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祈禱)


죠지 뮬러(George Muller, 1805-1898)
프러시아 크로펜스타트(Kroppenstaedt)에서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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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동기 다섯 가지
- 기도는 순수한 동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1. 순수한 마음
 - 고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2.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마음
 - 주님 생각에 가장 좋은 것으로 하여 주옵소서!
   (나의 생각이 아니다)

3. 정직한 마음
 -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직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허물이 있어도 정직한 삶의 바탕 즉 잘못을 변명하거나 합리롸 하지 않는 것)

4. 말씀의 묵상
 -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편 81:10)
 -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시편 68:5)

5.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
 - 나의 기도와 삶을 통하여 얼마나 하나님을 잘 나타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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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방법 중 하나이다.
기도할 때 우리의 감정, 생각, 깊은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감사한 것을 하나님께 공유하게 된다.
또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바를 듣고 성령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도의 한 가지 매력적인 특징은 세상의 아무도 똑같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 기독교 사이트 바이블스터디툴즈( Biblestudytools)는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10가지 종류를 소개했다.

1. 경배의 기도(시편 148:13)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

이런 종류의 기도는 깊은 사랑, 존경, 그리고 감사함으로 주님께 경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주님이 누구시고 하시는 모든 것에 대한 경외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2. 감사의 기도(역대상 16:33-34)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서 건져 내시고 모으시사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할찌어다"

어떤 이들에게는 매일 감사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 그들이 생활 습관이다.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선하시고 자비로운 분인지에 대한 인식이자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에 대한 감격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다.

3. 고백의 기도(시편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우리 죄를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 따르는 크리스천으로 기도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성경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고백 기도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신다는 점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4. 서약의 기도(사무엘상 1: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약속은 하나님의 힘과 인도,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불경건한 생활을 하지 말 것을 맹세할 것이다.
여기 한나의 서원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그것은 큰 사려와 확신을 가지고 해야 한다.

5. 조용한 성찰의 기도(시편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침묵의 기도는 우리를 말로 가득 찬 기도에서 벗어나 조용히 성찰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심을 묵상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우고 그 분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게 하는 것이다.

6. 치유를 위한 기도(시편 119:25)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I am laid low in the dust; preserve my life according to your word.

이 기도는 보통 우리가 육체적, 정신적, 또는 감정적 상처를 회복하려고 할 때 나온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육체적으로 변등이들을 치료하시는 것이었다.
성경은 우리가 모든 종류의 병들로부터 치유될 것을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7. 구원과 도움을 위한 기도(시편 107:6)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Then they cried out to the LORD in their trouble, and he delivered them from their distress.

우리가 도전, 고난 또는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를 위한 돌파구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8. 중보의 기도(골로새서 1:9-12)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For this reason, since the day we heard about you, we have not stopped praying for you and asking God to fill you with the knowledge of his will through all spiritual wisdom and understanding.
And we pray this in order that you may live a life worthy of the Lord and may please him in every way: bearing fruit in every good work, growing in the knowledge of God,
being strengthened with all power according to his glorious might so that you may have great endurance and patience, and joyfully
giving thanks to the Father, who has qualified you to share in the inheritance of the saints in the kingdom of light.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중재할 것을 말한다.

예로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전 마지막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음을 알고 있다.

9. 변화를 위한 기도(시편 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Search me, O God, and know my heart; test me and know my anxious thoughts.
See if there is any offensive way in me, and lead me in the way everlasting.

이러한 삶의 종류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처럼 살고, 그 길을 따라 행하고, 거룩해지는 과정에 들어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10. 축복의 기도(빌립보서 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And this is my prayer: that your love may abound more and more in knowledge and depth of insight,
so that you may be able to discern what is best and may be pure and blameless until the day of Christ.
filled with the fruit of righteousness that comes through Jesus Christ--to the glory and praise of God.

축복의 기도는 종종 선교사들, 다른 곳으로 떠나는 교인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 등을 위해 행해진다.
이러한 축복의 기도는 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는 강력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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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규례가 아닌 진정으로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

기도는 어떤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외우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도는 말을 따라 하거나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고, 하나님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감동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겉치레 행위를 기뻐하시지 않고 입으로만 가까이하는 것을 열납하지 않으시며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하고 경배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기도를 해 봤던 사람이라면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배할 때 혹은 큐티할 때 혹은 어떤 일이 생길 때 마음을 평온히 하고 전념해서 성실하게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감동받고 평안과 기쁨을 느낍니다.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에 신령으로 기도해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는커녕 규례를 지키고 형식적으로 몇 마디 하는 등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무심한 기도가 어찌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예컨대, 새벽(밤) 기도, 식전(식후) 기도 등은 오랫동안 규례적인 행위가 되어 형식적으로 하지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끔은 하나님께 기도할 내용이 없으면서도 신앙인으로서 의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무 말이나 중얼거립니다.
이러한 기도는 형식적인 것인데 하나님이 들어주실까요?
결코 들어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규례를 지키는 무심한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만이 하나님께 상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평온히 하기를 중요시해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2.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라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0~14)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 주님은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고 바리새인의 기도에는 염증을 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입에 발린 말이고 자신의 공로와 좋은 행위를 자랑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상을 받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리는 자신이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천한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세리는 기도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마음을 터놓고 자신의 패괴를 인정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세리와 같은 겸허한 마음을 갖췄나요?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늘 외식하며 자기 자랑을 합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기도를 길게 했을 때,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적지만 우습게 보일까 봐 반복적으로 말을 해서 기도 시간을 늘립니다. 일부러 많은 성경 구절을 외운다거나 듣기 좋은 말을 해서 돋보이려고 합니다. 열심히 사역해서 성과를 거두면 스스로를 주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자로 여기며 기도로 축복과 면류관을 요구하고 천국에 들어가 상을 받으려 합니다. 이렇듯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세리를 본받아 어떤 일이 임하든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의 실제 정형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거짓과 꾸밈이 없고 외식하지 않으며, 어떤 패괴를 유로했든지 하나님께 고하며 구원해 달라고 빌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확한 기도법이고 이렇게 기도해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3. 이성적으로 피조물의 위치에서 기도하라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겟세마네라는 곳에서 세 번 기도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마 26:39~44)

