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석 선교사 간증 이야기

김요석 선교사

김요석 선교사는 독일 튀빙겐 대학에서 신학을 마치고 전라도 영암군에 있는 나환자 정착촌의 영호교회를 10여년간 담임하시다가
현재는 중국 오지에서 나환자들과 함께 기거하며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이 자료는 선교사님이 미국 한인교회 방문 때에 전한 메세지로 극동방송국 에서 편집 방송한 내용입니다.


(간증 내용)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그 때 유명한 신약학 교수가 강당에서 학생이 하도 많이 오니까 - 유명하니까 학생이 많이 와서 - 갑자기 딱 스톱 하더니 하는 말이 - 그 때, 마가복음 강의를 했는데 갑자기 성경을 번쩍 들어요.


"여러분들 혹시 이 성경을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 있습니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한 1,500명 - 대학원학생들, 학부학생들, 또 다른 과에서 들으러 온 학생들이 많이 있었는 데 아무도 손 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졸업반 학생도 있었고 또 목사고시에 합격한 그런 박사과정의 학생도 있었는데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구석에 있다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날 이렇게 보더니만아마 독일사람 같지않게 생겼던 모양이지요. 하는 말이 "당신 어디서 왔소?" 하고 물었습니다.

" 한국서 왔습니다" 이야기를 하니까,

그 분이 하는 말이 "한국은 아직도 샤머니즘과 원시종교에 젖어 있어서 이걸 무조건 믿는 모양인데, 당신이 여기서 신학을 잘 배워보면은 아마 믿을건 없다는 것을 알게 될거라고" 그러면서 딱 하는 말이


"여러분들 이 성경은 껍데기 두 장만 - 가죽으로 된거 앞뒷장 두 개, 이 두 장외에는 믿을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용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은 학생들은 조용했습니다.


그 강의를 마치고 나서 제 옆방에 사는 학생에게 물어 봤습니다.

"내가 혹시 독일어를 잘못 알아들어서 그런지 모르니까,

네가 한번 더 소개해 달라. 그 교수가 그렇게 물었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나 ? " 했더니, 이 친구가 대답도 안하고

가만히 나를 측은한 듯이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

"자네 진짜 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가?" 물어요.

그래서 제가 "너는 안 믿나?" 하고 대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 하는 말이 "안 믿는다고"

"그럼 왜 자네는 신학해서 목사 될려고 하는가?"

"아- 직업이 좋지 않는가, 좋은 직업이니까 한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 자라면서 
'목사하고 신학할려면 사명감 있어야 된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야 된다'

그렇게 들어왔는데, 갑자기 직업 이야기를 하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무슨 직업이 좋길래?" 하고 물어봤습니다.

독일에는 신학교가 여기처럼 교단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 속에

중심 학부로 서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학생들이 제일 우수한 학생들

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신학부에서 공부를 못하면 의학부나 법학부로 내려가는 
- 그래서 상당히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문적으로 높은데 가슴은 아주 차갑지요.

그리고 목사님도 국가 공무원이니까 
- 아주 고급 공무원이니까 또 상당히 지적 수준이 높고 - 
이렇게 되니까 아주 제일 똑똑한 사람이 오지만 신앙과 신학은 
별개로 공부하는겁니다.


그 때가 6~70년 후반이니까 사회주의 신학이라는거 - 
막스주의 신학이라는거 이야기할 땐데,

한 번은 그 교수가 강의를 하면서

"칼 막스야 말로 사도바울에 버금하는 대 선교사다"

그렇게 공언할 정도로 그런 판도가 날 그 때였습니다.

그 때 제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 신학을 공부한 것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워서 
좋은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서 하는건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뭘 
전해야 되겠는가, 사람의 생각을 전해야 되겠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세미나에서 그 분과 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당신이 자꾸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증거를 대봐라. 
하나님의 존재가 확실하다는 증거를 대라.

하나님의 존재가 실존적이라는 증거를 대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대야 되는 겁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 "당신이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과 한번 대면한 적이 
있을것 아닌가? 하나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던가?

흑인 이든가, 백인 이든가 아니면 당신같은 황인종 이든가?

그 다음, 당신이 하나님 만났다면 악수라도 한번 했을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손이 차든가 덥든가?"

제가 그 질문에 아무 대답을 못했습니다. 아무 말 못했어요.

그 보라구.

그러니까 당신 아직 모르면서 괜히 고집으로 믿는다는거요.

고집으로....

그러면서 제가 우왕좌왕 하다가 공부를 끝마치게 되었습니다.

마치고 나서 제가 한국으로 귀국을 했는데

와서 어느 신학교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들도 많이 오고, 신학교수들도 많이 와서 제 특강을 듣는다고 
앉아 있는데- 전 저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서 발표를 하고 났는데 
갑자기 끝나기 전에  어떤 목사님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하면서

"당신은 자유주의 신학자가 아니냐, 신신학자가 아니냐?"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복음주의자고 보수주의자라고 비난받다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거꾸로 자유주의다 신신학이다 그러니까

제가 아무 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교수님들이 말려서 제가 챙피는 당하지는 않고, 얻어 맞지는 않고 물러갔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어떤 나이 많은 목사님 한 분이 저한테 와서 하는 말이

"참 당신, 이론이라든가 학문적인 것은 훌륭한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다. 이론하고 체험은 다르니까 한번 체험을 해보면 어떻겠는가?"

제게 그렇게 말씀하세요.

"그럼 뭐 어떻게 체험을 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목회를 한 번 해보라는 거에요.

그래서 1년 예정으로 그 목사님이 소개한 어느 교회로

주소를 들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저와 나병 환자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제가 가서 첫 주일날 설교를 할려고 단 위에 올라섰다가 제일 앞에 앉은

사람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말 문이 탁 막혀 버린겁니다.

한 몇 분 간을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그분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코도 없고 입술도 떨어지고 눈알도 빠졌습니다.

그 얼굴에는 구멍만 다섯 개가 뚫린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손가락도 다 잘라져서 팔목만 남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말 못하고 서 있다가 설교를 했는데,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 때 무슨 설교를 했는지 무슨 본문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당황해서

지났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새로 부임한 목사니까 나갈 때 인사나 하자고

광고를 했습니다. 마치고 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그래 잘 되었다'

하고 밖으로 나갈려고 문을 여니까 문 밖에 줄을 죽 서 있어요.

그래서 어쩝니까, "아이구 안녕하십니까" 하고 손을 내미니까...

제일 앞에 앉았던 그 노인이 제가이 쪽에 서 있는데 손을 저 쪽으로

내밀면서 "목사님, 고맙습니다" 하고 팔을 내 밀어요.

뒷 사람이 있다가 그 노인의 팔을 제 쪽으로 향하게 해주는데...

여러분, 악수를 할려면 손이 있어야 되잖아요.

손가락이 있어야 손을 잡잖아요.

악수를 할려고 손을 보니까 손가락이 다 잘리고 팔목만 있는데...

이걸 어디다 잡아야 할지... 여길 잡을까... 저길 잡을까...

하고 망설이는데, 그 짤라진 손목에 노오란 고름 덩어리들이 동실동실

맺혀 있어요.

잡으면 꼭 터질것 같은데... 아이고, 모르겠다 하고 쥐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두 번째 사람의 손을 잡게 되었는데 할머니였습니다.

손을 보니까 반이 잘라졌어요. 손바닥만 반이 남았는데..

제가 그 손을 잡으니까, 갑자기 그 할머니가 왼손을 제 손 위에

떡 올려놓아요.

보니까 손가락이 떨어진 사이로 노랗게 고름이 맺혀 있는데

그걸 가지고 제 손등을 자꾸 비벼대는 겁니다. 꼭 터질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고! 할머니 왜 이러시냐고 하며 손을 뺄려고 그랬는데

그 때, 그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가 18살 때 이 병이 
들어서 지금 나이가 78입니다.

만 60년간 이 병으로 있다가 한 번도 성한 사람 손 못잡아 봤는데

오늘 목사님 손 잡아보라니까 너무 좋아서 제가 그럽니다."

그 때, 갑자기 제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이 손이 우리 예수님 손이 아니겠는가...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더러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시고

그 고초 받으신 손!

어쩌면 손가락도 부러졌고 거기서 헌데도 났고 상처난,

그래서 고름도 생긴 그런 비참한 손이었을거다.

내가 예수님 손 잡는데 뭘 이렇게 겁을 내는가!

그 때, 갑자기 독일에서 그 교수가 하던 말....

"자꾸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그러는데 그러면 네가 손 잡아봤냐,

하나님 얼굴 봤냐?"

그 말이 떠올라서 바로, 이것이 해답이구나

'아 이제야 내가 떳떳하게 우리 주님 손 잡았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10여 년간을 공부하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하나님을

오히려 그 분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할머니 한테 물었습니다.

"할머니, 참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또,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어떻게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사람은 시집가서 손주 볼 
나이에 할머니는 평생 이 고생하며 소외되어 사는데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 때 그분이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목사님, 나는 이 문둥병 걸린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 병 걸렸기에 예수 믿고 천국가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적이 뭔지 압니까?

어떤 분은 위암 걸렸다가, 무슨 병에 걸렸다가 기도해서 나으니까

무슨 이적 체험했다 그럽니다 만은 그보다 더 큰 이적,

이적 중에 최고의 이적은 병들지 않고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겁니다.

병들지 않고 기도하는 겁니다. 
병들지 않고 예수 믿고 예배 드리는 겁니다.

여러분, 그것을 아셔야 됩니다.

우리 건강한 사람들은 받을 축복 다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어떤 할머니가 밭을 메다가 일곱번째 손가락이 잘라졌어요.

자기도 모르게 툭 떨어진겁니다.

그거 들고는 "목사님!" 하고 불러요. 난리가 난듯이...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제가 일곱째 손가락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했더니 하는 말이

"아 - 그래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직 세 개가 남았습니다.

이 세 손가락 가지고 청소도 하고 목사님 밥 할 때도 쓸 수가 있습니다"

열 손가락 중에 일곱이 썩어지고 세 손가락만 남아도 그렇게 감사하고

기뻐하는데...

여러분, 열 손가락 가지고 사는거 감사해봤습니까?

발가락 열 개 다 갖춘것 감사해봤습니까?

발가락 하나만 떨어져 있어도 걷지 못합니다.

균형이 안잡혀서 그냥 쓰러집니다.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겁니다.

이 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그 병이 드니까 온 집안 식구가 난리가 났더래요.

아예 골방에 가둬놓고는 나오지를 못하게 하더랍니다.

6남매 있는데 제일 큰 누나가 그 병에 걸리니까 다들 어디가서 
죽었으면 하는 눈치더랍니다.

여러분, 참 이상하잖아요. 다른 병 걸리면 온 식구가 기도하면서

병원에 입원도 시키고 하는데 왜 그 병만 걸리면 나 몰라라 하는거에요.

모두다 어디로 없어졌으면 하는 겁니다.

한번은 새벽에 눈을 떴는데 아버지가 나와서 숫돌에 낫을 갈더랍니다.

갑자기 마음에 '아! 오늘 밤에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는구나...'

생각이 들더래요.

그래서 가만히 누워서 보니까 숫돌을 몇 십분을 갈더니 날카로은 낫을 들고자기 방 안으로 아버지가 들어오더랍니다.

그러더니 한참 서 있다가 나가고, 또 들어와서 한참 서있다가 나가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더니 자기 방에 못 들어오고 있다가 그 다음날 밤에

들어와서 하는 말이 사실, 내가 널 죽이고 싶지만은 차마 애비로서 그럴 수는 없고 우리 집안을 위해서 네가 나가서 죽어달라고 그러더랍니다.

너 하나만 죽으면 너 동생들 시집 장가 가는데 지장이 없다고...

아마 옛날에는 그런 병이 있다면 큰일났던 모양이에요.

이 딸이 그 말 듣고 그래야 되겠다고 "제가 나가서 죽겠습니다"

뒤에 못이 있으니까 그 못에 들어가서 죽겠다고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렇게 나와서 죽을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뒤따라 나와서

딸이 에미보다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 하면서

쌀을 두 되 주면서 이것 가지고 산신령한테 가서 기도하라고 그렇게 
해서 나으면 다시 들어오라고 그러면 시집보내 주께....

제발 죽지는 말라고 그러더래요.

어머니 한 분만 살라고 그러지 다른 식구들은 다 죽었으면 하고

바라더랍니다.

어머니가 하도 간곡히 그러니까 쌀 자루를 지고 산으로 올라가다가

연못 가에 이르렀습니다. 갑자기 죽고싶은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쌀 자루 놓고 신발 벗고는 물에 뛰어들려고 하는데 그 어미니가

뒤 따라 왔어요. 뒤에서 허리를 꽉 껴안으며 울면서 그럽니다.

"에미보다 먼저 죽는 딸이 어디 있느냐? 제발, 죽지말아라"

그렇게 하도 울면서 간곡하게 부탁하니까 차마 죽지 못하고 살겠다고

나왔다가 섬으로 끌려갔다가 또, 우리 마을로 와서 살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하는 말이 뭔지 압니까?

"저는 문둥이라도 되었기에 예수님 만나고, 
예수 믿고 천국 가지 않습니까?

정말 불쌍한 것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고 우리 형제입니다.

예수 안 믿고 지옥 갔을걸 생각하니까 너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이런 믿음 보셨습니까?

믿음이란게 뭔지 압니까?

지금 주어진 상태에서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무슨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가난하건 역경에 처해있건 병들어 있건

그 가운데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 기도가 진실로 나올 때

그것이 믿음이요 성령충만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충만인 것입니다.

처음에 거기에 갔더니 사흘이 지났는데 누가 와서 밥을 안해줘요.

밥 먹으라는 말도 없고. 그래서, 이거 이상하다 목사는 오자마자

한 며칠 굶어야 되는가 보다하고 그냥 있었더니 나흘째 되는 날 ,

한 사람이 와서 부엌을 보더니 아무것도 안해 먹은게 보였던 
모양이에요.

"목사님, 왜 밥 안해 먹습니까?" 그래요.

"글쎄, 내가 쌀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서 못해 먹는다고.....

책가방만 하나 들고 내려왔는데 ....."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아이고, 우리보다 더 가난하네.."

그러더니 쌀을 얼마 걷어오더니 한끼를 해 줘요.

그렇게 사는데 바로 제 사택 옆에는 돼지 막을 쳐놨습니다.

겨울되면 뭐라는지 아십니까?

"목사님, 이 돼지가 얼어 죽을테니까 한 두 마리만 안고 자시요" 
그럽니다.

돼지를 안고 자면 돼지가 오줌싸고 똥싸고 하지요.

이것 참 기가 막히는거에요.

야, 굶더라도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 되겠다 생각해서..

마침 그 때 영농자금을 융자해 주길래 타다가 집부터 지어버렸어요.

집을 근사하게 지어놨는데 그게 전부 빚덩어리가 된 거라.

축사도 만들고 돼지도 넣고 그랬는데 돼지 파동이 80년 초에 일어나서

완전히 돼지 값이 없어지니까 꼼짝 못하게 된 거에요. 굶게 된 거에요.

그래서 주는대로 먹어야지 하고 있었어요.

그 때 헌금도 한 주일에 5~600원 밖에 안나오니까 전구 깨어지면

그거 하나 사서 갈면은 남는게 없어요.

성미라고 걷어서 가만 보니까 저녁 끼니를 못 먹는 사람이 있어요.

목사가 그것을 알고 나혼자 밥 해 먹을 수 없으니까 
도로 갖다 줬습니다.

이거 밥 해 먹으라고.

그 때 제가 깨달았어요.

아! 교회 공동체에서는 제일 가난한 사람은 목사가 되어야 하는구나

두 끼 먹는 사람이 있다면 목사는 한 끼 먹어야 족하고...

한 끼 먹는 사람이 있다면 목사는 굶어 죽어야 되겠다...

내가 굶어 죽으면 하나님께서 배불리 먹여 주시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생활하면서 1 년쯤 지났는데 부활절 날인가...

성미가 많이 걷혔어요. 또, 다들 보니까 끼니는 있어요.

내일은 내가 한 번 세 끼를 해 먹어야 겠다.

딱 한 번만 세 끼 해먹어야 되겠다 생각해서 새벽기도 마치고

쌀을 한 홉씩되고 있는데 갑자기 왠 사람이 찾아왔어요.

문을 여니까 모르는 남자가 서 있습니다.

누구시냐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깐 우리 교회에서 30리 떨어진

다른 면에 사는 교회 목사님이에요. 어떻게 오셨냐 했더니

목사님 제가 미안한 부탁 드리러 왔다 그래요.

무슨 부탁이냐고, 하시라고 그랬더니

"쌀 좀 얻을까 하고 왔습니다" 그래요.

그 때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 갑자기 웬 쌀을 이렇게 몇 되씩 주나 했더니

이건 날 먹으라는게 아니고 누구 줄 사람있으니까 잠시 맡으라는 거구나

생각해서 이유나 물어보고 뺏겨야 되겠다 싶어 왜 그럽니까? 하고

물었지요.

그분이 애가 셋이에요. 사모님 하고 다섯 식구 사는데 그 마을에서 한 달에 사비를 2만원씩 받기로 하고 왔답니다. 제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야, 그거 많이 받네, 그런데 뭐하러 얻으러 왔나' 했더니 하는 말이

이 곳에 온지 1년쯤 되었는데 한 석달째 사비가 교회서 나오지를 못하고

할 수 없이 사모님이 하루에 일당 2,500 원씩 받고 받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허리를 다쳐서 며칠 일하러 못나가니까 혼자라면 굶겠는데

조그만 애들이 자꾸 배고프다고 그래서 오늘 새벽기도 마치고 기도하면서 무작정 걷다가 제일 먼저 만나는 교회 들어가서 그 교회 목사님 한테

쌀 꾸어 오겠다고 기도하고 왔다는 거에요.

응답 받고 온 사람인데 쌀을 안 줄 수가 없는거지요.

그래서 그 응답 잘 받고 왔수다. 하나님께서 그 응답 주실려고 어제 주일날 쌀을 많이 모아 주신 모양이라 그러면서 당신은 다섯 식구고 나는 혼자니까 당신 거라고 그러면서 쌀을 줬습니다.

가는데 보니까 그 목사님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어요.

다리를 왜 저느냐 했더니, 그 분이 군대 있던 사람인데 지뢰를 밟아서

다리가 잘려서 의족을 했어요.

그 때 마침 어떤 분이 제게 자전거를 하나 보내 왔어요.

새 자전거라 비닐도 아직 안 뜯은건데.

딱 한 번 타보고는 아까워서 천천히 타야되겠다고 놔둔건데.

그 30리씩 절뚝거리면서 걸어갈걸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되어서 속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저 분이 자전거 탈줄 안다 그러면 주고 안 그러면 안 주고 그래야 겠다'

하고 물어봤더니 탈줄 안다고 그래요.

그럼 뭐 할 수 없다고 가져가라고...

속으로 그랬지요.

다리 절뚝 거리면서 자전거타는거 보다는 다리 절뚝 거리지 않고

걸어다니는게 더 복이 아니겠는가 하고...

"목사님, 또 필요하면 오십시오. 제가 맡았다가 주겠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몇 달 있다가 두 번 더 왔어요.

그 때마다 묘하게 쌀이 생기고 분식이 생겨서, 그것만 생기면

'아! 손님이 오겠구나'

하고 기다렸습니다.

한 번은 웬 스님이 찾아왔어요.

교회 스님이 머리 빡빡 깍고 장삼을 입고 오니까 그 좀 이상해요.

그래서 어떻게 왔냐고 문을 여니까 그 분이 하는 말이


- 여기 스님같은 목사님이 계셔서 찾아왔다 그래요.

- 예? 하고 물었더니

- 스님같은 목사님 계신다는 거에요.


그 말이 좀 고약합디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들어오라고.

하는 말이

- 예수와 석가모니는 형제 지간인데 석가가 예수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목사님 하고 나 하고 나이 따지지 말고 내가 형님하겠소. 동생하시오.

그럼 그렇게 하자고, 그렇게 하자는데 그럼 뭐라 그럽니까...

그러더니 앉아요. 눈이 부리부리하고 사람이 좀 무습게 생겼어요.

나는 바짝 말라가지고 압도 되었지요.

앉아서 불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니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저는 조용히 듣고 있었지요.

교회 와서 이 사람이 설법을 하는 거지요.

한참 얘기를 듣는데 가만 들어보니까 내가 언제 읽었던

고대 인도 경전에 나오는 말을 이 사람이 인용을 하는거 같은데

조금 내용이 다른거 같애요. 그래서 제가 형님 하나 질문해도 되겠냐고

- 뭐냐고

- 내가 볼 때는 그 인용하신 부분이 인도 경전에 마지막 부분인데

왜 첫번째 부분으로 인용하시는지 혹시 잘못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그 사람 눈이 동그래지며 날 이렇게 보더니

- 아니 목사님도 스님 하셨소?

- 그런게 아니고 좀 읽어봤다고

그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이제 배가 고픈 모양이에요.

아침 8시쯤 온 사람인데 그 때가 오후 3시쯤 되었으니까.. 하는 말이

- 아니 왜 밥 안주냐 그래요 손님 왔는데

- 오늘 혹시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아마 식사가 되면 4시30분 되면 합니다. 그 때 한번 있는데 그 때까지 형님 계시면 제가 드리고 바쁘시다면 그냥 가셔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갈줄 알았더니 하는 말이

- 먹고 가야 되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앉아 있었지요.

그 때 마침 또 손님 오셨다고 그 할머니가 밥을 해서 갖고 왔어요.

조그마한 소반에다가 밥 한 그릇, 김치 하나, 물 한그릇,

숟갈 하나, 젓가락 하나 이렇게 딱 들어오니까 스님이

- 내 밥 어디있소? 그래요.

그래서 제가 숟갈을 들고는 밥 그릇에다 반을 이렇게 그어 놓고

- 위는 형님 잡숫고 아래는 제가 먹겠소. 그러니까

숟갈로 잡숫겠소, 젓가락으로 잡숫겠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밥상을 옆에 놓고

저 한테 큰 절을 하면서

- 형님! 그런다 말이에요.

아니, 동생이 갑자기 형님 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하는 말이

- 아,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그래서 스님 동생이 갑자기 생겨버렸어요.

나는 또 밥상 보고 은혜 받는 사람 처음 봤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얘기 안하는 거에요.

형님 얘기 해주시오. 그래서

그 양반 하고 단 둘이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참 기가막힌 일이 생겼지요. 나는 좀 불편스럽지요.

이 친구 있으니까 밥을 반 그릇 뺏기니까 밥 먹을 때는 갔으면

좋겠는데 기어이 있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 형님! 왜 이렇게 사십니까? 그래요

- 뭐가? 그러니까

자기는 중이래도 고기도 먹고,갈비도 먹고 다 먹는데

왜, 이렇게 먹느냐 말이지요. 거꾸로 된거 같단 말이지요.

- 자네 어떻게 불자가 살생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가?

물었더니 하는 말이

- 나는 해탈을 했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참 해탈도 괜찮은 해탈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6개월을 들락날락 했어요.

어떤 때는 일주일에 매일 오기도 하고 두세 번 오기도 하더니

한번은, 여기 가난한 집에 와서 없는거 자꾸 얻어 먹는게 미안하니까

- 제가 한턱 내겠소.

그러면서 자기 절로 오라고 그래요.

한 30리 떨어졌는데 거기 갈려면 허기가 져서 난 못가겠어요.

그래서 못가겠다고 그랬지요.

그랬더니 자동차를 보내 드릴께 오시라고 그래요.

- 중이 무슨 차가 있냐고?

- 중은 있을건 다 있다고 그래요.

그 다음날 차를 보내와서 타고 갔더니

법당에 200여명 사람들이 꽉 모여 있어요. 꽤 큰 절인데.

그 사람이 가운데 마이크를 잡고 좌정하고 턱 앉았어요.

저 친구가 무슨 말 하려나 하고 뒤에 앉아서 들었더니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딱 첫 서두가 이렇게 나옵니다.

-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극락이 저희 것임이요.

그 주어가 하나 바꼈어요.

그렇지만 극락이나 천국이나 파라다이스는 같거든.

그 다음이 문제요.

-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부처님을 볼 것임이라.

어두가 바껴진거에요. 그것만 바뀌고는 한 시간 내내 강의한게

나하고 성경공부 했던 8복음 얘기를 한 거에요.

그 친구 그랬어요. 8복음 보더니

- 이거 이거 부처님 교훈이라는 거에요.

그러더니 그렇게 써 먹습디다.

그 가난한 속에서도 제가 한 끼 먹으면 이틀 굶고 또 한 끼 먹으면

사흘 굶고 이렇게 살았는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죽이시지는 않습디다.

죽을 일은 없고 한 번 누웠다가 일어날려면 하늘이 새까매져요.

누웠다 일어나기는 힘들어서 앉아서 자야겠다 해서 앉아서 잤는데

앉아서 일어나는 건 쉬운데 누웠다 일어날려니까 아무것도 안보여요.

이거 정말 영양실조 걸려서 끝나는가 보다 하는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천사가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갑자기 그 마을에 군수가 나타났지요, 면장이 나타난 겁니다.

면장도 한번 안오는 마을인데 군수가 나타났으니 난리가 났지요.

그런데 군수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도에서 제일 높은 분이 나타난겁니다. 여러분, 한 도에서 제일 높은 분이 누군지 압니까?

도지사지요, 아니 도지사보다 더 높은 사람. 그 사모님이에요.

아, 그런데 그 도지사 사모님이라는 분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그럴리가 없다고 나는 도지사 이름도 모르는데 날 찾아올리가 없다고.

군수가 밖에서 목사님 나와 보라는 거에요.


그때 제가 꿈틀꿈틀 댔습니다. 한 20분 가량 안나갔어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저 사람이 거창한 사람이기에

하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사실은 제가 양말이 하나 밖에 없었는데

그게 빵꾸가 나서 그걸 깁고 있었어요.


맨발로 나갈 수는 없고 그것 기워서 나갈려니까 군수가 자꾸 나오래요.

할 수 없이 맨발로 검정고무신 신고 나갔습니다.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 천사를 누가 보냈는지 압니까?

여기있는 이 순구 목사님이 보냈어요. 12년 전에.


나는 이 친구 여기(미국) 왔는지도 몰랐는데 10년 만에 처음 만났지요.

미국에 오신지도 몰랐는데 제가 늘 마음으로 빚진 생활을 했습니다.

그 때 정말 영양실조 걸려서 그럴 땐데 
그 분을 만나서 그 분이 저를 자기 공관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갔더니 고기국인거 같애요. 무슨 국인지 몰라도 고기 덩어리가 하나

들어있고 국물이 아주 기름기가 꽉 찬데....그걸 한 숟가락 입에 넣는데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생각했어요.


얼마나 맛있던지 한 사발 먹고 염치 없지만은 또 한 사발 더 먹을 수

있냐고 했더니 또 한 사발 줍디다. 어떻게 맛이 있던지.

두 사발 먹고 나니까 입이 탁 막혀요. 그제서야

우리 식구들 생각난거에요.

야 - 이거 나도 별 수 없구나.

배고프니까 식구(나환자들) 생각없이 혼자 먹었구나.. 해서

아이고, 나 더 이상 못먹겠다고.. 그랬더니 그걸 사모님이 아시고

- 목사님 그럴줄 알고 제가 떡을 두 말 해놨습니다.

갈 때 가져가세요.

내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외출하니까 이 사람들이 어떻게 기다린지 압니까? 몇 시간을 교회 앞에서 뭘 갖고 올까 싶어서 기다린 겁니다.

버스를 대절해 와서 전남도내 귀부인들은 다 대동하고 왔지요.

오자마자, 우리 가서 예배부터 드립시다 하고 다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겁 나서 안들어갈려고 그래요.

그래서 다 들어오라고 그러고 전도집회를 한겁니다.

내가 찾아가서 전도해야 될 판인데 제 발로 들어왔으니깐

모아놓고 두 시간가량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 제 방에 왔습니다.

방이 조그만 해서 다는 못오고 대표만 들어오시라고, 
제가 대접할 건 없고 냉수만 한 그릇씩 드리겠다고 
그렇게 하고 그 분이 갔습니다.

며칠 후에 그 사모님 한테 연락이 왔어요.

자기 공관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거에요. 그래서

- 목사는 밥 먹으로는 못가고 말씀 전하러 밖에는 외출 못합니다. 
했지요. 그러니까 공관에서 예배 드리면 될거 아니냐고 그래요.

그러면 가지요 하고 가서그 공관 생기고 처음으로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큰 회의실인데 전에 우리 교회 찾아온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어요. 70명 가량의 부인들이 왔습디다.

거기 기독교인은 별로 없고 불교 믿는 분들이 많았는데 
예배 마치고 하는 말이

- 목사님 말씀 들으니까 그거 부처님 말씀 만큼 아주 재미있으니까

우리 이런거 자주 모입시다. 그래요.

- 나는 그렇게 못한다고 거기서 나오기도 
힘들고 해서 안된다고 그랬더니

- 그러지 말고 한 달에 한번씩이라도 하자고 그럽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떠날 때까지 
도지사 공관에서 성경공부가 시작된겁니다.

놀라운 역사가 그 때 시작된 거지요.


그런 때에 독일에서 절 지도하신 교수님 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자기가 2년 후에는 은퇴를 하게 된답니다.

자기 후임자를 찾아보니까 김요석목사 당신이 제일 적임자인거 같아

추천을 했는데 허락이 났으니까 금년 말까지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거기 가면은 하루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앉아서 자꾸 저울질 하게 되었어요.

회답 못하고 한 두달 쯤 지났는데 또 편지가 왔어요.

아무래도 한 일년 일찍 와야되겠다. 인수인계 할 것도 있고 그러니까

빨리 오라는 편지가 두 번째 왔습니다.

그 때 제가 해답 안할 수가 없어서 답장을 썼습니다.

- 교수님, 날 그렇게 생각해 주고 위해주는건 좋은데

제가 가만히 기도하면서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내가 이 교회 남아서 시무하는 것하고 
독일에서 교수님 후임자로 교수하는 것하고

어느게 하나님이 더 기뻐하실까 하고 기도하니까

그냥 이 자리에 남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리라

하는 것을 깨닫고 거절하겠습니다.

하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해 봄 신학기 시작될 무렵, 그 교수님이 일본에 모임이 있어서

왔다가 저 한테 찾아왔어요. 자기 생각에 얼마나 좋은 자리에 앉았길래

그 자리도 마다하고 이렇게 뿌리치는가 하고 온거에요.

밤중에 왔다가 그 다음날 새벽에 떠나야 되는데 
- 여섯시에 서울로 올라가서 비행기 타고 독일로 가야 되는데 - 
그때 우리가 새벽 예배를 4시에 드렸는데 교수님이 오신 김에 
우리 교인들한테 설교나 해주고 가시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그렇게 하자고 그래요.

