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영생이란 무엇일까요?
디모데전서 6:15-16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
영생이란 이 다음에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서 누리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구원 받은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하나님과 하나되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느 여름 날 들판에서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온 종일 함께 놀았습니다.
해가 뉘엿이 저물어 갈 무렵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내일 다시 만나자!" 하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에 "내일 다시 만나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메뚜기와 개구리가 여름날 자주 만나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이제 날이 추워질 무렵 개구리는 메뚜기에게 "내년에 다시 만나서 놀자!"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메뚜기에는 내년이 없기 때문에 "내년에 만나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짧은 이야기는 경험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경험되지 않은 영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을 얻고 이 다음에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신자(信者) 또는 교인(敎人)
신자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에 대해서 지적으로 동의한 사람을 말합니다.
지적으로 동의한 것만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7-18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야고보서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 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재미 있는 통계를 소개합니다.
25% 교인이 기도를 안하고
35% 교인이 성경을 안 읽고
60% 교인이 신앙 서적을 읽지 않고
70%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85% 교인이 단 한 명의 영혼도 인도한 적이 없고
100% 교인이 하나 같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싶다고 한다.
둘째는 제자(弟子) 또는 성도(聖徒)
사도행전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
사도행전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사도행전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제자는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후에 이 세상에서 구원 받은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자들의 삶의 특징을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섬기는 삶(마가복음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삶(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제자는 세상에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지만 그 환난 가운데서도 섬기며 기쁨이 충만한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습니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교리적인 가르침에 동의한 것으로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신앙이 아니라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신앙은 지금 이 세상에서도 영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생의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야 합니다.
안다는 것을 "기노스코(γινώσκω, 1097. ginóskó)" 라고 합니다.
"알기위한 것(to come to know), 인식하는 것(recognize, perceive)"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삶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친밀한 관계의 삶
누가복음 1: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누가복음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수태고지를 들었을 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이때 남자를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남자와 친밀한 관계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안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을 말합니다.
친밀한 관계를 알 수 있는 때가 언제 일까요?
건강하고 평안하고 행복할 때 입니까?
아니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입니까?
고린도후서 4:16-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시편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요한계시록 20:12∼15
⑫.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⑬.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⑭.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⑮.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τῇ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첫째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
둘째는 사랑하는 삶
요한일서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안에 참 평안, 행복, 만족, 기쁨, 시험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환난과 궁핍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능히 기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영생이란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지적으로 동의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아주 위급할 때는 지적으로 "아이구 하나님!" 하며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동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영생이 아닙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친밀한 관계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느냐?
나와 친밀한 관계를 끝날까지 유지할 수 있겠느냐?
비록 자신 있게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믿음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렇게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내 힘으로는 오직 주님만 사랑할 수 없지만 주님 내게 힘을 주시면 주님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가능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첫째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삶
둘째는 사랑하는 삶
셋째는 다스리며 살아가는 삶(창세기 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상실한 이후에 다스릴 수 있는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영생을 확신하는 신앙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사야 11:6-9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이사야 11장은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천국의 삶을 보여주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5:17-19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골로새서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을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다스리지 못하는 이유는 허물과 죄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영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에베소서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영생이란 예수를 구세주로 믿었다는 지적 동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지적으로 동의한 믿음으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아픔도 있지만 어떤 환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이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나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두렵게 합니다.
그러나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를 치료할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이란 백신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소망을 갖고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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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68-69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Simon Peter answered him, "Lord, to whom shall we go? You have the words of eternal life.
We believe and know that you are the Holy One of God.)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영생의 말씀을 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설교는 주로 장례식장에서만 듣게 됩니다.
오늘은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지난주간 설교 주제를 함께 생각하며 나누려고 “임사체험(臨死體驗)”에 대한 동영상을 소개했습니다.
임사체험이란 용어를 영어 약자로 "NDE"라고 합니다.
NDE란 "near-death experience"의 첫 단어의 글자를 합성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임사체험이라는 동영상을 통하여 기독교인이었든 또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든 임사체험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서 공통된 경험을 크게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임사체험을 경험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2∼3,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
(예) 스데반의 기도(사도행전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예)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기도(누가복음 23:46) 참조 마가복음 15:37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운명하시다를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숨을 거두셨다"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죽은 후에는 육체 밖에서 영혼의 기능은 활동합니다.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기능은 멈추었지만 영혼의 기능은 여전히 육체 밖에서 정상적인 기능으로 활동합니다.
임사체험을 경험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죽었다고 진단한 후에 자기 육신은 침상에 누워 있는데 자기 영혼이 그 위에서 가족들의 이야기와 의료진들이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욥기 19:26,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영혼은 긴 터널을 지나 찬란한 빛의 인도를 받는다.
