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침묵(Silence of God) 수요성서학당(08-26-20) #. 11 이승혁목사


하나님의 침묵(Silence of God)

(도입 이야기 #.1)
어느 마을 뒷산에 신비한 굴이 있었다.
그 굴에 들어가면 말을 하지 않아야 살아나올 수 있는 굴이었다.
그 마을의 바보 삼형제가 우리가 그 굴에 갔다오겠다고 다짐을 한 후 굴에 들어섰다.
첫째가 "너희들 여기서는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리고 첫째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러자 둘째가 "거봐 말하면 죽는다고 했지!"
그리고 둘째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번에는 셋째가 "나는 절대로 말을 하지 않을 것야!"
이렇게 말을 하고 셋째도 죽고 말았다.

인간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교훈하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결론을 위한 이야기 #.1)
일본의 작가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를 소재로 만든 소설입니다.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므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십자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잠겨서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며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침묵(沈默)”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에 관한 특별한 명칭이 소개됩니다.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여호와(창세기 22:14)
“여호와 닛시” - 승리케 하시는 여호와(출애굽기 17:15)
“여호와 라파” - 치료하시는 여호와(출애굽기 15:26)
“여호와 살롬” -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사사기 6:24)
“여호와 삼마” - 어디에나 계시는 하나님(에스겔 48:35)

오늘 소개하려는 “하나님의 침묵”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워싱톤 주 스포케이에 위치한 “휘트워스(Witworth)” 대학의 종교 철학 교수  "제럴드 싯처(Gerald L Sittser)"의 이야기입니다.

* 제럴드 L. 싯처
풀러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 시카고 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
워싱턴주 스포케이에 있는 휘트워스(Whitworth) 대학의 종교 철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휘트워스의 졸업생들은 7회에 걸쳐 그를 가장 영향력있는 교수로 선정했다.
그 전에는 아이오와 주 오렌지 시티에서 대학 교목으로,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목사로 사역했다.
저서로는 「하나님의 뜻」,「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 「사랑의 짐」 (이상 성서유니온선교회),
「하나님 앞에서 울다」(좋은씨앗) 등이 있다.
「하나님이 기도에 침묵하실 때」,로는 ECPA(복음주의기독교출판연합회)의 Gold Medallion을 수상했다.

어느 날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이 승용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던 중에 갑자기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부딪쳐 딸과 아내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가족들의 안전을 기도한 것은 개인의 욕심도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마땅히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운전자의 실수에 의해서 사고를 당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믿음의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하눈가?

이런 의문에 대한 신앙적인 방법을 위한 성경적 대답을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마태복음 6:33).

가족들의 안전을 위하여 기도한 것에 어떤 인간적인 욕심이나 잘못이 없었던 기도를 했는데도 가족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은 트럭에 부딪쳐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적인 딜레마에 부딪쳤을 때  "하나님의 침묵"이란 신학적 주제로 답을 찾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침묵이란 세 가지 주제를 제안합니다.

첫째는 왜 하나님은 기도에 침묵하시는가?
둘째는 왜 하나님은 고통에 침묵하시는가?
셋째는 왜 하나님은 정의에 침묵하시는가?

