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요한복음 17:3) 주일 설교 원고(2020-05-24) / 이승혁목사

영생(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디모데전서 6:15-16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영생이란 이 다음에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서 누리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구원 받은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하나님과 하나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느 여름 날 들판에서 하루살이 메뚜기가 온 종일 함께 놀았습니다.
해가 뉘엿이 저물어 갈 무렵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다시 만나자!" 하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에 "내일 다시 만나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메뚜기개구리가 여름날 자주 만나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제 날이 추워질 무렵 개구리메뚜기에게 "내년에 다시 만나서 놀자!"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메뚜기에는 내년이 없기 때문에 "내년에 만나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짧은 이야기는 경험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경험되지 않은 영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얻고 이 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신자(信者) 또는 교인(敎人)

신자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에 대해서 지적으로 동의한 사람을 말합니다.
지적으로 동의한 것만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7-1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서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재미 있는 통계를 소개합니다.
25% 교인이 기도를 안하고
35% 교인이 성경을 안 읽고
60% 교인이 신앙 서적을 읽지 않고
70%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85% 교인이 단 한 명의 영혼도 인도한 적이 없고
100% 교인이 하나 같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한다.

둘째는 제자(弟子) 또는 성도(聖徒)

사도행전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

사도행전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제자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후에 이 세상에서 구원 받은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자들의 삶의 특징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섬기는 삶(마가복음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삶(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제자는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지만 그 환난 가운데서도 섬기며 기쁨이 충만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교리적인 가르침에 동의한 것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이 아니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영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생의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안다는 것을 "기노스코(γινώσκω, 1097. ginóskó)" 라고 합니다.
"알기위한 것(to come to know), 인식하는 것(recognize, perceive)"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삶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친밀한 관계의 삶

누가복음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들었을 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이때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남자와 친밀한 관계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안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을 말합니다.
친밀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때가 언제 일까요?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할 때 입니까?
아니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입니까?

고린도후서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요한계시록 20:12∼15 
⑫.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⑬.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⑭.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⑮.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τῇ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첫째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
둘째는 사랑하는 삶
요한일서 4:7-8
사랑
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
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안에 참 평안, 행복, 만족, 기쁨, 시험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궁핍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능히 기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영생이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지적으로 동의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주 위급할 때는 지적으로 "아이구 하나님!" 하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동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친밀한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와 친밀한 관계를 끝날까지 유지할 수 있겠느냐?
비록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믿음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렇게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내 힘으로는 오직 주님만 사랑할 수 없지만 주님 내게 힘을 주시면 주님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첫째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
둘째는 사랑하는 삶
셋째는 다스리며 살아가는 삶(창세기 1:26-28)
하나님
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육축과 온 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
이 자기 형상하나님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
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에 충만하라, 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상실한 이후에 다스릴 수 있는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영생을 확신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사야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
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장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천국의 삶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5:17-19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감사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스리지 못하는 이유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영생이란 예수를 구세주로 믿었다는 지적 동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지적으로 동의한 믿음으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도 있지만 어떤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이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나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이란 백신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을 갖고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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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68-69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We believe and know that you are the Holy One of God.)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영생의 말씀을 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설교는 주로 장례식장에서만 듣게 됩니다.
오늘은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간 설교 주제를 함께 생각하며 나누려고 “임사체험(臨死體驗)”에 대한 동영상을 소개했습니다.
임사체험이란 용어를 영어 약자로 "NDE"라고 합니다.
NDE
"near-death experience"의 첫 단어의 글자를 합성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임사체험이라는 동영상을 통하여 기독교인이었든 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든 임사체험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서 공통된 경험을 크게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임사체험을 경험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2∼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

(예) 스데반의 기도(사도행전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기도(누가복음 23:46) 참조 마가복음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운명하시다를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숨을 거두셨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죽은 후에는 육체 밖에서 영혼의 기능은 활동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기능은 멈추었지만 영혼의 기능은 여전히 육체 밖에서 정상적인 기능으로 활동합니다.

임사체험을 경험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죽었다고 진단한 후에 자기 육신은 침상에 누워 있는데 자기 영혼이 그 위에서 가족들의 이야기와 의료진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욥기 19: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영혼은 긴 터널을 지나 찬란한 빛의 인도를 받는다.

죽은 후에는 긴 터널을 지나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찬란한 빛 가운데로 이끌려 간다고 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예수를 믿었던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이 죽었을 때와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술에 취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상대방 차선으로 뛰어들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갖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 발표에 따라 죽음 이후에 분명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영생(永生)”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영생”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이 19절입니다.
영생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영생을 얻는 비결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 예수를 믿는 자(3:15, 16, 36. 5:24, 6:40, 47)
둘째, 예수를 아는 것(17:3)
셋째, 말씀과 명령을 따르는 것(6:68, 12:50) 
넷째, 떡과 잔에 참여하는 것(6:51, 54)

“영생이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세상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합니다.
과거의 시간은 이미 경험한 시간입니다.
현재의 시간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미래의 시간은 앞으로 경헝해야 할 시간입니다.
영원이란 내가 경험한 과거와 경험하고 있는 현재와 경험해야 할 미래를 하나로 연결하는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핼라어에는 시간을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카이로스(καιρός. 2540. kairos)는 하나님의 시간을 말합니다.
크로노스(χρόνος.  5550. chronos)는 사람의 시간을 말합니다. 

영생을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려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죽었던 몸과 영혼이 다시 하나 되어 온전한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주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에서 시간이란 카이로스(καιρός. kairos)와 크로노스(χρόνος.  chronos) 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은 주의 백성들은 카이로스의 은혜를 힘입고 크로노스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은 세상 사람들은 오직 크로노스의 삶에 만족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상담했던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을 때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까?
카이로스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육신의 몸으로 카이로스의 은혜를 힘입어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갈 때 믿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은혜를 기대하며 카이로스를 기도할 때는 신앙생활이 답답하고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969세를 살았던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의 969년은 시간적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그 시간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를 살았지만 많은 일들을 기록한 것은 시간적인 삶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실천하셨기 때문에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카이로스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던 목적을 포기하고 내가 예수를 조절하여 무엇인가 더 갖고자 꾀를 부림으로 결국은 스스로 목매어 죽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가룟 유다만큼 똑똑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은 급하고 말은 성격 따라 간다고 생각도 없이 말을 툭하고 내뱉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실수를 했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목적을 잊지 않았기에 마지막에는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질병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에게는 이와 같은 힘든 크로노스의 시간에서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는다면 모두가 겪는 사회적 격리의 시간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영생을 얻은 주의 백성들의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은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에서 거하시는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모든 교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사도 요한을 하늘로 이끌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무엇을 보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요한계시록 4:2-3)
둘째는 보좌 주위에 24장로들과 일곱 영과 네 생물들(요한계시록 4:4-7)
그런데 네 생물들은 여섯 날개와 눈들이 가득한 모양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5장에서 사도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가 있는 것을 봅니다(5:1)
두루마리는 "책(τοῦ θρόνου βιβλίον, the throne a scroll)"을 말합니다.
그 책은 아직 아무도 펼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책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크게 울었는데 마침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계 5:5).

그 두루마리에 인봉된 것을 펼쳤을 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내용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두루마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재앙이 일어나고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그 두루마리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τῷ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the book of life)    

두루마리에 기록되는 이름은 마지막 시대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았던 성도들의 이름이라고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0:12∼15 
⑫.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⑬.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⑭.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⑮.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τῇ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

두루마리는 생명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생명책에 무엇이 기록되었습니까?
죽은 자들의 행위에 따라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행위에 기록된 것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마태복음 25:46에서 영벌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Then they will go away 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to eternal life.)

