을 금하는 폐단
48.잔을 금하는 논리에 대한 반론
49.잔을 모두에게 분배한 교회사의 실례
50.성찬 제정 시의 말씀에 나타난 증거
제18장 교황제의 미사 : 그리스도의 성찬을 더럽힐 뿐 아니라 말살시키기까지 하는 모독 행위임
(미사는 주의 성찬을 무효화시키는 불경한 것임, 1-7)
1.로마 교회의 가르침
2.미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독임
3.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은폐함
4.말라기 1:11의 근거에 대한 반박
5.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망각하게 함
6.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은택을 제거함
7.미사는 성찬을 무효화시킴
(초기의 관례와 오류의 발생, 8-11)
8.사적인 미사는 하나 된 교제를 부인하는 것임
9.미사는 고대 교회에도 그 전례가 없었음
10.교부들의 증거에 근거한 논리를 반박함
11.성찬과 관련한 고대 교부들의 오류
(성찬을 제사와 연관짓는 사고와 "제사"의 성경적 용례, 미사는 참람한 것임, 12-18)
12.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성찬의 차이
13."제사"의 의미와 그 두가지 종류
14.미사를 파는 불경한 자들
15.제사의 허구성에 대한 플라톤의 진술
16."감사의 제사"
17."감사의 제사"에 대한 성경적 증거
18.미사 그 자체가 불경임
(17, 18장의 결론: 성례는 세례와 성찬밖에 없음, 19-20)
19.세례와 성만찬이 성례임
20.두 가지 성례 외에는 성례가 없음
제19장 다섯 가지 다른 의식들 : 지금까지 잘못 성례로 간주되어 전반적으로 그렇게 인정받아왔으나, 그 허구성이 입증 됨 : 그 의식들의 진정한 본질을 규명함
(세례와 성찬 외의 소위 성례라는 것들은 성경의 근거도, 고대 교회의 근거도 없음, 1-3))
1.일곱 성례, 특히 종부성사의 허구성
2.오직 하나님만이 성례를 세우심
3.고대 교회는 "일곱" 성례를 알지 못했음
(견진례(堅振禮)는 성례가 아님, 4-13)
4.고대 교회의 관례
5.견진례에 대한 로마 교회의 가르침
6.사도들의 전례에 근거한 논지에 대한 반론
7."구원의 기름"은 허구임
8.견진례는 세례를 욕되게 하는 마귀의 교리임
9.견진례가 구원에 필수라는 논리의 허구성
10.견진례의 우월성에 대한 교황주의자들의 사고
11.견진례의 우월성에 대한 논지들의 유치함
12.고대에는 견진례라는 성례가 없었음
13.참된 의미의 견진이란?
(고해성사는 성례가 아님, 14-17)
14.고대 교회에서 고해의 관행
15.고해는 성례가 아님
16.사죄 선언을 성례로 보지 않는 모순
17.세례가 진정한 고해의 성례임
(종부성사는 성례가 아님, 18-21)
18.종부성사의 성경적 근거에 대한 반론
19.기름 바르는 행위는 효력이 없음
20.종부성사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명령도 약속도 없음
21.종부성사는 야고보의 말씀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님
(일곱 가지의 복잡한 소위 신품 성례의 허구성, 22-23)
22.한 가지 성례인가, 아니면 일곱 가지 성례인가?
