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골리앗의 키는 진짜 2m38㎝였을까

거인 골리앗의 키는 진짜 2m38㎝였을까

다윗의 돌팔매에 쓰러진 거인 골리앗이 구약성서에 묘사된 것처럼 몸집이 거대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골리앗의 키는 도시의 벽 크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 실제 사람을 말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의 제프리 채드윅 교수 연구진은 지난 19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미국 동방연구학회 학술대회에서 “블레셋 전사 골리앗의 키는 구약성서에 2.38m로 나오는 데 지난해 발굴한 고대 블레셋의 도시 갓의 관문 벽 폭과 일치라는 크기”라고 밝혔다.

채드윅 교수는 미국 과학매체 사이언스뉴스에 “구약에 나오는 골리앗에 대한 묘사는 그가 실제로 오늘날 미국 프로농구 선수보다 큰 사람이라기보다는 방벽의 크기와 강도에 버금갈 정도로 강력한 전사임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2.38m 키는 다시 방벽의 폭과 같아

가나안족은 4700~4500년 전 초기 청동기 시대에 처음 갓을 점령했다. 1000년 이후 구약에 이스라엘 민족의 적으로 나온 블레셋인들이 도시를 재건했다. 갓은 구약에서 골리앗을 언급했던 3000년 전 철기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학자들은 그동안 다윗과 골리앗이 당시 실제 전투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인지 논란을 이어왔다.

갓 유적지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텔 에스-사피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스라엘 바-일란 대학의 아렌 마에이르 교수 연구진은 1996년 이래 이 지역을 탐사했다. 마에이르 교수는 채드윅 교수와 함께 갓으로 들어가는 문을 발굴했다. 이곳에서 골리앗과 연관되는 이름 두 개가 새겨진 도기 파편도 발견됐다. 갓이 2850년 전 침략군에 파괴됐음을 보여주는 유물들도 나왔다.

고고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에서 쓰인 1큐빗이 52.5㎝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학자들은 갓을 비롯해 고대 이스라엘 지역에서 같은 단위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채드윅 교수는 여러 고대 유적지 발굴을 토대로 두 지역의 단위가 조금 달랐다고 주장했다.

채드윅 교수는 다른 연구진들이 발굴한 갓과 다른 고대 이스라엘, 유대왕국, 블레셋 왕국의 도시 건물들은 세 가지 주요 척도에 바탕을 두고 건설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척도에는 오늘날 54㎝에 해당하는 큐빗(이집트의 52.5㎝ 큐빗과 다른 단위), 그보다 짧은 38㎝ 큐빗, 그리고 성인의 펼친 손 길이에 해당하는 22㎝ 지간(支間) 단위들이다.

채드윅 교수는 고대 유적지의 석조물이 이 세 가지 척도를 다양하게 조합해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북부의 에트-텔이라는 거주지는 도시 정문의 두 기둥이 각각 2.7m 폭인데 이는 54㎝ 큐빗 5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도시 정문의 안쪽 기둥 네 개는 각각 폭이 2.38m이다. 이는 54㎝ 큐빗 4배와 22㎝ 지간 하나를 합친 것에 해당한다. 에트-텔 발굴지는 성서에 나오는 도시 베싸이다로 본다.

채드윅 교수는 2019년 발굴에서 갓의 방벽을 통과하는 문들 중 하나를 발견했다. 에트-텔의 문에 있는 내부 기둥처럼 것의 문도 폭이 4큐빗과 1지간에 해당하는 2.38m로 측정됐다. 이는 성서에 나오는 골리앗의 키와 같다. 채드윅 교수는 “고대 저술가들은 당시 골리앗이 도시의 벽만큼 크고 강하다고 묘사하기 위해 키를 표현할 때 실제 건축물의 단위 기준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38m         ERIC WELCH


철기시대에 건설된 도시 에트-텔의 방벽 유적. 폭이 성서에 나온 골리앗의 키에 해당하는 2.38m이다.
골리앗의 고향인 갓에도 같은 크기의 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ERIC WELCH

*자료출처 / 조선일보 2020. 11. 25 경제판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요한계시록 21:1-3) / 수요성서학당 원고(11-25-20)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요한계시록 21:1-3)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다며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정기적인 월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세계에도 이런 현상이 지속될 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종말의 징조라며 요한계시록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소개하는 주장을 자주 듣게 됩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이 성경의 결론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결론이 무엇을 말씀하느냐에 대해서 한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결론은 반드시 성경에서 제시한 말씀을 근거로 찾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10-11,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흰옷 입은 두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천사"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천사를 이런 형태로 소개합니다(창세기 18:2, 사사기 13:6).

창세기 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에 굽혀.

사사기 13: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 남편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임하였는데 그 용모가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소라 땅 단 지파의 가족 중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가 잉태하지 못했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네가 본래 잉태하지 못하므로 생산치 못하였으나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그러므로 너는 삼가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찌며 무릇 부정한 것을 먹지 말찌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치운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고 말씀을 전달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말씀을 전달하기도 하며 때로는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된 상태에서 천사를 통해서 환상을 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것 중에서 마지막 장면은 요한계시록 21:1-4에서 찾아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성경의 마지막 결론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은 지상에 건축되었던 건물일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것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건축물이 아니라 어린 양의 아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거룩한 성은 거룩한 공동체 교회를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어린 양의 신부입니다.
새 예루살렘 완성된 교회 공동체를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도, 결론도 모두 교회입니다.
결국 주님께서는 새 예루살렘을 이 땅에 내려오게 하심으로 교회의 완성을 성취하십니다.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소망은 영광의 나라가 임할 때 나타날 교회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은 죄악 된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변화시킬 것입니다.
또 새롭게 된 하나님의 나라에 완성된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이 이뤄질 새 예루살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재림 목표는 성도의 구원 완성이고 교회의 완성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고난에도 불구하고 새 예루살렘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궁극적으로 완성될 교회 공동체의 영광에 대한 묘사가 담겨있습니다.
본문엔 새 예루살렘의 건축물로서, 성곽과 성문의 기초와 그 규모가 나옵니다.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그로 인해 교회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교회의 찬란한 영광과 아름다움은 천국에서 교회가 받을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줍니다.
성곽 모습은 완성된 교회의 완전성과 안전성을 보여줍니다.
완성된 교회가 얼마나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순결하고 존귀하고 완전하고 안전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얼마나 풍성할지를 보여줍니다.
새 예루살렘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로 인한 교회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존귀한 보석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거룩한 공동체의 특징을 에스겔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48: 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여호와 삼마라는 성읍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도 또한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여호와 삼마라는 성읍을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과 친히 함께 계십니다.
친히 계신다는 것은

1.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것입니다.
2. 성령의 간구를 경험한 것입니다.
3. 성령의 증거를 경험한 것입니다.

에스겔 성전과 새 예루살렘의 공통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전을 본 장소 / 높은 산(a very high mountain)

에스겔 40:2,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 놓으시는데 거기서 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둘째, 성전의 모양 / 네모 반듯(like a square)

에스겔 : 정방형으로 네모 반듯하다

요한계시록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셋째, 성전을 척량하는 도구

에스겔 40:5 / 장대(the measuring rod)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가락에 이르고 한 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

요한계시록 11:1-2 / 지팡이 같은 갈대( a reed like a measuring rod)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요한계시록 21:15(금 갈대)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갈대를 가졌더라.
* rod of gold

넷째, 생수의 역사

에스겔 47:1-2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요한계시록 22:1-2,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섯째, 잎사귀

에스겔 47: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요한계시록 22:1-2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성경에서 증거하는 분명한 메시지는 환상과 예언은 천사들을 통하여 전달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천사들을 동원하여 전달한다면 모두가 들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1:26-27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1. 감추었던 만나(요한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2. 감추인 보배(잠언 2:4) 참조 / 고린도후서 4:6-7, 베드로전서 2:4-8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3. 감추인 보화(마태복음 13:44, 골로새서 2:2-3)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에스겔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 제2차 바벨론 포로 시기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잡혀갔습니다.
그는 포로로 잡혀간 지 5년 후부터 예언 사역을 시작했는데 이때가 30세였습니다.

제사장의 직무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지요.
29장 17절에 “스물일곱째 해 첫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라고 말한 것은 포로로 잡혀간 지 27년째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르게 말하면 에스겔이 예언 사역을 한 지 22년째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그의 나이가 52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유다 자손들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또한 이방 나라들에게도 영적 교훈을 줍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것이 그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일깨워줍니다. 이제라도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다시금 회복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니느웨에 가서 예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요나를 제외하면 에스겔과 다니엘은 그곳에 살면서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기록자들입니다. 에스겔은 포로 초기에, 다니엘은 포로 후기에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그들의 죄로 인해서 바벨론 포로의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경계와 권면, 위로와 격려, 그리고 소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에스겔서의 처음과 끝 부분은 매우 신비하고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환상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메시지만큼은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악을 보여주어 각성하고 회개하여 주께 나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포로생활에서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1장-24장은 예루살렘 함락 이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함락 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성전이 파괴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예루살렘성이 함락되고 성전은 장차 파괴될 거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선지자의 신임장인 환상(1장-3장), 책망과 경고의 말씀(4장-24장)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그들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환상과 비유와 상징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25장-32장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와 주변의 이방 국가들도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멸망에 관한 예언을, 에스겔은 두로와 애굽에 대한 예언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습니다.

33장-39장은 장래에 주께서 그들을 돌이키고 회복시킬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40장-48장은 새 예루살렘 성전과 그 영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은 당시의 포로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만 바라본 게 아니라 신약 시대의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에스겔서는 1인칭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은 하나님께서 네 생물의 형상과 네 날개와 네 개의 바퀴 모양의 환상을 통해 에스겔을 부르십니다. 이 형상은 하나님 성전의 법궤에 대한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데 그분과의 만남을 보여주는 장소이지요.

바벨론 포로 시기에 에스겔에게 법궤를 보여주시며 만나신 것은 비록 포로이지만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향한 열심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죄로 인해 환난 가운데 있더라도 그들을 위로하시고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이 심판받을 만한 이유를 보여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순간적으로 공간 이동을 시키셨지요. 그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기시고 성전 안에 우상이 가득한 것과 백성들이 우상숭배한 것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성전에서부터 점점 올라가면서 마지막에 성전을 떠나는 것까지 그에게 보이셨습니다(8장-11장). 처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했습니다(10:4). 그리고 성전에서 떠나 동문에 머물다가(10:17-19) 다시 성읍에서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물렀습니다(11:22,23).

결국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자 성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예배처가 아닌 건물에 불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계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을 보호해주시는 이는 없었습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결국 함락되고 성전도 파괴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게 됩니다(33:21). 훗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기 위해 돌아오시지만, 그 성전은 건물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약 시대의 교회입니다(43장).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만일 죄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악한 마음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모든 죄를 다 사해주시고 그들에게 새 영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람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이킬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옵니다.



선지자들

선지자들은 파수꾼입니다(3:16-21, 33:1-9). 파수꾼은 나팔을 불어 경고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들에게 경고합니다. 에스겔서도 예레미야서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합니다(13장).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지요.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지 않고 헛된 위로로 거짓 소망을 줍니다. 그들의 예언은 자기 생각을 제멋대로 말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선지자들은 중보기도자입니다. 하나님은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그의 선지자들에게 먼저 보이시지 않고는 결코 행하시지 않습니다(암 3:7). 이유는 그들이 중보기도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비록 심각한 죄 가운데 있어도 간절히 중보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건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특히 22장 25-29절은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범죄를 잘 말해줍니다. 25절은 선지자들의 죄, 26절은 제사장들의 죄, 27절은 정치 지도자들의 죄, 28절은 영적 지도자들이 정치가들과 결탁하여 옳지 못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29절은 온 백성들조차도 포학하고, 강포를 일삼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면서 악을 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도시 전체가 니느웨처럼 심판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그렇지만 22장 30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심각한 죄 가운데 처해 있다 할지라도 비난하며 멀리서 방관하는 게 아니라 내 죄로 여기고 하나님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리며 그 땅을 멸하지 않도록 막아서는 중보자를 하나님은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땅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34장-37장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의 계획으로 꽉 차 있습니다. 특히 37장은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36장 37절을 통해 중요한 원칙을 말씀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회복하리라”라고 약속하셨다고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회복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비로소 들으시고 응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는 말이 많고 판단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기도하는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또 에스겔서에서 우리가 관심있게 볼 것은‘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말이 옳은가 하는 것입니다. 18장 20절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각자는 자기의 죄로 죽을 것이며, 아비의 죄가 자식에게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비유들

에스겔서에는 유독 비유가 많은데, 이는 메시지를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입니다.

● 포도나무(15장),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포도나무가 숲 속의 다른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그 나무로 무엇을 제조할 수 있느냐? 불에 던져 땔감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이처럼 예루살렘 주민도 죄로 인해 버려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땅이 황폐해져 쓸모없어질 것을 보여주십니다.

● 간음한 여인(16장), 아무도 돌보지 않는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정성스럽게 양육하였더니 곱고 아름답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화려함을 믿고 명성을 사용하며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했지요.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십니다.

● 독수리 두 마리와 포도나무 한 그루(17장), 16장은 유다 백성의 죄를, 17장은 유다 왕의 죄를 말합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애굽과 동맹을 추진합니다. 이 일은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 용광로(22장 17-22절), “은이 풀무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22절). 이스라엘은 죄로 말미암아 용광로에 아무 쓸모없이 남은 찌꺼기같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불로 연단하여 이것을 제거(심판)하여 그들을 정결하게 하실 것입니다.

● 두 여인(23장), 16장처럼 길게 이어지는 이 장은 두 명의 여인이 매춘부처럼 행동한 것을 비유로 들어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긴 죄를 말합니다. 결국 그 죄로 인해 심판을 받고 멸망당할 것을 말합니다.

● 끓는 가마솥(24장 1-14절),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보여준 것(렘 1:13)과 같은 방식으로 에스겔에게도 끊는 가마솥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장차 예루살렘은 불 위에 펄펄 끓는 가마솥처럼 포위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마 속의 고기를 꺼내어 잔치하는 것처럼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죽거나 포로가 될 것입니다. 빈 가마를 계속 불 위에 달구어두는 것처럼 성읍은 불길에 휩싸일 것입니다.

● 악한 목자들(34장), 양치는 악한 목자들은 예루살렘의 잘못된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소홀히 함으로 이스라엘이 죄로 나아가고 결국 멸망에 이르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직무에서 쫓아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이 메시아를 보내셔서 선한 목자처럼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회복하시고 풍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회복에 대한 환상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여러 가지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메시지를 쉽게 이해시키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죄와 그로 인한 심판의 환상들이 있습니다(8장-12장). 그러나 여기서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두 개의 환상을 보고자 합니다. 37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이, 47장은 새 이스라엘의 영광이 초점입니다. 물론 이 환상들은 신약의 교회를 향한 예언입니다.

● 골짜기의 마른 뼈들(37장 1-14절),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에스겔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뼈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는 환상입니다. 이는 태초에 사람을 지으실 때와(창 2:7), 오순절 성령의 임하심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행 2장).

● 성전의 물(47장 1-12절), 성전에 관한 환상의 일부 장면입니다(40장-47장).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성전과 그곳에서 스며 나오는 물을 보여주십니다. 그 물은 발목에서 무릎과 허리로 그리고 헤엄을 쳐야 할 정도로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며 결국 바다에 이르지요. 이 물이 이르는 곳마다 심지어 바다까지도 소성蘇醒합니다. 강 좌우에 많은 나무와 열매가 있고, 치료하는 잎사귀가 나옵니다. 후에 사도 요한이 본 것이기도 하지요(계 22:1,2). 하나님의 성령으로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풍성함과 세상을 축복하는 영광을 보여줍니다.



에스겔의 상징적 행위와 표적

에스겔서는 선지자 에스겔의 상징적 행위를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지자의 행위는 하나님이 전달하시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커다란 돌 위에 만든 예루살렘 지도를 에워싸는 행위를 명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포위되고 공격받을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4:1-3).

● 에스겔이 예리한 칼로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벤 후에 3분의 1은 불사르고, 3분의 1은 칼로 치고, 나머지 3분의 1은 바람에 흩어버렸습니다. 이는 장차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불에 타 죽고, 칼에 죽고, 산산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5:1-4).
● 가재도구를 급히 챙긴 후 밤에 몰래 성을 빠져 나가도록 명령하실 때는 이와 같이 백성들이 처참하게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12:1-6).

● 칼을 공중에 휘두르며 슬피 울면서 자기 넓적다리를 치도록 말씀하신 것은 예루살렘이 대적의 칼에 죽을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21:8-17).

● 땅에 갈라지는 두 길을 그린 후에 각각 지시표를 만들라고 한 것은 장차 바벨론 왕이 지시된 길을 따라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21:18-23).

● 가마에 물을 부은 후 양고기의 좋은 부위를 넣고 오래 불을 때는 것은 하나님께서 맹렬한 불같은 심판으로 유다의 죄를 제거하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24:3-14).

● 에스겔에게 아내의 죽음에도 울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물도 마를 만큼이나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24:15-27).

● 두 막대기를 하나로 묶으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장차 연합될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37:15-23).



에스겔의 애가

에스겔서에도 애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슬픈 노래를 지어 부르라고 명하셨습니다.

●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한 애가(19장), 유다의 왕가인 다윗 가문의 멸망을 예언하는 곡입니다. 요시야의 아들들과 손자(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가 재앙을 만나 죽게 되고, 결국 시드기야에 이르러 영광스러운 왕통은 끊어집니다. 애가를 지어 부르며 애통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또 두 가지의 비유로 애가를 부르는데 하나는 유다 왕국이 사자와 같아서 용맹하고 위엄이 있었으나 이제는 그물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유다 왕국이 무성한 포도나무 같았으나 이제는 꺾여 불태워졌다는 것입니다.

● 두로에 대한 애가(27장), 두로 왕국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도시의 멸망을 애도하는 노래입니다. 두로는 한때 조선업으로 유명하여 세계의 모든 물품이 교역되는 국제무역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파선하여 모든 영광이 물에 잠겼지요. 두로의 멸망은 열방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의 교만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주의를 끄는 책이라고도 하지요. 일반적으로 요한계시록 하면 ‘666, 아마겟돈, 짐승의 표, 용, 천년왕국, 7년 대환란’ 등이 먼저 떠오릅니다. 상당히 무섭고 두려운 책이라고 여기며 부정적으로 접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승리자이며, 구주이며, 빛나는 위엄을 가진 아름다운 영광의 왕이심을 소개합니다(1:9-20).

이후에는 놀라운 영광의 왕에게 경배하는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4개의 생물과 24장로들이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 많은 천사들의 노래, 하늘과 땅 위, 땅 아래와 바다 위의 모든 피조물이 찬양하는 모습이지요.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 나열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아닙니다. 계시록은 상징적, 은유적, 비유적입니다. 마치 정교한 암호문과 같습니다. 색깔과 동물, 때로는 사람과 동물 등을 사용합니다. 상징적 숫자도 등장합니다.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는 이 같은 형식이 익숙했습니다. 오늘날의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 같은 것이 이 장르에 해당합니다.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예수

계시록의 구조는 1장 1-3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장은 ‘요한이 본 일,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이 나옵니다. 머리말(1:1-3), 삼위일체의 하나님(1:4-8), 영광의 예수님(1:9-20) 이 부분은 실제로 2,3장을 위한 도입부입니다. 3장 22절에 가서야 끝이 나는 하나의 문맥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2장-3장은 ‘이제 있는 일, 일곱 교회에 있을 일들’이 나옵니다. 2장과 3장은 독립된 게 아니라 계시록 전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정한 형식으로 예수님의 이름, 칭찬과 책망,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일 것,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들이 열거됩니다.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는 오늘의 교회에게 주어지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4장 이후는 ‘장차 될 일들’이 기록되었습니다. 시간 순이 아니라 책의 기록을 위한 순서에 의해 쓰인 미래의 일입니다.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가 역사의 일곱 시대를 구분한 교회의 모습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계시록의 메시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은 그의 경륜과 섭리를 통해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하나님만이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파트너로서 교회를 두셨지요.