예수님은 구하는 마음, 순종의 자세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구하였지 하늘 아버지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통을 피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의 기도를 마친 후 예수님은 천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성육신하게 된 이유는 인류를 십자가에서 구원하는 사역을 하기 위함이었기에 예수님은 완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드리며 그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이성적으로 기도하고, 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어 피조물의 각도에서 기도함으로 우리의 모델이 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반성해 보면 우리는 이성적인 기도를 했을까요? 피조물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구하고 순종하는 기도를 한 것이었을까요? 우리는 비이성적인 기도를 드릴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뜻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 주세요 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께 강요합니다. 예컨대, 몸이 아플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보다 우리의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를 하기에 바쁩니다. 병에 호전이 없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고 불평하지요.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 좀 있고 헌신하거나 본분을 조금 하게 되면 우리가 평안하고 모든 것이 순조롭도록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심지어는 가족들의 복까지 구합니다. 또 핍박과 환난이 임했을 때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며 그 환경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하는 등 이러한 기도는 다 비이성적인 것입니다. 구하는 자세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드린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욕망을 채워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고 우리의 뜻대로 해 주십사 강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진실한 기도가 아주 적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기도할 줄 모른다. 사실 기도는 주로 마음속의 말을 하는 것인데, 평소에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기만 하면 위치를 잘못 선다. 하나님의 뜻에 맞든 맞지 않든, 하나님께 베풀어 달라고 억지로 구하는데, 그 결과 기도하면 할수록 무미건조해진다. 기도할 때 네가 마음속으로 어떤 것을 구하든, 어떤 것을 사모하든, 어떤 것을 얻으려고 요구하든, 혹은 어떤 일을 처리하려고 할 때 꿰뚫어 볼 수 없어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하든, 힘을 더해 달라고 하든, 혹은 하나님께 깨우쳐 달라고 하든, 이런 말하는 방식에도 *이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네가 이지 없이 무릎 꿇자마자 “하나님, 저에게 힘을 더해 주십시오. 제 본성을 보게 해 주십시오. 당신께서 해 주십시오. 혹은 저에게 무엇 무엇을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이 ‘주십시오’ 안에 강박적인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반드시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네가 스스로 사전에 다 정해 놓은 것이다. 네가 비록 그렇게 기도할지라도 성령은 그런 기도에 대해 ‘네가 이미 스스로 정해 놓고 그렇게 하려고 한 이상, 그런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라고 여긴다. 기도할 때에는 마땅히 찾고 구하고 순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너에게 일이 임할 때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면 너는 이렇게 말하여라.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일이 임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에서 당신을 만족게 하기를 원하고, 당신의 뜻을 찾고 구하기를 원하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저의 뜻대로 하지 않고 당신의 뜻대로 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뜻은 다 당신의 뜻을 어기는 것이고, 당신을 대적하는 것이고,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것임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저를 깨우쳐 주시고, 이 일에서 인도해 주셔서 당신을 거스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런 어조의 기도는 적합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이성을 갖춰 기도해야 합니다. 피조물의 위치에서 기도하며 자신의 선택과 요구와 계획이 없이 하나님께 구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가령 천재지변이나 인재로 인한 사고 등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을 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보호를 강요하며, 그런 고난을 옮겨 달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피조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마련해 주신 뜻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시키고 온전케 하시기 위함이거나 우리의 증언을 보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순종하는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고, 우리가 기도하는 문제를 알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실 것입니다.

4. 개인을 위한 기도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9~13)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바람은 하나님 당신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사탄에 의해 패괴된 후로, 하나님은 계속 구원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진정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를 얻기 바라시며,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 펼쳐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또한 자기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취지가 담긴 기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취지가 담긴 기도, 하나님께서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도록 힘쓰는 기도, 그리스도의 나라가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가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입니다.

성경에서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의 소원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 다윗은 항상 그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뻐해 다윗을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제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잘 예배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제사와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장수와 부귀영화까지 더해 주셨습니다. 욥은 언제나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큰 시련 속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1:21), “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으로 사탄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울림 있는 증거를 보이며 후세들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하나님을 흡족게 하고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드리는 기도가 가장 하나님 뜻에 합당한 기도이며, 반드시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드리는 기도를 살펴보면, 대부분 육의 욕심을 위한 기도일 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가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자녀의 대학 진학을 위한 기도,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간구하는 기도를 비롯해 전부 개인의 이익을 구하는 기도이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기도가 태반입니다. 계속 하나님께 손 내밀며 축복과 은혜를 갈취하려고만 할 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거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기도를 드리는 경우가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뒷걸음치게 될 때, 하나님께 힘을 더해 달라고 간구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또 설교하거나 사역을 할 때면, 항상 책임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길로 이끌 수 있게 성령님의 깨우침과 빛 비춤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늘 이런 문제를 놓고 기도한다면,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와 빛 비춤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가지 기도법의 실행 원칙에 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도에 관한 올바른 실천 원칙을 파악하면, 기도가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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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Amen)

05-15-2022(주일)

아멘의 어원(語源) : 아만
아만의 의미 :
어떤 대상을 '지지하다' 혹은 '신임하다

여기서부터 이 말은 기도나 찬양 및 선언이 종결되어지는 종지부나 끝맺음에서 '진실로 그렇습니다' 또는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
'라는 동의나 소원의 뜻을 가진 '아멘'으로 발전되었다.

'아멘'이란 말은 단순한 종결(終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곧 어떤 선포나 찬양 그리고 기도 등을 지지하거나 확인 또는 시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나의 삶 속에 적용시키겠다는 결단의 의지(意志)까지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한편 신약 시대에 '아멘'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강조 용법('진실로 진실로'란 말은 헬라어로 '아멘 아멘'이다)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바울 사도에 의해서는 축복과 찬양(Doxology)의 결미어(結尾語)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계시록 서신에서 이 말을 인격화시켜 존재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다(계 3:14).
이 모든 배경하에서 '아멘'을 복창(復唱)하던 일은 유대인들의 습관이 되어 왔으며, 또한 그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기독교 공동체에 전달되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05-08-2022

Grhard Tersteegen(게르하르트 터스티겐) 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은혜로운 임재를

우리 안에 새롭게 일깨워 주십시오

그리하여 인생의 순례 길을 가는 동안

우리 안에 평화와 진실함과 용기가

끊임없이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당신을 굳세게 붙들게 하시고

당신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과 연합된 우리의 마음이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하는 무슨 일에든지

항상 이어지게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마음속에서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게 해주시고

당신께서 주시는 경고를 묵살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우리의 가난한 마음을

당신께 제물로 드립니다.

오서서 당신의 지성소를 채워 주시고

그곳에 더러운 것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켜주십시오


오 사랑의 주님,

당신의 거룩한 영이 우리의 모든 영혼 속에 강같이 흐르게 하시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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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7:11-26


11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른 후, 그곳 세겜 땅 북쪽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축복과 저주의 의식'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기 6지파씩 양편 산에 갈라서서 축복과 저주를 각기 선포하는 의식인데, 여호수아 8:30-35에서 그대로 실행되었다.

한편,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왜 축복과 저주의 산으로 각각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ㅇ요단을 건넌 후에 - 2, 3, 4절에 이어 본장에서 벌써 네번째 언급되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그만큼 요단(Jordan)을 건너는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을 시사해준다.

ㅇ시므온과...베냐민 - 모두 야곱의 정부인(正婦人)인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후손이다(창 29:31-30:24;35:16-18). 그러나 그중 레아의 막내 아들인 스불론의 지파와 서모(庶母) 빌하를 범하였던 장자 르우벤(창 35:22)의 지파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ㅇ축복하기 위하여 - 야곱의 정부인에게서 난 아들들이 이처럼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에 대하여 카일(Keil)은 '적자(嫡子)가 서자(庶子)보다 신분이 높고, 축복이 저주보다 품격이 높은 만큼 적자가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433).

ㅇ그리심 산 - 사마리아 성읍 부근에 위치한 오늘날의 '예벨 엣 투르'(Jebel et Tur)이다. 남북으로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특별히 그리심 산(Mt. Gerizim)이 축복을 선포하는 산으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ㅇ르우벤...납달리 -

전술한 것처럼 르우벤과 스불론 외에는 모두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와 실바의  후손이다(창 29:31-30:34). 르우벤과 스불론이 여기에 속하게 된 이유는 아마 르우벤은 서모 간통 사건으로  인한 장자권 박탈 때문이었을 것이고(창 35:22; 49:4; 대상 5:1), 스불론은 레아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창 35:23)이었을 것이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ㅇ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

혹자들은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을 축복받은 지파들로,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을 저주받은 지파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
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에발 산에 서게 될 지파들 중에도 단, 아셀, 납달리 지파처럼 야곱의 축복을 받은 지파들이 있으며 그리심 산에 서게  된 지파들 중에도 시므온, 레위와 같이 야곱의 저주를 받은 지파도 있기 때문이다(창 49:1-27).

따라서 축복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저주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을 거역하는 자들을 각기 상징할 뿐으로 이해함이 좋다. 한편 에발 산(Mt. Ebal)이 특별히 저주를 선포하는 장소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ㅇ레위 사람 - 여기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모든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약궤
를 메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중앙 부분에 서서 모세의 말을 전달받아 양편에 갈
라 서 있는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레위 제사장'(9절;수 8:33)을 가리킨다
(Delitzsch, Lange, Alexander, Wycliffe)
ㅇ큰 소리로...이르기를 - 혹자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외치는 사람의 목
소리가 양편 산 중턱에 운집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들릴 수 있었겠는가라는
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한 정밀 조사 결과 양쪽 산의 음
향 효과가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 여러 사람이
외칠경우 충분히 들려진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Stanley, Syria & Palestine;
Tristram, Land of Israel ;Hastings, Bonar, E.G. Kraeling).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찌니라

ㅇ장색 -

각양 물건을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자(craftsman)를 가리킨다. 당시 이들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로 많은 이익을 보곤 하였다(행 19:24).

