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페르시아 황제 코스로스는 사람들의 기대를 뒤엎고 중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는 고문관들을 모두 불러놓고 말했다.
"여러분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보오. 여러분은 내가 좋은 황제라고 생각하오? 거짓없이 말하시오. 그러면 그 보답으로 내가 값진 것을 선물하겠소."
고문관들은 한 사람씩 황제 앞에 나아가 온갖 아첨을 다 떨었다. 현자 엘림의 차례가 되었다.
"폐하, 저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소. 그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폐하께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약점이 있고 실수를 저지르는 한 인간입니다. 폐하께서 축제나 궁전 건축, 특히 전쟁에 많은 예산을 낭비하고 있기 때문에 백성들은 지금 과도한 세금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황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약속한 대로 고문관들에게 각각 보석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엘림에게는 수상직을 임명했다. 다음날, 고문관들이 황제를 알현하러 왔다. 그들 중 대표가 말했다.
"폐하께서 저희에게 주신 그 보석들을 판 상인은 교수형에 처해야 마땅합니다. 그 보석들은 모두 가짜였습니다."
황제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삶에 관한 예화 모음
성결한 삶
미국의 기독실업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아더 미다스 장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때 미국의 10대 재벌 중의 한 사람이었고, 한국의 대학생 선교단체에 50만 달러를 기증하고, 7억 달러를 들여 선교재단을 설립하는 등 남을 돕는 일에 물질을 사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기자가 그에게 ‘신앙과 인생에 성공비결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내게는 아주 간단한 다섯 가지의 신앙철학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첫째, 주일성수
둘째, 온전한 십일조
셋째, 하루의 첫 시간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
넷째, 내 가정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셔 들이는 것
다섯째, 시간과 돈을 선한 사업에 사용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뜻에 순종하는 사람은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의 뱃속만 차리는 부자는 부유할지는 몰라도 행복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지는 못합니다. 당신은 미다스 장로의 신앙철학 중에 몇 가지를 실천하며 살고 계십니까?
정결한 삶
본문: 시편 41 장 7 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다 내게 대하여 수군거리고 나를 해하려고 꾀하며"(시41:7)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 『미운 오리 새끼』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엄마 오리가 알을 품어서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스럽게 생긴 새끼 오리가 한 마리 섞여 있었습니다. 다른 오리 새끼들은 그 이상한 형제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쓸쓸히 호수 위를 헤엄치던 미운 오리 새끼는 자기와 똑같이 생긴 어미 새를 만났습니다. 미운 오리 새끼는 바로 아름다운 백조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때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취급을 받기가 쉽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의미가 없고 하늘나라의 삶만을 고대하면서 최면 걸린 것처럼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로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왕자가 평상복을 입고 궁 밖으로 나가더라도 왕자 의식을 가지고 구별되게 행동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박대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외로움을 극복할 때 우리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 세상의 악과 구별되어 정결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더욱 고귀한 삶
데이빗 리빙스턴은 1813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0살부터 공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일하면서도 책을 사서 읽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종교서적을 통하여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의 의무요, 가장 고귀한 특권이라는 것을 깨닫고 구원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을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미지의 아프리카에 건너가 그곳에서 33년동안 복음을 전하며 의술을 가르쳤고, 말라리의 한 오두막에서 조용히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반면 그의 형은 카나다로 건너가서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지만 무덤 비문에는 오직 "아프리카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턴 형의 무덤"이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이 두 형제 가운데 누가 더 고귀한 삶을 살다가 갔습니까?
의로운 삶
성경 :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잠11:4)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무척 애를 쓰던 젊은이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를 두 개의 방에 차례차례 데리고 가셨는데 첫 번째 방은 화려했으며 방에 있는 책상에는 많은 돈이 쌓여 있었으나, 두 번째 방은 전혀 볼품이 없는데다 방에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본 첫 번째 방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 날 이후 젊은이는 돈을 쓸 때마다 ‘나는 지금 이 돈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인가’라고 생각한 다음 신중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물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우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말하는 의리, 즉 죽음을 면케 하는 의로움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는 의를 가리킵니다. 행위로써 의롭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의 옷을 입고,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세 가지 의문
톨스토이는 ‘세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인간은 그것을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날마다 그때그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과 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것은 톨스토이의 실천적 신앙 원리였습니다. 날마다의 삶속에서 기억되고 지켜져야 함에도 잊고 사는 시간, 사람, 일의 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해놓은 톨스토이의 세 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은 오늘 우리의 삶의 태도를 점검해보게 하는 좋은 지침이 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사람 속에 무엇이 깃들어 있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무엇이며, 사람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톨스토이의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속에서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천사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과연 해답은 무엇일까요?
벌거벗은 몸으로 이 땅에 내려온 천사는 세 번 웃었습니다.
외투 살 돈으로 술을 먹고 정체 모를 부랑자를 데리고 들어온
남편에게 욕을 퍼붓다가, 그 부랑자가 불쌍한 듯 저녁 밥상을
차려주는 구둣방 주인의 아내를 보고 처음 웃었습니다.
두 번째는 그날 죽을 부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일 년 신을 구두를 주문했을 때 웃었고, 세 번째는 고아가 된 이웃집 쌍둥이를 자식으로 삼아 기르는 부인을 보고 웃었습니다. 천사가 얻은 해답을 짐작하시겠습니까?
