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시대의 징조(디모데후서 3:1-5) 주일설교 원고(09-20-20)


9월 18일(금)
* 카톡으로 보낸 오늘의 묵상 자료

♦ 9월 1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디모데후서 3:1∼17
♦ 묵상을 위한 주제 : 고통 하는 때(1절)
♦ 성구 :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But mark this: There will be terrible times in the last days.  

마지막 시대의 특징을 고통(苦痛) 하는 때라고 합니다.

고통(苦痛) 이란 어떤 것일까요?

여러 번역을 참조하여 살펴봅니다.

1. 공동번역 : 어려운 시기
2.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 어려운 때
3. NIV : terrible times(무서운 시기)
4. KJV : perilous times(위험한 시기)
5. NASB : difficult times(어려운 시기)

여러 다양한 번역을 참조하여도 단어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을 때에 헬라어 단어를 찾아봅니다.

6. 헬라어 : 칼레포스(χαλεπός. chalepos)(difficult, hard)
"칼레포스"란 어떤 내용인지 모르지만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hard) 시기라는 것을 말합니다.

"칼레포스"라는 단어가 마태복음 8장 28절에서는 이런 의미로 사용됩니다.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 만하더라."

비록 우리들이 고통의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또한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로마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마지막 고통 하는 때를 잘 견디려면 주님이 원하는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8:8b).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결국 성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마지막 때의 고통을 피하려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니라 고통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이전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릴 수 있는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고통의 때를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늘도 주님이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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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20 주일 설교 원고

마지막 시대의 징조(徵兆)(데모데후서 3:1-5)
The Symbol of Last Days

디모데후서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목회서신)

디모데전서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를 “목회서신(The Pastoral Ketters)”이라고 합니다.
디모데에베소교회의 감독이었고,
디도그레데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주제는 예수는 선생(거짓 교리, 거짓 교사에 대한 것)
디모데후서의 주제는 예수는 바른 교훈(고난을 받을 때 모두 떠나갔고 오직 누가만 함께 하였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서신의 마지막 서신이었다.
디도서의 주제는 예수는 신앙의 본(성도는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한다)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그의 마지막 전도여행 중 갑자기 체포되어 로마의 감옥에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때는 네로 황제가 로마의 왕으로 있었고 기독교에 대한 탄압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A.D. 68년경에 로마에서  약 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스티안 가도”에서 참수 당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6절을 읽어보면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보내게 된 배경을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내가 처음 재판관 앞에 끌려갔을 때, 나를 도와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났지만 그들이 비난 받지 않기를 원합니다.
즉, 복음이 핍박 받는 상황에서 다들 바울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혼자 쓸쓸히 재판관 앞에서 자신을 변론해야 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도망친 그들이 그 일 때문에 하나님께 벌 받게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디모데후서는 A.D. 67 또는 68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홀로 있었습니다.

1장 16절을 보면 바울을 찾아 방문한 사람은 멀리 에베소에서 로마 감옥까지 찾아온 “오네시보로” 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 때문에 대단히 기뻐하며 그 가정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기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에도 많은 도움과 위로를 주었던 사람입니다.


(도입 이야기) 펜데믹(Pandemic)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유행병을 여섯 단계로 구분합니다.

1단계
동물에게만 전염되는 단계
2단계
동물에서 사람에게로 전염되는 단계 
3단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증가되는 단계
4단계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세계적 유행병이 발생할 초기 상태
5단계
감염이 널리 확산되어 최소 2개국에서 병이 유행하는 상태
6단계는 국가와 국가에서 다른 대륙의 국가로 감염이 발생한 상태

팬데믹(Pandemics)이란 6단계 상태를 말합니다.

팬데믹은 그리스어로, ‘팬(Pan)’은 ‘모두(All)’를 의미하고, ‘데믹(Demic)’은 ‘사람(Man)’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전염된다"는 뜻입니다.
팬데믹이 세계를 거대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수용소(Camp)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6개월 이상 계속되므로 어떤 사람은 "마지막 때의 징조"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마지막 시대의 징조(The Symbol of Last Fays)"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말세(末世)"와 "말일(末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말세(末世)를 "마지막 시대(The Last Days)" 라고 합니다.
말세라는 기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기간을 말합니다.

말일(末日)은 "마지막 날(The Last Day)" 이라고 합니다.
말일은 최후 심판의 날이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을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에서는 말일을 "그 날"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6개월 이상 계속되므로 이 세상이 팬데믹(Pandemic)이란 거대한 수용소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전염병이 지속되기 때문에 일부 어떤 사람들은 마지막 때라고 외칩니다.
성경에서 교훈하는 마지막 시대의 징조를 살펴보겠습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 1: 29: 300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그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아주 작은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법칙을 말합니다.

성경에서도 마지막 시대의 징조가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이러한 징조가 나타난 후에 반드시 마지막 그 날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 지혜로운 처녀들과 같이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마지막 시대를 대비하는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징조
마태복음 24장(세상 끝 날의 징조는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디모데후서 3장(마지막에는 고통하는 때가 올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말세에 기롱하는 자들 즉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의 득세) 

1. 자연적 징조
- 난리, 전쟁, 자연재해(지진, 기근, 전염병)

2. 도덕적 징조
- 불법, 사랑의 타락

3. 영적 징조
-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




마지막 시대의 신앙을 준비합시다

1. 세상을 이기는 믿음(요한일서 5:1-5)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영적 싸움의 대상은 공중 권세를 잡은 자(에베소서 2:2)
공중 권세를 잡은 자의 방법은 세상 풍속을 좇게 한다.

(예화) 2014년 미국 휴스턴 시장은 동성애자가 부임하여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자들에게 설교 원고를 제출하는 법안을 제정 발표하였을 때 더 많은 교회에서 설교 원고들을 보냄으로 너무 많은 양을 보냈기 때문에 결국에는 취소하도록 하였다.

대마초 합법화, 동성에 찬성, 낙태의 합법화와 더불어 공산주의가 교회를 탄압할 것이다.
이미 공산주의를 창시한 칼 마르크스는 죽었고 공산국가들은 몰락했으나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세상을 흔들고 있다.

역사가 토인비는 말하기를 "공산주의가 활개를 치는 이유는 교회와 성도들이 기독교식으로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공산주의는 기독교 사회의 이단이라고하였다.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미 영국의 자본주의 맛을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여전히 자본주의 삶을 즐기며 살았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히브리서 11:5-6)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예화)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대성양 횡단에 성공했을 때 당시 유명 담배회사에서 광고 사진을 찍기 위하여 린드버그에게 제안하기를 사진 한 장 당 5만불을 제시하며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있든지 아니면 입에 물고 있는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였다. 이때 린드버그는 "나는 세례를 받은 교인입니다.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고 한다. 이런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신문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린드버그에게 전달했는데 무려 10만불이었다고 합니다.

3. 육체의 욕망을 다스리자(로마서 8:12-13)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지어 입히지 않으셨나?
옷을 이빟면 주머니를 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화) 어느 다리의 표지판에 10톤 이상 화물차는 통행금지 라는 푯말이 세워졌다.
트럭 운전사가 적재함에 실은 물건의 무게가 10톤이기 때문에 걱정없이 다리 위를 건너가는데 그만 다리가 무너지고 말았다.
원인은 화물차 위에 앉아있던 새 한마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의 무게가 비록 작다고 하지만 정확하게 10톤 보다는 더 나가므로 다리가 무너진 것이라면 욕망의 가장 작은 무게가 신앙의 삶을 파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화) 어느 샘물은 마시면 젊어진다고 합니다.
마을의 가난한 부부가 함께 그 샘에 가저 물을 마시고 젊은 사람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의 부자 영감은 그 샘에 가서 물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갓난 아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에서 최근 발표한 소식은 11월이 되면 지금보다 더 강한 바이러스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각한 전염병이 닥쳐올 것이라고 할 때 교회는 신앙의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신앙의 자세와 목표를 회복하기 위하여 종교 개혁 시대의 5대 신앙 목표에 따라 신앙생활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첫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성경)
둘째,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오직 은혜)
셋째,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넷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
다섯,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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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수요성서학당 #. 14(09-16-20)

수요성서학당 #. 14(09-16-20)

겉 사람과 속 사람(고린도후서 4:16, 에베소서 4:22-24)

고린도후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은 날로 새롭도다.
Therefore we do not lose heart. Though outwardly we are wasting away, yet inwardly we are being renewed day by day

공동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낡아지지만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겉 사람은 쇠약해 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와지고 있습니다.

새번역
/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 겉 사람 속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시간" 이라고 하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겉 사람은 누구나 약하여지고 쇠하여 갈 것입니다.
반면에 속 사람은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철이 들기도 하고 반성하며 후회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결단합니다.

- 옛 사람 새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은 "신앙" "거듭남" "중생" "구원" 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원을 받은 후에도 내 안에서 옛 사람의 삶의 습관이 나를 힘들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모습을 일컬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케 된 후에는 "나의 달려 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렇게 고백합니다.

* 자연인의 반대는 "문화인" 또는 "문명인"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이다.
자연인의 겉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가는 사람
자연인의 속 사람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

* 자연인과 문화인 그리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겉 사람은 동일한 모습이다.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육체는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속 사람은 목적과 추구하는 것이 다르다.
속사람은 새로워 집니다.
어떻게 새로워 집니까?
자연인의 속 사람은 "정신을 차린다" "철이 들었다"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회개" "깨닫는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You were taught, with regard to your former way of life,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is being corrupted by its deceitful desires;
to be made new in the attitude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to be like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용어                          영어                                      성구          헬라어                  의미





겉 사람

    outward man, outwardly, outer man

  고후 4:16

     ἔξω

       육에 끌리는 사람

속 사람

    inwardly, inward man, inner man

고후 4:16

     ἔσω

       영에 끌리는 사람

옛 사람

    the old man, the old self   

엡 4:22  

  παλαιός

        중생 이전의 사람

새 사람

    the new self, the new man

엡 4:24

   καινός

         중생 이후의 사람

대부분의 설교자는 겉 사람은 옛 사람이며, 속 사람은 새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하게 읽어보면 옛 사람과 새 사람은 거듭난 후에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옛 사람의 삶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가 지속되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이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모습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양식으로 겉 사람은 육체 끌리는 삶의 양식이라면 속 사람은 영에 끌리는 삶의 양식 즉 선한 양심에 의하여 갈등하며 고민하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NEET족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Training
(한국어로 방콕족)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을 깨달은 자는 자신에게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오직 죄 지은 것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을 깨달은 자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한 없이 슬퍼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구원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없는 사랑과 은혜에만 의지한다.

무덤 속의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부패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한 것은 “나사로야 나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된 것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자는 자기도 그렇게 구원받았음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자이다.
죽은 시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걸어 나온 후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몸은 수의로 칭칭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께서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자는 자기가 구원 받기 전에는 물론, 구원 받은 후에도 행한 것이라고는 죄짓는 것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리고 그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베드로처럼 절규한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율법주의자와 행위주의자들

어떤 형태로든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 믿는다고 말하는 이교도들일 뿐이다.
그들이 참으로 예수를 믿고 거듭나는 때는 자신의 철저한 무가치함과 무능력을 깨닫고 겸손히 고백하는 때이다.
그 때가 어서 왔으면 참 좋겠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그들로 인해 큰 기쁨의 잔치가 열릴 것으로 믿는다.

인생을 살면서 많은 선생님을 만납니다.
선생님들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선생님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박군의 마음’ 이라는 전도지

박군이라는 청년에게 전도를 하는 내용인데 박군의 마음속에 있는 일곱 가지 악한 성향,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일곱 짐승이 차지하고 있는 마음을 주님이 온전하게 들어오심으로 일곱 짐승이 다 나가고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 되는 것을 설명한 전도지입니다.

영적 전쟁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아마 이 전도지를 처음 만든 사람은 영적으로 많이 열려진 사람일 것입니다.

그 일곱 가지 짐승의 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다쟁이 영 / 개구리

말이 많은 사람은 그 사람의 안에서 개구리가 쉬지 않고 개굴개굴 하고 울어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개구리는 입에 관련된 것으로 설명됩니다(요한계시록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말이 많은 사람은 절제하지 못하고 수없는 말들을 입에서 쏟아냅니다.
그리하여 영적 에너지를 잃게 하고 주변에 악한 기운으로 가득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이들은 침묵을 배우고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 높여야 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누는 대화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사랑하고 세속에 깊이 물든 대화가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말이 있는가 하면, 남을 비방하고 또는 상처가 될 수 있는 날카로운 말도 있습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절제되지 못한 말들이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말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축복의 말은 반드시 축복으로 돌아오지만 저주의 말을 하면 나쁜 저주가 임합니다.
이것이 혀의 권세입니다(잠언 18:21).
말한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둘째, 교만의 영 / 공작새

공작새가 그 날개를 활짝 펴서 자랑을 하듯이 교만의 영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가 선하고 지식이 많으며 영적이라고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이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교만은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과거에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이 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습니다.
또 다시 대홍수가 일어나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높은 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 없이도 잘 살수 있다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불신앙이 가장 큰 교만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지옥에 가지요. 이 사실이 부당한가요?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 사람들 안에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심지어 공산당들도 죽을 위기를 만나면 어떻게 하는 줄 아세요?
"하나님, 잘못했어요. 하나님, 제발 한번만 살려주세요!" 이렇게 나옵니다.
무신론자라도, 부처를 섬기는 사람이라도 죽기 직전엔 하나님을 찾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고자 하는 악독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순순히 그분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셋째, 간교한 영 / 뱀

뱀은 간교한 영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세기 3:1).

