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6월 23일, 주일) - 마태복음 5장


오늘 읽을 말씀은 마태복음 5장과 잠언 23장 및 레위기 3장입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산상복음(山上福音)' 이라고 합니다.

신앙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주저하게 된다면 산상복음을 읽고 묵상하며 성경적인 결정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5장은 팔복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첫째, 심령의 가난. 

‘프토코이 토 프뉴마티’를 직역하면 ‘영에 있어 가난한 사람들’이다. 구약에서 가난한 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는 오직 하나님의 도움 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 애통함.

애통이란 가슴이 아파 우는 것으로 죄를 슬퍼하는 애통을 말하는 거룩한 아픔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를 위해서는 통회하고 자복하여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상한 심령이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시 52:17). 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우리들 또는 사회의 죄를 보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안타까워하는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이렇게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셋째, 온유. 

헬라어 ‘프라우스’는 gentle, humble, considerate 등의 의미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성품을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마 11:29, 21:5). 모세 또한 그 온유함이 지상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민 12:3).


내 자신 속에 있는 마음의 안정을 평안이라 한다면 타인을 향한 관계 속에서 안정된 모습을 ‘온유’라 하겠습니다. 비판을 받아도 상대방에게 격동하지 않아 정서적으로 안정된 모습으로 감정적으로 굴곡이 심하지 않아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특질을 온유라고 합니다.


온유라는 또 다른 의미는 겸손함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아는 자세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가진 이 겸손한 자세를 인간을 향해서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온유함이라고 하겠습니다.


모세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십니다. 세상에서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하여 마치 온유한 사람은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온유한 사람에게 땅을 기업으로 주십니다(시편 37:11).


넷째, 의에 주리고 목마름.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른 것은 ‘불만족’의 상태를 말합니다. 즉 욕구(needs)가 있는 상태이며 욕구가 있으면 그것이 채워지기 전에는 항상 희구(希求)와 갈망(渴望)이 따릅니다. 채워져야만 안정을 얻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에 대해 이런 갈망을 갖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서 굶주리고 목이 마를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의’를 향하여 영혼이 타는 갈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름답다고 하시며 결국은 배부르게 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결국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욕구에 굶주려 있다가 그것을 만족시킨 후에는 공허함이 따라오지만 의에 주렸다가 그 충족함을 얻은 사람에게는 진정한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긍휼히 여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으면 구원도 없고 생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구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향하여 자주 민망히 여기셨다. 즉 연민(compassion)을 가졌습니다. 긍휼히 여김에서 사랑의 행위가 나오고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보장하신다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 반대의 상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무자비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은 마태복음에서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마 6:12, 14-15, 7:1-2, 18:23-35).


여섯째, 마음의 청결. 

‘카싸로스’는 종교적 순결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부정(不淨)을 제거하여 흠과 점이 없이 정결한 상태를 언급하는데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정결은 그렇게 외적인 또는 의례(儀禮)상의 것이 아니라(마 15:1-20) 마음의 순결입니다. 물론 이것이 완벽한 행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의 청결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정직하고 투명한 진실’을 뜻합니다. 소위 청결을 추구하는 바리새인들을 예수께서 그렇게 싫어하셨던 이유는 그들의 ‘외식’ 즉 위선에 있었기 때문이며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향적 정결’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 ‘마음의 청결’을 언급하실 때 의도하시는 바는 바로 마음의 진실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알현할 수 있는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선자를 보지 않으려 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진실한 자를 만나주십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일곱째, 화평케 함.

‘에이레노포이오스’는 직역하면 ‘평화를 만드는 사람’(peacemaker)을 말합니다. 히브리적 개념으로 설명하면 ‘샬롬’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샬롬은 갈등이 종식되어 편안한 관계에 기초한 안정의 상태입니다. 세상의 대부분의 문제는 갈등에서 오며 갈등 관계에서 샬롬을 창조해낼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종식하여 화목케 하는 일을 담당하셨던 분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샬롬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사회와 사회 사이에 샬롬을 만들어낼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사명이며, 이와 같은 피스메이커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는 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분의 특별한 사랑을 입는 상태를 뜻하며 평화를 만드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처럼 사랑하십니다.


여덟째, 의를 위한 핍박. 

자기가 잘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잘못하면 벌을 받고 고통을 당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며 당연한 도덕적 질서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옳은 것을 추구하다가 반대에 부딪히고 그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런데 억울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다 해서 옳은 것 추구하기를 중단하지 말 것을 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상이 더 크기 때문이며 그런 이를 위해서는 축복이 더 분명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복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48)

- Be perfect, therefore, as your heavenly Father is perfect. 


(기도)

1. 성경적 가치관 위에 미국을 세워주소서!

2. 국민 대통합을 이루어 남북의 평화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3. 뉴욕나사렛교회와 유니티교회에 일군들을 세워 주소서!

4. 왕이 되신 주님만 믿고 따르게 하소서!


뉴욕나사렛교회  이승혁목사

45-05 48Ave

Woodside NY 11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