계시록을 볼 때 다니엘서와 에스겔서를 함께 본다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며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환란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과 격려를 줍니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로 심한 핍박을 받는 중에 소련의 지하교회가 받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이미 승리했다. 곧 나의 구원을 나타낼 것이다”라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소련은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바벨론 포로 중의 그리스도인들이 에스겔과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었듯이 로마의 핍박 중의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듣습니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믿음으로 고난 당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한계시록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주권이 중심에 있습니다. 계시록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 개념인 크로노스Kronos가 아니라 중요한 순간이나 변화의 계기가 되는 때인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종말의 때는 언제, 몇 시 등의 이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경륜의 때입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세례 요한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할 때의 ‘때’란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를 가리킵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질서로 형성되고 하나님의 일을 믿고 받아들일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계획하신 것이 이루어질 때를 말하지요.



찬양의 책

요한계시록에는 시편과 더불어 많은 찬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은 승리의 함성으로 가득 차 있지요. 요한계시록은 크게 일곱 개의 찬양으로 나뉩니다.

1. ‘창조의 노래’입니다(4:10,11).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구속의 노래’입니다(5:8-14).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 삼으심을 노래합니다.

3. ‘구원의 노래’입니다(7:9-12). 온 땅에 복음이 전파되어서 구원받은 무리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아름답고, 찬란하고 웅장하게 찬송합니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가 종려가지를 들고 흰 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서서 구원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세계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을 보여줍니다.

4. ‘승리의 노래’입니다(12:10-12). 전쟁이 그치고 모든 어둠의 영이 패배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어린양의 십자가로 승리한 것을 노래합니다.

5. ‘모세의 노래’ 혹은 ‘ ‘어린양의 노래’라고 말합니다(15:2-4). 복음 전파의 결과로 모든 족속들이 주께로 나아와 경배하며 노래합니다.

6. ‘역사의 종말에 관한 노래’입니다(19:1-5). 이 세상을 대표하는 바벨론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리들이 다 무너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그분의 구원과 영광과 능력을 노래합니다.

7. ‘어린양의 혼인잔치 노래’입니다(19:6-10). 역사가 끝난 후 영원한 나라의 시작에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십니다.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는 노래입니다.



거대한 오페라

요한계시록은 전체가 7막 7장으로 구성된 거대한 오페라와도 같습니다. 극적인 평행 구조로 이루어져 있지요. 예수님의 오심과 다시 오심 사이의 종말론적인 관점의 내용이 펼쳐집니다.

본격적인 무대인 4장과 5장은 하늘이 열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땅에서 일어나는 어둠과 심판과 환란과 고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좌에 영광 가운데 앉아 계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또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무대인 21장과 22장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백성들이 그 영광과 기쁨과 아름다움과 충만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와 영광과 구원, 그리고 모든 믿는 자가 이 땅에서 놀랍게 회복되며 구원받는 것을 노래함으로 충만합니다. 반면에 어둠의 영은 완전히 무너져 멸망 속으로 들어갈 것을 말합니다.



일곱 교회와 일곱 가지 복

2장과 3장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설명하는데 이것은 모든 역사 안에 있는 교회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그중에서도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이 없고,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와 두아디라교회는 책망이 없습니다.

● 에베소교회, 처음 행위를 가지라(2:1-7).
● 서머나교회, 죽도록 충성하라(2:8-11).
● 버가모교회, 회개하라(2:12-17).
● 두아디라교회, 네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2:18-29).
● 사데교회, 남은 것을 굳게 하라(3:1-6).
● 빌라델비아교회, 네 가진 것을 굳게 하라(3:7-13).
● 라오디게아교회, 금, 흰 옷, 안약을 사라(3:14-22).

마태복음에 나오는 팔복처럼 계시록에는 일곱 가지 복이 있습니다.
1.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1:3).
2. 주 안에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14:13).
3.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16:15).
4.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19:9).
5.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20:6).
6.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22:7).
7.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22:14).

또한 계시록에는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 3-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하며 또한 완전수.
● 4-땅의 동서남북 끝의 네 모퉁이를 의미하며 전체수.
● 7-주께서 모든 천지를 창조하시고 쉬셨던 날로 성취의 수.
● 10-완전수.
● 12-하나님의 백성을 말하며,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
● 1,000-남은 수로, 이 땅에서 구원받은 셀 수 없는 큰 무리.



네 가지 관점의 이해

7년 대환란과 천년왕국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모든 믿는 자의 영원한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계시록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첫 번째는 과거주의적 관점입니다. 계시록의 모든 사건을 로마 대제국 시대 때 이미 성취되었다고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적 관점입니다. 계시록은 초대교회 때 시작해서 예수님의 재림까지 이르는 교회 역사의 파노라마라고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세 번째는 영적 관점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모든 사건은 실제가 아니라 표현이며, 선과 악의 영적전쟁에 대한 상징적 묘사라는 관점입니다.

네 번째는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계시록 전체는 마지막 시대 때 발생할 미래의 사건에 대한 서술이라고 봅니다.

이 네 가지의 관점에 따라서 천년왕국이 언제 일어나며,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 전 천 년설: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천년왕국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도 전 천 년 전 환란설과 전 천 년 후 환란설로 나눠집니다.

-전 천 년 전 환란설
주의 재림 전에 7년 대환란이 있고, 재림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이며, 그 후에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통치가 있을 거라는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전 천 년 후 환란설
재림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이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있고, 천 년이 끝나면 7년의 대환란이 있고, 그 후에 주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으며 이후에 영원한 주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또 다른 미래주의적 관점입니다

● 후 천 년설: 천년왕국이 있은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합니다. 재림 전에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천 년간의 기간이 있다가 재림 이후에 심판이 있고 영원한 통치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시간 개념의 천 년을 말합니다. 과거주의적 관점 또는 역사적 관점으로 보는 경향이지요.

● 무 천 년설: 천년왕국은 따로 없고,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가 천년왕국이라고 합니다. 문자적 의미의 천 년이라는 기간의 왕국은 의미가 없으며, 천년왕국은 단지 영적 의미이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를 천 년으로 보고 주께서 재림하신 후에는 심판과 함께 영원한 통치가 있을 거라는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계시록은 마지막 때를 잘 보여줍니다. 계시록은 마지막 때 나타나는 공포와 심판과 짐승에 대한 것이 중심이 아니라 구분의 때를 말합니다.

가장 높은 하늘에 오르는가 하면 가장 깊은 지옥의 심연에 떨어집니다. 마지막이라는 것은 사탄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를 믿는 교회에게는 영원의 시작이며, 사탄에게는 마지막입니다.

계시록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과 승리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이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시험과 고통을 이기고 인내로써 하늘의 영광을 기다리게 해줍니다. 지옥이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가 중심인 천국 또한 사실입니다.

계시록을 바라볼 때마다 가장 크게 보아야 하는 것은 하늘이 열리고 영광의 하나님과 영광의 예수님 그리고 이 땅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어둠의 영은 반드시 패배하여 영원한 멸망에 들어갈 것이며 모든 믿는 자는 다 주와 함께 영원히 영광 가운데 살 것입니다.

네 가지 약속(베드로전서 5:10) 수요성서학당 원고 / 11-18-20

네 가지 약속(베드로전서 5:10)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And the God of all grace, who called you to his eternal glory in Christ,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 

첫째, 하나님은 누구인가?

1. 은혜의 하나님
2. 나를 부르신 하나님
3.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

둘째, 친히(αὐτὸς) - He Himself

1. 십자가 사랑으로(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첫째, 십자가의 도를 알아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둘째,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있어야 합니다(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성령의 간구(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3. 성령의 증거(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감사절의 유래

구약시대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wheat) 추수가 끝날 무렵 첫 수확을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였다(출 23:16, 34:22).

출애굽기 23: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Celebrate the Feast of Harvest with the firstfruits of the crops you sow in your field. "Celebrate the Feast of Ingathering at the end of the year, when you gather in your crops from the field.

출애굽기 34:22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Celebrate the Feast of Weeks with the firstfruits of the wheat harvest, and the Feast of Ingathering at the turn of the year.

근대적 유래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로부터 유래한다.
청교도들은 영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온 경건한 신앙인들이었다.

청교도들이 북미로 오게 된 '역사적 배경'은 영국 헨리 8세제임스 1세, 찰스 1세 때 이어진 종교 박해였다.

순례자의 조상들(Pilgrim's Fathers)이라 불리는 영국 청교도들은 1600년대 초기부터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102명의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것이 직접적인 유래이다.

청교도들은 영국 남해안 플리머스(Plymouth) 항구에서 1620년 8월 5일(지금 달력으로 8월 15일) 스피드웰(Speedwell)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타고 美 대륙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나 초반에 배가 고장나 물이 새 다시 귀항했다.

한 달 후인 1620년 9월 6일, 결국 메이플라워호만 25명의 선원과 102명의 청교도들이 승선하여 미국 동해(대서양) 중부지방 버지니아(Virginia)를 목적지로 삼고 재차 출발했다. 남자 78명여자 24명 등 전체 102명이 출발했으나, 항해 도중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탄생했다.

그들은 그해 11월 11일 버지니아 대신 미국 동북부 메사추세츠 케이퍼 카드(Cape Cod) 해안가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5일간 주위를 답사한 후 11월 16일 현재의 플리머스(Plymouth)에 정착했다. 63일간 3,400마일(5,440km)의 멀고도 긴, 그리고 위험한 항해 끝에 닻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영국을 떠날 때 항구 이름을 따라, 그곳을 플리머스라 명명했다.

미국 동해안은 항상 북서풍이 불기 때문에, 남쪽 버지니아로 가려던 배는 북쪽 메사추세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들은 토요일에 도착했지만, 주일을 지키기 위해 길고도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를 거쳤음에도 주일을 배 안에서 보냈다.
그들은 항해 동안 어떻게 보냈는가?
그들은 찬송을 많이 불렀다.
"우리는 대부분 시편을 찬송으로 불렀다. 주일은 모두가 찬송만 불렀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청교도 개척자들)은 도착한 후 형언할 수 없이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다.
11월 중순 도착한 그들은 강풍과 눈보라 치는 혹독한 추위, 질병과 식량 부족, 원주민들의 냉대, 들짐승들의 위험, 거할 집 하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결국 그해(1620-1621) 겨울, 2-3개월 내 102명 중 절반 이상이 운명을 달리했다.

특히 1-2월의 혹독한 겨울에는 하루에 2-3명씩 죽어나갔다.
생존자는 50명뿐이었고, 그들 중 다수도 지치고 건강이 쇠약해져 질병으로 신음했다.
그러나 6-7명의 건장한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고, 침실을 만들고, 병자들을 간호하며, 병자들과 노약자들의 옷을 빨아입히고, 칠면조와 사슴 등을 사냥하여 고기를 조달하는 등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경건한 청교도들은 굳건한 믿음 위에 마음을 하나로 통일한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

엄동설한도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자, 생존한 청교도들은 땅을 개간하고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여름과 가을 기대 이상의 추수를 하게 됐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감사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 126:6)". 엄동설한에 황무지에서 살아남은 것,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신 것, 미 대륙 개척자들로 삼아주신 것 등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렸다.

청교도들은 북아메리카로 건너 온 다음 해인 1621년 가을,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 우량품들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드렸다. 그들은 기도 중에 "우리는 대서양을 건너와 여러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청교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추수 감사예배를 드렸다.
첫날인 주일에는 온종일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찬송부르고, 말씀 받아 묵상했다.
둘째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눠먹고,
셋째날에는 인디언 추장 마싸소이트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친교했다.

90명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칠면조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pumpkin pie)를 가져와 같이 친교를 나눴다.
그것이 유래가 되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 파이를 먹게 됐다.

청교도들은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은 다음에야 자신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이야말로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요, 믿음의 선조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을 했다.

22일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2차 감염을 일으켜 모이기가 어려운 팬데믹 시대에 과연 주님께서 추수감사주일을 어떻게 지키기를 원하실까?
청교도들의 신앙을 따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메이플라워 호가 영국을 떠날 때 또 한 척의 배가 영국을 떠났습니다.
그 배의 이름은 매스터 호라고 합니다.
매스터 호는 남미를 향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당시 남미에 황금이 많이 발견되는 곳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목적이 황금이었습니다.
그러나 북미를 향해 출발했던 메이플라워 호는 목적이 신앙이 있습니다.
신앙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남미와 북미는 전혀 다른 나라들이 세워졌습니다.
남미는 빈민국가 형태로 남아있지만 북미는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로 세워졌습니다.
그 이유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1. 온전하게(καταρτίσει) : 회복시켜 주신다 / will perfect

* 2675 / 카타르티조(katartizó, καταρτίζω) to complete, prepare(준비를 완벽하게 하다) will perfect(준비를 완벽하게 한다)

마태복음 4:21 - 그물을 깁는 것을 보시고 : 고치는 것, 수리하는 것

로마서 9:22 - 준비된 진노의 그릇 : 준비하는 것

* 잘못된 것을 바르게 고쳐서 준비케 하는 것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하나님처럼 온전해지려고 노력할 때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2. 굳건하게( στηρίξει) : 고정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 / will confirm

* 4741 / 스테리조(stérizó, στηρίζω)  to make fast, establish(기초를 빨리 확립하다)

누가복음 9:51 -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누가복음 22:32 -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 강하게(σθενώσει) : 확신과 능력 가운데서 행하게 하신다 / will strengthen

* 4599 / 스데노오오(sthenoó, σθενόω) to strengthen(강화하다)

베드로전서 5:10 - 강하게 하고

4. (터를) 견고하게(θεμελιώσει) :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 / and will establish you

* 2311 / 데메리오오(themelioó, θεμελιόω) to lay the foundation of(기초를 닦다, 기초를 놓다)

 * 마태복음 7:25 -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 에베소서 3:17 - 터가 굳어져서

 * 골로새서 1:23 -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 히브리서 1:10 -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우리들의 삶에서 약속하신 것들을 증거하는 몇 가지 사례들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
미국의 경우 11월 넷째 목요일
캐나다에서는 10월 둘째 월요일
한국에서는 11월 셋째 주일에 지킨다.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매사추세츠플리머스 식민지로 이주한 필그림 파더스의 첫 수확을 기념하는 행사이고 보편적으로 널리 행해지는 일반적인 행사이다.

필그림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한 1620년에서 1621년 초의 겨울은 매우 어렵고, 많은 사망자를 냈으며, 주위에 거주하고 있던 인디언 부족 왐파노아그 족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듬 해인 1621년 가을, 특히 수확량이 많았기 때문에, 필그림 파더스왐파노아그 족을 초대하여 함께 음식을 먹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국인 이주민도, 왐파노아그 부족도 가을 수확을 축하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해의 사건이 특별한 추수감사 축제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다. 플리머스 식민지에서 처음 경축한 1623년 추수감사절은 식사보다는 오히려 교회에서 예배를 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다.






2020년 추수감사주일은 이제껏 지켜오던 추수감사주일과 전혀 다른 주일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3월부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면예배가 금지되고 아직도 자유롭게 모여서 예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게 되는 동기가 주로 사람의 계획과 결단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전염병균에 의해서 전혀 새로운 동기가 부여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계획과 결단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620년 9월 6일,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동부를 향하여 출발했다는 얘기 다 알고 계시죠? 그런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매스터 호’라는 배를 타고 남미로 간 청교도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아시는지요? 많은 분들이 메이플라워호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시지만 매스터 호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신앙인으로서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사람들이었고 또한 신앙의 자유가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북미로 가던 ‘메이플라워 호’와 남미로 떠나가던 ‘매스터 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기의 차이였습니다.
물론 남미로 간 사람들에게도 신앙적인 동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그들이 남미로 가려고 했던 가장 큰 동기는 황금과 같은 물질을 찾아서였습니다.
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들은 새로운 대륙에 가서 새로운 기회를 잡아 부자가 되겠다는 동기 때문에 ‘매스터호’를 탔던 것이지요.
반면에 북미로 갔던 사람들은 금과 같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맘껏 섬기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신앙적인 동기 때문에 “메이플라워호”를 탔습니다.
그들은 영국 국교도들의 핍박으로 인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자, 마음껏 찬양을 부르고 마음껏 기도를 하고 마음껏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것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던 두 그룹이 각기 다른 동기로 각기 다른 지역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을 찾아 북미로 찾아온 그들과 그 후예들이 어떻게 됐는지 잘 알고 계시지요?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찾아서 그 곳에 와서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예배당부터 먼저 지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하나, 둘 죽어감에도 기어코 예배당을 완공했으며 1년 동안 농사를 하고 그 추수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추수감사주일을 지켰습니다. 신앙적인 동기 때문에 북미로 간 사람들은 신앙의 르네상스를 경험하였을 뿐 아니라 물질의 풍성함도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이 뿌린 감사와 희생의 씨로 말미암아 그들의 후손은 오늘의 최대강국인 미국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현재 미국은 정치, 경제, 사화, 문화, 스포츠, 영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매스터호를 타고 황금을 좇아 남미로 간 사람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물질적인 동기 때문에 남미로 간 사람들은 신앙도 잊어버리고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돈도 벌지 못했습니다.

지금 남미 지역의 나라들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렵습니까?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의 나라들은 인플레이션과 반목되는 경제 불안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다 그 후예들 아닙니까?

남미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조상들은 하나님(God)을 찾아서 신대륙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찾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 황금(Gold)도 선물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황금을 찾아서 이 땅으로 건너와서 황금도 찾지 못하고 하나님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조상들을 둔 당신들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결심의 동기의 차이가 빚은 결과는 이처럼 충격적인 대조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b)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인기, 하나님과 명예, 이중 무엇을 선택하시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오직 하나만 선택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바로 그분을 말입니다.
언제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만 선택함으로 감사의 조건들이 넘쳐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세상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는 예배의 회복

칠판, 화이트보드, OHP 필름, 빔프로젝터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
기독교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와 다른 것이다.
다른 종교의 예배는 예배자의 소원성취와 부귀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기독교 예배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둘째는 비대면 예배를 영적 예배로 업 그레이드 하라

새로운 예배 형식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형식적인 순서가 아니라 영적인 예배로 발전시켜야 한다.