“사람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은 사랑이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런지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느 날 한 왕이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거울 속에서 왕과 똑같이 생긴 사나이가 튀어나오더니 질문을 합니다. “자네,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왕은 말합니다. “남보다 잘나고 남보다 능력이 있어서 내가 왕이 됐지요.” 이 말을 들은 거울 속 사나이는 “이 세상에서 자네보다 능력 있고 자네보다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자네는 아는가?”라고 말합니다.
“자네는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또 질문합니다. “내 아내가 뛰어나기 때문에 왕이 되었지요.” 거울 속의 사나이는 또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자네 아내보다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그러면서 거울 속 사내는 계속 “자네는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하고 질문을 합니다. 왕은 곤혹스러웠습니다. 이말 저말 하면서 이렇게 왕이 됐지요, 저렇게 왕이 됐지요 하다 보니 몸에서 진땀이 납니다.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습니다. 그래도 이 사나이는 계속 말합니다. “자네는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결국에는 이 왕이 두 손 들고 말합니다. “제가 뭐 자랑할 것이 있습니까? 그저 하늘의 은총 덕분이지요.” 그러자 비로소 사나이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더랍니다. 이 웃지 못 할 이야기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즉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삶의 모범 답안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예측 못할 삶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이며 철학자였던 솔론이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를 만났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라는 왕의 질문에 솔론은 대답했다.
“아테네의 텔로스입니다. 그는 자녀를 잘 길렀고 행복한 가정을 꾸몄으며 나라를 위해 전사했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는 누구인가?”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쓴 사람들입니다.”
“솔론, 왜 자네는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지목하지 않는가?”
“전하, 인생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비석이 서기 전까지 행복한 사람인지 불행한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
중국 선교를 준비하고 있는 어느 미국 공과대 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이 청년은 미국 동부에 있는 어느 공과대 학생인데 그의 아버지는 과거에 한국에서 20여년 간 선교사로 일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을 언제나 동경하며 특별히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공과대학에서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중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던 중 한국 여학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중국 선교에 대한 소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학을 마치고는 다시 전에 다니던 공과대학으로 들아와서 남은 기간을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중국에 목사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기술자로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저에게
그분에 대해 말씀을 전해준 분은 그와 대학에서 같이 공부하고 그가 결혼한 후에는 그들과 이웃해서 살던 부부인데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 미국인 대학생 부부는 여름에도 소매가 긴 옷을 입고 있고 밤에 잠을 잘 때에도 베개를 베지 않고 그냥 바닥에 누워 자고, 그리고 슈퍼마켓에 식품을 사러 가서도 꼭 낱개로 헤아려서 산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장차 선교하러 갈 중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쉽고 안일하게 살아가도 되는 그러한 값싼 것이 아닙니다.
부단한 자기 훈련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값비싼 것입니다.
후회 없는 삶
윌리암 보덴 씨는 1904년, 시카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큰 낙농장의 법적 상속인으로 이미 백만장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세계 일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아시아, 중동 그리고 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는 마음에 큰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보내는 편지에다 “나는 일생을 전도사업과 그 일에 대한 준비에 바치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그가 이러한 결심을 했을 때 그의 성경 뒷 표지에 “지체할 수 없음(No Reserve)"이라고 썼습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면서 좋은 보수가 보장된 일자리를 거절하고 성경 뒷장에 이번에는“후퇴 없음(No Reter at)"이라고 썼습니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중국에 있는 회교도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항해하던 중 선교준비를 하려고 우선 이집트에 들렀습니다. 이곳에서 그만 뇌막염이 발병하여 한 달도 못되어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겠지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던 게야. 헛된 일을 했었군!” 그러나 그의 성경 뒷장에는 위에 썼던 두 가지의 결심 밑에 “후회 없다(No Regret)"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생애의 어떤 때든지 적용이 됩니다. 지금 나는 이 순간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내 가슴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무엇입니까. 남은여생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잊혀진 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것인가?
2008년에는 우리 자신을“지체함이 없이”,“후회함이 없이”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결심합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성공하든지 고난을 만나든지 간에 언제라도 하나님의 본향으로 부르실 때 “후회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육적인 삶, 영적인 삶
미국의 전도자 무디는 자기의 생일을 묻는 이에게 항상 자신에게는 두 가지 생일이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육신의 생일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를 믿고 거듭난 날이라고 했다. 우리 크리스천은 모두 이 두 가지의 생일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른 두 가지의 삶을 누리고 있다. 하나는 생리적인 삶 곧 육체적인 생명이요, 또 하나는 신앙적인 삶 곧 영적인 생명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육적인 생명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육신의 생명을 화학적으로 분해하면 전부 3000여원어치에 해당하는 값싼 것이라고 한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고 만다. 우리는 죽고 나면 한줌의 흙으로 변한다. 아무리 얼굴이 아름다워도 얼마 안가서 주름이 지고 만다. 시편 90편은 ‘인생은 70이 지나면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이슬처럼 이 땅에서 사라지는 존재’라고 했다. 성경의 주제는 참 생명이다. 육신의 생명이 아닌 영적인 생명, 영원한 생명이 성경의 주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할 때 또 하나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삶은 계란, 100원
본문: 마태복음 25:24∼30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삶이 무엇인가? 삶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가?”를 적어오는 숙제를 냈습니다. 고민하다 시장을 걷던 한 학생이 기가 막힌 대답을 찾아냈습니다. 어느 분식집 앞에 붙어 있는 ‘삶은 계란 100원’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삶을 무엇이라 답하시겠습니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무한가치의 삶을 병아리로 부화시키지도 못한 채 삶은 계란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소중한 삶을 수많은 오해와 번민, 게으름으로 땅에 묻은 채 없애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비애의 주인공인 한 달란트의 종처럼….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비애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선 삶에 대한 바른 자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라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마25:24∼27)라는 말씀은 그의 오해가 낳은 비참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결단코 피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현세 뿐 아니라 영원한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의 또 다른 비애는 ‘예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모든 것을 결산하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예견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것을 결산하시리라는 바른 예견이 있었다면 오늘의 삶에 바른 통찰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입니다. 다가올 결산을 바로 볼 수 있는 예견의 능력이 결여돼 있으면 오늘의 삶에 대한 바른 통찰 없이 그저 한철 메뚜기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에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침반’과 ‘시계’입니다. 바로 가고 있는지,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늘 살펴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삶은 계란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귀한 현재의 삶 뿐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미래를 땅에 묻어두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삶은 계란’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삶과 죽음의 차이
어느 의과 대학생이 쓴 글을 소개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해부학 첫 실험 시간에 해부실로 들어갔다.