그러므로 성경은 영생을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을 받고 세상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낸 후에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행했던 일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너희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었다고 하셨습니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이 세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한 영적생활을 말합니다.
영적생활을 위한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모두 승리하여 두루마리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행한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는 거룩한 삶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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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웨인 화이트(Ryan Wayne White, 1971년 12월 6일 ~ 1990년 4월 8일)

미국 인디애나 주 코코모의 십대 청소년이었다
혈우병을 앓던 중 수혈을 받은 것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1984년 진단을 받을 당시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시한분 판정을 받고 5년을 더 살았던 화이트는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나에게 예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 아버지가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영생을 믿는 자

레이몬드 럴(Raymond Lull)은 1235년 스페인 팔마(Palma)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79세까지 유럽 대학에서 동양 언어를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과 친구들은 그가 학문을 탐구하다가 생을 마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럴은 자신이 철학 교수가 아닌 선교사로서 죽기를 원했다.
그는 튜니스(Tunis)의 회교 중심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두 번 투옥된 후 추방당했다.
여든을 바라보던 그는 순교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몇 안 되는 크리스천들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했다.
1314년 8월 14일, 그는 부기아(Bugia)로 들어가서 몇몇 개종자들과 함께 거의 1년간 비밀리에 전도를 했다.
그러다가 너무나 순교를 열망한 나머지, 그는 시장터로 나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옛날에 추방된 바로 그 사람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분에 못 이겨 그를 마을 밖으로 끌어냈다.
1315년 6월 30일, 그는 왕의 명령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다.
오늘날 순교가 가진 속죄 효험에 대해 잘못 가르친 중세 시대의 신학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찾듯, 시냇물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갈증을 느끼듯, 성도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순교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갈망한다. 십자가의 군병들이 전쟁터에서 승리의 나팔 소리가 들리기 직전에 또는 하늘나라의 대관식 입장을 앞둔 시기에 은퇴하기를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생을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 자료출처 /  「말씀을 향해 바로 서기」/ 존 파이퍼


죽은 후 천국과 지옥을 보고 살아난 박상옥.

그는 충북 괴산군 어느 농촌에서 태어났다.
본래 기독교 가정이 아니었고 누이가 예수 믿고 목사님에게 결혼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매형과 누이가 전도하여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다.
그 후 그는 집사가 되었다.
1965년 11월 22일 사업상 볼 일 때문에 경북지방으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조령새재를 넘는 순간 와장창하는 요란한 광음과 함께 버스는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는 얼굴과 머리가 깨어졌다.
피는 눈, 코, 입으로 흘러내려 일어설 힘이 없었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는 쓰러져 있는 그대로 찬송가 562장을 불렀다. <이 몸에 소망 구름 같고 부귀와 영화도 한 꿈일세……> 이렇게 4절까지 부른 후에 영영 의식을 잃고 말았다. 완전히 죽은 것이다.

그는 죽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평탄한 길 위에 서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앞에 가던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사람은 충북 괴산 화양동에 사는 최인만(37세)이라는 분이었다.
그들은 둘이서 목적지도 없이 길벗 되어서 함께 걸었다.
얼마나 갔을까 그들 앞에 커다란 안내판이 나타났다.
알아보기 힘든 각 나라말로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나라 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우측으로, 믿지 않는 자는 좌측으로>라고 쓰여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가고 최인만씨는 왼쪽으로 서로 헤어져 가게되었다.
그가 가는 우측 길은 계단이 있는데 서너 계단 올라서서 뒤로 돌아 최인만씨를 바라보니 그는 까맣게 변하여 있었다.
그래서 자기 옷을 보았더니 어느새 흰옷으로 바꾸어졌다.
계단을 올라서 보니 앞에는 잔잔한 큰 강이 있고 강가에는 흰 옷 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낚시질하는 노인에게 가까이 가서 배가 언제쯤 오는가를 여쭈어 보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니 그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아직 때가 안되었는데……" 하시면서 그의 인사를 받으시는 것이었다.
이때 머리와 수염이 희고 긴 노인이 나타났다.
머리에 뿔관을 쓰고 도포를 걸치고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인간이 가는 길을 보라> 위엄 있는 음성에 고개를 들어보니 직사각형의 12문이 있고 문 앞에는 흰옷을 입은 문지기가 있었다.
첫째 문에는 사람들이 두 줄로 들어가고
줄째 문에서는 세상에서 행한 사실을 말하고
셋째 문에서 이간질, 거짓말하는 등, 입으로 죄를 지은 자는 혀를 뽑고, 눈에는 눈을, 손에는 손을 등 각가지 병신이 되고 있었다.

그는 좌측으로 90도 고개를 돌려보니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가는데 머리에는 뿔이 나고 눈이 셋이며 사람도 짐승도 아닌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괴물이 곡괭이를 들고 서서 이들을 찍어 던지는 것이었다. 용광로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불꽃이 타오르고 붉은 물이 이글거리는 영원한 불못 지옥이었다(계 19 : 20).

다시 오른쪽을 바라보니 문은 보이지 않고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많아 흰 구름같이 보였다.
그 왼쪽으로 붉은 말들이 있고 말을 탄 사람들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밑에 감옥이 있었는데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음부였다(벧전 3 : 19).

다시 우측을 보니 백말이 있고 백로의 머리와 어린 아이의 머리를 맞춘 것 같은 것이 평화스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낙원이었다. 정신 없이 낙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소자야"하는 음성이 들려오기에 대답을 하였더니 "나를 믿느냐"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주여 믿습니다"고 대답을 하니 구원의 증표를 준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후 잠시 후의 일이었다.
가느다란 사람의 음성이 들려와 눈을 떠보니 자기가 살던 집이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귀신이 나타났다고 놀라 야단들이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산중에 무덤을 파놓고 그 시체를 하관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3일 3시간 동안 죽은 가운데 있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교통사고로 즉사해야 할 그가 관 속에서 살아나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능치 못하신 일이 없는 하나님께서 이 일쯤이야 못하시랴.
정신을 가다듬어 남은 여생 덤으로 사는 그는 주님을 위해 몸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죽음 속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괴산의 최인만씨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최인만씨는 그와 한 날 죽어 장사 지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교우와 불신자들에게 그가 보고들은 천국과 지옥을 떨리는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
* 자료출처 / 복음신보에서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이 영생이다
영생은 현재로부터 시작한다.

한 잔의 물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마르다고 하면서 물을 찾는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어리석은 짓을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있는 행복을 누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조사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하고 있고,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60%의 교인이 신앙 관계 서적을 읽지 않고,
70%의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있고,
85%의 교인이 한 명의 영혼도 인도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00%의 교인이 하나같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고 합니다.

믿음생활 그 자체가 복된 길이요,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한 영생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이 믿음에 있어서의 알짜 알맹이들은 다 빼놓은 채,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구와 금언>

  ★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 : 10).
  ★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시 21 : 3, 4).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 : 27).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새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 : 1∼3).
  ★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 칠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 : 30∼31).
  ★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이 천국이다(스퍼젼).
  ★ 비단옷 입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누더기를 입고 천국에 가는 편이 낫다(영국 속담)
  ★ 유형기 박사는 "무엇을 계획하는 것보다 어떻게 사는 것 무슨 목적을 향하는 것보다 우리 할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이다"라고 하였다.
  ★ 사람은 육신으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살며 연령으로 살지 않고 이념으로 살고 이론으로 살지 않고 행동으로 인생을 산다(미상).
  ★ 일년 사망자 수는 약 2,220 만명인데 7세에 죽는 자가 전체의 4분의 1이고, 17세까지는 2분의 1, 65세까지는 100분의 1, 80세까지는 500분의 1, 100세까지는 1만 분의 1이라고 하였다.


  ★ 팽조(彭祖)라는 사람은 800세를 살다가 죽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그의 아내는 부족했던지 몹시 서러워했다고 한다.
  이웃 사람들이 가서 위로하기를 인생이 80을 살기도 드문 일인데 하물며 그보다 100배를 더 살았으니 그만하면 족하지 아니 하냐고 하니 그 부인은 말하기를 800세도 많기는 하지만 900세보다는 적지 않으냐고 했다니 장수의 욕구는 한이 없는 것 같다.

