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 강의안

2018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

주제 / 고백과 성령(Confession & Holy Spirit)


성경 - 베드로전서 1: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Be holy because I am holy.)

주제 찬송 / 15장 내 영혼 이제 깨어서


Sep. 1(Sat) ∼ 3(Mon)

Mt. Giles Conference Center

Add: 439 East Rinker Rd. Stroudsburg. PA 18360

Phone (570) 629-0920

1강(9월 1일) / 토요일 오후 6:30-9:20
☞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5:1∼11)

2강(9월 2일) / 주일 오전 6:00-7:30

☞ 죄를 자백하자!(요한일서 1:9)

3강(9월 2일) / 주일 예배 오전 9:30-12:00

☞ 서로 사랑하자!(베드로전서 4:8)

4강(9월 2일) / 주일 오후 5:00-6:20

☞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5강(9월 3일) / 월요일 오전 6:00-7:30

☞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고린도후서 6:10)

6강(9월 3일) / 월요일 오전 9:30-12:00
☞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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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고백과 성령(Confession & The Holy Spirit)
성경 / 베드로전서(1Peter) 1:1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Be holy because I'm holy.
찬송 / 15장 내 영혼 이제 깨어서

고백(告白)
1. 마음속에 숨긴 일이나 생각한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함
2. 죄를 용서받고자 고해 신부에게 죄를 숨김없이 밝힘

- 알릴 고(告), 고할 고(告)
- 말할 자 백(白)

성령(聖靈)
1. 성부 성자와 함께 성삼위의 하나

- 성스러울 성(聖), 거룩할 성(聖)
- 신령 령(靈)

Ⅰ. 역사적 의미
-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1938. 9. 9. - 신사참배 장로교단의 결의(27차 총회)
* 1948. 8. 15. -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 9. 9.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 공산정권 시작)
1958. 9. 9. - 북한의 교회 폐쇄
* 1994. 7. 8. -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 유훈 통치 대략 4년 동안
1998. 9. 9. - 김정일 정권 세습

9월 9일은 한국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사건들이 9월 9일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9월 9일을 맞이하여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Ⅱ. 교회사적 의미
- 이민교회의 과제

1902. 12.  20. 첫 이민의 시작(102명), 58명은 인천 내리교회 교인(56.8%)

1903. 1. 12. 하와이 도착 후 기도의 제단을 쌓다(미주 한인 이민교회의 시작).

1903. 11. 미연합감리교회의 도움을 받아 교회를 조직하고 “하와이 그리스도 연합감리교회” 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
 
Ⅲ. 성경은 고백의 말씀

(예화) 희랍의 민화 중에 ‘포대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
일생동안 밀가루 포대를 만들면서 늘 ‘내가 막아버렸지!’ 이렇게 중얼거리며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

밀가루 포대를 만들던 사람이 하루는 꿈을 꾸는데 넓은 들판에 수많은 샘들이 솟아나는데 특이한 것은 샘마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들판을 지키는 사람에게 샘물에 쓰여 있는 사람의 이름과 샘은 무슨 의미인가? 하고 물었더니 샘에 쓰여 있는 이름은 그 사람이 샘물이 솟아나는 것만큼 복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넓은 들판에서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샘을 찾았는데 샘에서 물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주위에 다른 샘에서는 물이 콸콸하고 잘 나오고 있었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이 샘이 막혀버렸구나! 그렇다면 내가 샘을 뚫어줘야지 하고 긴 장대를 갖고 자기 이름이 쓰여 진 샘의 구멍에 긴 장대를 넣고 마구 쑤셨다. 그리고 장대를 뽑았더니 순간적으로 흙탕물이 솟구치더니 그나마 졸졸 나오던 물마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 꿈이었다. 참 이상한 꿈이구나! 하고 아침을 맞아 평소와 다름없이 가게 문을 열고 열심히 밀가루 포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때 마침 그 마을을 민정 시찰하던 어진 왕이 그 가에 앞을 지나가며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주위 사람들에게 묻기를 “왜 저 사람은 하루 종일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웅얼거리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말하기를 “저 사람이 참 착합니다. 거짓을 모르고 속일 줄도 모릅니다. 너무 정직해서 저렇게 어렵게 지낸다.”고 하였다. 어진 왕은 그날 저녁 신하에게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의 집에 왕이 먹는 빵을 한 접시 만들어 보내라고 하였다. 왕의 신하가 보낸 빵을 받은 사람이 한 접시의 빵으로는 우리 식구 한 끼 정도의 식량밖에 안 되니 차라리 빵집 주인에게 이 빵은 왕궁에서 만든 왕의 식탁에 올라가는 아주 맛있는 빵인데 내가 이것을 줄 테니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주겠소? 하고 제안을 하자 빵집 주인은 당신 가족들이 한 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빵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역시 나는 머리를 잘 굴리는구나! 하며 앞으로 일 주일은 빵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가족들에게 자랑하였다.

얼마 후 어진 왕이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여전히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중얼거리는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의 말을 듣고는 아직도 부족한가 하며 그날 저녁 신하에게 궁궐에서 왕이 먹는 맛있는 과일 한 접시를 보냈다. 그러자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또다시 머리를 굴려 과일도 늘 먹던 사람이 먹어야지 평소에 먹지 않던 과일을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으니 차라리 과일을 과일가게 주인에게 가져간 후 임금님이 보내주신 과일인데 당신은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하고 제안하였더니 과일 가게 주인은 당신 가족들이 평소에 먹던 과일을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만큼 가져가라고 한다.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은 역시 사람은 머리를 굴려야 한다며 가족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왕이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데 여전히 “내가 막아버렸지!” 하며 웅얼거린다. 왕은 또다시 신하에게 이번에는 금화가 가득한 자루 하나를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이 가게에서 집으로 가려면 반드시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야 하므로 그 다리 중간에 자루를 놓고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집으로 갈 때 들고 가도록 지키라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가던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이 다리 앞에 서더니 평생토록 건넌 다리가 아닌가! 오늘은 눈을 감고 건너야지 하고 두 눈을 감고 다리를 건너가므로 다리 중간에 있던 금화가 가득한 자루를 볼 수 없었다. 결국 그 자루를 신하가 다시 들고 와서 왕에게 내려놓자 왕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하고 묻자 신하는 자기가 본 그대로 설명하였다. 그러자 왕은 할 수 없구나! 그 사람의 복은 그것뿐이구나! 하고 더 이상 밀가루 포대 만드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을 만들던 사람은 도대체 왕이 먹는 빵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고 빵을 잘랐더니 그 안에 금화가 감추어져 있었다. 또한 과일 가게 주인은 도대체 왕이 먹는 과일은 어떤 맛일까? 하고 과일을 잘랐더니 그 안에 역시 금화가 있었다. 결국 빵집주인과 과일가게 주인만 부자가 되었다.

오늘 2018년 수련회를 시작하는 첫 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무슨 복을 내려주셨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이제까지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It is as if the dew of Hermon were falling on Mount Zion. For there the LORD bestows his blessing, even life forevermore.)

영생이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육체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있을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Now this is eternal life: that they may know you, the only true God, and Jesus Christ, whom you have sent.)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백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구약과 신약에서 대표적인 고백을 소개합니다.

☞ 욥의 신앙고백(욥기 23:10)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 욥기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My ears had heard of you but now my eyes have seen you.)   

☞ 백부장의 신앙고백(마태복음 8:8)

-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The centurion replied, Lord, I do not deserve to have you come under my roof. But just say the word, and my servant will be healed.)

* 마태복음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When Jesus heard this, he was astonished and said to those following him, I tell you the truth,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 마태복음 8:13,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Then Jesus said to the centurion, Go! It will be done just as you believed it would. And his servant was healed at that very hour.)   

송재천목사와 아들 송문호

뇌에 이상이 생겨 수술 후 시력을 잃었다. 사춘기 소년에게 찾아온 불행한 사건이었는데 송문호군의 고백은 “세상의 온갖 더럽고 추한 것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하시려고 시력을 가져 가셨다.”

소년의 입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고백의 믿음을 갖는 사람에게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나.

이상현박사와 아들의 죽음

아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가의 도랑에 빠져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을 때 신학자로서 목사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슬픔에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미국인 교수가 저녁마다 찾아와서는 거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몇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고 가더랍니다.

그런데 한인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와서 찬송을 부르고 위로하고 기도하는데 도저히 마음의 위로가 안 되고 평안이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인 교수가 처음에는 참 이상하구나! 생각했는데 일주일을 계속하여 거실을 지키는데 그 때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지켜보시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는 슬픔을 당한 가정에 찾아가서 찬송하고 성경을 찾고 설교하는 것보다 그 곁에서 진심으로 함께 하는 위로가 참된 위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클레이풀 교수의 고백

미국의 철학자인 클레이풀 교수가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그곳에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소녀는 기형아였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정서가 발달해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클레이풀이 소녀에게 물었다.

내가 네 처지였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는가?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가진 것은 너무 많아요. 음악을 듣고 명작을 읽을 수 있는 귀와 눈이 있어요.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물이 많은데 왜 내가 슬퍼해야 하나요?

클레이풀 교수는 소녀의 고백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복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다. 심지어 사람의 표정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표정이 우울한 신자는 자신의 삶을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고백이 주위에 누군가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길을 길었던 우리들이 이 시대에 고백을 회복하므로 이제까지 누릴 수 없었고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스펄전의 고백

위대한 설교가로 알려진 스펄전(C. H. Spurgeon)은 그의 생(生)의 말년에 투병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 때 한 성도가 병문안을 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목사님, 많이 아프시죠?” “네. 너무 아픕니다. 이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제가 이렇게 아플수록 더욱 가까이 제 곁에 와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놀라운 주님의 사랑의 체험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히틀러 경호원 쿠르트 바그너의 고백

히틀러의 경호원 중에 쿠르트 바그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히틀러를 신처럼 숭배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히틀러가 자살하자 자신의 인생도 붕괴되는 것을 깨닫고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하던 중 전도책자를 보고 집어 들었다가 끝까지 다 읽게 되었다. 그는 여기서 크게 변화되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경배대상을 찾은 그는 바로 부근의 목회자를 찾아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평화의 주인이시다.”

