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학당 #.4(하나님의 이름 원고 1) / 07-01-20 이승혁목사

하나님의 이름(시편 9:10, 잠언 18:10)

수요성서학당에서 함께 나누었던 주제들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첫번째 주제는 "세례(洗禮)"
물세례(회개와 구원의 표시)
성령세례(생명과 보증의 표시)
불세례(심판과 구분의 표시, 알곡과 죽정이)

두번째 주제는 "죽음(死亡)"
육체적 죽임(육체와 영혼의 분리)
영적 죽음(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단절)
영원한 죽음(심판 때에 지옥 형벌, 둘째 사망)

세번째 주제는 "천국(天國)과 지옥(地獄)"
지옥에 대한 표현으로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곳" "어둠"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표현을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상징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불이 꺼지지 않는 곳에 어둠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성령의 역사가 나타는 곳이라고도 합니다.

마태복음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오늘은 네 번째 주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이 먼저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셨고 아담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존재가 있은 후에 이름이 정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름이 있다는 것은 곧 존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한다.
성경에서 주의 이름을 가장 잘 알았던 인물 중에 다윗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습니다.
온 이스라엘 나라에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용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싸움터에 나갔던 용사가 아닙니다.
전쟁터에 나간 형들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심부름군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블레셋 진영에서 아주 거대한 장군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나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용사가 없느냐?
너희들이 섬기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와서 나와 겨루어 이기는 자의 신이 참신이 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무도 적군의 장수와 맞서지 못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심부름은 잊어버리고 내가 나가서 싸울 것이라며 앞으로 나갔습니다.
진두지휘를 하던 사울 왕은 자기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혀보려 했으나 너무 커서 입을 수도 없었습니다.
창과 방패를 주었으나 다윗은 도저히 휘두를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평소에 사용하던 물맷돌을 들고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다.

사무엘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David said to the Philistine, "You come against me with sword and spear and javelin, but I come against you in the name of the LORD Almighty, the God of the armies of Israel, whom you have defied.

결국 다윗이 이겼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은 처음부터 무리수를 두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영에서 아무도 맞설 수 있는 용사가 없었기 때문에 다윗이 나섰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싸움에서 사용하는 칼과 창과 단창이 아닙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당시 이스라엘 진영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었을까요?

* 시편 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Those who know your name will trust in you, for you, LORD, have never forsaken those who seek you.

아는 것은 의지할 때에만 힘을 드러낼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례 1)

아프리카 원주민 선교를 하던 미국 선교사가 다급하게 선교본부에 동영상을 보내고 해결책을 요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원주민 아이들을 주일마다 선교사 집으로 불러모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맛 있는 음식과 간식을 제공했는데 어느 주일에는 원주민 아이들이 모이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는가 확인하려고 마을로 가는 중에 아이들이 오는 길 중간 쯤에서 마을의 무당이 공중부양(levitation)이란 신기한 모습을 하며 아이들을 선교사에게 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선교사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비데오 촬영기를 가져다가 그 모습을 촬영한 후 선교 본부로 보냈습니다.
선교부에서는 여러 직원들과 목사 선교사들이 모여 그 동영상을 보며 대책을 강구하는데 별로 신통한 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선교사의 아들이 그 동영상을 보더니 "예수 이름" 하면 될텐데.........하더랍니다.
그 아이의 말을 듣고 당장 선교사에게 연락하여 예수 이름을 주장하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 아침 선교사가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여전히 아이들은 공중부양을 하는 추장을 지켜보며 신기하게 바라봅니다.
선교사는 그 추장을 향하여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자 추장은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모두 선교사 집으로 모여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례 2)

한번은 대학의 친구들과 후암동 어느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어느 길가의 집에서 굿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로 건너편에서 그 굿을 보면서 마음 속으로 서울에서 아직도 저런 굿판을 하는 사람이 있구나!
주여, 저 무당이 굿을 하지 못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굿을 하던 무당이 집주인에게 물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들을 가져오게 하더니 물을 가득 담은 후에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물을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때문에 신이 오지 않는구나! 하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적용)
다윗의 시대에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을까요?
온산에서만 하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을까요?
저는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아니라고 믿습니다.
오늘날도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다만 주를 믿는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아는 것은 아는 것이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아는 것은 믿는 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는 것을 믿는 것으로 확신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말씀을 소개합니다.