23.그리스도께 일곱 직분을 다 적용시킴
24.하급의 직분자들은 실제의 직무와는 전혀 관계 없음
25.성직자의 삭발 의식
26.삭발의 근거를 나실인과 바울에게서 찾는 처사는 모순임
27.체발에 대한 역사적 이해
28."사제"와 "장로"
29.사제 임명과 관련된 의식들의 부당함
30.아론의 후계자들로 자처하는 논리의 모순
31.기름 붓는 의식도 근거가 없음
32.부제(집사)
33.차부제(주집사)
(결혼이 성례라는 주장의 허구성과 결혼과 관련한 로마 교회의 횡포, 34-37)
34.결혼은 성례가 아님
35.에베소서 5:28의 오해
36."뮈스테리온"의 번역 문제, 그리고 모순된 결혼관
37.결혼과 관련한 교황제의 횡포
(국가의 통치와 영적 통치의 상호 관계, 1-2)
1.영적 통치와 국가의 통치는 서로 별개임
2.두 "통치"는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님
(국가의 통치의 필연성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 3-7)
3.국가의 통치가 시행하는 주요 임무
4.통치자의 직위는 하나님께서 세우심
5.세속의 통치를 부인하는 자들에 대한 반박
6.통치자는 하나님의 대리인임
7.통치자의 권력을 성경이 인정함
(통치 형태, 통치자들의 의무, 전쟁과 세금의 문제, 8-13)
8.다양한 통치 형태
9.통치자들의 직책
10.통치자의 무력 사용의 정당성
11.전쟁 수행의 권한
12.전쟁 수행의 지침
13.세금 징수의 권한
(법과 소송 절차와 그리스도인의 의무, 14-21)
14.국가의 법과 모세의 율법
15.율법의 세 가지 부분
16.법들의 통일성과 다양성
17.그리스도인과 소송
18.그리스도인의 소송의 자세
19.법적 소송을 부인하는 태도에 대한 반론
20.그리스도의 명령과 신자의 법적 소송의 관계
21.바울의 진술의 바른 이해
(통치자에 대한 존경과 복종, 그리고 악한 군주에 대한 자세, 22-29)
22.통치자를 향한 존경
23.통치자에 대한 복종
24.불의한 통치자에 대한 자세
25.악한 통치자에 대한 자세
26.악한 통치자에 대한 복종
27.통치자에 대한 예레미야서의 예언
28.통치자의 권위에 대한 성경의 증거
29.통치자는 하나님께서 다루심
(폭정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와 하나님을 향한 순종, 30-32)
30.통치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
31.통치자들에 대한 합법적인 저지 수단
32.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가장 우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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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강요 1권 요약
1장
칼빈은 본장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자신을 아는 지식을 연결 짓고 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인간에 의해 언급될 경우, 인간과의 관계적인 존재로 언급될 수 있으며, 인간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진 존재임을 의미한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 때 유한한 인간의 현주소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칼빈의 논리는 참으로 지당하다. 인간이 스스로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내면에만 갇혀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칼빈은 이에 대하여 “땅 너머의 세계를 향하여 시선을 돌려” 보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인간이 만일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스스로의 현주소를 찾지 못한다면 인간 스스로에 대한 인식은 너무 피상적인 것이 되어버릴 것이며, 거짓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한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 존재를 논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 스스로에 대한 지식에는 유기적인 요소가 있다. 따라서 앞에서 말한 것의 순서를 뒤집어도 말이 된다. 즉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눈길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 칼빈의 입장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 스스로를 아는 지식은 서로 나선형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 경건한 자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것에서 비롯됨을 언급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단지 이론적인 지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강조점은 신학에 있어서 인간의 학문성뿐만 아니라 신앙이 강조되어야 함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칼빈의 교리뿐만 아니라 그가 삶을 통해 보여준 경건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3장
자연계시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칼빈은 인간의 종교성을 다루고 있다. 교의신학의 서론이 칼빈의 이러한 논리의 순서를 본받아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종교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언급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종교성에 대한 칼빈의 언급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게 하며 그의 기독교 강요가 꾸며낸 것이 아닌 필연적인 산물임을 천명하는 역할을 한다.
4-5장
인간은 그가 가진 종교성으로 인해 하나님을 추구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인간은 완전히 타락하였으므로 하나님을 바르게 찾아갈 수 없으며, 오히려 인간 스스로의 무지로 인해 온갖 우상과 미신을 고안해내고 있다. 하나님으로 인해 창조된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를 통해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칼빈은 여기에 인류역사와 인간 개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덧붙여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한편 칼빈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1장의 내용에 비춰볼 때, 이는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깊이 인식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준다. 이러한 일반은총의 한계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에 대한 필요성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6장
성경에 관한 교리는 교의신학의 서론에서 다루고 넘어가는 부분이다. 이것을 칼빈이 먼저 그의 기독교 강요의 초두에 언급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칼빈은 기독교 교리를 다루기에 앞서 그 기초적인 작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교리는 성경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성경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교리는 마치 공중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인간이 오직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모든 오류를 시정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이 은혜를 무시하고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7장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한다면 성경의 권위는 세상의 그 어떤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일 수 없다. 특히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확정한다는 것은 인간 공동체인 교회의 권위를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려는 그릇된 시도가 된다. 따라서 성경 말씀이 진리라면 그것은 인간 공동체가 그것을 진리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진리가 되는 게 아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의 내적인 증거에 의해 진리로 확증되는 것으로서 인간이 그것을 인정할 수 있지만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자만이 성령의 내적인 증거로 성경 말씀을 진리로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은 구원의 놀라운 비밀이 된다.