  ★ 미국에 유명한 메이요 병원으로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해답을 얻기 위해 찾는 사람이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병원은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데 평균 20년 이상씩 의료계 경험을 가진 의학계의 권위자로 구성된 의료진은 각양 각색의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한 결과 많은 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각 국의 왕이나 대통령을 비롯해서 유명한 예술가들, 정치가들, 농부들에 이르기까지 각계 각층에서 이 병원을 다녀간 자는 무려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다.

  ★ 미국 메이요 병원에서는 장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 장수는 자기 자신에 달려있다.
  2) 정기적으로 진단을 받으라.
  3) 증세를 무시하지 말라.
  4) 체중을 줄이라.
  5) 술을 조심하라.
  6) 담배를 끊으라.
  7)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
  8) 낙관적인 마음을 가지라.
  9) 휴가를 즐기라.

  ★ 성서에서 장수의 비법은
  1)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한다(잠 10 : 27).
  2)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면 장수한다(잠 3 : 2).
  3)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장수한다(신 30 : 20).
  4)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를 지키면 장수한다(신 4 : 40).
  5) 부모에게 효도하면 장수한다(엡 6 : 3).
  6) 탐욕을 미워하면 장수한다(잠 28 : 16).
  7) 생명을 긍휼히 여기면 장수한다(신 22 : 67).

  ★ 오스트리아의 어떤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의 영혼이 뛰쳐나와서 차 밑에 있는 자기의 시체를 교통순경이 정리하고 있는 것이나 그 시체를 싣고 병원에 가서 의사가 죽었다고 진단한 후 그 시체 위에 흰 보자기로 덮어놓은 것을 다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그 영혼이 자기의 시체에 다시 들어가니 그 사람은 살아서 그러한 사실들을 전부 간증했다 한다.
  영생이 있다는 증거이다.

  ★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 한 여인이 어린애를 낳다가 죽었단다. 그 죽은 영혼이 시체를 떠나 지켜보니 자기가 죽었다고 모두들 슬퍼하더란다.
  그리고 난 후 그 영혼 하늘나라에 가서 천국의 아름다움을 천사에 이끌려 구경하는데 너무나 아름다웠다. 하지만 세상에 어린 자녀들을 두고 온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좋긴 하지만 세상에 어린 자녀들이 있으니 날 좀 다시 살려 주십시요"하고 간청했더니 천사가 다시 내려가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죽어서 장사지내려 했던 그 시체 속으로 영혼이 다시 들어와 살아난 후 실제로 자기가 겪은 것들을 간증했다.

  ★ 성녀 카타리나는 20세 되는 해에 도미닠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 처녀로 주님을 봉사한 사람이다.
  그는 88일의 장기간 단식 기도한 바 있다. 또 그에게는 성 프랜시스에게 있는 성혼과 같이 그리스도의 못 자국이 다섯 곳에나 생겼다.
  그는 간증하기를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께서 내게 오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가 33세 되던 해에 병에 앓다 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하늘을 향하여 "주여, 지금 내 영혼을 받으소서"하고 운명하였다.

  ★ 천로역정을 저술하여 널리 알려진 영국의 죤 번연은 168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시체는 런던 번 힐필드에 묻혔다. 그 무덤에는 해마다 많은 여행자가 찾아든다 한다.
  그는 어느 불화한 부자간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여 주기 위하여 뻐드포드에서 리딩으로 말을 타고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도중에서 폭풍우를 만나 옷이 함빡 적셨다. 원래가 약했던 그는 그만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후 열흘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가 최후로 한 말은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제가 이제 당신께로 가나이다"라고 했다.

  ★ 프랜시스 자버엘은 1552년 12월 2일 광동에서 반나절 동안의 항해  거리인 산시안섬 해변의 작은 막에서 운명을 하였다.
  살을 메우는 듯한 추운 겨울에 더러운 초막에서 최후로 한 말은 시편 31편 1절에 있는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노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11년 동안의 선교 중 75만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한다.

  ★ 황해도 봉산군에 계동교회가 있는데 6·25를 전후하여 장로 7명 중 4명이 순교를 당했다.
  그 중의 강석기 장로는 공산주의자들이 나무에 묶어 놓고 눈알을 다 뽑았다. 두 눈이 다 빠져 피가 흐르는데 강 장로님은 "내가 두 눈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하늘나라를 볼 수 없더니 두 눈이 빠지니 하늘나라를 볼 수 있구나"하며 외쳤다.
 
 

   ★ 영원한 집으로 가야지
  존 애덤즈 목사에게 한 사람이 문안했다. "목사님 요즈음 기력이 어떻습니까?". "예, 존 애덤즈는 든든한데 그가 사는 주택이 형편 없어요. (머리를 가리키며) 지붕이 이렇게 낡은 데다가, (가슴을 가리키며) 벽도 흙이 다 떨어지고 기둥만이 앙상하게 드러났답니다. 그 뿐만이 아니지요. (지팡이를 보이면서)바람이 불면 집이 넘어 질까봐 이렇게 받침대까지 있답니다.
  어디 살겠오. 이제 튼튼하고 영원한 아버지 집으로 이사를 해야지요"하고 존 애덤즈 목사님은 대답했다.

   ★ 굳나잇인가
  뉴욕의 랭그릴 박사는 신앙이 돈독한 한 실업가의 이야기를 하여 주었습니다. 그는 불행히도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생명이 이제 두 시간 밖에 계속되지 못할 것을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다는 그의 신앙은 털끝만치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가족들을 머리맡에 불러놓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굳나잇 사랑하는 아내여 밝은 때나 어둘 때나 나와 같이 걸어와 주었지요. 당신은 내가 한 모든 일을 격려하여 주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당신의 얼굴에 빛나고 있는 것을 몇 번이고 보았습니다. 당신이 나의 신부가 되던 때보다 나는 지금 당신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굳나잇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 굳나잇 굳나잇 메리 너는 우리들의 처음 딸이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너는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는지 모를 것이다. 메리 너는 참으로 독실한 신자이다. 아버지가 어떻게 사랑하였는지 너는 결코 잊어버리지 않겠지 굳나잇 메리야 굳나잇 윌(그는 장남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윌 네가 우리 집에 태어난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 너는 너의 아버지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 항상 너는 기독신자로서의 모든 은혜와 덕을 기르겠지 너는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을 지니고 있다. 굳나잇"
  "윌아, 굳나잇"
  굳나잇 그레이씨 - (다음은 촬리의 차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쁜 물이 들어서 타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몹시 부모를 실망케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죽음 처한 그는 그를 지나쳐 그의 귀여운 어린 막내딸에게 이야기를 건넨 것입니다.)
  "그레이야 - 너는 오랫동안 기쁨의 노래였고 희망의 빛이었다. 요사이 네가 그리스도에게 너의 전 생활을 내맡기었을 때 아버지의 행복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다. 굳나잇 귀여운 딸아 굳나잇 귀여운 딸아" 굿나잇 굳바이 촬리 마지막으로 그는 촬리를 머리맡으로 불렀습니다. "촬리 너는 참으로 유망한 소년이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네가 어른이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줄로 믿고 있었다. 우리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준 모든 기회를 네게 다 주었었다. 어떤 차별이 있었다고 할 것이면 우리들이 너에게 특별한 후대를 하였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너는 우리들을 실망시켰다. 너는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경고의 말씀에 착념하지 않았다. 너는 또 구세주의 부르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촬리 나는 너를 언제나 사랑하여 왔다. 내가 너를 어떻게 사랑하여…… 굳바이 촬리 굳바이"
  촬리는 아버지의 손을 쥐면서 흐느껴 우는 목소리로 "아버지 다른 사람에게는 굳나잇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째서 나에게는 굳바이라고 하십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그것은 이렇다.
"그 아침이 되면 다른 식구들은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나님의 모든 언약을 쫓아 다른 식구들과는 다시 만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나는 그 곳에서 너를 만날 희망은 가질 수 없지 않니 굳바이 촬리 굳바이"
  촬리는 죽음에 임박한 아버지의 곁에 무릎을 꿇고 영혼의 고민 가운데 슬피 울며 자기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 드렸습니다. "촬리 그것은 정말이냐 네가 진심으로 기도하고 있니" "하나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비탄의 눈물을 흘리는 청년의 대답이었습니다. "촬리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너의 기도를 들으시고 너를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이런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촬리는 지금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어 활약하고 있습니다.