해부 도구와 수술용 고무장갑 그리고 비닐로 된 앞치마에 흰 실험복까지 갖춰 입고 실험실의 문을 여니, 거기에는 실험대마다 한 구씩 모두 32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시체의 피부를 벗기는 것이 첫 해부학 실험 시간의 과제였는데.
그 작업을 하는 동안 그것이 단지 시체일 뿐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 모형 배를 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착각과 함께 나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이 사람들도 살아 있었을 때에는 모두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았겠지.
돈도 있었고, 명예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또 죄를 짓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도 있었겠지.
그런데 이제 그들은 자신의 머리털조차 다 깎인 채 실험대에 누워 있다.
부끄러움도 없이 발가벗긴 채로 말이다.
이제는 옷이 아니라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잘리고, 내장이 도려내지고, 뼈가 추려지고 있다.
그것도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신출내기 의사지망생에 의해서 말이다.
이 아주머니의 얼굴에 평생 동안 발라졌던 화장품은 얼마어치나 되었을까?
저 아저씨는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만졌으며 그것으로부터 얼마만큼의 만족을 얻었을까?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 자신과 이 시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살아있지만 삶과 죽음의 차이가 그리 멀지 않다.
죽은 자와 산 자와의 차이는 산 자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인생을 사는 동안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
모파상의 삶
"여자의 일생"이라는 작품을 쓴 작가 모파상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신학교를 퇴학 맞은 학생입니다.
그가 신학교에서 방황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후에 신앙과 결별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가 주인 된 인생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 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그 후에 그는 문학에 뜻을 두고 정진해서 10년 만에 유명한 작가가 되고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합니다.
지중해에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 노르망디에 저택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면, 파리에는 호화아파트를 가지고 쉴 새 없이 아내와 애인을 바꾸며 살았습니다.
비평가들은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군중들은 그를 흠모했고, 그의 은행에는 쓰고도 남는 여유분의 돈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는 안질병과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잠을 자지 못합니다.
1892년 1월1일 밝아온 새해.
그렇지만 이 한해를 살아야할 아무런 이유를 갖지 못한 모파상은 자기가 항상 사용했던 종이칼로 자기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합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지만 정신이 파탄 난 그는 정신병동에서 몇 달 동안 알 수없는 말을 하며 허공을 향해서 절규하다가 그의 나이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칩니다.
그의 무덤 묘비명에는 그의 말년에 쉴 세 없이 하던 말이 적혀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그는 부자의 꿈을 이룬 것 같았지만 실상은 처절하게 가난했던 일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미국의 대부호로 알려진 하워드 휴즈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를 가진 경제계의 실력자이었습니다.
한 때는 헐리웃 영화배우들과 염문을 뿌리면서 많은 가십거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배우들 가운데는 에바 가드너라는 당시 최고의 여배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휴즈가 죽기 십 수년 전부터 결벽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는 심한 결벽증 때문에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십 년 동안 무균 상태의 유리관을 만들어 놓고 외부와 차단된 채 그 안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증세는 더욱 악화되어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던 중에 사망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1977년에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은 우리 돈으로 2조 4천억 원 정도로 그 당시에는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거액이었습니다.
휴즈가 남긴 마지막 말 한 마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Nothing. Nothing“(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
이 말을 반복하면서 그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돈도, 미녀도, 명예도 죽어 가는 그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보다 나은 삶의 조건
인간은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다.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다.
성공과 행복은 사람들에게 성취감과 만족감을 준다.
반면 실패와 불행은 사람들의 마음에 심한 박탈감과 자괴감을 심어준다.
그리하여 삶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원하신다.
우리의 성공을 원하신다.
우리가 성공하고 행복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이런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삶의 자산은 무엇일까?
그것은 삶에 흥미를 느끼며 사는 것이다.
삶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단순한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향상된 차원의 삶을 맛보게 한다.
공부에 흥미를 느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듯이 삶에 흥미를 느낄 때 비로소 삶에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환경이 삶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산 곧 삶에 흥미를 느끼며 사는 것이다.
닭이 달걀을 품으면 왜 병아리가 되는 것일까?
이 관심과 흥미는 에디슨으로 하여금 세계적인 발명왕이 되게 했다.
자신의 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는 것은 이렇게 중요하다.