새벽 4시에, 전 통역할려고 옆에 섰고 교수님은 말씀 전하실려고 
강단에 섰는데 몇년 전, 제가 처음 그 교회 부임하고 첫 설교할 때 
맨 앞에 앉았던 얼굴에 눈도 없고 코도 없고 입술도 없이 구멍만 
다섯개가 남은 그 노인이 제일 앞에 딱 앉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이 교수가 보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껌벅 하고는 한 십분간 가만히 서 있어요.

그래서 왜 이러시냐고 쿡쿡 찌르면서 시작하라고 했더니

응, 그러고도 가만히 얼마간 서 있다가 
자기도 정신없이 몇 마디 하고는 내려왔어요. 
새벽예배 마치고 제가 돌아설려는데 갑자기 제 허리를 꽉

끌어안으면서 눈물이 글썽글썽 해 가지고 저 한테 이렇게 말합니다.

- 당신은 내 제자지만, 난 당신을 존경합니다.

여러분, 이 이상 영광이 어디 있습니까?

날 지도한 교수가 날 존경한다 했으니 
그 이상 더 큰 칭찬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는 그 교수님이 떠나갔습니다.

이 양반이 독일 가서 소문을 어떻게 터뜨렸냐 하면


- 아, 저 김요석은 매일 하나님 손 잡고 목회하더라.

이렇게 된거에요.

그리고 한달쯤 뒤에 동기생인 독일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같이 신학을 공부한 친군데 공부를 아주 잘했던 친굽니다.

이 친구가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러 갔는데 오천명 모이는 교회인데

한 일년 반 정도 지났더니 삼백 명 밖에 교인이 남지 않았어요.

그래서 왜그랬는가 하고 나중에서 물었더니

이 친구가 설교를 하면서

- 나는 이 성경을 믿지 않지만 여러분들은 알아서 들으시오

하고 설교를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알아서 안나오게 된거지요.

그러니 이 친구가 고민이 생긴겁니다.

자기는 학문적으로 문법적으로 정확히 논문을 써서 발표를 하는데

그게 안되거든요. 고민을 하다가 내가 이럴거 없이 고증학 교수나 하던가

이 목사직은 그만 둬야겠다고 하던 찰나인데 ..

소문에 자기 동창이 한국에서 매일 하나님 손 잡고 목회한다니까

나 한테 편지를 보내왔어요.

- 내가 들으니까 자네는 매일 하나님 손 잡고 목회 한다던데

나도 만약 가서 하나님 손 한번만 잡을 수 있다든가,

하나님 얼굴만 한번 볼 수 있다면

내가 절대적으로 성경 말씀 믿고 믿는 설교를 좀 할 테니까

나를 자네 부목사로 청빙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부목사가 한 사람 생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답장을 썼지요.

- 야, 그 대우는 담임목사나 부목사나 똑같이 해 주겠다.

내가 먹는 만큼 너도 먹고, 똑 같이 할 테니까 그 외에는

서로 이의 달지 말자. 그러니까 그럴려면 오너라.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 식사 량이 적어서 조금씩 밖에 못 먹으니까

괜찮겠는가.

그 친구가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자기 몸 무게가 110kg 이 넘는답니다. 그러니까 다이어트도 해야되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고 적게 먹으면 좋은 거라고 그러면서 온겁니다.

보니까 보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한 가방은 전부 구두만 있고 한 가방은 전부 양복만 있어요.

구두는 왜 이렇게 많이 가져왔느냐? 1년이면 하나 갖고 충분한데 했더니

뭐 옷에 맞춰서 구두를 신어야 된다나...그러고 들고 온겁니다.

나중에 하나도 못 신고 다 나눠졌지만..

사람들이 부목사 왔다고 환영할거 아닙니까?

오후에 왔으니 사람들 다 모여 있었지요.

그 친구가 사람들을 이렇게 둘러 보더니 하는 말이

- 야 이사람들 좀 이상하다.

- 뭐가?

제가 그러니까, 말은 못하고 우물우물 하다가

- 병신같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독일 격언에 그런 말이 있지 않느냐.

병신 눈엔 병신만 보이고 천사 눈엔 천사만 보인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다신 아무 말도 안해요.

자기도 천사는 되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첫 부임했으니까 이번주 설교해라 했더니 하는 말이

내가 독일서도 설교 못했는데 여기서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그러니까 우선 하나님과 악수를 좀 하게 하든가

하나님 얼굴과 대면하게 해주기 전에는 설교 못한다는 거에요.

그럴려면 우리 성경공부 하자.

새벽기도 전에 2시쯤 일어나서 둘이서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는 히브리어성경, 헬라어성경, 라틴어성경 세 권만 들고 왔어요.

히브리어 성경부터 꺼내더니

- 이거봐 이거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았느냐?

문장 자체가 틀렸다는 거지요.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니까 성경공부가 됩니까

그래서, 아직 안되겠다 때가 안되었으니까 휴강하자고 그랬습니다.

그러고 한 이틀쯤 지나가도 밥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들어오니까

다이어트 하는 것도 좋지만 한 끼도 안먹으니까 죽겠거든요. 그 큰 덩치가..

왜, 밥 안주냐? 그러길래 자네 다이어트 한다고 그래서 한 일주일은 굶고

그 다음부터 조금씩 먹는거라고 그랬더니

자기는 살 안빼도 좋으니까 좀 먹게 해달라는 거에요.

배가 너무 고프다는 거에요.

그러면 새벽 2시쯤 일어나서 밖에 나가면 큰 빵을 하나씩 줄테니까

나눠먹자고 했더니 좋다고 그래요. 새벽 2시만 기다린 거지요.

새벽에 나가니까 마침 별이 하늘에 총총 빛이 나고 있어요.

- 입을 크게 벌려라. 하늘에서 별빵이 내려온다. 들이켜라.

- 너는 매일 저것만 먹느냐?

- 그렇다. 그러면 배가 부르다.

자기는 입을 크게 벌려도 배가 더 고프다는 거에요.

그렇게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몇 달이 지났는데

좀 좋은 일이 생겼는지 어느 날 쌀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이 친구가 하는 말이 한 끼 먹더라도 실컷 먹자고 그래요.

- 야, 매일 조금 먹다가 갑자기 많이 먹으면 탈 나니까 안된다. 그랬더니

- 탈 나는건 둘째치고 배불러 봐야 되겠다는 거에요.

그러더니 밥을 한양푼 이나 많이 해갔고는 거기다 김치 넣어서 비벼 먹는 거에요.

처음에는 김치 못먹겠다고 밥만 먹던 친구가 말입니다.

쫄아진 배에다가 갑자기 많이 들어가고 거기다 김치까지 섞어 먹었으니

배가 이상할거 아닙니까. 급한 설사를 만났지요.

변소를 가는데 급하지요.

그런데, 우리 변소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은 구덩이를 깊이 파고

나무 판대기를 두개 걸쳐 놓았어요. 그래서, 몸무게가 60kg 이내 같으면

별 요동이 없는데 그 이상 되면은 판대기가 흔들흔들 해집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 60kg 이상이 없었으니까 항상 안전했는데

이 친구 110kg 짜리가 들어가니까 흔들흔들 했지요.

전에는 조심스럽게 앉아서 일 보니까 괜찮았는데 이번에는 너무 급하니까

팍 주저앉아 버린거에요. 그러니까 나무 판대기가 뚝 부러진 겁니다.

변소 깊이가 한 4m 되는데 이 친구 키가 아무리 크도 ....

다행히 딱 걸려서 쑥 들어가지는 않고 목까지 꽉 찼어요.

갑자기 변소 안에서 소리가 요란하게 나요.

저 친구 교회에서는 은혜 못받더니 변소 가서 은혜 받았나 왠 저렇게 찬송을

부르나 하고 안가고 있었더니 지나가는 아이들이 보고는 저 한테 뛰어왔어요.

- 목사님, 저기 코 큰 목사가 똥통에 빠졌어요.

가봤더니 턱 걸쳐 있어요. 그런데 110kg 짜리를 제가 어떻게 들어냅니까?

- 조금 기다려라. 사람들 모아서 오겠다고

그러고 한 30분이 지났어요.

그러니 30분 동안을 똥통에서 온 몸이 저려진 거지요.

끌어내서 샘물 퍼가지고 씻어내는데

서양 사람들은 몸에 털이 많아서 노란 액체들이 붙어서 잘 안떨어져요.

빨래비누로 해도 냄새는 그대로 나는 거지요.

- 야, 안되겠다. 했더니

자기가 좋은 수가있다고 그래요. 들어가더니 향수를 가져왔어요.

그걸 막 뿌려대는데 그 냄새에다 향수 뿌리니까 더 안되겠어요.

새벽 예배 때 이 친구 나가니까 냄새 난다고 교인들이 다 도망가는 거에요.

- 자, 봐라. 이 교회 안에서 병신이 누구냐.

제일 더러운 냄새는 네가 피우고 있지 않느냐.

그 다음날 밤이 되었는데 그 친구가

- 아이고 성령불이 내 몸에 내렸는가 보다 그래요.

몸이 뜨겁고 이상하다고 그래요. 방도 찬데.

- 야 그럴리가 있냐, 어떻게 성령불이 네 몸에만 임하냐 나는 괜찮은데...

옷을 벗겨 보니까 몸에 뭐가 두들두들 났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똥독이라는 거에요.

이 사람, 자기는 성령불인줄 알고 있다가 아무래도 그거는 아닌거 같다고..

몸이 괴로우니까 갑자기 머리를 내밀면서 안수기도를 해달라는 거에요.

그 마을에서 아이들이 아프면 약도 없고 병원도 없으니까 사탕을 하나

입에 넣어주고 기도해 줍니다. 그러면 열도 내리고 그랬어요.

그래서 기도하면 다 된다고 그랬더니 이 친구가 그 동안 뭐라 그랬는지 압니까?

- 야, 미신적인 짓 하지 말라고, 병이 났으면 약을 먹여야지, 사탕 먹여서

되느냐? 병원에 데리고 가야지 그러면되느냐?

하면서 늘 비방하던 친군데 자기가 급하니까 기도해 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 이 사람아!

병 낫는 거는 자기 믿음으로 낫는 거야. 예수님께서도 자기가 고쳤다고

말씀 안하셨어. "네 믿음이 너를 구했으니" 하셨지 않느냐. 그러니

너 믿음 없으면 안된다.

- 야, 다음에 믿으면 되지 않겠냐, 앞으로 믿을 테니까 기도 해달라.

- 그래도 안되겠다구.

그렇게 똥통에 빠지고 나더니 이 친구가 사람이 달라졌어요.

그런데도 뭔가 확실치는 않아요.

하나님 말씀 믿어야 되겠네 하면서도 딱 걸리는게 성령입니다.

성령은 없다는 거에요. 하나님 o.k , 예수 그리스도도 좋은데.

성령은 좀 곤란하다는 거지요.

- 그래, 그럼 할 수 없지 뭐. 못 믿겠다는거.

그리고 얼마 지나서 이 사람과 월출산에 산책을 갔습니다.

몇 시간 걸어가면 되니까.

그 날도 같이 가는데 이웃 마을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어요.

그걸 보고 이 친구가 꾀가 났어요.

내 저거 타고 먼저 가 있을테니까 넌 천천히 오너라 그래요.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나라 민요에 정든님 버리고 가면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그랬으니까

그냥 나랑 같이가자 그랬더니 괜찮다면서 타고 갔어요.

제가 두 시간쯤 뒤에 도착했더니 냇가가 있는데 오토바이가 다리 옆에

넘어져 있고 운전하던 사람은 넘어져서 이마가 찢어져서 일어나고 있고

이 사람이 보이지 않아요. 고함을 지르면서 이름을 불렀더니

다행히 다리 밑 물 속에 떨어졌어요.

마침 물이 있어서 다치지는 않고 옷만 버리고 미안한 듯이 일어나요.

- 괜찮아? 목 안 부러졌어. 다리 안 부러졌어.

- 괜찮다.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몇 미터 높이에서 뚝 떨어졌으니 굉장한 타박상을

입은 거에요. 밤에 자는데 얼마나 아픕니까.

그게 표시 없이아프거든요. 실컷 얻어 맞은 것처럼.

- 야, 나 진짜 믿을테니까. 기도 해달라. 아파 죽겠다.

- 야, 믿음 없이는 안된다.

마침, 우리 마을에 타박상에 먹는 좋은 민속 약이 하나 있는데

그거 먹을려면 먹으라. 그런데 냄새가 좀 고약하다.

여러분, 그게 뭔지 아십니까? "똥물" 입니다.

변소를 만들 때 구덩이를 깊이 파고는 삼베로 덮은 항아리를 변소 깊숙히

내려 놓습니다. 그러면 몇 년 동안 쌓이면 덩어리는 안들어가고 노오란

엑기스만 빨려들어갑니다. 그게 가득 찰 때 쯤 되면 끌어내서는

사이다 병에다 나눠 담아요. 그걸 집집마다 매달아 놓았다가 급할 때

사용하는데 그걸 누가 두 병을 가지고 온게 있었어요.

이거라고 주니까.

당장 뜯더니 한 병을 꿀꺽꿀꺽 마셔요.

다 먹더니 이 친구는 또 장이 긴지. 한 병 더 먹어야 되겠답니다.

그래서 두 병을 마시고 나니, 그게 얼마나 독합니까?

이 사람이 쓰러져서 곯아 떨어져 자는 거에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몇 시간을 자더니.

일어나서는 깨끗하다는 거에요. 안 아프다는 거에요.

그럼 됐다고. 그런데 그 냄새는 고약합디다.

입만 벌리면 그 친구 입에서 냄새가 나요.

나중에 이 친구가 독일돌아가서 목회를 하는데 자기 교회 대학생

하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답니다.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아무리 주사를 놓아도 낫지 않더래요.

그래서 나한테 편지하기를 그 약좀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허허~ 아주 특별 약을 수출까지 할 뻔 했습니다.

자, 똥통에 빠져도 이 사람이 안되요.

똥물 까지 먹고 속까지 다 씻어내고 나니까 사람이 달라집디다.

여러분, 똥통에 빠진 걸로 끝내야지.

똥물 까지 뱃속에다 채웠다가 끌어내서야 되겠어요.

이 친구가 그러고 나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도 인정하게 되고 사람이 확 달라졌습니다.

설교를 하는데 근본이 달라진 겁니다.

성경을 공부하는데 야! 이 구절, 이런 구절이 언제 있었지?

아, 이거 처음 보는데.... 모든 것이 새로와 지는 겁니다.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어요.

그러고 있는 그 때입니다.

그 때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 하면은 애들 유치원 딴데 못가니까

유치원도 지어야하고 중고등학생들도 불어나니까 교육관 같이 집을 짓고

싶은데 돈이 없는 겁니다.

저는 집 짓는 일 그만하자.

그냥 있는대로 하고 안되면 땅 바닥에서 하지 못 짓겠다 하니까.

전체 공동회의로 모여서 그럽니다.

- 아니 목사님, 지난 주에 설교 했지 않습니까?

모세가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메추리 고기가 내려왔는데

우리는 하나님 보고 기도할 때 만나나 메추리 고기 말고

시멘트 하고 벽돌, 철근 좀 내려달라 그러고 지으면 안되겠습니까?

그래 기도하면 되겠다. 그러면 기도하라 했더니 철야기도 합니다.

- 하나님, 철근 내려주시오. 벽돌 내려주시오.

하고 기도 끝나면 하늘 쳐다보고 갑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아무 것도 안 내려오거든요.

어느 날, 할머니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손수건에 뭘 꼼지꼼지 묶어서 가져왔는데 뭐냐고 뜯어 보니까

돈이 삼만 팔천원 들었어요. 아이고, 이 큰 돈이 왠 일이냐 했더니

사실은 제가 죽을 때 쓸 관 값입니다 그래요.

그 사람들은 죽을 때 관에다 묻혀 죽는 걸 괜찮은 걸로 압니다.

그래서 꼭 그 관 값을 일생동안 모아 뒀다가 죽을 때 유언하면서

관 하나 사서 넣어주시오. 그럽니다.

관 살려면 몇 년 더 모아야 겠지만 이걸로 우리 짓는데 보태 씁시다 하고

내어놓은 거에요.

제가 할머니 죽을 때 관은 누가 해주고 하고 물었더니

- 제가 그걸 몰랐습니다. 죽으면 예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시는데

내가 무슨 관이 필요가 있겠느냐.. 이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참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그럽니다.

관 값이 들어오니까 공사를 시작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충 설계하고 기초공사부터 하자 하고 제가 건축감독을 맡았습니다.

먼저 구덩이를 이 만큼 팠어요.

바로 그런 찰나에 도지사께서 오셨어요.

예고없이 들이닥친 겁니다.

보니까 구덩이를 파 놓고 집 짓는 것처럼 해놓은 거에요.

- 목사님! 여기 뭐 할려고 이럽니까?

- 사실은 여기 교육관 지을려고 그럽니다. 애들 유치원도 마들고 그럴려구요.

- 건축자재는 어디 있습니까?

- 없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나 하고 지금 쳐다보고 있습니다.

그 분이 안 믿는 분이었어요. 그 날은 그렇게 갔어요.

그 다음날 도지사 사모님 한테 연락이 왔어요.

- 목사님, 어제 지사님 가셔서 안좋은 일 있었습니까?

- 아니, 모르겠는데요.

- 거기 갔다오더니 잠을 잘 못자요.

- 글쎄요.

- 거기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 집 지을려고 그러고 있습니다.

- 그러면 돈 있습니까?

- 돈은 없고 지금 하늘에서 철근하고 벽돌 내려오라고 기도 중입니다.

그때사 웃어요. 그리고 며칠 지났는데

도지사님 하고 비서실장하고 군수하고 총무국장하고 네 사람이 찾아왔어요.

이 만한 상자를 하나 들고 왔더라고.. 앞에 내 놓길래 이게 뭡니까?

하고 보니까 돈이 가득 들었어요. 만원짜리가.

- 아니, 이거 뭡니까?

- 집 짓는데 보태 쓰라고 가져왔습니다.

제가 도로 내 밀었습니다.

- 이거 못 받습니다.

교회는 우리 믿는 성도들의 기도와 땀으로 건축하는 겁니다.

하나님 역사로 건축하는 거지. 이런 걸로는 못 짓습니다.

여러분, 바로 그렇습니다. 교회 역사는 우리 성도들의 기도와 땀,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간구로서 역사되는 겁니다.

세상의 어떤 권세나 세상의 물질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지사님이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 아, 나도 믿으면 될거 아니냐고, 이거 헌금이라고 헌금이니까 받으세요.

그럽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장로님들이 당장 급하니까 이거 헌금이라니까 받읍시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목수를 불렀지요. 물건 샀지요. 짓기를 시작했는데 반을 짓고 나니까 돈이

다 떨어진 겁니다. 목수가 와서 하는 말이

- 목사님, 내일 물건 안들어 오면요. 더 이상 못 지어요.

- 그래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오늘이래도 뭐가 오겠지요. 기다려 봅시다.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그만 끝내시오.

바로 그날 저녁 때입니다. 두 사람이 미국서 찾아왔어요.

나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제가 독일에서 올 때, 3년 전이었지요.

러가프 대학이라고 뉴저지에 있는 의과대학이 있습니다.

그 대학에 가서 채플 시간에 설교를 하고 떠나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떠난 3년 동안을 그 학생들이 헌금을 했어요.

학생 대표가 그 헌금을 가지고 온겁니다. 그 마을 까지...

여러분, 어떤 역사이건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고 계셨다는 겁니다.

이제 부목사로 왔던 그 독일 친구가 떠날 때가 되어서 마지막 떠나는 밤에

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이 친구가 이렇게 물어요.

- 아무리 내가 은혜받고 성령 받아도 걱정되는게 하나 있다.

설교를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교인들에게 은혜를 주겠는가?

가만 보니까 자네는 설교만 하면 사람들이 아멘, 아멘 하는데

나는 일년 내내 해봤자 아멘 소리 한 번도 못들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래서 제가 그 친구 손을 잡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 이 사람아, 설교는 입으로 하는게 아니네. 말로 하는게 아니야.

자네가 월요일부터 토요일 까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 뜻대로 일주일을 살면은 주일날 강단에 올라가서 아무 말 안하고

한 시간을 서 있어도 온 교인은 은혜 받는다.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는 문자로 그냥 붙어있는 정지된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 몸과 팔과 다리로 움직이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온 몸으로 행하고

손으로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고 이 친구가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벌어졌어요.

삼백명 밖에 안남았던 교인이 만명으로 늘어난 겁니다. 일 년 반 사이에.

이 친구가 너무 기뻐서 역시, 엘리야의 이적은 아직도 있는 모양이라고 그래요.

자기 교회 300주년 기념행사로 한 주간을 비블목회라는 성경사경회 비슷한 것을

하는데 와서 해 달라는 초청장이 왔어요.

그러면서 편지 맨 끝에 뭐라고 썼는지 압니까?

- 나는 당신의 영원한 부목사 -

허허~ 그러니 이 친구 아직도 제 부목사인 셈입니다.

몇 달 뒤 그 행사 즈음에 제가 독일로 갔습니다.

강단에 올라갈려고 그러는데 교인이 굉장히 많아요. 꽤 큰 교회니까.

갑자기 이 친구가 서더니 제 손을 딱 쥐고 하는 말이 다른 이야기는

다 해도 좋은데 자기가 똥통에 빠진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거에요.

전 다 잊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일깨워 주니까 아예 첫 날,

그 이야기를 다 해 버렸지요.

앉아 있었던 분 중에서 신문사 편집국장 한던 분이 있었는데

다음날 신문에 '똥통에서 만난 성령예수' 라고 칼럼이 나왔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참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던 사람도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삶을 살면 살수록 특이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 전에 왔던 스님친구 이야기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 친구가 한번은 오더니 하는 말이

- 형님, 제가 인도에서 공부하다가 티벳으로 넘어올 때 티벳에서 어떤 고승을

만났는데 아주 많이 수양된 스님인데 그 분이 아주 괜찮습디다.

생불(살아있는 부처) 같습니다.

형님하고 대화하면 맞을 테니까 언제 티벳 가면은 그 분을 만나보세요.

그 이야기 할 때는 잊어버렸지요.

그런데, 중국에 문둥병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록을 보니까 다른 나라는 공개 되었지만 거기는 폐쇄되었기 때문에

어쩌면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걸 읽고 나니까 내가 여기 가까이 있으니까 중국을 한번 가봐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90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6편(홍콩으로....)- 05/27 08:57 306 line

내가 여기 가까이 살면서 중국을 한번 가봐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거기 갈려면 비행기 표도 준비해야지요.

준비할 게 많은데......

그때는 80년대 초라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기 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조건 가겠습니다.

비자를 받으려면 홍콩 가서 비자를 받아야 되는데..

홍콩까지 가게 되면 하나님 뜻인지 알고 가겠습니다.

전 아무것도 없습니다......

늘 갖고 다니는 노트 몇 권, 성경책 몇 권, 가방 하나 들고

서울로 떠나기 위해서 광주역으로 갔습니다.

광주역에 도착해서 보니까 주머니에 서울 갈 여비가 없어요.

생각도 못하고 나온 거지요.

저녁이라 밤차 타고 올라가야 되는데 마음으로는 '내일 모레 떠난다' 생각하고

내일은 주일이니까 서울에 있는 후배 목사님 교회 가서 자고

모레 가면 되겠다 생각하고 광주역 광장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분이 지나가더니 절 보고는

- 아! 목사님 아니세요. 어디 가십니까?

- 예, 서울 갑니다.

자기가 차표를 사주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차표를 끊었습니다.

밤차 타고 새벽 여섯 시에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도 가만히 서 있었어요.

또 웬 분이 지나가더니 절 보고는

- 목사님, 여기 뭐하러 왔습니까?

- 네, 지금 중국 갈려고 왔습니다.

- 아, 그럼 비행기 예약했습니까?

- 아직 안했습니다.

- 아, 그럼 티켓 샀습니까?

- 아직 안샀습니다.

절 가만히 쳐다봐요.

- 그럼, 언제 갈렵니까?

- 내일 갈겁니다.

- 그러면 오늘 밤 어디서 묵을 예정입니까?

- 아무개 교회서 묵을 예정입니다.

그리곤 헤어졌어요.

후배 목사님 교회를 찾아가서 주일 저녁예배와 다음날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공항으로 나갈려는데 어제 서울역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 새벽에 절 찾아 왔어요.

- 목사님 내가 돈이 없어서 왕복표는 못 끊고 가는 편도만 끊었습니다.

이거 갖고 다녀오십시오.

- 그래요. 그럼 가지요.

그렇게 해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 다 밟고 나니까 수속 받는 아가씨가 공항세를 내라 그래요.

한국은 아직도 있나 몰라요. 최근에는 안가봐서 모르는데..

돈이 없어서 없다고 그랬지요.

주머니 아무리 뒤져봐도 동전 두개, 딱 200원 남아 있는데

이거면 되겠냐고 했더니 안된데요. 오천원이래요.

그래도 없는걸 뭐..

그 때는 여행 많이 안갈 때입니다.

- 외국 여행 가는 분이 공항세도 없어요?

- 하여튼 없다고..

그 아가씨가 가만히 있더니

- 아이구, 내가 내 드릴께 다음 번에는 갖고 다니세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공항 생기고

공항세 안내고 나가는 사람 처음 봤대요.

비행기를 탔습니다.

저는 버스처럼 생각을 한거에요. 버스는 타면 빈 자리에 가서 앉잖아요.

제일 앞 좌석 보니까 넓은데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뒤에는 와글와글 한데..

그래서 앞에 가서 앉았지요.

아, 그랬더니 스튜어디스가 옷도 벗겨주고, 가방도 올려주고 아주 친절해요.

가운데 자리에 턱 앉아 있었더니 아무도 안타요. 그 이상하다....

여기 빈 자리 있는데 왜 자꾸 뒤로 가나...? 궁금해 하고 있는데

웬 사람이 탔는데 제 옆에 않아요. 신사분인데..

날 보더니 옆 자리가 비어 있어야 되는데 아마 내가 있었던 모양이지요.

좀 불편하지만은 어쩝니까.

자기 자리는 거기니깐 둘이 그냥 앉았습니다.

그 칸에 둘만 탔지요.

제가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 선생님, 혹시 예수 믿습니까?

날 이렇게 보더니

- 아, 돈 벌기도 바쁜데 예수님이 뭐요.

그러고는 자기 서류를 꺼내더니 체크하면서 보고 있어요.

내가 민망해서 가만히 있었지요. 비행기가 떠서 한 삼십 분이 지났습니다.

- 선생님, 제가 딱 하나만 더 물어보고 관두겠습니다.

- 뭐요?

- 이 비행기가 갑자기 폭발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살 방법이 있습니까?

이 사람이 갑자기 불안했던 모양이에요.

스튜어디스를 불러요.

아가씨 이리 좀 오라고..

- 이 비행기 안전한가?

- 예. 기술적으로는 다 안전한데 그 다음은 저도 모릅니다.

그 아가씨 대답한번 명쾌하게 합디다.

그러니 이 사람이 서류보다가 딱 놓고는 가만히 있어요. 불안한지.

난 눈 감고 모른척 하고는 갔지요.

얼마 지나니까 그때서야 이 사람이 날 보고

- 아, 선생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하나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물어보시라고, 뭐냐고.

- 선생님은 이 비행기가 폭발해도 살 어떤 방도가 있습니까?

- 물론이지요. 난 이게 폭발해도 살 방법이 있기 때문에

혹시 선생님은 모르고 계시나 해서 제가 물어본겁니다.

- 그럼 혹시 저한테 가르쳐 줄 수 있겠습니까?

- 물론 가르쳐 줄 수 있지만 그 서류부터 좀 치우시오.

그 서류는 다 집어 넣어요. 그러면 이야기 해줄테니.

그 사람이 서류를 다 집어 넣은 후에 제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냈습니다.

- 그게 뭡니까?

-아. 이거 성경입니다.

- 난 뭐 특수 낙하산이라도 있는줄 알았는데...

- 이 안에 사는 방법이 다 있다고.. 낙하산이야 사람이 잘못 만들 수도 있는데

여긴 살 수 있는 틀림없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알려 주려고 그러는데..

듣기 싫음 말라고..

- 아, 아니에요. 말씀해 보세요.

그렇게 해서 홍콩까지 가는 4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겁니다.

비행기 안에서 듣기 싫다고 나갈 수도 없잖아요.

창세기부터 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하나님은 어떻고, 삼위일체는 어떻고

이야기를 하니까 처음에는 재미있는지 들어요.

그러다가 홍콩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이 사람이 하는 말이

- 선생님. 이제 됐습니다.

- 뭐가 됐어요?

- 아, 비행기 폭발 안했어요. 그러니 이제 성경공부 그만하자구요.

- 그럼 뭐 할 수 없지 그만둡시다.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그 때사 이 사람이 저한테

- 뭐하시는 분이세요?

- 목삽니다.

- 어디에 가세요?

- 중국 갈려고 그럽니다.

- 중국 가기 힘든데 .... 비자 받는데도 한 주일은 걸릴건데....

어느 호텔에 머무실렵니까?

- 아직 예약 안했습니다.

- 그러면 제가 예약해 드릴까요? 어느 호텔을 원합니까?

- 아 그것도 아직 모르겠어요.

- 그럼 누구 아는 사람 있습니까?

- 아니 없습니다.

- 그럼 어디서 묵을랍니까?

- 아는 사람 없어도 내리면은 아마 누군가가 날 맞이할 겁니다.

그러니까 걱정 안하고 갑니다.

- 아, 그래요.

비행기에서 내리고도 전 계속 그 사람 줄줄 따라갔지요.

앞에 큰 차가 한 대 대기하고 있어요. 이 사람이 온다고..

운전수가 나와서 회장님! 그러는거 같애요.

그 사람이 날 보더니 다시 물어요.

- 누구 나왔습니까?

- 아직 안나왔네요.

차 타고 갈려다가 갑자기

- 목사님, 이리 타시오. 오늘 저녁은 우리 집에서 묵으시오.

- 아, 그래요.

속으로는 '아마 당신이 그 사람인 모양이다' 하고 탔지요.

가는데 큰 집에 들어갔어요. 한 부부가 사는데, 일 하는 사람인 모양이에요.

점심때라 점심을 가지고 왔는데 전화가 막 오는 거에요.

뭐는 어떻게 팔고 뭐는 어떻게 팔아라. 그러고 난리에요.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 선생님, 바쁜데 딱 하나만 물어봅시다.

- 뭐냐고?

- 그동안, 돈을 얼마나 벌었길래 그렇게 바쁩니까?

- 아, 그 한 1억불까지 벌려고 그랬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 그러면 일생 돈 버는 소망이 1억불 입니까?

- 아, 그럼요. 1억불이면 성공이죠.

