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오늘의 묵상 자료(2월)

2020 오늘의 묵상(2월)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

로마서 16:1∼27

지혜의 자리와 악의 자리(19절)

♦ 2월 1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로마서 16:1∼27
♦ 묵상을 위한 주제 : 지혜의 자리와 악의 자리(19절)
♦ 성구 :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I want you to be wise about what is good, and innocent about what is evil. Amen

선(善, ἀγαθόν)이란 “양(羊)의 입(口)”이 되는 것입니다. 
양의 입이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죄가 없지만 죄를 대속하려고 자기를 죽이는 현장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직 하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말이 없는 어린 양과 같은 행동이 곧 “선(善,ἀγαθός )”이라고 하겠습니다.

악(惡, κακόν)이란 “작은(亞) 마음(心)”을 말합니다.
작은 마음이란 생각이 작고 좁은 것을 말합니다.
생각이 좁은 사람의 특징은 “오해(誤解)”와 “착각(錯覺)” 때문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습니다.

악(惡, κακός)이란 선천적으로 잘못된 성향에서 출발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들의 잘못을 감추려고 입을 가린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부분을 감추려고 시도한 것처럼 악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순자(荀子)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맹자)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진노(震怒)의 자녀(we were by nature objects of wrath) 라고 말씀합니다(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간의 처절한 모습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What a wretched man I am!)”이라고 외쳤습니다(로마서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선과 악에서 자유로운 존재는 주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선과 악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오늘도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당당하게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기쁨 되시니
그 명령을 준행하여 늘 충성 하겠네
주야로 보호하시며 바른 길 가게 하시니
의지하고 따라갈 이 주 예수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선(善)으로 악(惡)을 이기는 믿음으로

선(善, ἀγαθός)은 상대적(相對的)이 아니라 절대적(絶對的)입니다.
절대적 선은 신선한 자극으로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최선(最善)의 길이다.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가 두려워 사랑을 포기라는 것은 절대 선이 아닙니다.

옛날 계단 식 논에서 농사를 짓던 기독교인 농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계단 식 맨 위 논의 주인이었던 농부는 밤을 새워 아래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아침에 다시 일어나 논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 논 주인이 논둑을 허물고 위 논의 물을 전부 아래로 내려 보냈습니다. 화가 치민 위 논의 농부는 또다시 아래 골짜기에서 물을 길어 논에 물을 채웠습니다. 다음 날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일이 세 차례 반복되었을 때는 도저히 참기 어려웠습니다. 위 논의 주인 농부는 "워치만 니"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고 질문하였을 때 “워치만 니”는 위 논 주인이었던 기독인 농부에게 “방법을 바꾸세요! 이번에는 아래 논에 물을 채운 후 그리고 당신의 논에 물을 채우세요!”

위 논의 주인 농부는 가르침대로 하고 편안하게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래 논 주인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당신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어야 하겠소! 나 같으면 절대로 당신처럼 할 수 없었을 것이오!”

절대 선(善)으로 악(惡)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기도(祈禱)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이집트에 주둔한 적이 있었던 한 영국 상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 봅니다.
“내가 있던 부대에 예수를 믿는 민간인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들이 그 사람을 아주  못살게 굴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밤 그는 지쳐서 들어와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진흙이 잔뜩 묻은 내 장화를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는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장화가 깨끗이 닦여져서 내 침대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에 대한 그의 보답이었고, 그 대답이 내 마음을 녹였습니다. 나는 그 날 구원받았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살아봅시다!



‘아가돈’의 원형은 “아가도스(ἀγαθός, 18. agathos)”입니다.
‘아가도스’는 형용사이며 뜻은 “선한(good)”이라고 합니다.  

악(惡)이란 “작은(亞) 마음(心)”을 말합니다.
헬라어로 “카콘(κακόν)”이라고 합니다.
‘카콘’의 원형은 “카코스(κακός, 2556. kakos)”입니다.      
‘카코스’는 형용사이며 뜻은 “나쁜(bad)” “사악한(evil)”이라고 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1월 31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님으로 하나 되는 축복을 이루어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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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2월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교회력에 의하면 “주현 후 제3주(3rd Sunday after the Epiphany)(녹색)”
주일이면 어떤 예배자로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매월 첫 주일은 “파트리스교회”에서 ‘성찬예식(Eucharist, Holy Communion)’을
행합니다.

2월의 성찬예식 주제는 “붉은색”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성경에서 붉은색은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첫째는 긍정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보혈”
둘째는 부정적인 의미는 “진홍같이 붉은 죄”

붉은색이 속죄와 구원의 상징이며 동시에 죄와 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몸으로 상징한 떡과 주님의 피로 상징한 잔을 받으며 죄와 사망이 보혈에 의해서 새 생명으로 옮겨진다는 확신과 믿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거룩한 예배로 드려지기를 소원하며 준비합니다.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할 때 이러한 은혜가 함께 확인되는 성결한 예배자로 거듭나시기를 기대합니다.

예배에 성공하여 믿음 생활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월 1일(토)
뉴욕 파트리스교회
이승혁목사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3

에베소서 1:1∼23

영적 소유(3절)

2

4

에베소서 2:1∼22

영적 위치(5∼6절)

2

5

에베소서 3:1∼21

영적 공동체(10절)

2

6

에베소서 4:1∼32

영적 교제(3절)

2

7

에베소서 5:1∼33

영적 생활(18절)

2

8

에베소서 6:1∼24

영적 승리(12절)

2

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2월 3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1: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 소유(3절)
♦ 성구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아멘 

2020년 오늘의 묵상을 위하여 이제까지 “요한일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로마서”를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오직 예수를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한일서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생명(生命)”으로 만나야 합니다.
야고보서에서 예수님을 우리 신앙의 “본(本)”으로 만나야 합니다.
로마서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의(義)”로 만나야 합니다.

2월을 맞이하여 에베소서를 읽기 시작합니다.
에베소서를 읽을 때에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만나야 합니다.
특별히 에베소서는 “교회론(敎會論)”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獄中書信)”은 모두 4권으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1장은 영적(靈的) 소유(所有)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을 소유하는 기쁨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므로 세상의 것을 소유한 즐거움에 미쳐버리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소유는 “신령(神靈)한 복(福)”을 말합니다.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을 말합니다(4절)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을 말합니다(11절)
신령한 복이란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13절)
신령한 복이란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17절)

최근 한국교회에 아주 신선한 영적 바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앙 간증의 내용이 주로 “인간의 승리”가 대세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 승리가 아니라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반드시 믿음으로 승리한다는 성경적인 믿음의 간증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한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성도들이 머물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주님 나라 즉 저 영원한 천국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이 땅의 인간 승리를 자랑한들 어느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세속의 인생들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복은 영생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주의 백성들이 영생을 위하여 세상의 고난과 질병과 고통을 모두 참고 견디고 주님 품에 안기는 영광스런 그 모습을 기대한다면 어떤 고난도 잘 견딜 수 있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세속의 즐거움을 누리기보다는 성결한 방법으로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믿음을 지키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3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靈的) 소유(所有)

영적 소유의 반대는 세속적 소유라고 하겠습니다.
영적 소유가 신앙의 목표라고 한다면 세속적 소유는 마귀의 목표라고 하겠습니다.
영적 소유를 위해서 마음을 굳게 정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마음을 굳게 정한 “단심가(丹心歌)”를 지은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충신 “정몽주(鄭夢周)”가 지은 시조를 소개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여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 시조를 현대어로 번역해 봅니다.

이 몸이 죽고 또 죽어
백 번이나 다시 죽어
백골(白骨)이 흙과 먼지가 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
임금님께 바치는 충성심이야
변할 리가 있으랴? 

영적 소유는 주님을 향한 믿음
어떤 환경과 상황과 고난 가운데서도
변할 수 없는 신령한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오 주여,
변함없는 믿음으로
세상 길 가는 동안
치우침 없는
주님 가신 길을 따라
골고다 험한 골짜기라도
맨발로 걷고 걸어
주님 앞에
이르게 하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4

에베소서 2:1∼22

영적 위치(5∼6절)



♦ 2월 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2: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위치(位置)(5절)
♦ 성구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아멘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란 작은 움직임이 마지막에는 엄청난 변화와 결과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한 사람이 날마다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 주위 사람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 같지만 어느 누군가에게 구원받은 삶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고 오늘도 구원받은 주의 거룩한 백성으로 진실과 성실의 삶을 계속하므로 영적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신령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영적 나비효과의 주인공이 되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4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2:1∼22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위치(位置)(5∼6절)
♦ 성구 :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아멘 

기독교인은 “길 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척을 떠나 십자가의 길을 걷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화(聖化)와 소명(召命)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수많은 유혹에 흔들리면서도 마지막에는 거룩한 사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실패한 길에서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 주님
새롭게 하소서
주의 백성으로
주님 가신 그 길을
끝까지 걷게 하소서
십자가의 길을
주와 같이 가게 하소서
주님 손을 붙잡고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4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靈的) 위치(位置)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
예수를 믿기 전에는 예수 밖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에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하나님의 창조 계획이란 틀 안에서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정(家政)을 다스리라!
가정을 다스리는 원리는 사랑(愛)입니다.

둘째는 교회(敎會)를 다스리라!
교회를 다스리는 원리는 헌신(獻身)입니다.

