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변치 않아야 할 3가지·변해야 할 8가지

최성은 목사, 기침 목회자 세미나서 전략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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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기침)가 18일 분당 지구촌교회(담임 최성은 목사)에서 ‘코로나19 이후 목회적 대응과 실제적 대안’이라는 주제로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됐다.

이날 첫 번째 순서로 최성은 목사(지구촌교회)가 ‘포스트 코로나 3.8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 목사는 “어느 시대보다도 목회하기가 어려운 시대, 절대 진리가 상실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며 “‘뉴노멀’이라는 말이 있듯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모든 시스템들이 새로워 져야 하는 시대, 그 누구도 걸어가 보지 않은 길을 맞이하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목회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류 역사상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문제가 가장 힘든 문제인가”라며 “교회 역사는 수많은 압제와 핍박 속에서 죽음으로 복음을 지켜내 왔다. 그리스도인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를 붙드는 자이며 코로나가 아무리 위력이 있어도 복음의 능력 위에 있지 않음을 전제로 믿고 사는 사람들이다.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진리,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임을 믿기를 바란다”고 했다.

최 목사는 “코로나 상황 이후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세 가지의 목회의 본질이 있다”며 “먼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선포해야 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새로운 프로그램 및 변화를 추구하기 이전에 목회의 본질 세 가지를 붙들고 목회를 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며 “변하지 않아야 할 세 가지가 우리 안에 분명해졌다면 본질을 담는 그릇이 시대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담는 그릇이 바뀌는 중대한 변화가 도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복음을 담는 그릇이 중요하다. 코로나 상황 이후에 반드시 변해야 할 여덟 가지가 있다”며 “먼저는 사탄에게 양보한 ‘가상공간’을 탈환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인터넷 공간이나 사이버 공간이 영적이지 않다며 방치해 왔다. 여가시간에 10대들 중 70%가 휴대폰을 가지고 놀며, 성인은 40%가 휴대폰을 사용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삶을 보내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했다.

또 “가상공간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을 살리는 순기능으로 만들어, N번방이 아닌 지저스크라이스트 방을 만들었어야 했다”며 “휴대폰 하나로 많은 이들을 오게 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사탄에 계속 내어줄 것인지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어떤 콘텐츠를 올릴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부연했다.

코로나19 선교사 후원식이 진행됐다. ©장지동 기자

그리고 “둘째, 모든 목회 시스템을 ‘소그룹’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인간은 대면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대그룹 예배만으로 사람은 변화되지 않는다. 대그룹 예배에서 크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한다면 소그룹은 나와 함께하는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대그룹에서 경험한 전능하신 하나님을 소그룹을 통해 삶 가운데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셋째, 소그룹 모임보다 더 작은 단위인 ‘가정사역’을 든든히 해야 한다”며 “자녀들의 신앙은 부모의 책임이다. 교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방법과 방향을 제공해 주는 곳이며 특별히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교회는 주일날 예배드리게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주일학교 선생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넷째, 주일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며 “부모들이 교육전도사의 역할을 교육을 통해 대신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절반이 교육전도사를 둘 수 없게 되어 있다. 구할 수 없다면 내부에서 만들어야 한다. 주일학교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다면 세상으로부터 아이들을 다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 목사는 “다섯째, 이웃과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며 “코로나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연합과 나눔’에 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영적인 부분에서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의 삶과 구제의 행위에는 칭찬을 받았다. 로마서가 중요한 것만큼 야고보서도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여섯째, 대사회적인 사역과 복음 전도가 ‘함께 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보이는 복음이 필요하고 복음으로 살아내는 크리스천이 필요하다.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이지 못하는 죄의 권세를 예수님의 보혈로 능히 죽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일곱째, 중보기도 사역이 교회의 ‘영적 뿌리’가 되게 해야 한다”며 “중보자는 중보기도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중보자의 역할은 담임목회자와 리더들이다. 코로나는 중보기도의 불을 당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교회가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과 저력을 갖고 있어도 중보기도가 없으면 비즈니스에 불과하다”고 했다.

끝으로 “여덟째 세 가지 목회의 본질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며 “하나의 휴대폰 안에 모든 것을 담게 했다. 이것은 크든 작든 모든 교회의 목회자들을 겸손하게 한다. 설교에 목숨을 걸고 예배에 생명을 다해야 한다. 콘텐츠가 성경적이면 기술이나 화려함은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는 종말의 때를 분별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본질적으로 예배를 회복하여 하나님 앞에 다 나와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음으로 코로나를 통해 빨리 가던 우리의 발걸음이 멈추게 됐다. 큰 교회, 작은 교회 할 것 없이 휴대폰 안에 말씀으로 승부해야 한다. 코로나는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코로나 한 복판에 담겨져 있음을 역설적으로 신앙 안에서 분별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놀랍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했다.

최병락 목사가 ‘새로운 목회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고 있다. ©장지동 기자

이후 세 번째 순서로 최병락 목사(강남중앙교회)가 ‘새로운 목회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최 목사는 “광야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 정도의 능력 있는 다윗조차도 광야가 아닌 성전의 예배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표현했다”며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말해서 무얼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어 “목회자들이 흩어져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앙을 지켜 나가게 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며 “그것과 동시에 함께 모여야 하는 당위성도 가르쳐 주면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성도들을 다시 흔들어 깨우는 예배당 예배의 회복도 강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전에 없었던 세상이 오고 있기에 이전에 없었던 기도와 예배, 섬김으로 무장을 해야 하므로 소망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마른 행주를 짰을 때 물이 없듯이 소망의 말씀이 나오기가 어렵기에 이 기간 목회자들의 영적 채움의 시간이 필요하고, 성령의 기름부음과 단비가 넉넉히 흘러야 한다. 목회자들의 영적상태가 포스트 코로나의 영적상태로 이어진다”고 했다.

아울러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전향을 했지만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된 점들이 많다”며 “분명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경험하게 하셨다는 점이다. 특히 온라인을 통해 연합이 가능해졌다.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일이라 생각한다면 시작해 보면서 반드시 교회를 세우실 때 하나님이 가지셨던 계획이 교회마다 이루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사도행전 20:24) / 주일설교 원고(2020-06-21) 이승혁목사


주 예수께 받은 사명(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 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오늘 설교 제목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의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명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은 무엇인지 찾아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소아시아 지방에서 마치기 전에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대략 3년 정도 머물면서 세웠던 교회이었습니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심혈을 기우려 세웠던 에베소 교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권면했던 내용이 모두에게 기억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5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명(使命, mission)소명(召命, calling)

* 심부름 (使), 목숨 (命)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심부름을 시키려고 세상에 보낸 생명이란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을지라도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은 그 생명을 통하여 하셔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사명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주여,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게 하소서!사도 바울의 사명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소명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들었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시작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명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 영국의 간호사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5. 12~1910. 8. 13)을 기억하시지요?  나이팅게일이 존경을 받게 된 동기를 그녀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일기에 썼던 내용에서 찾아봅니다.

어떤 기자가 나이팅게일에게 “어떻게 이렇게 귀하게 살게 되었느냐?” 라고 질문했을 때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이 그의 사역을 시작한 날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을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유명해 지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 믿게 하시고, 나를 존재케 하시는 그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 사명을 깨달았을 때 그 사명의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명자의 삶을 위해서 세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는 사명을 찾아라!
둘째는 사명을 확신하라!
셋째는 사명에 순종하라!

사도 바울에게서 사명자의 삶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의 배경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소아시아의 마지막 거점인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바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입니다.

디모데후서 4:7
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이 믿음으로 자기의 갈 길을 잘 마쳤다고 피력한 것은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실하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반드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이 띠의 임자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기 때문에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내가 죽는 것이 사명이라면 얼마든지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분명하다는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는 죽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활동했던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 1813. 3. 19~1873. 5. 1)의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 있는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

1840년, 리빙스턴은 런던선교협회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었다.
이 때 그는 한창 젊음을 발산하는 27세였다.
처음에는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두메까지 들어가 전도사업에 진력했다.
그러다가 전도와 의료를 겸하면서  아프리카 각지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세계 사람들에게 오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실상을 밝혔다.
그는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1871년에는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는데, 다행히 스탠리의 수색 탐험대를 만나 구출되었다.
이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리빙스턴은  자신의 경험으로 "사람은 자기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탐험과선교를 강행했다.
그 후 리빙스턴은 스탠리 일행과 함께 조사를 계속하다가 1873년 뱅귀울루부근의 마을에서 이질로 사망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선택의 의미는 특권의식이 아닌 사명의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글개역 성경에서 "꽃" 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6구절"입니다.
반면에 "열매"라는 단어를 검색한 결과 "135구절"이었습니다.
꽃보다는 열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은 잠간동안 그 화려함을 드러내지만 열매는 꽃보다 더 깊은 의미를 안겨줍니다.

