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2월)


오늘의 말씀

12

1

 단 2:1∼2:49, 요일 2:1∼2:17, 잠 22:11∼22:21


♦ 12월 1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2:1∼2:49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고 술객들을 불러 자신의 꿈을 해석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왕은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을 죽이려 했다. 이 위급한 상황을 알게 된 다니엘은 친구들과 합심으로 기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꿈의 내용과 그 해석을 계시 받고 왕에게 그것을 진술하였다. 이에 왕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니엘에게 선물과 높은 관직을 주었다.

♦ 요한일서 2:1∼2:17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심을 말하며, 형제를 사랑하라는 그분의 말씀을 지킴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게 된다고 교훈하였다.

♦ 잠언 22:11∼22:21
지혜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보존하며 입술에 두는 것이 아름답다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요한일서 2:3)

계명(誡命)이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命令)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靈的) 전쟁(戰爭)의 시대(時代)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시(戰時) 중에 명령(命令) 위반(違反)은 “총살형(銃殺刑)”입니다.
전시법(戰時法)에 따르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죽어 마땅한 인생들을 아직도 살려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힘이 생겨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방법으로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사랑은 최선(最善)의 양약(良藥)입니다.
사랑보다 좋은 약은 없습니다.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을 맞이하는 성도들을 향한 명령입니다.

사랑하라!
무조건 사랑하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라!

어떻게 사랑할까요?
사랑은 덮어주는 것입니다(베드로전서 4:8).
덮은 후에는 그 안의 어떤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주님만은 알고 있습니다.

★ 대강절 첫 번째 촛불을 밝히며 드리는 기도
  
멀리서 서광으로 다가 오시는 주님!
우리의 마음에 선한 등불을 켜고
가슴마다 기다림의 촛불 밝혀
마중 나아옵니다.

오소서 주여!
마라나타!

욕망과 분노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우리의 마음을
평화와 사랑으로 채우소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주위의 소란스러움과
마음의 번거로움은
하나씩 밝혀져 가는
사랑의 등불로 인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주님만 남게 하소서.

사랑으로 오시는 주여!
우리는 당신이 오시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힘없이 쳐든 빈손에 용기를 주시고

냉랭한 빈 가슴에
불타는 사랑을 채워 주소서.

보이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는
주님을 발견하고 기뻐하게 하소서. 아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2

2

 단 3:1∼4:18, 요일 2:18∼3:6, 잠 22:22∼22:29

12

3

단 4:19∼5:31, 요일 3:7∼3:24, 잠 23:1∼23:8

12

4

단 6:1∼7:28, 요일 4:1∼4:21, 잠 23:9∼23:18

12

5

단 8:1∼9:27, 요일 5:1∼5:21, 잠 23:19∼23:26

12

6

단 10:1∼12:13, 요이 1:1∼1:13, 잠 23:27∼23:35

12

7

호 1:1∼4:19, 요삼 1:1∼1:15, 잠 24:1∼24:7

12

8

호 5:1∼8:14, 유 1:1∼1:25, 잠 24:8∼24:15


♦ 12월 2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3:1∼4:18 
느부갓네살 왕은 모든 백성에게 자신이 만든 금 신상에 절할 것을 반포하고, 이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로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불 속에서 살아난 것을 보자 왕은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아무도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왕은 두 번째 꿈을 꾸고 다니엘에게 꿈 해석을 요청하였다.

♦ 요한일서 2:18∼3:6 
요한은 마지막 때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을 교훈하면서 성도들에게 성결한 삶을 살 것을 권면하였다.

♦ 잠언 22:22∼22:29 
약자를 압제하지 말고 어리석은 자를 본받지 말며 자신의 생활에 충실한 삶을 살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8)  

“연애(戀愛)는 아름다운 오해(誤解)
결혼(結婚)은 참다운 이해(理解)”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참다운 신앙은 무엇일까요?
기도하는 것마다 모두 응답받는 것일까요?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포로가 되었으나 바벨론 왕궁에서 화려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유대의 젊은이들은 금 신상을 향하여 엎드려 절을 하지 않으므로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워진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를 맞이합니다. 젊은이들을 조롱하는 바벨론 왕은 너희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는지 보자고 합니다. 젊은이들은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금 신앙을 향하여 절을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내가 가는 길이 바른 길입니다.
그 길을 갈 때 내가 바른 길을 가기 때문에 반드시 나를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나를 지켜주지 않을지라도 나는 바른 길을 가겠다는 그 마음이 참다운 신앙이 아닐까요?
첫째는 그대 자신을 믿어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친구를 믿어보라!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대와 헤어질 것이다.

셋째는 그대의 명성을 믿어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넷째는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미국의 부흥사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상을 기대하는 신앙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그 믿음만으로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3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4:19∼5:31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두 번째 꿈을 해석해 주었고, 그 해석대로 왕은 일곱 때 동안 왕위에서 쫓겨났다가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은 후 다시 왕위를 되찾았다. 이에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조서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을 하였다. 훗날 바벨론의 왕이 된 벨사살은 잔치를 벌이고 야훼의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다가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자를 쓰는 것을 보고 놀라 다니엘을 불러 그 글자를 해석하게 했는데, 그 해석대로 벨사살은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통치하게 되었다.

♦ 요한일서 3:7∼3:24
요한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 영적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고 말하면서, 이러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그 사람 안에 계신다고 교훈하였다.

♦ 잠언 23:1∼23:8
만찬을 대할 때 음식보다는 자신을 초대한 타인의 심중을 살필 것과, 사사로운 지혜를 버리고 재물에 욕심을 내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한일서 3:14)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천(Fortune)”에서 “속내를 털어놓지 말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라!”는 것이 성공의 비법이라고 합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아니라 오히려 말을 잘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닐까요?
“듣는다”는 것은 “관심(觀心)”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심이란 라틴어는 “인터 엣쎄(Inter Esse)”라고 하는데 ‘인터 엣쎄’는 “함께 생각한다.” 또는 “함께 행동한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함께 생각하는 것이며 동시에 함께 행동하는 것입니다.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한 대인관계의 법칙을 “3, 2, 1,법칙”이라고 합니다.
“3분간 경청하고, 2분간 맞장구 쳐주고, 1분간만 말하라”는 법칙입니다.

남의 말을 들어 주려면 인내(忍耐)가 필요합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나의 의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주시는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신명기 29:4)

마음과 눈과 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듣는 귀와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많습니다.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곧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그의 눈빛만 봐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알 수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주의 말씀을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4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6:1∼7:28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민첩함과 총명함을 보고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였으나, 이를 시기하는 총리들과 방백들의 음모로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났고, 오히려 그를 참소했던 자들과 그의 가족들이 사자굴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였다.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은 네 종류의 짐승에 관한 환상을 보았다.

♦ 요한일서 4:1∼4:21
요한은 영 분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랑이신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것을 촉구하였다.

♦ 잠언 23:9∼23:18
지혜와 지식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항상 야훼를 경외하는 자는 장래가 보장되며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임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언 23:17)

왜 여호와를 경외(敬畏)해야 할까요?
독일의 철학자 하이덱거(Martin Heidegger, 1889. 9. 26~1976. 5. 26)는 사람에게 세 가지 씨름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물질(物質)에 대한 씨름
둘째는 사람(人間)에 대한 씨름
셋째는 자아(自我)에 대한 씨름입니다.

물질에 대한 씨름은 노력(努力)하면 해결(解決)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한 씨름은 이해(理解)와 사랑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씨름은 해결할 방법(方法)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해결 할 수 없는 자아에 대한 씨름을 어디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인간을 창조(創造)하신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問題)를 제출한 사람이 문제의 답(答)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자아에 대한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정답(正答)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자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을 찾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자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아를 죽이라(Self Death)”고 합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자아 살해(Self Killing)”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곧 나의 죽음으로 받아드리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나(New Creature)”를 세워가는 일에 성공(成功)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祝福)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5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8:1∼9:27
벨사살 왕 3년에 다니엘은 숫양과 수염소 및 작은 뿔의 환상을 보고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그 환상에 대한 해석을 들었다. 다리오 왕 원년에 이스라엘의 포로 기간이 70년이라 기록된 예레미야 예언의 책을 본 다니엘은 그 연수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민족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이 기도 중에 다니엘은 “70이레”의 예언을 받았다.

♦ 요한일서 5:1∼5:21
요한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성도는 이러한 믿음을 통해 기도 응답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교훈하였다.

♦ 잠언 23:19∼23:26
지혜로운 삶을 통해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될 것을 권고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한일서 5:3)

사랑(愛)은 말(言語)이 아니라 행동(行動)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무지(無知)
모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사랑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질병은 "마라스무스(Marasmus)"라는 '만성영양소모증'이란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둘째는 착각(錯覺)
잘못된 감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쾌락(快樂)"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강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사랑이란 "오래 참는 것"과 "온유함"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셋째는 친밀도(親密度)
며느리와 딸에 대한 생각이 다르고 아들과 사위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 합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나와 어떤 관계를 갖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반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신 사랑이었습니다.

은총의 계절에 카드 한 장으로 몇 푼의 성금으로 사랑을 덤으로 얹는 것이 아니라 항상 계명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의 길이 활짝 열려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6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10:1∼12:13
다니엘은 힛데겔 강가에서 금식 기도하던 중 인자의 환상을 보았다. 이 때 다니엘은 천사로부터 바사 제국의 멸망과 헬라의 등장, 헬라의 부흥과 멸망, 남방과 북방간의 전쟁, 새로운 북방 왕이 유대인을 박해하고 성전을 모독할 것에 대한 예언과 마지막 날에 있을 일들에 대한 예언을 받았다.

♦ 요한이서 1:1∼1:13
요한은 서로 사랑할 것을 권면하면서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 곧 사랑임을 가르쳤다. 그리고 미혹하는 자를 경계하라고 교훈하였다.

♦ 잠언 23:27∼23:35
음녀와 술 취함을 멀리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다니엘 10:11)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왕족으로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인 벨사살, 메대의 다리오왕, 통일된 메대 바사 제국의 고레스왕 등의 4명의 왕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서 다니엘이 받은 은총을 깊이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느부갓네살 
느부갓네살 왕은 주전 604년부터 주전 562년까지 통치했던 신바벨론 제국의 창건자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주전 605년에 애급과 싸워 크게 이겼는데, 이 승리로 인해서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호야김 왕 3년(주전 605년)에 다니엘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의 왕과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또한 느부갓네살 왕은 정금, 은, 놋, 철, 흙으로 되어진 큰 신상을 꿈에서 보았는데, 바로 그 꿈을 해석해 주었던 다니엘을 총리로 세웠습니다.

둘째, 벨사살
벨사살은 신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벨사살은 주전 553년에서 539년 까지 그의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다니엘서 5장에는 벨사살이 나라를 다스리던 마지막 날 밤에 열었던 연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연회 도중에 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썼습니다. 이것을 다니엘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의미로 해석해 주었습니다.

