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이 성탄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임재하는 것이 성탄
성탄절… 기독교에서의 기원과 유래, 문화와 오늘날 의미
12월 25일은 성탄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영어로 그리스도(Christ)의 미사(mass)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이탈리아에선 나탈레(Natale), 독일에선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다. 전야는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한다.
다음은 지난 12월 9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신학위원장 김윤태 교수가 발표한 ‘성탄절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서 발췌한 성탄절의 유래와 성경적 의미.
크리스마스(성탄절)는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또는 절기)이다.
크리스마스(성탄절)는 종교적인 절기인 동시에 세속적인 절기이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날이지만, 동시에 세속적으로도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까지, 어느 특정한 기독교 국가에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지구촌 사람들이 다 함께 즐기는 몇 안되는 지구촌 절기이다.
크리스마스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은 선물, 성탄 장식, 캐롤송, 성탄축하 예배 및 행사, 휴일 등과 같은 것이다.
교회 밖에서도 중요한 관공서나 건물 혹은 광장이나 사거리를 위시하여 상점들마다 성탄 장식이 설치되어 밤거리의 풍경을 바꾸어 놓기도 하고, 상점들마다 성탄 캐롤송이 온 거리마다 울려 퍼지고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등에서는 일찍부터 연인과 가족들을 위한 성탄 선물들을 온갖 장식들과 더불어 풍성하게 진열해 놓고 시끌벅적한 세일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신자든 비신자이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구입하여 가족 친척 지인들에게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성탄절 유래와 역사
성탄절이 오늘날 우리처럼 지키는 것은 역사 속에서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성탄절이 세속적 의미에서 세계인들의 휴일이자 축제의 날이 되게 된 계기는 1870년 미국 의회가 12월 25일 성탄절을 국가적인 휴일로 지정한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의 성탄절 축하 모습은 사실 오랜 역사 속에서 기독교적인 전통과 이교적인 전통이 혼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성탄절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 연도와 날자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성경이 이에 대해 명확히 말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교회가 종교적 의식으로서 예수님의 탄생을 어떻게 축하해야 하는지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성경적으로 규정해서 말할 수 없다.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행사인 부활절과 관련해서는 성경이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관하여 그 시기와 내용을 시간대별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에 부활절에 관한 암시적인 언급(고전 5:7-8)이 있기도 하다. 부활절은 이미 2세기 중엽부터 기독교의 중요한 절기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에 비해 성탄과 관련해서는 성경적인 정보가 제한적이다. 비록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기사를 소개해 주고 있지만, 요한복음과 바울서신서들에는 이와 관련한 기사가 없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예수님의 탄생관련 기사들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일과 관련한 정보는 제공되고 있지 않다.
이레네우스(130-200), 터툴리안 (160-225), 알렉산더의 오리겐 (165-264) 등과 같은 이른 시대의 초대교회 교부들의 글에서도 성탄절에 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2세기경에 기록된 도마복음서와 같은 외경들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소년기에 대한 언급들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예수님의 탄생일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예수님의 탄생일과 관련한 관심과 언급은 3세기경부터 나타난다. 알렉산더의 클레멘트는 예수님의 탄생 연도와 날자에 관해 당시 기독교 내에 있는 몇 가지 다른 견해들을 소개해 주는데, 혹은 아우구스투스 28년 파촌(이집트의 월력)월 25일 (5월 20일)로 보거나 혹은 4월 20일이나 21일로 보는 견해들이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 내에 성탄절이 보편적인 절기로 굳어지게 되는 것은 4세기경에 이르러서인데, 서방교회는 12월 25일을, 동방교회는 1월 6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확정하고 성탄절로 지키게 된다. 그런데 왜 교회가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정했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일반적으로 유력하게 알려지고 있는 견해로는 성탄절과 기독교를 로마 제국 내 널리 퍼지게 할 목적으로 당대의 이방 절기를 채용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당대 로마인들은 12월 중순경에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신인 사투르누스(saturnus)에게 풍작을 기원하는 사투르날리아 축제를 행하였는데, 그들은 이 때가 태양신 미트라가 탄생한 날로 여겼다. 초대교회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에게 세상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성탄절을 지키게 함으로 이방 축제를 대신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A.D. 350년 당시 로마 주교 율리오 1세가 그때까지 로마 사람들의 축제일이었던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성탄일을 12월 25일(서방교회) 또는 1월 6일(동방교회)로 정하게 된 것과 관련한 또 다른 설명은 3세기경 저술가인 율리우스 아프리카누스가 제시한 것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날과 탄생하신 날이 동일한 날이라는 믿음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서방 교회는 카르타고의 터툴리안 이후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운명하신 날을 니산월 14일로 보았는데, 이는 태양력으로는 3월 25일이다. 12월 25일은 이로부터 9개월 앞선 날이다.
마리아의 수태고지의 날과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날을 동일한 날로 보는 믿음은 수태고지로부터 만 9개월 후인 12월 25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방교회는 수태고지일을 헬라력을 따라 첫번째 봄의 14일 (4월 6일)로 봄으로 따라서 만 9개월 뒤인 1월 6일을 탄생일로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탄절은 말 그대로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고 절기이다. 성탄절에 행해지는 문화나 관습은 어쩌면 이교적인 배경이 기독교 문화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봄으로 한편으로는 성탄절을 폐지하자는 주장까지도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종교개혁자 칼빈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연례적으로 지켜오던 축일과 절기들을 폐지하면서 성탄절도 함께 폐지하였다. 이런 칼빈의 입장은 당시 제네바 의회와 충돌을 빚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개혁교회도 이러한 칼빈의 입장을 따라서 1574년 도르트레흐트 총회에서 비록 성탄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 강림절에 그에 관한 설교를 하는 것은 좋다고 여겼지만, 기독교 연례 행사로 이러한 절기를 지키는 것은 모두 취소하고 주일 하나면 충분하다고 결정했다.
사실 초대교회는 안식후 첫 날 곧 주일을 축제처럼 여기며 그 날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성찬을 행하였고 주일 외에 다른 특별한 절기를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관습과 종교개혁자 칼빈의 입장을 따른다면 오늘날 부활절도 성탄절과 더불어 주일보다 더 나은 어떤 특별한 날로 지정하여 축제일로 지키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만약 부활절이 기독교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절기로 지켜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성탄절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만약 성탄절을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절기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이제 문제는 성탄절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따라 바르게 지키는 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성탄절 문화 유래
기독교가 서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성탄절 트리장식 등과 같이 성탄절을 지키는 방식에 여러 변화들이 생겼는데, 이 또한 이방절기들의 방식들이 기독교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가 서유럽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선교사들은 이방신전을 파괴하는 대신 교회당으로 개조해서 사용하고 이방절기를 기독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절기로 바꾸는 등과 같은 방식으로 성탄절을 지키는 방식 또한 그렇게 변화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전나무와 같은 상록수에 인형과 종 선물장식과 그리고 색색의 전구를 다는 성탄 트리는 성탄절 장식으로 대표적인 것이다. 상록수는 고대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관습이 있었는데,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 따르면 고대 바벨론 이집트 로마인들에게서 이러한 관습은 흔한 것이었다.
이런 관습은 북유럽을 중심으로 유럽인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유럽인들은 동지가 되면 동지를 기념하는 동시에 악령을 쫓는 의미로 상록수에 등불 등 조명을 달았고 이런 관습은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성탄절을 기념하는 방식으로 흡수되었다.
