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성령(聖靈) / 프뉴마 πνεῦμα / 다음 주제 성령 세례 및 예배


왜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흙(아마다)에서 흙(아파르)으로 만드셨다(창세기 2:7).
그리고 사람은 죽은 후에 흙(아다마)에서 왔기 때문에 흙(아파르)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창세기 3:19).
따라서 사람은 먼지(아파르)와 같은 존재이다.
만일 먼지같은 존재가 성령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 삶은 곧 먼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언어의 먼지
생각의 먼지
행동의 먼지
삶의 먼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에베소서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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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αράκλητ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3875

1. 남을 위해 나타난 자.  2. 요일 2:1.  3. 요 14:16, 26
발음 [ paraklētŏs ]
어원  /  3870에서 유래
  • 1.  남을 위해 나타난 자, 중재자, 조정자, 돕는 자, 변호자, 위로 자, 중보자.
    • a.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요일2:1.
    • b.  [성령을 가리켜서] 요14:16,26, 15:26, 16:7.
  • 관련 성경 / 보혜사(요 14:16, 26, 16:7), 대언자(요일 2:1).

παρακαλέω 스트롱번호 3870

1. ~곁에서 부르다.  2. 행 28:20. 3. 청하다
발음 [ parakalĕō ]
  • 1.  ~곁에서 부르다, 옆으로 부르다, 호출하다, 소집하다.
    • a. [τινά+부정사가 따르는 경우] 행28:20.
    • b. 청하다, 이끌다, 권하다, 눅8:41, 행8:31.
    • c.  ~의 도움을 청하다, 마26:53, 고후12:8.
  • 2. 호소하다, 강권하다, 역설하다, 권면하다, 격려하다, 행16:40, 고후10:1, 히3:13.
  • 3. 요구하다, 간청하다, 마8:5, 막1:40, 눅8:31, 행28:14.
  • 4. 위로하다, 격려하다, 마5:4, 눅16:25, 고후1:4, 엡6:22.
  • 5. 위로해보다, 정답게 말하다, 눅15:28, 행16:39, 고전4:13, 살전2:12, 딤전5:1.
  • 관련 성경 /  위로받다(마2:18, 5:4, 고후13:11), 간구하다(마8:5, 눅8:31, 몬1:10), 빌다(마18:32), 구하다(마26:53, 막5:10, 눅7:4), 권하다(눅3:18, 행11:23, 빌4:2), 청하다(행8:31, 13:42, 28:14), 간청하다(행9:38), 권면하다(행15:32, 고전4:13, 살전2:11), 위로하다(행16:40, 고후7:6, 엡6:22), 여쭈다(행24:4), 원하다(히13:19), 위로하다(롬12:8), 위안받다(골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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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聖靈 充滿)

충만이란 헬라식 의미는 가득찬 상태가 아니다.
가득차서 더 이상 채워질 수 없는 것들이 밖으로 흘러넘쳐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기쁨이 넘쳐 흘러요.  찬송이 흘러 넘쳐요...... 기도, 봉사, 나눔. 사랑, 

πλήρης, ες Storng number 4134

1. 가득 찬.  2. ㉠ 막 6:43.  3. 눅 5:12  
Pronunciation  [ plērēs ]  
Etymology  / 4130에서 유래
  •  1. 가득 찬, 가득한.
    •  a. [물건에 대해] ㉠ [속격을 가져]막6:43, 8:19. ㉡ [단독으로] 마15:37.
    •  b. [사람에 대해, 속격을 가져] 눅5:12, 행7:55.
  •  2. 완전한, 충분한, 충만한, 막4:28, 요1:14, 요이1:8.
  • 관련 성경  /  찬(마 14:20, 막 6:43), 충실한(막 4:28), 충만한(눅 4:1), 심히 많은(행 9:36), 가득한(행 13:10, 19:28), 
                        온전한(요이 1:8).


πλήθω Storng number 4130

1. 채우다.  2. 영향을 주다.  3. 완수하다  
Pronunciation [ plēthō ]

  •  1. 채우다, 영향을 주다, 완수하다, 공급하다, 눅1:15.
Grammar Explanation  / πλέω의 연장형
  • 관련 성경  / 가득하다(마 22:10, 눅 4:28, 행 5:17), 적시다(마 27:48), 충만함을 받다(눅 1:15, 41), 차다(눅 1:57, 2:6, 22), 
    채우다(눅 5:7), 충만하다(행 4:8,31, 13:9).

성령충만(聖靈充滿) 이란,
성령께서 한 사람의 존재와 삶을 지배하시고 인도하시는 상태를 말합니다.
단순히 감정이 뜨거워지는 체험이 아니라, 자아가 내려지고 성령이 주인이 되신 삶입니다.

성령충만은
“무엇을 더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주님께 비워지고 맡겨졌는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계속해서 채워지라’는 현재진행형 명령입니다.
즉, 성령충만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유지되어야 할 삶의 상태입니다.

성령충만이란, 성령을 더 많이 소유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 마음, 의지, 삶을 온전히 다스리시도록 맡겨진 상태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은
한 번의 체험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의미합니다.

성령충만의 특징

성령충만한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열매가 나타납니다.

  1.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됨

  2. 죄에 대한 민감함과 회개의 삶

  3. 말과 태도가 달라짐 (원망 → 감사, 분노 → 온유)

  4. 사랑과 담대함이 생김

  5.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
성령충만의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성령충만의 길

성령은 이미 믿는 자 안에 계십니다.
성령충만은 “더 많이 받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덜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의 길은 단순합니다.

  1. 자기를 부인함 – “주님,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대로 하소서”

  2. 죄를 자백하고 돌이킴 –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기

  3. 말씀에 순종함 – 성령은 말씀과 분리되지 않음

  4.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림

성령충만은 특별한 사람만의 은사가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누려야 할 정상적인 신앙 상태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이란?(갈라디아서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성령충만의 핵심 특징

  1. 자기 중심 → 하나님 중심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삶을 이끕니다.

  2.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인격적 변화
    성령충만은 “기분이 뜨거운 상태”가 아니라

    • 죄를 미워하게 되고

    • 말씀에 순종하고 싶어지고

    • 사랑과 겸손이 자라나는 변화입니다.

  3. 열매로 드러남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성령충만의 증거는 능력보다 인격,
은사보다 열매입니다.


성령충만을 유지하는 길

  1. 말씀에 자신을 열기 – 성령은 말씀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2. 즉각적인 회개 – 죄를 깨달을 때 미루지 않기.

  3. 순종의 선택 – 작은 것에서부터 “주님 뜻대로” 살기.

  4. 기도로 자신을 내어드리기

    “주님, 오늘도 제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습니다.
    제 안에서 주님이 주인 되게 하소서.”


성령충만을 방해하는 것

  • 숨기고 붙잡고 있는 죄

  • 자기 주장, 고집, 완고함

  • 말씀보다 감정이나 환경을 기준 삼는 태도

  • 회개 없는 신앙

성령은 주인이 되기를 원하시지,
손님으로 머무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성령 충만이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선물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이란 무엇일까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와, 하나님이 아낌없는 사랑과 성령의 친밀한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메시지 성경, 고후 13:13).

성령님의 소원은 우리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지혜와 사랑이 무한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와 친밀한 사귐을 갖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이란 성령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그분께 온전히 굴복하는 삶, 즉 성령님의 지배를 온전히 받는 삶을 말합니다. 

[1] 성경에 나타난 성령 충만

‘성령 충만’의 실례들은 주로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우선 초기 교회 당시 오순절에 성령 충만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이어 초기 교회에 성령 충만의 역사가 반복되어 일어났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이곳에 나오는 무리는 제자들과 사도들인데, 이들은 이미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에 그들은 또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6:3-6에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 일곱 명을 집사로 세우는 사건이 나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그리고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박수 엘루마를 책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행 13:9). 성령 충만했던 바울은 에베소 교회 신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사도행전 외에도 성령 충만을 받은 경우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침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

또 침례 요한의 부모인 엘리사벳과 사가랴도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41).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67).

