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께 받은 사명(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if only I may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 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spel of God's grace.
오늘 설교 제목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의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명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은 무엇인지 찾아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은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소아시아 지방에서 마치기 전에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고 싶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으므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대략 3년 정도 머물면서 세웠던 교회이었습니다.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심혈을 기우려 세웠던 에베소 교회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권면했던 내용이 모두에게 기억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5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고 깨닫지 못할 때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명(使命, mission)과 소명(召命, calling)
* 심부름 사(使), 목숨 명(命)
사명이란 하나님께서 심부름을 시키려고 세상에 보낸 생명이란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생명입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을지라도 생명은 존귀한 것입니다.
생명이 존귀하다는 것은 그 생명을 통하여 하셔야 할 하나님의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사명을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주여,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게 하소서!사도 바울의 사명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명을 받으셨습니까?
여러분 영국의 간호사 백의의 천사라고 부르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 5. 12~1910. 8. 13)을 기억하시지요? 나이팅게일이 존경을 받게 된 동기를 그녀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일기에 썼던 내용에서 찾아봅니다.
어떤 기자가 나이팅게일에게 “어떻게 이렇게 귀하게 살게 되었느냐?” 라고 질문했을 때 “그것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이 그의 사역을 시작한 날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을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나이팅게일이 유명해 지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예수 믿게 하시고, 나를 존재케 하시는 그 목적과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 사명을 깨달았을 때 그 사명의 부르심에 순종했을 때 아름다운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명자의 삶을 위해서 세 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는 사명을 찾아라!
둘째는 사명을 확신하라!
셋째는 사명에 순종하라!
사도 바울에게서 사명자의 삶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의 배경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소아시아의 마지막 거점인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바울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입니다.
디모데후서 4:7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이 믿음으로 자기의 갈 길을 잘 마쳤다고 피력한 것은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에 충실하였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반드시 체포되어 죽임을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이 띠의 임자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기 때문에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내가 죽는 것이 사명이라면 얼마든지 죽을 각오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내게 맡겨진 사명이 분명하다는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을 때는 죽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선교사로 활동했던 리빙스턴( David Livingstone, 1813. 3. 19~1873. 5. 1)의 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사명이 있는 때까지는 죽지 않는다.”
1840년, 리빙스턴은 런던선교협회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견되었다.
이 때 그는 한창 젊음을 발산하는 27세였다.
처음에는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두메까지 들어가 전도사업에 진력했다.
그러다가 전도와 의료를 겸하면서 아프리카 각지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세계 사람들에게 오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실상을 밝혔다.
그는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1871년에는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는데, 다행히 스탠리의 수색 탐험대를 만나 구출되었다.
이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났는데 그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리빙스턴은 자신의 경험으로 "사람은 자기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탐험과선교를 강행했다.
그 후 리빙스턴은 스탠리 일행과 함께 조사를 계속하다가 1873년 뱅귀울루부근의 마을에서 이질로 사망했다.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선택의 의미는 특권의식이 아닌 사명의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글개역 성경에서 "꽃" 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6구절"입니다.
반면에 "열매"라는 단어를 검색한 결과 "135구절"이었습니다.
꽃보다는 열매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은 잠간동안 그 화려함을 드러내지만 열매는 꽃보다 더 깊은 의미를 안겨줍니다.
사도 바울이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첫째, 달려갈 길
사도 바울이 가려는 길은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아니라 달려갈 길이라고 합니다.
달려갈 수 있는 길은 여행자처럼 천천히 구경을 하며 가는 길이 아닙니다.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빨리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의 목표는 로마에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면 반드시 체포되고 죽을 것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심지어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바울의 띠로 손과 발을 묶고 이 띠의 임자가 이렇게 결박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가는 길이 분명하게 정해졌기 때문에 바울은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울이란 이름으로 활동할 때 대제사장으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오려고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고 있을 때 성 가까이 이르자 홀연히 빛이 하늘로부터 사울에게 비출 때 사울은 땅에 엎드렸고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같이 길을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사울은 땅에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울은 사흘 동안 보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 라는 제자를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일어나 직가로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합니다.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사도행전 9:15)
사울의 목표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예루살렘 공회로 끌고 오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에는 목표를 바꿀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표가 분명해지려면 사울과 같이 내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날 때부터 곱추였던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17세가 되기까지 집 밖에 나가 본적이 없었다.
