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捐補)와 헌금(獻金)(고린도후서 8:1-5) / 주일설교 원고(10-18-20)


연보(捐補)와 헌금(獻金)(고린도후서 8:1-5)

1. 형제
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아멘

고린도후서 8장9장을 "연보장" 또는 "헌금장" 이라고 합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연보(捐補)헌금(獻金)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연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13구절입니다.
구약에서 2구절(역대하 34:9, 14) 신약에서 11구절입니다.

헌금(獻金)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2구절입니다.
신약 누가복음에서만 2구절 사용되었습니다(누가복음 21:1, 4).

연보와 헌금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들 중에 "십일조 절대 바치지 마라!" "연보는 신약 교회를 세우는 것이며, 헌금은 인위적인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영상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코로나 19에 의해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던 교회 전통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배 장소에 대한 생각

그리심산이냐? 예루살렘 성전이냐?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심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라고 합니다.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실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둘째는 헌금에 대한 생각

교회 설립의 목적이었던 선교와 구제보다는 인건비와 관리비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CBS(기독교방송국)의 보도에 의하면 서울에서 10여개 교회가 강제 경매 위기를 당하고 있으며,
교회 파산이 급증하여 전국적으로 100여개 교회들이 경매의 매물 물건으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은행의 융자를 받았으나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일 수 없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적은 헌금 때문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뉴욕의 작은 교회 사역자들은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렌트비를 내지 못해서 교회 간판을 내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교인들의 가정과 직장을 찾아다니며 헌금을 거두고 있다고도 합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 할 때는 예베 순서에 따라 모든 예배자들이 헌금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각 가정에서 개인별로 또는 가족단위로 예배하므로 헌금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연보와 헌금에 대한 정의를 소개합니다.

연보(捐補)란 한자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 라는 (訓)으로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 (訓)이란 "가르칠 훈(訓)" 으로 "한자(漢子)의 뜻의 새김. 예를 들면 "해(海)"를 "바다 해(海)" 라고 할 때 "바다"를 말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 할당하다)”는 뜻입니다.

헌금(獻金) “드릴 헌(獻), 쇠 금(金)” 이란(訓)으로 “드리는 금” 즉 금은 예로부터 재물을 상징하므로 "드리는 돈" 이란 뜻입니다.

연보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내놓은 것을 말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파트리스교회에서 헌금 내역으로 헌금 봉투에 적혀 있는 내역은 "십일조, 감사, 주일, 선교, 구제, 옥합, 생일" 이렇게  7개로 구분합니다.

이러한 헌금 내역 중에서 연보에 해당하는 것은 "구제, 선교, 옥합"이라고 하겠습니다.

헌금에 해당하는 것은 "십일조, 주일, 감사, 생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현재 파트리스교회에서 헌금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거래 은행에서 파트리스교회 구좌로 송금하는 방법
둘째는 인터넷으로 계좌 이체하는 방법
셋째는 수표를 발행하여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
넷째는 헌금을 모아 직접 전달하는 방법

코로나 19라는 팬데믹(Pandemic)이란 시대를 살아야 하므로 어떻게 헌금하는 것이 성경적일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8:1-5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절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시간적으로는 대략 기원 후 50년 경쯤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 편지를 보낼 때 당시 상황은 세계 교회의 모교회이었던 예루살렘교회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이방교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네아볼리, 아볼로니아)이 힘을 모아 영적 복음이 출발한 발원지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나선 것이라고 합니다.

마게도냐교에 있는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아시아로 진출하여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어느 날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 사람이 손짓하며 바울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시아로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막고 유럽으로 가라는 것으로 깨닫고 복음의 발길을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기게 됩니다.
이와 같은 내용이 사도행전 16장에 소개됩니다.

마게도냐 지역에 바울이 세웠던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뵈뢰아, 네아볼리, 아볼로니아"와 같은 교회입니다(사도행전 16:9-10).
당시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신앙적으로는 극성스런 유대인들의 훼방과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2절 참조).

2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들도 예루살렘 교회처럼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모교회유대인의 교회라고 한다면 마게도냐 교회이방인의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헌금은 은혜를 깨닫게 될 때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깨닫는 은혜가 무엇입니까?