결국 그날 밤 바사(페르시아)가 바벨론을 함락시켰으며, 벨사살 왕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셋째, 다리오
다리오는 메대 사람으로, 오직 다니엘서에만 나오는 왕입니다.

다리오는 바벨론 왕국의 마지막 통치자요,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다스렸던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고, 바벨론이 함락된 이후에 바벨론을 약 2년간 통치했습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도록 명령한 왕이었으며(단 6:16), 사자굴에서 살아나온 다니엘을 총리로 세웠습니다.

넷째, 고레스
고레스는 주전 559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바사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9년 후에 그는 메대 왕국을 정복했으며, 주전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대인들을 고향으로 귀환시켰습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갔던 다니엘은 고레스왕 원년까지 왕실에서 계속 봉사하였습니다(단 1:21, 6:28, 10:1).

하나님의 진노로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특히 다니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4명의 왕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로서 그들을 도와 계속해서 일하게 하시는 구원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권세가 아무리 우리를 압박하고 고통을 준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은총의 계절에 다니엘과 같은 은총을 크게 입은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7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1:1∼4:19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를 취해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고멜을 취해 세 자녀를 낳았다. 하나님께서는 고멜의 부정한 행동에 빗대어 범죄한 이스라엘의 죄악과 심판을 말씀하셨고, 부정한 아내 고멜을 다시 취한 호세아의 행동을 통해 심판 후에 있을 하나님의 회복을 예시하셨다.

♦ 요한삼서 1:1∼1:15 
요한은 수신자 가이오의 선행에 대한 칭찬과 격려, 악을 행한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을 통해 악을 버리고 선을 본받을 것을 교훈하였다.

♦ 잠언 24:1∼24:7
악인의 헛된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 것과 지혜를 구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잠언 24:1)

형통(亨通)이란 무엇일까요?
마치 손만 대면 모든 것이 금(金)으로 변하는 마이다스 손과 같은 것일까요?
손만 대면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면 좋을까요?
마이다스 손은 사랑하는 딸마저 금으로 변하고 심지어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물컵을 들면 그것마저 금으로 변해 버립니다.
결국 마이다스 왕은 후회(後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서 형통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첫째는 지혜롭게 행하는 것
무슨 일이든지 성공하는 것이 형통이 아니라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할 줄 아는 것입니다. 지혜는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는 것입니다.

둘째는 평안함을 누리는 것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환경에서 염려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가난한 환경에서 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통이란 어떤 환경에서든지 평안을 누릴 줄 아는 것입니다. 평안은 주님 안에 거하는 증거입니다.

셋째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
사람의 영혼은 ‘등불’과 같으며(잠 20:17), 형통은 ‘등불’이라고 합니다(잠 21:4). 내 영혼이 내 삶의 등불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주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세상에서 형통을 누리는 것보다 주님 품안에서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8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5:1∼8:14
호세아는 이스라엘 죄악의 근본 원인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라는 야휘의 말씀을 전하면서 우상 숭배와 행음, 형식적인 제사와 번제, 제사장들의 타락 등 이스라엘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였다. 그는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그 후에는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있을 것임을 예언하였다.

♦ 유다서 1:1∼1:25
유다는 이단자들에게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확신하면서 이러한 자들을 엄히 경계할 것을 교훈하였다

♦ 잠언 24:8∼24:15
어려움에 처한 자를 구해 줄 것과, 영혼에 유익을 주는 지혜를 얻을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유다서 1:20)

신앙생활을 잘 하는 비결은 거룩한 믿음 위에 나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세워갈 수 있을까요?
성경을 읽는다!
기도한다!
봉사한다!
섬긴다!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유다서에서 교훈하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성령으로 기도하라!
둘째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라!
셋째는 영생에 이르도록 주 예수의 긍휼을 기다리라!
넷째는 어떤 사람을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사람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세 단어를 생각합니다.
인연(因緣)과 악연(惡緣)과 필연(必然)입니다.
서로의 만남을 악연으로 마무리 할 것이 아니라 필연으로 만들기 위하여 성령으로 기도하고, 주의 사랑으로 서로를 위하며, 다 함께 영생에 이르도록 구원의 길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2

9

호 9:1∼11:12, 계 1:1∼1:20, 잠 24:16∼24:22

12

10

호 12:1∼14:9, 계 2:1∼2:17, 잠 24:23∼24:34

12

11

욜 1:1∼2:17, 계 2:18∼3:6, 잠 25:1∼25:10

12

12

욜 2:18∼3:21, 계 3:7∼3:22, 잠 25:11∼25:20

12

13

암 1:1∼3:15, 계 4:1∼4:11, 잠 25:21∼25:28

12

14

암 4:1∼6:14, 계 5:1∼5:14, 잠 26:1∼26: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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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7:1∼8:14, 계 6:1∼6:17, 잠 26:10∼26:19


♦ 12월 9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9:1∼11:12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고 도덕적, 종교적 타락에 빠진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고 이로 인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선포하였다. 그는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이방을 좇음으로 결국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면서 이 죄로 인해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어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였다.

♦ 요한계시록 1:1∼1:20 
요한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문안과 찬양의 인사를 한 후, 밧모 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과 그분께 받은 계시를 기록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 잠언 24:16∼24:22
야훼를 경외하는 의인과 장래가 없는 악인의 길은 다르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요한계시록 1:1)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를 대략 95∼96년경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22장 404절로 구성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8구절입니다(1:1, 2:16, 3:11, 11:14, 22:6, 7, 12, 20).

“속히”라는 단어의 의미는 “당장” 또는 “급하게” “즉시” 라는 것이 아닙니다.

1장 1절에서 소개한 “속히(τάχει)”라는 헬라어의 원형은 “타코스(τάχος)”라고 합니다. ‘타코스’의 뜻은 “반드시”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왜 아직도 다시 오실 주님께서 오시지 않느냐?” 이렇게 반문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실 것이므로 다시 오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정결한 신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교인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는 1만년이 1초와 같다면서요?”
“그럼 당연하지. 뿐만 아니라 천만 원이 일원과 같기도 하지!”
다급해진 교인이 하나님께 간절하게 매달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제게 천만 원만 주십시오.”
그때 하늘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은
“그래, 일초만 기다려라!”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시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인간이 알고 있다고 가르치거나 주장하는 것은 곧 내가 하나님이라는 불경죄(不敬罪)를 짓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오실 것이라 믿고 오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거룩한 믿음으로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다듬어지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0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호세아 12:1∼14:9
호세아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의한 삶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선포하였다. 또한 그는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인간 왕을 구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회개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패역을 고치시고 그들을 즐거이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선포하였다.

♦ 요한계시록 2:1∼2:17
예수님은 주님을 위해 인내한 에베소 교회에게 처음 사랑의 회복을 촉구하셨고, 환난 속에 있는 서머나 교회에게 충성을 독려하셨으며, 이단에 빠진 버가모 교회에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 잠언 24:23∼24:34 
공정하게 재판할 것을 교훈하며, 궁핍이 뒤따르는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

요한계시록은 로마 황제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하는 기독교 신앙을 핍박하는 불의한 시대에 기독교 신앙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고 섬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심지어 죽임을 당하고 지하 무덤 동굴(카타콤)속으로 숨어살던 교회와 성도들 그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소아시아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던 성도들을 향한 위로와 믿음을 격려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신 핵심은 “회개하라!” 그리고 “성령의 음성을 들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신앙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라!” 말씀합니다.

“충성(忠誠)”이란 “신실하다” “성실하다”는 뜻입니다(Be faithful).
“신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은 말씀을(言) 마음에 새기고(中) 그 말씀을 지켜(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成).

어느 교회에 아주 열성적인 청년이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으며 예수님과 베드로는 바다 위를 걸었다는 말씀을 읽고 나도 이런 믿음을 증명해야 하겠다면 기도원에서 몇 날을 금식한 후 자신 있게 강 위를 걸으려고 강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란 청년은 목사님을 찾아가서 묻기를 “왜 강 위를 걷지 못할까요?” 그러자 목사님께서 청년에게 “예수님이 네게 강 위로 걸어오라!”고 하셨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직접 물위를 걸어오라고 말씀하셨지! 하고 깨우쳤다고 합니다.

간혹 누가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는 간증을 들을 때 왜 나는 그와 같은 체험이 없을까 나를 의심할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주체는 이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입니다. 고유한 존재를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려는 것은 창조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를 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 세상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1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엘 1:1∼2:17
요엘은 유다 전역을 휩쓴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의 징계임을 알리면서 이 재앙으로 인해 온 유다 백성들과 자연이 받은 피해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였다. 그는 ‘야훼의 날’의 심판이 크고 심히 두렵다는 것과 그날이 임박했음을 말하면서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과 마음을 찢는 회개를 요청하였다.

♦ 요한계시록 2:18∼3:6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고 있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믿음에 굳게 설 것을 요청하시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사데 교회를 향해 회개를 촉구하셨다.

♦ 잠언 25:1∼25:10  
왕 앞에서의 지혜롭고 정중한 태도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요한계시록 3:2)

요한계시록은 문학의 양식으로는 “유대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문학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학작품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요한계시록의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교회를 향한 두 가지 특성은 “회개하라!” 그리고 “성령의 음성만 들어라!”는 것입니다.

회개(悔改)라는 한자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음 심(忄)
♦ 매양 매(每)
♦ 몸 기(己)
♦ 뒤쳐올 치(夂)

회개라는 한자의 의미는 “날마다(每) 마음이 생각한 것을(忄) 몸으로(己) 뒤 따라가는 것(夂)” 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요한계시록은 예수님 때문에 배고픔과 생명의 위험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이 세상의 삶이 비록 고달프고 어려울지라도 환경에 굴복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려면 반드시 잘못된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하며 회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요즈음처럼 비신앙적인 것이 마치 신앙인 것처럼 위장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흔드는 때에 성경의 마지막 예언서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고 내 삶에 적용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2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엘 2:18∼3:21
요엘은 회개한 자에게는 물질의 복을 풍성히 부어 주시고 환난에서 구원하여 평안을 누리게 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실 것과 누구든지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였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열국이 심판을 받게 되며 이스라엘은 최후의 승리와 영원한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3:7∼3:22
예수님은 인내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계속적인 충성을 당부하셨으며, 차지도 덥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회개를 권면하셨다.

♦ 잠언 25:11∼25:20
경우에 합당한 말의 중요성과 이웃 관계에 있어서의 올바른 행실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언 25:11)

정직한 사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정직할지라도 사회가 정직하지 못하면 지극히 작은 나의 정직마저 짓밟혀버릴 수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의 지도자는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은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합니다.
지도자로 취임 할 때의 말과 취임 한 후의 말이 다르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를 덮으려고 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른 길을 선택할 줄 아는 것이 바람직한 지도자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다윗 왕의 잘못을 나단 선지자가 깨우쳤을 때 왕의 힘과 권위를 갖고 연약한 나단의 충고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10)

얼마나 멋진 지도자의 모습입니까?
‘정직한 영’을 다른 말로 “견고한 영” 이라고 합니다(한글 개역 성경 난외 주 2 참조).