칼빈은 이와 같이 계시와 성경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하여 가톨릭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기 시작한다. 계시와 성경에 관한 교리는 가톨릭교회와 근본적인 차이를 두는 교리인 동시에 이는 기독교 교리를 다루기 위한 기초 단계에 해당되는 것이다. 칼빈은 이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8장
성경의 신빙성과 관련하여 칼빈은 말하기를 성경의 진리가 설득력 있는 것은 그것이 미사여구로 치장되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밝혔다. 성경은 그 자체의 진리로 인해 인간의 문학적 요소를 덧입지 않고도 인간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오늘날 성경을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려고 하는 시도는 자유주의 신학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문학작품 이상으로 보는 칼빈의 관점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신빙성은 인간의 문학과 이성을 전혀 배제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칼빈은 성경의 일부 작품들이 인간의 문학성에 있어서도 전혀 뒤지지 않음을 언급하였다. 또 그는 모세오경을 중심으로 성경이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충분히 제시했다. 여기서 필자는 성경에 대한 칼빈의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었다. 본장을 읽으면서 필자가 깨달은 바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그 당시 칼빈이 가톨릭교회를 대항했던 것처럼) 신학의 정통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성경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9장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다룸에 있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을 이해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언급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면서도 중요하다. 칼빈은 이를 잘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 이성의 작업만으로는 이해하기에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는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성경 말씀을 소홀히 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르려는 자세도 그릇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기록된 말씀을 통해 신앙의 기준을 제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며, 칼빈은 또 말하기를 말씀이 성령의 조명을 베풀기 위한 도구라고 하였다.
오늘날 교회의 사역과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 말씀과 성령의 사역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조명이 간과된 신학의 학문성만 추구하며, 또 어떤 이들은 말씀을 무시한 성령운동에 심취해 있다. 이러한 현재의 시점에서 필자는 칼빈의 입장을 따르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고신교단에 성령의 역사를 간과하는 폐단이 있다고 말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씀을 강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의 조명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10-12장
칼빈은 그 당시의 가톨릭교회가 성화상 숭배에 빠져있었던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분명히 성경에서 죄악으로 규정하는 것임을 선언하였다.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떤 형상이나 그림, 기타 상징물들로 표현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물론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상징물로 나타나신 적이 있다. 그러나 “구름 연기 화염은 하늘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으나 하나님에 대해서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라는 칼빈의 해석은 얼마나 명쾌한가......
한편 칼빈은 성화상 숭배의 책임을 교회교육의 부재에 두고 있다. 그는 “교회를 다스리는 자들이 가르침의 직분을 우상에게 떠넘겼다.” 라고 언급하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교회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닌다고는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가 신앙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그들이 가령 그릇된 신앙체계에 빠져있다면 그 책임은 교육을 담당한 일꾼들에게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교육자들은 교육의 책임을 어떤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라는 일종의 수단에 떠넘기고 있다. 이것은 교회교육의 부실함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우상숭배를 인간의 어리석음에 귀결시키는 한편 신성에 속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는 우상숭배에 대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피조물에게 분배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 이것이 우상숭배라고 할 경우 우리의 삶에는 적지 않은 우상숭배가 습관처럼 일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칼빈 당시에는 이 우상숭배가 성화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재물과 자기 자신을 포함한 많은 것들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단지 이론적인 이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부터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할 것이다.