그 당시 80년 초니까 큰 돈인거 같아요. 난 그게 큰 돈인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제가 그랬지요.

- 제가, 한 100억불 벌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알고 싶지 않습니까?

- 아, 그래요. 목사님이 거짓말 하겠나?

- 난 거짓말 안합니다.

갑자기 비서한테 전화 걸더니 모든 약속 취소하라는 거에요. 전화 딱 끊고

- 들읍시다. 우리 서재로 갔습니다.

또 성경책을 꺼냈습니다.

- 또, 그겁니까?

- 그거라구....

그때 제가 그 분한테 직설적으로 물었습니다.

- 자꾸 그겁니까, 그겁니까 그러는데 내가 하나 물어보자구

지금 이 세상에서, 세계에서 돈 제일 많이 가진 사람들이 누군지 압니까?

여러분, 그때 80년대 뿐 아닙니다. 90년대인 지금도 그래요.

지금 현재 세계에서, 월스트리트든, 동경이든, 싱가폴이든, 어디든간에

돈 제일 많이 가진 사람 누군지 알아요? 유대인입니다.

세계 금융시장의 7~80% 를 쥐고 있습니다. 그 이상하지 않아요.

유대인 인구가 600만도 안되는데.. 세계에 있는 사람 다 합쳐봐야 천만도

넘을까 말까 하는데. 55억 세계 인구가 있는데 그 중에 80% 돈을 쥐고 있다면

뭔가 비밀이 있지 않겠어요? 돈 잘버는 비결이.. 그게 뭔지 압니까?

바로 구약성경입니다. 히브리 성경이에요.

여러분, 이 히브리 성경 안에는요. 이 세상에서 잘 살 수있는 비결과 방법이

다 나와 있습니다. 번성하고 번영하는 방법이 다 나와 있어요.

성공하는 비결이 다 나와 있습니다. 그게 구약입니다.

신약은 뭔지 압니까?

신약은 구약에서 번 돈을, 물질을 얼마나 선하게 쓰느냐.

쓰는 방법이 나와있는 거에요. 그게 신구약의 차이 입니다.

이 사람이 가만히 들어보니까 유대인들이 홍콩서도 금융권을 쥐고 있거든요.

파리, 런던 금융시장도 다 그렇거든요.

- 아, 그 말 맞네요. 정말 그러네요.

- 바로 여기 있다구. 이 안에 당신이 100억불 아니고 1000억불 이상 벌 수 있는

비결이 이거라구. 들을려면 듣고 말라면 말라고.

- 아아, 그거 듣겠어요.

그래서 일주일은 그 안에서 비자 나올 때 까지 성경공부 시작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짜가 없더라구요. 그 집에서 공짜로 밥 먹여 주니까 이제

복음 전하게 하는 거에요. 히브리 말로 성경공부 하니깐 재미있거든 또.

그렇게 성경공부를 하는데 회사에선 일주일 사이에 난리가 난겁니다.

이 사람이 무슨 거래를 하는데 자기는 자신있게 물건을 샀는데, 선물거랜가..

뭐 이상한 용어에요. 잘 모르지만.. 그걸 했는데 그게 값이 내려가는거에요.

벌써, 50% 가 내려갔는데 계속 내려가니까 50% 라도 팔아야 되겠습니다 하고

밑에서 보고가 올라온 거에요. 이 사람이 고민이 생긴거지요. 저 보고 물어요.

- 목사님, 사실은 이 사업상의 문제는 절대로 아내하고도 이야기 안하는데

내가 다 판단하는데 이건 조금 곤란합니다. 목사님 한테 자문 좀 얻을까 하는데

되겠습니까?

- 뭐든지 이야기하라고, 뭡니까?

-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50% 가 내려갔는데 이걸 제가 팔아치워야 될지.. 그러면

50%를 건지고 또 50% 손해 보는데 지금 고민입니다.

저는 단순하게 이야기 했지요.

- 보시오. 사업이라는 것은 밑지면 안되지 않소. 남아야지 밑지고 팔면 되겠냐고

팔지 말라고 그러니까

- 아, 그말 맞다고 ..

그리고 안팔았네 오후에 되니까 30%로 뚝 떨어져 버렸어요.

20%가 또 날아가 버린 거지요.

그러니까 밑에서 또 팔자는 거에요. 나한테 한번 더 물어봐요.

- 아, 밑져서는 안된다고.. 장사는 밑지는 거 아니라고 남아야지

남을 때 팔아야지 왜, 밑질 때 파냐고...

나는 그냥 원칙대로 판단한 거지요.

그 다음날 되니까 이게 10% 까지 내려간 거에요. 90% 날아간 거지요.

그렇게 되니까 이 사람이 포기하고

- 목사님 말씀 듣겠습니다. 하고 놔 둔거에요.

그 다음날 되었는데 이게 갑자기 50% 다시 뛰는 거에요.

이 사람 생각에 이상하거든요.

- 지금 팔까요. 그럼 50% 건지는데..

- 아, 밑지면 안된다 그랬지 않냐고..

그랬더니 그 다음 100% 로 뛴거에요. 야, 이제 되었다 싶은 거에요. 이 친구,

- 이제 팔까요. 된거 같은데..

- 뭐가 됐냐고, 본전가지고 뭐하냐고, 남아야 장사지. 더 기다려 보라고.

이게 또 오르는 거에요. 보전보다 한 30% 더 뛰었어요.

- 지금 팔까요.

- 그래도 장사는 적어도 배는 남아야지..좀더 기달려 보라고.

그런데, 며칠 있으니까 200% 되어서 배를 남겼어요.

그 때 이 사람이 욕심이 생긴겁니다.

- 아이고, 이제 안팔랍니다. 더 오를건데..

자기 생각에 또 오를거 같거든. 그때 제가 제동을 걸었습니다.

- 욕심내면 안돼. 고 정도로 끝내야지..

그 사람이 제 말 듣고 팔았어요.

팔고 나자마자 그 다음날 바로 뚝 떨어지는 거에요.

신기하거든요.

- 이야. 목사님! 그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성경을 들어보이면서

- 바로 이거라구, 여기에 다 있다고..

그러고 이제 내가 떠나려니까 이 사람이 비행기표 자기가 예약했으니까

자기가 그걸 줘야 갈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머물렀다 가라고 그래요.

안된다고, 난 지금 바쁘다구 빨리 갔다와야 되겠다고 했더니

제 가방에다 돈을 가득 넣어주는 거에요. 그래서 그랬지요.

- 아, 난 돈이 필요없다구. 보라구 내가 가만 있어도 호텔 보다 더 좋은 방에서

자고 지금 가지 않냐고, 비행기 표도 당신이 지금 사줘서 가고 있는데 돈

필요없다고.

우리 예수님께서 전도하러 갈 때 전대도 갖지 말고 두 벌 옷도 갖지 말고

그냥 가라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니까 지금까지 다 됐으니까 필요없다고.

그랬더니 이 사람 뭐라는지 압니까?

- 목사님 하나님은 돈 없어도 사는지 몰라도 내 하나님은 돈 없으면 안되니까

쓰든 안쓰든 가져가 보세요.

그래도 안된다고 뿌리쳤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돈이 고스란히 가방에

다 들어 있었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나 하고 상해에 도착했습니다.

#92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7편(실력자와 대결) 05/27 22:35 310 line

그래서 이걸 어떻게 쓰나 하고 상해에 도착했습니다.

상해 도착했을 때 제가 찾아간 것이 상해대학에 독일에서 같이 공부했던

중국 교수가 있었어요. 그 사람을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사실은 내가 중국에 있는 문둥병자들을 도우러 왔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신학한 목사니까... 그 위치를 알려달라.

이 친구 뭐라는지 압니까?

중국에는 문둥병자가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왜, 그러냐? 했더니.

등소평 동지가 교시를 내렸는데

우리 사회주의 복지국가에서는 그런 병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무조건 없다는 거에요.

위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렇지 않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더니 북경에 자기 친구가 당 보건국에 있는데

그 친구는 혹시 알거라고 편지를 하나 써줘요.

그 편지를 들고 북경으로 가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만나서,

사실은 내가 목산데 당신 친구하고 친하다.

십 여 년 전에 같이 공부했던 친군데 당신한테 부탁하러 왔다고 했더니

놀라면서 여기 문둥병자 있다는걸 어떻게 알고 왔냐 그래요.

속으로 `아, 여기 틀림없이 있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자기는 말해줄 수 없다는 거에요.

그러면 오늘 저녁 나랑 같이 식사하자.

식사하면서 얘기를 들으려고 그랬는데, 마침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 친구가 다른 성에 책임자로 있는데 그 친구 말에 의하면

그 성에는 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말했다고 그러지는 말고

그에게 잘 이야기 하면 되는데..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래서,

그러면 오늘 저녁식사 자리에 그 친구를 데리고 나오라고.

저녁에 두 사람이 나왔어요.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 했지요.

- 난 목사다. 그리스도인만이 그 병자를 도울 수 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못 도운다.

확실히 실력자들은 자신감이 있어요. 싱긋이 웃으면서

- 아, 있다고.

있지만 안된다고.. 소개해 줄 수 없다고 딱 잘라요.

내가 좀 실망하는 빛을 띠니까 느닷없이 사람이 하는 말이

- 그 기독교인은 술을 안 먹는다지요?

- 예, 그렇습니다.

- 그래요?

씨-익 웃더니 아주 독한 빼주를 시켜요. 그것도 큰 병으로.. 그리고

큰 잔에다 따르는 거에요. 그리고 조그마한 잔에도 붓더니

나한테 겁 준다고 불을 확 질러요. 아주 독한 술이니까

잔 위에 불이 확 솟아오릅니다.

- 나하고 이거 마시기 해서 이기면은 내가 안내하겠소!

참 묘한 타협안이 나온겁니다.

내가 먹지도 못하고.... 설사 그걸 마신다 해도

그 사람한테 이길 수 있겠냔 말이지요.

옛날 바울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날 지옥 보내라고까지 기도했는데.

내가 이걸 마셔야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하나님 용서하십시오.

마셔야 되겠습니다. 아멘 하고

마시자고 그랬습니다.

중국말로 '감빠이' 하게 되면 시작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쭉 들이키는 겁니다.

한번이라도 쉬면 안되요. 감빠이 하기로 하고 마시는데

먼저 그 사람이 쭉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저도 잔을 들고 입에 다 댔습니다.

쭉 들이키는데 냉수에요. 독주가 아니고.... 나는 시원하게 잘 마셨지요.

잔을 탁 놓으니까 이 친구가 하는 말이

- 아! 주량이 세다.

두 잔째도 쭉 마셨습니다.

- 아! 주량이 세다는 거에요.

세 잔째...

그 큰 잔으로 세 잔째 마시고 나더니 그 사람이 중도에 콕 꼬구라져요.

나는 세 잔까지 다 마시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술이 깬 그 사람이 절 찾아왔어요.

제 앞에 와서 - 큰 형님! 하고 큰 절을 합니다.

그리고 사나이로서 약속 한건 지킨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 사람따라서 문둥이가 있다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서 보여 주는데..

저기 들어갈려면 마스크하고, 모자 쓰고, 장갑 끼고 들어가라는 거에요.

괜찮다고 나는 그냥 들어가겠다고, 자기는 안들어 가겠답니다.

들어갔는데, 요쪽은 가지 말라 그래요. 보니까 뭘로 막아놨어요.

보는 사람 아무도 없길래..

사람 심리라는게 가지 말라는데 더 가고 싶잖아요.

문을 살짝 열고 쑥 들어갔지요.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난 전부 다 돼지인줄 알았어요.

팔,다리 없는 사람들이 그냥 뒹굴면서

긴 죽통에 얼굴을 대고 핥아먹고 있는거에요.

여러분! 팔,다리가 없으면 걷지 못하지 않습니까.

얼마정도 갈려면 배로 걷습니다. 배로....

뱀이 기어가듯이 사람이 기어간다는게 말이 됩니까?

보니까 눈알도 다 빠진 사람들이 코로.. 떨어진 곳에서

냄새 맡으며 먹을걸 찾는 거에요.

하도 기가 막혀서 한 사람을 끌어안고 앉힐려니까

뒤에서 경비원이 와서 절 끌어내요. 실망이 되서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래도 좀 낫다는 사람, 괜찮다는 사람들 보니까

팔이 하나씩 떨어진 사람, 눈알이 하나씩 빠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저쪽에서 아리랑 소리가 나요.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데 소리 나는 쪽으로 가보니까

웬 할머니가 흥얼흥얼 대고 있어요.

눈 하나 빠지고, 팔은 하나 없고 이런 사람인데..

- 당신 한국사람이요?

- 아니요, 조선사람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어머니, 아버지가 북간도 왔을 때, 자기가 14살에 만주에 와서 그 병이 들었답니다.

그래갔고는 여기 와서 40년을 산거에요. 그래서 할머니가 되었는데..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애가 되어 버렸어요.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울부짖으며 우리 엄마 좀 찾아달라고 그럽니다.

40 년이 지나도 그 마음은 아직 14살 마음이었던 거지요.

제가 위로할 말이 없어서 그 할머니 손을 꽉 잡았습니다.

반이 잘라진 손등인데...

갑자기 제 손등에 뜨끈뜨끈 한 불덩어리 같은게 떨어져요.

그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건데 그게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도 그만 그 자리서 같이 엉엉 울었습니다.

제가 엉엉 우니까.. 저 한테 물어요.

- 선생님, 뭐하시는 분이요?

- 아, 나는 예수 말씀 전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가 뭡니까?

- 예수님은 우리를 병들지 않고 죽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가만히 있더니..

- 선생님. 나같은 병신도 그런분 알 수 있을까요?

- 아, 물론입니다.

- 어떻게요?

제가 할말이 없습니다.

여기 같으면 교회 가보시오. 성경 읽으시오. 하지만

거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참 생각하다가 제가 그랬지요.

- 할머니, 마음 속에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대답하십니다.

그렇게 하고 거기서 돌아 나올려는데 그 분이 그래요.

- 선생님, 또 오시지요.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싹 없었지만

- 예, 언제 또 기회가 되면 오겠습니다. 하고 떠났습니다.

나오면서 너무 기가막혀서 저 사람들 어떻게 도울까 하다가 수용소장을

만났습니다. 홍콩에서 받은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주면서

- 이걸 갖고 저 사람들 옷이든 뭐든 좀 해주시요.

그 때사 돈이 이렇게 필요했구나 한걸 알았지요.

수용소장이 그 돈을 받더니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모택동 동지보다 더 훌륭합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기 입을 막아요. 누가 들었나 싶어서..

그렇게 하고 떠나왔는데 6개월 후가 되었어요.

아무래도 한 번 더 가봐야 되겠다 해서 그곳을 가니까

제가 오기 닷새전에 그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서 기가막혀서 돌아나오는데 갑자기, 그 중국 병자들이 막 나한테로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오더니

- 예수! 예수! 하고 소리 질러요.

-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내가 6개월 전 거기를 떠난 후로 이 할머니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겁니다.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다른 환자들 보고

- 나는 문둥이가 아니다.

나는 이제 예수을 알기 때문에 문둥이가 아니다.

그리고 죽기전에 그러더랍니다.

- 나는 죽는게 아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고향으로 간다.

나를 이제 문둥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러면서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제가 그 때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전도는 결코 연기해서는 안된다

내가 다음에 와서 하지 했으면 벌써 그분은 세상 떠난겁니다.

바로 마찬가집니다. 여러분!

가까운 사람 전도하는거 미루면 안됩니다.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미루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때는 벌써 늦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그 마을에 머물 때 한 번은 팔십 먹은 노인이 찾아왔었습니다.

그 노인이 하는 말이

- 저도 여기서 살게 해주시오.

- 할아버지, 여기는 병자들만 사는 곳이라 안됩니다.

- 나도 병신 중에 병신입니다.

그리곤 얘기를 들려주는데..

그 분이 사십 년 전에 아들 여덟과 딸 둘, 십 남매를 뒀는데

그 중에 11살 된 네째 아들이 갑자기, 손이 고꾸라지고

눈이 비뚤어지더래요.

병원에 가니까 문둥병이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러면 얘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까,

집에서 키우면 안되고 격리시켜야 하니까 섬으로 갖다 주라는 거에요.

그 때는 오래전이니까 교통도 불편할 뿐더러

그런 병 있으면 버스도 안 태워 줍니다.

배를 타기 위해 며칠을 걸어서 갑니다.

병 때문에 집 같은 곳에서는 안 재워주니까 저녁이 되면 산 밑에서 잠을 잡니다.

그 아이가 피곤해서 쪼그려 자는걸 보다가

얘는 앞으로 죽을 고생밖에 더하겠나 그럴바에야 내가 여기서

죽여서 땅에 파묻어 주는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돌을 들어 애를 때렸답니다.

그런데 마침 돌이 빗나갔어요.

두번째 돌을 들고서 가까이 가서 칠려고 하니까..

차마 아버지로서 죽일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리고 부둣가에 왔습니다.

부두에서 환자들 싫어나르는 배를 보니까 눈알 빠진 사람, 코 떨어진 사람,

팔, 다리 다 떨어진사람들을 싣고 갑니다.

내 아들도 앞으로 저렇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기가 막히더래요.

그래서 그 아들을 끌어안고는 저 구석으로 갔어요.

- 얘야, 네 팔자도 참 나쁘다. 나도 애비로서 책임이 있으니까

너혼자 죽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고 내가 너하고 같이 죽겠다.

우리 둘이 같이 죽자.

그러고는 그 아들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뛰어 들어가니까 그 아들이 뭐라고 그러는지 압니까?

- 아버지! 죽일 놈은 나지, 아버지는 아니잖아요. 죽일 병신은 나니까

나만 물속에 콱 박아버리고 그냥 가세요.

자기 죽는 것도 모르고 아버지 살리려고 애를 씁니다.

- 아버지! 아버지는 살아야지요. 죽일 사람은 나요. 죽일 놈은 나요.

집에 가면 어머니도 있고 형님도 있고 동생도 있는데 아버지는 사세요.

나 혼자만 죽여줘요.

울면서 그 아들이 아버지를 살리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그래서 차마 죽지는 못하고 다시 나왔습니다.

그 아들을 섬으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사십 년이 지났습니다.

일곱 아들, 두 딸 모두 시집,장가 보내고

그 많던 재산도 자식들에게 다 나눠주고 했는데 부인이 세상을 떴습니다.

혼자 살면서 아들네 집에 왔다갔다 하다가

내가 너무 오래 살아도 이거 욕되는구나 해서

고향에 와서 죽고 싶은 마음에 고향으로 내려오다가 갑자기,

사십 년 전에 버렸던 그 아들이 생각나는 겁니다.

내가 다른 자식들에게는 재산도 주고 했는데 그 아들은 버리기만 하고

한번도 돌보지를 못했는데 죽기전에 만나서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되겠다 해서 찾아온 겁니다.

우리 마을에 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분이 와서 아들을 만난 겁니다.

자기는 만날 때, 그 아들이 자기를 원망하고 인상을 험하게 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아들이 자기를 대접하면서 절을 하고, 손주 소개하고 난리에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 얘야, 네가 날 원망할 줄 알았더니 어찌 이렇게 날 대접하냐?

- 아버지가 날 버리고 떠날 때는 며칠, 몇 날을 아버지 엄마가

그렇게 원망스럽더니 예수 믿고 나니까 왜 그렇게

아버지 엄마가 고마운지..

날 낳으시고 날 천국가게 해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이 때까지 사십 년을 아버지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부모님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버님이 저한테 온 것은 하나님이 저한테 보내신 겁니다.

이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러면서 울더랍니다.

이 때, 이 노인이 저보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 목사님, 나는 지금까지 가짜 아들 일곱을 위해 살았습니다.

진짜 아들은 제가 두 번이나 죽일려고 그랬습니다.

이런 병신이 어디있습니까?

정말 살려야 될 아들은 자기가 돌로 때려 죽이고 물에 빠뜨려 죽일려 그랬고

없어도 될 가짜 아들만 위해서 일생을 살아왔다는 거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았습니까?

없어도 될 가짜를 위해서 살아왔습니까?

버려도 될 욕심을 위해서 살아왔습니까?

인생에 아무 소용이 없는 욕심만을 위해 살아왔습니까?

정말 소중하고, 지켜야 될 믿음 다 팔아먹고

주님 사랑 다 팔아먹는 진짜는 버리고 살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앞으로 여러분 인생이 정말 참을 찾고, 진실을 찾고, 진짜를 위해

살아나갈 때 지금보다 하나님께서 더욱 큰 축복으로 여러분에게 충만히

내리실줄 믿습니다.

#93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8편(보석같은 진리) 05/27 22:38 357 line

제가 한번은 정상인이 사는 마을에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저는 어느 마을에 가든지, 거기 백 호가 되든 삼백 호가 되든

크든 적든 간에 그 마을 사람들이 다 전도될 때 까지 거기에서 묵습니다.

그래야지 나중에 제가 다른 곳에 갔다와도 시험에 안들거든요.

그 마을에서 다른 사람은 다 전도 되었는데 그 마을에서 잘 사는

어떤 한 분이 전혀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제일 잘 사는 열 가정 중에 한 가정인데.. 아주 잘 사는 그런 집이었는데

아, 이 사람은 전연 받아들이지를 않을려고 그래요.

다 변화되고 그 집 한 집이 남았는데..

나중에 찾아가서 물어 봤어요.

- 당신, 내가 볼 때는.. 당신 얼굴을 보니까

꼭 하나님의 축복 받을 사람인데 어째서 그렇게 거부하느냐?

한 숨을 푹 쉬더니

- 사실은 제가 그럴 사정이 있습니다.

- 그게 뭐냐고?

- 제가 지은 죄가 많아서 그렀습니다.

- 당신이 지은 죄가 아무리 많다 할찌라도 하나님 앞에 솔직히 고백하고

자복하면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

그분이 하는 말이

- 이것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어쩔 수 없어서....

사실은, 나도 진작 믿고싶은 마음이 있었지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 그 죄가 뭔지, 하나님께도 말 못할 사정이라면.. 나 한테는 말할 수 없소?

- 제가 그걸 말을 못합니다.

만약 그 말을 하게 되면 저는 이 마을에서 매장 당하고

맞아 죽을지도 모릅니다.

- 그럼 마음대로 하시오.

그렇게 평생 동안 가슴에 품고 고민하다가 죽는거 하고

탁 풀어 제치고 깨끗하게 회개하고 죽는게, 차이가 있을 테니까.

고민하다가 죽는거 하고 맞아죽더라도 차라리 깨끗이 자복하고 회개하고

죽는거 하고 어느게 좋겠는지 한번 잘 생각해 보시요.

첫날은 그렇게 하고 나왔습니다. 며칠 후에 그 사람이 찾아왔어요.

- 제가 고백하겠습니다.

얘기를 하는데, 이 분에게는 딸이 여섯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이 궁하니깐 그 딸들을 상해에다 판 거에요.

제일 첫째 딸이 14살 때 팔았어요.

중국돈으로 돈이 꽤 들어왔습니다. 그 재미있거든요.

그 돈으로 집도 새로 짓고 하니까 살거 같거든요.

한번 그 맛을 들이니까 두번째 딸을 또 팔았어요.

동네 사람들한테는 외갓집 갔다하고 두번째 딸도 팔았습니다.

돈이 들어오니까 또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세번째 딸도 팔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둘은 어리니까 남기고 네 딸을 팔았는데 ..

해마다 하나씩 팔은 거에요.

동네 사람들은 외갓집이 잘 사니까 애들을 거둬 주는 모양이다.

시집보내 주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넷을 팔고 나니까 집도 새로 짓고 그 동네에서 아주 부자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양심의 가책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딸들도 여기서 고생하는것 보다는 큰 도시에 팔려가면 호강하면서

살지 않겠느냐 하면서 좋다고 간거에요.

그런데 여러분, 그 딸들이 팔려서 어디로 갔겠습니까?

정말 죽은거와 같은 그러한 인생을 맞이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 사람이 지금까지는 팔아놓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지냈는데

복음이 들어가니까 양심의 가책이 생긴겁니다.

참 이 복음의 역사는 묘하지요.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이요, 생명이요, 천국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요, 멸망의 성서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복음을 들은 후로 괴로운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그런거 안 믿는다. 나는 공산주의 사상 그대로 신봉하겠다는

식으로 그렇게 뻗대고 나갔던 겁니다.

그러면서 그 분이 하는 말이

- 선생님! 이런 죄인도.. 아무리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친딸을 팔아먹고 그 돈으로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아무리 하나님이 자비로우시다 하더라도

이것을 용서해 주실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물질에 대한 유혹입니다.

떡에 관한 본능적인 유혹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어떤 극단적인 예가 될 수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이같이 이런 본능적인 유혹 때문에, 먹는 것 때문에,

물질 때문에 어쩌면 가장 귀한 신앙을 팔아먹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가장 귀한 양심을 팔때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한번 생각을 해 봐야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것을 이길 힘이란 것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내가 항상 하나님 믿고 살아가는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확인하는 그러한 결정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시험은 마태복음 4장 5절에 나타나는

성전 지붕에서 뛰어내려라 하는 시험입니다.

여기에도 두 가지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는 순간적이고 인기적인 것으로 사람을 현혹시키는 시험입니다.

아까 저녁 먹다가 평생 처음 듣는 이름이 TV 에서 나왔어요.

마이클 조단, 그게 여기서(미국) 애들부터 어른까지 부러워하고

난리라면서요. 아주 인기있고 그렇다는데..

이런 사람들이 인기있고 좋다고 현혹돼 따라가다가는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연예인이라든가 코메디언 좋아하며 그런 사람 따라가다가 실망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적인 예로 특히, 독일에 히틀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뭇솔리니같은 2차대전 때의 그런 사람 보세요.

히틀러가 연설을 하게 되면 온 독일 국민이 열광했습니다.

심지어는 당시 개신교 총회장 하던 루더빈 밀러 라는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히틀러 연설할 때 나타나서는 연설 다 끝날 때 마지막 축도를 합니다.

그 연설을 위해서 축도를 하는데 제일 끝에 '아멘' 하지 않고 - 예를 들어서

'영원히 있을찌어다' 이렇게 해놓고 나서는 아멘해야 되지 않습니까? -

그런데 이 사람 뭐라 그랬는지 압니까?

축도 후에 마지막을 '하이 히틀러' 로 끝을 맺습니다.

완전히 히틀러가 예수였습니다. 그런식으로 온 교회 - 개신교, 카톨릭 천주교까지

온 국민이 열렬했습니다. 히틀러가 최고다! 히틀러가 예수다!

나중에 히틀러 예수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그 다음 어떻게 되었습니까?

2차대전 끝나고 나서 지금까지도 히틀러 망령에 계속 배상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 현 독일입니다.

여러분들 지금도 이와같은 유혹!

인기적인, 물질적인 유혹이 계속 따르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와같이 마귀는

이 선동하는 불의의 지도자 같이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전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시험입니다.

당시에도 이같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다라는 사람이 당시 팔레스틴에 나타나서 예수님 태어나시기 한 100년 쯤

전인데. 많은 군중에게 뭐라고 했느냐 하면은 나를 따라오면 요단강이 옛날

홍해처럼 갈라져서 이 나라를 독립시키겠다. 그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유다라는 사람의 뒤를 따라가 '당장 독립되는구나' 하다가 당시 총독이었던

파디우스라는 사람에 의해서 전부 몰살된 사실이 역사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 한 때는 예수님과 똑 같이 내가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전부 무너

뜨리겠다고 선동했다가, 당시 총독이던 안토니우스 필릭스라는 사람에 의해

파멸된 사실이, 예수님 태어나시기 50년 전, 100년 전 사이로 일어났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유혹한 것은 이와같은 과거의 혁명가나 거짓선지자의 약점

을 이용해서 유혹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중국이야기로 들어갑니다.

티벳이란 나라를 찾게 되었습니다.

전에 이야기했던 스님이 자기가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티벳으로 넘어왔는데

티벳에 아주 훌륭한 고승이 있는데 그 분을 만나면 형님하고 대화가 되리라

해서 저한테 편지까지 적어줘서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고승이 있다는 사찰을 찾아갔습니다.

처음에는 그 고승이 만나주지를 않아요. 그래서 친구 스님이 넣어준 서신을

넣어줬더니 만나겠다고 그래요. 제가 들어갔더니 앞에 조그만 방에서 둘이가

마주 앉아서 대좌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잘왔냐, 못왔냐 그런 말도 없이 그냥 저를 한참 쳐다 봅니다.

저도 한참을 쳐다 봤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입을 열면서 하는 말이

- 당신의 영과 내 영이 다른데 무엇 때문에 날 찾아왔소?

- 나의 영과 당신의 영이 다른 것은 제가 압니다.

그래서, 당신의 영과 내 영이 무엇이 옳은 영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 아, 그러냐고. 그렇다면 며칠 후에 다시 만납시다.

한 주일쯤 지나니까 다시 불러요.

갔더니 절 한참 보다가 뭔 말을 할려고 그래요.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더니 가만히 있습니다.

아무 말도 안하고 그렇게 몇 시간을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붓하고 벼루하고 종이를 하나 꺼내서 제 앞에 던져 줘요.

- 지금 우리 둘이서 한 이야기를 여기에 써 보시오.

아무 말 안했어요. 몇 시간을.... 그런데 갑자기 그런단 말이에요.

제가 그것을 받아 쥐고 붓을 들어서 한자를 적어서 줬습니다.

그것을 받아보고 내려놓더니

- 당신 얘기를 좀 듣고 싶소.

- 그럼 내가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 그렇소. 얘기 해보시오.

가방에서 성경책을 꺼내들고 앞에다 펼쳤습니다.

- 그게 뭐요?

- 내가 나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는 없고, 이 책에 있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 해보시오.

거기서 성경공부에 들어갔습니다.

당대에 티벳의 대 고승인데 그 앞에서, 마태복음의 팔복음은 어떻고

하면서 죽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한 몇 시간을 듣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요. 오른 손을 들더니

- 그 책을 내게 빌려줄 수 있겠소?

- 빌려드리지요.

성경책을 주고 나왔는데 두 달이 지나도 보이지를 않아요.

부르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고...

두 달 동안사찰에 머물면서 기다린 겁니다.

그 때 20살 넘은 한 청년이 머리를 빡빡 깍고 들어왔는데 행동이 좀 이상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한테다 흙을 던지질 않나.. 고함을 지르지 않나..

자기가 싼 배설물을 들고는 집어던지질 않나..

그러니까 같이 있던 스님들이 골치가 아프다고 묶어놓기도 하고,

밖에 내놓기도 하고 이랬는데 어느날 이 젊은 청년이 날 만나보고

내 앞에 와서는 조용해져요. 그러니까 그 스님들이 하는 말이

두 사람의 영이 비슷한 모양인데 좀 데리고 있으라고.

온 몸에는 자기 오물로 다 뒤집어 쓴 사람인데....