완벽한 지도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직한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주여!
정직(正直)한 영(靈)
정결(淨潔)한 마음으로
백성들 앞에 설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주옵소서.

서로 손을 잡고
모두 함께
겸손(謙遜)한 믿음으로
부끄러움 없는 나라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3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아모스 1:1∼3:15 
아모스는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의 여섯 이방 나라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이방 나라들은 서너 가지의 죄를 범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적했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남유다는 야훼의 율법을 멸시하고 어긴 죄로, 북이스라엘은 사회적 불의와 우상 신전에서 가증한 짓을 행한 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 요한계시록 4:1∼4:11
요한은 24장로들이 둘러싼 하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다. 24장로와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은 쉬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다.

♦ 잠언 25:21∼25:28
원수에게라도 선을 베풀 것과 자기 절제의 중요성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언 25:28)

‘마음을 제어(制御)하는 것’을 성경은 “절제(節制, self control)”라고 합니다.
절제(節制)란 한자의 훈(訓)은 “마디 절(節)” “절제할 제(制)”입니다.
절제는 “정도를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거나 제어함.”이란 뜻입니다.
강둑은 강물이 넘치지 못하도록 인위적으로 쌓은 방축입니다.
그러나 홍수와 태풍의 영향을 받아 강물이 차고 넘치면 강둑은 무너집니다.
강가에 강둑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도 마음의 둑이 있습니다.
마음의 둑이 무너지는 것을 “마음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이라고 하겠습니다.

돼지들이 모여 인간들을 하나님께 고발했다고 합니다.
인간들이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돼지처럼 먹는다.”고 말하는데 돼지들은 위에 70∼80%가 차면 아무리 맛난 것이 있어도 더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돼지처럼 먹는다.” 라는 말은 돼지들을 모독하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돼지들이 과식해서 배탈 났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소를 본 적도 없고, 너무 일을 많이 하여 과로로 쓰러지는 개미를 본 적도 없습니다. 먹는 것, 일하는 것, 말하는 것이든 절제하지 못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지킬 자격이 있느냐 하는 절제의 시험을 치며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먹지 말라!”는 절제의 명령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내린 최초의 계명입니다. 그것만 지키면 에덴동산에서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었는데 아담과 하와는 그 명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절제의 시험을 치루셨습니다. 사탄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하셨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한국인을 정신까지 완전히 식민지화시키려고 주요 기차역마다 “공창(公娼)”을 만들고 술과 담배와 심지어 마약까지 만들어 퍼트렸습니다. 그때 교회는 “조선 기독교 여자 절제회”를 조직하여 “금주, 금연, 공창 폐지, 마약 퇴치운동”을 펼쳤습니다. 이 절제운동이 한국교회 금주와 금연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절제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입니다. 열매가 아무리 풍성해도 ‘절제’가 없으면 아무 것도 바구니에 담을 수 없습니다.

은총의 계절에 성령의 열매 “절제”를 얻기 위하여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세워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4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아모스 4:1∼6:14 
아모스는 바산의 암소들로 비유되는 북이스라엘의 상류층 사람들에 대한 심판을 선포한 후, 여러 재앙을 당해도 도무지 회개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북이스라엘의 전 국민에게 심판을 선포하였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애가를 불렀으며, 피할 수 없는 야훼의 날의 심판을 알렸다.

♦ 요한계시록 5:1∼5:14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던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어린양이 취하였고, 이에 24장로들, 네 생물, 그리고 많은 천사들이 새 노래로 어린양을 찬양하였다.

♦ 잠언 26:1∼26:9
미련한 자를 멀리하여 그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따라 하지 않을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요한계시록 5:5)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일어날 모든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르면 마지막 날은 알 수 없지만 어떤 사건에서든지 믿는 자들은 모두 안전지대(安全地帶)로 옮겨질 것입니다.

첫째, 요한계시록의 구조(공간적 구조)

밧모 섬에서 : 1∼3장
하늘에서 : 4∼11장
땅에서 : 12∼22장

공간적 구조에서 진행되는 내용(말씀)이 어느 곳에서 일어나는 것인가를 확인하며 읽어야 합니다.

둘째, 세 가지 재앙(인, 나팔, 대접)

인(引, seal, σφραγίς)의 특징은 “떼는 것”으로 “심판의 내용을 처음 공개하는 우주적 선언을 말합니다(sign, 아노이고).”

나팔(喇叭, trumpet, σαλπίζω)의 특징은 “부는 것”으로 “이제부터 곧 시작될 것을 알리는 것을 말합니다(warning, 살피조)”

대접(大楪, bowl, φιάλη)의 특징은 “쏟아 붓는 것”으로 “실제적인 재앙의 총 과정으로 구체적인 심판의 내용을 말합니다(disaster, 에크케오)”

세 가지 연속되는 재앙에서 재앙이 모두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나타날 심판을 위한 재앙에 대한 징조와 경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유대묵시문학의 특징

유대묵시문학의 특징은 세 번씩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인과 나팔과 대접의 재앙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재앙들이 계속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나타날 대접의 재앙에 대한 징조와 경고를 통하여 반드시 재앙이 임할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것을 계시를 통하여 예언한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로만 나의 구주 삼고 날마다 주 안에서 구원의 완성을 향하여 힘차게 행진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르게 세워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5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아모스 7:1∼8:14
아모스는 황충, 불, 다림줄 환상에 이어 여름 실과의 환상을 보았다. 황충과 불의 환상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다림줄과 여름 실과의 환상은 회개치 않은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아모스는 심판의 날에는 절망적인 애곡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극심한 영적 기갈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6:1∼6:17  
인봉한 책을 받으신 어린양에 의해 일곱 인 중 여섯 인이 떼어졌고, 그 때마다 땅 위에는 재앙이 임했다.

♦ 잠언 26:10∼26:19 
미련한 자와 게으른 자의 어리석음에 대해 경계시키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아모스 8:2)

“눈으로 보는 것에 의해서 결정된다.”
선지자 아모스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 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하려느냐? 라는 반어법적인 질문입니다.

영어 표현 중 “인생은 B에서 D까지다(Life is from B to D)”는 말이 있습니다.
B는 탄생(birth), D는 죽음(death)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B와 D 사이에 C가 있다는 것은 C는 선택(choice)을 말합니다.
인생(人生)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選擇)을 반복(反復)한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잠언 기자는 선택을 위하여 게으름을 피하라고 권고(眷顧)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인(引, Seal)”을 떼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인을 뗀다고 할 때 “떼다”는 의미는 열어서 보여준다는 뜻입니다(Open).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재앙을 던지려고 “인(引)”을 떼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유대묵시문학”이란 장르(genre)에 속합니다.
유대묵시문학의 특징은 세 번씩 반복하여 설명하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인(引)은 징조(sign)와 나팔(喇叭)은 경고(warning)와 대접(大楪)은 심판(judge, disaster)이란 세 가지 재앙을 반복한 것은 반드시 마지막 날에 재앙이 임할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신앙의 행위가 결정될 것이므로 성경은 반드시 성령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의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2020년부터 오늘의 묵상을 위하여 새로운 계획을 준비합니다.
주일에는 섬기는 교회 중심으로 선포되는 메시지(message)에 따라 묵상을 합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한 장씩 성경을 읽되 묵상을 위한 주제와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묵상을 위한 자료만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묵상한 것을 서로 나눌 수 있도록 협력하여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질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2

16

암 9:1∼9:15, 옵 1:1∼1:21, 계 7:1∼7:17, 잠 26:20∼26:28

12

17

욘 1:1∼4:11, 계 8:1∼8:13, 잠 27:1∼27:9

12

18

미 1:1∼3:12, 계 9:1∼9:21, 잠 27:1∼27:9

12

19

미 4:1∼5:15, 계 10:1∼10:11, 잠 27:20∼27:27

12

20

미 6:1∼7:20, 계 11:1∼11:19, 잠 28:1∼28:9

12

21

나 1:1∼3:19, 계 12:1∼12:17, 잠 28:10∼28:19

12

22

합 1:1∼3:19, 계 13:1∼13:18, 잠 28:20∼28:28


♦ 12월 16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아모스 9:1∼9:15
아모스는 마지막으로 성전 파괴의 환상을 본 후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 오바댜 1:1∼1:21
교만으로 가득한 에돔을 멸망시키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묵시가 오바댜에게 임했다. 오바댜는 하나님의 심판이 에돔과 같은 반열에 서 있는 모든 열방에까지 확대될 것이며,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 요한계시록 7:1∼7:17 
환난 전에 이스라엘 지파 중 십사만 사천 명이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되며 성도들은 눈물이나 상함이 없이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임이 예언되었다.

♦ 잠언 26:20∼26:28 
다툼과 위선을 경계시키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요한계시록 7:3) 

마지막 날의 재앙(災殃)은 곧 심판(審判)입니다.
누구를 위한 심판일까요?
히브리 민족이 애급에서 나올 때 열 가지 재앙이 임했습니다.
누구에게 재앙이 임했습니까?
히브리 민족이 아니라 애급 백성에게 내린 재앙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 날에 임할 재앙의 심판은 누구에게 내려질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을 맞지 못한 사람들 즉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려질 재앙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인(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구원의 수가 채워질 때까지 사랑의 하나님은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개인 구원에 만족하는 신앙이 아니라 이제는 이웃에서 구원받아야 할 사람을 찾아 하나님의 인을 맞도록 가르치고 깨우치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144,000이란 하나님이 원하는 채워진 구원의 수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충만의 수 12와 12를 곱하면(☓) 144가 됩니다.
144에 가득한 최고의 수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될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 이스라엘 진영에서 이상한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이여!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땅에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여 형제와 자매의 울타리 밖에서 방황(彷徨)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깨우쳐야 하는 다급한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성도들이여!
모두 일어나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할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찾아내어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기도하며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7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요나 1:1∼4:11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니느웨로 보내심을 받았으나 순종치 않고 배를 타고 도망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풍랑을 보내셔서 파선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바다에 던져졌다. 큰 물고기에게 삼켜져 그 뱃속에서 3일 간 회개하고 구원받은 요나는 니느웨에서 회개를 외쳤다.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자 하나님께 화를 내며 불평하였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박 넝쿨을 통해 그를 교훈하셨다.
♦ 요한계시록 8:1∼8:13 
일곱째 인을 떼면서 일곱 나팔의 재앙이 시작되었다. 천사가 나팔을 불 때마다 땅에는 무서운 재앙이 임했다.

