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8) 주일 설교 원고(2020-1-19) 이승혁목사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8)
- God is Love.

Θεὸς ἀγάπη ἐστίν(데오스 아가패 에스틴)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Whoever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because God is love.)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누구라고 고백하는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아는 것만큼 믿고, 믿는 것만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서신에서 하나님에 대한 중요한 고백 세 가지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빛이시라(요한일서 1: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 하나님은 빛이시라
빛의 영적 의미는 "생명(生命)"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둘째는 하나님은 영이시라(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하나님은 영이시라
영의 영적 의미는 "자유(自由)"를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3: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셋째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한일서 4:8, 16)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의 영적 의미는 "용서(容恕)"를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잠언 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빛과 영과 사랑의 공통된 특징은 "영원(永遠)"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명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용서는 영원한 용서입니다.
자유는 영원한 자유입니다.

2020년 1월 5일 신년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오늘은 1월 4일(토)에 읽었던 요한일서 4장의 말씀 중에서 묵상 주제로 소개했던 "하나님은 사랑"이란
주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하셨을까요?

(도입 예화) 희랍의 힐루카 대왕의 이야기

고대 희랍에 전설적인 힐루카 왕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당시 사회가 안고 있던 큰 문제는 미성년자들이 음행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미성년자들의 잘못된 생활을 법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매우 엄한 법을 공포했습니다.
그 법은 음행 하다가 붙잡힌 미성년자들은 두 눈을 뽑아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세상은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힐루카 왕의 하나 뿐인 아들 젊은 왕자가 붙잡혀 왔습니다.
재판장은 매우 난처했습니다.
장차 왕위를 계승할 왕자의 두 눈을 뽑으면 눈이 없어 볼 수 없는 왕을 세워야 합니다.
왕자에게만 특혜를 주면 법의 공정성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때 주저하는 재판장에게 힐루카 왕은 법대로 집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왕자의 오른쪽 눈이 뽑혔습니다.
이어서 나머지 왼쪽 눈을 뽑으려고 할 때 힐루카 왕은 자신의 왼쪽 눈을 뽑게 했습니다.
왕자의 잘못도 법대로 처리한다는 깨닫게 된 백성들은 다시는 법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법 정신은 공의에 의해서 지켜져야 합니다.
사랑의 정신은 공의로운 실천에 의해서 실현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레위기 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율법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했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주셨을까요?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을 주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법을 지키지 못하면 범법자가 됩니다.
범법자는 반드시 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벌을 받아야 할 백성들을 위하여 자신의 눈을 뽑게 했던 힐루카 왕처럼 사랑의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속죄의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로마서 3:20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로마서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야고보서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리 말에는 "사랑" 이란 단어가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을 기록한 '코이네 헬라어'와 '헬라어'에는 사랑이란 단어를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먼저 사랑이란 다양한 단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랑이란 단어의 의미를 분명하게 살펴야 하는 이유는 언어의 혼돈을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예를 들면 나라를 사랑한다는 대상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한다.
형제를 사랑한다.
친구를 사랑한다.
애인을 사랑한다.
음악을 사랑한다.
꽃을 사랑한다.
개(伴侶犬)를 사랑한다.
고양이(伴侶猫)를 사랑한다.
문학을 사랑한다.
교회를 사랑한다.
학문을 사랑한다.

우리 말에서는 사랑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사용했습니다.

첫째는 스토르게(storge, φιλόστοργος)(5387. philostorgos) 
Definition : tenderly loving
Usage : tenderly loving, kindly affectionate to.

로마서 12:10(형제를 사랑하여)

둘째는 필리아(philia, φιλία)(5373)
Definition : friendship
Usage : friendship, affection, fondness, love.

야고보서 4:4(세상과 벗된 것)

셋째는 에피투미아(epithumia, ἐπιθυμία)(1939)
Definition: desire, passionate longing, lust
Usage: desire, eagerness for, inordinate desire, lust.