셋째는 국가(國家)를 다스리라!
국가를 다스리는 원리는 공의(公義)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聖)과 속(俗)의 구조에서 보다 더 거룩하고 경건한 길을 찾아 담대하게 나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께서 먼저 이 세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승리하신 주님과 더불어 이긴 백성으로 세워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5

에베소서 3:1∼21

영적 공동체(10절)

♦ 2월 5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3: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공동체(共同體)(10절)
♦ 성구 :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아멘 

“지혜(智慧, σοφία)”란 무엇일까요?
더구나 “하나님의 지혜(σοφία τοῦ Θεοῦ)”를 알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교회가 영적 공동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영적 공동체로 세워져야 할 교회가 건물(建物)과 사람(敎人)의 수(數)와 예산(豫算)에 의해서 결정되는 그릇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도 많은 예산을 사용할지라도 죽은 영혼 단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은 공동묘지와 같습니다. 많은 예산으로 선교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지사업일 뿐입니다. 

영적 공동체를 위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살펴봅니다.

첫째는 이방인들을 구원하라(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교인의 수가 증가할 때 수평이동(水平移動)하는 것은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부흥(復興)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열매 맺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은혜를 체험하라(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은혜(카리스)를 받았다는 것은 은혜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라(18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안다(그노리조, γνωρίζω)”는 단어는 간접 경험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는 내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은 행동할 때 올바른 지식이 될 것입니다.

주 예수를 알고 믿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5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靈的) 공동체(共同體)

혈연관계(血緣關係)에 의한 가족(家族)
성령(聖靈)에 의한 영적 공동체
혈연관계를 영적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교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분석하면 몇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교인(敎人)
둘째는 제자(弟子)
셋째는 사도(使徒)
넷째는 성령의 사람(聖靈人)

혈연관계를 영적 공동체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서로 연결하여”(21)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22)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지어져 가는 현재 진행형인 교회를 영적 공동체라고 하겠습니다.

혈연관계를 넘어서 모두가 서로 하나 되고 또한 함께 가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믿음
아픈 사람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회복을 소망하는 믿음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고통을 분담하며 나눌 수 있는 믿음
이와 같은 믿음의 공동체가 초대교회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초대교회는 구호로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나누고 함께 하며 하나 되는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6

에베소서 4:1∼32

영적 교제(3절)


♦ 2월 6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4:1∼32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교제(交際)(3절)
♦ 성구 :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아멘 

영적 교제란 무엇일까요?

첫째는 겸손과 온유(2절)
겸손(謙遜)이란 나 보다 남을 더 높이는 것입니다.
온유(溫柔)는 부드러움을 말합니다.

둘째는 사랑(2절)
사랑이란 오래 참고(忍耐) 용납(容納)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내 안에 품으려면 받아드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평화(3절)
평화(平和)는 서로 하나 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 ‘비탄’에 가난한 마부 “이오나 포타포브”는 얼마 전 아들이 죽었습니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슬픔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이오나’는 마차를 타는 손님들에게 눈치를 보며 이야기를 합니다.

“며칠 전에 제 아들 놈이 죽었답니다.”

첫 번째 손님은 “허, 무슨 병으로 죽었노?” 하고 말대답은 했지만 즉시 마부에게 마차를 잘못 몬다고 야단칩니다.

두 번째 손님은 “사람이란 모두 죽는 법입니다” 하고 초연한 반응을 보입니다.
모두들 건성으로 들을 뿐 ‘이오나’의 슬픔을 함께 나누지 않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이오나’는 젊은 동료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두 마디도 듣지 않고 잠에 곯아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오나’가 드디어 이야기 상대를 생각해 찾아간 곳은 그의 말이 건초를 씹고 있는 마구간이었습니다.

“아무렴, 내가 이제 마부 노릇 하기는 너무 늙었지? 내 아들놈이라면 얼마나 잘할까? 틀림없이 일등 마부일 텐데, 살아 있기만 하다면 말이야.”


질겅질겅 건초를 씹는 말 앞에서야 비로소 ‘이오나’는 아들 이야기를 마음 놓고 꺼낼 수 있었습니다. 

영적교제란 마음 깊은 곳의 속사정을 마음 편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교제라고 하겠습니다.

겉사람의 대화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속사람의 대화는 서로 통(通)해야 만 가능합니다.
서로 통할 수 있는 관계에서 시작하는 영적 교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23∼24절).

심령으로 새롭게 된 새 사람은 처음 사랑을 회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를 향한 책망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계 2:4).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매 순간 나를 지배하는 신령한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는 삶을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6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 교제(3절)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교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의 ‘나와 너(I and You)’라는 저서에서 세 가지의 인간관계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그것과 그것의 관계’

인간관계를 마치 물건처럼 서로를 이용하다가 가치가 없으면 버린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는 인격이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둘째는 ‘나와 그것의 관계’

상대방은 나를 물건처럼 이용해도 나는 상대방을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와 너의 관계’

내가 당신을 인격으로 믿어주고 당신이 나를 인격으로 대해 준다고 하여도 이 관계가 항상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깨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와 너 사이에 언제나 이러한 관계를 중매하는 존재가 필요한데 그것을 영원자인 ‘너’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으면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교제합니다. 교제를 위하여 골프, 화투, 술과 같은 매개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매개체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근거로 하는 영적 교제를 회복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고 고백하듯이 성도의 교제는 세상 사람들의 교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7

에베소서 5:1∼33

영적 생활(18절)


♦ 2월 7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5:1∼33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생활(生活)(18절)
♦ 성구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아멘

영적 생활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식물은 몸(소마, σῶμα)만 있고 동물은 몸과 혼(소마 σῶμα, 푸쉬케 ψυχή, 프뉴마 πνεῦμα)이 있습니다.

식물은 생명은 있으나 혼(魂, ψυχή) 즉 정신이 없기 때문에 지식도 감정도 의지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개나 원숭이 같이 영리한 동물은 혼이 있으므로 간단한 일을 시키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물은 영(靈, πνεῦμα)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거나 기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Spiritual Being)이기 때문에 아무리 미개인이라도 하나님을 찾고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영혼(靈魂)이 죽은 상태에 있으므로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교제 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 피로 대속(代贖)했으므로 그분을 믿을 때에는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가질 수 있고 영생을 얻습니다. 

생물학자 배스티언(S. L. Bastian)은 나뭇가지나 덤불 속에 집을 짓고 사는 거미를 관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거미는 나뭇가지나 덤불에 걸쳐 있는 울타리 속에 새끼들을 부화하는데, 만일 그곳에 약간이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하여 새끼들이 놀라게 되면 즉시 어미 거미가 달려와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어미 거미가 새끼들의 움직임을 금방 알아차리는지 궁금해서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어미 거미가 새끼들의 몸에 연결해놓은 가는 비단 줄 같은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새끼들이 적들의 위협을 받아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그 줄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므로 어미가 즉시 달려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미 거미와 새끼들 사이에 연결된 줄은 생명 줄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지면 생명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가 우리를 생명의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영적 생활은 영적 생명을 유지하며 지켜갈 수 있는 신령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7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 생활(18절)

개화기 시대에 어느 시골의 노인이 한양을 방문하여 어느 여인숙에 하루 밤 머물게 됩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천정에 매달린 백열전구에서 환한 불이 켜지더니 어둡던 방안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시골의 노인은 밤새도록 궁리하기를 저 전구만 하나 있으면 시골 동네에서 큰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른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전구를 뽑아갖고 급하게 시골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시골 집 천정에 전구를 매달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던 노인은 동네 사람들을 모두 모은 후에 환한 빛이 나올 것이라며 자랑했습니다. 호롱불을 사용하던 시골 동네 사람들은 한양에 다녀온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 모였습니다.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노인은 전구를 쳐다보며 불이 켜지기를 기다렸으나 불이 켜지지 않아 동네 사람들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합니다.

전구가 켜지려면 전선을 통해 전기 에너지와 연결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영적 생활을 하려면 영적 원천이 되는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영적 생활은 영이신 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기 위하여 오직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8

에베소서 6:1∼24

영적 승리(12절)

♦ 2월 8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에베소서 6: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영적(靈的) 승리(勝利)(12절)
♦ 성구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아멘 

영적 승리를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전신갑주는 공격(攻擊)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방어(防禦)를 위한 것입니다.
영적 승리를 위하여 악한 영을 대적하여 방어할 수 있는 무장이 필요합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10∼11절).   

첫째는 주 안에서
둘째는 그 힘의 능력으로
셋째는 강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The full armor of God)는 무엇일까요?