♦ 잠언 27:1∼27:9
친구의 충성된 권고와 면책은 아름답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요한계시록 8:4)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그 말씀을 개인과 민족의 감정의 잣대로 해석하여 순종하지 못했다가 결국 고난의 과정을 거쳐 억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의 신앙도 개인과 민족의 감정에 붙잡혀 있었다면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은 얼마나 부끄러울까요?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고난과 핍박에 시달리던 사도 요한에게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아직도 다시 오시지 않는 것은 일곱째 인을 떼시기 전 일곱 나팔을 준비시키시며 아직도 성도들의 기도를 담아야 할 금 향로가 채워지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인을 떼심으로 마지막 때의 징조(sign)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나팔을 불게 하심으로 마지막 때가 다가왔다고 경고(warning)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서 영혼 구원을 위하여 불같은 성령의 임재가 모든 성도들과 교회위에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온 땅에
주 복음 증거 되게 하소서
주여!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시고 깨우쳐서
온 성도들과 교회들이
증인의 사명 감당케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8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미가 1:1∼3:12
미가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전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고 사마리아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그는 약하고 가난한 자를 억압한 권세자들의 죄와 참선지자의 예언보다 자신의 뜻에 맞춰 주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청종했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한 후,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9:1∼9:21 
다섯째 나팔을 불자 무저갱에 있던 황충이 풀려나 인 맞지 않은 사람들을 괴롭게 하였고, 여섯째 나팔을 불자 결박에서 풀려난 네 천사에 의해 사람의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했다.

♦ 잠언 27:10∼27:19 
지혜로운 자는 재앙에 슬기롭게 대처하여 재앙을 피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요한계시록 9:20) 

다섯 번째 나팔이 울렸습니다.
나팔은 소리를 내어 마지막에 일어날 재앙의 심판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일곱 나팔이 준비되었는데 다섯 번째 나팔이 울렸습니다. 아직 세 나팔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난과 재앙이 닥쳐올 때에 시대의 특징은 회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화인 맞은 양심들이 너무 많아 회개할 수 없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거짓을 마치 진리인 것처럼 온갖 이적과 능력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이여
거짓과 술수가 난무하는 세상
진리의 손을 들고
세상을 향해 흔들어
여기 빛이 있노라
여기 진리가 있노라
여기 사랑이 있노라
자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19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미가 4:1∼5:15 
미가는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 모두가 참여하는 영광과 평화의 메시아 왕국이 도래할 것을 예언하였다. 또한 그날에는 남은 자들이 포로에서 귀환하여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승리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이스라엘에게 바벨론에서의 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인내하라고 권면하였다. 그리고 미가는 메시아의 탄생과, 하나님의 왕국을 거룩하게 하실 그 분의 사역에 대해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10:1∼10:11 
하늘에서 내려온 힘센 천사는 남은 일곱째 나팔 재앙의 성취를 맹세하였다. 요한은 천사로부터 작은 책을 받아먹은 후, 세상을 향해 다시 예언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 잠언 27:20∼27:27 
칭찬 앞에서 겸손할 것과 재산을 잘 관리할 것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요한계시록 10:10)

복음(福音)은 입에는 달달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입에는 꿀 같이 달고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된다고 하지요.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주(主)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놀라운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셨던 예수님께서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뛰어 내렸으면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을 붙잡는 기적보다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따르려면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고통과 절망의 문을 지나야만 할 것입니다.

복음으로 살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 하셨는지요?
복음의 열매를 위하여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했던 희생이 있었는지요?
어느 누구도 걷지 못한 주님의 길을
나도 걸어야 한다면
먼저 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실천했던 세례 요한의 고백(告白)을 잊지 마세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한복음 3:30).
한문 성경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필쇄미 타필흥왕(我必衰尾 他必興旺)
은총 계절을 맞아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세례자 요한과 같은 마음과 믿음으로 세상을 섬길 때 입에는 달달하지만 배에서는 쓰디쓴 삶의 희생과 헌신으로 얻어질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0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미가 6:1∼7:20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변론을 들은 이스라엘은 좋은 제물을 드리는 외식적인 예배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으려 하였다. 이에 미가는 오직 공의와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교훈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불의와 타락에 대해 책망하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예언한 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찬양을 드렸다.

♦ 요한계시록 11:1∼11:19 
두 증인은 임무가 끝나자 죽임을 당했으나 하나님께 생기를 받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세상 통치를 선포했다.
♦ 잠언 28:1∼28:9
율법을 지키고 야훼를 찾으며 성실히 행하는 의인의 삶과, 율법을 버리고 사곡히 행하며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악인의 삶이 대조되어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직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속성이요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미가 선지자가 활동했던 남 왕국 유다는 하나님께 예배는 드렸으나 진실한 회개가 없었으며, 제사는 드렸으나 참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공의를 행할 것을 요구하셨으나, 그들은 입술로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 뿐 여전히 불의를 행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불의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오직 인자를 베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며 자비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원칙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동기는 바로 사랑과 섬김이 되어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폭력이 난무하고 범죄 양상이 잔인해져가는 것은 마지막 때의 징조 사랑이 식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부터 작은 사랑을 실천해 갈 뿐 아니라 지역과 국경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복음 증거를 위해 사랑을 나누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오직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을 최상의 자리에 모시고 그 뜻에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스스로 높아진 사람 속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곳이 없습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드로전서 5:5)

믿음의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요구하시는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는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고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름진 제사보다 우리의 생활 전체를 드리는 영적 예배를 원하십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예배자의 삶이 진행될 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겸손과 인내의 대열 앞에
세상은 질서를 찾아갈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1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나훔 1:1∼3:19
나훔은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는 니느웨가 적의 침략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멸망 이후 황폐된 니느웨의 모습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나훔은 니느웨의 여러 죄악을 지적하고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였다.

♦ 요한계시록 12:1∼12:17 
해를 입은 한 여인이 해산 고통 끝에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들을 낳았다. 하늘에서의 전쟁 후 쫓겨난 붉은 용은 이 여인을 핍박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을 광야로 피난케 하셨다.

♦ 잠언 28:10∼28:19
정직하며 항상 주를 경외하는 의인의 삶과, 자기 죄를 숨기고 방탕을 좇는 악인의 삶을 대조하여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온 천하를 꾀는 자(요한계시록 12:9)

세상(世上)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구분합니다.
영적인 세계에는 살리는 영의 하나님(요 6:63)과 죽이는 영으로 사탄이 있습니다(계 20:2, 12:9).
신앙생활의 즐거움은 악한 영을 다스리고 물리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이길 수 있는 삶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의 보혈을 주장하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寶血)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順從)의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마귀는 불순종(不順從)의 영(靈)이므로 순종의 영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하라!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계시된 것이므로 그 말씀을 주장할 때 다양한 능력으로 역사될 것입니다. 대표적인 능력을 창조(創造)라고 합니다. 오늘날도 타락하고 죄 많은 인생을 새로운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이 창조의 능력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보혈과 주님의 말씀을 주장하며 승리하는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존귀한 주의 백성의 반열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2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하박국 1:1∼3:19
죄악이 관영한 남유다를 공의의 하나님께서 왜 징계치 않으시는가를 질문한 하박국에게 갈대아를 심판의 도구로 삼아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다. 이어 하박국이 왜 유다보다 더 패역한 이방을 사용하여 유다를 심판하시는지를 다시 묻자,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심판 도구인 바벨론도 결국에는 심판과 멸망을 당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하박국은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했다.

♦ 요한계시록 13:1∼13:18
한 짐승이 바다에서 나와서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아 하나님을 모독하며 자신을 경배하게 하였고, 다른 짐승이 땅에서 나와 적그리스도를 도와 큰 이적을 행하며 사람들을 미혹해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다.

♦ 잠언 28:20∼28:28
충성되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의인은 구원을 받지만, 아첨하며 다른 이를 멸망케 하는 악인은 저주받고 멸망한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주를 믿는 성도들을 향한 명령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극한상황(極限狀況, extreme situation)”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선포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말씀합니다.
당시 로마 황제(가이사, Kaiser)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짐승의 표를 이마와 오른 손목에 받도록 명령합니다. 만일 이런 표가 없으면 아무 것도 구매할 수 없습니다. 굶어 죽이려는 억압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하박국 선지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기뻐하라고 외칩니다. 어떻게 극한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기뻐할 수 있을까요?

잠언의 지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 조각 떡을 얻기 위해서라도 범법하지 말라"(잠언 28:21)

마지막 시대가 요구하는 믿음은 극한상황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길은 순교자의 삶을 각오하고 그 길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의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외롭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여!
오직 믿음으로
순교자의 길 다듬어
그 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2

23

습 1:1∼3:20, 계 14:1∼14:20, 잠 29:1∼29:29

12

24

학 1:1∼2:23, 계 15:1∼15:8, 잠 29:10∼29:18

12

25

슥 1:1∼3:10, 계 16:1∼16:21, 잠 29:19∼29:27

12

26

슥 4:1∼7:14, 계 17:1∼17:18, 잠 30:1∼30:9

12

27

슥 8:1∼9:17, 계 18:1∼18:24, 잠 30:10∼30:16

12

28

슥 10:1∼12:14, 계 19:1∼19:21, 잠 30:17∼30:23

12

29

슥 13:1∼14:21, 계 20:1∼20:15, 잠 30:24∼30:33

♦ 12월 23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스바냐 1:1∼3:20 
스바냐는 우상 숭배와 유다의 지도자, 상인, 그리고 야웨를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행한 모든 죄를 지적하면서 야웨의 날의 심판이 가까웠음을 말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후, 그 후에 이루어질 열방과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과 회복을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14:1∼14:20 
인 맞은 십사만 사천 명이 시온에서 새 노래를 부른 후, 짐승과 그 우상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 잠언 29:1∼29:9 
공의로운 왕과 다수의 의인이 있는 나라는 견고하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요한계시록 14:13)

“죽어봐야 안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죽음(死亡)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영원히 해결 할 수 없는 과제(課題)일까요?
알 수 있는 방법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배움의 과정(學習)

둘째는 경험(經驗)의 과정
문제는 배울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영역(領域)은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이 다시 의식을 갖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죽은 후에는 이러한 세상이 있다고 알려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일지라도 죽음의 잠깐 경험을 갖고 죽음 전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 수 있을까요?

셋째는 신앙(信仰)입니다.
성경은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셨고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부자와 거지가 모두 죽었을 때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서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리는 배움과 경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의 세상은 “영(靈)의 세계(世界)”이므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만 그 세계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움의 길에서
경험의 울타리 넘어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주의 진리 따라
죽음 이후의 삶을
깨달아 알게 하소서
이 생명 다 하기 전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4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학개 1:1∼2:23
학개는 중단된 성전 재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는 나태와 안일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면서 그들이 이로 인해 여러 재해를 당하고 있음을 알렸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한 후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학개는 솔로몬 성전에 비해 왜소한 새 성전을 보고 낙담한 백성들을 격려하면서 스룹바벨에 대한 구원의 축복을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15:1∼15:8 
성도들의 찬양 후 일곱 천사는 네 생물 중 하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의 금 대접 일곱 개를 받았다.

♦ 잠언 29:10∼29:18
왕과 관리가 지녀야 할 태도와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요한계시록 15:3)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어린 양의 노래는 십자가 구속을 찬양하는 노래를 말합니다.
마지막 날에 하늘 보좌 앞에서 모든 성도들이 부를 노래는 “새 노래”일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새 노래는 구속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시편 98:1). 