네 생물의 형상(에스겔 1:4-5, 10. 요한계시록 4:6-7) / 주일 설교 원고(11-15-20)

네 생물의 형상(에스겔 1:5, 10. 요한계시록 4:6-7)


에스겔 1:5, 10.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요한계시록 4:6-7.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도입 이야기)
현재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졌던 자리에 이슬람 사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면 그 때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 1차 성전이었고 바벨론 포로가 된 후에 귀환한 후에 다시 세운 성전을 2차 성전이라고 합니다.
헤롯 왕 때에 성전을 재건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있던 것을 보수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소개된 성전을 제3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제3의 성전을 세우면 반드시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예루살렘 성전 자리를 되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그 자리를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마지막 전쟁은 유대인들과 이슬람의 전쟁이 될 것이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이야기가 성경적인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네 생물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처음으로 해석한 사람은 초대교회 시대 교부 이레니우스(Ireaneus, 120-202 AD)라고 합니다.
이레니우스 부모는 아들을 서머나 감독 폴리캅에게 보내어 교육을 받게 하였다고 합니다.
좋은 스승으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혼돈했던 때에 상징의 의미를 복음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레니우스가 에스겔서의 내 생물에 대해서 그 의미를 소개한 것은 세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세 가지 목적이란 "성경중심", "사도적 계승", "이단들에 대한 명백한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네 생물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사자"라고 합니다.
사자는 정글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짐승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의 대상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왕과 선지자는 반드시 유대 혈통을 계승해야 하므로 마태복음을 시작할 때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혈통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는 메시지가 메시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마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황소"라고 합니다.
황소는일생동안 주인만을 위해 일하고 마지막에는 몸둥아리 전체를 먹을 것으로 제공합니다.
마가복음의 대상은 로마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메시아는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고 전한다면 로마 당국에서는 반역죄라고 하여 처형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황소(송아지)처럼 죽도록 일만하고 마지막에는 먹거리로 자기 몸을 내준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헬라인들은 사람의 존재 근원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의 대상은 헬라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더구나 헬라 철학의 특징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발전했기 때문에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내세워 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독수리"라고 합니다.
독수리는 날짐승 중에 가장 높은 곳을 날아다니는 새들 중의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대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독수리와 같이 높은 공중에서 먹잇감을 발견하면 즉시 내려와 먹이를 채가는것처럼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내려와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네 생물의 환상을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장차 바벨론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깨우쳤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70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환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진 예루살렘의 명칭은 "여호와 삼마" 라고 합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에 올라갔을 때 네 생물을 목격한 것입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 주위에 둘러 섰고 눈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보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누가 지켜보고 있습니까?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켜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와 그 의미가 같다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에스겔의 환상으로 보여진 예루살렘 성은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오늘날도 에스겔과 요한에게 임했던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임할 것입니다.


에스겔(Ezkiel)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
요한(John)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시는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스겔서
가 쓰여진 시기는 B.C. 592~571년경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A.D. 95~96년경에 쓰였다.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시간차는 대략 700년 입니다. 
700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하나님의 계시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환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환상은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예루살렘 성전은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가까왔을 때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서 돈을 바꾸거나 비둘기를 팔고 있었던 사람들의 상을 엎어버렸고 채찍을 만들어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36년동안 지었는데 어떻게 삼일 만에 지을 수 있느냐?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전된 육체를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깨우쳤습니다(고린도전서 3:16. 6:19).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 건축하라는 환상이 아니라 마음에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

성전을 건축할 때는 반드시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민수기 32:24
너희는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 입에서 낸대로 행하라.

열왕기하 22: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역대상 22:19
이제 너희는 마음과 정신을 진정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고 일어나서 여호와 하나님의 성소를 건축하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하나님의 거룩한 기구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에 드리게 하라 하였더라.

역대하 36:23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찌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에스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에스라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에스라 4: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에스라 5:15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하매.

에스라 5:17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에스라 6:7
하나님의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스가랴 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성경에서 성전을 지을 때는 반드시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제3 성전에 대해서는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성전은 어떻게 세워질까요?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지 이 땅 어디에 건축해야 할 건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의 제3성전에 대해서는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신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입니다.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 심판 예언(1~32장)
2. 회복 예언(33~48장)
회복예언은 또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2-1. 새 이스라엘의 회복( 33~39장)
 2-2. 예루살렘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40~48장)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 계시와 환상(1~5장)
2. 환난과 전쟁(6~16장)
3. 심판과 구원(17~22장)
신판과 구원은 다시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3-1. 큰 성 바벨론의 멸망(17∼20장)
 3-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완성과 결론(21∼22장)

구조적인 면에서 오늘 관심을 갖고 함께 은혜를 받으려는 주제는 네 생물을 통한 환상의 예언과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생물의 의미가 마지막 시대에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의 대상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왕과 선지자는 반드시 유대 혈통을 계승해야 하므로 마태복음을 시작할 때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혈통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대상은 로마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메시아는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고 전한다면 로마 당국에서는 반역죄라고 하여 처형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황소(송아지)처럼 죽도록 일만하고 마지막에는 먹거리로 자기 몸을 내준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대상은 헬라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이성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더구나 헬라 철학의 특징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발전했기 때문에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내세워 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대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독수리와 같이 높은 공중에서 먹잇감을 발견하면 즉시 내려와 먹이를 채가는것처럼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내려와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네 생물의 환산을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장차 바벨론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깨우쳤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70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48장에서 그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불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에 올라갔을 때 네 생물을 목격한 것입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 주위에 둘러 섰고 눈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보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누가 지켜보고 있습니까?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 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요한계시록 21:2-4.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베드로전서 5:10) / 수요성서학당 원고(11-11-20)

파트리스교회 수요성서학당 / 11-11-20 오후 7:00

기독교 신앙과 코로나 19 #.2 (베드로전서 5:10)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And the God of all grace, who called you to his eternal glory in Christ,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 

어느 나라의 왕이 백성들을 가르칠 중요한 교훈을 학자들에게 부탁하여 책으로 만들도록 했습니다.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고 논의한 끝에 12권의 책을 만들어서 왕에게 올렸다고 합니다.
왕은 12권의 책을 받아들고 "그동안 수고들 했오. 그러나 너무 양이 많으므로 좀 더 간략하게 만드시오."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다시 학자들이 모여서 연구하고 논의한 결과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왕은 단 한 문장의 글을 보며 아주 만족했다고 합니다.

"신앙에도 공짜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게 기억할 말씀은 지난 수요일에 소개했던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신 일 세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친히(αὐτὸς) - He Himself"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첫째는 십자가 사랑(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십자가의 도를 알아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18)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갈라디아서 2:20)

둘째는 성령의 간구(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셔서 그를 새롭게 하고, 성령의 피조물이 되게 하여 성령에게 소유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게 소유된 성령의 피조물로 살아가는지 아닌지는 연약함에 대한 탄식이 있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을 좇아 사는 것은 분명 육을 좇는 것인데 그러한 자신을 보면서도 탄식이 없다는 것은 전혀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성령의 증거(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마이어(H. A. Meyer)는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이 함께 증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여기는 주관적인 의식과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는 성령의 객관적인 증거를 서로 구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헨리 알포드(Henry Alford)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과는 전혀 별개이며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무엇을 지칭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당시 로마제국에서 양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까다로운 법의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그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한 곧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 라는 제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권한은 실질적으로 "생사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입양 절차는 어려웠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오늘은 사도 베드로의 신앙관(信仰觀)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한자어 "관(觀)"이란 "본다"는 뜻입니다.
신앙관을 다른 말로 "신관(神觀)" 이라고 합니다.
신앙이란 내가 믿는 신에 대한 믿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의 신앙관은 곧 베드로의 신관을 말합니다.

사도 베드로의 신앙관(信仰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는 질문을 합니다.
제자들은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 이라고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최초의 신앙관 즉 신관에 대한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을 확고하게 고백했던 베드로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을 때 베드로는 다시 갈릴리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하셨고 그물에 가득하게 고기를 잡은 후 바닷가에서 아침을 잡수실 때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베드로전서가 기록된 때를 AD 64년 경이라고 합니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는 베드로의 대답 후 대략 30년이 지났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서 베드로의 신앙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신앙관을 결정하는 두 가지 중요한 영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순종(順從)의 영성(靈性) - spirituality of obedience

베드로전서에서 "순종" 이란 단어가 7번 사용되었다(1:2, 14, 22, 2:3, 3:1, 20, 4:17)

베드로전서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지인지감(知人之鑑)이란 사자성어의 뜻은 "사람을 잘 알아보는 능력"입니다.
 - 알 지(知), 사람 인(人), 갈 지(之), 거울 감(鑑)

공자는 《논어》에서 지인지감(知人之鑑)의 네 단계에 대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첫째는 날 때부터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것이 1등
둘째는 사람 보는 법을 배워서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2등
셋째는 겪고 나서야 사람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 3등
넷째는 겪고나서도 사람 보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이 꼴등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라고 불렀을 때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그 자리에서 즉시 따랐습니다.
이것이 순종의 영성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 사도인 베드로의 순종을 통하여 유대인의 편견을 극복하고,
최초의 이방인 개종자인 로마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를 교회에 들어오게 하셨다.
이후에도 그는 할례문제로 예루살렘 교회회의에서 갈등이 있을 때,
바울 사도의 그리스도교의 자유원리에 대한 신념에 동의해 주었다.
이런 큰 관용과 사랑을 표시하여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의 법적 구속력에서 벗어나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해주었다.

둘째는 종말론적(終末論的) 영성(靈性) - apocalyptic spirituality

베드로전서 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을 얻으리라.

배드로전서는 대략 기원 후 64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30년이 지난 시간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수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베드로전후서에서 강조한 것은
주님의 재림을 경고하면서 심판을 앞두고 철저한 회개를 통한 구원을 이루는 복음을 증거한 것이다.

초대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사모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 사도의 종말론적 영성이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철저한 종말론적 영성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산 소망을 가지고 고난 가운데 기뻐하며
주님을 위한 순교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교영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던 것이다.

1세기 말에 기록된 신앙교훈집 『디다케』에 보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비하라. 그리스도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모른다. 심판이 곧 닥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멸망할 것이다.
믿음 안에 굳게 서는 사람은 저주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초대교회 교인들의 보편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좋은 문서라고 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거룩하고 경건한 내세적인 영원한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베드로의 신앙관을 본문에서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모든 은혜의 하나님
2.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신 하나님
3.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

첫째는 은혜의 하나님( the God of all grace)

은혜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구원의 은혜와 믿음의 선물이라고 하겠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믿음의 선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결과라고 하겠다.

고린도전서 12:9a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믿음의 선물
요한복음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예) 코로나 바이러스

(예) 젊은 아들의 죽음(이동훈목사, 온산에서 안경순집사의 아들 겨울철 강물이 얼었을 때 그곳에서 썰매를 탄다고 나갔다가 물에 빠져 익사한 사고)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기쁜 일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은혜에 대한 정의가 넓게 이해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나를 부르신 하나님(God who called us in Christ)

베드로가 부름을 받았던 때를 생각해 봅시다.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금식 하신 후 사탄으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고 그 시험을 모두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갈릴리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이때부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외치셨습니다.
이어서 갈릴리 해변으로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마태복음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베드로를 부르셨던 예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을까요?
교회에 다니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부르심의 목적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이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을 소명(召命)이라고 합니다.
나를 부르신 이가 정말 부활하셔서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예수님인가요?
나는 언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예) 학습무당(세습무당), 강신무당

(예) 학습 예수, 강신(성령) 예수

학습 예수를 믿는 신앙의 특징 / 권선징악

* 권선징악(勸善懲惡) : 권할 권(勸), 착할 선(善), 징계할 징(懲)
또는 혼날 징(懲), 악할 악(惡)
- 권선징악이란 "착한 것을 권하고(권선), 악한 것을 징벌(징악)한다."

강신 예수를 믿는 신앙의 특징 /
마태복음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38-45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를 악인과 선인에게 취게 하시며 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셋째는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God, who puts us into eternal glory)

영광(榮光)이란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너무나 처참하고 고통스런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죽음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십자가를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십자가로 만드셨습니다.
부활의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으로 변화시키므로 영광스런 십자가로 세워주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때로는 고통을 받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절망 가운데서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가장 아름답게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아픔을 겪어야 하며 슬퍼하고 좌절하는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과정입니다.

베드로의 경우 순교라는 죽음으로 세상에서는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던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런 경험이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영광스런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을 떼실 때 "흰말을 탄자"(활, 면류관)
둘째 인을 떼실 때 "붉은 말"(큰 칼)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다
셋째 인을 떼실 때 "검은 말"(저울) 밀 한 되에 한 데나리온, 보리 석되
넷째 인을 떼실 때 "청황색 말"(사망) 땅 1/4의 권세 흉년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순교자들의 외침"(요한계시록 6:9-11).

요한계시록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중심은 믿음 보다는 세상적인 것에 더 치우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좋은 예를 탕자의 비유라는 말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예) 탕자의 경우 세상에서 영광을 누려보겠다며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상속받아 먼 타국에 나가서 방탕하게 지내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후에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넉넉한 품군들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며 나를 품군의 하나로 받아 줄 것을 간청할 때 너는 잃었다가 다시 얻은 내 아들이라며 잔치를 베풀어 주셨다.

오늘날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시대에 성도들이 붙잡고 의지해야 할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팬데믹 처치(위기를 극복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훗날 내가 죽은 후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를 믿는 동안 즉 내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영광을 경험하고 그 영광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자성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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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목회 계획 컨퍼런스’ 준비 중인 김두현 21C목회연구소장

예배 회복률 20-30%, 대부분 교회 피로 누적
분노, 허탈에 심지어 자포자기 목사들도 많아
30-40대와 그들 자녀 세대 잃어… 회복 필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든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계의 목회자들은 이런 사태를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교회를 세워가야 할 것인가.
21C목회연구소(소장 김두현 목사)가 2021년을 앞두고 현 상황에 대한 분석과 대응,
그리고 미래 교회의 목회와 전략 제시를 위한 ‘2021 목회 계획 컨퍼런스’를 마련했다.

컨퍼런스는 2020년 11월 30일(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21세기목회연구소가 주최하고 새에덴교회(담임 소강석 목사)가 후원하는 이 컨퍼런스에서는
김두현 소장이 코로나 시대의 목회 매뉴얼을,
소강석 목사가 실전 목회 전략을 통해 ‘교회 세움’의 희망을 전할 계획이다.
본지는 김두현 소장을 만나 이 컨퍼런스의 취지와 배경, 그리고 현 한국교회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 봤다.
다음은 김 소장과의 일문일답.

-코로나 사태 이후 한국교회 목회 현실을 어떻게 진단하나.

“코로나 전후가 거의 갈림길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반적 목회, 즉 주일예배, 기본적 행사, 조직이나 사역 등 그 동안 해 왔던 포맷들을 유지하면 됐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한국교회는 여러 면에서 고립되는 상황까지 왔기에, 목회적 돌파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본질을 놓치고 자꾸 비본질의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는데,
성경과 교회 중심으로 돌아와 성령과 영성 중심으로 가야 빠른 정상화가 가능할 것이라 본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지.

“지금은 코로나로 장기화로 인해 목회 자체가 셧다운돼 있기 때문에 예배 회복률이 2, 30%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의 교회들에 피로가 누적돼 있다.
따라서 지금은 컨트롤 타워에서 수요에 따른 공급을 원활히 해 주지 않으면 어렵지 않겠나 생각한다.
필요한 것을 세 가지 꼽자면
첫째는 정확한 메시지다.
메시지에는 시대의 관점, 교회의 현 상황 진단, 그리고 미래로 가기 위한 대안들이 담겨야 한다.

두 번째는 하루속히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통합과 연합과 소통의 환경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무조건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
이번에 목회 컨퍼런스를 하는 이유는,
목사님들이 모여서 교회를 어떻게 세우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진솔하게 논의해서 매뉴얼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현 정부의 교회에 대한 방역 정책과 이에 대한 기독교계의 대처를 평가한다면.

“기독교는 연합체가 부실하다 보니 초기 대응에 어려움이 많았고,
정부는 교회에 대해서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대해 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지금 한국교회에 분노하거나 허탈해하거나 심지어 자포자기하는 목사님들도 많고,
약 30% 가량은 회생 불가의 타격을 입었다.
초기 골든타임에 잘 대응했다면 이 정도까지 위기는 안 왔을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기독교계의 리더가 나와서 허와 실을 구분하고,
정부와도 소통하고 도울 건 도와 가며 함께 문제를 풀어갔으면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어떻게 예상하나? 이에 대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코로나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전과 이후의 교회는 그야말로 모든 게 다 변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이 팬데믹 가운데 교회들이 세워졌는데, 그 교회를 ‘포스트 팬데믹 처치’라고 말한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도 얼마든 교회가 잘되고 사람이 모이고 사역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마스터되고 준비되고 모든 것이 살아 있고 모든 것이 중심이 될 수 있는,
그런 리더십이 있는 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 나빠지는 게 아니다.
팬데믹 속에 개척되고 부흥되고 영적으로 더 강력해지는 교회들, 하나님께서 그런 교회를 만드시는 것이다.
그럼 예전에 세워진 교회들은 어떻게 되나?
그 교회들을 버릴 게 너무 많다. 그래서 이번 컨퍼런스에서 그 원리와 전략들을 말씀드릴 것이다.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코로나로 인해 30 40세대, 그리고 그들의 자녀세대를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교회들이 30 40을 회복해야 하고, 고령화된 교회 구조를 혁신하고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는 목회 패러다임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걸 희생이 아닌 건강한 발전이라고 여기고 새 판 짜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코로나가 종식돼도 2021년부터 찾아오는 코로나 후유증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포스트 팬데믹 처치를 세우고, 새 패러다임을 만들고, 교회 구조를 변화시키고, 새 플랫폼을 활용하고, 교회 내 갈등을 치유하고, 이러한 것들을 신학적·목회학적·성경적으로 잘 해석해서 결국은 교회를 떠난 이들을 돌아오게 하고 무신론자와 반신론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예방이 치료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방어, 유지, 관리에만 집중하고, 예방에 대해서는 너무 소홀하다.
또한 목회자들은 목회에, 성도들은 신앙에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서 교회와 가정이 자기 포지션을 지키며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지금 모두가 셧다운돼 있다. 이래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없고, 지금이라도 결단이 필요하다.

또 저는 하나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생각한다. 지금은 서로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고, 함께 책임지면서 더 나은 단계로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님들, 특히 우리 목사님들이 정말 2021년 목회를 잘 준비해서, 우리가 올해 부활절다운 부활절을 지키지 못했는데 2021년 봄에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한국교회가 새롭게 부활되는 그런 모멘텀이 확실하게 만들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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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적 리뉴얼'은 필수

[ 인터뷰 ] 코로나 시대 교회 공동체에 대해 듣다 _ 모새골공동체 임영수 목사




"개교회 모임이 해체되더라도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는 해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와 교파의 장벽이 낮아지는 동시에 전 세계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의 유대가 더 깊어지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교회 공동체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예측과 교회 공동체의 결속마저 약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가운데, 지난달 29일 경기도 양평 모새골공동체에서 교회 은퇴 이후 모새골공동체를 설립해 하나님 나라
공동체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임영수 목사를 만났다.

"세상은 우리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지엽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자꾸 깨어지게 만듭니다.
세상 속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으로 계속 '리뉴얼'해야 합니다."

임 목사는 코로나19 이후 교회의 변화에 대해 교회의 대형화 추세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많은 교회들이 새로운 각성 속에 새로운 카리스마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시대 별로 새로운 모형을 창출해 냈듯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카리스마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구도자적인 삶을 살기 위해 지난 2003년 모새골공동체를 설립했다.
영락교회와 주님의교회를 담임했던 그는 그 동안의 사역이 책의 서론과 본문 1,2,3이었다면,
이제는 결론을 써야 할 때라고 생각하며 이 공동체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 공동체가 올해로 여든이 된 노 사역자의 목회와 신앙의 결정체인 셈이다.