성탄 트리와 관련한 또 하나의 일화는 마틴 루터와 관련된 것이다.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루터가 숲 길을 산책하던 중 전나무 위에 앉은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을 보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곧 아무리 초라한 나무라도 빛을 받으면 주변까지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으로 그는 전나무에 눈 모양 솜과 촛불 그리고 리본장식을 하여 ‘이와 같이 빛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권하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루터가 전하고자 한 설교의 내용이 아닌 그가 사용한 나무의 장식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 성탄 트리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탄절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문화는 산타클로스와 선물이다. 산타클로스란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라는 뜻이다. 니콜라스는 4세기경 미라(Myra)의 감독으로서 특별히 남몰래 가난한 자들에게 선행을 많이 베푼 사람으로 알려진다.
니콜라스 사후 이러한 니콜라스의 선행은 노르만족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은 니콜라스 축일인 12월 6일 하루 전 12월 5일에 그의 선행을 기념해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이후 이러한 관습은 유럽에 확산되어 12월 6일이 되면 가족 중 한 명이 니콜라스의 분장을 하고 나타나 아이들에게는 칭찬과 선물을 주었는데, 17세기경 미국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세인트 니콜라스를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게 된 것이 영미권에서 산타클로스가 되었다.
그러다 처음 12월 6일에 행해지던 산타클로스 축제가 뉴욕에 거주하던 네덜란드 이주민들에 의해 12월 25일로 합쳐지면서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와 선물이 성탄절을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성탄절
우리나라 최초의 성탄절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었다. 1886년 12월 24일 스크랜튼 여사는 이화학당 소녀들을 위해 성탄 트리를 세웠다.
1887년 12월 성탄절에 아펜젤러는 배재학당 아이들에게 성탄절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양말에 선물을 담아 학생들에게 주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의 첫 번째 성탄 트리와 산타클로스 선물이 되었다.
이후 일제가 패망한 후 미군정 시절 12월 25일을 공휴일로 지정하였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탄절(聖誕節)
그리스도 탄신일·예수성탄대축일·크리스마스 등으로 불린다.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절 중의 하나이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그 정확한 날짜를 아는 사람은 없지만, 대개의 그리스도교인들은 12월 25일을 예수의 출생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아르메니아 교회는 주현절인 1월 6일을 성탄절로 삼고 있다. 12월 25일을 지키는 관습이 최초로 정착된 시기는 서방교회에서 4세기 중반, 동방교회에서는 5세기 말로 추정된다.
이 날을 출생일로 정한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로마에서 동지(冬至)에 행해졌던 축제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지녔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다. 본래 로마에서는 하루 해가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를 기점으로 하여 농경신인 사투른(Saturn)과 태양신인 미트라(Mitra)를 숭배하는 축제가 거행되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후대의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뒤 로마의 교회는 전통적인 축제일을 예수의 생일과 동일시하여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당시 미트라숭배와 사투르날리아(Saturnalia)가 매우 광범위하게 대중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 풍습을 억압하는 대신 동화시키는 방법을 사용, 태양의 재탄생에 비유하여 ‘세상의 빛’인 예수의 탄생을 널리 알리고자 한 것이다.
이런 입장은 점차 널리 퍼져갔으며,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한 대항논리를 정교화시키면서 강화되었다. 신학적인 정당화가 이루어졌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날을 3월 25일로 정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예수의 삶이므로 응당 완전히 꽉 찬 기간 동안 생애가 이루어졌으리라 보기 때문에 수태도 3월 25일에 행해졌다는 것이다. 이 계산에 의하면 예수의 출생은 12월 25일이다.
12세기에 이르면 이 날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제일(祭日)이 되었으며,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이 성행하여 성 니콜라스(St. Nicholas)는 선물의 상징이 되었다. 15·16세기에는 예수의 탄생을 소재로 수많은 예술작품이 등장하게 되어 광범위하게 대중화된 양상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어난 뒤 청교도 및 칼뱅교도들에게 이교도의 풍습이라고 배척받았다. 또한 크롬웰 치하의 영국에서는 이 날 제의를 행하는 것이 법으로 엄금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이러한 전통이 미국의 뉴잉글랜드지방에도 이전되어 1856년 이전에는 법정공휴일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끈질기게 이 날을 중심으로 선물교환 등을 하면서 전통을 이어나갔고, 19세기에 이르러 크리스마스 트리와 크리스마스 카드라는 대중적 풍습이 가미되어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또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과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때 등장하였다.
미국 등지에서는 성 니콜라스를 대신하여 산타클로스(Santa Claus)가 선물을 보내는 사람의 상징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날은 세계적인 축제일이 되었고, 이때 사용되는 용품생산에 많은 기업이 관여하면서 커다란 상품시장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날과 연관되어 있는 사항들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은 원시시대의 수목숭배와 연결시킬 수 있으나 가까이는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 연극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기에서 에덴의 동산을 상징화하면서 ‘낙원의 나무’를 사용하였으며, 연극이 탄압을 받게 된 뒤에는 집안으로 들여와 사탕·과일·촛불로 장식하게 되었다.
19세기 초 독일에서 북유럽국가들로 전파되었고, 1841년에는 빅토리아여왕의 남편인 알버트공에 의하여 영국에 소개되었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 펜실베이니아지방에 이주한 독일계 정착민들에 의하여 전달되었으며, 곧 미국 전역에 퍼져나갔다. 불을 밝힌 크리스마스 트리를 공공장소에 놓게 된 것은 바로 미국에서부터였다.
우리나라에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걸쳐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풍습이 전래되어 나갔다. 그러나 이탈리아·스페인 및 라틴아메리카 등지에서는 그리 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의 색깔은 녹색과 붉은색이다. 겨울을 이겨낸 생명 혹은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삶은 녹색으로, 그리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는 붉은색으로 나타나 있다.
따라서 이 날과 관련된 장식의 색은 이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붉은 포인세티아의 사용이나 크리스마스 화환은 여기에 근거를 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현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 때는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캐럴’이라는 말은 원래 플루트 연주에 맞추어 추는 춤곡이라는 의미로 밝고 경쾌하며 후렴과 반복이 행해지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단순하고 율동적인 노래인 캐럴은 원래 15세기에 영국에서 황금기를 맞게 되나, 종교개혁과 뒤이은 개신교의 영향으로 캐럴의 발전이 둔화되어 미약하게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 19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베들레헴의 작은 성(O Little Town of Bethlehem)」·「오 성스러운 밤(O Holy Night)」 등이 이때 작곡되어 현재까지 계속 불리고 있다.
대중화된 노래로서는 「징글벨(Jingle Bells)」·「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 등이 있다. 영국 소설가 디킨스 (Dickens,C.)가 쓴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1843)이라는 작품은 크리스마스 및 이때 불리는 캐럴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지금의 모습대로 등장한 것은 1843년 영국의 삽화가인 호슬리(Horsley,J.C.)에 의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당신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를(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to You).”이라는 문구를 적어 런던에서 1,000장을 팔았다. 1860년에는 온 영국에 펴졌으며, 곧 미국으로 건너가 일반화되었다.
1907년 미국에서는 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크리스마스 실이 고안되어 카드에 붙여 사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카드보내는 것이 보급되었다. 실도 1933년 미국 감리회 의료 선교사인 홀(Hall,S.)에 의하여 처음 발행되었다. 또한, 이 날을 중심으로 성대한 연회가 벌어져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이 행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에서는 거위나 수탉 등을 재료로 하였으나, 16세기 말부터는 멕시코 등지에서 들여오는 칠면조를 사용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주요 요리로 인정받고 있다. 뚱뚱하고 온화하며 흰 수염의 산타클로스에 대한 이미지는 4세기 소아시아의 성자인 성니콜라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선행을 하고 선물 주는 것으로 유명한 이 성자의 이미지는 소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래되었고, 다시 초기 네덜란드 이주민들에 의하여 미국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산타할아버지 모양이 만들어진 것은 1863년 나스트(Nast,T.)라는 만화가에 의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이 날을 위하여 마굿간이 만들어져 아기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 양과 짐승들, 아기예수 앞에서 경배드리는 동방박사들의 모습이 만들어진다.