성경은 성령의 말씀
- 성령은 깨닫는 영이다!

(도입 이야기) 나의 출생과 목회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을 알게 된 그 때의 모습

조부 이성봉장로(윤봉선), 외조부 김창하장로(백애제)
부 이영복장로, 모 김은신권사
아들을 낳으면 목사로 바치고, 딸을 낳으면 전도사로 평생 독신으로 살아라.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후에 6. 25 전쟁이 일어났고 그 시대에 어머니의 젖을 빨면 젖지 나오지 않아 헛배가 불렀다고 합니다.

1. 급성 폐렴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
출생 후 여덟 달이 지나 한국전쟁(1950. 6. 25)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에 급성폐렴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은 후 목사로 바쳤으니 죽어도 교회 강단 앞에서 죽어야 한다며 강단 앞에 내려놓고 밤새도록 눈물로 기도하셨던 어머님. 다음 날 아침 열이 내리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어서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하는 말은 ‘무슨 약을 사용했느냐? 이 난리 통에 그런 약이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며 동업을 하자고 제안하더랍니다. 그때 예, 다른 특별한 약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신구약을 썼습니다.

2. 자동차 사고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
유치원 때에 당시 경전병원장의 지프차 뒤에서 여자 아이와 함께 있었는데 여자 아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엄마가 죽은 딸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머리가 깨져 골이 머리 밖으로 나온 것을 안고 다녔다). 마침 내가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마치고 병원 밖으로 나오는데 죽은 딸을 안고 있던 엄마가 나를 보더니 달려오며 너는 살았는데 내 딸은.......하며 내게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즉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었다.

3. 고압선에 감전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생명
초등학교 때 등교하려고 학교로 가는 길에 마침 대한석탄공사 건물 신축 중 4층 위에서 시멘트 강화벽으로 세웠던 판자를 제거하는 중에 고압선을 끊어 그 아래에 지나가던 내 왼쪽으로 스쳐 지나갔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쓰러져 허우적거리다 다시 일어나 학교로 갔는데 왼편 발 옆이 터져있었고 기적적으로 살았습니다.

이번 수련회는 제가 주님의 부름에 대한 소명과 사명을 확인하려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과정에서 함께 내게 역사하셨던 주님의 은혜와 앞으로 인도하실 주님의 은혜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2000년 7월 4일 저희 가족들이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으로 이민자로 첫 출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작은 아들은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50이었습니다. 주위에서는 늦은 나이에 왜 미국으로 가려는가?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큰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에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목사가 되려면 좀 더 넓은 세계에 가서 일찍부터 공부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큰 아들의 국민학교 담임선생이 “사무엘아, 너무 참 좋겠다. 일찍부터 너의 목표가 정해졌고 그 목표를 위해 아버지가 너를 뉴욕을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되는구나! 앞으로 유명한 목사가 되거든 선생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당시는 조기 유학이라는 것을 생각도 할 수 없는 때 이었습니다. 마침 저희 교회에 세브란스 병원 내과 과장 이선주 집사님이 뉴욕의 국제 면허증을 갖고 세브란스 외국인 진료소에서 근무하는 인요한박사가 있다며 그 분을 소개하여 뉴욕시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신체검사 및 예방 접종에 대한 서류를 준비하여 뉴욕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바로 학교 입학시켰습니다. 당시 아들이 입학했던 학교가 Rego Park에 있는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다시 서울로 나갔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치자 이제는 뉴욕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합니다. 그때 제가 아들에게 지금은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너 혼자는 보낼 수 없다. 만일 네가 원한다면 다른 가족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은 아들 다니엘은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자베트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뉴욕에 와서 다시 검사한 후에 댄디 워커 신드롬이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사람의 머리에 큰 뇌와 작은 뇌가 있는데 이 병은 작은 뇌의 일부가 물로 채워져 있는 병이라고 합니다. 원인은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장애인 학교에 입학을 해야 하는데 작은 아들이 장애인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여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아들 때문에 제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학교운영위원장을 2년 동안 맡았습니다.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 배경은 세브란스 병원 담당 의사가 뉴욕시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므로 다니엘에게 맞는 과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뉴욕으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당시 저희 부모님과 제 동생 세 명의 가족들 모두 뉴욕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뉴욕 생활의 출발이었습니다.
저희가 한국미대사관에서 7월 3일에 영주권을 받고 그 다음 날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했는데 그 날이 7월 4일이었습니다.

저희 가족들이 뉴욕 행 대한항공 비행기에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뉴욕에서 목회자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들 어렵다고 합니다. 만일 목회를 전념하지 못하면 다른 것에 관심을 갖고 결국은 세상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사오니 무슨 이이 있든지 목회가 우선이 되게 하시고 목회를 하는 동안 목회자 사례는 매월 $1000만 받겠습니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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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9월 1일 오후 6:30∼7:30)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5:1∼11)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When Simon Peter saw this, he fell at Jesus' knees and said, "Go away from me, Lord; I am a sinful man.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은?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은?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은?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은?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사소한 것은 모두 집어삼키고,
위대한 것에는 생명과 영혼을 불어넣는 그것,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시간(時間)입니다.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대이(Michael Faraday, 1791. 9. 22∼1867. 8. 25)가 남긴 말입니다.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용어를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크로노스(Chronos)
둘째는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는 자연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합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면 하루가 지나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일 년이 지나갑니다. 지나간 인류의 역사를 크로노스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크로니클(Chronicle, 연대기) 이란 영어 단어가 크로노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하여 진행합니다. 예를 들면 해마다 나이가 한 단계씩 올라갑니다. 내 의지가 아닙니다. 이와 같은 시간을 크로노스 즉 일상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카이로스입니다. 카이로스는 특별한 시간을 말합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간이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가 모두의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왜 우리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파스칼(Pascal) 인간은 중간적 존재

시간적으로 과거와 미래의 중간 현재
공간적으로 하늘과 땅의 중간 땅위에서 활동
형태적으로 하나님도 아니고 천사도 아닌 인간

2018년 가족수련회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의 생애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생애를 살펴보면 베드로에게서 세 가지 고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세 가지 고백이란 죄의 고백과 믿음의 고백 그리고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첫째는 죄(罪)의 고백 / 누가복음 5:10
둘째는 믿음(信)의 고백 / 마태복음 16:18
셋째는 사랑(愛)의 고백 / 요한복음 21:15, 16, 17

베드로의 고백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고백에 따른 특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죄의 고백에 대한 말씀

누가복은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죄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선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5:10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죄(罪)란 무엇인가?

허물 죄(罪)의 한자를 파자하면 넉 사(四)와 아니 비(非)자의 결합이 된 것입니다.
네 가지 아닌 것들에 대해서 성경에서 찾아봅니다.

죄(罪)라는 한자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린 상태를 말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아담은 하와를 향하여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의 뼈’라고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온 후에 아담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저 여자 때문’이라고 잘못의 원인을 여자에게 돌렸습니다. 등을 돌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언제나 등을 돌린 우리들을 지켜보십니다. 주님이 등을 돌리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불신(不信) 요한복음 16:9, 마가복음 16:16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In regard to sin, because men do not believe in me.)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불선(不善) 야고보서 4:17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Anyone, then, who knows the good he ought to do and doesn't do it, sins.   

불의(不義) 요한일서 5: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All wrongdoing is sin, and there is sin that does not lead to death.

불법(不法) 요한일서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Everyone who sins breaks the law; in fact, sin is lawlessness. 

죄의 특징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믿음의 고백에 대한 말씀

마태복음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믿음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이란 한자는 믿을 신(信)
믿을 信자를 파자하면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

1968년 여름 가나안농군학교 고등학생으로 입교하여 특수훈련을 받을 때 식사 때마다 반드시 암기해야 하는 열 가지 구호가 있었습니다. 그 구호 중에 ‘한마디의 말이 약속어음이 되어야 한다.’ 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이었던 윌리암 제임스의 명언


생각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말이 되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격이 되기 때문이다. 

인격을 조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꾸면 말이 바뀔 것이다.
말을 바뀌면 행동이 바뀔 것이다.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뀔 것이다.
습관을 바꾸면 인격이 바뀔 것이다.
인격을 바꾸면 인생이 바뀔 것이다.

☞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Consequently, faith comes from hearing the message, and the message is heard through the word of Christ.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맡길 수 있습니까?
기도로 맡겨야 합니다.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thing,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Cast all your anxiety on him because he cares for you.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Cast your cares on the LORD and he will sustain you; he will never let the righteous fall.)      

믿음이란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맡기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솰라크’ 라고 합니다. 솰라크의 뜻은 ‘던지다’ ‘신뢰하다’입니다. 즉 신뢰하므로 모든 짐을 던져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산꼭대기로 커다란 둥근 돌을 밀고 올라가서 반대편 방향으로 밀어버리는 것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결코 간단하고 쉬운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긴장해야 하고 둥글고 큰 돌이 다시 원위치로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마쳐야 맡겨 버리는 것이 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시각장애인 교수 김기현집사(연대 94학번)
대학 입학 후 턱 부정교합 수술 중 실명하여 중도 실명자가 되었다. 기독교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 김정주교수의 도움을 받아 졸업하기 전에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1. 실명하지 않는 남자
2. 요리를 잘 하는 남자
3. 아이를 잘 양육하는 남자
4. 시댁의 가족들이 시각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족
5. 예수를 잘 믿는 남자
6. 나이 차이가 3살 터울로 위 또는 아래의 남자
7. 생활 능력이 있는 남자
8. 가정적인 남자
9. 미국 유학을 갈 때 같이 가서 도와줄 수 있는 남자


시력이 온전한 여자일지라도 이런 조건을 갖춘 남자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믿음을 갖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도움을 주던 김정주교수도 그것은 아니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결혼하기 전에 나이 차이가 6살 터울이라 기도 제목에서 어긋났으므로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결혼 후에 깨닫게 된 것은 나이 차이가 3살 터울이면 자주 다투고 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보스톤 대학에 유학을 한 후 장애인 재활 상담학을 전공하고 평택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랑의 고백에 대한 약속

요한복음 21:15, 16, 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Agapao)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Agapao)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Phileo)

요한복음 21:15, 16, 17
내 어린 양을 먹이라(Feed my lambs.)
내 양을 치라(Take care of my sheep.)
내 양을 먹이라(Feed my sheep.)    