구약성경에도 성령 충만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 브사렐, 여호수아, 삼손, 다윗 등이 그러한 사람입니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창 41:38).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사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출 31:2-4; 35:31).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신 34:9).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삿 14:6).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삼상 16:13). 

이와 같이 성령 충만의 역사는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2] 성령 충만의 목적

왜 성령 충만이 필요할까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까? 예, 물론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위의 성경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신자에게 성령 충만이 또 필요합니까? 성령 충만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증거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회심을 위한 성령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증거하는 일과 희생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성령 충만’이라는 은혜를 주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생애를 통해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인류 최고의 교사로부터 3년 반 동안 최고 수준의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에 함께 그 자리까지 따라갔으나 계집아이의 질문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는 비겁함을 드러냈습니다. 그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는 유대의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베드로와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 충만을 받은 후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증인이 되었습니다(행 1:8). 이것이 성령 충만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성령 충만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나사렛에서 30년간의 생애를 하신 다음 예수님은 이제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침례를 받을 때 성령께서 비둘기 형체로 그의 위에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눅 3:22). 다음의 두 성경절을 잘 보시면,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은 성령의 권능, 성령 충만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오직 성령이 (위로부터)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요단강에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눅 4:1)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는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냈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 1:12).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사십 일을 지내신 후에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입고 갈릴리에 돌아와 사역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퍼졌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눅 4:14-15).

예수님은 제자들과 작별하기 전에 그들에게 복음 전도 사업을 감당하기 전에 반드시 하나님이 약속하신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성령을 받고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이것이었습니다.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4-5).

사도 바울도 복음 전도에 있어서 자신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이 필수적임을 증거 합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3] 성령 충만의 약속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이 말씀이 헬라어 원문에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현재시제는 계속적인 동작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상태를 계속 유지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매우 강력한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그리스도인이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약속이기도 합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주시기로 한 귀중한 약속입니다. 성령은 마치 객차(客車)를 끌고가는 기관차와 같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다른 많은 축복들은 기관차에 매달려 따라오는 객차들처럼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특정한 개인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약속은 이 말씀을 읽는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또한 성령 충만은 이 본문을 읽는 당시 신자들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주어진 약속입니다.

끝으로 이 명령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나를 온전히 주관하시는 경험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이 나를 온전히 주관하시도록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조용히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반대로 성령의 충만함은 받으면 큰 능력을 얻어 인간이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업가가 그리스도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미국이 사용하지 않고 있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보여주겠소.” 그리고는 그를 나이아가라 폭포로 데리고 가서, 순간순간 산더미처럼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소리쳤습니다. “바로 저거요.” 그러자 그리스도인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세상에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능력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이요 약속인 성령 충만을 받아 누리는 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4]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

어떻게 성령 충만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것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면(고전 12:3), 성령은 믿는 자의 중생에 역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중생으로 끝나지 않고 성령 충만한 단계, 즉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도록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을 간단하게 네 가지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① 성령 충만의 첫 단계는 회개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하였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8-39).

회개는 마음의 변화요 삶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으로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단계입니다. 인간은 본래 성령 충만한 상태였으나 죄로 인해 성령을 상실한 상태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죄된 심령에 함께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한 회개가 없는 곳에 성령이 임재할 수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회개할수록 성령은 더욱 더 크게 역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롬 2:4)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회개할 때는 하나님께 회개의 영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 깊은 곳에서 죄를 미워하고, 하늘 아버지께 죄를 지은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회개가 성령 충만을 받는 방법입니다.

② 성령 충만을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이 말씀의 배경은 한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이웃에 떡을 빌리러 간 사람이 끈질기게 요청하여 마침내 떡을 빌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간곡하게 요청하기 때문에 이웃집 주인은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떡을 줄 수가 없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눅 11:8).

성령 충만을 원하다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배고픈 아기가 어머니의 젖을 찾듯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성령을 갈급하여 간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성령 충만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 성령을 거저 주시지 않고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주실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전도의 능력이 나타나고 품성이 변화되는 등 현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데, 성령을 간절히 구하지도 않은 자에게 성령 충만이 오면 자기 신앙심의 좋아서 그런 줄 알고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때에 그 결과에 대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겸손하게 준비된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고, 그 준비가 바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그 필요를 느끼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③ 기도한 후에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한 다음에는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의심하는 기도는 응답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6-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마 21:22). 

④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32).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에 성령 충만이 있습니다.

진정한 순종이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라면 한 가지, 두 가지, 세 가지만이 아니라 모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의 핵심은 의지에 있습니다. 온전한 순종의 본질은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생애를 사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이와 같이 하나님께 자신의 의지를 무조건적으로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을 받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입니다.

[5] 성령이 머무는 위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머무시는 위치를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전치사)가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에”를 가리키는 ‘엔’(en)과, “곁에”를 가리키는 ‘파라’(para), “위에” 혹은 “위로부터”를 가리키는 ‘에피’(epi)입니다.

① “안에”

로마서에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9-11).

성령은 우리 ‘속에’ 그리고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할 때, 성령이 내 속에 거주(내주)하기 시작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죄인 속에 들어오셔서 함께 거하신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신비요, 기적 중의 기적이요, 은혜의 역사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주로 죄를 씻고, 인격을 변화시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시는 성령은 나의 생각과 인격과 존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십니다.

② “곁에” 혹은 “함께”

요한복음 14:16에서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성령을 가리키는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입니다. 이 말은 “곁에”를 의미하는 ‘파라’와 “부른다”를 뜻하는 ‘칼레로’의 합성어입니다. 보혜사란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우리 곁으로 부르심을 받은 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곁에서 행하는 일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일입니다(요 16:8). 성령이 곁에 오셔서 역사하시면, 나도 모르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또한 사탄이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과 끝까지 회개치 않는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 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그리고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께서 언제나 내 곁에 계셔서 나를 도우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③ “위에” 혹은 “위로부터”

성령이 위에 혹은 위로부터 임하신다는 것은 능력을 부어주시는 성령의 사역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성령의 기름 부으시는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은 위로부터, 때로는 불 같이, 때로는 바람 같이, 때로는 비둘기 같이 임합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사역은 권능의 사역입니다. 이것은 모든 이론과 장애물과 대적을 타파하는 사역이고, 세상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권능을 받으셨습니다.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 쌔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1, 22).

예수님이 공생애를 준비하실 때,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 의해 잉태되셨고, 성령이 그분 안에 내주하셨지만, 메시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의 공생애는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의 사역이었습니다(눅 4:14, 18).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 24:49).

제자들은 오순절에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권능을 받았습니다(행 1:8). 사도들과 성도들은 예수님 승천 이후, 예수님의 유언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락방에 모여 합심하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그 이후로 성도들은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권능을 힘입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아름다운 초대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6] 역사에 나타난 대표적인 성령 충만 사건들

①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

가장 대표적인 것은 초기교회가 경험한 오순절 성령 충만 사건입니다. 성령 시대가 개시되는 사건입니다. 오순절 이후부터 예수 재림까지 교회 시대는 성령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은 구약 시대가 끝나고 교회 시대가 시작되는 교회의 탄생일입니다. 성령 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탄생했으니,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요 성령은 교회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교회의 영이 아니라 교회가 성령의 피조물입니다.