사도 바울이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첫째, 달려갈 길

사도 바울이 가려는 길은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달려갈 길이라고 합니다.
달려갈 수 있는 길은 여행자처럼 천천히 구경을 하며 가는 길이 아닙니다.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빨리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로마에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면 반드시 체포되고 죽을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심지어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바울의 띠로 손과 발을 묶고 이 띠의 임자가 이렇게 결박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가는 길이 분명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바울은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울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 대제사장으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오려고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고 있을 때 성 가까이 이르자 홀연히 빛이 하늘로부터 사울에게 비출 때 사울은 땅에 엎드렸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같이 길을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사울은 땅에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울은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 라는 제자를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일어나 직가로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합니다.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사도행전 9:15)

사울의 목표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예루살렘 공회로 끌고 오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는 목표를 바꿀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지려면 사울과 같이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날 때부터 곱추였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17세가 되기까지 집 밖에 나가 본적이 없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해서였다.
그 아이가 얼마나 자기 몸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지 부모는 학교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17세가 되던 해에 그 집을 찾아온 수녀님의 설득에 의해서 이 소녀가 태어난 지 17년 만에 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사 신부님은 그날 마침 성령님에 대해 강의를 했다.

"자,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시간을 10분 정도 드릴 테니까 다 나가십시오.
이 수도원 마당이든지 산이든지 어디든지 나가서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들어오십시오."

곱추 소녀도 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산자락 나무 아래에 좋은 자리를 다 차지했다.
그러나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는 이 소녀는 자연히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찾다가 한적한 곳에 앉게 되었다.
앉고 보니 쓰레기통 곁이다.
'아, 나는 어딜 가나 쓰레기구나.'
소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소년이 오더니 쓰레기통을 손으로 뒤지면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곱추 소녀는 용기를 내서 난생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저어... 쓰레기통을 왜 뒤지는 거에요?"
"캔이나 종이를 찾고 있어요."
"그걸 찾아서 뭐 하려구요?"
"이걸 가지고가면 돈이 되거든요. 팔아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편찮으신데 약을 사 드리려구요."
그 순간 곱추 소녀는 성령님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 같은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저 쓰레기를 팔아서 노인들의 약값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쓰레기 같은 곱추도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을 위하여 약이 될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이 소녀는 마음으로 큰 결단을 내린 뒤, 가톨릭에서 경영하는 양로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바뀐다. 너무 귀하게. 너무 아름답게. 너무 향기롭게. 진짜로 사는 맛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안한 얼굴이 보고 싶다.

둘째,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바울이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고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전에 세웠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바울이 머물고 있던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계획을 말합니다.
바울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이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체포가 될 것이라고 실물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바울은 체포되는 것과 죽는 것이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이미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내래놓을 준비가 되었다고 당당하게 설교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세웠던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왜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을까요?
그 이유가 요한계시록 2장 에베소교회의 모습에서 드러났습니다(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교회가 사명을 잊어버렸을 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책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게한 후에 아침을 먹으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은 사랑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신 것은 특권의식을 갖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것은 사명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19-1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모든 사람을 제자 삼아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셋째, 생명보다 귀한 사명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을 욕심으로 감당하면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은혜로 감당할 때 성공의 길은 열릴 것입니다.

욕심이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네 분수를 알라는 말처럼 자기 분수를 알면 욕심을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나 보다 더 크게 작용하면 결국 내가 못 견디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는 사람이 세상 즐거움에 붙잡히면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오직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욕심을 버리려면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어디에서 누구는 이렇게 했고 또 누구는 이렇게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활동했던 자리와 분명 다른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비교하는 것은 증거하는 일에 보탬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사도행전 14:15) / 주일 설교 원고(2020-06-14) 이승혁목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사도행전 14: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Men, why are you doing this? We too are only men, human like you. We are bringing you good news, telling you to turn from these worthless things to the living God, who made heaven and earth and sea and everything in them. 

하나님께로 돌아오라!(Turning to God)”

성경을 읽을 때에 "돌아오라"는 말씀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주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회개에 대한 구약적 의미(슈브, ב ש )

슈브의 의미는 "버리고 돌아오라"신(ש)이란 ‘파괴 시킨다(destroy)’베트(ב)는 ‘집(the house)’ 을 말합니다.
구약의 회개(슈브)는 "예전에 살던 집(베트. ב ) 즉 옛 성품과 구습과 행동을 불로 태워 신(신. ש) 부셔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옛집으로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회개에 대한 신약적 의미(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

메타노이아는 "방향을 바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은 이제까지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고 옛 생활에 붙잡혔던 집을 완전히 부숴버린 후에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는 세례 요한의 외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회당에서 스승과 제자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밤의 어두움이 지나고 새날이 밝아 온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동창이 밝아 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니니라."
"창문을 열어 모든 사물의 형체를 구별할 수 있으면 새날이 밝은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니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네가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너의 형제로 보이면 그때 비로소 새날이 밝은 것이니라."

사도행전 14장은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지방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마침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 바울이 복음전하는 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람에게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며 “바나나”는 “쓰스”(헬라의 주신 제우스, 로마의 주피터)라고 하고 “바울”은 “허매”(교역의 신인데 루가오니아 지방에서는 웅변과 연설의 신, 헬라의 헤르매스, 로마의 머큐리)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쓰스 신당’의 제사장은 소와 화관을 갖고 바울과 바나바가 머물고 있던 집의 대문 앞에 와서 제사하고자 하므로 바울과 바나바는 그 사람들에게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헛된 일을 버리고 모든 것을 지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은 오늘날 성도들이 복음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 삶을 지켜본 사람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바나바처럼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지의 복음”도 필요하지만 선교지로 갈 수 없을 때는 내 삶의 자리에서 복음대로 살아갈 때 나를 지켜본 누군가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면 그것이 “삶의 복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데이비드 웰스” 목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그의 저서에서 오늘날 선교의 문이 닫힌 이유는 “회심이 없는 기독교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 회심이 없는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다원주의다원화 문화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1980년대 이후 미국의 플러 신학교에서 시작한 "교회 성장학"이란 학문은 전 세계적으로 교회를 열광시켰습니다.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성장에 묶여 있었습니다. 40일 새벽기도회의 목표는 성장입니다. 제자훈련도 성장이 목표입니다. 총동원전도 또한 성장이 목표이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분명히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한 만큼 세상은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의 프로그램이 교회 성장으로 집중되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한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 성장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의 삶을 닮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사를 생각할 때에도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2020년 6월 25일은 6. 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성경에서 70년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포로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해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자유대한민국은 오히려 잘못된 지도자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서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때 교회는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현대사회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용어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로남불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불륜이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삶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말은 “아시타비(我是他非)”란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
또한 반대되는 말은 “관인엄기(寬人嚴己)‘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라”

둘째는 칠포사무 시대

7포 4무의 청년들은 반드시 예수를 만나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7포란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말합니다.
4무란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을 말합니다.

회개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단어는 “성정(性情)” 이란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성정이란 단어가 한글개역성경에서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사도행전 14:15, 야고보서 5:17).

야고보서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성정이란 단어가 “(현대인, 공동번역) 사람” “(새번역) 성정” “(NIV) human” "(헬라어) 호모이오파데스(ὁμοιοπαθής, homoiopathés) 감정과 애정이 비슷한(of like feelings or affections)"

엘리야가 살았던 시대에 엘리야 이외 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능력의 기도를 했습니다. 엘리야가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세상 풍조의 지배를 받는 믿음이 아니라 성정을 극복하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 주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갈멜산의 영적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850명이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비를 내리게도 하시고 가뭄으로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결과는 영혼 구원입니다. 엘리야 한 사람 때문에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오늘날 너희들은 누구를 섬길 것이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

회개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단어는 “성정(性情)” 이란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성정이란 단어가 한글개역성경에서 두 번 사용되었습니다(사도행전 14:15, 야고보서 5:17).

야고보서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성정이란 단어가 “(현대인, 공동번역) 사람” “(새번역) 성정” “(NIV) human” "(헬라어) 호모이오파데스(ὁμοιοπαθής, homoiopathés) 감정과 애정이 비슷한(of like feelings or affections)"

엘리야가 살았던 시대에 엘리야 이외 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능력의 기도를 했습니다. 엘리야가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세상 풍조의 지배를 받는 믿음이 아니라 성정을 극복하는 믿음을 지녔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 주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이었습니다.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도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엘리야는 갈멜산의 영적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은 850명이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비를 내리게도 하시고 가뭄으로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의 결과는 영혼 구원입니다. 엘리야 한 사람 때문에 믿음의 결과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오늘날 너희들은 누구를 섬길 것이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만물을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베드로전서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You are receiving the goal of your faith, the salvation of your souls.

바울과 바나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비록 불편할지라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길은 선택하고 루스드라 지방을 방문했습니다. 루스드라 지방의 사람들은 “쓰스”와 “허매”라는 신을 좋아했습니다.

“쓰스”라는 신은 헬라에서는 최고의 신 “제우스”를 말합니다. 로마에서는 “주피터”라고 합니다.

“허매”라는 신은 “교역의 신”을 말합니다. 루가오니아 지방에서는 “웅변과 연설의 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에서는 “헤르매스”라고 합니다. 로마에서는 “마큐리”라고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재물과 건강이 아닐까요? 돈만 있으면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우한 바이러스 때문에 돈이 있어도 재미가 없습니다. 건강이 있어도 재미가 없습니다. 누가 이런 날이 다가올 줄 알았을까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쓰스”와 “허매”를 섬기며 돈과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신관(神觀)”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세 종류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범신론(汎神論, Pantheism)

범신론이란 자연의 모든 것을 신이라고 믿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인들이 섬기는 토속신(土俗神)으로 무려 800만 종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800만의 신(가미)들 중에 하나 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 아니라 그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 후에 다시 신사에 가서 결혼식을 한 번 더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이혼율이 높다고 합니다.
  
