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교회를 세우려면






목회기획 / 다시 뛰는 청년목회 ①  청년사역, 무엇이 문제인가

역할은 많은 데 존재감은 없다
경직된 교회문화 청년세대 관계 단절 불러… 먼저 소속감 심어줘야


 
‘10년새 청년부 60만명 감소, 청년층 종교 이탈률 1위, 비종교인 청년 종교선호도 3위’
대학생선교단체 간사들은 “2000년에 비해 선교단체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청년목회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청년은 짧게는 10년 뒤 한국 교회의 영적 수준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에 이들의 이탈은 교회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청년목회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현장과 전문가를 통해 대안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20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는 교회는 무엇이며, 왜 발길을 끊는 것일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독대학인회(ESF) 관악지부를 찾았다.

내가 생각하는 교회는

 
이다. 
지현성(경인교대·21) : 집/ 익숙하지만 때로는 그곳에서 탈출하고픈 생각이 든다. 가정 내 문제점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

강지훈(숭실대·21) : 기업/ 요즘 교회는 사회의 기업체 같다. 특히 대형화 물량화가 큰 문제점이다.

김의중(서울대·24) : 미꾸라지가 있는 연못/ 교회는 원래 깨끗한 연못이다. 그러나 몇 마리 미꾸라지 같은 지도자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는다.

김경환(숭실대·21) : 그래도 희망/안티에게 묻고 싶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이며, 세상에는 희망이 있는가?

정성현(경인교대·21) : 기도하는 집/ 교회는 봉사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신앙의 본질을 다루는 곳이어야 한다.

요즘 청년들은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종 부조리와 맘몬사상에 물든 교회를 보며 “본질을 되찾으라”고 질타를 하고 있다. “교회는 그래도 희망이다”라는 말처럼 이 시대 청년들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교회 내 청년은

 
존재이다.  
지 :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교회에서 가장 많은 봉사를 하는 존재가 바로 청년이다. 청년은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강 : 눈치 보는/ 청년이 무엇을 하려고 하면 위에서 막는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모두 허락을 받아야 하고, 이것은 청년부를 경직시키는 원인이 된다.

중 : 돈먹는 하마 & 황금알 낳는 거위/ 지금 당장 직업이 없기에 교회의 투자와 지원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에 보석같은 존재이다.

환 : 윤활유 같은/ 우리의 열정을 보고 도전 받는 성도들이 많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앙생활의 윤활유가 된다.
정 : 슬픈/ 같이 고민하고 비전을 공유할 청년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 내부의 문제나 세상의 유혹으로 교회를 떠나는 청년을 보면서 이들은 스스로를 ‘슬픈 세대’라고 규정한다. 청년목회 붕괴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역동성이며, 윤활유이다.

나는

 
때문에 교회 가기 싫다. 
지 : 어색함/ 리더가 자주 바뀌어 어색하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리더와의 어색함 때문에 교회에 다니기 싫다. 자주 바뀌는 셀모임도 문제가 있다.

강 : 강요하는 분위기/ 헌금, 새벽기도, 봉사를 강요하는 분위기가 싫다. 부모님께서 교회에 가자고 강요할 때도 싫다.

중 : 기복적인 설교와 삶의 문제/ ‘~하면 복받는다’식의 기복적인 설교가 너무 흔하다. 이런 설교는 내용도 뻔하다. 또한 취업 공부에 쫓겨 시간이 없을 때 교회에 가는 게 망설여지기도 한다.

환 : 가벼운 관계와 죄의식/ 대형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소속감과 관계성이 너무 약하다. 개인적으로 죄의식 때문에 교회를 피할 때가 있다.

정 :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 봉사가 너무 많아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다. 대학생활에 자유가 필요하다.

“뻔한 설교, 특히 기복적인 설교가 싫다”는 말 속에는 담임 목사나 담당 교역자의 불성실한 설교가 청년의 귀를 막는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절반이 백수인 이때, 학업과 진로준비 때문에 교회를 이탈하기도 하며, 교회의 어색한 분위기가 청년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청년사역자의 잦은 교체와 무조건적인 믿음 강조도 청년의 이탈을 부추기는 원인이 된다. 미디어로 관계성이 단절된 청년세대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주는 사역이 필요함을 엿볼 수 있다.

청년부가 부흥하려면 내·외적으로

 
개선(도입)해야 한다. 
지 : 관계망과 교제, 긍정적 인식 회복/ 내부적으로는 교제를 확대해 관계성을 돈독히 해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긍정적 인식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 : 형식적인 설교와 권위적인 관계, 전도방법 개선/ 내부적으로는 지루한 설교와 형식적인 예배, 권위적인 관계를 탈피해야 한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과 같은 무모한 전도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중 : 다시 복음으로, 세상과 소통/ 사람이 아닌 복음이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시 복음으로’라는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외부적으로는 진리를 전파하는 통로가 필요하다. 문화사역뿐만 아니라 지성의 영역에서도 소통의 언어가 필요하다.

환 : 시대에 부합하는 설교, 프로그램/ 청년이 안고 있는 문제(취업, 이성, 불확실성)를 말씀으로 풀어가는 설교가 갈급하다. 외부적으로는 초신자들도 헌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정 : 일대일 케어, 교회 교류/ 내부적으로는 일대일 관계가 필요하다. 한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맨토링을 실시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 중에 하나가 ‘내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개인주의다. 기독교가 살아남으려면 교회간 교류가 확대되어야 하며, 특히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들을 섬거야 한다.

종합해 보면, 청년은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존재로 남아 있다.

한국 교회에서 청년목회가 다시 회복되려면 소속감을 심어주고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즉 이시대의 청년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목마르기 때문에 이들의 갈급함을 채워줘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자주 바뀌는 청년 교역자에게 안정적인 사역을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전도의 길을 막는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특히 교회 내부에서 불거지는 문제는 청년 전도에 치명상을 주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2005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995년에서 2005년까지 전체 기독교 인구는 143,898명이 감소했다. 청년과 관련하여 조금 더 세밀하게 분석해 보자. 1995년에 10~24세였던 기독인들은 2005년에는 20세에서 34세가 되었다. 이 시기에 해당 연령대의 기독인은 597,619명이 감소하였다. 이 통계는 다른 연령층의 기독교인 인구에서는 성장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60만에 이르는 청년층은 기독교에서 대거 이탈하였다. 청년층의 감소율은 평균 감소율보다 4배가 넘는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통계는 교회가 청년목회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해 주고 있다.
청년목회의 실패 요인 중에 하나는 교회가 청년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한 것이 아닐까? 많은 청년들은 성장 과정에서 IMF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거나 무너진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극심한 삶의 혼란을 겪고 있다.

‘벼랑 끝의 대학생들’ ‘그들에겐 봄은 없다’ ‘청년백수 탈출기’ 상처 입은 세대, 척박한 삶과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열등감과 패배감과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세대, 우리 청년들의 자화상의 일면이다. 많은 청년들의 삶의 자리가 너무 척박하다.

물론 일제시대와 6.25 그리고 군사 독재 시대에 비추어 보면 오늘날 청년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그리 대수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기독교와 교회가 소망이 되고 대안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들에게는 기독교와 교회가 더 이상 대안으로 비쳐지고 있지 못하다. 여기서 기독교적 차원에서의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청년들의 아픔과 눈물과 고통을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 그들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대안을 만들어 낼 제대로 된 기독교 청년 연구소 하나가 있는가? 교회는 청년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의 문제와 필요를 공감하고 대안을 만들어 주는데도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발달 심리학에서는 청년기의 중요한 발달 과제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정체성의 형성, 직업의 준비, 결혼의 준비가 그것이다. 직업과 결혼이 향후의 인생을 위한 눈에 보이는 준비라면 정체성의 형성은 향후 인생을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이면서도 직업과 결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입시에 올인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정체성의 형성은 대부분 청년의 시기(대학생)에 이루어진다. 청년의 평생의 삶의 기초가 되는 정체성의 형성에 신앙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청년의 시기에 신앙에 기초한 정체성이 분명히 형성할 때 세속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평생 살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목회는 청년 한 개인의 평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청년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와 한 나라의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세대이다. 오늘만 좋은 교회는 소망이 없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교회야 말로 소망이 있는 교회다. 청년들은 내일의 교회를 만들어 갈 주역들이고 교회의 미래이다. 이렇게 중요한 청년목회를 전문성이 없는 사역자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청년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가 없는 사역자가 청년대학부를 맡는다는 것은 청년들에게는 큰 비극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교회는 청년 사역의 전문가를 길러 내야하고 청년 사역자가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적극 투자해야 한다.

나의 삶이 곧 전도 ‘신행일치’ 강화하라

전체 교인 중 80%가 청년… 경건훈련·제자도로 끊임없이 변화




▲ 빛과진리교회 청년들이 캠퍼스 전도에 앞서 합심기도를 하고 있다.
토요일 오후, 빛과진리교회(김명진 목사) 예배당 안은 1000명의 청년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골드타임’이라고 불리는 주말 오후에 청년들이 교회로 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요즘 청년문화를 분석해 보면 소셜네트워크와 정보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관계를 넓혀가지만 정작 진솔한 만남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미디어를 통해 많은 지식을 접하지만 참된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끊이지 않습니다.” 김명진 목사의 말이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인맥과 지식의 지경이 넓어지는 것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영적 관계성 고갈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뜻이다.

빛과진리교회는 청년들의 갈급함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기에 주위 사람들은 이 교회를 ‘청년교회’라고 부른다. 전체 교인의 1000명 중 80%가 청년이기에 당연한 소리다.

빛과진리교회 청년목회가 부흥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동력이 있다. 첫 번째는 진리에 대한 공급이다. 빛과진리교회는 매일 오전 6시에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 일반 교회는 새벽예배나 기도회이지만 이 교회는 아침마다 전 교인이 참석해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단순히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중심으로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계획하기에 삶에서 영향력 있는 성도가 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진행하는 ‘토요모임’도 핵심은 말씀을 통한 진리탐구에 맞춰져 있다.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신앙생활은 무엇인지, 영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또 다른 원동력은 실제 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제자도’. 이병용 청년(고려대)은 “우리 교회 청년목회 특징은 리더가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토요모임이나 경건의 시간에서는 단순히 성경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뤄 나갈지 나눈다”고 설명했다.

김원봉 장로는 “일부 교회에서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만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영적 지적 사회 신체영역으로 나눠 각 분야에서 소금과 빛이 되도록 돕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명진 목사는 평소 시간이 있을 때마다 ‘신행일치’를 강조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의 모습과 일반생활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리는 어두운 세상에 나갔을 때 더 빛나야하기 때문이다. 이지호 청년(고려대 통계학과)은 “처음 이 교회에 왔을 때 성도들이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말씀에 근거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삶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전도도 자연스럽다. 박선양 청년은 “캠퍼스나 직장에서 소그룹 형태로 관계전도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면한 생활을 보여주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통해 주변의 불신자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도록 한다는 것이다.

빛과진리교회 청년들에게 감동한 불신자들은 일대일 관계전도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 교회로 들어온다. 그러기에 잠깐 왔다가 빠져 나가는 ‘누수현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문화를 이해하는 교회 풍토도 큰 힘이 되고 있다. 교회 주차장을 농구대로 바꾸는가 하면, 청년들로 구성된 힙합 댄스팀도 있다. 청년의 열기를 발산하기 위한 마라톤 대회와 말씀암송대회 등 청년목회 사역이 풍성하다.

청년 열정은 부모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 교회 장년 200여명은 대부분 청년세대 자녀를 따라 출석한 성도들이다. 김원봉 장로는 “무기력하던 자녀가 교회를 출석하면서 건강하게 변화한 모습을 보고 교회에 따라 나온 부모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일대일과 소그룹을 통한 제자훈련, 말이 아닌 삶에서 보여주는 참된 제자도, 빛과 소금이 되게 하는 진리탐구, 청년을 방관자로 만들지 않고 사역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교회 구조, 청년의 문화를 이해하는 열린 자세, 이러한 것들이 비빔밥처럼 한데 섞여 빛과진리교회 청년목회를 맛깔나게 한다.

김명진 목사는 “청년목회가 살아나려면 청년에게 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교회가 청년을 찾아가 그들의 고민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오영섭 목사(성복교회 청년대학부)
어떻게 하면 청년목회에 성공할 수 있을까? 간단히 이야기하면, 청년들이 교회를 찾아오도록 앞문(전도)을 활짝 열어놓고, 옆문(예배와 소그룹)과 뒷문(사역)으로 굳게 닫아놓으면, 목회는 성공한다. 이 시간에는 청년들을 교회로 몰려오게 만드는 앞문(전도)에 대하여, 나누고자 한다.
첫째, 다양한 앞문을 열어놓으라! 다양하고 많은 앞문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방문하게 된다. 방문자수가 많아질수록 정착율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다양한 전도의 방법(관계전도, 노방전도, 오이코스전도, 대형전도축제)을 시도해야 한다. 성복교회 청년부가 40명에서 6배 성장한 지금까지, 우리는 지하철역노방전도, 거리노방전도, 캠퍼스노방전도, 대형전도집회인 2030맞춤전도축제(Love Festival), 관계전도프로그램인 HUG(Happy meal, Unique joy, Group dynamic)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감사한 것은 모든 전도의 방법을 통하여 직접적인 열매가 있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복음에 대한 체험적 경험을 통하여 청년들의 삶에 대한 자세가 변화되었다. 

