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2월 25일, 수) - 데살로니가후서 3장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은 데살로니가후서 3장, 사무엘하 12장입니다.


신앙을 갖는 이유는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은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는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원하는 신앙의 보상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는 구원의 은혜와 더불어 얻게 되는 평안, 기도응답 등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것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이 주께 나아오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는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을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귐으로 하나님을 배우고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신앙은 세상의 가치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우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일을 적게 하고 많은 것을 갖는 보상이 아닙니다.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어 분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싫어하면 먹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값비싼 노동에 맛있는 음식이 제격인데도 무조건 값비싼 음식에 도취하여 놀고 먹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이 사회의 질서를 파괴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구보자’를 생각해봅니다.

먹구보자!

놀구보자!

쉬구보자!

자구보자!

마시구보자!

즐기구보자!

하구보자!


이러한 사고들이 세상을 어지럽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이 곧 기도이며 기도가 곧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Daily Bread & Prayer(Dec. 25. 2013) Wed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후서 3:10b)  

If a man will not work, he shall not eat.(2Thessalonica 3:10b)   

- 즐겁게 일을 하게 하소서!

  Enjoy your work in Jesus Christ!




오늘의 묵상(12월 24일, 화) - 데살로니가후서 2장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사무엘하 11장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곧 오실 것으로 믿고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며 날마다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기다리던 주님이 그들의 생전에 오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믿음으로 후대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이 체험했던 것들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 올바른 분별력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읽어야 합니다.


1992년 10월 28일은 다미선교회의 잘못된 재림의 주장으로 혼란을 일으켰던 날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장림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다가올 미래를 줄여 다미선교회를 조직하고 ‘다가올 미래’ 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여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그는 후에 사기혐의로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 이답게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목회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학생으로 함께 했던 하방익과 권미나라는 아이들이 계시를 받았다며 선전했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자신들이 했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하방익은 하다니엘이라고 개명하고 하남에서 목회 중에 있고 권미나씨는 경상도지역에서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다가 최근에는 일반 장로교회에 정착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했던 해외선부담당 장만호목사는 장요셉이라고 개칭하고 “베리칩에 숨겨진 사탄의 전략”이라는 책을 출판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주의 재림은 반드시 실현될 미래의 사건이지만 어느 개인의 신비적인 체험과 주장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인들 중에 바르지 못한 종말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주장하던 것들을 열거하면서 그런 것에 흔들리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잘못된 종말론이란 영과 말 그리고 편지 등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그들은 하던 일을 중단하고 주의 재림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영적으로나 말로 그리고 바울이 보냈다는 거짓 편지를 등장시켰고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과거나 현재나 비슷합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일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특별히 신비적인 어떤 것으로 사람을 미혹합니다. 그 중에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이것은 바르지 않은 전재 위에 세운 결론과 같습니다. 이는 어린아이는 순결하고 그 순결한 아이가 받은 것이므로 그것은 진리라는 논리입니다.


사람들은 진리인 주님의 말씀보다 검증이 어려운 신비적인 일에 더 치우치는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려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강림하시는 시기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주님의 강림 전에 벌어질 일에 대해서 소개하기를 사람들이 배교하고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신이라고하며 숭배 받으려고 한다고 합니다.


신비적 영성에 치우치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그로부터 나오는 어떤 것을 통해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는 것이 목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시몬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는 사도들이 안수하여 성령 받게 하는 것을 보고 사도들에게 돈을 주며 자신에게도 그러한 능력을 달라고 하였다가 책망을 받은 자입니다(행 8:18). 그들은 본질인 주님께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을 통해 얻고자하는 돈, 치유, 기적 등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신앙이 없다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사탄은 교묘하게 신앙이란 틀을 쓰고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리고 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게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주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러한 것을 추구할까요? 진리를 믿지 않기 때문이며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Daily Bread & Prayer(Dec. 24. 2013) Tue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2:13-14)

- 날마다 성령으로 새롭게 하소서!   

But we ought always to thank God for you, brothers loved by the Lord, because from the beginning God chose you to be saved through the sanctifying work of the Spirit and through belief in the truth. He called you to this through our gospel, that you might share in the glory of our Lord Jesus Christ.(2Thessalonica 2:13-14) 

- Everyday make me a new by the Holy Spirit.




오늘의 묵상(12월 23일, 월) - 데살로니가후서 1장


오늘 읽어야 할 말씀은 데살로니가후서 1장, 사무엘하 10장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를 가지고 갔던 디모데가 돌아오고 그들에 대한 소식을 바울이 들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의 신앙에 대해 전서에서 칭찬했던 바울은 그들의 바르지 못한 신앙생활에 대해 바로 잡아야 할 필요를 느껴 후서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은 환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로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과 야고보가 죽고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돌에 맞았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과 유대교의 문제였고 루스드라에서는 바울 개인에게 행한 박해였다면 데살로니가 교회의 핍박은 바울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데살로니가교인들을 핍박하였고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바울도 3주밖에 견디지 못했고 그 후에 들어가서 격려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데살로니가교인들은 계속된 박해로 힘이 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아니 잃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더욱 깊어졌고 폭풍성장을 했던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매일매일 죄와 싸우고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는 삶입니다. 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별하며 세상의 가치에 지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말씀으로 싸우는 삶이 성도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함이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고 합니다.

 

성도에게 환란과 박해는 유익합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바울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고백합니다(롬 5:4).


성도에게 주어지는 환란과 박해는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 후로는 하나님의 안식이라는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Daily Bread & Prayer(Dec. 23. 2013) Mon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5)

-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이루게 하소서!

All this is evidence that God's judgment is right, and as a result you will be counted worthy of the kingdom of God, for which you are suffering.

                                                           (2Thessalonica 1:5) 

- I want to live in worthy of the kingdom of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