간교한 영의 사람은 지혜가 많고 머리가 좋아서 말을 잘 하며 사람들을 잘 속입니다.
잘못을 해도 상대방이 그것을 추궁하면 교묘하게 변명하여 오히려 상대방이 잘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 영은 “배신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유혹의 영”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강자 앞에서 약하며 약자 앞에서 잔인합니다. 영안이 열린 이들에게 이들은 뱀의 형상으로 보이게 됩니다.

야곱은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겨우 한 끼 먹을 팥죽으로 형의 장자의 명분(권리)을 빼앗았습니다.
그의 지혜는 분명히 타고난 것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사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악한 영의 도구가 됩니다.
간사하게 부리는 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다듬어져야 합니다.
야곱은 그로 인해 험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넷째, 음란한 영 / 염소

염소는 성적으로 더러우며 정욕이 강하다고 합니다.
성적으로 문란한 이 시대에 음란을 피해가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에 비해 생활이 많이 편리해졌습니다.
과거에 없던 것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문제도 심각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편리한 도구들은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것이 문제입니다.
죄를 짓는 데에도 쉽고 빠릅니다.
음란과 세속에 빠지는 죄는 지금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베드로전서 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다섯째, 혈기의 영 / 호랑이(사자)

사자 또는 호랑이는 분노의 영 또는 화의 영을 상징합니다.
속에서 폭발적으로 분노와 혈기가 일어나는 이들은 속에 호랑이나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성질이 강하고 사나워서 가까이 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

성경에서 최초의 살인 사건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왜 죽였을까요? 미움과 혈기를 참지 못해서 죽였습니다. 

따돌림과 괴롭힘이 학교에서 왜 일어날까요? 혈기 내는 영이 사람 안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디모데전서 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여섯째, 탐욕의 영 / 돼지

돼지의 영을 “탐욕의 영”이라고 합니다. 돼지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면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며 그 욕망으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아무리 가진 것이 많이 있어도 남들에게 자기가 가진 것을 주려고 하지 않으며 더 많이 얻으려고 합니다.

나발이란 사람은 부자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데 인색했습니다. 굶주린 다윗과 그의 일행을 먹이기는커녕 조롱하는 말로 다윗을 노하게 했지요.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몸이 돌처럼 굳어져 며칠 후 죽었습니다.

누가복음 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일곱째, 게으름의 영 / 거북이

거북이와 같은 게으름의 영의 지배를 받으면 항상 나태하고 게을러서 모든 것을 미루며 일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명을 받았어도 제대로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악하고 게으른 종아(You wicked, lazy servant!)” 라는 책망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26∼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죄의 종류와 마귀의 역사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죄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대표적인 일곱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who wants all men to be saved and to come to a knowledge of the truth.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The Lord is not slow in keeping his promise, as some understand slowness. He is patient with you, not wanting anyone to perish, but everyone to come to repentance.

디도서 3:4-6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새 사람은 도덕과 윤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 즉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그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시편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에베소서 4: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중요 단어 정리(관심,

관심(觀心)

라틴어 / interesse(인테레세)
intersum(인테르숨)의 현재 능동태 부정사형
사이에 있음

형태분석 : inter(접두사) + esse(어근)

인테르숨(intersum)

 불규칙 변화 동사 :
고전 발음 및 교회 발음 : 인테르숨

기본형: intersum, interesse, interfuī, interfutūrus

어원: inter(~사이에, ~중에) + sum(있다, ~이다)


1. 사이에 있다(I am or lie between)
2. ~와 떨어져 있다(I am apart)
3. 다르다, 차이가 있다(I differ)
4. 출석하다, 참석하다(I attend)
5. 중요하다, 변화를 가져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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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훼방 죄(마가복음 3:29) / 주일 설교(2020-04-19) 이승혁목사


성령 훼방 죄(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But whoever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ever be forgiven; he is guilty of an eternal sin.

* 성령 훼방 죄는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꾸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처음으로 고백한 내용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했을 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방금 전에 베드로에게 반석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고,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을 것이며,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예르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그런 일이 주님에게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며 주님의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성령 훼방 죄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셨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후에 다니 살아나심으로 모든 백성들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을 반대하고 부정하는 것이 곧 성령 훼방 죄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성령 훼방 죄에 서 자유롭게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ref : 마태복음 12:22∼32
       마가복음 3:22∼30
       누가복음 12:10
       -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어느 여전도회 회장 권사님의 사례(김경애 권사)

여전도회 회장으로 봉사할 때 "세례"에 대해 여전도회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 "나는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어느 회원이 유아세례를 받으면 성인이 된 후에 "입교문답"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목사님에게 전달되었고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들은 후에 어느 주일에 "성령 훼방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설교를 하였고 그 설교를 듣고 나는 성령을 훼방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여러 해 동안 고민하던 중 결국에는 부산 구포라는 지역에 김해와 연결되는 낙동강 하류에 세워진 구포대교 위에서 투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성령 훼방 죄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과 잘못된 이해 때문에 일어났던 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훼방 죄" 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성령 훼방 죄에 대한 말씀의 배경을 관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성령 훼방 죄를 언급한 내용을 마태복음 12장마가복음 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22∼32

마태복음의 배경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1-8절), 회당에 들어가서 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주신 사건(9-21절), 그리고 성령 훼방죄에 대한 사건(22-32절)이 소개됩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벙어린 된 사람을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 고쳐주심으로 말을 하고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이와 같은 생각과 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1-32절)

마태복음에서 증거하는 "성령 훼방 죄"란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쳐주신 것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도움을 받아 행하신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 당시 예수님의 사역을 귀신의 사역이라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22∼30

마가복음 3장의 배경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사건(1-6), 바닷가로 몰려든 군중들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으므로 병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만지려고 모여들었고 더러운 귀신들이 예수를 보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외쳤던 사건(7-12절), 12제자를 부르신 사건(13-19절), 성령 훼방 죄에 대한 사건(20-30절)이 소개됩니다.

마가복음에서 증거하는 성령 훼방 죄란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미쳤다고 하므로 붙잡으려고 찾아왔을 때 마침 예루살렘엥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께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한다."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증거하는 성령 훼방 죄 또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 귀신의 힘을 빌려 행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마태복음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시는 사역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4:18-19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서 61:1-3에 예언된 메시아 사역으로 희년의 선포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을 사람들을 회복시키신 것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 사역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께서 메시아 사역을 행하시는 것을 귀신의 능력이라고 비난하고 부정하는 죄를 말합니다.

여러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 곧 예언된  메시아 사역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암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특히 증세를 잘 느끼지 못하는 "간암"이란 질병은 네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바이러스
둘째는 간염
셋째는 간경화
넷째는 간암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 죄에 이르는 과정을 네 단계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 훼방 죄에 이르는 단계

1단계 :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And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with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redemption. 

우리 주변에는 늘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죄의 문이 “스마트폰”이라는 손 안에 쥐어져 있고, 터치 한 번에 걷잡을 수 없는 죄악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마음에 모신 자들에게도 이러한 죄의 유혹들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이 때에 마음이 미혹되어 흔들리거나 떠다니는 죄의 유혹을 마음으로 붙잡는다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잡은 거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거 잡으면 죽는다고 이러한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면 그건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나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2단계 :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데살로니가전서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성령을 소멸하는 단계는 “성령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보고 기도하며 보좌 앞으로 나아가 시시때때로 주를 의지하여 마음을 토하며 함께 교제하자고 이끄시는 그 음성 또는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그 성령의 탄식소리를 무시하고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방치하며 성령께서 내미시는 손길을 잡지 않고 뿌리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에 귀를 막는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정작 우리의 유익과 믿음의 성장을 위해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성령님을 등지고 돌아서는 것이 바로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3단계 : 성령을 거스림(사도행전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You stiff-necked people, with uncircumcised hearts and ears! You are just like your fathers: You always resist the Holy Spirit! 

이제 성령을 거스리는 심각한 단계로 접어듭니다. 성령을 거스린다는 것은 “성령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의지를 동원하여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반복하면서 마음은 점점 굳어져갑니다. 육신의 원하는 대로 반복적으로 거스려 행하다보면 처음엔 주저하며 조심스럽게 거스리지만 이제는 탐욕과 죄에 연단된 담력을 가지고 담대히 죄를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자랑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이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자리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말입니다. 

4단계 : 성령을 훼방함(마가복음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But whoever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ever be forgiven; he is guilty of an eternal sin.

간암 말기 상태가 되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배에 물이 가득차서 마치 임신한 사람처럼 배가 부풀어 오릅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종교적 자위와 기득권을 잃어버리지 않기 메시아로 예언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실 때 그것은 바알세불 곧 귀신의 왕을 힘입어 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죄가 성령 훼방 죄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성령 훼방 죄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과 사두개인들처럼 메시아를 갈망하면서도 예언된 메시아가 오셨을 때에 반대하고 비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훼방 죄는 예수를 증거할 때 예수를 영접하지 않는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고 따르지 않는 무리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 마귀의 자식, 회칠한 무덤, 지옥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죄
성령을 소멸하는 죄
성령을 거역하는 죄
성령을 훼방하는 죄

이러한 죄가 단계적으로 거듭 반복되어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죽고 성령님과 하나 되어 연합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곧 “옛사람”을 말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며, 소멸하고, 거역하며, 훼방하던 삶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이 지나가고 새 것은 곧 “새 사람, 성령의 사람”을 말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내 육체에 선포하며 내가 죽고 그리스도(성령)로 사는 것입니다. 이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날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죄와 사망권세를 이길 방도가 전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탄마귀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이 복음의 핵심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듯이 이 마지막 때에 성령으로 충만한 이기는 자들, 다시 오실 재림의 주를 기다리는 주님의 신부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을 등지고 사는 영적인 간질환 환자들이 회복되어져 진정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주님의 신부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리를 피해야 합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 되어 마음에 원하는 자리를 버려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우리며 순종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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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위한 자료

훼방(毁謗) - 헐 훼(毁), 헐뜯을 방(謗)
1. 남의 일을 잘못되게 하거나 못하게 함
2. 남을 헐뜯어 비방함

 
βλασφημήσῃ - βλασφημέω(blasphémeó)
Definition : to slander, to speak lightly or profanely of sacred things

Usage : I speak evil against, blaspheme, use abusive or scurrilous language about (God or men).       

정의 : 중상하고, 경건하거나 비속 적으로 신성한 것들을 말하다

사용법 : (신 또는 남성)에 대해 악을 말하고 신성 모독하거나 모욕적 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훼방이란 단어의 뜻은 “헐뜯어 비방함” 또는 “잘못되게 하거나 못하게 함”
그러나 성경에서의 훼방이란 “신성 모독”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령 훼방 죄는 “신성 모독 죄” 라고 하겠습니다.
 
교회 전통에서는 부활주일 다음으로 맞이하는 주일을 “성 도마 주일” 또는 “신생아주일” 이라고 합니다. ‘성 도마 주일’ ‘신생아 주일’이란 예수님의 부활을 자기 손으로 만져본 후에야 믿겠다고 의심했던 제자 도마에게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사탄아 네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최경일 장로의 경우)
울산에서 현대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 경영
십일조가 상당한 금액으로 헌금
교회에서 집사 임명을 하려고 한다.
유아세례 후 입교문답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집사 임명을 취소


“성령을 훼방하는 죄”에 대하여 설명해 주는 몇 가지 구절들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5:16, 사망에 이르는 죄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히브리서 6:4∼6, 타락한 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히브리서 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세 구절을 통해 볼 때 이 말씀이 적용되는 대상이 모두 “믿는 자들” 이라는 점입니다.

불신자가 하나님을 욕하고 성령을 훼방한다면, 몰라서 그런 것이니 회개의 기회가 있을 수 있겠지만,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자신을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 자는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훼방 죄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믿음 생활 잘 하던 사람이 돌변하여 성령을 등지고 욕하며 훼방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는 자가 이 지경까지 갈 수 있는지 단계적으로 말씀을 통해 고찰해 봅니다.

우리 몸의 여러 장기들 중에서 노폐물을 걸러내고 하수처리 역할을 하는 정화조와 같은 장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간”입니다. 간은 소위 “침묵의 장기”라고도 일컬으며, 우리 몸에 가장 큰 장기입니다.

묵묵히 듬직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하며 재생능력도 탁월하여 정상크기의 1/6만 남아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간이 망가지고 제 기능을 잃어버리면 몸 안으로 들어오는 독소와 노폐물들이 걸러지지 않아 바로 생명과 직결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 영혼 속의 성령의 역할이 바로 이 간 기능과 흡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성령 훼방 죄에 이르는 단계

1단계 : 성령을 근심케 하는 것(에베소서 4:30) - 지방간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느니라.
And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with whom you were sealed for the day of redemption. 

