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요한계시록 4: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요한계시록은 어려운 말씀이 아니라 구조를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계시의 내용적 구조와 공간적 구조입니다. 계시의 내용적 구조는 사도 요한이 본 것(1:19∼20)과 지금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22장)을 말합니다. 공간적 구조는 밧모섬에서(1∼3장), 하늘에서(4∼11장), 땅에서(12∼22장)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4장의 본문은 내용적으로는 장차 될 일을 말하고 구조적으로는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첫째, 하늘에 문이 있을까요? (있다, 없다)
둘째, 하늘에 문이 없다면 왜 하늘 문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상상력, 성경적)
셋째, 하늘 문으로 누가 들어갈 수 있습니까? (종교인, 기독교인)
넷째, 하늘 문은 누가 열까요? (성도, 예수님)
오늘 설교 제목은 ‘열린 문’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하늘에 열린 문(a door standing open in heaven)’ 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늘에 문이 있을까요? 하늘에는 문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다고 합니다. 과연 사도 요한이 보았다는 하늘에 열린 문이란 무엇일까요?
* 열린 문(θύρα ἠνεῳγμένη) thura eneogmene
2374 - θύρα, door
455 - ἀνοίγω, open
‘열린 문’이란 문법적으로 ‘현재완료형’입니다. 현재완료형이란 “문이 과거에 열려졌고 지금까지 계속하여 열려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현재완료형이란 경험, 완료, 계속, 결과를 포함합니다.
예를 들면 ‘구원받았다’는 신앙은 경험과 완료와 계속과 결과를 모두 포함한 내용입니다.
첫째는 경험(Experience) - 과거에 구원을 받았다.
둘째는 완료(Completion) -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셋째는 계속(Continuously) - 구원받은 사건은 지금도 계속된다.
넷째는 결과(Result) - 구원의 사건은 하늘 문을 지날 때 결론을 맺는다.
목회 현장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매년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교인들 중에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신 가정의 자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은 비록 나이가 들어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어렵지만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예수를 영접하고 주님 품에 안기도록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어버이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겠다는 약속과 신앙고백을 확인한 후에 어버이 세례식을 진행했습니다. 어느 해 5월 어버이주일에 세례를 받았던 어른이 그 해 초겨울 12월에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곧장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한번은 병실을 찾았는데 ‘목사님 어제 밤 꿈에 천국 문이 열리지 않아 못 들어갔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참 안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하나님 천국 문을 열어주세요!’ 라고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목사님, 어제 밤에 드디어 천국 문이 열렸어요!’ 하며 좋아하십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5월 어버이주일에 세례를 받았고 12월 성탄절이 다가오기 한 주일 전에 주님 품에 안기셨던 한 어른의 신앙여정은 불과 8개월 정도 이었지만 마지막은 분명히 하늘 문을 지나 주님 품에 안겼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가운데는 예수님의 십자가 오른편과 왼편에 두 강도의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점점 무거워질 때 한 강도는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너도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고 그리고 나를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한다면 내가 믿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강도는 ‘주여,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강도는 그 짧은 시간에 구원에 대한 경험과 완료와 계속과 결과를 완전하게 보여준 사례가 되었습니다.
천국 문이 안 열렸다 또는 천국 문이 열렸다는 꿈 이야기를 들으며 천국 문은 어떤 문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있을까요?
물론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이리로 올라오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과연 열린 문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열린 문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열린 문’과 ‘하늘 문’ 이란 말씀을 검색하면 열린 문과 하늘 문을 검색한 결과 다음과 같습니다.
열린 문 - 요한계시록 3:8, 요한계시록 4:1,
하늘 문 - 시편 78:23, 말라기 3:10
열린 문과 하늘 문은 사람이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열어놓으셨습니다. 우리들은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문이 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그렇다면 하늘 문과 열린 문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문은 방향(方向)
창세기 28:16∼17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축복 기도 후에 밧단 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길을 가던 중 날이 저물어 한 돌을 베개로 삼고 그곳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며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이라. 네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자, 여러분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의 용도는 올라가기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내려오기 위한 것일까요?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들은 사닥다리는 오직 올라가기 위한 용도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은 내려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닥다리가 있어야 내려오실까요? 하나님은 사닥다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내려오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 머물고 있는 야곱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은 사닥다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야곱을 위하여 사닥다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하늘 문입니다.