성구와 금언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 : 20-21).
  ★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나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 : 50).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 : 13)(계 21 : 1).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는 날 우리의 지은 죄가 많은 것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한 선이 적음을 슬퍼할 것이다(우찌무라간쇼오).
  ★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소인의 마음이다.
  ★ 나의 현재 생활은 내세에 가기 위한 터전을 닦는 것이다(김용기장로 가나안 농군학교장).

사후 삶에 대한 학자들의 증거 :

죽은 후에도 삶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하여 학자들간에 찬 반론이 지금까지 대두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연구하고 의논하기 위하여 세계 학자 600명이(과학자 사학자 물리학자) 1978년 8월 13일 오스트리아의(인스부르크)에 모여 진지하게 연구 검토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로이타 합동 통신에 의하면 6백 명의 학자들이 5일간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증거)가 나왔다.
  로마 대학에서 심리학과 심령학을 강의하고 있고 카톨릭 사제이자 회의 조직자인(안드레아스 레쉬)박사는 조사결과를 보고하기를 〈거의 모든 경우 통상으로 죽은 친척의 모습을 한 사자가 나타나 〈이제 너를 데려갈 때가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그때 그들은 행복감에 도취된다〉고 말했다.
  이런 괴이한 이야기는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을 들은 친척이나 의사들뿐만 아니라, 임상적으로 죽었다가 현대의료장비의 도움으로 소생된 사람들이 직접 회상하는데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의에서는 또 임상적 죽음에서 되살아난 생존자들이 가장 위독한 시간에 그들의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을 느꼈다는 주장도 나왔다.
  레쉬박사는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를 〈지나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한 서독의사는 2주일 동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회복된 후 그가 구급차에 실린 순간부터 의사들이 자신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지적 많은 심리학자들은 이같이 사후 환각이 육체가 죽음의 고통에 빠져 있을 때 진통제를 쓰기 때문에 뇌 속에 산소가 결핍 된데 따른 것이라고 일축해 왔으나 미국의(카롤스, 오티스)박사는 그 같은 환각이 통상 격렬하며 놀라운 것들인 반면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평정과 행복만을 알게 될 따름이라고 주장했다.
레쉬박사는 이 같은 현상이 (카톨릭)교회의 좋은 자료가 된다는 주장을 부인하면서 〈반대로 그것이 큰 위험이 된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일축하였다.

죽음을 이긴 사형수 :
〈신부님 울지 마십시오〉 이 말은 사형수 엄기덕씨가 사형 받기 바로 즉전하는 말입니다. 엄기덕은 춘천에서 소를 몰고 가던 소 주인을 살해하고 소를 훔친 죄로 사형수가 되었다.
  그는 감방 안에서 천주교를 다녔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업하였다 한다.
  오늘은 엄기덕씨가 사형을 받는 날입니다. 사형장은 약 50평 대지 위에 세워진 15평 가량의 목조 건물이었다. 사형장 안에는 방청객과 당직인 담당관으로 자리를 메웠고 007가방을 무릎에 얹고 앉아 있는 옆에 기독교인 목사 그리고 집행관 입회 검사 서기 구치소 명적과의 서기 시체를 확인할 의사 등이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테이블 바로 밑 한 계단 낮은 곳에 그 돗자리가 깔려있고 입회 관 석 정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사방 3미터 크기의 흰 포장이 쳐 있고 이 포장 안에 교수대가 장치돼 있었다.
  얼마 후 푸른 수의에 유난히 하얀 얼굴을 한 사나이 엄기덕이 나타났다.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고 굳은 방청석과 집행관 석의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뚜벅뚜벅 돗자리가 있는 곳으로 담당관의 안내에 따라 걸어왔다. 그 돗자리 앞까지 오더니 방청석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더니 입에 미소를 띄우며 소리쳤다. 〈신부님〉 신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만을 흘리는데 사형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신부님 울지 마세요〉 사형수의 목소리라고 믿어지지 않는 밝고 깨끗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신부님 저는 죽는 것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고 무섭지도 않습니다. 신부님 슬퍼하지 마십시오. 신부님이 우시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감사의 얼굴로 신부에게 인사를 한다. 또 신부님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참으로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고 그리고 방청인들도 연신 눈물을 닦았다. 계호를 맡은 담당관들은 사형수를 돗자리 위에 앉혔다. 돗자리에 꿇어앉은 사형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 기도가 끝나자 사형의 사무적인 절차에 들어가는데 살벌하고 절망적인 사형장이라기 보다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먼저 인정 신문이 시작되었다.
  집행관은 규례상 소장이 담당하게 되었지만 오늘은 과장이 그 업무를 대신하기로 되었다. 인정 신문이란 집행되는 사형수가 틀림이 없는 본인인가 확인하기 위해서 입소 할 때의 명적과에서 만든 신분 장은 제소 자들의 기록카드이다.
  카드를 들여다보며 집행관의 심문이 계속되었다. 〈성명은 무엇인가〉〈엄기덕입니다〉〈몇 살이지〉〈네 38세입니다〉〈본적은〉〈네 강원도 정선군 ○○면 ○○리입니다.〉
  인정 신문이 끝난 다음 집행관이 사형수의 신분 장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엄기덕은 강원도 춘천지방 법원에서 1975년 10월 21일 강원도 춘성 군에서 달구지를 끌고 가던〉 그때였다 엄기덕은 숙이고 있던 얼굴을 가만히 들었다. 〈과장님〉 제가 한 일을 너무나 잘 압니다. 이상 낭독을 말아주기 바랍니다. 집행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엄기덕의 청을 받아들여 감동에 떨리는 목소리로 형 집행을 선고했다. 〈법무부장관의 명에 의하여 사형을 집행하겠습니다〉 기어이 모두 끝났다. 이제는 사형대로 가는 길만이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할 말을 하라고 하는 집행관의 말에 조용히 뜨거운 감사가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내가 너무 소장 님 여러 과장님 교무 계장 님 담당여러분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한 채 가는 것이 괴롭습니다. 여러분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형수는 방청석으로 얼굴을 돌려 신부에게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신부도 그 말을 듣자 방청석에서 일어나 엄기덕 앞으로 나아갔다. 집행관과 방청객이 주시하는 가운데 미사가 올려지고 신부의 눈물 먹은 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경건케 했다.
 〈지극히 어지신 성부여 우리는 이 교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와 더불어 끝 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할 것을 확신하며 그의 영혼을 아버지께 맡기나이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들어주시고 그에게 천국 낙원의 문을 열어주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엄기덕은 신부의 기도가 진행될 때마다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되풀이하였다. 미사 경보가 끝나자 신부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마지막 기도 송을 울렸다.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천주여 오늘 이 세상을 떠나게 하시는 교우를 위해서 비 오니 그의 영혼을 원수의 손에 넘기지 마시고 주께서 맡아주시옵소서. 그리스도 이름으로 비나이다〉
  집행관과 방청인들의 눈에서도 쉴 사이 없이 눈물을 흘려 사형장이라기보다 경건하고 행복한 예배 장소로 착각되는 것이다. 모두가 만족하게 끝나서 행복한 듯 평안하고 조용한 엄기덕의 얼굴에 흰 보자기가 씌워졌다. 그리고 수정 찬 손을 묶고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잡아 매었다. 그리고 발목을 묶고 걸어갈 수 없도록 한 후 교도관들이 부축하여 교수대로 안내되는 엄기덕의 입에서 조용한 기도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주여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주여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엄기덕을 사형 대 앞으로 이끌고 가 흰 커튼을 젖히니 누런 굵은 줄이 매달린 교수대가 바로 눈앞에 보였지만 그것이 조금도 끔찍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웬일일까. 그는 내세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교수대에 엄기덕을 앉힌 후 커튼이 다시 가리워짐과 동시에 〈꽝〉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끝이 났으나 하늘에서는 천군 천사들의 호위에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인도될 것이다.
그러나 영생의 소망이 비기독교인 사형수들은 죽음이 두렵고 무서워서 발악을 하고 몸부림을 치고 죽는 이와 비교해 볼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내세의 소망아래 삶이 인생의 행복이라 느낌이다.
  (고목에 샘물이 흐르고 에서)