임 목사는 구도자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교파를 초월해 세상 속에 살면서 어느 순간 하나님이 잊히거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신앙을 항상 새롭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의 고민인 젊은 세대들이 비대면 예배에 익숙해지고 교회를 떠날 것에 대한 기독교계의 우려에 대한 물음에는 동성애 운동에 천착하던 뉴질랜드 교회의 예를 들었다. 복음의 본질과 기쁨을 뒤로 한 채 거리로 나가 반동성애 운동에만 집중하던 교회의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복음 외의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어차피 복음의 능력이 없는 교회에는 코로나 펜데믹 전에도 젊은이들이 모이지 않았다며, 교회가 복음의 능력이 있고 본질이 살아있다면 젊은이들은 자연히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을 잡으러 쫓아다니지 마세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 집중하지 마세요. 매일 신앙을 새롭게 하고 복음의 능력이 있으면 팬데믹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705424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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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문화 정착하면, 교인들은 어디로 갈까?

코로나19로 임시방편처럼 시작한 온라인 비대면 예배가 새로운 예배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난 10월 14일 밝힌 개신교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3월 29일과 7월 19일 기간 사이,
'온라인·기독교방송 예배가 현장예배보다 더 좋았다'는 반응이 9.3%에서 14.5%로 상승했다.
또한 '필요한 경우 교회에 가지 않고 온라인·기독교방송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반응도
12.5%에서 16.7%로, '교회에 잘 안가게 될 것 같다'라는 응답은 1.6%에서 5.7%로 증가했다.

설문결과를 발표한 이민형 책임연구원은 "기독교의 다른 종파에 비해 개신교 교회는 목사의 설교에 무게가 실린
(주일)예배를 신앙의 핵심으로 강조해왔다.
아이러니하게 이 특징이 설교 중심의 온라인 예배를 크게 부담스러워하지 않는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라면서,
"거칠게 비유하자면 코로나19 전후의 예배는 오프라인 강의를 듣는가, 온라인 강의를 듣는가의 차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예배 문화의 정착을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와, 예배를 '오프라인·온라인 강의'에 빗댄 비유를 보고,
총회 산하 '교인 수별 교회 수 비중'의 변화가 우려됐다.

10여 년 사이 교육과 콘텐츠의 온라인화를 통한 쏠림과 분산 현상을 목격한다.
오프라인 학원을 다니던 학생들이 대거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면서 온라인 교육 플랫폼들이 크게 성장하고
'일타강사'들이 등장했다.
반면 SNS 플랫폼이 확장하면서 유튜브에서 1인 크리에이터들이 나타났고,
페이스북 등에선 여러 시위 현상들이나 행사가 편집없이 확산되면서 전통적인 언론매체의 역할이 분산되기도 했다.

제105회 총회 통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0년 사이 초소형 교회의 비중은 급증하고 전체의 0.2%를 차지하는 초대형교회 21곳이 교단 전체 교인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교인 수 30명 이하 교회의 비중은 33.8%로 10년 전보다 10.0% 증가했고,
101~300명 사이 교회는 10년 전보다 3.6% 감소해, 교단의 허리가 약해졌다고 분석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코로나19 종식 후 성도들의 예배 방식이 온라인화되면,
교인 수별 교회 수 비중이 변할 수 있다.
거칠게 비유해서 대형교회에 오프라인으로 모이던 성도들이 시골 오지에서 사역하는 목사를 1인 크리에이터처럼 만나는 기회가 될까, 아니면 온라인 교육계의 '일타강사'처럼 새로운 스타 목사에게 관심이 집중될까?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70834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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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개신교인 유튜브 이용률 타종교인보다 높았다
예장합동, 전국 1000명 설문 조사

종교인 중 개신교인의 유튜브 이용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개신교가 힘써야 할 분야로는 ‘사회적 약자 구제·봉사’를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총회장 소강석 목사)은 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시대 종교 영향도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 13~20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다.
예장합동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략을 수립할 방침이다.


이번 조사에서 유튜브 사용 빈도를 묻는 항목에 ‘거의 매일’ 이용한다고 답한 비율은 53.8%였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8.7%에 그쳤다.
종교별로는 일주일에 3~4번 이상 사용한다고 답한 개신교인이 70.6%로 천주교(53.3%) 불교(67.3%)보다 높았다.
온라인 종교집회에 참여한 경험도 응답자 중 37.5%가 있다고 답했는데 개신교인이 62.6%로 종교 가운데 가장 높았다.
천주교와 불교는 각각 33.4%와 11.7%였다.

온라인 종교 집회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45.8%)
‘현장 집회보다 못했다’(49.1%)는 의견이 갈렸다.

소 목사는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영적인 콘텐츠 개발이 시급하다고 본다”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교인들이 영적인 문화와 접점을 넓힐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은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물건구매(57.7%) 영화감상(35.1%) 회의(33.7%) 종교활동(27.1%)에서 변화가 가장 컸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개신교가 힘써야 할 분야로는
‘사회적 약자 구제·봉사’(49.6%) ‘정부와 소통’(21.7%) 사회 통합’(17.2%) 등의 순으로 꼽았다.

개신교가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 교회상에 대해선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교회’(52.4%)와 ‘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교회’(49.7%)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64.6%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소강석 목사는 “신학자 한스 큉은 ‘미래로 갈수록 현대인은 기존 교회에 대해 저항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커지겠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심과 종교적 욕구, 영성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여론조사 결과는 영(靈)택트가
코로나19 시대에 필요한 과제로 부상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영택트’는 영적인 콘텐츠를 개발해 종교의 건강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팬데믹을 극복하자는 의미의 조어다.

향후 10년 이내에 한국사회가 직면할 위기에 대한 질문에는 45.6%의 응답자가 ‘경제적 양극화와 고용 불안’을 꼽았다.
이어 ‘저출산 고령화’(40.6%) ‘기후·환경’(35.2%) ‘세계적인 전염병의 일상화’(24.6%) ‘진보와 보수의 갈등’(15.5%) 등이 뒤를 이었다.

소 목사는 “코로나19로 한국교회는 부흥과 쇠락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포스트 코로나를 고민하면서 전략 수립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번 조사를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교회의 미래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소 목사는 총회장 취임 직후 총회 본부에 미래전략본부를 조직하고 교단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번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오차 범위는 ±3.1% 포인트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3177&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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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면예배 참석 성도수 아직은…
라이프웨이리서치 목회자 설문… 10곳 중 9곳 대면예배 재개

최근 미국교회 10곳 중 9곳이 대면예배를 재개했지만,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으로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기독교 여론조사기관 라이프웨이리서치는 최근 미국 목회자 10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87%는 ‘9월 현재 대면예배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조사결과(71%)에 비해 16%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현장예배에 참석하는 성도 수는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지난 2월 평균 예배 참석자가 ‘250명 이상’이라고 답한 목회자는 20%였지만 9월에는 6%에 그쳤다.
‘100~249명’이라는 응답도 35%에서 22%로 감소했다.
반면 예배 참석자가 ‘50~99명’이었다는 응답은 28%에서 34%로 늘었고, ‘49명 이하’는 17%에서 38%로 대폭 증가했다.

스콧 매코넬 라이프웨이리서치 대표는 “미국교회가 다시 모여 예배 드리는 방법은 찾았지만,
코로나 확산 이전으로 돌아가기엔 갈 길이 아직 멀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 규모가 클수록 코로나19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성도도 많기 때문에 출석률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형교회가 지역 내 작은 교회와 협력해 코로나에 대응하는 아이디어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코로나 19 장기화가 교회의 사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응답도 눈길을 끌었다.
‘교회 건축 등 대규모 예산 집행을 연기했다’(12%)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아웃리치 주일학교 등 사역 부서 폐지’(8%) ‘교직원의 급여나 복리후생비 삭감’(6%) ‘교직원 감축’(6%) ‘교단 분담금 삭감’(6%)
‘선교활동 지원 중단’(5%) 등이 뒤를 이었다.

매코넬 대표는 “코로나 팬데믹은 사역 현장에 여전히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목회자들은 중단되거나 위축된 목회 활동과
교회 사역이 곧 재개되길 바라겠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코로나 시대 속 사역을 위해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9월 2일부터 지난달 1일까지 전화와 온라인 설문을 통해 진행됐으며 신뢰수준 95%에 오차범위는 ±3.4%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3343&code=23111211&sid1=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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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줄었으니…” 교회들 포용 대신 감원
[코로나 시대, 교계에 드리운 그늘] 부교역자가 내몰리고 있다 <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적지 않은 교회들이 교역자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내년 사역계획과 예산을 확정하기 위한 정책 당회를 마친 교회 중에는 예산을 최대 30%까지 줄인 경우도 많다.
예산이 줄어들면서 교역자들의 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교역자가 사임한 교회들은 충원 대신 인사이동을 통해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예배가 확대되면서 영상 콘텐츠 제작에 특화된 교역자를 선호하는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경기도 안산의 한 교회는 몇몇 전도사에게 사직서를 받으면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전도사들은 붙잡았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교역자들만 있으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비대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인천의 한 교회도 전도사 7명과 이별했다.
이들의 업무는 전임전도사들이 대신 맡았다.
교회의 한 관계자는 “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이 분야를 강화하기 위해 부득이 사직서를 받았다”면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교회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 이라고 전했다.

선교사들도 구조조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아시아 A국에서 사역하던 B선교사는 후원교회가 귀국 명령을 하면서 지난달 가족과 급히 귀국했다.
후원교회는 목사인 이 선교사에게 교육부서와 선교부 업무를 동시에 맡길 예정이다.
이런 결정으로 교회는 2명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됐다.

교회를 사임한 이들은 추운 겨울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교회들이 신규채용을 꺼리고 있어 새 사역지를 찾는 게 어려워졌다.
이전 교회에서 사택을 제공받았던 목회자들은 당장 오갈 데도 없는 형편이 되기도 한다.

간혹 신규 청빙을 하는 교회들도 ‘영상 콘텐츠 제작과 편집’이 가능한 사람을 찾고 있다.
신학대 홈페이지의 초빙 게시판에서도 영상 콘텐츠 제작이 가능한 교역자를 우대한다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교회 승합차 운전을 위해 1종 보통면허 소지자나 찬양인도자를 우대했지만,
비대면 예배가 늘면서 교회의 관심이 영상 콘텐츠 제작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신학대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장로회신학대 글로컬현장교육원(교육원)은 지난 3월 ‘디지털 영상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지난 2일부터 개척교회 지원 기관인 ‘처치브릿지’의 후원을 받아 졸업생을 위한 기초영상반도 운영하고 있다.
박재필 교육원 교수는 8일 “비대면 예배를 준비하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교회를 돕기 위해 영상 아카데미를 개설해
실무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이미 90명을 배출했다”면서 “졸업생을 위한 기초영상반을 통해서도 목회자 영상 재교육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교회들이 어렵더라도 사회에서 사용하는 구조조정 대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길을 찾아야 교회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서 “한국교회가 무조건적인 구조조정을 지양하고 건강한 방향의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63869&code=23111113&sid1=c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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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과 코로나 19(베드로전서 5:10) / 수요성서학당 원고 11-04-20

파트리스교회 수요성서학당 / 11-04-20 오후 7:00

기독교 신앙과 코로나 19(베드로전서 5:10)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베드로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를 "고난의 증인"이라고 합니다(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고난의 시대에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암시한다고 하겠습니다.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And the God of all grace, who called you to his eternal glory in Christ, after you have suffered a little while, will himself restore you and make you strong, firm and steadfast. 

하나님은 누구인가?

1. 은혜의 하나님

은혜란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구원의 은혜와 믿음의 선물이라고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믿음의 선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결과라고 하겠다.

(예) 코로나 바이러스

(예) 젊은 아들의 죽음(이동훈목사, 온산에서 안경순집사의 아들 겨울철 강물이 얼었을 때 그곳에서 썰매를 탄다고 나갔다가 물에 빠져 익사한 사고)

2. 나를 부르신 하나님

부르심을 소명(召命)이라고 합니다.
나를 부르신 이가 정말 예수님인가요?
나는 언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예) 학습무당(세습무당), 강신무당

(예) 학습 예수, 강신(성령) 예수

3.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훗날 내가 죽은 후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기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영광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를 믿는 동안 즉 내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

(예) 탕자의 경우 세상에서 영광을 누려보겠다며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미리 상속받아 먼 타국에 나가서 방탕하게 지내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후에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넉넉한 품군들이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며 나를 품군의 하나로 받아 줄 것을 간청할 때 너는 잃었다가 다시 얻은 내 아들이라며 잔치를 베풀어 주셨다.

누가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그리스도께서 잠깐 고난을 당한 나에게 친히 은혜를 베푸신다.

무엇을 약속하셨는가?

1. 온전하게(καταρτίσει) : 회복시켜 주신다 / will perfect

* 2675 / 카타르티조(katartizó, καταρτίζω) to complete, prepare(준비를 완벽하게 하다) will perfect(준비를 완벽하게 한다)

2. 굳건하게( στηρίξει) : 고정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 / will confirm

* 4741 / 스테리조(stérizó, στηρίζω)  to make fast, establish(기초를 빨리 확립하다)

3. 강하게(σθενώσει) : 확신과 능력 가운데서 행하게 하신다 / will strengthen

* 4599 / 스데노오오(sthenoó, σθενόω) to strengthen(강화하다)

4. (터를) 견고하게(θεμελιώσει) :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 / and will establish you

* 2311 / 데메리오오(themelioó, θεμελιόω) to lay the foundation of(기초를 닦다, 기초를 놓다)


* 친히(αὐτὸς) - He Himself

1. 십자가 사랑으로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도 십자가의 사랑을 알지 못하면 비밀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비밀이 아니라면

첫째, 십자가의 도를 알아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둘째,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있어야 합니다(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2. 간구하심으로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흔히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돕는다는 것을 육신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합니다.

24,25절을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하여 생각해 본다면 사도가 말하는 연약함은 보지 못하는 것을 참음으로 기다리지 못하는 것을 두고 한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소망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23절에서 말씀한 대로 우리 몸의 속량입니다.
우리 몸의 속량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으로 성취됩니다.
부활하여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그때 우리는 완전한 몸의 속량을 받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한 몸은 단지 육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부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몸의 속량은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늘의 생명에 속한 자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신자에게 있어야 할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해진 시간 약속이 없는, 한마디로 기약이 없는 소망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이 소망을 가볍게 여기게 되고 대신 보이는 것을 좇아살게 됩니다.
즉 참으로 기다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이러한 연약함을 깨닫는 신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탄식입니다.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연약함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의지로 보는 것을 좇지 않고 보지 못하고 기약도 없는 소망을 바라보며 참으로 기다리는 믿음의 길로 갈 수가 없습니다.

힘쓰면 힘쓸수록 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만 보게 될 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확인하면서 탄식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함께 한 성령의 당연한 반응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약함으로 인한 신자의 탄식은 신자의 종교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탄식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탄식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좇아 사는 사람도 탄식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탄식은 모두 보이는 것으로 인한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남들만큼 없다는 것이 탄식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는 것을 좇는 욕망에 붙들려 살아간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세상은 보지 못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것이 소망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망이 되는 그것을 기다리는 참음이 없어서 보는 것을 좇게 되는 자신으로 탄식을 하는 것은 성령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같은 탄식이야 말로 성령의 말할 수 없는 탄식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탄식을 나와는 상관이 없는 별개의 문제로 여길 수 없습니다.
나는 연약함에 대해서, 내 신앙에 대해서, 보지 못하는 소망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보는 것을 좇아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성령이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탄식을 하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성령의 탄식은 말 그대로 성령의 탄식일 뿐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여전히 보는 것을 좇아 산다면 결국 성령이 간구가 실패했다는 논리도 가능해 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오셔서 그를 새롭게 하고, 성령의 피조물이 되게 하여 성령에게 소유된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게 소유된 성령의 피조물로 살아가는지 아닌지는 연약함에 대한 탄식이 있느냐로 알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을 좇아 사는 것은 분명 육을 좇는 것인데 그러한 자신을 보면서도 탄식이 없다는 것은 전혀 성령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의 자녀 된 것으로


로마서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마이어(H. A. Meyer)는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이 함께 증거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여기는 주관적인 의식과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는 성령의 객관적인 증거를 서로 구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헨리 알포드(Henry Alford)는 성령께서 우리의 영과 더불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과는 전혀 별개이며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무엇을 지칭한다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의견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울이 하나님의 영과 우리의 영을 구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신적인 영과 인간적인 영을 혼돈하는 범신론적인 사고와 신적인 영과 인간적인 영을 그리스도인들 속에 합일(合一)시키는 신비주의 사상을 반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미를 정리하면 성령과 우리 영이 서로 동일한 사실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영은 양자의 영이니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는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양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까다로운 법의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그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절대적인 권한 곧 파트리아 포테스타스(patria potestas)때문이었습니다.
자녀에 대한 아버지의 권한은 실질적으로 생사의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입양 절차는 어려웠습니다. 

여기 바울은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스러운 장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데는
1.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다
2.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된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성령과 성도 자신의 영과 더불어 증거해 주고 있다.

에베소서 4:3
평안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베드로전서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처음에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를  “우한 폐렴” 이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우한 폐렴"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대구 폐렴” “한국인 폐렴” “문재인 폐렴” 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학명은 “코로나 19” 라고 합니다.
그리고 팬데믹(pandemic) 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19”에 의한 “팬더믹(pandemic)”이란 현실에서 성도들에게 소망과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함께 읽었던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서 고난을 통하여 말씀하신 네 가지 약속을 소개합니다.

먼저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일까요?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하나님은?

1. 모든 은혜의 하나님 / the God of all grace
2.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 who called you
3.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 / to his eternal glory in Christ

첫째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God of all grace)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기쁜 일을 만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부르신 하나님(God who called us in Christ)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가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God, who puts us into eternal glory)

영광이란 모든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는 너무나 처참하고 고통스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영광의 부활로 바꾸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때로는 고통을 받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며 절망 가운데서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가장 아름답게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고 아픔을 겪어야 하며 슬퍼하고 좌절하는 자리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과정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코로나 대유행의 팬데믹 시대에 성도들이 붙잡고 의지해야 할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코로나 사태가 시작될 때에 대부분 머지않아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1차 코로나 사태가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무렵 다시 2차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습니다.
3월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과 의료진들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몇 개월의 코로나 시대가 너무나 길다고 느껴진다. 현재 각자가 당하는 고난의 터널이 끝이 안 보인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인내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에게 고난을 주신 하나님께서 기필코 반드시 하실 4가지 약속을 묵상하면 큰 위로와 용기와 인내심을 얻게 된다.

첫째,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a perfect God)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온전하게 하시며 / καταρτίσει  , will perfect
* 2675 / 카타르티조(katartizó, καταρτίζω) to complete, prepare(준비를 완벽하게 하다)

온전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케 하신다는 것은 “충분하게 하신다”, “완성케 한다
이 말의 원래의 뜻은 “찢어진 그물을 수리하여 고기를 잡을 준비하다”는 의미이다.
이 말의 뜻에서 “회복”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한 때, 주님을 배신했던 베드로 사도가 성령의 은총을 체험한 후,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십자가에 거꾸어 매달여 순교하기까지 그의 영성과 사명이 회복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여,
찢겨 진 삶,
상처 입은 영혼,
지쳐 기진맥진하는 심령,
깨어지고 분열된 공동체를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줄 믿고 확신하게 하소서!