마가복음 4:19(욕심), 누가복음 22:25(원하고 원하였노라)

넷째는 에로스(eors, Ἔρως)
성경에서는 사용되지 않은 단어
그리스 신황에  등장하는 연정과 성애의 신이다.
로마신화에서 아모르 또는 큐피드와 같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고대 그리스어로 주로 이성에 대한 강렬한 성적 욕구를 의미하는 보통명사가 신격화된 것이다

다섯째는 아가페(agape, ἀγάπη)(26)
Definition : love, goodwill
Usage : love, benevolence, good will, esteem; plur: love-feasts

마태복음 24:12(사랑이 식어지리라), 누가복음 11:42(하나님께 대한 사랑), 요한복음 5: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란 단어가 우리 말처럼 단순하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 필요한 단어를 사용하므로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한 예를 성경에서 찾아봅시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노련한 어부이었지만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여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져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순식간에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잡아 당기면서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는지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지라고 말씀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잡은 물고기를 구워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씩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사용한 사랑이란 단어는 "필리아" 라는 단어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단어는 "아가페"와 "필리아"이었습니다. 처음과 두번째는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세번째는 필리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가페라는 사랑은 베드로처럼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입장에서는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변함없이 사랑하고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마치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처럼 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필리아라는 사랑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과 같은 사랑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아가페 하느냐? 물었을 때 어떻게 베드로가 주님에게 아가페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니 필리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헤아리셨던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네가 정말 나를 필리아할 수 있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예 나는 주님을 필리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신혼부부들이 예식장에서 주례와 증인들 앞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사랑할 것을 다짐하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서로 헤어지고 있습니까?

인간들의 사랑이란 이렇게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시리라는 말씀은 인간들이 배신하고 떠나버려도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용서하는 사랑"이라고 하겠습니다.

용서의 특징은 덮어주는 것입니다.

가죽옷으로 덮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창세기 3:21)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으로 덮어주셨습니다.

방주의 안과 밖을 역청을 바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창세기 6:14)
노아가 방주를 만든 나무를 '잣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는 '고페르 나무'라고 합니다.
그리고 역청을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역청을 "코페르"라고 합니다. 코페르라는 단어는 "속죄" 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속죄제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피로 덮는 용서가 완성된 것은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므로 모든 사람의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화목제"라고 합니다.
 
화목제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사랑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인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화목제를 히브리어로 "제바흐 쉘라밈" 이라고 합니다.
제바흐제물, 쉘라밈평화(샬롬의 복수형)

화목제 제사의 특징

첫째는 암수 모두 바칠 수 있다.

둘째는 기름과 콩팥을 드린다.
(기름이 잘 타기 때문이다)

셋째는 남은 제물은 바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이 나눠 먹을 수 있다.
(단 3일 이내에 만 먹어야 하고 그 후에는 반드시 불에 태워버려야 한다)

넷째는 평등 의무 제사
화목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배려하는 산비둘기, 집비둘기의 새끼는 제물을 받지 않는 평등의무 제사였습니다.
즉 성막을 지을 때에는 부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똑 같은 속전을 거두시게 하신 것처럼, 평등하게 부담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화목제 제사의 근거
로마서 3:23-26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화) 가정과 화평

메이어라는 랍비는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예배당에서 어김없이 설교를 했는데, 몇 백 명씩 한꺼번에 몰려 들어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들 가운데 메이어의 설교듣기를 매우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금요일 밤이되면 안식일에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데, 그 여자만은 이 랍비의 설교를 들으러 나왔다.
메이어는 긴 시간 동안 설교를 했고 그 여인은 그 설교에 만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이 안식일인데 음식은 장만하지 않고 어디를 쏘다니고 있느냐며 화를 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를 갔다 왔어!"
"예배당에서 메이어 랍비님의 설교를 듣고 오는 길이예요"
그러자 남편은 몹시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랍비의 얼굴에다 침을 뱉고 오기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어!"
집에서 쫓겨난 아내는 할 수 없이 친구 집에서 머물며 남편과 별거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메이어는 자기의 설교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다고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을 불러 눈이 몹시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남의 타액으로 씻으면 낫게 된다는데, 당신이 좀 씻어 주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여인은 랍비의 눈에다 침을 뱉게 되었다.

제자들은 랍비에게 '선생님께선 덕망이 높으신데, 어째서 여자가 얼굴에 침을 밷도록 허락하셨습니까?'하니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가정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 보다도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다네."

사랑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그 아들이 화목제 희생의 제물이 되어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일에 이르기를 원하는 사랑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무섭게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던 시대에 기록된 말씀으로 빨리 예수님 오시기를 갈망한 예언서입니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사랑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가페 사랑의 힘

첫째, 두려움을 물리치는 힘(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합니다.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힘 이상의 힘을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딤후 1:7).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두려움이란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의 줄임말
(Fear ; False Evidence Appering Real)

반려견을 돌보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처음에 집으로 데려오면 불안하여 부들부들 떨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집 주인은 나를 버리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꼬리를 흔들고
따라다니며 좋아한다고 합니다.