또한 오순절 성령 충만은 보편적인 영적 은사 체험 사건입니다. 이것은 구약에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욜 2:28~30). 그 예언은 사도행전에서 성취되었습니다(행 2:1~4, 16~19). 구약 시대의 성령의 사역은 특수한 사람들에게 특수한 일을 위해서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이후로 이러한 제약은 해제되고 하나님의 영의 보편적인 역사로 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특수한 은사를 받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친교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성령 충만은 선교의 사건입니다(행 1:8). 오순절이 없었다면 교회가 없었을 것이고, 성령의 권능이 없이는 선교가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적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실존적인 사건이 되게 만들고, 그 객관적 사건을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사건이 되게 만드는 능력은 오직 성령이 가지고 계십니다.

오순절에 120명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당일에 3,000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그 이후 5,000명으로, 수만 명으로, 그 다음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가 오순절에 시작된 것입니다.

② 요한 웨슬리 성령 충만 사건

요한 웨슬리(1703-1791)는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 교회, 나사렛 교회, 갱신주의 교회와 은사주의 교회들을 포함하여 35개 이상의 교단과 신앙 운동의 영적 아버지입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40만 킬로미터 이상을 여행했고, 42,000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가 저술, 번역, 편집한 작품만 200권이 넘습니다. 그는 형제, 아버지, 조부, 증조부 모두가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1728년에 영국 성공회에서 안수를 받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저녁 8시 45분, 런던의 알더스게이트 스트리트에서 있었던 모라비안 교도들의 기도집회에서 그의 생애에 큰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신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 그분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이 그의 모든 죄를 가져가셨고, 그를 죄와 사망의 율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웨슬리는 무엇보다 성령 충만을 참된 신앙의 본질로 보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이성으로만 아니라 감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적 능력의 체험이며 하나님의 생명의 영과의 교통입니다. 웨슬리는 이러한 성령의 적극적 역할을 중생 이후에 경험하는 두 번째 은혜, 성령 침례, 그리스도인 완전(죄 없는 순수한 동기와 사랑의 상태), 성화로 보았습니다. 즉, 성령 침례를 통해 성화와 그리스도인 완전에 이르게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기독교 신학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통적 신학은 중생과 성령 침례를 구분하지 않았지만, 요한 웨슬리, D. L. 무디, R. A. 토레이는 중생과 성령 충만을 구분하였습니다. 중생할 때 생명의 부여가 나타나고, 그것을 받은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성령 침례를 받을 때에는 능력이 부여되며, 그것을 받는 자는 봉사에 적합하게 됩니다. 토레이는 성령 침례, 성령 충만, 성령의 은사, 성령을 받음,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받음 등은 다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것으로 서로 통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일생을 통해 웨슬리는, 신앙생활의 목표는 칭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그의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성화의 완전에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참된 신앙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해 중생을 거쳐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인류가 새롭게 창조되는 성화와 완전, 즉 신성으로 충만해지는 그리스도인의 장성한 분량인 성숙에까지 진보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화와 그 목표인 완전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 속에 회복하여 참 인간성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의 점진적인 과정에 있어서 성령은 끊임없이 현존하심으로써 그의 은혜를 통해 충만한 구원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성화와 관련하여 성령의 특별한 사역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목적을 위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라고 웨슬리는 말합니다. 웨슬리의 성령 이해는 그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첫째, 현대 기독교 복음주의 운동의 진정한 뿌리; 둘째, (신학적으로) 종교개혁의 완성자; 셋째, 19세기 미국 대부흥운동의 모체; 넷째, 20세기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토양 등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③ 찰스 피니의 성령 충만 사건

피니(1792-1875)는 제 2 대각성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피니를 통한 각성 운동은 자신의 영적 회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회심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적으로 믿었으나, 회심 후에는 성경 말씀을 지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821년 10월 10일, 그는 자신이 근무하는 법률 사무소에서 환상 가운데 빛으로 임재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나는 주님의 발 앞에 쓰러져서 나의 영혼을 주님에게 쏟아 놓았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울면서 목메인 소리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회개를 다하였다. 나는 주님의 두 발을 나의 눈물로 온통 다 적시어 놓았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영적 체험을 한 후, 피니의 복음전도 사역은 화산처럼 폭발하였습니다. 피니가 미국의 소돔이라는 어느 타락한 마을에서 집회를 시작하고 1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사방팔방으로 앉은 자리에서 넘어지면서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피니가 뉴욕 방직공장을 견학하는 동안 일하던 한 여직공이 피니가 다가가자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푹 쓰러졌습니다. 그 여직공이 눈물로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으며, 그 순간 마치 화약이 폭발하듯 그 방에서 일하던 모든 사람들이 통회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공장 주인은 ‘공장 일보다 영혼 구원의 일이 더 중요하다’라고 외치면서 그 날로 공장 문을 닫고 피니를 초청하여 공장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사장은 모든 직공들을 참석하게 했으며, 며칠이 지나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 모든 직공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자 1826년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동안 유티카 지방에서 부흥회를 통해 회심한 사람들은 그 노회 내에 3,000명에 달했습니다. 많은 법관들, 변호사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각성 운동에 참가하였습니다.

피니는 뉴욕에서 7년 동안 대형 집회를 가졌습니다. 피니가 말씀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뉴욕의 롬(Rome)에서 500명, 유티카에서 500명, 주변 지역 교회에서 1,000명이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피니는 3,000명을 수용하는 한 독일계 교회에서 집회를 계속했습니다. 그 집회에서도 기적을 동반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미국 뉴잉글랜드 전역에 부흥이 일어났으며, 부흥이 절정에 달했을 때 일 년에 100,000명의 개종자(改宗者)가 생겼습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거짓 성령의 역사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음의 성경절은 거짓 영의 역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4,15).

사탄도 일종의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짓 영의 역사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으며, 그것이 마치 참 성령의 역사인 것처럼 가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에 대한 정확하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거짓 영의 역사를 가려낼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제 거짓 영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그 실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 충만의 삶 : 성경적 의미와 실천 방안

성령 충만은 많은 신앙인들이 열망하는 상태입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고양이나 일시적인 체험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뜻합니다. 

성령 충만의 의미와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22-23에 따르면,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 열매들은 성령 충만의 결과로 나타나는 삶의 변화들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사랑, 희락, 화평,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래 참음, 자비, 양선, 그리고 자신에 대한 관계에서 충성, 온유, 절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 사랑, 희락, 화평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그 사랑을 통해 기쁨과 평화를 누립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평온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상태입니다.

사람과의 관계 :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성령 충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오랫동안 참을 수 있는 인내와 자비로움, 그리고 선행을 베푸는 삶이 이어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제 삶에서 실천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에 대한 관계 : 충성, 온유, 절제

자신에 대한 성령의 열매는 충성, 온유, 절제로 나타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에 충실하며, 온유한 마음으로 절제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는 자기 통제와 자아 훈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역사들이 언급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이러한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게 합니다. 홍해를 건너는 기적,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아나게 하는 역사 등이 그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성령 충만한 삶을 통해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 충만의 지속 방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성령 충만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5:16-18에서는 세상에 속지 않고 성령 충만함을 유지할 것을 권고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며,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지속적인 기도와 말씀 묵상

에베소서 6:8-20에서는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할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마음에 새기며(시 119:11),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엡 4:25-30). 이는 꾸준한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산 제사를 드리는 삶

로마서 12:1-2에서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릴 것을 권고합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이러한 헌신과 희생을 통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의한 믿음

요한복음 14:21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령에 의해 이루어지며, 성령이 아니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한 삶은 진정한 믿음의 삶이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삶입니다.