얼마 전에 일어난 한 여배우의 자살사건은 우리 국민에게 우울증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 국민의 8%에 해당하는 320만 명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우울증이란 과연 어떤 병인가?
우울증은 뇌 활성물질에 의해 뇌에 슬픔과 절망, 낙담 같은 정서장애를 일으켜 삶에 흥미를 잃게 하는 마음의 병이다.
솔로몬이 전도서에서 “사람이 해 아래서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한 말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성공과 행복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속에 흥미와 관심을 불어넣어주셨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케 하사 사람으로 장래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은 예측 불가능한 미래야말로 우리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신비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흥미와 관심을 잃는다는 것은 생에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부부간의 애정이 그러하며 모든 인생 문제가 그래서 생긴다.
사탄은 우리 인생을 파멸시키려고 우리에게서 흥미와 관심을 앗아가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의 행복을 위해서 흥미와 관심을 불어넣어주신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마음에 일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어넣어 삶에 활력을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인 것이다.
예수 없는 곳의 삶
지금으로부터 37년 전 1968년 미국의 함정 푸에블로호가 동해상에서 북한으로 납치가 되었습니다.
이 함정은 일본의 요코스카 항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주일날이 되어서 군목이 예배를 인도하러 배에 올라갔는데 그 배의 승무원과 수병들이 예배를 거부하였습니다.
할 수 없어서 군목은 그 날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랬는데 이튿날 원산 앞 바다로 출동을 하였다가 북한의 경비정에 나포되어 북한으로 끌려갔습니다.
1년이 지나서 80명의 승무원들이 풀려나서 기자회견을 하는데 1년 동안 포로로 지내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빵도 먹고 농구도 하였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하나님 없고 예수 없는 곳에서의 생활은 지옥과 같았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삶의 원칙
1924년 파리 올림픽 육상 400m에 출전한 에릭 리델은 예선에서 최고의 기록으로 수립, 금메달 획득이 유력했다.
그는 예선 때 출발선에서 흑인 선수와 악수를 나누는 등 숱한 화제를 뿌렸다.
인종차별이 심한 당시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망의 결승전이 주일에 열리기로 결정됐다.
그러자 리델은 주저 없이 출전을 포기했다.
“나는 지금까지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다. 그것은 주일성수와 인간 평등의 정신이다.”
리델은 후에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의 가시밭길 인생은 ‘불수레’란 제목으로 영화화돼 1982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최근 독실한 크리스천인 여류 국수 조혜연 6단도 “주일에는 예배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신념을 깨고 싶지 않다”며 바둑대회 출전 포기를 선언했다.
당신에게는 어떤 삶의 원칙이 있는가.
행여 ‘그까짓 거 뭐 대충’의 인생을 살지는 않는가?
하늘 기준으로 사는 삶
며칠 전 새벽 기도가 끝난 뒤 우연히 교회 쓰레기통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라이터와 한두 개 정도 피우고 남은 담배 한 갑이었습니다.
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습니다.
담배를 버리기까지 갈등을 겪고 결단했을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참 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의 기준을 바꾸면 전에는 대단히 귀하고 소중하던 것이 별것 아니게 됩니다.
대신 예배 시간이나 봉사 그리고 감사와 기도와 찬송이 나에게 소중한 자산으로 남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마음도 새롭게 생길 것입니다.
소중했지만 가치를 몰라서 버렸던 수많은 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의 복이 중요하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상이 말하는 복이라는 것을 통해서 무엇을 하기 원하는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나를 슬프게 하고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정말 화날 일에 화가 납니까?
정말 슬퍼할 일에 슬퍼합니까?
나는 실패라고 말하는데 주님이 보실 때에는 성공인 경우가 많습니다.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낙심하거나 즐거워하지 말고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승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슬픔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교만이나 자만의 자리에서도 내려오십시오.
세상의 잘못된 기준으로 자신을 보지 마십시오.
이 땅을 살지만 우리는 하늘의 기준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천국의 시민들입니다.
이보다 더 소중한 자리는 없습니다.
삶의 여유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친한 친구의 방문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화가 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계속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소크라테스는 아내의 분노를 애써 무시하고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커다란 물통을 들고 거실에 들어오더니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물을 쏟아버렸다.
순식간에 봉변을 당한 소크라테스는 수건으로 천천히 물을 닦아내며 친구에게 말했다.
“여보게, 너무 놀라지 말게. 천둥이 친 후에는 반드시 소나기가 내리는 법이라네.”
이 한 마디에 친구는 손뼉을 치며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조크를 즐기는 사람은 삶에 여유가 있다.
외부의 공격에 직격탄을 날리면 곧 분쟁이 시작된다.
타인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보라. 상대방에게는 검지 하나만 향하고 있지만 나를 향한 손가락은 셋이나 되지 않는가?
성경은 말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언 10:12)
풍성한 삶을 위한 지혜
파푸아뉴기니 여인들은 그물로 된 자루처럼 생긴 '비룸'을 애용합니다.
비룸은 물건을 담아 다닐 때도 사용하지만, 아기를 재울 때도 사용합니다.
어느 날, 가난한 젊은 엄마가 일을 하려고 밭에 나왔습니다.
잠자는 아이를 비룸에넣고 나무 그늘에 걸어놓았습니다.
그런 다음, 비룸에 들꽃을 꽂았습니다.
그러자 낡고 허름한 비룸이 어떤 고급 유아침대로도 흉내 낼 수 없는 향기로운 꽃 침대가 되었습니다.