이는 13세기에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of Assisi)[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다는 풍습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명동성당이나 대전 목원대학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 기념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역사적 배경과 산타클로스의 유래
1. 성탄절의 역사적 배경
- 예수 탄생 이후 300년간 박해받았던 기독교 -
오늘날 성탄절(聖誕節)을 의미하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본래 ‘그리스도의 미사’(Christes maesse)에서 유래한 말로 기독교의 축일(祝日)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 예수가 12월 25일에 탄생했다는 근거는 성경을 비롯한 어디에도 없다.
신학자들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이날이 그리스도교의 축일이 아니라 로마의 이교도(異敎徒)축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있는데 다만 로마 역사 기록)에 따르면 기독교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주후 336년경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역사적 계기를 보면 기독교는 초대교회 때부터 300여 년 동안 말할 수 없는 불같은 시련과 핍박을 받았는데 이런 기독교가 갑자기 자유롭게 신앙생활 하도록 공인(公認)된 것은 주후 313년 2월 콘스탄티누스 1세(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272-337)가 반포한 ‘밀라노칙령’(313, Edict of Milan)을 통해서였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50년간 18명의 황제가 교체되었던 극심한 혼란을 끝내기 위해 방대한 로마제국을 네 명의 황제들에게 분할(分割)하여 통치하도록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244-311)황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은 신자가 아니었으나 기독교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전임 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과거 로마의 영광을 복원하기 위해 로마의 전통적인 다신교(多神敎)를 숭배했고 기독교를 박해했다. 그러함에도 기독교는 이미 제국의 하층민들뿐만 아니라 귀족, 학자, 군인 등 지배층에까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제국의 혼란을 막기 위해 제국을 분할 해 네 명의 황제가 통치하게 했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퇴위하자 네 황제는 서로 단일 황제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런 가운데 콘스탄티누스의 가장 강력한 숙적이었던 막센티우스(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 278?-312)와 결전을 앞둔 콘스탄티누스는 312년 10월 28일 정오의 태양 위에 빛나는 십자가가 나타났고 그 십자가에는 “이것으로 이겨라!”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방패의 환영(幻影)을 보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었는지 아니면 후세에 만들어진 전설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알 수 없으나 이 이야기 속에 담긴 의미는 명확하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얻어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물리쳤고 서로마 전체를 지배하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제는 즉위 직후 ‘밀라노칙령’을 내려 로마제국 내에서 ‘종교의 자유’를 승인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종식 시켰다.
역사학자 존 노리치(John Julius Norwich, 1929-2018)는 ‘비잔티움 연대기’(A Short History of Byzantium, 1997)에서 “역사상 그 어느 지배자도, 알렉산드로스도, 앨프레드도, 샤를마뉴도, 예카테리나도, 프리드리히도, 그레고리우스도, 콘스탄티누스만큼 ‘대제’(大帝, Great)라는 칭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인물은 없다.”라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탁월한 정복 전쟁을 했거나 뛰어난 통치술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公認)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한 것이었다.
2. 크리스마스의 역사적 유래
- 이교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날에서 출발한 크리스마스 -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 탄생 이후 300여 년간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해 지거나 산채로 불에 태워지고 사자 밥으로 던져지는 등 모진 박해와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이때 전통적으로 여러 신(神)을 숭배하던 로마제국의 사제(司祭)들은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는데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 이번엔 그 반대의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다.
기독교 초기 때는 어떤 이유나 목적에 관계가 없이 전쟁은 원칙적으로 죄악(Evil Sin)이라 하여 전쟁에 반대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보여준 비폭력, 무저항, 사랑, 희생의 정신으로 상징되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 전쟁에 관한 교리에 변화가 생겼다.
서로마제국 교회에서는 상당 기간 전쟁을 악으로 간주해 왔었는데 성 아우구스티누스(Sanctus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시대에 이르면 ‘정당한 전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고 병사들의 전쟁 참여와 살상(殺傷)을 수용하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교황 시대의 문을 연 그레고리 1세(Pope Gregory I, 540-604)교황 때 서로마에서는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이단자들을 합법적으로 기독교도로 강제 개종시켜도 된다는 이론을 채택했다.
한편 이같이 전쟁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변화가 교회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과 무관하게 기독교가 공인된 직후부터 전통적인 로마 다신교 신전과 사제들이 기독교 사제들과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공격받았고 점차 세가 위축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로마에서는 농경사회(農耕社會)대부분이 그러하듯 일 년의 추수(秋收)가 끝난 뒤인 12월 24일부터 다음 해 1월 6일까지 ‘정복당하지 않는 태양의 탄생일’(natalis solis invicti)이라 하여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고 태양이 하늘 높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동지’(冬至)를 기념하는 축제(祝祭)가 있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Scandinavia)반도(半島)등 겨울이 유난히 길고 혹독한 지역에서는 동지를 전후해 커다란 축제가 연이어 벌어지기도 하는데 당시 로마의 ‘동지제’(冬至祭)축제 역시 범국가적인 행사로 거대하게 치러지는 행사였다.
동지(冬至)는 낮 동안 해가 하늘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짧은 날로 이날을 기점으로 해가 점차 하지(夏至,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때까지 길어진다. 그런 까닭에 이날을 ‘태양의 탄생일’이자 ‘빛의 날’로 기념하고 기나긴 겨울이 끝나고 곧 봄이 올 것을 알리는 기쁜 날이었기 때문에 농경의 신(神)사투르누스(Saturn)에게 경배하는 날이 12월 25일이었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빛’(요 1:9)이라고 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誕生)은 곧 세상의 빛이 탄생한 것이었기 때문에 로마의 이교도들이 12월 25일 ‘태양의 탄생일’로 정한 것처럼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과 일치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이 이교도들의 축제를 자신들의 축제로 전환 시켜 선교를 좀 더 쉽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이교도들의 축제일인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12월 25일은 단지 이교도(異敎徒)들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로마제국의 동방 지역에서는 12월 25일보다 1월 6일을 하나님이 예수의 탄생과 세례 때 나타난 날로 기념했고 예루살렘에서는 예수의 탄생만 기념했다.
그러나 주 후 4세기경에 이르면 동방교회의 대부분 점차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함께 기념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이러한 크리스마스를 반대하던 예루살렘 교회 역시 결국 크리스마스를 예수의 탄생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르메니아 교회는 오늘날도 12월 25일 대신 1월 6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기념한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듯이 기독교 역시 동서로 분열 각각의 입장과 교리에 따라 ‘예수 탄생일’을 기념했는데 동방교회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키고 1월 6일을 예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의 공현대축일’(주현절, 主顯節, Epiphany)로 지켰으나 서방교회에서 ‘주의 공현대축일’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다
3.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
크리스마스의 상징물 중 대표적인 크리스마스트리(Christmas Trees)관습 역시 기독교 본래의 것은 아니었다. 로마력 설날에 로마 사람들은 자기 집 안팎을 푸른 나무와 등불로 장식하는 관습이 있었고 자녀들과 주변 이웃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나무를 신성(神聖)하게 여기는 관습은 이집트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게르만족(Germanic peoples)은 신성하다고 여기는 떡갈나무(Quercus dentata, Oak tree, 참나무, 도토리나무)에 심지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8세기경 게르만족 선교를 위해 파송된 기독교 선교사들이 떡갈나무를 신성하게 여기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이들의 관습을 역으로 이용해 전나무(Abies holophylla, needle fir, Manchurian fir, 소나무과)를 가지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가까운 친지와 이웃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다른 풍습들이 유례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지만 카드만큼은 유례가 명확한 편인데요.