결론: 성령 충만의 기도와 실천

성령 충만을 위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새벽 기도나 수요예배, 금요 철야를 통해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기도는 하나님의 비전을 찾는 것이며, 이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통해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비와 선행을 베풀며, 자신에 대한 충성과 절제를 유지하는 삶입니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기도와 말씀 묵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영광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갈라디아 5:22-23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 충만하면 나오는 9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사랑, 희락, 화평) 사람,(오래 참음, 자비, 양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열매입니다.(온유, 충성, 절제) 성령 충만은 예수의 가르침에 열매를 맺은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역사가 사실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거나 예배드릴 때 말씀으로, 구원으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보좌의 능력이 내게 임하면 하나님 나라와 오직의 7미션, 땅끝,(전도 문) 나의 237과 이면계약, 미래가 오고, 재림 주가 보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오직 성령의 역사가 베드로와(행 2:14-21, 17-18, 3:1-12, 벧전 2:9)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행 9:15, 11:25-26, 18:1-4) 브리스가 부부는 요한의 세례만 받은 아볼로에게 성령 세례를 알려 주었습니다.(행 18:24-28)

1. 성령 충만의 결과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히 11:1)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히 11:29-30)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실제 다른 사람들이 살아나고 증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열매로 나라와 불과 칼, 죽음을 이기고,(히 11:33-35)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주의 영으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고후 3:18)

2. 제대로 된 것은 지속
성령의 충만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세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엡 5:16-18)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엡 6:8-20)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행 17:11)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시 119:11)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며(엡 4:25-30) 악을 품지 말고,(시 66:18) 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롬 12:1-2)

3. 성령의 역사에 의한 믿음(요 14:21)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증거가 있게 하셔서 나를 살리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증인이 되어 세상을 정복하고 주의 영광을 보게 하옵소서. 세상에 속지 말고 산 제사를 드려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파트리스교회 유투브 온라인 방송 / YouTube Patris Church(불낙지교회)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Patris+Church

: 불신자(不信者)를 주님 앞으로
: 낙심한 자(落心者)를 주님 앞으로
: 지체하는 자(遲滯者)를 주님 앞으로

4151. 성령 - 프뉴마(πνεῦμα)

πνεῦμα, ατος, τό 

1. 불기,  2. 바람,  3. 숨 내쉬기
발음 / 프뉴마(pnĕnuma)
어원/ 4154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성령(마 4:1, 막 1:10, 눅 2:27), 심령(마 5:3, 눅 1:17), 귀신(마 8:16, 눅 4:36, 요 16:18), 마음(마 26:41, 막 8:12),
영혼(마 27:50, 눅 23:46, 요 19:30), 중심(막 2:8), 하나님의 말씀(행 18: 5), 영(눅 24:37,39, 엡 1:17), 빛(엡 5:9), 한마음(빌 1:27),
기운(살후 2:8), 바람(히 1:7), 생(계 11:11, 13:15)
신약 성경 / 379회 사용

* 4154. 불다 - 프네오(πνέω)

1. 불다,  2. 숨을 쉬다,  3. 마태복음 7:25
발음 / 프네오(pnĕō)
관련 성경 / 불다(마 7:25, 요 3:8, 계 7:1).
[명] 바람(행 27:40)
신약 성경 / 7회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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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성서연구

[개역개정판](1998)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개역한글판](1961) “...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우리말 번역에서는 [개정]만을 제외한 [개역한글판], [공동번역], [새번역] 등이 모두 “성령을 선물로” 받는 것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선물”이라고 하면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 같다.  
“성령을 선물로”라고 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 

영어 번역을 찾아보니까, 영어 번역들끼리도 일치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NIV “성령 聖靈의 선물” the gift of the Holy Spirit.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선물 곧 성령을 받는다.”는 번역들도 있습니다. “....and you will receive God's gift, the Holy Spirit.”(TEV. 이 밖에 BBE, CEV 등도 유사한 이해를 반영합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설교도 그렇게 하곤 했는데, 이렇게 서로 다른 번역들을 보면서 혼돈이 옵니다. 

그리스어 원어를 봤는데요, “선물” ton dorean 앞에 붙은 관사 ‘톤’ ton은 목적격으로 분해가 되어 있고요, “성령 tou hagiou pneumatos” 앞에 붙은 관사 tou는 "소유격"으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the gift of the Holy Spirit”라고 번역한 대다수의 영어 번역들과 우리말 [개역개정판]의 “성령의 선물”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개역한글판] [공동번역] [새번역]처럼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라고 한 번역도 맞는 것 같고 하여 많이 헷갈립니다.

체언 뒤에 붙는 격조사 “...의”의 다양한 기능에 미처 착안하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이것은 꼭 소유 관계만이 아닙니다. 

“성령의 선물”이라고 하는 그리스어 명사구를 TEV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곧 성령”으로 번역하였습니다. 

TEV는 그리스어 본문의 문법형식보다는 그것이 영어로 번역될 때 전달되는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려 한 번역입니다.

그리스어 본문의 문법형식을 그대로 옮겨놓으면 “성령의 선물”이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문자대로 번역해 놓으면 성령께서 무슨 선물을 주시는 것인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문자대로 “성령의 선물”로 번역된 그리스어 본문 ten dorean tou hagiou pneumatos에서 tou hagiou pneumatos는 여기에서는 “성령의 선물을”이라고 하는 단순 소유격이 아니라 “선물”과 “성령”을 동격 同格으로 나타내는 병렬소유격(竝列所有格, a genitive of apposition)입니다.

영어에서도 이런 비슷한 예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치 “of”가 동격 관계인 “…라(고 하)는”, “…인〔한〕”, “…의” 등이 그러합니다. 

the city of Seoul은 “서울(이라는) 시 市”이고, the name of Jones는 “존스라는 이름”이고, the five of us는 “우리 다섯 사람”이라는 말이고, the crime of murder는 “살인(이라는) 죄”를 뜻하지요. 

그리스어 “성령의 선물”은 “선물 곧 성령” “성령 선물”입니다. 

[개역], [공역] [새번역] 등은 의미를 옮기고, [개정]은 문법 형식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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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가리키는 7 가지 상징들

성경에는 성령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들이 있다. 

구약에서는 성령은 여호와의 신으로 일컬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땅에서 그 거룩한 구속사역을 마치신 후 아버지께로 가고 그를 대신해서 성령이 다른 보혜사로서 이제 각 성도의 마음에 친히 거하고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 살고 있다. 
신약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지시어들중 중요한 것 7개를 여기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바람 :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이고 헬라어로 프뉴마이다. 이 둘다 일차적으로는 바람 혹은 호흡이란 뜻이다. 그러니 바람이란 말은 성령이란 단어가 가지는 원래 의미에 가장 가까운 상징 내지는 지시어일 것이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바람처럼 오시고 호흡처럼 내주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장 8절),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 20장 21-22절)

바람은 성령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역사를 생각하게 해준다.

2. 불 : 

불은 성령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교회에서 아주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성령의 불이라고 말이다. 이는 성령의 세례와 관계가 크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데 이것을 요한은 자신이 주는 물세례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주는 성령과 불의 세례라고 말한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3장 11절)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

불은 우리의 죄를 태우고 불꽃이 일어나듯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사로 뜨겁게 해주는 모양을 상기시킨다.

