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Ⅳ(요한계시록 16:15)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Ⅳ(요한계시록 16:15)
- 자기 옷을 지키는 자의 복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Behold, I come like a thief! Blessed is he who stays awake and keeps his clothes with him, so that he may not go naked and be shamefully exposed.
믿음(信)이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광복 74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며 오늘의 시대를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국가관이 마구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국회의원은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대통령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설마 하며 동영상을 관심을 갖고 동영상을 보는데 대통령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태극기에 경례를 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라도 믿음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선다면 하나님은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성도가 있고 교회가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조국을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의식주(衣食住. 옷 衣, 밥 食, 살 住)란 “사람이 생활하는 데 기본이 되는 옷과 음식과 집”을 말합니다. 왜 사람은 옷과 밥과 집이 필요할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옷과 음식과 집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을 “에덴”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 에덴에서 쫓겨나므로 그때부터는 옷과 음식과 집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이 세상에서는 옷과 음식과 집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어떻게 얻고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은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일곱 가지 복에 대한 말씀 중에서 세 번째로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일곱 가지 복에 대한 말씀을 함께 기억하려고 코팅 복사하여 주보와 함께 나눠드렸습니다(Laminate). 다음 주일부터 일곱 개의 성구를 암기하신 교우들에게는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나눴던 성구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지키다(테레오, τηρέω. 5083. téreó)는 단어는 단순히 지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다(to watch over)' 또는 '경계하다(to guard)'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슬퍼합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복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슬퍼하기 때문에 죽은 후에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는 죽은 조상에게 음식을 차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후손들은 하루 세 끼씩 식사를 하면서 조상들을 위한다며 일 년에 단 한 차례 제사를 드리며 음식을 차려주는 것이 과연 효도하는 것일까요?
기독교 신앙은 죽은 후에 슬퍼하며 효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을 때에 더 잘 모시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오늘 소개할 말씀 요한계시록 16장 15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정상적인 사람은 옷을 벗고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각 가정을 심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정된 모든 가정들을 심방하며 마지막 한 가정이 남았습니다.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집안에서는 분명히 누군가 있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심방을 왔다가 돌아간다는 표시로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란 성구를 적은 메모를 남기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며칠 후 목사님이 사무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문에 지난 번 심방 때에 남겨둔 메모가 사무실에 붙어 있었는데 그 메모지 아래에 창세기 3장 10절이란 성구가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 그들은 벗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죄를 지은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옷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옷, 흰 옷, 피 뿌린 옷, 세마포, 붉은 옷, 두루마기”와 같이 다양하게 소개됩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히마티온, 스톨래, 리논, 부시논 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옷이란 몸을 보호하는 기능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사용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옷의 의미는 기능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4∼5절을 찾겠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 교회를 향한 말씀 중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 몇 사람이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라고 합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의미를 요한계시록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옳은 행실(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요한계시록 7:13∼14)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후에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옷의 기능적인 의미만 생각한다면 구태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힐 필요가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과 가죽옷의 차이
아담과 하와는 그들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하나님의 방법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의 결과이므로 죄를 감추려고 옷을 만든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옷이란 죄를 감추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을까요? 가죽옷을 만들려면 반드시 짐승을 죽여야 합니다. 짐승을 죽이려면 피가 흘러나옵니다. 성경에서 피가 상징하는 것은 생명과 용서라고 합니다.
첫째는 피는 생명(신명기 12:23)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노아 홍수 사건 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사람들의 식물은 오직 채소 위주의 식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홍수 후에 살아있는 동물을 식물로 주시면서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9:4).