둘째는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

다신론이란 헬라와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같이 많은 신들을 섬깁니다. 예를 들면 제우스, 아폴로,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등을 말합니다.

다신론의 현대적인 예는 힌두교로서 3억이 넘는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힌두교에서는 신을 남신을 “데바(Deva)”라고 하고 여신을 “데비(Devi)”라고 합니다. 바알이 남신이라면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신의 세계에 남신과 여신이 있다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하게 됩니다.

셋째는 유일신론(唯一神論, Monotheism)

유일신이란 오직 하나 뿐인 신을 섬기는 것으로 기독교에서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호세아 13:4,
그러나 네가 애급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와 같은 신관에 의해서 신앙생활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안드로포센트리즘. Anthropocentrism)적 신앙입니다.
둘째는 신본주의(神本主義, 데오센트리즘(Theocentrism)적 신앙입니다.

인본주의의 중심은 “사람”이며, 신본주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신본주의 신앙의 길을 선택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의 삶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애급의 총리가 될 때까지 참 험한 세월을 지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통스럽던 지난 세월을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무장했습니다. 그 결과 형들이 애급을 찾아와 먹을 식량을 구하려고 엎드려 절을 할 때 비로써 어릴 때 요셉이 말하던 해와 달이 절을 하고 형제들이 절을 한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사랑하셔서 나를 먼저 애급으로 보내셨다”고 말하며 위로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에서 신본주의 신앙으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인본주의 신앙에서도 기도합니다. 신본주의 신앙에서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도하느냐에 따라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로 구분될 것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신본주의 신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기도할 것입니다.
건강과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신본주의 신앙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evil man his thoughts. Let him 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mercy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freely pardon.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두 가지를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 길을 버리라(forsake his way)
둘째는 그 생각을 버리라(forsake his thoughts)

길이란 방법”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 길을 “웨이(way)”라고 합니다. “웨이”는 “방법”이란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옛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대장간의 주인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군에게 말발굽을 주며 이것과 똑같은 말발굽 100개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일군은 주인의 분부에 따라 열심히 말발굽을 100개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일군이 만든 말발굽을 살펴보니 모양은 말발굽 모양이지만 크기가 전부 달랐습니다. 주인은 일군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고 물었더니 일군은 “예, 처음 것은 주인님이 주신 말발굽을 보고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만들어 놓은 말발굽을 보고 만들고 그 다음에도 방금 만는 말발굽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교회가 본받아야 할 신앙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목회에 성공했다는 어느 교회와 어느 목사를 본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이제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바꿔야 합니다.

생각이란 선택”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선택한 것은 곧 행동으로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유다는 그 생각을 지워버린 것이 아닐 생각을 받아드린 후에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사탄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악한 생각을 갖게 하여 악한 일을 하게 합니다. 음란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음란한 생각을 주어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거짓된 사람에게는 거짓된 생각을,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의한 생각을 자꾸 넣어줍니다. 이 모든 잘못된 것이 생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원한 것이 아니라 비록 불편할지라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길은 선택하고 루스드라 지방을 방문했습니다. 루스드라 지방의 사람들은 “쓰스”와 “허매”라는 신을 좋아했습니다.

“쓰스”라는 신은 헬라에서는 최고의 신 “제우스”를 말합니다. 로마에서는 “주피터”라고 합니다.

“허매”라는 신은 “교역의 신”을 말합니다. 루가오니아 지방에서는 “웅변과 연설의 신” 이라고 하였습니다. 헬라에서는 “헤르매스”라고 합니다. 로마에서는 “마큐리”라고 합니다.

엘리야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재물과 건강이 아닐까요? 돈만 있으면 최고의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강만 있으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우한 바이러스 때문에 돈이 있어도 재미가 없습니다. 건강이 있어도 재미가 없습니다. 누가 이런 날이 다가올 줄 알았을까요?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쓰스”와 “허매”를 섬기며 돈과 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신관(神觀)”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신을 세 종류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범신론(汎神論, Pantheism)

범신론이란 자연의 모든 것을 신이라고 믿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인들이 섬기는 토속신(土俗神)으로 무려 800만 종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800만의 신(가미)들 중에 하나 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 아니라 그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결혼식을 한 후에 다시 신사에 가서 결혼식을 한 번 더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이혼율이 높다고 합니다.
  
둘째는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

다신론이란 헬라와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과 같이 많은 신들을 섬깁니다. 예를 들면 제우스, 아폴로,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등을 말합니다.

다신론의 현대적인 예는 힌두교로서 3억이 넘는 신들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힌두교에서는 신을 남신을 “데바(Deva)”라고 하고 여신을 “데비(Devi)”라고 합니다. 바알이 남신이라면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신의 세계에 남신과 여신이 있다는 것은 성적으로 문란하게 됩니다.

셋째는 유일신론(唯一神論, Monotheism)

유일신이란 오직 하나 뿐인 신을 섬기는 것으로 기독교에서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호세아 13:4,
그러나 네가 애급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와 같은 신관에 의해서 신앙생활은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안드로포센트리즘. Anthropocentrism)적 신앙입니다.
둘째는 신본주의(神本主義, 데오센트리즘(Theocentrism)적 신앙입니다.

인본주의의 중심은 “사람”이며, 신본주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신본주의 신앙의 길을 선택했던 대표적인 인물은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의 삶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애급의 총리가 될 때까지 참 험한 세월을 지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통스럽던 지난 세월을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무장했습니다. 그 결과 형들이 애급을 찾아와 먹을 식량을 구하려고 엎드려 절을 할 때 비로써 어릴 때 요셉이 말하던 해와 달이 절을 하고 형제들이 절을 한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에게 “하나님이 우리 가족을 사랑하셔서 나를 먼저 애급으로 보내셨다”고 말하며 위로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에서 신본주의 신앙으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인본주의 신앙에서도 기도합니다. 신본주의 신앙에서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기도하느냐에 따라 인본주의와 신본주의로 구분될 것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신본주의 신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고 기도할 것입니다.
건강과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신본주의 신앙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Let the wicked forsake his way and the evil man his thoughts. Let him turn to the LORD, and he will have mercy on him, and to our God, for he will freely pardon.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두 가지를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그 길을 버리라(forsake his way)
둘째는 그 생각을 버리라(forsake his thoughts)

길이란 방법”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서 길을 “웨이(way)”라고 합니다. “웨이”는 “방법”이란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옛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대장간의 주인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일군에게 말발굽을 주며 이것과 똑같은 말발굽 100개를 만들라고 했습니다. 일군은 주인의 분부에 따라 열심히 말발굽을 100개 만들었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일군이 만든 말발굽을 살펴보니 모양은 말발굽 모양이지만 크기가 전부 달랐습니다. 주인은 일군에게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 하고 물었더니 일군은 “예, 처음 것은 주인님이 주신 말발굽을 보고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만들어 놓은 말발굽을 보고 만들고 그 다음에도 방금 만는 말발굽을 보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교회가 본받아야 할 신앙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는 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목회에 성공했다는 어느 교회와 어느 목사를 본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이제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을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바꿔야 합니다.

생각이란 선택”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선택한 것은 곧 행동으로 옮겨지기 때문입니다.

원수 마귀는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유다는 그 생각을 지워버린 것이 아닐 생각을 받아드린 후에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사탄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악한 생각을 갖게 하여 악한 일을 하게 합니다. 음란한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음란한 생각을 주어 음란한 행동을 하게 합니다. 거짓된 사람에게는 거짓된 생각을, 불의한 사람에게는 불의한 생각을 자꾸 넣어줍니다. 이 모든 잘못된 것이 생각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두 대의 차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한 대는 고통 받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달리는 구급차 이었고, 다른 한 대는 최신식 고급 승용차 이었습니다. 두 대가 마구 달리면서 다른 차들을 추월하고 중앙선을 침범하여 위험스럽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구급차와 고급 승용차의 차이는 누가 운전대를 잡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급차의 운전대는 구급요원이 잡고 있었지만 고급 승용차는 술에 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운전하고 있습니까?
성령님께서 운전을 하십니까?
아니면 원수 사탄 마귀가 운전하고 있습니까?

성령께서 운전하게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예수 안에 들어갔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말씀을 암기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생명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님에게로 예수님으로부터 보혜사 성령님에게 보혜사 성령으로부터 이제 우리 모두에게 생명이 흘러넘쳐야 하겠습니다.
이런 생명이 넘쳐나는 은혜가 이번 한 주간 모든 성도들과 교회와 자유대한민국 위에 넘쳐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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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용어가 있습니다.

기성 세대들에게는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내로남불

내가 하는 것은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불륜이다.
철저하게 자기 중심의 삶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말은 “아시타비(我是他非)”란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
또한 반대되는 말은 “관인엄기(寬人嚴己)‘란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라”

마래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에게는 세상을 등지려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둘째는 칠포사무 시대

7포 4무의 청년들은 반드시 예수를 만나야 해결 할 수 있습니다.