  ★ 다시 만납시다 : 이 말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사람의 생명을 죽인 김대두 사형수가 예수 믿고 처형당하면서 방청객들에게 외친 유언의 말이기도 합니다. 고목에서 샘물이 흐르고 난 책을 보면 김대두가 전도를 받고 예수를 영접하고 죄수복 입은 전도자란 이름을 듣고 마지막 처형 받는 순간까지 찬송가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오늘은 김대두 처형이라 하니 방청객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사형장 안에는 집행관과 방청인으로 자리를 매웠다. 시간이 다가오자 긴장한 사형장 안에는 입구의 문이 열리고 네 명의 교도관의 계호를 받는 김대두의 모습이 나타났다. 순간 물을 끼얹은 듯한 조용한 사형장 안에는 팽팽한 긴장이 돌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일 뿐 곧 사형장 안에는 긴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할렐루야〉김대두가 사형장에 들어서자 외친 첫 마디였다.
  어쩌면 그토록 의젓하고 평안할 수 있을까. 집행관 석으로 걸어나온 그의 얼굴은 화창한 미소가 넘쳤고 사형을 받는다는 기분이 하나 없이 스데반이 돌무더기가 될 때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은 모습을 연상케 했다.(박금출 참조)
  〈할렐루야 목사님〉 그는 김수진 목사님을 향하여 소리를 쳤다. 〈목사님 많은 신세를 지고 갑니다〉 빚만 잔뜩 지고 가는 심정입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강 교도관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 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강 교도관의 얼굴에도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 대두는 격려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교도관 님 저 때문에 속 많이 썩으셨지요. 그러나 교도관 님이 저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주신 은혜는 저 세상에 가서도 잊을 수 없겠지요. 저에게 주신 사랑에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하고 가는 것을 용서하세요. 하늘 아버지가 갚아주시도록 부탁드리겠어요〉
  그리고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감격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는 집행관과 눈물을 닦고 있는 방청석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 날을 가장 좋은 날로 택하시어 저를 부르시는 하늘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저의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에겐 주님께 영광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죽음은 너무나 과분합니다. 지옥 밑바닥에 떨어져야 할 흉악범인 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흉악범까지라도 사랑하셔서 영접해 주셨으니 이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나타내야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는 교도관의 인도하는 데로 집행관들 앞에 꿇어앉아 잠시 고개 숙여 기도를 했다. 그의 볼에는 비로소 맑은 눈물이 줄을 이어 흐르고 있었다. 〈주님 주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 의지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기도는 시종일관 주님과 모든 사람에게 대한 감사뿐이었다.
  집행관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는가 고 물었을 때 김대두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재판 받기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셔서 주님 믿고 구원받게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여기 계신 집행관 님 또 방청인 여러분 가운데 예수를 믿지 않는 분이 있다면 빨리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과 영 이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꼭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제가 드리는 마지막 부탁입니다.
  사회가 전과자들을 좀 더 따뜻이 대해 주셔서 갱생하는 길을 넓게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두운 그늘에 있었던 이들이기에 그들의 꿈은 더욱 간절하고 누구보다 크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전과자들이 출소하기 전 여러 가지 꿈을 설계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이루어 살아보려고 마음이 부풉니다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의 차가운 눈초리만을 대할 때 다시 범죄 하는 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그의 말에는 평안과 권유가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김수진 목사님은 눅 23:32절을 읽고 나자 김대두는(아멘) 그리고 그가 즐겨 불렀던 찬송을 힘차게 불렀다.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도 외로와 정처 없이 다니니 예수 예수 내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떠나가지 마시고 길이 함께 하소서〉김대두는 수정을 찬 손을 가슴에 대고 우러러 주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찬송을 찬송을 계속 불렀다. 찬송이 끝나자 목소리를 합하여 사도신경을 고백했다. 그리고 처형대로 향해 한 발 걸어가며 찬송을 부르면서 우리들과 이별했으나 영영 이별이 아니라 믿는 자로 하여금 다시 만남의 소망 적인 이별이다.
  (김수진 고목에서 샘물이 흐르고)

  ★ 미국 시민권 : 구로 중앙교회 시무 한 곽 목사님의 간증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얼마 전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귀국하였는데 곽 목사님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곽 목사 영주권 보여줄까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어 하면서 아랫배 깊숙이 넣어둔 영주권을 꺼내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의 영주권이 귀합니다. 그러나 영주권을 가졌다고 해서 미국에서 100년 200년을 못삽니다. 그러나 천국의 시민권은 얼마나 귀한 줄 알겠어요.
이 시민권은 영원히 부귀 영화를 누릴 특권이니 얼마나 귀하게 간수해야 할까요(곽전태).

  ◎ 나는 죽지 않는다 : 브라더 로렌스가 발견한 진리를 소개합니다.
  그가 어느 겨울날 보 잘 것 없이 보이는 나무 가지만 남아 있는 나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나무 가지를 잡았을 때 갑자기 잡았던 나무 가지가 눈 덮인 땅에 떨어졌었다.
  그때 그는 그것을 보면서 형광등 같이 깨달음이 왔다. 〈이 나무는 죽지 않았다. 겨울철에 얼마동안 죽은 듯이 서 있을 따름이다. 봄이 되면 나무 속에서 힘이 작동한다. 죽은 듯이 보이는 가지에서 새싹과 새잎이 나올 것이다〉
  나도 죽지 않았다. 새 성공과 영생의 싹이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분명히 운명을 지배한 자가 있다. 에너지가 존재한다 힘이 존재한다. 권력가가 존재한다. 그분은 좋으신 분이다. 그분의 이름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여기에 계신다. 바로 당신 앞에 계신다.
  그는 옛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 중 겨울철과 같은 시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는 당신을 인생 중 겨울철과 같은 시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그는 당신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영생에 관한 예화 모음

▣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어머니의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누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하자. "너는 지금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죽을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생에서는 태어난다고 한단다." 이 태아는 이렇게 항의할는지 모른다. "싫어요. 난 여기가 좋아요. 먹을 것도 있지요. 따뜻하지요. 사랑받지요. 보호받지요. 너무 편하고 좋아요. 여기서 나가는건 싫어요." 그러나 태아는 자궁 속에서 예정된 시간을 끝내고 출산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러면 아기는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스런 두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랑스런 엄마의 품에 안기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참 좋구나. 세상이라고 부르는 이것이 내가 태어나기 전의 그곳보다 더 좋아. 이곳 생활이 옛날 생활보다 훨씬 좋아." 이렇게 해서 행복한 유년시절이 흘러가고 아이는 청년이 되어 보람차고 의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며 성인이 된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고 노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그때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난 여기가 좋아"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의 앞에는 어머니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이 그를 내려다 보고 계신다. 그는 영원하신 주님의 품에 안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복이 있다. 육신의 장막이 무너지면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 기쁨 속의 죽음

유명한 제인웨이 목사는 목사가 되어 너무 큰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다가 목사로서 두 번 설교하고 폐가 상하여 죽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을 생각할 때에 너무 기뻐서 말하기를 "아!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기쁨의 100분지 1이라도 발표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는 별세시에 말하기를 "은혜 안에서 죽음은 내게 대하여 아무 것도 아니다....나는 눈을 감는 것과 같이 쉽게 죽을 수 있다. 내가 보는 저 영광 때문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주기 때문에 이 복음을 진실히 믿는 사람들은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눅9:57-62)