ㅇ가증하니 - 23:18 주석 참조.

ㅇ은밀히 세우는 자 -

십계명 중 제 2계명(5:8-10;출 20:4-6)을 은밀히 범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은밀히'에 해당하는 원어 '바사테르'는 '은밀
한 장소에'(KJV, in a secret place)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은밀한 장소'로 꼽을 만한 곳은 어디이겠는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골방이나 비밀 장소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는 역시 사람의 마음 속을 꼽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자기 마음 속에 은밀하게 품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 숭배이다.

ㅇ모든 백성은...아멘 할지니라 -

'아멘'(amen)이란 말은 본래 '확실하다', '신실하다'는 뜻의 '아만'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장이나 대화의 끝에서 사용될 때 '과연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경홀히 여기는(칼라) -

원뜻은 '가볍다'로, 곧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히 여기는 것(잠 12:9), 절하(切下) 평가하거나 모독을 주는 것(사 16:14), 그리고 지독히 경멸하는 것 따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를 이처럼 업신여기는 것은 곧 자신의 근본(根本)을 망각한 행동일 뿐 아니라, 급기야는 부모를 통해 그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하는 짓거리이다(21:18).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고 권면하였다. 출 20:12 주석 참조.

ㅇ저주를 받을 것이라(아루르) -

기본형은 '아라르'로 '버림을 받다'란 뜻이다. 즉 이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다면, 버림을 받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임을 잘 증거해 준다(Calvin).

17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 '여기서 지계표'(地界標;KJV,landmark;NIV,
boundary stone)란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이나 푯말을뜻한다(창 31:51,
52). 따라서 이러한 지계표를 마음대로 옮기거나 없애 버리는 것은 타인의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이다. 한편 성경 뿐 아니라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도 지계표를
침해하는 행위를 큰범법 행위로  규정하고  매우 엄격하게 다스렸다.19:14 주석 참조.

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

고대 근동에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과 풍토(風土)로 인하여 의외로 소경이 많았다.
즉 고온 건조한 기후와 쉴 새 없이 이는 먼지, 그리고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 및 가난으로 인한 영양 실조 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실명(失明)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이러한 소경을 일부러 괴롭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따라서 본절이 의미하려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역본 Living Bible은 본절을 '소경을 이용하여 그 이(利)를 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Cursed is he who takes advantage of a blind man)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웃을 하나님의 계명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영적으로 해석하였다. 아뭏든 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장애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불의한 이(利)를 취하거나 또 는 그들을 괴롭히며 실족케 하는 일 따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 조항임에는 틀림없다(레 19:14;롬 15:1). 실로 율법은 그러한 약자들의 약점을 악용하는 죄악에 대해서는 보다 혹독한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  레 19:14 주석 참조.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객이나 고아나 과부 -

가난하며 약한자, 그리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대표하는 구약 시대의 3대 약자들이다(14:29;16:11, 14;24:21;26:12, 13).

ㅇ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 

여기서  '억울케  하다'에  해당하는 '나타'는 '비틀다', '굽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는 뜻으로,
정당한 판결을 내리지 아니하고 힘 있는 자를 두호(斗護)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서는 이미 24:17에서도 엄금했던 바, 실로 하나님께서는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河水)같이' 흘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암5:24)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계모와 구합하는 자 -

'구합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브'는 성(性) 관계를 갖기 위해  '잠자리를 같이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모'에 해당하는 '에쉐트 아비'는 '아버지의 여자'란 뜻이다.
따라서 비단 이는 계모 뿐 아니라 아버지의 첩과도 성 행위를 하는 것을 포함한다.

ㅇ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

영역본 RSV는 이를 '아버지의 여자를 벌거벗겼으니'로, NIV는 '아버지의 침소를 더럽혔으니'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은 '그녀는 그의 아버지에게 속하였으니'로 번역하고 있으며, 공동 번역은 '아비의 이불자락을 들치고'로 의역하고 있다. 아뭏든 이처럼 아버지의 침소, 아버지의 여자를 넘보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 윤리를 저버리는 패역(悖逆)이니, 저주를 면할 길 없다(22:30). 레 18:8 주석참조.

21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짐승과 교합하는 자 -

동성애, 근친 상관 등과 더불어 변태적인 성 행위 중의 하나인 수간(獸姦)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수간자(獸姦者)는 근친 상간자 및 남색자(男色者)와 더불어 땅을 더럽히는 추악한 성범죄자로서 아스라엘 사회에서 반드시 제거되어야 했다(출 22:19;레 20:15, 16).
성경은 결코 생리적인 성적 욕망이나 충동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性)의 창조자로서 하나님께서는 성을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기쁨으로 간주하셨다(잠 5:18; 전 9:9; 요 3:29).
이것은 창조시 아담의 독처(獨處)를 좋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한 여자 하와를 창조하여 준 사실(창 2:18, 22)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바로 이 남녀 창조 사건에서도 분명히 예시되었듯이 남녀간의 성적 욕망은 일부 일처의 신성한 결혼 제도에 의해서만 충족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요 비밀이었다.

여기서 '비밀'이라고 한 것은 훗날 사도 바울이 설파했듯이 신랑과 신부의 한몸 되는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순결한 일체성'을 상징하고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22:13-30; 엡 5:31, 32).
따라서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 질서가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 일부 일처의 결혼 제도를 떠난 모든 성(性) 남용은, 더욱이 수간, 근친 상간, 동성애(同性愛) 등 타락한 인간의 어그러진 심성(心性)에 기인하고 있는(롬 1:26, 27) 모든 변태적(變態的)인 성행위는 단순한 도덕적 범죄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죄에까지 이르는 추악한 성범죄 행위인 것이다.

특히 고대 이방의 문란하고 타락한 제사 의식이나 설화 등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수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엄한 인간의 가치를 하등 동물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극악한 소행이므로 거룩한 공동체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결단코 용납될 수 없었다.  따라서 성경은 일관성 있게 이러한 모든 성범죄를 보다 엄격히, 그리고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는 성(性)의 타락으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가나안 족속의 멸절 그리고 로마의 패망 등을 거울삼아 성(性)개방 풍조로 인해 성(性)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심지어 상품화시키는 타락한 세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빛된 자녀답게 고결하고 아름다운 성(性) 윤리관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레 18:23; 20:15, 16 주석 참조).

22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3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자매...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

누이는 항렬상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이다.
따라서 그러한 누이를 범하는 것은 우생학적(優生學的) 폐단은 차치하고라도, 곧 자기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짓이나 마찬가지 행위이므로 저주를 면할 길 없다. 레 18:9
주석 참조.

ㅇ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

성경은 자신의 장모와 성 관계를 갖는  파렴치한에 대하여서는 그들 모두를 반드시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레 18:17;20:14 주석 참조.

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

과실치사(過失致死)가 아닌 한, 그 어떠한 살인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정당시킬 수 없다. 특히 암살(暗殺) 행위는 더욱 그러한
데,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상대방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기습하는 도발 행위이기 때문이다. 죄를 은폐하려는 의도하에서 저지르는 계획적 살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출 20:13;민 35:16-21 주석 참조.

25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

살인의 대가로 뇌물을 받는 행위는 곧 인간의 값어치를 추잡한 뇌물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의 눈을 피해 그같은 죄를 자행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피할 수 없기에 저주를 면할 길 없다. 출 23:7, 8 주석 참조.