* 잠언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The name of the LORD is a strong tower; the righteous run to it and are safe.

- 견고한 망대(Strong Tower)를 "안전지대"라고도 합니다

시편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Because of the oppression of the weak and the groaning of the needy, I will now arise, says the LORD. I will protect them from those who malign them.

견고한 망대와 같은 안전지대에 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8:10 -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달려가야 합니다.

시편 12:5 - 탄식을 인하여(the groaning)

* 출애굽기 2: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During that long period, the king of Egypt died. The Israelites groaned in their slavery and cried out, and their cry for help because of their slavery went up to God.

탄식하는 사람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달려가서 부르짖는 일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점점 상황이 심각해 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6월 22일 세계적인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 전체 감염자의 수는 904만 5천명, 사망자는 47만 1천명
미국의 경우는 235만 7천명, 사망자는 12만 2천명이라고 합니다.

6월 28일 오후 6시 30분 현재
미국의 감염자 수 263만 1천 724명, 사망자 수 12만 8천 412명
뉴욕의 감염자 수 41만 6천 562명, 사망자 수 3만 1천 483명
뉴저지의 감염자 수 17만 6천 354명, 사망자 수 1만 5천 118명

여름철이 되면 다소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깨우치는 말씀은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며 도저히 자기들의 힘으로 애급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때 탄식하며 부르짖었을 때 그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했던 것처럼 오늘날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탄식하며 부르짖는 그리스도인들의 소리가 하늘  보좌에 상달하려면 여호와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다윗과 같이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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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산에서 교회를 시작 할 때 마을을 장악하고 있던 서울 무당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을에 450년 된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 소나무가 사라호 태풍이 불어왔을 때 마을은 모두 물에 잠겼는데 유일하게 소나무는 당당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마을을 지키는 당수나무로 마을 사람들이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사라호 태풍
1959년 제14호 태풍으로,  1959년 9월 12일에 발생하여 9월 17일 3등급 세력으로 한반도를 관통하였다.
아직도 노인들 특히 경상도나 제주도 지역 노인들에게는 역대 최악의 태풍으로 기억된다고 한다.
특히 9월 17일은 추석이어서 일기예보 같은 것도 없던 시절에 아무 것도 모르고 차례 지내다가 휩쓸려버린 집도 많다고 한다.
차례상이고 뭐고 내버려두고 허겁지겁 도망쳐서 집이 휩쓸리고 마을이 무너져 버린 후에야 태풍인 줄 알았다고.
경상도 지방의 어르신들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아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호'라고 하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그 당수나무 옆에 당시 부산 대성교회 여전도회에서 70평 정도의 땅을 구입하고 교회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당수나무 옆이라 마을 주민들은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는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문제는 땅 주인은 땅을 팔았으나 주민들을 당수나무 옆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도저히 그곳에서 교회를 할 수 없다며
개척 지원을 받고 시작했던 서기태목사님은 부산으로 사역지를 옮겨버렸습니다.
마침 제게 연락이 와서 주말에 내려가서 설교만 하고 올라오기로 하였는데 결국은 첫 목회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마을을 장악하고 있던 서울무당이 마을 주민들을 선동하여 마을을 지키려면 큰 굿판을 벌여야 한다며 당시 2-300만원의 비용을 요구한 것입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그런 돈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축소하여 작은 굿판을 벌였는데 무당이 몇날을 굿판을 벌이다가 예수신 때문에 마을 수호신이 당수나무를 떠났다고 하며 그 마을에서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