주여,
속히 찢겨 진 이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게 하소서!

주여,
속히 마스크를 벗고 형제, 자매가 마음을 주님을 높이 찬양하며 경배하게 하소서,
우리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마음 껏 그들의 원대한 꿈을 꽃피우고 학업에 몰두하게 하소서,
잃어버린 직장을 되찾고,
닫혀진 일터 문들이 활짝 열리게 하소서.

온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욥도 믿음으로 시험을 이겼고 결국 하나님은 두배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욥기 42:12-13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둘째, 굳건하게 하시는 하나님(a firm God)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 στηρίξει, will confirm 
* 4741 / 스테리조(stérizó, στηρίζω)  to make fast, establish(기초를 빨리 확립하다)

너희를 친히 굳건하게 하시며...

고정 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철통같이 견고한 위치에 서있게 하신다는 뜻이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서 마귀의 무차별한 공격 속에서도 성도들이 그 위치에서 쫒겨남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삶은 영적 전투이다.
마귀는 성도들을 성도의 신분과 위치에서 떨어지고 무너지고 쓰러지길 맹공격한다.

우리는 때로 수많은 걱정을 한다.
가정이 파괴될까?
건강이 큰 어려움이 올까?
자녀들이 피해를 입을까?
직장에서 실직을 당할까?
노후가 어떻게 될까?
교회가 위기를 당할까?
국가의 장래가 어떻게 될까?
여러 가지 두려움과 염려의 깊은 수렁이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은혜의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반드시 굳게 지켜 주신다.
설령 위기 상황 속에 잠시 고난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도의 자리와 신분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다.

시편 46:1-3[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이사야 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셋째,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a strong God)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 σθενώσει, will strengthen
* 4599 / 스데노오오(sthenoó, σθενόω) to strengthen(강화하다) 

강하게 하신다는 것은 "강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강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강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확신과 능력 가운데 거하게 된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공격적인 마귀의 전략을 알고 미리 대비할 때 강화하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굳게 하신다”는 말씀은 방어적 말씀이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막아준다는 말씀이라면 여기 언급한 “강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공격적 말씀이다.
이 약속은 사탄의 악한 계략과 공격, 외부의 물리적 어떤 세력 등으로부터 보호해 주시 것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세력으을 맞설 수 있도록 영적 체력과 대응 도전력을 강하게 해주신다는 약속이다.

베드로전서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그란? 사탄을 말합니다.
굳건할 뿐 아니라 대적하고 하신다.
믿음으로 굳건해질 수 있고 대적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야고보서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여 마귀를 대적할 영적 권능을 주신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마귀가 성도들을 피할 것이다.
주여, 환란의 날, 위기의 순간, 질고의 위협, 어둠의 세력들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저희들을 강하게 하여 주옵소서.

마귀를 이기게 됩니다.
세상을 이깁니다.

역대상 29: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실서 자라는 화초같이 약한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세상을 이기는 강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훈련을 시키십니다.

신명기 32:9-12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넷째, 터를 견고케 하시는 하나님(God who solidifies the ground)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 θεμελιώσει. [and] will establish [you]
* 2311 / 데메리오오(themelioó, θεμελιόω) to lay the foundation of(기초를 닦다, 기초를 놓다)

터를 견고하게 한다는 것은 "기초를 잘 닦는 것" 또는 "기초를 잘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기초가 든든해야 합니다.
그 기초 위에 주님의 몸이 되는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친히 터를 견고케 하십니다.
기초가 튼튼해 진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확실한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 튼튼한 것처럼 “안전하게 머물게 하신다”는 뜻이다.
태풍으로 무너진 건물, 지진으로 허물어진 건물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확실하게 다져진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은 어떤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는다.
기초의 터가 건물의 견고성을 좌우한다.
기초는 바로 성도들의 믿음이요, 그 믿음의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탄의 공격은 성도가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게 무차별 공격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기초,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굳게 붙잡아 주신다.

믿음에 떨어지지 않게 기도하시는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질까 회개하고 회복시킨 후에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눅 22:31-32).

시몬
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베드로는 이 약속의 말씀을 주께로부터 받았으며 또한 자신이 직접 체험한 말씀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더믹 시대에 믿음의 기초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게 서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결코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견고한 믿음의 터를 유지하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히브리서 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여호수아 1:5-6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의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미태복음 7:21-2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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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친히 /  αὐτὸς He Himself

온전하게 하시며 / καταρτίσει  , will perfect

* 2675 / 카타르티조(katartizó, καταρτίζω) to complete, prepare(준비를 완벽하게 하다)

- 회복시켜주신다.

굳건하게 하시며 / στηρίξει, will confirm 

* 4741 / 스테리조(stérizó, στηρίζω)  to make fast, establish(기초를 빨리 확립하다)

- 고정시켜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

강하게 하시며 / σθενώσει, will strengthen

* 4599 / 스데노오오(sthenoó, σθενόω) to strengthen(강화하다)

- 확신과 능력 가운데서 행하게 하신다.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 θεμελιώσει. [and] will establish [you]
* 2311 / 데메리오오(themelioó, θεμελιόω) to lay the foundation of(기초를 닦다, 기초를 놓다)

-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난을 통하여 이기적인 믿음을 버리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잘못과 교만을 버리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러움을 버리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세상을 십자가에 못밖에 하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강하게 하시고 하나님 가까이 이끌어주십니다.
고난을 통하여 더욱 복된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나를 이래도 복을 주시고 저래도 복을 주심을 인하여 감사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뜨인 돌(다니엘 2:34-35) / 주일설교 원고(11-01-20)


뜨인 돌(다니엘 2:34-35)
- 선지자 다니엘과 사도 요한으로부터 들어야 할 메시지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은과 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요한계시록 22: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구약의 선지자 다니엘과 신약의 사도 요한을 비교하면 서로 닮은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활동 기간

다니엘은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1차 포로가 되어 제일먼저 바벨론 왕궁으로 끌려갔고 고레스 왕 때까지 활동했습니다.
이때 다니엘의 나이를 대략 9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할 때 부름을 받았고 요한을 불렀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신 후 다른 사도들이 모두 순교했어도 밧모섬에 갇혀 있었지만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
이때 요한의 나이를 대략 98세라고 합니다.

둘째는 꿈과 환상을 통한 예언

다니엘은 바벨론 땅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의 내용과 그 의미를 해석하므로 장차 바벨론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언했습니다.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으면서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을 기록하여 마지막 시대를 예언했습니다.

셋째는 세상 나라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웠던 유다 나라가 우상을 숭배하는 바벨론 나라에 의해서 무너진 것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영원한 나라과 권력은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요한은 비록 지금은 로마의 핍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로마가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이 곧 다가올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넷째는 마지막 시대를 준비하라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이 받은 이상을 통하여 현실 생활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말고 다가 올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깨우칩니다.

요한은 복음을 위하여 받는 핍박과 환난을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참고 견디므로 장차 받을 영광의 면류관을 기대하라고 강조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귀족 출신으로 교육을 많이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반면에 요한 사도는 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으로 교육은 별로 받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니엘과 요한을 세워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유전이나 환경이나 교육의 여하를 불구하고 헌신한 종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니엘 2:44-45,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연결할까요?

다니엘서 2장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꾼 후에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과 박사들 그리고 점장이들까지 총동원하여 왕의 꿈을 이야기하고 그 꿈의 의미를 말하라고 합니다. 바벨론의 모든 술사들과 박사들 그리고 점장이들은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어떤 신도 꿈을 이야기 하지 않고 꿈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과 신은 없었다고 하며 왕의 요구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왕은 만일 나의 꿈을 말하지 않고 꿈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하면 모두 죽여버릴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모든 술사들과 박사들과 점장이들은 왕의 명령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유다 나라에서 포로로 붙잡혀 왔던 다니엘과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과 같은 젊은이들도 목숨이 위태롭게 된 것입니다.

이때 다니엘이 왕의 신하에게 부탁하여 며칠만 여유를 주신다면 반드시 왕의 꿈이 무엇이고 그 꿈의 의미를 말할 것이라며 죽음 앞에 두려워 떨고 있던 술사들과 박사들 그리고 점장이들에게 소망을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다니엘이 왕 앞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왕이 꾼 꿈을 알려주는 것은 내가 믿는 하늘의 하나님이시라며 꿈의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큰 신상

머리 : 정금(32절)
가슴과 팔들 : 은(32절)
배와 넓적다리 : 놋(32절)
종아리 : 철, 발의 일부분 : 철과 진흙(33절)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은 거대한 신상으로 머리는 정금, 가슴과 팔들은 은, 배는 놋, 종아리는 철, 발의 일부분은 철과 진흙이었다고 합니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철과 진흙과 은과 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그 꿈을 해석하면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머리니이다.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세째로 또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할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

다시 한 번 더 간략하게 정리합니다.

정금의 머리은 현재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나라(사자)를 말합니다.(사자)
가슴과 팔은 지금보다 약한 나라 메대 파사 나라(곰)를 말합니다.
넙적다리 놋(동)은 그 다음으로 등장 할 헬라 나라(표범)를 말합니다.
종아리(다리)진흙으로 로마 나라(무섭고 강한 짐승, 뿔이 10개)를 말하며 로마 나라 이후에 철과 진흙이 뭉칠 수 없듯이 분열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뜨인 돌이 나타나 그 신상을 쳐서 부셔버릴 것이며 새로운 나라가 세워 질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뜨인 돌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마지막 때에 이 세상에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이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뜨인 돌의 의미를 구약과 신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예언과 성취라고 합니다.
이러한 관계를 모형론(Typology)이라고 합니다.
구약은 모형(Type)이고 신약은 실체(Antitype)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한다면 새로 건축할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구약은 모델 하우스라고 한다면 신약은 앞으로 세워질 새 아파트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뜨인 돌에 대한 신약의 실체를 찾아봅시다.

고린도전서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약의 실체는 뜨인 돌을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으로 그 반석에서 신령한 음료가 흘러나와 마시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뜨인 돌에 대한 구약의 모형을 찾아봅시다.

출애굽기 17:6a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신 광야를 거쳐 이제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마실 물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애급에서 부르짖던 것처럼 부르짖어야 할텐데 아무도 부르짖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출애굽기 17: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애급에서 나일 강을 치던 그 지팡이를 잡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날 베푸셨던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그 은혜를 생각하며 다시 그 은혜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다시 그 은혜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다시 그 은혜가 임했던 그 때를 회복하라고 합니다.

뜨인 돌(다니엘 2:34∼35)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산 돌(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흰 돌(요한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뜨인 돌을 통하여 기도하는 돌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거리의 돌(누가복음 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창세기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개회 찬송 197장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결단 및 봉헌 찬송 459장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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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부갓네살 왕의 꿈
*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 BC 605-562 재위)(다니엘 2-4장)

바벨론(머리는 금)

다니엘 2:37-38,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인생들과 들 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금머리니이다.

성경의 예언들의 적용은 대부분 바로 그 계시를 받은 선지자의 시대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다니엘이 설명한 이 예언은 다니엘 시대로 부터 시작해서 약 2500년이 넘는 지구상의 역사를 요약해서 한눈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정확하고 요점이 분명한 줄거리를 가지고 역사를 미리 예언하여 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 즉 로마 시대 부터 세상 종말까지에 있을 중요한 사건에 대하여 예언해 주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금머리는 왕이 다스리는 바벨론 나라를 상징합니다”라고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정확한 묘사입니까?

바벨론 나라는 유프라데스 강이 가운데로 흐르고 있던 강력한 제국으로서 그 성벽의 높이가 200피트에(0.3mx200=60m) 달하였고 성벽은 그 위에서 마차 세 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은 두께를 가지고 있었으며, 역사가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바벨론은 엄청난 양의 금을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장식품들에는 물론이요, 특히 신전을 꾸미는데 있어서 신상이나 그 보좌, 제단들 그 모두를 순금으로 장식하였으며 그 어느 나라도 바벨론 만큼이나 금을 많이 사용한 나라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요한 나라 바벨론을 금나라로 상징한 것은 얼마나 잘맞는 상징입니까?

고고학자들의 발견에 의하면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 나라의 성벽의 벽돌 하나 하나 마다에 자기의 이름을 새겨 두었고, 한 비석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오! 바벨론이여, 내 눈을 기쁘게 하는 바벨론 왕국의 영광이여! 너는 영원히 지속될지어다!”

자기의 나라가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 그 왕의 꿈이요 포부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메데 페르샤(가슴은 은)

다니엘 2:39,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느부갓네살 왕이 본 꿈의 신상은 전체가 금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닌 것 처럼 한 나라가 세상을 계속적으로 지배할 것이 아니요, 나라들의 권세가 뒤바뀌면서 결국에는 인간 나라들의 권력들이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께서 주관 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금으로 상징된 바벨론은 이제 곧 쓰러지게 되고 그만 못한 은으로 상징된 메데 페르샤 나라가 그 뒤를 이을 것이라고 다니엘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605 B.C. 부터 539 B.C.까지 세상을 지배하였었는데,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지 여러해 후인 539 B.C.에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잔치를 베풀고 있는 동안 밤에 몰래 페르샤의 고레스 왕이 거느리는 군대가 유프라데스강을 빼돌린 후 수문 밑으로 군대들을 들여 보내어 난공불락의 성채였던 바벨론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벨사살 왕이 잔치를 즐기며 하늘의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들을 하는 동안 한 손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썼습니다.
떨고 있는 왕 앞에 다니엘이 들어와 그 의미를 해석하여 준 사실이 다니엘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5:25-28,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 하건데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성경의 예언에 의하여 539 B.C
메데와 페르샤의 동맹군에 의하여 바벨론이 멸망을 당하였는데, 페르샤의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점령하기 150년 전에 벌써 선지자 이사야는 고레스왕에 대하여 예언해 두었으며 고레스가 자기에 대한 예언이 기록된 성경을 보자 깜짝 놀라서 그는 다니엘과 유대나라를 선대하고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 하도록 허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해 두었습니다.

이사야 44:28,
고레스
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5: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 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성경은 사람의 손에 의해서 기록된 말씀이지만 사람이 저자가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믿고 받아드리는 자들에게 영생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들은 장래에 나타날 일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이름까지 150년 전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의 흐름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슴과 팔 부분인 은으로 상징된 메데 페르샤가 다시 세상을 영원히 지배할 것인가요?
다시 다니엘 2장으로 돌아가 보십시다.

그리이스(헬라)(배와 넙적다리 놋 )

다니엘은 두번째 나라인 페르샤도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331 B.C 세번째 제국인 헬라에 의하여 정복되게 될 것인데 그 세번째 나라는 배와 넓적 다리 부분으로서 놋으로 표현되어 졌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라 왕 알렉산드리아는 25세 때에 왕이 되어서 33세 때에 그 당시의 온 세계를 점령하였으며, 인도 간지스 강까지 가서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다고 하여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전설 중의 하나입니다.

역사가 아리안은 알렉산더 대왕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그가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 나라나 도시들이나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의 행적과 사업에는 마치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언 가운데서 한가지 괄목할만한 흥미있는 점은 금속의 가치가 금신상의 아래로 내려가면서 떨어지지마는 그 금속의 강도는 점점 더 강하여져 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을 바꾸어 보자면, 후에 나타나는 제국들의 부요함이 점점 약해 질런지는 모르지마는 무력의 힘은 점점 더 커져 간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세번째 놋의 나라인 그리스가 영원히 지속 될까요? 아니지요. 네번째 나라가 등장합니다.

로마(철)

네번째 나라는 가장 주목할만한 나라 입니다.

다니엘 2:40,
네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네 번째 등장할 세력도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를 뒤엎은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어느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실 당시에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까?
바로 로마 나라입니다.
로마 제국은 168 B.C. 부터 450 A.D. 까지 세상을 지배하였습니다.
로마가 바로 느부갓네살 왕의 꿈속의 신상의 네번째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다리 부분의 철로 상징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로마의 명령으로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미리아가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가게 되었고, 바로 이 로마의 군인들의 못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셨습니다. 예수의 무덤도 로마의 인으로 봉하여 졌었습니다. 대영 백과사전 40권 631페이지에서 유명한 역사가 “에드워드 기본”씨는 다니엘서 2장의 신상은 인간 역사의 제국들의 흥망 성쇄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역사가들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실로 철로 상징된 로마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제국으로서 많은 나라들을 잔인하게 부수고 짓밟는 일을 자행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은 "로마 제국의 쇠망사" 라는 저서에서 다니엘서 2장의 신상은 인간 역사의 제국들의 흥망성쇄를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세상 역사의 흐름을 지켜 보면 한 나라가 일어나면 또 다른 나라가 그 뒤를 이어 일어나 세상을 지배하고 또 다시 다른 나라가 일어나서 이전 나라를 패망케 하면 곧 다시 다른 나라가 뒤이어 일어나는 흥망성쇠(興亡成衰)의 네번의 연속을 바라 볼 때에, 우리는 그 뒤에 다섯번째의 나라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은 그렇게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그 놀라운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열국 시대 (철과 진흙 나라)

다니엘 2:41-43,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만한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나라가 다른 다섯번째의 나라에 의하여서 계승될 것이 아니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로마 제국은 열국으로 갈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상의 발과 발가락에 철과 진흙이 섞여 있는 것으로서 상징된 것은 어떤 나라는 강하고 어떤 나라는 약한 나라들일 것이지만 이 세상은 열국으로 나뉘어 져서 공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한 것입니다.

4세기 중반부터 5세기 중반까지 북쪽에 살던 앵글로 색슨, 프랑크, 알레마니, 벌건디안, 반달, 훈, 수에비 와 같은 만족들이 약해져 있는 로마 제국을 침략해 내려 오면서 제국의 토지들을 각기 제나름대로 점령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랑크족은 지금의 불란서를 이루게 되고 앵글로 색슨은 영국에 머물게 되었고 수에비 족은 지금의 스위스를 점령하는 등등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 유럽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성경 예언의 정확성을 살펴 보십시요.
바벨론, 메데 파사, 그리스, 로마가 순서대로 일어나더니, 인간의 생각대로 다섯번째 다른 나라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언대로 여러 나라로 갈라진 열국시대가 되더니 어떤 나라는 철의 금속 처럼 강한 나라가 되고 어떤 나라는 진흙처럼 약한 나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럽이 다시 연합하게 될까요?
아니면 다시 세계를 제패하는 다른 한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요?
다니엘 2:43절에서 읽은 바와 같이 그들은 피차에 합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로 여러 사람들이 유럽을 통합 하려고 애를 썼지마는 번번히 실패 하였습니다.
카롤루스 마노스 대제(Karolus Magnus. 742. 4. 2~814. 1. 28)(영어식 이름은 샤르망)의 시도 실패
그 당시 유럽 나라들은 왕자와 딸들을 결혼을 시켜 서로 주고 받았기 때문에 왕권들의 피들이 다 섞이게 되었지마는 성경의 예언대로 합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성경이 말했습니다.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 8. 15~1821. 5. 5)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며 1804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 제1국의 황제이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쟁에서 “전능자와 싸우는 일은 내게는 너무나 큰 일이다”

아돌프 힛틀러(Adolf Hitler. 1889. 4. 20~1945. 4. 30)는 온 유럽을 정복하는 일에 거의 성공한 듯이 보였을 때인 1941년 3월에 감히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우리의 무기로 이 전쟁을 싸울 것이다. 우리는 그의 도움없이 승리를 거둘 것이다.”