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

사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란 아무도 없다(롬 3:1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출애굽의 영웅 모세도, 그리고 성군(聖君) 다윗도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던 죄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짐짓 범죄치 아니하려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창 6:9>.





기도(祈禱)

자료 / 예수님의 중보기도 / 워렌 위어스비 지음, 조은주 역. 은성출판사

01-9-2022(제2주)

허버트 록키어(Herbert Lockyer. 영국 1886-미국 1984)박사는 "성경에는 650편의 기도들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곧 기도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국 침례교회 목사이었던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 1834. 6. 19-1892. 1. 3)은 "진정한 기도는 길이가 아니라 무게에 의해서 측정됩니다."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일생동안 예수를 믿으며 수 많은 기도를 했을 때 그 모든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만일 하늘에 상달되지 않는 기도를 했다면 무게가 없는 기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요한복음 17장)
17:1-5, 예수께서 자신을 위해 기도하시다
17:6-19,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다
  제자들의 안전(17:6-12)
  제자들의 거룩(17:13-19)
17:20-26, 예수께서 전체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께서 드린 "제사장으로서의 기도"라고 정의합니다.
제사장의 기도를 다른 말로 "왕의 기도"라고도 합니다.

제사장으로서의 기도가 위대한 네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이므로 위대하다
둘째, 기도를 요구한 상황 때문에 위대하다
셋째, 기도에 있는 간구 때문에 위대하다
넷째, 승리 때문에 위대하다


01-16-2022(제3주)

잔느 귀용(Jeanne Guyon, 1648~1717)의 작품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The Simplicity of Prayer)"에서 "기도는 내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에게 집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기도는 사탄이 침입 할 수 없는 요새입니다.
사탄은 그 요새 주위를 포위하고 공격하며 소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집중할 때 사탄은 절대로 해칠 수 없습니다.
요즈음 어떤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의 기도의 자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 나의 기도의 자리가 흔들려서 사탄이 공격할 수 있는 틈을 만들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For it is sanctifi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2022년 제3주간을 시작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앞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은총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01-23-2022(제4주)

요한복음 17장을 '왕의 기도' 또는 '예수님의 제사장으로서의 기도'라고 합니다.
왕의 기도로서 첫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의 기도라는 것 때문에 위대한 기도라고 합니다.

첫째, 성부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셨다(17:3, 18, 21, 25)
선지자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으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

둘째, 성부 하나님의 것은 나의 것(17:8, 16:28)
성도는 나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이라고 한다(17:10).

셋째, 성부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17:11-12)

예수님의 기도는 그 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 내 하나님께로 올라가신다고 하셨다(요 20:17)

01-30-2022(제5주)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Prayer is the breathing of the soul.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기도가 없으면 영혼이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육체는 호흡이 없으면 곧 죽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시작해야 한다(로마서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합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려면 영을 받아야 합니다.
영을 받는 것을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기도하려면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사도행전 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02-06-2022(제6주)


기도하다(요 17:9, 15, 29)는 뜻의 "비옵나니"라는 단어는 "동등한 상태로부터의 부탁" 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단어를 세 번 사용하셨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곧 영존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원하옵나이다(요 17:24)
이 말은 간청이 아니라 명령이다.
성도들은 이런 권위를 가질 수 없지만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은혜를 누리며 신앙생활에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02-13-2022(제7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야고보서 5:15)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게도 하시고 거두기도 하십니다.
병들게도 하시고 낫게도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습니다. 
간구 하옵기는 김영희권사님이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 가운데 시달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김영희권사님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못하여 답답합니다.
그러나 질병으로 고통 당할 때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옵시고
오히려 고통 가운데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을 찾아 알게 하옵소서. 
질병 중에 있을 때 인생의 모든 것과 바꿀 수 있는 영원한 보물을 찾고 기뻐하며 믿음 위에 더욱 굳게 설 수 있는 믿음만을 주장하게 하옵소서. 

언제까지 육체의 고통으로 시달릴지 모르지만 질병으로 인하여 몸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강한 빛을 받아  성령의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또한 육신이 건강한 사람과 비교함으로 낙심하지 않고
고통 가운데서 십자가의 아픔을 몸소 겪으셨던 주님을 바라보며 그 사랑을 깊이 깨닫는 은혜가 넘쳐나게 하옵소서.
 
몸의 불편함을 불평하는 대신 이미 허락하신 은혜로 인하여 주님을 뜻을 나타낼 수 있는 은사를 찾게 하옵소서. 
질병도 그 가운데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면 불행이 아니라 복이요, 재앙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은사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의사를 통하여 치료를 받을 때에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시고, 장기적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없도록,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만병의 의원이시고, 치료자 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을 공부하므로 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행함으로 복을 받는다.


야고보서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기도의 영을 구하라!

스가랴 12:10a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I will pour out on the house of David and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a spirit of grace and supplication.

로마서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

기도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는 "기도는 영혼의 호흡" 이라고 합니다.
호흡이란 생명이 있는 증거입니다.
죽은 사람은 호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영혼과 육이 하나로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호흡이 필수적인 것처럼 또한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정의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생명과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이 호흡을 하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은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된 것처럼
기도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흔적과 같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기도를 합시다!

나의 하나님이여
그리스도를 보사
나의 작별의 순간을 평안하게 하옵소서!

내 비록 흙에 지나지 않사오니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하옵기는
쾌락을 구함도 아니오며
금을 요구함도 아니오라
그보다 더 큰 것을 구하오
하나님이 내게 주실 가장 큰 선물
내가 누를 영원한 생명일세.

내 마음 이제 기도와 찬송으로 넘치네
그리고 부드러운 그의 마음에
내 마음 가까이 끌어올리는
그 한 숨결 한 숨결을
내 하늘 아버지는 알고 계시네
내 기쁨과 평안 여기 있고
내 구원 당신 안에서 보니
아, 내 영혼을 지키시는 이여.

* 기도의 영 p. 180, 181, 182
- 기도(오 할레스비)

삶의 지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인생 수업"에 나오는 일화 입니다.

어느 기분 좋은 여름날, 갓 결혼한 부부가 저녁을 먹고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둘이서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꽥, 꽥!"

아내: "저 소릴 들어봐, 닭이 틀림없어."

남편 : "아니야, 저건 거위야."

아내 : "아니야 닭이 분명해."

남편 :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건 말도 안돼. 닭은 '꼬꼬댁 꼬꼬!'하고 울지만, 거위는 '꽥, 꽥!' 하고 울거든. 저건 거위라고."

또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꽥, 꽥!"

남편 : "거봐 거위잖아!"

아내 : (한발로 땅을 구르며)  "아니야 저건 닭이야. 내가 장담할 수 있어."

남편 : (화가 나서)
 "잘 들어 여보! 저건 거위라니까! 당신은 정말이지..."

남편이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말을 내뱉으려는 찰나 또 다시 "꽥, 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가 눈물을 글성이며 말했다.
"저봐, 닭이잔아."

그 순간 남편은 아내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왜 그녀와 결혼했는가를 기억했다.
그는 얼굴을 누구러뜨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미안해, 여보 생각해 보니 당신말이 옳아. 저건 닭이야."

그러자 아내는 남편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여보"

두 사람이 사랑 속에 산책을 계속하는 동안 숲에서는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꽥, 꽥!"

남편은 생각했다. '그것이 닭이든 거위든 무슨 상관인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기분 좋은 여름날 저녁 함께 산책을 즐기는 것이였다.

그렇다! 그것이 닭이든 거위든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상대에게 상처주고 결국은 관계가 단절되는 이유 중에 많은 부분이 멀리서 들려오는 동물의 소리가 닭인지 거위인지 같은 사소한 분쟁에서 비롯된다.

내 신념을 저버려야 할 일이 아니라면 내게 회복하지 못할 손해가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면 인정해 준들 무엇이 문제일까?