1. 진리의 허리 띠(The belt of truth)
2. 의의 흉배(The breast plate of righteousness)
3. 복음 위해 예비 된 신발(shoes reserved for the gospel) 
4. 믿음의 방패(The shield of faith)
5. 구원의 투구(The helmet of salvation)
6. 성령의 검(The sword of the Spirit)
7. 기도(Pray)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마지막 시대에 교회를 어지럽히는 악한 영들을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여 교회를 거룩하게 지킬 수 있는 은혜가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8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영적 승리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죄(罪)
알면서 행하지 않는 죄(罪)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죄(罪)

신앙생활은 영적 싸움에 승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영적 싸움에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내야 합니다.
영적 싸움을 모르기 때문에
영적 싸움을 알면서도 행하지 않실패ㅈ거응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9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2월 9일 주일을 맞이합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요.
그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습관적인 신앙생활에 익숙해지면 세 가지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첫째는 알면서 행하지 않는 잘못
둘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잘못
셋째는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잘못

예배는 “신령”과 “진정(진실, 진리)”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진실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2월 9일 주일예배를 통하여
살아계신 주님 만날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0

갈라디아서 1:1∼24

그리스도의 복음(7절)

2

11

갈라디아서 2:1∼21

오직 내 안에(20절)

2

12

갈라디아서 3:1∼29

성경과 죄(22절)

2

13

갈라디아서 4:1∼31

해산하는 수고(19절)

2

14

갈라디아서 5:1∼26

자유(1절)

2

15

갈라디아서 6:1∼18

예수의 흔적(17절)

2

1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0

갈라디아서 1:1∼24

그리스도의 복음(7절)


♦ 2월 10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1: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그리스도의 복음(7절)
♦ 성구 :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 τὸ εὐαγγέλιον τοῦ Χριστοῦ) 

복음(福音, 유앙게리온. εὐαγγέλιον)이란 “기쁜 소식(good news, gospel)”을 말합니다.

“유앙게리온”이란 고대 사회에 두 나라가 전쟁(戰爭)을 할 때 승리한 편에서 왕에게 승리의 소식을 전하려고 신하를 보내어 알리게 합니다. 승전보를 알리려는 신하는 죽을힘을 다하여 왕에게 “이겼습니다. 전하” 이렇게 외치고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가장 기쁜 소식을 왕에게 알리려고 사력(死力)을 다하여 달렸던 신하의 충성스런 모습처럼 복음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시작합니다.

복음의 의미를 본문에서 살펴봅니다.

첫째,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렸습니다(4절).
둘째, 하나님께 좋게 하려는 삶(10절)
셋째, 은혜로 부르신 것을 깨닫는 것(15절)
넷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24절)

하늘의 천사(天使)일지라도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詛呪)를 받을 것입니다.

이단(異端, Heresy)이란 복음처럼 시작하였으나 그 결과가 전혀 다른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교주(校主)가 구세주가 되거나 교회가 천국이 되어 이 세상에서 도피처를 만듭니다.  

사이비(似而非, Pseudo)란 처음부터 복음이 아닌 것으로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혀 다른 영(靈)의 지배를 받아 활동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존귀케 하는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의 길을 완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0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그리스도의 복음

율법(律法)과 복음(福音)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예전에 잔디밭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라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은 들어가지 말라는 것이 목적일까요?
아니면 잔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일까요?
들어가지 말라는 팻말은 율법입니다.
잔디는 복음입니다.
율법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진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만이 율법의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보혈의 능력
주의 보혈
오늘도 주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자유로운 믿음의 주인공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1

갈라디아서 2:1∼21

오직 내 안에(20절)


♦ 2월 11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2: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오직 내 안에(20절)
♦ 성구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까?
죽어서 천국 가려고,
세상에서 성공한 인생이 되려고,
경쟁사회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다른 사람보다 더 착하게 살아보려고,
이러한 것들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예수를 믿습니다.

“프리츠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 1875. 2. 2~1962. 1. 29)”는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미국에 정착한 바이올린 연주자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한번은 여행 중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을 발견하였으나 모든 부를 다 나누어주었기에 살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 바이올린을 사기 위한 충분한 돈을 마련하여 그 바이올린 소유주를 다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바이올린은 벌써 다른 수집가에게 팔렸습니다.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의 새 주인을 찾아가서 그 바이올린을 자기에게 팔라고  부탁하였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자신의 애장품이기 때문에 팔 수 없다고 합니다. 실망하여 돌아서려는 순간 ‘크라이슬러’는 그 바이올린이 소리를 내지 않고 잊혀 지기 전에 자신이 한번만 그 바이올린을 연주해 봐도 되겠냐고 요청했습니다. 주인의 허락을 받고 ‘크라이슬러’의 연주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훌륭한 연주가 끝난 다음, 바이올린 수집가는 크라이슬러에게 “그 훌륭한 바이올린을 소장할만한 권리가 제게는 없네요!” 그리고는 “크라이슬러씨, 이 바이올린은 이제부터 당신 것입니다.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음악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은 구원의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는 연주되고 사용되기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연주자로 부름을 받았습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실 때에만 복음의 소리를 점점 더 크게 울릴 것입니다.

오늘도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의 연주자로서 승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1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 안에서

안과 밖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사례는 교회 안과 밖을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 밖에서 나의 모습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모순(矛盾)이란 한자어의 훈(訓)은 “창 모(矛)” “방패 순(盾)”입니다.
모순(矛盾)이란 단어의 유래는 초나라에서 무기를 파는 상인이 있었다. 그 상인은 자신의 창을 들어 보이며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이라고 선전했고, 또 자신의 방패를 들어 보이며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라고 선전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명나라 왕의 신하 중 한 명이 상인에게 “당신이 그 어떤 방패도 다 뚫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 창으로 그 어떤 창도 막아낼 수 있다고 선전하는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질문을 던지자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나의 모습과 교회 밖에서 나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면 이것이 모순입니다.

예수 안에서만 신앙의 모순을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내가 털어버려야 할 모순을 철저하게 버리고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2

갈라디아서 3:1∼29

성경과 죄(22절)



♦ 2월 12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3:1∼29
♦ 묵상을 위한 주제 : 성경과 죄(22절)
♦ 성구 :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아멘 

죄(罪)란 무엇일까?
죄는 "분리(分離)"라고 하겠습니다.
무엇으로부터 분리일까요?

죄(罪)라는 한자에서 찾아봅니다.
죄(罪)는 "사(四)"와 "비(非)"의 합성어로 "네 가지 아닌 것들"을 말합니다.

네 가지 아닌 것들이란?

첫째, 법에서 분리(不法)
둘째, 선에서 분리(不善)
셋째, 의에서 분리(不義)
넷째, 믿음에서 분리(不信)

죄는 철저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입니다.

죄란 헬라어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고 합니다.
'하마르티아'는 "목표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활을 쏠 때 화살이 겨누는 목표는 과녁의 중앙입니다.
과녁에 맞지 않고 벗어나는 것을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은 죄를 완전히 가두었다고 합니다.
가두었다는 것은 영향력을 줄 수 없도록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죄를 붙잡아 활동할 수 없게 할 수 있는 역할은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는 죄를 이길 수 있는 믿음으로 인도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한복음 5:39)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된 영적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인이었던 인간이 이제부터는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은 의인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이콥 드세이저(Jacob DeShazer, 1912. 9. 15∼2008. 3. 15)선교사는 미 공군 폭격 부대의 일원으로 일본 동경을 제일 먼저 폭격한 그 두리틀(Doolittle) 비행기에 같이 타고 동경을 폭격한 사람입니다. 그 비행기가 중경(重慶)으로 달아나다가 그만 채 가지 못하고 이 사람이 탄 비행기는 고장이 나서 저 상해(上海) 방면에 떨어졌습니다. 다행이 낙하산을 타고 탈출하였으나 일본 관헌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3∼4년 동안 상해, 대련(大連) 혹은 북경(北京) 그 다음에는 일본에까지 여러 감옥으로 전전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당하고 일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역경 가운데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는 중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본 사람이 왜 이렇게 포악할까? 이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는 까닭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 까닭이다. 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주고 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포로에서 석방되자 곧 미국에 돌아가서 공부를 한 후 일본에 서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전도자로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회복하는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https://en.wikipedia.org/wiki/Jacob_DeShazer 

☞ 2월 12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성경과 죄

앤드류 쥬크스(Andrew Jukes)는 “사탄은 사람이 율법을 사용하여 스스로 거룩한 존재라고 증명하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다.”고 합니다.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단코 정죄함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정죄하지 마라,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다 혹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의견은 죄에 대해 민감해 져야 하며 죄를 애통해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이나 정죄감이 없다고 하면 죄로부터의 자유보다는 죄에 무감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건가요?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변] 이 문제는 신앙 연륜과 상관없이 아주 많은 신자들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부분입니다. 특별히 한국말로는 성경에서, 강단에서, 일상 대화에 "죄"라는 한 단어로 명확한 의미의 구별 없이 혼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각으로 죄를 바라보아야 할지 어렵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신자란 죄에서 자유하다고 하는 반면에 또 죄를 멀리하고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두 가지 중 하나가 맞고 다른 것은 틀릴 리는 없습니다. 동일한 단어나 표현이 서로 모순되어 보일 때는 다른 개념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신자가 죄에서 자유 할 상태와 죄에 민감해져야 할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의 같은 죄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질문자께서도 분명하게 두 문장으로 나눠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이해하기 편하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Ⅰ. 원죄에서의 해방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2) 

1.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선 죄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구약의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타(hata)
하타란 '표적을 빗나가다' 혹은 '기준에  못 미치다'는 뜻입니다.

둘째, 페샤(pesha)
페샤란 '반역'이란 뜻으로 ‘기준에 대한 반항’이라고도 합니다. 

셋째, 아원(awon)
'불의' 혹은 '죄책'이란 뜻으로 ‘기준을 왜곡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의 헬라어 "하마르티아(hamartia)"는 구약의 이 세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과녁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고 있는 생각이나 상태나 행동이나 그 모든 것이 죄입니다. 말하자면 죄의 근원을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다 두며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분리(分離)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스스로 자신과도 분리되며 다른 사람과도 분리됩니다. 

