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에스겔 18:30-32)
Get a new heart and a new spirit.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마음과 영"에 대한 이해는 "마음은 정신"이라고 하며 "영이란 영혼"을 말합니다.
몸과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예수님께서는 몸과 영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은 영과 혼과 몸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기자는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라고 합니다.
에스겔 18장은 사람은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특별히 선택받은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으면서도 아직도 왜 거룩한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포로가 되었는지 깨닫지 못할 때 빨리 깨닫게 하려고 선지자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
어떻게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새롭게하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은 정신을 새롭게하는 것으로 정신 차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을 새롭게 하라!
따라서 하나님이 어떤 임무를 맡기신다면 그 임무를 완성할 수 있는 은혜를 꼭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원리적 사역은 구약과 신약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계속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은 사역자들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혹은 염려하는 나머지 벗지 못할 오류를 범하는 예를 수 없이 보아 왔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본문 속에서 다음과 같이 메세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18:27-28에 “참회자는 아무리 시작이 악하였어도 형통함이 있을 것이며”,
18:24-26에 “참회치 않고 배역하는 자에게는 비록 처음에는 좋게 시작했어도 재난이 임할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1. 하나님의 공평한 처사를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의 공평한 처사를 도리어 공평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너희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지적하셨는데 그 기준은 죄악임을 밝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라도 범죄하면 영적 죽음을 면할 수 없고 악인이라도 죄악을 떠나면 산다고 하십니다. 결국 인생을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은 죄악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러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불신앙적인 사고방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자신을 망각하고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뿌리 뽑아야 하겠습니다(사 55:8-9).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정당하시고 그의 계획과 진행이 공평하심을 분명히 밝히셨고(18:25-29) 우리들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시려는 분명하신 의도가 있으십니다(18:30-32).
2.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죄악성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길을 변화시키려면 우리의 마음과 행실의 변화가 와야 합니다. 말하자면 잘못 행한 것을 후회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하며 가능한 한 왜곡됐던 부분들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놔야 합니다. 여리고의 삭개오가 그러했으며(눅 19:8), 탕자도 역시 그러했습니다(눅 15:21).
(1) 우리는 모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30-32에 “스스로 돌이켜”란 방향 전환을 뜻합니다. 돌이킴이 늦으면 하나님이 인정치 않습니다. 스스로 뉘우침은 빠를수록 좋은 것입니다(마 21:31).
(2) 범한 모든 죄를 다 버려야 합니다.
앓았던 병이 재발되듯 하면 안 됩니다. 포기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18:4-20). 범죄한 영혼은 죽으리라 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하여 여호수아의 명성이 온 지면에 퍼졌습니다(수6:27). 그러나 벧엘 동편 벧아웬 곁 아이성의 사건으로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너희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고 하셨는데(수7:12-13), 까닭은 시날산 외투 한 벌은 200세겔 금덩이 한 개를 땅 속에 감추어 두었던 아간 때문이었습니다(수 7:21-25). 우리는 아골 골짜기와 같은 괴로움이 오기 전에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수 7:26). 그 후에 비로소 가나안 땅 전부를 정복케 하였습니다.
(3)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함은 하나님 약속의 주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먼저 할일은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려야 합니다(11:18).
갈 3:4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 능력을 행하시는 일이 믿음에서”였고,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23).
우리는 믿음에 의한 성령 충만이 식어졌음을 고백하고 성령을 환원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갈 3:3). 예수님은 몸된 당신의 교회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을 왜곡시키지 말고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강조하고 진리 사수와 온전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면 교회는 보존됩니다(마 16:16-18).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종들이 역사할 때는 반드시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나님이 주장하십니다. 오직 믿음과 성령으로 역사하는 일들을 안목적인 자신의 척도로 또는 인간 전형적 노파심으로 평가하여 하나님의 역사적 현장을 불공평하다고 비판하지는 않았는지요 속히 믿음으로 돌아가서(히 11:6, 12:2) 충성인이 되어 말씀 붙들고 기도하는 삶이 계속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참새보다 귀합니다(민 10:29-31). 하나님의 자녀답게 새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톰 라이트 | 이지혜 역 | 비아토르 | 132쪽 | 6,800원
톰 라이트(N. T. Wright) 전 주교이자 신약학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맞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사고하는 것이 합당하겠느냐는 질문으로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설교문이 아니라, 성경주해에 근거한 기독교 사상 안내서이다.