사랑 애(愛)
사랑 애(愛)자에 대한 해석이 두 가지로 소개됩니다.

첫째는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
둘째는 힘들고 괴로워도 참는 것

사랑에 대한 한문자의 두 가지 정의를 이해하려면 사랑 애(愛)자를 분석해야 합니다.
  
사랑 애(愛)자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손톱 조(爪), 덮을 멱(冖), 마음 심(心), 뒤져올 치(夂)

그런데 사랑 애(愛)자의 고어는 마음 심(心)을 중심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랑 애(愛)자의 윗부분은 다시 목메일 기(旡)자와 마음 심(心)의 합자라고 중문자보에서 소개합니다.

첫째는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

사랑을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사랑 애(愛)자가 한문자 받을 수(受)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둘째는 힘들고 괴로워도 참는 것
사랑을 힘들고 괴로워도 참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유는 사랑 애(愛)자가 한문자 사랑 애(愛)자의 윗부분은 목메일 기(旡)자와 마음 심(心)의 합자라고 중문자보에서 소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랑에 대한 고백에 대해서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사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대학시절 교양 과목을 수강할 때 여러 문학부 학생들이 함께 강의를 듣습니다. 그런데 영문과 여학생을 사모하는 철학과 학생이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여 그 여학생을 만나서 자세하게 설명을 한 후 두 사람이 당시 시청 앞에 있는 어느 다방에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때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했을 때 있었던 사례를 소개합니다.
고백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일방적인 고백을 자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올바른 고백에 대해서는 분명한 약속과 축복이 있습니다.

죄의 고백에 대해서는 제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고백에 대해서는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고백에 대해서는 내 양을 먹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8년 수련회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크로노스와 같은 일상적인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와 같은 주님의 은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복된 시간으로 새겨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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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9월 2일(주일) 오전 6:00∼7:30

죄를 자백하자!(요한일서 1:9)


요한일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말처럼 어제 함께 나누었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베드로의 신앙여정에서 세 가지 고백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죄의 고백

죄를 고백했을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분의 변화가 되었습니다. 어부에서 제자 또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의 고백

믿음을 고백했을 때 교회를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직분의 변화가 되었습니다. 어장을 관리하던 어부가 이제는 교회에서 교인들을 관리하는 목자가 된 것입니다.

셋째는 사랑의 고백

사랑을 고백했을 때는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먹이라는 말씀은 베드로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을 말합니다.

상급의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어부는 어부로서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을 먹이는 목자는 주님 나라의 상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받은 상급은 순교의 반열에 세워진 것입니다.

왜 죄를 고백해야 하는가?
어떻게 죄를 고백해야 하는가?

자백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호모로게라고 합니다. 호모로게는 같다는 뜻의 호모와 말한다는 레고라는 두 개의 단어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자백은 자기의 죄를 아뢰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죄를 내가 모두 기억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것은 잊어버린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모로게라는 단어는 내가 지은 죄를 내가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는 그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자백이 온전한 회개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죄를 내가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내게 임하여 나로 하여금 내가 지은 모든 죄를 기억나게 합니다. 따라서 자백이란 내 의지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내 죄를 고백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렇게 자백했습니다.
이제까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잘 잡는 사람은 베드로이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내렸는데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이런 것이 기적입니다.

(예화) 동해안 울산해안경비사령부, 해안경비 초소 내무반원들에게 주일마다 심방하고 성경을 가르칠 때 울산의 낚시꾼들이 제게 부탁하기를 해안가에 들어가서 낚시를 한 번 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하여 해안경비사령관의 허락을 받아 교회 청년들과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아무도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 다니엘이 던진 낚시에 물고기 한 마리가 올라왔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고기를 잡는 순간 모두 와! 하고 소리쳤습니다.

왜 베드로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겠습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주권을 말합니다.

자백하기 이전에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셨습니다. 다만 내가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도 없었고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백이 이루어진 후에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화) 신입 사병들이 훈련소와 특수학교에서 과정을 마치고 부대로 전입해 오면 인사과에서 사병들을 주특기에 따라 분리하여 예하 부대로 보냅니다. 한번은 여러 사병들이 전입신고를 하려고 준비할 때 먼저 신병들의 소지품 검사를 합니다. 대부분 주머니에서 모든 소지품을 모자를 벗어 그 안에 담게 합니다. 그러면 신병들은 순식간에 모든 소지품들을 모자에 담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책상 앞에 서게 한 후에 모자에 담았던 소지품들을 책상 위에 쏟아 놓게 합니다. 그리고 자대생활에 필요한 것은 소지할 수 있도록 다시 돌려주고 자대생활에 필요하지 않는 것은 인사과에 보관하거나 아니면 배치를 받는 부대의 지휘관에게 전달하여 관리하도로 합니다. 한번은 어느 사병의 소지품 중에서 사용할 수 없는 볼펜이 나왔습니다. 그 사병에게 이 볼펜 써지지 않는다. 버려도 되는가? 하고 물었더니 예 버려도 됩니다!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그래서 쓰레기통으로 볼펜을 던져 넣는데 그 사병의 눈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볼펜을 지켜봅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예감이 있어서 볼펜을 다시 꺼내 볼펜을 분리하였더니 그 안에 만 원짜리 지폐가 똘똘 말아서 대략 1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사병에게 돈이 있으면 맡기라고 하였는데 왜 맡기지 않았는가? 물었더니 혹시 자대에 배치되면 고참들이 돈을 빼앗을까 하여 감춘 것이라고 합니다. 사병에게 인사과에 돈을 맡겼다는 증서를 발급하고 사병의 사인을 받은 후에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들에게 신앙생활에 필요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버리는 것이 자백이며 회개라고 하겠습니다.

회개(Shoov 슈브)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마음속에 모셔 드리며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순간 인간은 영은 중생(born again)하여 영적으로 변화된 상태(change of status) 즉 미크바(Mikvah)가 된다. 이렇게 될 때 죄인이 구원 받고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를 함께 누릴 예슈아의 신부가 되는 것이다.

히브리 뿌리를 통해서 본 회개는 참으로 구체적이다.

회개를 슈브(ב ש)라고 합니다.
슈브는 신(ש)은 ‘파괴 시킨다(destroy)’는 뜻이며,
베트(ב)는 ‘집(the house)’ 이란 뜻입니다.
즉 예전에 살던 집(베트) 즉 옛 성품과 구습과 행동은 불로 태워 신(신) 부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시 옛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고대 히브리 글자의 모양과 뜻은 우리에게 회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원래의 뜻은 정복자가 모든 포로들을 귀화시키기 원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만약 포로들이 자기가 살던 옛 고향 집을 사모하고 돌아가려고 한다면 이 계획을 이룩할 수 없게 된다.

과거와의 인연을 완전히 분쇄시키기 위해 정복자는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그들이 살던 옛집을 완전히 불태워 버려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회개(Return, Repentance)” 란 말이 비롯되었다. 즉 돌아갈 옛 집이 없으면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옛 성품을 완전히 부숴뜨려야 구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때가 바로 진정한 회개한 상태다

회개라는 헬라어 단어는 ‘메타노이아’ 라고 합니다. 메타노이아의 의미는 ‘과녁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소요리문답 첫 번째 질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합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영화롭게 한다.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영광 돌린다고 말합니다.
영광(榮光)이란 한자어를 파자합니다.
불 화(火), 덮을 멱(冖), 나무 목(木).
나무 목(木)자는 사람 인(人), 열 십(十)자가 합성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반드시 내가 십자가를 감당한 후에 그것을 짊어지고 완전히 불에 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랑과 인정받으려고 몸부림을 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예화) 이솝 이야기 중에 머리가 좋은 개구리와 독수리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 개구리가 머리는 좋았지만 결국 자기 자랑 때문에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것은 비록 개구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교훈입니다.

마태복음 16:24b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If anyone would come after me, he must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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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9월 2일(주일) 오전 9:30∼12:00

서로 사랑하자!(베드로전서 4:8)

그동안 함께 나눈 말씀들을 정리해봅니다.

베드로에게는 세 가지 고백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죄인의 고백(신분의 변화, 사람을 낚는 어부)
둘째는 믿음의 고백(직분의 변화, 교회의 일군)
셋째는 사랑의 고백(상급의 변화, 세상의 안일한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누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순교자의 반열에 세워진 것)


그러므로 자백을 해야 합니다. 자백이란 내가 기억하는 죄를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모두 고백하는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려면 입으로만 인정하는 것이 안리 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삶을 통하여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인가요?
정말 사랑해 보셨습니까?