이런 신앙적인 갈등에서 시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침묵” 이라고 하겠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지난 8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국민들의 정부의 정책과 방향에 대한 반대 집회가 열렸는데 그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감염자들이 갑자기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지도자와 그 집회에 참여한 교회를 공개적으로 집중 수사하며 심지어 대면예배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반 국민들은 언론에 이렇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마치 목사와 교회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나쁜 사람이며 집단처럼 인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정직하게 조사하고 연구한 후에 정확한 내용을 발표하는 유투브 방송의 내용을 정리하면 문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처음 우한 바이러스는 S형이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대구 지방에서 신천지 집단에 의해서 감염된 바이러스는 V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갑자기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GH형이라고 합니다.
GH형은 다른 바이러스보다 확산력이 6배 강하다고 합니다.
GH형이 시작된 것은 4월말부터 5월이었는데 이태원 동성애클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정부에서 이런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이 GH형 바이러스가 동성애자들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흰쥐를 사용하여 연구한 결과 수컷 쥐의 항문에 “프로스타글란딘 E2(Prostaglandin E2)”를 넣은 것과 암컷에게 넣은 것을 관찰한 결과 수컷에게 넣으면 면연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면연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전염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흰쥐를 사용하여 실험한 결과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성이 항문성교를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이상하게도 남성과 남성이 항문성교를 하면 면연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쉽게 감염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동안 동성애클럽은 단속하지 않아 주말이면 전국에서 모여든 동성애자들이 주말을 즐기고 다시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이렇게 해서 전염된 바이러스가 일반인들에 전염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8월 15일 국민대회를 위해 모였던 사람들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퍼졌다고 하며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이 목사이었고 교회이었다고 하며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 예배하는 것을 금한다고 긴급명령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은 침묵합니다.
만일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지 않고 무슨 표적을 보여주신다면 잘못된 통계와 방법으로 예배를 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침묵”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침묵을 “여호와 하사”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란 “침묵하시는 하나님” 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란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여호와 살롬과 같이 어떤 사건을 통하여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간섭과 임재가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나타났던 사례들을 종합할 때 찾을 수 있는 주제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성구들을 소개합니다.

시편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시편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편 28: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사오니 내게 귀를 막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나이다.

성경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침묵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성경은 명료하고 시원한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것 그것을 신비라고 합니다.
성경의 가장 큰 미스터리, 신비중의 하나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분명한 해답이 있다면 고민하고 갈등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이 문제를 풀어보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모두가 수긍하는 정답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바탕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 만능주의

한국교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앙의 특징입니다.

믿습니까? 하고 소리치면 반드시 아멘! 하고 응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믿음 때문에 아멘! 하고 큰 소리로 외치게 합니다. 만일 아멘이라고 외치지 않으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판단합니다.

믿음 만능주의는 성경의 중요한 내용이지만 성경 전체가 아닙니다.

둘째는 기도 만능주의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신앙 까닭에 기도를 오래하거나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기도가 오래하고 큰소리로 하는 만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하나님의 침묵”이라는 신학적 개념이 관심을 갖는 주제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기도에 대한 침묵
둘째는 고통이 올 때 침묵
셋째는 정의가 무너지는 것에 대한 침묵

기도는 사람의 영역 응답은 하나님의 영역

기도할 때 응답 받을 수도 있지만 응답받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성경에서 응답받는 것만 본문으로 설교를 하고 가르치면 성경 전체의 신앙이 아닙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으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렇게 부르짖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내 몸에서 제거해 달라고 세 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예수가 아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도는 응답해야 한다고 억지소리도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응답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고통의 은혜

고통의 은혜의 대표적인 사건은 십자가라고 하겠습니다.
고통의 은혜는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약속을 믿는 은혜

내가 기도하고 내가 응답받는 것도 있지만 내가 기도하고 다음 세대가 응답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되 실망하지 않고 반드시 응답될 것을 확신하며 기도하는 일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55:6-9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은 너희 과 달라서.
하늘이 보다 높음 같이 내 은 너희 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결론을 위한 이야기 #.1)
일본의 작가 일본 작가 "엔또 슈샤구"의 작품에 "침묵" 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에 들어에서 기독교와 천주교가 박해를 당할 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한 역사적인 사실을 주제를 소재로 만든 소설입니다.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좋아하므로 그 십자가에서 죽어 보라며 바닷물이 빠진 다음에 바다 한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 놓고 그 십자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얼마 후 밀물 때가 되면 물이 점차 차 오릅니다.
그러면 물 속에 잠겨서 죽게 됩니다.
단숨에 죽이지 않고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에라도 예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버리면 용서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두 사람의 교인이 여기서 순교를 당하게 되는데, 물이 점점 차 오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 성직자는 멀리서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침묵하시나이까?”

이런 순간에 왜 하나님은 잠자코 계시느냐며 목을 놓아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때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강하게 들려왔습니다.

“나는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지켜 보면서 그 아픔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보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애처롭게 고난당하며 순교하는 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계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