▣ 영생의 소망

어느 날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함께 놀았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그만 놀고 내일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내일이 뭔데?" "캄캄한 밤이 지나면 밝은 날이 오는데 그게 내일이야." 하루살이는 메뚜기의 이 말을 듣고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 메뚜기는 어느 날 개구리와 함께 놀았습니다. 개구리는 "날씨가 추워지니 그만 놀고 내년에 만나자."고 말했습니다. "내년이 뭔데?" 내년은 겨울이 끝난후 날이 따뜻해지려고 할 때 오는 거야." 그러나 메뚜기는 개구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죽은 뒤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밖에 모르는 사람은 "영생이 뭔데?"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날 때 영생이 있음을 압니다.
기독교의 복음에서 영생에 대한 소망은 기독교신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삶이 결코 현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내세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에게는 소망이라는 백신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만은 미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고 내일보다 모래가 더 좋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는 소망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는 것으로 영생이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인정만 하는 데서 그치시는 지요? 아니면 그 사실을 누리면서 사시는지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2)
/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

▣ 죽음에서 소망을 보는 기쁨

피지섬에 사는 원주민들의 관습 가운데는 죽은 사람을 부르는 "초혼제"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초혼제의 절정은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나무나 절벽에 올라가 '돌아와요! 돌아와요! 돌아와요!'하고 슬피 울부짖는 것입니다. 이들 원주민들은 죽은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오열(嗚咽)을 합
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죽은 이 를 위해 오열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슬픔은 곧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 할 것으로 다시 살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인의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단지 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말입니다.(고전15:51, 52, 살전4:16)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4:13,14)
* 기도: 주님, 이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부활의 영광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생의 출발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영예로운 죽음도 있고 비천한 죽음도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사람은 두렵지 않다. 죽음은 영생의 출발이므로.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가치있는 삶을 산다.M.E.몽테뉴는 말했다.
『미리 죽음을 생각해 두는 것은 자유를 예상하는 것이다.어디서든지 그것을 맞이 할 준비를 갖추자. 생명을 잃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불행하게 살지 않는다. 사람에게 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곧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 부활과 영생

본문: 요한복음 5:19-29 * 찬송405장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인생들에게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이 있습니다. 수많은 인생들이 이 죽음을 극복해 보려고 하였으며 많은 종교에서 해결하려고 하였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독한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심판을 면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나 예수님에게 위임하셨으므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심판을 받지 않고 혼인잔치와 천년 왕국과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생하게 될 것입니다. 주안에 있는 자는 부활을 통하고 산 자는 휴거를 통하여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첫 부활에 참여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혼의 부활뿐만 아니라 몸의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재림하실 때 주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먼저 부활한다고 하셨습니다. 영원히 죽음에서 멸망할 것이 아니라 첫 부활이 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금 믿음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는 부활, 심판, 영생과 관계됩니다. 믿는 자는 이미 현세에서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면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부활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축복을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 기도: 우리를 위하여 첫 부활이 되시고 영생의 축복을 주시는 주님을 위하여 충성, 봉사, 진력하게 도와주시옵소서.

▣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

15세 된 여자아이가 뜻밖의 병을 얻어 반신불수가 되었다. 그 아이의 친구가 위문하러 와서 병자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가엾다. 네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러자 병상의 소녀는 친구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단다. 나의 참 삶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단다. 나는 가까운 날 영광의 주를 볼 것이고, 너와 같은 모습으로 변하여 영광에 영광을 더할 거야."
* 참조: 마18:8,9, 막9:43, 45, 살후1:10, 벧전1:8

▣ 영생에 이르는 길

미국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목회하던 한 목사님은 어느 날 아침 그 지역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죽어가는 펠릭스 리치라는 환자가 목사님 한 분과 상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가겠다고 약속하고 급히 차를 몰아 그의 병실에 도착하였습니다.
리치는 “목사님! 제 삼촌도 목사님이었는데 하나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전 듣지 않았답니다. 제 아내가 늘 저를 교회에 데려가려 했지만 전 가지 않았어요. 이제 저는 창조주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제 일생은 죄로 가득합니다. 아! 어떻게 하죠?” 하고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회개와 용서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진실하게 자기의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말해 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시간 리치는 회개하고 자기의 일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도 목사님은 문병을 갔는데 놀랍게도 리치의 몸은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주 후에 그는 퇴원을 하고 주일에 목사님의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 후로 8년 동안 매주일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같은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그는 창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 영생의 복

본문: 시편133:1-3 * 찬송 272장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본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복을 명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은혜를 받읍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하였습니다. 한 가족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가운데서 행복스러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공동체는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가정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에 "마음을 같이 하여" 합심기도 할 때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일찌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들과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전도서 4장 9절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하고, 12절에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한다",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젓가락 열 개를 한데 묶어서 꺾으려면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개씩만 꺾으면 쉽게 꺾어집니다. 이승만 박사께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단결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본문 3절에는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하였습니다. 연합하는 데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영생의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의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거구의 몸을 지닌 동물이라도 또는 어떤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는 동물이라도 동물에게는 '영생'을 주신 일이 없으나 사람에게만은 특별히 '영생'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 기도: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주님, 인간들의 마음이 더욱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에 빠져들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더욱 합심하여 선을 이루는 일을 영생의 복으로 삼게 하옵소서.

▣ 정말 영생을 얻었습니까?

본문: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한 신학자의 비유적 말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천국에 가보니 자기 교회에서 잘 알려진 분이 큰 상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분이 천국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놀라게 됐다고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 교회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았던 교인인데 천국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상급을 받은 성도의 반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이 영광스러운 나라에 왔다는 것이 놀랄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으로는 하나님의 참뜻을 분별할 수도 없고 겉으로 그의 신앙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중생하고 영생을 얻은 확실한 천국 백성이 되는 자격의 말씀을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지적인 믿음으로서 역사적인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마 1절,사 53:4∼6)과 십자가의 죽으심,부활하시고 승천 재림까지에 대해서 복음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의심치 않고 믿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옵니다. 믿어지는 신앙과 동의할 수 없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요한복음 15장 26절 말슴처럼 성령이 내주하여야만 복음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마음 중심에 모시고 영접할 때(요 1:12) 나의 이름이 사망에서 생명으로(요 5:24) 옮겨져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바로 참된 영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의지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이러한 온전한 영생 즉, 구원을 얻는 믿음을 가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말씀을 의심없이 믿는 정적인 믿음과 그분을 전적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시는 가정이 되길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확신하며 의심치 않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강호 목사 (봉천교회)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솔로몬 왕은 인간 영화와 우생의 극치를 누린 사람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 왕족들이 정치 결혼을 원해서 공주격 처첩이 천 명이고 황금 궁전에 학문적 예술적 위락적 모든 조건을 갖추었었다. 눈이 원하고 입이 원하고 육체가 원하고 마음이 원하는 무엇이나 다 해 보았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전2:25)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 없는 삶의 전방위 추구의 경험적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허무였다(전1:2).
영원과 하나님으로 채워야 할 공간을 유한한 임시적인 대용품으로 아무리 채워도 갈증은 더하기만 하고 만족도 행복도 안식도 없다(전3:11; 12:13). 우리 마음은 우주를 담고도 모자란다. 인간은 우주보다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삼천 마일 떨어진 내륙에서 조개껍질을 귀에 대고 들으면 바다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바다소리가 들리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영혼의 귀에 영원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막지말라.
-예수칼럼 : 김준곤-