허름한 비룸을 들꽃 몇 송이로 단번에 아름답게 꾸며낸 이 여인의 삶의 지혜는 참 아름답습니다.
프랑스 유아복을 입히고 이태리제 유아침대에 아이를 눕혀야만 삶이 풍성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낡은 비룸일지라도, 들꽃 몇 송이를 꽂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인생관
관광지에 위치한 호텔은 같은 평수의 방이라도 전망에 따라 가격차가 상당히 납니다.
똑같은 설계에 똑같은 재질을 사용하고, 똑같은 평수에 똑같은 인테리어를 해도 어느 쪽에 방을 만드느냐, 객실에서 창밖을 내다볼 때 바다가 잘 보이느냐 산이 잘 보이느냐에 따라 가격차가 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지오웰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으나 부정적인 인생관 때문에 생긴 우울증과 폐결핵으로 젊은 나이에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너 루스벨트는 어릴 때 고아가 되었으나 미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들 가운데 가장 호감 가는 여성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벌은 물을 마셔서 꿀을 만들고,
뱀은 물을 마셔서 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관을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과 삶이 달라집니다.
지금 당신의 마음의 창을 열면 어떤 곳이 보이나요?
삶의 전부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편 73:25)
영국의 전쟁 영웅이었던 허버트 크래그가 한번은 아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 쓰인 글귀는 이후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일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 무엇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우 적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삶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삶의 일부로 만들지 말라.
주님을 당신 삶의 전부로 맞으라.
그분을 최우선에 두라.
세상의 영원한 가치
- 항상 예수님이 모든 것을 대신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아무 것도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하십시오.
거침없이 질주하는 삶
만사형통 쭉쭉 빵빵 위풍당당 거침없이 질주하는 삶을 산다면... 그래서 "나를 보라, 예수를 잘 믿으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하시지 않느냐... 우하하 내가 바로 축복의 증인이다. 나를 보고 예수님을 믿으라" 하고 전도를 한다면 전도가 잘될 것 같지요? 하지만 내 모습을 돌아보면, 몸도 여기저기 아파서 골골 하고, 돈을 잘 버는 것 같지도 않고, 형통으로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지도 않고, 사이가 안 좋은 이웃도 있고, 별로 자랑할 만한 것도 없고, 한마디로 예수 믿는다면서 내세울만한 변변한 것 하나 없는 모습 아닙니까? 실망하지 마세요. 대 사도였던 바울도 만사형통 쭉쭉 빵빵 위풍당당 거침없이 질주하는 삶을 사신 분이 아닙니다. "마게도냐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 쉬운 성경은 "어려움은 사면에서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고 끊임없는 다툼으로 마음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고린도후서 7:5) 하고 속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고백을 들어보면 그분의 고민이나 오를 나의 고민이나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서 디도를 보내어 우리를 위로하셨습니다."(고후7:6)하고 진실하게 그 마음을 열어 놓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마음을 여는 모습은 '만사형통 쭉쭉 빵빵 위풍당당 거침없이 질주하는 삶' 보다는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놓는 진실하고 솔직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삶은 찾아 나서는 것
커다란 강가에 수많은 낚시꾼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왜 이렇게 고기가 안 물리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습니다.
그런데 아까부터 홀로 멀리 떨어져 낚시를 하다가 다시 배를 타고 강가 깊숙한 곳에 들어가 낚시를 하던 한 청년이 큰 어항에 대어들을 가득 채우고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바구니에 고기 한 마리 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놀라며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까?"
청년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더욱 궁금해진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그 신기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청년은 그 비결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별 거 아닙니다. 기다리지 말고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삶에 적용되는 법칙이니까요."
목표 없는 삶
스프링 팍 영양(羚羊)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산에서 수천 마리씩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산양의 일종입니다.
이 양은 이유 없이 집단으로 달리기를 시작하여 나중에는 모두 다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동물학자들은 이 양들이 집단으로 자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살할 수 있는 동물은 유일하게 사람밖에 없습니다.
사람 외에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스프링 팍 영양이 혼자서도 아니고 집단으로 자살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어느 학자가 결국 스프링 팍 영양이 집단으로 몰사하는 이유를 밝혀 냈습니다.
수천 마리가 무리 지어 가다가 풀밭을 만나 풀을 뜯어먹을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에 있는 양들이 풀을 뜯어먹고 짓밟으며 가기 때문에 뒤에 있는 양들은 도무지 풀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뒤쪽에 있는 양들이 풀을 먹기 위해 자꾸 앞으로 나가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양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자꾸 뒤에서 민답니다.
앞에 있는 양은 뒤에 있는 양이 미니까 걸음이 빨라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뛰게 됩니다.
앞에 있는 양이 뛸 때 뒤에 있는 양은 천천히 풀을 뜯어먹으면 될 텐데 양의 본능에는 집단에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양은 풀도 못 먹고 앞에 가는 양을 따라 같이 뜁니다.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본능 때문에 결국 모든 양이 초원을 달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들이 자기들이 뛰는 이유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저 앞에서 뛰니까 뒤에서 뛰고 뒤에서 뛰니까 앞에서 뛸 뿐입니다.
생각 없이 달리기 때문에 어디로 뛰는 지도 모릅니다.
멈출 생각도 안 합니다.
그냥 열심히 달립니다.
