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 후에(요한계시록 4:1) /설교 원고(2019-05-05)

이 일 후에(요한계시록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After this I looked, and there before me was 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And the voice I had first heard speaking to me like a trumpet said, Come up here, and I will show you what must take place after this.

(도입 이야기)
‘스타인메츠(Charles Proteus Steinmetz, 1865. 4. 9~1923. 10. 26)’라는 미국의  전설적인 전기 기술자가 있었습니다. 원래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출생하여 브레슬라우, 취리히,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 전기 공학,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의 기술자로 취업되었고 유니온 대학 물리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벼락을 연구하여 피뢰침을 개량했으며 발전기와 전동기에 관한 200개 이상의 특허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공장에서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작동되지 않을 때 여러 기술자들을 불러 발전기를 수리하도록 의뢰하였으나 도저히 수리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스타인메츠에게 발전기 수리를 의뢰하였다고 합니다. 스타인메츠가 발전기 이곳저곳을 작은 망치로 두들겨 보더니 즉시 고장 난 부분을 알려주며 그곳에 하얀 분필로 표시한 후에 그곳을 뜯어서 고치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여러 날 동안 많은 기술자들이 동원되어 고장의 원인을 찾았으나 찾을 수 없었는데도 스타인메츠는 망치로 몇 번 두드리더니 고장 난 부분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공장 앞으로 발전기 수리비로 1만 불의 청구서가 배달되었습니다. 공장장은 스타인메츠에게 작은 망치로 몇 번 두들겨 본 것이 전부인데 수리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하였더니 그 때 스타인메츠가 공장장에게 ‘분필로 고장 난 부분 표시한 수고비는 $100. 그리고 어디를 고쳐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기술은 $99,900 이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결국 공장장은 스타인메츠에게 1만 불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스타인메츠의 이야기는 ‘구조를 알고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렵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편지(便紙) - 서신서(書信書)

요한계시록은 계시서, 예언서 그리고 서신서라고 소개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한 통의 편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편지를 받은 후에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번에 읽어야 합니까? 아니면 한 문장씩 두고두고 해석하면서 읽어야 합니까? 편지는 받는 즉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단번에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회람 편지이기 때문에 일곱 교회가 돌아가며 읽어야 하므로 단번에 읽고 다음 교회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두루마리에 기록된 편지는 ‘파피루스’라는 특수한 종이에 기록했는데 요즘처럼 장과 절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된 긴 문장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통용되던 코이네 헬라어로 쓰여 진 편지는 구두점도 없고, 띄어쓰기도 없으며, 모두 대문자로 쓰여 졌기 때문에 읽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구절이 요한계시록 1장 3절입니다. 특히 개역한글 성경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개역 개정 성경에서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개역 개정)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는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과 지키는 사람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입니다.

당시 교회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두루마리를 읽는 전문 낭독자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루마리를 펼쳐서 읽으면 회중들은 그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편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요한계시록이 기록되고 거의 2천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누구나 성경책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는 파피루스는 부자들만이 가질 수 있었기에 회중들이 쉽게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돌려가며 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책을 누구나 갖고 다닐 수 있습니다. 만일 그 당시 사람들이 여러분들을 만난다면 여러분들은 굉장한 부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둘째는 공간적 구조

1장부터 3장은 밧모 섬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4장부터 11장은 사도 요한이 하늘로 올라간 후에 본 환상의 사건입니다.
12장부터 22장은 사도 요한이 다시 땅으로 내려온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셋째는 내용적 구조
1:19∼20, 사도 요한이 본 것
2∼3장, 지금 있는 일(일곱 교회에 관한 말씀)
4∼22장, 장차 일어날 일

항상 요한계시록에 대한 구조를 기억하고 말씀을 읽어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 이제 오늘 소개한 본문을 읽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통하여 본문을 읽었을 때 사도 요한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 맞습니다. 요한은 지금 하늘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 후에’ 라는 말씀은 문법적으로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일 후에는 단수형으로 표현했지만 헬라어 원문에서는 복수형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 후에’ - ‘메타 타우타(Μετὰ ταῦτα, After these things)’ 직역 하면 ‘이 일들 후에’ 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들이란 어떤 일이냐?” 이 일들을 어디와 연결하느냐에 따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결정됩니다.

첫째는 3장 21절과 연결하는 해석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3장 21절과 연결하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역사적 사건의 순서라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을 주장하는 것을 ‘세대주의 신학’ 이라고 합니다. 세대주의는 신학의 특징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대주의 신학은 “성경을 역사적으로 일곱 시대로 구분”합니다. 일곱 교회를 일곱 시대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일곱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를 4장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3장 21절에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때부터 공중으로 들려올라간 상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4장은 이미 모든 성도들이 하늘로 들림을 받은 휴거 상태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보좌’ 라는 단어에 필이 꽂혔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교회’가 역사적으로 마지막 시대라고 해석합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은 ‘대형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을 갖는 시대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성도들은 모두 하늘로 올라간 후에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이며 성도들은 환난을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째는 1장 17절과 연결하는 해석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환상으로 보게 된 사도 요한은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환상 계시를 받고 있습니다. 먼저 받은 것은 일곱 교회와 일곱 교회의 사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1:17∼20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지금 사도 요한은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본 후에 그의 발 앞에 엎드려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모두 받은 후에 비로써 4장 1절로 연결됩니다. 이제 4장 1절을 읽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에’ 라는 말씀이 단수형으로 소개되었지만 원래는 복수형입니다(메타 타우타, Μετὰ ταῦτα. After these things). 그러므로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이 일들 후에’ 라고 하겠습니다. 이 일들이란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말합니다.

이 일 후에 -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받은 후에
내가 보니 - 엎드려 있던 요한이 고개를 들고 보았다
처음에 내게 말하던 음성 - 나타나셨던 예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렸다

 

역사적 시간 순서가 아니다. 요한이 경험한 계시의 순서이다.

한국교회가 과거에 세대주의 신학을 공부했던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선교사들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선교사들이 배웠던 것에 의해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와 지금은 또 다른 시대일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가 많은 발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학문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학문의 자리에서 더 발전되고 말씀의 진가를 높이 드러낼 수 있는 연구 자료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을 받은 후에 라고 하면 문맥상 그 순서가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내가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과 연결하여 보좌에 앉게 된다고 해석을 하면 휴거 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4장 1절에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셨으므로 하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고 해석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이 과거 한국교회에 가장 많이 소개된 해석입니다. 그 이유는 초기 한국 교회에 복음을 전했던 미국 선교사들이 이와 같은 해석 방법과 신학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야기)
메시아 초림 예언 구약 456회
재림 예언 신구약 1,518회 - 구약 1200회, 신약 318회
초림의 예언 456회 모두 성취되었다.
재림의 예언 반드시 성취 될 것이다.
‘우리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있다. 단지 그의 도착이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2차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벽에 새겨진 글,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참고 기다릴 수 있었던 신앙은 주님은 오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주님과 동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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