7포란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을 말합니다.
4무란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을 말합니다.



종교가 처음 우리를 찾아 왔을 때 우리는 땅이 있었고 그들은 경전을 들고 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눈 감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쳤다.
눈을 떠보니 그들은 땅을 가졌고 우리는 경전을 들고 있었다.

# 코로나-19가 분명히 알려준 사실은

1. 종교는 단 한 명의 환자도 살리지 못한다.

2. 축구 스타보다 의료인들이 훨씬 값어치 있다.

3. 유럽은 생각했던 것만큼 선진국이 아니었다.

4.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태리 일본은 우리보다 후진국이더라.

5.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보다 면역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6. 우리가 격리되어 보니 동물원의 동물들 심정을 알겠다

7. 소비 없는 사회에 석유는 쓸모없다.

8. 인간들이 활동을 덜하면 지구는 회복된다.

9.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도 일을 잘 해낸다.

10. 외식, 회식 없어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청년을 위한 교회를 세우려면






목회기획 / 다시 뛰는 청년목회 ①  청년사역, 무엇이 문제인가

역할은 많은 데 존재감은 없다
경직된 교회문화 청년세대 관계 단절 불러… 먼저 소속감 심어줘야


 
‘10년새 청년부 60만명 감소, 청년층 종교 이탈률 1위, 비종교인 청년 종교선호도 3위’
대학생선교단체 간사들은 “2000년에 비해 선교단체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청년목회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청년은 짧게는 10년 뒤 한국 교회의 영적 수준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에 이들의 이탈은 교회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청년목회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현장과 전문가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20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무엇이며, 왜 발길을 끊는 것일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독대학인회(ESF) 관악지부를 찾았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는

 
이다. 
지현성(경인교대·21) : 집/ 익숙하지만 때로는 그곳에서 탈출하고픈 생각이 든다. 가정 내 문제점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강지훈(숭실대·21) : 기업/ 요즘 교회는 사회의 기업체 같다. 특히 대형화 물량화가 큰 문제점이다.

김의중(서울대·24) : 미꾸라지가 있는 연못/ 교회는 원래 깨끗한 연못이다. 그러나 몇 마리 미꾸라지 같은 지도자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는다.

김경환(숭실대·21) : 그래도 희망/안티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이며, 세상에는 희망이 있는가?

정성현(경인교대·21) : 기도하는 집/ 교회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다루는 곳이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종 부조리와 맘몬사상에 물든 교회를 보며 “본질을 되찾으라”고 질타를 하고 있다. “교회는 그래도 희망이다”라는 말처럼 이 시대 청년들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교회 내 청년은

 
존재이다.  
지 :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교회에서 가장 많은 봉사를 하는 존재가 바로 청년이다. 청년은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강 : 눈치 보는/ 청년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위에서 막는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이것은 청년부를 경직시키는 원인이 된다.

중 : 돈먹는 하마 & 황금알 낳는 거위/ 지금 당장 직업이 없기에 교회의 투자와 지원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에 보석같은 존재이다.

환 : 윤활유 같은/ 우리의 열정을 보고 도전 받는 성도들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앙생활의 윤활유가 된다.
정 : 슬픈/ 같이 고민하고 비전을 공유할 청년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 내부의 문제나 세상의 유혹으로 교회를 떠나는 청년을 보면서 이들은 스스로를 ‘슬픈 세대’라고 규정한다. 청년목회 붕괴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역동성이며, 윤활유이다.

나는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 
지 : 어색함/ 리더가 자주 바뀌어 어색하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리더와의 어색함 때문에 교회에 다니기 싫다. 자주 바뀌는 셀모임도 문제가 있다.

강 : 강요하는 분위기/ 헌금, 새벽기도, 봉사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다. 부모님께서 교회에 가자고 강요할 때도 싫다.

중 : 기복적인 설교와 삶의 문제/ ‘~하면 복받는다’식의 기복적인 설교가 너무 흔하다. 이런 설교는 내용도 뻔하다. 또한 취업 공부에 쫓겨 시간이 없을 때 교회에 가는 게 망설여지기도 한다.

환 : 가벼운 관계와 죄의식/ 대형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소속감과 관계성이 너무 약하다. 개인적으로 죄의식 때문에 교회를 피할 때가 있다.

정 :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 봉사가 너무 많아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대학생활에 자유가 필요하다.

“뻔한 설교, 특히 기복적인 설교가 싫다”는 말 속에는 담임 목사나 담당 교역자의 불성실한 설교가 청년의 귀를 막는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절반이 백수인 이때, 학업과 진로준비 때문에 교회를 이탈하기도 하며, 교회의 어색한 분위기가 청년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청년사역자의 잦은 교체와 무조건적인 믿음 강조도 청년의 이탈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미디어로 관계성이 단절된 청년세대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주는 사역이 필요함을 엿볼 수 있다.

청년부가 부흥하려면 내·외적으로

 
개선(도입)해야 한다. 
지 : 관계망과 교제, 긍정적 인식 회복/ 내부적으로는 교제를 확대해 관계성을 돈독히 해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 인식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 : 형식적인 설교와 권위적인 관계, 전도방법 개선/ 내부적으로는 지루한 설교와 형식적인 예배, 권위적인 관계를 탈피해야 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무모한 전도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중 : 다시 복음으로, 세상과 소통/ 사람이 아닌 복음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복음으로’라는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외부적으로는 진리를 전파하는 통로가 필요하다. 문화사역뿐만 아니라 지성의 영역에서도 소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환 : 시대에 부합하는 설교, 프로그램/ 청년이 안고 있는 문제(취업, 이성, 불확실성)를 말씀으로 풀어가는 설교가 갈급하다. 외부적으로는 초신자들도 헌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정 : 일대일 케어, 교회 교류/ 내부적으로는 일대일 관계가 필요하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맨토링을 실시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가 ‘내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개인주의다. 기독교가 살아남으려면 교회간 교류가 확대되어야 하며, 특히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을 섬거야 한다.

종합해 보면, 청년은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존재로 남아 있다.

한국 교회에서 청년목회가 다시 회복되려면 소속감을 심어주고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즉 이시대의 청년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목마르기 때문에 이들의 갈급함을 채워줘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자주 바뀌는 청년 교역자에게 안정적인 사역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전도의 길을 막는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교회 내부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청년 전도에 치명상을 주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200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5년까지 전체 기독교 인구는 143,898명이 감소했다. 청년과 관련하여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해 보자. 1995년에 10~24세였던 기독인들은 2005년에는 20세에서 34세가 되었다. 이 시기에 해당 연령대의 기독인은 597,619명이 감소하였다. 이 통계는 다른 연령층의 기독교인 인구에서는 성장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60만에 이르는 청년층은 기독교에서 대거 이탈하였다. 청년층의 감소율은 평균 감소율보다 4배가 넘는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통계는 교회가 청년목회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해 주고 있다.
청년목회의 실패 요인 중에 하나는 교회가 청년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것이 아닐까? 많은 청년들은 성장 과정에서 IMF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거나 무너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극심한 삶의 혼란을 겪고 있다.

‘벼랑 끝의 대학생들’ ‘그들에겐 봄은 없다’ ‘청년백수 탈출기’ 상처 입은 세대, 척박한 삶과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열등감과 패배감과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세대, 우리 청년들의 자화상의 일면이다. 많은 청년들의 삶의 자리가 너무 척박하다.

물론 일제시대와 6.25 그리고 군사 독재 시대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청년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기독교와 교회가 소망이 되고 대안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들에게는 기독교와 교회가 더 이상 대안으로 비쳐지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기독교적 차원에서의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청년들의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대안을 만들어 낼 제대로 된 기독교 청년 연구소 하나가 있는가? 교회는 청년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문제와 필요를 공감하고 대안을 만들어 주는데도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발달 심리학에서는 청년기의 중요한 발달 과제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정체성의 형성, 직업의 준비, 결혼의 준비가 그것이다. 직업과 결혼이 향후의 인생을 위한 눈에 보이는 준비라면 정체성의 형성은 향후 인생을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이면서도 직업과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입시에 올인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정체성의 형성은 대부분 청년의 시기(대학생)에 이루어진다. 청년의 평생의 삶의 기초가 되는 정체성의 형성에 신앙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청년의 시기에 신앙에 기초한 정체성이 분명히 형성할 때 세속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평생 살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목회는 청년 한 개인의 평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청년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와 한 나라의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세대이다. 오늘만 좋은 교회는 소망이 없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교회야 말로 소망이 있는 교회다. 청년들은 내일의 교회를 만들어 갈 주역들이고 교회의 미래이다. 이렇게 중요한 청년목회를 전문성이 없는 사역자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청년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가 없는 사역자가 청년대학부를 맡는다는 것은 청년들에게는 큰 비극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교회는 청년 사역의 전문가를 길러 내야하고 청년 사역자가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적극 투자해야 한다.

나의 삶이 곧 전도 ‘신행일치’ 강화하라

전체 교인 중 80%가 청년… 경건훈련·제자도로 끊임없이 변화




▲ 빛과진리교회 청년들이 캠퍼스 전도에 앞서 합심기도를 하고 있다.
토요일 오후, 빛과진리교회(김명진 목사) 예배당 안은 1000명의 청년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골드타임’이라고 불리는 주말 오후에 청년들이 교회로 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요즘 청년문화를 분석해 보면 소셜네트워크와 정보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관계를 넓혀가지만 정작 진솔한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미디어를 통해 많은 지식을 접하지만 참된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끊이지 않습니다.” 김명진 목사의 말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인맥과 지식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적 관계성 고갈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뜻이다.