- 인생수업 중에서 -

"찰리 채플린" 명언

88세에 세상을 떠난 "찰리 채플린"이 남긴 4가지 명언

1.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들의 문제 조차도.

2. 난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내 눈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3.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없는 날들은 웃지 않은 날 들이다.

4.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 6명은
* The sun ( 태양 )
* Rest ( 휴식 )
* Exercise ( 운동 )
* Diet ( 다이어트 )
* Self - Respect  ( 자존감 )
* Friends ( 친구 )

이 모든것들과 함께 당신의 삶을 즐기세요.
삶은 여행일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을 충실히 사십시요.
내일은 안 올지도 모르니까요.

찰리 채플린
웃음은 몸 안의 조깅 입니다.

찰스 스펄전
진정한 기도는 길이가 아니라 무게에 의해서 측정된다.

허버트 록키어 박사
성경에는 650편의 기도들이 기록되어 있다.
기도 중에서 요한복음 17장의 주님의 제사장으로서의 기도가 가장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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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기도는 항상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대화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때 주기도문은 우리가 매일 하나님께 이야기하는데 도움이 되는 모범이 됩니다.
여기 도움이 될 만한  여섯 단계 기도 가이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다시 집중하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깊이 숨을 들이 마시고 다음 단어에 집중해 보세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천천히 숨을 내쉬며 다음과 같이 말해 보세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러 번 반복하고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성품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그리고 또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초점을 맞추어 보세요.

    여러분의 뜻을 다시 맞추어 보세요.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은 늘 그 분의 뜻을 이 땅에 이루고 계십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뜻을 그분의 뜻에 맞추는 것은 그분의 나라를 찾는 일입니다.

    주변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 보여주시기를 기도해 보세요.

    염려를 내려 놓으세요.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무언가를 받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여러분이 하나님께 여러분의 염려를 드릴 때 그분은 여러분께 무엇을 주실까요?

    여러분의 염려를 적어보세요. 그리고 하나씩 읽어 보세요. 염려를 소리 내어 읽을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고 마음 속으로 기도하세요.

    이 단계를 필요한 만큼 계속하세요.

    회개하고 응답하세요.

    사하여 준 것 같이.. 사하여 주시옵고

    여러분이 주님께 내려 놓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주님께 고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깊은 상처, 좋지 않은 행동, 어쩔 수 없는 중독, 반복되는 실수 등등일 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 생각을 그분께 말씀 드리고 그분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세요.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부터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엇으로부터 구원하셨나요?

    주님의 신실함에 감사 드리세요. 그리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말씀해 보세요. 주님의 보호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보세요.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에도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 하세요.

    기뻐하며 돌아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속에서 행하신 일을 기뻐하고 오늘 하루를 보내며 그분을 예배 할 방법을 찾으세요.

    그리고 잠시 하나님과 함께 한 이 시간을 곰곰이 돌아 보세요. 그분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보여 주셨나요? YouVersion기도 목록에 생각나는 것을 적어 보세요

예수님처럼 기도를 시작하면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가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꿀 때, 우리는 언제든지 확신, 의뢰함, 신뢰를 가지고 하나님께 다가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일용할 양식

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

"일용할 양식"에 대한 헬라어는 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이다. 
아르톤ἄρτον은 "빵"이다. 
신약의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던 음식이다.
여기서 빵은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제유법으로 사용되어, "양식" 일반 혹은 더 나아가 "물질" 일반을 의미한다. 

“일용할”로 번역되어 있는 헬라어 단어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은 주의 기도에 사용된 전체 헬라어 중에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이다. 이 단어를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성경에 이 단어가 오직 주기도문에만 나오기 때문이고, 성경 밖에서도 그 용례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잘 안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상당히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신 셈이다.
이렇게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셨을 때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테니, 더 세심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에피우시온”이 무슨 뜻인지를 밝히기 위한 많은 학문적 연구가 있었다.

초대교회 시절부터 문제가 되었으니 긴 논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경 안에 용례가 없으니, 성경 밖 문서나 비문을 다 뒤져서 이 단어가 사용된 흔적이 있으면 그것에 근거해서 뜻을 찾아내려 하였는데, 노력에 비하여 결실이 적다.

이 단어가 쓰여있는 비문이 그리스의 어느 섬(Rhodes)에서 새로 발견되었을 때 거기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쏟았고, 이 단어가 쓰여있는 파피루스가 런던의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었을 때에도 학계가 들썩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뜻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말 주기도문이 “일용할”이라고 에피우시온을 번역했는데, 그건 기본적으로 에피우시온의 뜻을 “오늘”이라고 본 것이다. 영어로 daily bread라고 번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발견을 반영하면 에피우시온은 "다음"이라는 뜻이 된다.
에피우시온에 "날"을 뜻하는 헤메라가 붙여써진 파피루스가 발견되었는데, 문맥에서 볼 때 "다음 날 곧 내일"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발견을 주의기도 해석에 적용하면  τὸν ἄρτον τὸν ἐπιούσιον(톤 아르톤 톤 에피우시온) "다음 먹을 빵"이 된다.
그리고 이것을 의역하면 "생존에 필요한, 삶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빵이 된다. 

에피우시온(ἐπιούσιον)이라는 단어 자체에 집중한 해석 역시 이런 해석과 궤를 같이 한다.
에피우시온은 "에피"라는 전치사와 "우시온"이라는 명사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에피(ἐπί)는 "~위에"를 뜻하는 전치사로 영어의 on이나 upon에 해당한다.
"우시온"이 나온 "우시아(οὐσία)"는 그리스 철학은 물론 삼위일체 교리에도 사용된 단어인데 그 기본 의미는 "존재(being, existence)"이다.

그러므로 에피우시온은 "존재를 떠받치는"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고, 이는 에피우시온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맥이 통한다. 

이런 이해를 고려한다면, 주의 기도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 하신 "일용할 양식"이 하루 먹을 양식이 아닌 것으로 조심스레 해석할 수 있다.

"일용할 양식"은 문학적 표현으로 참 좋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지 하루치 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물질",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물질 전반"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 하셨다. 

내게는 어디까지가 "일용할 양식"일까? 물어보고 묵상할 질문이다. 


주기도문의 신학(마태복음 6:9~15)

주기도문은 마태복음의 이곳과 누가복음의 평행문(11:2~4), 디다케(Didache)라는 2세기 교회사 문헌에 세 군데 실려 있다.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은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모범 기도를 가르쳐두었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기도를 가르쳐달라는 요구에 이 기도를 전하는 것이 그 맥락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은 중언부언과 자기과시의 기도를 비판하며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는 맥락에서 모범적인 기도의 사례로 주기도문을 제시한다. 이러한 편집 맥락의 차이는 애당초 주기도문의 기원이 예수의 신학적 유산을 요약하는 가르침의 일환으로 제자들에게 전수되었고 그것이 다양한 맥락에서 실천적으로 응용되어갔음을 암시한다.

먼저 이 기도는 '우리'를 기도의 주체로 설정한 집단 기도(group prayer)로 규정된다. 개인으로 은밀하게 골방에서 드리는 묵상기도로서나 축귀를 위한 주술적 차원에서 이 기도가 활용된 것은 후대의 일이다. 이 기도의 내용만으로 판단할 때 주기도문은 두세 명 이상의 제자들이 모여 드리는 공적인 기도로 당시 유대교의 회당예배에서 유통된 카디쉬 기도(Kaddish prayer)를 그 원천자료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 유대교 기도가 하나님을 3인칭으로 설정한 기도라면 주기도문은 하나님을 2인칭으로 설정해 기도하는 주체와의 긴밀한 인격적 대화와 소통을 전제로 깔고 있다. 나아가 신학사상이란 측면에서도 주기도문은 예수의 신학을 응집한 결정체라고 할 만한 중요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기도가 짧고 중언부언을 방지한다는 점에서 앞의 기도 교훈과 일맥 상통하지만, 개인이 골방에서 드리는 은밀한 기도가 아니라 공적인 '집단기도'라는 점에서는 상기 맥락을 이탈한다.