히틀러의 군대가 연합군을 영국 던커크 해협으로 몰고가서 거의 물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던 가장 긴박한 입장에 있었을 때에, 그렇게 좋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 지더니 영국 해협에 안개가 짙게 내려 앉았습니다. 그날 밤 윈스턴 처칠은 영국 국민들에게 방송으로 호소하여 모든 배들을 가지고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날 밤 연합군들은 민간인들의 배들을 타고 무사히 영국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다시 재 무장 정비하여 나아가 결국은 연합군이 세계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아슬 아슬한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합군을 도우셨습니다. 히틀러도 유럽을 점령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은 그들이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뜨인 돌(세상 끝)

이 세상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요?
인류의 역사는 바벨론 시대를 지났습니다.
페르샤 시대도 지났습니다.
헬라 시대도 지났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 역사의 머리나 가슴이나 다리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발가락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바로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의 그 끝에 살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세상의 역사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요?

다니엘 2:44-45,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지구의 미래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에 의해서 멸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는 환경오염이나 인구의 증가와 식량의 부족으로 자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핵 폭탄으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식량난으로 자멸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 3차 대전으로 끝나든지 다시 빙하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지구의 역사는 돌의 나라 즉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때가 다 되었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심으로 종결 지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들은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될 것입니다(다니엘 2:34-35).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은과 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 뜨인 돌(a rock was cut out, but not by human hands) :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닌 자려나간 돌(바위)

신상을 쳐서 가루를 내어 버릴 돌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언제 돌의 나라가 임할까요?
그 돌의 나라는 머리를 치는 것이 아니고 가슴이나 다리를 치는 것도 아닙니다.
이 “열왕의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묵상(10월)


오늘의 묵상(10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1

고린도전서 10:1∼33

신령한 반석(4절)

10

2

고린도전서 11:1∼34

주의 만찬(20절)

10

3

고린도전서 12:1∼31

더욱 큰 은사(31절)

10

4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1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0: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신령한 반석(4절)
♦ 성구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신령(神靈)한 반석(磐石) The Spiritual Rock”

사도 바울은 히브리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영적 생활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메추라기와 만나를 먹은 것은 신령한 음식이라고 합니다.
또한 반석을 쳐서 물이 나와 모든 사람들이 마셨던 것을 신령한 음료라고 합니다.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경배한 것은 간음죄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신랑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향한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 죄가 되어 장대에 구리 뱀을 만들어 매달고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회복되었지만 거부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오실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광야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히브리 백성을 신령한 백성으로 다듬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략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창조주 하나님은 거룩한 전략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듬고자 합니다. 전염성이 강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세 가지 기적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읽지 않는 기적
둘째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전도하지 않는 기적
셋째는 성경을 읽지도 않고 전도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기적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전염병이 닥쳐오기 전에 우리들의 약점을 지적하는 세 가기 기적을 생각하며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으로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 취약 계층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노인들과 만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지켜주시옵소서.
빈곤층과 혜택을 받지 못하는 취약 계층에게 그들의 필요가 공급될 수 있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 할 기회가 없어 삶의 염려에 붙잡힌 사람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옵소서.

♪ 찬양 / 전능왕 오셔서

https://www.youtube.com/watch?v=tySNuzGINh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1:1∼34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의 만찬(20절)
♦ 성구 :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When you come together, it is not the Lord's Supper you eat.

“주의 만찬(晩餐) the Lord's Supper”    
주의 만찬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성도들이 모여서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실 때, 떡은 그의 백성을 위하여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합니다. 주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 안의 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심으로써 주를 기념하며 주의 만찬에 참여합니다. 이렇게 행하므로 주께서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합당한 방식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데, 이는 물질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믿음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을 통하여 약속하신 은혜를 확신하며 그 은혜 안에서 함께 성장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의 분쟁의 원인 중 하나가 성찬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찬예식과는 다르게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만찬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진행한 결과 나중에 도착한 사람들은 만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지요. 먼저 참석하는 사람들은 생활이 넉넉하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던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부유한 계층과 늦게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소외된 계층 사이에 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분쟁 소식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은 음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위한 것이라고 깨우칩니다.

주의 만찬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에게 베푸셨던 유월절 만찬을 생각하며 함께 나누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주님의 고난에 깊이 참여하겠다는 고백적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곧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오직 주님만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학계 종사자들과 의료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를 위한 백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혜를 내려주셔서 속히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이 질고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그 날을 맞이하게 하옵소서.
 

♪ 찬양 / 예수 따라가며

https://www.youtube.com/watch?v=5epxlhsh5O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3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2: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더욱 큰 은사(31절)
♦ 성구 :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But eagerly desire the greater gifts. And now I will show you the most excellent way.

더욱 큰 은사란 "아가페 사랑(agape)"을 말합니다.
왜 아가페 사랑을 더욱 큰 은사라고 하였을까요?
은사란 선물을 말합니다.
"카라" 라는 헬라어는 기쁨을 말합니다.
기쁨이란 카라에서 "카리스(은혜)"라는 단어가 파생하였고, 카리스에서 "카리스마(은사)"라는 단어가 파생합니다.
따라서 은혜와 은사는 기쁨의 열매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에게서 가장 큰 기쁨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청춘 남녀가 서로 만나 교제하다 결혼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이란 희생적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10월 1일 조카 이동훈목사(Jacob Lee, 36세)를 Long Island Pinelawn 공동묘지에 안장을 했습니다. 조카며느리가 라헬(Rachel, 31세)입니다. 세 명의 어린 자녀들(5세, 3세, 1세)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할 텐데 참으로 대견스럽게 하관예식을 지켜보며 꿋꿋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랑의 힘과 신앙의 힘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사랑이란 누군가를 위하여 나를 버리고 희생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랑을 지탱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믿음도 선물 즉 은사라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믿으려 해도 믿지 못하지만 은사로 주신 믿음은 믿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합니다.

라헬이 태어났을 때 병원의 간호사가 산모에게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 것이냐? 라고 물었을 때 마침 비가 오는 날이라 "레인(Rain)" 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간호사가 그런 이름이 어디 있느냐? "라헬(Rachel)" 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라헬(Rachel)이 야곱(Jacob)을 만났습니다.
버팔로 대학에서 서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고 믿음이 없는 가정에서 성장한 라헬에게 우리 집안으로 시집을 오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고 하였을 때 기꺼이 승낙하고 결국에는 두 사람이 필라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신학과 기독교 상담 심리학을 마치고 미국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하여 열정적으로 일을 하던 중 먼저 동훈목사가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믿음은 은사로 주어진 것이라고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8)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된 믿음의 동지들이여!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믿음을 회복하여 남은 때를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섬길 수 있는 은총의 삶을 위해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팬데믹이란 수용소에 갇혀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내가 젊기 때문에 어떤 질병도 이길 수 있다는 무모한 용기를 버리고 자기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늘 조심하며 질병을 퍼뜨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옵소서.
또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돕고자 하는 마음을 자극하여 주옵소서.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5

고린도전서 13:1∼13

제일은 사랑이라(13절)

10

6

고린도전서 14:1∼40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1절)

10

7

고린도전서 15:1∼58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10

8

고린도전서 16:1∼24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절)

10

9

고린도후서 1:1∼24

위로의 하나님(3절)

10

10

고린도후서 2:1∼17

그리스도의 향기(15절)

10

1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5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제일은 사랑이라(13절)
♦ 성구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

“제일은 사랑이라(The Greatest Love)”
사랑이 가장 위대하다!
믿음과 소망도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아가페)이라고 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사랑을 강조하였을까요?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은사는 초대교회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핍박 가운데서도 굳게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의 몸이 되는 교회를 바르게 섬길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베드로전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할 성도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은사는  서로 자기의 은사가 제일이라고 분쟁하는 고린도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사랑이 식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4:12).

마지막 시대를 살아야 할 우리들에게 사랑이란 가장 위대한 힘이 될 것입니다.
먼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사랑과 사랑이 부딪치며 소리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며 안타까워하십니다(누가 18:8).
올바른 믿음을 회복합시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합시다.
등과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등은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기름이 없으면 등을 밝힐 수 없겠지요?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며 오늘은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 종사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국민들을 혼란 가운데로 빠트리지 않는 정확하고 신속하며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 찬양 / 세상 모두 사랑 없어

https://www.youtube.com/watch?v=OtPdHLf3h4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6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4: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1절)
♦ 성구 :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Follow the way of love and eagerly desire spiritual gifts, especially the gift of prophecy.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desire spiritual gifts)”
신령한 것이란 영적 은사를 말합니다.
영적 은사를 사모하되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신령한 은사가 강할지라도 사랑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사를 받았으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덕(德)을 세우는 것입니다(고전 8:1)
신령한 은사도 덕을 세워야 합니다.
만일 신령한 은사를 덕으로 덕을 세우지 못한다면 그 은사는 오히려 해(害)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쟁(分爭)하는 교회이었습니다(1:12).
분쟁의 원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바울, 게바, 아볼로, 그리스도파와 같은 분파로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음행(淫行)하는 교회이었습니다(5:1).
아버지의 아내를 아들이 범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 잘못이라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우상(偶像) 제물(祭物)을 마음대로 사용했던 교회이었습니다(8:1).
믿음이 약한 사람은 우상 제물을 먹을 만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만일 그런 모습을 보면 신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먹을 수 있는 지식과 믿음이 있을지라도 먹지 않을 수 있는 절제가 더 중요하다고 깨우칩니다.

세속적인 사상이 오늘의 교회를 위협합니다.
마치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수용하는 것이 폭넓은 신앙처럼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인 미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멈출 수 있는 것도 신앙인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정부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이 자기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코로나 전염병을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여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감염자들에게 신속한 의료지원과 회복을 위한 최고의 서비스가 실현되어 모두가 함께 건강한 사회를 자랑하게 하옵소서.

♪ 찬양 / 전능왕 오셔서

https://www.youtube.com/watch?v=lb6ZWhitJO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7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5:1∼58
♦ 묵상을 위한 주제 :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 성구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I die every day-I mean that, brothers-just as surely as I glory over you in Christ Jesus our Lord.   

"나는 날마다 죽노라(I die everyday)"
- 카드 헤메란 아포드네스코(καθ’ ἡμέραν ἀποθνῄσκω)(every day I die)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합니다.
왜 날마다 죽어야 할까요?
날마다 살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세상에서 날마다 죽어야 하는 인생은 어떤 사람일까요?

첫째는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고 장사지낸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으며, 야고와 모든 사도들 또한 바울에게도 보이셨습니다.

오늘날도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시고 함께 하십니다

둘째는 주의 강림(降臨)을 믿는 사람

강림(降臨)이란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라는 헬라어로 "현존(presence)" 또는 "다시 오심(coming)"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들은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주의 강림하실 때에 새로운 삶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신령한 몸으로 시작될 것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사가 가장 좋은 것이라며 서로 분쟁하며 다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바울은 내가 받은 은사는 날마다 죽은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핍박했던 바울이 주님의 부름을 받고 사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 크고 놀라운 은혜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사람을 아직도 건강하게 지켜주신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아직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며 그 일을 온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사회적 거리를 둘 수 없는 노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노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모든 필요한 것과 충분한 시설이 제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들이 협력하고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저희들과 조금 더 가깝게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찬양 /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PWmBJY_d0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8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전서 16: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께서 임하시느니라(22절)
♦ 성구 :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 a curse be on him. Come, O Lord!   

“주께서 임(臨)하시느니라!”

“주께서 임하시느니라”에 대한 영어 성경을 살펴봅니다.
NIV에서는 “Come, O Lord!”
NASB에서는 “Maranatha”
KJV에서는  “Maranatha”

“마라나타”라는 말은 헬라어를 음역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헬리어 성경에서 “마라나 타(Μαράνα θά, marana tha)”라고 기록한 것을 영어 성경에서 음역에 따라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의 사건을 “초림(初臨, First advent)”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본 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재림(再臨, Second Coming)”이라고 합니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말씀은 “재림(再臨, Second Coming)”을 말합니다.

어느 교회에서는 초림의 사건 때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이 세상에 재림의 메시아가 이미 오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재림의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알려면 그 교회에 소속한 자들만이 알 수 있다고 자랑합니다.

진리(眞理)를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6∼9)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 때”는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를 말합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온갖 동물들과 사람이 서로 어울려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모습이 회복되지 않았다면 재림의 주님은 아직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위장(僞裝)하고 그럴듯하게 포장(包裝)된 가짜에 의해서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위험(危險)한 요소가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격리 수용되어 고립되고 불안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비록 일시적으로 격리되는 기간일지라도 불안하게 지내야 하는 저희들을 보살펴 주옵소서.
주님께서 강한 팔로 붙들어 주셔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하시고 이 세상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옵소서.

♪찬양 / 하나님의 나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e2GGYNfEGK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9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위로의 하나님(3절)
♦ 성구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the Father of compassion and the God of all comfort.   

“위로의 하나님(The father of comfort)”
“위로(慰勞)”란 헬라어로 “파라클레시스(paraklésis, παράκλησις)” 라고 합니다.
“파라클레시스”란 “곁으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 때문에 곁으로 다가가야 합니까? 돕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둘째는 자비의 아버지
셋째는 모든 위로의 하나님

위로의 하나님은 모든 환난 가운데서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은 사람은 모든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능히 위로하십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쳐나게 됩니다.

위로는 격려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상대방을 향한 나의 가장 작은 격려와 칭찬의 말이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큰 용기가 되어 소망의 끈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어느 성실한 간호사가 있었습니다(그녀의 이름은 ‘뷸라’). 그런데 갑자기 그녀에게 급성 관절염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몸은 손을 쓸 새도 없이 굳어졌습니다. 오른쪽 손가락의 신경만 살아 있었습니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하늘과 운명과 세상을 원망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오른쪽 손가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오른손으로 전화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뷸라”는 병실에 전화를 설치하고 병상의 환자들과 가족 그리고 친구를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새로운 삶을 다짐했습니다. “뷸라”의 전화는 “위로의 전화”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육체의 장애가 오히려 봉사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너무 깊숙이 감추어 놓고 잊어버리고 살아갈 뿐입니다.

이제는 팬데믹의 혼돈 속에 갇혀 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찾아 그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지혜를 기도합시다.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직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하시고,
교회가 자비로운 방법으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우소서.

♪찬양 /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https://www.youtube.com/watch?v=6ffl463-TT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0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2: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향기(15절)
♦ 성구 :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For we are to God the aroma of Christ among those who are being saved and those who are perishing.

“그리스도의 향기(香氣) the aroma of Christ”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더구나 가장 유명한 명품 향수보다 더 좋은 최고의 향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하겠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향기는 어떤 것일까요?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고 합니다.
냄새로 생명의 주를 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는 냄새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사랑(Love)”
둘째는 “순종(Obedient)”
셋째는 “용서(Forgive)”

이와 같은 냄새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풍기므로 사망을 따라가는 냄새로부터 생명을 쫓는 냄새로 옮겨가게 할 것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의 문턱을 넘어가는 계절에 짙은 그리스도의 향수를 선물합니다. 모두 향수를 뿌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팬데믹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기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감염률이 높은 지역에 있는 선교사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전염성이 강한 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희망의 말씀을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찬양 / 성자의 귀한 몸

https://www.youtube.com/watch?v=PfJmoa0yivk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12

고린도후서 3:1∼18

그리스도의 편지(3절)

10

13

고린도후서 4:1∼18

질그릇과 보배(7절)

10

14

고린도후서 5:1∼21

하나님과 회목하라(20절)

10

15

고린도후서 6:1∼18

은혜 받을 만한 때(2절)

10

16

고린도후서 7:1∼16

세상 근심(10절)

10

17

고린도후서 8:1∼24

연보(2절)

10

18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12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3: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편지(3절)
♦ 성구 :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You show that you are a letter from Christ, the result of our ministry,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on tablets of stone but on tablets of human heart.    

오늘은 미국에서 “컬럼버스 데이(Columbus Day)”라는 공휴일입니다.

공휴일 아침에 읽어야 할 오늘의 묵상을 위한 말씀에서 “그리스도의 편지(便紙) a letter from Christ” 라는 주제를 살펴봅니다.

편지는 주로 종이에 쓰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편지 중에 어느 출판사와 작가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작가 빅토르 마리 위고(Victor Marie Hugo, 1802. 2. 26∼1885. 5. 22)가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단 한 문자로 “물음표(?)”만 적어서 보낸 것입니다.

작가의 편지를 받고 출판사에서는 “느낌표(!)”만 적어서 보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셨습니까?

작가는 “이번에 출판한 내 책이 얼마나 잘 파리고 있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출판사는 “너무 많이 잘 팔린다!”는 대답입니다.

이 편지가 세계에서 가장 간단하고 짧은 편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는 종이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에 중국 집안 시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무덤)과 기념비를 직접 방문하였을 때(1996년) 거대한 돌비에 새겨진 글자가 많이 흐려진 것과 무덤 안에 그려진 벽화들의 색이 퇴색해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바위에 새겨진 것도 세월이 지나면 흐려지고 지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에 새겨진 것은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심령에 새겨진 것은 무엇일까요?

새 언약의 일군(ministers of a new covenant) 이라는 약속입니다.

일군이란 단어를 NIV 성경에서 “minister” 라고 합니다.
“미니스터”란 단어가 정부에서는 “장관(長官)”을 의미합니다.

주를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장관으로 이 세상에 파견된 일군입니다.

인도에서 한 선교사가 어느 크리스천 여인과 이야기를 할 때 두 다리를 몹시 절고 있는 걸인이 동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동전과 함께 그들의 언어로 된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당신의 전도지를 그에게 허비하지 마세요. 그는 결코 크리스천이 될 수 없어요.” 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3일 후에 선교사의 집 문 앞에 나타난 걸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전도지를 읽은 후에 이곳까지 오기 위해 불편한 걸음으로 8마일의 먼 거리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도지를 원했습니다. 그는 새로운 전도지를 받은 뒤, 그 집 문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전도지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에게 성경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세례까지 받고 기독교 서점의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책꽂이의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 장의 전도지가 어떤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생명을 구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팬데믹 시대에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만유의 주가 되신 하나님,
부모가 협력하여 자녀를 돌보고
모든 가정이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편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에게도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처럼
필요한 것들이 공급되고
지원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찬양 /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3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질그릇과 보배(7절)
♦ 성구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But we have this treasure in jars of clay to show that this all-surpassing power is from God and not from us.   

“질그릇과 보배(Jars of Clay and Treasure)”

보배는 복음(예수 그리스도)을 말합니다.
질그릇이란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질그릇에 보배를 담았기 때문에 질그릇은 깨지기 쉽고 약한 그릇이 아니라 보배로운 그릇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질그릇을 보배로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이 세상 신을 물리쳐야 합니다(4절)

이 세상 신이란 사탄을 말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둘째는 예수를 전파해야 합니다(5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는 세상의 주가 됩니다.