빛과진리교회는 청년들의 갈급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기에 주위 사람들은 이 교회를 ‘청년교회’라고 부른다. 전체 교인의 1000명 중 80%가 청년이기에 당연한 소리다.

빛과진리교회 청년목회가 부흥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동력이 있다. 첫 번째는 진리에 대한 공급이다. 빛과진리교회는 매일 오전 6시에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일반 교회는 새벽예배나 기도회이지만 이 교회는 아침마다 전 교인이 참석해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단순히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중심으로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획하기에 삶에서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진행하는 ‘토요모임’도 핵심은 말씀을 통한 진리탐구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은 무엇인지, 영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또 다른 원동력은 실제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제자도’. 이병용 청년(고려대)은 “우리 교회 청년목회 특징은 리더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토요모임이나 경건의 시간에서는 단순히 성경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뤄 나갈지 나눈다”고 설명했다.

김원봉 장로는 “일부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만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영적 지적 사회 신체영역으로 나눠 각 분야에서 소금과 빛이 되도록 돕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명진 목사는 평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신행일치’를 강조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의 모습과 일반생활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리는 어두운 세상에 나갔을 때 더 빛나야하기 때문이다. 이지호 청년(고려대 통계학과)은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 성도들이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말씀에 근거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삶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전도도 자연스럽다. 박선양 청년은 “캠퍼스나 직장에서 소그룹 형태로 관계전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면한 생활을 보여주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통해 주변의 불신자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도록 한다는 것이다.

빛과진리교회 청년들에게 감동한 불신자들은 일대일 관계전도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 교회로 들어온다. 그러기에 잠깐 왔다가 빠져 나가는 ‘누수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문화를 이해하는 교회 풍토도 큰 힘이 되고 있다. 교회 주차장을 농구대로 바꾸는가 하면, 청년들로 구성된 힙합 댄스팀도 있다. 청년의 열기를 발산하기 위한 마라톤 대회와 말씀암송대회 등 청년목회 사역이 풍성하다.

청년 열정은 부모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 교회 장년 200여명은 대부분 청년세대 자녀를 따라 출석한 성도들이다. 김원봉 장로는 “무기력하던 자녀가 교회를 출석하면서 건강하게 변화한 모습을 보고 교회에 따라 나온 부모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일대일과 소그룹을 통한 제자훈련, 말이 아닌 삶에서 보여주는 참된 제자도, 빛과 소금이 되게 하는 진리탐구, 청년을 방관자로 만들지 않고 사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교회 구조, 청년의 문화를 이해하는 열린 자세, 이러한 것들이 비빔밥처럼 한데 섞여 빛과진리교회 청년목회를 맛깔나게 한다.

김명진 목사는 “청년목회가 살아나려면 청년에게 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교회가 청년을 찾아가 그들의 고민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오영섭 목사(성복교회 청년대학부)
어떻게 하면 청년목회에 성공할 수 있을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청년들이 교회를 찾아오도록 앞문(전도)을 활짝 열어놓고, 옆문(예배와 소그룹)과 뒷문(사역)으로 굳게 닫아놓으면, 목회는 성공한다. 이 시간에는 청년들을 교회로 몰려오게 만드는 앞문(전도)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첫째, 다양한 앞문을 열어놓으라! 다양하고 많은 앞문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방문하게 된다. 방문자수가 많아질수록 정착율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다양한 전도의 방법(관계전도, 노방전도, 오이코스전도, 대형전도축제)을 시도해야 한다. 성복교회 청년부가 40명에서 6배 성장한 지금까지, 우리는 지하철역노방전도, 거리노방전도, 캠퍼스노방전도, 대형전도집회인 2030맞춤전도축제(Love Festival), 관계전도프로그램인 HUG(Happy meal, Unique joy, Group dynamic)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감사한 것은 모든 전도의 방법을 통하여 직접적인 열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복음에 대한 체험적 경험을 통하여 청년들의 삶에 대한 자세가 변화되었다. 

둘째, 청년문화트렌드에 맞춘 전도프로그램을 기획하라! 특별히 청년들을 교회에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년문화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우리 청년부에서는 청년문화트렌드(예: 1925세대는 Smart phone & Fantasy Game, 2632세대는 My car & Job, 3342세대는 Family & Career) 에 맞춘 대형전도집회인 2030맞춤전도축제와 소규모전도정착프로그램인 HUG를 통하여 꾸준히 열매들을 거두어왔다. 디지털세대를 하나님나라로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문화매트릭스’를 준비하여 재미있으면서 흥미롭게 복음을 제시하도록 기획한다. 전반부에서는 ‘음악매트릭스’, 다양한 장르의 콘서트나 음악회를 통해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어 준다. 후반부에는 ‘연극매트릭스’, 스킷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을 통해 처절한 삶의 문제를 제시하여 갈증을 복음으로 해갈한다.

 

“연합사역으로 돌파하라”

30개 교회 동참 ‘예수청년교회연합’
소규모 청년부 한계 딛고 사역 활발

“혼자가 안되면 뭉쳐라.”

현실적으로 대다수 교회의 청년·대학부 규모는 30명 이하. 소규모 모임에서 가질 수 있는 사역과 역할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한계가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렇다면 소규모의 청년·대학부들이 연합해서 부족한 부분을 공급받고, 개교회의 청년사역을 활성화시킨다면 어떨까? 여기에 그 대안이 될 만한 모임이 있다.


▲ 부산의 예수청년교회연합(JCAN)은 교회들이 연합해 청년연합사역을 펼쳐 개교회 청년·대학부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부산의 ‘예수청년교회연합’(상임대표:박성규 목사·이하 JCAN)이 바로 그 모임이다.
JCAN은 ‘Jesus Church Associa-tion for the Next generation’이라는 이름 그대로 다음세대인 청년들을 위한 교회연합모임이다.

JCAN은 지난 2004년에 시작돼 현재 부산지역의 30개 교회가 동참하고 있는 단체로, △지역교회 네트워크로 청년부흥을 이루고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기독청년을 양성하고 △지역사회를 주도하는 기독문화 창출과 △세계를 섬기는 선교자원 배출 등의 비전을 품고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JCAN이 펼쳐 온 사역들은 대략 이렇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소그룹인도자학교, 연합부흥회 등 ‘청년연합집회’와 크리스천리더십아카데미(CLA)와 비전 트립을 통한 ‘청년인재양성’, 볼링대회와 지역봉사, 연합임원수련회 등 ‘청년연합사역’ 등을 전개해 오고 있다. 청년사역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청년사역자 부부세미나, 청년목회클리닉, 사역자료 공유 등이 주요 사역이다.

사역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JCAN은 개교회의 청년·대학부 활성화와 미래의 교회와 세상을 바꾸는 인재를 키우는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또 하나의 모임이나 단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교회를 세우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것이 JCAN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현재 JCAN의 핵심사역은 크리스천리더십아카데미(CLA)다. CLA의 가장 큰 목적은 청년들에게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 그리고 청년들을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참다운 리더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강사를 섭외해 청년들에게 세계관을 심어 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CLA 과정을 관할하고 있는 박세광 목사(남도교회)는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 섬기고, 나누는 리더십으로 가정과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청년을 길러내는 것이 CLA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JCAN은 개교회 중심에서 교회 연합이라는 ‘인식전환’으로 한계에 부닥친 청년사역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뜻을 같이 하는 교회들이 연합해 청년들을 일깨우고, 양육해 궁극적으로 개교회 청년부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개교회주의라는 고착된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이 바로 JCAN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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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세대? 이제는 7포세대!, "결혼·출산·내집마련順 포기"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30/2015043002080.html





잡코리아가 조사한 2030세대가 포기를 생각해본 7가지 항목/그래픽=박종규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하겠다.”

청년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최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를 넘어서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세대’, 여기에 꿈,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 498명을 대상으로 ‘7포세대’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5.9%가 “일곱 가지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포기할 생각이 없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4.1%에 불과했다.

2030세대가 포기할 생각이 있는 것(복수응답)으로는 ‘결혼’이 전체 응답률 38.6%로 1위로 뽑혔다. 출산(33.2%), 내 집 마련(28.7%), 꿈(26.2%) , 원하는 직업 갖기(21.5%), 연애(16.1%), 인간관계(15.4%), 취미생활(14.7%), 여행(14.0%) 등도 순위에 들었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의견(46.3%)이 압도적이었으며, 꿈(28.0%), 내 집 마련(25.6%), 출산(21.9%), 연애(18.9%) 순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출산을 포기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40%였고, 결혼(33.7%), 내 집 마련(30.68%), 꿈(25.0%) 실제 희망 직업(23.8%)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33.2%는 지금 사회에서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이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29.2%), 허탈감으로 사라진 성취 의욕(13.8%),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서’(6.1%), ‘경쟁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1.4%) 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편, 7포세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사회구조가 바뀌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29.9%를 차지했다. 이 밖에 ‘국가 차원에서 청년들을 지지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 이라는 답변도 27.5%로 그 뒤를 이었다.