4. 크리스마스 카드의 유래
1843년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새로 관장으로 부임한 헨리 콜 경(Sir Henry Cole, 1808-1882)은 너무 바빠서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편지 대신에 짤막한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만들게 되었는데 자신이 카드 속지에 쓸 편지를 쓰는 동안 미술가인 존 호슬리(John Callcott Horsley, 1817-1903)에게 크리스마스 풍경을 묘사한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다.이렇게 만들어진 카드를 보냈는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미국에 무료 우편제도(郵便制度)가 신설된 뒤 독일에서 이민 온 루이스 프랑(Louis Prang, 1824-1909)이 미국의 크리스마스 카드 (Christmas card)산업을 일으켰는데 그는 바이에른에서 채석한 석회석을 사용하는 사치스러운 인쇄공정을 채택 그 덕분에 그림 한 장에 17가지 색을 입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사업은 대성공이었고 오늘날에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가장 화려한 인쇄물 중 하나가 되었다.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장식물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Christmas’라고 쓴 것도 있으나 ‘X-MAS’라고 쓴 것도 있다.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의 미사’라는 뜻인 건 앞서 말했지만 ‘X-MAS’는 ‘X’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X’는 영어 알파벧의 ‘X’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의 ‘그리스도’(Χριστός)라는 단어의 첫 자인 ‘크스’이다. 그 뒤에 미사를 뜻하는 MAS를 붙인 것이다. 그래서 표기는 ‘X-MAS’라도 읽을 때는 ‘크리스마스’라고 읽어야 한다.
5. 크리스마스캐럴의 유래
또 크리스마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습 중 하나가 캐럴(carol, 기쁨의 노래, 축가)인데 캐럴이란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대표적이다.
하나는 우리나라의 아리랑처럼 사람들이 모여 둥글게 원 형태로 춤을 추는 프랑스의 전통적인 원무(圓舞)를 지칭하는 말 캐럴(carole)에서 유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세 후기 영국의 전통적인 노래 형식을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본래 영국의 캐럴은 절(V)이 하나의 후렴(B)과 교대하는 형식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날의 캐럴은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노래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것이지만 14세기 무렵 영국에서 만들어진 캐럴들은 민중들이 만들고 부르는 종교적인 노래인 것은 맞지만 그 내용이 반드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캐럴을 지칭하는 말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독일에선 크리스마스이브의 노래란 뜻에서 ‘바이나흐트 리트’(Weihnacht lied)라 하고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종교적인 노래로 불려지다 종교개혁 이후부터는 민중적 종교 음악이었던 캐럴이 사라지고 교회에서 정식으로 작곡된 찬송가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7세기에 영국과 스코틀랜드 등의 청교도들은 엄격한 교리 원칙에 따라 이 같은 모든 종교적인 축제를 부정했고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 역시 금지했는데 지나치게 엄격한 탓이었는지 몰라도 청교도 세력이 약해지면서 크리스마스 축제가 부활하게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는 대신 1월 1일을 가장 큰 축제로 삼았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신년예배를 드리는 것 역시 이런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만큼 크리스마스를 떠들썩한 나라도 없으나 청교도들이 처음 세웠을 무렵에는 오늘날과 같은 크리스마스는커녕 크리스마스 자체를 기념하지 않았다. 당연히 크리스마스캐럴도 없었다. 그러나 1857년경 미국의 흡킨스(John Henry Hopkins, 1792-1868, Episcopal)목사가 크리스마스캐럴을 작곡하면서부터 서서히 캐럴의 전통이 복원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캐럴은 교회에서 부를 수 있는 캐럴과 거리에서 들을 수 있는 캐럴로 구분되는데 거리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상업적 캐럴의 대부분은 1942년 할리우드 음악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홀리데이인’(Holiday Inn)이 성공하면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들이다. 아카데미 영화주제가상을 수상(受賞)한 이 영화 속엔 우리가 잘 아는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가 수록되어 있다.
이때부터 1950년대까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Santa Claus coming to town’,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등 캐럴의 대부분이 만들어지는 캐럴의 홍수가 일어나게 되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수많은 대중가수가 캐럴을 만들어 부르나 교회에서는 이 노래들을 상업적인 캐럴이라 하여 부르지 않는다.
5. 산타클로스의 유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전설과 산타클로스(Santa Claus)라는 이름은 대개 3세기경 소아시아에서 선행으로 유명한 ‘성 니콜라오’(Saint Nicholas)주교(主敎)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타클로스 전설은 12세기 프랑스의 수녀들이 성 니콜라오 축일 전날인 12월 5일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유럽의 로마가톨릭 국가들에서는 성인의 축일인 12월 6일에 가족 중 한 명이 성 니콜라오의 분장을 하고 나타나 착한 어린이를 칭찬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17세기쯤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오’라고 부르면서 그 네덜란드어 발음이 그대로 영어가 되었고, 19세기경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오늘날 산타클로스로 불리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 아버지’(Father Christmas)’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영어권 밖의 지역에서는 그렇게 부르는 곳이 많다.(https://namu.wiki/산타클로스) 그렇지만 어째서 빈민구제에 앞장섰던 ‘성 니콜라우스’가 빨간 옷의 뚱뚱보 할아버지로 변신 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알려져 있다.
산타클로스의 탄생과 키즈 마케팅(Kids Marketing): 마케팅 전문가들은 코카콜라 CEO 로버트 우드러프(Robert W. Woodruff, 1889-1985)가 청소년들이 미래의 새로운 소비자이며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환상적인 이미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는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경영자였던 로버트 우드러프는 광고담당자들에게 코카콜라가 뭔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며 코카콜라를 통해 이상적인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라고 다그쳤는데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코카콜라는 단순한 탄산음료가 아니라 꿈과 환상의 아이디어를 파는 드림 웨어(dream ware)여야 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가장 미국적이며 세계적인 이미지로서의 산타클로스였ek.
1931년 코카콜라가 붉은색 산타 복장을 한 뚱뚱한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산타클로스는 구세주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코카콜라는 상업용 일러스트 전문 화가였던 선드블롬(Haddon Sundblom, 1899-1976)에게 코카콜라를 위한 산타클로스를 그려달라고 의뢰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오늘날 성탄절의 대명사가 된 산타클로스이다.
이처럼 코카콜라에 의해 재탄생한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 레드’ (Coca-Cola Red)빛깔인 붉은 색 외투에 흰색 털을 단 옷을 입었고 종교적인 인상 대신 풍성한 흰 수염에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선드블롬이 탄생시킨 산타는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 뒤 휴식을 위해 코카콜라를 마셨고 착한 어린이들은 산타가 선물을 넣어주는 양말 속에 감사한 마음으로 코카콜라를 담아두었다.
전통적으로 탄산음료의 비수기인 겨울철 매출 증진을 위해 구상된 코카콜라의 판촉 전략은 전 세계의 크리스마스 문화와 풍경을 변화시켰다. 어린이들은 종종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타고 내려와 자신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데 사실 뚱뚱한 산타가 어떻게 굴뚝을 통과해서 내려와 선물을 주고 갈 수 있는지 그 비법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나 그가 왜 그렇게 뚱뚱해졌는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바로 코카콜라를 많이 마셨기 때문이다.