히브리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올 때 모세의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던 주님을 어린 양의 노래로 찬양했습니다.
마지막 그 날에 구속함을 받은 모든 백성들이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 하겠네
저 죄인 어서 주께와
죄 사유하심 받으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얻을 것이라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나 주만 찬송하리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5일(수)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스가랴 1:1∼3:10 
열조의 악한 행실에서 떠나 야훼 앞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스가랴는 여덟 가지의 환상을 보았다. 첫 번째는 홍마 탄자의 환상, 두 번째는 네 뿔과 네 공장(工匠)의 환상, 세 번째는 척량줄을 잡은 자의 환상, 그리고 네 번째는 야훼 앞에 선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환상이었다.

♦ 요한계시록 16:1∼16:21
일곱 천사가 큰 음성에 따라 하나님의 진노의 마지막 재앙인 일곱 대접을 땅에 쏟아 붓자, 일곱 재앙이 땅 위에 임해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고 유브라데 강이 말라 아마겟돈 전쟁이 예비되었다.

♦ 잠언 29:19∼29:27
하인에 대한 주인의 지혜로운 태도와 친구 선별의 중요성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스가랴 2:11) 

오늘은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성탄절(聖誕節)입니다.
영어로 Christmas라고 하지요. 약자로 X-Mas 라고 합니다.
X-Mas를 역으로 읽으면 Sam-X 라고 합니다.
Sam을 “지대공(地對空) 미사일”이라고 합니다.
성탄절이란 그리스도(X) 지대공 미사일로 발사하여 전 세계에 올려보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사람들은 카드를 보내고 선물을 교환하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2천 년 전 유대 땅 베들레헴(떡집)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전 세계가 축하하며 즐거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기쁜 소식 복음(福音, 유앙게리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누가복음 4:18∼19).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감사하며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성탄절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

예수님의 겸손과 용서와 사랑을 본받아 주님처럼 그 길을 걷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일어설 수 있는 성탄을 기도합니다.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마음으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화해를, 원한이 있는 곳에 용서를 선물하는 성탄절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즐거운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6일(목)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스가랴 4:1∼7:14
스가랴는 여덟 가지 환상 중 다섯 번째로 두 감람나무 사이의 순금 등대 환상, 여섯 번째로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 일곱 번째로 에바 안의 여인 환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 병거 환상을 보았다. 이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대관식을 거행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했는데, 이는 여덟 가지 환상 중에 예표된 ‘순(旬)’과 마찬가지로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금식 제도가 계속 시행되어야 하는지의 여부를 묻는 벧엘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스가랴는 하나님의 답변을 전하였다.

♦ 요한계시록 17:1∼17:18
하나님을 거부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타락한 종교를 가리키는 큰 음녀는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뜻하는 열 뿔과 짐승에 의해 멸망당했다.


♦ 잠언 30:1∼30:9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지식을 구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스가랴 4:6)

내 삶에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도저히 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었을 때 그 어려움을 넘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능력의 주님은 곧 성령님이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믿음의 단계

성경의 약속과 가르침을 100%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놀라운 사건들(奇事)들은 실제적인 사건이며 오늘날도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무조건 기적을 기다리는 신앙이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야 할 그 때에 반드시 그 기적이 일어나 나의 믿음을 든든하게 세우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는 것입니다.

둘째는 맡기는 단계
갈보리 십자가를 의지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시인할지라도 예수님의 갈보리 십자가를 통해 언약을 맺지 않으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전투하는 단계
원수의 세력과 싸우는 영적 싸움의 단계를 말합니다.
거짓말이나 음란이나 탐욕 등과 같은 원수와 싸워야 합니다. 악한 습관과 악한 행실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령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악한 습관, 악한 행실을 기도와 말씀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거룩한 성령은 거룩한 몸과 마음에 자리를 잡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중심에 머무는 단계
모든 삶의 목표를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원수와의 싸움을 극복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과거의 불순종, 불신앙을 청산하고 하나님 중심에 서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까지 온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충만해질 수 있고, 힘으로도 아니되고 능으로도 아니되는 난관을 성령을 통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릇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 단계까지 나아가 성령의 권능을 받고 모든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7일(금)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스가랴 8:1∼9:17
스가랴는 미래에 주어질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과 함께 금식의 날들이 기쁨과 희락의 절기로 변할 것을 말하였다. 훗날 이방 민족들도 야휘의 은혜를 얻고자 예루살렘에 찾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며, 열국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승리, 그리고 장차 오실 메시아의 사역에 대해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18:1∼18:24 
큰 성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그 곳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던 자들도 같이 무너져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 예언되었다.

♦ 잠언 30:10∼30:16
네 가지 죄악과 네 가지 만족할 줄 모르는 것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를 경계시키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요한계시록 18:5)

큰 성 바벨론은 당시 로마제국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죄악은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가장 무섭고 큰 죄가 기독교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세상은 하나님이 세우셨던 가정과 국가와 교회를 핍박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때 교회와 성도들은 영적 긴장이 필요합니다.
사탄의 전략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무너트리려고 노련한 수법으로 접근 할 것입니다.

어느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생각하며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목사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목사는 주저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군인에게 질문했습니다. 군인은 "평화" 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시 어느 신혼부부에게 질문했더니 "사랑"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화가는 믿음과 평화와 사랑을 함께 그리기로 생각하며 그림의 소재를 찾아다녔으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소재를 찾지 못해 아무 것도 그리지 못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들어오는데 “아빠” 하면서 아이들이 뛰어나와 안겼습니다.

아이들의 눈 망물에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믿음이 있구나!”

아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와 사랑이 있었습니다.

화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와 가정과 국가는 믿음과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곳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국가를 파괴하려는 사탄의 전술을 미리 깨닫고 은밀하게 파괴 공작을 시도하는 사탄을 주님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8일(토)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스가랴 10:1∼12:14
스가랴는 우상과 거짓 목자들을 심판하고 열방 가운데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아 견고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한 목자로 오실 메시아를 배척하고 거짓 목자 아래에서 고통당하게 되지만, 훗날 하나님의 보호로 구원과 승리를 얻게 됨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진정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선포하였다.

♦ 요한계시록 19:1∼19:21
하늘의 성도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과 어린양의 혼인 잔치 준비에 대해 찬송하였다. 백마 탄 그리스도의 재림 후 짐승과 악인들은 멸망당했다.

♦ 잠언 30:17∼30:23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일들과, 세상을 진동시키며 세상으로 견딜 수 없게 하는 것들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요한계시록 19:8)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의인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도적적인 말씀이 아닙니다.
어린 양 예수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을 때를 옳은 행실의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거짓 목자들이 양떼를 버리고 떠나버린 상황을 보여 주며 참된 목자상이 무엇인지 말씀합니다. 참된 목자상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잡힐 양떼를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자들은 양떼들을 서로 사거니 팔거니 하면서 그들을 전혀 불쌍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 와중에서 양떼들이 이제 곧 도살될 직전(잡힐 양떼)에 처해 있자 하나님은 스가랴를 보내어 이 불쌍한 양떼들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선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선한 예수님을 본받은 우리들은 마귀에게 잡혀 죽기 일보 직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양떼를 먹이는 직분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들을 끊어 버리고 “은총”과 “연락”(연합)이라는 두 막대를 취하여 양떼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떼들은 이 선한 목자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은총”이라는 막대기가 잘려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친 백성이라 할지라도 은총을 끊겠다는 표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도리어 배척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그 아들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셋째, 결국 선한 목자가 그들의 거부로 더 이상 양을 칠 수 없게 되자 그 삯으로 은 삼십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종들을 매매할 때 주는 가격입니다(출 21:32).

선한 목자를 끝까지 인정치 않고 무시한 행동이 극에 달하자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연합” 관계를 끊겠다는 표시로 “연락”이란 막대기를 잘라 버리게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인도를 끝까지 포기하고 거절하며 무시한다면 하나님과의 연합 관계가 끊어지게 되고, 무시무시한 악한 목자의 손에서 영영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를 따르는 선한 양떼가 되어 하나님과의 연합 속에서 그의 충만한 은총 가운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29일(주일)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스가랴 13:1∼14:21
스가랴는 하나님께서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을 죄에서 깨끗케 하신 후 우상의 이름과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쫓아 그들을 영적으로 정결케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그는 야훼의 날에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승리, 열방에 대한 심판, 그리고 모든 것이 성결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회복이 있음을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20:1∼20:15
부활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하고, 사단은 잡혀 불 못에 던져지고, 죽은 자들은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 계시되었다.

♦ 잠언 30:24∼30:33 
가장 지혜로운 네 가지 생물과 위풍 있는 네 가지 피조물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잠언 30:32)

네 손으로 입을 막으라!
주님 앞에서 헛된 것과 악한 것을 계획했다면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입을 막는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이 앞서는 사람은 실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입을 막고 반성하며 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참조 공동번역, 새번역).
작고 약한 것들로부터 지혜를 배우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같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중국 위나라 무제의 아들인 ‘충’은 어려서부터 지혜롭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어느 날 ‘손린(孫鄰, 202년~249)’이라는 사람이 커다란 코끼리의 무게를 알 수 있느냐고 제안했습니다. 무제는 모든 신하들에게 어떻게 하면 코끼리의 무게를 알 수  있을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코끼리의 무게를 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무제의 어린 아들 ‘충’이 “코끼리를 배에 태운 후에 배가 조금 가라앉겠지요. 그곳을 표시해 두었다가 코끼리를 다시 내려놓은 다음에 이번에는 무게를 달아두었던 돌을 배에 싣는 거예요. 대신 조금 전에 표시했던 곳에 물이 닿을 때까지만 돌을 배에 싣고 나중에 그 돌들의 무게를 합하여 보면 되지 않겠어요?” 라는 말에 모든 신하들은 어린 ‘충’의 지혜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지혜로 얻은 말 이외에는 입을 막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외칠 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복음의 증인으로 불러주신 은혜에 합당한 믿음을 기도하며 지혜로운 사람으로 무장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오늘의 말씀

12

30

말 1:1∼2:17, 계 21:1∼21:27, 잠 31:1∼31:9

12

31

말 3:1∼4:6, 계 22:1∼22:21, 잠 31:10∼31:31

1

1

요한일서 1:1∼10

하나님은 빛이시라

1

2

요한일서 2:1∼29

대언자

1

3

요한일서 3:1∼24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심

1

4

요한일서 4:1∼21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1

5

주일

교회 중심(교제, 섬김, 봉사, 나눔)

 
♦ 12월 30일(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말라기 1:1∼2:17
말라기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죄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책망을 전하였다. 그는 영적 지도자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흠 있는 제물로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의 죄악을 지적하면서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선포하였다. 이어 이혼이나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즐겨 하고 공의의 하나님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였다.