둘째, 청년문화트렌드에 맞춘 전도프로그램을 기획하라! 특별히 청년들을 교회에 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청년문화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전도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우리 청년부에서는 청년문화트렌드(예: 1925세대는 Smart phone & Fantasy Game, 2632세대는 My car & Job, 3342세대는 Family & Career) 에 맞춘 대형전도집회인 2030맞춤전도축제와 소규모전도정착프로그램인 HUG를 통하여 꾸준히 열매들을 거두어왔다. 디지털세대를 하나님나라로 이어주는 다리를 놓는 ‘문화매트릭스’를 준비하여 재미있으면서 흥미롭게 복음을 제시하도록 기획한다. 전반부에서는 ‘음악매트릭스’, 다양한 장르의 콘서트나 음악회를 통해 젊은이들의 마음을 열어 준다. 후반부에는 ‘연극매트릭스’, 스킷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을 통해 처절한 삶의 문제를 제시하여 갈증을 복음으로 해갈한다.

 

“연합사역으로 돌파하라”

30개 교회 동참 ‘예수청년교회연합’
소규모 청년부 한계 딛고 사역 활발

“혼자가 안되면 뭉쳐라.”

현실적으로 대다수 교회의 청년·대학부 규모는 30명 이하. 소규모 모임에서 가질 수 있는 사역과 역할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거나 한계가 있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렇다면 소규모의 청년·대학부들이 연합해서 부족한 부분을 공급받고, 개교회의 청년사역을 활성화시킨다면 어떨까? 여기에 그 대안이 될 만한 모임이 있다.


▲ 부산의 예수청년교회연합(JCAN)은 교회들이 연합해 청년연합사역을 펼쳐 개교회 청년·대학부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부산의 ‘예수청년교회연합’(상임대표:박성규 목사·이하 JCAN)이 바로 그 모임이다.
JCAN은 ‘Jesus Church Associa-tion for the Next generation’이라는 이름 그대로 다음세대인 청년들을 위한 교회연합모임이다.

JCAN은 지난 2004년에 시작돼 현재 부산지역의 30개 교회가 동참하고 있는 단체로, △지역교회 네트워크로 청년부흥을 이루고 △탁월한 리더십을 가진 기독청년을 양성하고 △지역사회를 주도하는 기독문화 창출과 △세계를 섬기는 선교자원 배출 등의 비전을 품고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JCAN이 펼쳐 온 사역들은 대략 이렇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청년연합수련회와 소그룹인도자학교, 연합부흥회 등 ‘청년연합집회’와 크리스천리더십아카데미(CLA)와 비전 트립을 통한 ‘청년인재양성’, 볼링대회와 지역봉사, 연합임원수련회 등 ‘청년연합사역’ 등을 전개해 오고 있다. 청년사역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청년사역자 부부세미나, 청년목회클리닉, 사역자료 공유 등이 주요 사역이다.

사역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JCAN은 개교회의 청년·대학부 활성화와 미래의 교회와 세상을 바꾸는 인재를 키우는데 역량을 모으고 있다. 또 하나의 모임이나 단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교회를 세우는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 것이 JCAN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현재 JCAN의 핵심사역은 크리스천리더십아카데미(CLA)다. CLA의 가장 큰 목적은 청년들에게 세계관을 심어주는 것, 그리고 청년들을 가정과 직장, 교회에서 참다운 리더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향력을 끼치는 강사를 섭외해 청년들에게 세계관을 심어 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CLA 과정을 관할하고 있는 박세광 목사(남도교회)는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 섬기고, 나누는 리더십으로 가정과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청년을 길러내는 것이 CLA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JCAN은 개교회 중심에서 교회 연합이라는 ‘인식전환’으로 한계에 부닥친 청년사역의 돌파구를 찾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뜻을 같이 하는 교회들이 연합해 청년들을 일깨우고, 양육해 궁극적으로 개교회 청년부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개교회주의라는 고착된 인식을 전환할 필요성이 바로 JCAN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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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세대? 이제는 7포세대!, "결혼·출산·내집마련順 포기"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4/30/2015043002080.html





잡코리아가 조사한 2030세대가 포기를 생각해본 7가지 항목/그래픽=박종규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하겠다.”

청년 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최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를 넘어서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세대’, 여기에 꿈, 희망까지 포기한 ‘7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 498명을 대상으로 ‘7포세대’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5.9%가 “일곱 가지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포기할 생각이 없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14.1%에 불과했다.

2030세대가 포기할 생각이 있는 것(복수응답)으로는 ‘결혼’이 전체 응답률 38.6%로 1위로 뽑혔다. 출산(33.2%), 내 집 마련(28.7%), 꿈(26.2%) , 원하는 직업 갖기(21.5%), 연애(16.1%), 인간관계(15.4%), 취미생활(14.7%), 여행(14.0%) 등도 순위에 들었다.

성별로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결혼을 포기하겠다’는 의견(46.3%)이 압도적이었으며, 꿈(28.0%), 내 집 마련(25.6%), 출산(21.9%), 연애(18.9%) 순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출산을 포기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40%였고, 결혼(33.7%), 내 집 마련(30.68%), 꿈(25.0%) 실제 희망 직업(23.8%) 순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33.2%는 지금 사회에서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이 중 하나를 포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밖에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29.2%), 허탈감으로 사라진 성취 의욕(13.8%),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서’(6.1%), ‘경쟁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서’(1.4%) 등의 의견이 있었다.

한편, 7포세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질문에 ‘사회구조가 바뀌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29.9%를 차지했다. 이 밖에 ‘국가 차원에서 청년들을 지지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 이라는 답변도 27.5%로 그 뒤를 이었다.

또 ‘경쟁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가 완화되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17.3%), ‘형편이 넉넉해지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13.4%), ‘개인적으로 정신력이 강해지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7.7%), ‘기성세대의 압박이 없어져야 한다(4.0%)’ 등의 의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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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포·4무의 청년들, 예수 만나야 해결”

7포 -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
4무 - 무감각,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

[인터뷰] 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홍석균 목사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91214



   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홍석균 목사

청년세대를 바꾸고 한 영혼을 터치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복음 밖에 없기에 복음과 예수를 전한다는 한성교회 청년부디렉터 홍석균 목사. 최근 그를 만나 청년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 본인 소개와 사역에 관해 소개 부탁드려요.

“예수를 만난 감격으로 뜨겁게 예배하는 행복한 공동체, 또 예수를 만난 청년들이 뜨겁게 예수를 전하는 더 행복한 공동체 한성교회 ‘뉴액츠 청년부’를 섬기고 있는 홍석균 목사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을 만든다’는 담임목사님(도원욱 목사)의 목회철학에 근거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청년부는 담임목사님이 말씀을 통해 가이드라인을 해주는 주일오후예배, 한성교회가 배출한 찬양사역자 김윤진 간사 등이 인도하는 금요성령집회, 청년사역자들의 설교와 드라마 등으로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홀새 토요예배, 캠퍼스와 컴퍼니에서 장막을 세우자는 캠프어스 등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년의 때는 세대에게 맞는 체계적인 신앙양육을 필요로 하기에 청년 비전, 청년 세계관, 청년 가치관, 청년 하나님의 나라, 청년 교리 등에 대해 자체적인 성경공부 콘텐츠를 시리즈로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10가지의 시리즈가 나왔는데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인 소명, 노동과 직업, 은사, 준비, 신앙, 중독, 세계관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체계적인 양육 커리큘럼이 출판사에 소개되어서 출판도 하게 되었습니다.”

- 어떻게 청년부디렉터를 담당하게 되었나요?

“체육 교사의 꿈을 꾸고 준비하다가 대학교 4학년 때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다음세대였습니다. 기도 가운데 ‘다음세대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인가’ 고민 끝에 내릴 결론은 군대였습니다. 군인들이 제대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훗날 그들이 가정을 이루면 가족 모두를 구원한다는 비전을 갖고 신대원을 졸업하자마자 군선교 현장에 뛰어들어 7년간 헌신했습니다. 서원한 기간을 마치고 지역교회로 나오게 된 곳이 한성교회였습니다. 청년사역을 마쳤기 때문에 교구 사역을 하려 했는데, 담임목사님이 저의 비전과 은사가 청년사역에 더 적합하다고 하셔서 청년부디렉터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 청년부디렉터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사역의 하루 시작은 새벽 차량운행입니다. 청년들에게 새벽기도훈련을 시키기 위해 집 앞까지 태우러 다닙니다. 그 청년들을 데리고 강대상에서 모여 청년기도회를 인도합니다. 또 지금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하기에 캠퍼스 전도를 못 하지만 지난 학기까지 서울·경기권의 캠퍼스를 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청년들을 만나서 심방하고 저녁에는 교회 가까운 역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저녁과 주말엔 성장반, 제자반, LTC과 같은 양육훈련을 합니다. 케어해야 할 영혼들은 많은데, 시간은 없고 육체적으로 힘들 때가 많습니다.”

- 사역하면서 겪었던 어려움과 보람이 있나요?

“육체적인 한계로 인한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힘든 건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볼 때입니다. 취업의 문제로 불안해하는 청년들, 경제적인 문제로 좌절하는 청년들, 결손 가정으로 고통받는 청년들, 중독의 문제로 허덕이는 청년들, 정신적인 질병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하루는 한 청년 자매가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해서 교회로 도망 와서 살려 달라고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함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청년세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대입니다. 또 불완전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유일한 대안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고 외쳤을 때 그 예수를 만나서 변화되어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꿈이 없던 청년이 예수를 만나 꿈을 발견하고, 상처 많던 청년들이 치유되고 문제아였던 청년들이 회복되어 어느 날 결혼까지 해서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볼 때 그것만큼 큰 보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코로나로 인한 사역의 변화들이 궁금합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잃은 것이 많습니다.
첫째는 현장예배 기피현상이 생겼습니다. 처음에 코로나가 터지고 난 뒤에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온라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온라인 예배에 익숙해져 갔고, 현장 예배가 재개되어도 온라인 예배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 청년도 있었습니다.
둘째는 전도의 동력원을 잃게 되었습니다. 청년부에서는 캠퍼스와 역에 나가서 공격적으로 설문지 전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이슈가 된 신천지도 똑같이 설문지 전도로 포교활동을 벌여왔던 것이 드러나면서 청년들이 우리가 하는 설문지도 기피하고, 우리 교회를 신천지로 오해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또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대면으로 하는 전도를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면서 전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화·목·금 일주일에 세 번은 전도를 나가고 있습니다.

얻은 것도 많습니다.
첫째는 미디어가 긍정적으로 활용 되었습니다. 대면 구조에서 비(非)대면 구조로 가게 되면서 저희 교회는 더 적극적으로 미디어를 활용했습니다. 청년들 개인의 경건을 놓치지 않도록 유튜브로 아침마다 골방묵상을 들려주고, GBS 영상을 제작해서 리더들이 학습한 후에 화상회의 앱으로 소그룹으로 진행했습니다.
둘째는 몸으로서의 공동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이제껏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조직으로서의 모습만 남지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비대면의 구조로 갈 수 있는데 교회가 조직으로서가 아니라 몸의 공동체로 갈 때만 교회가 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대면 구조는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 앞에 대면하여 만나야 하는데 비대면 구조로 가면 하나님과의 만남도 멀어지게 됩니다. 관계중심, 몸의 구조를 가질 때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기에 리더들에게 몸의 공동체, 가족공동체를 가지려면 우리가 영적 어미, 영적 아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행사나 프로그램 등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행사들이 취소, 연기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이러한 때일수록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중요한 사역을 진행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6월 21일에 열릴 전도축제로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을 초대해서 복음을 전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너는 크게 자유를 외쳐라(사58:1)’라는 주제로 특별새벽기도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여름선교로 7월 셋째 주에 제주도 4개의 교회에 100명의 청년이 흩어져서 제주도 개척교회의 주일학교 사역과 찬양집회, 경로당 사역을 감당합니다.
셋째는 여름수련회입니다. 7월에 예정되었던 수련회가 코로나로 8월로 연기되었습니다. 더 잘 준비해서 청년들이 다시 수련회를 통해서 회복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홍대불금집회입니다. 음주가무의 문화에 취해 있는 홍대의 젊은이들에게 그곳을 하나님의 땅이라 선포하고 찬양집회와 스킷드라마를 통해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고 교회로 초청합니다. 격달로 한 번씩 가던 것을 코로나로 연기하게 되었는데 6월 둘째 주부터 재개해서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전도하는 사명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WINK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 WINK ©한성교회 홈페이지

- 전도축제에 대해 조금 더 소개 부탁드립니다.