문은 방향입니다.
건물마다 비상구(非常口)가 있습니다. 만일 불이 났을 때 또는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 사람들을 안전하게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비상사태를 만났을 때는 비상구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만일 그 방향을 찾지 못하면 끔찍한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낯선 밧단 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날이 어두워졌을 때 야곱은 두렵습니다. 언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합니다. 야곱은 비상사태와 같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더구나 시간적으로 캄캄한 밤을 맞이합니다.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꿈에 하늘 문의 방향을 보게 된 것입니다.
천국 문은 천국의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 문은 하늘의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도들은 어느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요?
그 방향이 곧 신앙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 문을 향한 신앙은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아야 합니다.
천국 문을 향한 신앙은 죽어서 천국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가 천국이어야 합니다.
야곱은 지금 아버지의 집을 떠나 광야에 머물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야곱이 어느 방향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합니까? 야곱은 오직 밧단 아람 외산촌 라반의 집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 꼭대기에 닿는 사닥다리가 세워졌고 찬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위에 여호와 하나님이 야곱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방향은 외삼촌 라반의 집이 아니라 어디에 있는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원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신앙의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문은 임재(臨在)
임(臨) - 임할 臨
1. 임하다, 2. 곡하다, 3. 장례식에 참례하여 곡(哭)함, 4. 본떠 쓰다, 5. 임거(臨車)
재(在) - 있을 在
1. 존재하다, 2. …에 있다, 3. …에 머물러 있다, 4. (어떤 단체에) 참여하다, 5. …에 달려 있다
땅에서는 하늘 문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될 수 있지만 하늘에서는 땅으로 내려올 수 있는 문이 됩니다. 사람들은 땅에서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통로가 됩니다.
성경에서 예를 들어봅시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마태복음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하늘 문은 임재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이란 하나님의 일을 돕는 천사들입니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하늘이 열린 것은 보좌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늘 문이 열리면 영광스런 주님을 볼게 될 것입니다.
셋째, 문은 통로(通路)
요한계시록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열심을 잃어버린 신앙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교회를 향하여 열심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어서 문을 열고 주님을 맞이하라고 권면합니다.
문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생명이 되신 예수님은 문이 닫혀 있어도 얼마든지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늘 문과 천국 문은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문이 열려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늘 문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반드시 들어가야 할 통로라고 하겠습니다.
(이야기) 어느 교회학교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교사가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얘들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니?’
아이들은 ‘착한 일을 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성경을 읽어야 한다.’
‘심부름을 잘 해야 한다.’
이런 대답을 할 때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죽어야 갑니다.’
천국은 죽어야 갑니다.
여러분 천국은 죽어야 갑니까?
죽어서만 가는 천국이라면 왜 예수님께서 지금 너희에게 천국이 임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천국은 예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신앙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땅에서 천국의 삶을 누리려면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은 너무 간단명료(簡單明瞭)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죽는 현장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했을까요? 정말 스데반집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돌에 맞아죽는 그 자리가 천국이었을까요? 천국은 아닐지라도 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은혜의 자리이었고 축복의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이 정하신 방향으로 가지 않고 정반대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요나에게 닥쳐온 것은 생각지도 못한 풍랑이었습니다. 그 풍랑으로 인하여 요나는 깨닫습니다. 내 생각과 감정에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문은 경계(境界)
경계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1.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나누어지는 한계
2. 어떤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에 일정한 기준으로 구별되는 한계
3.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라 자기가 놓이게 되는 처지
예수님은 양의 문이 되셨습니다. 양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교회와 성도들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받은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믿음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과 찬송과 감사가 넘쳐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머물지라도 그곳에는 참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없습니다. 따라서 문은 경계를 의미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늘에 열린 문, 천국 문이란 예수님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입니다.
천국 문이란 예수님의 임재를 기다릴 수 있는 곳입니다.
천국 문이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천국 문이란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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