특히 위에 바람과 불 두가지는 성령이 처음으로 이 땅에 성도들 가운데 보혜사로 임하실 때 동반된 현상이다.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장 1-4절)

3. 기름 : 

기름도 성령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하나님의 성신의 임재는 구약에서 종종 기음부음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르심이나 보내심을 받는 사람은 기르부음의 절차가 뒤따른다. 즉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에게 자원하는 심령과 지혜를 주어 그 일을 거룩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수행하는 표라고 이해된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 직접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징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사도행전 10장 38절),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고린도후서 1장 21절),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한일서 2장 20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이서 2장 27절)

4. 물 : 

물은 세례의 도구이다. 세례 받을 때에 우리는 물세례를 받고 동시에 성령 세례도 받게 된다. 반드시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할수는 없어도 하여튼 우리가 받는 물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세례가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 세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물세례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도 없고 그리스도인으로 불려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장 9절). 기름이 거룩함을 말한다면 물은 깨끗함 내지는 정결함을 말한다고 볼수 있다. 또 갈망과 및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힘이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한복음 7장 37-39절)

5. 인 : 

도장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이 우리 구원의 확실한 보장이 된다는 뜻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듯이 하나님이 우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구원되었다는 증거로 성령으로 도장을 찍었다. 인치다는 도장을 찍고 밀봉을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목자들이 자기 양을 표시하기 위해서 불로 지진 도장을 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에게 인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확증한다. 이는 바로 성령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구원의 사역이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장 27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1장 22절),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장 13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장 30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디모데 2장 19절)

그러므로 인침은 확실한 보증을 뜻한다.

그러기에 배신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가서 8장 6-7절)

6. 검(칼) : 

성도가 가진 유일한 공격용 무기이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전신갑주가 다 방어용이면 유일하게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가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사용하는 공격용 무기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사단에게 세번 시험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즉 성령의 검으로 물리치신 것이다. 무사가 칼다루는데 능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장 12절)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장 10-17절)

성경 말씀은 성령이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디모데전서 4장 1절),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히브리서 3장 7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브리서 9장 8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한일서 5장 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2장 29절)

성령은 친히 말씀하시고 증거하신다. 그래서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공격을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공격용 무기가 된다.

7. 비둘기 :

비둘기는 온유하고 평화로운 동물로 이해되어 평화의 상징으로 온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태복음 3장 16절),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누가복음 3장 22절) 이때 성령은 창세기 1장에서 혼돈의 흑암 중에 수면위를 운행하는 성령의 모습을 생각나게 해준다. 날개를 양쪽으로 펴고 품는 듯 하늘을 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비둘기는 순전함 내지는 온유함의 상징이다. 그러기에 예수도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장 16절)고 말한다. 비둘기 같이 온유하고 오래참고 사랑과 자비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성품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말이다.

우리는 위에서 성령의 생각나게 하는 성경의 중요한 표현을 살펴보았다. 
이는 모두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말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전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각자 혹은 교회로서 사회에서 행해야 하는 삶의 자세를 지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알수 없는 능력을 입어 불로 죄를 태우고, 물로 깨끗하게 씻어 정결하게 되고, 기름으로 거룩하게 바르고 하나님의 확실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영적 전투를 하되 항상 사랑의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전에 말한 성도의 길에 도사리고 있는 12가지 덫을 피해갈 수 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16-18),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13)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갈라디아서 5;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 것"(갈라디아서 5:25)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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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넣자 죽은 돼지 심장이 다시 뛰었다…죽음의 정의 바뀔까


일정 시간 이상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을까.
수천 년간 인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러나 이제 답변이 바뀌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연구진이 죽은 지 한 시간 지난 돼지의 심장과 간 등을 되살리는 데 성공하면서다.

사후 장기 이식 가능성을 대폭 높이는 획기적 연구이자 과학 진보를 통한 생명 연장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순간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기존의 관념은 더욱 모호해지게 됐다.
생명의 정의를 둘러싼 윤리 논쟁도 점차 뜨거워질 전망이다.

사망 6시간 뒤 장기 기능 회복

3일(현지시간) 네나드 세스탄 예일대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죽은 돼지의 주요 장기 기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영양분 △항염증제 △세포사 예방제 △신경차단제 △인공 헤모글로빈 △돼지 피 등 13가지 물질을 섞어 만든 ‘오르간엑스(OrganEX)’라는 특수용액을 목숨을 잃은 지 한 시간 지난 돼지 혈관에 투여했다.

6시간 뒤 심장이 다시 뛰고 간에선 알부민(혈장 단백질의 구성성분)이 생성되며 신진대사를 시작했다.
신장과 뇌 등 주요 기관 세포도 살아났다.
이후 연구진이 이 돼지를 해부해 검사하자 실제 장기 일부 기능이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오르간엑스 투입 대신 체외막산소공급장치(에크모) 치료만 한 대조군 돼지들이 ‘사체’처럼 뻣뻣해지고 자줏빛 반점이 생긴 것과는 대조를 보였다.

논문 공동저자인 데이비드 안드리예비치 교수는 “건강한 장기와 오르간엑스 기술로 치료한 장기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다만 돼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르간엑스에 포함된 신경 차단제가 뇌 신경 활성화를 막았기 때문이다.
실험 과정에서 돼지 머리와 목 부위 근육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연구진은 뇌 신경 활동이 아닌 척수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외부 윤리자문 및 예일대 동물보호위원회가 실험 전 내건 조건은 오르간엑스 관류가 6시간 뒤 중지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만일 실험이 계속됐다면 죽은 돼지가 생명 징후를 얼마나 오랜 기간 유지했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르간엑스 기술을 사용해 죽은 돼지의 장기와 세포를 회복시키는 과정을 그린 그림. 예일대 홈페이지 캡처


죽음은 가역적? 비가역적?

이번 연구는 장기 이식 가능성을 대폭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이 숨진 뒤에도 장기를 지금보다 더 오래 양호한 상태로 보전한 뒤,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까닭이다.
연구진은 “사람에게 (기술을) 적용하는 것은 한참 먼 얘기”라면서도 향후 되살린 장기를 다른 생체에 이식해 기능하게 할 수 있는지, 살아 있는 동물 체내에서 손상된 심장이나 뇌 등을 복구시킬 수 있는지 등을 실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리 논쟁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죽음의 기준과 시점이 지금보다 더 모호해지는 탓이다.
과거 심폐소생술(CPR)과 인공호흡기가 처음 세상에 나타났을 때와 유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외신들은 “우리가 죽음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을 뒤흔든다(미 CNN 방송)”거나 “죽음의 본질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남기게 됐다(영국 가디언)”고 우려했다.

철학자인 벤저민 커티스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 박사는 “죽음은 ‘비가역성’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에 업데이트가 필요하게 됐다”며 “현재의 정의가 유지된다면 ‘아직 죽지 않은’ 시체가 누워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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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7가지 특성












1. 진리의 영이시다
그 분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고 실수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요한복음 14:17


2. 지혜의 성령이시다
그분은 실제 삶에 성서적 지식을 적용하는 분별력과 기술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17


3. 능력의 성령이시다
영적 사역은 영적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분은 신성한 능력을 부여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4. 거룩함의 성령이시다
그분은 초자연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해주신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4


5. 믿음의 영이시다
진리를 우리에게 확신시켜서 믿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깨워주신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고린도후서 4:13


6. 약속의 성령이시다
진리를 우리에게 확신시켜서 믿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에 믿음을 일깨워주신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13


7. 사랑의 성령이시다
그 분은 우리가 그간 경험하지 못한 초자연적인 사랑을 공급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출처 : 존 반 겔더랜(John Van Gelderen)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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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禮拜)

마태복음 15:8-9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은 교회의 예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순결한 믿음을 갖추도록 양육해 나갔다.
칼빈과 종교개혁자들의 목양사역은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던 자들과 함께 정치적이며, 민중적인 열망을 성취하려 했던 운동이 아니었다. 종교개혁은 중세 말기 교회 안에서 자행되던 부패와 오류를 시정하려는 신학적이며, 신앙적인 회복 운동이었다.
윤리적 갱신이라고 해석한다거나, 반항자들의 분파운동으로 격하시켜서는 안 된다.

종교개혁자들은 잃어버린 복음을 성경에 기록된 대로 회복하고자 바른 교리를 제시했다.
루터는 성경을 번역했고, 츠빙글리는 강해설교를 전면적으로 실시했으며, 칼빈은 일관된 신학을 담아서 성경주석을 남겼다.

