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누가복음 4:18-19) / 2020 성탄축하예배 설교 원고(12-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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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누가복음 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소통(疏通)이란 한자의 훈(訓)을 살펴봅니다.

"소통할 소(疎), 트일 소(疎). 통할 통(通)"


1. 사물이 막힘이 없이 잘 통함.

2. 의견이나 의사 따위가 남에게 잘 통함.


소통이란 단어를 영어로 "컴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면 "회복을 위한 소통" 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에서 주의 은혜의 해는 희년을 의미합니다.

희년이란 안식년을 일곱번 지낸 후에 맞이하는 50년을 말합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것들을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회복됩니까?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4.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세 가지 회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기쁜 소식을)

2. 포로된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죄의 멍에를 벗는 것)

3.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영적 시력)


주의 은혜의 해(the year of the Lord's favor)

은혜를 원어로 살펴보면 "받으실만하다"는 뜻입니다.

받으실만하다는 뜻은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는 것을 말합니다.


세속적인 의미로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나니" 라는 말씀에서 성령은 영적인 것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의미로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라고 하겠습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육신적으로는 가난할지라도 믿음에는 부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포로되고 눌린 자는 죄의 포로가 되어 죄의 짐에 짓눌린 사람입니다.

죄는 내가 내 마음대로 죄를 짓지만 한 번 죄를 지으면 내 마음대로 벗어버릴 수 없을만큼 무겁습니다.


눈먼 자는 심판의 때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탄(聖誕) : 성스러울 성(聖), 태어날 탄(誕)

쉽게 설명하면 거룩하게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하게 태어나야 할 시기를 세 가지 절기로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아기 예수께서 2천 년전 태어난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면 성탄의 참된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2천 년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께서 성탄의 의미를 완성하시려고 그 다음의 성탄을 이루셨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제1, 제2, 제3의 성탄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제1의 성탄


제1의 성탄은 "성육신(成肉身)"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 날을 성탄절(聖誕節) 또는 크리스마스(Chfist + Mas)라고 합니다.

영어로 Incarnation이라고 합니다.

성육신이란 영이 육으로 내려오신 사건을 말합니다.

성육신 사건은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일어났습니다.


둘째는 제2의 성탄


제2의 성탄은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신 사건을 말합니다.

이날을 성 금요일 또는 굿 프라이데이(Good Friday)라고 합니다.

영어로 Crucifixion이라고 합니다.

성 금요일은 육이 죽는 사건을 말합니다(死亡).

성 금요일 사건은 갈보리 언덕에서 일어났습니다.


셋째는 제3의 성탄


제3의 성탄은 "부활(復活)"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 날을 부활절(復活節)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Easter 또는 Resurrection이라고 합니다.

부활의 사건은 육이 영으로 완전하게 회복되는 사건을 말합니다.

부활의 사건은 빈 무덤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제1의 성탄과 제2의 성탄 그리고 제3의 성탄 과정을 거쳐 비로서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마무리 할 수 있는 은혜가 오직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때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19절을 읽어봅니다.

"주께서 은혜 베푸실 때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은혜 베푸실 때는 희년(禧年)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완전히 회복되는 해를 말합니다.


(도입 이야기)

팬데믹 시대에 성탄을 맞이하는 분위기를 풍자하는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20년 12월 25일에 산타 할아버지가 도착했지만 14일 동안 격리해야 하므로 산타 할아버지는 2021년 1월 9일에 등장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의견을 말합니다. 산타 할아버지는 지혜롭기 때문에 격리 기간을 미리 알고 서둘러서 12월 9일에 출발하셨기 때문에 12월 25일에 등장할 것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지역을 여행하거나 방문 할 때 14일 동안 격리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칙을 풍자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와 소통이 잘 된다면 정해진 날자에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타 할아버지와 소통이 잘 안된다면 정해진 날자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 주제를 소통이라고 정했습니다.


성탄이란 하늘과 땅의 소통이 이루어진 날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불란서의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 1623. 6. 19~1662. 8. 19)은 인간을 "중간적 존재" 라고 정의했습니다.


첫째는 시간적 의미


인간은 과거에 붙잡혀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에 머물며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중간적 존재라고 합니다.


둘째는 형태적 의미


인간은 하나님도 아니고 천사도 사탄도 아닌 다르게 표현한다면 영적인 형태가 아니라 육체를 갖고 살아가야 하는 육체적 존재이므로 중간적 존재라고 합니다.


셋째는 공간적 의미


인간은 하늘 위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물고기처럼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땅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가는 중간적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이 중간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내려 보내지 않았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알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이와 같은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느 산골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공중을 날던 참새들이 먹이를 찾아 눈 덮인 땅을 빙빙 돌고 있습니다.

마침 그 광경은 농부가 보고는 참새들이 먹을 것을 찾지 못해서 저렇게 공중을 돌고 있구나!

내가 먹을 것을 주어야지 하고는 마당에 쌓인 눈을 치우고 땅 위에 참새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들을 흩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참새들을 향해 손짓하며 소리칩니다.

