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복음 4:9∼10, 요한계시록 1:1∼2) / 주일 설교 원고(2019-12-15)


오늘 설교 제목은 “믿음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요한복음 4:9∼10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계시록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믿음”이란 한자는 “믿을 신(信)”입니다.
(信)”자를 분석하면 “사람(亻)”과 “말씀(言)”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씀”은 곧 “하나님”을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존재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고 불렀던 던 것처럼 주를 믿는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 아무개" 이렇게 불려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신명기 33:1, 여호수아 14:6, 역대상 23:14, 역대하 30:16).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프란시스 쉐퍼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전환점(轉換點)”이라고 합니다.
전환점’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목표와 방향이 새롭게 결정된 것”을 말합니다.

오늘 소개한 본문에서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마리아 여자와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복음 4:1∼30)

사마리아 여자와 믿음의 터닝 포인트는 언어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4:9,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4:19,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만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은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된 후 유능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에는 바벨론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유대인들과 서로 섞여 살게 하므로 순수한 혈통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세 지역으로 구분했습니다.
만일 유대지방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이동할 때는 중간에 위치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지 않고 먼 거리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려고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마침 한낮이 되었을 때 사마리아 여자가 수가 성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긷고자 나왔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아침과 저녁에 우물을 찾았지만 사마리아 여자는 유대인들이 없는 시간을 선택하여 우물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 왜 사마리아 사람에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목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런 물이 있으면 내게 주어 마시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에게 “나는 남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있는 네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사마리아 여자는 유대 남자가 아니라 선지자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얻으려고 우물을 찾았으나 유대 남자로 만났던 사람이 선지자가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메시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확신하게 되었고 참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계시록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동안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순교한 후에 가장 나이가 많은 제자로 밧모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모친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모시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으며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정말 예수님은 다시 오실까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에 대한 말씀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 계시가 주어진 것입니다.

계시의 의미는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계시)가 없으면 자기 멋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연약해 질 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면 새로운 힘을 얻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박국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제자이었지만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밧모 섬에 갇혀 지내며 언제 예수님께서 오실는지 알 수 없다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때에 계시를 받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음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까요?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처럼 계시를 받을 수 있는 핍박과 고난의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신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한 가지 방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 알았나니(오이다스, οἶδας) 

* οἶδα(1492. oida)
Definition : 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
Usage : I know, remember, appreciate. 

“알았나니” 라는 동사는 내가 직접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므로 일찍부터 그 말씀을 배워서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려는 것
둘째는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는 것

2020년 신앙생활의 표어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시편 119:169b)
Give me understanding according to your word. 

왜 계시가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니고 주의 말씀대로 깨닫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까요? 성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부자와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연명하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도 죽어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 나사로를 바라보며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이곳으로 떨어트려 주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기 때문에 음부에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올 수도 없고 아무 것도 보낼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때 부자는 그렇다면 나사로를 내 집에 보내서 형제 다섯은 이곳으로 오지 않도록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세상에는 선지자들이 있으니 선지자에게서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선지자들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는 말씀은 선지자들의 글 즉 선지서와 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는 깨우침입니다.(참조 누가복음 16:24∼31)

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나며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다고 제안합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였는데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변화산 사건에서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모세와 엘리야 이외에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다윗 왕, 솔로몬 왕과 같은 많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왜 모세와 엘리야만 나타났을까요?

모세는 율법을 상징합니다(토라, 율법서)
엘리야는 선지서를 상징합니다(느비임, 선지서)
따라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시가서는 어디 있습니까?(케투빔, 성문서)

누가복음 22: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두 번째는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만나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며 예배하는 사람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사도 요한은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예수님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바뀔 것입니다.
계시를 받았을 때 믿음의 고통스런 과정을 통하여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20년부터 오늘의 묵상이란 방법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한 주간의 삶은 주일(主日)부터 시작합니다.
주일에는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섬기는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매일 읽어야 할 말씀은 1장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020년 1월 1일에는 요한일서 1장을 읽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을 읽기 위한 주제는 “하나님은 빛”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빛에 대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이어서 빛이 되신 하나님은 내 삶의 어두움을 찾아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빛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나의 결단을 세운 후에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읽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성경을 읽은 후에 내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시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처음부터 잘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실천하며 기도하면 나도 모르게 적용된 내 모습과 신앙의 발전된 삶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하는 본문도 함께 읽었던 말씀 중에서 선택하여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협력하려고 합니다.

참조 /

누가복음 16:24∼25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누가복음 16:26∼31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