죽은 후에는 긴 터널을 지나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찬란한 빛 가운데로 이끌려 간다고 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예수를 믿었던 사람과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 모두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을 하던 그리스도인이 죽었을 때와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술에 취하여 자동차를 운전하던 중 상대방 차선으로 뛰어들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죽었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갖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 발표에 따라 죽음 이후에 분명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영생(永生)”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전체에서 “영생”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이 19절입니다.
영생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영생을 얻는 비결을 네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주 예수를 믿는 자(3:15, 16, 36. 5:24, 6:40, 47)
둘째, 예수를 아는 것(17:3)
셋째, 말씀과 명령을 따르는 것(6:68, 12:50)
넷째, 떡과 잔에 참여하는 것(6:51, 54)
“영생이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세상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합니다.
과거의 시간은 이미 경험한 시간입니다.
현재의 시간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시간입니다.
미래의 시간은 앞으로 경헝해야 할 시간입니다.
영원이란 내가 경험한 과거와 경험하고 있는 현재와 경험해야 할 미래를 하나로 연결하는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핼라어에는 시간을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카이로스(καιρός. 2540. kairos)는 하나님의 시간을 말합니다.
크로노스(χρόνος. 5550. chronos)는 사람의 시간을 말합니다.
영생을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 되려는 삶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죽었던 몸과 영혼이 다시 하나 되어 온전한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영생을 얻은 주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경에서 시간이란 카이로스(καιρός. kairos)와 크로노스(χρόνος. chronos) 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은 주의 백성들은 카이로스의 은혜를 힘입고 크로노스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은 세상 사람들은 오직 크로노스의 삶에 만족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상담했던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를 좇으라고 하셨을 때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까?
카이로스의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육신의 몸으로 카이로스의 은혜를 힘입어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갈 때 믿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은혜를 기대하며 카이로스를 기도할 때는 신앙생활이 답답하고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969세를 살았던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의 969년은 시간적으로 가장 오랜 시간을 살았지만 그 시간을 자랑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3세를 살았지만 많은 일들을 기록한 것은 시간적인 삶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적인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실천하셨기 때문에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 카이로스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던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셨던 목적을 포기하고 내가 예수를 조절하여 무엇인가 더 갖고자 꾀를 부림으로 결국은 스스로 목매어 죽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가룟 유다만큼 똑똑하지 못했습니다.
성격은 급하고 말은 성격 따라 간다고 생각도 없이 말을 툭하고 내뱉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실수를 했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목적을 잊지 않았기에 마지막에는 순교자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질병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매우 힘들게 합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에게는 이와 같은 힘든 크로노스의 시간에서도 카이로스의 시간을 찾는다면 모두가 겪는 사회적 격리의 시간에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영생을 얻은 주의 백성들의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은 예수님께서 촛대 사이에서 거하시는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서는 모든 교회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은 사도 요한을 하늘로 이끌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무엇을 보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요한계시록 4:2-3)
둘째는 보좌 주위에 24장로들과 일곱 영과 네 생물들(요한계시록 4:4-7)
그런데 네 생물들은 여섯 날개와 눈들이 가득한 모양으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5장에서 사도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가 있는 것을 봅니다(5:1)
두루마리는 "책(τοῦ θρόνου βιβλίον, the throne a scroll)"을 말합니다.
그 책은 아직 아무도 펼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책을 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크게 울었는데 마침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계 5:5).
그 두루마리에 인봉된 것을 펼쳤을 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내용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두루마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재앙이 일어나고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그 두루마리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τῷ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the book of life)
두루마리에 기록되는 이름은 마지막 시대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았던 성도들의 이름이라고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0:12∼15
⑫.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⑬.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⑭.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⑮.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τῇ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
두루마리는 생명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생명책에 무엇이 기록되었습니까?
죽은 자들의 행위에 따라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행위에 기록된 것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마태복음 25:46에서 영벌과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Then they will go away to eternal punishment, but the righteous to eternal life.)
그러므로 성경은 영생을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을 받고 세상에 나가서 예수 이름으로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낸 후에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행했던 일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너희 이름이 어디에 기록되었다고 하셨습니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이 세상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한 영적생활을 말합니다.
영적생활을 위한 교과서는 성경입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모두 승리하여 두루마리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행한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기록될 수 있는 거룩한 삶이 회복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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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웨인 화이트(Ryan Wayne White, 1971년 12월 6일 ~ 1990년 4월 8일)
미국 인디애나 주 코코모의 십대 청소년이었다
혈우병을 앓던 중 수혈을 받은 것이 에이즈에 감염되어 1984년 진단을 받을 당시 6개월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시한분 판정을 받고 5년을 더 살았던 화이트는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나에게 예수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신 아버지가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레이몬드 럴(Raymond Lull)은 1235년 스페인 팔마(Palma)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79세까지 유럽 대학에서 동양 언어를 가르쳤다.