지난 목요일(15일) 다니엘과 함께 노던 164가 응급 진료센터에서 코로나 감염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17일) 오전 10시경에 전화를 하였더니 방금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하며 담당자가 "음성"이라고 하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2주일 전부터 호흡을 하려면 가슴이 답답하고 약간의 통증을 느껴 정상이 아니구나! 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 검사를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음성이란 결과를 받았지만 만일 양성이라고 하면 치료를 위한 방법도 생각했습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응급 진료 센터를 찾았을 때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실내에서 수용 가능한 인원은 거리를 두고 앉아서 기다리지만 실내로 들어오지 못할 때는 거리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사하는 방법은 먼저 체온과 혈압을 측정한 후에 어떤 증세가 있는가 확인을 한 후에 긴 면봉을 코속으로 집어넣은 후 균을 채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긴 면봉이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콧구멍이 참 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19에 의해서 세상을 떠났고 또 감염자가 되어 고통을 받고 있지만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니엘에게 물었습니다.
"다니엘아! 만일 지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한다면 무슨 은혜를 구하겠느냐?"
다니엘이 구하는 은혜가 있듯이 여러분들이 구하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 은혜가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깊고 넓고 높게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헌금의 은혜가 따르지 못한 은혜는 참 은혜가 아니다.
영국의 설교자 '요한 웨슬리'는 "나는 너의 돈주머니가 회개하기까지 너희 회개를 믿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 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장면이 소개됩니다(마가복음 14:3). 그런데 이 여자를 누가복음에서는 그 동네에 죄를 지은 여자라고 설명합니다(누가복음 7:37). 그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만일 예수님이 선지자라면 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겠느냐? 하며 여자의 행동과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서 비난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이 여자는 죄를 많이 지었지만 그 모든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행한 것이라며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용서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발을 닦는 여자의 행동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은혜를 깨달은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주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이며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방인으로 구성된 마게도냐 교회가 모교회 유대인의 예루살렘 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바울로부터 들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이방인 교회 마게도냐 교회들을 흔들었습니다.
비록 우리들도 어렵지만 우리를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게 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하여 강제로 강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돈을 모았습니다(3절 참조).

3절.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 자원하다는 단어의 원 뜻은 "스스로 선택하다" 라고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자원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힘에 넘치도록 돈을 모았습니다.
이런 힘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첫번째는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은혜를 깨닫게 하는 원동력은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두번째는 헌금은 자원하는 것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누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람을 위하여 무릎을 꿇습니다.
누군가 슬픔에 잠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길을 걷다가도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을 위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가 시작됩니다.

자기 힘과 능력에 맞도록 자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에 넘치도록 자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넘치게 받은 사람만이 넘치도록 자원할 수 있습니다.

죄 않은 여인이 아주 값비싼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예수님이 머리레 순식간에 부어버린 것은 그 여인이 그만큼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원한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 시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가 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힘입어 자발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목회 초기 교회를 함께 시작했던 집사님께서 어느 공장의 3교대 근무자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만 실족하여 거대한 탱크로리 차 위에서 바닥을 떨어졌습니다. 병원에 진단 결과 허리 뼈가 상하여 4급 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 판정에 따른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보상금의 절반을 교회 건축을 위한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가족들이 동의한 줄 알았는데 부인 집사님이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장애 등급 판정을 받으면 근무하기가 어려운데도 정년 퇴직할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정말 하나님만을 위한 일에 보탬이 되겠다고 결단하셨기 때문에 그 이후에 전개되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풀무불에 던져지는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이란 유대의 젊은이들은 풀무불이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우상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거대한 코로나 19라는 괴물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버티고 있습니다.
왜 전염병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왜 육신의 몸이 약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의 것이로다.

헌금은
은혜를 깨닫는 자가 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헌금은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입니다.

세번째는 헌금은 섬김의 신앙입니다.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헌금을 하는 이유는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하여 이방인 교회 중에서 가장 먼저 참여했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잠시 흔들렸던 때가 있었습니다.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매월 파트리스교회가 후원하는 기관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후원하는 기관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트리스교회도 결국 줄어드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후원하는 편에 서야 할 것인가?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라고 결정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아버지 하나님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이여!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이여!

연보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물질입니다.
헌금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물질입니다.
어떤 내역으로 물질을 드리든지 바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감동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좋아서 자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들을 섬겼듯이 우리들도 섬김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화) 자신을 바치는 헌신

영국에 부흥운동이 한창이던 19세기 말엽 영국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리더는
그리스도교회의 마이어목사(F. B Meyer. 1847-1929)
침례교의 대부흥사 스펄전(Charlson Spurgeon. 1834-1892)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켐벨 몰간목사(Campbell Morgen. 1863-1945)

그런데 이 세 목사님 중에서 마이어 목사님의 인기가 제일 약하였습니다.    