특히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본질적인 성경해석을 제시하면서, 구원의 길을 왜곡하고 있던 중세 말기 로마 가톨릭의 교리들에 대해서 신학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루터에게서 시작된 면죄부에 대한 이의제기, 츠빙글리가 폐지한 미사, 칼빈이 제시한 새로운 예배의 내용들이 유럽 각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특히 영국에서 일어난 박해를 피하여 유럽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은 성경적 예배의 내용들을 확정하는데 힘겨운 투쟁을 펼쳐 나갔다.
전면적인 예배의 개혁을 시도하던 종교개혁자들과 성도들은 교황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견뎌야 했다.

중세 말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피터 롬바르드(Peter Rombard, 1090-1160)가 초대 교부들의 글에서 임의로 편집한 『명제집』(the Sentences)을 지침으로 삼았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담고 있는 숫자가 일곱이며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를 안식하셨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롬바르드는 하나님의 선물들을 완전하게 제시하는 일곱 가지 성례들을 고안해 냈다.
이로 인해서 예배의 초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없어지고, 자기 자신의 공로를 쌓아나가면서 스스로 선행을 의존하려는 종교인들의 집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히 고해성사와 미사, 화체설이라는 신비적인 성만찬 교리 등은 성경보다 더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교황과 전통이라는 탈을 쓰고서 무지과 타락의 늪에 빠져들었다.

루터가 건강 악화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던 그의 노년기에, 이미 스위스에서는 츠빙글리가 카펠 전투에서 전사했지만, 젊은 목회자요 신학자인 칼빈이 1536년 여름부터 제네바에서 설교하면서, 성경적인 예배를 정착시켰다.

칼빈은 당시 로마 가톨릭에서는 그저 헛된 종교적인 행위를 반복하고 있음을 일일이 열거하였다.

두 손을 합장하는 것, 성만찬을 받기 위해서 무릎을 꿇는 것, 제단에 나와서 무릎을 꿇는 것, 제단의 귀퉁이에 입맞춤을 하여 존경을 표현하는 것, 손으로 십자가 성호를 긋는 것, 두 손을 높이 들어서 크게 펼치면서 외적으로 신앙심을 드러내는 행동, 양손을 접어서 살아있는 자를 언급하며 높이는 것, 손으로 진행자를 향해서 높이는 것, 성물이나 거룩하다는 제단에 펼쳐진 헝겊을 손을 닦는 것, 두 손을 높이 올리는 것, 가슴을 한 번이나 세 번 때리는 것, 성작 혹은 잔을 덮었던 것을 열어놓는 일, 성만찬에 제공되는 빵에다가 세 번 성호를 긋는 것, 제병을 담은 그릇의 밑바닥이나 중간이나 또는 윗부분에 손을 대거나 입과 두 눈을 비벼대는 것, 등등.

어떤 이들은 이런 식으로 예배에 참여한 기독교인의 외적 행위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예배의 본질을 벗어나서, 그저 각 사람의 지극히 감상적이며, 주관적인 행위들로 마치 공로를 쌓아가도록 부추기는 것과 내용이 없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몸을 움직이는 갖가지 종교적 제스처에 대해서 무심히 넘어갈 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행위들과 각종의 예식들에 참여하는 자들의 제스처를 철저히 금지시켰는가? 이런 제단 위에서의 이런 행동들을 위선적으로 수백 번 실행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을 유효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배는 그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신부들은 외적인 것들을 시행하는 일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으나, 칼빈은 성경에서 가르친 예배의 “본질적인 것”에 대해 차별화된 안목을 제시했다.

1. 개신교회의 예배 모범을 정립한 칼빈의 제네바

종교개혁 이후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공적으로 드리는 예배의 내용들은 칼빈의 제네바 교회로부터 확산된 것이다. 칼빈은 제네바의 목회자로 부름을 받아서, 설교의 사역에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도 가장 성경적인 예배의 구성요소들을 회복해냈다. 로마 가톨릭의 미사와 성례를 철저히 폐지한 후,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그리고 초대교부들의 근거에 의거하여, 공적인 예배의 내용들을 개혁하였다. 이러한 노력들은 단순히 보이는 예배의 회복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칼빈이 성경적 신학 사상 중심축으로 하는 종합적인 교리체계가 뒷받침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칼빈이 지속적으로 참된 예배의 회복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신앙과 단순한 성경적인 신학을 확고히 정립하였기에 가능하였던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칼빈이 제네바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에 종교개혁의 최전선에서 나서서 참된 예배의 구성과 외적인 예식들을 바꾸는데 힘썼다는 사실들이다. 로마 가톨릭과의 민감한 대립적 상황에서 각종 예배에 관련한 문제들이 발생할 때마다, 칼빈은 개혁주의 진영을 대표하여 정확한 가장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필자는 오늘날 우리 개신교회의 예배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들과 그 원천에 관련한 탐구를 하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칼빈과 청교도 지도자들이 주고 받은 편지의 내용을 통해서, 예배의 내용들이 정리되어가던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칼빈이 단지 하나의 도시, 제네바에 있는 교회만을 위한 목회자로 그친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치고 있던 당시 유럽 지역의 거의 모든 지역들을 지도하면서, 종교개혁의 예배 원리와 목회적 적용을 위해서 헌신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루터와 츠빙글리가 서거한 후,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서 유럽 여러 지역들의 문제들에 대해서 칼빈이 자문하고 조언하였고, 그의 결정적인 기여로 인해서 가장 성경적인 예배내용들이 정착되었다. 특히 칼빈이 남긴 가장 결정적으로 중요한 공헌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청교도들의 교회 개혁에 있어서 원천이자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메리 여왕(1553-58 재위)이 즉위한 후 로마 가톨릭으로 교회체제를 완전히 재구성하려 하자, 이를 거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녀의 박해를 피해서 바다를 건너서 유럽 대륙으로 피신을 갔던 청교도들은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로마 가톨릭의 예식들을 거부하다가 수많은 지도자들이 순교했고, 살아남은 지도자들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이미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수레바퀴를 전진시켜온 지도자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1554년 6월 2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건너갔다. 이들은 로마 교회의 미사와 각종 예식들, 성공회의 타협적인 예배 내용들을 전면 거부하였다. 오직 성경 말씀에 따라서 자신들의 선한 양심을 다바쳐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예배를 드리고자 노력했다.

독일에서는 이미 루터파의 개혁운동이 확산되었기에, 다양한 개신교회의 모임들을 허용하고 있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시 당국에서는 프랑스 난민교회도 허가해 줘서 정기적으로 예배당(The Church of the White Ladies)에서 집회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잉글랜드에서 온 청교도들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루터파 교회들이 자신들이 추구해온 예배 방식과 상당히 다른 것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곧바로 발견하게 되었다.
잉글랜드에서 건너 온 피난민들 중에는 성공회 국가교회체제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청교도 신앙을 가진 지도자들과의 논쟁이 점차 가열되었다.
잉글랜드 피난민들이 잠정적으로 채택한 주일 공예배의 내용들은 매우 단순했다:

성경 본문의 낭독과 권고
죄의 고백 (칼빈주의적 기도–성공회 예식서에서 나온 것과는 다름)
시편 찬송-평범한 곡조
성령께 대한 기도
(성경 봉독이 이어지는) 설교
일반 기도
사도신경
시편 찬송
축도

위에 예배의 순서는 다분히 칼빈의 제네바 교회 주일예배의 내용과 비슷하다.
일부는 성공회의 기도서에 나오는 예배 순서들과 거의 비슷하지만, 성만찬과 세례식의 내용은 상당히 차이가 났다.
당시에는 성만찬에 대한 신학이 달라서, 예배의 중요하 내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영국 성공회에서는 가톨릭의 ‘화채설’과 루터파는 ‘공재설’ 중에서 중간입장을 채용하고 있었고, 청교도들은 칼빈의 ‘영적 임재설’을 따르고자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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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聖靈)은 기독교 삼위일체 교리에서 하나님을 이루는 세 위격 중 하나이며, 거룩한 영혼을 뜻합니다. 
성령은 단순한 힘이나 능력이 아닌, 지각, 의지, 감정을 가진 인격체로서 신자 안에 거하며, 진리를 가르치고, 위로하며, 인도하고, 은사를 주어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돕습니다. 