셋째는 낙심하지 않습니다(8절)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핍박과 괴로움과 난처한 일을 당하며 심지어 죽음에 넘겨질지라도 예수 생명이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속사람의 능력(16절)

세상 신 사탄의 핍박과 유혹으로 인하여 겉 사람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고 강한 사람으로 세워지므로 질그릇에 담긴 보배의 가치는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성령의 전과 같습니다(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건강을 관리하려고 운동을 하듯이 성령이 거하는 몸을 관리하는 일에도 관심을 갖고 마음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로마서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질그릇이 깨어질지라도 두려워하거나 실망하지 맙시다.
왜냐하면 질그릇에 담긴 보배가 깨진 틈새로 새어나와 보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생명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조카 이동훈목사님이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그를 만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사랑의 손길을 펼쳐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했기 때문에 비록 일 년 동안 암 투병으로 인하여 육체의 고통은 깊어갔지만 속사람은 영생의 소망이 뚜렷하기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신 주 하나님의 측량 못할 은혜가 오늘의 묵상으로 신령한 교제에 참여하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찬양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jLuhZ5o_yU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4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5: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과 화목하라(20절)
♦ 성구 :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We are therefore Christ's ambassadors, as though God were making his appeal through us. We implore you on Christ's behalf: Be reconciled to God.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Be reconciled to God!)”
화목(和睦)이란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 이란 뜻입니다.
“화목하라(καταλλάγητε)”는 동사 원형은 “카탈라소(katallassó. καταλλάσσω)”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은 “땅의 장막(the Earthly House)”과 “하늘의 집(an Eternal House in Heaven)”에 대한 말씀입니다.

“죽음(死亡)”이란 “땅의 장막이 무너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땅의 장막’이 무너질 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성령(聖靈)께서 보증(保證) 합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머물 때에 하나님과 화목한 신앙생활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몸을 갖고 영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육신의 몸으로 영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의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의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 사람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은 “위하는 대상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위하는 대상이 바뀐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 이라고 합니다.

산소는 산소이고 수소는 수소입니다.
그러나 산소와 수소가 합쳐지면 전혀 새로운 물로 바뀝니다.
죄인이었던 내가 예수님과 합쳐지면 의로운 사람이라는 존재가 됩니다.
이와 같은 것을 “새로운 변화” 라고 합니다.

뱀은 껍질을 벗어도 뱀입니다.
그러나 누에는 껍질을 벗으면 나비가 됩니다.
전혀 다른 생명체가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때 우리 모두 새로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화해”를 헬라어로 “카탈라게”라고 합니다(롬 5:11, 15, 고후 5:18, 19).
“화해하다”는 헬라어는 “카탈라소”라고 합니다(롬 5:10, 고전 7:11, 고후 5:18, 19, 20).

“카탈라게”는 “완전히”라는 뜻의 “카타(kata)”와 “변화하다”, “변경하다”, “교환하다”는 뜻의 “알라소(allasso, αλλάσσω)”가 합성된 것입니다.

화해란 어원적인 의미는 “양자 간에 불편했던 관계가 어떤 대가를 서로 교환함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변화되어 그 불편했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Reconciliation”이라고 합니다(다시 re + 조정, 회유 conciliation).

고대 그리스의 결혼문서들을 보면, 결혼한 부부의 별거를 “아팔라소(apallasso)”라고 하며, 그들이 다시 합쳐서 화해를 할 때 “카탈라소(katallassó)” 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전승에 따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11절에서 별거한 아내는 “그 남편과 다시 화해하도록 하라(카탈라소)”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화해란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되돌릴 수 없는 단절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 및 세계와 완전히 다시 화해하셨다”는 뜻입니다.

화해란 죄 많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호의로 변해서 완전히 적의가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십자가 신앙이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도 십자가 신앙으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는 화목의 은혜가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https://www.youtube.com/watch?v=ePKu-JG1dW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5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6: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은혜 받을 만한 때(2절)
♦ 성구 :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In the time of my favor I heard you, and i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I tell you, now is the time of God's favor, now is the day of salvation.  

“은혜(恩惠) 받을 만한 때”

은혜의 특징을 세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 은혜는 받는 것입니다.
둘째, 은혜는 받을 때가 있습니다.
셋째, 받은 은혜는 베푸는 것으로 나눠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은혜를 받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를 나눌 때 세상은 창조의 목적에 따라 회복될 수 있습니다.

“때”를 NIV 성경에서 “시간(time)”이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두 가지로 사용합니다.
하나는 “카이로스(kairos. καιρός)” 라는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크로노스(chronos. χρόνος)” 라는 시간입니다.

지난 주간 거실의 벽시계가 멈추었습니다.
고장 난 줄 알고 버리라고 하지만 건전지를 바꿔주었더니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계가 고장이 나서 멈췄어도 시간은 계속 흘러갑니다. 이러한 시간을 “크로노스” 라고 합니다.
 

팬데믹의 시간이 점점 더 길게 늘어나면서 일상생활의 리듬은 깨지고 삶의 패턴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예전의 생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추구하며 나를 바꾸는 것을 “카이로스” 시간이라고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 라고 합니다.

로마서 13장 11절에 보면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라고 하셨는데 ‘시기’ 라는 단어도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카이로스를 기회(機會)라고도 합니다.
팬데믹 시기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찾아 내 것으로 누리는 기회로 붙잡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은

https://www.youtube.com/watch?v=sAlN4ylQS8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7:1∼16
♦ 묵상을 위한 주제 : 세상 근심(10절)
♦ 성구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Godly sorrow brings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 and leaves no regret, but worldly sorrow brings death.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 근심을 생각합니다.
첫째는 세상 근심(worldly sorrow)
둘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godly sorrow)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NIV 성경에서는 “경건한 근심”이라고 합니다.
얼핏 읽어보면 “근심”이 주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회개(悔改)”를 강조하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 물질과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물질이 아니라 회개라고 합닏아.

“달라스 윌라드(Dallas Albert Willard, 1935. 9. 4∼2013. 5. 8)”라는 미국의 기독교 영성 형성(Christian spiritual formation)에 관한 글로 잘 알려졌던 철학자는 이렇게 제안합니다.
 
“죽기 직전에 내 삶은 무엇이 될까?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몇 날 몇 시간밖에 안 되는 이 땅의 실존 중에도 그 분과 동행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는데, 영원히 그분의 임재 안에 사는 것이 나에게 정말로 편하게 느껴질까?”

천국에 들어갈 것이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그 분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변화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그 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갈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질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변화 없이, 회개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 진정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변화는 죽어서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연장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구원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는 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참된 회개와 삶의 변화가 없는 신앙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회개는 구원을 얻기 위한 것과 세상과 구별된 삶의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구원을 얻은 후에는 주님을 닮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삶을 회개해야만 합니다.

팬데믹 시대는 기독교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다듬어지기 위한 특별한 연단의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비록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지만 삶의 자리에서 경건한 예배를 할 수 있다는 영적 자세를 훈련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예배 중에 드려지는 헌금에 익숙해 있었지만 비대면 예배를 드리면서도 예배 중에 드리는 헌금처럼 똑같은 방법과 자세로 주님의 것을 주님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믿음을 점검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결정하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어디에서든지 어느 때이든지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경건한 근심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 없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찬양 /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https://www.youtube.com/watch?v=f3AWtl8eC_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1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8: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연보(2절)
♦ 성구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Out of the most severe trial, their overflowing joy and their extreme poverty welled up in rich generosity.   

“연보(捐補)와 헌금(獻金)”
“연보(捐補)”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라는 훈(訓)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는 뜻입니다.

“헌금(獻金)”은 “드릴 헌(獻), 쇠 금(金)”이란 훈(訓)으로 “드리는 쇠(돈)”이란 뜻입니다.

헌금(獻金. offering)은 성경에서 주로 ‘고르반(qorban)’과 ‘도라(dora)’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레 1:3, 민 31:50, 마 5:23∼24, 막 7:11)” 또는 “예물(레 1:2, 2:1)” “헌물(민 7:10)”이란 뜻이다.

“도라”는 “예물(마 2:11, 5:23∼24, 8:4, 23:18, 19장, 히 5:1, 8:3∼4, 9:9, 11:4, 계 11:10)” 혹은 “헌금(눅 21:1, 4)” 이라고 개역 한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본문에서 사용되든 “고르반”과 “도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연보(捐補)”의 한자 의미는 “남을 돕기 위해 내어 놓는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로기아(collection, 모금)” “하플로테스(generosity, 관대)” “유로기아(blessing, 축복)”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고전 16:1)” 또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회의 연보(고후 9:5)”라는 말에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성도를 돕는 일과 교회 간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코이노니아(친교, 협력)”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연보”라는 말보다는 “헌금”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하겠습니다.

파트리스교회의 설립 목적은 선교와 구제를 중요시 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지원하는 기관은 다섯 곳입니다.
북한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유진벨 재단(대표 인세반회장)”
북한어 성경을 보급하는 “모퉁이돌 선교회(대표 이삭목사)”
뉴욕국제장애인협회(대표 임선숙사모)
뉴욕밀알선교단(대표 김자송)
은퇴 여자 선교사들을 안식관을 건축하는 “세빛 자매회(대표 김화자목사)”

비대면 예배로 인하여 헌금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매월 꾸준히 후원금을 송금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협조와 후원에 의한 이와 같은 선교와 구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를 바쳤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았는가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부자가 성전에서 쏟아 붓는 많은 양의 헌금 보다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바쳤을 때 부자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친 양으로 계산하면 부자가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없는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힘차게 달려봅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에 감사합시다!

♪ 찬양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19

고린도후서 9:1∼15

즐겨내는 자(7절)

10

20

고린도후서 10:1∼18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18절)

10

21

고린도후서 11:1∼33

광명의 천사(14절)

10

22

고린도후서 12:1∼21

낙원(4절)

10

23

고린도후서 13:1∼13

자신을 확증하라(5절)

10

24

요한계시록 1:1∼20

속히 될 일(1절)

10

2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19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9: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즐겨내는 자(7절)
♦ 성구 :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Each man should give what he has decided in his heart to give, not reluctantly or under compulsion, for God loves a cheerful give.     

“즐겨내는 자(a cheerful give)”
즐겨낸다는 것은 기분 좋게 바친다는 뜻입니다.

미국 어느 교회의 특별한 집회에 참여 했을 때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예배 인도자가 순서에 따라 헌금하는 시간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모두 즐겁게 헌금합시다.”

모든 성도들이 줄을 서서 강단 앞에 놓여 있는 헌금함으로 춤을 추며 나와서 한 사람씩 헌금을 하고 들어가는 집회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순서에 따라 헌금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를 돕기 위한 특별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교에 동참하도록 인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팬데믹(Pandemic)의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비대면 예배는 지속될 것입니다.

전통적인 예배는 예배하는 장소를 거룩한 곳으로 성역화 했습니다. 그 결과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한 코로나 19의 기습으로 웅장한 예배당은 텅 비어버렸습니다.

마치 그곳에서 예배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자부하던 영적 욕심을 순식간에 무너트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배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고 그리심 산도 아니라 오직 영과 진실함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팬데믹 시대는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예배당보다는 성도들이 흩어져서 생활하는 장소가 더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 비대면 예배가 계속되면서 재정적인 어려움에 시달리는 교회와 사역자들 그리고 선교사들을 생각하며 즐겨낼 수 있는 손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주일마다 감사와 선교 헌금을 바치는 성도들의 손길을 생각하면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교인은 매 주일 사랑하는 손자와 손녀의 이름으로 감사 헌금을 바칩니다.

그 헌금에 새겨진 믿음의 어른이 후손들을 위한 사랑과 기도가 진하게 새겨져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모여서 예배하든지 개별적으로 예배하든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변함이 없다면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의 종교개혁자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헌금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니다.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믿음은 올바른 회개가 아니다.

오늘의 말씀을 읽으며 나는 어떤 믿음의 사람인가 생각해 봅시다.

몸과 마음과 물질까지도 믿음의 사람으로 신앙의 본이 되는 은혜의 씨앗을 코로나 19에 붙잡혀 팬데믹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뿌려 봅시다.

♪ 찬양 / 성자의 귀한 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0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0: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18절)
♦ 성구 :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For it is not the one who commends himself who is approved, but the one whom the Lord commends. 

“주께서 칭찬 하시는 자(The one whom the Lord commends)”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받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칭찬은 하는 사람도 변화시킵니다.
칭찬은 분위기를 변화시킵니다.
칭찬은 관계를 변화시킵니다.
칭찬을 많이 합시다.

주님께서 칭찬하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교만한 사상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둘째는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는 겉모습 보다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링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 주신 은혜로운 손길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성공의 감격에 도취한 나무지 너무도 자신만만해져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생명을 보존하시는 은총을 깨닫지 못했고, 몹시 교만에 빠져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잊었습니다.”

도가니에 은을 넣어서 끓이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한 은이 나옵니다. 또한 풀무불에  금을 넣어서 재련하면 찌꺼기가 분리되어 순도 높은 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도가니와 풀무가 은과 금을 제련하는 것처럼 칭찬은 사람을 시험하여 평가하는데 쓰이는 시금석과 같습니다. 

칭찬 받을 때 보이는 반응에 우리의 인격과 마음의 자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낮추시고 겸손한 사람을 높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칭찬을 받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알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다만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엎드려야 합니다.

주께서 칭찬하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추천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필요한 자리에 주님께서 추천하므로 그 자리에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https://www.youtube.com/watch?v=jLuhZ5o_yUM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1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1: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광명의 천사(14절)
♦ 성구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And no wonder, for Satan himself masquerades as an angel of light.

사탄이 “광명(光明)의 천사(天使)(an Angel of Light)”로 가장하여 나타났습니다. 영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그 모습에 끌려 다닐 것이 분명합니다.

광명의 천사가 등장한 것은 “가짜 예수를 전하고” “거짓 영을 가르치고” “거짓 복음 전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광명의 천사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항상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를 품는다는 것은 십자가 목걸이와 귀걸이를 몸에 장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직도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는 호흡이 멈추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탄의 유혹에서 벗어나 신령한 은혜를 사모하는 신령한 사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바울은 말세에 교회 안에 나타나게 될 사탄의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디모데전서 4:1∼3).

사탄의 시험과 속임수와 공격하는 방법은 항상 그 모양을 바꾸면서 교묘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항상 그 원리는 똑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사용한 방법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의 공격에 대응하는 유일한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확실하게 무장하는 것뿐입니다.

현대인들에 쉽게 접근하는 다양한 SNS의 매체를 통하여 잘못된 영상과 정보가 홍수 몰려오듯 밀려오고 있습니다.

귀에 솔깃하고 내 생각과 비슷하고 나를 인정하는 그러한 내용 보다는 내 마음을 찔러 쪼개며 내 양심의 소리를 듣게 하는 진리의 외침에 관심을 갖고 팬데믹 시대에 지금도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 믿는 사람 일어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2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2: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낙원(4절)
♦ 성구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낙원(樂園. Paradise)이란 단어가 헬라어로는 “파라데이소스(παράδεισος)”라고 하며, 뜻은 “공원(a park), 정원(a garden), 낙원(a paradise).” 이라고 합니다.

기독교(基督敎)를 생명(生命)의 종교(宗敎)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호흡은 세상에서 멈추었지만 죽음 이후에도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을 영원한 생명(永生)이라고 합니다.

“유신론(有神論, Theism)”이란 신(神)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무신론(無神論, Theism)”은 신(神)이 없다고 합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차이는 단지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영역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신학(神學, Theology)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을 성경에서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반면에 과학(科學, Science)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서 창조의 원리와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학문입니다.

신학과 과학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연구하거나,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탐구하여 각각에 내재된 계시를 찾고 해석하는 일을 합니다. 띠라서 신학과 과학은 하나님 계시의 다른 측면을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일 뿐 결코 서로 배타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마치 신학과 과학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을 주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낙원이란 세계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죽음 이후에는 낙원으로 옮겨진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고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 목사님의 둘째 아들 “범”이가 대장암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동대 Law School과 미국 USC Law School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던 장래가 촉망되던 43세의 젊은이였습니다.

아들의 장례를 마치고 아들 범과 작별하며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께서 열 가지 감사에 대한 간증에서 영감을 얻어 열 가지 감사라는 글을 소개했습니다.

1. 아들이 그 지독한 암의 통증에서 해방되어 감사합니다.

2. 영광의 나라 천국에 입성하여 감사합니다.

3. 그동안 유머가 많았던 아들을 인해 누린 기쁨을 인해 감사합니다.

4. 단 한 번도 불평 없이 자랑만 하던 아내와 애교덩어리 손자를 남겨주어 감사합니다.

5. 어려서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변호사가 된 것 감사합니다.

6. 아들의 고통을 통해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늘 아버지의 고통을 알게하심 감사합니다.

7. 아들의 암 투병을 통해 수많은 암 환자의 고통과 연대하게 된 것 감사합니다.

8. 또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수많은 부모들의 고통과 연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9. 아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수많은 중보 기도자들과 한 지체가 되어 감사합니다.

10. 아들이 간 천국을 더 가까이 소망하게 되어 감사 감사합니다.

(2020년 10월 가을 하늘 아래, 아들 범을 천국으로 보내는 목사 아빠 이동원)

모든 사람은 반드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다만 그 시간과 장소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죽음 후에 믿음으로 가야 할 낙원을 생각하며 오늘의 시련과 고통 그리고 아픔까지도 믿음으로 용납하며 저 좋은 낙원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팬데믹(Pandemic)이란 무대 위에서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주인공으로 등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저 좋은 낙원 이르니

https://www.youtube.com/watch?v=GEl3-8J0dr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3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1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자신을 확증하라(5절)
♦ 성구 :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Examine yourselves to see whether you are in the faith; test yourselves. Do you not realize that Christ Jesus is in you--unless, of course, you fail the test

“자신(自身)을 확증(確證)하라!”
신앙생활을 오래 계속하면 나도 모르게 정말 내가 믿음에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다양한 은사를 자랑하고 내가 누구에게 속했는지 분명하게 주장하는 교인들이었지만 그들의 자랑과 주장은 정말 믿음이었을까?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고(examine) 확증하라(Test)”

“필립 얀시”는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 활동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니 하나님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필립 얀시’는 그 책에서 여러 사람의 체험을 소개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 몰트만의 체험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독일인으로서 2차 대전 때 징집되어 독일군으로 참전합니다. 그런데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는 히틀러가 병사들에게 나눠준 책 중에 두 권을 가지고 갔습니다. 괴테의 책과 니체의 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은 생과 사가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전쟁 중 영국군의 포로가 되어 3년 동안 포로수용소에서 지냅니다. 포로들 중에는 절망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몰트만은 군목이 전해준 성경을 읽고 큰 위로를 받습니다.

특히 시편 139장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139:8∼14).

그는 후에 “포로 수용소 철조망 뒤에서도 하나님은 존재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불안 가운데서 하나님을 깊이 만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본래 양자 물리학을 공부하고자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신학을 공부해서 “희망의 신학” 이라는 새로운 장을 개척합니다.

그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붙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진정한 희망이라고 합니다.

팬데믹의 전염병이 지구촌 사람들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내몰고 있는 때에 내가 정말 믿음에 있는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므로 어려운 때에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는 은총의 기회가 펼쳐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어려운 일 당할 때

https://www.youtube.com/watch?v=ugfWx_541m4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4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1: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뜻을 정하여(8절)
♦ 성구 :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다니엘(하나님은 나의 심판자)은 왕의 진미(the Royal Food)와 왕이 마시는 포도주를 마시지 않음으로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에 음식을 주관하는 환관장(the chief official)에게 부탁합니다.