영어만 해도 겉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 잘못된 행동의 “범죄(crime)”와 그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잘못된 마음과 영혼의 상태는 “죄(sin)”로 구분해 표현 합니다. 그러나 우리말로 죄라고 했을 때에는 분명히 겉으로 드러난 잘못 즉 범죄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성경적으로 봐선 그것은 사실은 죄의 결과이지 죄 자체가 아니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가 꿈에서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자기 일생의 죄를 적어 놓은 기록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굵직한 글씨들로 자기 범죄 기록이 적혀 있는데 전부 행동으로 한 죄였고 거의 90% 이상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둘 째 페이지는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어 놓았는데 겨우 20-30%도 기억 못할 정도였는데 말로 지은 범죄였습니다. 셋째 페이지는 아예 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의 작은 글씨가 마이크로 칩처럼 완전히 새카맣게 적혀 있었는데 전부 마음으로 지은 죄였고 기억할만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죄 인이었는가 확인한 셈입니다. 그래서 이제 끝났다 보다 했는데 한 페이지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글씨는 한 자도 없고 완전히 새까만 먹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하나님은 그것이 바로 너의 영혼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과 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화입니다.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태보음 15:11, 18∼1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죄가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구별하여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사고활동이라고 말하듯이 악한 생각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행동으로 범죄한 것이며 그것도 악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거짓증거 같은 말로 하는 범죄와 도적질, 간음 같은 행동으로 범하는 죄도 당연히 다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꿈에 본 예화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 즉 마음이 악해져서 모든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부패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범죄한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범죄의 원인이 바로 아담의 원죄로 소급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과녁에서 벗어난 것,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벗어난 상태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1.2. 원죄의 의미

그럼 원죄란 무엇입니까? 잘 아시는 대로 아담이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많은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범죄 행위를 처벌해 원죄라는 멍에를 모는 인간에게 메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인간더러 하나님의 품 안에 살아야만 참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잊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아담에게 하나님이 너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을 하나님이 싫어해서 따먹지 말라고 했다고 거짓으로 속였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치우기로 결심한 후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미 그의 영혼이 사단의 더러운 영으로 부패한 후에 금령을 어기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제 멋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 즉 원죄(Original Sin)를 저지르자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crime)를 저지른 것이지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 자체가 원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혼자 제 멋대로 하겠다는 자를 더 이상 에덴에 둘 수 없어 추방한 것입니다. 

그 이후 아담의 모든 후손은 원죄 하에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죄가 괘씸해서 일부러 천대 만대 자식에게 까지 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연인은 아담의 부패된 영혼을 물려 받아 하나님을 모르는 원수 된 채 태어난다는 것이 원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단의 노예요 죄의 종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는 완악한 교만이 바로 원죄입니다.   

1.3. 원죄와 구원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 낸 것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생각의 끝이 아니었으며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할 방도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이기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다시 선악과를 만들어 두 번 다시 따먹지 않으면 용서해 주겠다고 해야 합니까? 

원죄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므로 인간을 돌이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마음이 바뀐 것을 원 상태대로 고쳐야지 행동 한 두개 고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께 토라져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시기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했으니 선악과를 허락한 하나님의 본심을 다시 인간에게 재 확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사단에 붙들려 있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게 돌아 오면 누구든 무슨 범죄를 저질렀던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고 외면하고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했습니다. 간혹 알아도 신경질적, 율법적, 권선징악적인 하나님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범죄하면 벌 주고 죽은 후에라야 자신이 한 행위로 심사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공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하여 천국 갈 자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죄의 삯은 사망이었습니다. 본질상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오시기 전 까지 인간이 사탄의 영으로 부패되어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죄인을 아무 차별 없이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마저 하나님께 저들이 자기 하는 짓을 모르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들 모두 사단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부패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범죄했기에 그 영혼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과녁을 벗어났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쪽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1.4. 첫 번 질문에 대한 답

신자가 처음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원죄의 멍에에서 해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3단계 중 첫 단계인 칭의(稱義 salvation) 입니다. 신자의 상태가 도덕적으로는 전혀 의롭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의롭다고 칭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신분과 소속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의 품성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만 면제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옥 갈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Free from the penalty of sin)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인을 원죄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십자가 상의 강도처럼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죄인 취급하지 않고 의인 취급해 주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더 이상의 '정죄함'이 없습니다. 신자란 용서 받은 죄인인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본성은 남아 있어서 수시로 죄를 짓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서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정죄와 용서는 오직 하나님 만의 몫입니다. 신자란 단지 원죄만 용서 받은 상태로 어느 누구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완전할 수 없으니 서로 간에 짓는 범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인간 모두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면죄부는 아닙니다. 사람끼리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가 제거 되면 인간끼리, 또 신자 스스로도 자신과 다 화목되어야 합니다. 죄는 여전히 내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지만 오직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분리가 화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자유로와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적 죄든,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죄든 우리가 일상 짓는 죄에서 자유로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진정으로 항복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더 이상 영원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짓다가 혹시 지옥 가는 것 아닌가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 봉사도 못하고 성경 공부도 빠졌는데 혹시 하나님이 나를 미워해서 어려운 고통이나 징계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하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지는 않습니다. 죄는 죽도록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독생자와 바꿀 만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서 유일한 기준은 어떻게 하든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참 사랑의 진정한 관계를 맺기를 소원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제대로 알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사랑을 방해하고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시험과 유혹에 넘어가는 윤리적 죄로 인해서도 독생자 예수를 통해 회복된 신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절대 취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된 후에 죄를 지으면 징계는 하시지만 신자와의 관계를 끊고 지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것이 죄에서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2. 죄에 민감하고 피 흘리기 까지 싸워라. 

2.1 성령의 탄식 

비록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위에 말씀 드린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구원의 성경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용서 받은 죄인이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뿐이지 결점도 없고 죄도 안 짓는 완전한 성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학적 용어로 말해 구원의 두 번째 단계인 성화 (聖化 Sanctification)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칭의가 신분을 바꾸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으로서 구원이라면 성화는 성품을 변화시키는 현재의 계속되는 과정으로서 구원입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져 가는 싸움입니다. (free from the power of sin)   원죄의 굴레를 벗어난 신자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하고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어떤 악한 힘이 계속해서 우리 밖에서 설칩니다. 또 비록 우리 영이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좌정해 계시지만 여전히 부패된 영혼의 흔적과 죄의 본성은 우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도록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할 죄(sin)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제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무시했던 사소한 죄마저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죄책감은 더 커집니다. 그 까닭은 사단에게 잡혀 있던 우리 마음에 성령이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이제는 성령이 감지하고 성령이 속에서 탄식하시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되고 더 아픕니다. 이전에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리 더러운 옷을 입고 있어도 추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제 빛 가운데로 나왔으므로 아주 작은 얼룩이라도 눈에 쉽게 뛰고 더러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된 후라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원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 해져도 안 됩니다. 죄책감이 들어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까지 회개하셔야 합니다. 

간혹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회심과 회개의 차이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신자가 하는 회개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바꾸는 회심(回心)이지 몇 가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제 마음대로 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완악한 교만이었으며 하나님께 큰 죄였는지 깨달아 이제는 하나님 품 안으로 돌아가 오직 주님만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사고의 전환입니다. 인본주의 가치관에서 신본주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된 후 죽을 때까지 지을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죄들은 일일이 스스로 반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 고쳐나가는 회개(悔改)를 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세상의 어떤 성자도 절대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2.2. 참된 회개

그런데 예수를 믿는 신자의 회개는 다른 종교나 일반인들의 회개와는 그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더 오래 동안 더 많은 죄를 회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과 하나님의 품성을 제대로 알고 하는 회개라야 합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종교성에 비추어 자기 의지력으로 윤리적 죄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모든 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끼리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서로 많이 빨리 더 좋은 것을 차지하려는 데서 나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  

신자라도 잠시 하나님을 잊거나, 그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마음이 다시 세상을 향하고 사단의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 죄를 회개하되 이 죄의 본질과 원인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원인을 먼저 제거하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부터 고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 긍휼, 은혜와 권세를 자꾸 확인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소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 빠지는 것조차 막아 주십니다. 회개의 전 과정이 성령님이 주관해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결론적으로 말해 신자는 죄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원죄의 멍에 아래 묶여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외면하므로 생겼던 모든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여 생기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상의 범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죄는 철저하게 미워하시되 회개하는 죄인은 끝가지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는 죄 자체에 대해선 민감해야 하되 자기가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것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그 신분에 대해선 한 없이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 신분이므로 담대하게 세상과 죄악과 사단과 날마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시되 승리는 이미 신자의 것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3

갈라디아서 4:1∼31

해산하는 수고(19절)


♦ 2월 13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4:1∼31
♦ 묵상을 위한 주제 : 해산하는 수고(19절)
♦ 성구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아멘 

“자녀(子女)”와 “해산(解産)의 수고(受苦)” 그리고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자녀(자녀들, τεκνια)’란 이미 해산의 수고를 거쳐 세상에 존재하지만 율법 아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존재를 말합니다.

‘해산의 수고(παλιν ώδινω)’는 산통(産痛)의 과정을 거쳐 어머니의 몸 안에 있던 생명이 어머니의 몸 밖으로 나오는 것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μορφωθη χριστος)’이란 율법에 붙잡혔던 존재가 복음과 진리의 말씀으로 잘 훈련되어 인격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의 형상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인격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와(테크논, τεκνον) 같다고 고백합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존재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세우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누군가를 하나님의 인격으로 바로 세우기 위하여 사도 바울과 같은 깊은 생각과 신앙적인 수고를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으며 또 얼마나 기도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을 얻는 과정은 해산의 수고와 같은 산통(産痛)의 눈물겨운 씨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교훈이라고 하겠습니다.