“6월 20~22일에 열리는 전도축제로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담임목사님의 목회철학인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으로 예수를 만난 감격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더 큰 감격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전도축제의 모토입니다. 이번 주제가 ‘WINK’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사랑의 눈짓 ‘윙크’를 보내신다는 의미입니다.

연극 ‘시간을 파는 상점’, 연예인 간증과 공연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불신자나 태신자는 교회를 잘 모르니까 연극이나 조성모, 구자억, 알리, 류지광 등 연예인의 간증, 고백, 노래가 교회에 첫발을 내딛는 접촉점이 되어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21일은 청년행사로 이후에 팀별 모임을 통해 나들이도 하고 음식도 나눠 먹고 레크레이션을 하면서 새신자들이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어가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문화사역이 있다 보니까 청년들이 우리 교회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요즘 청년들의 영적인 정황은 어떤가요?

“오늘날 청년들이 ‘7포 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또 ‘3무 현상’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붙어서 무감각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무감각은 중독으로 기인했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알코올과 니코틴, 음란물 중독에 이어 스마트폰에까지 중독되어서 무능력, 무기력, 무책임을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청년들은 잘살고 싶어 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7포 현상’과 ‘4무 현상’으로 인해서 청년들이 점점 나락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사역하면 할수록 더 절실히 느끼는 거지만 이들을 살릴 방법은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대안은 오직 예수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해결된다고 확신합니다.

또 하나의 대안은 한국교회가 좋은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를 만날 때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날 때 끝이 납니다. 이처럼 청년들이 예수를 만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하고, 그 청년들이 건강한 교회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모판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상반기에 이단과 음란의 문제, 그리고 동성애 등이 이슈였는데요.

“청년들이 이런 문제에 고민하고 있을 때 교회가 잠잠하지 않고 문제를 공론화시켜서 관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신천지에 대한 대처,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하나님의 심판인가에 관한 물음, 이태원 사건 등으로 동성애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 성경적으로 그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성경적으로 답을 찾아주려고 했습니다.”

- 하반기에 중점을 두거나 기획 중인 사역이 있나요?

“청년들의 고민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비전과 진로에 관한 문제, 이성 교제와 결혼에 관한 문제입니다. 첫 번째 비전과 진로는 청년들이 비전이 불분명하니까 미래에 대해 답답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으로 비전에 관해 나누고 가을에 하는 ‘비전박람회’를 통해 비전을 발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다 목사, 선교사가 되는 게 아닌데 자기 분야에서 부르심의 확신을 위해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50개의 직업군을 나누고 교회 내에서 사회적으로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강사로 세워서 신앙인으로서 비전을 어떻게 이뤄가는지를 제시해 주고, 전문성에 대한 멘토링을 연결해 줍니다. 본인의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선배들의 좋은 모델을 보면서 다시 확신을 가지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알게 되는 좋은 면이 있습니다. 비전박람회를 통해 직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직업 안에 있는 하나님의 비전을 찾도록 했는데 청년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 어떤 직업군에 관심을 많이 가지나요?

“교회에 김윤진 간사님, 박지현 전도사님 등 찬양인도자가 많이 배출되다 보니 찬양인도자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 청년이었는데 교회에서 은사를 가지고 봉사하고 잘 훈련되어서 찬양인도까지 하게 되고, 후배들에 대해 더 애착을 두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청년들의 건강한 이성 교제를 위한 ‘돕는 배필 만남 학교’가 있습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거나 ‘욜로족’이라고 해서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진 청년들에게 크리스천 가정관을 소개해서 건강한 가정, 믿음의 가정을 꿈꾸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성 교제를 안 했던 청년이 믿음의 가정에 대해 소망하거나 반대로 교제를 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경적 가정관이 아니구나’를 깨닫고 정리가 되고, 크리스천인데도 성적 관계에 죄의식을 갖지 못하다가 회개하고 결단하고 돌이키는 일도 있습니다. 건강한 성적인 문화를 잘 가르쳐야 하는데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다 보니까 짚어주지 않으면 ‘당연하다, 문제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짚어주었을 때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외쳐야 되겠다는 확신이 듭니다.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비전관, 이성관, 물질관은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비전은 있지만 재물관이 무너져 있으면 비전은 다 사라져 버리고, 비전이 있지만 가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비전을 담아낼 수 없습니다. 청년들이 가정에 아픔이 많습니다. 결혼 안 하겠다는 청년들은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많아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정을 꾸리지 않고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면 과거의 아픔이 치유된다’고 말합니다. ‘나도 가정의 아픔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선하게 바꾸셨으니 믿음의 가정을 소망하라’고 저의 아픔과 아픔 속에서 회복된 가정을 소개해주니까 청년들이 꿈을 꾸게 됩니다.

또한 믿음의 배필을 만나려면 심각하게 고독해 봐야 합니다. 아담은 고독해 봤습니다. 동물도 수컷과 암컷이 있고, 꽃도 암술과 수술이 있는데 아담만 혼자였습니다. 외로워 봤기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배필을 주셨을 때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고독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때 배필을 만나게 되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습니다.”

- 청년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비전이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는 어릴 때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고, 또 경제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시고 돌아와서는 다시 파출부로 일하셔야만 자녀들을 부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열등감이 많았고, 겁쟁이였고 청소년기에 탈선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저의 피난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에만 가면 먹을 것이 있었고, 선생님의 사랑이 있었고, 선배들의 충고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기에 넘어져도 교회에서 넘어졌고, 쓰러져도 공동체에서 쓰러졌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과거보다 더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결핍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도 냉대받고, 배척당하기도 합니다.

첫째는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 또한 청년 때에 막막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 때문에 두려웠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더욱 성전에 나와 철야하면서 기도했고, 목회자로의 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무엘도 성전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을 세우는 다윗을 기름 붓게 되었듯이 성전에서 제단 뿔을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비전과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둘째는 균형 잡힌 영성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영성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 신앙과 실력을 갖춘 사람으로 준비되길 바랍니다. 아무리 신앙이 있어도 세상의 학문과 기술을 갖추지 못한다면 신앙의 영향력을 끼칠 수 없습니다. 모세도 애굽의 학문을 잘 익혀서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고, 요셉도 다니엘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분야로 쓰임 받았던 것처럼 균형 잡힌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올 한해 목사님의 기도제목과 비전이 궁금합니다.

“청년부의 기도제목은 1,000명의 예배자가 빨리 세워져서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예배자가 되어 그들의 전문성을 가진 현장에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퀴어축제도 신실한 크리스천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열리지 않았을 텐데 청년들이 훈련을 잘 받아서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개인의 기도제목은 가정과 사역에 균형을 갖추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첫째 아들(중2)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에게도 청년을 대하듯이 관심을 가져 달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사역을 열심히 하지만 가정에서 아버지로 또 남편으로서 바로 서 있지 못한다면 사역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엔 사역이 늦게 마쳐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좀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들에 더 관심을 두고 매진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은 다음세대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다음 20년 3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건강한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섬길 것입니다.

개인의 비전은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서 양육 콘텐츠나, 청년들에게 맞는 전도 콘텐츠를 잘 만들어서 한국교회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청년 사역을 하는 교회에서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양육을 해야 하는지’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자체적인 전도프로그램과 양육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콘텐츠를 잘 소개해서 한국교회가 도움받고 혜택을 누리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 - 재앙


인도 도심도 점령한 메뚜기떼 “알 20개, 1년만에 10만마리로”

https://news.joins.com/article/23800807?cloc=joongang-home-toptype1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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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인도 자이푸르시가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인도 서북부인 라자스탄 주의 자이푸르시. 건물 옥상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메뚜기떼가 가득 찼습니다. 계단과 건물 벽에도 메뚜기떼가 새까맣게 붙어 있고요.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떼의 모습은 마치 성경 속 메뚜기떼의 재앙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애니띵] 메뚜기 농장에 가다
풀무치, 벼메뚜기보다 몸집도 식성도 3배
엄청난 기동성 “잡으려니 강 건너로 날아가”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창궐한 메뚜기떼가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퍼져 닥치는 대로 농작물을 먹어 치우고 있는데요. 현지에서는 최악의 식량난이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이 큽니다. 
 
도대체 메뚜기의 식성과 번식력이 어느 정도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걸까요?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식 '끝판왕'…“20개 알이 1년 만에 10만 마리로”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벼메뚜기. 공성룡 기자

궁금증을 풀기 위해 기자는 경기도 광주시의 한 메뚜기 농장을 방문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40만 마리의 메뚜기를 키우고 있는 곳이죠. 사육동 옆에는 메뚜기에게 먹일 밀을 키우는 밭이 있습니다.
 
농장 대표인 복현수(36) 씨를 따라 비닐하우스 내부의 실내사육장으로 들어가자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메뚜기떼가 여러 개로 나뉜 그물망 안에 있었습니다. 입구 바로 앞의 그물망에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메뚜기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벼메뚜기예요. 식용 곤충으로 30만 마리 정도 사육하고 있어요.” (복현수 대표)

 

대형 메뚜기종인 풀무치의 모습. 공성룡 기자

사육장 안으로 좀 더 들어가니 벼메뚜기보다 2~3배는 커 보이는 다른 메뚜기들이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프리카와 인도를 휩쓸고 있는 메뚜기떼의 모습을 연상케 할 정도였죠.
 

“풀무치라고 부르는 대형 메뚜기인데 아프리카에 피해를 주고 있는 사막 메뚜기와 비슷한 종이에요. 벼메뚜기보다 3배나 더 먹기 때문에 성장이 굉장히 빠르고 번식력도 강하죠.” (복현수 대표)

 

풀무치가 먹이를 먹는 모습. 공성룡 기자

그가 그물망 안에 밀을 가득 넣자 풀무치들이 순식간에 달라붙어 잎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금세 풍성했던 잎은 사라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더군요. ‘순삭’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였죠.
 
복 대표는 “태어난지 한 달 만에 성충이 된 풀무치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풀을 먹으면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번식한다”며 “작년에 알 스무개를 받아서 사육을 시작했는데 올해 안에 10만 마리까지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뛰어난 기동성 "잡으려니 강 건너로 날아가"

왼쪽부터 대형 메뚜기종인 사막 메뚜기와 풀무치. 떼를 이루면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종이다. 공성룡 기자

실제로 사막 메뚜기와 풀무치는 유사한 생태적 특성을 가진 대형 메뚜기 종입니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종이기도 하죠. 
 
사막 메뚜기는 아프리카 사막 지대에, 풀무치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주로 서식하고 있습니다. 1㎢ 면적의 무리가 하루에만 3만 5000명분의 식량을 해치울 만큼 엄청난 식성을 가지고 있어요. 
 
메뚜기떼가 정말 무서운 이유는 엄청난 기동성 때문입니다. 벼메뚜기 같은 작은 메뚜기는 좁은 지역에 머물지만, 대형 메뚜기들은 날개를 이용해 하루 최대 150㎞까지 비행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메뚜기떼가 서식하기 좋은 덥고 습한 환경이 형성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하게 불어나 세계 곳곳에서 식량난을 일으키고 있죠.
   

“실제로 풀무치를 잡으려 했더니 날아서 강을 건넜을 정도로 대형 메뚜기는 이동성이 강해요. 척박한 곳에 살다가 서식 환경이 좋아지면서 폭발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났고, 원래 있던 지역이 숫자를 감당할 수 없다 보니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본능적으로 이동하는 거죠.”(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사) 

 

파키스탄, 메뚜기를 닭 모이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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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파키스탄에서 농부들이 메뚜기떼를 막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AP=뉴시스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나라들도 메뚜기떼를 퇴치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어요.
 
인도 당국은 피해 지역에 메뚜기 대응 전문팀과 소방관을 파견했고, 차량과 드론을 동원해 살충제를 살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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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인도 자이푸르시가 메뚜기떼의 습격을 받은 모습. 신화통신=연합뉴스

파키스탄은 메뚜기를 잡은 뒤에 사료를 섞어서 닭 모이로 만드는 시도도 하고 있다고 해요. 하지만 메뚜기떼의 규모가 워낙 커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단백질이 풍부한 메뚜기는 식용으로도 활용되고 있는데요. 국내에선 벼메뚜기는 말려서 식품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형 메뚜기 종인 풀무치는 현재 식용화를 위한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아라비아반도의 예멘도 메뚜기를 요리해 먹는데요. 하지만 요즘처럼 대규모의 메뚜기떼가 창궐하는 시기에는 독한 살충제를 뿌리기 때문에 오히려 메뚜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점점 심해지는 대형 메뚜기떼의 습격,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영상=공성룡

동물을 뜻하는 ‘애니멀(animal)’은 영혼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했습니다.
인간이 그렇듯, 지구상 모든 생물도 그들의 스토리가 있죠. 동물을 사랑하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만든 ‘애니띵’은 동물과 자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중국이 보는 대만과 북한


중국이 보는 대만과 북한 

안용연 특파원 2013.06.20 03:0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9/2013061903244.html?gnb_opi_opi01

 

중국 사람에게 "한반도가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이라고 말하면 일부는 고개를 갸웃한다.
대만과 나뉜 중국도 '분단국'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내건 '중국의 꿈(中國夢)'에서도 대만 통일은 중요한 꿈이다.
그가 중국의 부흥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부흥을 강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시 주석은 이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통일을 언급했다.
그러나 '대만 문제'는 양국 정상이 견해차를 보인 대표적 주제였다.
시 주석은 "대만에 무기를 팔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만 국방부는 시 주석이 떠나자마자 미국 측에 무기 판매를 요청했다.