우리 주변에는 늘 죄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죄의 문이 “스마트폰”이라는 손 안에 쥐어져 있고, 터치 한 번에 걷잡을 수 없는 죄악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마음에 모신 자들에게도 이러한 죄의 유혹들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이 때에 마음이 미혹되어 흔들리거나 떠다니는 죄의 유혹을 마음으로 붙잡는다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잡은 거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거 잡으면 죽는다고 이러한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면 그건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나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요.

2단계 :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데살로니가전서 5:19) - 간염

성령을 소멸치 말며.
Do not put out the Spirit's fire; 

성령을 소멸하는 단계는 “성령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보고 기도하며 보좌 앞으로 나아가 시시때때로 주를 의지하여 마음을 토하며 함께 교제하자고 이끄시는 그 음성 또는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그 성령의 탄식소리를 무시하고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자기 자신을 방치하며 성령께서 내미시는 손길을 잡지 않고 뿌리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에 귀를 막는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얘기만 듣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정작 우리의 유익과 믿음의 성장을 위해 들려주시고 보여주시는 성령님을 등지고 돌아서는 것이 바로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3단계 : 성령을 거스림(사도행전 7:51) - 간경변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You stiff-necked people, with uncircumcised hearts and ears! You are just like your fathers: You always resist the Holy Spirit! 

이제 성령을 거스리는 심각한 단계로 접어듭니다. 성령을 거스린다는 것은 “성령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의지를 동원하여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를 반복하면서 마음은 점점 굳어져갑니다. 육신의 원하는 대로 반복적으로 거스려 행하다보면 처음엔 주저하며 조심스럽게 거스리지만 이제는 탐욕과 죄에 연단된 담력을 가지고 담대히 죄를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자랑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이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자리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말입니다. 

4단계 : 성령을 훼방함(마가복음 3:29) - 간암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But whoever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ever be forgiven; he is guilty of an eternal sin.

간암 말기 상태가 되면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배에 물이 가득차서 마치 임신한 사람처럼 배가 부풀어 오릅니다.

성령 훼방 죄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죄로부터 해방을 초래하였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죄로부터 사함을 받는다. 그러나 성경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서 특별히 말하고 있다. 그것을 소위 "성령훼방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있느니라"(막 3:28-29)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

혹간 몇 명의 청년들이 성령훼방죄에 대해서 매우 심각하게 상담을 해온 적이 자주 있다. 자신은 전에 성령을 모욕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성경을 보니 "성령훼방죄"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마태복음은 성령훼방죄에 대해서 "말로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누가복음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미 자신이 성령훼방죄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라면 그 자체로 벌써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훼방죄는 성령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나 악의적으로 죄를 짓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훼방죄에 해당되는 죄는 회개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근심을 한다거나 양심에 찔림을 받아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거나, 고의적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즉 성령훼방죄가 아닙니다.”

"훼방"이란 말은 헬라어 "블라스습헤미아"로써 성경에서는 주로 "참람, 훼방"으로 번역하였다. 그 원래의 의미는 중상(특히 하나님에 대항하는), 참람(신적위엄을 손상시키는)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딤전1장 13절에서 자신을 "훼방자"였다고 말하는데, 그 단어는 "블라습헤모스"라는 형용사로서 같은 어원을 갖는다.  만일 전에 성령을 훼방한 죄가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사도바울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블리습헤모스)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바울은 자신이 훼방자였음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지금 자신은 긍휼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을 고발하여 잡아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잡혀간 그리스도인들은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즉 우리가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에 성령을 훼방한 죄에 대해서는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바울의 딤전 1:13의 기록처럼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한 성령훼방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을 강제로 잡아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으며, 죄사함을 받지 못하였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블라스헵메오)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행 26:11)

윗 본문은 바울이 다메섹을 가기 이전, 즉 예수를 만나기 직전의 기록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형벌하였으며 잡아 가두는 일을 담당하였으며,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였고, 그 "모독하다"는 단어는 "블라스헵메오"로서 앞에서 언급한 단어와 동일한 어원을 갖는 동사이다.

즉 결론적으로, 성령훼방죄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고의와 악의로 성령을 참람하게 모욕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한때 이단이나 사이비집단에 속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철저하게 뉘우치고 회개한 사람은 더 이상 성령훼방죄에 속하지 않는다. 진실로 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절대로 성령을 훼방하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죄라고 말할 수도 없다. 바울도 성령훼방과 모독죄를 범하던 때에는 유대교에 속하여 있었다.

즉 성령훼방죄는 단지 진리를 의심하거나 그것을 부정하는 자체를 말하거나 과거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회개를 거절하고, 양심과 성령의 조명을 고의와 악의로 거절하며 모독하는 경우를 말한다.

만일 누군가가 그러한 성령훼방죄를 범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며 그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번민하며 기도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성령훼방죄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기독교는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며, 현재의 상태인 믿음으로 구원을 확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예수를 믿기 전에 성령을 훼방했던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는데, 그가 기독교인이었다가 성령을 훼방하는 말을 했다면 그는 과연 구원을 받느냐?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아다.

성경에 의하면, 자신이 현재에 믿음을 갖고 있고,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서도 성령을 훼방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욕되게 하는 자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히브리서 6장4-6절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지만, 사도요한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서 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과연 무엇일까?

요한일서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거짓그리스도,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미혹되지 말 것을 사도요한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일 3:10에서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나타남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고,
4장 1-6절에서는 배교, 적그리스도, 거짓 교사에 대한 미혹을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사도요한이 말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는 배교에 대한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과거에 믿음을 갖고 기독교에 몸을 담았다가 이단 혹은 사이비집단에 미혹된 사람은 배교이고 적그리스도, 거짓교사에 미혹당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회개하여 주님에게 돌아온 사람은 성령훼방죄라고 말할 수 없다. 아무리 과거에 교회를 다녔지만, 그 당시의 신앙이 확실한 성령의 조명 안에 있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가 이단에 미혹된 것은 "알지 못하고 한 죄"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단교회에 빠져서 예수를 모욕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고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었다면(예를 들어 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하였거나, 제대로 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올바른 믿음을 갖고 진정으로 회개하였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성경은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에 대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극단적인 예를 들면 돈이나 여자등 다른 목적을 위하여) 고의적인 목적을 갖고 이단으로 갔다면, 그리고 다시 회개하지 않았다면 다시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으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사실 성령훼방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벧전 4:3)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행락과 심지어 우상숭배를 한 것도 과거의 행한 것을 돌이킨다면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는다. 기독교의 구원은 현재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그렇다면 히브리서 6장 4-6절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나요?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

신자(信者)와 거듭난 자는 다르다. "성령이 내주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성령의 인치심으로 인하여 그 구원이 끝까지 보증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信者)에게 있어서 믿음이 떨어지는 가능성의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취소하지 않을지라도, 구원의 소망을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 위에 굳게 서야만 한다.

히브리서 6장4-6절은 상당히 난해한 구절로 간주되는데, 그 난해성에 대한 중요한 요점은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성령을 체험한 사람이 배교를 함으로서 구원이 취소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성령으로 인 치심에 의하여 구원의 보증이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그렇다면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실수로 이단집단에 미혹되었다가 다시 회개하여 돌아왔을 경우에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본문은 타락한 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예수를 두 번 못 박을 수 없다고 표현하고 있다.

먼저 두 번째의 답변은 어렵지 않다. “회개케 할 수 없다”고 하였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를 한다는 자체가 다시 돌이킬 수 있다는 뜻이 되어진다. 

히브리서10:26-29에는 유사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경우는 (1) 하나님 아들을 밟고,
(2) 거룩하게 하는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3)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경우로서, 고의적인 훼방죄를 말한다.

즉 회개를 거부하며 고의적으로 욕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과연 히브리서 본문이 말하는 사람은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1. 성령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이 배교를 한 경우인가?
2. 진실로 성령체험을 하지 못한 형식적인 그리스도를 말하는가?

어찌 되었든 히브리서 본문은 어떤 행위로 인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우는 보편적인 경우가 아닌 매우 드문 특별한 경우임에 분명하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믿음을 갖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 자들이라면, 왜 성경은 “한번 비침을 얻고, 맛보고, 참여한 바 되고”라는 애매한 표현을 하였을까? 이러한 단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의 전문적인 연구가 있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는 완전히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는 성도에게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무언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비침을 얻었다”는 단어에 대해서 초대교회 교부들은 “세례를 받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였던 적도 있었는데, 현재도 Barclay, F.F.Bluce 같은 학자들은 그렇게 해석을 하고 있다. 헬라어 “포티스텐타스”라는 단어는 히브리서 10:32에서 사용되는데, 기독교의 입교 혹은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의미하다고 해석이 되어지므로 정확한 해석이 어렵다.

어쨌든 “한번 비침을 얻었다”는 표현에서 “한번”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하팍스”인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경우가 아니라 “한번(once)”이라는 의미이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복음을 한번 받아들였다거나, 예수그리스도의 영광과 은혜라는 조명을 한번 비침으로 국한시킨다는 표현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맛보고”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규오마이”인데, 이 단어는 “먹다”(to eat)는 뜻도 있지만, “맛보다”(to taste)라는 뜻도 갖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상징적으로 선이나 악을 경험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즉 어떤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먹지는 않았지만 맛만 보는 그러한 개념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단어에 대해서 “웨인그루뎀”은 그의 조직신학 중권에서 이러한 성경적인 예를 들고 있다.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 하시더라.”(마태복음 27:34)

예수님은 쓸개를 탄 포도주를 맛만 보고 마시지 않았는데 이 단어가 바로 “규오마이”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의미는 실제로 먹은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맛만을 보았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물론 “맛보았다”라는 단어는 “경험을 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어질 수 있으며, 그러한 의미로 해석이 된다면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라는 구절은 해석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그렇다면 “참예한 바 되고”라는 단어는 어떠한가? 헬라어 “메토코스”는 관계를 의미하는 단어인데 그 단어는 밀접한 관계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히 3:14), 아주 밀접한 관계가 아닌 단순한 경우를 의미하는 경우에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참여하다(partake)는 의미는 “나누다, 분담하다, 함께 하다”는 의미이지만, “동참자, 동료”라는 단순적인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웨인그루뎀”은 눅 5:7의 예를 들고 있다.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눅 5:7)

다른 배에 있는 “동무”가 “메토코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개념은 다른 고깃배를 타는 어부 동료를 뜻한다는 것이다.
즉 같은 배를 타는 밀접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단순적인 의미의 동반 혹은 참여를 뜻한다는 것이다.

웨인그루뎀은 그 증거로서 엡 5:7-8을 예로 든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엡 5:7-8)

이 단어는 메토코스라는 단어에 syn(with)이 합성된 “쉼메토코스”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에베소서의 교인들이 불신자와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가지지 말라는 뜻도 아니고 더욱이 불신자가 되라는 뜻도 아니며, 단지 불신자에게 악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단순한 교류나 타협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메토코스”라는 단어는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동반의 개념을 갖는 참여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령에 참예한 바 된다는 의미는 그들도 성령체험을 깊이 누렸다는 뜻보다는 성령체험을 하는 현장에 “함께 있었다” 혹은 “보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고, “교회의 일에 함께 동참하였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되어진다는 것이다.

“한번 비침을 얻고, 맛보고, 참예한 바 되고”라는 의미는 그 배교자가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과 함께 그 현장을 체험하고 누리고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성령의 체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결론이 되어진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구원의 경계선이 있다면, 그는 그 선 안에 들어온 사람은 아니며, 그 선을 밟고 있는 사람 또는 구원의 선에 막 미치지 못한 사람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예수의 사도로서 함께 참여하였던 가롯 유다와 같은 경우를 뜻한다고 보여진다. 그는 예수와 함께 생활을 하며 기적과 표적을 보고, 성령의 역사와 은혜의 복음을 체험하였지만, 성경에는 가롯 유다가 온전히 성령이 내주하여 거듭났다고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즉 구원이 취소가 될 수 있다고 해석이 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며 한정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성령체험에 대한 시점의 다양한 해석문제일 뿐이다. 

즉 온전하게 구원을 받기로 하나님이 선택하여 성령을 보내주신 사람의 구원이 취소된다는 성경구절은 없다.

이러한 애매한 단어들의 선택은 그가 확실하고 완전하게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성령으로 거듭난 온전한 그리스도인에게 “한번 비침을 얻고, 맛보고, 참여한 바 되고”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반면에 불신자나 형식적인 그리스도인에게 “다시 새롭게 할 수 없고, 회개케 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적용시킬 수도 없음에 우리는 동의하여야만 한다.

그리스도 밖에 있게 되면 우리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않는다. 뿌리와 연결되지 않는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가 없으며 말라 죽게 되므로 결국 꺾임을 당한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딤전 5:12)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딤후 2:18)


분명히 성경은 믿음을 버리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 간혹 미혹을 당하거나 믿음이 무너져서 이단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과거에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 믿음을 버리고 적그리스도와 거짓교사들에게 미혹을 당하여 고의적으로 배교를 하는 자가 곧 성령 훼방 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기독교인은 믿음을 잃고 배교함으로서 구원을 잃을 수 있다. 다만 위 베드로후서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라는 구절과 “의의 도를 안 후에”라는 구절의 의미가 어느 정도의 기독교인에게 해당되는가는 의문이다. 진정으로 거듭나서 성령이 내주하며, 그 성령께서 구원을 보증하고 인도하는 사람의 경우는 구원의 취소가 있을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27-29)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3-24)

결론적으로 성령 훼방 죄에 대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싶다.