나도 불청객이라 부탁을 안들어 줄 수도 없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그래서 저랑 같이 제 방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한 3일 쯤 지나니까

그 청년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내가 쓰던 신발도 닦아놓고 세숫대야에

물도 떠다 주고 그래요. 그래서 괜찮은 청년인데 왜 그랬느냐 그러면서

그 청년에게 제가 그랬습니다.

- 너는 정말 지혜롭고 착하고 선한 청년인데 괜히 엉뚱한 짓을 한 모양인데

이제는 괜찮을 거다.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살아라.

이 사람이 괜찮아지니까 스님이 와서 하는 말이

- 아, 당신의 영이 우리 영보다 조금 더강하기 때문에

이 청년이 고쳐진거 같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 그럼, 내보냅시다.

했더니 이 청년이 안갈려고 그래요. 한 주일만 더 있다 간다고 그래서.

그러면 그러라고. 한 주일 더 있다가 이 청년이 가면서 하는 말이

- 선생님! 만약 여기서 떠나시면 저희 집에 한번만 꼭 들러 주십시오.

- 내가 기회가 되면 찾아가겠다고.

그 청년이 그러고는 주소를 적어주고 사찰을 떠났습니다.

한 두달 지났는데 그 고승이 절 불러요.

들어가니까 그 성경책을 저 앞에 턱 놓으면서 하는 말이....

깜짝 놀랄 말을 합니다.

- 이렇게 바른 진리를 왜 이제 가져왔소?

이 사원이 선지가 2000 년이 넘는데 이같이 바른 진리를

왜, 아무도 이곳에 와서 그냥 던져라도 주지않고

지금까지 한 마디 말도 전해주지 않았소?

놀라운 말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말 할 때 뭐라고 대답해야 됩니까? 성경적이고 불교적으로..

성경적이요 불교적으로 딱 맞는 대답이 뭐겠습니까?

이게 지혜거든..

그 사람한테 아이고 미안합니다. 늦게와서.. 이건 말이 안되잖아요.

참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것도 말이 안되잖아요.

참고 있다가 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것도 말이 안되고.

뭔가 이 사람이 공감할 만한 말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 하루가 천년이요 천년이 하루로다.

어때요? 가장 불교적이고 기독교적인 말 아닙니까.

이게 지혜거든요. 똑같은 말인데도 우물우물 하지말고 묻자마자

턱 나와야 되는거라. 그 사람이 처음 얘기할 때 제가 숨도 쉬지 않고

"하루가 천년이요 천년이 하루로다"

하니까 그분이 무릎을 탁 치면서,

고맙다고 절을 하면서 선물을 하나 줍디다.

이만한 곽에다가 담은건데 꺼내보니까 피리 같애요.

때가 새카맣게 묻어 있어요.

툴툴 털고 한번 불어보라고 그래서 불어보니까

참 신비한 소리가 납디다. 그게 무슨 피린지 압니까?

자기 스승이 죽을 때 남겨준 다리 뼈로 만든 뼈 피리였습니다.

티벳에서는 장례식이 우리하고 다릅니다.

사람이 죽으면 친척들이 메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피리를 불면은 새들이나 들짐승이 몰려와요.

올라가서는 시체를 눕혀놓고 발바닥부터 칼과 끌로 다 오려냅니다.

살을 다 뜯어냅니다. 그리곤 주먹밥처럼 만들어서 새에게 던져 줘요.

얼굴살까지 모든 살을 깨끗이 닦아 냅니다.

아마 자연환경에도 좋을 것 같애요.

화장한다든가 매장한다든가 하는 것보다훨씬 낫지요.

그렇게 자연에 다 돌려주고는 제일 튼튼한 뼈가 이 다리 뼈인데

제자라든가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선물로 줍니다.

그럼, 거기다가 구멍을 뚫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거나

다른 걸로 이용하게 됩니다.

이 분이 여섯 살 때 입적을 했는데 100년 전 사셨던 자기 스승이 죽으면서

물려준 피리에요. 그러니까 100년이 더 넘은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인데

자기가 근 60년 이상을 가지고 있다가..

얼마나 고마웠으면 그걸 제게 줬겠습니까?

여러분, 전도 잘하면 이렇게 뼈 피리도 얻게 됩니다.

아무 부담없이 받게 됩니다. 그것만 받은게 아닙니다.

그 분이 그 때 70이 되었으니까 하는 말이,

나도 얼마 안있으면 죽을텐데 죽게 되면은 자기 다리뼈 하나를 가지라고..

그래서 미래의 피리까지 얻게 된겁니다.

몇 년 전에 찾아갔더니 아직 세상 안 떠나셨어요.

서로 즐겁게 재회만 하고 왔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렀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진실된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보석같은 복음을 전하는데

그 받는 상급이 뼈 피리 뿐이겠습니까?

하늘나라에는 더 많은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그 사찰에서 제 일은 다 끝났지요. 그러고 내려왔습니다.

기차 타고 내려오다가 갑자기 그 젊은 청년이 준 쪽지가 생각나서

주소를 보니까 거기서 하루쯤 떨어진 마을이었습니다.

주소를 따라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어마어마한 큰 집이었습니다.

앞에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어요. 내가 잘못왔나 하고..

주소를 다시 봤어요. 맞길래 그 앞 초소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그 집이 맞다고 그래요. 이 사람을 아는가 했더니, 그 집 아들이라 그래요.

들어갔습니다. 그 부모들이 나와서 반가이 맞이해줘요.

부모가 그 지역에서 상당한 실력자였습니다.

저 보고 물어요.

- 뭐하시는 분이세요.

- 전 복음 전하는 기독교 목삽니다.

그 사람이 갑자기 눈이 뚱그래지면서 하는 말이

- 못 들은걸로 할테니까, 딴데 가서는 절대 이런 말 하지 마세요.

- 그럴줄 알고 이야기 했습니다.

당신은 비밀을 지켜줄거 같아 이야기했노라고 웃었더니 자기도 웃어요.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6개월 동안 티벳에서 세수한번 제대로 못하고 있던거

거기서 목욕도 하고 깨끗이 닦게 되었습니다.

며칠을 잘 대접받고 떠나게 됐는데.... 저는 그냥 그것으로 끝나는줄 알았어요.

그 뒤 3년 후에 하나님의 엄청난 이적을, 그 사람을 통해서 일어나게 하실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야기하지 못하고 3년 후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 집을 떠나 다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데 한 하루쯤 왔어요.

중간에 기차가 역에 서니까 사람들이 바뀌어 들어오는데 한 노인이

제 앞에 앉았습니다. 한 열 시간쯤 가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독일어 성경을

보고 있는데, 저녁나절 쯤 갑자기 이 노인의 입에서 놀랄만한 소리가 나왔습니다.

세상에, 저는 그런말 처음 들어봤어요. 그 중국 땅에서.. 그 오지에서.

"다쓰 하일리그 쉬리프트 다쉬 마르진"

독일어가 툭 튀어나온 겁니다.

성경이 하일리그 쉬리프트라는 독일어로 가죽 겉장에 금박지로 쓰였는데

그걸 읽은 거에요. 그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 이걸 한번 만져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얼마나 놀랐던지 얼른 건네줬습니다.

그 분이 그걸 만져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글썽글썽 해서 하는 말이

- 제가 50년 만에 이걸 다시 만져보는 겁니다.

#95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9편(공산당 이론가) 05/28 20:47 323 line

- 제가 이걸 50년 만에 다시 만나는 겁니다.

그분이 1940년대 상해대학 학생이었습니다.

아직 공산당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이었는데 그 때 자기가 주원래 밑에서

심복으로 일하면서 학생연맹을 주도했답니다. 맨날 데모나 하고 시위나하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한번은 자기 대학에 독일인 교수가 있었는데 그 분이

자기를 부르더래요.

- 이 사람아 자네 공부도 안하고 왜그렇게 맨날 싸움만 하는가?

- 우리 중국에는 공산주의가 필요합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하기 위해서 제가 이 일을 합니다.

했더니 그 분이 그렇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 나도 공산주의자였네.

나이 50이 되어서야 이게 위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전향했는데

진리라는 것은 천 년이 지나도 이천 년이 지나도 변치 않아야 되는데

이 공산주의는 벌써 맑스가 태어난지 100 년도 안되어갔고

벌써 수 차례 변질되었고 지금 살아있는 스탈린이나 레닌이나

그 사람들은 가짜 공산주의자들이다. 진짜가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 그럼, 뭐가 진리입니까?

하고 얘기를 했더니 그 교수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게나 하고

준 책이 바로 내가 가졌던 그 책과 똑같은 고딕체로씌어진 성경이었습니다.

가져가서 읽어보니까 자기 마음에 안들지요.

혈기 왕성한 20대 였는데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오른편 뺨을 때리면 왼편 뺨을 대고.... 도저히 맞지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도로 갖다 줍니다.

이건 우리하고 안맞습니다.

우리 중국 인민을 위해서는 이걸로 안됩니다. 우린 싸워야 됩니다.

그러고는 성경을 던져줬습니다.

그 때 그 교수가 눈물이 글썽글썽 하면서 하는 말이

- 이 사람아! 국가 지도자가, 사회 지도자가 잘못된 진리를 쫓아가면은

그 민족과 그 사회는 망하게 되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울더래요.

그래도 자기는 그거 안하겠다 하고 열심히 혁명운동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과연 1949년에 중국이 통일되고 자기도 그 공로로 인해서 주원래의

보좌관이 되었다가 60년대 들어와서는 교육장까지 맡은 공산주의 이론가로

출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걸로 끝났으면 몰랐지요.

1966년에 문화혁명이란 것이 일어납니다.

그 때 완전히 파괴됩니다. 개혁파들.. 대표적인 유서기 주석이 처형당했지요.

등소평은 발가벗겨서 쫓겨났지요. 그 밑에 있던 개혁파들 전부 꽁꽁 묶여서

벙거지 씌워갖고 강제노동으로 쫓겨 납니다.

쫓겨나면서 부하들에게 온갖 돌팔매를 받고 침 뱉음을 당하면서

갑자기 옛날에 40년대에 자기 스승 생각이 나더랍니다.

그 독일인 교수가....

"지도자가 잘못된 진리를 따라가면 너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온 민족도 망한다"

기가 막히더랍니다.

10 여년간을 강제노동소에 있다가 등소평이가 집권을 하면서 자기도 복권이 됩니다.

등소평이가 같이 일하자고 이 사람을 불렀답니다. 그 때 이 사람은 공산주의에

완전히 환멸을 느껴서 못하겠다고 하고 낙향해서 고향에서 살던 때였습니다.

그럴 때 절 만난 겁니다.자기 집이 가까우니까

- 선생님 우리 집에 며칠 유하시면 안되겠습니까?

제가 좀 의논 드릴 것이 있습니다.

- 아, 그래요.

저도 뭐, 갈 때는 많지만 오라는 데는 없었지요.

그러니까 아무데나 오라는데는 서슴치 않고 갔습니다.

자기 집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두 손을 모으고는

- 선생님! 제게 글좀 가르쳐 주시요.

- 아니, 당신은 독일어도 이렇게 잘하고

상해대학 총장까지 지낸 학자인데 나한테 배울게 뭐가 있습니까?

- 그것이 다 허삽니다. 제가 50 년을 헛살았습니다.

내 나이 70 인데 50 년을 헛 살았습니다.

나를 스무살 난 학생으로 보시고 가르쳐 주시요.

전 공산주의 운동하면서 50년을 완전히 헛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간 다 빼고 머리 하얀 스무살 된 학생으로 봐주시오.

제가 선생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날부터 그 집에서 거의 반년 가까이를 유하면서

나는 그 분에게 성경을 가르쳐주고, 저는 그 분에게

아주 정확한 중국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주 좋은 조건이 되었지요.

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 변화가 뭔지 압니까?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겁니다.

들은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못살겠다는 겁니다.

그 동네가 팔백 호 이상되는 동넨데 인구가 이 천여명 되었습니다.

이삼십대 청년들이 한 사백명 가량 되었습니다.

그 분이 하는 말이 노인들은 빼놓고 우선 젊은 사람들만 변화시켜 놓으면

어른들은 자연히 따라올거라고.

그 집 뜰이 굉장히 넓은데 거기다가 지붕만 대충 해놓고는 이삼십대 청년들을

모두 모아놓고 매일 저녁 야간 성경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그 분이 낮에는 나하고 공부하고 밤에는자기가 청년들하고 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한 달, 두 달, 세 달이 지나는데 놀라운 역사가 벌어집니다.

중국 사람들은 술을 잘 먹습니다. 담배를 지독하게 피웁니다.

술 먹고 담배 피우게 되면 뭐합니까? 노름하게 됩니다.

노름하고 나면 뭐합니까? 잃었니, 땄니 하면서 싸우게 됩니다.

모두 난장판이에요. 특히 겨울에 되면 일을 안하게 되면은 난리납니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하고 나니까 술이 끊어지지요. 담배가 끊어지지요.

술 팔러 온 사람이 이상한 동네가 되어버렸다고 그래요. 술을 안먹으니까.

그런데 그 소문이 지역 당에 까지 났습니다.

저 동네 좀 이상해졌다는 거지요. 그래서 당에서 확인을 하러 왔습니다.

와보니까 매일 저녁에 모여서 공부를 하거든.

거기 뭐라고 쓰였나 하면은 '진리학사'라고 쓰붙여 놨어요.

그걸 보고 진리라는 것은 모택동 사회주의니까

아! 정말 이건 모범적인 마을이라고 하면서

표창해야 되겠다고 돌아갔습니다.

'진리학사' 라는 명칭으로 정식 허가가 났습니다.

청년들이 달라지니까 예의가 생기게 됩니다. 어른을 공대합니다.

이 공산주의라는게 어른, 아이 없는게 공산주의 거든요.

아무나 보고 동무라 그러지않습니까. 위, 아래가 없어요.

그런데 복음을 받아들에게 되니까 부모를 공경하게 됩니다.

어른들에게 공손해지게 된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엄하게 교육이 됩니다.

동네가 확 달라졌어요.

처음에는 다리 같은게 부서졌으면 당에서 다리 만들어주기를 기다렸는데

이제는 자기들 스스로 합니다. 당에서 와보니 좋거든요.

전에는 맨날 투정하더니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모든 것을 하니까

정말 모범적인 마을이라 그래서 표창까지 받았어요.

예수 믿고 당에서 표창받는 건 처음 봤어요.

변화가 되긴 되었는데 그래도 뭔가가 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덟 살 먹은 한 아이가 절도죄로 인민재판에 불려나왔습니다.

거기는 마을에 규율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지은 절도라든가 그런 사건들은

경찰서까지 가지 않고 마을에서 촌장하고 위에 사람들이 모여서 유죌로 동의하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게 소위 말하는 인민재판이지요.

유죄로 판결이 나면은 나이만큼 두들겨 팹니다.

오십 살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볼기짝을 오십 대를 때립니다.

나이 많이 먹고도 정신 못 차렸으면 많이 맞으라 그런 뜻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여덟 살 난 애가 절도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절도의 사유는 달걀 두 개를 훔친 죄입니다. 그거 절도거든요.

도둑질은 도둑질이니까 애가 여덟 살을 긴 몽둥이로 맞아야 되는데

저도 명예 촌장 자격으로 그 재판에 참석을 했습니다.

제가 촌장의 선생이니까 명예 촌장이 된거지요.

모두 동의해서 벌을 내리자고 결정이 났어요. 그래서 제가

내가 한 마디 해도 되겠는가 했더니 하라고 그래요.

- 법이란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만약 법으로서 사람을 다 죽이게 되면

나중에 법 지킬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은가?

가만 들어보니까 말이 옳거든요. 모두 그렇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사람을 살려야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한번 얘기해보자고..

내가 다시 이 아이 하고 대화를 한번 나눠보겠다 그랬어요.

그 아이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 얘야, 너 계란 두 개를 훔쳐 먹었냐?

- 예.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그 때가 저녁 때였습니다.

- 그럼 너 점심 먹었냐?

- 안 먹었습니다.

- 아침은?

- 안 먹었습니다.

- 어제 저녁은? 아무말 못해요.

- 어제 점심은? 아무말 못합니다.

애가 이틀 굶고 나니까 지나가다가 이웃집에 계란 낳아놓은걸 보고

그냥 먹은겁니다. 그말 듣고 제가 할 말을 잃었어요.

제가 모인 사람들을 향해 물었습니다.

- 자, 어떤 사회단체에서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

- 단체 장이 집니다.

-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

- 촌장입니다.

- 그렇다면 여기서 촌장보다 더 높은 사람 누구냐?

- 선생입니다.

명예촌장이니까....항상 명예짜 붙으면 더 높아요. 중국에선.

- 그럼 됐다. 이 재판에서 피고는 나다.

내가 이 동네 어른으로서 이 아이가 이렇게 이틀 동안 굶을 정도로 모르고

있었다는건 어른인 나의 책임이다.

어느 아이도 이틀 굶고 지나가다가 계란 안먹을 아이가 없다.

이 아이가 그토록 굶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은 어른의 책임이다.

그러니까 내 나이대로 때려라.

그러고는 제가 형틀 위에다 엎어졌습니다. 다들 눈이 뚱그래졌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애 엄마가 튀어나와서 울면서 얘기를 합니다.

- 아닙니다.

제가 밭일 하는라고 너무 바빠서 이 애에게 밥을 못해줬습니다.

제 책임입니다.

그 때서야 그 여자 남편되는 애 아버지가 엉엉 울면서 나와서 꿇어앉아요.

- 그게 아닙니다. 제 잘못입니다.

사실은 제가 노름병을 못 고쳐서 집에 있는 쌀까지 다 팔고

그래서 그렇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절 때리세요.

그 마을에 노름이 없으졌으니까 이웃마을까지 가서 노름을 하다가

재산을 다 날린 겁니다.

그러는데 이번엔 이웃집에 있는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이

- 그런줄도 모르고 있은 우리가 잘못입니다.

이웃에서 그렇게 불행한 일이 벌어진 것을 모르고 있은 우리가 책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법입니다. 뭔지 압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그 어떤 더러운 사람도 거리끼지 않습니다.

어떤 허물도 아름답게 가리워줄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제가 그 일을 보고는 안되겠다. 이 마을이 물질적으로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되겠다 하고 생각하던 차에

거기서 나오는 축산물이 있었습니다.

뭐냐하니까 소, 돼지, 닭들인데.

그걸 가지고 어디다 파는지 봤더니

거기서 아주 가까운 시장에다 내다파는데 값이 아주 적어요.

그래서 틀림없이 어딘가는 좀 많이 주는데가 있겠다 싶어서 좀 멀리 나가봤습니다.

거기서 한 300km 떨어진 곳에는 아주 큰 시장이 있는데

거기서는 이웃시장에 파는 것보다 세 배나 비쌉니다.

그래서 거기다 팔면 되지 않겠느냐 했더니

거기까지 갈려면 가다가 짐승들이 다 죽을거라는 거에요.

왜, 죽냐니까. 삼백 킬로 짐승들 끌고가면 다 죽을거 아니냐는 거에요.

그러지 말고 트럭 불러서 갖다주면 몇 시간이면 갖다 줄거 아니냐?

이 사람들은 그 생각을 못한 거에요.

제대로 공산주의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공산주의면 모아서 팔고 해야되는데 다 자기것만 팔고 오니까 안된거지요.

당장 큰 트럭 두 대를 빌려서 일차적으로

돼지, 소를 모아서 팔러가게된겁니다.

첫 사업이니까 나보고도 가자고 그래요. 그럼 가자고 해서

한 차에 세 명씩 여섯 명이 타고 뒤에는 소와 돼지를 잔뜩 싣고 떠났습니다.

한참 가니까 중간쯤 기름넣는 곳이 있어요.

거기서 기름도 넣고 쉬고 있는데

갑자기 어깨가 떡 벌어지고 힘이 센 듯한 청년들 몇이 오더니

- 이 물건 뭐 할거요?

- 이거 우리들이 저기 시장 가지고 가서 팔겁니다.

요만한 쪽지를 주면서 이 상점에 가서 팔라 그래요.

값만 맞으면 팔지요. 하고 들고 왔습니다.

시장에 도착했어요. 굉장히 큰 시장인데..

사업을 제대로 할려면 물건을 팔때는 값을 제일 많이 주는데 팔고

살 때는 제일 싼데서 사야 되잖아요.

기본만 알면 되니까.

찾다보니까 어디가 제일 많이 주길래 거기서 팔았습니다.

조금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준 쪽지의 상점에서는 값을 싸게 불러서

안팔고 제일 많이 주는데서 팔았지요.

중국에는 수표 거래가 없습니다.

전부 현찰로 돈을 받으니까 큰 자루에 두 자루가 꽉 찼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큰 돈을 보니까 이야~ 하면서 감탄합니다.

앞에 두 자루를 싣고 뒤 차는 호위를 하면서 두 대가 빈 차로 가면서

휴게소 가서 저녁도 좀 잘 먹고 기름 넣고 들어가야 되겠다 하고 갔습니다.

웬걸, 도중에 한 20 여명 되는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들이 빙 둘러섭니다.

나는 뒷 차 타고 있었는데 뒤에서 보니까 옥신각신 해요.

가보니까 돈을 내라는 거에요.

통행세를....

중국에는 두 가지 세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식적인 세력이고 또 하나는 비공식적인 세력이 있는데

비공식적인 세력한테 걸린 겁니다.

동네 사람들은 안된다 그러고 난리났지요.

공동재산인데 얼마 정해서 떼 줄 수도 없고 해서 안뺏길려고

다투는데 제가 가서 물었습니다.

- 뭣 때문에 그럽니까?

두목 되는 사람이 앞에 나와서

- 우리가 돈이 필요해서 그럽니다.

- 뭐하는데 쓰실라고 그렇게 필요합니까?

- 뭐, 좋은 일에 쓸라고 그러니까 내놓으시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 내가 보는 성경책에는 누가 부탁하거든

거절하지 말라 그랬으니까 드려야지요.

돈 가져 오라고 해서 두 자루 몽땅 다 줘버렸습니다.

다 가져 가라고.. 그렇지 않아요?

아, 줄바에야 다 주지....

어떻게 계산해서 줄 수도 없잖아요.

그 많은 돈을 헤아릴 수도 없고 그래서 다 가지고 가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같이 갔던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란거지요.

깍아서 조금 줘야지.

그걸 다 주는 법이 어디 있냐는 거에요.

저 분은 지혜는 있는거 같은데 장사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요.

제 첫번째 제자인 촌장인 그분도

이름이 노학이란 분인데 얼굴이 새카맣게 된거에요.

가면 이제 동네 사람들 한테 맞아 죽었다 싶은 거지요.

다 주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편안하잖아요.

만약, 안주려고 하다가 싸움이라도 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데 우선 사람을 편안하게 해야지요.

돈 다 주고 나면은 그 사람이 우리한테 시비 걸리 없지않습니까?

그러고 한 30분쯤 달리는데 지프차 두대가 앞에 와서 끼익 서요.

#96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10편(천국의 소인) 05/28 20:50 311 line

지프차 두 대가 앞에 와서 끼익 서요.

그 두목하고 아까 그 사람들이에요.

- 왜 쫓아 왔소?

돈 보따리를 도로 내줘요.

- 왜, 이거 도로 가져왔소?

-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해서 내가 이거 못받겠소.

- 무슨, 예감이 이상하길래....?

- 다른 사람은 두들겨 맞아야 돈을 주고, 피를 봐야 돈을 주는데

당신은 서슴치 않고 그것도 깍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몽땅 다 주니까

아무래도 예감이 이상해서 못받겠소.

그러니까, 기분 나빠서 이거 못받겠소. 도로 가져가시오.

그 어떡합니까 도로 주는데, 그래서 받아 가지고 다시 차를 타고 가는데

한 얼마쯤 가는데 갑자기 앞 차가 딱 서요.

막 뛰어내리는 거에요.

무슨 일 났는가 하고 내렸더니.

-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 왜?

- 돈이 더 왔습니다. 우리 것보다 더 많이 들어 있어요.

- 저 놈들이 이걸 핑계삼아서 우릴 두들겨 패고 차까지 뺏을려는거

아닌지 모른다고, 이거 어떻게 하지요?

하고 안절부절 해요.

- 그래, 그럼 어떡하지.

- 이거 도로 갖다줍시다. 남의 돈 갖다 줍시다.

- 그렇지, 남의 돈 가져오면 안되지. 그 옳은 말이다.

그럼 돌아가서 갖다주자.

도로 그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가니까

- 왜, 왔소?

- 돈이 더 많아져서 그 돈 돌려주려고 왔습니다.

-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

남은 억지로 뺏어가는 판인데. 더 있으면 그냥 가면되지....

- 왜 돈을 더 넣었소?

- 제가 선생을 보니까 아무래도 제가 그 돈을 가지고 있는것 보다는

며칠간 번 건데, 선생께서 그 돈을 쓰시면 훨씬 더 유익할것 같아서

평생 한번 사람 노릇 해볼려고 그랬습니다. 그냥 가져가시오.

그 어떡합니까? 자꾸 가져가라는거. 그냥 들고왔습니다.

집에 오니까 온 동네 사람들 난리가 났지요.

앞으로 소 팔고, 돼지 팔 때는 선생 갑시다.

이건 판 돈 보다 들어오는 돈이 더 많다는 거지요.

집에 들어왔습니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는데 갑자기

노학이라는 그 노인 제자가 두 손을 벌리고는 앞 마당에 콱 엎드러져요.

그러고는 막 엉엉 웁니다. 놀라서

당신 왜 이러냐고 그랬더니

- 선생님, 날 그냥 발로 콱콱 밟아서 때려 주시요.

- 왜 그럽니까?

- 제가 가룟유답니다.

- 아, 가룟유다가 왜 살아왔냐? 갑자기 왜 그럽니까?

- 사실은 제가 아까 선생님을 의심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원망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원망하고

의심한다는 것은 배신하는 겁니다. 제가 가룟유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를 때려 주십시오. 한번 배신하면 열번, 스무번

배신할 수 있는데.. 제가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선생님, 그 뜻을 제가 몰랐습니다.

- 내 뜻이 뭔데?

- 선생님은 먼저 사람 다치지 않기 위해서 아닙니까.

돈이 중요한게 아니고.. 몽땅 다 주면 절대 해칠리가 없지 않습니까.

깍자,깍자 하니까 두들겨 맞고 치고 그렇게 되는거 아닙니까.

제가 선생님 뜻을 몰랐습니다.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사람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 살기 등등한 도둑에게는 전부 다 줄 때

그 사람들 기가 막혀서 손을 못댄단 말이에요.

여러분, 바로 그렇습니다.

아무리 물질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사람만큼 물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사업하면서 왜 실패하는지 압니까?

사람을 경시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을 경시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어요.

"네가 아무리 곳간에 보물을 많이 쌓아놓았을지라도

오늘밤 네 생명을 거둬가면 그 보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뇨"

여러분, 기독교 경제학 1대 원칙이 "사람 중시" 입니다.

그게 사업의 비결인겁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통곡을 하면서 그래요.

그래서 제가.. 아니라고 나는 이렇게 훌륭한 - 정말 회개 금방하는 -

제자가 있어서 오히려 고맙다고...

그러고는 며칠 있는데 웬 손님이 찾아왔어요.

누군지 알아요?

그 두목이 저 한테 찾아온 겁니다.

와서는 대뜸 저한테 무릎을 꿇더니 하는 말이

- 아무리 봐도 선생께서는 무술의 고수 같은데

한 수 가르쳐 주십사고 찾아왔습니다.

뭐 눈에는 뭐가 보인다고..

싸움꾼 눈에는 싸움꾼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에요.

자기가 여섯 살때 부턴가, 일곱 살 때부터 그 세계에 들어왔답니다.

어릴 때 부터 소매치기부터 시작해갔고 들어와서 한 30년 가까이 그 세계에서

기반을 다져서, 하여간에 싸움이라면 자기를 따를 사람이 없다나 그러면서

사람도 자기 손으로 수십 명을 죽였고 그렇게 했는데 며칠 전 선생님을

딱 만나보니까 보통 고수가 아닌데 한 수 좀 가르쳐 주시오.

그러니까 그 노학이란 분이 하는 말이

- 큰 스승이 그렇게 자네가 한 마디 한다고 들어 주겠는가,

자네 정승을 보이게.

내가 무슨 힘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 선생은 아무 힘 없으니까 그냥 가거라 그렇게는 못했던 모양이요.

그 노인도 아주 근엄하게 물리쳤지요.

첫 날은 갑디다. 그런데 다음 주 또 왔어요.

- 당장 제가 제자로 삼아달라기는 너무 고귀하신 분이고

제가 가끔 놀러 올테니까 한 수 좀 가르쳐 줬으면 좋겠습니다.

생각나실 때 마다 한번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두 번째 제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옛날 공산당 이론가에다가 도둑 두목까지 저한테 몰려오게 된 겁니다.

이제 본래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거기는 식구가 참 많습니다.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고민거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혼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이혼 상담하러 오는 사람도 없고

자식 걱정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딱 하나 있어요. 배고픈 겁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는 말이

- 선생님, 천국가면.. 밥 세끼 먹는 곳이 천국이지요.

- 천국은 밥 세끼 반드시 먹는 곳이다.

그러면 아멘 합니다. 여기는 아무도 아멘 안하네.

세상을 떠날 때 제가 물어봅니다.

-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가장 하고싶고 원하는 소망이 뭐냐?

- 딱 한번만 배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두 끼도 아니고 세 끼도 아니고 딱한 끼만....

그러나, 그렇게 해주지 못합니다. 제 대답은

- 조금 있다가 천국 가면은 얼마든지 첫 날은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실컷 먹으라. 거기가면 뭐든지 있다. 즐기라고....

여러분, 이 병은 중국 말로 '마팡빙' 이라 그럽니다.

마귀의 바람으로 얻은 병이라 그래요.

그렇다면 이 병은 절대 낫지 않는 병이라는 거지요.

사실, 이 병이 나면은 영양이 충분히 섭취 되어야 되고

약이 충분히 공급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야 스톱이 되어서

계속 이겨나가는데.... 그렇지 못하면 계속 험악하게 온 몸이

썩어서 들어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떨어지고, 손목이 잘라지고, 팔뚝이 잘라지고,

또 이 어깨까지 다 잘라집니다. 두 다리까지 다 잘라지고 몸퉁이와

머리만 남게 됩니다. 그 머리에 눈알까지 그냥 붙어 있으면 좋은데

눈꺼풀이 썩게 되면 눈알까지 다 떨어져 버립니다.

코가 떨어지고 귀가 떨어지고 얼굴에는 아무것도 남는게 없습니다.

여기서 저기로 갈려면 걸어가야 되는데 발이 없으니까 기어갑니다.

뭘로 깁니까? 배로 밖에 길 수 없습니다.