♦ 요한계시록 21:1∼21:27
새 하늘, 새 땅과 함께 아름답게 단장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이것들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 잠언 31:1∼31:9
지혜로운 왕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8) 

죽음은 익은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열매가 잘 익어서 햇수에 관계없이 각 사람마다 그 때가 되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죽음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 사망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땅에서의 죽음을 말합니다.
둘째 사망이란 분리된 육체와 영혼이 온전히 결합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영생과 영벌의 길로 구분되어 영벌에 들어가므로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는 천상에서의 죽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면서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좇아 범죄하고 하나님이 두려워 전전긍긍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죽어도 예수는 안 믿기로 마음속에 결정한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며, 인간은 죽으면 한줌의 흙으로 돌아갈 뿐 내세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입니다.
자기의 목적 달성을 위해 거침없이 악을 행하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행음자들입니다.
육체적인 환락에 젖어 방탕한 삶을 일삼는 자들입니다(히 13:4). 또한 점술에 능통한 술객들입니다. 즉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이며, 주의 길을 굽게 하는 자들입니다(행 13:10).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숭배하는 대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출 20:5).

상습적이고 악의에 찬 거짓말을 하는 자들입니다.
언제나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입니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둘째 사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사망 길에서 건져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둘째 사망에 들어서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후서 3:9)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2월 31일(화)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말라기 3:1∼4:6 
말라기는 심판의 주 메시아의 도래를 예언하면서 하나님의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적하였다. 또한 그는 악인의 번성을 보고 하나님께 불평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책망하면서, 기념책에 기록된 의인은 하나님의 날에 악인과 영원히 구별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임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심판 전에 있을 엘리야의 출현을 예언하였다. 

♦ 요한계시록 22:1∼22:21 
처음과 나중이신 예수님은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며, 곧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 잠언 31:10∼31:31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둔 남편의 유익과, 현숙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임을 교훈하고 있다 

♦ 오늘의 말씀과 묵상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요한계시록 22:13) 

알파(Ά)와 오메가(Ω)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작과 끝을 의미합니다.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마무리 하십니다.
창조하신 하나님은 심판으로 마무리하실 것입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말처럼 시작은 용의 머리처럼 거창하게 시작했으나 마지막은 뱀의 꼬리처럼 결과도 없이 흐지부지 막을 내리는 삶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요?

탈무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시작하며 “하나님, 제가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제가 여행하다가 얻게 되는 물건은 무조건 그것의 절반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얼마 가지 않았을 때 상자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혹시 저 속에 돈이라도 잔뜩 들어 있다면 …”

설레는 마음으로 그 상자 뚜껑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겨우 딱딱한 호도 몇 알과 복숭아 세 개가 들어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복숭아를 다 먹고 막 씨를 뱉으려는 순간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얼른 길에다 버린 호도 겉껍질과 복숭아 씨앗을 주워 하나님께 드리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약속대로 얻은 것의 절반을 드립니다. 호도의 겉껍질과 복숭아의 씨앗을 드리오니 받으시옵소서. 어쨌든 전체의 반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그의 예물을 기뻐 받으셨을까요?
2019년 나의 신앙의 삶을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셨을까요?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결단합시다.
그리고 너무 크고 많은 것을 계획할 것이 아니라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만이라도 결정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발전하고 성숙해지는 새해를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믿음의 결단과 더불어 행복한 2020년을 맞이하세요!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처럼 계획하고 시작한 것은 반드시 마무리 한다는 마음으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한일서 개론(2020년 오늘의 말씀을 위한 자료)

요한일서(ⅠJohn)

Ⅰ. 배경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의 저자는 요한복음의 저자와 같은 사람이다.

요한이 노인이 된 후 90∼91년경 에베소에서 기록 하였다.

이 서신에는 구약의 인용문이 한 곳도 없다.

Ⅱ. 내용과 주요 사상

이 때는 교회와 회당이 완전히 분리 되었고 믿음과 행위의 논쟁도 끝난 때이다.

그러나 이때 거짓 교훈들이 들어 왔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상으로서 나중에는 “가현설”이란 이단으로 발전 되었다.

그리고 죽은 분은 인간인 예수 이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 고난에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서신의 목적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하는 것
둘째는 교회에 침투해 온 거짓 교회를 타파시키기 위한 것

이 서신에는 “빛”(1:7, 2:9, 10)과 “사랑”(2:5, 7, 10, 15. 3:1, 2, 10, 11, 14, 16, 17, 18, 21, 23. 4:1, 7, 8, 9, 10, 11, 12, 16, 17, 18, 19, 29, 21. 5:1, 2, 3) 이란 두 단어가 두드러진다.


Ⅲ. 개요

서론 1:1∼4

 1.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친분을 선언함 1:1∼3

 2. 편지를 쓰는 목적 1:3

 (1)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북돋우기 위하여 1:3 하단

 (2) 기쁨이 충만케 하기 위하여 1:4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귐을 위한 요구사항들 1:5∼10

 1. 빛 가운데 행하라 1:5∼7

 2. 죄를 자백하라 1:8∼10


무죄한 생애에 대한 권면 2:1∼28

 1. 대언자이시며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신 그리스도 2:1, 2

 2. 그의 행하시는 대로 행함 2:3∼6

 3. 새 계명 2:7∼11

 4. 영적 자녀들에 대한 개인적 호소 2:12∼28

  (1) 쓰는 이유 2:12∼14

  (2)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2:15∼17

  (3) 적그리스도들과 그들의 이단을 경계하라 2:18∼26

  (4) 그의 오심을 위해 준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 2:27, 28

 하나님의 아들들과 마귀의 자녀들과의 대조 2:29∼3:24

 1. 하나님의 아들들의 의 2:29∼3:7

 2.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함 3:8, 9 
3.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에게 속함 3:10∼18

 4.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구원을 확증하심 3:19∼24


 진리와 사랑과 믿음은 사귐에 필수적임 4:1∼5:12

 1. 진리의 영과 오류의 영 4:1∼6

 2.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함 4:7∼21

 3. 믿음은 승리와 생명을 가져옴 5:1∼12


Ⅵ. 결론 5:13∼21

 1. 목적의 재천명 5:13

 2. 무죄에 대한 권고 5:14∼17

 3.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알라는 마지막 격려 5:18∼21 

요한일서는 2세기에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그릇된 영지주의에 독자들이 직면해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영지주의는 종교 철학으로서 “물질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주장했습니다(이원론의 영향으로 오직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고 주장). 이 둘 사이의 긴장에 대한 해결책은 “영지(gnosis)” 또는 “지식”인데, 사람은 이 지식을 통해 세속적인 자리에서 영적인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영지주의적인 복음의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두 가지 그릇된 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첫째는 가현설(Docetism)인데 사람 예수는 단지 유령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케린투스설(Cerinthianism)로 예수님은 두 인격을 지닌 존재로서 때로는 인간으로, 때로는 신으로 활동한다는 이론입니다.

요한일서의 핵심 목적은 믿음의 내용에 경계를 정하고 신자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핵심 구절 :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 하지 아니하나니 범죄 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요한일서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핵심 용어는 “지식”으로, 관련 어휘와 함께 요한일서에서 적어도 13번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약 : 거짓 영적 교사들은 초대 교회에서 큰 문제였습니다. 신자들이 참조할 수 있는 완성된 신약 성서가 아직 없었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고 스스로 지도자인 척하는 사람들에게 먹잇감이 되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이 편지를 통해 몇 가지 중요한 문제,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한 부분을 바르게 알렸습니다.


요한 서신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기초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서신을 통해 자신들의 신앙을 정직하게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참된 신자입니까? 요한은 우리가 자신들의 행동을 보고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만일 언제나 헐뜯고 싸운다면, 또는 이기적인 자세로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무심코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실, 요한은 신앙이 우리의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고 죄책을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잘못을 고치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또 다른 중요한 부분입니다.


연결 : 죄와 관련해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는 요한일서 2장 16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요한은 죄와 관련하여 성경 전체에서 가장 처음에 있었던 온 세상을 뒤흔드는 가장 끔찍한 유혹의 세 가지 측면을 묘사합니다.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한 처음 죄는 창세기 3장 6절에서 발견되는 동일한 세 가지 유혹에 의해 무너진 결과였습니다. 즉, 육신의 정욕(먹음직도 함), 안목의 정욕(보암직도 함), 그리고 이생의 자랑(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움) 입니다.


적용 : 요한일서는 사랑과 기쁨의 책입니다. 이 서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 및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교제를 설명합니다. 이 서신은 일시적이고 덧없는 행복과 진정한 기쁨을 구분 지으면서 어떻게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만일 우리가 요한이 기록한 이 말씀을 취하여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갈망하는 참된 사랑, 헌신, 친교와 기쁨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요한일서는 예수님과 직접 만나서 개인적인 접촉을 가진 사람들의 증거입니다.
복음의 저자들은 역사적인 사실에 든든한 기반을 둔 증거를 제시합니다.
어떻게 그들의 증거를 우리 삶에 적용합니까?

이 서신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용납을 기반으로 하여 우리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설명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은 저 멀리 떠나 계시며 실제로는 우리의 일상적인 갈등과 문제와 염려에는 무관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은 바로 이곳에서 우리 삶의 단순하고 평범한 부분 가운데 함께 하시고 또한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영혼의 문제에도 함께 하심을 알려줍니다. 요한은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신 것을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실을 증거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살기 위해 이곳에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요한과 함께 이 땅을 걸으셨듯이 지금은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우리 삶에 적용함으로 예수님이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 옆에 계신 것처럼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 진리를 실천에 옮긴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에 거룩함을 더하여 주실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그분을 닮게 만드실 것입니다. 

1장부터 3장의 말씀에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생활하고 있는 판단할 수 있다. 4장과 5장의 말씀에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답게 믿고 있는지 찾아볼 수 있다.
믿음이 정통이면 행동도 정통이어야 한다.
진리를 믿고 진리를 행하라.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계 2:7, 시 119:169) / 주일 설교 원고(2019-12-22) 이승혁목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라는 제목을 한자로 표현하면 “자각지성경(自覺之聖經)” 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소개된 일곱 교회들을 향하여 공통적으로 계시된 말씀입니다. 칭찬을 받든지 책망을 받든지 모든 교회가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과연 성령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요?

2020년 표어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표어 성구는 시편 119편 169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May my cry come before you, O LORD; give me understanding according to your word.)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는 것이 무엇일까?