영국 복음주의 노교수의 문제의식은 이 팬데믹을 맞으며, 사람들이 “이것은 말세의 징조다” 혹은 “이것은 계시록에 기록된 대로 응하는 것이다” 하고 웅성거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은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경고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고 계시며, 이 병을 통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이라며 눈살을 찌푸린다.
고대 철학에 정통한 그는 어떤 사태가 생겼을 때 그 문제 앞에 반응하는 “왜 이 일이 생겼나(why)”라는 대응 양식과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what)”라는 대응 양식의 차이를 제시한다.
놀랍게도 고대 스토아, 에피큐로스, 플라톤적 대응 양식은 항상 “왜”라는 질문 속에서 원인을 규명하는 사상 체계였지만,
기독교는 어떤 사태가 생겼을 때 오히려 “그럼 무엇을 섬겨야 할까”에 집중해 있었다고 밝힌다.
이어, 이 성경학자는 구약과 신약을 연이어 읽어나간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 외부인들, 그리고 노예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으며,
구약의 하나님 백성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고난을 받고 압제를 받았다(시 44:17-22, 시 89편).
신자의 고난이 항상 죄 때문은 아니다.
죄 없이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이 넘쳐난다.
고난 앞에 왜(why)라는 질문이 얼마나 더 큰 고통을 주는가?
크리스천들은 흔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날 때, 쉽게 ‘해결책’으로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너의 죄가 많아서 그렇다 등. 그러나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강한 영적 반응일까?
신약으로 넘어간 신약의 대가는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맞이하게 된 새 역사 새 시대를 조망한다.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신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의를 가져오신 것이었다.
이제 우리 신약 백성들은 주께서 우리에게 늘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으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하나님의 용서와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며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팬데믹 사태도 그리스도의 안경으로 보면, 아직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메시아 안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완성되게 하신다(엡 1:10).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승리와 완성을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삶의 원리는 무엇인가?
바로 긍휼(compassion)이다.
고난당하고 압제당하고 병들어 고통하는 자들을 향한 긍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를 죄와 타락으로부터 구원하시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하셔서,
지금 이 때에―팬데믹의 세계적 환난 중에―우리로 감당하고 섬길 긍휼의 사역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이 사상가는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제 그의 백성들의 사역을 통해서 이 땅에 완성되어질 것이다.”
바울의 로마서 8장 37-39절에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한다. 그 사랑이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건지셨고, 모든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주의 백성들은 성령과 함께 탄식하며 기도하게 된다.
성부-성자-성령께서 모두 탄식하시며 창조 세계가 고통하고 있는 것에 함께 고통하시며 눈물 흘리시고 괴로워하신다. 이 팬데믹 사태에 고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심판이나 정죄의 메시지가 아니라―하나님의 긍휼과 아파하심의 메시지인 것이다.
그것이 밤새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울부짖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던 주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도 함께 기도하라”고 하신 뜻이며, 초대교회가 어려운 재난의 때에 하나님의 심판이나 징계를 말하기보다 힘써 연보하여 가난한 자들을 섬겼던 것에서 증명된다.
저자는 지금 이 팬데믹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긍휼의 사역에 집중하게 하는 때임을 강조한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교회의 지도자는 요셉과 같이 지혜롭게 당신의 백성들과 전 세계를 구할 꿈과 비전을 가지고 곡식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제언한다.
팬데믹을 맞은 전세계 크리스천들을 위한 저명 크리스천 목회자와 신학자인 존 파이퍼(John Piper)와 톰 라이트(N. T. Wright)가 거의 동시에 시의적절한 목회·신학적 권면의 책들을 출간했다.
여전히 전 세계적 확산과 희생자의 숫자가 늘어나는 와중에 드물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려는 두 크리스천 사상가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존 파이퍼는 발빠르게 설교집을 책으로 엮어 무료로 배포했고, 그보다 조금 이르게 톰 라이트는 타임지(Time Magazine) 기고를 통해 팬데믹에 처한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하나님 앞에 바른 사고와 행동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데 이어 이 책을 냈다.
둘의 글을 아래 서평과 함께 읽으며 비교해 보라. 공통점도 조금 있지만, 근본적으로 성경의 뼈대를 보는 눈이 다르고 실천의 깊이와 폭이 다르다. 판단은 개인의 몫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