벼랑에 다다라서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뒤에서는 벼랑인지 모르고 계속 달리기 때문에 앞의 양들은 떠밀려서 벼랑으로 떨어집니다.
뒤에 오던 양도 속도를 줄이지 못해 수천 마리가 다 몰사한다는 것입니다.
스프링 팍 영양들의 무작정 달리기와 죽음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점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참 열심히 삽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합니다.
그런데 이 영양과 같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숨차게 뛰는지 모릅니다.
왜 그렇게 죽어라 하고 공부하는지를 모릅니다.
요즈음에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입시 방향에 맞추어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과외공부가 성행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이나 학부모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공부에 열을 올립니까? 특별한 목표가 있어서 공부에 정진하는 학생이나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스프링 팍 영양과 똑같습니다. 집단에서 이탈되는 것이 두려워서 공부합니다. 남들은 다 대학 가는데 나만 못 가면 소외되니까, 뒤쳐지기 싫으니까 그저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무슨 목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자가용 사고, 고급 사치품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것도 다 이웃집과 비교해서 내가 뒤쳐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무리를 해서라도 장만하는 것입니다. 이는 짐승적인 본능에 따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지 진정한 삶의 목표가 있어서 피땀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모르고 열심히 살면 그만큼 빨리 망합니다. 확실하게 망합니다. 성실하고 열심히 뛰면서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생의 목표가 뚜렷할 때에만 가치를 발휘합니다. 목표 없이 뛰는 것은 죽음을 향해 뛰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시험할 때 사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삶의 목표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사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전략입니다. 현대인들은 몹시 바쁩니다 바깥일 하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바쁘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바쁘고 심지어 아이들도 바쁜 세상입니다. 특별한 목표 없이 남을 따라 사느라 바쁜 것은 멸망의 위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펠프스는 말했습니다.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 가운데 하나는 뚜렷한 목적을 갖는 것이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시작할 때 목소리와 옷차림, 외모와 동작 하나 하나까지 변화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은 쉼 없이 지금도 가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종착역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는 운전을 열심히 하되 목적지 없이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운전자가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자입니까? 열심히 달리고 또 기름을 새로 채워 달리지만 목적지를 모르는 채로 달리는 운전자,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운전자가 되기를 결코 바라시지 않습니다.
보람 있는 삶을 살려면
성경: 시편 95 장 7 절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시95:7)
히브리 잠언 중 ‘하루하루 조금씩 자살해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도 저 세상에도 속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금씩 자살을 한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말 같지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물에 대해서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또는 지나치게 후회하여 생기를 잃고 이로 인해 점점 정신적인 건강이나 육체적인 건강을 해쳐 나중에는 보람 없이 썩어버리는 인생이라는 의미입니다. 인생은 매일 새로운 기회의 혜택을 입으며, 또 그 기회가 제공하는 도전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날들을 어떻게 보람 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매일 조금씩 자기를 죽여 가는 자는 ‘자기 뜻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한정된 지혜와 자원으로는 영생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유한한 자원의 고갈로 인하여 매일 매일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풍성한 지혜와 풍부한 자원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뿌리가 깊이 박혀서 양분을 잘 섭취하는 나무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듯 우리의 삶을 윤택케 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풍성한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양육 받는 삶에 행복이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의 음성을 들으며, 누구의 양육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 기도: 하나님의 양육을 받으며 보람 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참 삶의 의미
날 때부터 꼽추였던 여자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17세가 되기까지 집 밖에 나가 본적이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해서였습니다.
그 아이가 얼마나 자기 몸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지 부모는 학교에 보낼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17세가 되던 해에 그 집을 찾아온 교회 집사님의 설득에 의해서 이 소녀가 17년 만에 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날 마침 성령님에 대해 설교를 하셨습니다.
"자,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30분 정도의 시간을 드릴 테니까 교회 건물 밖에 나가셔서 교회 마당이든지 교회 옆의 동산이든지 어디든지 나가서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들어오십시오."
곱추 소녀도 나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교회 마당의 의자나 동산의 산자락 나무 아래에 좋은 자리를 다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만나기를 꺼려하는 이 소녀는 자연히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찾다가 한적한 곳에 앉게 되었습니다.
앉고 보니 쓰레기통 곁이었습니다.
"아, 나는 어딜 가나 쓰레기구나!" 소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소년이 오더니 쓰레기통을 손으로 뒤지면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곱추 소녀는 용기를 내서 난생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저어.. 쓰레기통을 왜 뒤지는 거예요?"
"캔이나 종이를 찾고 있어요."
"그걸 찾아서 뭐 하려고요?"
"이걸 가지고 가면 돈이 되거든요. 팔아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편찮으신데 약을 사드리려구요."
그 순간 꼽추소녀는 성령님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 같은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저 쓰레기를 팔아서 노인들의 약값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쓰레기 같은 곱추도 병들어 누워있는 사람들의 약이 될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이 소녀는 마음으로 큰 결단을 내린 뒤, 양로원에 가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바뀝니다. 내가 지금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을 위하여 또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며 귀하게, 아름답게, 향기롭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축복된 삶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여인이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고민을 얘기했습니다.
"제 삶은 너무 권태롭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요."
테레사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진정한 삶을 드리겠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와 보세요."
그 후 그 여인은 인도로 갔고, 그 곳에서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 질병으로 거동도 못하고 앓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테레사 수녀와 같이 그들을 돕고 보살피는 일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삶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여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새로운 기쁨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진정한 삶이 곧 축복된 삶인 것입니다.
