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5, 10.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요한계시록 4:6-7.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도입 이야기)
현재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졌던 자리에 이슬람 사원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예루살렘에 성전이 재건되면 그 때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 1차 성전이었고 바벨론 포로가 된 후에 귀환한 후에 다시 세운 성전을 2차 성전이라고 합니다.
헤롯 왕 때에 성전을 재건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있던 것을 보수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 소개된 성전을 제3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제3의 성전을 세우면 반드시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예루살렘 성전 자리를 되찾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그 자리를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마지막 전쟁은 유대인들과 이슬람의 전쟁이 될 것이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이야기가 성경적인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전개 이야기)
네 생물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처음으로 해석한 사람은 초대교회 시대 교부 이레니우스(Ireaneus, 120-202 AD)라고 합니다.
이레니우스 부모는 아들을 서머나 감독 폴리캅에게 보내어 교육을 받게 하였다고 합니다.
좋은 스승으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영적으로 혼돈했던 때에 상징의 의미를 복음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레니우스가 에스겔서의 내 생물에 대해서 그 의미를 소개한 것은 세 가지 목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세 가지 목적이란 "성경중심", "사도적 계승", "이단들에 대한 명백한 정의"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네 생물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사자"라고 합니다.
사자는 정글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짐승입니다.
특히 마태복음의 대상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왕과 선지자는 반드시 유대 혈통을 계승해야 하므로 마태복음을 시작할 때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혈통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유대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는 메시지가 메시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마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황소"라고 합니다.
황소는일생동안 주인만을 위해 일하고 마지막에는 몸둥아리 전체를 먹을 것으로 제공합니다.
마가복음의 대상은 로마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메시아는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고 전한다면 로마 당국에서는 반역죄라고 하여 처형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황소(송아지)처럼 죽도록 일만하고 마지막에는 먹거리로 자기 몸을 내준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헬라인들은 사람의 존재 근원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누가복음의 대상은 헬라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더구나 헬라 철학의 특징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발전했기 때문에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내세워 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상징하는 것은 "독수리"라고 합니다.
독수리는 날짐승 중에 가장 높은 곳을 날아다니는 새들 중의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대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독수리와 같이 높은 공중에서 먹잇감을 발견하면 즉시 내려와 먹이를 채가는것처럼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내려와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네 생물의 환상을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장차 바벨론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깨우쳤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70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환상으로 에스겔에게 보여진 예루살렘의 명칭은 "여호와 삼마" 라고 합니다.
여호와 삼마는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에 올라갔을 때 네 생물을 목격한 것입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 주위에 둘러 섰고 눈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보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누가 지켜보고 있습니까?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켜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바로 그곳에 계십니다.
여호와 삼마와 그 의미가 같다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에스겔의 환상으로 보여진 예루살렘 성은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본 새 하늘과 새 땅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됩니다.
오늘날도 에스겔과 요한에게 임했던 것처럼 지금도 동일하게 임할 것입니다.
에스겔(Ezkiel)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요한(John)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힘을 주시고 강하게 하시는 은혜가 모두에게 임하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스겔서가 쓰여진 시기는 B.C. 592~571년경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A.D. 95~96년경에 쓰였다.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시간차는 대략 700년 입니다.
700년의 시간이 지났어도 하나님의 계시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환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의 환상은 곧 다시 오실 예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예루살렘 성전은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이 회복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이 가까왔을 때 성전에 올라가서 성전에서 돈을 바꾸거나 비둘기를 팔고 있었던 사람들의 상을 엎어버렸고 채찍을 만들어 내쫓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이 성전은 36년동안 지었는데 어떻게 삼일 만에 지을 수 있느냐? 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비웃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전된 육체를 의미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깨우쳤습니다(고린도전서 3:16. 6:19).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은 다시 건축하라는 환상이 아니라 마음에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
성전을 건축할 때는 반드시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민수기 32:24
너희는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양을 위하여 우리를 지으라 그리하고 너희 입에서 낸대로 행하라.
열왕기하 22:6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듬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역대상 22:19
역대하 36:23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찌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에스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에스라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에스라 4:2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에스라 5:15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하매. 에스라 5:17 |
||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에스라 6:7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고 유다 총독과 장로들로 하나님의 이 전을 본처에 건축하게 하라 | ||
학개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스가랴 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성경에서 성전을 지을 때는 반드시 건축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의 제3 성전에 대해서는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성전은 어떻게 세워질까요? 요한계시록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이지 이 땅 어디에 건축해야 할 건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의 제3성전에 대해서는 건축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시고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을 맞이해야 할 신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장차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입니다. | ||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 심판 예언(1~32장)
2. 회복 예언(33~48장)
회복예언은 또다시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2-1. 새 이스라엘의 회복( 33~39장)
2-2. 새 예루살렘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40~48장)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1. 계시와 환상(1~5장)
2. 환난과 전쟁(6~16장)
3. 심판과 구원(17~22장)
신판과 구원은 다시 두 부분으로 구분합니다.
3-1. 큰 성 바벨론의 멸망(17∼20장)
3-2.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완성과 결론(21∼22장)
구조적인 면에서 오늘 관심을 갖고 함께 은혜를 받으려는 주제는 네 생물을 통한 환상의 예언과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네 생물의 의미가 마지막 시대에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의 대상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왕과 선지자는 반드시 유대 혈통을 계승해야 하므로 마태복음을 시작할 때 먼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혈통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대상은 로마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태복음에서 메시아는 세상의 왕으로 오셨다고 전한다면 로마 당국에서는 반역죄라고 하여 처형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황소(송아지)처럼 죽도록 일만하고 마지막에는 먹거리로 자기 몸을 내준다고 설명한 것입니다.
누가복음의 대상은 헬라인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이성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더구나 헬라 철학의 특징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발전했기 때문에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내세워 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대상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를 소개한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는 독수리와 같이 높은 공중에서 먹잇감을 발견하면 즉시 내려와 먹이를 채가는것처럼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내려와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한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옮겨 갈 것이라고 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네 생물의 환산을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장차 바벨론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깨우쳤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바벨론 포로에서부터 70년이 지난 후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소개되었습니다.
48장에서 그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고 불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에 올라갔을 때 네 생물을 목격한 것입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 주위에 둘러 섰고 눈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눈들이 가득하다는 것은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 없이 보고 있다는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누가 지켜보고 있습니까?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