양팔이 없고 두 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세상을 떠날 날이 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 모양이요.

죽을 때 되면은 저 한테로 와서 제 옆에서 죽기를 원합니다.

저는 가는 곳마다 사택이 많습니다.

왜냐하니까 이십명이나 삼십명이 되는 팔다리 없는 사람들

제가 매일 하루씩 돌아가면서 잡니다.

여기서 하룻밤 자고 저기서 하룻밤 잡니다.

자다보면 누가 변을 보게 되면 제가 일어나서 갖다가 변도 뉘고

소변도 보게하고 돌아옵니다. 그렇게 자다가 몇 번씩 깨다가

어떤 날은 하도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엎어져서 자니까

그 죽게 된 것을 아는 그 사람이.... 사람 죽을 때는

꼭 압니다. 제가 그걸 늘 경험했어요.

배로 기어서 제가 있는 곳으로 옵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왔겠지요. 그러다가는 지쳐서

제가 이렇게 자면은 제 팔뚝을 베고서 쓰러져 잡니다.

그러다가 아침에 깨니까 여기 세명, 저기 세명, 또 아래에다

몇 명이 누워갔고 죽어있었습니다. 다 세상을 떠났어요.

제가 그걸 보고는 너무 기가막혀서 그 때 부터는 밤에 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니까, 그 사람들 마지막 소원이, 앉아서 하나님 앞에 가는 겁니다.

엎어지니까 앉아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두 다리가 없고 팔이 없으니까 지탱할 수 없습니다.

- 하나님 앞에 가는데 누워서 갈 수 없으니까 저를 좀 안아 주세요.

그래서 안겨서 세상을 떠납니다.

한 번은 제가 다른 마을에 갔다가 몇 달 만에 돌아오는데 거기 촌장이

그럽니다.

-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

한 사람이 있는데 죽었나 싶어서 파묻을려고 들고 나오면

벌떡 일어난다는 거에요. 또 죽었나하고 보면은 일어나고

그래서, 너 왜 안죽냐? 하고 물었더니

- 선생님 올 때까지는 못 죽는다는 거에요.

그래 제가 도착하니까 빨리 저 사람한테 가보라고.

벌써 다 썩었는데 안죽는다는 거요. 그래서 가봤습니다.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요.

- 왜, 날 그렇게 찾나?

- 선생님, 제가 하나님 나라에 가기 전에 딱 세 가지만

물어보고 가야되겠습니다.

- 뭐냐?

- 나같이 이렇게 추한데, 더러운데....

우리 부모님도 날 버렸는데.... 하나님께서 외면하면 어떡합니까?

- 절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널 기쁘게 받아 줄거다.

진짜 부모님은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다.

- 두 번째는 그래도 내가 하나님 모르는데

하나님 날 알 수도 없으니까...

선생님 이름 써서 소개장을 하나 써주시오.

그러면, 제가 선생 이름 쓰인 소개장 가슴에 품고 가서 보이겠습니다.

여러분, 이런 큰 영광이 어디있습니까.

아, 내 이름 쓴 소개장 가져가서

"하나님 이 사람 천국 갈 자격 있으니 받아주시오"

그렇게 쓰달라는 겁니다.

그 때 제가 그랬습니다.

- 그거 필요없다.

하나님 벌써 알고 계신다.

당신 요말 하는거 까지 지금 듣고 계신다.

- 그렇지만 내가 너무 이렇게 몰골이 사나운데

거기가서 하나님하고 손 붙잡고 한번 손이라도 잡아야 되는데

이거 손이 없어서 어떡하지요?

- 그런 염려하지 마라.

당신이 천국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변화된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팔이 생기고 손가락이 생기고 눈이 생기고 머리가 생기고

발이 생긴다. 그게 천국이다.

여러분, 천국이 바로 그렇습니다.

천국에는 병이 없습니다. 늙지 않습니다.

영원히 건강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는 곳입니다.

그렇게 변화되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가장 거룩한 모습으로 의로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얼마나 좋은 곳입니까?

그 때 이 사람이 갑자기.... 요만큼 잘라진 팔뚝이 위로 올라갑니다.

만세 부르듯이 올라가면서

- 아! 선생님.

날 놓아주세요.

하늘이 열리면서 빛이 나오면서 큰 손이 제 손을 잡습니다.

그러고는 세상 떠났습니다. 그 세 마디 외치고.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옆에 있는 사람까지 다 은혜를 받는 겁니다.

저는 죽음을 통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전 늘 하나님 나라 가는 모습을 보면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고 아무도 보지 않으려고

외면당했던 그 사람이지만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사람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자가 세례요한인데 그 보다 더 큰 자는 누구냐?

천국에서 제일 적은 자가 그 보다 더 크다.

천국에 들어서면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그걸 믿지 않아요. 이 사람들이.

- 당신, 천국에 가면 모택동 동지보다 더 높다고 그랬더니

- 아-! 그럴리가 있겠냐고?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보면은 그곳은 지옥같은 곳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옥같은 곳에서 천국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와보니까 한 달여 되도록 지나면서 이 곳을 보니까

이곳은 정말 제 눈으로 보기에 천국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 사는 분들도 다들 천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과연 하나님 앞에 나도 천삽니다. 그렇게 자신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천국에 천사가 없다면 그건 천국이 아니지요.

천국에 천사가 없다면 그게 어떻게 천국일 수 있습니까?

그건 지옥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어떤 오아시스인지 신기루인지 모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천국같은 모습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이거 조심해야 됩니다.

사람이 악하고 악하게 되면 아무리 에덴동산

같은 곳도 지옥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미국 땅 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먹을 것 풍부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아마 그 사람들 여기 와보면 여기가 천국이라 그럴겁니다. 확실해요.

그런데 그 천국 같은 곳에서 과연 여러분 천국 같은 생활 하십니까?

여러분, 선교해야 되겠다. 땅끝까지 전도해야 된다 하지만은

여러분, 가장 귀한 전도가 뭔지 압니까?

제가 그 비결부터 한번 가르켜 드릴께요.

어떻게 하면 전세계를 복음화 시킬 수 있는가?

#97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11편(신비로운하나님 05/28 20:54 298 line

어떻게 하면 전세계를 복음화 시킬 수 있는가?

이 미국 땅을 전부 다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제가 그 예를 들지요.

로마가 기독교국이 되기 전에 아주 다신교였습니다.

로마가 국교로 될 그 당시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에 기독교 인구는

전 인구의 3%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황제 칙령이 내려서 기독교 국가로 변했습니다.

왜 그렇게 된지 압니까?

당시에 호화찬란했던 그 로마 문명에 물질의 부가 놀랄만큼 컸습니다.

요새 미국 같을지 모릅니다. 정말 풍부했습니다.

노예도 많았고 부자도 참 잘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왕족들 귀족들이 아들, 딸을 시집장가

보낼려고 가만 보니까....

대개 격이 맞게 혼인을 시키지 않습니까?

재벌집은 재벌집하고, 권력층은 권력층하고

찾아보니까 마땅한 며느리감이 안보이는 겁니다.

귀족집의 딸, 왕족집의 딸들 보니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아주 더러운 처녀들입니다.

제대로 처녀같은 처녀가 없는 겁니다.

사윗감 고를려니까 또 그래요.

그래서 왕족들 귀족들이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러면 이 땅에서 정말 순결하고 깨끗한 며느리감이 어디있는가

하고 찾았더니놀랍게도 그렇게 박해받고

업신여김 받던 그리스도인 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딸들은 순결하다 깨끗하다.

몸만 깨끗한 것이 아니고 마음도 깨긋하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깨끗하다.

그렇게 소문이 난겁니다.

과연, 만나보니 그렇거든요.

귀족집에서 왕족집에서 혼사를 이루기 위해 청혼을 합니다.

저쪽에서는 안할려고 그러지요. 그렇지만 강제로라도 데리고 온겁니다.

딸을 데려오고 또 사위도 삼게 되고 그렇게 된겁니다.

강제로 결혼을 한 이 그리스도인 처녀가 귀족 집, 왕족집에 시집을 와서

아이를 낳게 됩니다. 아이를 뱃속에 갖게 되었을 때부터

하나님께 기도 합니다. 남편은 믿지 않지만

우리 시부모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지만

이 아기만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뱃속에서 부터 기도했습니다.

아기는 자기도 모르게 그리스도인이 되버린 겁니다.

그렇게 해서 한 대가 지나고, 두 대가 지나고, 삼 대....

이렇게 백 몇 년이 지나니까

당시 왕족, 귀족이 전부 그리스도인이 되버린겁니다.

황제까지도, 황후까지도 그리스도인이 되버렸습니다.

그래서 국교가 된겁니다.

완전히 복음화가 이루어 졌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와 똑같으리라고 봅니다.

여러분 이 성경에서는 과거라는 것이 없습니다. 항상 현재입니다.

항상 같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세계 복음화를 이루는 것은 선교사가 가서 할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하고

세상 사람들 보기에 깨끗하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완전 복음화는 문제 없으리라 봅니다.

그렇지 않아요?

온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딸은 아름답고 깨끗하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아들은 훌륭한 사윗감이다. 그렇게 되니까 얼마나

쉬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여러분 자녀가 앞으로 이 땅을 복음화 하느냐 못하느냐는

여기에 달렸습니다. 그것은 먼저 여러분 부모들이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먼저 인격자가 된 후에 한 단계 높은 거라는 겁니다.

이 사탄의 이 유혹은 타협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것은 또한 자기자신을 불신하고 하나님에 대한 그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말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그런 유혹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복종으로 대항해서이겼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당 간부에게 나도 그런 타협안을 받아봤습니다.

당 간부가 하는 말이

- 당신이 지금 하는 일은 내가 눈 감아 주니까 가능한데

당신은 지금 굉장한 세력과 싸우고 있는데

1 대 16억으로 싸운다는 거에요.

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중국 공산당하고 나하고 싸운다는 거요.

왜냐하니까 중국 공산당이 하지 말라는걸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대한 반대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러지 말고 내가 당신이 건강한 사람 마을에 가서

일 하는 것은 보호해주고 절대적으로 눈감아 줄 테니까,

거기서는 나오는게 어떻겠는가?

그러면 당신이 가서 배고프게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앞으로 당신 가만 보니까 그 병에 전염되어 곤란할

수 도 있으니까 어떻게 하겠느냐고..

참 기가막힌 타협안입니다. 요런게 딱 걸리거든요.

제가 한참 생각하는 척 하면서 그랬습니다.

- 이 보시라고, 내가 여기온 것은 성한 사람들 위해서 여기 온게 아니라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위해서 왔는데, 내 목적한 바가 그건데 나는 이건

안해도 좋아. 이 성한 사람들 위해서는 딴 사람이 얼마든지 와서 할 테니까

여기 놔두고 난 그냥 거기 들어가 있겠다고.

그랬더니 그 사람 하는 말이 나중에 후회 할 건데 하면서 협박도 하면서

물러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이같이 사탄으로 부터 시험받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그렇게 말씀대로 하지 말고, 너무 그렇게 성경적으로 신앙대로

따라가지 말고, 좀 적당하게 타협하면서도 따라갈 수 있지 않느냐!

이거얼마나 엄청난 말입니까? 적당히 하면은......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때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세가지 유혹이라는 것은 항상 우리가 당할 것을

예수님이 표본으로 받은 유혹인줄 압니다.

우리 인생 살아가면서 이같은 일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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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제가 기차를 타고 다른 성으로 이동하는데 긴 시간을 여행하니까

또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국 기차에 대해서 좀 이야기 해야되겠네요.

사람이 꽤 많습니다.꽉 차요. 화장실 까지 꽉 찹니다.

그러니까 화장실 볼일 보러 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탈 때 깡통을 하나 큼직한걸로 들고 탑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다 그래요. 그 자리에서 일볼거 다 보고

창문 열고 휙 던져 버리면 되니까.... 떨구고는 가고 급하면

또 볼일 보고 그렇게 갑니다.

그런데 문 열 때 좀 조심해야 되지요.

앞 칸에서 잘못 던져 버리면 그 다음 칸으로 떨어지니까.

처음엔 제가 그걸 몰랐는데

중국 사람이 문을 열 때 상당히 신중하게 살며시 열길래

저 사람이 느려서 그런가 보다 했더니 아니에요.

금방 탁 닫고 나니까 밖에서 탁 떨어지는 소리가 나요.

그렇게 기차를 이용하는데 북경에서 타면은 한 8일간을 와야 됩니다.

그러니 차 안에 냄새는 고약하지요.

여자는 여자대로 이렇게 앉아서 싸고..그러니까

거기는 꼭 목욕탕 같애요. 왜냐하면 일어나면 또 자리 뺏기거든

누가 와서 앉으니까 나갈 수도 없고 들어올 수도 없고 꼼짝없이 앉아있게

됩니다.

그런 판인데 지루하니까 내가 성경을 읽고 있었어요.

앞에 웬 아주머니가 타고 앉았는데 자꾸 날 힐끔힐끔 보는 거요.

갑자기 말문을 턱 열더니

- 아, 선생 그 뭐가재미있어서 하루종일 봅니까?

중국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산다 그러면 좋아합니다.

- 아, 이 책에는 잘 먹고 잘 사는 얘기가 있어서 봅니다.

- 아, 그러면 나도 좀 들려달라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됩니까.

중국에는 전도를 함부로 못합니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물으면 대답은 할 수 있거든요.

그래요 그럼 내 얘기 하지요. 얼마나 갑니까 했더니 하루 더 간데요.

그럼 시간은 충분하니까 얘기 하겠다고 , 이제 그 때부터 성경공부

시작한겁니다. 창세기 부터 시작했어요.

에덴의 동산이 나오고..... 이야기 성경으로 쭉 풀어 나갔는데

구약이 끝나기 전에 내릴 때가 되었어요. 선생, 다음에 언제 만나면

계속 합시다 하고 그 아주머니가 내렸어요. 이름도 성도 모르고 헤어졌어요.

그 다음 해에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게 되었는데 이 기차가 가다가 도중에

그냥 섰어요. 몇 시간 후에 간다, 다음에 간다 말도 없이 섰어요.

그래서 기관사한테 물어보니까 내일 아침쯤 떠난다 그래요.

그 추운 때니까. 가서 저녁먹고 어디서 자고 들어로래요.

가차 안에는 불도 안 들어오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내렸습니다.

나도 내려서 어디가서 밥을 먹을까 하고 어영부영 하는데

저 쪽에서 막 소리를 치면서 부르는 소리가 나요.

난 여기 평생 처음 온 사람이니까, 나는 아니겠지 하고

음식점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웬 사람이 제 허리를 꽉 껴안아요.

보니까 웬 부인이에요.

- 당신, 누군데 이러오?

- 아니, 선생 날 모르겠소.

- 모르겠다고,

- 아, 그 때 저... 아담 이야기 해 주고 그런 사람 아니냐고..

가만 보니까 알듯 하기도 하고 잠시 만났던 사람이라

워낙 오래되어서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내 앞에 앉아서 이야기 듣던 그 아주머니에요.

나 만날라고 기차만 타면 맨날 첫칸부터 마지막 칸 까지

다 돌아다녔다는 거에요. 그래서 왜 그랬는가 했더니

이 사람이 이 성, 저 성을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 행상인이에요.

이 성에서 받아서는 저 성에 팔고, 여기것은 또 저기다 팔고

그렇게 한번 나가면 몇 달 씩 돌아다니는 사람인데

외부에서 온 행상인이 오면 얘기를 듣고 싶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오게 되면은 이야기를 잘 하는데

날 만난 이후로는 나한테 들은 성경 이야기만 한 거에요.

뭐라고 했냐니까?

아담이 하와하고 결혼했는데 첫 날 밤에 뭐가 잘못되서

큰 할아버지가 집에서 쫓아냈다고..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 나가니까 사람들이 자꾸 그 얘기를

하라고 그래서, 계속 하다보니까 이야기 밑천이 떨어진거에요.

날 만나서 들어야 계속 이어지는데....

그래서 기차만 타면 기차 안을 뒤지면서 찾았다는 거에요.

못만나니까 자기가 기도까지 했다고 그래요.

당신 하나님이 누군지 몰라도 좀 만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1년 만에 만난겁니다.

자기 집으로 가자고 그래요.

기차가 멈춰 선 그 동네가 바로 자기 집인 겁니다.

가니까 아,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는데 한 이 백명 가량이 몰려왔어요.

이 아주머니가 어디 나갔다 오면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으러

이 집으로 오는 거에요. 나한테 성경 이야기 듣고 나서는

그 때부터 일년 내내 그것만 이야기 한겁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듣고 또 다른 얘기 없냐고 할 판인데 절 만난 거지요.

잘 되었다고 선생이 직접하라고......

그러고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온 겁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쉬지않고 열 네 시간 성경공부를

그 때 처음 해봤습니다. 그날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아홉시 까지 모두 앉아서 제 얘기를 들어요.

창세기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야기 해 나가니까

자기들이 들었던 내용하고 좀 다르니까

- 그 아줌마 이야기 한거 틀렸지 않냐고....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사람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거기가 바로 교회가 되어 버렸어요.

세례도 안받고 성경도 모르던 사람이..

아담과 하와가 결혼해서 뭐가 잘못돼서 쫓겨났다고 이야기 했던 사람이

그 교회 지도자가 된겁니다.

성경을 하나 주면서 예전처럼 이야기 하지말고

그냥 처음부터 죽죽 읽어나가라고 그러다 보면 다 외워지니까

그렇게 하라고.

제게 몇 가지를 물어요.

사람 죽으면 어떻게 해줘야 되는지....

그냥 묻어니까 섭섭하더래요.

제가 어떻게 하라 그러고 기도문을 적어줬습니다.

또 젊은 애들이 혼인을 하는데 그냥 당서기 앞에 가서 선서 하는데

그게 좀 싱겁대요.

거기 갔다와서 뭔가 하나님 한테 알리는게 없냐고..

그래서 그것도 가르쳐 주고 기도문을 적어줬습니다.

세례라는게 있다니까 ....

그거 벼슬인데 받아야지요 합니다.

난 또 세례가 벼슬이라는 사람 처음 봤어요.

그래서 이거는 함부로 받는게 아니고 시험을 쳐야 한다 하니까

시험을 어떻게 치냐 해서... 당신 특별히 봐줘서 시험은 면제 하는데

성경을 처음 부터 끝까지 네 번 큰 소리로 소리내서 읽어라.

여러분, 바로 그렇습니다. 속으로 그냥 웅웅하고 읽는거 하고

소리내서 읽는거 하고 다릅니다. 한번 성경을 소리내서 읽어보면 전연 달라요.

마음 속으로 읽는 것, 두번 읽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게 네 번을 읽고, 마지막 한 번은 당신 친필로 한 권을 성경을 쓰라고.

그 때 무시험으로 세례를 주겠다. 그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겠다고. 자기는 자신 있다는 거에요.

기차타고 계속 읽어대면 되니까....

소리 크게 하면 다른 사람 시끄럽지 않냐고 했더니

소리내서 읽으면 옆에 사람 다 들으니까 자기가 이야기 책 읽어준다고

그러면 된다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교회가 하나 생기게 된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참 신비로워요.

이처럼 전도는 미루면 안됩니다. 당장에 해야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선이란 것은 미루면 안됩니다.

이 선행이라는거 내 돈 좀 벌면 하지요.

아, 지금 내가 몸이 피곤하니까 한 숨 자고 나서 하지요.

그 때는 벌써 늦었습니다.

선한 일과 사랑과 전도는 당장 해야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남편 눈치만 보고 있다가 다음에 기분 좋을 때 전도하지 그러고 있으면

이미 늦은 겁니다. 그 순간에 성령이 함께 역사하실지 어떻게 압니까?

여러분, 성령의 역사는 진실되게 행하는 자에게 반드시 나타납니다.

은혜의 역사도 진실되게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제가 혼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거 이야기하고 끝내야겠어요.

#98 최성식 (기쁨가득)

[간증] 김요석선교사 -마지막(사랑의파워) 05/28 20:56 205 line

제가 혼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그거 이야기하고 끝내야겠어요.

95년 12월인데,

집에 있는데 갑자기 배가 이상해요.

몇 시간을 계속 아픈 거에요. 저도 참을성이 있는 사람인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배가 아파요. 갑자기 생각에

아하! 이게 맹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맹장 걸릴리가 없는데 하고 생각을 하는데

아, 걸릴 이유가 딱 하나 있는 겁니다.

제가 그 사람들이 쓰러져서 제 팔을 베고 옆에서 죽을 때,

죽을 때되서 죽었는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굶어 죽었어요.

허기가 져서... 먹을게 없는 겁니다.

풀도 뜯다가 겨울이 되어서 말라버리니까 그것도 안되는 거에요.

그래서 생각하다가 옛날, 어른들 말에 땅만 파면 먹을게 있다고

그래서 땅을 한 번 파봤습니다. 한 오륙십 센티 팠더니 땅 속에서

보드라운 흙이 나와요.

제 생각에 갑자기 이게 밀가루 같다는 생각이 든겁니다. 그래서

그걸 반죽을 해갔고 마른 풀 하고 섞어서 자꾸 몇 시간을 반죽

했더니 쫄깃쫄깃 해져요. 그걸 갖다가 수제비를 만들었어요.

그걸 줬더니, 딴 사람은 맛있다고 잘 먹는데 나는 얼굴이 붓고

이상해요. 몇 번 연습하니까 그 다음에는 괜찮아요.

그걸 한 덩어리 먹으니까 위가 든든해요.

아마 그래서 맹장이 걸렸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내가 생각할 때는 맹장이에요.

제가 나귀가 한 마리 있습니다.

그 나귀는 다른 마을을 찾아가는데 그 마을에 있는

어떤 사람이 나귀 세끼를 한 마리 죽일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하도 불쌍해서

- 여보시오. 그거 죽이지 말고 나한테 파시오.

- 죽일려는 동물은 안파는데 그냥 버릴테니까 당신 가져가시오.

- 왜, 죽일려고 그럽니까?

- 성질이 고약해서 죽이려 그럽니다.

나한테 오더니 성질이 왜 그렇게 좋은지 말도 잘 듣고 좋아요.

우리나라 말을 할려니 대상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고

그 나귀 이름을 돌쇠로 지었습니다.

돌쇠야! 돌쇠야! 오라 그러면 오고, 다리 좀 주물러 달라 그러면

다리도 주물러 주고, 어깨도 두들겨 달라 그러면 두들겨 주고

한국말은 잘 알아 들어요. 그런데 중국말로 하면 못 알아 들어요.

제가 하도 배가 아파서 돌쇠를 불렀습니다.

- 내가 지금 배가 아프다. 그러니까 알아듣는듯 해요.

엎드리길래 겨우 올라타고 나귀를 타고 여덟 시간을 나왔습니다.

배는 찢어지게 아픈데 그 마을에 갔더니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어요. 맹장은 수술해야 되는데.

보니까 침 놓는 사람이 하나있고,

동물 치료하는 수의사가 한 사람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사람은 제대로 배운 수의사가 아니고

그냥 거들다가 배운 사람이에요.

의사라고 생각하고 들어가서

- 내가 맹장이니까 수술을 해야되는데 배를 찢어서 좀 해주시오.

그 사람이 덜덜 떨면서 하는 말이

- 나는 돼지 배하고 소 배는 열어서 봤는데 사람 배는 안 열어봤기 때문에

못하겠다는 거에요.

침술 놓는 사람한테

- 당신은 할 수 있소?

- 나도 못합니다.

- 그럼 마취약은 있습니까?

- 그것도 없습니다.

제가 들은게 있어서 침으로 마취를 해보라니까

자기는 한 번도 안해봤지만 그건 해보겠대요.

대강 혈을 잡아서 마취를 했습니다.

그 수의사는 덜덜 떨면서 안하는 겁니다.

- 수술 칼 있소?

- 오랫동안 쓰지 않았는데요.

하면서 숫돌에 자꾸 갈아요.

제가 그랬지요.

- 내가 의사니까 그리고 당신 옆에 보조가 두 사람 있으니까

걱정말고 시작하시오.

그 사람이 보조가 누가 있나 해서 둘러보니까 아무도 없거든.

- 어디있소? 안보이는데...

- 내 눈에는 보이니까 괜찮다고 하라고.

보통 오른쪽에 맹장이 있으니까 이쪽을 째라고...

내가 의사라고 그러니까

- 그럼 당신 시키는대로 하겠소.

- 그러라고.

옆구리를 찢고 창자을 꺼냈는데 어느건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옆으로 볼려니까 나도 안보이고.. 그럼 안되겠다 도로 집어넣고

가운데를 길쭉하게 째라.... 나도 볼 수 있게

그러니 그 사람이 배꼽 위 부터 쭉 쨌어요.

조금 적당히 쨌으면 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맹장은 조그맣다고 그러는데 알아야지,

나도 봐야되니까 그렇게 찢었습니다.

그 참 속이 이상하게 생겼습디다.

저보고 이겁니까, 저겁니까? 그래요.

나도 모르지 어느건지.. 그건 아닌거 같다. 그것도 아니거 같다.

그러다가 뭐가 부패된 듯한게 조그만게 달려나와요.

아 그거 같다. 잘라버려라.

잘라내고 내장을 도로 집어넣었습니다.

난 아무 실로나 배를 끌어매면 되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수술하는데 실이 다르다고 그러대요.

이불 꿰매는 굵은 실로, 바늘을가지고 대충 끌어맨 겁니다.

그게 붙어갖고 아물지가 않아요. 그 때가 겨울인데,

날씨는 춥고 배는 열었다 닫으니까 얼어오는거 같고.

거기다 무슨 약을 쓰야 되는데 나중에 알았지요.

피는 멈췄지만 물이 줄줄나고 그래요.

할 수 없이 나귀를 타고 어두워 가는데 우리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돌아와서 있는데 이 삼일 후에

눈도 오고 하는데 다리가 얼어오기 시작합니다.

설상가상이 그 말인거 같애요.

배는 찢어졌지요. 두 다리는 점점 얼어옵니다.

하도 기가막혀서 들어가서 드러누워있는데 꼼짝을 못하는 겁니다.

다리가 점점 부어오르면서 거기서 누런 진물이 나오고 퉁퉁 붓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다리를 잘라내야 될 정도로 그렇게 심각했습니다.

아,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오더니 좋아해요.

- 왜, 좋아하느냐? 했더니

- 당신도 우리같이 된거 같다고...

두 다리 잘라지면 이제 어디 안가고

우리하고 평생 살테니까 좋다는 거에요.

그런데 내가 너무 괴로와 하니까 보더니 안됐던지

팔다리 없는 사람들이 기어와서 제 다리를 맛사지 하는 겁니다.

팔다리 없으니까 얼굴을 갖다가 그냥 비벼 댑니다.

팔이라도 좀 있는 사람은 팔로 비비는데 거기서 뭐가 나옵니까?

자기 몸에서 나오는 피고름이 그냥 묻어서 제 발을 감싸기 시작합니다.

제 찢어진 배 안에도 비벼대니까

배 위에도 이만큼 고름으로 덮였습니다.

나중에 굳어지니까 그것이 깁스처럼 그렇게 말라요.

그런데 그 부풀어 오른 배가 점점 가라앉는 겁니다.

그 두꺼워진 다리도점점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나중에 그게 장화처럼 벗겨져요. 무릎까지 이렇게 길게..

벗겨지니까 이만큼 두꺼운데..

피고름 장화! 그 때 처음 봤습니다.

배에서도 그걸 뜯어내 봤습니다. 깨끗해졌어요.

여러분 제가 그 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가장 더러운 문둥이 고름으로도

최고의 명약을 만드는구나!

그 안에 이들의 사랑이 있기에......

아무리 더러운 것도 사랑과 함께라면

최고의 명약이 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놀라운 것을 하나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푼다고 왔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어떤 분은 제가 예수님과 닮아간다고 그럽니다.

예수님처럼 산다고 그러지만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그 때 제가 깨달은 겁니다.

예수님과 저와의 차이점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천년 전에 많은 문둥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저는 문둥병자가 제 다리와 배에서 나는

고름을 깨끗이 고쳤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주님과 저의 차이라는 것을 그 때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오히려 이 문둥병자 보다 더 아랫사람이

아닌가.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받았구나!

사실로 그렇습니다. 제가 진실로 고백하는 것은

제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은혜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그 때 비로소 주님이 제게 하신

그 일의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겸손을 배우라는 거구나.

내가 가장 낮아져야 되겠다.

주님의 십자가 지기 위해서는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영적으로건 육적으로건 가장 낮은 사람이 되어야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겠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뭔지 압니까?

성령의 역사가 뭔지 압니까?

그것은 사랑의 역사입니다.

사랑을 하기에 그 더러운 고름이 가장 귀한 약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기에 교만한 사람이 가장 겸손하고 착한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사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쓰시고 그 고귀한 십자가 까지 대신지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주님의 사랑, 그 사랑을 받아서 실천할 때마다

그 사랑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 은혜의 역사 반드시 나타날줄로

믿습니다.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김요석 목사



   김요석 목사님은 15년간 독일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지만 영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마을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글은 영호를 방문하였다가 그들의 삶에 감동한 김요석 목사님의 독일 친구인 클라우드-디터 그래스가 1991년에 독일에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0년간 영호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아는 분이 없는 상태이기에 부득이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게 된 것을 옮깁니다.

은혜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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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음과 같이 진리의 열매를 위하여 스스로 죽는 것을 뜻합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영원히 살아 있는 진리와 목숨을 맞바꾸는 자들을 우리는 믿는 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글들]은 평생, 혹은 가장 귀한 순간에 진리를 위하여 죽거나 죽기를 결단하는 참 믿는 이들의, 참 믿는 이들을 위한, 참 믿음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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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제가 섬기는 교회의 지체들은 영호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60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으로서, 주민이 250명 정도 됩니다.

영호는 아주 특이한 곳입니다. 이곳을 설명하려면 먼저 다른 이야기부터 해야할 것 같군요. 한국에는 아직도 나병이라는 무서운 병이 있는데, 나병이 양성으로 나타난 사람들은 소록도라는 섬에 강제 수용됩니다. 소록도에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료시설이 있지요.

그곳에서 병이 호전되어 양성에서 음성으로 바뀐 사람들은 육지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두 마을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게 되는데, 저는 그중 한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으레 손부터 감춥니다. 비틀려 있거나 아예 끊어져 나간 손가락이 남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나병을 앓았다는 사실이 금세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그들의 약한 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김요석


저는 제 친구인 김요석 목사의 교회에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야기해준 것과 우리가 체험한 것 가운데 몇 가지를 두 사람이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나환자 정착촌에서 함께 살면서 겪은 김요석 목사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김광운 화백은 몇몇 장면을 삽화로 그려 주셨습니다.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클라우스-디터 그래스(Klaus-Dieter 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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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남


오랜만에 고향인 한국에 돌아왔다.
독일에서 공부한지 15년째 되던 해에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신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분열된 감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님에 관한 이론적인 질문에는 언제든지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학생들에게 별 도움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그들은 여러 가지를 묻고 싶어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신학 이론으로는 그 문제들에 대해 거의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주말에 시간을 내서 목사님이 없는 작은 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배운 신학을 그곳에서 늘 적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신학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인간을 친히 만나기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체험보다는 교리가 더 많이 떠올랐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이것이 내 얼굴에 씌어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나이 많으신 목사님 한 분이 다짜고짜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목사님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알고 싶으시다면 교수직에 머물러 있지만 말고 차라리 무슨 일을 해보십시오!"