네델란드 출신의 로마 가톨릭 사제이며 그리스도교 영성가로 널리 알려졌던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66)”의 기도 “나는 소망합니다”를 소개합니다.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한 사람의 죽음을 볼 때 내가 더욱 작아질 수 있기를  

그러나 나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삶의 기쁨이 작아지는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다른 이가 내게 주는 사랑이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의 척도가 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내가 언제나 남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살기를  

그러나 그들의 삶에는 내 용서를 구할 만한 일이 없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언제나 나의 한계를 인식하며 살기를  

그러나 내 스스로 그런 한계를 만들지 않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소망을 품고 살기를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3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해산하는 수고

뉴욕의 한인 이민교회의 심각한 고민은 청장년층이 없고 노인들 위주로 운영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치 역삼각형처럼 도저히 세워질 수 없는 교회의 구조를 이대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가?
정삼각형 구조로 교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은혜를 기도합니다.
더구나 미국으로 이민 오려는 한인들은 절망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제활동이 미국보다 더 유리할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미국의 남부와 북부 사이에서 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흑인 노예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편하게 살던 남부 사람들은 노예 없이는 불편해서 하루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예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인도적인 표어까지 내걸면서 북군을 밀어 붙였습니다.

그런 남군 앞에 북군은 가는 곳마다 쓴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진 북군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편이 되셔서 북군이 이기게 하소서!”

이 기도를 들은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북군 편이 되어 주시라고 기도하지 말고,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시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4

갈라디아서 5:1∼26

자유(1절)



♦ 2월 14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5:1∼26
♦ 묵상을 위한 주제 : 자유(1절)
♦ 성구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자유(自由)란 무엇일까요?
당신은 정말 지금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Let me out!” 즉 “나를 놔 달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유란 짐승도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놀라운 실험결과라고 하겠습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 5. 29~1799. 6. 6)의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진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참 자유는 죄(罪)의 쇠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선택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진리를 알라(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오직 예수를 알고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둘째,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라(베드로전서 2:16)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은혜로 주신 자유를 내 마음과 욕심대로 사용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셋째, 사랑으로 섬기라(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악용하지 말고 서로 종노릇하며 섬김으로 사랑하므로 믿음의 길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성령의 지배를 받으라(고린도후서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죄의 유혹이 없는 삶이 아니라 온갖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자유(ἐλευθερίᾳ)란 헬라어 “엘듀데리아(eleutheria)”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한 성도들이 험한 세상에서 죄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깨우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날마다 주의 말씀에 따라 진리의 영으로 무장하여 죄의 유혹에서 자유를 누리며 승리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4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자유(自由, ἐλευθερίᾳ)


양반(兩班)과 상놈으로 구분된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차별 대우를 받은 사람은 조선시대의 백정(白丁)입니다. 백정은 기와집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고, 비단 옷도 입지 못하게 하였으며, 공부도 못하게 하였고 항상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게 했습니다.

이런 일을 안타깝게 여긴 사무엘 무어 선교사(Samuel F. Moore, 1846∼1906. 모삼열)는 양반과 상놈의 구분 없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면서 고종의 주치의인 의사 에비슨과 함께 백정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첫 번째 예수를 믿은 사람이 박성춘입니다.
그는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었고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왕에게 탄원하여 마침내 1895년 6월 6일 백정 신분을 철폐케 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박서양은 1908년 6월 세브란스 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 일곱 명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聖徒)는 거룩한 무리를 말합니다.
한 사람은 성도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은 무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을 전하여 열매를 맺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분의 자유를 누리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하물며 죄에서 자유를 얻는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 복음의 진리를 전파하여 더 많은 열매를 얻도록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 인터넷 자료 사이트

http://www.missionkorea.org/?p=17361 

자유의 뜻

히브리어 ; 데도르
`빨리 움직이다' 라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
'자유' 따라서 유출의 `자연스러움' 그러므로 `깨끗한' ; 자유, 순수한

헬라어 ; 엘류데로오
'자유롭게 하다'즉(상징적으로)(도덕적으로 의례적으로 혹은 인간적인 책임에서) `면제되다', 해방하다, 자유롭게 하다.


압해시스 ; `자유', (상징적으로) `용서', 구원, 탕감


한자 自由 ;

타인에게 구속받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법률의 범위 안에서 마음대로 하는 말. 


자유에 대한 성구


1. 사람이 어디에서 자유를 얻을 것인가?

(1) 죄에서 자유

롬6:18 -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6:22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이 되고

롬8:2 -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사망의 법에서 해방함

롬8:15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않음

(2) 율법 의식에서

갈3:13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

갈5:1 -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엡2:15 -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육체로 폐하심

(3) 사탄(마귀)에게서 자유

창3:15 -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임

눅10:19 -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심

골1:13 -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심

히2:14 -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함

요일3:8 -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

(4) 죽음의 형벌에서

호13:14 -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

사25: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임

고전15:55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히2:15 -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자를 놓아주심

2. 자유는 누가 주는가

사61:1 - 복음이 자유케 함

요8:32 - 진리가 자유케 함

요8:36 - 그 아들 예수님께서

롬8:2 - 성령께서

고후3:17 - 주의 영이

3. 자유 주의와 생활

고전7:22 - 허락된 한도에서

고전8:9 - 약한 자에게 거친 것이 되지 않도록

고전10:29 - 판단을 받지 않도록

갈5:13 - 육체의 기회를 삼지 않는 것

벧전2:16 - 하나님의 종과 같이 생활하는 것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5

갈라디아서 6:1∼18

예수의 흔적(17절)


♦ 2월 15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갈라디아서 6: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흔적(17절)
♦ 성구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흔적(痕迹, stigma)
내 몸에 “예수의 흔적(τὰ στίγματα τοῦ Ἰησοῦ, the marks of Jesus)”을 가졌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흔적을 몸에 갖고 있습니까?
과연 ‘예수의 흔적’이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와 같은 것이 그의 삶을 괴롭혔습니다.
육체의 가시가 그의 몸에서 사라질 것을 기도했을 때 여전히 바울의 몸에 남아 있는 것이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교만하지 않는 은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교만하여 주님의 도구로 쓰임 받지 못할 인생이라면 차라리 육체의 가시를 몸에 지니고 끝까지 주님의 일군으로 인정받는 인생이 되는 것이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봅시다.

사람이 머물다 떠난 곳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자리에는 꽃가루가 흔적입니다.
잔칫집에는 음식 부스러기가 흔적입니다.
사람의 흔적은 자녀의 모습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자녀는 나의 흔적입니다.
자녀가 믿음으로 잘 성장하면 그것이 바로 나의 아름다운 신앙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거짓된 삶을 살아가면 그것이 곧 나의 추한 삶의 흔적입니다.

“링컨, 그는 잡초를 뽑아내고 그곳에 꽃을 심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다.”

링컨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에게 남겨진 흔적입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면 나를 통해서 주위 사람들이 예수 향기를 느끼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예수 삶을 결단하여 
예수 향기
예수 편지로 읽혀지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5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의 흔적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있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안 보이잖아요.”


“어떨 때는 하나님을 믿고 싶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생기지를 않아요. 하나님을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믿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데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하나님은 피조물 세계에 속한 물체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가 우주 안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나님과 우주 사이의 관계는 화가(畵家)와 그림 사이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고 하자. 화가는 그가 만든 그림의 일부가 아니다. 화가는 그림과는 구분되기에 화가의 존재는 그림 속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림 속에서 화가를 찾을 수 없다고 해서 화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화가가 그림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화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림에 담겨 있는 화가의 흔적을 통해 화가를 유추(類推)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림에 화가의 흔적이 담겨 있듯 우주 안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담겨 있다. 우리는 우주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기독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흔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경 기자들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그림이며 노래(사 43:21)이며, 편지(고후 3:3)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로마서1장 말씀 중에)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6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 2월 16일 주일 예배 안내
교회력으로 주현절 제6주(녹색)

최근 한국교회의 몇몇 교회는 “우환 폐염”이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공예배를 인터넷 유트부를 통하여 모임을 포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구리 시장은 각 교회와 사찰에 서신을 보내어 모임을 갖지 말고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서를 보냈다고 합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과연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공예배 모임을 폐지하는 것이 과연 성경적일까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배의 중심

예배는 공적 예배(교회에서 모이는 예배)와 사적 예배(삶의 현장에서 개별적으로 행하는 삶)로 구분합니다.

