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와 오메가(요한계시록 1:8, 21:6, 22:13) / 주일설교 원고(2019-09-22)


알파(Α)와 오메가(Ω)

헬라어 알파벳은 모두 24자입니다. 알파(Α)는 헬라어 알파벳 첫 번째 문자이며, 오메가(Ω)는 헬라어 알파벳 마지막 24번째 문자입니다.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문자의 시작과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22개의 문자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과 나중이신 예수님은 22개의 문자를 사용하는 것처럼 과정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이제도 있고(현재), 전에도 있었고(과거), 장차 올 자(미래)로 전능한 자라고 하셨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모두 존재할 수 있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영원하신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자(永遠者)가 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한 존재입니다. 완전한 존재를 다른 말로 영원자라고 합니다. 사람의 이와 같은 모습을 불란서의 학자 파스칼은 “사람은 중간자” 라고 정의했습니다. 왜 사람을 중간자라고 정의했을까요?

사람은 시간적으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시간적으로 중간자라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는 하늘도 아니고 땅 속도 아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공간적으로 사람은 중간자라고 합니다.

사람의 모양 형태를 살펴보면 사람은 하나님도 아니고 사탄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형태적으로 사람을 중간자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처음(ἀρχὴ)과 나중(τέλος.)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ἀρχὴ)이란 “근원(根源)”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영적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처음이란 영적 존재로 돌아가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나중이란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심판(審判)”의 날이 반드시 다가올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로마 우르반대학 대강당에 새겨져 있는 글입니다.
오래 전 로마법대 졸업반에는 고학생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감당할 길이 없어 필립 네리란 부자 노인을 찿아가 재정상의 도움을 청원했습니다.
네리 노인은 그의 요청을 들어 주기로 허락한 후 다음과 같은 문답을 했습니다.

네리노인 "그런데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소?"
학생 "우선 법대를 마쳐야겠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변호사가 되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돈을 벌어야겠어요."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집을 짓겟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마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 생 "결혼을 해야죠."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자녀를 낳아서 교육을 시켜야죠."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점점 늙게 될 것입니다."
네리노인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학생 ……

젊은 법학도는 대답을 못하고 다음과 같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내 피는 식게 된다.
나를 위한 장례식이 있을 것이고 공동묘지는 무덤 하나가 더 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영원히 망각이다.

아무 대답이 없는 그 대학생을 향해서 네리 노인은 이제 엄숙히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망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예수 안에는 영원한 천당 예수밖에는 영원한 지옥이다."

돈 뭉치를 받아든 그는 매우 행복스러운 듯 보였으나 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영원이다."

비록 그 음성은 부드러웠으나 그의 마음속에 강력히 와 닿는 그의 말은 결코 지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나깨나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이 말이 그에게는 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현명한 결단을 내려 로마 법대에서 우르반 대학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성경과 신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공부한 후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으면 그만이다! 라는 말은 마지막 다음에 있을 심판을 알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의 넉두리입니다.
 
그런데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들에게 값없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생명수 샘물을 마시고 마지막까지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은 처음(πρῶτος)과 나중(ἔσχατος)이시며, 시작(ἀρχὴ)과 끝(τέλος)이 되셨습니다.

처음(πρῶτος)이란 시작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시작은 창조를 말합니다. 나중(ἔσχατος)이란 마지막 즉 종말을 말합니다. 종말은 땅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위로부터 내려와 새로운 세계를 시작하는 날을 말합니다.

시작(ἀρχὴ)은 구속의 시작으로 십자가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끝(τέλος)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외치셨던 예수님의 말씀으로 구속의 사역이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첫째는 영원하신 예수님(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둘째는 창조주와 심판주(요한계시록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셋째는 만유의 주(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와 오메가는 헬라어 알파벳 24문자의 첫문자와 마지막 문자입니다. 그러나 24문자 중에 첫문자와 마지막 문자를 제하면 22개의 문자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드시 마지막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이 올 때 어떤 사람은 이미 죽어서 땅 속에 묻혀 없어진 사람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지막 그 날에 살아있으므로 새로운 영적 존재로 변화되어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약속을 사도 바울의 외침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이란 첫 번째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 전체를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첫 열매를 바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바친다는 의미로 약속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첫 열매는 단 하나의 열매가 아니라 앞으로 열매 맺을 모든 열매를 대표하듯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은 장차 모든 부활 생명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알파(창세기 1:1) - 창조주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신앙고백으로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도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아버지를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알파 하나님은 우주 전체의 근원입니다.
독일의 개혁교회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1928. 10. 2 ~2014. 9. 5)는 그리스도론을 체계화 했던 학자이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하나님은 “만물을 규정하는 현실성”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알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모든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내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만 나라는 존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 하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중심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로서 전능한 자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 알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오메가(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은 22장 21절이 마지막 말씀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내용으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끝을 맺는 인사말이기 때문에 마지막 말씀은 20절이라고 하겠습니다.

알파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오매가 하나님은 다시 오실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다시 오실 목적은 심판주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3. 하나님은 완성(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세상을 완성하신다는 뜻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완성하시는 방법은 세상에 있는 것을 모두 쓸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부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눈물, 죽음, 애통, 통곡, 아픔이 없는 세상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상상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눈물과 죽음과 애통과 통곡 그리고 아픔이 언제나 가깝게 우리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것들이 있어야 웃음과 삶과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세상에서 살아왔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마지막 때에 모든 세상과 삶이 완성된다는 사실에 대한 비유이며 은유입니다. 

로마 황제가 아무리 자신을 황제가 하나님이라고 강요할지라도 로마 황제는 눈물과 죽음과 아픔을 씻어줄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합니다. 로마 황제의 권위에 굴복하라고 강요받던 시대에 초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라는 진리 즉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자라는 믿음입니다. 최고의 권력에 대한 혁명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영혼의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을 읽어보면 정말 황당한 이야기도 소개됩니다. 하늘이 종이두루마리처럼 말린다거나 바다에서 용이 나오는 광경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그 역동성에 감동을 받습니다. 전혀 새로운 언어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일이나 사람들은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합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대통령이나 필부나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조 단위의 재산이 있는 사람이나 겨우 먹고 사는 정도의 사람이나 인간의 근본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모두 이 세상에서 한 순간 살다가 떠나야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런 대상에 매달려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삶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밥벌이를 포기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그 해방이 실제로 가능할까요?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알파와 오메가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신앙이란 알파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오메가의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입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은 완성의 하나님입니다. 완성의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상급은 이 세상에서 올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유대인들의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나라도 없이 오랜 세월을 전세계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살던 소수민족입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되었고,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민족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성과에는 3가지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몸보다는 머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습관.

배척을 당해왔던 역사로 인해 자연스럽게 어디서나 할수있는 머리를 사용하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서로 정보를 교환할 만큼 강한 공동체 의식.

유대인들은 같은 민족끼리는 엄청난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셋째는 토론과 대화의 교육 방법

이론보다는 체험을 중시하는 유태인들만의 전통 교육법.
인내와 헌신을 기반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통해 자녀들을 이끌어 주는 것이 유태인 교육의 공통된 노하우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한 마음으로 고난을 이겨 나가면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은 귀하게 역사하십니다.
유태인들이 겪은 고난이 결국 그들에게는 가장 귀한 재산이 된 것처럼 주님 안에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들이 훗날의 진주가 된다는 것을 믿고 감사함으로 견디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주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믿게 하소서.
어려움을 통해 성장시키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유대인들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날마다의 삶이 위를 바라보는 기대가 넘쳐나는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