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成肉身)이란?
독일어 / 멘쉬베아둥(Menschwerdung)
1. 오다 2. 마 8:5 3. ㉠ 히9:12,24,25
Pronunciation [ ĕisĕrchŏmai ]
- Etymology / 미래 εἰσελεύσομαι, 제2부정과거 εἰσῆλθον , 과거 완료분사 εἰσεληλυ- θώς, 1519와 2046에서 유래
-
I. 오다, 가다, 들어가다, 들어오다.
-
1. [장소]
-
a. [도시의 명칭과 함께] 마8:5, 21:10, 막2:1, 11:11, 눅7:1, 행10:24, 23:33.
-
b. [기타 장소] ㉠ [성소 안으로] 히9:12,24,25. ㉡ [성전 안으로] 눅1:9, 계15:8. ㉢ [집 안으로] 마10:12, 12:29, 막7:17, 눅1:40, 8:41, 행11:12, 16:15, 21:8. ㉣ [회당 안으로] 막1:21, 3:1, 눅4:16, 6:6, 행14:1, 18:19, [참조] 약2:2. ㉤ [성 안으로] 마10:11, 27:53, 막1: 45, 눅10:8, 22:10, 행9:6, 14:20. ㉥ [마을 안으로] 막8:26, 눅9:52. ㉦ [관청 안으로] 요18:28, 19:9, [참조]마6:6, 24:38, 눅9:34, 17:27, 요10:1, 18:1, 20:6, 행25:23.
-
c. [일반적으로] 롬 5:12.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하여, 히 10:5.
-
d. [흔히 장소가 언급되지 않지만 문맥상 유추할 수 있음] 마9:25, 막13:15, 눅19:1, 행1:13, 5:7,10, 10:25, 고전14:23, 24.
-
-
2. εἴς τινα
-
a. ~중에 들어가다[군중 속에], 행19:30, εἰς ὑμᾶς, 행20:29.
-
b. ~에게 들어가다[특히 귀신이] 막9: 25, 눅8:30. ㉠ [귀신에 대하여] 막5:12,13, 눅8: 32,33. ㉡ [사탄에 대하여 유다에게] 눅22:3, 요13:27. ㉢ [기타] 눅9:46, 계11:11.
-
-
3. πρός τινα: ~에게 오다, 가다, 막15:43, 행10:3, 11:3, 16:40, 계3:20.
-
4. ἐπί τινα, 행1:21.
-
5. [출발한 장소에 대한 언급과 함께] 마7:13, 19:24, 눅13:24, 18:25, 요10:1,2,9.
-
6. [ὑπὸ τὴν στέγην과 함께] 지붕 아래로 즉 집에 들어가다, 마8:8, 눅7:6.
-
7. [부사 εἰ. ἔσω와 함께] 안쪽으로, 내부로 가다, 마26:58, 22:12, 막14:14, 히6:20.
-
-
II. [비유적으로]
-
1. [사람에 대하여] ~것 안으로 들어가다=~을 나누다, 공유하다, ~을 누리 기에 이르다, 마5:20, 7:21, 19:24, 막9:47, 10:15,23,24, 눅18:17,25, 요3:5.
-
a.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다=그것을 얻다, 마18:8,9, 19:17, 막9:43, 45.
-
b. 안식으로 들어가다, 히3:11,18, 4:1
-
c. 그의 영광으로 들어가다, 눅24:26.
-
d. 시험에 들어가다, 마26:41, 눅22: 40,46
-
e. 은혜 안으로, 마25:21,23.
-
f. 수고 안으로 들어가다=수고의 열매를 누리다, 요4:38.
-
g. [이 용법과 함께 목표가 언급될 필요는 없으나 함축될 수 있는 경우] 마7:13, 23:13, 눅11:52, 롬11:25.
-
-
2. [사물에 대하여] 음식에 대하여, 마15:11, 행11:8, 사상에 대하여, 눅9: 46, 히6:19, 약5:4.
-
-
관련 성경 / 들어가다(마5:20, 눅4:16, 히9:12), 들어오다(마8:8, 눅7:45, 고전14:24), 참여하다(마25:21, 23), 들다(마26:41, 눅22:40,46), 나가다(막10:25), 오다(눅8:41), 일어나다(눅9: 46), 데리다(눅14:23), 돌아오다(눅17:7), 출입하다(행1:21), 이르다(행11:20).
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 하나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 속에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육신은 헬라어로 "로고스(Logos)"가 "육신(Sarx)"이 되었다는 요한복음 1:14에 근거를 둡니다.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음을 강조합니다.