또 ‘경쟁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완화되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17.3%), ‘형편이 넉넉해지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13.4%), ‘개인적으로 정신력이 강해지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7.7%), ‘기성세대의 압박이 없어져야 한다(4.0%)’ 등의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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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포·4무의 청년들, 예수 만나야 해결”

7포 -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4무 -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

[인터뷰] 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홍석균 목사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91214



   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홍석균 목사

청년세대를 바꾸고 한 영혼을 터치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복음 밖에 없기에 복음과 예수를 전한다는 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홍석균 목사. 최근 그를 만나 청년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본인 소개와 사역에 관해 소개 부탁드려요.

“예수를 만난 감격으로 뜨겁게 예배하는 행복한 공동체, 또 예수를 만난 청년들이 뜨겁게 예수를 전하는 더 행복한 공동체 한성교회 ‘뉴액츠 청년부’를 섬기고 있는 홍석균 목사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든다’는 담임목사님(도원욱 목사)의 목회철학에 근거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청년부는 담임목사님이 말씀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해주는 주일오후예배, 한성교회가 배출한 찬양사역자 김윤진 간사 등이 인도하는 금요성령집회, 청년사역자들의 설교와 드라마 등으로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홀새 토요예배, 캠퍼스와 컴퍼니에서 장막을 세우자는 캠프어스 등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의 때는 세대에게 맞는 체계적인 신앙양육을 필요로 하기에 청년 비전, 청년 세계관, 청년 가치관, 청년 하나님의 나라, 청년 교리 등에 대해 자체적인 성경공부 콘텐츠를 시리즈로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10가지의 시리즈가 나왔는데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인 소명, 노동과 직업, 은사, 준비, 신앙, 중독, 세계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체계적인 양육 커리큘럼이 출판사에 소개되어서 출판도 하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청년부디렉터를 담당하게 되었나요?

“체육 교사의 꿈을 꾸고 준비하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다음세대였습니다. 기도 가운데 ‘다음세대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인가’ 고민 끝에 내릴 결론은 군대였습니다. 군인들이 제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훗날 그들이 가정을 이루면 가족 모두를 구원한다는 비전을 갖고 신대원을 졸업하자마자 군선교 현장에 뛰어들어 7년간 헌신했습니다. 서원한 기간을 마치고 지역교회로 나오게 된 곳이 한성교회였습니다. 청년사역을 마쳤기 때문에 교구 사역을 하려 했는데, 담임목사님이 저의 비전과 은사가 청년사역에 더 적합하다고 하셔서 청년부디렉터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 청년부디렉터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사역의 하루 시작은 새벽 차량운행입니다. 청년들에게 새벽기도훈련을 시키기 위해 집 앞까지 태우러 다닙니다. 그 청년들을 데리고 강대상에서 모여 청년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또 지금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하기에 캠퍼스 전도를 못 하지만 지난 학기까지 서울·경기권의 캠퍼스를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청년들을 만나서 심방하고 저녁에는 교회 가까운 역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저녁과 주말엔 성장반, 제자반, LTC과 같은 양육훈련을 합니다. 케어해야 할 영혼들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 사역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보람이 있나요?

“육체적인 한계로 인한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힘든 건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볼 때입니다. 취업의 문제로 불안해하는 청년들, 경제적인 문제로 좌절하는 청년들, 결손 가정으로 고통받는 청년들, 중독의 문제로 허덕이는 청년들,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하루는 한 청년 자매가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해서 교회로 도망 와서 살려 달라고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청년세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대입니다. 또 불완전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유일한 대안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고 외쳤을 때 그 예수를 만나서 변화되어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꿈이 없던 청년이 예수를 만나 꿈을 발견하고, 상처 많던 청년들이 치유되고 문제아였던 청년들이 회복되어 어느 날 결혼까지 해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볼 때 그것만큼 큰 보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코로나로 인한 사역의 변화들이 궁금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잃은 것이 많습니다.
첫째는 현장예배 기피현상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코로나가 터지고 난 뒤에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온라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져 갔고, 현장 예배가 재개되어도 온라인 예배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 청년도 있었습니다.
둘째는 전도의 동력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청년부에서는 캠퍼스와 역에 나가서 공격적으로 설문지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이슈가 된 신천지도 똑같이 설문지 전도로 포교활동을 벌여왔던 것이 드러나면서 청년들이 우리가 하는 설문지도 기피하고, 우리 교회를 신천지로 오해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또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면으로 하는 전도를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면서 전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화·목·금 일주일에 세 번은 전도를 나가고 있습니다.

얻은 것도 많습니다.
첫째는 미디어가 긍정적으로 활용 되었습니다. 대면 구조에서 비(非)대면 구조로 가게 되면서 저희 교회는 더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했습니다. 청년들 개인의 경건을 놓치지 않도록 유튜브로 아침마다 골방묵상을 들려주고, GBS 영상을 제작해서 리더들이 학습한 후에 화상회의 앱으로 소그룹으로 진행했습니다.
둘째는 몸으로서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제껏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조직으로서의 모습만 남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비대면의 구조로 갈 수 있는데 교회가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몸의 공동체로 갈 때만 교회가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대면 구조는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만나야 하는데 비대면 구조로 가면 하나님과의 만남도 멀어지게 됩니다. 관계중심, 몸의 구조를 가질 때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기에 리더들에게 몸의 공동체, 가족공동체를 가지려면 우리가 영적 어미, 영적 아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행사나 프로그램 등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행사들이 취소, 연기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이러한 때일수록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사역을 진행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6월 21일에 열릴 전도축제로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을 초대해서 복음을 전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너는 크게 자유를 외쳐라(사58:1)’라는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여름선교로 7월 셋째 주에 제주도 4개의 교회에 100명의 청년이 흩어져서 제주도 개척교회의 주일학교 사역과 찬양집회, 경로당 사역을 감당합니다.
셋째는 여름수련회입니다. 7월에 예정되었던 수련회가 코로나로 8월로 연기되었습니다. 더 잘 준비해서 청년들이 다시 수련회를 통해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홍대불금집회입니다. 음주가무의 문화에 취해 있는 홍대의 젊은이들에게 그곳을 하나님의 땅이라 선포하고 찬양집회와 스킷드라마를 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로 초청합니다. 격달로 한 번씩 가던 것을 코로나로 연기하게 되었는데 6월 둘째 주부터 재개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전도하는 사명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WINK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 WINK ©한성교회 홈페이지

- 전도축제에 대해 조금 더 소개 부탁드립니다.

“6월 20~22일에 열리는 전도축제로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담임목사님의 목회철학인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으로 예수를 만난 감격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더 큰 감격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전도축제의 모토입니다. 이번 주제가 ‘WINK’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사랑의 눈짓 ‘윙크’를 보내신다는 의미입니다.

연극 ‘시간을 파는 상점’, 연예인 간증과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나 태신자는 교회를 잘 모르니까 연극이나 조성모, 구자억, 알리, 류지광 등 연예인의 간증, 고백, 노래가 교회에 첫발을 내딛는 접촉점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21일은 청년행사로 이후에 팀별 모임을 통해 나들이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레크레이션을 하면서 새신자들이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어가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문화사역이 있다 보니까 청년들이 우리 교회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요즘 청년들의 영적인 정황은 어떤가요?

“오늘날 청년들이 ‘7포 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또 ‘3무 현상’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어서 무감각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무감각은 중독으로 기인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알코올과 니코틴, 음란물 중독에 이어 스마트폰에까지 중독되어서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을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잘살고 싶어 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7포 현상’과 ‘4무 현상’으로 인해서 청년들이 점점 나락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사역하면 할수록 더 절실히 느끼는 거지만 이들을 살릴 방법은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대안은 오직 예수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해결된다고 확신합니다.

또 하나의 대안은 한국교회가 좋은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를 만날 때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날 때 끝이 납니다. 이처럼 청년들이 예수를 만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 청년들이 건강한 교회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모판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상반기에 이단과 음란의 문제, 그리고 동성애 등이 이슈였는데요.

“청년들이 이런 문제에 고민하고 있을 때 교회가 잠잠하지 않고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관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신천지에 대한 대처,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하나님의 심판인가에 관한 물음, 이태원 사건 등으로 동성애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 성경적으로 그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성경적으로 답을 찾아주려고 했습니다.”

- 하반기에 중점을 두거나 기획 중인 사역이 있나요?

“청년들의 고민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비전과 진로에 관한 문제, 이성 교제와 결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첫 번째 비전과 진로는 청년들이 비전이 불분명하니까 미래에 대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으로 비전에 관해 나누고 가을에 하는 ‘비전박람회’를 통해 비전을 발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다 목사, 선교사가 되는 게 아닌데 자기 분야에서 부르심의 확신을 위해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50개의 직업군을 나누고 교회 내에서 사회적으로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강사로 세워서 신앙인으로서 비전을 어떻게 이뤄가는지를 제시해 주고, 전문성에 대한 멘토링을 연결해 줍니다. 본인의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선배들의 좋은 모델을 보면서 다시 확신을 가지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알게 되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 비전박람회를 통해 직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직업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비전을 찾도록 했는데 청년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 어떤 직업군에 관심을 많이 가지나요?