결론
오늘날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또 아기 예수가 실제로 12월 25일에 탄생하셨는지 아닌지 그날을 밝히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즉 하나님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이 역사적 사실이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것이 일 년 중 어느 날이었는가 하는 것은 부수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아기 예수의 탄생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과 생명이 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 스스로 본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代贖) 해 주시기 위해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를 짊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분의 삶을 올바르게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성탄절(크리스마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로, 정확한 탄생일은 성경에 없으나 4세기경 로마의 태양신 축제일(12월 25일)과 기독교의 '세상의 빛'을 연결하여
'그리스도의 미사(Christ-Mass)'라는 의미로 12월 25일로 공식 지정되었으며 초기 기독교의 이교도 축제 습관을 기독교화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Xmas :그리스도의 첫 글자인 그리스어 'Χ' (Chi)를 따서 'X-mas'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 태양신 숭배 문화와의 연결 :12월 25일은 로마 제국에서 동지(冬至) 이후 낮이 길어지는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탄생 축일이었고, 기독교는 이교도 풍습을 흡수하여 '세상의 빛'인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정했습니다.
-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음 :성경에는 예수님의 탄생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탄생 묘사 또한 겨울과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초기 기독교가 로마의 이교도 전통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빛'을 의미하는 기독교 신앙을 확산시키기 위해 지정된 날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유래와 역사 - 예수는 12월에 탄생하셨을까?
성탄절(聖誕節) 또는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기독교의 최대 축제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가톨릭의 예배 의식인 미사(mass)의 합성어이다.
X-MAS라고 쓰는 경우도 있는데, X는 그리스어의 그리스도(크리스토스, XPIΣTOΣ)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이탈리아에서는 나탈레(Natale), 독일에서는 바이나흐텐(Weihnachten)이라고 한다.
목차
1. 크리스마스는 성경에서 유래한 것일까?
2. 예수 탄생일에 대한 견해들
–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견해
– 동방 정교회의 견해
3. 왜 하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일까?
크리스마스는 성경에서 유래한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는 정말 12월 25일에 탄생하셨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공동번역 누가복음 2:5~8)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정확한 날짜에 대해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가늠할 수는 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무렵에, 이스라엘 목자들은 밤을 새워가며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즉 방목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12월 날씨는 양들을 밤새도록 방목할 정도로 따뜻한 것일까?
이스라엘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를 보여 겨울철엔 우기다. 비가 자주오기 때문에 겨울엔 양을 밖에서 방목하지 않는다.
··· 실제 예수의 생일날은 12월25일보다 3개월 이상 당겨질 수도 있다는 것.
(아시아경제, 2016. 12. 22.)
(이스라엘은) 우기(雨期)에 해당하는 겨울철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기온이 많이 떨어져, 적어도 10월 이전에는 양떼를 우리 안으로 이동시켜 겨울을 나게 한다.
따라서 한겨울인 12월, 그것도 밤중에 밖에서 양을 돌보기는 힘든 일이다.
(조갑제닷컴, 2018. 12. 24.)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 사이에 있는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상에 있다.
우리나라는 12월 엄동설한에 양을 방목하지 않는다.
대관령양떼목장의
정보에 의하면 양은 5월 중순에서 10월 말까지 방목되고, 겨울에는 축사 안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영국의 한 신학자는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양들이 방목되었다는 것은 아직 10월이 되지 않은 것”이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12월이 아니다”라고 얘기했다.
이처럼 성경의 기록, 전문가와 신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볼 때, 기독교의 최대 축제일로 알려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아닐뿐더러 성경에서 유래한 것도 아니다.
예수 탄생일에 대한 견해들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날짜를 찾을 수 없자, 여기 저기서 예수 탄생일로 추정되는 날짜들이 거론되었다. 3세기 초까지는 1월, 3월, 5월, 11월 등 서로 다른 때에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다.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견해
예수
탄생을 놓고 다양한 주장들이 난무하던 때, 최초로 12월 25일을 거론한 인물이 있다.
로마 가톨릭 교부였던
히폴리투스(Hippolytus)였다.
그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잉태를 알린 날이 3월 25일이었다”며 “이때로부터
아홉 달이 지난 12월 25일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주장은 인정받지 못했다. 성경적인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방 정교회의 견해
동방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탄생일과 침례
받으신 날을 1월 초로 정했다.
그들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장소인 ‘베들레헴’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요단강’에서 예수님을
기념했다.
베들레헴과 요단강은 꽤 먼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런데도 1월 6일, 이날만 되면 동방의 교인들은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두 곳을 하루 동안 오가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다.
하루에, 그것도 서로 다른 장소를 순회하며 예수님을 기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교인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불만이 고조되자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던
키릴로스는 로마교회의 교황인 율리우스에게 ‘예수님의 실제 탄생일이 언제인지를 밝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율리우스 1세는
성경적 근거가 없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히폴리투스의 의견대로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본다’는 답장을 보냈다.
왜 하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일까?
12월
25일.
이 날짜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었다.
12월 25일은 로마 달력에서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였고,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었다.
미트라는 274년 군인 출신인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국가 수호신이 되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그해 12월 25일에 미트라를 섬기는 신전을 세우고 이날을 태양절로 선포했다.
이후 태양신 미트라를 국가의
수호신으로 섬기는 일은 로마 황제들의 전통이 되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 콘스탄티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가
321년 3월 7일에 일요일을 국가의 휴일로 정했을 때 이날을 ‘존경스런 태양의 날’이라고 선포한 것도 태양 숭배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참고).
그렇다면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인 12월 25일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되었을까?
교회사에 따르면 고대 로마에는 12월에 세 가지 축제가 벌어졌다.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시길라리아(Sigillalia), 브루말리아(Brumalia) 축제다.
사투르날리아는 12월 24일까지 열린 축제로,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경신 사투르누스(Saturnus)를 기린 날이다.
이날만 되면 로마시 전체가 들썩이며 축제 기분에 젖었고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거리에 나와 환락에 취했다.
(교회사, 종교학대사전 참고)
시길라리아(Sigillalia)는 12월 하순에 열린 축제로, 이날 아이들에게 인형을 주어 즐기게 하였다.
(교회사 참고)
브루말리아(Brumalia)는 12월 25일로, 로마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을 축하하는 동지제(冬至祭)일이었다.
(교회사, 조갑제닷컴, 1%를 위한 상식백과 참고)
AD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로마의 국교로 격상된 로마교회는 기독교의 강적이던 미트라교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축제일을 이용해 로마인들을 기독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측면들을 고심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당시 미트라 숭배가 매우 광범위하게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는 그 풍습을 억압하는 대신 동화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기록했다.
마침 성경은 그리스도를 ‘빛’으로 묘사했다. 즉 로마인들이 섬기던 빛의 신인 ‘미트라’와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동일시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로마교회는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교도의 제일을 기회로 삼아, 여기에 기독교적 의미를 덧입혀 동화시켰다. 바로 12월 25일 태양신 탄생일과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동일하게 만들어 축하하는 것이었다.
한국사전연구사 『종교학대사전』에 의하면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우리 주 예수가 탄생한 이 성스러운 날을 “태양의 탄생일”이라고 부르자>라고 하였다”고 기록했다.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는 그의 저서 『나사렛 예수의 유년기』에서 전 세계가 예수 탄생일로 지키는 크리스마스에 오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앞서 한 가톨릭 신부도 “크리스마스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의 풍습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관습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도, 신약성경에 기원한 것도 아닌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고려해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전통에 참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에 대한 답은 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헛된 말과 거짓 철학에 속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으며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므로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쉬운성경 골로새서 2:8)
당신은 크리스마스가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인지,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확인했다. 크리스마스의 전통에 참여하느냐 안 하느냐의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이에 따른 결과도 당신이 짊어져야 한다.
<참고자료>
- ‘크리스마스는 예수 탄생일 아니라 예수 탄생기념일’, 주간동아, 2018. 12. 24.
- ‘[성탄절의 진실]크리스마스는 원래 1월6일이었다고?’, 아시아경제, 2016. 12. 22.
