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생활 4 (에스겔 3:16-21) - 주일설교(Mar. 9. 2014)


그동안 소개했던 영적 생활의 세 가지 원리를 정리해 봅니다.


영적 생활을 위한 첫 번째 원리는 악을 미워하는 생활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 편에 속하는 것으로 선의 기준은 세상의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미워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면 주를 바라봅니다. 주를 찬송합니다. 주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주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영적 생활을 위한 두 번째 원리는 감사하는 생활


감사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관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감사의 조건은 비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내가 절대적 가치를 갖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활을 위한 세 번째 원리는 기도하는 생활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남군은 로버트 리 장군이 지휘하고 있었고 북군에는 링컨이 있었습니다. 좀처럼 전쟁이 끝나지 않을 때 링컨이 지휘하는 북군의 참모들이 전쟁을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달라고 기도한다며 링컨에게 용기를 주려고 할 때 오히려 링컨은 우리가 하나님 편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기도는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필요한 양식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영적 생활의 결론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은 선교적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선교적 삶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을 에스겔 3:16-21에서 찾아봅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 선지자 에스겔은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16. 칠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찌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백성 유대민족이 야훼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할 때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나라를 사용하여 유대 민족을 바르게 세우시려고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주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섬기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세상 풍속을 좇아가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의 현실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현주소


2013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가 169개 나라에 2만 574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초로 한국에 선교사가 공식적으로 입국했던 때가 1885년 4월 5일이라고 한다면 복음이 전래되고 130년 만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선교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은 복음의 기적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교회의 신앙의 현주소


미국의 기독교 여론조사 기관인 바아나 그룹(Barna Group)은 미국 성인의 약 5%와 개신교 교인의 8%만이 기독교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2005년 8월).

심지어 복음주의 목회자들 가운데서 51%만이 성경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선교사들을 많이 파견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는 교회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이 그 중심을 잃어버리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와 타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계속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교회와 미국교회도 장차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생활의 결론은 선교적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래 전에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그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했던 선교사의 보고를 소개합니다.


3년 동안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선교사로서 활동을 했는데 3년 만에 단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선교사의 가정에서 가사 일을 돕던 가정부이었다고 합니다.


선교사의 활동이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실패한 것이라고 할까요? 선교사의 보고를 듣고 선교에 성공했다고 축하했습니다.


선교사는 전문적인 신학과 선교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3년 동안 선교사의 가정에서 가사 일을 돕던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이 성공적인 선교라고 하는 것은 선교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삶을 지켜본 가정부가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뉴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선교적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선교적 삶의 신앙은 에스겔 선지자와 같이 증거 하지 않으면 그 피 값을 나에게서 찾는다는 믿음을 갖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적 신앙의 삶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고린도전서 9:16).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아멘 

 

과연 선교적 삶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둘째는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셋째는 이 세상의 민족들과 역사와 문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성경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선교의 하나님

하나님은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고 경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 선교의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선교적 백성

아브라함, 이스라엘, 제자, 사도, 교회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교를 위하여 특별하게 선택받았고 거룩하게 되어 선교 목적을 위하여 쓰임 받은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셋째, 세상은 선교의 무대

세상의 모든 민족과 역사와 문화와 땅은 선교의 무대로서 그 존재 의의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교적 삶의 첫 번째는 순종하는 생활(生活信仰)  마태복음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조금 더 착한 것이 아닙니다. 착하다는 것은 비교가 아니라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절대적으로 착한 것을 의미합니다.

빌레몬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마침 그곳에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붙잡혀 들어왔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로부터 그가 어떻게 빌레몬 교회를 떠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든 과정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에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돈만 있으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깨우쳤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가 감방에서 나가는 날 빌레몬서를 오네시모의 손에 쥐어주며 이 편지를 갖고 빌레몬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에 노예가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면 그 노예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니라 이제부터는 주 안에서 한 형제요 동역자로 함께 일을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서 머물 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했지만 감방에 갇히므로 주 예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이와 같은 것이 생활신앙입니다. 생활신앙은 오직 주의 말씀에 순종하므로서 가능합니다.

둘째, 믿는 생활(신앙생활)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단 한번밖에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사도로서 순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지만 유다는 스스로 목을 매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베드로에게는 신앙생활이 분명했지만 유다에게는 신앙생활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고 괴로워하며 고달픈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 너무나 부끄럽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기 생각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지 않자 실망하여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을 포기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실망 가운데서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이야기 자료 /

레이건과 카터 대통령의 비교


미국의 두 대통령인 레이건과 카터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 카터는 인기가 밑바닥 이었고 레이건의 인기는 최상이었습니다. 레이건은 배우이며 웅변을 잘해서 미국인들의 눈을 멀게 하는 데는 성공함으로 잠시의 인기는 누렸는지 모르나 지금에 와서는 보면 그의 재직 8년 동안 미국의 경제가 세계 최대의 채권국에서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하게 했다고 나쁜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이건은 노후에 치매 현상으로 망령을 떨다가 세상을 하직한 비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 반면, 카터는 오직 신앙적인 자세로 일관함으로 재직 시에는 별로 인기가 없었으나 오히려 은퇴 후에 점점 인기가 높아 가고 있습니다. 그는 고향에 돌아가서 농장을 운영하고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로 충성하면서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는 반면, 집 없는 백성들에게 집을 지어 주자는 단체에서 9년 동안 직접 망치와 톱을 들고 땀 흘려 일하고 있음으로 미국인들과 세계인들이 높이 평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레이건은 사람 중심으로 일했으나 카터는 하나님 중심으로 일을 한 결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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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우수성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자 젠센은 유대 민족의 지적 능력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다름 아닌 숱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지켜온 신앙 교육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교육의 장(場)은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정교육은 신앙을 위한 것이지 지식이나 직업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는 것 등을 보며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또 글을 배우기 전에 성경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갖게 합니다.


유대인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회당 중심, 랍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첫째로 하나님 중심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 없이 하나님은 있지만 하나님 없이 나는 없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회당 중심은 이사할 때 회당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가 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랍비 중심은 자녀, 교육, 결혼, 이사, 사업 등 모든 문제를 랍비와 상담을 통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