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요한 서부산교회(예장합동) 목사
누군가가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는 ”안토니오 그람시“ 란 이름의 유령이 장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성령께서 운행 하셔야 할 교회 안에서도 그람시의 망령이 운행하고 있다.
그람시의 전략론에 나오는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나 진지전(陣地戰)이란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꿈꾸던 자들에게 획기적인 전략을 제공해주는 사상이다.
그람시는 1924년에서 1926년 사이에 이탈리아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지만 결국 무솔리니에 의해 투옥되고 20년의 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11년 동안 복역 하다가 1937년에 죽었다.
당시 검사는 「우리는 이 인간이 20년 동안 두뇌활동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도 왕성한 두뇌활동을 해서「옥중수고」란 글을 남겼는데 최근 공산주의 정치사상사의 고전이 될 만한 원리를 담고 있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켄타우로스(半人半馬)가 혁명 정당이 갖추어야 할 이중적 전망의 상징이라고 하면서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람시는 폭력 혁명적 투쟁에 못지않게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큰 비중을 두었다. 그는「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란 말을 만들었는데, 이는 교육, 언론매체, 법, 대중문화 따위가 중요한 역할을 떠맡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 기구에 의한 물리적 강제력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시민사회 내에서 획득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서 계급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념, 가치, 문화적 전통, 신화 등과 같은 상부 구조적 현상이 일반 대중 속에 깊게 파고 들어가서 기존의 권력 체계를 영속 시키는 한, 이에 대한 계급해방 투쟁은 그런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대항 헤게모니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창출해 내어야만 그 체제를 전복 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성공 시키려면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헤게모니를 국가로부터 빼앗아 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언론, 학계, 예술, 문화 종교 등 광범한 분야에 진지를 구축하여 대항 헤게모니를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람시의 전략론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가진 기동전과 진지전이다. 그는 성숙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동전이나 극적인 대결 보다는 점진적이고 전면적인 진지전이 적합하고 기동전은 그런 진지전의 일부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지전은 광범위 한 전선에서 전개되는 혁명 투쟁으로서 일종의 정치적 참호전이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에 침투하여 진지를 만들고 그 진지를 중심으로 하여 사회주의 혁명 이념 같은 대항 헤게모니를 확산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노조, 학계, 언론계, 예술계, 종교계 등 그 사회의 모든 분야에 침투하여, 숙주를 찾아 참호를 만든 다음에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이념을 확산시켜 이데올로기적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이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언론,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은폐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분위기, 가치관, 학설, 예술형태, 논리, 그리고 용어를 확산시킴으로써 진지, 하나하나를 확보해가는 식으로 장기적인 투쟁을 하다가 대세가 유리하게 기울었다고 판단되면 진지에서 뛰쳐나와 기동전으로 돌입하여 결정적으로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성공시킨다는 것이 진지전 이론의 핵심이다. 그람시는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찾아오는 사건이 아니라, 舊사회 내부에서 시작되어 극적인 변화의 시기에 일어나며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진행되는 사회 변화의 全과정을 혁명으로 본다. 그래서 舊사회의 질서는 혁명에 의하여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新질서가 건설된 다음에 비로소 파괴된다는 것이다.「과정으로서의 혁명」은 소수 엘리트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그 주체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적 정권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람시의 사회주의 혁명 전략이 그대로 적용 된것 같다. 박정희 정권의 독재 아래서 숙주를 찾아 바이러스처럼 번식하며 진지를 구축하고 사회 각 층으로 확산 시키며 진지전을 실행 해 오다가 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기동전을 펼치므로 헤게모니를 잡았다고 볼 수 있으며 앞으로 지속적인 혁명완수의 길로 나아갈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혁명이 성공 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만약 성공하여 혁명을 완수 한다면 대한민국에는 교회는 존재 하겠으나 결국 알맹이는 다 변질 되어 버리고 껍질만 남는 한국교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벌써 한국교회 안에 깊숙이 침투하여 숙주를 찾아 진지전을 활발하게 성공적으로 펼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 일부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미 전염되어 숙주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끌려만 가는 형국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치계의 상황도 사회주의자들이 언론, 학계, 학원, 사회단체,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 이념적 주도권을 잡고, 반공, 보수, 우익이란 말을 나쁜 뜻으로 각인 시켰으며, 실제로 보수 세력들은 말조심을 해야 할 만큼 기가 죽어 있다.
