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洗禮), 성령세례, 불세례 / 마태복음 3:11

                                                                                                           파트리스교회 수요 성서 연구 #. 1 물세례와 불세례(2020-06-10)

세례(洗禮)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
I baptize you with water for repentance. But after me will come one who is more powerful than I, whose sandals I am not fit to carry.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구약의 마지막 책은 “말라기”입니다.
신약의 첫 번째 책은 “마태복음”입니다.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은 종이 한 장의 차이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 사이는 “대략 400년” 이란 긴 세월이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시대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구약 말라기와 신약 마태복음의 400년의 기간을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 라고 합니다.
암흑의 시기’ 또는 ‘침묵의 시기’를 “신구약 중간 시대”라고도 합니다. (아래 난외 주 참조)

기독교 이외에 가톨릭교회와 유대교에서는 신구약 중간 시대에도 하나님은 말씀하셨다는 것을 강조하여 “외경”이란 말씀을 인정하고 사용합니다.

오래 동안 기다리던 메시아가 나타날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던 때에 어느 날 광야에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 거주하는 낯선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외쳤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광야로 나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들을 때 바로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나는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라 다만 물로 세례를 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실 그 분은 너희들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며 실망하던 유대인들에게 메시아 신앙을 깨우쳤습니다. 요한의 외침을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서 세 종류의 세례를 생각합니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 ; 회개와 구원을 위한 세례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 ; 구원의 확신과 보증을 위한 세례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 ; 심판을 위한 알곡과 죽정이를 구분하는 세례(불심판)

그런데 요한이 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분명하게 성경에 소개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셨던 말씀은 어느 누구도 예수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셨을까요?

세 종류의 세례를 베푸셨던 수여자(授與者)를 살펴봅시다.

첫째는 물세례(Water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예수님 당시에는 세례자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마태복음 3:5∼6,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People went out to him from Jerusalem and all Judea and the whole region of the Jordan.
Confessing their sins, they were baptized by him in the Jordan River.

그러나 오늘날은 교회에서 목사가 세례를 베풉니다.
"주 예수를 믿는 (아무개)에게 내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and this water symbolizes baptism that now saves you also--not the removal of dirt from the body but the pledge of a good conscience toward God. It saves you by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둘째는 성령세례(Holy Spirit Baptism)는 누가 베풀었을까요?

세례는 요한의 증거대로 분명히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언제 성령세례를 베푸셨으며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When the Counselor comes, whom I will send to you from the Father, the Spirit of truth who goes out from the Father, he will testify about me.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사람들에게 보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을 “보혜사(保惠師)” 라고 합니다.

“보혜사(保惠師)”란 무엇인가?
-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
보혜사란 “지켜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가르치시는 선생님” 이란 뜻입니다.

보혜사를 영어 성경에서 찾아보면 NIV에서는 “상담자(the Counselor)”, KJV에서는 “위로자(the Comforter)”, NASB에서는 “돕는자(the Helper)” 라고 합니다.

보혜사를 헬라어 성경에서는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paraklétos)” 라고 합니다.
스트롱 번호 3875

1. 옹호자(an advocate), 중보자(intercessor),
2. 위로자(a consoler), 위로자(a comforter), 돕는자(helper),
3. 변호사(Paraclete)


παράκλητ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3875

1. 남을 위해 나타난 자
2. 요한일서 2:1.
3. 요한복음 14:16
발음 : 파라클래토스(paraklētŏs)
어원: 3870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보혜사(요 14:16,26, 16:7), 대언자(요일 2:1)
신약 성경 : 5회 사용

예수님께서 언제 누구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셨습니까?

사도행전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When the day of Pentecost came, they were all together in one place.
Suddenly a sound like the blowing of a violent wind came from heaven and filled the whol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They saw what seemed to be tongues of fire that separated and came to rest on each of them.
All of them wer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and began to speak in other tongues as the Spirit enabled them.

오순절날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령세례를 베푸셨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세례도 함께 베푸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서를 자세히 관찰하면 성령과 불이라는 용어가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는 사용하였으나 마가복음 1장과 요한복음 1장에서는 성령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라고 모든 복음서에서 말씀하셨다면 불세례도 오순절 날 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러므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바르게 읽어야 합니다.

