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본 것(요한계시록 1:19∼20)
⑲.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⑳.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Write, therefore, what you have seen, what is now and what will take place later. The mystery of the seven stars that you saw in my right hand and of the seven golden lampstands is this: The seven stars are the angels of the seven churches, and the seven lampstands are the seven churches.
(도입 이야기)
교회 전통에 따르면 부활주일 다음 맞이하는 주일을 “신생아주일(新生兒主日)” 또는 “성(聖) 도마주일”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가 지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있는 곳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한 후에 인도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도마가 잠시 쉬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자라나 큰 나무가 되었는데 그 나무 옆에 성 도마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 소년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5달러 지폐를 주웠다고 합니다. 소년은 5달러를 줍고 얼마나 좋았던지 이런 일을 기대하며 매일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렇게 걷는 습관 때문에 허리는 굽어졌고 일생동안 길에서 주웠던 것은 단추 29,519개, 머리핀 54,172개, 수백 개의 동전뿐이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과 방향이 결정된다는 교훈입니다.
(전개 이야기)
두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째는 왜 교회에 다니는가?
둘째는 왜 파트리스교회에 다니는가?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처럼 시작이 정말 중요합니다.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좋은 시작은 절반을 한 것이다(Well begun is half done)’
교회에 대한 성경적 신앙
첫째, 교회는 성전이 아니다!
예수님이 성전(요한복음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도들이 성전(고린도전서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둘째, 누구 때문에 그 교회에 간다!
교회에 다니게 된 동기는 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수님 때문에 그 교회에 가야 합니다. 만일 사람 때문에 누구 때문에 그 교회에 가는 것은 반드시 시험에 빠질 위험성이 아주 큽니다.
셋째, 예수님이 교회(사도행전 9:4∼5)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여러분, 사울이 예수님을 박해한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사울은 예수님을 박해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과 예수님을 전하는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사울에게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곧 교회와 예수님은 동격이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론(敎會論) 1:11∼16
⑪.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두아리다,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보내라 하시기로 ⑫.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⑬.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⑭.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⑮.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⑯.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아멘
사도 요한은 일곱 금 촛대에 거니시는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한 후에 그 발 아래 죽은 사람처럼 엎드렸습니다.
일곱 교회는 칭찬을 받은 교회도 있었고 책망을 받은 교회도 있었으며 칭찬과 책망을 동시애 받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세상 교회는 칭찬도 받을 수 있고 책망도 받을 수 있으며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회는 영광스런 예수님께서 거니시는 교회라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교회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비판하면 곧 사울처럼 예수를 비난하고 예수를 비판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네가 본 것(what you have seen)’입니다. 본문에서 본 것을 세 가지라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네가 본 것
둘째는 지금 있는 일
셋째는 장차 될 일
장차 될 일(what will take place later)
장차 될 일은 ‘요한계시록 4장부터 마지막 22장’까지의 내용을 말합니다.
장차 될 일은 인과 나팔과 대접에 대한 말씀으로 유대 묵시문학의 표현 방식에 의하면 일곱 인(seal)은 징조(sign)를 말하고, 일곱 나팔(trumpet)은 경고(warning), 일곱 대접(bowl)은 실질적인 재앙(disaster)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교회)에 관한 말씀입니다.
지금 있는 일(what is now)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소개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말합니다. 소아시아 지방은 현재 터키 지역을 말합니다.
네가 본 것은(what you have seen)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를 말합니다. 일곱 금 촛대는 교회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의미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일곱 별에 대해서는 일곱 사자라고 설명했기 때문에 사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합니다.
사자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천사’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16 -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1 -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3:1 -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사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합니다.
1. 주의 종(servant)
2. 목사(pastor)
3. 지도자(leader)
4. 사자(angel) - 교회들을 위하여 증언하는 자(messenger)
5. 천사(영적 진리를 전하는 자) - ἄγγελοι(the angeles) * 32 ἄγγελος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은 영광스런 예수님입니다(계 1:13∼16).
칭찬만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이었습니까?
- 서머나교회, 빌라델비아교회
책망만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이었습니까?
- 라오디게아교회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은 교회는 어느 교회이었습니까?
- 에베소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자 이제 질문을 합니다.
영광스런 예수님께서 거니시는 교회는 어느 교회일까요?
칭찬만 받은 교회일까요?
아니면 책망만 받은 교회일까요?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은 교회일까요?
모든 교회에 영광스런 예수님께서 거닐고 계십니다. 거닌다는 것은 ‘함께 한다’ ‘지켜준다’ ‘곁에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열 명의 자녀를 두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잘 표현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처럼 성공한 자녀와 실패한 자녀가 있을 때에 모든 자녀를 향한 사랑은 동일합니다. 아마 실패한 자녀에게 더 큰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곧 영광스런 예수님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든지 그 교회에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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