반면 '북한 비핵화'는 양국 정상이 의견 일치를 이룬 대표적 주제였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북한 비핵화를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중국 입장에서 북핵(北核)은 대만 통일과도 관련 있는 문제다.
북한 핵 보유가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로 이어져 대만까지 핵무기를 가질 경우, 중국에는 악몽(惡夢)이 된다.
통일을 방해할 '대못'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은 원전(原電) 3곳을 가동 중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야당(민진당) 지지율도 만만치 않다.

지난 2월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썼던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 덩위원(鄧聿文) 전 부편집장의 글에도 '대만'이 등장한다.

그는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면 한·미·일 동맹을 와해하는 데 유리하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완화할 것이며 결국 대만 문제 해결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대외 정책의 키워드는 '핵심 이익'이다.
지난 1월 시진핑 당시 총서기는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 "핵심 이익에 대한 거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만이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문제처럼 중국의 영토·주권과 직결되는 사안을 '핵심 이익'이라고 한다. 이런 기준에서 북핵 문제는 동아시아 핵 도미노로 이어지기 전까지 중국의 '핵심 이익'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이 당장 무너져 국경 영토가 혼란해지는 상황을 더 우려할 것이다.

중국이 국경을 맞댄 나라는 14개국이다. 이 중 중국과 전통적으로 가까운 나라는 북한과 파키스탄뿐이다. 북한은 미국 견제 차원에서, 파키스탄은 인도 견제 차원에서 전략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한 대북 전문가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중국 국력이 미국을 압도하거나 대만·북한을 놓고 미국과 '딜(거래)'이 성사됐을 때"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 내부에 '반북(反北) 정서'가 퍼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訪中) 계획이 맞물리면서 국내 일각에선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란 낙관적 기대 심리가 부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이 가장 원하는 건 '핵이 없는 친중(親中)적 북한'이다. 중국에 '북한 비핵화'와 '북한 포기'는 아직은 별개다.  


최봉석(崔鳳奭, 1869-1944) 목사 / 최권능목사


예수 천당! 불신지옥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최봉석(崔鳳奭, 1869-1944) 목사가 바로 그 인물로, 세인들에게는 최권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그의 삶과 사역이 놀라운 기사와 이적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주어진 명예였다.
그는 한국교회 외침 전도의 대명사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은 그의 브랜드였다.
이로 인해 그는 불신자들은 물론 신자들로부터도 미친 사람이라고 조롱당하거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언행은 언제나 반듯했고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190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였다.
구한말 관리로 지내던 그가 공금횡령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는데, 거기서 삭주교회를 설립한 백유계(白留溪)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노블(W. A. Noble) 선교사가 건네준 쪽복음서를 탐독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에 맞아죽는 꿈”을 꾼 후 그는 성령의 역사로 중생의 체험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평양 시내에서 그의 전도를 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몇몇 유명한 일화들이 있다.

하루는 그가 장터에서 전도를 하다가 방탕한 시절의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최권능을 보고 놀려댔다.
자리에 앉히고는 술을 권하고, 마시지 않으니까 입을 벌려서 억지로라도 마시게 하려고 했다.
그래도 마시지 않자 한 친구가 그의 얼굴에다 술잔을 부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들은 이제 큰 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아는 한 최봉석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 친구 오늘 장례 치르는 날이겠구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최권능은 자기 옷을 털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가 하도 신기해서 “괜찮으냐, 어떻게 그렇게 참고 넘어가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최권능은 “이전의 최봉석이는 다 죽었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전도하는 최권능이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루는 평양의 백동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한 일본군 연대장이 시장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최권능은 그 일본군 연대장을 향해서 큰 소리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며 전도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든지 연대장의 말이 깜짝 놀라는 바람에 말에 탔던 연대장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연대장은 최권능을 일본군 주재소로 끌고 가 온갖 매질을 하며 심문했다.
그런데 최권능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당하지 않고 일본 군인이 내리칠 때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고 외쳤다.
세게 때리면 때릴수록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소리도 그에 따라 커졌다.
그러자 일본 군인은 최권능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조롱하듯이 “당신은 건들기만 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최권능은 “내 속에는 예수님 밖에 들어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건들기만 하면 예수님이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일본 군인들은 그를 그대로 풀어주었다.

또 한번은 최권능이 평안도 구성에서 전도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그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들어가 전도한 뒤 그 옆집에서 전도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이 전도한 김씨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곧 김씨의 아들이 찾아와 그를 향해서 아버지를 죽인 자라고 욕하면서 잡아가 자기 집에 가두었다.
이때 그는 오히려 그 아들에게 “네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내가 기도해서 아버지를 살려 줄 터이니 예수를 믿겠느냐?”고 묻자,
그 아들은 “믿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최 목사는 곧 죽은 그 김씨를 붙잡고 땀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결과 그 가족과 이웃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최권능은 오직 예수의 사람이었다.
예수의 영으로 충만했던 그의 삶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기생집에도 들어가서 전도하고, 남의 부엌에서도 전도하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목사와 장로들에게도 전도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신자다”라고 하면 그는 “당신이 신자면 왜 내게 전도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무섭게 책망할 정도로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원초적이고 순수한 신앙으로 전도에 헌신했던” 한국교회사 속의 위대한 ‘전도대장’이었고, 예수 복음의 맛을 깊이 알았던 진짜 예수꾼이었다.
일신(一身)의 안일과 명예보다 주님의 명예가 더욱 소중함을 깨달았던 예수의 충복(忠僕)이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그가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일제에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변치 않았다.
오히려 고문의 강도가 혹독하면 할수록 그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천당”의 외침소리도 더욱 커졌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수로 가득 차 있어서 예수 밖에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이 움직일 때마다 예수가 내 입에서 튀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병보석으로 풀려난 자신을 병원으로 옮겨가는 인력거꾼에까지도 “예수천당”을 외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옥에서 나온 지 나흘만인 1944년 4월 15일에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부디 승리하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았는지를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그는 예수 의식에 철저한 삶을 담아냈던 것이다.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일명 최권능목사로 더 알려진 유명한 목사 최봉석은 1869년 1월 7일 평양에서 최준서의 세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고 "예수 천당"의 외침으로전도의 권능이 있어 "최권능"목사라는 이름이 더적합하다. 1939년 신사참배 반대로 평양 감옥에 투옥되었으며 1944년 40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하늘나라 로갔다.

 

평양신학교 졸업
1907년 벽동교회 조사
1913년 만주 파송 전도목사

부친은 평양의 강동현 미곡창장으로 재직했고 그는 16세까지 구학문을 익히다가 1885년 평양감영의 통인으로 발탁이 되어 공직을 수행하게 되었다. 공직수행 중 국고 손실로 귀양을 가있는 사이에 아내의 산후조리로 의원이었던 상주교회 배유계 영수를 찾았을 때에 "예수믿고 회개하여 새사람되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의 머리에서 '회개'라는 말이 떠나지 않고 있던 중 재산 한푼 없는 거지 행색으로 잠시 평양 본가로 돌아왔다가 감리교 노블선교사를 만나 회심하고 평양뿐 아니라 상주까지 내려가 예수를 증거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처가에서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되어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에게 "여보 어찌 천륜을 이렇게 매정하게 끊을 수 있겠오 다시 한번 생각합시다."하는 최봉석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아들을 하나씩 맡기로하고 헤어지면서도 그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더욱 예수에 미쳐 능력있는 전도자가 되었다.

1907년 최봉석의 나이 38세에 벽동교회 조사가 되었다.
최봉석의 목회는 그 성격만큼이나 고집스러웠다.
교인들의 담뱃대를 모아 꺾어버리고, 첩있는 사람은 원입을 못하게 했고 성수주일 못하면 세례를 불허하고 한달 결석이면 책벌, 우상제물 금지, 불신영혼 엄금 등 엄격하기만 했다.

신학교를 7년 다녔는데도 유급이 되자 교수들을 찾아가 기도하자고 해놓고 "교수님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졸업장을 주어 목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하고 아멘시키고 졸업장을 받았다.

1913년 만주 파송 전도목사로 14년간 만주에서 고독과 배고픔, 모진 배척과 싸우며 전도에 전념해 28개 교회를 개척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14년 만에 평양에 돌아왔을 때 그가 외치는 "예수, 천당" 소리는 평양의 새벽을 깨웠고 전도 못하는 교역자들을 '벙어리' '송장'이란 말을 거침없이 했다.

1938년 신사참배결의에 "총회는 사탄의 회로 전락했다"고 반대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939년 5월 15일 70세에 6년간의 긴 옥고가 시작되었다.

일경은 그를 세가지 죄목
1. 항일사상 선동 국체문란
2. 일본천황 무시하고 하나님을 높이는자.
3. 선교사를 통한 미국비밀공작원으로 몰아 두 차례에 걸쳐 무려 6년의 옥고를 치루게 했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듯 40일 금식기도에 돌입했다.
의사들의 만류에도 40일 금식을 마치고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이미 눈동자가 풀어져 있었고 병원에서 5일간 버티다가 1944년 4월 15일 오후 1시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오라하신다"며 찬송 289장(고생과 수고 다 지나간후--) 찬송을 가족들과 함께 부르고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했으니 그의 나이 75세였다.

 
초기한국교회 "예수천당" 최권능목사

최봉석(崔鳳奭)은 1869년 1월 7일 평양 장경문에서 아버지 준서(俊瑞)와 어머니 전씨(全氏)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한학을 배웠으며, 1885년부터 평양관찰사 민병석의 통인(通引)으로 8년간 봉직했다. 이후 별장(別將) 포수(砲手) 도령장(都令將) 등의 벼슬을 지냈으나, 1900년 감찰(監察)로 있을 때 공금횡령사건으로 6개월간 감옥생활을 한 다음 평북 삭주(朔州)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그는 술도가와 금광업 등에 관계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1902년 유배지에서 최봉석은 삭주교회 설립자인 백유계(白留溪)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고, 1903년 평양 본가를 찾았다가 감리교의 노블(W.A., Noble, 魯普乙) 선교사를 만나 감동받고 그가 건네준 쪽복음서를 열심히 읽었다. 그러던 중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에 맞아죽는 꿈’을 꾼 최봉석은 성령의 역사로 중생의 체험을 받았다. 이후 그는 상투를 자르고 노블 선교사에게 세례받은 다음 쉬지않고 기도하며 성경을 탐독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1904년에는 삭주교회 집사가 되었으며, 이듬해는 삭주교회 영수가 되었다. 이때 최봉석은 양전백(梁甸伯)의 추천으로 성경 매서인(賣書人)이 되어 김상준과 함께 벽동 강계 후장 초산 창성 구성 등 평북 산악지역은 물론이고 압록강 건너 만주 통화현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전도하여 4년간 30여 교회를 세웠다.

최봉석은 1907년 벽동읍교회에 조사(助師)로 부임하여 이후 8년간 시무한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했다. 1913년 신학교를 6년만에 6회로 졸업했는데, 재학중에도 공부보다는 새벽기도와 노방전도에 더 열중한 것으로 유명했다.

최봉석은 졸업하던 해 평북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벽동읍교회에서 위임목사로 1년간 시무했으며, 1914년 장로교 평북노회에서 최성주(崔聖柱) 목사와 함께 전도목사로 남만주에 파송되었다. 1915년 삭주교회 목사로 시무하다 이듬해 목사직을 사면한후 봉천성 통화현을 중심으로 10여년 동안 순회하면서 흩어져 있던 동포들에게 전도하여 28개소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1923년에는 남만 노회장을 역임하여 노회로부터 개척전도 공로표창을 받았다.

1926년 귀국한 최봉석은 평양 근교의 강동(江東)교회와 무진교회에서 잠시 시무하면서 무진보통학교 교장직도 겸임했다. 1927년부터 최봉석은 길선주(吉善宙) 목사의 주선으로 평양 산정현교회 전도목사가 되어, 서문밖교회 옆 인덕서관(仁德書館) 2층에 전도관을 차리고 평양을 중심으로 각처를 다니며 전도활동을 계속했다. 평남과 황해도지방 특히 산간벽지를 누비며 전도하였으나 노년에는 주로 평양에서 전도하였다. 평양에서 전도할 때는 2년만에 3천여명의 신자를 얻었다.