올바른 예배 없이는 어떤 사역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역이 예배를 앞서가면 그 사역의 겉모습은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교만과 허영으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는 예배가 먼저 올바르게 서야 합니다. 사실 주일에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보면 사람들이 정해 놓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닌 듯이 보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묵도하고 신앙 고백하고 성경 봉독에 이어 성가대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는 몇 년째 목사님의 비슷한 설교가 시작됩니다. 어쩌면 인간적으로 볼 때 따분하기 짝이 없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오히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같이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예배처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일하면서 라디오를 통하여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혹은 골프를 치러 가는 중에 차에서 라디오 예배 실황 방송을 들은 것으로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한 표현이 예배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순종은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높은 건물 위에서 떨어지라고 명령하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 정해진 시간에 모여 목사님이 준비한 말씀을 듣고 깨달아 그것을 통해서 다시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상기하고 감사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주일 예배를 준비하는 주말의 시간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성으로 오직 하나님께 바쳐질 수 있는 예배로 드려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7

빌립보서 1:1∼30

복음에 합당한 생활(27절)

2

18

빌립보서 2:1∼30

예수의 마음(5절)

2

19

빌립보서 3:1∼21

부름의 상(14절)

2

20

빌립보서 4:1∼23

일체의 비결(12절)

2

21

골로새서 1:1∼29

비밀의 영광(27절)

2

22

골로새서 2:1∼23

믿음에 굳게 서라(7절)

2

2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빌립보서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
골로새서 :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과 위엄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7

빌립보서 1:1∼30

복음에 합당한 생활(27절)


♦ 2월 17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1: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
♦ 성구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립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쁨”이 되신다.
짧은 빌립보서에 “기쁨”이란 단어가 자주 사용됩니다.
1장은 “삶의 기쁨”
2장은 “봉사의 기쁨”
3장은 “친교의 기쁨”
4장은 “상급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Live according to the gospel!

어떻게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북한에는 “총대철학”이란 교양학부에서 배우는 논리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여기 총이 있고 달러화($)가 있다면 너는 어느 것을 갖겠느냐? 라고 물었을 때 총을 가질 때는 “총으로 달러를 빼앗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달러를 가질 때는 “달러로 총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북한 지도자의 논리는 총으로 달러를 빼앗는 것처럼 핵을 갖는다면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는 지도자의 철학 때문에 오늘의 북한이 경제적으로 밑바닥에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할 수 없을 때 세상의 질서는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하여 날마다 결단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기쁨으로 간구하라(4절)
둘째는 나의 삶에서 오직 예수를 존귀하게 하라(20절)
셋째는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27절)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복음에 합당한 믿음의 사람으로 반듯하게 세워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7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복음에 합당한 생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우리가 당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해 나아가려면 지혜, 애국심, 기독교 정신 등이 절대 필요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나라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켜 주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라고 강조했다고 합니다.

조국 대한민국이 두 갈래 길에 놓였습니다.
좌경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워질 것인가?

교회가 교회답게 회복될 때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 할 때
복음의 나라
예수 천국은 실현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만이 큰 것에도 충성할 수 있습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8

빌립보서 2:1∼30

예수의 마음(5절)


♦ 2월 18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2:1∼30
♦ 묵상을 위한 주제 : 예수의 마음(5절)
♦ 성구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heart of Jesus Christ)”
예수님만이 ‘예수의 마음’입니다(Jesus is the only heart of Jesus).
내가 예수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예수님의 지체로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는 예수,
나는 나 이런 멋대로의 삶은 절대로 예수 마음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예수 마음을 갖는 예수님의 지체가 되기 위한 지름길을 소개합니다.

빌립보서 2장은 “봉사의 기쁨”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음은 어느 누구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봉사(奉仕)” 즉 “섬기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을 찾아야 합니다.
섬김을 받은 대상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되는 하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의 마음은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생각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할 줄 모르는 믿음
원수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
순결을 지킬 수 있는 삶
이와 같은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떤 악(惡)이라 할지라도 선(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선이라 할지라도 거대한 악을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은 선의 뿌리가 진리(眞理)의 터에 심어졌기 때문입니다.

선의 뿌리가 내려진 터를 살펴봅니다.

첫째는 겸손한 마음(3절)
- 자기를 비어 낮추는 마음(7, 8절)

둘째는 십자가를 지는 마음(8절)
- 관제로 드려지는 기쁜 마음(17절)

셋째는 구원을 이루는 마음(12절)
-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마음(21절)

인도의 예수회 사제로 영성 안내자이자 정신치료사였던 “앤서니 드 멜로”는 이런 기도했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에는 세계를 변화시키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중년이 된 후에는 내 이웃을 변화시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70세가 된 오늘은 나는 오직 하나 ‘하나님이여, 나를 변화시켜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나 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관심을 갖지 말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회복하여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세상의 변화, 인류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Leo Tolstoy, 1828. 9. 9~1910. 11. 20)”가 당시 러시아 기독교의 무력함을 바라보며 외쳤던 말입니다.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기도가 참된 변화의 출발점이며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변해야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변함없는 인생은 고인 물과 같습니다.
고인 물에서는 더러운 냄새가 진동할 것입니다.

주여,
내 안에
주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주님 기뻐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가득 채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Jesus. 

☞ 2월 17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예수의 마음으로

죄수(罪囚)들은 감옥(監獄)에서 세상과 단절(斷絶)된 생활을 합니다.
수도사들은 스스로 산속 수도원(修道院)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합니다.
죄수와 수도사 모두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죄수의 특징은 환경을 불평하거나 타인을 저주하기 때문에 감옥이 그야말로 감옥입니다.

그러나 수도사는 진리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힘들어도 며칠씩 굶어도 기쁨과 감사로 살아갑니다.

감옥의 죄수가 수도사와 같은 마음을 먹는다면 감옥은 수도원이 될 것입니다.
수도사가 불평을 하며 죄수와 같은 마음을 품으면 수도원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행복과 삶의 가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되리라”(잠언 11:29).

공자는 이렇게 탄식했다고 합니다.
“마음보가 문제라!”

“하늘도 문제가 아니고 땅도 문제가 아니다.
오직 사람의 마음보가 문제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19

빌립보서 3:1∼21

부름의 상(14절)


♦ 2월 19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3:1∼21
♦ 묵상을 위한 주제 : 부름의 상(14절)
♦ 성구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세상을 살아가려면 믿음이 있다 하여도 필요한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것들을 전부 가질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부족하면서도 편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부름의 상(the goal to win the prize)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름의 상은 누가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는 붙잡힌 인생(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조폭에게 붙잡히면 조폭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좌경화된 이념에 붙잡히면 좌파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 붙잡힌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은 자기의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나의 생각과 방법과 습관마저 버리고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둘째는 달려가는 인생(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달리던 자전거가 갑자기 멈추면 넘어집니다.
그러나 넘어지려고 할 때 다시 넘어지는 방향으로 자전거의 핸들을 돌리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인생은 달려가는 길입니다.
달려가려면 달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을 달릴 수 있게 하는 힘을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라고 합니다.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오늘도 예수님께 붙잡혀 믿음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까지 달려갔을 때 “착하고 충성된 사람아, 수고하였노라!”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은총의 하루가 활짝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부름의 상(the goal to win the prize)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부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 맡겨진 일을 위하여 준비된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은 “친교의 기쁨”에 관한 말씀입니다.
친교를 위한 기초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입니다.

세상에서 최고의 지도자를 “대통령(大統領)”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군주(君主)” 또는 “왕(王)”을 최고의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최고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것을 학문으로 발전시킨 것을 “제왕론(帝王論)” 또는 “대통령학(大統領學)”이라고 합니다.

최고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비전(vision)을 제시할 줄 아는 사람
둘째는 설득력(persuasive power)이 있는 사람
셋째는 도덕성(moral integrity)이 우월한 사람
넷째는 열정(passion)의 사람
다섯째는 판단력(judgement ability)이 뛰어난 사람

완벽한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더 확장시켜 온 세계를 위하여 지도자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나를 본 받으라!”(17절)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지도자를 세워주시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19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부름의 상

상을 받는 사람은 상을 받을만한 기준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나는 훗날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을까?
때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어 일어납니다.
그 자리에 주저 않는다면 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을 상급을 바라보며 오늘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부름에 합당한 믿음으로 인도하소서!
달려갈 길에 바로 서게 하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0

빌립보서 4:1∼23

일체의 비결(12절)


♦ 2월 20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빌립보서 4:1∼23
♦ 묵상을 위한 주제 : 일체의 비결(12절)
♦ 성구 :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μεμύημαι).
“배웠노라”는 헬라어 동사는 “무에오(μυέω, mueó)”라고 합니다.
‘무에오’란 “신비를 밝히다(to initiate into the mysteries)” 또는 “훈련되었다(I am disciplined)”라는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은 “어디든지 통과(pass)” 할 수 있습니다.

궁핍하지만 자족할 줄 아는 믿음
비천하지만 풍부하게 즐기는 믿음
배고픔과 궁핍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

이와 같은 믿음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

“두려움”이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는 정서적인 죄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염려하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할 때 마음속에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등이 몰려와 마음과 몸을 괴롭히면서 더 힘들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건설적인 사고(思考)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일체의 비결이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모든 것을 먼저 알고 계시므로 우리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 줄 아는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염려의 틀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염려의 틀이 내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이미 거기에도 계십니다.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는 주님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찾아올 때
저희 마음을 깨끗케 하사
환경을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게 하옵소서.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0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일체의 비결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1

골로새서 1:1∼29

비밀의 영광(27절)


♦ 2월 21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골로새서 1:1∼29
♦ 묵상을 위한 주제 : 비밀의 영광(27절)
♦ 성구 :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의 몸이 되는 성도들에 대한 교회론”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모든 것의 모든 것” 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에서는 “몸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스도론”에 관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영광과 위엄” 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본문 14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바울의 기독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1. 신성(神聖)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1:15)
2. 창조(創造) ; 우주의 대 주재이신 창조주(1:15∼16)
3. 초월성(超越性) ; 만물 이전에(1:18)
4. 구속(救贖) ; 그의 피로 온 세계를 화목하게(1:20∼22)
5. 머리되심 ; 모든 주권과 권세들 가운데(1:18, 2:19)
6. 내주(內住) ; 그리스도인의 소망(1:2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만물의 으뜸이 되게 하셨으니 그보다 낮은 처소에 그리스도를 계시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밀(秘密)의 영광(榮光)이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땅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목(和睦)케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피는 육체의 죽으심이란 희생(犧牲)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처럼 오늘날도 주를 믿는 성도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 세상은 화목한 세계로 세워질 것입니다.