먼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호명하며 이 기도는 시작된다. '하늘'의 초월성과 친근하게 옆에 계시는 '아버지'의 내재성이 동시에 강조된 이 기도의 서두는 그 보편적 보호자로서의 그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호칭함으로써 하나님이 인간의 개인적 편향과 편익을 위해 편파적으로 이용되거나 오남용되는 문제를 사전에 방지한다. 나아가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시옵소서'라는 간구도 하나님의 이름이 세속적 이해관계에 엮여 함부로 오남용되지 않도록 극진하게 배려한 점이 도드라진다. 이는 나아가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교훈의 연장선상에 있다.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옵소서'라는 문구는 하나님의 왕적인 주권(basileia)이 이 땅에 온전히 실현되길 간구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의와 사랑, 평화와 자비 등으로 요약되는 하나님이 뜻이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간구한 세 번째 항목은 제 위치를 지키거나 제 순환궤도를 돌며 피조물 본연의 역할에 착실하게 순종하는 하늘의 일월성신, 나아가 그 아래 구름과 새들처럼 경계 없는 하나님의 자유를 구현하는 창공의 피조물과 달리 이 땅의 청지기로 세운 인간만이 유일하게 패역하며 하나님의 창조 뜻을 위반하는 현실을 암시한다. 그래서 타락과 죄악의 근원이 되는 이 땅의 인간 현실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구현되길 갈망하는 간구가 이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세 가지 인간을 위한 간구 중 첫째가 일용할 양식이다. 영적인 양식을 굳이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예수의 의중 가운데 이 양식은 무엇보다 육체적 양식이었다고 봐야 한다. 음식을 먹지 않고 생명이 온전히 건사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적 판단 아래 당시 굶주림에 지친 가난한 생명을 배려하여 이로써 인간을 위한 중요한 첫째 간구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렇게 보존된 생명이라야 죄악과 싸우며 용서하고 용서받는 일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죄지은 자의 용서에 대한 간구는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면 빚의 탕감에 대한 내용이다. 사회경제적인 맥락에서 이 땅의 현실은 비대칭과 불균형, 그리고 양극화이다. 그것은 조건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마찬가지로 은혜로써 상대방의 빚을 탕감해줄 때 극복 가능한 과제다. 용서의 본질도 인간사회에 인간의 탐욕으로 불거진 이러한 비대칭, 불균형의 인간관계를 극복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시험'(peirasmos)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유혹'과 '시련'으로 달리 번역될 수도 있다. 여기서 시험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그 대상은 제자들을 포함한 인간이다. 하나님의 시험은 욥의 고전적 사례가 암시하듯 수수께끼 투성이다. 그것을 극복할 때 인간을 연단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치여 치명적인 타격으로 죽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파멸적인 최후로 종결되는 시험으로 더 이상 우리 인간을 끌어들이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종 유형무형의 '악'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당신'께서 피조물인 인간을 향해 이런 구제와 구원의 의무가 있음을 자식의 도리로 상기시켜드리는 데 이 주기도문의 주된 목적이 있다. 이어지는 14절은 주기도문의 예전적 완성도를 살리기 위해 후대에 첨가된 송영구이고 14~15절은 주기도문의 구절 중 12절의 빚 탕감과 용서의 교훈을 한 번 더 강조하여 추가로 논평한 것이다.

주기도문은 짧지만 예수의 행적과 교훈을 압축한 심오한 신학사상을 품고 있다. 그 한 구절마다 수많은 해석과 논쟁을 유발할 뿐 아니라 신앙적인 도전이 지대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초창기부터 이 주기도문을 애용하며 자신의 기도를 비추는 거울로 삼았을 뿐 아니라 경건한 신앙과 삶의 훈련을 위한 기준으로 삼았다. 오늘날 수많은 주기도문 강해가 나왔지만 그 중에는 보충되고 교정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다. 아울러, 그 심층을 추가로 탐구하면서 그 핵심 교훈을 치열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주기도문은 이렇듯 예수님의 가르침을 현대화하는 데 첨단의 기수로 재발굴하고 재정립해야 할 중요한 과제를 담고 있다.

신명기 27:11-26


11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른 후, 그곳 세겜 땅 북쪽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서 반드시 이행하여야 할 '축복과 저주의 의식'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 의식은 이스라엘 12지파가 각기 6지파씩 양편 산에 갈라서서 축복과 저주를 각기 선포하는 의식인데, 여호수아 8:30-35에서 그대로 실행되었다.

한편,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이 왜 축복과 저주의 산으로 각각 선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ㅇ요단을 건넌 후에 - 2, 3, 4절에 이어 본장에서 벌써 네번째 언급되고 있는 구절이다. 이는 그만큼 요단(Jordan)을 건너는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임을 시사해준다.

ㅇ시므온과...베냐민 - 모두 야곱의 정부인(正婦人)인 레아와 라헬에게서 태어난 후손이다(창 29:31-30:24;35:16-18). 그러나 그중 레아의 막내 아들인 스불론의 지파와 서모(庶母) 빌하를 범하였던 장자 르우벤(창 35:22)의 지파는 여기서 제외되었다.

ㅇ축복하기 위하여 - 야곱의 정부인에게서 난 아들들이 이처럼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에 대하여 카일(Keil)은 '적자(嫡子)가 서자(庶子)보다 신분이 높고, 축복이 저주보다 품격이 높은 만큼 적자가 축복을 선포하는 일을 맡은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평하였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433).

ㅇ그리심 산 - 사마리아 성읍 부근에 위치한 오늘날의 '예벨 엣 투르'(Jebel et Tur)이다. 남북으로 에발 산과 마주보고 있는데, 특별히 그리심 산(Mt. Gerizim)이 축복을 선포하는 산으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ㅇ르우벤...납달리 - 전술한 것처럼 르우벤과 스불론 외에는 모두 야곱의 첩이었던
빌하와 실바의  후손이다(창 29:31-30:34). 르우벤과 스불론이 여기에 속하게 된 이
유는 아마 르우벤은 서모 간통 사건으로  인한 장자권 박탈 때문이었을 것이고(창
35:22;49:4;대상 5:1), 스불론은 레아의 막내 아들이었기 때문(창 35:23)이었을 것
이다(Keil, Lange, Pulpit Commentary).
ㅇ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 혹자들은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을 축복받은 지
파들로, 에발 산에 선 지파들을 저주받은 지파들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
은 무리이다. 왜냐하면 에발 산에 서게 될 지파들 중에도 단, 아셀, 납달리 지파처럼
야곱의 축복을 받은 지파들이 있으며 그리심 산에 서게  된 지파들 중에도 시므온,
레위와 같이 야곱의 저주를 받은 지파도 있기 때문이다(창 49:1-27). 따라서 축복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을, 저주의 산에 오른 자들은 율법을 거역하는
자들을 각기 상징할 뿐으로 이해함이 좋다. 한편 에발 산(Mt. Ebal)이 특별히 저주를
선포하는 장소로 선택된 이유에 대하여서는 11:29 주석을 참조하라.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ㅇ레위 사람 - 여기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모든 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언약궤
를 메고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중앙 부분에 서서 모세의 말을 전달받아 양편에 갈
라 서 있는 백성들에게 큰소리로 외칠 '레위 제사장'(9절;수 8:33)을 가리킨다
(Delitzsch, Lange, Alexander, Wycliffe)
ㅇ큰 소리로...이르기를 - 혹자들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외치는 사람의 목
소리가 양편 산 중턱에 운집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들릴 수 있었겠는가라는
점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에 의한 정밀 조사 결과 양쪽 산의 음
향 효과가 매우 훌륭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또 여러 차례의 실험 결과 여러 사람이
외칠경우 충분히 들려진다는 사실도 입증되었다(Stanley, Syria & Palestine;
Tristram, Land of Israel ;Hastings, Bonar, E.G. Kraeling).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찌니라