성육신의 교리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육신은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동시에 가지신 두 본성의 신비를 포함합니다.
교회는 이를 "단일 인격의 두 본성"으로 정의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본성을 취했지만, 그의 신성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둘째, 성육신은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에서 구원받을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히브리서 2:14-17).
셋째, 성육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고난을 경험하셨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이해하고 동정하실 수 있는 중보자가 되셨습니다(히브리서 4:15).
또한,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스스로 낮아지셨음을 보여줍니다(빌립보서
2:6-8).
결론적으로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서 구속사적 핵심이며,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데 중요한
교리적 기반이 됩니다.
성경에서 성육신과 관련된 구절들을 추려 정리했습니다.
1.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14은 성육신 교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표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말씀(로고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그는 창조와 구원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성육신을 통해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입으셨지만, 여전히 신성을 가지신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단순히 인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합니다. 헬라어 "스케노오"는 "장막을 치다"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성막을 통해 백성과 함께하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만남의 장소가 되셨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와 고통에 직접 참여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구원의 길을 여셨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는 표현은 성육신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질과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셨음을 말합니다. 그의 은혜와 진리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나타내며, 성육신이야말로 그 영광의 최고 표현임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1:14은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과 가까이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구체적이고도 신비로운 사건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2.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 1:23은 성육신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은 이사야 7:14의 예언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으로,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이 인류 역사 속에 실현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탄생, 즉 성령의 역사로 잉태되셨다는 점에서 성육신의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특성을 강조합니다. 처녀 마리아를 통해 태어나신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으셨지만, 죄로 물들지 않은 완전한 인성을 가지셨습니다. 동시에 그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신성과 인성을 온전히 결합한 존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성육신의 목적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와 고통에 동참하시고, 인간과 함께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은 성육신이 단순한 신학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구원의 역사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스스로 낮아지셨다는 은혜의 표현이며, 성육신을 통해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길을 여신 구세주로 임하셨음을 보여줍니다.
3. 갈라디아서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갈라디아서 4:4-5는 성육신의 목적과 의의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먼저, "때가 차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성되는 정해진 시점에 성육신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섭리 속에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는 표현은 예수님이 초자연적인 탄생으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가리킵니다. 이는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연약함과 고난을 경험하셨지만, 그의 탄생이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암시하며 그의 신성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또한, "율법 아래 나게 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인간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완벽히 순종하셨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죄인들을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라는 구절은 성육신의 구속적 의미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순종은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인간을 율법의 얽매임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완성을 이루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성육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얻게 되었으며,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은혜의 놀라운 표현입니다. 갈라디아서 4:4-5는 성육신이 단순히 역사적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과 사랑이 집약된 신비로운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4. 빌립보서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5. 히브리서 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시믄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6. 이사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 로마서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서 죄를 정하사."
8. 요한일서 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9.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0. 누가복음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니라."
11. 요한복음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12. 히브리서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요한복음 1:14)
“말씀”이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신약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두 개의 헬라어가 있습니다.
레마(rhema)와 로고스(logos)입니다.
이 두 단어는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레마”는 일반적으로 “구어”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1:38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마리아가 대답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레마]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러나 “로고스”는 더 광범위하고 철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요한복음 1장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체적인 메시지를 의미하고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메시지와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4:32에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자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로고스]이 권위가 있음이러라”고 말합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특별한 말씀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전하신 전체적인 메시지를 듣고 놀랐습니다.
요한복음 1장의 “말씀”(로고스)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하기를 원하시는 메시지의 전부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1절), 만물의 창조에 참여하셨으며(3절), “사람들의 빛”이십니다(4절).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십니다(골 1:19; 2:9; 요 14:9).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사랑과 구속의 메시지는 수세기 동안 무시되어 왔습니다(겔 22:26; 마 23:37).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쉽게 무시하고 죄와 반역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로 인해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마 1:23; 롬 8:3; 빌 2:5–11).
헬라인들은 “마음”이나 “이성” 또는 “지혜”를 지칭하기 위해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요한은 이 헬라어의 개념을 사용하여 삼위일체의 두 번째 인격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 표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를 존재하게 만들고(시 33:6) 궁핍한 자를 구원했습니다(시 107:20).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영원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호소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20:9–16에서 왜 말씀이 육신이 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선지자들을 거부했고 이제 아들을 거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는 이제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요 10:16; 갈 2:28; 골 3:11). 말씀이 육신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약함도 온전히 이해하시는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모든 면에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십니다(히 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