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세기 37장과 잠언 6장 및 시편 37편을 읽습니다.
개신교의 교파는 세계적으로 2만 여개라고 하며 한국에만 200~250 여개의 교파로 분열되었다고 합니다. 각 교파는 성경의 해석에 따른 교단의 교리와 제도 및 전례와 같은 차이에 의하여 분리된 것입니다. 같은 교파라도 개 교회와 목회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성경의 절대성을 주창하면서도 실제에선 각각 다른 해석을 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이미 얻어진 정보에 따라 해석하는 것보다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서 네 개의 질문을 제시했습니다.
나를 향한 교훈, 책망, 바르게함, 유익함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창세기 36장은 언약의 후손이 아닌 에서의 가문과 혈통을 소개합니다. 외형적으로는 매우 순탄하고 강한 힘을 갖는 족장(천부장)들과 왕의 제도를 도입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7장은 언약의 후손들이 겪어야 할 여정을 마지막 50장까지 소개합니다. 언약의 후손들에게는 고난과 유혹 그리고 기근과 절망이 끈질기게 따라옵니다.
눈에 두드러진 언약을 떠난 에서와 같은 가문을 따를 수도 있고 좁은 길과 좁은 문과 같은 언약의 가문을 따라갈 수도 있습니다.
열일곱의 애송이 요셉은 채색옷을(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의복) 입고 아버지의 심부름에 따라 양을 치는 형들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형들은 꿈을 꾸는 동생의 꿈이 어떻게 실현될지 두고 보자고 하며 동생 요셉을 미디안의 상인들에게 은 20개를 받고 노예로 넘겨줍니다.
예전에 한국인들의 특성을 ‘고보자 인생’이라고 정의했던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먹고 보자! 놀고 보자! 쉬고 보자! 가고 보자! 자고 보자!
요셉의 형들도 미운털 요셉을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어버리고 보자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요셉을 처리하기로 한 것입니다.
순식간에 요셉은 채색옷을 입었던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하던 상속자의 신분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되어 낯선 땅에서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언약의 백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백성이지만 때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요셉과 같은 고통과 두려움에 던져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성경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믿음은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은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오늘도 가장 작은 것에 온 몸과 마음을 쏟아 붓는 언약의 즐거움에 새로운 날이 도래할 것을 기대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요셉과 같이 미움의 대상이 되었거니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걸림돌이 되었었는지를 살펴보며 나 자신을 바르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세기 37:20)
- Come now, let's kill him and throw him into one of these cisterns and say that a ferocious animal devoured him. Then we'll see what comes of his dreams.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뉴욕나사렛교회 이승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