(도입 이야기) 전도사 시절 중고등학교 학생을 맡았을 때 어느 중학교 여학생이 찾아와서 상담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 중학교 여학생의 고민은 언니가 있는데 언니가 너무 밉다고 합니다. 이유를 들어보면 언니는 수시로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라면도 끓여 먹고 전축을 틀어놓고 놀기도 하는데 한번은 시험이 끝나는 날 언니처럼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라면도 끓이고 떡볶이도 만들어서 맛있게 먹고 놀고 있는데 언니가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서 친구들 앞에서 ‘다 나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친구들 앞에 너무 미안할 뿐 아니라 동생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행동 때문에 그때부터 언니가 미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여학생에게 언니가 죽으면 좋겠느냐? 하고 물었더니 죽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제가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는데 오늘부터 너하고 나만 아는 비밀 처방을 할 테니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한 후에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요한일서를 읽고 하나님, 우리 언니 빨리 죽여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두 주간이 지난 후 그 여학생이 찾아와서 전도사님 우리 언니 죽으면 안돼요! 언지 죽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드디어 주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제가 그 여학생에게 왜 언니가 죽으면 안 될까? 언니가 미워서 죽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그랬더니 성경을 읽어보면 읽어볼수록 내가 죽어야지 언니가 죽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그 사랑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랑이었지 희생적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전개 이야기) 온산공업단지에서 교회를 시작할 무렵 그 지역은 학성 이씨 문중 마을입니다. 당시 이후락씨 선조의 묘가 도로가 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런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으니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했는지 교회를 세우면 또 헐러버리고 세우면 헐어버리고 이러기를 반복하던 중 처음 교회를 시작하던 목사님을 부산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제게 연락이 와서 주일에 설교를 부탁하여 주말이면 서울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울산에 내려가서 다시 온산공업단지가 형성된 공장 지대에서 벗어난 마을에 세워진 교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월요일 새벽에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진 위치가 그 마을 당수나무가 있는 바로 옆입니다. 당수나무가 당시 소나무로 수령이 대략 240년 이라고 합니다. 왜 당수나무인가 하고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의 대답이 사라호 태풍 때 온 마을이 물에 잠겼는데 소나무는 물에 감긴 후에도 그대로 그 자리에 흔들림 없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당수나무가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마을을 부도하는 서울 무당이 있는데 그 무당이 마을 사람들에게 당수나무 옆에 교회가 있기 때문에 마을이 평온하지 못하다며 마을 굿을 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을 충동질 하던 때입니다.
매월 정월 대보름이 되면 당수나무에 동제를 지내려고 마을 사람 중에서 제를 맡아서 지낼 제관을 선출하고 제관은 한 밤중에 목욕하고 당수나무 앞에 제를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마을 이장이 교회에 찾아와서 교인들에게 오늘 제를 지내야 하니 교회 전기불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목사님, 절대로 전기 빌려주면 안 됩니다. 어떻게 우상 제사를 지내는 곳에 교회 전기를 빌려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를 세울 때 얼마나 우리들을 힘들게 했습니까? 그러므로 절대로 교회 전기불 빌려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세요?

교인들의 이야기가 일부는 맞지만 전부가 맞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교인들에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제관이 제사 음식을 바칠 때 다른 불도 아니고 교회 전기불이 그곳에 비추이니 귀신들이 오겠습니까? 절대로 귀신은 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전기를 빌려주고 돈도 받으면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제게 맡기시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시든지 아니면 교회에서 철야기도하시든지 편하게 하세요. 그러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서울무당이란 사람이 동네 사람들에게 당수나무 귀신이 마을 떠났으니 다시 당수나무 귀신을 불러와야 하므로 큰 마을 굿을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당시 대략 300만원이 필요한 굿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돈을 지불합니까? 아무도 나서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마을 이장에게 교회에 와서 예배하면 돈이 필요 없습니다. 아무 때나 오셔서 예배하면 좋습니다. 더구나 교회 전기불 잠깐 사용했는데 도망가는 귀신이라면 뭣하러 그런 귀신을 섬겨야 합니까?


기독교의 사랑이 정말 놀랍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전개 이야기) 시주를 받으려고 문을 두드린 어느 스님과의 이야기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독교의 사랑은 덮어주는 것입니다. 덮어준다는 것은 용서를 의미합니다. 기독교에는 용서가 있지만 불교에는 요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있는 그 어떤 것도 죽일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조상으로 오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덮어주는 사랑을 확인해 봅시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손수 만드신 가죽 옷으로 아담과 하와를 덮어주셨습니다.

노아 시대가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곳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잣나무를 켜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과 밖에 역청을 바르게 하셨습니다. 역청이란 몰론 요즘으로 골타르와 같은 방수용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보 역철청을 카파르 라고 합니다. 카파르는 속죄를 의미하는 덮어준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30년 동안 고역에 시달 릴 때 열 가지 재앙이 임했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임하기 전에 장자와 초태생의 죽음을 말씀하셨는데 이 재앙에서 안전하려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를 보고 재앙이 넘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유월절의 시작입니다.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 중에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은 이제까지 덮어주기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셨던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테텔레스타이(요한복음 19:30)

유대인들이 제물을 바치려고 가져왔을 때 제물을 검사하는 제사장이 그 제물이 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 테텔레스타이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은 속죄의 완전한 제물이셨습니다.

화가가 그림을 완성한 후 그림의 한쪽 구석에 사인을 합니다. 이때 화가는 테텔레스타이라고 말합니다. 그림을 완성하였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창조 후에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의 그림을 완성하셨습니다.

빚을 진 사람이 모든 빚을 다 갚은 후에 채무자에게 외치는 말이 테텔레스타이 라고 합니다. 이제 모든 빚은 다 갚았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원수 사탄 마귀에게 붙잡혀 있던 모든 죄의 빚을 다 해결하신 것입니다.

심부름꾼이 심부름을 모두 마친 후 자신을 보낸 주인에게 돌아와서 하는 말이 테텔레스타이입니다. 심부름을 잘 마쳤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셨던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 어린 양이 이제는 모든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십자가의 현장으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죽는 게 두려운 것이 아니다.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게 두려운 것이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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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강 9월 2일(주일) 오후 5:00∼7:30

성령을 받았느냐?(사도행전 19: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And asked them, Did you receive the Holy Spirit when you believed?" They answered, "No, we have not even heard that there is a Holy Spirit.)
  

여러분 성령을 받으셨습니까?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받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까? 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해서 분명하게 고백하지 못하느냐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구원 받은 삶을 살았습니까?

성령도 구원과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성령을 받은 삶을 살았습니까?
- 성령 받은 삶을 유지하려면 성령으로 계속하여 채워져야 합니다.

은혜는 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문제는 내가 채워지지 않고 계속 주기만 하면 내 안에서 불만과 불평 그리고 감사가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내가 계속 채워져야 하고 채워진 것을 나눠주는 것이 은혜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은사 중심의 성령

(도입 이야기) 중국 대륙을 말을 타고 가던 사진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중 갑자기 사진을 찍으라는 음성을 듣고 사진기를 들어 눈 덮인 벌판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한 후에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이 주님의 얼굴이라는 흑백 사진입니다.
고등학교 동창, 종로 2가에서 한식당을 운영, 부인 집사님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출석한다. 어느 날 부인과 딸이 그림 하나는 보여주며 이 그림에서 예수님이 보이느냐? 묻더랍니다. 아무리 뚫어져라 보아도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대뜸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하더랍니다. 매일 저녁 집에 들어가면 그림을 보여주며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제가 그 친구에게 그림을 가져와라 그리고 그림 위에 눈과 코와 입과 얼굴 윤곽을 그려준 후에 자 이제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느냐? 물었더니 분명하게 보인다고 대답합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윤곽을 지우고 다시 그림을 보여주었더니 정말 보인다고 합니다.

오늘 저녁 집에 들어가서 또 그림을 보여줄 때 예수님의 얼굴이 보이느냐 묻거든 눈과 코와 입을 가리키고 보인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구원을 받았구나 하고 소리치거든 구원은 그런 그림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구원이란 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 믿음의 고백에 의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방언을 할 줄 아느냐? 방언을 하면 구원을 받은 것이고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성령을 마치 무슨 은사를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은사 중심의 성령은 무슨 기적 같은 것이 나타나야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스도의 얼굴

한 경 직

 

아버지

이제 저희의 신령한 눈을 열어서

아버지의 형상이시오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소서

그 눈물 어린 얼굴,

가시 면류관 쓰신 그 얼굴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얼굴도 주님의 얼굴로 변하고

우리 교회의 모습도 주님의 얼굴로 변할 때까지,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에

감히 주님의 얼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얼굴을 앙망하게 해 주소서


둘째는 이론적 성령

이론적 성령을 다른 말로 말씀 중심이라고 합니다. 말씀 중심으로 가르치면 이론적으로는 강하지만 은사면에서는 약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경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은사(恩賜) - 1. 임금이 물건을 내려 줌
              2. 하느님이 주신 재능

* 은혜 은(恩), 줄 사(賜)

* 헬라어 / 카리스마(은사), 카라(기쁨), 카리스(은혜) 

내가 정말 은혜를 받았는가? 검증하는 방법
1. 사용하라(use)
2. 기쁨이 있는가?(joy)
3. 계속 사용하는가?(keep ues)
3. 열매가 있는가?(fruit)
4. 재창조가 진행되는가?(recreation)
5. 영광을 주님께 돌리는가?(glory)

성령을 받은 증거

초대교회 때는 성령이 불과 같고 바람과 같고 방언을 말하고 이러한 현상적인 것에 의해서 처음으로 성령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지금도 초대교회 전통적인 성령의 이해가 강조되기도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 사건은 성령을 가시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가 반드시 가시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Therefore I tell you that no one who is speaking by the Spirit of God says, "Jesus be cursed," and no one can say, "Jesus is Lord," except by the Holy Spirit.)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성령을 받았다는 성경적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주를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라는 고백과 함께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다.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천국 열쇠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 열쇠는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메시아 즉 구세주로 고백하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받았을 때 이것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곧 성령께서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알려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

충만이란 헬라어 단어는 ‘플래래스’ 라고 합니다. 플래래스는 내 안에 가득 채워진 상태가 아니라 내 안에 가득차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And the disciples were filled with joy and with the Holy Spirit.)    

본문의 상황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쫓겨났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과 유대 귀부인들에 의해서 쫓겨난 상황입니다. 그런데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은 내적 충만함에 멈춘 상태가 아니라 외적 충만함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믿음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내 죄가 깨끗이 씻어졌기 때문에 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삶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화) 사울은 계속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운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화) 요셉은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애급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애급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 형들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먼저 애급으로 보냈다고 위로했습니다.