성령의 특징
  • 인격체 :
    성령은 자의식이 있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며, 의지와 감정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성령의 역할
  • 진리 선포 및 인도 :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리며, 성도를 진리 가운데 인도합니다. 

  • 내주와 위로 :
    성도는 성령을 영원히 마음에 소유하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하고, 고난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 은사 부여 :
    영적인 사역을 위한 에너지를 주고, 성경의 지혜를 실제 삶에 적용하는 분별력을 부여하며, 다양한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냅니다. 

  • 생명의 창조 및 유지 :
    생명을 주고, 혼돈에서 질서를, 어둠에서 빛을 창조하는 능력이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
    • 성령님은 '님'으로 불러야 :
      인격체이시기에, 성도들이 대화하거나 기도할 때 존칭을 사용하여 '성령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 말씀과 성령의 관계 :
    성령은 말씀의 형상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성령 충만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 인도에 대한 순종 :
    성령은 스스로 역사하시며, 인간이 강제로 임하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성령의 인도에 인격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하나님과 동일 :
    성령은 성부, 성자와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서,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 '보혜사'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로, 곁에서 대변하고 돕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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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신학적으로 보자면, 성령은 사랑과 동의어이다. 사랑을 상징한다던가 사랑을 담당하는게 아니라, 사랑이 곧 성령이다. 같은 원리로, 삼위일체론에서 성부는 '근원', 성자는 '말씀'[3]으로 설명된다. 즉 삼위일체론에 의하면, 근원과 말씀과 사랑은 동일한 실체의 다른 페르소나가 된다.

    예수가 승천한 이후에 성령은 교회와 함께 하며 각 신자들의 신앙을 공고히 하고 미덕을 가르치며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여서 열매를 맺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성령은 믿음을 사람에게 주고[4] 회개하는 것을[5] 도우며, 때에 따라 특별한 감동이나 깨달음 등을 준다고 한다. 기도 등을 통해 성령이 충만해질수록 죄의 본능이 사그러들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잡힌 삶을 살게 된다.[6]

    성경 내에서 본격적으로 성령이 거론되는 것은 예수가 승천하면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이제 성령을 보내 주겠다'고 말한 이후이며 승천 이후 성령의 역사(役事)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로는 사도행전 2장의 마르코의 다락방 사건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 그리스도적 관점에서는 구약시대에도 성령은 있었지만 예언자를 통하여 말하는 등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감동을 주는 방식으로 나타났고,[7] 신약 시대에는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육체 안에 머문다고 설명한다. 구약 시대에는 일반적인 성도들에게 성령의 인도가 없었기 때문에 율법과 엄중한 심판을 통한 공포심으로 사람들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렀던 것이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양심과 율법적 지식에 따른 행위를, 단순히 선을 행할 수 있게만 하는 믿음만 가지고 행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같은 구약시대 인물들은 안에 성령이 늘 내주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하느님을 의지하면, 하느님이 짐승의 피로 그 사람의 죄를 덮어 그 사람의 영을 깨끗하게 해줘서[8] 그 사람은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짐승의 피를 통한 하느님의 능력으로써 믿음의 삶을 살았었다는 주장 등이 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니케아 신경 또는 사도신경에서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과,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함께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는 참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개신교 교파인 장로회에서도 해당 교파의 신앙고백인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상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순간으로 보기도 한다.

    성령을 받는 것과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기본적으로 성령의 역할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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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이란 ?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성령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은사를 갈구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바라며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은 성령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 일이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 안에서 흔히 성령의 역사라고 불리는 거짓 성령의 부흥과 역사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함을 받을 길은, 또한 성령을 빙자한 광신과 초자연적인 현시와 기만에 빠지지 않는 길은, 바로 성령에 대하여 기록된 성경의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뿐이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성령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성령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헤매기 전에,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이 교회 저 교회를 두드리기 전에, 성령이 무엇이며 누구인가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알아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인간의 가르침이 아닌 오직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연구해 보도록 하자. 성령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알고 성령을 올바로 구할 때 우리의 신앙에 성령의 큰 역사와 부흥이 생길 것이다.

    1. 성령이 무엇인가?

    성령이 무엇인가, 또는 성령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궁금증은 날로 깊어 가고 있다. 성령은 어떤 개체를 가지고 있는 분일까, 아니면, 성령은 다만 어떤 기운이나 힘(force)에 불과한 것일까? 성경은 성령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 나오는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 또는 추상적인 "힘"이나 "기운"이 아니고, 인격적인 존재요, 능력을 소유하고 개성을 가지신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개성"이란 용어의 개념은 지력, 감정, 의지의 세 요소를 소유한 인격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경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1) 성령은 인격적인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

    지력을 소유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이사야 11장 2절 -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감정을 소유하고 있다

    로마서 8장 26절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로마서 15장 30절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의지를 소유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11절 -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사도행전 16장 6~7절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2) 인격적인 활동을 하신다

    가르치신다

    요한복음 14장 26절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증거하신다

    요한복음 15장 26절 -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중보하신다

    로마서 8장 26절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다

    디모데전서 4장 1절 -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명령하신다

    사도행전 13장 2절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인격적인 취급을 받으신다

    모욕을 당하신다

    히브리서 10장 29절 -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속임을 당하신다

    사도행전 5장 3절 -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훼방을 당하신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근심 하신다

    에베소서 4장 30절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4) 인격적인 신분으로 소개되었다

    증인(Witness)이 되신다

    히브리서 10장 15절 -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영문성경(KJV)에는 "성령은 또한 우리에게 한 증인이 되신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칭대명사로 지칭되어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서 성령을 묘사하는 여러 경우에 남성 대명사가 사용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요한복음 15장 26절 -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6장 7, 8절 -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요한복음 16장 13, 14절 -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상의 모든 증거를 살펴볼 때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이나 기운이 아니라, 무엇을 알고, 느끼고, 행하는 인격적인 존재자요, 개성을 가지신 제3위의 하나님이심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2. 성령은 누구인가? - 약속하신 보혜사

    요한복음 14장 16절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한복음 14장 18절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성령님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이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육체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과 동등이셨던 예수께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 살면서 가르치시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보여 주시며, 또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 사람의 육신을 취하시고 이 땅에 임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예수께서 모든 사업을 다 이루신 후 다시 하늘로 승천하시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예수께서는 그분 없이 홀로 남겨지는 제자들을 위하여 놀랍고도 위대한 한가지 선물을 약속해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 대신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고, 함께 계실 보혜사 성령이었던 것이다.

    "보혜사"란 말은 영어로 "Comforter"(위로자)이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 즉 "곁에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육신을 쓰시고 임하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항상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같이 계실 수가 없으셨고, 또한 이제는 하늘로 다시 돌아가시기 때문에 그들을 직접적으로 돌보거나 가르치실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 주심으로써,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는 놀라운 약속을 주신 것이었다.

    예수께서 하늘로 다시 돌아가셨지만, 주님의 약속대로 그들은 홀로 버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욱더 놀라운 영적 체험과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요 16:7). 이 약속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약속이다. 성령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가운데서 가장 크고 좋은 선물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아도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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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님의 내주란 어떤 것입니까?