1. 성령의 보증과 인도를 받는 확실히 구원받은 성도의 죄라고 말할 수 없다

2. 믿지 않을 때의 과거에 성령을 훼방하는 말을 한 죄가 아니다

3. 고의적인 배교를 뜻한다.

4. 성령을 대상으로 한 죄이다

5. 끝까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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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 → 간경화 → 간암

간질환은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무관심하다. 따라서 별 관심 없이 지내다가 날벼락을 맞는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간 질환은 알고 나면 예방과 관리가 쉽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국민병이자 중년 남성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간질환에 대하여 알아본다.

1. 간질환 현주소

우리나라는 만성 바이러스성 간염, 간경변, 간암과 같은 만성 간질환이 많아 전 국민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한국인의 만성 간질환 중 B형 간염 감염자의 비율은 60~70%로 3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C형 간염 감염자는 10%인 20만 명, 알코올성 간질환이 16%, 자가 면역성 간염이 2%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만성 간질환의 주범인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경우 국가적인 예방 접종으로 감염율이 저하되고는 있으나 아직도 국민의 5~6%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특히, 한국인의 간암발생률이 세계 1위라는 부끄러운 통계도 나와 있을 만큼 연간 10만 명당 28명의 남성과 8명의 여성에서 간암이 발병되며, 40~65세에 해당하는 중장년기에는 5배나 많은 10만 명당 75명의 남성과 16명의 여성에서 간암이 발생하고 있다.

2. 간염의 중요성

먼저 간염이 중요한 이유는, 급성 간염에서 시작하여 만성 간염, 간경화, 그리고 간암으로 전이가 잘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복수, 부종, 신부전, 식도 정맥류, 울혈성 위장 질환, 비장 비대, 간성 혼수, 간암 등의 무서운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간염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간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원인 질환을 잡는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것이다. 간염은 바이러스, 약물과 알코올 등의 독성물질, 선천성 대사장애 등 여러 원인이 있으나, 크게 알코올성 간염과 바이러스성 간염(A형, B형, C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알코올성 간 질환은 술의 종류와 무관하고, 총 알코올 섭취량과 섭취의 지속성이 중요하다. 하루 음주량은 80g 이하가 안전하다. 즉, 맥주 2,000cc, 막걸리 1,000cc, 소주 한 병, 위스키 200cc(5잔) 정도이다. 그러나 매일 마시는 것은 피해야 하고, 음주 후에는 최소 2~3일은 금주해야 한다.

증상은 심한 급성 바이러스성 간염의 증상과 비슷하다. 즉 식욕이 없고 피로감, 구토, 설사, 우상복부(오른쪽 윗배) 통증, 간혹 미열이 있고, 심한 황달이 나타나기도 한다. 알코올성 간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금주를 지키고 정맥주사나 경구투여로 단백질을 투여하며 비타민을 보충해 주어야 하고 그밖에 필요한 약물을 투여한다.

바이러스 간염을 일으키는 간염바이러스는 A, B, C, D, E, G 등 6가지가 현재 알려져 있다. 이 중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만성화되는 B형과 C형이다.

A형 간염은 최근 우리나라 일부지역에서 10~30대의 젊은 연령층에서 골고루 급성 간염으로 발생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A형 간염은 주로 환자의 배설물에 오염된 식수와 음식물을 통하여 전염되며, 급성 간염 발병 2주전과 발병 후, 1주 사이가 가장 전염력이 강하다. 따라서 이 기간에 철저한 개인 위생관리가 요구된다. 대부분이 2달 후에는 완치되며, 만성 간염이나 간경화증으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국민병으로 불리는 B형 간염 바이러스는 혈액 및 여러 가지 체액(정액, 질 분비불, 모유, 눈물, 침 혹은 상처의 진물 등)을 통하여 전염될 수 있다. 악수, 가벼운 입맞춤, 보유자가 요리한 음식, 감염자와의 대화, 재채기 혹은 기침 등 일상적인 접촉만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급성 B형 간염은 환자 중 약 10% 이하 정도는 만성으로 넘어가지만, 아기 때 감염되면 약 90% 정도는 만성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산모가 B형 간염 백신을 주사해야 한다. 그리고 B형 간염 표면항체가 없는 아이는 사회적 활동이 시작되는 학동기 전에는 B형 간염 백신을 접종하여 면역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C형 간염은 1989년 처음 발견된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키며, 급성 간염의 약 80%정도는 만성으로 넘어간다. 진단은 B형 간염과 같이 혈액에서 바이러스와 항체 검사를 한다. 주로 수혈을 통하여 감염되어 왔으나, 요즘은 수혈용 피를 미리 검사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과거에 수혈을 받은 경력이나 침, 문신, 피어싱, 마약 주사제 등을 통하여 전염될 수 있으므로 자신이 이러한 과거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다. 예방 접종 백신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B형 만성 간염 다음으로 환자 수가 많으며, 간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3. 만성 간염→간경화증→간암

간염은 간염 바이러스가 번식하는 간세포를 내 몸의 파수꾼인 면역세포가 공격함으로써 일어나는 하나의 전쟁으로 비유할 수 있다. 전쟁터인 간장에는 심한 흉터가 남는데, 이 흉터는 간 전체에 남기 때문에 간이 단단하게 굳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태를 간경화증이라고 말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상인에 비해 약 100배 정도 간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흡연이 폐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3배 전후라는 사실을 비교해 볼 때 매우 높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간염 예방접종의 효과로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보균율은 다행히 감소추세에 있다. B형 만성간염의 진단은 혈액에서 간기능 검사나 간염 바이러스를 하고, 초음파 촬영을 통하여 간의 영상을 검사하여 진단을 내리게 된다.

C형 만성 간염에서도 간경화증이 서서히 진행된다. 20-30년이 지나서야 C형 만성간염환자의 약 30% 이상에서 간경변증이 발생한다. 앞으로는 예방접종으로 인해 B형 간염 환자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C형 간염에 대해서는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어 있지 않으므로 간경화증으로 인한 간암 발생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B형 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간암은 ▶B형 만성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증 환자 에서 가장 잘 생기며 ▶B형 만성 간염 환자 ▶드물지만 B형 간염 바이러스 건강 보균자에서도 생긴다. 우리나라는 간암의 발생에서 B형간염 바이러스가 연관된 경우가 약 70%, C형간염 바이러스와의 연관이 약 10-20% 정도이다. 만성 간염이 20년 내에 48%에서 간경화로 되고, 35%에서 간암으로 될 수 있다. B형 간염환자에서 간암 발생률이 서구에 비해 높은데, 이는 어릴 때에 어머니로부터 수직 감염되어 B형 바이러스 보유 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즉 오랜 기간의 간세포의 파괴와 재생, 유전자 변이 등이 간암 발생을 증가시킨다. 그러므로 이런 환자들은 정기적인 검사로 간암을 조기 발견(간암의 크기가 3cm 이하일 때)해야 한다.

따라서 간암의 예방은 곧 이러한 바이러스의 감염을 예방하는 것이다. B형과 C형 간염 환자들을 비롯한 만성 간질환자는 전문의와 상의하여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 간암을 조기 발견해야 한다. 간암을 조기에 발견한다는 것은 간암의 크기가 3cm 이하일 때를 말한다. 간암의 조기발견을 위해서는 혈액검사 뿐 아니라 간초음파검사, 필요하면 CT검사까지 해보아야 한다.

※ 간염 환자들이 지켜야 할 10대 건강수칙
1. 건강보조식품, 한약, 생약을 포함한 모든 약물은 의사와 상의 후 복용한다.
2. 술은 하루 80g이하로 마시되, 음주 후는 최소한 2-3일은 금주한다.
3. 음주 시에는 저지방, 고단백 안주와 함께 먹는다.
4. 여성들은 남성 보다 알코올성 간 질환이 잘 오므로 절주해야 한다.
5. 간에 좋은 것을 찾기보다는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
6. 저지방, 고단백 식사를 고집하기보다는 골고루 섭취한다.
7. 무조건 휴식보다 일상적인 신체활동은 유지한다.
8. 면도기, 칫솔, 손톱깍기 등 위생용구는 따로 쓴다.
9. 간 질환 환자들은 최소 3개월에 한번 감염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바이러스성 간질환 환자 가족들도 혈액검사를 받는다.
10. 한 명의 주치의를 정해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는다.

간은 침묵의 장기이다. 술이나 스트레스로 간을 혹사해도 참을 수 있는 한 묵묵히 견뎌낸다. 그러다가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나빠져 그 후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회복되지 않는다. 간암 또한 초기에는 증상이 별로 없어 몸이 피곤하고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 헛배가 부르고 복부 오른쪽 윗 부분에 불쾌감이 느껴지는 등 막연한 증상이 대부분이다. 증상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아 본인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간암을 예방 또는 조기 발견하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 등을 받아야 한다. 또한 알콜과 무분별한 약물 복용은 간경변증과 간암으로의 진행을 빠르게 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간암으로 판정 받으면 6개월을 못 넘긴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검사방법의 발달로 조기 발견율이 높아졌고 첨단치료법들이 개발돼 "간암도 고칠 수 있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간암의 조기 발견만큼 중요한 것은 환자 자신의 절제된 생활과 투병 의지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건양대병원 소화기내과 강영우 교수

 











그람시의 유령이 한국을 지배한다


배요한 서부산교회(예장합동) 목사





누군가가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는 ”안토니오 그람시“ 란 이름의 유령이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 운행 하셔야 할 교회 안에서도 그람시의 망령이 운행하고 있다.
그람시의 전략론에 나오는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나 진지전(陣地戰)이란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꿈꾸던 자들에게 획기적인 전략을 제공해주는 사상이다.

그람시는 1924년에서 1926년 사이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지만 결국 무솔리니에 의해 투옥되고 20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11년 동안 복역 하다가 1937년에 죽었다.

당시 검사는 「우리는 이 인간이 20년 동안 두뇌활동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왕성한 두뇌활동을 해서「옥중수고」란 글을 남겼는데 최근 공산주의 정치사상사의 고전이 될 만한 원리를 담고 있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켄타우로스(半人半馬)가 혁명 정당이 갖추어야 할 이중적 전망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람시는 폭력 혁명적 투쟁에 못지않게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란 말을 만들었는데, 이는 교육, 언론매체, 법, 대중문화 따위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 신화 등과 같은 상부 구조적 현상이 일반 대중 속에 깊게 파고 들어가서 기존의 권력 체계를 영속 시키는 한, 이에 대한 계급해방 투쟁은 그런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대항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 내어야만 그 체제를 전복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성공 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빼앗아 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종교 등 광범한 분야에 진지를 구축하여 대항 헤게모니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람시의 전략론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 기동전과 진지전이다. 그는 성숙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동전이나 극적인 대결 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 기동전은 그런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지전은 광범위 한 전선에서 전개되는 혁명 투쟁으로서 일종의 정치적 참호전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침투하여 진지를 만들고 그 진지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주의 혁명 이념 같은 대항 헤게모니를 확산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 학계, 언론계, 예술계, 종교계 등 그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여, 숙주를 찾아 참호를 만든 다음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이념을 확산시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언론,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은폐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분위기, 가치관, 학설, 예술형태, 논리, 그리고 용어를 확산시킴으로써 진지, 하나하나를 확보해가는 식으로 장기적인 투쟁을 하다가 대세가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진지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돌입하여 결정적으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이 진지전 이론의 핵심이다. 그람시는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라, 舊사회 내부에서 시작되어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 일어나며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사회 변화의 全과정을 혁명으로 본다. 그래서 舊사회의 질서는 혁명에 의하여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新질서가 건설된 다음에 비로소 파괴된다는 것이다.「과정으로서의 혁명」은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그 주체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적 정권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람시의 사회주의 혁명 전략이 그대로 적용 된것 같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 아래서 숙주를 찾아 바이러스처럼 번식하며 진지를 구축하고 사회 각 층으로 확산 시키며 진지전을 실행 해 오다가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기동전을 펼치므로 헤게모니를 잡았다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인 혁명완수의 길로 나아갈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혁명이 성공 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만약 성공하여 혁명을 완수 한다면 대한민국에는 교회는 존재 하겠으나 결국 알맹이는 다 변질 되어 버리고 껍질만 남는 한국교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벌써 한국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하여 숙주를 찾아 진지전을 활발하게 성공적으로 펼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미 전염되어 숙주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끌려만 가는 형국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계의 상황도 사회주의자들이 언론, 학계, 학원, 사회단체,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이념적 주도권을 잡고, 반공, 보수, 우익이란 말을 나쁜 뜻으로 각인 시켰으며, 실제로 보수 세력들은 말조심을 해야 할 만큼 기가 죽어 있다.