그러면서 목사님은 한 가지 일을 제안하셨다.

"남부 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마을이 하나 있는데,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그곳에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교수직이라는 좋은 직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었다.
책 속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를 나누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목사님은 내게 그 마을의 주소를 건네 주셨다.
어느 토요일,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그 마을을 향해 떠났다.


긴 여행이었다.
영호에 도착하자 날이 벌써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두서너 사람이 나를 마중 나왔다.
그 사람들의 얼굴 생김이 특이한 것 같았지만 가로등 불빛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온 목사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 사람들은 별말 없이 어떤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이것이 내 방인가?
방에는 가구가 없었을 뿐 아니라 벽은 더러웠으며 작은 벌레들이 여기저기 기어 다니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밤을 지낼 만한 이불 한 채 깔려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피곤해서 옷을 입은 채로 잠들어 버렸다.

주일 아침 8시 30분이 되자 교회 종소리가 작게 두 번 울렸다.
오래된 교회당에 가보니 아이들이 스무 명 가량 모여 있었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나서 어린이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첫줄에 앉아 있는 꼬마가 계속 콧물을 훌쩍이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거슬렸다.

"얘야, 이리 와 봐. 내가 코 닦어줄게!"

코를 닦아주고 나서 다시 예수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내아이 하나가 코를 훌쩍였다.
못들은 척하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소리였다.
결국 나는 스무 명의 코를 모두 닦어주어야 했다.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삐죽삐죽 웃었다.

첫 어린이예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대예배를 기다렸다.
마침내 시간이 되어 강대상 앞에 섰다.
몇몇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교회당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이 내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걸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교회 마루바닥 맨 앞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눈길이 그 할머니에게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모습이 저럴 수도 있단 말인가!
할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구멍 다섯 개뿐이었다.
눈도, 코도, 입술도 없었다.
양손조차 다 끊어져 나가고 없었다.
내가 나환자촌에 왔긴 왔구나!

예배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망치질하듯 나를 두들겨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여기를 떠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예배 후에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작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예배가 끝난 뒤에 일부러 천천히 설교원고를 정돈하였다.
내가 늑장부리는 동안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마침내 교회 문을 닫으려고 강대상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 없는 할머니가 고개를 드셨다.


"목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할머니는 손가락이 없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이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나는 할머니의 손 위에 내 손을 그냥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느낌은 앞으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곁에 있던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내 손을 잡고 아예 놓아 주지 않았다.

"할머니, 혹시 어디가 편찮으세요?"

나는 마침내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는 흉한 얼굴로 웃어 보이려고 애쓰면서 대답했다.

"목사님, 전 열여덟 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건강한 손을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이 이렇게 제 손을 잡아 주시니 너무 기뻐서 "

나는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너무나 부끄러웠다.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손가락이 다 끊어져 나가고 없는 이 할머니의 뭉툭한 손 끄트머리에서 하나님은 내게 악수를 청하셨다. 바로 그 자리에서 나를 맞이하시기 위해서.  나는 누군가와 악수하듯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느꼈다. 나의 소원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나는 할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할머니, 할머니의 가혹한 운명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으십니까?"

"어떻게 제가 감히 하나님을 원망하겠습니까? 오히려 감사드려야지요. 하나님은 아픔 가운데서 제게 복을 주셨는걸요."

"복을 주셨다구요?"

나는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럼요. 예전에는 전도 많이 원망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에서 살아온 긴 세월 동안 나를 잊지 않으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지요. 하늘나라에 갈 소망도 주시구요.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나의 건강을 하나님의 복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둥병자로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복을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 가혹한 운명

열여덟 살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는데 살갗에 이상한 반점이 생긴 거예요. 햇볕에 타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요. 그런데 군데군데 허연 부분이 점점 늘어나면서 고름이 차더군요. 어머님께 그것을 보여드렸더니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문둥병'이라는 말이 제 귀를 때렸어요. 저는 제방으로 뛰어가 방바닥에 엎드려서 많이 울었지요.


그렇게 울고 있는데 어머니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더니 저를 꼭 안아주시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요!"

나는 죽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얘야, 내 말을 좀 들어보거라. 에미가 도와주마.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겨야 한다. 아무도 널 보지 못하게 해야돼.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널 섬으로 보내버릴게다. 하지만 에미는 널 잃고 살 수 없다."


그때부터 저는 방안에서만 살았지요. 어머니만 이따금씩 돌보아 주셨어요. 밤에는 마당에 데려다 주시기도 했지요. 그렇게 저는 짐승처럼 갇혀 지냈습니다.

"어머니, 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정말 괴롭고 무서워요."

하지만 어머니도 그 답을 아실 리가 없었지요.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어요.

어느 날 저녁, 선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버지였어요. 손에는 낫을 움켜쥐고 . 저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애를 썼어요.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습니다. 정말 아버지가 날 죽이실까?

아버지는 거기 서서 자신과 싸우며 망설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어요. 아버지는 다시 밖으로 나가 버리셨습니다.

바로 그날 밤, 아버지는 쌀과자가 가득 담긴 그릇을 가지고 제 방에 들어오셨어요.

"남기지 말고 다 먹거라."

제가 하나씩 집어먹는 동안 아버지는 나를 지켜보고 계셨어요. 아버지는 한숨을 깊이 내쉬셨어요.

"네 병 때문에 우리 집안은 풍지박산이 나버렸다. 네가 우리집에서 사는 한 우리 식구는 살 수가 없어. 동네 사람들이 우릴 쫓아내 버릴게다. 네 동생들은 이제 같이 놀 친구도 없고, 용삼이 색시네에서는 파혼하자고 하는구나. 차라리 내 손으로 널 죽이는 것이 낫겠다 싶었는데 이 애비 심정을 알겠느냐?"

저는 솟구치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오늘 저녁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 넌 이 집에 살 수 없는게야."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한 번도 돌아보시지 않고 나가 버리셨습니다.

저는 아버지 마음을 알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차마 아버지 입으로 자살하라고 말씀하실 수 없었겠지요. 저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 했어요.

다음 날 아침, 저는 집을 몰래 빠져 나와 강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미리 와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어머니였습니다.

"넌 내 딸이야. 내 눈 앞에서 널 죽일 순 없다. 자, 이 쌀자루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거라. 산신령께 치성을 드리면 혹시 고쳐주실지도 모르잖느냐? 그럼 너는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있을게고."

어머니가 절 꼭 안아 주셨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따뜻하게 절 감싸 주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주신 쌀자루를 들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 한번도 저희 식구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산속을 돌아다녔어요. 산꼭대기에 올라가 산신령을 기다렸지만 허사였어요. 저를 도와주려고 나타난 것이라고는 허깨비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혼자였어요.

배가 너무 고파서 결국 저는 산에서 내려와 버렸어요. 그리고 어느 농가에 밥 한바가지를 구걸했어요. 나는 거지처럼 밥을 동냥하는데, 산 속에 두고 온 쌀자루는 어떻게 되었을까? 산신령이 벌써 다 먹어 버렸을까, 아니면 남아 있을까? 저는 엉터리 산신령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게 잡혀서 소록도에 가게 되었지요.

소록도에서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거기 있는 문둥병자들은 날 한 가족처럼 맞아 주었어요. 우리는 가족을 대신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잃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와 오빠와 언니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소록도 사람들에게는 다른 점이 하나 있었어요. 이 사람들은 신령과 우상을 믿는 대신 하나님 한분만 믿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달랐어요.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아드님은 문둥병을 무서워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지요. 저는 이 예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 문둥병은 제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아무 가치 없는 사람이 되었지요. 친부모와 형제도 절 거부했어요. 하지만 이제 저는 하나님을 찾았어요. 하나님은 저를 '딸'이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새 형제와 자매들도 얻었지요. 제게는 장차 하나님의 전에 영원히 거할 소망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것이 진짜 복이 아니겠습니까?




3. 평화를 위한 굶주림

어느새 겨울이 시작되었고 눈이 많이 내렸다. 얼음처럼 차가운 날씨였다. 어느 날 아침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집에 가보니, 꼬마 다섯이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내가 물었지만 아이들은 얼어붙은 듯이 서 있기만 했다. 마침내 그 중에서 가장 큰 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사님, 우리 엄마 좀 찾아 주세요.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무슨 일로?"

"할아버지가 엄마를 때렸어요."

나는 아이들을 집까지 다래다주었다. 할아버지는 집에 계셨다.

"할아버님, 애들 어머니가 왜 집을 나갔습니까?"

"그년이 아주 못된 년이어요."

노인은 욕을 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며느리의 잘못이었다.

"엄마는 곧 집에 돌아오실거야."

일단 아이들을 달래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집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몰려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은 여러 가지로 내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애들 어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애기들 엄마가 잘 도망가부렀어요. 그 노인네가 자기 며느리 징허게 못살게 했당게요. 맨날 며느리 욕이나 허고 돌아댕기는디 그 정도 참은 것도 다행이지요."

" 시아버님이 잘못하시긴 잘못하셨군요."

나는 다음 주일 설교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머리에는 온통 이 집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의 태도에 다 일리가 있었지만, 그 사이에 끼인 아이들은 울면서 지내야 했다. 아이들로서는 어른들 일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가족은 모두 주일마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들 사이의 화평에 대해 충분히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제서야 나는 이 일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깨달았다. 바로 내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내 죄를 회개하며 금식하기로 결심했다. 금식이 닷새째로 접어든 날, 차씨 할아버지가 내 금식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목사님, 저 때문에 금식하시는가요?"

할아버지는 나를 책망했다.

"아닙니다. 할아버님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금식하는 거예요. 할아버님도 옳고 며느님에게도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불쌍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울면서 배고파하는 것은 제 탓입니다. 제가 평화와 화해에 대해 충분히 설교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금식하는 겁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돌아가셨다.

금식한 지 여드레가 지나자 몸이 많이 쇠약해졌다. 할아버지는 나를 찾아와 고백하셨다.

"목사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식구들하고 며느리한테 너무 심했는갑네요. 인자 어째야 쓴당가요?"

"할아버님, 할아버님은 이미 가장 선한 길로 발을 디디신 겁니다. 저와 함께 기도하시지요."

나는 차씨 할아버지 댁에 가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그때 밖에서 아이들의 환성이 들려 왔다. 아이들의 어머니가 돌아온 것이다. 할아버지는 곧바로 며느리를 맞아들이셨다.

"아버님,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며느리가 먼저 말했다.

"아니다, 인자 다 잘 될 것이다. 내 맘이 달라져야제."

이제 아무도 상대방에게 잘못을 넘기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화해하게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이 화해하는 것을 보면서 내 배를 슬쩍 만져보았다. 배가 쑥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선한 목적을 위한 굶주림, 평화를 위한 굶주림이었다.

4.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가장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웃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집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나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화가 나도 꾹 참았다구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옆집 그 인간은 해도 정말 너무 하지 뭡니까?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목사님은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뭔가 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씩씩거렸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는 일일 급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양씨는 깊이 숨을 몰아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지 뭡니까!"

"도대체 옆집 분이 원하는 게 뭔데요?"

"글세,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양씨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양씨는 씩씩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겁니다."

내 말이 초신자 양씨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양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돌아갔다.

양씨는 정말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어 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양씨가 미친 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양씨를 비웃었지만, 그중에는 양씨의 태도를 보고 사뭇 진지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그것은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가던 어느 가을날 밤, 양씨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밤 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에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분했습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한 짓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양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처음 생각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고 싶었지요. 하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이겼지요? 그렇지요? 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라니,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정말 제가 잃은 것보다도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씨의 얼굴은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 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서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양씨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는 올 때와는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맥빠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양씨는 또한번 신이 나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말씀이 또 맞았어요!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돼지 아흔 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지 뭡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돼지 전부 자네 껄세. 내가 자네 때문에 지난 밤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번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다 빠개지는 것 같아.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 여덟 마리씩 다 합해서 아흔 마리 전부 데려왔으니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양씨는 예기치 않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뛰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별안간에 이렇게 많은 돼지를 되돌려 받은 것도 굉장하지만, 지금까지 옆집에서 그놈들 전부를 먹인 먹이를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좋아라 하던 양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을 전체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5. 참사랑이란


문둥병은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쉰여섯 되신 그 아주머니에게도 문둥병이 재발했다. 몸과 얼굴이 부어오르고 양쪽 눈과 콧구멍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예 그 집에 발길을 끊어버렸고, 나이 지긋한 교회 어른 한 분은 그 아주머니를 소록도로 다시 보내고자까지 했다. 게다가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웃 동네까지 퍼져나갔다.

심한 불안과 절망에 빠진 아주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약을 먹어버렸다. 차라리 죽어서라도 문둥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위만 상해서 이제는 제대로 먹거나 마실 수도 없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갔다.

내가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는 아무런 기력 없이 누워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고는 간곡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제발 저를 다시 소록도로 보내지 말아주세요. 저는 두 번 다시 소록도에서 문둥병자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럼요. 하지만 여기 그대로 계시려면 건강을 빨리 되찾으셔야 합니다. 아무 거라도 좀 잡수어 보세요!"

"먹을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엌을 내다보니 아궁이 위에 생선찌개가 담긴 냄비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할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병에 옮을 것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숟가락을 쓰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나는 생선찌개를 가득 떠올린 숟가락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맛 좀 보세요. 아주 맛있는데요!"

아주머니는 내가 건넨 국물을 꿀꺽 삼켰다.

'아주머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드실 텐데 내가 함께 있으면 어떨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본 다음,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냄비가 텅 빌 때까지 아주머니와 함께 숟가락 하나로 번갈아가며 찌개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송씨 아주머니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니 온통 고름투성이어서 아주 끔찍해 보였다. 나는 수건으로 고름을 깨끗이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고름은 다시 흘러나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 누런 액체를 비추었다. 고름이 마치 금처럼 반짝였다.

"자매님, 자매님 얼굴에 금이 정말 많기도 하네요!"

나는 크게 소리내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주머니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동안 아주머니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문둥병자였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게 잔잔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아주머니의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 입맞춤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참사랑이란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그분과 똑같이 문둥병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고 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신 것이다.


6. 지체 높은 사람의 방문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에 군수가 나를 찾아왔다. 군수처럼 지체 높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온 적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 목사님이십니까? 지금에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은 우리 도지사 사모님께서 목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하셔서 말입니다. 내일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지체 높은 분이 어디에서 내 말을 들었을까?

"혹시 다른 사람과 저를 혼동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좀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런데 군수는 영호에 살고 있는 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급한 환자를 심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군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낼 모레로 연기할 수 없을까요? 그날은 시간을 낼 수 있겠는데요."

군수는 아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군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나보다.

"음 목사님이 정 그러시다면 목사님의 대답을 그대로 전하지요."

다음날 아침 군수가 또 찾아왔다.

"내일 오후 두 시가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오시겠답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마을 길에 무언가 덜거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는 국도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르지 못한 들길을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저만치 한 무리의 일꾼들이 트럭과 불도져를 몰고 마을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 높은 사람이 방문할 들길에 자갈을 깔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 였다.

약속한 날 점심시간에 군수와 면장과 경찰서장이 공무원 몇 명을 거느리고 미리 왔다. 마을 분위기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정확하게 오후 두 시가 되자 도지사 부인이 도착했다. 부인은 스물다섯 명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왔다. 상류사회의 부인들이 가난한 우리 마을에 모두 모인 것이다.

물론 나도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것일까? 도지사 부인은 서울에서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듣고, 문둥병자들의 교회를 섬기를 이 목사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부인은 그토록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부인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부인은 영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원했다.

"모두 교회로 가시지요. 이렇게 오셨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교회로 안내했다.

도지사 부인이 이 특별 예배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인은 떠나기 전에 내게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께 필요한 것을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떠나실 때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확실히 불쾌한 듯 했다. 그러나 자가용에 오르기 전에 어떤 할머니 한 분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명히 큰 영광이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 계속해서 그 부인을 위해 기도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 지체 높은 부인이 손씻을 물을 준비하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지체 높은'분의 방문이 있은 후 우리 마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국도와 연결되는 길에는 콘크리트가 깔렸고, 전화도 연결되었다. 그리고 두 주 후에는 내 책상 위에 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 왔다.

"목사님, 목사님을 우리 집에서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부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 부인은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우리에게서 찾았던 
것이다!


7. 아직 늦지 않았다.


다시 봄이 찾아왔다. 모두들 들일을 하러 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근처를 돌아보려고 이웃 동네 쪽으로 갔다.

한 채소밭에서 몸집이 작은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뜯고 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니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잠시 후에 할머니는 비틀린 잇몸이 부끄러웠는지 당황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이고, 부처님 오셨네! 저는 항상 살아계신 부처님 만나는 것이 소원이었는디."

할머니는 기쁨에 넘쳐서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놀라서 대답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에요."

이 말밖에는 다른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할머니가 '목사'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예수가 누구다요?"

할머니는 알고 싶어 했다. 나는 할머니 옆에 주저앉아서 말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예요. 예수는 우리말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뜻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구원자'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은 오래 전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예수님은 할머니나 저와 똑같은 사람이셨지만, 또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십니다. 그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도와주시고 무엇보다 흉악한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지요. 예수님은 친구가 많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를 너무나 미워해서 죽여버렸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셨어요.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을 돕고 구원해 주시기위해 오늘도 예수님을 모든 나라에 보내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예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우리한테 찾아온당가요?"

할머니는 내 말을 막고 물었다.

"그럼요. 바로 이곳에도 오십니다."

그 사실은 할머니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할머니는 80년동안 부처님을 공양했다. 그러나 그 조각상은 눈 앞에서 항상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절에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조상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드리기도 했지만 의지할 곳이 없기는 마찬가지이였다. 하루가 다르게 힘이 빠지고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다. 그러나 할머니를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희망의 빛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도 목사님처럼 예수님 백성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겄네요. 나이가 벌써 여든아홉이나 되았는디!"

할머니는 기대감에 부푼 목소리로 물었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시면 할머니도 예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었다.

"그러면 지금 저를 예수님한테 데꼬 갈 수 있으시오?"

할머니는 조급하게 물었다.

"내일 새벽 네 시에 영호에 있는 우리 교회에 오세요. 매일 새벽기도회가 있거든요. 거기 오시면 예수님을 만나실 수 있어요."

"새벽기도회가 뭐다요? 예수님이 진짜 거기 있어요? 그러먼 제가 제일 좋은 옷 입고 가야 쓰겄네요."

"새벽기도회는 새벽에 교회에 함께 모여 하나님과 예수님께 노래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을 적어 놓은 책을 읽습니다. 우리는 그 책을 성경이라고 부르지요."

"근디 저는 글을 몰라요."

"걱정마세요. 예수님이 할머니와 말씀하실 길을 찾으실 테니까요. 그럼 내일 새벽에 꼭 오세요."

그날 밤 태풍을 동반한 큰 비가 밤새도록 퍼부었다. 길에는 물이 넘쳐 흘렀고 전기는 끊어졌다. 이런 날 노인이 새벽기도회에 나오기는 힘들겠지 . 그런데 성가대가 막 찬양을 시작했을 때였다. 교회 문이 열리더니 그 몸집 작은 할머니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있었다.

교회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에게 쏟아졌다. 할머니는 얼굴을 붉히며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는 성경 한 부분을 읽은 다음 설교를 했다. 설교 시간 내내 무릎을 꿇고 앉아 무언가를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다들 돌아가고 난 후에 할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로 왔다. 할머니가 아는 사람은 교회에서 나 혼자뿐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목사님, 진짜 고맙습니다. 진짜로 제가 예수님을 봤어요."

"그러십니까? 어디에서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목사님 옆에 계신 거를 똑똑히 봤당게요! 목사님하고 똑같이 생겼드랑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제가 볼 때에는 목사님이나 예수님이나 똑같당게요."

할머니는 확신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의 말이 맞다. 우리는 곁에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볼 수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나는 또 하나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아까 예배 시간에 혼잣말씀을 계속 하시는 것 같던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인자 제가 예수님 만났응께, 인제까지 저 살아온 거 예수님한테 싹 다 애기했당게요. 예수님이 내 얘기 다들어준께 정말로 좋아라우."

할머니는 고마워하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는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새로이 품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근디 제가 성경책 읽을라믄 어째야 쓰까요?"

할머니는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매일 새벽기도가 끝난 후에 나에게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말씀드린 대로 할머니는 매일 새벽 나를 찾아왔고, 내가 성경을 펴서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읽어나가면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읽었다. 이렇게 해서 할머니는 성경구절을 배우게 되었고 새벽기도 때마다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외워보이곤 했다.

그렇게 두세 달이 지난 후였다. 할머니는 내가 가르쳐드리지 않은 성경구절들을 외우고 있었다.

"아니, 할머니! 어디서 그걸 배우셨어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처음에는 목사님 따라서 외았는디, 예수님이 도와서 인자는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았당게요."

마침내 할머니는 글을 깨우친 것이다!

그 후에 할머니는 아예 우리 마을로 이사를 오셨고, 손자들도 청년부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할머니가 직접 손자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던 것이다.


8. 변함없는 사랑


처음 영호에 갔을 때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사정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점차 사람들의 신뢰를 얻게 되면서 비로소 사람들의 사연을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느 마을에서 젊은이 한 쌍이 결혼했다. 아내가 임신하게 되자 부부는 정말 기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에게 문둥병이 발병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아내는 문둥병자들을 격리 수용하는 소록도로 가야만 했다.

법적으로 남편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었다. 오히려 아내와 함께 소록도로 들어가 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관계당국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아기를 부모님 집으로 데려갔다. 이별은 이 젊은 부부에게 너무나도 큰 고통이었다.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도 문둥병자가 될거야. 그러면 내 마누라, 내 자식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아냐!"

그는 절망으로 절규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 년이 지난 후 그는 처음으로 아내가 있는 섬을 찾아 갔다. 아내를 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얼굴에 문둥병으로 인한 흉터가 있긴 했지만 아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전 여기서 한 사람을 알게 되었어요!"

아내가 남편에게 주저없이 말했다.

"물론 남자겠지?"

남편은 분노와 질투를 감추려고 애쓰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당신밖에 없어요. 제가 말하는 그분은 저뿐 아니라 당신도 사랑하시는 분이에요."

"그 자가 누구야? 대체 어디 있지?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군!"

아내는 그에게 작은 책을 한 권 건네주었다. 그것은 목사님이 선물로 주신 신약성경이었다. 소록도로 간 아내는 예수를 믿게 되었던 것이다.

"여보, 이 책은 우리 두 사람에게 다시 희망을 줄거예요. 그것을 읽으면 저의 새 주인이 어떤 분인지 잘 알 수 있어요. 꼭 읽어보세요!"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별은 이 부부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남편은 성경을 읽으면서 믿음의 소망을 아내와 함께 나누게 되었다. 그는 그후 5년 동안 한결같이 아내가 돌아올 날만을 기다렸다. 아이를 언제까지 엄마 없이 키워야 하는지.

그러던 어느 날 소록도에서 소식이 왔다. 아내의 문둥병이 음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아내는 육지에 있는 가족에게 올 수 있었다. 그들은 몇몇 다른 문둥병자가 가족과 함께 영호로 이사했고, 여기에서 새 생활을 시작했다. 건강한 아이들도 태어났다.

이렇게 해서 이 작은 마을은 점점 커져 갔다. 그들은 마을에 예배당도 건축하였다. 그러나 이웃 동네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들은 언제까지나 똑같은 문둥이일 따름이었다.

그들이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믿음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다.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그들은 작은 교회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다. 겨울날 영하의 날씨에도 그들은 손뼉치며 찬양하면서 몸을 따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교회에 오겠다는 목사님은 한 명도 없었다.

긴 세월이 흘렀다. 처음 영호에 온 사람들은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문둥병이 재발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한 중년 부인은 약을 먹어도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문둥병은 늘 그런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그와 똑같이 이 마을에서 늘 하나님의 흔적이 있었다.

젊은 남편이 문둥병에 걸린 아내를 버리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은 문둥병자들에게 신실하셨다. 그 부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영호 사람들은 몸이 다시 나빠질 때에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새 가정들이 늘어났다. 소록도에서 사람들이 왔다. 지금 영호에는 약 예순다섯 가정이 백 명이 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9. 어떤 부유한 농부 이야기


영호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대부분 문둥병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웃 지역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약점보다는 그 약점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때때로 그들도 그것 때문에 더 힘겨워한다. 그래도 '문둥이'들의 신앙생활은 점점 꽃을 피웠다. 우리의 예배 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은 점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 마을로 찾아왔다. 건강한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 아주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목사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제 남편을 좀 도와주세요. 그 양반이 지금 많이 아파요. 한의한테도 가보고 양의한테도 가보았는데 전혀 차도가 없습니다. 절에 가서 불공도 드려보고 스님한테 부탁해서 치성도 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무당을 불러다 굿을 했지만 그것도 효과가 없네요. 우리 동네 애들 말을 들어보니 예수님은 아픈 사람을 낫게 하신다던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주머니가 이렇게 영호까지 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기까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아주머니,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나는 물었다.

"사실 예수님이 누군지 잘 몰라요. 그거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하지만 예수님을 알고 싶습니다!"

아주머니는 정말 진지하게 말했고,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이리 들어오십시오. 좀 앉으시지요."

나는 성경을 펴서 신약을 몇 부분 읽어 주었다. 나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기적적인 치료자나 마술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성경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씀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예수님이 병자들을 모두 치료해주신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남편되는 분께 꼭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저한테 들은 대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 부유한 농부의 아내는 몇 번씩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마워 했다.

며칠 후 그 아주머니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희 집에 좀 와주세요. 우리집 양반이 예수를 믿고 싶대요."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 장로님을 모셔와 함께 출발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귀엣말을 하는 것이었다.

"저 사람들은 말고요 목사님만 혼자 오세요."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 자기 집에 오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우리가 다같이 갈 수 없다면 저도 안 가겠습니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표현했다. 농부의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마침내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좋습니다. 모두 함께 가시지요."

우리는 모두 이웃 마을로 갔다. 아주머니가 방문을 열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한 남자가 고통을 못 이겨 웅크린 채 방바닥에 꼬꾸러져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주변에 둘러 앉았다. 우리는 먼저 찬송을 몇 곡 불렀다. 그리고 나서 내가 집에서 미리 찾아온 성경 구절을 읽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농부의 얼굴이 점점 편안해졌다. 우리는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기도드렸다. 기도는 길었다. 그 농부에게 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치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얻는 것이었다.

농부는 이내 잠이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잠이었다. 아주머니가 고마워하며 우리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돌아온 후에도 그 농부를 생각하며 기도했다.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우리에게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농부의 가족이 모두 새벽기도회에 나온 것이다. 병들었던 농부는 옷을 멋있게 차려 입고 가족들보다 먼저 교회에 왔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이 농부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전에는 문둥병자들을 멀리하던 그가 이제는 우리 동네 사람들의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바로 뛰어다니며 자기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있다.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만큼 작은 것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큰 믿음의 용기를 얻게 되었다.


10. 안녕하세요?


한국에서는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는데 이것은 "평안하십니까?"라는 뜻이다. 이 인사말과 관련된 일이 하나 생각난다.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알고 지내는 여의사가 있었다. 오십대 초반인 그 의사는 광주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교수였다.

"자네가 그 의사와 한번 이야기해 볼 수 없을까? 벌써 몇 달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군.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아니지만 왠지 자네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친구가 나에게 제안해왔다.

영호에서도 할 일이 많긴 했지만, 이 여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모르는 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에 갔다. 사무실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문패에 그 교수의 직함과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방문한 것에 그리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두 시간이 넘도록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미국에서 보낸 유학생활과 화려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아주 거창하게 설명하더니 갑자기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감탄하며 맞장구쳐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그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마침내 결정적인 지점에 이르렀다. 지난 해 좋은 교수 자리가 하나 생겼다. 이 교수는 그 자리를 꼭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그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그 자리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실패를 맛본 후에 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매사에 만족할 수 없었고 두통과 우울증까지 생겼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상한 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전 모든 걸 소유하고 있습니다. 돈도 많고 이름도 꽤 알려졌죠. 좋은 직장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몹시 불안합니다. 목사님, 말씀해 주세요. 어떻게 해야 다시 평안한 마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했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의 우울증에 대해서 의학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문둥병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에 한번 오십시오. 그러면 제가 만족이 무엇인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 의사 교수는 정말 우리 마을에 찾아왔다. 우리는 마을 주위를 함께 거닐다가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우리를 본 아주머니는 밝은 얼굴로 인사했다.

"목사님, 이것 쪼까 보씨오. 저번 주에 손가락이 세 번째로 끊어져 불렀거든요. 근디 아직 일곱 개는 멀쩡하다니까요. 정말 감사해 죽겄네요."

어안이 벙벙해진 교수는 나를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뭘 감사한다는 거지요? 저 아주머니는 늙고 못생긴 데다가 문둥병 환자이고 손가락도 일곱 개밖에 안 남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만족하면서 웃을 수가 있는 거죠?"

나는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그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바로 다른 점입니다. 저 아주머니는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손가락도 일곱 개밖에 없지요. 그렇지만 자기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저 기쁨은 하나님의 값진 선물이지요.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교수님은 건강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 교수님은 이제껏 한 번도 감사하지 않았지요. 교수님은 항상 자기 힘으로 기쁨을 만들려고 하지만 교수님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지요."

그는 이 진리를 깨달았을까?

우리는 아무말 없이 한참 걸었다. 교회 앞에서 그가 멈춰 섰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눈치였다.

"목사님, 저는 중요한 걸 배웠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것을 감사할 때 기쁨과 만족이 온다는 것을요. 하지만 전 도무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황이 나빠질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질책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조금 후에 집에 도착했다.

"잠깐만 기다리시겠습니까? 조촐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나는 식사기도를 드리고 나서 그에게 음식을 권했다.

상 위에는 밥 한그릇과 김치와 맵게 무친 나물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는 한 술도 뜨지 않았다. 그의 눈빛을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알 것 같았다.

"목사님, 이걸로 충분하세요? 고기나 생선도 없이 밥 하나 김치 하나로 식사하기가 어렵지 않으세요? 대체 목사님은 뭘 가지고 그렇게 만족하신다는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목사님이라면 서울에서도 아주 좋은 자리를 얻을 수 있을 텐데 가구도 없는 방 하나에 검정 고무신으로 지내다니 저로서는 정말 이해가 안되네요. 목사님은 하나님께 지금의 상황을 감사하시나요? 아까 하나님께 기도하셨지요? 도대체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지요?"