둘째는 피는 용서(히브리서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가죽옷이란 죄를 지은 사람이 흘려야 할 피를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림으로 죄를 지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가죽옷으로 약속한 용서의 은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입어야 할 옷을 구원의 옷과 의의 옷이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이사야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이란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 자기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만들어 입었던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과 같이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입혀주셨던 가죽옷 즉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서 해결 받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의 옷과 의의 옷으로 계시된 약속은 오랫동안 짐승의 희생 제사로 그 약속을 지켜왔습니다. 드디어 때가 되어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마지막에는 홍포를 입은 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홍포를 입으셨던 예수님
요셉은 어려서부터 채색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사사 시대에 미디안 왕들은 자섹 옷을 입었습니다.
모르드개는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었습니다.
벨사살 왕은 다니엘에게 자색 옷을 입혀 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약속했습니다.
서양 속담에 “자주색에서 태어났다(Born in the purple)” 이란 말은 고귀한 혈통, 부유한 가문에서 탄생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요즈음 말로는 ‘금수저’ 라고 하겠습니다.
고대에는 색깔 있는 옷 특히 자주색으로 염색한 옷은 그 엄청난 가격과 염색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최고급 옷감으로 인정되었고 곧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자주색 옷을 입혔습니다. 만왕의 왕이라고 존경한 것이 아니라 조롱하려고 입힌 것입니다. 그러나 조롱의 옷은 결국 영광스런 세마포 흰옷으로 드러났습니다.
가죽옷을 구원의 옷과 의의 옷으로 완성하시려고 십자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러한 사건을 요한계시록 16장 15절에서 옷에 대한 신앙의 결론을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깨어' 라는 헬라 단어는 '그래고레오' 라고 합니다.
'그래고레오'란 '잠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awake).
'그래고레오'란 '관심을 갖고 주시하는 것'을 말합니다(watch).
왜 깨어 있어야 합니까?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적이 오는 날짜를 통보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만의 장개석 총통은 “예수님은 간첩과 같이 오신다!”고 강조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은 도적같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잠들지 않고 지켜보고 있어야 합니다. 관심을 갖고 주시해야 합니다.
자기 옷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의 옷은 어느 교주가 어느 교단이 어느 교회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린 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허락하십니다.
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4,000에 대한 말씀입니다.
7장 10절에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5: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가죽옷은 구원의 옷으로 의의 겉옷으로 이어져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세마포 즉 옳은 행실이라고 하셨습니다. 옳은 행실은 부자 청년과 같이 어려서부터 율법을 모두 지켰기 때문에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부족한 것 즉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후에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부활 후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도적 같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42∼43a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기도하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누가복은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자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일까요?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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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3:4, 7:14, 19:16 ) - 히마티온
- ἱμάτια, στολὰς, ἱμάτιον
흰 옷(3:4∼5, 3:18, 4:4, 7:9, 7:13∼14, cf 행 1:10) - 스톨래
피 뿌린 옷(19:13) - 히마티온(ἱμάτιον)
세마포(15:6, 18:12, 18:16, 19:8, 19:14) - 리논
붉은 옷(18:16) - βύσσινον.
두루마기(6:11, 22:14) - 스톨래
헬라어에 의한 옷의 분류(히마티온, 스톨래, 리논)
헬라어 |
장절 |
히마티온 |
3:4, 3:18, 4:4, 19:13, |
스톨래 |
7:9, 7:13, 7:14, |
리논 |
19:14(βύσσινον) |
3:4(옷) ἱμάτια, 2440. himation
3:4(흰 옷) λευκοῖς, 3022. leukos
3:18(흰 옷) ἱμάτια λευκὰ, 2440. 3022
4:4(흰 옷)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 2440. 3022
6:11(흰 두루마기) στολὴ λευκή 4749. 3022
7:9(흰 옷) στολὰς λευκάς, 4749. 3022
- στολή, 4749. stolé
7:13(흰 옷) στολὰς τὰς λευκὰς. 4749. 3588. 3022
7:14(옷) στολὰς, στολή, 4749. stolé
- ἐλεύκαναν. λευκαίνω 3021. leukainó(to make white)
15:6(세마포) λίνον. λίνον 3043. linon
18:12(세마포) βυσσίνου. 1039
18:16(세마포) βύσσινον. 1039
18:16(붉은 옷) κόκκινον, κόκκινος 2847. kokkinos
19:8(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βύσσινον, 1039. bussinos
19:13(피 뿌린 옷) 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19:14(희고 깨끗한 세마포) βύσσινος, 1039. bussinos
옷에 대한 세속적인 기능과 성경적인 기능은 분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족장 시대에 요셉은 어려서부터 채색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채색옷이란 물론 가장 좋은 옷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셉 시대에는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녀에게 구별하여 입혀주는 옷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창세기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사사 시대에는 미디안 왕들이 자색옷을 입었습니다.