강아지도 이렇게 반응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둘째, 성령으로 역사하는 힘(요한일서 4:12∼23)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성령을 울이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하나님의 영, 곧 인격을 가지신 거룩한 바람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임재 하시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그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겠습니까!

셋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도록 역사하는 힘(요한일서 4:14∼15)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 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 내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2. 주의 얼굴 뵙기전에 멀리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곳이 그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모든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결론을 위한 이야기)
중국 후한을 세운 광무제에게 호양 공주라는 여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호양 공주가 아끼는 노비가 있었는데 공주의 권세를 믿고 살인을 한 후에 공주의 저택에 숨어서 지냈습니다.
당시 낙양성의 치안을 담당했던 "동선"이라는 관리가 이 노비를 처벌 하기 위해서 공주의 대문 앞에 잠복하고 있다가 공주가 외출할 때 따라 나오는 노비를 붙잡아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고 합니다.

공주는 자신의 눈앞에서 아끼는 노비가 죽음을 당하자 오빠 광무제에게 동선이라는 관리를 처형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광무제가 동선을 불러 공주에게 사과하라고 하자 동선은 자신은 사과하지 못하겠고 차라리 죽겠다고 버텼습니다. 이런 광경을 본 호양 공주는 "오빠가 황제가 아니었을 때에는 집에다 죄 지은 사람을 숨겨 주어도 관가에서 잡아가지 못했는데 오히려 황제가 되고나니 오빠의 힘이 줄어든 것 같다."며 짜증을 부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광무제는 웃으면서 "황제가 되었으니 일반 백성 때와 같이 행동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면서 고집쟁이 관리인 동선을 풀어주고 오히려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광무제는 여동생 호양공주를 달래고 정직한 관리를 풀어줌으로써 친인척도 달래고 국정의 기강도 바로잡았다는 교훈입니다.

오랜 중국의 역사에서 후한의 광무제가 공신들을 잘 관리한 군주로 뽑힌다고 합니다. 광무제는 자신을 도와서 후한을 세운 공신들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명예를 주었지만 건국 이후 국정에는 손을 떼도록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은혜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그 날이 속히 도래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중에 "두 노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가난한 농부와 부자 상인이 긴 세월을 두고 꿈꾸며 계획했던 예루살렘으로 성지 순례를 떠납니다.
며칠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던중 가난한 농부가 목이 마르다며 걸음을 멈추고 부자 상인에게 “여보게 저기 마을에 잠시 들려 물을 마시고 갈테니 자네 먼저 가게나” 하고 마을 가장 가까이 있는 허름한 집으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온 식구가 전염병에 걸려 앓고 있었으며 또 며칠을  굶었는지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농부는 “우선 이것으로 먹을 것을 사세요. 그러면 힘이 날겁니다” 라며 가지고 있는 돈을 내밀었습니다.
농부는 여비가 없어서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부자 노인은 예루살렘에 도착해 성지를 둘러보고 예배도 드리며 성찬식도 참석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몇 달간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부자도 여비가 떨어져 집으로 돌아 오다가 농부의 생각이 나서 그와 헤어졌던 마을에 들어갔을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성인입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우리 식구는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자노인은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과연 농부의 행위가 옳은것 이었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순례가 아니라 남을 보살피며 살아가는 삶이야” 라고 중얼 거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이나 경제적으로 소외돼 거리와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연약하고 외로운 자들에게 형제 사랑을 실천했을까?

사실 가난한자들은 불합리한 사회적 환경과 제도의 모순, 부자의 횡포 등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며 사회의 음지에서 소외된 채 타인의 관심과 배려없인 살수 없다.

그럼 그들을 누가 도와 주어야 할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약함과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만 그 탓을 돌리거나 회피하지 말고 또한 조건을 붙여 배척하거나 간과하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

이것은 공중의 새와 들판의 폴 한포기 까지도 관심을 가지신(마 6:26-29)
하나님의 뜻이며 율법의 대강령이자(마 22:36-40)
하나님께서 당신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을 가지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자기같이 사랑하라”(레 19:34)고 가난한자들을 맡겨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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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에게 북한에서 경험한 놀라운 사랑 이야기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쉽게 허락되지 않는 땅 북한에서 13년을 살아 온 50세 남성이 희끗희끗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2000여명의 시선이 꽂힌 무대 위 스크린에는 팔이 꺾인 채 재활치료를 받으며 활짝 웃는 5세 어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대에 선 이는 외국인 최초로 평양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윤상혁 평양의대 회복기과(재활의학과) 교수, 사진 속 주인공은 윤 교수와 북한 장애인 어린이들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이 돼 줬던 소녀 ‘복신이’였다.