자기 자신이 창피해서였다.
그 아이가 얼마나 자기 몸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지 부모는 학교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17세가 되던 해에 그 집을 찾아온 수녀님의 설득에 의해서 이 소녀가 태어난 지 17년 만에 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강사 신부님은 그날 마침 성령님에 대해 강의를 했다.
"자, 이제부터 여러분들에게 시간을 10분 정도 드릴 테니까 다 나가십시오.
이 수도원 마당이든지 산이든지 어디든지 나가서 지금 성령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무엇을 깨닫게 해 주시는지 귀를 기울이고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들어오십시오."
곱추 소녀도 나갔다.
모든 사람들은 산자락 나무 아래에 좋은 자리를 다 차지했다.
그러나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는 이 소녀는 자연히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찾다가 한적한 곳에 앉게 되었다.
앉고 보니 쓰레기통 곁이다.
'아, 나는 어딜 가나 쓰레기구나.'
소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 소년이 오더니 쓰레기통을 손으로 뒤지면서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곱추 소녀는 용기를 내서 난생 처음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저어... 쓰레기통을 왜 뒤지는 거에요?"
"캔이나 종이를 찾고 있어요."
"그걸 찾아서 뭐 하려구요?"
"이걸 가지고가면 돈이 되거든요. 팔아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편찮으신데 약을 사 드리려구요."
그 순간 곱추 소녀는 성령님에 의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 같은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저 쓰레기를 팔아서 노인들의 약값을 할 수 있다면 나처럼 쓰레기 같은 곱추도 병들어 누워 있는 사람을 위하여 약이 될 수 있겠구나.'
그 순간 이 소녀는 마음으로 큰 결단을 내린 뒤, 가톨릭에서 경영하는 양로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발견하는 순간 그 사람의 인생은 정말 바뀐다. 너무 귀하게. 너무 아름답게. 너무 향기롭게. 진짜로 사는 맛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안한 얼굴이 보고 싶다.
둘째, 주 예수께 받은 사명
바울이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고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마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전에 세웠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바울이 머물고 있던 "밀레도"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는 계획을 말합니다.
바울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가보"는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은 후에 이 띠의 임자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체포가 될 것이라고 실물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바울은 체포되는 것과 죽는 것이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이미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내 목숨까지도 내래놓을 준비가 되었다고 당당하게 설교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세웠던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마지막으로 당부합니다.
왜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을까요?
그 이유가 요한계시록 2장 에베소교회의 모습에서 드러났습니다(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교회가 사명을 잊어버렸을 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책망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했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고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잡게한 후에 아침을 먹으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은 사랑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택하신 것은 특권의식을 갖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선택하신 것은 사명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19-1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모든 사람을 제자 삼아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셋째, 생명보다 귀한 사명
사도행전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을 욕심으로 감당하면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은혜로 감당할 때 성공의 길은 열릴 것입니다.
욕심이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가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네 분수를 알라는 말처럼 자기 분수를 알면 욕심을 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나 보다 더 크게 작용하면 결국 내가 못 견디게 될 것입니다.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는 사람이 세상 즐거움에 붙잡히면 도저히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세상 즐거움을 포기해야 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자기 목숨까지도 포기했다고 합니다.
오직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만 집중하겠다고 합니다.
욕심을 버리려면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어디에서 누구는 이렇게 했고 또 누구는 이렇게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를 다른 사람들이 활동했던 자리와 분명 다른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비교하는 것은 증거하는 일에 보탬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