나는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지 않았다.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님, 지금 혹시 6,000원 정도 있습니까?"

그에게 그만한 돈이 없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함께 시내로 나가 서점에 갔다. 나는 성경을 하나 집어 그에게 건네 주었다.

"이 책을 읽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될 것이고, 평화의 샘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 교수는 성경을 가지고 다시 광주로 돌아갔다. 나는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렸다.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그 교수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은 그를 위해 함께 기도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버스 한 대가 마을 어귀에서 들어서며 큰 소리로 경적을 울렸다. 서른다섯 명 가량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 여교수와 조교 의사들, 그리고 의과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우리 마을과 근방에 사는 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도 몇 상자씩 가져왔다. 일요일 저녁에 우리는 모두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 방문으로 우리만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교수와 교수를 도와주러 함께 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만족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의사는 평안을 찾는 질문의 답을 찾은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평안을 주셨다.

"안녕하세요?"

"평안하십니까?"


11. 가족의 반대를 이겨낸 새댁


이웃 마을에 사는 어는 젊은 새댁이 우리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새댁은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캄캄할 때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몰래 빠져 나오곤 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시댁이 워낙 엄격한 유교 집안이었기 때문에 새댁은 공개적으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의 낯선 신앙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침 시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대문 곁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얘야, 이렇게 일찍 들에 나갔다 오는 길이냐? 그런데 왜 그렇게 손이 말끔하지? 이제 바른 대로 말하거라. 너, 문둥이 마을에 있는 예수쟁이들과 함께 있다가 오는 거지?"

새댁은 시아버지의 다그침에 놀라고 겁이 나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을 깬 가족들이 모두 마당으로 뛰쳐 나왔다. 젊은 남편은 황당한 얼굴로 자기 부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망신 당할 짓이라도 했어?"

"니 처가 문둥이 마을에 있는 교회에 다닌단다. 여태까지 우리는 감쪽같이 속이고 말이다. 그래도 누가 내게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그래서 내가 이 아침부터 니 처를 문간에서 지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발칙한 것 같으니라구!"

노인은 뒷짐을 진 채로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남편이 기겁해서 아내를 꾸짖었다.

"아버지가 당신을 야단치는 것은 당연해. 왜 문둥이들이 믿는 다른 나라 신을 믿어가지고 우리 집안을 쑥대 밭으로 만드는 거야?"

다시 시아버지가 말을 가로챘다.

"네가 예수교를 믿어서 우리 집안의 기강은 엉망이 됐다. 조상님들이 우리를 보호하시다가도 너 때문에 거두어 가시지 않겠느냐? 예수쟁이들이 조상들께 제사도 안 드린다는 말은 나도 들었다. 너도 이제 제사를 안 지낼 셈이냐?"

모두 아버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새댁은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부터 집안 식구들이 모두 새댁을 구박하고 구속하기 시작했다. 새댁은 그후로 새벽기도회에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새댁이 집에서 어떤 어려움을 당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몇 주 후에 새댁은 가족들의 강요에 못이겨 교회에 나오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새댁은 일을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저녁에 내가 심방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과 시누이가 그 새댁을 옮겨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 처가 몹시 아픕니다. 다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어서 걷지도 못하고 헛소리만 해대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남편이 말했다. 난 그들을 바라보다가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새댁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나누어 앉았다. 나는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했다. 특히 이 여인이 견뎌내야 했던 내적 싸움을 위해 기도했다. 시누이가 울기 시작했다.

"저희도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희 때문에 언니가 아프다니! 목사님, 저희가 정말 잘못했어요. 이 죄를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요?"

시누이는 새언니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죄를 뉘우치는 마음과 새언니에 대한 염려를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하나님께 내려 놓으십시오."

두 사람은 내 말대로 소리내어 함께 기도했다.

갑자기 새댁이 눈을 뜨고 입술을 움직였다. 기도하려는 것 같았다. 나는 새댁이 잘 아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새댁도 같이 찬송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직였다. 반응을 보이지 시작한 것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찬송가를 내밀었다. 그 젊은 여인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고 또렷하던지 우리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기도를 드렸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아내를 부축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남편과 여동생이 아픈 새댁과 함께 기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댁의 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친척들은 남편과 그 여동생의 마음이 변해가는 것을 보고 예수교가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놀라워했다.

새댁과 남편과 시누이는 한 주도 빠짐없이 영호로 예배드리러 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상의 보복도, 문둥병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지난번에는 시아버지까지도 내가 무엇을 설교했는지 물어보고, 아무도 몰래 아들의 성경을 뒤적거리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의 반대는 없어졌다.


12. 슬픈 이야기


서울에서 친구 하나가 영호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주변을 산책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우리 교회가 사들인 땅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거기에 공동묘지를 만들 생각이었다.

한국에는 돌아가신 분들을 가족의 땅에 묻는 풍습이 있어서, 시골에 가면 여기저기에서 비석이 세워진 둥그런 무덤을 쉽게 볼 수 있다.

친구는 들판을 두루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채소밭 저편에 무덤 하나가 외롭게 솟아 있었다. 그 무덤 위로 풀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저기에는 누가 묻혀 있는 거야? 묻힌 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친구는 그 무덤에 관심을 보였다.

"한번 가보겠나? 참 슬픈 일이 있었지."

우리는 풀이 무성한 곳을 지나 그 무덤 앞에 섰다.

"십자가가 새겨져 있군. 자네 교회 교인이었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작년 11월에 여기에서 한 청년을 장사지냈네. 겨우 스물두 살이었지. 비참한 죽음이었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든."

난 친구가 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일 아침 우리 교회에서 가장 연로하신 박씨 할아버지를 자네에게 소개해 주겠네. 여기 누워 있는 청년의 아버지 되는 분이시지. 그 부부는 청년이 아기였을 때 양자로 데려왔다는군. 청년은 소록도에서 태어났는데 생모는 해산할 때 죽었지. 아버지는 누군지도 모르고 말이야. 사람들은 먼 친척집에서 아이를 거두어주길 바랐지만 친척들은 그 아이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네. 문둥병이 워낙 무서운 병이고 아이가 정말 건강한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니 그랬겠지. 그러다가 박씨 할아버지가 그 소식을 들은거야. 할아버지가 아내와 함께 소록도를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막 받았을 때였지. 두 사람은 그때까지 결혼을 위해 육지로 가려고 애를 쓰던 참이었어.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두 사람도 소록도에서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된 사이지.

두 사람은 그 갓난아기의 사정을 듣고서는 곧장 아이를 데려왔다네. 그리고 영호로 이사해서 친자식처럼 정성껏 키웠지. 두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었거든.

아이는 자라서 학교도 잘 다니고 부모님께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네. 부부는 아이에게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지. 그 아이는 아주 인기가 좋은 청년으로 자랐다네. 그의 기쁨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지. 우리가 아는 그 아이는 친절하고 인정 많은 젊은이였다. 학교를 마친 청년은 군에 입대했지. 그는 어느 소도시 근방에서 군대생활을 했어. 그리고 거기서 한 아가씨와 시간을 보냈지.

그는 자랑스럽게 부모님께 도시에 사는 처녀에 대해 말씀을 드렸지.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네. 물론 부부도 아들과 똑같은 심정으로 기뻐했네. 그들은 빨리 아가씨를 보고 싶은 마음에 집으로 초대했지. 그런데 몇 주가 지나도록 오지 않는 거야. 그때마다 이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곤 했지. 그런데 사살은 그 아가씨의 부모가 문둥병자들이 사는 마을에 가지못하게 딸을 막았던 거였네. 아가씨의 부모는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었고 청년은 절망에 빠졌지.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짤막하게 끝나고 말았네. 두 젊은이는 같이 도망가려고 했어. 아무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까지 아주 멀리. 그러나 아가씨의 부모는 그것을 미리 눈치채고 딸을 친척집에 보내버렸다네. 청년은 크게 상심했지.

그는 영호에 와서 부모님의 서랍에 들어 있던 문둥병 치료약을 먹어버렸어. 부모가 청년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지난 후였네.

마을 사람들은 너무 놀라 할 말을 잊었다네. 물론 우리는 무엇이 이런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왔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 .

박씨 할아버지 내외는 우리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에 아들을 묻고 싶어했네. 그래서 산이 보이는 이 한적한 곳을 택한걸세."

우리는 아무말 없이 다시 영호로 돌아왔다. 한 젊은이와 그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대한 생각에 잠긴 채.


13. 돌아온 아버지


"목사님, 목사님!"

나는 그것이 정씨의 목소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우리 성가대에서 베이스를 맡아 노래하고 있었다. 내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그가 허둥지둥 내 방에 들어왔다.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목사님, 아버지와 헤어진 지 사십 년 만에 아버지가 절 찾아오셨어요.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오늘 아침 갑자기 오셨어요!"

정씨는 내 팔을 잡고 나를 문까지 끌고 갔다.

"이리 오세요, 목사님. 저희 아버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그의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노인은 미닫이 문에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그는 당황했는지 자신이 쓴 밀짚모자 테두리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었다. 거센 비바람에 주름진 구리빛 얼굴이었다. 양쪽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셋은 작은 상에 둘러 앉아 수박을 먹었다. 정씨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처와 저는 여덟 아들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이들이 좀 큰 다음에는 밭에서 열심히 저희 일을 도왔지요. 그렇지만 우리의 기쁨은 얼마 안 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넷째 놈이 열두 살에 문둥병에 걸린 겁니다. 우리 식구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믿을 수도 없었고, 우선 동네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우리는 그 사실을 오랫동안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근선이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말이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지요. 문둥병자는 가족과 고향을 떠나는 게 법이지만 저는 제 아들이 소록도에 산다는 건 꿈도 꾸고 싶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생각했지요. 저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딴 도리가 없었습니다.

전 근선이를 데리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좁은 골짜기가 나오더군요. 절벽이 나오면 밀어버릴 생각이었지요. 그러면 그저 사고로 보일 테니까 . 절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가슴이 마구 뛰더군요. 저는 저를 따라오고 있는 근선이를 자꾸 돌아다보았습니다. 지금 이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침내 발 밑으로 좁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였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아들의 어깨를 잡고 .

아니야! 내 아들을 떨어뜨릴 수는 없어. 그래, 차라리 같이 떨어져 버리자! 그런데 근선이 놈이 불안한 눈으로 날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엄마하고 형들하고 동생들을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분이에요. 저 때문에 식구들을 내팽개치시면 안돼요.'

아들이 대견했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식구 모두의 사랑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골짜기를 빠져나왔습니다. 저는 아들을 바닷가까지 바래다주었지요. 작은 배 한척이 와서 아이를 소록도로 데려갔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저는 근선이가 죽었다고 말했어요. 사망신고까지 했지요. 근선이는 영원히 우리 앞에서 사라져야 했습니다.

세월은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아들들은 모두 결혼해서 대부분 고향을 떠났지요. 제 처와 저는 그때까지 건강했기 때문에 어느 아들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살던 집에서 그냥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 처가 죽고 나자 의지할 데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먹고 사는 문제를 혼자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럴 힘조차 없어져 버리더군요.

전 당연히 큰 아들네로 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라는 걸 담박에 알게 되었습니다.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 아우네로 가보라더군요. 그래서 얼마있지 않아 짐을 꾸려 둘째 아들네로 떠났지요.

그렇지만 그 놈 집에서도 다를 게 없었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늙은 아비를 기꺼이 맞아들여서 편안히 죽게 해주는 자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저와 제 처는 오직 아들들만을 위해 살아왔어요. 하지만 우리는 잘못 살았습니다.

전 차량한 마음으로 소록도에 있는 아들을 생각했지요. 그때까지는 그 아이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 것도 알려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 그 아이를 버린 거지요. 이 놈이 얼마나 죽일 놈인지!

저는 소록도에 가서 근선이 소식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벌써 섬을 떠나 결혼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근선이가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 이렇게 영호에 오게된 겁니다. 사십 년이 지나서야 하나밖에 없는 진짜 아들놈한테 돌아온 거지요 . 저는 아들네 집 앞에서 오래 망설였습니다 .

근선이가 뭐라고 할까? 저는 원망만 실컷 듣고 쫓겨날 각오를 했습니다. 아비가 가장 필요할 때 저를 버렸으니, 무슨 말을 들어도 싸지 용기를 내서 오긴 왔지만 다른 아들들은 다 어떻게 하고 왔느냐고 하면 뭐라고 하나 .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돌아서려는 찰나에 어떤 여자가 내다보며 친절하게 말을 걸더군요.

'할아버지, 이리 들어오세요. 누구 찾는 사람 있으세요? 아까부터 서 계신 걸 보았는데.'

그 여자는 바로 제 며늘애였습니다. 그때 외양간에서 나오던 근선이가 저를 알아보았습니다. 아들놈은 저를 끌어안고 울더군요 .

'애비는 사십 년 동안 네 소식 한 번 알아보지 않았다. 내가 원망스럽지 않으냐?'

'처음 소록도에 갔을 때는 너무 외로웠지요. 밤마다 집 꿈을 꾸었어요. 식구들을 미워하면서, 내 운명을 원망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문둥병자이면서도 저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반발심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끌리더군요. 그 사람들은 자신을 문둥병자 이상의 어떤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들 중 한 사람과 사귀게 되었지요. 그분은 병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요. 그리고 그후로 예수님께 선물로 받은 사랑을 나에게 주었지요. 저는 그 사람들을 따라서 예배와 성경공부에 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예수를 믿게 되고 난 다음부터는 식구들에 대한 미움을 잊게 되더라구요. 살고 싶은 마음도 생기구요. 전에는 그냥 죽고만 싶었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기뻐해야 할 이유가 생겼지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에서 나를 떼어놓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요.

그러다가 집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우리는 사랑하게 되었고 언젠가는 육지로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요. 그리고 어느 날 우리 꿈은 현실이 되었어요. 우리는 섬을 떠나서 결혼할 수 있었고 이곳 영호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우린 우리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어요, 아버지.'

그토록 긴 세월 끝에 만난 아들이 오늘 아침에 제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손주놈들도 보여주더군요 ."

할아버지는 긴 이야기를 마치고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이제 할아버지는 아들과 가정을 찾았다. 집을 떠난 탕자가 돌아오듯이 잃어버렸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것이다.

"우리 마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세 사람은 손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14.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확성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교회탑에서 울리는 찬송가 소리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그날 밤 나는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 거센 돌풍이 집과 외양간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러나 잠을 자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어제 저녁 느지막이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목사님, 접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 형제님이십니까? 무슨 일이 있으세요?"

"30분 전쯤에 택시 한 대가 옆집 나씨네 앞에 서더라구요. 그래서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그집 애 택상이를 택시에 태우는 겁니다. 집사람을 불러서 '저 집에 또 뭔 일이 났나보다'고 말했지요. 택상이와 택상이 엄마가 택시를 타고 떠난 다음에 그 집 문을 두드렸더니 할머니가 열어주시는데 울어서 눈이 잔뜩 부어 있더라구요. 집안에서 나씨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게 들리데요.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나와서는 노모를 확 밀어제치고 제 얼굴 앞에서 주먹을 휘둘러 대는데, 나 원 참. 그러더니 '내 집에서는 내 맘대로 할거니까 내버려두라구!' 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문을 쾅 닫아버리는 겁니다.

목사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애비라는 사람이 자식을 병원에 갈 정도로 패다니, 게다가 이게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에요. 이대로 가만이 앉아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그 집도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까?

목사님, 나씨와 이야기 좀 해보세요. 혹시 목사님 말씀은 들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얘기했다고는 하지 마세요. 나씨와 싸우고 싶지 않으니까요."

박씨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나는 전화가 끊기 뒤에도 오랫동안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그만큼 그 소식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박씨의 말은 과정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씨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그렇게 이성을 잃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나는 그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나씨는 작년에 큰 양계장을 짓느라고 돈을 많이 꾸어야 했다. 그러나 나씨네가 양계장 때문에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없었다. 그런데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지난 주에는 왜 그리 술을 많이 마셨을까? 나씨는 내 앞에서는 자신의 어려움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새벽기도회 후에도 그저 몇 마디 인사말만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 집에 숨겨져 있던 불행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나씨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단지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집 식구들이 이런 문제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그렇게 여러 번 이야기했고 구역예배에서도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한 가족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렇게 서로 돌보지 못하다니!

나는 나 자신과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했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가!

확성기에서 다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찬송가가 끝났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교회로 갔다. 장마철의 끈끈한 바람이 내 얼굴로 확 불어왔다. 새벽기도회에 친밀한 듯이 모여 있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모두들 기대하는 마음으로 강대상을 올려다보며 좋은 말씀을 듣게 되기를 기다렸다. 나는 그들의 이기적인 생각에 화가 났다. 새벽부터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화로 들은 이야기를 간단히 말했다. 구체적인 이름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교회에 모인 교인들 앞에서 이 주간에는 심방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교인들을 그대로 둔 채로 나는 혼자 내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가 미처 묻기도 전에 말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목사님, 어떻게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제 이야기를 하실 수 있습니까? 저는 그래도 그렇게 심하게 자식을 때리지는 않는다구요."

"제가 말한 사람은 형제님이 아닌데요."

우리는 두 사람 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럼 저희 동네에 그런 사람이 또 있단 말씀입니까?"

"이리 들어와 보세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이야기해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털어놓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실제 생활에 부딪쳤을 때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나님의 풍성한 용서 가운데 일부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게 씨름해야 하는지!

이씨가 말했다.

"예배드리러 함께 모여 앉은 우리의 모습은 마치 죄의 실로 짜놓은 옷감 같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어요. 그래서 교회 밖으로 한 걸음만 나와도 다시 싸움이 시작되고 괴로운 일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 사이나 식구들 사이에서도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아들에게 너무 심했어요. 너무 화가 나는 바람에 하나님은 자격 없는 저를 그토록 긍휼히 대해 주셨는데 저는 아들에게 그렇게 못했습니다. 마음으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그런 짓을 하게 됩니다. 저는 몰매를 맞아도 할 말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씨는 절망감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형제님, 저도 형제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는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근심을 내려놓았다. 이씨는 돌아갔고 내 마음도 잔잔해졌다.

그렇지만 나씨 일을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이튿날에는 나씨도, 그 가족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기도회에도 나오지 않았고 예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보기가 머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그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 하나 따 올랐다. 그날 어린이 성가대 시험이 있었는데 우리는 시험을 치르는 대신 곧장 나씨 집으로 행진해 갔다. 우리는 가면서 힘차게 노래를 불렀다. 동네사람들은 우리가 대체 어디로 가는지 구경하고 있다.

"오랜만입니다. 어린이 성가대원들이 형제님을 방문하고 싶어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나씨의 어두웠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알았다. 이것은 그의 가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특별한 방문이었던 것이다.

"어서 들어오거라!"

그는 꼬마들을 맞이했다. 금세 작은 상 몇 개가 놓이고 맛있는 떡과 참외가 차려졌다. 우리는 다시 우리와 하나가 된 나씨 집에서 먹고 울고 노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5. 하나님의 씨는 자란다


"목사님, 계셔유?"

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여기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나는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문을 살짝 열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할머니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유씨 할머니는 고무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왔다.

"목사님, 어떻게 지내셔유?"

할머니는 공손하게 절을 하며 내 안부를 물었다.

"잘 지냅니다. 여기 좀 앉으시지요."

나도 절을 하며 방석을 권했다. 할머니는 방석에 앉아 조용히 기도를 드리더니,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목사님, 제 안경 좀 봐주셔유. 귀 가장자리가 영 아프구만유."

"어디 볼까요?"

나는 할머니의 안경테를 약간 구부려서 간격을 넓혀드렸다.

"이제 한번 써보세요."

안경은 편하게 잘 맞았다. 할머니는 수줍은 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이구, 목사님이 여기 안 계셨더라면 어쨌을까 몰러!"

할머니는 손가락이 끊어져 나가고 없는 두 손을 무릎 사이에 감추었다.

"목사님, 절대 여기를 떠나지 마셔유. 목사님이 떠나시면 우리는 죄다 목자없는 양떼가 되버릴 거구만유."

할머니가 이렇게 부탁하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할머니는 문둥병에 걸린 후부터 여든일곱이 된 지금까지 미움과 배척만 당해 왔던 것이다. 할머니의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평소에 궁금히 여기던 것을 물어보았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를 알게 된 것도 벌써 몇 년이 되었네요. 한 가지 여쭈어 보아도 될까요?"

"그러믄유."

"할머니는 언제 예수를 믿게 되셨습니까?"

할머니는 그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가 스물두 살 때 어떤 일본 목사님의 전도를 받았구만유. 그 목사님이 무슨 말을 할라치면 일본 사람들이 목사님을 내몰곤 했지유.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못할 짓도 많이 했지만 그 목사님은 참말로 좋은 분이였시유. 일본 군인이 못된 짓을 할 때마다 어쩔 줄을 모르셨지유."

할머니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는 먹을 것이 귀했지유. 쌀은 구경하기도 힘들었으니까유. 그때 생각하면 요즘은 진짜 좋은 시상이지유."

할머니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어떤 일본 목사님 한 분이 오래 전에 이 할머니의 마음에 하나님의 씨를 뿌렸구나. 지금 할머니는 나이든 사람이건 젊은 사람이건 할 것 없이 모든 영호 사람들에게 믿음의 본으로 존경받는 분이 되었다.

할머니는 아침 10시만 되면 교회에 기도하러 가기 위해 작은 집을 나선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자신의 문제인 양 가슴에 품고 오래오래 기도하신다.

요즘 우리는 사오십 명 가량의 노인들을 보살필 수 있는 양로원을 세우려고 한다. 문둥병이든 노인들은 돌보아줄 가족 하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목돈이 없이도 일을 시작해줄 건축 회사를 찾고 있다. 영호에 사는 사람들은 비록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영호에서는 하나님의 씨가 자라고 있다. 척박한 토양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우리는 매일 새벽 4시에 새벽기도회로 모인다. 이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이다. 형제 한 분과 자매 한 분이 기도하고 나면 보통 내가 설교를 한다. 물론 찬송도 한다. 겨울에는 찬송이 특히 중요하다. 우리 교회에는 난방시설이 없는데 힘차게 찬송을 하면 몸이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이 새벽기도회에 온다. 이제 그들은 새벽기도회를 빼놓은 하루 생활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새벽기도회에서는 이틀에 한 번씩 학생 성가대가 찬양을 드린다. 학생들은 영한대역 성경을 보면서 성경구절을 외운다.

주일 아침이면 어린이예배를 먼저 드리고 11시에 대예배를 드린다. 남녀 성가대원들이 멋있는 가운을 입고 매주 찬양을 드린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교회는 벌써 꽉 차 버린다. 우리 교회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에 모두들 방석을 깔고 앉는다. 시간이 되면 교회탑에 설치한 확성기로 녹음된 찬송가가 울려퍼진다. 그것이 교회종을 대신해준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일종의 '희망곡'을 부른다. 사람들이 자신이 부르고 싶은 찬송가 장수를 큰 소리로 말하면 반주자와 성가대가 선창한다.

교인들 대부분은 2시 오후예배에 참석하고 예배가 끝나면 구역별 성경퀴즈대회를 연다. 이렇게 매주 점수를 매겨서 연말에 합산하고, 그 중에서 제일 성적이 좋은 구역에게 상을 준다. 주일 저녁에는 청년예배가 있다. 이 예배 때에는 전도사님이 설교를 한다. 교회에 이렇게 집회가 많은데도 내가 기쁨을 잃지 않는 것은 내 곁에 동역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도사님, 장로님, 집사님, 주일학교 교사, 구역장 등 여러 분들이 교회를 섬긴다. 교회에 속한 사람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뿌리신 씨를 거두는 사람들이다. 평일에는 일터에 나가서 각자 일을 하지만 저녁 시간과 주일은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따로 떼어 놓는다.

매달 마지막 주일에는 재미있는 행사가 있다. 성격암송대회에서 성경을 가장 많이 외우는 암송왕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암송왕이 되려고 열심히 노력할 뿐 아니라 이 행사를 아주 재미있어 한다.

수요일 저녁에는 교회에 모여 성경공부를 한다. 또 목요일 저녁에는 자매들의 모임이 있다. 집사님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좋겠다. 부인들은 우리 동네에 사는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하고, 각자 할 일을 분담한다. 금요일에는 다섯 가정씩 한구역으로 모여 구역예배를 드린다. 구역은 우리 교회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기초단위이다.

영호 사람들에게 교회는 두말할 나위없이 중요한 존재이다. 그들은 삶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하나됨'을 교회에서 경험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호도 많이 변했다. 낡은 초가집들이 헐리고 새 집들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밭일뿐 아니라 양돈 사업도 한다.

"우리 자식들은 우리보다 잘 살아야지요."

동네 어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영호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교회 지붕에 올라가 석양빛에 빛나는 우리 마을을 보면서 이곳을 이 세상 어느 곳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는 하나님의 씨가 자라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들판이 있는 것이다.


16. 크리스마스에 생긴 일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한다. 흔히 가족들 중에 교회에서 먼저 나오는 사람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서 교회에서 들은 하나님 이야기나 예수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열심히 대단한 선교사인 셈이다. 아이들은 이웃 동네에 가서도 선교사 노릇을 한다.

영호에서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 때의 놀라운 일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몇 주 전부터 교회 아이들은 동네 방네 다니면서 말했다.

"얼마 있으면 예수님 생일인데 그때 생일잔치를 할거야. 목사님이 우리를 전부 초대하신대!"

그 말을 들은 이웃 동네 아이들은 귀가 번쩍 뜨였다.

"먹을 것도 주냐? 부처님 오신 날에는 떡을 받았는데."

아이들은 친구들의 요구를 척척 받아주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나팔을 불었다.

"우리 목사님 말씀이 예수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신대. 그러니까 예수님 생일에는 우리 모두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어."

아이들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때문에 번번이 난처한 상황에 빠지곤 했다. 도대체 어떻게 크리스마스 전날까지 그렇게 많은 쌀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12월 24일은 무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먹을 것을 아끼고 아껴서 쌀 반 자루는 어떻게 마련했지만, 그것말고는 쌀 한 톨도 얻지 못했다. 첫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맞이해야 하다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려고 애써 왔다. 그러나 . 공기에 밥을 가득 담아 쪼르륵 소리나는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만 있다면, 너무 배가 불러서 아무 말도 못할 정도로 실컷 먹게 해줄 수만 있다면 .

크리스마스 전날 밤이 되었다. 어른 아이 할것없이 예배당에 빽빽이 끼어 앉았다. 방석은 벌써 다 동이 난 지 오래였다. 세 시간 동안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극, 합장, 성탄절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어른과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영호에서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 그것은 그야말로 생일잔치였다! 그러나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분명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른들의 얼굴에서도 푸짐한 생일상의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들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예수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신대"하고 말할 때 "하지만 목사님은 그렇지 못해"라는 말을 빠뜨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웃 동네 아이들은 예상보다 많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소원과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내 신학 속의 예수님은 과연 이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실 것인가?

나는 뜨거운 감자를 뱉어버리듯이 내 고민을 밀어내버렸다. 먹든지 말든지, 결국 예수님 생일이니까 난 모르겠다. 잔치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예배를 마치면서 나는 짧지만 분명한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당신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는 저녁에도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더 이상 없었다.

숨소리까지 들릴 듯이 조용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아니면 몇 분? 내게는 영원처럼 아득한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떤 남자가 서 있었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나를 보고서는 교회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목사님, 쌀을 세 가마니 가져왔는데 어디에 두면 좋을까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감사의 말이 튀어나왔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내 말에 아멘으로 응답했다.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분이 계실까? 예수님은 참으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그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긴 나를 깨웠다.

"서울에서 오는 길입니다. 홍콩에서 주문한 기계가 서울로 왔거든요. 목사님, 홍콩에 있는 제 친구 아시지요? 그 친구가 목사님과 목사님 교회에 크리스마스 인사를 전하면서 이 쌀을 살 돈을 보냈습니다. 마침 사업상의 일로 이 근방에 올 일이 있어서 가져왔지요. 쌀이 택시 트렁크 안에 있는데, 누가 좀 옮기는 걸 도와주시겠습니까?"

사람들의 말문이 동시에 열렸다. 모두들 기쁨에 넘친 나머지 작은 교회당이 들썩들썩 했다.

정말 놀라운 크리스마스였다!

박 장로님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그 집 아궁이가 동네에서 가장 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밥공기와 수저를 챙기려고 집으로 달음질쳤다. 예배당 바닥에는 서둘러 작은 잔칫상이 차려졌다.

한 시간후, 우리는 모두 크리스마스 잔칫상에 둘러 앉았다. 공기에 소복이 담긴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우리 아이들은 예수님이 자랑스러워서 마구 으시대며 신바람을 냈다. 그리고 행여나 이웃 동네 아이들에게 질까 싶어서 밥그릇을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갔다.


17. 어떤 축구 선수


문둥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이 생긴다.
하지만 이 무서운 병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 시즌이 될 때마다 주목받던 청년이 있었다.
스무 살의 그 청년은 몸이 민첩하고 공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으며 골을 잘 넣는다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그는 대학축구부원에서 청소년 국가대표선수로 발탁되었고, 주요멤버로 선정될 것이 확실했다.
축구계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얼마나 굉장한 것인가!

어느 날 연습이 끝난 후 그는 무릎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훈련을 심하게 한 탓이려니 생각하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삼일 후면 통증이 가라앉겠지.
그러나 스스로 애써 안심시켰던 것과는 달리 고통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선수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경기 도중에 다른 선수와 교체해야만 했다.
그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절뚝거리며 퇴장했다.

"이상한데요. 이틀 후에 다시 오세요."

의사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무릎뼈 아래 있는 두세 개의 희끄무레한 반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살갗을 약간 떼어내는 까닭을 청년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으로서는 통증의 원인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수님, 축구를 못 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요? 전 축구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청년은 웃어보이려고 했지만 얼굴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의사는 청년이 원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잠시 후에 애써 웃으면서 청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위로 했다.

그러나 청년은 위로를 받지 못했다. 의사의 말은 곧 다시 축구선수로 뛸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이틀 후, 의사와 청년은 착잡한 심정으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생각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나에게는 축구가 전부인데 . 의사는 의사대로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내 말은 저 청년의 삶을 뒤바꾸어 놓을 텐데 .

"선생님, 제 병명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이 문제지요?"

청년은 마침내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이틀 전에 피부를 떼어냈던 걸 알지요? 검사 결과 나병 병원체로 판명되었습니다. 병이 이미 많이 퍼졌어요. 다음 단계로 진전되기 전에 빨리 치료를 해야 ."

"잠깐만요. 지금 제가 문둥병에 걸렸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더러운 빈민촌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그런 병을 얻었다는 겁니까?"