형통한 삶
형통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찰레아흐’입니다.
이 말은 ‘번성한’(prosperous)이란 뜻입니다.
영어성경에는 ‘번성한’ 또는 ‘성공적’(successful)이란 말로 번역돼 있습니다.
성경은 요셉의 삶을 형통한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으로써 형통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여 그의 형통함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보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삶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또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면서 살았습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주식회사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성공에 대한 정의는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성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형통의 뜻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형통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형통이란 단어를 다른 말로 "지혜"라고 합니다.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곧 형통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삶
미국에 가면 '사망의 골짜기'가 있는데 그 골짜기 이름의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차가 발명되기 전, 남 캘리포티아 주에서 금이 많이 난다는 소문이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금을 캐러 남 캘리포니아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도중에는 큰 골짜기가 있는데 이곳은 도무지 비가 오지 않는 반 사막지대라 사람들은 기갈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끔씩 새파란 호수가 공중에 나타나는 일이 있는데 실물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일종의 환영으로, 이를 모르고 무작정 따라가면 마지막에는 사막에서 헤매다 죽고 맙니다.
이런 일은 아프리카 사막 지대에서도 가끔 나타난다고 하는데, 그 신기루에 속으면 헛수고 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을 얻으려고, 어떤 사람은 권세를 , 어떤 사람은 지위를,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어떤 사람은 학문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합니다.
그런 것들은 붙잡기도 어렵지만 붙잡아도 잠시 동안 내 손안에 있을 뿐입니다.
마치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
유일한 방법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뇌물을 받아서 법정에 서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명한 판사는 죄인에게 세 가지 처벌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는 벌금으로 황금 백 냥을 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채찍으로 50대를 맞는 것이고,
세 번째는 5kg의 양파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죄인은 벌금을 내기는 매우 아까웠고 채찍으로 맞기는 무서웠기 때문에 세 번째 형벌을 택했습니다.
‘양파 먹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어’라고 생각한 이 남자는 자기 앞에 놓은 양파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양파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견디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가 2kg의 양파를 먹고 난 뒤에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도저히 양파는 못 먹겠습니다. 차라리 매를 맞겠습니다.”
죄인은 매를 맞을지언정 자신의 돈을 내기는 싫었습니다.
그러나 채찍이 등에 떨어지자 그는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고, 10대 정도 맞고 나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만 때려 주십시오. 차라리 제가 벌금을 내겠습니다.”
맞는 것도 싫었고 자신의 돈을 쓰기는 더더욱 싫었던 죄인은 결국은 세 가지 형벌을 모두 받은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 정규재 글
<문재인, 당신을 용서 못한다>
문재인 당신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자기 딴에는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퇴임 후엔 깨끗이 잊혀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답은 "천만의 말씀"
당신은 지은 죄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결코 잊혀질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례를 문재인 당신을 잘 알 것이다.
노무현은 도덕적 붕괴와 그게 이은 비극적 자살로 끝났지만 문재인 당신은 노무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치죄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작정이다.
잊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몰라도
그에게 당신이 일으킨 허다한 대한민국 파괴행위에 대한 법적 정치적 책임 추궁을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다
잊혀지기를 원한다니?
왜 벌써 두려운 것인가?
당신은 맥베드에서 시작해 동키호테로 피노키오로 그리고 숱한 악마의 가면을 쓰고 너무도 많은 악행들을 저질러 왔기에 그 각각에 대해, 그리고 그런 악행들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 거짓을 선동해 전직 대통령을 탄핵한 것부터가 문재인 죄목 1호다.
거짓의 산을 지어올린 것이 문재인 본인은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그 악의 꽃이 피워올린 혜택은 모두 당신에게 집중되어 돌아갔다.
가장 큰 죄는?
1.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정은의 발아래,
핵공갈의 공포 속에서 인 질 신세로 살아가도록 대한민국을 배신한 죄다.
2. 김정은을 지원하면서 북한의 2천만 동포들을 김정은의 독재에 신음하면서 살도록 한 죄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범죄다.
3. 김정은과 결탁 하에, 9.19 군사합의라는 것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체제를 붕괴시키고 적에게 서울까지의 진격대로, 남침대로를 활짝 열어젖힌 죄다.
4. 북한을 탈주해 온 주민의 손발을 묶고 눈까지 가려서 북으로 되돌려 보낸 것은 인류가 모두 치를 떨 만행이요 반인권적 잔혹 행위다.
5. 사법부를 겁박하고 사법부내 정치집단을 이용하여 온통 좌경적 재판부로 둔갑시켜 놓은 것은 실로 자유 민주주의를 파괴한 범죄다.
6. 대한민국을 전체주의 체제로 바꾸어볼 속 마음으로 개헌을 추진하였고 공수처를 도입하는 등 갖은 체제 전복시도를 해왔거나 실행한 것은 실로 용서할 수 없는 죄다.
7. 대한민국의 오랜 외교의 기본질서를 파괴하여 일본을 적대시하고 어리석은 국민을 선동하여 한미일 동맹 관계를 파괴하려고 시도했던 일은 심각한 범죄다.
8. 중국을 끌어들여 반사드 책동을 만들어 내고 패권주의에 불과한 중국몽을 지지하는 등 망발적 외교정책을 공공연히 획책해 왔던 것은 심각한 반문명적, 반대한민국 행위다.