- ’12월 25일은 그리스도 예수가 태어난 날이 아니다’, 조갑제닷컴, 2018. 12. 24.
구유(파트네. phatnē) φάτνη, ης, ἡ
Etymology / πατε´ομαι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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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유, 외양간, 마구간, 눅2:7,12,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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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구유(눅 2:7,12,16), 외양간(눅 13:15).
Pronunciation [ katalüma ]
Etymology / 2647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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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인숙, 하숙, 사관, 손님방, 식당, 막14:14, 눅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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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객실(막 14:14, 눅 22:11), 여관(눅 2:7)
Etymology / 제1부정과거 ἐσπαργάνωσα, 완료수동 분사 ἐσπαργανωμένος, σπάργα- νον ‘작은 조각’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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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보로 싸다, 눅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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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강보에 싸이다(눅 2:12).
성탄절
[1] 그레고리우스력 12월 25일 혹은 율리우스력 12월 25일(=그레고리우스력 1월 7일).[2] 영어 음차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면 언중이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다.[3] 가톨릭에서의 전례적 표기[4] 정교회와 성공회에서의 전례적 표기[5] 대통령령에서의
규정상 표기로 실제 기독탄신일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더러, 관공서에서 이 날을 언급할 때조차도 기독탄신일이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조차 안된 비표준어다. 그래서 표준어 사용을 즐겨하는 언론이나 지상파 방송 따위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은 찾을 수 없다.[6] 번역하면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란 뜻이며 영어로 크리스마스는 약자로 X-mas라고 쓰는데 이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 Χριστός(Christós, 흐리스토스)의 첫 글자에서 비롯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명칭 문단의 끝 부분을 참조.[7] Kerstfeest(케르스트페이스트)나 Kerstdag(케르스트다흐, 직역하면 그리스도의 날)로도 부른다. 네덜란드 현지 개신교에서 kerstdag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mis'란 단어의 어원상 개신교에서 사용하기엔 부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8] 기독교화되기 전에 있던 동지 축제의 이름이 그대로 남은 것. 영어의 'Yule(율)'과 어원이 같다.[9] 중세 독일어로 '성야'를 가리키는 'Wihen Nachten'에서 유래했다.[10] 실제 발음은 '라즈졔스트보' 정도에 가까우며, '탄생'이라는 뜻이다.[11] 아래 프랑스어 Noël에서 유래한 표현.[12] '탄생(ميلاد)제(عيد)'라는 뜻이다.[13] 정교회에서의 표기[14] 위의 독일어 Weihnachten에서 유래한 표현.[15] 불가리아어로 '동지'를 가리키는 крачун에서 유래. 기독교 전파 전 슬라브족의 동지 축제 이름을 카르파티아 분지로 건너온 마자르족이 받아들인 것.[16] 실질적인 영어 발음은 크리스머스(/ˈkrɪsməs /)와 가깝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라는 표기는 일본 표기인 크리스마스(クリスマス)를 그대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등장인물인 마담 크리스마스가 이 영어 발음을 트릭으로 이용한 인물 중 하나다.[17] 신학에서 말하는 기념(기억, anamnēsis희랍어, memoria라틴어)은 한국어의 '기념' 내지는 '기억'보다 훨씬 강한 의미의 개념이다. "히브리적 사고에 의하면, 기억이란 과거의 일을 단순히 정신적으로 회상하고 기억한다는 의미 외에 예배에서는 과거의 사건, 특히 출애굽 사건을 현재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체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탈출 12,14~20; 신명 6,20~25).", (손희송, 『일곱 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1, p.145.)
여기서 파생되는 개념으로 서구권의 "memorial'은 단순히 한국어에서 의미하는 기념하다, 추억하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한국으로 이 개념이 수입되어 적용된 사례가 바로 전쟁기념관이다.[18]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 (《가톨릭 대사전》, '예수성탄 대축일' 문서)[19] 엄밀하게는 12월 24일 일몰부터
26일 0시까지. 이렇게 된 이유는 성경의 시간 관념상 하루의 경계가 일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탄절은 12월 24일 일몰에서
시작하며, 가톨릭의 가장 장엄한 성탄 미사인 '성탄 밤 미사' 역시도 많은 경우 성탄 전야 시간대에 집전한다. 유난히 성탄 전야Christmas Eve를 중시하는 서양인들의 관념 등에서도 이런 인식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단, 그렇다고 25일 일몰 후를 성탄에서 굳이굳이 잘라낸 건 또 아니며, 하루를 구분하는 두 기준(일몰 vs. 자정) 중 이왕이면 축일을 길게 지내도록 가급적 폭넓게 해석하는 것에 가깝다. 같은 원리로 부활절도 전날 일몰로 시작한다.[20] 서방 가톨릭, 개신교 문화권[21] 동방 가톨릭 교회 및 정교회 문화권[22] 과거에는 '예수 성탄 대축일'로 불렸으나 2017년에 라틴어 공식 명칭을 최대한 직역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면서 기존에 쓰던 명칭들을 대거 변경하면서 함께 바뀌었다.[23] 지금도 전례력/교회력을 준수하는 기독교 교단들은 성탄 4주 전인 대림 1주일을 전례력/교회력의 새해 첫날로 간주한다.[24] 서울 기준 성탄절 당일의 낮은 오전 7시 45분부터 오후 5시 19분까지 단 9시간 34분이다.[25] 일출 시간이 가장 늦은 공휴일은 새해 첫날이다. 왜냐하면 균시차 현상 때문에 동지가 지나도 1월 초순까지 일출 시간이 계속 늦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일출 시간이 가장 빠른 공휴일, 일몰 시간이 가장 늦은 공휴일(과거에는 제헌절이 이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추후 제헌절이 공휴일로 복귀하면 다시 넘어간다.), 낮이 가장 긴 공휴일은 현충일.[26] 다만 미국은 추수감사절이 최대 명절이다. 다만 크리스마스도 추수감사절 못지않게 지내기는 한다. 학교의 크리스마스 방학 기간도 약 2주간이다.[27] 6hos en morphēi theou hyparchōn / ouch harpagmon hēgēsato / to einai isa theōi, / 7all heauton ekenōsen / morphēn doulou labōn, / en homoiōmati anthrōpōn genomenos· / kai schēmati heuretheis hōs anthrōpos / 8etapeinōsen heauton / genomenos hypēkoos mechri thanatou, / thanatou de staurou. / 9dio kai ho theos auton hyperypsōsen / kai echarisato autōi to onoma/ to hyper pān onoma, / 10hina en tōi onomati Iēsou / pān gony kampsēi / epouraniōn kai epigeiōn kai katachthoniōn / 11kai pāsa glōssa exomologēsētai hoti / kyrios Iēsous Christos / eis doxan theou patros.[28] 『로마 미사 경본』 612면 및 618면, 「미사 통상문」 감사 기도 제1양식 92항 및 제2양식 105항. 원문 열람. 전자책 링크. 전례문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29]