청년은 분노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벌써 몇 년 전에 감염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의사는 설명하려고 애썼다.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아버지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누이 둘을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제가 데려왔습니다. 좋은 아파트가 생겼거든요."

그 젊은 축구선수의 눈은 기억 속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골목에서 공을 차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폐수와 더러운 물들이 고여 있었고 누추한 함석지붕집들 사이로 개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떼지어 싸움질을 하거나 더러운 데서 뒹굴었다. 그러나 그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변했다.

"어쨌든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바로 소록도로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오래 끌면 안됩니다! 되도록 빨리 가족들을 떠나야 합니다. 필요한 것들은 내가 준비할 테니 삼일 후에 다시 오십시오."

의사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정신이 나간 듯이 병원을 나와 달음질쳤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중의 환호를 한 몸에 받던 축구선수가 아니던가! 그런데 이제 문둥이가 되어 섬으로 추방되어야 하다니!

청년이 그렇게 병원에서 나간 지 닷새가 지났다. 의사는 계속 기다렸지만 헛일이었다. 그 청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그날 아예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학교에 있는 그의 책장에는 책들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축구복도 잘 개켜져 있었다. 그러나 축구화는 없었다.

청년의 어머니는 친구와 교수님들에게 그의 행방을 수소문해 보았다. 그의 소식을 알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가 '난 지금 떠날거야. 그리고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어'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냥 웃어 넘겼지요. "

어머니는 터미널에도 나가 보았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가는 평범한 청년을 주의해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엾은 어머니는 여기저기 버스를 타고 다니며 운전사들과 승객에게 물어 보았지만 아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런 식으로 아들을 찾아다니던 어머니는 광주에서 내려가게 되었다. 광주 버스터미널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머니는 어느 가게에서 마른 오징어를 몇 마리 샀다. 배가 고플 때에는 구운 오징어를 씹는 것이 최고였다. 어머니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 번만 더'라고 생각하며 가게 아저씨에게 아들의 사진을 내밀었다.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 본 적 있으세요?"

아저씨는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아, 봤어요. 청소년 국가대표선수 아닙니까? 지난 번에 저희 가게에 왔길래 혹시 광주에서 시합이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냥 고개를 돌리고 가버리더라구요. 저는 그냥 우스운 사람도 다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을 찾고 계십니까?"

"이제야 그 애 소식을 듣게 되는군요. 제가 바로 그 애 에미입니다. 혹시 그 아이가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주머니가 참 안되셨군요.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누구나 그런 식으로 행동할 때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는 법이거든요."

아저씨는 생각하는 듯한 시선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이유가 있지요. 그 애는 식구들을 생각해서 집을 나간 거예요. 사실은 문둥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

어머니는 간신히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하지만 누구에게든지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이리 들어오세요. 아들한테 가게를 보라고 하고 우린 저 안쪽에서 이야기합시다."

가게 주인은 어머니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어머니는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잘 되기를 빕니다!"

인정많은 아저씨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바닷가에 서서 저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소록도가 있겠지. 거기 그 애가 있을거야 ."

어머니는 다음날을 위해 용기를 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첫 배를 타고 소록도에 갔다. 사무실 사람들은 어머니를 도와주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썼다. 어머니는 환자 명부를 찾아보았다. 아들이 있었다! 여기에서야 아들을 찾아헤매던 긴 여정이 끝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어떤 여자분이 어머니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어머니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며 아들을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청년 한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다. 눈에는 검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얘야!"

어머니가 아들을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밀쳐냈다.

"엄마, 이러지 마세요! 난 문둥병에 걸린 몸이라구요. 그만 가세요! 여긴 뭐하러 오셨어?"

"문둥병에 걸렸어도 넌 내 아들이야."

"절 잘 보세요. 여기 서 있는 것은 예전의 엄마 아들이 아니에요."

아들은 천천히 안경을 벗었다.

"제 얼굴은 끔찍하게 일그러졌어요. 저는 흉한 병신이라구요!"

그는 지팡이를 보여주었다.

"이 섬에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에게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에요. 모두 우리를 혐오스럽게 쳐다본다구요."

아들은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얘야,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문둥병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리마."

이것은 아들이 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며 자기 거처로 돌아갔다. 어른이나 아이 할것없이 문둥병자들은 모두 거기에 모여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부고(訃告)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며 흘릴 눈물이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평생 흘릴 눈물을 이미 다 써버렸다.

청년은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사람들이 그를 발견해서 위를 세척했다. 두 주 동안 세 번이나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그의 아버지뻘 되는 노인 한 분이 자리에 누운 그를 찾아왔다.

"죽기에는 너무 늦었어. 이젠 한번 살려고 해보게나. 내가 도와줌세!"

지난날의 스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청년에게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 이 나이든 문둥병자가 지니고 있는 희망에는 한 가지 비밀이 감추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었다.

노인과 청년은 일주일 내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삶에 대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문둥병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기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감에 대해서, 가까이 지냈던 모든 이들에 대한 그리움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청년은 아버지 같은 노인과 친구처럼 지냈다. 이전에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바른 길을 찾았다. 예수를 믿는 그의 믿음은 날마다 자라갔다.

그가 축구선수로서 가졌던 희망은 문둥병으로 무참하게 깨졌고 삶에 대한 증오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그는 문둥이들의 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았다. 그리고 그속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18. 진짜 문둥이


청년들의 수가 점점 많아졌다. 학생들은 이웃 마을에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 이야기를 좀더 들으려고 우리 마을에 찾아오는 청년들이 생겼다.

어느 주일 오후, 청년예배를 인도하고 있을 때였다. 몸집이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 한 사람이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신도 벗지 않은 채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그는 앉아있던 청년들을 훑어 보더니 한 청년의 멱살을 움켜쥐고서는 한 마디 말없이 그 빈약한 체격의 청년을 밖으로 끌고 나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람들은 마비된 듯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두 사람의 뒤를 쫓아나갔을 때까지도 예배당의 두 문짝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청년이 더 맞지 않게 말리려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자식을 때리는 이런 거친 폭력을 지겹도록 많이 보아 왔다. 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들었을 때 그 남자의 주먹이 날아들었고 나는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멍한 정신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나의 행동에 놀라고 자신의 주먹이 내게 명중한 것에 놀란 탓인지 그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노여움으로 이글거렸다.

"내 자식이 문둥이들과 어울리다니, 절대 안될 말이지! 저 놈은 문둥이가 아니야. 내가 왜 이런 더러운 곳에서 저 자식을 찾아다녀야 하냐구!"

그는 고약하게 내뱉었다.

나는 내 검정색 단벌 양복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천천히 일어났다. 상처가 약간 났다. 나는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

"여기 문둥이가 어디 있습니까? 이 마을에 더러운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당신이야말로 문둥이입니다!"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까 그의 주먹이 내 얼굴에 명중한 것처럼 내 말 또한 그의 마음에 명중한 것이 분명했다. 그는 아무말 없이 돌아서더니 아들을 밀쳐내고 돌아가버렸다. 그제서야 그의 주먹이 다시 날아올 수도 있었으리라는 생각에 식은 땀이 흘렀다.

그가 돌아가고 난 후에야 나는 청년들은 우리가 한 말을 모두 들었다. 이제는 예배를 마저 드리기 위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긴장감이 돌았다. 모두들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인채 집을 향해 무거운 발검음을 돌렸다.

나는 집에 돌아와 글을 쓰면서 낮의 일을 애써 잊으려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다시 올 것이다. 나는 그가 난폭하게 굴 것이 무서워서 책상 뒤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가 정말 찾아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데 정말 그가 왔다. 밤 11시가 지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열렸다. 그의 손에 쥐어진 몽둥이를 보고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떨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나에게 앙갚음을 하러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몽둥이를 문 옆 기둥에 기대어 놓고 신을 벗고 들어왔다.

"목사님, 낮에는 죄송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는 방바닥만 내려다 보면서 침묵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제가 문둥이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힘이 장사 같은 그 남자가 왜소한 내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는 그제서야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님은 문둥병자들이었다. 그가 태어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단 한 가지 방법은 가능한 빨리 아이를 건강한 가정으로 입양시킨 것이었다.

아이는 자식이 없는 어느 가정에 아무도 모르게 입양이 되었다. 그들은 친자식처럼 아이를 길러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아이들과 싸우다가 '줏어다 키운 애'라고 놀리는 소리를 들은 아이는 울면서 부모님께 달려갔다. 부모님은 사실대로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자신도 문둥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그러면서 문둥병과 관련된 것은 무조건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미워한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청년기에 집을 떠나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도시로 갔다. 그러나 문둥병은 벗을 수 없는 굴레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실제로 발병한 것도 아닌데도 그는 그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아내에게도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직업상의 이유로 영호근처로 이사를 온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우리 마을 사람들과 싸웠다. 그는 이웃들을 부추겨 우리 마을 사람들을 증오하며 대적하게 만들었다. 우리 마을 아이들을 볼 때마다 돌을 던져 쫓아버리기도 했다. 문둥병자 부모를 가진 아이들의 심정을 그토록 잘 알면서!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의 운명과 싸우고 있었다. 겉에 드러나는 문둥병의 표시는 없었지만 속마음은 친부모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비밀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찢기워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문둥병이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이 우리 마을에 갔다는 말을 듣게 되자 이성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저녁 무렵에는 낮에 벌어진 일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는 마침내 아내에게 마음을 털어놓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호에 있는 목사를 찾아가보라고 용기를 북돋아준 사람은 바로 아내였다.

"목사님, 정말 불안합니다. 이제 우리 가정을 제 과거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것을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식구를 따돌리고 자식들도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면 어떡합니까? 그렇게 된다면 그건 전부 제 잘못입니다."

"영호 사람들은 형제님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도, 우리 자식들의 장래도 절대 포기하지 않지요. 우리는 한마음으로 살고 있고 바깥 사람들과도 유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의 업보인 문둥병 때문에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 형제님의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여 주기를 기도하거나 우리가 다시 건강하고 아름다워지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라는 운명을 짊어진 우리와 화해하신 후로는 많은 것이 변했지요.

형제님도 형제님의 삶과 화해하십시오.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될 겁니다. 하나님이 그 일을 도와주실 겁니다."

그의 마음에서 무거운 돌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아들과 함께 우리 교회 청년들을 찾아왔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문둥병자들과의 싸움을 그치게 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 주시는 평화를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19. 청소부 아주머니와 기적에 대한 설교


우리는 뼛속 깊이까지 피곤했다.
눈꺼풀은 무거웠고 주변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노곤했다.
독일에서 온 친구와 나는 광주 고속버스터미널의 대기실 복판에 있는 긴 의자 구석에 비좁게 끼어 앉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할 때마다 소음은 더 심해졌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소지품을 챙겨 들고는 버스를 타러 우르르 몰려갔다.
대기실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면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다가 잠시 후에는 새로 온 사람들로 다시 북적거렸다.
친구와 나는 전혀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우리는 지난 주 내내 이 모임 저 모임을 돌아다녔다.
성경 공부 모임과 청년부 모임, 공장에서 예배드리는 청년들의 모임에서부터 산에 있는 기도원까지,
그리고 새벽예배부터 저녁예배에 이르기까지 쉴새없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우리의 주제는 언제나 영호의 양로원 설립 계획으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는 순례자 같았다.
몇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발로 뛰어다니고서는 냄새 나는 버스 안에서 꾸벅꾸벅 졸기도 했고,
공기조절기가 설치되어 있는 고급 리무진을 타기도 했다.
우리는 극에서 극으로 옮겨 다녔다.
어느 교회 장로님의 초대로 값비싼 호텔 뷔페에 가기도 하고 길거리의 작은 식당에서 서둘러 국수를 먹기도 했다.
또 유럽의 성당만큼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하는가 하면 광주에 있는 작은 이발소의 한구석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우리가 이런저런 걱정거리에 눌려 기진맥진해서 앉아 있을 때 누군가 우리를 옆으로 밀치는 사람이 있었다.
청소부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앞에 팽개쳐 놓은 채 담뱃불을 붙이고 있었다.

자욱한 담배 연기 때문에 눈이 매웠다.
연기 너머로 수건을 두른 머리와 주름진 이마, 상처 자국이 있는 두툼한 뺨이 보였다.
이가 몇 개 빠져 있었으며 코는 납작했다.
아주머니는 나와 내 독일 친구를 위아래로 유심히 훑어 보시더니 내게 웃어보였다.
아주머니의 나이는 얼른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친구가 갑자기 인사를 했다.

"워매, 이 사람 한국말 허벌나게 잘 허네잉!"

아주머니가 얼른 인사를 받았다.
외국인이 한국말로 인사하는 것이 신기해서였을까?
대화는 쉽게 이어졌다.
우리는 손짓 발짓을 하거나 내가 통역을 해가면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의 남편은 산업재해로 세상을 떴다.
그때부터 아주머니는 터미널 청소부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왔다.
식구들은 터미널 근처에 있는 방 한 칸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는 아주머니가 담배를 한 대 피우며 쉬는 시간이었다.
아주머니는 터미널의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청소하러 다니느라 피곤한 다리를 쉬고 있었다.

나는 아주머니가 곧 우리의 직업을 물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묻지는 않아도 돌려서라도 물어보겠지.
하기는 물으면 안될 이유는 없지.
나는 아주머니가 묻기를 기다렸고, 마침내 아주머니는 내가 작은 시골 교회의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는 불교신자여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근디 절에 안 간지도 오래 됐어요. 초파일날 부모님 따라 갔던 것이 마지막이라잉."

아주머니가 살던 집 지하에 교회가 있었다.
아주머니는 저녁에 퇴근할 때 지하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소리를 자주 들었다.
호기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감히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우리는 교회 사람들이 무얼 믿고 있는지 아시냐고 물었다.

"예수 믿는다는 건 알지라.
그리고 그 목사님이 아픈 사람한테 손 딱 엉그믄 싹 나서분다드만요.
그래서 한번 가보고 싶기는 헌디.
내가 다리 땀시 고생을 많이 혀서요.
한번 가보믄 어쩌까잉?"

아주머니가 거리낌없이 물었다.
나는 그 말을 친구에게 통역해 주었다.
우리는 어이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목사가 기적의 치료자라고?
그것은 목사 본연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기적적으로 병 고치는 일을 기독교의 표징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머니에게 더 이상 믿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
영호행 버스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에 탄 후에 내가 친구에게 말했다.

"자네도 보았지?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머니가 희망을 거는 것은 기적적인 병고침이라구.
아주머니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기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군.
영호 식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야겠어.
자네가 이런 설교를 한 번 했으면 하는데, 내일 예배 시간이 어떨까?"

우리는 밤늦도록 설교문을 작성했고, 나는 독일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겼다.
우리 교인들은 이 설교를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

영호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4장 46절에서 53절까지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본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고향 갈릴리에 있는 가나로 오시는 길입니다. 가나는 헤롯 대왕의 아들인 로마 왕 헤롯 안티파스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나의 한 혼인잔칫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게네사렛 호숫가에 있는 도시 가버나움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왕의 신하가 한 명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중한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소문에 듣던 예수님이 가나에 오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가나에 가서 예수님을 만나 자기 집에 와서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떤지 직접 겪어보셨기 때문에 여기에서 "너"라고 하지 않고 "너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임을 증명해 줄 만한 표적과 기사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증명이 안된다고 판단하면 메시아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왕의 신하에게는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메시아든지 아니든지 아들만 구해주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같이 가주실 것을 또한번 간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같이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 무엇을 부탁했는데 실제로 해주지는 않고 말만 하면 얼마나 실망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고, 집에 가서 아들이 실제로 건강하게 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모두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목을 정한다면 '갈릴리에서 일어난 기적적인 치유'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건 아주 옛날 얘기야. 요즘은 그런 일이 생길 수 없어' 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왜 요즘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지? 내 아이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내가 더 쉽게 믿을텐데'하고 말씀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렇게 단정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어떤 사람을 염두에 두고 이런 말을 했을까요?

제가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사막이 어떤 곳인지 아시지요? 어떤 사람이 사막에 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몇 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저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물도 먹지 못한 채 며칠이 지난 터라 그의 혀는 입천장에 딱 달라 붙어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합니다. '지평선 너머에 보이는 저것은 무엇일까? 혹시 물이 아닐까?' 그의 마음은 그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무언가가 그를 가로막습니다. 바로 그의 이성입니다. 그의 이성은 계속 그에게 말합니다. '저기 저 은빛나는 띠는 물이 아니라 신기루야. 그러니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 그는 이성의 판단에 따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바로 사막에 서 있는 이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없고 하나님도 없으며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방향을 돌리고 맙니다.

다른 예를 또 들겠습니다.

창밖에 월출산을 한번 보십시오. 누군가 그 정상에 올라가려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길에 서 있는 안내표지판들은 각각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으로만 보아서는 어느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길은 끝까지 보이지 않고 봉우리 뒤편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마침내 그는 한 길을 선택해서 서둘러 출발합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망설이기 시작합니다. 그 길에는 자갈이 너무 많고 경사가 급합니다. 그는 멈추어서서 이리저리 생각해보다가 마침내 돌아섭니다. 그러면 다른 길은 좀더 쉬울까요? 그러나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매번 망설이게 될 것입니다. 그는 어느 길로 끝까지 가야 할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믿는지 보면서 그 사람들을 따라가고 싶어합니다. 믿음의 길은 그들에게 너무나 어렵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이 그 길을 함께 가주실 텐데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광야에 샘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사막에서 목말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상에 올라가는 길을 찾기가 어려워서 산기슭에 서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며 우리가 정상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삶과 죽음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본문은 무엇보다 먼저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들이 죽느냐 사느냐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아버지가 예수님의 말씀을 정말 믿는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결국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은 무엇으로 결정됩니까?

우리 예수님을 찾읍시다! 예수님을 신뢰합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릅시다!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을 찾아가십시오!

오늘 말씀에서는 아픈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먹을 것을 찾고 일을 찾고 보호와 사랑을 찾고 신을 찾습니다. 성경은 "찾으면 찾을것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 경험을 돌이켜볼 때 우리가 찾는 것 대부분은 한낱 동경으로 끝날 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발견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갈릴리에 사는 이 왕의 신하와 그 아픈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시여, 하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알리십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많은 말을 들으며 많은 소식과 광고와 약속들을 듣습니다. 우리의 귀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습니다. 눈은 감을 수 있지만 귀는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앞에서 눈은 감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귀를 뚫고 들어옵니다. 말씀은 항상 기적보다 앞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말씀은 예수님이 왕의 신하에게 주신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은 지금 볼 수 없지만 그 말씀은 오늘도 성경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의 말씀은 효력을 잃지 않았고 아직도 계속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병든 아이의 아버지는 내리쬐는 뜨거운 볕을 뚫고 30킬로미터를 달려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가나'는 '갈대'라는 뜻입니다. 가나로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은 그가 붙든 마지막 지푸라기 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기에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구하십시오! 그러면 얻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생각을 거부합니다. 우리의 이성은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가슴으로 거부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보다 다른 것들을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께 강한 거부감을 느낄 때 우리는 차라리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막에서 길잃은 사람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지평선 너머 보이는 것이 물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갈증으로 목구멍이 타오르는데도 거기에서 몸을 돌이켜 반대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는 눈 앞에 구원을 두고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몸을 돌이켜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우리는 결코 삶의 갈증을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삶은 사막의 죽음과 같습니다.

월출산에 올라가려는 사람의 예를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가는 길마다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믿음 적은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에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의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기 집에 와주십사는 신하의 간청을 예수님이 거절하고 혼자 돌려보냈을 때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이 성경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은 참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지 아닌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왕의 신하나 우리에게 있는지가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에게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절박한 상황에 빠져서 좌절하고 있는 한 인간을 만나 주셨고, 그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하는 그때까지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기보다는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 신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것처럼 보이는 이 메시아, 곧 기적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언제나 기적을 행하지는 않는다는 그 메시아에게서 등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까? 그가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과연 그의 문제가 풀릴까요? 그의 믿음은 그의 시야보다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의 만남에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요? 그의 믿음은 과연 그의 고민을 해결해줄까요? 그의 믿음은 눈으로 결과를 직접 볼 때까지 지속되고 있습니까? 그는 예수님 안에 계신 누군가를 깨닫고 있습니까?

우리도 왕의 신하처럼 예수님의 즉각적인 도움을 바랄 때가 많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의 응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예수님은 말뿐인 분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신뢰합시다! 오늘 말씀은 왕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값싼 말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말씀은 바로 왕의 신하가 믿음을 선물로 받았다는 뜻입니다.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 온전히 말씀 하나에만 의지하려면 불신을 극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간의 말과 관련된 경험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관련해서도 많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그의 말씀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은 말씀임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세계와 삶 가운데서 그와 똑같은 능력의 말씀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시험해 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약속하고 있는 것을 경험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왕의 신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 자리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행동'이었습니다. 아이는 정말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빈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행복한 결말이 아닙니까? 무엇이 이 이야기를 행복한 결말로 이끌어 갔습니까? 여기에는 '기적의 치유자가 사경을 헤매던 아이를 살리다'라는 식의 제목을 붙이면 안됩니다. 이런 식으로 유발된 호기심은 하루만 지나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예수가 한 아버지와 그의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었다'라는 제목, 불꽃처럼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를 제목을 붙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입니다! 죽어가는 아이의 병을 고치는 것은 일시적인 구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이와 그의 가족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이러한 믿음의 기적은 예수님이 사시던 때보다 지금 더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왜 그 말을 믿어야 하지?" 하고 묻습니다.

왕의 신하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나사렛 출신의 목수 예수를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명령에 담긴 권위를 알고 있는 그는 목수의 말을 왕의 말처럼 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을 믿으십시오!

여러분,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적을 직접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실재를 믿는 사람의 삶은 이미 변화받은 삶입니다.


덧붙이는 글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이 열아홉 편의 이야기에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그곳에서 놀라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을 몇 마디 덧붙일 수 있을 뿐입니다.

영호에 사는 사람들이 왜 놀라운 사람들이냐구요?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성자는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우리는 한국 사람이든 독일 사람이든, 문둥병 환자이든 건강하든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기나 질투, 분노나 다툼이나 불화 등으로 괴로움을 당합니다.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영호와 그 이웃의 그리스도인들 이 하룻밤 사이에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꼭 달라붙어 있듯이 하나님께 꼭 매달려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문둥병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살아남은 것처럼 육체적으로도 살아남기 위한 전쟁의 복판에서도 평화를 누린다는 점에서 놀라운 사람들입니다.
문둥병을 앓는다고 해서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둥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훨씬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우리보다 뛰어난 점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김요석 목사가 최근에 보내온 편지의 몇 구절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양로원이 거의 완공되었네.
우리 식구들은 모두 주민을 찬양하고 있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건물을 세우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우리 믿음의 공동체가 독일에 안부를 전하네.

클라우스 디터 그래스

* 출처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김요석, 작성자 karamos)

 

김요석 목사님 관련 글

중국에서 나병환자들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계시는 김요석 목사님으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중국의 삼자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데 앞에 7살 먹은 아이가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20살이 될 때까지 교회를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산주의 사상이 확립되기 전에 교회를 나가면 사상이 잘못될 수 있다고 해서 20살이 되기까지는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7살 아이가 앉아 있으니 궁금해서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저 아이는 교회에 나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사님은 모택동 정권 당시, 문화 혁명 말기 때에 있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 마을에 다정하게 살고 있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만삭의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에서 사상이 불순한 남편이나 아내가 있으면 고발하라는 지시가 자꾸 내려왔습니다. 승진하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된 남편은 아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당에 고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 이혼이 되고 말았고, 공관원들이 밤중에 와서 그 아내를 강제로 내쫓았습니다. 추운 겨울날 밤에 그녀는 그 동안 살던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더군다나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그저 몸 하나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추운 겨울밤에 길에서 얼어 죽을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교회 앞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이미 폐쇄돼서 문이 굳게 잠겨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교회 앞에 가고 싶어서 그 교회 앞으로 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장사하는 어떤 사람이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바로 그 교회 앞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까이 가서 보니까 어떤 여인이 발가벗고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옆에는 자신의 옷으로 돌돌 감아놓은 갓 태어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 후에 그 교회를 다녔던 할머니들에 의해서 키워지게 된 것입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독일에서 얼마든지 대학교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록도 나환자촌과 중국 나환자촌에서 18년 넘게 특수목회 활동을 했습니다. 그가 소록도 나환자촌에서 목회할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목사님의 교회에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환자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겠다고 등록하고 1년 후 침례도 받고 나중에는 집사 직분도 받아 열심히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네 사람들이 그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 오가면 네가 나병에 걸리고 그러면 우리한테도 전염된다. 거기 가지 말라.” “아, 내 신앙인데 너희들이 간섭할 수 있느냐. 내 마음이다. 그러지 못하겠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아무리 협박해도 듣지 않고 온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잘 다녔습니다. 그러
던 어느 날 출산이 임박한 만삭의 어미돼지 5마리를 여기서 저기로 옮기는데 돼지들이 놀랬는지 갑자기 이웃집 채소밭에 뛰어들어 다 뭉개버렸습니다. 이웃집 주인이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채소 값이나 물어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웃집 주인은 돼지 5마리를 다 줘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기가 차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는데 동네 사람들도 그가 얼마나 미웠던지 그렇게 배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는 목사님한테 달려와서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목사님, 돼지들이 뭉갠 밭이래야 몇 평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 돼지들을 다 달라니요. 그럴 수가 있습니까.”


“집사님, 성경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달라면 주라고 했잖아요.” “목사님, 그래도 너무 하는 게 아닙니까.” “집사님, 믿으려면 성경대로 잘 믿어야 합니다.” 그는 믿음이 있어서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냥 어미돼지 5마리를 이웃집 주인에게 다 주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를 위로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절대로 굶지 않게 하시고 손해 보지도 않게 하십니다. 인내하고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는 그런가 보다 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미돼지 5마리가 얼마나 복을 받았던지 한 마리가 새끼 18마리씩 낳았습니다. 어미돼지까지 합치면 거의 100마리가 됐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저것들이 다 내 것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그는 돼지들을 볼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들곤 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6개월이 흐르고 가을이 됐을 때 이웃집 주인이 키우던, 큰 황소 3마리가 갑자기 뛰어넘어 그의 밭을 다 짓밟았습니다. 그는 아주 신나서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역시 자기 백성을 손해 보지 않게 하십니다. 100배 이익을 보게 생겼습니다. 씨를 뿌리면 100배로 거둔다는 말씀이 정말 맞습니다.”


“집사님,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계산하는 게 아닙니다. 손해 볼 때는 봐도 남에게 손해 끼쳐서는 안 됩니다. 적정선에서 양심껏 배상받으세요.” “아니, 저 사람이 한 대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찌 기독교가 용서의 종교일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떡하면 됩니까.” “그냥 돌려주는 게 용서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게 하십니다.” 그는 목사님의 말씀을 그냥 믿고 순종하기로 하고 돌아갔습니다. 이웃집 주인은 야단이 났습니다. ‘한 마리만 배상하면 좋겠는데.’ 그런데 웬걸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됐네. 내가 예수 믿는 덕에 자네가 복 받았네. 3마리 다 가져가게. 채소밭 그게 몇 푼이나 되겠어.”


이웃집 주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용서를 받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양심이 없다고 해도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자기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황소 3마리를 다 빼앗을 텐데 예수 믿는 사람은 달라도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웃집 주인은 고민하다가 자신도 용서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이 6개월간 살지게 키웠던 그 돼지들을 다 몰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내가 잠시 맡은 것이니 돌려주겠네.” “그러면 어미돼지만 돌려주게.” “아니야, 다 받게.” 이웃집 주인이 하도 사정하기에 그는 6개월이나 키워놓은 돼지들을 다 돌려받았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5년간 독일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한국에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서지만 영적인 갈등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어떤 목사님의 소개로 나환자 정착촌인 영호마을의 한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글은 영호를 방문하였다가 그들의 삶에 감동한 김요석 목사님의 독일 친구인 클라우드-디터 그래스가 1991년에 독일에 먼저 소개하였습니다.


김요석 목사님은 10년간 영호교회에서 사역하시다가 중국으로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아는 분이 없는 상태이기에 부득이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출판하게 된 것을 옮깁니다.


은혜가 되시길 바랍니다.


한센 환우의 벗 김요석 목사님

국민일보 1998.10.10, 00:00

[이지현기자의 책읽기] 김요석목사의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자신을 나타내지 않고 숨어서 봉사해 `얼굴없는 천사'로 불리는 김요석 목사.
독일에서 15년동안 신학을 공부한 그는 귀국후 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강의했지만 영적인 갈증을 채울 수 없었다
학생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은 어려운 신학이론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것을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간을 친히 만나길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던 김목사는 마침내 교수직을 버리고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6백㎞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에 정착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마을은 한센씨병이 음성으로 바뀐 사람들이 정착해 정상인과 이웃을 하며 살고 있는 곳이었다.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홍성사)에는 김목사가 이 마을에서 체험한 사랑과 그가 만난 하나님의 손길을 간증한 19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신앙의 힘에 의지해 새 삶을 가꿔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목사는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도 일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과 씨름을 한다고 말한다.그러나 그들이 일반인과 다른 것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달라붙어 있듯이 하나님께 꼭 매달려 있다는 점이다.아픔을 신앙으로 극복해 낸 이들에게 신앙은 생명이었다.김목사는 척박한 오지,아무도 부임하려 하지 않던 이 마을 교회에 부임해 10여년동안 헌신적인 사역을 했다.행여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부정적으로 비쳐질까봐 글을 남기지 않았다.


이 책은 이 마을을 방문했다가 감동을 받은 김요석목사의 독일 친구 클라우스 디터 그래스가 `DAS DORF DER VERGESSENEN'이란 제목으로 1991년 독일에서 먼저 소개했다.김목사는 이 마을에서 10여년간 사역하고 중국으로 건너간 후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한다.김목사의 간증테이프는 이미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고 그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얼굴없는 천사'를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현재 이 책을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출판사가 책 속의 정착마을 주민들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고 모두 수거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한권의 책은 육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감사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과의 만남이란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다가서는 것'이란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다.또 병을 치유받는 기적이 복음의 전부가 아니란 것을,불꽃처럼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오를 믿음을 얻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란 것을 깨닫게 해준다


[겨자씨] 고름을 빨다

국민일보|기사입력 2002-08-07


중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김요석 선교사 간증입니다.

친구와 같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등에 고름이 들어있는데 아직 덜 곰겨서 짜지지 않았습니다.
김선교사는 그 부분을 입으로 핥았습니다.
자꾸만 빨았더니 그 부분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고름을 짰습니다.
고름이 터지면서 옆에 친구 얼굴에 튀었습니다.
순간 그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센병에 전염될까 봐 울었냐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네 고름을 빨 때 예수님이 옆에 와 계셨다.
나는 그 주님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고름이 터져 내 얼굴에 튀는 순간 예수님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아쉬워서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