ㅇ장색 - 각양 물건을 정교하게 만드는 기술자(craftsman)를 가리킨다. 당시 이들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일로 많은 이익을 보곤 하였다(행 19:24).
ㅇ가증하니 - 23:18 주석 참조.
ㅇ은밀히 세우는 자 - 십계명 중 제 2계명(5:8-10;출 20:4-6)을 은밀히 범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은밀히'에 해당하는 원어 '바사테르'는 '은밀
한 장소에'(KJV, in a secret place)로도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은밀한
장소'로 꼽을 만한 곳은 어디이겠는가? 물론 눈에 잘 안 띄는 골방이나 비밀 장소를
들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곳으로는 역시 사람의 마음 속을 꼽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큰 비중으로 자기 마음 속에 은밀
하게 품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 숭배이다.
ㅇ모든 백성은...아멘 할지니라 - '아멘'(amen)이란 말은 본래 '확실하다', '신실하
다'는 뜻의 '아만'에서 유래한 단어로 문장이나 대화의 끝에서 사용될 때
'과연 그렇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장 11-26절 강해, '아멘 연구'를 참조하라.

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경홀히 여기는(칼라) - 원뜻은 '가볍다'로, 곧 상대방을 업신여기거나
비천히 여기는 것(잠 12:9), 절하(切下) 평가하거나 모독을 주는 것(사 16:14), 그리
고 지독히 경멸하는 것 따위를 가리킨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부모
를 이처럼 업신여기는 것은 곧 자신의 근본(根本)을 망각한 행동일 뿐 아니라, 급기야
는 부모를 통해 그 생명을 부여하신 하나님을 경홀히 하는 짓거리이다(21:18). 그러므
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
고 권면하였다. 출 20:12 주석 참조.
ㅇ저주를 받을 것이라(아루르) - 기본형은 '아라르'로 '버림을 받다'란 뜻이다. 즉 이
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한다면, 버림을 받는 쪽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임을 잘 증거해 준다(Calvin).

17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 '여기서 지계표'(地界標;KJV,landmark;NIV,
boundary stone)란 땅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돌이나 푯말을뜻한다(창 31:51,
52). 따라서 이러한 지계표를 마음대로 옮기거나 없애 버리는 것은 타인의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 행위이다. 한편 성경 뿐 아니라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도 지계표를
침해하는 행위를 큰범법 행위로  규정하고  매우 엄격하게 다스렸다.19:14 주석 참조.

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 고대 근동에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과
풍토(風土)로 인하여 의외로 소경이 많았다. 즉 고온 건조한 기후와 쉴 새 없이 이
는 먼지, 그리고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 및 가난으로 인한 영양 실조 등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실명(失明)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 이러한 소경을 일부러 괴롭
히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따라서 본절이 의미하려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단정
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역본 Living Bible은 본절을 '소경을 이용하여 그 이(利)를
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Cursed is he who takes advantage of a blind man)
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이웃을 하나님의 계명의 길에
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영적으로 해석하였다. 아뭏든
이는 보다 광범위한 의미로, 장애자의 약점을 이용하여 불의한 이(利)를 취하거나 또
는 그들을 괴롭히며 실족케 하는 일 따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는 조항임에는 틀림없다
(레 19:14;롬 15:1). 실로 율법은 그러한 약자들의 약점을 악용하는 죄악에 대해서는
보다 혹독한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  레 19:14 주석 참조.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객이나 고아나 과부 - 가난하며 약한자, 그리고 억눌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
을 대표하는 구약 시대의 3대 약자들이다(14:29;16:11, 14;24:21;26:12, 13).
ㅇ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  여기서  '억울케  하다'에  해당하는 '나타'
는 '비틀다', '굽게 하다', '벗어나게 하다'는 뜻으로, 정당한 판결을 내리
지 아니하고 힘 있는 자를 두호(斗護)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서
는 이미 24:17에서도 엄금했던 바, 실로 하나님께서는 '공법(公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河水)같이' 흘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암5:24)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계모와 구합하는 자 - '구합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브'는 성(性) 관계
를 갖기 위해  '잠자리를 같이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모'에 해당하는 '에쉐트 아
비'는 '아버지의 여자'란 뜻이다. 따라서 비단 이는 계모 뿐 아니
라 아버지의 첩과도 성 행위를 하는 것을 포함한다.
ㅇ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 영역본 RSV는 이를 '아버지의 여자를 벌거벗겼으
니'로, NIV는 '아버지의 침소를 더럽혔으니'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Living Bible은
'그녀는 그의 아버지에게 속하였으니'로 번역하고 있으며, 공동 번역은 '아비의 이불
자락을 들치고'로 의역하고 있다. 아뭏든 이처럼 아버지의 침소, 아버지의 여자를 넘
보는 행위는 인간의 기본 윤리를 저버리는 패역(悖逆)이니, 저주를 면할 길 없다
(22:30). 레 18:8 주석참조.

21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짐승과 교합하는 자 - 동성애, 근친 상관 등과 더불어 변태적인 성 행위 중의 하
나인 수간(獸姦)을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수간자(獸姦者)는 근친 상간자 및 남색자
(男色者)와 더불어 땅을 더럽히는 추악한 성범죄자로서 아스라엘 사회에서 반드시 제
거되어야 했다(출 22:19;레 20:15, 16). 성경은 결코 생리적인 성적 욕망이나 충동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性)의 창조자로서 하나님께서는 성을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기쁨으로 간주하셨다(잠 5:18;전 9:9;요 3:29). 이것은 창조시 아담의 독
처(獨處)를 좋게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한 여자 하와를 창조하여 준 사실(창
2:18, 22)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바로 이 남녀 창조 사건에서도 분명히 예시
되었듯이 남녀간의 성적 욕망은 일부 일처의 신성한 결혼 제도에 의해서만 충족되어야
한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요 비밀이었다. 여기서 '비밀'이라고 한 것은
훗날 사도 바울이 설파했듯이 신랑과 신부의 한몸 되는 결합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순결한 일체성'을 상징하고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22:13-30;엡 5:31, 32).
따라서 하나님의 신성한 창조 질서가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오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 일부 일처의 결혼 제도를 떠난 모든 성(性) 남용은, 더
욱이 수간, 근친 상간, 동성애(同性愛) 등 타락한 인간의 어그러진 심성(心性)에
기인하고 있는(롬 1:26, 27) 모든 변태적(變態的)인 성행위는 단순한 도덕적 범죄의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죄에까지 이르는 추악한 성범죄 행위인 것이
다. 특히 고대 이방의 문란하고 타락한 제사 의식이나 설화 등에 밀접히 관련되어 있
는 수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엄한 인간의 가치를 하등 동물의 수준으
로 격하시키는 극악한 소행이므로 거룩한 공동체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결단코 용납될
수 없었다.  따라서 성경은 일관성 있게 이러한 모든 성범죄를 보다 엄격히, 그리고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는 성(性)의 타락으로 인해 마침내 하나님
의 심판을 초래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가나안 족속의 멸절 그리고 로마의 패망 등
을 거울삼아 성(性)개방 풍조로 인해 성(性)을 가볍게 취급하거나 심지어 상품화시키
는 타락한 세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빛된 자녀답게 고결하고 아름다운 성(性) 윤리관
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레 18:23;20:15, 16 주석 참조).

22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3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자매...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 누이는 항렬상 자기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이다.
따라서 그러한 누이를 범하는 것은 우생학적(優生學的) 폐단은 차치하고라도, 곧 자기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는 짓이나 마찬가지 행위이므로 저주를 면할 길 없다. 레 18:9
주석 참조.
ㅇ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 성경은 자신의 장모와 성 관계를 갖는  파렴치한에
대하여서는 그들 모두를 반드시 화형(火刑)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레
18:17;20:14 주석 참조.