최봉석은 평양신학교 학생시절부터 “예수 믿으면 천당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갑니다!”는 전도슬로건을 간략하게 “예수천당! 불신지옥!” 또는 “예수천당! 마귀지옥!”으로 축약시켜 만나는 사람마다 외쳤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그의 강렬한 구호는 평생을 함께 했다. 이 구호에 대해 교계안팎의 평가는 ‘신앙적이다’는 의견에서 부터 ‘원초적이고 단순 무식하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 그러나 그가 이 구호를 외친 이유는 기독교신앙에 다른 무엇이 더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본명보다 ‘최권능(崔權能) 목사’ 또는 ‘능력의 최권능’으로 더 잘 알려졌는데, 이는 그의 전도활동이 주변 목회자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할만큼 정력적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려냈다는 전설같은 이적이 많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생 대부분의 시간을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낮에는 종일 길거리에 서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어 세우고 전도했다.

최봉석은 “젊은이들을 가르치는데 의와 진리로 거듭난 사람이 되도록 하여야 하겠오”라고 강조하면서, “사람의 마음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곧 지(知)와 정(情)과 의(意)라. 지로는 예수와 하나님의 진리를 배울 것이요, 정으로는 예수의 사랑을 배우게 할 것이요, 의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배울 것이다. 예수 안에 참사람의 요소인 진리와 사랑과 권능이 무한하시니, 다 예수를 배워서 완전한 사람, 참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고 설교했다.

최봉석은 너무 고지식하고 담대해 닥치는대로 전도하여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까지 광인(狂人)시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의 언행은 언제나 권위가 있었고 바르기 때문에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평생을 전도하는 종으로서 개척전도, 노방전도를 하여 세운 교회가 무려 74개나 되었다.

1938년 9월 제27회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그는 주기철 목사 등과 함께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일경이 그를 체포하려 하자 평북 정주군 쑥섬으로 피신했으나 1939년 5월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에 대한 죄목은 1)일본천황을 무시하고 하나님만 높였다. 2)선교사인 미국인과 내통하여 비밀공작을 했다. 3)예수가 재림하여 천년왕국이 임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민심을 소요케 했다 4)교인들을 선동하여 민심을 소란케 하고, 항일사상을 선전했다 5)교회 원로로서 후배들에게 신사참배를 못하게 하고, 신사참배하는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등이다.

결국 최봉석은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는데, 당시 신사참배 반대를 적극 주도한 교계 지도자인 주기철 채정민 이기선 방계성 한상동 고흥봉 김인희 최덕지 박관준 안이숙 주남선 등 전국 각지서 잡혀온 신앙동지들과 함께 옥중투쟁을 계속했다. 그는 육신의 고통으로 인한 불평이나 절망은 전혀 하지않았으며, 고문을 당하면서도 계속 “예수천당”을 외치며 "나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예수로 가득차 있어서 예수 밖에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이 움직일 때마다 예수가 내 입에서 튀어 나옵니다"고 대답했을 정도였다. 또 최봉석은 감옥 안에서도 “예수천당”을 큰 소리로 외쳐 죄수와 간수들을 놀라게 했고, ‘예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면회온 부인에게도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는 말만 했다고 한다.

1944년 그는 3월 1일을 기해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여 고문으로 육신이 매우 쇠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4월 11일 병보석으로 잠시 풀려난 최봉석은 죽음을 앞둔 자신을 옮기는 인력거꾼에게도 “예수천당”을 외쳤을 정도로 강한 신앙인이었다.

평양 홀 기념병원에 입원하여 장기려(張基呂) 장로의 특별치료를 받았으나, 최봉석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그해 4월 15일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 나를 오라고 하신다”는 말과 함께 “부디 승리하시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4월 19일 평양 자택에서 임종순 목사 집례로 치뤄졌고, 유해는 돌박산 기독교인묘지에 안장되었다.

1946년 봄 산정현교회는 그의 순교기념비를 건립했다. 그리고 홍의봉 감독이 최봉석 목사의 삶과 신앙을 영화화한 <예수천당>(1991)이 있다.

최봉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천당’을 큰소리로 외쳐 복음을 전했으며, 원초적이고 순수한 신앙으로 전도에 헌신했던 한국개신교사의 권능있는 위대한 ‘전도대장’이었다. 땀과 피와 눈물로 얼룩진 가시밭길을 헤치며 전도에만 전력해온 그는 초라한 옷과 거친 음식에도 행복했던 예수의 진실한 충복이었다. 때로는 광인으로 매도당하거나 지나치게 보수주의적 신앙인으로 비판받기도 했지만, 언제나 겸손하게 기도하고 찬송부르기를 좋아했으며 늘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

‘오직 예수’를 위한 반석같은 신앙심의 소유자였던 최봉석은 6년간의 투옥생활과 고문으로 믿음이 더욱 정화되고 단련되었으며, 정결한 신앙과 영혼을 끝까지 지켜 마침내 영광스럽게 순교한 ‘한국의 베드로’였다.

 자료 출처 /  초기한국교회 "예수천당" 최권능목사

오늘의 묵상(6월)


오늘의 묵상(6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1

사도행전 3:1∼26

생명의 주(15절)

6

2

사도행전 4∼37

구원 얻을 이름(12절)

6

3

사도행전 5:1∼42

하나님을 순종하라(29절)

6

4

사도행전 6:1∼15

천사의 얼굴(15절)

6

5

사도행전 7:1∼60

내 영혼을 받으소서(59절)

6

6

사도행전 8:1∼40

읽는 것을 깨닫느뇨(30절)

6

7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는
복되고 거룩한 주일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지쳐
몸과 마음이 피곤할지라도
주님을 가까이 하려고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바람같이
불으 혀같이 임하여
각 나라 백성들이 방언으로
똑같이 듣게 하셨사오니
오늘도 온라인 예배로
모든 주의 백성들이
이 시대에 임하는 성령의 임재를
다 함께 느끼고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희망으로 보게 하소서

주님만을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기쁨과 감격이 있게 하소서

주님께서 날 구원하심을 확신하며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날마다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진흙 덩어리에 불과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사
사람이 되게 하심처럼
주님의 은혜로
믿음의 열정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의 잠들어 있는
믿음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는
약과 백신이 개발되어
어려움을 이기게 하시고
어떤 어려움도 함께 극복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게 하소서.

풍성한 믿음으로 우리들을 채워주소서.
 

♦ 6월 1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3: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생명의 주(15절)
♦ 성구 :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아멘
You killed the author of life, but God raised him from the dead. We are witnesses of this. Amen   

“생명의 주(the author of life)”
생명의 주가 죽을 수 있을까요?
죽여도 죽지 않습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어느 생물학자가 작은 씨앗을 손에 들고 “이 씨앗의 성분을 저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씨앗에는 질소, 수소, 탄소가 얼마씩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와 똑같은 모양의 씨앗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씨앗을 심으면 아무 것도 나지 않고 땅속으로 흡수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씨앗은 땅에 심기만 하면 싹이 나서 자라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신비롭습니다.”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죽은 것 같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땅위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생명의 주님은 죽을 수도 없고 죽었어도 반드시 다시 살아나서 새 생명을 얻게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생명의 주님께서 약속한 그 말씀을 붙잡고 날마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생명의 주여 면류관

https://www.youtube.com/watch?v=UNlU0UXu1OY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4:1∼37
♦ 묵상을 위한 주제 : 구원 얻을 이름(12절)
♦ 성구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아멘 

“구원 얻을 이름”
“예수”는 구원 얻을 이름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꿈속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인 하나님께서 심문합니다.
“너는 항상 진실했는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너는 항상 깨끗하게 생활했는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럼, 정직하게는 살았는가?”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심문이 끝나자 목사님은 머리를 숙이고 지옥에 가겠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채가 비치면서 예수님이 그의 곁으로 오셔서 이렇게 증언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여, 이 사람이 세상에 있을 때 깨끗하게도, 정직하게도 살지 못한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이 목사는 평생을 나를 위하여 살아 왔으니, 저도 이 목사를 위해 변호하겠나이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 덕분에 천국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구원의 이름은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계시하심으로 알려졌습니다(마태복음 1:21).

구원 얻을 이름은 구약에서 예언된 것입니다(이사야 7:14, 9:6).

구원 얻을 이름이란 죄에 대한 용서를 선포할 이름입니다(시편 25:11)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오늘도 구원 얻을 이름을 믿게 하신 은혜를 생각하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삶에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no Savior except me)(호세아 13:4b)

♪ 찬양 /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3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5:1∼42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순종하라(29절)
♦ 성구 :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Peter and the other apostles replied: We must obey God rather than men!

“하나님을 순종하라!”(Obey to God)“
나는 능력보다 순종을 원한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고백입니다.
부패한 교회를 향하여 개혁의 횃불을 들었던 용기는 성령께서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능력보다는 오히려 순종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능력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어거스틴이 “주여, 많이 명령하시옵소서. 그리고 명령하신 것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도 하나님은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 그것을 감당할 능력 또한 주신다는 깨달음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안디옥교회의 주교 "이그나티우스"는 주후 107년 순교했습니다. 처형이 임박하자 성도들은 그의 구명을 위해 총독에게 탄원했습니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는 “나는 차라리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하나님의 성결한 떡이 되기를 원한다.”는 심정을 토로하며 성도들을 만류하고 기꺼이 순종함으로써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 15:22)

무신론적 어둠의 세력이 국가와 교회를 파괴하려 도전하는 이때에 우리 모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으로 재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프랜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가져다가 뿌리를 하늘 쪽으로 하고 그 배추를 심으시오.”

한 사람이 말없이 그 배추를 들고 들로 나갑니다. 한 사람은 “하하, 이 성자가 여기서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정말 돌았구먼”라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 사람에게 순종이라고 하는 자질이 있는가?
어떤 명령이라도 그 명령을 받아 순종할 수 있는 순종의 자질이 이 사람의 마음과 삶 속에 있는가? 이러한 것을 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배워야 할 새로운 교훈은 순종의 교훈입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어떤 말씀에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방법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습니다.
 
♪ 찬양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4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6:1∼15
♦ 묵상을 위한 주제 : 천사의 얼굴(15절)
♦ 성구 :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All who were sitting in the Sanhedrin looked intently at Stephen, and they saw that his face was like the face of an angel.   

“천사의 얼굴(the face of an angel)”
얼굴은 삶의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보면 지나온 삶을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의 얼굴은 어떤 삶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얼굴값을 하라!”는 옛 어른들의 깨우침을 생각해 봅니다.

얼굴은 과거의 이력서이며, 현재의 상황판이고, 지금을 알리는 게시판과 같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의 삶은 그의 얼굴을 천사의 얼굴로 드러나게 했습니다. 우리들도 성령 충만함을 힘입어 어지러운 세상에서 빛나는 얼굴 되어 주님을 증거 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풍성한 매일의 삶이 펼쳐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잠언 15:13)

악인은 그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그 행위를 삼가느니라. (잠언 21:29)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도서 8:1)

가난한 사람은 적게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비둘기처럼 더불어 사는 게 아니라 공작새처럼 과시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외모를 과시하고, 돈의 위력을 자랑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스데반처럼 자기 얼굴을 관리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며
믿음의 얼굴은 천국행 티켓과 같다.

♪ 찬양 /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https://www.youtube.com/watch?v=mM_6zgXeqj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5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7:1∼60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영혼을 받으소서(59절)
♦ 성구 :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While they were stoning him, Stephen prayed, Lord Jesus, receive my spirit.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Lord Jesus, receive my spirit)”

스데반은 지금 돌에 맞아 죽는 고통스런 자리에 있습니다. 심각한 고통으로 사경을 헤맬 때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 고통을 좀 해결해 달라!”며 몰핀 주사(Morphine Injection)를 놔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고통스런 죽음 앞에서도 당당한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들은 시간 속에 있는 “네 개의 기둥”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네 개의 기둥’이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말합니다. 기둥이 네 개가 있지만 주로 세 개의 기둥만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네 번째 기둥은 “죽음(死亡)”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세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첫째는 내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
둘째는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
셋째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죽음에 대한 두 가지 교훈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카르페 디엠”
‘카르페 디엠’이란 “현재를 즐겨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메멘토 모리”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말을 타고 거리를 행진할 때 그 뒤에서 한 사람이 “메멘토 모리” 라고 외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은 네가 개선장군으로 거리를 활보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될 운명을 잊지 말고 겸손 하라는 깨우침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공산주의 사상을 유물론(唯物論)이라고 합니다.유물론은 인간의 영혼(靈魂)을 부정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핍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그는 앞으로 이 세상은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두 세력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무너져가는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주도권을 갖고 서서히 자유대한민국을 침몰시키려고 합니다.

성도들이여!
잠에서 깨어 무너지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신앙과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해방 후 누렸던 자유를 후손들에게 더 좋은 자유로 물려주어야 할 책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찬양 /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6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8: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읽는 것을 깨닫느뇨(30절)
♦ 성구 :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Then Philip ran up to the chariot and heard the man reading Isaiah the prophet. Do you understand what you are reading? Philip asked.   