가장 작은 나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용돌이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품고 오늘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루가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1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비밀의 영광

비밀(秘密)이란 감추어진 진실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고래 반응(反應)”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켄 블랜차드(Ken Blanchard)”의 저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Whale Done!)”
에서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고래를 훈련시키는 조련사는 항상 고래를 칭찬하고 긍정적인 관계로 이끌어 가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고래 반응”이라고 합니다.

‘고래 반응’의 특징은 “타인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경쟁”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고래 반응”의 반대를 “뒤통수치기 반응” 이라고 합니다.
뒤통수치기 반응이란 “잘할 때는 무관심하다가 무언가 잘못 되었을 때는 갑자기 뒤통수를 치면서 화를 내고 닦달 하는 것”을 말합니다.

비밀의 영광이란 ‘고래 반응’과 같습니다.
부름 받은 제자들도 훌쩍 떠나버린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십자가의 비밀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외롭고 힘든 주님의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처럼 오늘날도 주님만 믿고 따른다면 이 세상은 “뒤통수치기 반응”이 활개를 칠지라도 거룩한 주의 백성들은 “고래 반응”처럼 세상을 바르게 세워나가는 일에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2

골로새서 2:1∼23

믿음에 굳게 서라(7절)



☞ 2월 22일(토)
- 나의 묵상 노트
♦ 믿음에 굳게 서라

믿음의 특징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패가 반복되고, 절망의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세상에서도 나와 같은 죄인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붙잡아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실패와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전환(redirection)”이란 방법을 사용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전환(轉換)이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했을 때에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여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도록 일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때로는 실패했어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 방향을 찾아 다시 나갈 수 있는 힘을 위로부터 공급받습니다.
매일 아침 신령한 힘을 공급받는 믿음으로 나를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세상은 더 흔들릴 것입니다.
빛이 그 성질을 잃으면 세상은 어두워 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미 믿음(信仰)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음이 없으므로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정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내게 있는 믿음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은 아직 예수를 믿는 믿음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믿음에 굳게 서는 비결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3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2월 23일 주일예배 안내


이번 주일을 라틴어로 "퀸콰게시마(Quinquagesima)"라고 합니다.

'퀸콰게시마'란 부활주일(4월 12일)을

맞이하기 50일 전 주일을 말합니다.


교회력으로는 주현 후 제7주

또는 산상변화주일이라고도 합니다.


2월 26일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이라고 합니다.

'재의 수요일'은 "사순절(Lent)"의 시작입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주일을 맞이하기 전 40일 특히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말합니다.


사순절 기간을 경건하게 준비합시다.

1. 한끼 금식하여 굶주린 사람을 위한 구제비

2. 매스 메디아 금식(휴대전화, 인터넷 등 사용자제)

3. 특별기도

 a. 문막 은퇴 여선교사 안식관 기공

 b. 자유대한민국의 건국 이념 확립

 c. 복음을 전한 대상자 찾기

 d. 우한 폐렴 확산 억제 및 백신 개발

과연 이와 같은 현상들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배란 무엇인가?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을 제물로 드렸다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의 일상 삶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예배라고 하겠습니다(로마서 12:1).

예배는 공적 예배(예배당 예배)와 사적 예배(삶의 예배)로 구분됩니다. 신자는 공적 예배(예배당 예배)를 통해 삶 속에서 하나님께 드려야 할 희생이 무엇인지 조명 받습니다. 이 조명을 삶에 적용하여 열매 맺음으로 예배는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이처럼 공적 예배와 삶의 예배는 유기적 관계 속에 있습니다.

공적 예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삶의 예배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16세기 종교 개혁이나 18세기 부흥은 공적 예배의 개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공적 예배를 무시하고 교회가 개혁되거나 부흥한 예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공적 예배와 삶의 예배는 어느 한쪽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몇몇 대형교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 앞에 공적 예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터넷 생중계로 대치한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안전하게 예배하기 위한 사랑의 배려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결정을 한 대형교회 목사님들과 중직자들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심사숙고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결정일지는 모르나 충분한 기도와 믿음의 결정인지 의문스럽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나 과거 선배 신앙인들을 생각한다면 적절한 결정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정을 당연시 여기는 한국교회 분위기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고 하겠습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이보다 더한 위험과 박해와 생명 위협 가운데서도 예배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들에게 예배의 타협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봅시다. 주일 예배 때마다 순사들은 예배당에서 서슬 시퍼런 눈초리로 동방요배(東方遙拜)하지 않는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 감시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고도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굳이 예배당에 와서 예배했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우리는 이 대가로 작금의 신앙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혹자는 인터넷 실시간 예배도 신령과 진리로 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중심이라고 합니다. 그럴듯한 궤변입니다. 현장예배와 온라인 예배의 가장 중요한 차이가 무엇인가? 휫필드의 표현에 의하면 천둥과 번개의 차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임재 차이라는 말입니다. 

온라인 예배에서는 현장예배와 같은 천둥과 번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예배를 한다는 논리는 구약시대에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고 가까운 산당에서 제사하던 논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교묘한 자기 합리화에 불과합니다. 이 논리를 긍정한다면 교회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 무교회주의자들의 날 선 공격을 어떻게 반박하겠습니까? 그들은 교회당에 출석하지 않고 가정에서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 영상을 찾아 대형 TV 앞에서 예배합니다. 불합리한 목회자의 간섭이나 허접한 설교를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교인들과 갈등하는 감정 노동도 할 필요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좋은 설교를 찾아 듣고 온라인으로 헌금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그만입니다.

좀 더 생각해 봅시다. 굳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교인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예배하고 싶은 명분은 차고 넘치는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가정이나 직장의 박해를 극복하며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어떤가? 육신의 질병과 장애를 감수하며 예배당까지 와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들을 향하여 어리석게 신앙생활 한다고 하겠는가? 도리어 이런 태도에서 예배의 정신을 보게 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가 이런 것이 아닌가?

더욱이 걱정되는 것은 이렇게 온라인으로 편리한 예배를 맛본 신자들의 방종을 어떻게 수습할지 걱정된다.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진 후에 현장예배를 등한시할 사람들이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하다. 작은 소자 한 명이라도 이들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실족시켜서는 안 되는 영혼이다.

물론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막무가내식으로 예배하자는 뜻은 아니다. 이런 식의 발상은 자칫 교회가 바이러스 확산의 원흉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먼저 확진자가 나타난 교회는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도록 철저히 방역해야 한다. 예배당 소독과 마스크 착용, 손 세정제 비치 등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예배 후 교제와 식사도 당분간 금한다.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들은 질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심으로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해야 한다. 그 가운데 결과를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에 맡겨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면 목회자와 교회 중직자들은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정말 믿음이 필요한 고통스런 판단이다. 그러나 신자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 중직자들이 이런 태도를 견지한다면, 그 자체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가 될 것이다.
* 자료출처 / 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4

골로새서 3:1∼25

위엣 것을 찾으라(1절)

2

25

골로새서 4:1∼18

세월을 아끼라(5절)

2

26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이 되자(7절)

2

27

데살로니가전서 2:1∼20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2

28

데살로니가전서 3:1∼13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2

29

데살로니가전서 4:1∼18

하나님의 뜻(3절)

3

1

주일

설교 묵상(섬김, 교제, 봉사, 헌신)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4

골로새서 3:1∼25

위엣 것을 찾으라(1절)


♦ 2월 24일(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골로새서 3:1∼25
♦ 묵상을 위한 주제 : 위엣 것을 찾으라(1절)
♦ 성구 :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020년 함께 읽었던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요한일서는 예수는 우리의 생명(生命)
야고보서는 예수는 우리 믿음의 본(本)
로마서는 예수는 우리의 의(義)
에베소서는 예수는 우리의 모든 것
갈라디아서는 예수는 우리의 자유(自由)
빌립보서는 예수는 우리의 기쁨
골로새서는 예수는 우리의 영광(榮光)과 위엄(威嚴)
데살로니가전서는 예수는 장차 오실 자(再臨의 主)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함께 읽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로 연결할 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읽었던 말씀에서 어떤 은혜를 확신하셨나요?
요한일서에서 “생명의 주”를 만났습니까?
야고보서에서 “행동하는 온전한 믿음의 주”를 찾으셨습니까?
로마서에서 나를 “의롭게 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에베소서는 나를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하신 주님”을 만났습니까?
갈라디아서에서 나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빌립보서에서 “예수 안에서 참 기쁨”을 회복하셨습니까?
골로새서에서 나를 “충만하게 하신 은혜”를 확신하셨습니까?

매일 읽는 짧은 한 장의 말씀에서 오늘 내게 있어야 할 은혜와 진리를 사모하며 오늘의 묵상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란 “위엣 것을 찾아야 할 존재” 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위에는 부활하신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이름을 왜 남길까요?
무덤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이름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오늘 밤 열 두 시에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당신은 무슨 일을 생각했습니까?