마아어 목사님의 일기장에는 "왜 그런지 나는 기도하려면 스펄전 목사와 몰간 목사님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자꾸 일어난다고 할 정도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어 목사님은 그들을 시기하거나 질투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이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질투와 시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만 했을 뿐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축복하는 기도를 한 적이 있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마이어 목사님은 크게 뉘우치며 두 목사님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마이어 목사님의 일기장에는
"나는 이제 자유함을 얻었다. 평안을 얻었다. 내 마음 속에 기쁨이 샘솟는다.
하나님! 이제 내게 다시는 비판하는 종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계속하여 사람을 축복하며 살도록 도와 주소서"하고 기록하고 있다.

(예화) 고름을 빨다

중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김요석 선교사 간증입니다.
친구와 같이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센병 환자의 등에 고름이 들어있는데 아직 덜 곪아 쉽게 짤 수 없었습니다.
김선교사는 그 부분을 입으로 핥았습니다.
자꾸만 빨았더니 그 부분이 약해졌습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고름을 짰습니다.
고름이 터지면서 옆에 친구 얼굴에 튀었습니다.
순간 그 친구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센병에 전염될까 봐 울었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다. 네 고름을 빨 때 예수님이 옆에 와 계셨다.
나는 그 주님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고름이 터져 내 얼굴에 튀는 순간 예수님이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아쉬워서 울었다”

사랑할 때 예수님은 임재하십니다.
사랑할 때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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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10-17-20) 토요일

♦ 10월 17일(토)
♦ 오늘 읽어야 할 말씀 : 고린도후서 8:1∼24
♦ 묵상을 위한 주제 : 연보(2절)
♦ 성구 :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Out of the most severe trial, their overflowing joy and their extreme poverty welled up in rich generosity.   

 “연보(捐補)와 헌금(獻金)”

“연보(捐補)”는 “버릴 연(捐), 도울 보(補)”라는 훈(訓)으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컨트리뷰션(contribution)”이라고 하며, “함께(con) 돈을 나누어 낸다(allot)”는 뜻입니다.

“헌금(獻金)”은 “드릴 헌(獻), 쇠 금(金)”이란 훈(訓)으로 “드리는 쇠(money)”이란 뜻입니다.

헌금(獻金. offering)은 성경에서 주로 ‘고르반(qorban)’과 ‘도라(dora)’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레 1:3, 민 31:50, 마 5:23∼24, 막 7:11)” 또는 “예물(레 1:2, 2:1)” “헌물(민 7:10)”이란 뜻이다.

“도라”는 “예물(마 2:11, 5:23∼24, 8:4, 23:18, 19장, 히 5:1, 8:3∼4, 9:9, 11:4, 계 11:10)” 혹은 “헌금(눅 21:1, 4)” 이라고 개역 한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본문에서 사용되든 “고르반”과 “도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연보(捐補)”의 한자 의미는 “남을 돕기 위해 내어 놓는다”는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로기아(collection, 모금)” “하플로테스(generosity, 관대)” “유로기아(blessing, 축복)”와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한 연보(고전 16:1)” 또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고린도 교회의 연보(고후 9:5)”라는 말에서 연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보다는 성도를 돕는 일과 교회 간의 물질적 도움을 주는 “코이노니아(친교, 협력)”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연보”라는 말보다는 “헌금”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하겠습니다.

파트리스교회의 설립 목적은 선교와 구제를 중요시 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지원하는 기관은 다섯 곳입니다.

1. 북한 결핵 환자를 치료하고 보살피는 “유진벨 재단(대표 인세반회장)

2. ”북한어 성경을 보급하는 “모퉁이돌 선교회(대표 이삭목사)”

3. 뉴욕국제장애인협회(대표 임선숙사모)

4. 뉴욕밀알선교단(대표 김자송)

5. 은퇴 여자 선교사들을 안식관을 건축하는 “세빛 자매회(대표 김화자목사)

”비대면 예배로 인하여 헌금이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지만 매월 꾸준히 후원금을 송금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협조와 후원에 의한 이와 같은 선교와 구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를 바쳤는가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얼마나 남았는가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부자가 성전에서 쏟아 붓는 많은 양의 헌금 보다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바쳤을 때 부자보다 더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친 양으로 계산하면 부자가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은 것이 없는 구제와 선교를 위하여 힘차게 달려봅시다!
그리고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채워주심에 감사합시다!

♪ 찬양 /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 연보에 대한 성구


마가복음 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고린도후서 9:5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요한복음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마가복음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누가복음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고린도전서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고린도전서 16: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후서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역대하 34: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의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고린도후서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 헌금에 대한 성구


  누가복음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누가복음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