▣ 영원한 쉼터

우리 부부는 미국 LA 은혜교회 김광신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김목사님은 1년 예산이 50억원이나 되는 큰 교회 목사님이신데 13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계셨습니다. 반찬은 세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막 집회를 마쳤습니다. 지친 사모님이 김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3일만 휴가를 주세요. 강목사님 사모와 둘이 팜 스프링에 가서 쉬고 오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 나는 얼른 받았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우리 남자들끼리 일할 테니 가서 쉬고 오세요” 이때 김목사님이 정색을 하고 손가락으로 위를 가르키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저 세상에 가면 영원한 휴가가 있는데 왜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낭비하려고 그래요”
지금도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김목사님의 그 손가락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인생을 풍요롭게 누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주님이 주신 사명이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강문호 목사

▣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

토마스 모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왕에게 항복하라고 그를 졸랐다.
"우리는 아직도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꽃 같은 나이에 당신과 우리 가족에게 가장 비극적인 불행을 가져오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모어는 이렇게 되물었다.
"당신은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최소한 20년은 사실 거예요."
그러자 그는 소리쳤다.
"이 땅에서의 20년밖에 안 되는 삶을 위하여, 내가 영원한 삶을 포기하고 고통에 나를 내어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오! 영혼을 잃는 것보다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잃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이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소?"
* 참조: 요일1:2, 요일2:25, 단12:2,7, 요10:28, 12:25

▣ 영생의 낙(永生之樂)

사람들이 가장 슬퍼하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이 죽음은, 죽은 후에는 영영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보다 억만 배나 나은 영생이 있음을 알아 즐거워하는 것이다.
이 영생은 이 몸을 벗은 후에 영혼, 곧 속사람, 다시 말하면 정신과 마음과 뜻과 성품이, 이 몸을 벗어나서 하나님 계신 곳에 가서 괴로움 없이 평안함이요, 슬픔이 없이 즐거워하는 것이며, 욕 없고 영화가 있으며, 병 없고 건강하며, 죽음이 없고 영영 사는 것이다. 또 밤이 없고 낮뿐이며, 원수가 없고 사랑만 있는 곳에서 무궁토록 그 영화를 누리는 것으로 이 어찌 즐겁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신자는 죽는 것을 마치 배를 타고 먼 바다를 건너 가, 고향에 내리는 것 같이 생각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 무덤에 집착하지 않는 신앙

어떤 기독교인이 이슬람교도들은 순례지에 선지자들의 무덤을 보존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어디에 묻혔는지도 모른다고 조롱당했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때 그 기독교인은 “우리에게는 시체가 없기 때문에 무덤이 필요없다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우리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무덤도 시체도 없다. 미켈란젤로의 전기 중에서 그가 제자에게 한 말이다. “왜 자네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그렇게 많이 그리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셨기 때문에? 오히려 부활하신 주님을 그리게나! 죽음을 깨뜨리고 승리하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죄와 죽음의 정복자이신 주님을 그리게나.” 영국의 로지 경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아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공개했다. “제 무덤에 오지 마세요. 저는 거기 없을 거예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처음에 죽으면 자기 남편 곁에 묻히고 싶어했고 그래서 아프리카에 있는 남편 무덤 곁에 자기 무덤을 준비해두었다. 그러나 모니카는 자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고는 아들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내 몸을 아무 데든 묻어라. 장지 문제로 신경쓰지 말아라.”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묻히게 되어 두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나님께는 먼 곳이 없단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의 삶은 무덤에 집착하지 않는다.

▣ 나는 영원히 살테야

월남 이상재 선생은 YMCA 운동의 선구자였다. 하루는 어떤 청년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신문에 보니까 영국 수상 처칠은 100세를 누릴 수 있다고 장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120세는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 것 같은데, 얼마나 사실 것 같으십니까?”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답변했다. “그 사람들은 사는 법을 몰라. 나는 영원히 살테야 !”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사는 법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기에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살려주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주셨다.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는 나사로도 살려주셨다.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이 삼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의 심령은 살아난다. 생명을 얻은 우리의 심령은 육신이 무너진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 죽어가는 것이지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생명이 있음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프로포즈 / 박상훈>

▣ 죽지 않는 법

옛날 한나라의 무제는 장생불사를 위하여 승로반에 찬 이슬을 받아 마셨다고 합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하여 동방 삼신산에 동남동녀 500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동방의 삼신산이란 우리나라의 금강산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강산이 중국의 산들보다 훨씬 영적 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보냈지만 구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물론 먹고 불로장생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금강산에서 불로초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어리석어 불로장생하려고는 하지만 영생하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늙지 않는 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 법을 얻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지 않는 법을 아는 이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생명의 근원

성경: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위대한 의회 정치가인 글래드스턴의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쓰는 모든 것, 나의 존재의 모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신성- 그것은 우리들의 가련한 제멋대로의 경주에 있어서 중심으로 되는 희망이다- 그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것은 주 믿는 자의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만이 영생의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영생이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천국의 암호

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가 천국 문 앞에 서니, 한 천사가 그에게 암호를 대라고 했습니다. “나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에서나 나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가 물러가고, 외모가 훌륭한 다른 남자가 천국 문을 두드렸습니다. 천사가 암호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성직자로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의로운 일을 많이 했습니다. 유명한 기관들이 나에게 최고의 영예를 주었습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왕을 알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물러나자마자 할머니 한 분이 그 문에 이르렀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구부정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얼굴은 빛났습니다. 할머니는 손을 높이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피, 나의 대답은 오직 피라오. 할렐루야! 그 피가 나를 씻겨준다네!” 즉시 진주문이 열리고, 그 귀한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갈 때, 천국의 합창단이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우리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뿐입니다. 이것이 지금, 그리고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암호입니다.

▣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

미국의 정치인으로 일리노이 주 검찰총장을 지냈고 무신론자로서 유명한 로버트 잉거솔(1833∼1899)은 반기독교 강연자로 유명하다. 그의 일화에 따르면 그의 임종시에 딸이 물었다.“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의 뒤를 따라가야 합니까?” 그러자 잉거솔은 이렇게 대답했다.“지금까지 내가 주장한 무신론은 허무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니 너는 어머니를 따라 예수를 믿어라”고 했다 한다.
인간은 누구든지 죽음을 앞두고는 가장 진실된 말을 한다고 한다. 평생에 그렇게 강조했던 그의 무신론 강의도 자식에게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안됐고 안타까운 일인가? 여기에 그리스도인과 불신자의 차이가 있다. 아무리 세상에서 훌륭하고 큰 일을 한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면 내세의 확신은 없으며 죽음 저편의 영원한 삶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후에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런데도 세상에서 위대했던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 최후에 비참한 생애를 마친 자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죽음 앞에서 한 말을 보면,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대! 조세핀!” 이라고 외치며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외롭게 죽었으며 독일의 시인 괴테는 “어둡다.나에게 빛을 달라”고 했다. 또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았다. 나는 지옥에 떨어진다.오! 그리스도여 예수 그리스도여” 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다르다. 아무리 부족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다 구원을 받는다. 강도도 구원받고 세리도 구원받고 창기도 구원받는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거지 나사로는 죽음 후에 천사에게 받들려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다. 역사 속에서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아 내세의 확신을 갖고 천국에 들어간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좋다! 저 세상은 참 아름답군”이라는 말로 천국을 증거했고,천로역정의 저자 존 버니언은 “나를 받아주시옵소서 이제 당신께 가나이다”고 했다. 또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도중 순교하면서 “주의 손에 내 영혼을 돌려드리나이다”고 말했다 한다.
얼마나 아름답고 확신에 차 있는 천국에 대한 증언인가? 이처럼 내세의 확신이 있는 자만 전도자가 될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어둡고 불확실성이 극에 달해 표류하는 이 시대에 내세의 확신이 있는 전도자가 많이 나오길 기도한다.
/민경설 목사 (광진교회 담임목사)

* 묵상: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고 많은 봉사를 하지만, 여전히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굿나잇 키스…굿바이 키스