사울이란 청년은 유대교에 정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만이 유일한 신앙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는 반드시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확신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기를 만일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 가까이 이르렀을 때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므로 땅에 엎드렸는데 하늘로부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사울은 “주여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께서 아나니아 라는 제자를 환상 중에 불러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

사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입문하게 된 동기는 주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나를 깨닫기 위해서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곧 주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잠언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말씀에 주의하는 자”에 아라비아 숫자 가 적혀 있고 난외에 ②를 찾으면 “일을 처리하는 자”라고 번역합니다.
따라서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는 것은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윗은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을 때 어린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골리앗 앞으로 나갔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당당하게 외치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다윗뿐이었습니다. 다윗은 말씀에 주의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사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믿음으로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소년 다윗이 일고 있었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당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모르고 있었을까요? 물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왜 사용할 줄 몰랐을까요? 주의 말씀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신앙생활을 위한 표어는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표어 성구는 시편 119: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나를 깨닫기 위해서는 깨닫게 하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나를 깨닫는 네 단계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동물(動物)과 비교하라
둘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라
셋째는 위인(偉人)과 비교하라
넷째는 예수와 비교하라(예수 앞에 서라)


금수(禽獸)보다 못한 놈!”
또는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이 있지만 사람을 동물과 비교할 때 동물보다 더 우월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는 다소 못할 수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위인과 비교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는 도저히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와 비교할 때 모든 사람은 “죄인(罪人)”이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는다!”는 말씀은 “내가 죄인(罪人)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깨달은 사람은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한 죄인으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달은 사람을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義人)”이라고 합니다.
내가 의롭기 때문에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해주셨기 때문에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은혜(恩惠)”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위인들과 비교해서 월등한 삶을 살았을지라도 어느 누구도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깨닫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깨닫는 것을 다른 말로 “아는 것” 즉 자각(自覺)이라고 합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은혜의 원천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덮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7:9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어떻게 죄를 덮어주셨을까요?

첫째, 도말(塗抹)하는 것(시편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도말(塗抹)이란 한자는 “진흙 도(塗)” “지울 말(抹)”이란 훈으로 진흙을 발라 모두 지워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를 사랑의 진흙으로 발라 지워버립니다.
사랑의 진흙을 십자가 보혈이라고 믿습니다.

시편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골로새서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의문에 쓴 증서를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율법의 채무 증서” 라고 합니다.

둘째, 기억(記憶)하지 않는 것(이사야 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기억(記憶)이란 한자는 "적을 기(記)" "생각할 억(憶)"이란 훈으로 적어 놓은 것을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수 사탄 마귀는 이미 모든 죄를 도말하여 덮어버린 것들을 틈만 나면 덮은 것을 벗겨버립니다.
그리고 죄악의 흔적들을 들추어 자꾸 괴롭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랑의 진흙 즉 십자가 보혈로 덮어버린 것을 다시 들추려는 원수 사탄 마귀를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시편 25:7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 

히브리서 10: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셋째, 용서(容恕)하는 것(시편 39: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용서(容恕)라는 한자는 "얼굴 용(容)" "용서할 서(恕)"라는 훈으로 얼굴을 보고 용서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을 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대신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보기 싫다고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시고 한번 만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십니다.
주님의 간청하심으로 나는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얼굴을 보고 용서하시는 것은 모든 죄를 등 뒤로 던져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넷째, 씻어(洗濯)주는 것(요한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씻는 것을 한자로 “세탁(洗濯)” 이라고 합니다.
세탁(洗濯)이란 한자의 훈은 “씻을 세(洗)” “씻을 탁(濯)”으로 씻어서 깨끗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의 피로 옷을 씻는다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내 모든 삶을 깨끗이 씻어 희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나를 깨닫는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 방법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때 하나님은 사랑으로 죄를 해결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셨고 우리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해결하신 방법으로는 “도말” “기억하지 않는 것” “용서”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도말(塗抹)과 망각(妄覺)과 용서(容恕)와 세탁(洗濯)이란 방법으로(도 망 용 세탁) 해결된 죄악의 문제를 원수 사탄 마귀가 들추거나 끄집어 낼 때 반드시 주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복음 4:9∼10, 요한계시록 1:1∼2) / 주일 설교 원고(2019-12-15)


오늘 설교 제목은 “믿음의 터닝 포인트”입니다.

요한복음 4:9∼10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계시록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믿음”이란 한자는 “믿을 신(信)”입니다.
(信)”자를 분석하면 “사람(亻)”과 “말씀(言)”이 하나가 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형문자(象形文字)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말씀”은 곧 “하나님”을 말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된 존재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라고 불렀던 던 것처럼 주를 믿는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 아무개" 이렇게 불려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신명기 33:1, 여호수아 14:6, 역대상 23:14, 역대하 30:16).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프란시스 쉐퍼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전환점(轉換點)”이라고 합니다.
전환점’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목표와 방향이 새롭게 결정된 것”을 말합니다.

오늘 소개한 본문에서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사마리아 여자와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복음 4:1∼30)

사마리아 여자와 믿음의 터닝 포인트는 언어의 변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4:9,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4:19,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과 만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은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가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된 후 유능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붙잡혀 갔습니다.
그리고 유대에는 바벨론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유대인들과 서로 섞여 살게 하므로 순수한 혈통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은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세 지역으로 구분했습니다.
만일 유대지방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이동할 때는 중간에 위치한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지 않고 먼 거리로 돌아 다녔습니다.
그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시려고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마침 한낮이 되었을 때 사마리아 여자가 수가 성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긷고자 나왔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아침과 저녁에 우물을 찾았지만 사마리아 여자는 유대인들이 없는 시간을 선택하여 우물을 찾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당신은 유대인으로 왜 사마리아 사람에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토록 목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런 물이 있으면 내게 주어 마시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에게 “나는 남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다.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있는 네 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사마리아 여자는 유대 남자가 아니라 선지자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물을 얻으려고 우물을 찾았으나 유대 남자로 만났던 사람이 선지자가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메시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신앙을 확신하게 되었고 참된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께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믿음의 터닝 포인트(요한계시록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사도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동안 살았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순교한 후에 가장 나이가 많은 제자로 밧모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제자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모친 마리아를 어머니처럼 모시라는 부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으며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 정말 예수님은 다시 오실까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만났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에 대한 말씀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 계시가 주어진 것입니다.

계시의 의미는 믿음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계시)가 없으면 자기 멋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연약해 질 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면 새로운 힘을 얻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박국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제자이었지만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했던 예수님께서는 오시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밧모 섬에 갇혀 지내며 언제 예수님께서 오실는지 알 수 없다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때에 계시를 받음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음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어떤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까요?

사마리아 여자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도 없습니다.
사도 요한처럼 계시를 받을 수 있는 핍박과 고난의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신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한 가지 방법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17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 알았나니(오이다스, οἶδας) 

* οἶδα(1492. oida)
Definition : be aware, behold, consider, perceive
Usage : I know, remember, appreciate. 

“알았나니” 라는 동사는 내가 직접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므로 일찍부터 그 말씀을 배워서 알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려는 것
둘째는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하게 하려는 것

2020년 신앙생활의 표어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시편 119:169b)
Give me understanding according to your word. 

왜 계시가 아니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니고 주의 말씀대로 깨닫는 믿음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할까요? 성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부자와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으며 연명하던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고 부자도 죽어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 나사로를 바라보며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나사로의 손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이곳으로 떨어트려 주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기 때문에 음부에서 아브라함의 품으로 올 수도 없고 아무 것도 보낼 수 없다고 거절합니다. 그때 부자는 그렇다면 나사로를 내 집에 보내서 형제 다섯은 이곳으로 오지 않도록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세상에는 선지자들이 있으니 선지자에게서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선지자들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는 말씀은 선지자들의 글 즉 선지서와 성경을 통해서 들어야 한다는 깨우침입니다.(참조 누가복음 16:24∼31)

마태복음 17장 변화산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 그곳에서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 같이 빛나며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겠다고 제안합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였는데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변화산 사건에서 두 가지 교훈을 생각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모세와 엘리야 이외에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다윗 왕, 솔로몬 왕과 같은 많은 인물들이 있었는데 왜 모세와 엘리야만 나타났을까요?

모세는 율법을 상징합니다(토라, 율법서)
엘리야는 선지서를 상징합니다(느비임, 선지서)
따라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시가서는 어디 있습니까?(케투빔, 성문서)

누가복음 22: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두 번째는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만나야 할 대상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이시며 예배하는 사람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사도 요한은 천사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마지막까지 예수님으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오늘날 성도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계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배에 임하는 자세가 바뀔 것입니다.
계시를 받았을 때 믿음의 고통스런 과정을 통하여 더 많은 영혼들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20년부터 오늘의 묵상이란 방법으로 믿음의 터닝 포인트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한 주간의 삶은 주일(主日)부터 시작합니다.
주일에는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은 없습니다. 다만 섬기는 교회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매일 읽어야 할 말씀은 1장씩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020년 1월 1일에는 요한일서 1장을 읽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을 읽기 위한 주제는 “하나님은 빛”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빛에 대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이어서 빛이 되신 하나님은 내 삶의 어두움을 찾아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빛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나의 결단을 세운 후에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성경을 읽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성경을 읽은 후에 내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시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처음부터 잘 적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실천하며 기도하면 나도 모르게 적용된 내 모습과 신앙의 발전된 삶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하는 본문도 함께 읽었던 말씀 중에서 선택하여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도록 협력하려고 합니다.

참조 /

누가복음 16:24∼25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누가복음 16:26∼31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찌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말세의 신앙(계 13:8-10, 눅 18:8) / 주일설교 원고(2019-12-08)


원제목(原題目) : 마지막 시대가 요구하는 믿음의 사람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 3:3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기롱(譏弄)이란 단어를 여러 번역으로 살펴봅니다.
NSB 영어 성경에서는 mock(놀리다, 무시하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조롱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럴듯한 이야기(a feasible story)”와 “진실(fact, truth)”은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신앙고백으로 암송하거나 사용하는 “사도신조(師徒信條)” 또는 “사도신경(師徒信經)”은 12개의 문장으로 12사도가 한 문장씩 작성하여 만든 것이라는 글을 읽거나 듣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주장의 근거는 4세기 “루피너스(Rufinus)”가 사도신조의 주석을 쓰면서 12사도가 한 줄씩 썼다고 주장한 것을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신조란 사도들이 쓴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사도신조”라고 부른 것입니다.

심지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십계명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도신조는 성경에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신조가 성경에는 없지만 그 내용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에 대하여 복음의 핵심을 주장할 수 있는 믿음의 근거로 채택된 교회의 전통에 따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럴듯한 이야기와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와 분별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10

죽임을 當(당)한 어린 羊(양)의 生命冊(생명책)에 創世(창세) 以後(이후)로 錄名(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者(자)들은 다 짐승에게 敬拜(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者(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者(자)는 自己(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聖徒(성도)들의 忍耐(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사 33:1, 화 있을진저 너 학대를 당치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임을 입지 아니하고도 속이는 자여 네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

렘 15: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망할 자는 사망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렘 43:11, 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이라.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3장은 마지막 시대에 세상 권력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짓밟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 활동을 못하게 하려고
짐승의 표를 오른 손과 이마에 받아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환난과 핍박의 시대에도
성도들이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키려면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씀하려는 인내와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내용이 10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로잡는 자(者)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者)는 자기(自己)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聖徒 )들의 인내(忍耐)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사로 잡히거나 또는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죽임을 당할지라도 성도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려고 인내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速(속)히 그 怨恨(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人子(인자)가 올 때에 世上(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히 10: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눅 17: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마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은 기도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한 과부가 재판관을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과부는 끈질기게 재판관을 찾아와서 간청합니다.
그때 재판관은 내가 만일 이 과부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계속적으로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므로 과부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호소를 들어주었다면
하물며 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설교자들이 이와 같이 끈질기게 강청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용을 깊이 관찰하면
끈질긴 기도에 대한 응답을 넘어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끈질긴 기도를 할 수 있는 "인내하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두 가지 실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최근 한국에서 통치자에 대한 끈질긴 외침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대학의 교수들, 변호사와 예비역 장성들 그리고 목회자들까지
"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라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습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도 매주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많은 성도들과 시민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다양한 비리가 드러나는데도 청와대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아스팔트 위에서 외치는 애국시민들과 성도들이 언제까지 이렇게 외쳐야 하느냐? 라고 질문하면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올 때까지" 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간청하는 기도 때문에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응답이 없을지라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기독교인들은 고통가운데서 시달렸고 심지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이 부르짖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그 좋은 예를 요한계시록 6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은 인을 떼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다섯 번째 인을 떼실 때 순교를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칩니다(참조 6:10).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렵니까?