읽는 것을 깨닫느뇨?(Do you understand what you are reading?)”

이디오피아의 관리는 마차를 타고 대략 4∼5일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마침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이사야 53:7∼8). 그러나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여 답답해 할 때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가사까지 내려가라 지시하므로 빌립은 그를 만나서 그가 읽던 내용을 가르쳐주고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결과 이디오피아는 초기 기독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뇨? 라는 질문에서 몇 가지 교훈을 생각합니다.

첫째는 많이 읽었다는 신앙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어렵고 중요한 일이지만 읽는 차원에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다독(聖經多讀)이 영적 교만의 근거가 되면 곤란합니다.

둘째는 많이 암송한다는 신앙

성경 말씀을 많이 암송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암송은 하면서도 그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기억력을 자랑하는 것뿐입니다.

셋째는 많이 배웠다는 신앙

제자 훈련이란 프로그램을 운영을 하면서 다양한 성경공부 모임과 과정을 수료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적인 감동을 줄 수 없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신앙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가운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주님을 닮지 못하는 성경 읽기는 영적 성장의 거침돌이 되기 때문에 철저하게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사탄의 일을 멸하신 예수님(요한일서 3:8)
둘째는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보여주신 예수님(히브리서 1:3)
셋째는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세상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마태복음 20:28
넷째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보여주신 예수님(베드로전서 2:21)
다섯째 생명이 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요한복음 14:6)

예수님,
제 안에 계신 주님의 생명 외에는 그 무엇도 제게 소중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제 안에 계신 주 예수님,
매 순간 저를 통해 당신의 삶을 살아주시옵소서!

♪ 찬양 /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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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8

사도행전 9:1∼43

택한 나의 그릇(15절)

6

9

사도행전 10:1∼48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35절)

6

10

사도행전 11:1∼30

주께 붙어 있으라(23절)

6

11

사도행전 12:1∼25

감옥과 교회(5절)

6

12

사도행전 13:1∼52

내 마음에 합한 사람(22절)

6

13

사도행전 14:1∼28

하나님께로 돌아오라(15절)

6

14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8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9:1∼43
♦ 묵상을 위한 주제 : 택한 나의 그릇(15절)
♦ 성구 :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But the Lord said to Ananias, Go! This man is my chosen instrument to carry my name before the Gentiles and their kings and before the people of Israel.  

“하나님이 택한 나의 사람”

성경에서 “사람”을 “그릇”이라고 표현합니다.
나는 어떤 그릇일까요?
그릇은 담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그릇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담아내야 합니다.

만일 나의 그릇이 거룩함을 담을 수 없는 더럽혀진 그릇이라면 반드시 깨끗하게 닦아야 합니다.

그릇을 깨끗하게 닦는 것을 “회개(悔改)”라고 합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주님의 부름을 받을 지 알 수 없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기에 더욱 더 나의 그릇에 관심을 갖고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신앙이란 만남과 선택이라고 하겠습니다.
주 예수를 만났을 때 그 분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선택입니다.

이제까지 주님을 믿고 따랐다는 신앙 여정에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임종(臨終)의 자리에서 후회와 고통 그리고 환희와 감사와 찬양이 엇갈리는 일이 없기를 기대하며 준비합시다.

사울이 바울로 택함을 받은 그릇이 된 것처럼 우리 모두 택함을 받은 성경한 그릇으로 다듬고 준비하여 주님 앞에 아름답게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무장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디모데후서 2:20-22)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주여, 제 육신의 모든 죄악의 요소를 제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의지가 강화되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 세상의 자랑'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령을 통해 강한 의지력을 얻지 못하면 세상의 바람이 부는 대로 끌려 다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끝은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죄악과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떠한 죄악의 도전이 다가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도전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오 주 예수님
택한 그릇에
거룩한 주의 영으로
듬뿍 채워주셔서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옵소서.

♪ 찬양 / 빈들에 마른풀 같이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9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0:1∼4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35절)
♦ 성구 : 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But accepts men from every nation who fear him and do what is right.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The Man who God accepts)”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뜻이 아닐까요?

“고넬료”는 로마의 외인부대 중대장으로 가이사랴 지방에서는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었던 인물입니다.

고넬료라는 이름은 “뿔, 창, 능력”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지위를 갖고 있었던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 식구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백성들을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고넬료가 기도할 때 환상을 보았고 베드로 또한 기도 중에 환상을 통하여 음성을 듣게 됩니다.

결국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따라 고넬료를 찾아 갑니다.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났다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믿음의 경계선을 긋고 서로 구별하고 비난하는 어리석은 일들이 교회에서 교단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혹시 아직도 내 안에서 경계선을 긋고 주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을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없었는지 살펴보며 내가 먼저 주님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서 주님이 인정하는 것을 나도 함께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나이(年齡)”라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나이라는 경계선’을 무너트립니다.

80이 된 모세는 이제 자신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호렙산 가시넝쿨 가운데 불꽃이 일기 시작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듣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지팡이 하나만 갖고 애급으로 건너가 40세의 청춘에 이루지 못한 히브리 백성들의 독립을 위하여 애급 왕과 싸워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꿈과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꿈과 희망이 없으면 젊어도 늙은이가 됩니다. 나이가 많아도 꿈과 소망이 있으면 결코 퇴화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연령”이 결코 “인생의 연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은 믿음의 연령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나의 믿음의 연령을 강화하여 육신의 나이를 극복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전능 왕 오셔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0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1: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께 붙어 있으라(23절)
♦ 성구 :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아멘
When he arrived and saw the evidence of the grace of God, he was glad and encouraged them all to remain true to the Lord with all their hearts. Amen   

“주께 붙어 있으라!(Stay with the Lord!)”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M. Heidegger 1889∼1976)는 “인간은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 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세상은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는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권세를 잡은 자를 따르며 불순종의 아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에베소서 2: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존재로 오직 주께 붙어 있어야만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을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여기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종이를 누구나 찢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를 철판에 붙이면 누가 찢을 수 있을까요?

더구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결합한다면 어느 누구도 찢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주께 붙어 있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라고 가르쳤습니다(디모데전서 4:5).

오늘도 나를 강하게 붙드시는 주님과 연합하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지요?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강력 본드로 세상에 던져진 연약한 나를 예수님께 붙여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함께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나는 비록 약하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1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2: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감옥과 교회(5절)
♦ 성구 :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아멘
So Peter was kept in prison, but the church was earnestly praying to God for him. Amen  

"감옥(監獄)과 교회(敎會)(Prison & Church)"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바꿀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감옥에서도 아주 편하게 머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이미 성령 충만한 믿음으로 무장되었기 때문이지요.

초대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은 철저하게 예수 중심이었지요.

왜냐하면 오순절 성령께서 임재하신 놀라운 경험을 공동체에서 모두 함께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자기의 모습을 보게 하는 능력과 주님만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게 하십니다.

어느 목사님이 여행 한 여관에 머물게 되었을 때 마침 여관 주인이 모든 직원과 손님들을 모아놓고 예배를 인도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예배를 인도한 후 마침 주방에서 일하는 자매에게 "주님, 제 자신을 보여 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했지요.

얼마 후 그 목사님이 다시 그 여관에 묵었는데 여관 주인은 그 소녀에게 나쁜 버릇이 생겼다고 불평하기를 "밤낮없이 울기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소녀를 다시 만나서 오늘은 기도를 한 가지 더 가르쳐 주고 싶구나. 이제부터 매일 "주님, 저에게 당신을 보여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여라. 소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지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났는데, 목사님이 어느 곳에서 설교를 마치자 한 젊은 여인이 찾아와 "저를 기억하세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자신이 바로 그 여관에 일하던 소녀라고 말하며 "목사님이 첫 번째 기도를 가르쳐 주고 떠나셨을 때, 하나님께 제 자신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제 추악함을 보여 주셨고, 저는 제 죄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슬픔과 두려움에 빠져 잘 때도 일할 때도 그 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다시 오셔서 '주님, 저에게 당신을 보여 주세요'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셔서 그렇게 기도하자, 하나님은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죄의 짐이 모두 사라지고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죄인된 모습이 아니라 죄로부터 용서받고 새 사람이 된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삶은 나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변화시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집안에서 지내는 어려움이 계속될지라도 그 환경에서 내가 변화되므로 모두에게 기쁨과 소망과 삶의 의욕이 넘쳐나는 복된 하루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 찬양 / 나 어는 곳에 있든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2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3:1∼52
♦ 묵상을 위한 주제 : 내 마음에 합한 사람(22절)
♦ 성구 :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아멘
After removing Saul, he made David their king. He testified concerning him: I have found David son of Jesse a man after my own heart; he will do everything I want him to do. Amen 

 “내 마음에 합한 사람(A man of my heart)”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완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다윗을 ‘마음에 합하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느 병원장이 간호사를 채용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내 돈을 주면서 간호사를 채용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간호사를 찾기가 어렵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시편 51편을 읽어보면 다윗은 완벽한 죄인이었으므로 그 죄를 뉘우치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몸부림치는 처절한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7절)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1절)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14∼15절)

다윗은 철저한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이 받아주신다면 오직 주님을 찬송하며 전파하는 일에 생명을 걸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적 결단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었던 다윗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은총의 하루가 펼쳐지기를 기도합시다.

♪ 찬양 /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3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4: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께 돌아오라(15절)
♦ 성구 :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아멘
Men, why are you doing this? We too are only men, human like you. We are bringing you good news, telling you to turn from these worthless things to the living God, who made heaven and earth and sea and everything in them. Amen 

“하나님께 돌아오라(Turning to God)”
“돌아오라”는 말은 “회개(悔改)”를 말합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바울이 루스드라 지방에서 복음을 외칠 때 마침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 장애인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고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고 외쳤더니 그 사람이 뛰어 걸었다고 합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고 하며 “바울은 허메(헤르메스, 머큐리. 웅변의 신)” “바나바는 쓰스(제우스, 주피터)”라고 부르며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깨우쳤습니다.

루스드라 지방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신관을 “다신론(多神論, Polytheism)” 이라고 합니다. 다신론이란 헬라와 로마의 신화처럼 많은 신들이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외침은 “다신론에서 유일신론(唯一神論, Monotheism)으로 돌아오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은 종교다원화주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앙을 성경적인 신앙으로 회복하라는 깨우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세상이 변할지라도 주님을 섬기는 믿음은 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살아가며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성공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작은 불꽃 하나가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15

사도행전 15:1∼41

주 예수의 은혜(11절)

6

16

사도행전 16:1∼40

주 예수를 믿으라(31절)

6

17

사도행전 17:1∼34

예수가 곧 그리스도(3절)

6

18

사도행전 18:1∼28

하나님의 뜻(21절)

6

19

사도행전 19:1∼41

성령을 받았느냐(2절)

6

20

사도행전 20:1∼38

주 예수께 받은 사명(24절)

6

2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15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5:1∼41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의 은혜(11절)
♦ 성구 :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아멘
No! We believe it is through the grace of our Lord Jesus that we are saved, just as they are. Amen   


“주 예수의 은혜(the Grace of our LORD)”
은혜(恩惠)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공짜”라고 하겠지요.
그런데 ‘공짜’가 가장 비싼 것이라는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공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공짜’에 길들여진 삶은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짜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주 예수께서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주 연약한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젊어서 고생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가르쳤던 어른들의 지혜를 생각해 보셨나요?

하물며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구원(救援)”이란 선물을 죄인(罪人)들에게 베푸실 때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를 바르게 깨닫는 믿음만이 헛된 인생이 아니라 명품(名品) 인생(人生)으로 업그레이드(up grade) 할 수 있습니다.

명품인생으로 살아가려면 이제부터 주 예수의 은혜에 미쳐봅시다.
주 예수의 은혜에 붙잡혀 내게 맡겨진 시간을 창조적 시간으로 활용하여 내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시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https://www.youtube.com/watch?v=TvF7KjM0h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6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6: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를 믿으라(31절)
♦ 성구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you and your household. Amen  

“주 예수를 믿으라!”
왜 주 예수를 믿어야 할까요?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세계 3대 종교(宗敎)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生命)’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종교의 교주가 신도들에게 생명을 줄 수 없지만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기독교는 생명입니다.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Marie Hugo)”는 인생의 세 가지 싸움에 대해서 말합니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과의 싸움
둘째는 인간과 인간의 싸움
셋째는 자기와의 싸움

자연과의 싸움은 극복하고 정복하므로 행복을 느낍니다.
인간과의 싸움은 승리하므로 기뻐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정복하는 것도 아니며, 승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죽어야 할 존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생명)을 얻으리라.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믿음의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주시하며 좌우로 치우침이 삶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https://www.youtube.com/watch?v=mM_6zgXeqj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7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7:1∼34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가 곧 그리스도(3절)
♦ 성구 :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아멘
Explaining and proving that the Christ had to suffer and rise from the dead. This Jesus I am proclaiming to you is the Christ. Amen  

“예수가 곧 그리스도(Jesus is Christ)”

언제나 바른 길을 걷는다면 아주 천천히 걷더라도 길을 벗어나 달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길을 걷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달려도 그 길은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다는 것은 바른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그 선택한 길을 계속 걸어야 합니다.생명(生命)이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합니다.왜냐하면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들은 날마다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생명이 되신 주님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들을 돕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할 때마다 다가오셔서 때로는 위로하시고, 꾸짖기도 하시며, 선택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간섭하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간섭하심을 감사하며 신앙의 나침반이 보여주는 방향으로 똑바로 걷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8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8:1∼2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뜻(21절)
♦ 성구 :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아멘
But as he left, he promised, I will come back if it is God's will. Then he set sail from Ephesus. Amen  

 “하나님의 뜻(God's Will)”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요?
사도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로마에서 순교하는 것입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길을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인 “R. C. 스프로울(Robert Charles Sproul, 1939〜2017)”  은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둘째는 하나님의 규례적인 뜻
셋째는 하나님의 기본성향과 연관된 뜻

나는 하나님의 뜻을 “절대적인 뜻(주권적인 뜻)”과 “의도적인 뜻(기본성향과 연관된 뜻)”과 “환경적인 뜻(규례적인 뜻)”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의도).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환경).