그의 제자들과 친구들은 그가 학문을 탐구하다가 생을 마감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럴은 자신이 철학 교수가 아닌 선교사로서 죽기를 원했다.
그는 튜니스(Tunis)의 회교 중심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두 번 투옥된 후 추방당했다.
여든을 바라보던 그는 순교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몇 안 되는 크리스천들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했다.
1314년 8월 14일, 그는 부기아(Bugia)로 들어가서 몇몇 개종자들과 함께 거의 1년간 비밀리에 전도를 했다.
그러다가 너무나 순교를 열망한 나머지, 그는 시장터로 나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옛날에 추방된 바로 그 사람이라고 밝혔다.
주민들은 분에 못 이겨 그를 마을 밖으로 끌어냈다.
1315년 6월 30일, 그는 왕의 명령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다.
오늘날 순교가 가진 속죄 효험에 대해 잘못 가르친 중세 시대의 신학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사슴이 목말라 시냇물을 찾듯, 시냇물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갈증을 느끼듯, 성도의 영혼은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순교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갈망한다. 십자가의 군병들이 전쟁터에서 승리의 나팔 소리가 들리기 직전에 또는 하늘나라의 대관식 입장을 앞둔 시기에 은퇴하기를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생을 믿는 자는 결코 죽지 않는다.
* 자료출처 / 「말씀을 향해 바로 서기」/ 존 파이퍼
죽은 후 천국과 지옥을 보고 살아난 박상옥.
그는 충북 괴산군 어느 농촌에서 태어났다.
본래 기독교 가정이 아니었고 누이가 예수 믿고 목사님에게 결혼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매형과 누이가 전도하여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였다.
그 후 그는 집사가 되었다.
1965년 11월 22일 사업상 볼 일 때문에 경북지방으로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조령새재를 넘는 순간
와장창하는 요란한 광음과 함께 버스는 벼랑으로 굴러 떨어졌고 그는 얼굴과 머리가 깨어졌다.
피는 눈, 코, 입으로 흘러내려 일어설
힘이 없었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는 쓰러져 있는 그대로 찬송가 562장을 불렀다. <이 몸에 소망 구름 같고 부귀와 영화도 한 꿈일세……> 이렇게 4절까지 부른 후에 영영 의식을 잃고 말았다. 완전히 죽은 것이다.
그는 죽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 평탄한 길 위에 서서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앞에 가던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사람은 충북 괴산 화양동에 사는 최인만(37세)이라는 분이었다.
그들은 둘이서 목적지도 없이 길벗 되어서 함께 걸었다.
얼마나 갔을까 그들 앞에 커다란 안내판이 나타났다.
알아보기 힘든 각
나라말로 적혀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나라 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우측으로, 믿지 않는 자는 좌측으로>라고
쓰여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가고 최인만씨는 왼쪽으로 서로 헤어져 가게되었다.
그가 가는 우측 길은 계단이 있는데 서너 계단 올라서서 뒤로 돌아 최인만씨를 바라보니 그는 까맣게 변하여 있었다.
그래서 자기 옷을 보았더니 어느새 흰옷으로 바꾸어졌다.
계단을 올라서 보니 앞에는 잔잔한 큰 강이 있고 강가에는 흰 옷 입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낚시질하는 노인에게 가까이 가서 배가 언제쯤 오는가를 여쭈어 보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니 그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아직 때가 안되었는데……" 하시면서 그의 인사를 받으시는 것이었다.
이때 머리와 수염이 희고 긴 노인이 나타났다.
머리에 뿔관을 쓰고 도포를 걸치고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세상 모든
인간이 가는 길을 보라> 위엄 있는 음성에 고개를 들어보니 직사각형의 12문이 있고 문 앞에는 흰옷을 입은 문지기가 있었다.
첫째 문에는 사람들이 두 줄로 들어가고
줄째 문에서는 세상에서 행한 사실을 말하고
셋째 문에서 이간질, 거짓말하는 등, 입으로 죄를 지은 자는 혀를 뽑고, 눈에는 눈을, 손에는 손을 등 각가지 병신이 되고 있었다.
그는 좌측으로 90도 고개를 돌려보니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가는데 머리에는 뿔이 나고 눈이 셋이며 사람도
짐승도 아닌 빨간 옷을 입고 있는 괴물이 곡괭이를 들고 서서 이들을 찍어 던지는 것이었다. 용광로와는 비교가 안 되는 불꽃이
타오르고 붉은 물이 이글거리는 영원한 불못 지옥이었다(계 19 : 20).
다시 오른쪽을 바라보니 문은 보이지 않고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많아 흰 구름같이 보였다.
그 왼쪽으로 붉은 말들이 있고 말을 탄 사람들은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 밑에 감옥이
있었는데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음부였다(벧전 3 : 19).