셋째는 불세례(Fire Baptism)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세례자 요한에 의하면 성령세례와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실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성경을 폭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과 불세례에 대한 말씀을 마태복음 3장과 누가복음 3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제 성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I baptize you with water for repentance. But after me will come one who is more powerful than I, whose sandals I am not fit to carry.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12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His winnowing fork is in his hand, and he will clear his threshing floor, gathering his wheat into the barn and burning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

“불세례”는 불로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복음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9절,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리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At that time Jesus came from Nazareth in Galilee and was baptized by John in the Jordan.

누가복음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John answered them all, "I baptize you with water. But one more powerful than I will come, the thongs of whose sandals I am not worthy to untie. He will baptize you with the Holy Spirit and with fire.

17절,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His winnowing fork is in his hand to clear his threshing floor and to gather the wheat into his barn, but he will burn up the chaff with unquenchable fire.

요한복음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I would not have known him, except that the one who sent me to baptize with water told me, 'The man on whom you see the Spirit come down and remain is he who will baptize with the Holy Spirit.'

34절,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I have seen and I testify that this is the Son of God.

참조 / 성령세례(사도행전 1:5, 11:16, 고린도전서 12:3)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해서 언급한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이외 성경에서는 오직 “성령세례”만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에서 성령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분명하게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세례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진다는 것은 불이 다양하게 갈라져서 오순절 날 한 자리에 모여 있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 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불세례는 누가 베푸셨을까요?

사도행전 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When the day of Pentecost came, they were all together in one place.
Suddenly a sound like the blowing of a violent wind came from heaven and filled the whole house where they were sitting.
They saw what seemed to be tongues of fire that separated and came to rest on each of them.

오순절 날 성령의 임재가 나타났을 때 마치 성령은 강한 바람 소리로 들렸습니다.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바람이 아닙니다.
성령은 불이 아닙니다.
다만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은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세례와 불세례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지워버려야 합니다.

헬라어 성경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βαπτίσει 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
- will baptize with the Spirit Holy and fire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많은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장차 오실 그 분께서는 “성령(프뉴마)과 불(푸르)”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쳤던 요한의 증언은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그 분이 그토록 기대하던 “메시아”라고 기다렸으나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으며 사십일 후에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사도행전 1:3).

이렇게 번역된 데는 헬라어 접속사 “카이(καὶ)”의 뜻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데 “카이”는 “등위 접속사”로서 “그리고(and)” 라고 하여 앞의 것과 뒤의 것을 동등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성령과 불”이라고 할 때 성령과 불을 동등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제까지 성령과 불을 이렇게 등위 접속사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등위 접속사가 아니라 우위 접속사로 해석하면 전혀 그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만 성령과 불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불세례는 특별한 용법으로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위 접속사”인 “또는(or)”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바로 우위 접속사로 사용된 것이다.
따라서 '성령과 불로'로 번역된 “엔 프뉴마티 하기오 카이 퓌리(ἐν Πνεύματι Ἁγίῳ καὶ πυρί)”는 “성령 또는 불안에서” 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 본문의 문맥과 사(四)복음서를 비교하여 연구해보면 더욱 확실히 증명된다.
먼저 우리는 “성령과 불로”라는 말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성령과 불로”가 아닌 “성령으로” 라고만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사도행전 1:5에서도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여 불에 대한 언급 없이 “성령으로” 라고만 되어 있으며 사도행전 11:16과 고린도전서 12:13에서도 역시 “성령으로”라고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성구들을 참조할 때 주님이 신자들에게 주시는 세례는 오직 “성령으로”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불”의 의미는 별도의 뜻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세례” 라는 것은 “성령 안에 잠기운다”라는 뜻으로 여기서 보더라도 “침례” 라는 말이 의미를 더 잘 통하게 한다. 만일 “세례”라고 하면 “성령으로 씻긴다”는 말이 되므로 오히려 이해하기 힘들게 된다.

성령은 영으로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요 14:18∼19)이므로 '성령 안에서 침례'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상징하되 '생명의 연합'을 뜻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 함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성령 안에서 침례'는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행 2:38, 행 19:2)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되는 것(고전 3:16-17)'과도 같은 말이 되는데 결국 우리와 주님과의 상호내주(Inter-Residence)를 뜻한다.