심지어 이 찬가는 바울로가 창작한 것도 아니며, 전해 받은 찬가를 바울로가 인용한 것이다. 즉 필립비서의 저술보다 이 찬가의
존재가 더 오래되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유다계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둔 전례적 기법의 운율을 가진 찬가이다. ... 찬가의
어휘는 바오로의 것이 아니다. 특히 예수의 하강에서 상승으로 이어지는 사고의 움직임은 '하강했다가 승천하여 하느님의 오른편에
높여진'(사도 2,33; 5,31) 예수에 대한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도식에 근거하고 있다. (샤를르 페로Charles Perrot,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Jésus, Christ et Seigneur des premiers chrétiens, 백운철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1, pp,311-312)[30] 가톨릭 새번역과 개신교 새한글에서 본문이 1절씩 차이가 나는데,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기준으로는 1절부터 6절까지이다.[31]
"그리스도인 독자가 구약의 내적 역동성의 종착점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인식할 때, 이것은 소급적인 인식이며 그 출발점은 본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설교를 통해 선포된 신약의 사건들에 있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이 본문 안에서 선포된 내용을 보지
못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비추어, 그리고 성령 안에서 본문 안에 숨겨져 있던 잉여 의미(surplus de sens)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교황청 성서위원회(위원장: 요제프 라칭거),《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Le peuple juif et ses Saintes Écritures dans la Bible chrétienne, 제2부 가.6.[32] 흔히 '목수'로 번역되지만 그리스어 텍톤τέκτων은 목재를 다루든 석재를 다루든 장인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33] '힘'으로 번역된 뒤나미스dynamis는 한국어 '힘'이나 영어 Power와 마찬가지로 '권력', '권세', '권능'을 뜻하기도 한다.[34] 신의 아들(divi filius, υἱὸς θεοῦ)은 당대 로마 황제의 칭호였다.[35] alēthōs theou huios ēn houtos.[36] 파견은 미사의 가장 마지막 예식이다.[37] 사실 엄밀히 말하면 '탄신' 자체가 태어난 날이란 뜻이라 '탄신일'은 동어반복이다. 이는 석가탄신일도 마찬가지로 본래 '탄일', '탄생일'이나 '탄신'으로 써야 한다. 단 예외적으로 석가탄신일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표준어로 인정되어 쓸 수 있다.[38] 현대의 주류 사학계는 예수를 엄연한 실존 인물로 보고 있으며 역사적 예수라는 용어도 있다. 그저 탄생한 시점이 '기원전 4년 내외'로 추정될 정도라 날짜까지 제대로 알 방법이 없을 뿐이다.[39]
사실 274년 아우렐리우스가 태양신을 위한 행사인 아곤 솔리스(Agon Solis)를 신설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그것이 12월
25일이었다고 직접적으로 서술된 기록은 없다. 현재 솔 인빅투스 탄생일을 12월 25일로 명시한 기록 중 가장 이른 것은 고대 로마의 서기이자 석판 조각가인 푸리우스 디오니시우스 필로칼루스의 354년 크로노그래프인데, 이 연감은 12월 25일을 또 예수의 생일이라고 기록해 놓기도 했다.[40]
Steven Hijmans. "Usener's Christmas: A Contribution to the Modern
Construct of Late Antique Solar Syncretism", in: M. Espagne & P.
Rabault-Feuerhahn (edd.), Hermann Usener und die Metamorphosen der Philologie. Wiesbaden, Harrassowitz, 2011. 139-152[41]
공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유월절에 사망했는데,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니산월 14일이다. 동방 교회는 이것을 당시 동방에서 통용되던
그리스력 아르테미시온 14일로 치환했는데 이걸 다시 서방 교회의 율리우스력으로 바꾸면 4월 6일이 된다.[42] 가톨릭 용어로는 성탄 시기: 주님 성탄 대축일부터 1월 초 주님 세례 축일까지의 기간.[43] 다만 후술하듯이 꼭 정치적 올바름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44] 그러나 사실 홀리데이도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holy(신성한)+day(날)이 holiday의 어원인데 이는 십계명에 따라 안식일에 쉬면서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기념하는 거룩한 날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휴일이 신성한 날이라는 의미가 된 것.[45] 한국에서는 미국계 대형 쇼핑마켓인 코스트코에서
미국 내 이런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데, 성탄절 케잌을 비롯한 성탄절 관련 상품에 죄다 '성탄절(Christmas)' 명칭
대신 홀리데이(Holiday)라고만 표기하고 있다. 레고에서도 12월 쯤 되면 출시하는 성탄절 특별 세트를 홀리데이 특별 세트라고
한다.[46] 단 Season's Greeting은 입말로 하는 인사가 아니라 문자로 쓰는 인사다. 전자와 후자의 관계를 한국어로 치자면 '새해복많이받으세요'와 '근하신년'의 관계에 해당한다.[47] 이 경우에 해당하는 다른 단어들로 listen, glisten, christen 등이 있다.[고전] 48.1 48.2 고전 그리스어 발음 /kʰ/[현대] 49.1 49.2 현대 그리스어 발음 /x/[52] 영어식으로는 아예 '카이'라고 하는데 이 명칭이 더 익숙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53] 어째 한국에서는 '엑스마스'라고 읽는 것이 잘못됐다고 와전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어 원어민들 역시 이렇게 발음할 때가 있으므로 잘못된 것은 아니며, 단지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약간 불경하게 볼 뿐이다.[54] 오히려 탈무드에 기록된 전승을 근거로, 기독교인이 보기에는 다소 모욕적인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본다. 유대교 항목 참조.[55] 12월 25일부터 8일간 이어진다.[56] 한국의 대중 매체에서 성탄절이 나오면 썰매, 눈, 두터운 외투를 입은 산타 할아버지 등이 나오는데, 호주의 대중 매체에서 성탄절이 나오면 강렬한 햇빛, 해수욕장, 반바지 등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57] 남반구는 반대로 낮이 길고, 고위도에서 백야 현상이 일어난다.[58] 이런 점 때문에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은 한국에 유학 혹은 출장을 와서야 성탄절 휴일을 보낼 수 있고,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으로 넘어온 뒤에야 성탄절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속초시, 연천군 등 과거 북한 치하였던 지역이 고향인 할머니나 할아버지들 중 어린 시절 자신의 고향이 북한 치하였던 탓에 성탄절에 쉬지도 못하고 학교에 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59] 반대로 중국, 대만, 그리고 유럽 국가는 성탄절이 1학기이다.[60] 이스라엘의 다수 종교인 유대교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팔레스타인에는 아랍 기독교가 소수 존재하고 베들레헴에는 아예 기독교인만이 시장이 될수 있다는 점 때문인것으로 보인다.[61]
정확히 말하면 24일에 하는 '성탄 전야 미사'와 25일이 시작하는 밤에 하는 '성탄 밤 미사'는 구별된다. 흔히 떠올리는
장엄한 미사가 '밤 미사'이다. 그러나 사목적인 이유로 '25일이 시작하는 밤'에 해야 할 밤 미사를 24일이 끝나는 밤에 하는