내게 손해나 불이익이 있을지라도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내 안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런 삶을 살아가게 한다. 나의 각오나 결심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각오나 결심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처럼 무용하며 간사하다.


오늘날 세상은 끊임없이 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자신의 잇속을 채운다. 그리고 자신의 편에 서지 않은 사람은 무자비하게 쳐내고 짓밟고 죽인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할 때 이미 성령께서 고백하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성령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베드로의 삶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붙잡히시고 심문을 받을 때 베드로는 멀리서 어떻게 될 지 상황을 주시하려고 모닥불 곁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어린 여종이  베드로에게 당신도 예수와 같은 무리가 아니냐 하며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며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떠날지 몰라도 자신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성령을 받지 못해서 부인했을까요? 아니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인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 번 나타나셨었습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씩이나 목격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는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간다며 그물을 들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노련한 어부였던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니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동이 틀 무렵 해안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고리를 얼마나 잡았느냐 하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했지만 고기를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물을 배 오른 편으로 던지라고 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바다로 뛰어내려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아침 식사를 마쳤을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며 고백했습니다.


베드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라는 말을 들으셨던 예수님은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며 베드로를 부르셨던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너희가 몇 날이 못 되어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 그리고 주를 따르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성령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이때부터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순교의 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성령을 받은 것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구원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이라고 한다면 성령 충만함을 받았느냐 라는 질문은 구원 받은 삶을 살았느냐 라는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람과 성령을 받은 사람과의 차이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래 도표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사람을 만든 재료는 흙과 생기입니다. 동물을 만든 재료는 흙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기를 육체의 몸에 갖고 살아가는 영적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사람을 세 종류로 구분합니다.

성경

개역한글

영어

새번역

공동번역

현대인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

natural man

자연에 속한 사람

영적이 아닌 사람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

고전 3:1

육신에
속한 자

carnal man

육에 속한
사람

육적인
사람

세속적인
사람

고전 2:15

신령한 자

spiritual man

신령한
사람

영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


육에 속한 사람(고린도전서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유다서 1: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누구일까?

(새번역) 자연에 속한 사람

그러나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며, 그는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은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공동번역) 영적이 아닌 사람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현대인의 성경)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영적인 일에는 깜깜하고 도무지 깨닫지를 못합니다. 육체대로만 살기 때문에 영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천국, 지옥,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해도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자연인이라고 합니다.

육신적인 신자(Carnal man) 고린도전서 3:1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공동번역) 육적인 사람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이 말할 수가 없어서 육적인 사람, 곧 교인으로서는 어린 아이를 대하듯이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번역) 육에 속한 사람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세속적인 사람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적인 사람을 대하듯이 말할 수가 없어서 세속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를 대하듯 말합니다.

육신적인 신자란 예수를 믿지만 영적으로 성숙하여 신령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이 육신의 소욕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은 받았어도 아직 육체의 소욕을 버리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로 깊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지만 의무적으로 읽고 예배에 참여하지만 의무적으로 예배하기 때문에 기쁨이 없습니다.

말씀과 예배의 기쁨이 없기 때문에 만약 주일에 다른 행사가 있다면 예배보다는 그 행사가 우선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먹여 주어야지 스스로는 성경도 제대로 읽을 수 없고, 또 은혜를 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시기, 분쟁, 다툼이 많습니다. 모든 교회에서 일어나는 시끄러운 문제들도 바로 이런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육적인 사람들 때문에 말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령한 신자(Spiritual man) 고린도전서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새번역) 신령한 사람

신령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서도 판단을 받지 않습니다 


(공동번역) 영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은 무엇이나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신은 아무에게서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영적인 사람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제대로 평가하지만 세상 사람은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장성하여 분별력이 있고 영적인 힘이 있는 장성한 교인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교인은 잘못된 교리, 잘못된 신학, 잘못된 영의 역사 등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단사상에 현혹되거나 매혹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심령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서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


첫째, 분별의 지혜(요한일서 2:20)

너희는 거룩한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성령의 기름 부음이 내 안에 가득하게 채워질 때 모든 것들을 분별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요한일서 2:27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성령의 기름 부음이 오면 자연히 깨달아지고 알아지는 것입니다.


둘째, 온유한 심령(갈라디아서 6:1)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 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온유하다는 것은 부드럽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드러운 사람은 잘못된 길에 들어간 사람을 잘 인도하여 주께로 나오게 합니다.

시험받는 사람이 있을 때에 자기를 반성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으라고 했습니다.


셋째, 죄를 다스리는 능력(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욕망에 이끌리는 것은 아직도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 증거이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얻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증거자의 삶(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 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육은 영적인 일에 무능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영적인 봉사에 쓰여 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령 충만의 목적은 영적인 봉사의 힘을 얻는 것입니다.


무디(D. L. Moodv) 같은 이는 국민학교 3학년 밖에 못나온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키도 작고 목소리도 나빴다고 합니다. 배운 것이 없고 훌륭한 체모를 가지고 있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무디와 같은 부흥사는 없다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고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이 될 때에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은 나타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나 기도나 봉사나 무엇이든지 성령을 받아야 그 능력이 오는 것을 믿으시고 아무쪼록 열심히 기도하고 사모하고 기다려 성령 충만히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은혜를 체험하는 길을 영어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 Something, Nothing, Everything

Something,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존재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 그러나 내가 아무 것도 아님(nothing)을 깨닫고 주께 간절히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Everything,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한말 언더우드 선교사(Horace Grant Underwood, 1859. 7. 19∼1916. 10. 12)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여 13세 때 미국으로 이주
한국어 이름 원두우(元杜尤)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 아침에 제물포 항구에서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 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그의 겸손한 순종(Nothing)은 이 땅에 하나님의 큰 은혜, 선교의 열매(Everything)를 맺게 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poor, yet making many rich;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everything.    

세기적인 과학자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 많던 지식을 망각해버렸습니다. 답답해하던 제자들이 안타깝게 묻습니다. “이제 와서 선생님이 알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뉴턴은 여유 있게 대답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내 구주라는 사실이다. 이것 외에 더 무슨 지식이 필요 하느냐?”

세상이 아무리 복잡할지라도 신앙인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배려하며 겸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가 내 구주라는 것.
환경에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주를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십니다. 두 가지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인식하고 예수가 내 구주임을 믿는 사람 그로 인해 계시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도 못 받은 자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다고 하셨겠습니까? 이렇게 그 때에도 성신의 감동을 받아 신앙 고백을 바로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천국 열쇠는 베드로가 잘 나서 받은 것이 아니라 그 신앙 고백이 곧 천국 열쇠가 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내가 죽을 대신에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을 믿고 시인하면 다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누가복음 10장 20절에도 보면 70인 전도대들이 돌아와서는 “주님!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까지도 우리에게 복종합니다.” 하며 굉장한 보고를 할 때에 예수님께서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벌써 그 때에 오순절 전에도 제자들은 이미 하늘나라에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여기서 목욕한다는 말은 죄 사함을 받고 중생하여 구원받았다는 말이요, 또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은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도 매일매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발에 먼지가 묻는 것과 같이 죄로 말미암아 더러워졌으면 그때그때에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라는 말씀도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 곧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마귀의 자녀인 가룟 유다를 지적하여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 한 사람을 빼놓고는 다 중생을 한 사람이라고 분명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옳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만 하면 다른 뜨거운 체험, 은사 같은 것들을 몰라도 중심으로 믿는다면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따라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고 그러한 신자들이 있는 교회가 부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9장 l절부터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보니까 성령을 못 받은 것 같았습니다. 이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라고 하는 젊은 목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말도 잘하고 학식도 많고 성경도 잘 알고 열심도 있었으나 성령의 세례를 못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성령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바울이 그 교회에 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고 물으니 우리는 성령이 계시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만일에 예수를 믿는 것으로 다 된다고 하면 네가 믿느냐? 하고 물을 것이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말은 또 무엇입니까? 그러나 믿어 중생하는 것과 성령 세례를 받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바울이 다시 그러면 너희들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바울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자기 뒤에 오시는 이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했는데 그가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다시 설교하며 예배드리며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안수했더니 성령도 받고 방언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안수도 해야 합니다. 방언하는 것도 성령의 은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성령을 받는다 안수를 한다 하면 반대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 목사님들 가운데도 성령 세례를 모르고 체험이 없어서 성령을 받는다던지 소리를 내며 기도를 한다고 하면 질색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물로 세례를 받았지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후 그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l20명이나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하루, 이틀, 사흘… 열흘 동안이나 기다리면서 열심으로 기도하던 중 열흘째 되던 날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여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뜨거워지더니 이상한 말을 하고 능력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기도하며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자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교회가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목회하는 데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해 지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해 진다는 말은 마치 돈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물을 많이 가지고 있듯이 성령을 많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를 더 많이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도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에는 예수를 믿는 생활이 힘들고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셔서 은혜를 받으면 기쁨으로 하게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성령이 충만해지면 모든 의심과 부조리가 해결됩니다. 과거에는 설교를 들어도 성경을 읽어도 의심이 자꾸 생겨납니다.


그러나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그러한 의심이 다 사라지고 부조리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믿음 안에서 다 해결되고 완전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중생하지 못하고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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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강 9월 3일 오전 6:00∼7:30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poor, yet making many rich;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everything.)

기독교 신앙은 역설적 신앙(paradoxical faith)
- 논리에 맞지 않는 말
- 이치에 맞지 않는 말
(예) 급할수록 돌아가라!

- 급하면 지름길로 가야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브리서 11:1)
(예)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며(마태복음 5:39)
(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마태복음 7:13)

(도입 이야기) 쟁반에 사과 10개가 있습니다. 먹는 방법은 반드시 하루에 1개씩만 먹어야 합니다. 열흘 후에 사과를 먹은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 사과를 어떻게 먹었느냐? 질문했을 때 첫 번째 그룹에서는 매일 같이 상한 것을 골라서 먹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그룹은 매일 같이 가장 좋은 것만 골라서 먹었다고 합니다. 어느 그룹이 가장 맛있는 사과를 먹었을까요? 물론 두 번째 그룹입니다. 그 이유는 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문제 해결이란 환경과 조건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바뀌느냐?
생각하는 방식이 바뀝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declares the LORD.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and my thoughts than your thoughts.)    