한편 요 4:24의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에서 '신령으로'라는 말은 “엔 프뉴마”로서 원 뜻은 “성령 안에서”라는 뜻이다. 이 말씀의 의미 역시 '성령을 받음'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이 되며 이는 곧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 예배를 드려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는 아무리 열심히 예배드려도 소용없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예배드리는 자가 먼저 주님과 하나가 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요 3:5)'고 할 때 '물'과 '성령'의 의미가 모두 해석되는 것이다. 즉 '물'은 죄를 씻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물 안에 잠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의 연합'을 상징하는 뜻이며 '성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령 안에 잠긴다는 뜻은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죽었다가 살아나는 원리가 포함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불로 세(침)례를 주신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볼 차례가 되었다. '불로 세례를 주신다'라는 말씀은 직역하면 '불 속에서 세례를 주신다'는 말로서 신자와는 전혀 관계없고 불신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씀이다. 즉 불신자는 성령 안에 잠기게 하는 대신에 '불 속에 잠기게 한다'라는 의미로서 결국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제 세례에 대한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세례(밥티조, βαπτίζω)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물속에 들어갔다는 것은 완전히 죽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물 위로 다시 올라올 때는 과거의 나 즉 옛 사람은 죽었고 이제부터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βαπτίζω, ον 스트롱번호 907

1. 잠그다
2. 결례를 행하다
3. 세례를 베풀다
발음 : 밥티조(baptizō)
어원 : 미래 βαπτίσω, 제1부정과거 ἐβάπ- τισα, 제1부정과거중간태 ἐβαπτισά- μην, 미완료수동태 ἐβαπτιζόμην,
완료수동 분사 βεβαπτισμένος, 제1부정과거수동 ἐβαπτίσθην, 미래수동태 βαπτισθήσομαι, 911의 파생어에서 유래
관련 성경 : 세례 받다(마 3:6,16, 막 16:16), 씻다(막 7:4), 세례 베풀다(요 1:25,26, 고전 1:14).
 [명] 세례(마 3:11, 막 1:4, 눅 3:16)
신약 성경 : 77회 사용

그런데 회개와 구원의 표를 받았지만 공중권세를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짓게 될 때 사탄은 정말 네가 구원을 받았느냐?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느냐? 하며 조롱하고 비난할 때 정말 내가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는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성령세례가 구원을 보증합니다.

고린도후서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set his seal of ownership on us, and put his Spirit in our hearts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고린도후서 5: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Now it is God who has made us for this very purpose and has given us the Spirit as a deposit, guaranteeing what is to come.

히브리서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Because of this oath, Jesus has become the guarantee of a better covenant.

성령세례가 보증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로마서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because through Christ Jesus the law of the Spirit of life set me fre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불세례는 심판 즉 소멸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라.
For the LORD your God is a consuming fire, a jealous God.

히브리서 12: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for our "God is a consuming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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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자료

주제 ; 세례(洗禮)
- 세례(씻을 洗, 예도 禮)와 침례(잠길 沈, 예도 禮)
- 밥티조(물속에 잠기다)

성경 ; 마태복음 3:11

종류 ;

 1. 물세례(회개와 구원) 베드로전서 3:21

 2. 성령세례(생명의 보증) 보혜사(요한복음 15:26)
 - 로마서 8:2, 요한복음 6:63, 고린도후서 1:22, 5:5, 히브리서 12:29

 3. 불세례(심판, 알곡과 죽정이)
- 신명기 4:24, 히브리서 12:29
- 마태복음 3:12, 누가복음 3:17

*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
- 전치사 "과"(카이)
 등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을 같은 것으로 이해
 우위접속사로 해석할 때는 성령과 불은 서로 다른 것으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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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2022(금)
성령세례

"오순절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은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다.
이 속성은 한 마디로 "영원성(永遠性)"이다.
영원이란 어느 시대에는 나타나고 어느 시대에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순절 사건은 지금도 앞으로도 마지막 그 날까지 지속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이름

"아니 엘 샤다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며 그 영은 지금도 계속적으로 역사하는 영이다.

셋째, 바울의 증거


고린도전서 2:9-10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바울의 성령은 통찰하는 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영은 구약에서 이미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계속된다.

신명기 29: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명기 30:6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레위기 18: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로마서 1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구약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다.
그런데 그 율법을 그의 백성들이 지킬 수 없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의 백성들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강조하였다.

로마서 2:28-29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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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외 주)

신구약 중간시대

신구약 중간 시대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구약과 신약을 시작하려고 하니 중간에 400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성경책으로는 말라기와 마태복음은 한 장 차이인데 말입니다. 