"참새야! 이리로 내려와서 여기 있는 곡식을 쪼아 먹어라!"

그런데 참새들은 여전히 공중을 빙빙 돌며 먹이를 찾아 다닙니다.

왜 참새들이 농부가 눈을 쓸어버리고 곡식을 뿌려놓은 것은 먹지 못할까요?

참새와 농부의 존재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합니다.

인간은 육체로 존재합니다.

영적 존재가 영적인 방법을 아무리 설명하지만 육체로 존재하는 인간은 모두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곧 영적인 하나님이 육체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성탄이라고 합니다.

성탄은 곧 영적인 하나님과 육체적인 인간이 소통하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탄은 소통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떤 소통의 은혜를 회복해야 합니까?


인크루레(InCruRe)

성육신(Incarnation) : 영이 육신이 되었으므로 육신으로 영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하늘에서 땅으로)

십자가(Crucifixion) : 육신이 죽어야만 하는 것(땅 위에서 땅 아래로) 

부활(Resurrection) : 육이 온전한 영으로 회복하는 것(땅에서 하늘로)



첫째는 사랑의 소통


어른들이 철 없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이 다음에 네 자식 낳아 길어보면 그때 내 심정을 알 것이다!"

육체로 살아가는 어른들과 아이들도 서로 소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제야 철이 들었구나!" 하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서로 소통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갖고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소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하늘의 아버지께서 땅의 자녀들에게 베푸는 사랑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너무 막막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직접 보여주시려고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게 하셨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30년 동안 세상에서 모두가 겪는 과정을 다 겪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30년 후에 비로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이 어렵다고 하겠습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이서 가르침을 받았고 함께 생활하던 제자들도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제자들은 모두 그 자리를 피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고통의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다이바 부인(Lady Godiva, 990년경 - 1067. 9. 10)


고대 머시아 왕국(현재 코번트리)의 백작 부인.

전설에 의하면 레프릭 영주의 무리한 세금 징수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때 그의 부인 고다이바는 남편에게 백서들에게 부과한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레프릭 영주는 부인에게 "당신이 벗은 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생각해 보겠다"고 합니다.

남편의 말을 듣고 고심하던 고다이바 부인은 남편의 제안을 받아드리기로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부과한 세금을 감면해 주려고 영주의 부인으로 몸소 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지 않으려고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사랑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


잠언 17:9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니라.


사랑은 내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사랑을 확인한 후에는 양방적인 사랑으로 발전해야 믿음이 형성됩니다.



사랑의 소통이 실현된 후에는 반드시 믿음의 소통이 따라와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소통


믿음이란 서로 신뢰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맡기지 못한다면 같은 공간에 머물지라도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교회 초기에 활동하셨던 채필근목사님이 어느 날 지방의 여러 교회들을 돌보기 위해 마침 어느 여관에 머물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한 사람이 방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방에 여러 사람이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채필근목사님이 머물게 된 그 방에 나중에 낯선 사람이 또 들어와서 함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목사님은 당시 지방의 여러 교회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교회를 지원한 돈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 밤중에 곁에 있는 사람이 부스럭하고 움직이면 목사님은 헛기침을 하며 나도 깨어있소 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밤새도록 부스럭 거리면 헛기침을 하였는데 날이 밝고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여관에서 아침 식사를 하려고 같은 밥상에 앉았는데 채목사님이 식사기도를 하는데 마침 함께 머물렀던 그 사람도 기도를 합니다. 서로 기도를 마친 후에 누구십니까? 하고 서로 통성명을 하는데 나는 채필근목사외다! 아 그러시군요 나는 아무게 영수라고 합니다.


그때 채필근목사님께서 깨달은 것은 목사와 영수가 같은 방에 머물면서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시럭 거리면 헛기침을 하는구나! 밤이 늦었더라도 서로 통성명을 먼저했으면 평안한 밤을 보냈을텐데 하며 믿지 못하는 것이 세상의 화근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 아들을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보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비난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

인간의 이성과 상식으로 받아드릴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믿기 위해서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열면 모든 것이 이해되겠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여전히 어둠 가운데서 서로 부스럭 거리며 헛기침만 계속할 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문이 없는데 어떻게 문을 열어야 할까요?


1. 듣는 단계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먼저 들어야 합니다.

2. 이해하는 단계

들은 것이 있으면 들은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들어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3. 아는 단계

듣고 이해했다면 그 다음에는 알아야 합니다.

영어라는 것을 모두 듣습니다.

어떤 것은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4. 믿는 단계

아는 것은 행동하므로 정확하게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행하므로 믿음은 더욱 크게 확산되고 증가될 것입니다.

 


믿음을 위하여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빛을 들고 서 있는 예수님이란 그림을 소개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셋째는 소망의 소통



소망이란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로마서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어떻게 제1의 성탄을 제2와 제3의 성탄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까?


누가복음 4:18a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사야 61:1a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팬데믹 시대에 맞이하는 2020년 성탄은 우리들에게 제1의 성탄을 제2의 성탄으로 그리고 제3의 성탄으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는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일의 열매를 얻기 위하여 주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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