역설적 신앙은 체험하면 할수록 그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신학자 워치만니의 간증, 계단식 논에서 가장 위쪽에 논을 소유한 어느 성도의 질문과 대답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가톨릭교회의 평신도 회장을 지냈던 우해석씨의 경우 24시간 빨래방을 운영할 때 뉴욕에 이주하고 한 달이 지난 사람을 채용한다. 왜 저 사람을 채용하는가? 저 사람은 지금 당장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생계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루마니아교회 앞의 눈을 치웠을 때 신부께서 성찬용 포도주 한 병을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신앙입니다.

김동익목사(1941.∼ 1998. 4. 1 신장암 사망, 56세)
수술을 받기 전 황산성변호사가 김목사에게 이번 기회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 수술 전 담당 의사를 위하여 기도하자 의사는 환자가 의사를 위하여 기도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술 후 밤에 꿈을 꾸는데 주님이 오셔서 아픈 곳을 만지시며 회복될 것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복하여 강단에서 설교할 때 주님을 만났고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셨다고 간증할 때 모든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암이 전이되어 결국 주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황산성변호사는 목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영수님이셨고 아버지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목사님이셨습니다. 더구나 새문안교회 작고하신 김동익목사님의 사모가 되었습니다. 목사의 부인이 되었어도 신약은 읽었지만 구약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체험하게 된 동기가 꿈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꿈에 지옥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 천국은 분명하게 있습니다. 고백하며 주여! 하고 외쳤을 때 꿈이 깨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신앙이 분명해 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아들을 주의 종으로 바치라는 음성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법조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들의 마음을 주님이 바꿔달라고 하였다. 이 땅의 공무원이 좋겠느냐? 하늘나라의 공무원이 좋겠느냐? 어머니 정말 거창하게 나오십니다. 그리고 아들은 결국 결정된 하나님의 종이므로 앞으로 고난의 과정이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 연세대 신학교 원서를 구입하여 갖고 다니며 결국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토저 목사와 레이븐 힐 목사의 대화 중에서


토저는 레이븐 힐에게 종이에 쓴 편지 한 장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이븐힐 목사, 나는 미국 대통령의 편지보다, 이 편지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네.”

제가 토저에게 물었습니다. “이유가 뭐지?”
그때 토저는 이런 이야기를 제게 들려주었습니다.

레이븐힐 목사, 들어보게. 이 편지는, 아프리카에 사는, 키가 작은 흑인 남자가 내게 보낸 것이야. 그의 이름은 듀마야.

그는 어느 날 밤, 한 침례교회에 갔고,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서, 그날 놀랍게 구원을 받았어. 회심의 체험을 한 거야! 듀마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려고 하는데, 그 교회 목사가 말했지.

“형제님, 교회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또 오실 거죠? 제가 뭐 도와 드릴게 있나요?” “네, 있지요.”
“그게 뭔가요?”
“제게, 교회를 맡겨주십시오.”
“방금 뭐라고 그랬죠?”
“제게, 교회를 맡겨달라고요!”

듀마는 당황해하는 그 목회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평생 저를 변화시켜 줄, 그 무엇인가를, 애타게 찾아 다녔습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사람입니다. 제 짐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저를 묶고 있던 무거운 족쇄에서, 제가 해방되고 완전히 풀려난 것을 느낍니다. 제 등 뒤에 항상 있던 무거운 짐이, 지금 다 사라졌어요. 오늘 예배시간에, 무엇인가 내 속에서 뿜어 올라와서 나를 정결하고 의롭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제게 교회의 강단을 맡겨주시기 바랍니다.”

“듀마 형제님, 정식 학교 교육을 받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학교에 다니신 적은 있으십니까?”
“아직 아닙니다.”
“그럼 그냥 교회나 다니세요.”

그러나 듀마는 계속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거듭남에 대해서 들어왔는데, 그런 일이 제게, 오늘, 지금 일어났습니다. 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는, 다른 식욕도 없고, 다른 욕망도 없습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을, 하나님만을, 하나님만을 원합니다.”

그 목사는, 적어도 정직했습니다.
“형제님, 나도 옛날에는 형제님처럼 그랬었어요.”

사람들은, 회심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한 후에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 신앙이 냉담하게 식어 버립니다.

듀마는 한 달 후에, 다시 교회로 나왔습니다. 그 목사는, 설교 중에, 듀마를 알아보았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는, 듀마에게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잘 지냈어요?”
그 작은 흑인 듀마가 말했습니다.
“네, 그런데 물어볼 게 있습니다.”
“뭔데요?”
“목사님, 제게, 설교할 교회를 맡겨 주시겠어요?”
“형제님은, 전에도 그러더니만, 교회에 단 두 번 나오면서, 올 때마다 교회를 맡겨달라니. 내가 이 주머니와 저 주머니에 교회를 잔뜩 넣고 다닌다고 생각하나 보군요.”

예 목사님, 저는 지난 한 달 동안, 이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전에, 이 교회 문 앞에서 목사님과 헤어진 후에, 곧장 저는 이 길을 쭈욱 따라 걸어갔고, 마을을 빠져나와, 숲으로 갔습니다. 숲길을 계속 따라 걸었고, 한 시내가 나왔는데, 그 곳 시냇가에 있는 동굴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동굴 벽에 표시를 하면서, 21일 동안, 밤낮으로 성경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하나님, 당신과 나, 둘 사이에서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제가 이 문을 나서기 전, 설교자로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평생 설교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저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면 시냇가에서 세수를 했습니다. 11일째 되는 한 밤 중에 성령이 제게 임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를 목사로 불렀다. 네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가라!”
“그러니 목사님, 제게 교회를 맡겨 주시겠어요?”
“수요일 밤, 장로 회의가 있으니, 주일날 다시 와 보세요.”

그 목회자는, 수요일 날, 장로들과 상의를 한 후, 그 흑인이 끈덕진 광신자 같으니, 마을 반대편에 있는, 성도 5명이 모이는 오두막 지교회를 한 번 맡겨보자고 했습니다. 어차피 그 키 작은 흑인은 무식하고, 무례하고, 글도 제대로 모르니 교인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구박이나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교인들은, 며칠 혹은 몇 주간 그의 설교를 듣다가 문을 닫아걸고, 그에게, ‘당신은 목사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으니 이 교회를 떠나라!’고 할 것이라고 장로들은 예상했습니다.

듀마의 남다른 점

평소에 성격상, 감상적인 곳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인 토저가 그 낡은 듀마의 편지에 키스를 하고, 서랍에 고이 넣는 것을, 저 레이븐힐은 보았습니다.

“이건 내게, 미국 대통령의 편지보다 더 귀한 편지야. 내가 듀마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그가 내게 편지를 보냈어. 사람들이 그 마을에서 쫓아낸 듀마, 장로들은, 다섯 명의 흑인 신자들을 통해, 그를 쫓아내려고 했는데, 듀마는, 현재 남아공 더반시에서 가장 큰 교회를 목회하고 있고, 지금 1200명의 교인들이 모이고 있어. 그 작고 초라한 교회에서, 그 버려졌던 교회가, 그렇게 부흥된 거야.”

그렇다면 여러분, 그런 부흥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동굴 속에서 21일 동안 밤낮으로 하나님께 “주님, 영원의 빛 가운데서, 제 작은 마음에 말씀해 주세요. 제가 설교자로 기름부음을 받았는지, 아닌지를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간절히 간구했고 그래서 기름부음을 받았던 것이 그의 사역의 비밀은 아닐까요? 목회자 여러분, 그렇게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비밀이 아니라, 다 알지만, 실행하기가 어려운 거죠.

듀마는 매년 11월 17일이면 다시 그 동굴로 간다고 합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11월 17일이면, 그는 아내와 자녀에게 키스를 하고 장로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그 동굴로 가서, 21일 동안 21일 낮과 밤을, 꼬박 그곳에서 혼자 보냅니다.

매년 21일 동안,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소명과 사명을 새롭게 하고 21일 동안, 영적으로 새 힘을 얻고, 21일 동안, 새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이렇게 매년 그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와 새로운 모략(counsel)과 새로운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한 번 성령세례를 받고 그것으로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속 버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기름부음은 일생동안에 거듭 반복해서 부어집니다. 한 번 회심한 후에도 거듭 회심하는 체험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끔은 숨어버리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두운 나락에 떨어진 것처럼 느낄 것입니다. 당신이 기름부음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아니면 혼자 스스로의 능력과 웅변력에 의존해 사역하는 쪽을 택하는지를 하나님은 시험하기 위해 즉 당신을 알아보시려고 당신을 혼자 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이때 저와 여러분이 택할 길은 기름부음을 새롭게 받기 위해 간절히 주님께 매달리는 길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그런 목적으로 함께 모였다가도 사흘도 못 버티고 다 떨어져 나간다고 합니다. 듀마가 남다르고 위대한 것은 바로 그 목적을 바꾸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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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강 9월 3일 오전 9:30∼12:00

예수의 흔적(갈라디아서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Finally, let no one cause me trouble, for I bear on my body the marks of

흔적(痕跡)이란 단어를 헬라어로 ‘스티그마’ 라고 합니다. 영어 단어에 ‘stigma’ 라는 단어는 ‘오명’ 이라고 합니다. 원래의 뜻은 흔적입니다.

흉터 흔(痕), 흔적 흔(痕), 자취 적(跡), 발자취 적(跡) - mark, stigma

예전에 가축들을 방목하는 시절에 여러 목장에서 많은 가축들이 들판에 모여서 지냅니다. 해가 질 무렵 목동은 자기 목장의 소유를 구분하여 가축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이때를 위해서 각 목장마다 자기 가축들에게 불로 달궈진 이니셜 마크를 짐승의 몸에 새깁니다. 새기는 것 보다는 오히려 불로 지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살갗이 불에 타들어가며 화상을 입은 피부에 자국이 남습니다. 이 자국을 스티그마라고 합니다.