이 말씀은 기독교를 탄압하던 때에 순교한 영혼들이
아직도 세상에서 기독교를 핍박하는 것을 지켜보며 하늘 보좌에 앉아있는 하나님을 향하여
언제까지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야 합니까? 하며 부르짖을 때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아직 잠시 동한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순교한 영혼들이 부르짖을 때에도 좀 더 기다리라고 하셨다면
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즉시 해결하려면
과부처럼 밤낮 부르짖고 해결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보다는
비록 억울한 것을 해결 받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너무 쉽게 응답받고 해결 받으려는 쉽고 가벼운 기도와 은혜가 신앙의 질서를 흔들어버렸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가 되면 이런 신앙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성도들이 경제적인 핍박과 심지어 사나운 짐승에 의해서 찢겨지는 죽임을 당할지라도
끝까지 이마와 오른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주님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두번째는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모퉁이돌 선교회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삼촌 잘 계시니?” 이렇게 질문하면
혈연관계로 형성되는 친인척의 삼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소유한 것만으로도 강제노동수용소에 끌려가야 하고 평생토록 그곳에서 나올 수 없는 현실에서
오직 주님만을 섬기려는 지하교회 성도들의 신앙적인 암호는 “삼촌 잘 계시니?” 라는 것입니다.

강청하면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무려 70년이 지나도록 응답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계속하여 부르짖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통일을 허락하신다면 남한 교회 성도들이 이곳에 와서
지하에 숨어있던 신앙을 위로 올려주십시오!

그동안 지하교회 성도들은 굶주림과 핍박과 강제노동과 죽임의 사슬에 묶여 있을지라도
무릎을 꿇지 않고 당당하게 믿음을 지키는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믿음의 사람은 당장 기도하고 응답받았다고 좋아하는 믿음이 아니라
비록 응답이 없을지라도 끝까지 기도하며 주님의 섭리를 믿고 기다리는 것을 원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But even if)(다니엘 3:18)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유대 나라에서 유능한 젊은 인재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붙잡혀 왔습니다.
그 중에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이란 젊은이들은 바벨론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을 하며
숭배하라는 명령을 들었습니다.
만일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풀무불 속에 던져 넣는다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때 유대 나라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신앙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인지라
바벨론 땅에서도 믿음을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에게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도 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만일 왕이 우리들을 극렬히 타는 풀무불속에 던져 넣는다면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 우리들을 그 풀무불 속에서 건져 내실 것이며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아니 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이 세운 금신상에게 절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나는 신앙적으로 옳은 길을 선택했는데 상대방이 비신앙적인 자세로 위협하고 협박할 때
마음속으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이런 사람을 태워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까?

제게는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생각은 잠시 할 수 있으나 입으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응답하시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질서와 응답을 기다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if I perish, I perish)(에스더 4: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것이지만
일부러 죽을 각오를 하고 죽음을 향하여 다가간다는 것은
마지막 방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일회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누구에게나 낯선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죽음을 자청한다는 것은 아주 바보이든지 아니면 확실한 믿음을 갖는 사람입니다.

에스더는 한 나라의 왕후가 되었습니다.
왕후의 육신적인 삶은 모두가 부러워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저희가 온산에서 목회 초기 고려아연이란 회사에 황산부장으로 근무하시던 황규선집사님은
사표를 낸 후에 안양에 있는 성결교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때 고려아연의 많은 직원들이 얼마나 예수님이 좋으면 직장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며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모든 가족들과 더불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자리가 보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그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습니다.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에스더는 이렇게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을 기대하고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간혹 믿음으로 어려운 결단을 할 때 이렇게 결단하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결단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좋은 길이 아닐지라도
믿음은 이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그 길을 선택하고
그 다음은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죽으면 죽을 것이고
풀무불속에 던져지면 불에 타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선택한 것을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육신의 생명을 갖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활용할 줄 아는 믿음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췌장암에 걸렸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죽음을 의식하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니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죽음 활용법” 이라고 합니다.

죽음 활용법을 에스더가 사용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죽음 활용법을 아벳느과 사드락과 메삭이 사용했습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죽음 활용법을 다니엘이 사용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한 창을 열고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의 이와 같은 신앙의 삶을 잘 알고 있던 메대 바사의 대신들은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려고
삼십일 동안에 왕 이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똑같은 방법으로 기도합니다.
왕은 다니엘에게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며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게 합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지켜주셨습니다.
지켜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메대 바사의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었습니다.
옳은 길 진리의 길을 갈 때 그 길을 지키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진리의 길을 보여주시기 위한 거룩한 임재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삶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믿음으로 드러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샘물과 같은 보혈은 / 윌리암 카우퍼(William Cowper, 1731~1800)

원곡 : 미국 전통 민요
편곡 : 로웰 메이슨 (Lowell Mason, 1792-1872)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는 영국의 그레이트 버크햄스테드(Great Berkhamstead)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직자였고 어머니는 왕족 출신이었다.

카우퍼는 허약한 몸과 소심한 성격 탓에 사회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는 법률을 공부했지만 심한 우울증과 무대 공포증이 있어서 법정에는 한 번도 서보질 못했다.
6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것이 그에게 큰 상처로 남아있었다.
약한 체질로 인해 육체의 고통이 심했고 우울증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괴로웠다.
그의 삶은 바람 잘날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영적으로 연약해진 카우퍼는 이렇게 못난 자신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공포에 빠진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끝내는 네 번이나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하지만 이같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가 성경을 놓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느 날 성경을 뒤적이고 있을 때 사도 바울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로마서 3:23~25).

하나님께서 카우퍼에게 이 세상 누구나 연약한 죄인임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값없는 은혜로 인해 영광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을 읽은 쿠퍼는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에 의해서
용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33세가 되던 해, 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끌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했다.
영혼의 문제가 해결되자 그의 삶은 행복하기만 했다.
그즈음 은퇴한 몰리 언윈(Morley Unwin) 목사와 메리 사모를 만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들과 함께 지내며 영적인 격려와 보살핌으로 쿠퍼의 몸과 마음은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5년 후 언윈 목사가 세상을 떠나자 메리 사모의 가족은 가깝게 지내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존 뉴턴 목사의 권유로 카우퍼와 함께 시골마을 올니(Olney)로 거처를 옮겼다.

뉴턴 목사를 만나면서 카우퍼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카우퍼에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가 왔다.


생각해보니 모든 것이 주권자 하나님의 인도였다.
뉴턴 목사는 올니 마을에 온 카우퍼에게 집을 마련해주고 시를 쓰도록 격려했다.
뉴턴 목사는 특이한 성격을 가진 카우퍼가 토끼와 뛰놀고 새와 대화하며 마음껏 시를 창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어느 날 카우퍼는 자신이 거듭난 날을 떠올렸다.
인간으로 오신 거룩하신 하나님이 화목제물이 되신 십자가 사건.
그것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스가랴 선지자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 그의 심령을 마구 두드렸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스가랴 13:1).

그는 보혈의 은혜를 글을 써 내려갔다.
이것이 찬송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란 찬송시이었다.

영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 찬송은 이렇게 시작한다.
“임마누엘 하나님의 혈관으로부터 가져온 피로 가득한 샘이 있네….”
이런 가사가 역겹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몇몇의 찬송가책에서 제외됐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 찬송의 참맛을 알아갔고 “샘물과 같은 보혈은”은 지금까지 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이 찬송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피를 샘물에 비유하며,
주님의 피로 가득 채워진 샘물로 우리의 죄를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 고백이다.
카우퍼가 깨달았듯 사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이 사람의 더러운 죄를 흰 눈같이 깨끗하게 하신다.


카우퍼와 뉴턴은 올니에서 매주 열리는 기도회를 위한 찬송을 썼다.
이것이 모아져 나중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올니 마을 사람들이 마음껏 찬양할 수 있는
불후의 모음집 ‘올니 찬송가’(1779)가 만들어졌다.
그곳 마을 사람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대부분이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카우퍼와 뉴턴은 찬송을 사용해 하나님을 찬양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을 교육했다.


1.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 저 도적 회개하고서 보혈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3. 죄속함 받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4. 날 정케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없네.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5. 이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1.
There is a fountain filled with blood, Drawn from Immanuel’s veins,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And sinners plunged beneath that flood,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정하게 되겠네 정하게 되겠네

And sinners plunged beneath that flood. Lose all their guilty stains.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정하게 되겠네

2.
The dying thief rejoiced to see That fountain in his day;
저 도적 회개 하고서 보혈에 씻었네

And there have I, though vile as he, Washed all my sins away.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Washed all my sins away. Washed all my sins away.
죄 씻기 원하네 죄 씻기 원하네

And there have I, though vile as he, Washed all my sins away.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

3.
Dear dying Lamb, Thy precious blood Shall never lose its pow’r,
죄 속함 받은 백성은 영생을 얻겠네

Till all the ransomed church of God Be saved, to sin no more.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Be saved, to sin no more. Be saved, to sin no more.
한 없이 크도다 한 없이 크도다

Till all the ransomed church of God Be saved, to sin no more.
샘솟듯 하는 피 권세 한 없이 크도다

4.
E’er since by faith I saw the stream Thy flowing wounds supply,
날 정케 하신 피 보니 그 사랑 한 없네

Redeeming love has been my theme, And shall be till I die.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And shall be till I die. And shall be till I die.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Redeeming love has been my theme, And shall be till I die.
살 동안 받는 사랑을 늘 찬송하겠네

5.
When this poor, lisping, stamm’ring tongue Lies silent in the grave,
이 후에 천국 올라가 더 좋은 노래로

Then in a nobler, sweeter song, I’ll sing Thy pow’r to save.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

I’ll sing Thy pow’r to save. I’ll sing Thy pow’r to save.
늘 찬송하겠네 늘 찬송하겠네

Then in a nobler, sweeter song, I’ll sing Thy pow’r to save.
날 구속하신 은혜를 늘 찬송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