일이 잦으므로, 만약 가장 장엄한 성탄 미사에 참례하고 싶다면 24일 밤의 미사를 찾아야 한다.[62] 2025년 정기희년의 시작을 알린 미사이다.[63] 이것은 원래 유대인들의 전통이기도 하며, 가톨릭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토요일 저녁 주일 미사(이른바 '특전 미사')나 대축일 전날 '전야 미사'도 이 전통을 따른 것이다. 대축일이나 주일의 첫 시간 전례(성무일도)인 제1 저녁 기도를 전날 밤에 하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된다. 정교회 역시 전통에 따라 날을 가르는 기준을 일몰 시각으로 한다.[64] 당연히 명동성당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 듯하다.[65]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40항[66]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의 장로교와 침례교도 성경에 없거나 오히려 금지되어 있다는 이유로 교회의 절기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개혁 당시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울리히 츠빙글리부터 이런 절기와 금육일 개념에 굉장히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67]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와 완전히 손을 끊는다는 의미로 2022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와 같이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지내길 결정했다. #[68] 실제로 이날은 예수의 생일은 아니다. 성경 등지에서도 예수의 생일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69] 요일은 토요일이다.[70] 1998년 성탄절은 라마단 6일, 1999년 성탄절은 라마단 17일, 2000년 성탄절은 라마단 28일이다.[71] 성탄절에 보름달이 뜬다면 100% 음력 11월 15일. 가장 최근에 성탄절에 보름달이 뜬 해는 2015년이었다. 또한 성탄절이 윤달이면 무조건 윤11월이다. 대략 10년 중 9번은 음력 11월, 1번은 음력 12월에 성탄절이 낀다고 보면 된다. 음력 계절상 10월, 11월, 12월이 겨울이므로 성탄절은 대략 중동(仲冬)~계동(季冬)에 해당.[72] 윤7월일 경우 성탄절의 음력 날짜는 음력 11월 4일. 2033년 문제 문서를 읽으면 도움이 될 수 있다.[73] 음력 10월 15일 결재, 이듬해 음력 1월 15일 해제. 겨울에는 윤달이 잘 안 끼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질 일은 드물지만 2033년에는 문제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74] 2개 밀려나는 경우는 윤년이다.[75] 당시 달력에 따르면 1년은 가을에서 시작해서 겨울, 봄, 여름 순서대로 순환하기 때문에 추분은 1월 상강은 2월, 소설은 3월, 동지는 4월, 대한은 5월, 우수는 6월, 춘분은 7월, 곡우는 8월, 소만은 9월, 하지는 10월, 대서는 11월, 처서는 12월의 시작이 되며 9월 17~22일은 어느 달에도 속하지 않는 축일이었다.[76] 마오리력으로 1월은 양력 6월에 해당하는 Pipiri.[77] 끄고 싶다면 설정에 들어가 스킨 항목에 '저는 기념일에 관심이 없습니다'를 체크하면 된다. 그리고 스티커 버튼이 있는데 스티커를 모으면 트리를 완성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크리스마스트리 문서로.[78] 실제로 뉴질랜드 캐럴 "Christmas on the Beach"의 가사에서는 아예 대놓고 "우리는 눈사람같은 것 없다"고 말해버린다.[79] 개그맨 김준호 (1975년 12월 25일생), 개그우먼 이성미 (1959년 12월 25일생), 배우 엄지원 (1977년 12월 25일생), 국어교사 윤혜정 (1980년 12월 25일생), 축구선수 현영민 (1979년 12월 25일생), 최성용 (1973년 12월 25일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다 보니 어쩌다가 생일이 성탄절이 된 경우 (주로 음력 11월에 생일이 낀 경우)도 해당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이성미는 생일이 성탄절이라 날 때부터 꼬였다고 생각한다고. 이성미의 이름은 한자가 李聖美인데 성탄절에 태어나서 이름에 聖자가 들어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실제 이성미는 개신교 신자이기도 하다.)[80] 졸업식이
11월에서 12월 사이에 치러지는 호주에서는 졸업선물까지 합쳐서 받는 경우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도 일부 학교가 12월에
졸업식을 치르는데 (2018년 서울 언남중학교가 성탄절 이브에 졸업식을 치렀다.(2003년생이 이에 해당되었다.) 이외에도 일부
학교가 졸업식을 성탄절 이브에 치르기도 했다.), 이런 경우라도 해당될 수 있다.[81] 실제 사례로, 2012년 인하대학교의 교양스키 수업은 12월 25일부터 12월 28일까지 대명 비발디파크 스키장에서 했다.[82] 이 때문에 과거에는 서울에서도 성탄절에 -10℃ 이하의 강추위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겨울이 따뜻해진 현대에는 성탄절에 -10℃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서울 기준으로 2013~2020년 기간 동안 성탄절에 -10℃ 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는데, 12월 한파가 강력했던 2014년과 2017년에도 성탄절 당일은 날씨가 상대적으로 평범했다. 게다가 2019년은 이상 고온이 겹치면서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았다. 그런데 2021년 성탄절 당일에는 엄청난 12월 한파가 찾아오면서 최저 기온이 무려 -14.4℃를 기록해 1965년 이래 가장 추운 성탄절이 되었다! 그것도 아침이 아니라 밤에 기록한 것인데 아침에는 -13.3°C였다가 저녁이 되면서 기온이 더 내려갔기 때문이다. 다만 2021년 12월은 성탄절 전날까지는 이상 고온으로 따뜻한 날씨를 보이다가 뜬금없이 성탄절 당일에 어마어마한 추위가 불면서 기온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 한파도 오래가지 않았고 겨우 며칠간 이어지다가 금방 풀렸다.[83] 그것도 해안 지역에서 먼저 겨울이 사라지기 시작해 내륙으로 확장된다. 제주도는 진작에 겨울이 1달 미만이고, 부산과 대구, 강릉, 목포는 2050년경, 서울은 2100년경 겨울이 사라지게 된다. 사실상 21세기 말에 성탄절이 겨울로 남는 지역은 경기도 동부 외곽 지역, 강원도 영서, 충청북도 북부 정도밖에 남지 않는 셈. 예외가 있다면 산간 지역이 많은 보은, 장수 정도.[84] 북한의 경우는 황해남도와 강원도 일부 해안 지역이 성탄절이 가을로 편입되는 지역에 해당할 뿐, 평양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21세기 말에도 겨울이 여전히 남아 있다.[85]
기상청에서는 일 평균기온의 이동평균으로 계절을 정의한다. 봄은 일 평균기온이 5도 이상으로 9일 동안 올라간 뒤 내려가지 않는
첫날, 여름은 일 평균기온이 20도 이상으로 9일 동안 올라간 뒤 내려가지 않는 첫날, 가을은 일 평균기온이 20도 이하로 9일
동안 내려간 뒤 올라가지 않는 첫날, 겨울은 일 평균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간 뒤 9일 동안 올라가지 않는 첫날 시작한다고 본다.[86] 1990년대 이래 단 4번 뿐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성탄절에 영하 10도 미만으로 내려간 해는 2021년이다.[87] 12/25=0.48 이기 때문이다.[88] 12월 25일은 Dec 25, 10월 31일은 Oct 31인데 10진법의 25와 8진법의 31은 같기 때문에 생긴 개그. Dec, Oct도 원래는 각각 10, 8의 의미이기 때문.[89] 주연, 주영, 주환, 주희, 주혜 등.[90] 1959년 12월 25일생으로, 한자 표기가 '李聖美'이다. 생일 때문에 '날 때부터 꼬였다'고 생각한 것. 실제 이성미는 개신교 신자이기도 하다. (출석하는 교회는 불명)[91] 군인 커플, 장거리 연애 중인 커플은 대개 제외한다. 연인이 군인이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성탄절에도 데이트를 하기 곤란하다. 꼭 군인이 아니라도 경찰관, 소방관, 교도관, 뉴스 앵커
등 직업 특성상 성탄절에도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귀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최악의 경우는 연인이 양쪽
모두 경찰관, 소방관, 교도관이고 교대근무 순번이 엇갈리는 경우이다.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발령되면서 연인들이 같이 놀러다니는 것이 드물었을 것이다.[92] 북반구 기준이다. 남반구는 여름이다.[93] 1999년과 2006년은 다음 해가 각각 새천년, 황금돼지 해라 12월, 2003년은 월드컵의 영향으로 3월생이 더 많았다.[94] 호주, 뉴질랜드 등 남반구에서는 12~2월이 여름이고 6~8월이 겨울이다. 정자의 운동성이 여름에는 약화되기 때문에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성탄절 아기는 드문 것이다.[95] 실제 대한민국에서 2020년과 2021년 성탄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연말연시 특별방역 기간으로 지정되어 있었다.[96] 양력으로는 보통 1월 중순~2월 중순이며, 5~6일 뒤가 설날이다.[97] 대한민국에서는 서재응, 이시언 (이보연), 초아 (허민진), 황인범 등이 성탄절에 결혼식을 올렸다. 1999년, 2004~2005년, 2010~2011년, 2016년, 2021~2022년이 주로 성탄절 결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