    성령님의 내주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몸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행위입니다. 
    구약에서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임하셨다가 다시 돌아가셨으며, 그들에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시지는 않았습니다(삿 15:14; 대상 12:18; 시 51:11; 겔 11:5). 
    예수님은 진리의 영이 제자들의 삶 속에서 하실 새로운 역할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7).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이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안에는 삼위 일체의 세 번째 인격이신 성령님이 함께 거하신다고 말합니다.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할 때 성령님은 그 사람에게 그분의 본성인 영생 즉,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며(딛 3:5; 벧후 1:4), 영적으로 그와 함께 거하십니다. 
    믿는 자의 몸은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에서 성령님의 내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전이라는 단어는 구약의 성막에서 내부 성소인 지성소를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곳에서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간 대제사장이 구름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속죄 일에 대제사장은 죽임 당한 동물의 피를 언약궤 아래 뿌렸습니다. 
    이 특별한 날에 하나님은 제사장과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에는 유대교 성전이 없으며 더 이상 동물을 희생하는 제사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성화되어 성령 하나님이 내주하시는 성소가 되었습니다(엡 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거처가 됩니다. 
    사실 성경은 그리스도(골 1:27)와 아버지 하나님(요일 4:15)께서 믿는 자 안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도 삼위일체를 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믿는 자 안에 거하시면 삶이 변화되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1.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죄로 죽은 영혼에게 오셔서 새 생명을 창조하십니다(딛 3:5). 
    이것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1–8에서 말씀하신 거듭남입니다.

    2.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가 주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의 상속자로 그리스도와 같은 상속자임을 확인시켜 주십니다(롬 8:15–17).

    3.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새롭게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보편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2:13에서 말하는 성령 세례입니다.

    4.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들에게 영적인 은사 (섬김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를 주시어 교회에 덕을 세우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효과적으로 주님을 섬기도록 하십니다(고전 12:11).

    5.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가 성경을 이해하고 일상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고전 2:12).

    6.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의 기도를 풍성하게 하고 그를 위해 중재하십니다(롬 8:26–27).

    7.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자신을 내려놓은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며 살아가도록 능력을 주십니다(갈 5:16). 
    성령님은 믿는 자를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롬 8:14).

    8.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의 삶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 새 생명의 증거를 보여주십니다(갈 5:22–23).

    9.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가 죄를 지으면 근심하시며(엡 4:30), 그가 죄를 고백하고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요일 1:9).

    10.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믿는 자를 구속의 날까지 인치시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 주님의 존전에 이르도록 보장하십니다(엡 1:13–14).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면(롬 10:9–13), 성령님은 여러분의 마음에 거하시며 주님을 사랑하고, 더 깊은 관계를 맺으며 섬기도록 온전히 새로운 삶을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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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 훼방 죄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 훼방 죄”**는 매우 엄중하게 다루어지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 본문

    예수님은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셨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 마태복음 12:31

    또한: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 마태복음 12:32

    비슷한 내용은 마가복음 3장과 누가복음 12장에도 나옵니다.


    성령 훼방 죄의 핵심 의미

    성령 훼방 죄는 단순히:

    • 실수로 하나님을 원망한 것
    • 믿음이 흔들린 것
    • 의심한 것
    • 순간적으로 잘못 말한 것

    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적 의미는:

    성령께서 분명히 나타내신 하나님의 역사와 진리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끝까지 거부하고 악한 것으로 규정하는 완고한 상태

    를 가리킵니다.

    즉:

    • 빛을 보고도 어둠이라고 함
    • 하나님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라고 부름
    • 회개를 끝까지 거절함
    • 성령의 증거를 지속적으로 대적함

    입니다.


    왜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가?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은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성령 훼방은: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 자체를 거부하는 상태

    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성령은:

    • 죄를 깨닫게 하시고
    •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 회개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그 성령을 끝까지 거부하면,
    스스로 용서의 길을 닫는 상태가 됩니다.


    중요한 점: 두려워하는 사람은 보통 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다

    많은 신자들이:

    • “혹시 내가 성령 훼방 죄를 지었나?”
    • “내가 용서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그런 두려움과 회개의 마음 자체가 아직 성령의 역사 안에 있다는 증거

    라고 설명합니다.

    성령 훼방 죄의 특징은 오히려:

    • 완고함
    • 지속적 거절
    • 회개 없음
    • 양심의 마비

    에 가깝습니다.


    교파별 이해 차이

    개신교 복음주의

    • 성령의 분명한 역사를 끝까지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죄
    • 지속적 불신앙 상태로 이해

    개혁주의

    • 택함받지 못한 자의 완악한 최종적 배교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함

    오순절/은사주의

    • 성령의 역사와 은사를 악령의 역사라고 지속적으로 정죄하는 태도를 강조

    가톨릭

    • 회개를 끝까지 거부하는 완고함과 연결하여 설명

    관련 성경 구절

    • 히브리서 6:4–6
    • 히브리서 10:26–29
    • 에베소서 4:30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이 구절들은 성령을 거역하는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정리

    성령 훼방 죄란:

    성령께서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진리와 역사를 알고도
    끝까지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대적하는 완악한 상태

    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 회개하고 싶어 하는 마음
    •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마음
    • 죄를 두려워하는 마음

    이 있다면, 그것은 보통 성령께서 여전히 역사하고 계신 증거로 이해됩니다.






    성경은 성령을 무엇이라 하는가

    성경은 “성령”을 단일한 한 이름만으로 부르기보다, 여러 표현과 명칭으로 설명합니다. 각각은 성령의 성품과 사역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표현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창세기 1:2에서 “하나님의 영(רוּחַ אֱלֹהִים, Ruach Elohim)”이 물 위에 운행하신다고 말하며, 성령을 창조와 생명의 근원으로 묘사합니다.

    또 성경은 성령을 **“여호와의 영 / 주의 영”**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표현은 성령이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직접 나타내는 분이라는 뜻입니다(사 61:1).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보혜사”(그리스어 Paraklētos)는 “돕는 자, 변호자, 위로자”라는 뜻으로, 성령의 인격적 사역을 강조합니다(요 14:16, 26).

    또한 성경은 성령을 다음과 같이도 부릅니다:

    • “진리의 영” (요 16:13) —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
    • “그리스도의 영” (롬 8:9) —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분
    • “생명의 영” (롬 8:2) — 영적 생명을 주시는 분
    • “거룩한 영” (Holy Spirit, Holy Spirit) —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분

    정리하면, 성경은 성령을 단순한 “힘”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시며 하나님을 나타내시는 인격적 존재로 다양한 이름을 통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무엇이라 하는가

    성경은 성령을 한 가지 이름으로만 부르지 않고, 여러 표현으로 다양하게 묘사합니다. 각각은 성령의 사역과 성품을 드러내는 이름들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령”(Holy Spirit)이라고 부르며, 이는 하나님의 영이 거룩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성령은 다음과 같이도 불립니다:

    • 하나님의 영 (창 1:2)
      → 창조 사역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영
    • 주의 영 / 여호와의 영 (사 61:1)
      → 하나님의 권능과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
    • 그리스도의 영 (롬 8:9)
      → 그리스도와 연결된 동일한 영
    • 진리의 영 (요 14:17)
      → 진리로 인도하시는 역할 강조
    • 보혜사(파라클레토스) (요 14:16, 26)
      → “돕는 이, 위로자, 변호자”라는 뜻
    • 생명의 영 (롬 8:2)
      → 생명을 주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영

    또한 성경 원어에서는:

    • 히브리어: רוּחַ (루아흐) = 바람, 숨, 영
    • 헬라어: πνεῦμα (프뉴마) = 영, 숨결

    즉 성경은 성령을 Holy Spirit으로 부르면서, 동시에 그분의 다양한 사역에 따라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 보혜사” 등 여러 이름으로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