13장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그가 신학을 얼마나 성경에 비춰 정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선 칼빈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교부시대의 이해를 제대로 파악하고 열거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칼빈은 하나님의 위격에 대해 다루면서 ‘비공유적 특성’을 언급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비공유적’이라는 표현을 하나님의 삼위의 위격 중 한 위격과 다른 위격이 공유하지 않은 특성에 대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비공유적 특성’이 하나님께는 있으나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는 특성을 말하는 데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성경과 정통 교의에 비춰볼 때, 우리가 수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삼위일체의 교리는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공식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식에서부터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하게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칼빈은 신구약 성경에서 많은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성자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심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 번 칼빈이 성경에 대해 얼마나 박식한지를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성경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14장
본장에서 칼빈은 물질세계와 영적세계의 창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는 인간의 겸손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사색”은 부당하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천지창조가 인간의 인식 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 종속된 인간이 어찌 시간 밖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천사에 대한 사변 역시 무의미한 것이라고 칼빈은 밝히고 있다. 이는 성경이 멈추는 데서 멈춰야 한다는 칼빈의 신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고린도전서 11장 16절의 말씀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본장에서 필자가 깨달은 다른 한 가지를 언급해보겠다. 필자는 과거 교의신학의 신론을 접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천사와 마귀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언급된 데 대하여 의문을 가졌었다. 신론은 하나님에 관해 다루어야지 왜서 천사와 마귀가 마치 부록의 내용인 것처럼 다루어지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본장을 볼 때, 칼빈은 하나님께서 신성에 있어서 유일한 분이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천사의 존재를 거론한 것이었다.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영광을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에게 분배하는 그 당시 가톨릭교회의 그릇된 교리를 배경으로 생각할 때, 영적존재에 대한 정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시대적인 배경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15장
본장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의신학에서는 인간론을 별도로 다루지만 칼빈은 신론 중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이 하나님 중심의 신학임을 보여준다. 인간의 창조와 관련하여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와 인간 영혼의 본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칼빈이 인간의 영혼과 육체와 관련하여 이분설이나 삼분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인간을 통합적인 존재로 보지 않고 이분 혹은 삼분으로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그릇된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칼빈도 이를 직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칼빈은 타락한 상태 이전의 인간의 상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였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에 인간은 완전한 존재였다.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타락이 어디로부터의 타락인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 회복은 어디로의 회복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인간의 창조와 타락 및 구원의 전반적인 배경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16-17장
하나님의 창조의 연장선상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마치신 후 피조세계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그것이 제대로 운행하도록 섭리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때, 우리는 또한 이 상에 우연이란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리 눈에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실상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져가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편 칼빈은 이러한 섭리의 교리가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과는 전연 다르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하나님의 섭리의 교리가 칼빈이 이해한 바와 같이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가 중요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느냐 라는 점이다.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모든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는 것이며, 둘째로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핑계로 운명론에 빠지거나 자기 의무를 하나님께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장
세상에는 얼마간의 선이 있겠지만 악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이러한 선하고 악한 일 모두는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즉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선하고 악한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주권자인 셈이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칼빈이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언급하였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악하다고 생각하는 일까지 계획하시고 이루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 이것은 어쩌면 모순으로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칼빈은 본장에서 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칼빈의 놀라울 만치 순수하고 확고한 신앙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과 작정에 대한 이해는 그야말로 우리의 입술이 뭐라고 고백하는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신앙의 자세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필자는 본장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의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다. 과거에 필자는 이 양자를 분별없이 사용했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류역사와 인생사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시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인간이 자기 인생을 나름대로 살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해서 전부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의 동기와 목적인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중심을 보신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보게 되었다.
기독교강요 : 1권. 1장
제 1 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
제 1 장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 이 두 사이는 어떻게 서로 상호관계가 있는가?
1. 자아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지혜, 곧 참되며 건전한 지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요,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이다.
그러나 이 두 지식은 여러 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만들어 내는가를 구별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먼저, 자기 생각을 돌려, 자기가 "힘입어 살며 기동"(행 17:28) 하고 있는 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는 아무도 자신을 살펴볼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은사들 중 그 어느 하나도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없으며, 심지어는 우리의 존재 자체도 오직 한분 하나님 안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늘에서 이슬처럼 떨어지는 이러한 축복들로 말미암아 우리는 마치 시내를 따라 샘 근원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그 축복의 근원에까지 인도함을 받게 된다.