다니엘은 제1차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 왔습니다(기원전 605년 여호야김 제3년(혹은 4년)(1:1 참조). 1차 포로 때는 귀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왔습니다(1:3).

포로의 신분으로 왕궁에서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바벨론 왕이 제공하는 궁중 음식과 포도주를 오히려 먹지 않고 오히려 채식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모든 음식과 마실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을 때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잘못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의 결심은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여러 동료들과 함께 왕의 음식을 맡은 관리에게 “열흘” 이란 기간을 정하고 왕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과 먹지 않는 우리를 비교한 후에 판단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 결과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하므로 감독하는 관리가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고 실천한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식을 얻게 하였고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셨으며 모든 이상(visions)과 몽조(drewm)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팬데믹 시대에 하나님께서 전염병이란 바이러스를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깨닫기 위하여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께서 분명한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예배는 예배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입니다.
헌금은 사람 앞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입니다.
전도는 신앙의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오늘도 뜻을 정한 다니엘의 승리한 기쁨이 팬데믹이란 지구촌 수용소에 갇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이 왕성하게 전달되어 더 많은 생명들이 주님 앞으로 나올 것을  기대합니다.

♪ 찬양 /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https://www.youtube.com/watch?v=O7zmjMpKTM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10

25

다니엘 2:1∼49

뜨인 돌(45절)

10

26

다니엘 3:1∼30

사람을 구원할 신(29절)

10

27

다니엘 4:1∼37

거룩한 신들의 영(8절)

10

28

다니엘 5:1∼31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25절)

10

29

다니엘 6:1∼28

사자굴(7절)

10

30

다니엘 7:1∼28

큰 짐승(3절)

10

3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10월 26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2:1∼49
♦ 묵상을 위한 주제 : 뜨인 돌(45절)
♦ 성구 :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뜨인 돌(the Vision of the Rock)”이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돌” 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 묵시문학에서는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자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뜨인 돌”을 KJV 영어 성경에서는 “a stone was cut out without hands”라고 번역합니다. “손이 없이 잘려 나간 돌” 이란 뜻입니다.

“뜨인”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게자르(gezar)”는 “예언자”라는 뜻과 함께 “채석장에서 돌을 잘라낸다”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뜨인 돌”은 공중에 떠 있는 돌이라는 뜻 보다는 “잘려서 떠내어진 돌”이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손이 없이 잘려 나간 돌” 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붙여서 그 뜻을 생각해보면 “사람의 손이 아닌 하나님께서 잘라내시고 떠내신 돌”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유대 종교와 헬라 문화와 로마 정치가들이었지만 그들을 사용하여 구속의 일을 수행하시는 최종 결정권자이며 집행자는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은 하늘의 영역에서 탄생하고 만들어진 돌이 아닙니다. 채석장이라는 세상에 있다가 하나님에 의해 잘려서(십자가) 떠낸 돌(부활) 입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면 이 돌은 육체를 입고 인성을 가지고서 이 땅에 오신 메시아 곧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상으로 예표 된 인간 정부의 총체(the totality of human government)를 부수기 위해 다시 오실 때에도 변화되신 신성만이 아닌 인성과 함께 오실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들어진 신성한 돌이 아닌 세상에 있던 보잘 것 없는 돌을 떠내어서 이 땅에 다시 보내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들 때문입니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다니엘 2:35)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를 가득 채웁니다.
뜨인 돌의 확대와 확장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믿는 이들이 함께 몸의 지체들이 되어 한 인격을 가진 한 몸을 이룹니다.
확대와 확장을 이룹니다.
이것이 뜨인 돌이 신성만으로 이루어진 돌이 아닌, 세상에서 잘려서 떠내어진 돌이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뜨인 돌에 주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동참하고 동역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항상 뒤에서 따르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앞장  서서 뜨인 돌과 함께 완전히 하나 되어 예수님께서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혼연일체의 신앙인으로 완벽한 팀워크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앞장서는 그 자리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믿음으로 팬데믹의 혼돈을 극복하고 승리하신 주님과 함께 개선가를 부를 수 있는 믿음의 동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 주 예수님,
주님을 진정으로 찬양합니다!

우리를 뜨인 돌에 동참하고 동역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아멘.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b)

Amen. Come, Lord Jesus!

αμην ναι ερχου κυριε ιησου.


♪ 찬양 / 하나님의 나팔 소리

https://www.youtube.com/watch?v=e2GGYNfEGK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7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3: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람을 구원할 신(29절)
♦ 성구 :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찌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남 유다가 망하기 시작합니다.

애급에서 기적같이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에 북에는 이스라엘 남에는 유다나라를 건설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운 나라가 망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망하고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망할 수 있습니까?

무리한 교회 건축으로 인하여 대면예배가 금지된 이후에 은행 이자와 융자금을 갚지 못하여 강제 경매로 문을 닫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망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바벨론의 1차포로가 된 귀족들 중에 다니엘과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이란 유능한 젊은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세계 최강의 나라를 지배하는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유다에 침입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던 기구들을 바벨론 신전으로 빼앗아 온 왕입니다.

심지어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엎드려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을 내린 지배자 왕입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만행을 저지른 왕의 입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

종교다원주의가 기독교 구원 신앙을 흔들고 있습니다.
대면예배가 금지되면서 비대면 예배가 예배 전통을 흔들고 있습니다.
비대면 예배가 교회 재정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신앙의 현주소라고 하겠습니다.

금 신상에 엎드리지 않은 아벳느고와 사드라과 메삭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명령에 따라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거워진 풀무에 던져졌습니다.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을 풀무에 던져 넣던 바벨론 군사들은 불에 타 죽었지만 세 젊은이는 불 가운데서 셋이 아니라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풀무 가까이 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아 불 가운데서 나오라”고 소리칩니다.

세 젊은이는 불에 탄 냄새도 없고 옷도 그을리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라고 선언합니다.

유다 젊은이들의 믿음과 오늘 우리들의 믿음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종교개혁 이후 믿음이 세속화 된 것은 아닐까요?
마치 전통보다는 현대화라는 근사한 껍질 속에 갇혀버린 현실화 된 믿음에서 단순하지만 오직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고집스런 전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사도행전 4:12)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을 맞이하며 개혁의 슬로건을 함께 기억해 봅시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찬양 / 구원으로 인도하는

https://www.youtube.com/watch?v=i1UbpDjlDtU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8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4: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거룩한 신들의 영(8절)
♦ 성구 :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 이름 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the spirit of the holy gods is in him)”

“다니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 라는 뜻으로 유대 이름입니다. 바벨론 왕은 ‘다니엘’을 “벨드사살” 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벨드사살’이란 “저의 생명을 지킴” 이란 뜻으로 바벨론 즉 이교도식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우상 숭배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바꾸면 그 사람이 우상을 숭배할까요?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이름을 이교도식으로 바꿀지라도 중심은 절대로 흔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으로 보십니다(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 라는 “다니엘”을 “저의 생명을 지킴”이라는 “베드사살”이라고 부르지만 “생명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중심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습니다.

비록 팬데믹(Pandemic)이란 전염병 수용소에 모두 갇혀 있어도 주의 백성들은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로마서 8:9).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였기 때문에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도 참 평안의 삶을 즐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의 꿈을 꾼 후에 그 꿈의 내용을 찾아내라고 모든 술객들에게 명령합니다. 바벨론의 술사들은 왕이 먼저 꿈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지만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자신들의 입장이 난처함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심판자라고 믿는 다니엘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선포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신들의 영을 소유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은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st, 영광의 영이기 때문입니다(베드로전서 4:14)
2nd,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시편 104:30)
3rd,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영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3:17)
4th,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4)
5th, 사람의 속마음을 헤아리시는 영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2:11)
6th,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는 영이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2:3)

팬데믹이란 족쇄로 교회와 세상을 묶어버릴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사람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을 맞이하며 개혁의 슬로건을 함께 기억해 봅시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찬양 / 마귀들과 싸울지라

https://www.youtube.com/watch?v=yWXWmgP_g0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29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5: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25절)
♦ 성구 :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메네 메네 데겔 우 바르신(Mene Mene Tekel Parsin, ופרסין  תקל  מנא  מנא)”

 “우”는 접속사(and)입니다.

"벨사살"은 왕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섭정자'라고 하겠습니다.
"벨사살"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벨사살”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새 왕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의 딸인 “네르글리살”과 결혼하여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나보니두스”는 달신의 여사제 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달신(moon god Sin)"을 섬기며 바벨론 신 "마르둑"을 무시했습니다.

종교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나보니두스"는 수도를 아라비아 비옥한 오아시스지역 "Tayma"로 옮기고 바벨론 지역은 아들 “벨사살”을 섭정자로 세웠습니다. 사실 군사적 실권을 “벨사살”이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부왕 나보니두스가 떠난 바벨론은 이제 완전히 벨사살 세상이었습니다.

다니엘서가 연대순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후대의 사건이 앞에 나오고 선대 왕의 기록이 뒤에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사건은 벨사살 마지막 해에 된 이야기입니다.
7장에서 벨사살이 즉위하던 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과정을 미리 알고 보면 참고가 될 것입니다.

벨사살이 바벨론에서 왕 노릇한지도 17년이 흐른 어느 날 입니다.
벨사살은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군인출신으로 거칠게 없는 성품이었습니다.

왕은 귀인 1000명을 불러다 잔치를 열고 술을 마시며 놀다가, 분위기가 무르익자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온 제사용 금, 은 잔들을 가져다가 대신들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술을 먹고 금, 은, 동, 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습니다.

이때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시"이란 글자를 적은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모든 박사와 술객들과 점장이들을 불러 글자를 해석하는 사람은 자주옷을 입히고 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겠다고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그 글자를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태후(벨사살의 어머니)가 느부갓네살 왕 때 유다에서 잡아온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다니엘(벨드사살)을 불러오게 한 것입니다.

발음과 철자가 비슷한 단어로 “메네”는 “마네(겔 45:12, 스 2:69)”

“데겔”은 “세겔”이며 무게 단위로 1세겔은 11.4g 입니다(삼하 14:26).

“바르신”은 “베라스”의 복수형인데 “베라스”는 “1/2 마네” 라는 뜻입니다.

“마네, 마네, 세겔, 베라스” 세 단어만 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젼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다니엘은 이렇게 해석합니다(26∼28절).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보였다”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사람에게 준바 되었다”

다니엘은 문자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세 개의 단어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할 때처럼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여 선지자 다니엘에게 그 뜻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의 신분으로 지배자 벨사살 왕에게 듣기 싫은 해석을 주저하지 않고 정확하고 바르게 알려주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 눈 밖에 나서 왕권이 떠났고, 왕의 나라 바벨론은 분열되어 메데와 바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는 듣기 거북한 예언이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예언자 다니엘의 책망과 불길한 예언을 듣고도 약속대로 다니엘을 세 번째 높은 치리자로 임명한 것은 지배자 왕으로서 더 우월한 존재를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벨사살 왕은 그 날 밤 반란 세력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벨사살은 쿠데타를 일으켜 어린 왕 “라르시마르둑”을 살해하고 왕권을 아버지와 나누어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말년에 그 자신 또한 반역에 의해 살해된 것입니다.

벨사살 왕은 하나님을 외면한 참람한 짓을 하다가 그날 밤에 살해되는 비극을 당했습니다. 연회석에 나타난 손가락의 문자와 다니엘의 해석은 기회를 엿보던 반란 세력들에게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반란 세력들은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고 나라가 “메데”에 넘어간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가 왕이 되든지 어느 나라가 패권을 잡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통로가 되도록 순종하고 있는가? 그것만이 하나님의 관심사라고 하겠습니다.

인류 역사가 진행되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모든 사건과 사고의 주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금번 코로나 19사태는 세상의 변화를 더 이상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바이러스를 매개체로 놀랄만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배자가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covic 19)라는 전염병이 지구촌을 펜데믹(pandemic) 수용소로 변화시켰습니다. 가장 작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통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앞에 높아진 인간의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을 맞이하며 기독교인들은 신앙을 점검하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는 “종교개혁자들의 다섯 가지 슬로건”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찬양 / 빛나고 높은 보좌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30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6: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사자굴(7절)
♦ 성구 :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사자굴(Lion's Den)”
다니엘서 6장에 “다리오 왕(King Darius)”이 등장합니다.
메대의 다리오가 왕으로 등극할 때 그의 나이는 육십 이세였습니다.

다리오 왕은 일백 이십 명의 방백을 세웠고 세 명의 총리를 두었는데 다니엘은 그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합니다. 그러자 총리들과 방백들은 다니엘을 고소할 기회를 얻고자 하였으나 그 어떤 허물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총리들과 방백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허물을 찾아 다니엘을 고소하려고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 왕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나 또는 신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섬기는 다니엘을 하나님은 지켜주셨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고소한 자들을 사자굴에 던지게 하였고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끌어 올린 후에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하라. 그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선포했습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들을 영원토록 지켜주시고 보호하실 것입니다.

2차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한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피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더욱 더 조심하고 예방 수칙에 따라 조심하며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건강하게 살아남는 자들이 주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부패한 교회를 개혁한 것처럼 이제는 흔들리는 교회와 무너지는 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개혁자들의 다섯 가지 슬로건을 다시 새겨 봅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찬양 / 환난과 핍박 중에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0월 3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다니엘 7: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인자 같은 이(13절)
♦ 성구 :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오늘은 “할로윈 데이(Halloween Day)” 이며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입니다.

역사적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건들 100가지를 선정했던 뉴욕의 타임지에서 가장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던 사건은 “종교개혁”이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가톨릭교회에서 개혁교회가 시작한 것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종교개혁 다음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사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의 변화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일으킨 사건이었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이 아니라 전염병균이 사건의 주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는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셨던 창조주 하나님께서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기대를 갖지 못하므로 바이러스를 사용하여 세상을 변화시키되 먼저 교회와 성도들을 바꾸려고 합니다.

“인자 같은 이(like a son of man)”는 장차 오실 “메시아(Messiah)”를 말합니다(단 7:13, 10:16, 계 1:13).

다니엘서 7장에서 “보다(하자)”라는 단어가 10회 사용되었습니다(다니엘서 전체에서 18회 사용). 그러므로 7장에서 집중적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2장에서 소개된 “큰 신상(31절)”을 7장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머리는 “정금”(2:32)은 “바벨론”으로 “독수리 날개가 달린 사자”(7:4)

가슴과 팔들은 “은”(2:32)으로 “메대 파사”이며 “세 개의 갈빗대를 문 곰”(7:5)

배와 넓적다리는 “놋”(2:32)으로 “헬라”이며 “네 개의 머리를 가진 표범”(7:6)

종아리는 “철”(2:33)은 “로마”이며 “용처럼 생긴 짐승(7:7)”

발의 얼마는 “철과 진흙”(2:33)으로 “적그리스도”이며 “작은 나팔(7:8)”

“뜨인 돌”(2:34)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통치”라고 하겠습니다.

“인자 같은 이”는 옛적부터 계셨고 미래에도 영원히 통치하실 것입니다.

“인자 같은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심판 주”(1:7)와 같습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다고 하겠습니다(1:12∼16).

다니엘서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요한계시록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와 같은 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잊어버리게 하는 세속의 문화 “할로윈 데이”와 같은 일시적이며 충동적인 즐거움 보다는 영원한 통치가 도래 할 그 날을 기다리는 소망의 신앙을 회복할 수 있는 은혜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붙잡혀 허덕이는 온 세상에 넘쳐나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흔들리는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개혁자들의 다섯 가지 슬로건을 다시 새겨 봅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 찬양 / 주 예수의 강림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을 맞이하며 / 수요성서학당 #. 20(10-28-20)


개혁(改革)인가?
아니면 회복(回復)인가?

2020년 10월 31일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일입니다.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아 "개혁(改革)"이란 단어를 이제는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어떤 단거가 적합할까 생각하던 중 "회복(回復)"이란 단어를 찾았습니다.

한글개역 성경에 "개혁"이란 단어가 사용된 것은 신약에서 단 1회뿐입니다.

히브리서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반면에 "회복"이란 단어는 구약에서 22회, 신약에서 7회 사용되었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종교 문제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2006년 타임지가 발표한 기사에 의하면 인류 역사에 100대 사건 중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이제까지는 주로 가톨릭교회에서 또 다른 개혁교회가 생겨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란 인류 역사에서 전혀 새로운 가치관을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발전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개인양심에 대한 자각과 권리, 직업과 윤리, 정교분리(政敎分離), 성경의 대중적 보급, 평신도의 만인 제사장적 위상 확립 등 너무도 많은 것들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꾼 사건이 되었다”며 “종교개혁이 일어난 원인은 한 마디로 당시의 로마교회의 타락, ‘종교타락’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신앙 양심의 회복, 성경 가치의 재발견,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을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개혁 이후 세계는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에 의해서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개혁자 마틴 루터에 의한 출발이었다면 오늘의 변화는 자연 환경으로부터 변화의 자극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개혁자 루터라는 사람을 통해서 가능했지만 오늘의 교회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나 교단을 통해서 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변화하도록 환경을 통하여 자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협력하여 또 다른 변화를 시작해야만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아직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온라인 예배를 모든 교회들이 진행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전통적인 예배는 어느 장소에 모여 함께 예배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라는 전염병으로 인하여 갑자기 온라인 예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예배에 따라 온라인 세례식 심지어 온라인 성찬식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아직 이런 것들에 대한 성경적인 해석과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예배와 예식들이 계속된다면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전통적인 신앙의 자세를 확립하고 이어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다섯 개의 슬로건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기초로 정할 때 성경 전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신앙고백사도신조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주 간단하고 편리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 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신앙고백을 할 때 암송하는 사도신조의 내용은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고백이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창조주 하나님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둘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셋째는 성령님

나는 성령을 믿으며,  

위일체 신앙을 창조주 신앙, 구속주 신앙, 회복의 영에 대한 신앙으로 정리해 봅니다.

신앙고백에는 다섯 가지 신앙의 기둥(핵심 核心)이 있습니다.

첫째, 창조 신앙(創造 信仰)(Creation Faith)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말씀으로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히브리 단어로 "바라" 라고 한다.

둘째, 임마누엘 신앙(Imanuel's faith)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십자가 신앙(Cross Faith)

마태복음 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7,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넷째, 부활 신앙(Resurection Faith)

요한복음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다섯째, 재림 신앙(Second Conning Faith)

요한계시록 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마라나타)

천국 소망의 신앙
구약에서는 죽고라고 인생을 마감하지만 신약에서는 낳고 시작한다.
구약은 사망과 심판, 신약은 낳고, 생명이라고 한다.
신약에서는 죽는다고 표현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3-5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기독교 신앙은 회복(回復)을 위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May God himself, the God of peace,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May 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영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혼이란 사람과의 관계
몸이란 자기 자신과의 관계

영과 혼과 몸의 회복을 위하여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날마다 무장하고 거듭나야 합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과 및 관절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회복을 바라는 것은 "건강"이 아닐까요?
한국인의 경우 오랜 유교 전통에 따라 사람이 태어나서 "무병장수"하는 것이 최고의 복이라고 전해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편 39: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한국의 경우 건강을 음식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건강은 음식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생활 습관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두번째로 회복을 바라는 것은 "구원의 즐거움" 이라고 하겠습니다.

시편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구원의 즐거움


세번째는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

사도행전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러나 성경의 결론은 만물의 회복

사도행전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Then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had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longer any sea.

시편 80:7,
만군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회복하여 주시고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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