반면, 좌익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민주, 민족, 진보란 이름으로 위장을 하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윤미향을 비롯한 수많은 자들이 윤리적 도덕적 해악을 저지르고도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잘못을 질타하는 국회의원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거나 무시를 할 정도다. 이는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념적 헤게모니가 그들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람시의 혁명 전략을 우리나라에 적용하여 체제를 완성시키려면 대한민국이 딛고 있는 헌법적 질서와 대한민국을 뒷받침하는 애국적 가치관과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태동을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승만이 아닌 김구로 바꾸어 간다. 왜냐하면 이승만으로 하면 공산 세력이 파고 들어올 여지가 없지만 이 민족이 존경하는 김구로 하면 김구와 이승만의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과 세력이 맘껏 파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승만이 세운 민주국가의 태동을 부정하는 역사관을 확산시키고 6.25전쟁의 원흉을 국가 유공자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의 역할을 용병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대한민국을 공산 세력으로부터 지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미국을 위시한 우방들을 배격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며 광화문에 모여서 부르짖는 애국자들을 반 민족 친미 세력으로 매도하고 급기야는 코로나 전염병 집단으로 매도한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라는 사실을 잘 아는 그들은 코로나 19를 통하여 교회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기독교의 선구자들을 제거 하려고 획책하며 심지어 교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교회 내부에 구축된 진지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게 하므로 그들에게는 산 같은 거대한 장애물을 제거 하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무력화 하려는 다양한 전략들을 전개 해 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뼈아픈 사실은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단 운운 하면서 그들에게 동조하며 협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정부는 그람시가 주창한 대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논리를 확산시켜, 재벌의 강제 해체라든지, 지주(地主)타도, 재산몰수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가 바로 정의로운 행동을 표현하는 것처럼 가치관을 거꾸로 돌리면서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실상 세계적인 성공사례인 해방 후 남한에서 있었던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실패작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에서는 지주로부터 강제로 농토를 몰수하여 국가 소유로 했기 때문에 반동 지주계급을 청산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리를 은근히 지지하면서. 사유재산을 국가가 자의로 빼앗는 것이 당연시 되면 이것은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는 그람시의 전략을 은밀히 진행 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다.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강제로 부동산을 뺏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수없이 욕을 들어 먹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부동산 정책을 21번이나 고쳐 가면서 시행하는 것은, 서민들은 부동산을 아예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이미 부동산을 가진 자들은 감당 할 수 없는 괴물 부동산법을 통한 과세를 견디지 못하게 해서 부동산에서 손을 떼게 만들고 결국 국가가 권리를 갖게 되는 법적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옛날 시골 복덕방의 아주머니 수준도 안 되어 보이고 부동산에 대해서는 상당히 멍청해 보이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해임시키라는 원성도 아랑곳 없이 그대로 두는 것은 왜 일까? 부동산 매물 공시자가 상향과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세수는 어마어마한 쌈지 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만큼 올아 버렸기 때문에 오르지 않는 아니 오를수 없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놓고 부동산 가격상승을 잡았다고 선전 선동 한다. 그러나 빌라가 오르고 오피스텔이 올라간다. 영이어 세종시가 올라간다.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계산적이고 정략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동산 정책을 관리하는 자들의 머리가 비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 국민이 부동산을 소유하기 힘들게 만들면 결국 부동산의 실제 권리는 누가 쥐게 될 것인가? 다양한 경제적 헤게모니마저 거머쥐겠다는 속 샘이 아니겠는가?

그람시는 혁명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적인 성향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탈리아의 현실에 맞고 이탈리아 시민들의 열망과 관습, 그리고 욕구를 드러내는 언어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이 나라에서의 그람시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민족의 열망인 통일이라는 욕구를 충동해서 반미, 반일 친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언어 전술을 구사 한다. 그람시의 전략대로 계급투쟁을 단순히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민중적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위장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지계층을 확보 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의 이중적 전망을 인용해서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람시의 이론대로 지금 선동과 거짓 선전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명수들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고 교회가 속아 넘어가고 심지어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마저 속아 넘어가고 있다.

이즈음에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와 민족의 선견자가 되고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들만이라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상이나 목전의 이해타산을 좀 내려놓고 말씀과 냉철한 지각으로 그람시의 망령을 몰아내고 성령께서 기쁘시게 교회위에 운행 하시도록 성령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성령님의 종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합심(合心) 기도(祈禱)(마태복음 18:18∼20) 수요성서학당 #. 13 (09-09-2020)

오늘 수요성서학당의 주제는 "합심 기도"입니다.

'합심 기도'를 주제로 결정한 동기는 백혈병 환자와 심장 수술을 받을 환자 그리고 암 환자를 위한 기도 제목을 소개하면서 합심 기도의 성경적 의미를 함께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품앗이 기도(祈禱)

"품앗이"란 농경사회에서 일손이 부족할 때 모내기를 할 경우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모내기에 동참하여 일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생활에서 자주 경험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합심 기도"가 마치 "품앗이 기도"처럼 생각하여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로 동참하면 이 다음에 내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나를 위하여 기도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합심 기도가 아닙니다.
 
둘째는 합력 기도(祈禱)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면 바다가 모여 대양을 만드는 것처럼 나와 같은 힘이 없는 기도일지라고 힘을 더하면 능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암에 걸려 어떤 사람은 몇 달 후에 세상을 떠나지만 어떤 사람은 2년 3년 이상 고통 가운데 시달리가 결국은 세상을 떠납니다.
왜 그렇게 고통 가운데 시달리게 하시고 데려 가실까요?
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암 환자 주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누군가가 아직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합심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생각하며 오늘 함께 읽을 말씀 마태복음 18:18-20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본문에서 20절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왜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회당 예배를 시작하려면 성인 남자 10명 이상이 참여해야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성인 여자 20명이 모였고 성인 남자가 9명이 모였으면 회당 예배를 시작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회당의 제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예배를 시작하는 기준은 성인 남자 10명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얼마든지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과연 교회에서 모여서 예배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예배하는 것이 바람직한 예배일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오늘 이 말씀에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겠습니다.

20절을 다시 한 번 더 함께 읽어보게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러분, 온라인으로 예배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실까요?
아니면 함께 하지 않을실까요?

이제 합심 기도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 18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함께 읽은 말씀에서 "매면" 그리고 "풀면"이란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매면이란 묶는다는 뜻이고, 풀면이란 묶은 것을 푸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할 때 묶는 것은 무엇이고 푸는 것은 무엇일까요?
합심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을 묶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합심 기도를 마치면 기도하는 사람을 푸는 것도 아닙니다.

매는 것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본문의 배경을 자세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첫째,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겸손(謙遜)은 "자아부정(自我否定)"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겸손이다.
구원은 회개하므로 시작하고, 믿음은 겸손으로 열매를 맺는다!

둘째,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6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소자는 어린 아이를 말합니다.
그러나 소자의 의미를 확대한다면 어린 아이가 부모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해야 할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소자는 육신적으로는 어린 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도움이 철저하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신 것도 믿는 자마다 구원 받아 천국에 보내기 위함이고, 이 땅에 교회를 많이 세우신 목적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함이지 사회 참여나 사회사업 때문이 아닙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마시오”(The church has nothing to do but to save souls)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이 일을 위해 쓰임 받도록 하시오”(Therefore, spend and be spent in this work).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복음을 깨닫고 거듭난 후에 이 말을 할 수 있었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하나님은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넷째,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16-17절)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그 일을 두고 열심히 기도하면 하늘에서도 용서와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합심 기도는 어떤 어려운 일을 위하여 힘을 모아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땅에 풀어야 할 것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스스로 먼저 낮아지는 일(4절)
소자를 잘 대접하는 일(5절)
잃어버린 양을 찾는 일( 14절)
범죄한 형제를 용서하여 회개케 하는 일(15절)

이와 같은 일에 열심할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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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合力)과 합심(合心)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합력(合力)이란 "힘을 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할 (合), 힘 (力)

* 합력하여 / 판타 수네르게이(πάντα συνεργεῖ) all things work together
- 판타(πάντα) /  πᾶς(pas) all, every. Adjective
- 수네르게이(συνεργεῖ) /  συνεργέω(sunergeó) to work together. Verb

마태복음 18:18∼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合) : 사람 (人) + 한 (一) + 입(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합심기도의 본질  
- 합심 기도는 기도의 방식이며 기도의 본질은 아니다.

 합심 기도는 합력이 아니다.
 합심 기도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8장에서 말씀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매는 것과 푸는 것을 살펴야 할한다.

신자가 동료 성도나 불신자 이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꼭 두 세 명 이상 모여서 합심으로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심이 갈 수 있습니다.
혼자 집에서도 열심히, 간절히, 성실히 이웃을 위해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해하듯이 합심 기도의 목적과 효능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여럿이 모여 기도하므로 하나님 보좌를 흔드는 능력이 더 강해지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셋째는 힘을 합해 기도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서로 사랑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합심기도에 이러한 요소들이 분명히 작용합니다.
그러나 재차 강조하지만 기도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기도의 본질을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독립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다른 어떤 가르침과도 연결되지 않는 말씀이라면 합심으로 중보 기도만 하면 응답이 잘 된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에 다른 가르침을 주시는 가운데 나온 말씀이라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본문 앞에 어떤 기사가 나옵니까?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큰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은 어린아이처럼 먼저 낮아져서 소자를 업신여기지 않는 자여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네 형제 중에 누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권면, 증참(證參)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처럼 여기라고 했습니다.(마18:1-17)    

그 모든 말씀의 결론으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8절)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땅에서 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합심 기도(마태복음 18:19∼20)

(관주성경)
19. 眞實(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中(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合心(합심)하여 무엇이든지 求(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爲(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中(중)에 있느니라.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행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몬 1:22,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바라노라.


마 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행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고전 5: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요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한글개역성경)
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Again, I tell you that if two of you on earth agree about anything you ask for,
it will be done for you by my Father in heaven.
For where two or three come together in my name, there am I with them. 

합심(合心)
* 헬라어 : 쉼포네소신(symphōnēsōsin, συμφωνήσωσιν) 동의 할 것이다(might agree)
- 숨포네오(4856, sumphóneó. συμφωνέω),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Definition : to call out with, to be in harmony, generally to agree
Usage : I agree with, harmonize with, agree together. 

합심(合心)이란 한자를 분석해 봅시다.
합할 합(合) : 사람 인(人) + 한 일(一) + 입 구(口) = 합(合)
합이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합심이란 사람의 입과 마음이 일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입을 사용하여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언어(言語)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긍정적인 언어와 부정적인 언어로 구분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는 모두에게 유익하고 힘과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언어는 모두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합니다.

둘째는 음식 섭취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에도 건강한 음식과 건강을 해롭게 하는 음식으로 구분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입이 일치가 되는 것은 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말에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말에 책임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솝 우화에서 "양치기 소년과 늑대"의 이야기는 거짓말장이 소년 양치기는 자기 성찰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 성찰을 하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재미를 즐겼기 때문입니다.


강림(降臨)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6-17 / 주일 설교 원고(09-06-20) 이승혁목사


강림(降臨)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降臨)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도입 이야기)
 문화 차이에 의해서 경험한 이야기
 미국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들이 미국에서 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부모님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게 되어 한국에 정착한 후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이 선생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었는데 두 아이들이 선생님을 쳐다보자 선생님은 버릇없이 선생님을 쳐다보느냐 하며 호되게 야단쳤다고 합니다. 얼마 후 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꾸중을 듣게 되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부모님의 야단치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번에는 왜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느냐 하며 꾸짖습니다.
 두 아이들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혼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강림이란 단어는 한글성경에서 39회 사용되었습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두 불구하고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휴거에 대한 신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강림과 휴거"라는 주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 강림(降臨) 데살로니가전서 4:16

헬라어 성경에 "강림"으로 번역 된 단어가 세 가지입니다.
카타바이노, 파루시아, 에르코마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携擧)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강림이란 "내릴 강(降)" "임할 림(臨)"
한글성경에 39회(구약 23회, 신약 16회)
특히 데살로니가전서 후서에서 9회(전서 6회, 후서 3회)
NIV 성경 - come down
헬라어 - 카타바이노(καταβαίνω) / 카타(κατά) + 바이노(βαίνω) / down + stepping, walking

Strong's Greek: 939. βάσις (basis) -- a foot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 foot. From baino(to walk)
basis : a foot
Original Word : βάσις, εως, ἡ

Strong's Greek: 1684. ἐμβαίνω (embainó) -- to walk on, to

Strong's Concordance. embainó: to walk on, to step into, ie embark. Original Word:
ἐμβαίνω Part of Speech: Verb Transliteration: embainó Phonetic


(예) 누가복음 3:22(강림, 카타바이노), 데살로니가전서 4:16(카타바이노)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 고린도전서 15:23(강림, 파루시아)  παρουσία(parousia. 3952) a presence, a coming, 요한일서 2:28(파루시아), 베드로후서 1:16(파루시아), 3:4(파루시아), 야고보서 5:7-8(파루시아), 데살로니가후서 2:1(파루시아), 데살로니가후서 2:8(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2:19(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3:13(파루시아), 데살로니가전서 4:15(파루시아)

(예) 데살로니가후서 1:10(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erchomai. 2064)  to come, go
 데살로니가전서 1:10(에르코마이),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첫째, 휴거(Rapture)란 무엇인가?