“교회에 김윤진 간사님, 박지현 전도사님 등 찬양인도자가 많이 배출되다 보니 찬양인도자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 청년이었는데 교회에서 은사를 가지고 봉사하고 잘 훈련되어서 찬양인도까지 하게 되고, 후배들에 대해 더 애착을 두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청년들의 건강한 이성 교제를 위한 ‘돕는 배필 만남 학교’가 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욜로족’이라고 해서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진 청년들에게 크리스천 가정관을 소개해서 건강한 가정, 믿음의 가정을 꿈꾸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성 교제를 안 했던 청년이 믿음의 가정에 대해 소망하거나 반대로 교제를 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 가정관이 아니구나’를 깨닫고 정리가 되고, 크리스천인데도 성적 관계에 죄의식을 갖지 못하다가 회개하고 결단하고 돌이키는 일도 있습니다. 건강한 성적인 문화를 잘 가르쳐야 하는데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다 보니까 짚어주지 않으면 ‘당연하다,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짚어주었을 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외쳐야 되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비전관, 이성관, 물질관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비전은 있지만 재물관이 무너져 있으면 비전은 다 사라져 버리고, 비전이 있지만 가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비전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가정에 아픔이 많습니다. 결혼 안 하겠다는 청년들은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많아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정을 꾸리지 않고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면 과거의 아픔이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나도 가정의 아픔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선하게 바꾸셨으니 믿음의 가정을 소망하라’고 저의 아픔과 아픔 속에서 회복된 가정을 소개해주니까 청년들이 꿈을 꾸게 됩니다.

또한 믿음의 배필을 만나려면 심각하게 고독해 봐야 합니다. 아담은 고독해 봤습니다. 동물도 수컷과 암컷이 있고, 꽃도 암술과 수술이 있는데 아담만 혼자였습니다. 외로워 봤기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배필을 주셨을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고독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때 배필을 만나게 되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청년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비전이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는 어릴 때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또 경제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고 돌아와서는 다시 파출부로 일하셔야만 자녀들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열등감이 많았고, 겁쟁이였고 청소년기에 탈선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저의 피난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에만 가면 먹을 것이 있었고, 선생님의 사랑이 있었고, 선배들의 충고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기에 넘어져도 교회에서 넘어졌고, 쓰러져도 공동체에서 쓰러졌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과거보다 더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결핍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냉대받고, 배척당하기도 합니다.

첫째는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 또한 청년 때에 막막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 때문에 두려웠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더욱 성전에 나와 철야하면서 기도했고, 목회자로의 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엘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을 세우는 다윗을 기름 붓게 되었듯이 성전에서 제단 뿔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비전과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둘째는 균형 잡힌 영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영성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 신앙과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준비되길 바랍니다. 아무리 신앙이 있어도 세상의 학문과 기술을 갖추지 못한다면 신앙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모세도 애굽의 학문을 잘 익혀서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고, 요셉도 다니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분야로 쓰임 받았던 것처럼 균형 잡힌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올 한해 목사님의 기도제목과 비전이 궁금합니다.

“청년부의 기도제목은 1,000명의 예배자가 빨리 세워져서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예배자가 되어 그들의 전문성을 가진 현장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퀴어축제도 신실한 크리스천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열리지 않았을 텐데 청년들이 훈련을 잘 받아서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개인의 기도제목은 가정과 사역에 균형을 갖추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첫째 아들(중2)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에게도 청년을 대하듯이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사역을 열심히 하지만 가정에서 아버지로 또 남편으로서 바로 서 있지 못한다면 사역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엔 사역이 늦게 마쳐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들에 더 관심을 두고 매진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은 다음세대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다음 20년 3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건강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섬길 것입니다.

개인의 비전은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서 양육 콘텐츠나, 청년들에게 맞는 전도 콘텐츠를 잘 만들어서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청년 사역을 하는 교회에서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양육을 해야 하는지’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자체적인 전도프로그램과 양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콘텐츠를 잘 소개해서 한국교회가 도움받고 혜택을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 - 재앙


인도 도심도 점령한 메뚜기떼 “알 20개, 1년만에 10만마리로”

https://news.joins.com/article/23800807?cloc=joongang-home-toptype1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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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인도 자이푸르시가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인도 서북부인 라자스탄 주의 자이푸르시. 건물 옥상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메뚜기떼가 가득 찼습니다. 계단과 건물 벽에도 메뚜기떼가 새까맣게 붙어 있고요.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떼의 모습은 마치 성경 속 메뚜기떼의 재앙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애니띵] 메뚜기 농장에 가다
풀무치, 벼메뚜기보다 몸집도 식성도 3배
엄청난 기동성 “잡으려니 강 건너로 날아가”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창궐한 메뚜기떼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퍼져 닥치는 대로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있는데요. 현지에서는 최악의 식량난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큽니다. 
 
도대체 메뚜기의 식성과 번식력이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걸까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식 '끝판왕'…“20개 알이 1년 만에 10만 마리로”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벼메뚜기. 공성룡 기자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기자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메뚜기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40만 마리의 메뚜기를 키우고 있는 곳이죠. 사육동 옆에는 메뚜기에게 먹일 밀을 키우는 밭이 있습니다.
 
농장 대표인 복현수(36) 씨를 따라 비닐하우스 내부의 실내사육장으로 들어가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메뚜기떼가 여러 개로 나뉜 그물망 안에 있었습니다. 입구 바로 앞의 그물망에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메뚜기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벼메뚜기예요. 식용 곤충으로 30만 마리 정도 사육하고 있어요.” (복현수 대표)

 

대형 메뚜기종인 풀무치의 모습. 공성룡 기자

사육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가니 벼메뚜기보다 2~3배는 커 보이는 다른 메뚜기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프리카와 인도를 휩쓸고 있는 메뚜기떼의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였죠.
 

“풀무치라고 부르는 대형 메뚜기인데 아프리카에 피해를 주고 있는 사막 메뚜기와 비슷한 종이에요. 벼메뚜기보다 3배나 더 먹기 때문에 성장이 굉장히 빠르고 번식력도 강하죠.” (복현수 대표)

 

풀무치가 먹이를 먹는 모습. 공성룡 기자

그가 그물망 안에 밀을 가득 넣자 풀무치들이 순식간에 달라붙어 잎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금세 풍성했던 잎은 사라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더군요. ‘순삭’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였죠.
 
복 대표는 “태어난지 한 달 만에 성충이 된 풀무치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풀을 먹으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번식한다”며 “작년에 알 스무개를 받아서 사육을 시작했는데 올해 안에 10만 마리까지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뛰어난 기동성 "잡으려니 강 건너로 날아가"

왼쪽부터 대형 메뚜기종인 사막 메뚜기와 풀무치. 떼를 이루면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종이다. 공성룡 기자

실제로 사막 메뚜기와 풀무치는 유사한 생태적 특성을 가진 대형 메뚜기 종입니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종이기도 하죠. 
 
사막 메뚜기는 아프리카 사막 지대에, 풀무치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주로 서식하고 있습니다. 1㎢ 면적의 무리가 하루에만 3만 5000명분의 식량을 해치울 만큼 엄청난 식성을 가지고 있어요. 
 
메뚜기떼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엄청난 기동성 때문입니다. 벼메뚜기 같은 작은 메뚜기는 좁은 지역에 머물지만, 대형 메뚜기들은 날개를 이용해 하루 최대 150㎞까지 비행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메뚜기떼가 서식하기 좋은 덥고 습한 환경이 형성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하게 불어나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을 일으키고 있죠.
   

“실제로 풀무치를 잡으려 했더니 날아서 강을 건넜을 정도로 대형 메뚜기는 이동성이 강해요. 척박한 곳에 살다가 서식 환경이 좋아지면서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났고, 원래 있던 지역이 숫자를 감당할 수 없다 보니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본능적으로 이동하는 거죠.”(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 

 

파키스탄, 메뚜기를 닭 모이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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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파키스탄에서 농부들이 메뚜기떼를 막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AP=뉴시스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나라들도 메뚜기떼를 퇴치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어요.
 
인도 당국은 피해 지역에 메뚜기 대응 전문팀과 소방관을 파견했고, 차량과 드론을 동원해 살충제를 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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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인도 자이푸르시가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파키스탄은 메뚜기를 잡은 뒤에 사료를 섞어서 닭 모이로 만드는 시도도 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메뚜기떼의 규모가 워낙 커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단백질이 풍부한 메뚜기는 식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국내에선 벼메뚜기는 말려서 식품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형 메뚜기 종인 풀무치는 현재 식용화를 위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아라비아반도의 예멘도 메뚜기를 요리해 먹는데요. 하지만 요즘처럼 대규모의 메뚜기떼가 창궐하는 시기에는 독한 살충제를 뿌리기 때문에 오히려 메뚜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심해지는 대형 메뚜기떼의 습격,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영상=공성룡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중국이 보는 대만과 북한


중국이 보는 대만과 북한 

안용연 특파원 2013.06.20 03:0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9/2013061903244.html?gnb_opi_opi01

 

중국 사람에게 "한반도가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이라고 말하면 일부는 고개를 갸웃한다.
대만과 나뉜 중국도 '분단국'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내건 '중국의 꿈(中國夢)'에서도 대만 통일은 중요한 꿈이다.
그가 중국의 부흥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시 주석은 이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통일을 언급했다.
그러나 '대만 문제'는 양국 정상이 견해차를 보인 대표적 주제였다.
시 주석은 "대만에 무기를 팔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만 국방부는 시 주석이 떠나자마자 미국 측에 무기 판매를 요청했다.