24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 과실치사(過失致死)가 아닌 한, 그 어떠한 살인 행
위도 하나님  앞에서  결코 정당시킬 수 없다. 특히 암살(暗殺) 행위는 더욱 그러한
데,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상대방이 미처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기습하는 도
발 행위이기 때문이다. 죄를 은폐하려는 의도하에서 저지르는 계획적 살인 행위이
기 때문이다. 출 20:13;민 35:16-21 주석 참조.

25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 살인의 대가로 뇌물을 받는 행위는
곧 인간의 값어치를 추잡한 뇌물보다도 낮게 취급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비록 사람
의 눈을 피해 그같은 죄를 자행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하나님의 공의의 눈은 피
할 수 없기에 저주를 면할 길 없다. 출 23:7, 8 주석 참조.

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ㅇ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

사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란 아무도 없다(롬 3:10).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출애굽의 영웅 모세도, 그리고 성군(聖君) 다윗도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던 죄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짐짓 범죄치 아니하려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율법을 지키려 노력하는 것이라 하겠다<창 6:9>.

ㅇ아멘(Amen) -

이 말의 어원(語源)인 '아만'은 본래 어떤 대상을 '지지하다' 혹은 '신임하다'란 뜻이었다.
여기서부터 이 말은 기도나 찬양 및 선언이 종결되어지는 종지부나 끝맺음에서 '진실로 그렇습니다' 또는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
'라는 동의나 소원의 뜻을 가진 '아멘'으로 발전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 '아멘'이란 말은 단순한 종결(終結)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곧 어떤 선포나 찬양 그리고 기도 등을 지지하거나 확인 또는 시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나의 삶 속에 적용시키겠다는 결단의 의지(意志)까지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한편 신약 시대에 '아멘'이란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강조 용법('진실로 진실로'란 말은 헬라어로 '아멘 아멘'이다)으로 자주 사용되었고, 바울 사도에 의해서는 축복과 찬양(Doxology)의 결미어(結尾語)로 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계시록 서신에서 이 말을 인격화시켜 존재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다(계 3:14).
이 모든 배경하에서 '아멘'을 복창(復唱)하던 일은 유대인들의 습관이 되어 왔으며, 또한 그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기독교 공동체에 전달되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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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보내시면서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를 묻자,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문이다.
기도드리는 사람들의 눈을 고치어 하나님의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주기도문은 하늘에 속한 사항 3가지(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아버지의 뜻)와 땅에 속한 사항 3가지(일용할 양식, 죄의 용서, 악에서 보호)를 합하여 6가지를 담고 있다.

인간 삶에 관한 대부분을 포괄하는 것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직면하는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새롭게 보게 해준다. 즉, 신이 행한다는 신위(神爲)의 차원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순종과 청종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사무엘상 15:22절)

 

기독교란 ?

기독교(Christianity)는 로마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와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그리고 개신교회(Protestantism)의 3교회를 합하여 일컫는다.

세계의 모든 교회가 함께 추구하는 주제이며, 기독교의 신학으로나 교회 현장에서 공통되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는 ;

첫째 올바른 영성(Spirituality)이다.
둘째 건강한 공동체(Community)이다.
셋째 병들어가는 지구 공동체에 대한 치유(Healing)이다

하나님의 형상

미국의 여류신학자인 Betty Russel은 하나님의 형상을 4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영적인 하나님이다.
둘째 사랑의 하나님이다.
셋째 창조적인 하나님이다.
넷째 공동체로 계시는 하나님이다.

온주 상권(溫州 商權)과 기독교

중국은 기독교 인구가 줄잡아 5% 미만이다.
온주는 15%에 이르고 있다.
그 유명한 문화혁명(文化革命) 시절에도 교회에서의 예배를 중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의 젊은 크리스천들의 모임을 접하면서 중국 기독교의 밝은 미래를 보는 듯 했다.
생각해 볼 점은 중국교회 지도자들이 한국교회를 벤치마킹하려는 마음이 절실하다는 점이다.

감사와 기도

제일동포 3세인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春山茂雄)박사가 “뇌내혁명(腦內革命)”(3권)을 출간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됬다.
조선에서 한의원을 했던 할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침술, 지압술 등을 배웠고, 8세에 이미 일본정부로터 침술사의 자격증을 받았다. 동경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의사가 되었고, 한의학과 양의학을 융합하여 치료와 건강지도에 활용하였다.

“뇌분비 호르몬이 당신의 인생을 바꾼다”는 부제(副題)가 붙어있다.

원래 사람은 자신의 체내에 모든 질환에 대한 방어 기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잘못된 생활습관과 삶의 방식으로 인해 걸리지 않아야 할 질병에 걸린다.

하루야마 시게오 박사는 자신의 병원에서 ‘음식, 운동, 기도’의 3가지 방법으로 각종 질병을 치료한다.

화를 내거나 누군가를 미워할 때 뇌 속에서 아드레날린(Adrenalin) 혹은 노르아드레날린(Noradrenalin)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강한 독소를 지니고 있어 사람을 병들게 하고 늙게 한다.

그러나, 감사하거나 기뻐할 때 그리고 기도와 명상에 깊이 빠져들 때 엔돌핀(Endorphin) 이나 베타엔돌핀(β-Endorphin) 호르몬이 분비되어 병을 낫게 하고 젊어지게 하며 행복감을 누리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감사하는 생활습관과 기도·명상에 젖어드는 영성의 삶에 통해 건강과 장수 그리고 행복과 행운을 동시에 붙잡을 수 있게 된다.

가난 (Poverty)이란?

I realize, of course, that it's no shame to shame to be poor.

But it's no (great) honor, either.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대한) 명예도 역시 아니다.

Luxury Shame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때를 만나게 되니 사람들의 의식이 다소 변해간다.
그동안 일부 지각없는 인사들이 부(富)를 뽐내기 위해, 또는 빈자(貧者)의 삶을 한탄하며 허파에 바람만 잔뜩 집어넣은 허영의 속물(俗物)들이 고가의 명품을 사서 온 몸에 휘감고 다녔다.
주체할 수 없는 부(富)를 가진 Super Rich 계층에서 고가의 명품을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바람직한 인사들이 생겨났다. 이때 느끼는 부끄러움을 Luxury Shame이라 한다. 신조어(新造語)다.
시대가 바뀌면서 인간 의식의 전환의 때가 왔나보다.

인생은 B to D

B는 Birth(태어남)이고, D는 Death(죽음)이다.
즉 인생은 태어났다가 죽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 B와 D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C가 있다.
C는 무엇인가?
바로 Choice(선택)이다.
즉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선택하는 대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시다.
모든 일들이 그분의 선택의 역사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선택하시고지극히 사랑하시어서 천국으로 이끄신다.

B는 주님의 창조의 역사이고, D는 주님이 선택하신 백성들이 가는 목적지이다.
즉 영생(永生)의 삶을 사는 부활의 현장이요, 승리의 종착역인 것이다.

C는 주님의 선택이다.
주님은 범죄 하면서 사는 우리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고, 부활하는 역사(役事)를 통해 우리 인류 전체의 죄를 값없이 용서해 주셨다.

우리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위대한 선택을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인간을 천국의 영생의 삶으로 이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자에 의한 리빙스턴의 부상 - 토마스 벤느 作)

(주님께서 동행하는 자도 시련과 고난을 당하지만, 능히 극복해 낸다)

 

우리 죄 많은 인간에 대한 그분의 지극한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이를 거부하고 헛된 우상을 만들고 이생의 자랑과 교만에 취해 스스로 드러내려고 애쓰면서 살아간다.


주님께서 이미 행하신 위대한 사랑의 선택을 망각하거나 거부하면, 살아있어도 죽은 자가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