휴거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성도들을 불러올리는 사건을 말합니다.
그런데 휴거라는 단어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왜 휴거라는 단어를 사용할까요?

한글 성경을 처음 번역할 때 중국의 한문 성경을 참조하여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당시 한글은 언문(言文)이라며 아녀자들만 사용하는 아주 천한 언어라고 하여 선비들은 주로 한문을 사용했습니다.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한문 성경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라는 말씀에서 “끌어 올려(caught up)” 라는 말씀을 한문 성경에서 “휴거(携擧)”라고 합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라는 문장을 간략하게 "휴거(携擧)" 라고 사용한 것입니다.

둘째, 휴거(Rapture)의 의미는 무엇인가?

1. 한자의 의미

휴거(携擧)”라는 한자는 “이끌 휴(携)” “들 거(擧)” 라는 훈으로 “이끌려 들려지다”라는 뜻입니다.

2. 영어의 의미

휴거를 영어로  “랩처(Rapture)” 라고 합니다.
랩처(Rapture)”의 뜻은 “환희(delight), 열중, 넋을 잃음”입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간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영어에서 휴거를 랩처라고 하였는가?

라틴어 성경에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 라는 말씀을 “라피오(rapio)” 또는 “라페레(Rapere)” 라고 합니다.
라피오(rapio)”를 영어로 번역할 때 “랩처(rapture)” 라고 합니다.

3. 헬라어의 의미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caught up)”는 헬라어로 “하르파게소메다(ἁρπαγησόμεθα)”라고 합니다.
"하르파게소메다"의 동사 원형은 "하르파조(ἁρπάζω)" 라고 합니다.

"하르파조(ἁρπάζω. harpazó. 726)"를 영어로 “to snach away”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낚아챈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to seize, catch up, snatch away)

* 끌어올려 - 수동태(Caught up)

“갑작스럽게 잡아서 옮기다.” “강한 힘을 가지고 강하게 빼앗아 가다”, “재빠르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다”

* 데려감을 당하고 (마 24:40∼41, 눅 17:34-35) - 수동태(Taken away)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 데려감 / “파라람바노(paralambano.παραλαμβάνω. 3880 )" : to receive from, “가까이 오도록 취하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다.

* 버려둠
/ "아피헤미(aphiémi.  ἀφίημι. 863)": to send away, leave alone.

셋째, 성경에서 휴거(하르파조, ἁρπάζω) 단어가 사용된 사례를 살펴봅니다.


1. 요한복음 6:15 - 붙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

2. 요한복음 10:12 - 물어 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도 제 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물어 가고) 라는 말씀에서 “늑탈하고” 또는 "물어 가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3. 요한복음 10:28 - 빼앗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에서 "빼앗을" 이란 뜻으로 사용합니다.

4. 요한계시록 12:5 - 올려가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GRK : σιδηρᾷ καὶ ἡρπάσθη τὸ τέκνον

NAS : and her child was caught up to God

KJV : her child was caught up unto God,

INT : iron and was caught away the child 

5. 유다서 1:23 - 끌어내다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GRK : ἐκ πυρὸς ἁρπάζοντες οὓς δὲ

NAS : save others, snatching them out of the fire;

KJV : fear, pulling [them] out of

INT : out of fire snatching [them] others moreover 

6. 데살로니가전서 4:17 - 끌어 올리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GRK : σὺν αὐτοῖς ἁρπαγησόμεθα ἐν νεφέλαις

NAS : and remain will be caught up together

KJV :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INT : with them will be caught away in [the] clouds 

성경 여러 구절에서 "끌어 올려(하르파조, ἁρπάζω)" 라는 의미를 살펴본 결과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세력의 손에 끌려 갈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것에 열광할 이유가 없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절(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엘리야는 선지자 엘리야가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결론은 메시아이신 엘리야가 반드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의 마지막 절(요한계시록 22:20~21)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신약의 결론은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4장에서 오실 메시아로서 엘리야로 오실 것을 예언했던 그 메시아가 신약에서 이 세상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후에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의 사건을 요한계시록 21:1-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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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에 대한 비성경적인 신앙

칠년 대환난을 당할 때 환난의 시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중으로 들림을 받는 것이다.

첫째, 대환난 시대를 피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때 공중 재림은 7년 대환난 시대에 공중으로 들려올라 가므로 환난의 때를 아주 평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둘째, 공중으로 끌어 올려에 대한 오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중으로 끌어 올림을 받는다는 것은 실제로 공중으로 들려올라가는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악한 것에 의해서 빼앗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마태복음 - 요한계시록) 08 / 03 /20 - 09/02/20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

8월 3일(월) 


마태복음 :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요절 / 마태복음 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 패를 붙였더라.
Above his head they placed the written charge against him: THIS IS JESUS, THE KING OF THE JEWS. 

성경 전체 장과 절 : 1,189장. 31,173절
구약 : 39권. 929장. 23,214절
신약 : 27권. 260장.  7,959절

마태복음을 상징하는 동물은 “사자”라고 합니다.
밀림의 왕 사자처럼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

8월 4일(화)


마가복음 : 종으로 오신 예수님


요절 /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For even the Son of Man did not come to be served, but to serve, and to give his life as a ransom for many.

마가복음을 상징하는 동물은 “황소” 라고 합니다.
황소는 주인을 위하여 죽도록 일을 하고 죽은 후에는 좋은 음식의 재료가 되듯이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이것은 로마 정부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3

8월 5일(수)

누가복음 :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
요절 : 누가복음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For the Son of Man came to seek and to save what was lost. 

누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당시 헬라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인간이란 누구인가?” 라는 것이었기에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므로 복음의 문을 열어주었다고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받은 구원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르쳐서 바른 길을 가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4

8월 6일(목)

요한복음 :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
요절 :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But these are written that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y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 

요한복음을 상징하는 동물은 “독수리”입니다.
독수리의 눈은 저 높은 곳에서 땅바닥에 있는 먹이를 발견하고 순식간에 내려와 먹이를 채고 올라가는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문제를 저 높은 보좌에서 정확하게 꿰뚫어 보시고 땅의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내려오신 초월자가 되신 주님입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5

8월 7일(금)

사도행전 : 성령으로 임하시는 예수님
요절 :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사도행전을 "성령행전" 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28장으로 마감했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들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에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하고 있다며 성령의 역사가 초대교회 시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이제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교회들을 통하여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권능이란 "두나미스"는 영어로 파워(Power)" 라고 합니다.
두나미스라는 헬라어 단어에서 영어 "다이나마이트"와 "다이나믹" 이란 단어가 파생했습니다.
다이나마이트는 눈으로 볼 수 있게 작용하는 힘을 말합니다.
다이나믹은 눈으로 볼 수 없게 작용하는 힘을 말합니다.

증인이란 '순교자" 라는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6

8월 8일(토)

로마서 :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예수님
요절 :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Therefore, there is now no condemnation for those who are in Christ Jesus.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곧 성령이며 성령은 생명의 영이며 살려주는 영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은 몸과 마음을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심으로 거듭난 생명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생명의 삶을 위하여 세상을 이기셨던 주님처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7

8월 10일(월)


고린도전서 : 하나 되게 하시며 은사를 주신 예수님
요절 : 고린도전서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Do everything in love.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은 교회이었지요.
그런데 너무 은사가 강(强)하여 서로 부딪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강한 것들이 부딪치면 어느 한 쪽이 깨져야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 그리고 은사 까닭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심지어 그리스도파로 분열되어 자기들의 주장을 강하게 내쏟는 교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가장 좋은 은사가 사랑이니라.
사랑의 근거는 십자가뿐입니다(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 신앙의 네 개의 기둥

첫째는 창조 신앙
둘째는 임마누엘 신앙
셋째는 십자가 신앙
넷째는 부활신앙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8

8월 11일(화)

고린도후서 : 위로하시는 예수님
요절 : 고린도후서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To keep me from becoming conceited because of these surpassingly great revelations, there was given me a thorn in my flesh, a messenger of Satan, to torment me.   

고린도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가 세 통이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첫 번째 보낸 편지는 잃어버렸기 때문에 두 번째 편지가 “고린도전서”로 전해졌고, 세 번째 편지가 “고린도후서”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그의 몸에 지니고 있었는데 “가시”로 번역된 단어가 헬라어로 “스콜롭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스콜롭스’는 “말뚝” 또는 “기둥”이란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작은 가시가 몸에 박혔을 때 받는 고통도 심각하다면 기둥과 말뚝이 몸에 박힐 때 기절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와 같은 고통 가운데서 깊이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교만하지 않게 하시는 은총이라고 합니다.

고통 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은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New Being)이란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생각과 언어와 행동 그리고 습관까지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일컬어 “거듭남(重生)”이라고 합니다.

거듭남의 은혜가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져서 겉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속사람은 늘 강건하기를 기도합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9

8월 12일(수)

갈라디아서 :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
요절 /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자유(自由)
자유를 헬라어로 “엘류데리아(eleutheria. ἐλευθερία)” 라고 합니다.
‘엘류데리아’를 영어로 “liberty, freedom” 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독립운동가이며 정치가 이었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 5. 29~1799. 6. 6)”는 리치몬드에서 독립을 주장하면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얼마나 자유가 좋으면 죽음과 바꿀 수 있다고 했을까요?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을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죄의 노예가 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고 합니다.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성구라고 합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유가 없는 민주주의는 또 다른 멍에를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본질에서 신앙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1. 창조하신 하나님(창세기 1:1)
2. 영(靈)이신 하나님(요한복음 4:24)
3. 사랑이신 하나님(요한일서 4:16)
4. 공동체로 계시는 하나님(마태복음 28:19∼20)
5. 자유하시는 하나님(갈라디아서 5: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갈라디아서는 “진리(예수)안에서 영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민주주의에는 세 가지 형태의 민주주의가 있습니다.

첫째, 인민민주주의
둘째, 자유민주주의
셋째, 민중민주주의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3

8월 17일(월)
데살로니가전서 : 그리스도의 재림
요절 /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    

데살로니가전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이 시작되기 전에 기록된 편지로 다가오는 핍박과 박해를 어떻게 견디고 이여야 할 것인가를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재림, 再臨, Second Coming. παρουσια).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어 올려 갈 것입니다(휴거, 携擧, rapture. ἁρπάζω).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서 오시는가에 관심을 갖지 말고 아무도 모르게 밤에 도적이 오는 것처럼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서 준비하는 지혜로운 믿음으로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5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Because our gospel came to you not simply with words, but also with power,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deep conviction. You know how we lived among you for your sake.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4

8월 18일(화)
데살로니가후서 : 그리스도의 재림(오래 참으시는 예수님)
요절 / 데살로니가후서 2: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So then, brothers, stand firm and hold to the teachings we passed on to you, whether by word of mouth or by letter. 

주의 재림에 대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종말 후에 다가올 행복은 오직 이스라엘만이 누릴 것이라는 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민족적인 차별 대우가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종말의 도래를 빙자해 현실적인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고 광신적으로 열광하는 것은 안 될 것이라고 교훈합니다.

교회는 종말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지만 현실에서 주어지는 사명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말처럼 신앙이란 마지막까지 내게 맡겨진 본분을 철저하게 감당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종말이 오기 때문에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배움을 포기하고 함께 모요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과 교회를 포기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5

8월 19일(수)
디모데전서 : 교회와 직분을 주시는 예수님
요절 / 디모데전서 3: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If I am delayed, you will know how people ought to conduct themselves in God's househol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he truth.

디모데전서는 “목회서신(the Pastoral Letters)” 또는 “목자서신(the Shepherd Letters)” 이라고 합니다. 목회서신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3권을 말합니다.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감독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믿음의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디모데를 사랑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는 교회의 다양한 지도자들의 자격 요건과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의무를 가르치고 교회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한 말씀입니다.

간혹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세상 법정으로 고소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교회법은 특별법이지만 세상 법은 일반법입니다. 교회 문제를 세상 법정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교회 문제를 외부로 드러내는 거보다는 서로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기도하고 의논하며 신앙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6

8월 20일(목)
디모데후서 : 상 주시는 예수님
요절 / 디모데후서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But you, keep your head in all situations, endure hardship, do the work of an evangelist, discharge all the duties of your ministry.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기록하며 죽음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가오는 죽음을 생각하며 에베소의 감독으로 수고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변론에 휘말리지 말고 진리의 말씀 위에서 바른 교훈을 가르치라고 권면합니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홍수같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발달로 인하여 무작위로 발송되는 수많은 정보들은 때로는 근거가 없거나 전달되면서 내용이 첨가되어 점점 더 이상한 괴물처럼 다가옵니다.

심지어 성경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과 내용은 말씀의 기반이 약한 성도들에게 매우 위험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시대라고 합니다(다니엘 12:4). 이와 같은 시대에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기도하며 마지막까지 진리의 말씀으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요한복음 8:32).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7

8월 21일(금)
디도서 :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님
요절 /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Who gave himself for us to redeem us from all wickedness and to purify for himself a people that are his very own, eager to do what is good. 