반면 '북한 비핵화'는 양국 정상이 의견 일치를 이룬 대표적 주제였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북한 비핵화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중국 입장에서 북핵(北核)은 대만 통일과도 관련 있는 문제다.
북한 핵 보유가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로 이어져 대만까지 핵무기를 가질 경우, 중국에는 악몽(惡夢)이 된다.
통일을 방해할 '대못'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은 원전(原電) 3곳을 가동 중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민진당) 지지율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썼던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 덩위원(鄧聿文) 전 부편집장의 글에도 '대만'이 등장한다.

그는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면 한·미·일 동맹을 와해하는 데 유리하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것이며 결국 대만 문제 해결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대외 정책의 키워드는 '핵심 이익'이다.
지난 1월 시진핑 당시 총서기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 "핵심 이익에 대한 거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만이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문제처럼 중국의 영토·주권과 직결되는 사안을 '핵심 이익'이라고 한다. 이런 기준에서 북핵 문제는 동아시아 핵 도미노로 이어지기 전까지 중국의 '핵심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이 당장 무너져 국경 영토가 혼란해지는 상황을 더 우려할 것이다.

중국이 국경을 맞댄 나라는 14개국이다. 이 중 중국과 전통적으로 가까운 나라는 북한과 파키스탄뿐이다. 북한은 미국 견제 차원에서, 파키스탄은 인도 견제 차원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대북 전문가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중국 국력이 미국을 압도하거나 대만·북한을 놓고 미국과 '딜(거래)'이 성사됐을 때"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 내부에 '반북(反北) 정서'가 퍼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訪中) 계획이 맞물리면서 국내 일각에선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란 낙관적 기대 심리가 부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가장 원하는 건 '핵이 없는 친중(親中)적 북한'이다. 중국에 '북한 비핵화'와 '북한 포기'는 아직은 별개다.  


안이숙 - 죽으면 죽으리라

안이숙 - 죽으면 죽으리라

‘살아 있는 순교자’로 알려진 안이숙은 1908년 평안북도 박천에서 무역상을 경영했던 부호 안중호의 넷째 딸로서 팔삭동이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상당한 재력으로 풍요롭게 자라난 그녀는 아들이 없어 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불협화음을 경험하며 자라게 된다.

 

 

자라면서 총명이 남달리 뛰어난 안이숙은 박천 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평양 서문여고를 졸업한 후에 그 당시 보통 사람들로는, 더구나 여자의 몸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본 유학을 떠났으며, 일본 경도여전과 귀족학교인 동경 가정학원 연구과를 졸업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 후 안이숙의 사역과 생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이숙이 21세가 되던 1929년에 귀국하여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 교원으로 임용되어 근무했고, 1937년에는 평북 선천 사립 보성여학교에서 음악 및 일어교사로 교편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일제 말엽인 1939년 전교생이 합동으로 신사에 가서 행했던 신사참배시 의연히 꼿꼿하게 하나님 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절을 하지 않는 믿음의 절개를 보이며 신사참배를 거부한 후 신의주에 사는 제자의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

 

일본 형사의 눈을 피해 신의주 근교로 피신하던 중 “평양성으로 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평양에 가게 된다. 거기서 평남 개천읍 십자의원의 의사인 박관준 장로를 만나 하나님의 대사로서 1940년 2월, 귀신의 땅 일본에 건너가서 위정자를 위시한 장관들을 만나 일본의 망국행동을 경고하고 그들의 한국 기독교 박해에 항의했다. 또한 제 74회 일본제국회의 때 의사당에서 ‘일본은 유황불로 망한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사명을 전하고 그 자리에서 체포 투옥되어(일본 국회의사당 수위가 쓴 기록에서 이날 사건이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음) 평양형무소에 이감 후 6년의 옥고를 치렀다.

 

 

안이숙이 세상에 알려진 연유는 바로 옥중생활에서 착한 양 착한 목자로서 주님의 참사랑을 몸소 실행한 것이다. 주님은 안이숙을 통해 각색 죄수들과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시키셨던 놀라운 사건들이 <죽으면 죽으리라>에 실려 있다.

 

이러한 안이숙의 꼿꼿한 신앙은 일찍이 미국 선교사로부터 말씀공부를 배운 어머니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죽으면 죽으리라>에 나와 있듯이 안이숙 어머니의 신앙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 옥중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평양형무소의 추위는 안이숙의 눈을 얼게 할 정도로 혹독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고름이 나오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실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군의관의 배려로 일시 출감하여 치료할 수 있었는데, 이때 면회 온 안이숙 어머니의 말씀은 우리 가슴을 무척 감동케 한다.

 

여기 안이숙 어머니가 그 당시 말씀하신 내용을 소개한다.

 

“얘! 너 왜 눈을 위해 염려하니? 네가 네 생명을 주님께 바쳤을 때 넌 네 눈도 같이 바치지 않았느냐?”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감을 느꼈다.

“아무렴요. 눈도 바치고 모든 것 다 바쳤어요. 어머니! 알았어요.”

“주님께 일단 드렸으면 주님의 것이지 네 것이 아닐 게 아니냐? 주님께 한번 바친 네 몸과 네 생명은 주님이 알아서 잘하실 것인데, 너는 왜 네 것같이 염려하며 네 재간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주님이 그 능한 지혜로 다 좋게 하시는 것인데, 너나 내가 눈이 어두워야 좋을 것인고로 어둡게 하시는 것이 아닐까? 주 목사님은 도라홈으로 벌써 눈을 못 쓰게 되셨고 그로 인해서 더 충성하시는 것 잊어버렸냐? 사도 바울도 눈에 가시 때문에 순교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 눈을 뜨고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마음이 더 상하는 것보다 눈을 감고 아무 것도 안 보는 것이 너를 위해서 좋은 것인 줄 생각해 본 일이 없지?”

 

나는 이러한 위대한 대선생이 내 어머니인 것에 또 한번 탄복했다. 언제나 그는 내게 이런 대선생이었다. 주는 내게 합당한 신앙 모범의 어머니를 주셔서 지금까지 나를 기르시고 권면하시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자! 우리는 용사들인데 무엇 눈 같은 것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겠어요. 자, 어머니 진정하세요. 저도 용진 맹진하겠어요.”

그리고 바라만 보고 섰던 여간수와 부장과 남간수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제 갈 곳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하고 사무소를 나왔다. 여간수는 기가 막혀서

“나는 세상에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 봐요. 딸도 딸이지만 어머니는 더하시는군요.”


 

그 당시 안이숙과 함께 옥중생활을 했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이기선 목사, 이광록 집사, 박관준 장로, 박신근 집사, 이인재 전도사, 조수옥 여집사, 최덕지 선생 등등과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최봉석 목사(최권능 목사), 그리고 위대한 설교자 주기철 목사이다.

 

‘아! 용사여! 신앙의 용사들이여! 참 장하고 존귀하여라!’

 

1945년 사형집행 몇 시간을 앞두고 안이숙은 8.15 광복과 함께 8월 17일 출옥했으며, 194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미국에서 김동명 목사님과 결혼했고, 미네아 폴리스에 있는 서북대학에서 영어와 음악공부를 마친 후, 텍사스 서남 침례신학교에서 기독교 교육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그 학교에서 교회음악을 연구했다.

 

1957년 미국 남침례교 국내선교부에서는 김동명 목사를 미국 선교사로 파송했으며 김 목사님은 Berendo Street Baptist Church를 개척하게 되며 이때 한 설교가 그 유명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교회 개척 이후 참으로 아름다운 간증이 많이 있는데, 이는 <죽으면 죽으리라>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안이숙이 미국으로 건너간 지 20년 만인 1968년에 귀국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를 출간했을 때 한국 교회 안팎에 큰 충격을 주었고 장기 베스트셀러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1976년에 그 후편 <죽으면 살리라>를 출간했으며, 1989년에는 또다시 <당신은 죽어요 그런데 안 죽어요>를 출간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전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후 1990년 <그럴 수도 있지>, <낫고 싶어요>, <솔직한 노래>, <자랑이 되는 자랑>, 1993년 <信情>, <지나가는 순례자>, 1995년 <온 세상 내 세상> 등 총 10편을 저술했다.

 

이후 1995년 11월 안이숙 사모님과 김동명 목사님이 힘을 모아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새누리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1997년 10월 18일 미국 나성의 선한사마리아병원에서 89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나성 Hollywood Memorial Park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다.

 

“주님을 위하여 일제 밑에서 6년 간 옥고, 사형을 앞두고 출옥한 실격한 순교자. 죽으면 죽으리라(If I Perish, I Perish) 죽으면 살리라(If I Perish, I Live).”



 

<죽으면 죽으리라 안이숙 이야기> pp27~36, 안이숙 저, 기독교문사,

 
자료 출처 /  안이숙 죽으면 죽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