감리교의 창설자 요한 웨슬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설교 준비와 심방을 하겠소. 그리고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겠소.”

죽음이 확실하다면 30분 먼저 일찍 잠자리에 누워 영원한 생명을 찾아가는 웨슬리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어떤 새로운 일을 시도할 것이 아니라 늘 평소에 하던 것처럼 내가 하던 그 일을 익숙하게 행하므로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영원한 생명의 삶을 향하여 즐겁게 찾아가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좀 더 일찍 그 세계를 앞당겨 맞이할 수 있는 분명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사람에게는 죽음의 문을 30분 일찍 열 수 있는 믿음의 자신감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믿음으로 하루의 창을 열고 위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4일(월)
- 나의 묵상 노트
♦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는다는 것은 최상의 것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에 나타나는 한국 정치 현장을 생각해 봅니다.
최상의 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예로부터 정치 현장을 결정하는 것은 최고의 지도자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최상의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지도자라고 합니다.

중간형 지도자는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최악의 지도자는 보이는 것들 중에 내 눈에 좋은 것만 골라서 보고 들리는 것들 중에 내가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지도자를 말합니다.

요즈음 한국 정치 현장이 어떤 현실인지 짐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5

골로새서 4:1∼18

세월을 아끼라(5절)


♦ 2월 25일(화)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골로새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세월을 아끼라(5절)
♦ 성구 :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아끼라!(redeeming the time). 
아끼라(ἐξαγοραζόμενοι)는 헬라 단어의 동사 원형은 "엑사고라조( ἐξαγοράζω, 1805. exagorazó)" 라고 합니다. '액사고라조'의 의미는 "구속하다(ransom)"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시간을 구속할 수 있을까요?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으로 구분해 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신령한 시간입니다.
사람의 시간이란 쾌락을 즐기려고 욕망에 의해서 작동하는 시간입니다.
하루는 24시간
한 시간은 60분
일 분은 60초
따라서 하루는 1,440분
1,440분은 86,400초
나의 하루 일과를 시간별로 구분해 보면 어떨까요?
잠을 위한 시간
밥을 먹는 시간
휴식을 위한 시간
거리를 오가는 시간
교통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하루의 시간 중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인생의 년 수가 80이요 강건하면 90이라고 합니다.
하루의 시간들을 80 또는 90으로 환산해 보면 일생동안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죽기 전에 반드시 발견해야 할 다섯 가지 비밀’이란 질문에 각계각층에서 스승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남긴 다섯 가지 지혜를 소개합니다.

첫째,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라(Be True To Yourself)
둘째, 후회를 남기지 마라(Leave No Regrets)
셋째, 사랑이 되라(Become Love)
넷째,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Live the Moment)
다섯째, 받기보다는 주라(Give More Than You Take)

이제는 세월을 아껴야 할 가장 중요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그 시간만큼이라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시간을 좀 더 많이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았노라!
진실하게 믿었노라!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할 수 있는 하루를 창조하여 그 하루가 구속의 시간으로 연결되어 세월을 아끼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5일(화)
- 나의 묵상 노트
♦ 세월을 아끼라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6

데살로니가전서 1:1∼10

믿는 자의 본이 되자(7절)


♦ 2월 26일(수)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1:1∼10
♦ 묵상을 위한 주제 : 믿는 자의 본이 되자(7절)
♦ 성구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믿는 자의 본이 되라(You became a model to all the believers).  
본(本)이란 “모델” “모형”이란 뜻입니다.
본(τύπον, example)이란 단어가 “자국”(요 20:25, print, mark), 
“식대로”(행 7:44, pattern, fashion, model) 라고 사용합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면 처음 만두를 만드는 딸에게 “만두는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하며 반죽, 만두소, 만두 피 그리고 만두를 먹음직하게 만들어서 요리하는 과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습니다.

믿는 자의 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본보기처럼 생활하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학생들이 축제 분위기에 들떠 음식물을 벽에 던지고 낙서를 하며 난장판을 벌였습니다. 마침 그 광경을 기숙사 사감이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사감은 학생들을 야단치고 깨끗이 닦게 할까? 아니면  청소하는 직원을 불러 닦게 할까? 그러다 사감은 학생들 앞에서 걸레를 가져와서 아무 말도 없이 벽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사감의 모습이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본이 된다는 것은 잘못을 지적하고 깨우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묵묵히 본을 보이는 자세가 사람의 마음에 큰 감동을 줍니다.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모두를 감동시켜 삶의 현장이 예수 향기로 진동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6일(수)
- 나의 묵상 노트
♦ 믿는 자의 본이 되자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7

데살로니가전서 2:1∼20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 2월 27일(목)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2:1∼210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 성구 :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사순절 제2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을 지내는 동안 하나님께 합당하게 살아봅시다!

어느 날 허드슨 테일러에게 젊은이가 찾아와 “저는 세례를 받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게는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성경 지식과 신앙의 연수가 필요할까요?”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을 듣고 테일러가 반문합니다.

“램프의 심지가 얼마동안 타야 빛을 내지요?”


“그야 물론 알코올에 담겨 있는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는 그 젊은이에게 “그렇습니다. 램프의 심지에 불이 붙는 그 순간부터 빛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연도와 성경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시고 필요한 인간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겸손히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빛이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벌써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붙잡혀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붙잡히는 순간 하나님의 이끌림에 의한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삶을 위한 결단을 소개합니다.

첫째는 지속적인 감사(13절)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13절)
셋째는 주의 강림을 기대하라(19절)

지속적인 감사와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할 때 주의 강림의 날에 가장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 한국과 복음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자유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7일(목)
- 나의 묵상 노트
♦ 하나님께 합당한 생활(12절)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8

데살로니가전서 3:1∼13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 2월 28일(금)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3:1∼13
♦ 묵상을 위한 주제 :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 성구 :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For now we really live, since you are standing firm in the Lord. 

사순절 제3일을 맞이합니다.
주 안에 굳게 서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순간의 쾌락에 몸을 맡기려는 그대에게 1997년 6월 미국의 텔레비전과 신문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플린(Flinn)”은 최고의 여자 조종사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인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플린’은 공군 장교가 되는 과정에서 조종 훈련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습니다. 미국 언론은 ‘플린’을 가리켜 공군의 떠오르는 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플린’은 공군 중위로 미국의 최신 정예 폭격기인 B52의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미국 공군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촉망받는 여성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녀가 전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군법 회의 후에 감옥에 수감되느냐의 문제로 떠들썩하게 거론되다가 미 공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군법을 어기고 계급이 낮은 유부남과 간음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법을 어기면서까지 간음을 행할 때에는 스릴과 쾌락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일생은 회복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후회와 패배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룩한 크리스천은 잘못된 사랑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한 번의 실수와 잠시의 쾌락으로 죽을 때까지 되씹고 또 되씹어야 할 아픔과 수치와 불행과 멸망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굳게 서야 할 이유의 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주 안에서 굳게 설 수 있을까요?

1. 환난 중에 요동하지 말라(3절)
2. 믿음으로 위로하라(7절)
3. 주야로 간구하라(10절)
4. 주의 재림을 기다리라(13절) 

사순절 제3일에 다시 한 번 다짐합시다.
“주 안에서 굳게 서리라!”
건물을 받치는 기둥 하나가 바르게 서지 못하면 건물 전체가 위험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이란 거대한 건물을 받치는 “나”라는 기둥이 바르게 서 있는지요?
나 하나 때문에 자유대한민국이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자 말아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자유대한민국을 위하여!
예수 한국 복음 통일일 위하여!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2월 28일(금)
- 나의 묵상 노트
♦ 주 안에 굳게 서라(8절)

요일

오늘 읽을 말씀

묵상 주제

2

29

데살로니가전서 4:1∼18

하나님의 뜻(3절)


♦ 2월 29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4:1∼18
♦ 묵상을 위한 주제 : 하나님의 뜻(3절)
♦ 성구 :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사순절 제4일 아침의 창을 열어봅시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코이네 헬라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헬라 단어는 두 가지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델레마”라고 합니다.
‘델레마’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뜻”을 말합니다.

둘째는 “불래”라고 합니다.
‘불래’는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뜻”을 말합니다.

본문에 사용된 “하나님의 뜻”은 “델레마”라고 합니다.
“거룩함”은 곧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죄인으로 태어난 내가 어떻게 거룩한 주의 백성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7) 

“피(blood)”라는 헬라어는 “하이마(αἷμα)” 라고 합니다.

예수의 피가 어떻게 우리들의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벌거벗은 것을 깨닫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부끄러움을 감추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이란 짐승의 죽음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죽옷이란 피를 통과한 옷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은 원죄(原罪, Original Sin)는 가죽옷에 의해서 용서받았던 것처럼 모든 인간의 죄는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신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에 의해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예수의 피가 용서가 되는 것은 약속(約束)에 의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3
내가 애급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나의 죄가 예수의 피로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약속을 믿음으로 확신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거룩함”은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가 거룩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한 가지 “주께서 나를 대신하여 내 죄 값을 십자가에서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델레마의 진리입니다.

사순절 제4일을 맞이합니다.
기도 합시다.
자유대한민국이 몹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장로님의 건국이념을 지워버리려는 잘못된 생각들이 지배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회복될 때 가장 작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열국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신 것처럼 자유대한민국을 동방의 제사장 나라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