2018년 가족 수련회를 마치면 각자 자기 삶의 현장으로 떠나야 합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수련회에 참석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삶의 시간은 여전히 크로노스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롭게 결단한다면 환경은 똑같습니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은 카이로스가 될 것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다듬기 위하여 이 시간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흔적을 갖기 위해서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뻘건 쇳덩이가 짐승의 몸에 닿은 순간 짐승은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흔적이 내가 누구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시가 됩니다.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갖게 된 사도 바울은 어떤 흔적을 가졌을까요?
신학자들마다 흔적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안질(eye trouble)이라고 하는 해석은 다메섹 도상에서 너무 강열한 빛을 보았기 때문에 시력이 약해졌다고 합니다.

간질(epilepsy)이라고 하는 해석은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한 후에 갑자기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면 이제까지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 상처가 되어 복음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안질이든 간질이든 구체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은 그 흔적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바울을 그리스도 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었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멀어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런 흔적을 갖고 내 삶의 자리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입니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For everything God created is good, and nothing is to be rejected if it is received with thanksgiving, because 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예수의 흔적은 세상과 구분되는 거룩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목장의 가축들이 그들의 몸에 목장주인의 표시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거룩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도쉬 라고 합니다. 카도쉬의 의미는 구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기준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감사 - thanksgiving

고린도후서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육체의 제한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육체적인 조건에 만족할 때만 감사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을 회복할 때는 육체적인 조건을 불이익을 당하고 고통을 받을지라도 그 자리에서 감사가 가능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을 때 감사와 찬송을 하였습니다. 그때 옥문이 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화) 독일의 화가 알버트 듈러의 기도하는 손
(예화) 대학 시절 친구의 집에서 야간에 학교에 다니고 주간에는 집안의 일을 돕는  어느 친척 여학생의 모습

둘째, 하나님의 말씀 - the word of God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며 내 길에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발의 등은 현실과 현재를 비추는 빛입니다.
내 길의 빛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소망의 빛입니다.

(예화) 배명준목사, 황해도 당수나무에 성경을 붙여놓아 마을에서 추방당했다.

셋째, 기도 - prayer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는 곧 삶을 의미합니다.
기도와 삶이 분리될 때 세상은 혼돈 가운데서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곧 삶이 될 때 로마의 황제 서내면의 기도

(예화) 나의 원대로(불래)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델레마) 하옵소서!

(예화) 골방(마태복음 6:5∼8)
골방의 기도 - 탈무드의 랍비와 제자들(행동이 느리다고 비웃던 사람들에게 새 한 마리씩 나눠주며 2시간 안에 죽인 후에 그 새를 갖고 오너라. 제자들은 새를 가장 빨리 죽이면 수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재빠르게 행동하였다. 과연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곳은 어디인가?

하나님의 속성(성품) - 윤리적 속성(성품), 비윤리적 속성(성품)

골방 기도는
1. 집중하는 기도
- 오직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을 간절히 찾는 기도

(예화) 안치규(처조카) 이상한 꿈에 대한 해석(8월 18일, 토요일)
젊은이들이 혼돈할 수밖에 없는 현실 

(예화) 엘리야와 갈멜산의 대결(열왕기상 18:1∼46)

2. (사랑과 은혜를) 확증하는 기도

-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확증하는 기도

(예화) 요나의 큰 물고기 뱃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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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서 베드로가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라는 고백을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게네사렛 호수가 소개됩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구약에서는 긴네렛 이라고 불렀습니다(민수기 34:11, 여호수아 12:3). 긴네렛이란 명칭이 잘못 전달되어 게네사렛 이라고 합니다.
신약에서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갈릴리 바다, 요한복음에서는 디배랴 바다, 누가복음에서는 게네사렛 호수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긴네렛, 게네사렛, 갈릴리, 디베랴는 모두 같은 곳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게네사렛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베드로와 동료 어부들은 그물을 씻어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두 개의 배가 있는 것을 보시고 마침 시몬의 배에 올라타신 후에 배를 조금 띄우라 하시고는 배 위에서 호숫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사용하는 그물은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머리 위로 던져서 고기를 잡는 투망식의 그물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물을 길게 쳐 놓고 물의 흐름에 따라 그물을 드리우는 자망이란 그물이었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그물은 머리 위로 던지는 그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 가지 이상한 것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물을 내리라

당시 어부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물고기를 잡는 방식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둘째는 깊은 데로 가라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부들에게 날이 밝은 때는 물고기들이 깊은 곳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은 당시 어부들에게는 물고기를 잡는 상식에도 맞지 않는 방식이었습니다. 상식에도 맞지 않는 방식대로 행했을 때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렇게 한 번 그물을 내려 많은 물고기를 잡아본 예가 없었기에 베드로는 다른 동료들의 배를 불러 두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데 여기서 베드로도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밤새도록 잡을 수 없었던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예수님에게 “물고기를 잘 잡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아니면 “나와 같이 동업하여 더 많은 물고기를 잡아봅시다” 아니면 “오늘 운수대통이다” 외치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떠나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

1.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군중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잠간 배를 빌려주었는데 그 배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곧 믿음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느 특별한 장소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늘 머무는 그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여 다시는 그물을 던지지 않겠다고 결단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어젯밤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다시 희망을 갖고 그물을 던지려고 그물을 씻고 정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가 하는 일을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보다 내가 하는 일에 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대상 선생과 주여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선생이여”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그물 가득히 잡은 후에는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불렀습니다.

선생이 아니라 주여 라고 호칭이 바뀐 것입니다. 믿음이란 대상의 호칭이 바뀌는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은 내 삶의 자리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주위에서 찾아야 합니다.

셋째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기를 잡던 어부 베드로가 내가 죄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자아관(自我觀) 이라고 합니다.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선지자 이아샤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고 주위에 여섯 날개를 갖고 있는 스랍들이 거룩하가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며 노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 때문에 나는 망하게 되었다며 절망합니다. 그 이유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기도하는 중에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환상을 보았다면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할까요?

지난 밤 내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를 만나주셨다면 자랑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나와 같은 부정한 사람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뵐 수 있느냐 하며 자기의 죄성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거룩한 임재 앞에서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메섹 도상의 사울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는 음성을 듣고 그 자리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율법으로만 알고 믿었던 사울에게 직접 들려온 음성은 사울을 믿음의 사도로 변화시켰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죄의 고백으로 인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 가 될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많이 잡은 것 때문에 더 많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가치를 선택하지 않고 죄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제자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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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수련회(9월 1일∼3일)

· 영적 생활의 원리(로마서 12:1∼2)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 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영적 생활의 의미
-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입니다.

- 영적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도입 이야기) 초대교회 교부 시므온은 원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앉아서 묵상하며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낮게 세워진 원형 기둥이 마지막에는 무려 30미터 높이까지 세워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므온처럼 생활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매일같이 생활의 터전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만 낯선 땅에서 생존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시므온처럼 세상과 분리하면 생존이 어렵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가족들을 위하여 더구나 성도들은 교회 봉사를 위하여 더 많은 수고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신앙생활이 결코 용이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즉 영적생활의 원리를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전개 이야기) 온산공업단지 주거지로 선정된 신경 마을에서 교회를 시작할 때 경험했던 서울 무당과의 보이지는 않는 전쟁
“교회 전기를 절대로 마을 제사 지내는 일에 사용하면 안 된다”
“교회 전기가 밝혀지면 귀신이 제사 음식을 먹으로 올 수 있겠느냐?”

(현실 이야기) 저는 2000년 7월 4일에 서울에서 영주권을 받은 후 케네디 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당시 제 나이가 50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뉴욕에서 가족들과 살아야 했습니다. 목회자로 살았기에 저희들이 갖고 있던 돈은 몇 달 렌트비와 자동차 할부금을 지불하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두 아들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저희 가족들이 뉴욕에 도착하기 전에 비행기에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목회자로 불러주셨기에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생존의 문제에 붙잡혀 목회가 우선이 아니라 생존경쟁에 나서야 하는 일이 없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왜냐하면 제가 나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제가 목회자로 보입니까? 아무리 살펴보아도 저는 목회자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고 목사로 살아가지 않으면 당장 세상으로 쉽게 동화될 사람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교회 중심의 삶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즉시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저와 같은 사람은 교회를 떠나면 당장 무너져서 방탕한 삶을 즐기게 될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활은 영적 존재를 알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 영적 존재에는 어떤 존재들이 있을까요?

1. 하나님(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2. 천사(히브리서 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3. 사탄, 마귀, 귀신(요한계시록 12: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악령(惡靈)의 실체


사탄(사타노스) - 대적자
48회(구약 14회, 신약 34회)

마귀(디아보로스) - 고소자(주로 단수형으로 사용)
38회(구약 5회, 신약 33회)

귀신(다이몬, 다이모니온) - 신적힘(주로 복수형으로 사용)
99회(신약 99회)

4. 사람(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독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영적 생활은 사탄과 마귀와 귀신을 물리치는 생활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 마귀의 일을 멸하려는 것이다.

요한일서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빼앗는 것이다.
-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가룟 유다(누가복음 22: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베드로(마태복음 16:21∼23)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광명의 천사(고린도후서 11:14)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히브리인의 마귀론
- 타락한 천사(이사야 14:12∼15, 에스겔 28:11∼19)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유다서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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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예배(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영적 생활은 영적 예배로부터 출발합니다.