사사기 8:26,
기드온의 청한 바 금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새 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모르드개는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었습니다.
에스더 8:15,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면류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왕의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
에스겔 23:6,
그들은 다 자색 옷을 입은 방백과 감독이요 준수한 소년, 말 타는 자들이라.
다니엘에게 벨사살 왕이 몇 번이나 약속합니다. 자주옷을 입히겠다는 것입니다. 즉 자주옷은 권력과 성공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니엘 5:7,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으리라 하니라.
참조 / 다니엘 5:16, 29,
자색옷의 의미를 설명하는 서구사회에서 사용하는 문장을 소개합니다.
‘Born in the purple.’
문자 그대로 하면 “자주색에서 태어났다.” 라는 뜻인데 고귀한 혈통, 부유한 가문에서 탄생했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요즈음 말로는 ‘금수저’ 라고 하겠습니다.
고대에는 색깔 있는 옷 특히 자주색으로 염색한 옷은 그 엄청난 가격과 염색과정의 어려움 때문에 최고급 옷감으로 인정되었고 곧 권위와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지중해 전역과 그 주변에선 자주색과 붉은 색은 권력과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도 자주색 옷을 입었다, 입힌다함은 왕권이나 최고의 권력과 부유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으로 음식을 대신하였고 약대털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인이란 세속사회와 단절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와 에쎄네파가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에쎄네파에 속한 사람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완전히 중립을 지키려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홍포를 입었습니다. 홍포란 당시 황제들이 입는 지배자의 옷을 말합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셨다고 말했기 때문에 홍포를 입힌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도 자색옷을 입었습니다.
누가복음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예수님의 마지막 수난 때에 예수님을 모독하기 위해 입힌 옷도 황제권을 상징하는 자주색 옷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로마시대 때 자주색은 황제 자주(imperial purple)라고 해 오직 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습니다.
황실 자주색 옷은 기원전 16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티레 지방 특산 소라고둥으로 염색을 했다고 해서 티레 자주(Tyrian purple)라고도 불렸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염료를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헤라클레스였는대, 헤라클레스는 조개를 씹어 먹은 자기 개의 주둥이가 자주색으로 물든 것을 보고 염료 물질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부활 후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도적 같이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그 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42∼43a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어떻게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기도하므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누가복은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자에게 약속된 것은 무엇일까요?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2: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왜 깨어 있어야 할까요?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데살로니가전서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베드로후서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요한계시록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어느 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부임하여 각 가정을 심방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예정된 모든 가정들을 심방하고 마지막 한 가정이 남았습니다. 그 집에 도착하였을 때 집안에서는 분명히 누군가 있었는데도 아무리 벨을 눌러도 문을 열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심방 왔다가 돌아간다는 표시로 요한계시록 3장 20절이란 성구를 적어놓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 주간에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지난 번 심방 때에 왔다가 돌아갔다는 표시로 적어준 메모지가 사무실에 붙어 있었는데 그 메모지 아래에 창세기 3장 10절이란 성구가 적혀있었습니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옷에 대한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옷에 대한 명칭이 다양합니다. 교복(校服), 제복(制服), 군복(軍服), 예복(禮服), 법복(法服), 아동복(兒童服), 여성복(女性服), 우주복(宇宙服) 등과 같이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