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Ⅶ(요한계시록 22:7) |
-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오늘의 시대
커넥트 그래픽 시대(Connect Graphic Era)
네트워크 시대(Network Era)
왜 오늘의 시대를 왜 커넥트 그래픽 시대 또는 네트워크 시대라고 할까요? 그 이유는 지구촌 인구가 2019년 7월말 기준으로 77억 1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facebook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22억 명이며, youtube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19억 명이라고 합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휴대전화(Cell Phone)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41억 명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구촌 전체 인구에 의한 비율은 대략 54%에 해당합니다.
요즈음 데이케어센터에서는 어르신들에게 휴대전화 사용하는 방법을 교육합니다. 왜 교육이 필요할까요? 쉽고 편리하게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신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육(敎育)이 필요합니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
2004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려고 세계 각처에서 인도양 해변을 찾았던 사람들이 인도양 쓰나미 사건으로 23만 명이 순식간에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11살 된 소녀 "틸리 스미스"가 100명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틸리 스미스"가 100여명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2주일 전 학교에서 지리 시간에 받은 교육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틸리 스미스가 받은 교육은 "바닷물이 맥주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 즉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는" 교육이었습니다.
바닷물이 끓어오르는 현상을 "조충현상(Cross Swell)"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다 밑의 지층이 지진으로 갈라지면서 그 틈으로 바닷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다 수면은 수평을 맞추려고 바닷물이 흔들리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개혁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치 마지막 시대에 어느 특별한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에서 들을 수 없었던 요한계시록에 대한 신비한 해석을 가르치는 잘못된 교리와 교회에 미혹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고 심지어 시한부종말론에 심취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방법은 "복(福)으로 읽는 요한계시록"입니다. 왜 복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합니까? 성경에서 강조하는 복은 영생(永生)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복(福)이란 한자를 분석하면 '볼 시(示)' 자와 '부요할 부(富)' 자가 합성하여 만든 단어입니다. 한자의 복(福)이란 부(富)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복(福)에 대한 관점이 세상 사람들과 구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복(福)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이 일곱 번 소개됩니다. 그 말씀들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 복(福)에 대한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1장 3절에서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22장 7절에서도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키는" 것은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1:3, 지키는(τηροῦντες) 5083 keeping
22:7, 지키는(τηρῶν) 5083 keeping
* τηρέω. 5083. téreó, to watch over, to guard
예언의 말씀은 번역은 같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1:3, 예언의 말씀 -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22:7, 이 책의 예언의 말씀 -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οῦ βιβλίου
1장에서 예언의 말씀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로 받은 예언의 말씀을 말합니다. 반면에 22장에 예언의 말씀은 좁은 의미로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 즉 “요한계시록이란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 이라고 한다면 넓은 의미로는 “성경 전체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 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전체의 예언이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은 ‘오실 메시아’
신약의 예언은 ‘오신 메시아’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다시 오실 메시아’ 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이란 한자는 “예언(預言)”과 “예언(豫言)”입니다.
“예언(預言)”이란 “말씀을 맡은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맡은 사람을 “예언자(預言者)” 라고 부릅니다.
“예언(豫言)”이란 “미리 아는 것”을 말합니다. 미리 아는 사람을 “선지자(先知者)” 라고 부릅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말씀을 맡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말씀을 맡았습니까? 하늘로 올라가셨던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속히”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에 8번 소개됩니다(1:1, 2:16, 3:11, 11:14, 22:6, 7, 12, 20). 그런데 22장에서 4번 사용되었습니다.
1:3, 속히(τάχει)
22:7, 속히(ταχύ)
* 속히(ταχύ) 5035. tachu, quickly
“속히” 라는 단어를 “빠르게” 라는 시간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2천 년 전부터 오신다고 하셨는데 아직까지도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속히” 라는 단어는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반드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속히” 라는 단어의 의미는 “반드시” “틀림없이” “꼭” 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킨다는 의미
성경을 해석할 때 좁은 범위에서 찾는 것보다는 넓은 범위에서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한 해석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성경 전체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예언의 말씀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에서 예언의 말씀은 “오실 메시아”
신약에서 예언의 말씀은 “오신 메시아”
요한계시록에서 예언의 말씀은 “다시 오실 메시아” 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예언의 말씀의 핵심은 “복음(福音)”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복음 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한복음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예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어떻게 예언의 말씀을 지킬 수 있을까?
첫째, 순종하는 것(신명기 30: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 율법 책에 기록된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육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열조를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초월해야 가능합니다.
예를 들면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한 후 동거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요셉은 정혼의 약속을 소리 소문 없이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주의 사자가 꿈속에 나타나서 요셉에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마태복음 1:20).
그 순간 요셉은 인간의 경험과 생각과 방법을 모두 버렸습니다. 이런 자세가 곧 순종하는 것입니다.
둘째, 말씀을 가감(加減) 없이 지키는 것(요한계시록 22:18∼19)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가감(加減)이란 한자의 의미는 “더할 가(加)”와 “뻴 감(減)”으로 “더하거나 빼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의 말씀 즉 요한계시록과 성경의 모든 말씀은 어느 것 하나라도 더하거나 제하는 것은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요즈음 유투브(youtube)에 십일조를 바치면 지옥에 간다는 내용이 자주 소개됩니다. 십일조는 구약 시대의 계명이므로 은혜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은 분명하게 증거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더하거나 제하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4: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加減)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신명기 12:32,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加減)하지 말찌니라.
마태복음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스무고개라는 게임에서 19개는 모두 정확하게 맞추었는데 마지막 한 개를 맞추지 못했다면 그것은 전부 맞추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흔히 범하기 쉬운 실수는 내용이 어렵다 보니 추측으로 대충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일지라도 그 결론은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예수의 복음입니다. 계시록을 예수의 복음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역사적 종말론을 소홀히 해서도 방종의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셋째, 말씀을 묵상하는 것(시편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히브리어로 ‘묵상(黙想)’은 ‘정신을 모아 잠잠히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모아 말씀을 읽고 그 말씀에 대해서 잠잠히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시편 119:148,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으로 말씀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셔서 반드시 깨닫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요한이서 1:4,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말씀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성도들이 해야 할 가장 최고의 덕목입니다. 왜냐하면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님이 가장 기쁠 때는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길을 따라 다 같이 승리합시다!
첫째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
둘째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
셋째는 말씀을 묵상하는 것
예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 정리한다면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자!” 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승리하셔서 약속의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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