반면, 좌익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민주, 민족, 진보란 이름으로 위장을 하고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윤미향을 비롯한 수많은 자들이 윤리적 도덕적 해악을 저지르고도 꼿꼿하게 머리를 쳐들고, 잘못을 질타하는 국회의원에게 오히려 호통을 치거나 무시를 할 정도다. 이는 체제를 뒷받침하는 이념적 헤게모니가 그들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람시의 혁명 전략을 우리나라에 적용하여 체제를 완성시키려면 대한민국이 딛고 있는 헌법적 질서와 대한민국을 뒷받침하는 애국적 가치관과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대한민국의 태동을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이승만이 아닌 김구로 바꾸어 간다. 왜냐하면 이승만으로 하면 공산 세력이 파고 들어올 여지가 없지만 이 민족이 존경하는 김구로 하면 김구와 이승만의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과 세력이 맘껏 파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승만이 세운 민주국가의 태동을 부정하는 역사관을 확산시키고 6.25전쟁의 원흉을 국가 유공자로 만들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국군의 역할을 용병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대한민국을 공산 세력으로부터 지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미국을 위시한 우방들을 배격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며 광화문에 모여서 부르짖는 애국자들을 반 민족 친미 세력으로 매도하고 급기야는 코로나 전염병 집단으로 매도한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는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라는 사실을 잘 아는 그들은 코로나 19를 통하여 교회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기독교의 선구자들을 제거 하려고 획책하며 심지어 교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교회 내부에 구축된 진지들을 이용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게 하므로 그들에게는 산 같은 거대한 장애물을 제거 하려고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무력화 하려는 다양한 전략들을 전개 해 가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고 뼈아픈 사실은 일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단 운운 하면서 그들에게 동조하며 협조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정부는 그람시가 주창한 대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논리를 확산시켜, 재벌의 강제 해체라든지, 지주(地主)타도, 재산몰수 같은 무시무시한 용어가 바로 정의로운 행동을 표현하는 것처럼 가치관을 거꾸로 돌리면서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실상 세계적인 성공사례인 해방 후 남한에서 있었던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실패작이라고 주장하고, 북한에서는 지주로부터 강제로 농토를 몰수하여 국가 소유로 했기 때문에 반동 지주계급을 청산하는데 성공했다는 논리를 은근히 지지하면서. 사유재산을 국가가 자의로 빼앗는 것이 당연시 되면 이것은 사회주의 계급 혁명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는 그람시의 전략을 은밀히 진행 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부동산 정책이다.
자유 대한민국에서는 강제로 부동산을 뺏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수없이 욕을 들어 먹으면서도 말도 안 되는 부동산 정책을 21번이나 고쳐 가면서 시행하는 것은, 서민들은 부동산을 아예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이미 부동산을 가진 자들은 감당 할 수 없는 괴물 부동산법을 통한 과세를 견디지 못하게 해서 부동산에서 손을 떼게 만들고 결국 국가가 권리를 갖게 되는 법적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옛날 시골 복덕방의 아주머니 수준도 안 되어 보이고 부동산에 대해서는 상당히 멍청해 보이는 국토교통부 장관을 해임시키라는 원성도 아랑곳 없이 그대로 두는 것은 왜 일까? 부동산 매물 공시자가 상향과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세수는 어마어마한 쌈지 돈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오를 수 없을 만큼 올아 버렸기 때문에 오르지 않는 아니 오를수 없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놓고 부동산 가격상승을 잡았다고 선전 선동 한다. 그러나 빌라가 오르고 오피스텔이 올라간다. 영이어 세종시가 올라간다. 이 모든 과정은 상당히 계산적이고 정략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부동산 정책을 관리하는 자들의 머리가 비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으로 전 국민이 부동산을 소유하기 힘들게 만들면 결국 부동산의 실제 권리는 누가 쥐게 될 것인가? 다양한 경제적 헤게모니마저 거머쥐겠다는 속 샘이 아니겠는가?
그람시는 혁명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족적인 성향을 띠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탈리아의 현실에 맞고 이탈리아 시민들의 열망과 관습, 그리고 욕구를 드러내는 언어 전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이 나라에서의 그람시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민족의 열망인 통일이라는 욕구를 충동해서 반미, 반일 친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언어 전술을 구사 한다. 그람시의 전략대로 계급투쟁을 단순히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민중적 이익을 추구하는 운동으로 위장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지계층을 확보 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마키아벨리의 이중적 전망을 인용해서 당은 ‘강제와 동의’, ‘권한과 헤게모니’, ‘폭력과 교화’, ‘선동과 선전’, ‘전술과 전략’이라는 두 계기들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람시의 이론대로 지금 선동과 거짓 선전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명수들이다. 그래서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고 교회가 속아 넘어가고 심지어 교회의 일부 지도자들마저 속아 넘어가고 있다.
이즈음에 세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와 민족의 선견자가 되고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목사들만이라도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상이나 목전의 이해타산을 좀 내려놓고 말씀과 냉철한 지각으로 그람시의 망령을 몰아내고 성령께서 기쁘시게 교회위에 운행 하시도록 성령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성령님의 종들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