다시 우측을 보니 백말이
있고 백로의 머리와 어린 아이의 머리를 맞춘 것 같은 것이 평화스럽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낙원이었다. 정신 없이 낙원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
이때 "소자야"하는 음성이 들려오기에 대답을 하였더니 "나를 믿느냐"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주여 믿습니다"고 대답을 하니 구원의 증표를 준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후 잠시 후의 일이었다.
가느다란 사람의 음성이 들려와 눈을 떠보니 자기가 살던 집이었다.
그가 일어났을 때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귀신이 나타났다고 놀라
야단들이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산중에 무덤을 파놓고 그 시체를 하관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는 3일 3시간 동안 죽은 가운데 있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교통사고로 즉사해야 할 그가 관 속에서 살아나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능치 못하신 일이 없는 하나님께서 이 일쯤이야 못하시랴.
정신을 가다듬어 남은 여생 덤으로 사는 그는 주님을 위해 몸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죽음 속에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괴산의 최인만씨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최인만씨는 그와 한 날 죽어 장사 지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교우와 불신자들에게 그가 보고들은 천국과 지옥을 떨리는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
* 자료출처 / 복음신보에서
▣ 삶의 변화와 사랑의 실천이 영생이다
영생은 현재로부터 시작한다.
한 잔의 물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마르다고 하면서 물을 찾는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어리석은 짓을 행하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있는 행복을 누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습니다.
어디에서 어떻게 조사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교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25%의 교인이 기도를 안하고 있고,
35%의 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고,
60%의 교인이 신앙 관계 서적을 읽지 않고,
70%의 교인이 교회 활동을 외면하고 있고,
85%의 교인이 한 명의 영혼도 인도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100%의 교인이 하나같이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고 합니다.
믿음생활 그 자체가 복된 길이요,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한 영생의 삶입니다.
그런데도, 이 믿음에 있어서의 알짜 알맹이들은 다 빼놓은 채, 교회를 다닌다고 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구와 금언>
★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 : 10). ★ 팽조(彭祖)라는 사람은 800세를 살다가 죽었는데 후대 사람들은 그를 신선이라고 불렀다. ★ 미국에 유명한 메이요 병원으로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 수 있을까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하여 해답을 얻기 위해 찾는 사람이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병원은 미국 미네소타 주에 있는데 평균 20년 이상씩 의료계 경험을 가진 의학계의 권위자로 구성된 의료진은 각양 각색의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한 결과 많은 환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미국 메이요 병원에서는 장수 비결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성서에서 장수의 비법은 ★ 오스트리아의 어떤 잡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 어느 산부인과 병원에서 한 여인이 어린애를 낳다가 죽었단다. 그 죽은 영혼이 시체를 떠나 지켜보니 자기가 죽었다고 모두들 슬퍼하더란다. ★ 성녀 카타리나는 20세 되는 해에 도미닠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생 처녀로 주님을 봉사한 사람이다. ★ 천로역정을 저술하여 널리 알려진 영국의 죤 번연은 1688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시체는 런던 번 힐필드에 묻혔다. 그 무덤에는 해마다 많은 여행자가 찾아든다 한다. ★ 프랜시스 자버엘은 1552년 12월 2일 광동에서 반나절 동안의 항해 거리인 산시안섬 해변의 작은 막에서 운명을 하였다. ★ 황해도 봉산군에 계동교회가 있는데 6·25를 전후하여 장로 7명 중 4명이 순교를 당했다. ★ 영원한 집으로 가야지 ★ 굳나잇인가
★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 : 20-21). 사후 삶에 대한 학자들의 증거 : 죽음을 이긴 사형수 : ★ 다시 만납시다 : 이 말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사람의 생명을 죽인 김대두 사형수가 예수 믿고 처형당하면서 방청객들에게 외친 유언의 말이기도 합니다. 고목에서 샘물이 흐르고 난 책을 보면 김대두가 전도를 받고 예수를 영접하고 죄수복 입은 전도자란 이름을 듣고 마지막 처형 받는 순간까지 찬송가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었다. ★ 미국 시민권 : 구로 중앙교회 시무 한 곽 목사님의 간증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얼마 전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친구가 귀국하였는데 곽 목사님과 같이 식사를 하면서 곽 목사 영주권 보여줄까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어 하면서 아랫배 깊숙이 넣어둔 영주권을 꺼내서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미국의 영주권이 귀합니다. 그러나 영주권을 가졌다고 해서 미국에서 100년 200년을 못삽니다. 그러나 천국의 시민권은 얼마나 귀한 줄 알겠어요. ◎ 나는 죽지 않는다 : 브라더 로렌스가 발견한 진리를 소개합니다.
영생에 관한 예화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