(도입 이야기) 온산에서 교회를 시작하고 새벽 기도회를 시작하려는데 교인들이 아무도 나오지 못합니다. 혼자서 예배실에 모든 교인들이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새벽 기도회 순서에 따라 혼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한 농부가 논을 살피러 논으로 가던 중 교회 창문으로 불빛이 환하게 비추므로 창문 가까이 와서 예배실 안을 들여다보았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도 없는데도 혼자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신기해서 몇 날 며칠 계속 지켜보다가 하루는 마을 회관 앞에서 교회에 출석하던 교인에게 “당신은 왜 새벽에 교회에 가지 않느냐?” 하고 묻더랍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새벽 기도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일생동안 정말 감격적인 예배에 대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북한 지하교회 성도의 예배)
찬송은 소리 내지 않고 입만 벌려서 찬송을 한다.
성경은 지하교회 성도들이 갖고 있는 성경 구절들을 돌려가며 카피한 것을 돌아가면 속으로 읽는다.
마음껏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싶다

(중국 단동 지역의 조선족 교회 예배)
1996년 5월경에 중국 집안시 에 거주하는 저희 어머님의 조카 가족들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집안이란 도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이 있는 곳입니다. 마침 주일을 맞이하여 조선족 교회에 방문하여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는데 우리들이 부르는 곡조와 전혀 다르게 부릅니다. 반주자도 없고 피아노는 물론 올겐도 없는 교회이어서 인도자가 부르는 대로 같이 따라 부르는 것입니다. 저희가 찬송을 부르는데 자꾸 저희를 쳐다봅니다. 저희들이 부르는 곡이 그들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찬송을 부르지 않고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기만 했습니다. 왜 이렇게 찬송이 곡조가 바뀌었을까? 한참 생각하는데 공산국가에서 찬송을 마음대로 부를 수 없었던 시대에 누군가 부르던 찬송을 듣고 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 서 찬송의 곡이 원곡과 다르게 부르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의 인도자가 잘못 인도하면 예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회복해야 할까요?
예배를 회복하는 지름길은 주님을 바르게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주님을 바르게 사랑하기 위해서 베드로의 경우 두 가지 고백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믿음의 고백입니다(마태 16:16)
둘째는 사랑의 고백입니다(요한 21:15∼17)

신약 성경의 언어 헬라어에서 사랑의 용어로 사용된 단어
1. 아가패
2. 필로스
3. 에로스
4. 스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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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고백(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Simon Peter answered,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신앙고백은 영적고백입니다.
입으로는 누구든지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고백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닙니다.

(도입 이야기) 대학 시절 영문과 여학생을 사랑하던 철학과 학생의 독백
어렵게 덕수궁 분수 주위를 한 바퀴 두 바퀴 돌고 난 후에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때 여학생은 ‘나는 약혼자가 있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학생이 ‘그동안 영화를 본 것과 식당에서 밥을 먹은 것 그리고 덕수궁 입장료금과 차를 마신 것 모두 얼마인데 절반 값을 내놓으시오!’ 그러자 여학생이 지금 내 수중에 돈이 없으니 나중에 주겠다고 하고 서로 헤어져서 기숙사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여러분 남학생의 고백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랑한다면 약혼자가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마음을 떠 보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성급하게 그동안 함께 데이트 하며 사용한 돈의 절반을 내놓으라는 것은 뭔가 사랑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요?

신앙고백이란 주님에 대한 사랑 고백입니다.
사랑의 정의를 성경 신약성경 베드로전서 4장 8절에서 찾아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Above all, love each other deeply, because love covers over a multitude of sins.  

갈라디아서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골로새서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베드로전서 2:2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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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한 사람들의 특징

1. 죄에 대한 인식(깨달음)이 달라 진다.

- 죄에 대한 심각성과 경각심이 생긴다.

 

2. 죄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 회개하기 전에는 죄는 지을 때 우리의 느낌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느낌

을 따라가게 만드는데 회개한 후에는 사소한 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죄에 대

한 슬퍼하는 마음과 역겨운 마음을 갖는다.

3. 죄에서 돌이켜 죄와의 타협을 거부하며 죄와 처절하게 싸운다.

- 죄를 짓지 않을 순 없지만 회개한 후에는 더 이상 죄가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된

다. 전처럼 죄에 대해 결코 관대하지 않으며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또 싸운다.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죄와 싸운다.

4. 삶의 목적과 방향이 바뀐다.

- 내 야망과 꿈 대신 하나님의 소원으로,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뀐다.

항상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Self centered” 에서 “God centered” 로의 전환)

 

5. 나의 기쁨, 관심, 사랑의 대상이 바뀐다.

- 세상의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육신의 것에서 신령한 것으로 그 대상이 바뀐다.

 

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과 그 결과로 순종의 기쁨을 알게 된다.

 

7.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한다.

- 자신 안에는 전혀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회개하고 자아가 죽은 자들의 특징

1. 그들은 야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자기 왕국을 세우는데 관심이 없다.

2.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세워주는데 관심이 있다.

3.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분노하거니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4. 그들은 사람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5. 그들은 주님 앞에 홀로 머무는 것을 좋아한다.

6. 그들은 다른 사람을 시샘하지 않는다.

-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광을 나누어주기를 기뻐한다.

7.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그들은 빨리 주님께로 가고 싶어 한다.

회개의 4가지 요소(4R)

 

1. Revelation of the truth about sin, sins, and sinful nature.

원죄와 나의 죄, 그리고 자아의 죄성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선포됨으로 죄

가 드러남.

 

2. Realization of the reality of my condition before God. 

하나님 앞에서 내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는 것.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는 모든 죄가 상대적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 빛 아래 나의 모든 어둠이 (죄가) 드러난다.

그러나 죄를 드러내 주시는 것이 은혜이다 (회개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가 하나님이 하시는 부분(God initiates)

 

3. Renunciation of my sins: 죄를 끊고 버리는 것.

a. 죄를 고백하는 것: 하나님이 죄라고 하시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하나님과 사람(피해자) 앞에 죄를 입으로 낱낱이 고백하는 것(고백이 없는 것은 회

개가 아니다)

b. 하나님이 용서하셨음을 받아들이는 것.

c. 내 삶에 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제거하는 것:

나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

 

4. Restitution and reconciliation: 피해보상(변상)과 화해. 

회개의 완성단계. 이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회개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해야 할 몫(Our response)

 

이 네 가지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회개를 했다고 할 수 있다.

Repentance(회개)= God’s initiation (하나님의 주도하심) + Our response (우리 반응)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12가지 죄

 

1. 고집스러운 무지의 죄:

당신의 무지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무지의 죄를 버리지 않으면

이 죄가 당신의 생명을 취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의 죄를 회개하라.

 

2.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 은밀한 죄:

자기만 아는, 몰래 즐기는 죄를 버리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영원한 멸망으로 이끈

다.

 

3. 형식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죄:

종교적 의무(기도, 금식, 봉사 등)를 다하는 것으로 만족하려는 죄. 

 

4. 잘못된 동기에 이끌려 신앙 생활하는 죄:

육신적인 동기 곧 자기의 양심을 달래기 위해, 경건하다는 평판을 듣기 위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기의 재능을 과시하기 위해,

세속적이고 불경건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등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신앙 생활하는 죄. 이러한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당신의 행위뿐만 아니라 당신의 동기까지도 깊이 살펴야 한다.  

 

5. 자기의 의를 믿는 죄: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부인하는 것이므로 이것이야 말로

자기 영혼을 멸망으로 이끄는 죄이다. 악한 죄로 멸망할 수 있듯이

겉으로 드러난 의와 선행 때문에 멸망할 수 있다.

최선을 다한 후에 당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인정하라.

나의 의를 더러운 옷처럼 여겨라.

 

6. 철저한 신앙생활에 대한 은밀한 증오:

제대로 뜨겁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은근히 미워하는 죄.

이들은 철저한 신앙생활을 기묘한 것, 경솔한 것, 무절제한 열정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사람들은 거룩함을 사랑하지도 않고 거룩함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결국 마음이 부패한 사람들이다.

 

7. 일정 수준의 신앙생활에 안주하는 죄:

자기가 정한 어떤 범주의 테두리 안에서만 신앙생활 하려는 죄.

곧 자기들의 신앙생활이 구원받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진전하려고 하지 않는 죄로

이것은 오히려 그들이 진정한 은혜를 받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진정한 은혜는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나 완전함을 열망하도록 만들기 때문

이다.

 

8.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죄:

이것이야 말로 거룩하게 되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이것은 또한 회개하지 않았다는 뚜렷한 특징 중 하나이다.

 

9. 자기를 무시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에게 악의와 시기심을 품는 죄:

겉보기에 경건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당한 모욕을 기억하고 원한을 품고

악을 악으로 갚고 보복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악이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데도

그것을 미워하거나 억제하지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오히려 습관적으로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악독이 가득하며 죽음의 상태에 있는 것이

다.

 

10. 억제되지 않은 교만의 죄: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들의 칭찬을 더 사랑하고

사람의 존경과 갈채와 인정에 마음을 두는 사람들은

아직도 진정한 회개를 모르고 죄 가운데 있는 것이다.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교만을 보지도 못하고 문제 삼지도 않고

그것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는 사람들은 죄 가운데 완전히 죽어 있는 것이다.

 

11. 쾌락을 사랑하는 죄:

육신에게 자유를 주고 육신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육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

배와 감각을 만족시키면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리 경건해 보여

도 다 가짜이다. 육신을 기쁘게 하는 삶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

다.

 

12. 육신의 안전을 의지하는 죄:

돈, 명예 등 자신을 안전(secure)하게 지켜줄 수 있을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붙들고

그것을 의지하여 거기에 안주하려는 죄.

 

이렇게까지 꼭 회개해야 하는 이유 – 생명으로 가는 길은 좁고 협착하며

구하여도 얻지 못할 수 있으므로.

또한 구한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4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5)

우리 힘으로는 회개할 수 없으나 성령께서 도우시면 가능하다.  


회개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

 

1.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롬 3:23)

2. 회개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겔 33:11, 눅 5:32, 벧후 3:9)

3.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기 때문(눅 13:3, 5)

4. 회개는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유일한 길(롬 2:4∼5)

 (회개치 않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이다)

5.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기 때문(눅 16:2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