9. 홍콩의 자유시민을 적대시하고, 대만 자유시민의 승리를 외면하는 등 대한민국의 지도자와는 전혀 다른 이념의 궤를 드러낸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10. 소주성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경제정책으로 서민의 삶을 도탄지경으로 몰아넣은 죄다.
11.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통해 수많은 자영업자와 저임금 근로자를 실업으로 내몰고 사업포기의 벼랑끝으로 몰아넣은 범죄다.
12.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규제, 경영권 간섭이 투자를 절멸시키기에 이르렀고 이는 연금 사회주의적 시도임이 명백하여 역시 체제전환 음모라 불러야 마땅하다.
13. 멀쩡한 원전을 오로지 문재인 당신의 무지와, 무지하기에 공포에 함몰되는 그런 저차원의 심리상태에서 모조리 폐기하고 있는 것은 중대한 국가 산업 파괴행위다. 실로 문명적 설비에 대한 홍위병적 몰이해다.
14. 소위 적폐수사라는 것을 통해 직업공무원제도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조선의 사화 시대로 되돌려 놓은 당신의 증오범죄는 시대착오적 야만행위다.
15. 연동형 비례제라는 반민주적 악법으로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 대표하게 선거법을 개정한 것은 명백한 민주주의 파괴행위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16. 선거에 개입하여 친구의 당선을 조작해 내거나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려고 갖는 악행을 저지른 죄는 이루헤아릴 수 없는 문재인 권력형 범죄의 작은 표본일 뿐이다.
17. 본인은 민주적 통제를 주장하지만 국회 청문회를 부정하는 등으로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거부한 것은 삼권분립의 취지를 정면에서 훼손한 것이다.
18. 깃털만한 실수를 바위덩어리같은 범죄로 둔갑시켜 전직 대통령을 3년씩이나 감옥에 가두어 둔 당신의 죄는 인간으로서 더는 용서할 수 없다.
대략 생각나는 것들만 떠올려 보아도 이런 지경이다.
문재인 당신은 잊혀질 수가 없다.
당신은 잊고 싶어도 국민들은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그대는 벌써부터 목숨을 구걸하는 것인가?
코로나백신 가격
1. 시노팜 $ 72.5
2. 모더나 $ 32~37
3. 화이자 $ 19.5
4. 사노피 $ 21
5. 노박스 $ 16
6. 존슨앤존슨 $ 10
7. 아스트라 제네카 $ 4
우리국민이 맞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4
이게 진실이다.
개.싸구려...
세계10대 경제강국 대한민국이 맞는 아스트라제네카....
국민들에게 이런짓을?
이 좌빨 새끼들아
니 덜 눈에는 국민이 개 돼지로 보이냐?
부작용없는 비싼거 들여와라!
늙지 않는 비법 10가지
평소 습관만 잘들여도 늙지 않는 비법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매일 매일 아래의 방법대로만 해도 나이에 비해 엄청 젊은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01. 칼로리 섭취를 절반으로 줄인다.[鶴의 胃는 항시 절반만...]
02. 열을 가해 조리한 음식을 가능한 삼가고 단순한 재료를 단순하게 조리하여 적당량만 먹는다.
03. 물을 매일 2,000 cc 정도 마신다.
- 사람다운 체형 유지
- 식사 전 30분, 식후 2시간에 마신다.
- 취침 전. 취침 후에 꼭 마신다.
04. 매일 30분정도 걷는다.
- 다리는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
- 시선은 15 도 상단을 보고 걷는다.
- 땅을 보고 걸으면 다리가 벌어진다.
05. 호흡을 깊게 서서히 고요히 한다.
06. 무리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 과도한 운동은 수명단축,
- 무리한 유산소 운동은 활성산소(세포毒)가 생겨 세포에 악영향
07. 즐겁게 살며 보람을 갖는다.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다.
- 현명한 이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을 발견하는 것
-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해서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08. 항상 타인(他人)과 사귄다.
-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므로 타인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다양한 자극이 되어 생명력을 높인다.
09. 적당한 취미 생활을 한다.
- 몸이 둔하여 움직이기 싫지만 등산, 산책 등 가벼운 운동을 생활화하여유연성을 키우고
- 두뇌 활동을 많이 하게되어 치매예방 도움되는 독서, PC, 두뇌스포츠인 바둑, 당구 등 많이 하고
10. 자신에게 맞는 약제를 구입 복용한다.
- 延年 益壽開心益智, 건망증 및 불노환 등 관련 약초가 있다
- 식초를 물에 타서 자주 먹으면 血栓症(혈액이 막히는증세) 예방과 지방분해로 인해 혈액순환이 잘된다.
건강에 자신 만만한 사람이 예방 차원에서 의사를 찾아갔다.
"저, 선생님! 이만큼 건강하면 백살은 거뜬히 살겠지요?"
"술을 하시나요?"
"한 모금도안합니다."
"담배는 얼마나 피움니까?"
"일체 안피우지요."
"그러면 봉사 활동이나 다른 특별한 취미라도 있으신가요?
노래방, 춤방 등"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여자는 좋아하시나요?"
"근처에도 안갑니다."
"1인 1주차 모텔은 가보셨나요?"
"못 가봤습니다."
"묻지마 관광이나 산악회 관광은 가시나요?"
"노인들만 와서 안갑니다."
의사 왈
"그라모 씨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백 년씩이나 살 이유가 뭐있노?
만다꼬 그때까지 살끼고!
밥만축내고 병원에도 오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