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Aura)는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서려 있는 특별한 기운, 후광, 광채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입니다. 아우라는 껍질이 아닌 내면의 빛입니다. 화장이나 치장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내면의 고결하고 초 긍정적인 기운이 빛으로, 카리스마로 표출될 때 비로소 아우라가 나타납니다. 한 사람의 아우라가 전설을 만듭니다. 그 한 사람이란 어렵던 시대를 살며 오늘의 기적을 일구어낸 어르신들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아 오늘 읽을 말씀은 욥기 15장부터 17장입니다.
15장은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욥에 대하여 비판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14절)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깨끗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다고 합니다.
16장과 17장은 엘리바스에 대한 욥의 반론입니다.
욥은 허망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우릴 수 없다고 합니다.
욥의 고난은 주께서 내리신 것이므로 사람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친구는 조롱할지라도 오직 눈은 하나님만 친구들이 욥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고 합니다.
주위에 알 수 없는 고난과 시련으로 고통을 받는 이웃들을 위로할 수 있는 카프만 부인의 ‘광야의 샘’이란 글에서 고난의 의미를 소개합니다.
나는 누에고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마침 여러 마리의 누에고치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중이었다. 너무도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려고 애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불가능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 두 마리, 그토록 작은 구멍을 통해 천신만고 애쓰더니 결국은 빠져 나와서 공중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나는 마침 또 나오려고 애쓰는 고치를 발견하고 가위로 그 구멍을 넓게 잘라 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더욱 사랑과 자비가 많다고 자족하면서 혼자 웃었다. 내가 넓게 열어준 구멍으로 나비는 쉽게 나왔으나 문제가 생겼다. 공중으로 솟아오르려고 몇 번 시도하면서도 결국 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작은 구멍에서 고통하며 힘쓰면서 나와야 그 몸의 영양분을 날개 끝까지 공급하게 되고, 날개가 나올 심하게 마찰되면서 날아오를 만큼 강건해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주후 2012년 5월 13일(주일) 134일/366일
뉴욕나사렛교회 이승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