디도서는 목회서신으로 건전한 교리를 강조하며 동시에 진리를 왜곡하는 자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선한 행실과 교회 안에서 여러 집단이 행할 적절한 행동 지침을 언급합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성실하고 영적인 사람을 뽑아 교회를 감독하는 장로로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임명하는 모든 직분은 섬김을 위한 것이므로 철저하게 섬김을 통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8

8월 22일(토)
빌레몬서 : 변화시키는 예수님
요절 / 빌레몬서 1: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No longer as a slave, but better than a slave, as a dear brother. He is very dear to me but even dearer to you, both as a man and as a brother in the Lord. 

성경 66권 중에서 1장으로 구성된 책은 5권입니다.
구약은 “오바댜” 1권이며, 신약은 “빌레몬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4권입니다.

빌레몬서는 빌레몬의 가정 교회에서 도주한 종 “오네시모”를 감옥에서 만났던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확인한 후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신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때 앞으로는 종으로 대우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복음을 위하여 함께 사역할 수 있는 일군으로 세우고 만일 “오네시모”에 의해서 물질의 손해를 받았다면 사도 바울이 직접 갚아줄 것이라고 신원보증을 약속한 말씀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던 나를 살리시려고 자기 몸을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바치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느끼며 신앙의 길을 가고 있었는지요?

코로나의 타격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때에 우리 모두 성경적인 신앙을 회복하여 믿음의 사람으로 바르게 세워지는 은혜가 날마다 새롭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19

8월 24일(월)
히브리서 : 그리스도의 우월성
요절 / 히브리서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Therefore, since we have a great high priest who has gone through the heavens, Jesus the Son of God, let us hold firmly to the faith we profess.

히브리서를 “구약속의 신약”이라고 합니다.
또는 “요약성서” 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제5복음”이라고도 합니다.
4복음서가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대한 말씀이라면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천상사역”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근자에는 “사도 바울”이 저자라고 합니다.
고대 교부 “오리겐(Origen)”은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아주 간단하게 정리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강조하는 가르침은 “예수는 우리의 중보자” 라는 것입니다.
중보자 되신 예수님을 강조하는 네 가지 명령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12:1∽2)
둘째는 믿는 도리(4:14)
셋째는 완전한 터(6:2, 12:5∽13)
넷째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은 자(13:12∽13)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0

8월 25일(화)
야고보서 : 행동하는 믿음
요절 /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이신득의(以信得義)”
“이행득의(以行得義)”

“로마서”는 이방인들을 향한 구원의 말씀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 합니다.

“야고보서”는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구원받은 삶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이것을 “이행득의(以行得義)”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서로 다른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은 증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증거는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행실을 통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고
행함으로 복을 누리자!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1

8월 26일(수)
베드로전서 :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님
요절 / 베드로전서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But rejoice that you participate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that you may be overjoyed when his glory is revealed. 

요한은 사랑의 사도(使徒)
바울은 믿음의 사도(使徒)
베드로는 소망의 사도(使徒) 라고 합니다(1:3, 21, 3:5, 15).
특별히 베드로전서에는 “고난”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됩니다(15회).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비결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1:11, 2:19, 20, 21, 23, 3:14, 17, 4:1, 13, 15, 16, 19, 5:1, 9, 10).
소망이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근거라고 합니다.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세계가 몸살을 앓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러한 때에 천국 소망을 갖고 날마다 주님의 도움을 기도하며 견고한 믿음으로 다져지기 바랍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2
8월 27일(목)

베드로후서 :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한 경고
요절 / 베드로후서 3:17∽18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Therefore, dear friends, since you already know this, be on your guard so that you may not be carried away by the error of lawless men and fall from your secure position. But grow in the grace and knowledge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To him be glory both now and forever! 

 베드로후서는 “믿음의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노아의 홍수와 같이 틀림없이 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은 물이 아니라 불이라고 합니다(3:10).

강열한 주의 재림을 열망하던 사람들의 요란한 믿음과 조용히 주의 임재를 기다리며 매일의 삶에 성실하던 사람들 사이에 갈등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속히 주님 오시기를 갈망하는 열정이 더 뜨겁게 타오르기 때문에 종말에 대한 그릇된 가르침이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만을 사모하며 삶의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갈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시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3

8월 28일(금)
요한일서 :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
요절 / 요한일서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We know also that the Son of God has come and has given us understanding, so that we may know him who is true. And we are in him who is true--even in his Son Jesus Christ. He is the true God and eternal life.

요한서신에서는 하나님을 다양한 모습으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빛(요일 1:5) - 내적 요소
둘째는 사랑(요일 4:8, 16) - 외적 요서
셋째는 영(요한 4:24) - 프뉴마
넷째는 말씀(요한 1:1) - 로고스

참된 그노시스(앎)와 거짓 그노시스를 구별하므로 거짓 그노시스를 배격하고 참된 그노시스를 소유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4:13, 5:20).

거짓 그노시스의 특징은 비윤리적이며(2:3),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2:9, 4:8, 20).

거짓과 속임수가 들끓는 세상에서 정확하고 진실한 소식을 어디로부터 얻고 들을 수 있는지요? 진리와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루트를 가까운 이웃들과 나누며 정의로운 힘을 키워가야 하겠습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4

8월 29일(토)
요한이서 :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
요절 / 요한이서 1: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If anyone comes to you and does not bring this teaching, do not take him into your house or welcome him. 

요한이서는 여인에게 보낸 유일한 편지입니다(1절).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경험을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4절).
또한 진리 안에서 행하므로 온전한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8절).

거짓과 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은 정의 편에서 진실한 삶의 길을 찾아 성실하게 나갈 때 반드시 세상은 바르게 세워질 것입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5

8월 31일(월)
요한삼서 : 길이 되신 예수님
요절 / 요한삼서 1:8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We ought therefore to show hospitality to such men so that we may work together for the truth. 

요한일서에서는 “생명이 되신 예수님”
요한이서에서는 “진리가 되신 예수님”
요한삼서에서는 “길이 되신 예수님”

요한삼서에서는 “전도자를 대접하라!”고 강조합니다.
특히 “가이오”의 희생 정신과 “디오드레베”의 이기심을 대조시켜 가이오는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이며 디오드레베는 거짓에 거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팬데믹(pandemic)의 끈질긴 악성(惡性)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선한 것을 본받는 청결한 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수시로 손을 씻고 소금물로 입안을 소독하면서 어려운 때를 자기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6

9월 1일(화)
유다서 : 우리의 보호자가 되신 예수님
요절 / 유다서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Keep yourselves in God's love as you wait for the mercy of our Lord Jesus Christ to bring you to eternal life.    

이단의 특성은 교회 안에 살며시 침입하여 성도들을 흔들어 바른 교훈을 따르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당시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교회와 성도들을 어지럽혔습니다.
요즈음은 종교다원화주의와 좌파사상이 교회와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지만 교회와 성도들은 무지막지한 공경을 막을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께만 의지하고 부르짖는 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육에 속한 신앙이 아니라 성령에 속한 신앙으로 어려운 때를 믿음으로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카톡으로 배우는 신약 성경 #. 27

9월 2일(수)
요한계시록 : 다시 오실 예수님
요절 / 요한계시록 17: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They will make war against the Lamb, but the Lamb will overcome them because he is Lord of lords and King of kings--and with him will be his called, chosen and faithful followers. 

요한계시록은 세 가지 특징적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첫째는 계시서(묵시서)
둘째는 예언서
셋째는 서신서

특별히 종말에 대한 이해가 치우침이 없어야 합니다.
구약에서 예언자의 종말이란 다윗의 혈통으로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신약에서 요한계시록의 종말은 우주적 종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나라와 모든 족속을 통하여 형성될 것이며 이것을 실현하는 이가 인자(人子) 즉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은 세대주의 종말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초기 한국교회는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세대주의 종말론에 깊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요한의 환상에 따라 기록된 것이므로 요즈음에는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추세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특정한 민족에 의한 것도 아니며 어느 특정한 종파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그 증거를 찾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7: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종말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종말에 구원을 받는 백성들은 어린 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답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여주므로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속히 도래하기를 함께 사모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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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수요성서학당 #.12 (09-02-2020)


여호와 삼마(에스겔 48:35)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삼마”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또는 “하나님이 여기에도 계신다.”고 가르치는 사례가 자주 소개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합니다.
그렇다고 "여호와 삼마"를 확장 해석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해석은 본문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겔서에서 “거기”는 “예루살렘”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계신다.” 라고 이해하면 바르게 이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너무 과장 확대 해석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해석에 익숙해지면 나도 모르게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고 바른 해석을 위해서 먼저 본문에 집중해야 합니다.

본문에 집중하려면 시작하는 말씀과 마지막 말씀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어떤 책으로 분류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선택한 본문은 선지서 "에스겔"입니다.
"에스겔(Ezekiel)" 이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심"이란 뜻입니다.

부시의 아들로서 유대인의 제사장이며 4대선지중의 한 사람으로
유대왕 여호야긴과 같이 포로가 되어 갈대아땅 그발 하수가에 거주하는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에스겔서를 기록하였다(겔 1:1-3).

그 글에서 그의 비범한 인물 됨을 발견할 수 있고 기재를 나타냈으며
곧 목이 곧 고 마음이 강팍한 그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함을 담대히 공격한 기록에서
대선지로서 적임자임을 보여 주었고 종신토록(20년간) 선지의 직무 에 진력한 것은 일대 특색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정신적 종교가임에 반하여 에스겔의식적, 형식적 방면에 중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의 예언의 요지는 예루살렘의 망할 것과 장래의 구원으로 본국이 회복될 것으로 포로된 동포를 위로 하였다.
그의 죽은 시기는 알수 없으나 바벨론에서 같은 지도자에게 피살된 것으로 추측된다.
지금의 이락의 수도 바그닷드 근처의 한 건물을 가리켜 에스겔의 분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에스겔은 성경학자들이 "대선지서(大豫言書, Major Prophets)"라고 설명합니다.
대선지서란 그 내용이 소선지서보다 많기 때문이지 선지자가 더 크고 위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선지서에 속한 성경은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 1:1
삼십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In the thirtieth year, in the fourth month on the fifth day, while I was among the exiles by the Kebar River, the heavens were opened and I saw visions of God.

제 삼십년 사월 오일이란 현대인의 성경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서른 살이 되던 해 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사로잡힌 자 즉 포로가 되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을 때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삼십 세가 되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나이에 따라 행해야 할 삶이 있습니다.

10세 때는 유(幼)라고 하여 이때부터 배움을 시작합니다.
20세 때는 약(弱)이라고 하여 비로써 을 쓰게 됩니다.
30세 때는 장(壯)이라 하여 집을 갖고 결혼을 합니다.

사람은 자기 나이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선지자 에스겔30세장(壯)에 해당하므로 집을 갖고 결혼하여 아내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론 땅으로 끌려온 포로 선지자로 그발 강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나이에 합당한 삶이 아닌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에스겔서의 마지막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에스겔 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The name of the city from that time on will be: The LORD is There.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전체 둘레는 약 9.5킬로미터이다. 사람들은 그 성을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이라 부를 것이다."

"여호와 삼마"를
"야훼 삼마"(공동번역)
"여호와 샤마"(새번역)
"아도나이 샤마"(히브리 성경) 라고 합니다.

에스겔서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에스겔을 비롯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그발강 가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던 그 성 예루살렘은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삼마는 임마누엘의 의미가 아닙니다.
더구나 여호와께서 지금 여기에 계신다는 의미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고 깨닫지 못하였을 때
바벨론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돌이켜 보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신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또는 나이가 들면서 뒤늦게 깨닫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예루살렘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예루살렘에 대한 은총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 “그발 강”가에 모여서 예루살렘을 회상할 때
비로써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함께 계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후에야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일까요?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심각한 전염병에 의해서 이전에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새로운 것들로 인하여 깨닫는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주일 예배

매주일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하던 성도들이 이제는 함께 모일 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 유튜브를 이용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예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뉴욕에서는 어느 교회가 사회적 거리를 두고 예배를 시작했으나 감염자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또 다시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였다고 합니다.

한동안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던 중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가족들도 같이 앉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하며 예배할 때 처음에는 매우 감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송을 하는 사람도 마스크를 사용하고 설교자도 마스크를 사용하는 낯선 광경을 보며 예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어 차라리 온라인 예배가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한다고도 합니다.