‘청년다니엘기도회 X 갓플렉스 시즌3’ 5일 간의 집회 중 둘째 날 메신저로 26일 서울 오륜교회(김은호 목사) 강단에 오른 윤 교수는 ‘사랑으로 길을 내다’를 주제로 북한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담담하게 전했다.

그는 2007년 나진 선봉 지구에서 진료 봉사를 시작해 2년 전 코로나로 북한 국경이 봉쇄될 때까지 평양에 상주하며 척추 신경의학 및 뇌성마비와 자폐증 어린이들의 재활 치료에 힘써왔다. 척추전문의였던 그가 북한에서 ‘어린이 재활’ 영역으로 치료의 길을 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돼 준 것이 복신이와의 만남이었다.

“난로도 없는 추운 진료실에 할머니가 다섯 살짜리 아이를 등에 업고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중증의 경직성 사지마비를 겪고 있는 뇌성마비였는데요. 보니까 입이 다 열려 있었고 머리는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씹어 삼킬 수도 없어 그동안 할머니가 대신 입으로 씹어 넣어줬습니다.”

북한 생활 13년, 윤상혁 평양의대 교수가 전한 놀라운 이야기


양육하고 있던 네 살 막내 딸의 얼굴이 떠올라 더 마음이 쓰였다. 어린이 뇌성마비 환자를 치료해 본 게 처음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했더니 몇 주 후 근육운동에서 변화가 보였다. 복신이는 손가락을 움직이고 주먹을 쥘 수도 있게 됐다. 몇 달 뒤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 회복기과 교수로 부임하게 됐을 때도 복신이를 데려와 치료할 수 있도록 병원 측에 침상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복신이는 소아장애 증상 가운데 평양의대병원에서 받아들여진 첫 사례자가 됐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복신이 치료를 멈추지 않았지만 6개월여 시간이 흐르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하루는 복신이 할머니가 윤 교수를 찾아와 “복신이를 데리고 집에 가서 잠시 쉬고 오겠다”고 전했다. 알고 보니 낫지도 못할 아이 하나 때문에 입원해야 할 다른 아이들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다는 말을 들어왔던 것이었다. 당시 북한 사회에서 복신이 같은 아이들은 가망이 없는 불치병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치료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윤 교수의 만류에도 할머니는 치료를 포기한 채 복신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후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뇌성마비 아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차도가 있는 것을 본 사람들이 복신이 같은 자녀를 키우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뒤 윤 교수의 치료실 앞에는 뇌성마비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기 시작했다.

“복신이가 집으로 간지 1년쯤 지나는 동안 여러 아이들이 병원을 스스로 걸어 나갔고, 증상이 호전되는 놀라운 일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방송국에서 나와서 치료과정을 촬영하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복신이와 같은 뇌성마비 어린이들을 위한 소아행동발달장애 전문병원을 같이 세우기로 했습니다.”

윤 교수는 언젠가 복신이를 병원으로 데려와 다시 치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소문해 부모와 연락이 닿았지만 복신이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그는 “그날 이후로 복신이와 같은 아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천국에서 제일 반가워할 그 일, 바로 어린이를 섬길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후 뇌성마비 아이들의 치료센터와 전문의 교육과정도 국가의 승인을 받게 됐다. 복신이로 인해 숨겨졌던 수많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기회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윤 교수는 참석자들을 향해 말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스펙을 쌓고 좋은 차를 사고 좋은 집에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주님 앞에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새 계명의 마음을 받길 바랍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새 계명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랑, 하나님과 내 이웃을 사랑하며 내가 서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자로 세워지는 것은 뒷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다시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예배자로 회복되고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윤 교수는 북한 전역에 유치원 탁아소 농촌진료소를 짓는 국제 NGO ‘선양하나’의 국제대표를 맡고 있다. 선양하나는 북한 땅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며 살아가는 공동체다. 2008년 6명으로 출발해 현재는 8개국 39명의 동역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다니엘기도회’와 ‘미션라이프’로 실시간 중계된 이날 집회는 동시접속자 5500여명을 기록하며 온오프라인을 통해 은혜와 도전을 심어줬다. 셋째 날 집회인 27일에는 김승욱 할렐루야교회 목사가 메신저로 나설 예정이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016348&code=61221111&sid1=c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