실로 우리 자신의 빈곤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을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내 준다. 특별히 최초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빠지게 된 그 비참한 파멸은 우리들로 하여금 위를 바라보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굶주림과 배고픔 때문에 우리의 결함을 찾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에 눈을 뜨게 되어 겸손을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참으로 비참한 세계가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신적 의상을 빼앗긴 후부터 우리의 벌거벗음의 수치는 수없이 많은 추행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의식하도록 자극을 받아 적어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소나마 얻게 된다. 이와 같이 우리 자신의 무지, 공허, 빈곤, 허약, 이보다 더한 타락과 부패를 자각함으로써, 지혜의 참된 광채, 건전한 덕, 차고 넘치는 선, 의의 순결함이 오직 주 안에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악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일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자신을 미워하기 전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할 수가 없다. 인간이 자신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곧 자신의 재능에 만족하고,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알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있는 한, 자신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을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우리를 일깨워서 하나님을 찾게 한다. 뿐만 아니라, 마치 손으로 끄는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2.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자아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한편 인간은 분명히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나서, 다음으로 자신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는 한, 결코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명백한 증거에 의해서 우리 자신의 불의, 더러움, 어리석음, 불결함을 스스로 확신하기 전에는, 우리는 항상 자신을 의롭고, 바르고, 현명하며, 거룩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러한 교만은 온 인류에게 본래적인 것이다).
더욱이 우리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이러한 판단의 유일한 표준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가 본래 위선으로 치우쳐져 있어서, 일종의 공허한 의의 형상이 의 그 자체를 대신하여 우리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속과 주위는 너무나 타락하여 오염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정신이 인간 부패의 범위한도에서만 보게 되면, 적게 오염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마치 가장 깨끗한 것처럼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것은 마치 검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눈이 희끄무레한 것이나 검으스레한 물체를 볼 때 완전히 횐 것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실 우리가 영혼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크게 속고 있는가 하는 것은 육체의 감각을 통해서 더욱 명백하게 깨닫게 된다.
만일우리가 대낮에 땅을 내려다보거나, 주위에 있는 어떤 사물들을 본다면, 우리는 자신이 가장 강하고 가장 예리한 시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눈을 들어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게 될 때, 우리의 시력은 당장 그 큰 광채로 말미암아 눈이 부시고 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구상의 사물을 볼 때에는 그렇게 예리하던 시력도 태양을 쳐다볼 때에는 아주 흐려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우리의 영적 은사를 평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이 지상 너머를 바라보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의와 지혜와 덕으로 완전히 만족하고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이 가장 훌륭한 존재인 양 우쭐대며 자신을 거의 반신적(半神的)인 존재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 앞으로 향하며, 그의 속성을 생각하며, 마땅히 우리의 규범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의와 지혜와 권능이 절대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전에 의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즐겁게 하던 것은 가장 사악하고 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혜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신기하게 감동시켰던 것은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역겨움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전에 능력의 가면을 쓰고 있던 것은 가장 비참한 무력자로 증명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가장 완전하게 보이는 것도 하나님의 순결에 비하면 그 자체가 사악한 것이다.
3.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의 인간
성도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때마다 충격을 받으며 압도당한다고, 성경이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 두려움과 놀라움은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할 때에는 보통 안전하게 또는 확고하게 서 있지만, 일단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시면, 죽음의 공포로 쓰러질 만큼 마음이 흔들리며 비참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사실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압도되어 거의 혼비백산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의 위엄과 비교해 보기 전에는, 결코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거나 충분히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추론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사건의 많은 실례를 사사기나 여러 예언서에서 자주 보게 된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말이 자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공통적으로 표현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삿 13:22, 사 6:5, 겔 2:1, 1:28, 삿 6:22-23). 욥기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순결을 표현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능력, 그리고 부패를 인식케 하는 가장 강력한 논증을 사용한다(참조 욥 38:1이하). 그것은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하여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자신이 "티끌과 재"(창 18:27)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으며, 엘리야도 자기 얼굴을 겉옷으로 가리지 않고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심을 감히 견뎌낼 수가 없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매우 두려운 것이다(왕상 19: 13). 그룹들까지도 두려움을 피해 그들의 얼굴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되었거늘(사 6:10) 하물며 부패하고,(욥 13:28) 버러지에 지나지 않는(욥 7:5, 시 22:6) 인간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때에 달이 무색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왕이 되시고‥‥‥"(사 24:23) 곧 하나님께서 자신의 광채를 나타내시며 보다 더 가까이 발하실 때에는, 가장 빛나던 광채들도 그 앞에서 어두워지게 된다는 것이다(사 2:10,19).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먼저는 전자에 대해 논하고 다음 후자를 논하는 것이 정당한 순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