그러므로 마지막에는 심판을 통하여 뜻을 완성합니다(절대).

모든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뜻은 “거룩함”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거룩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말씀과 기도”라고 합니다(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나를 향한 주님의 거룩함을 회복하여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19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19:1∼41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령을 받았느냐(2절)
♦ 성구 :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아멘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Amen   

“성령을 받았느냐?(Do you receive the Holy Spirit?)”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b)”

마치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했을 때 이러한 것을 고백하게 한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이란 무엇일까요?
예수를 주라고 고백한 것은 성령의 내재라고 한다면 성령 충만이란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모든 언어와 행동과 생활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충만(充滿)”이란 단어는 안에 가득 채워진 것이 아니라 가득 채워진 후에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순교의 현장에서 돌을 던지는 무리들을 향하여 “저희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하며 평온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보혜사(保惠師)” 라는 의미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보혜사(保惠師)”란 한자의 의미는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들을 지켜주시며 가르치고 깨우치는 스승”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한 삶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보호를 받고 지켜주는 것을 확신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도 내 안에 내주하는 주의 영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라 이 세상에서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구별되는 믿음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성령의 은사를

https://www.youtube.com/watch?v=Wl01xJEEAo8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0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0:1∼38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께 받은 사명(24절)
♦ 성구 :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아멘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 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Amen   

“주 예수께 받은 사명(Mission for the Lord Jesus)”

사명(使命, mission)은 내게 맡겨진 임무(任務)를 말합니다.
소명(召命, calling)이란 임무를 맡기려고 나를 부르신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이렇게 부르셨습니다(소명).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나의 택한 그릇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사명).

나를 부르신 하나님!
내게 일을 맡기신 하나님!

사명이 흐려질 때는 소명으로 흐려진 것을 닦아야 합니다.

소명이 흔들릴 때는 사명으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성도들이 받은 사명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세우라!
둘째는 세례를 받게 하라!
셋째는 진리를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와 용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찬양 /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22

사도행전 21:1∼40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13절)

6

23

사도행전 22:1∼30

너의 죄를 씻으라(16절)

6

24

사도행전 23:1∼35

죽은 자의 소망(6절)

6

25

사도행전 24:1∼27

하나님을 향한 소망(15절)

6

26

사도행전 25:1∼27

바울의 변명(8절)

6

27

사도행전 26:1∼32

회개에 합당한 일(20절)

6

28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22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1:1∼40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13절)
♦ 성구 :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아멘
Then Paul answered, Why are you weeping and breaking my heart? I am ready not only to be bound, but also to die in Jerusalem for the name of the Lord Jesus. Amen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For the name of the Lord Jesus)”

선지자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지고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예루살렘에서 이 띠의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합니다. 이때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을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합니다.

환난과 핍박 그리고 죽음의 위협은 십자가의 길을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위하여 자기 목숨도 내려놓겠다고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바울과 같은 믿음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두 가지 표어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살자!
둘째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자!

인생의 삼 단계는 현재와 내일과 모든 날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1단계, 현재의 할 일은 무엇이냐?
싸우는 것이다.

2단계, 내일의 할 일은 무엇이냐?
이기는 것이다.

3단계, 모든 날의 할 일은 무엇이냐?
죽는 것이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고, 만날까 말까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그러나 죽을까 말까 할 때에는 죽어라.

오늘도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길을 망설임이 없는 믿음으로 달려갈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복의 근원 강림하사

https://www.youtube.com/watch?v=I-BjPHGRCcw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3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2: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너의 죄를 씻으라(16절)
♦ 성구 :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아멘
And now what are you waiting for? Get up, be baptized and wash your sins away, calling on his name. Amen  

“너의 죄를 씻어라!(Wash your sins away!)”

죄를 씻는 비결은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를 세 가지로 말씀합니다(마태복음 3:11).
첫째는 물세례(베드로전서 3:21)
둘째는 성령세례(고린도전서 12:3, 고린도후서 1:22)
셋째는 불세례(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시가 됩니다.
성령세례는 생명과 보증의 표시가 됩니다.
불세례는 심판과 분별의 표시가 됩니다.

오늘날 세례식을 진행할 때 이렇게 선포합니다.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아멘”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브리서 7:22)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들이여!
죄를 씻은 회개와 구원은 표시를 마음에 새기고 구원받은 백성의 거룩한 길을 가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나의 죄를 씻기는

https://www.youtube.com/watch?v=WE4nqto723E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4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3:1∼35
♦ 묵상을 위한 주제 : 죽은 자의 소망(6절)
♦ 성구 :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아멘
Then Paul, knowing that some of them were Sadducees and the others Pharisees, called out in the Sanhedrin, My brothers, I am a Pharisee, the son of a Pharisee. I stand on trial because of my hope in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men 
 
“죽은 자의 소망(The Hope of the Dead)”
죽은 자의 소망은 부활(復活)이라고 합니다.
왜 부활이 죽은 자의 소망일까요?

오늘의 시대는 예전에 비해 문명의 혜택을 크게 누리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문명의 혜택을 크게 누릴지라도 행복하지 않다고 합니다. 행복할 수 없는 이유가 스트레스 탓이라고 합니다.

죽은 자에게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부활한 자에게는 더 이상 스트레스가 작용할 수 없는 신비한 몸의 구조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소망은 부활입니다.

부활 후에는 최고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은 부활도 있고 천사도 있고 영도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무리에 속합니까?

현실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에 부활의 소망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실의 고난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을 갖고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마음껏 발휘하며 승리의 길을 기쁨으로 달려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주를 앙모하는 자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5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4: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향한 소망(15절)
♦ 성구 :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아멘
I have the same hope in God as these men, that there will be a resurrection of both the righteous and the wicked. Amen    

“하나님을 향한 소망(Hope for God)”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어떤 장로들과 변사 ‘더둘로’를 데리고 내려와서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변사 ‘더둘로’는 바울을 가리켜 “염병에 걸린 자”,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더둘로’는 로마법과 로마어에 능통한 로마인으로, 바울을 기소한 자들에게 삯을 받고 대신 송사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이단의 괴수라고 하는 고소에 자신은 무죄(無罪)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고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믿으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천부장의 편지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잘 알았으면서도 자신의 임기 동안 큰일을 치르고 싶지 않은 안일한 태도와 뇌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천부장 ‘루시아’가 처리하도록 판결을 연기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 분명한 사람은 세상에 얽매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방법을 찾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찾는 것을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이여!
오늘도 하나님의 방법만을 기도하며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더 크고 높고 넓고 깊게 다듬어 갈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기도합시다.

♪ 찬양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https://www.youtube.com/watch?v=TvF7KjM0h30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6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5: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바울의 변명(8절)
♦ 성구 :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아멘
Then Paul made his defense: I have done nothing wrong against the law of the Jews or against the temple or against Caesar. Amen 

“바울의 변명(Paul's Defense)”
바울의 변명이란 다른 말로 “바울의 방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방어는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는 신앙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바울은 주 예수께서 주신 사명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분부하셨던 말씀대로 예수를 증거 하는 삶의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증거 하는 삶을 “살아있는 교회”라는 책에서 “존 스토트 박사”는 “거룩한 세속성”이라고 합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의 속성이며 “세속”이란 세상의 속성입니다. 거룩한 세속성이란 거룩은 변하지 않으면서 세상 사람들이 거룩한 곳으로 들어와서 세상의 것을 벗어버리도록 깨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에 거룩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찾아와서 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등지고 사람 없는 곳에서 홀로 거룩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새벽을 깨워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거룩함을 이루셨고, 그 거룩함으로 죄인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시고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 경건생활을 통해 거룩함을 이루고 그 능력으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 찬양 / 나 맡은 본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5bb3rVpLcAo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2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6: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회개에 합당한 일(20절)
♦ 성구 :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아멘
First to those in Damascus, then to those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to the Gentiles also, I preached that they should repent and turn to God and prove their repentance by their deeds. Amen   

‘회개(悔改)’는 죄의 증세와 현상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렸을 때 “콧물이 난다” “머리에 열이 있다” “몸이 으스스하다”  이런 것은 감기의 증세입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므로 감기 바이러스를 다스려야 합니다.

회개 할 때에도 죄의 증세만 고백할 것이 아니라 죄의 실체를 쫓아내야 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것은 마귀라고 합니다(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나를 지배하는 마귀의 힘을 벗어버리고 주의 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온전한 회개라고 하겠습니다.

온전한 회개를 회복할 때 비로써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만일 서울을 가려고 고속버스를 타려면 서울 행 버스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구와 부산 또는 광주 행 버스를 타고 있으면서 서울을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서울에 갈 수 없습니다. 서울에 가려면 먼저 잘못 탄 버스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 행 버스에 올라타야 합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향한 열차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세상 즐거움에 도취되었던 옛 사람의 삶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용서의 주님
몸과 마음 곳곳에 틀어박힌
죄와 허물 잡아내어
십자가 아래 던져버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 따라
믿음의 길만 걷게 하소서.

♪ 찬양 / 멀리 멀리 갔더니

https://www.youtube.com/watch?v=faqUaI9q8Tg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6

29

사도행전 27:1∼44

하나님을 믿노라(25절)

6

30

사도행전 28:1∼31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31절)

7

1

누가복음 1:1∼80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38절)

7

2

누가복음 2:1∼52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

7

3

누가복음 3:1∼38

하늘이 열리며(21절)

7

4

누가복음 4:1∼44

 주의 은혜의 해(20절)

7

5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6월 29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7:1∼44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을 믿노라(25절)
♦ 성구 :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아멘
So keep up your courage, men, for I have faith in God that it will happen just as he told me. Amen   

사도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 의하여 로마로 향하는 배에 승선합니다. 마침 금식하는 절기가 끝나고 배가 행선하기가 어렵다고 느낀 바울은 백부장에게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였으나 백부장은 오히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행선을 결정합니다. 결국 바울의 예언대로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배는 파선되었고 모든 선원들과 승선했던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바울은 담대하게 주장합니다.

바다에 대한 오랜 경험과 노련한 기술을 갖고 있는 선장과 선원의 말을 더 믿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영적 감각이 뛰어난 바울의 말은 경험과 기술을 다스릴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 달 계속되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환경은 사회적 거리는 유지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영적 감각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를 광풍으로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던 사도 바울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전할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을 기도합시다.

그리고 내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항체가 생겨 스스로 치료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비결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https://www.youtube.com/watch?v=D2aAWctZMe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6월 30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사도행전 28: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31절)
♦ 성구 :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아멘
Boldly and without hindrance he preached the kingdom of God and taught about the Lord Jesus Christ. Amen   

유라굴로 광풍에 의해 바울과 그 일행들이 승선했던 배는 파선되었으나 모든 사람들은 기적같이 “멜리데(Melita, 꿀)”라는 섬에 상륙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위하여 원주민들이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바울은 모닥불 옆에 있던 나뭇단을 집어 모닥불 속으로 던졌을 때 마침 나뭇단에 숨었던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사람이 살인자구나!” 하며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거센 풍랑에서 살아났으나 독사에 물려 죽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독사를 털어버리고 태연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젖은 몸과 옷을 발리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다시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독사에게 물렸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신(神)”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He was a god).

바울의 이러한 모습이 결국 “멜리데” 섬의 원주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독사에 물렸던 바울이 뱀을 모닥불 가운데로 떨쳐버렸던 것처럼 믿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십자가로 던져버리고 당당하게 일어나 환경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몸소 보여주므로 살아있는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찬양 / https://www.youtube.com/watch?v=nBSQMx4IjIc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령 충만(사도행전 2:4) 주일 설교 원고(2020-05-31) / 이승혁목사

성령 충만(사도행전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지난 주일에 “영생”에 대한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영생이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It is as if the dew of Hermon were falling on Mount Zion. For there the LORD bestows his blessing, even life forevermore.)  