구약 이야기가 끝난 연대가 BC 400년경이고 그 때부터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400년의 역사가 바로 신약과 구약의 중간시대입니다.
이 기간은 포로 귀환 공동체를 제국들이 다스리는 실제 세계사 기간입니다.
성경은 에스라 포로 귀환 공동체, 이후 이야기가 없지만, 그래도 페르시아로마 역사는 실제로 흘러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성경이 입을 다물고 있는 이 기간의 실제 세계사는 성경에서 예언한 그대로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을 앞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 종속국으로 살아간 이 400년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유대인의 신앙, 유대교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고난,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 승천, 사도바울을 일평생 추적하며 괴롭힌 신약의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의 실체는 "유대교"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 전제 되어야 신약 성경을 대하기가 쉽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보면 유대교는 바로 구약의 끝 장면인 "에스라의 종교개혁"때 생겼습니다.
예레미아의 예언대로 정말 70년 만에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이 돌아 오게 되니, 어느 누구도 예언의 말씀을 부정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게 되고 그러면서 "말씀공부"를 하면서 자신들이 유일하신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신들의 민족이 대단함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배우다 보니 정신이 든 겁니다. 정체성의 변화가 일어나고 의식의 전환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말씀대로, 율법. 안식일, 절기를 시키면서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며 살아야 할 거룩한 백성들 이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기룩하라" 당부한 것을 순종해야 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유는 거룩함을 버리고 이방 종교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순결해야 합니다.
섞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기준이 된 것입니다.

마치 노예 공동체에게 모세가 출애굽으로 새 민족 정신을 심어준 것처럼 에스라가 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을 깨뜨리고 우상을 따른 것이 화의 근원이었다는 것을 민족이 포로가 되어 깨달은 것입니다. 

말씀 성취를 공동 체험하고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와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놀랍도록 전부 맞는 겁니다.
말씀과 역사와 민족성과 정체성, 그리고 모세의 재발견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르쳐준 말씀(율법,모세오경)이 얼마나 우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앗수르(앗시리아), 바벨로니아(바벨론), 바사(페르시아)시대를 지나면서 다른 민족에 비교하여 월등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말씀공부를 통해서 쉽게 없어지지 않을 지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깨닫음은 감격이 되어, 통곡과 회개를 하게 했고, 자연히 삶에도 개혁이 일어나 감동적인 공동체 경험으로 까지 이어지고 그 공동체의 확신은 무서운 힘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결단하고 서약서까지 남겨, 제도화할 정도였는데, 구약시대 마지막 장면은 이처럼 느헤미야 10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명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중략) 이 밖에도 나머지 백성 모두가 귀족 지도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종 모세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기로 하고, 우리 주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에 복종하기로 하였으며 그것을 어기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다음과 같이 맹세하였다"

"우리는 딸을 이 땅의 백성과 결혼 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아들을 이들의 딸과 결혼 시키지 않는다. 이 땅의 백성이 안식일에나 성일에 물건이나 어떤 곡식을 내다 팔더라도 우리가 사지 않는다. 일곱 해마다 땅을 쉬게 하고 육 년이 지난 빚은 모두 없애준다.(성도로서의 거룩한 삶을 지키겠다고 문서화함)

하나님의 성전 비용으로 쓰도록 우리는 해마다 삼분의 일 세겔씩 바친다. 집안별로 주사위를 던져서, 해마다 정한 때에 하나님의 성전에 땔 나무를 바칠 순서를 정한다. 해마다 우리 밭에서 나는 맏물과 온갖 과일 나무의 첫 열매를 주님의 성전에 바친다. (성전 운영을 위해서 재정을 책임지겠다)  처음 난 맏새끼들을 성전 제사장들 생활비를 위해서 바친다."(성전이 운영 되는데 필요한 인건비도 서포트하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아무렇게나 버리두지 않을 것이다."(서약)
바로 이것이 유대교, 유대인, 유대 성격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출발된 이스라엘의 민족역사를 잇는 공동체는 "유대인"(사마리이인, 아님)이라고 이렇게 개명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이들은 "이스라엘=유대인"이라는 새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히브리 정신을 잇는 정통성 있는 유일한 공동체, 포로귀환 공동체 유대인 이렇게 그들은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구원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갔습니다.
후손들도 선조들의 뒤를 이어 BC 300년대 바사(페르시아) 제국시대을 숨을 죽이고 지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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