미국의 어떤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평생을 신앙으로 살아오던 한 어머니가 4 명의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게 됐다. 그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들들을 쳐다보며 작별인사를 해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첫째, 둘째, 셋째아들에게는 차례로 “얘야, 엄마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다오”라고 했는데 막내아들 앤디에게만은 “앤디야, 엄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해다오”라고 말했다.그러자 막내아들은 이상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왜 형들에게는 굿나잇 키스를 하게 하고, 나에게는 굿바이 키스를 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는 가슴속 깊이 묻어뒀던 말을 했다. “앤디야, 너희 형들은 이제 머지않아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제 너와는 영원한 이별을 하는구나. 이 엄마는 너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진리를 여러 번 간곡히 가르쳤지만 너는 끝내 거절하고 말았어. 다시는 천국에서 너를 만날 수 없기에 너와는 굿바이 키스를 하는 거란다” 어머니의 이 유언같은 말은 결국 앤디로 하여금 굿나잇 키스를 하도록 만들었고 구원의 길인 예수를 영접하게 했다.
/김의환 목사

▣ 하늘에 살아 있는 아들

링컨 대통령은 그의 아들 윌리가 죽자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를 위로하고자 프란시스 빈튼 박사가 말했다.
"각하, 각하의 아드님은 하늘에 살아 있습니다."
"살아있다고요? 지금 나를 놀리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각하. 제가 말씀드린 것은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 중 가장 위안이 되는 교리로서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잠시 동안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고? 월리가 살아 있다고?"
잠시 후 그의 얼굴에서 슬픈 표정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 참조: 사25:8, 35:10, 시133:3, 유1:21

▣ 밀라노 대성당의 세 문

밀라노에 있는 대 성당의 세 개의 문에 있는 아치형 길에 세 개의 글이 새겨져 있다. 한쪽 문 위에는 장미꽃의 아름다운 화환이 놓여 있고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기뻐하는 모든 것은 순간이다."
또 다른 문 위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그 십자가 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고통 받는 모든 것은 순간이다."
그러나 중앙 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이다."
참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을 지적해주는 말입니다.
* 참조: 벧전1:24, 25, 딤전1:16, 6:12

▣ 영생에 관한 성경 말씀

0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25:46)
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신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요3:14)
0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6:54)
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6:68)
0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0 영생은 곧 유일한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0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2:7)
0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5:21)
0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0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6:12)
0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2:25)
0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11)
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니라(요일5:20)

▣ 영생에 관한 금언

0 농아 학생에게 영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것은 전능자의 일생이다라는 아름답고 명쾌한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영생은 절대적인 이름으로 옷 입혀진 소극적인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적용시킨 것에 대한 현재의 존재요, 시작의 부정이거나 그 존재의 끝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윌리엄 펠리)
0 나는 사랑하는 자는 나와 함께 미지의 바닷가로 가는 것은 꿈꾸게 하라.(펠리시아 히맨스)
0 소원은 자주 무너지고 내 심장은 뜨거운데 이 세상에서 배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그 일이 저 세상에까지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란 천국에서 열매 맺을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겠구나.(wid 파울 리히터)
0 영원한 세계는 참으로 광대하구나! 그것은 태고부터 모든 인류를 삼키고 지금도 삼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끝없이 많은 인류를 삼킬 뿐만 아니라 신비로 가득찬 우주를 모아들일 것이며, 장면과 전망이 넓게 펼쳐져 많은 관심을 충족시키기에 족하고 다양하며 한없이 많은 지성적인 존재들의 마음을 끊임없이 흡수할 것이다.(나다니엘 에몬스)
0 모든 자연은 그의 자연적 만족을 갈망한다. 우리가 목말라할 것에 대비하시어 하나님은 갈증을 해결해 주실 물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애정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시어 그 애정을 만족시켜 주실 사랑이 있게 하셨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셔서 그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갈망할 것에 대비하셔서 그 갈증을 해소시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을 예비하신 것이다.(프래드릭 윌리엄 로버트슨)
0 영생은 축복으로든 고통으로든 그 자체가 완전히 신비롭고, 경의로운 모든 상태로 나타난다. 한 시대의 흥미가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리는 데 비해 영생을 계속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중압감과 그 중요성을 부여한다.(로버트 홀)
0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나 인간의 마음속에는 대게 미래의 실재성에 관한 확실한 육감 같은 것이 있다. 그러한 육감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들은 대개 위대한 천재들이나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다.(마르크스 툴리우스 키케로)
0 절망한 자는 자신의 소망을 확실한 신앙에 둘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그 방향으로 돌리고, 성공한 자는 그가 열렬히 추구한 목적이 불멸의 영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켜 주지 못함을 느끼며, 악인은 행여 그의 영혼을 구원하여 살수 있지 않을 까 하여 그의 행악에서 돌이킨다.(로버트 사우티)
0 영원한 세계는 언제나 엄하고 거대한 형상이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눈을 감은 채 엄숙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언제나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을 되뇌일 것이다.(로버트 브리우닝)
0 이 세상은 영원한 세상의 현관이다.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는 자는 그 현관에서 입장권을 받아야 한다. 그 입장권은 그리스도의 보혈이요, 그 문을 통과할 때 사용되는 암호는 "예수"이다.(김경선)
0 우리의 삶의 목표는 영생에 관한 방대한 문제의 해답을 얻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 현자나 천재, 그리고 철학자에게, 때로는 목사에게 질문해 보지만 속시원한 답변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문제를 응답해 줄 하나님께 마음 문을 열어 놓고 물어야 할 것이다.(죤 포스터)
0 우리는 영생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썩을 몸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의 속에는 아직도 죄가 꿈틀거리고 있다.(죤 칼빈)
0 우리가 영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더 아름답고 고상한 곳에 가기위해 가정을 떠나 죽음이라 부르는 일련의 끝없는 변천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영광스러운 영혼은 자신이 머물 곳을 찾아 환경과 행동 무대, 소망을 옮겨 놓게 된다.(에드워드 죠지 벌위 리튼)
0 어느 누구도 영생으로 바뀔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영생 안에 있기 때문이다.(프래드릭 윌리엄 파라)
0 이 세상은 원인과 경향의 씨앗이나, 저 세상은 수확과 결과, 완벽하고 영원한 결과의 세상이다.
0 영생! 당신은 어마어마한 생각에 만족하고 있는가! 우리들이 어떤 새로운 장면과 변화, 그리고 경험해보지 못한 다양한 일들을 통과해야만 하는가! 우리 앞에는 끝없이 넓고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지겠구나! 그러나 아직은 그 앞에 그림자와 구름, 어두움이 가려있네.(죠셉 애디슨)
0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짧고 일시적인 인생을 마친 후 자신이 들어가게 될 나라이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인간의 기대가 어떤 근거에 두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확신 위에서 희망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지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제임스 클라크)
0 다가올 영생에 대한 총체적이고 본질적인 준비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한 것을 믿고, 성경이 우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는 것이다.(토마스 챨머스)
0 만약 시간이 좀더 비열하고 적대적으로 흐른다면 영원한 세계는 좀더 당당하고 친절하게 보일 것이다.(토마스 칼라일)
0 모든 위대한 자연들은 안정을 기뻐하고, 모든 위대한 사람은 자신의 기능의 약속으로 확인된 영생을 발견한다.(랄프 왈도 애머슨)
0 두 세상의 실재를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적합한 것들을 정당하고도 생각하는 것 역시 매우 어렵다. 우리가 영원한 세계를 향해 가는 길에서 한눈 팔지 않고, 우리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을 언제나 약속의 땅에 고정시킨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어거스트 헤아)
0 영원한 세계가 단순히 시간과 죽음을 초월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이 세상에서의 모든 것들의 형태대로 그 자체를 구현할 수 있다. 영원한 세계의 빛과 힘은 어느 곳에나 잠재해 있으며, 지상의 모든 것들을 덮은 베일을 명료하게 벗기려고 하였다. 또 형용할 수 없는 광채로 인간의 평범한 삶을 온통 덮고 있다.(죤 캐어드)
0 영생에 대한 생각은 짧은 인생에 위안을 준다(샤레시앙 길라원 마레쉬에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