영생의 복을 받으셨으면 이제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When anyone is joined to Christ, he is a new being; the old is gone, the new has come.)

새로운 피조물의 삶을 유지하려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2장 4절에서는 성령의 충만으로 회복을 말씀합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첫째는 성령 충만이란 현상이 아닙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바람같이 또는 불의 혀같이 나타났습니다.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임재를 모였던 사람들이 느낄 수 있도록 나타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람과 불이 성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했을 때 모였던 사람들은 제자들이 가르치는 복음의 내용을 방언을 통하여 정확하게 들었습니다.

둘째는 성령 충만이란 태도를 말합니다.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이제까지 삶의 방식을 모두 포기하고 함께 모여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2:42-47
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

방언과 기사와 표적이란 현상은 복음에 적합한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주로 방언과 기사와 표적을 강조하여 마치 이런 현상이 성령 충만이라고 생각하였다면 지금부터 그와 같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방언이란 헬라어는 "글로사(γλῶσσα, glóssa. 1100)"라고 합니다.
글로사의 뜻은 "혀(the tongue)" 또는 "언어(a language)"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영어에서 모국어를 "마더 텅(Mother Tngue)" 이라고 합니다.

한글 성경에서는 "혀, 언어, 방언"으로 번역합니다.

예수께서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시며 그의 ""에 손을 대셨습니다(막 7:33)
이때 혀가 곧 글로사를 말합니다.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계 7:9)
"언어"가 글로사를 말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오셔서 그들이 이전에 알지 못한 언어로 말하는 장면이 세 차례 언급됩니다(2:4, 10:46, 19:6) 방언입니다.

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6, 8).

이때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 라고 합니다.
각 지역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할 줄 모르고 그들이 거주하던 지역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대략 16개 언어를 사용하는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였습니다.
마침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들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방언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에는 이와 같은 방언의 사례가 여러 차례 소개됩니다(10:46, 19:6)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부활하신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뒤 오순절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행 2:3~4, 7~8, 새번역)
성령은 그 사람이 어디서 온 누구든,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회복하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오직 예수만 자랑하고 증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지옥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최봉석(崔鳳奭, 1869-1944) 목사가 바로 그 인물로, 세인들에게는 최권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1902년 평안북도 삭주에서였다.
구한말 관리로 지내던 그가 공금횡령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는데, 거기서 삭주교회를 설립한 백유계(白留溪)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노블(W. A. Noble) 선교사가 건네준 쪽복음서를 탐독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에 맞아죽는 꿈”을 꾼 후 그는 성령의 역사로 중생의 체험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예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평양 시내에서 그의 전도를 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몇몇 유명한 일화들이 있다.

하루는 그가 장터에서 전도를 하다가 방탕한 시절의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최권능을 보고 놀려댔다.
자리에 앉히고는 술을 권하고, 마시지 않으니까 입을 벌려서 억지로라도 마시게 하려고 했다.
그래도 마시지 않자 한 친구가 그의 얼굴에다 술잔을 부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들은 이제 큰 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아는 한 최봉석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 친구 오늘 장례 치르는 날이겠구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최권능은 자기 옷을 털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친구가 하도 신기해서 “괜찮으냐, 어떻게 그렇게 참고 넘어가느냐”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최권능은 “이전의 최봉석이는 다 죽었어.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전도하는 최권능이야”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루는 평양의 백동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고 있었다.
그때 한 일본군 연대장이 시장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최권능은 그 일본군 연대장을 향해서 큰 소리로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고 외치며 전도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찼든지 연대장의 말이 깜짝 놀라는 바람에 말에 탔던 연대장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난 연대장은 최권능을 일본군 주재소로 끌고 가 온갖 매질을 하며 심문했다.
그런데 최권능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위축당하지 않고 일본 군인이 내리칠 때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고 외쳤다.
세게 때리면 때릴수록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소리도 그에 따라 커졌다.
그러자 일본 군인은 최권능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조롱하듯이 “당신은 건들기만 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최권능은 “내 속에는 예수님 밖에 들어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건들기만 하면 예수님이 나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일본 군인들은 그를 그대로 풀어주었다.

또 한번은 최권능이 평안도 구성에서 전도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그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들어가 전도한 뒤 그 옆집에서 전도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이 전도한 김씨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곧 김씨의 아들이 찾아와 그를 향해서 아버지를 죽인 자라고 욕하면서 잡아가 자기 집에 가두었다.
이때 그는 오히려 그 아들에게 “네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내가 기도해서 아버지를 살려 줄 터이니 예수를 믿겠느냐?”고 묻자,
그 아들은 “믿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최 목사는 곧 죽은 그 김씨를 붙잡고 땀을 흘리면서 기도하는데,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결과 그 가족과 이웃들이 예수를 믿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최권능은 오직 예수의 사람이었다.
예수의 영으로 충만했던 그의 삶은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점철되었다.
그는 기생집에도 들어가서 전도하고, 남의 부엌에서도 전도하고, 얼굴도 알지 못하는 목사와 장로들에게도 전도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신자다”라고 하면 그는 “당신이 신자면 왜 내게 전도하지 아니하느냐?”라고 무섭게 책망할 정도로 구령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원초적이고 순수한 신앙으로 전도에 헌신했던” 한국교회사 속의 위대한 ‘전도대장’이었고, 예수 복음의 맛을 깊이 알았던 진짜 예수꾼이었다.
일신(一身)의 안일과 명예보다 주님의 명예가 더욱 소중함을 깨달았던 예수의 충복(忠僕)이었던 것이다.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만 자랑하고 증거하려면 반드시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지난 날  예수를 자랑하고 증거하기 못했던 "거짓된 삶을 회개"하고 "형식적인 신앙 싱앙생활을 회개"해야 합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에 대한 성경적 이해

“성령 세례”는 일생에 단 한번 뿐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일생동안 지속되어야 할 사건입니다.

성령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구원 받았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Therefore I tell you that no one who is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be 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고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도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런 것을 알게 하신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즉 성령께서 깨우쳐 알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도 오직 예수님만 자랑하고 증거하는 삶을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자랑하고 증거하는 삶을 실천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용어를 살펴보겠습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용어가 신약 성경에서 “15회” 사용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4번(1:15, 41, 67, 4:1)
사도행전에서 10번(2:4, 4:8, 31, 6:3, 5, 7:55, 9:17, 11:24, 13:9, 52)
에베소서에서 1번(5:18)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입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성령 충만”이란 용어가 14번 사용되었다는 것은 “성령 충만”이란 말이 93%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헸던 스데반 집사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7:55-60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 집사가 이와 같이 성령 충만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수 있었던 까닭은 성령 충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가르쳤던 사도들에게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6:1-5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
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브로고로니가노르디몬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사도들은 사람을 구제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력질주하려고 결단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력질주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오직 단 한 번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성령의 충만을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성령 충만을 "그리스도 안에" 라고 강조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 안에" 라는 용어가 119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서신에서만 112회 사용되었고 나머지 7번은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3회,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1회, 요한이서 1회, 유다가 유다서 2회로 나타납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용어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여 교회를 부흥케하려는 목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란 바울 서신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목적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 이란 용어를 사전적 의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聖靈, the Holy Spirit)” 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삼위 하나님을 말합니다.
“충만(充滿, be filled with)” 이란 가득 채운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 이란 “하나님으로 가득 채운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으로 역사하셨고 부활 승천 후에는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은혜 시대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한복음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이라고 하겠습니다.

산약 성경에서 충만이란 헬라어가  세 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충만이란 의미는 가득 채워진 것이 밖으로 흘러넘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로 충만케 된 후에는 예수가 밖으로 흘러넘쳐나와야 합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 충만입니다.

성령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에 채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령 충만이라고 말씀한 것은 성령의 지배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 충만입니다.
예수 충만이란 예수의 지배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충만이란 예수의 인도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 충만”이며 “말씀 충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채워야 하며, 또 채워지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령 하나님을 어떻게 내 안에 채울 수 있을까요?
말씀을 어떻게 내 안에 채울 수 있을까요?
또 성령 하나님께서 내 안에 채워진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성령 하나님을 내 안에 채우는 것을 이렇게 설명해 봅니다.
커다란 그릇과 물과 스펀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커다란 그릇에 물을 가득 채워 넣습니다. 그리고 스펀지를 물 위에 올려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스펀지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면 스펀지는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이번에는 가라앉은 스펀지를 물속에서 집어들도 손으로 누르면 스펀지에 흡수되었던 물이 다시 스펀지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자, 이제 큰 그릇을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물을 성령이라고 하고 스펀지를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인 스펀지가 물속에 들어가서 물을 최대한 흡수하여 물속에 가라앉는 것을 “세례” 라고 하며 “성령 충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례(洗禮)”를 헬라어로 “밥티조(βαπτίζω. 907, baptizó)” 라고 합니다. ‘밥티조’는 “잠기다, 가라앉다”는 뜻입니다(to dip, sink). 따라서 물을 흡수한 스펀지가 물속에 가라앉는 것은 “세례”라고 하겠습니다.

스펀지가 물을 최대한 흡수한 것을 충만 이라고 합니다. 즉 성령 충만과 같습니다.
그런데 만일 스펀지가 나는 물을 흡수하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며 거부하면 물을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펀지가 물에 닿는 순간 자연스럽게 물을 흡수하면 스펀지는 물 위에 떠 있지 않고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 충만이란 스펀지와 같이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 할 때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드릴 때 실현 될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스펀지가 물속에 가라앉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스펀지가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 흡수한 물을 모두 포기하면 다시 물위로 떠오르는 것처럼 성령 세례를 받고 구원 받은 사람으로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몸부림을 쳤을 때 나도 모르게 물이 점점 내 안에서 빠져 나가버립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세상살이가 지옥과 같고 신앙생활에도 기쁨이 없습니다. 이때 다시 물속에 깊숙하게 들어가려면 내 주장과 의지와 습관과 지식과 같은 것들을 모두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다시 성령 충만한 삶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어떤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말합니다.
현상과 상태를 구분해야 합니다.
현상이란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것, 눈 먼 자가 눈을 뜨는 것,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 것과 같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상태란 보여진 것이 아니라 보여지기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말합니다.
보여지기 위한 완벽한 준비가 드러날 때 성령의 열매가 됩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사도 바울에게서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열매맺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이란 교회 중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성령 충만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교회 밖에서 열매 맺는 삶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면내시경 할 때 헛소리 하는 이유는 뭘까?

수면내시경 할 때 헛소리 하는 이유는 뭘까?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수면내시경을 할 때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리거나 이해가 안 되는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등장한다.
이처럼 수면내시경을 할 때 자신도 모르게 헛소리를 하는 과학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수면 마취, 숨 쉴 수 있을 만큼 의식 남아있어

수면내시경을 할 때 진행하는 수면 마취는 그 명칭 때문에 '완전히 잠든 상태로 마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환자가 완전히 의식을 잃을 정도로 마취제를 투약하면 스스로 호흡을 유지하지 못하는 '호흡부전' 상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마취제는 환자가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은 의식이 유지될 정도로 투약한다.
수면제가 아니므로 실제 뇌파를 살펴보면 잠들었을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의학 용어로는 수면 마취를 '의식하 진정요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약하게 마취된 상태에서는 환자에 따라 간단한 질문에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수면 마취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약물은 프로포폴,  미다졸람,  케타민이 있는데, 이를 '3대 수면마취제'라고도 불린다.
서울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이형묵 교수는 "케타민은 주로 30분 이내로 짧게 마취할 때 쓰인다"며 "수면내시경을 할 때는 주로
프로포폴이나 미다졸람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프로포폴은 다른 마취제보다 마취유도와 회복력이 빨라 가장 많이 쓰이는 약이다.
보통 2~8분만 지나도 마취에서 깨어나고, 소변으로 모두 빠져나와 몸에도 전혀 남지 않는다.

코골이 심하다면 마취 전 의사와 상의해야

부작용 때문에 수면 마취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안심해도 된다.
마취제를 의사의 지시하에 적정량 투약했을 경우, 중독이나 부작용 위험성이 거의 없다.
마취제를 오·남용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는 시술자와 감시자를 두지 않고 환자 의지대로 투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인은 프로포폴 중독이나 부작용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면 마취 중 갑자기 약효가 떨어져 깨어날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이형묵 교수는 "환자의 움직임이 갑자기 격렬해지거나, 심장 박동수가 증가하는 등 마취에서 깬 듯한 현상이 보이면 마취제를
더 투약한다"고 말했다.

다만,
▲고도 비만
▲호흡기 장애
▲목에 방사선 치료나 수술을 받은 경험
▲심한 수면무호흡증(코골이) 등이 있는 사람은 수면 마취를 하기 전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는 게 좋다.
다른 사람보다 호흡부전이 나타날 위험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형묵 교수는 "코골이가 심하다는 것은 의식이 없어지면 호흡 기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런 경우 수면 마취를 하기 전 의료진에게 미리 알리는 게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