그 결과 매 주일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예배하던 “대면 예배(對面 禮拜)”가 금지될 때에 비로써 주일마다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둘째는 가족 모임

저희 가족들은 매월 마지막 주일 저녁 시간에 저희 집에 모두 모여서 식사하며 지난 일들을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난 3월 이후부터 가족 모임조차도 모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 환경 때문에 가족의 만남이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셋째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과 일터

자영업자들 특히 음식점의 경우 손님들이 음식을 주문하면 출입구에서 찾아가므로 영업에 상당한 손실이 크다고 합니다.
심지어 영세 자영업자들은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예로부터 “철들자 노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철이 들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뒤늦게 깨닫게 되었으나 깨달은 것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기 전에 정신이 흐려졌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계신 하나님을 몰랐구나! 하고 후회하는 것처럼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는 후회가 없는 신앙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근거 없는 희망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에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까달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70년 후에 돌아가게 될 것" 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5:11-12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예레미야 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바꾸어 말하면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곧 멈추거나 아니면 백신을 발명하여 다시 예전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근거없는 희망을 버리고 분명한 목표를 찾아야 합니다.
바벨론 땅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고,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선지자는 70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70이란 숫자의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첫째, 종심(從心)

사람의 나이 70을 “종심(從心)”이라고 합니다.
종심이란 사람의 나이가 70이 될 때 비로써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르지만 절대로 법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종심을 신앙적으로 설명한다면 철저한 회개를 거쳐야만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이란 과거에 예루살렘에서 누렸던 모든 것들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이었으며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므로 다시는 하나님의 법을 떠나 마음대로 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징적인 수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7은 매우 신성한 의미를 갖는 수라고 하겠습니다. 
창조 후 7일째 안식하셨으며
속죄의 상징으로 제물의 피를 일곱 번 뿌린다.
7은 맹세와 동의어를 의미합니다.

숫자 '70'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그것의 기본수인 '7'에서 찾을 수 있다.
'7'은 일반적으로 완전을 의미한다.
그것은 '7'의 어원적 의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수메르어아카디아어에서 숫자 7은 '온전함' '전체'를 뜻하고,
우가릿어에서도 '완성' '완결'을 의미한다.

7은 완전을 의미하는 34의 결합이기도 하다.
3은 삼위일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늘의 완전수이다.
반면 4 땅의 완전수인데, 그것은 사방으로 땅 전체를 표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7은 하늘의 완전수와 땅의 완전수가 결합된 최종적인 완전수라 할 수 있다.

숫자 7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자인(ז)"이라고 합니다.
7을 '쉐바(שבע)" 라고 합니다.
쉐바가 명사형으로도 사용하지만 동사로 사용할 때는 "저주하다, 맹세하다"라는 뜻입니다.

쉐바와 연관된 단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밧세바
(בַּת-שֶׁבַע) - Bat Sheva / 바트( בַּת) + 쉐바 ( שֶׁבַע)  여자(나이) + 7
 
브엘세바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내용에서 '맹세'와 함께 '일곱'(암양 새끼 일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이나,
그곳 우물의 이름을 '브엘세바'(브에르쉐바; '맹세의 우물' 혹은 '일곱의 우물')라고 한 것은 숫자 7과 그 숫자가 지닌 의미를 긴밀하게
연관시킨 좋은 예이다(창 21:28-31).

둘째, 노역 기간으로서의 70년(이사야  40: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를 인하여 여호와의 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것은 노역의 때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곧 이스라엘의 죄악이 사함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에서 '노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차바'는 전쟁을 위하여 강제로 동원된 병역기간을 의미한다.
표준새번역에서 이것이 '복역기간'으로 번역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벨론 포로기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부여한 복역의 때였다.
그것은 정해진 기한이 지나면 곧바로 원래 상태로 회복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도 예레미야서에서와 같이 '끝나다'에 해당하는 동사로 '말레'를 사용하고 있다.
복역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곧 복역의 기간이 채워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사야가 선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별도의 조건이 따로 필요 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다(이사야 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셋째, 이스라엘 회복 근거로서의 70년(스가랴 1:12, 7:5, 8:19)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7:5,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8:19,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8:20-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의 70년 예언은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예언하고 있는 스가랴서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스가랴서의 첫 번째 환상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는 여호와께서 폐허화된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70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슥 1:12).
그런 스가랴의 입장은 70년 동안 지켜온 다섯 차례의 금식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슥 7:5).
그에 대한 스가랴의 답변은 더 이상 금식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의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금식은 오히려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었다는 것이 스가랴의 최종적 선언이다(슥 8:19).

넷째, 땅의 안식년으로서의 70년(역대하 36:21)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바빌론에서의 70년 포로기간을 땅의 안식년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황폐되었던 본토의 땅은 오히려 안식을 누리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땅은 새로운 축복의 잠재력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다는 긍정적 평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빌론에서 보낸 포로기간은 외견상 절망의 시기로 보였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시는 기회 곧 땅의 안식년인 셈이었다.

70년과 관련된 성경에서의 실제적 적용

1. 인간 수명으로서의 70년(시편 90:10)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70세종심(從心)
80세팔질(八耋), 장조(杖朝)
- 장조(杖朝)는 중국 주나라 때 여든 살이 되면 조정에서 지팡이를 짚는 것을 허락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 지팡이 장, 아침 조
- 팔질(八耋)여덟 팔, 늙은이 질
90세
졸수(卒壽) 마칠 졸, 목숨 수

시편 90편은 인간의 한평생 수명을 70으로 보고 있다.
성경이 사람의 수명을 그렇게 본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모세의 기도'라는 제목을 통해 이 시편의 저자는 모세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인간 수명을 70으로 설정한 것은 이스라엘의 광야생활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출애굽 당시 전쟁에 출전할만한 장정들의 나이는 20세에서 40세였다.
이들은 모두가 광야방랑기간인 38년 안에 그들의 생애를 마쳤다.
그렇게 되면 출애굽 당시의 장정들은 대략 60세에서 80세를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모세는 사람의 일반적 수명을 70으로 보았고, 강건하면 80까지 살 수 있다고 한 것이다.

2. 한 왕의 연한으로서의 70년(이사야 23:15)

부터 두로가 한 왕의 년한 같이 칠십년을 잊어버림이 되었다가 칠십년이 필한 후에 두로는 기생 노래의 뜻 같이 될 것이라.

70년과 관련된 또 다른 성경의 언급은 한 왕의 연한이다.
여기에서 왕이란 개인 아니라 그 왕이 통치하는 전체 공동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곧 한 왕의 통치를 받는 한 국가 공동체의 운명이 70년으로 제한된다는 성경적 관점이다.

그와 같은 성경적 관점과 관련하여 주목할 내용이 있다.
그것은 20세기의 최대 사건이기도 한 공산주의의 발흥과 쇠퇴가 70년 주기와 관련된다는 점이다.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은 1917년 시작하였으나 1987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말았다(70년)
20세기는 소련의 공산주의혁명으로 시작되어 소련 공산주의의 해체로 마감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련을 비롯하여 중국과 몽골의 공산주의 정권 모두가 70년 만에 종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 세 나라는 모두 우리의 인접국이면서 우리나라의 분단역사와 긴밀하게 연관된 나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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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서 예언과 성취 

성구

예표,  예언

하나님의 뜻

성취 

1:4~28 

보좌 환상

( 폴풍과 큰 구름, 네 생물의 형상, 바퀴, 궁창과 보좌)

  

  

2:1~ 3:15

두루마리를 먹음

이스라엘 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을 고하라

  

3:22~27 

말 못하는 자가 되다

무리가 에스겔을 죽일까하여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심

  

4장 

토판 위 예루살렘이 포위되는 그림을 그리다.

390일동안 왼쪽으로 누워있다. 오른쪽으로 사십일을 누워있다.

인분 불에 떡을 구워먹다. 

이스라엘이 죄악 390일을 감당하고 유다의 40년의 죄악을 감당하였다. / 예루살렘에서 의뢰하는 양식을 끊으시니

여러 나라들로 쫓아내어 흩어 버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5장 

머리털과 수염을 깍다

1/3 성읍 안에서 불사름

1/3 성읍 사방에서 칼로침

1/3 바람에 흩으라

  

1/3 전염병과 기근으로죽다

1/3 사방에서 칼로 엎드러짐

1/3 사방에 흩어버리고 뒤를 따라가며 칼을 뺌

8장 

불 같은 형상과 질투의 우상, 담 속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이 그려져있는 벽과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다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10~11장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다. ( 네 생물과 바퀴, 보좌)

  

예루살렘의 심판

12:1~16 

포로 될 것을 나타내는 상징행위 (포로의 행장을 꾸리고 낮에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다)

  

이스라엘 족속이 바벨론으로 끌려감

12:17~20 

떨면서 먹고 마시며 보이는 징조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그들이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으며 놀라면서 그 물을 마실 것

13장 

거짓선지자의 종말

  

  

15장 

불에 던질 땔감 같은 예루살렘 주민

  

수풀 가운데에 있는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땔감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주민도 그같이 할지라

17:1~21 

독수리와 포도나무비유

  

예루살렘의 왕과 고관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고 거기에서 죽을 것이다.

20:45~49 

불타는 숲의 비유

  

  

21장 

여호와의 칼

  

네가 지음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25:1~7 

암몬 족속에 대적하여

너를 동방 사람에게 기업으로 넘겨주겠다.

진을 치며 네 가운데에 그 거처를 베풀며 네 열매를 먹으며 네 젖을 마실지라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를 다른 민족에게 넘겨 주어 노략을 당하게 하며 너를 만민 중에서 끊어 버리며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패망하게 하여 멸하리니 내가 주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25:8~11 

모압 족속을 대적하여

암몬족속과 더불어 동방 사람에게 넘겨 주어 기업을 삼게 할 것이라

  

25:12~14 

에돔 족속을 대적하여

에돔이 유다 족속을 쳐서 원수를 갚았고 원수를 갚음으로 심히 범죄

  

25:15~17 

블레셋 족속을 대적하여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

내가 그들에게 원수를 갚은 즉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하시니라

26:1~28:19 

두로를 대적하여

두로에 관한 일련의 예언

  

28:20~26 

시돈을 대적하여

전염병을 보내며,

  

29:1~32:32

애굽을 대적하여

바로를 대적한 심판

 애굽 땅의 황폐함

포로에서의 귀환이 약속됨

  

34:1~31 

선한목자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책망받음

  

35:1~15 

에돔의 산들

이스라엘의 산들

에돔을 대적하는 예언

네 성읍을 무너뜨리며

세일 산이 황무지와 폐허가 되게 하여…

  

36:16~38 

내적갱신 

정결하게 하되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걸하게, 또 새 마음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37:1~14 

마른뼈의 환상

(죽은 자들의 뼈가 살아난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37:15~28 

마른뼈의 환상

(재통일)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 네 손에서 둘이 하난가 되리라,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40:1
~48:35 

이상 중에 본 성읍

성전에 관하여

성전 의식

그 땅을 분배함

  









히브리 알파벳의 의미

- 시편에 보면 이상한 용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뜻은 알파벳 숫자입니다.

1. 알렙 ㅡ 숫소

2. 베트 ㅡ 집

3. 기멜 ㅡ 낙타

4. 달렛 ㅡ 문

5. 헤 ㅡ 보라, 계시하다, 숨구멍

6. 와우 ㅡ 못, 갈고리

7. 자인 ㅡ 무기, 연장

8. 헤트 ㅡ 울타리

9. 테트 ㅡ 뱀

10. 요드 ㅡ 손

11. 요드 알레프

20. 카프 ㅡ 굽은 손, 발바닥

30. 라메드 ㅡ 소 몰이 막대기

40. 멤 ㅡ 물

50. 눈 ㅡ 물고기

60. 싸멕 ㅡ 지주

70. 아인 ㅡ 눈

80. 페 ㅡ 입

90. 짜데 ㅡ 낚시바늘

100. 코프 ㅡ 뒷통수, 바늘 귀

200. 레쉬 ㅡ 머리

300. 쉰 ㅡ 이빨, 치아

400. 타브 ㅡ 십자가, 마크, 표시




















































“한글은 완벽한 문자” 헐버트 박사 131년 전 미언론 기고문 공개

“한글은 완벽한 문자가 갖춰야 하는 조건 이상을 갖추고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으로 불리는 미국인 독립운동가 호머 헐버트(1863∼1949·사진·연합) 박사가 131년 전 미국 언론에 기고한 ‘조선어’(THE KOREAN LANGUAGE) 기고문의 원본과 번역본이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지난달 31일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헐버트 박사 서거 71주년 추모식을 거행하며 헐버트 박사가 뉴욕트리뷴에 1889년 기고한 기고문을 공개했다.

헐버트 박사는 기고문에서 “알파벳과 비슷한 한글은 완벽한 문자”라며 “조선어(한글) 철자는 철저히 발음 중심이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갈망하고,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였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과제가 조선에서는 수백 년 동안 현실로 존재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표음문자 체계의 모든 장점이 여기 한글에 녹아 있다”며 “영어는 모음 5개를 각각 여러 개의 다른 방법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이러한 체계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글자 구조상 한글에 필적할만한 단순성을 가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모음은 하나만 빼고 모두 짧은 가로선과 세로선 또는 둘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버몬트주 태생인 헐버트 박사는 1886년 23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와 외국어를 가르치고 외교 자문을 맡아 광무황제(고종)를 보좌했다. 특히 1905년 을사늑약 후에는 고종 친서를 품고 미국에 특사로 파견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역설했고, 이듬해에는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의 야심과 야만적 탄압을 폭로했다.

미국에 돌아간 후 40여 년 만인 1949년 7월29일 대한민국 정부 초청으로 8·15 광복절 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했던 헐버트 박사는 불과 일주일 뒤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생전 소망에 따라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50년 외국인 최초로 건국훈장(독립장)을 추서했다.

http://eviewer.koreatimes.com/online_viewer.aspx?seq=74784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