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사도행전 17:26-31) / 주일설교 원고

이슬람 국가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가 체포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다른 종교를 전파하는 행위는 매우 중대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선교사는 마지막 변론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법정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제 질문에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 갈래 길이 나타났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알 수 없어 망설이고 있는데 저 앞에서 두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그러자 법정에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지요 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선교사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살아 있는 예수님께 길을 묻지 않고 죽은 마호멧에게 길을 묻고 있습니까? 이렇게 변론을 했다고 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믿지 못한다면 믿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믿는다면 믿는 그대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가 유명한 설교자를 초대하여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설교자는 미리 설교 제목과 성경을 알려주었습니다.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여러분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였더니 교인들은 설교 제목과 성경을 알고 있었기에 예 하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설교자가 회중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 행하십시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설교를 마쳤다고 합니다.

얼마 후 그 교회에서 설교자를 다시 초대하며 지난번에는 설교가 너무 짧았는데 이번에는 조금 길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강단에 서게 된 설교자가 다시 회중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제가 무슨 설교를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러자 교인들이 지난번에는 예라고 대답하여 설교가 간단하게 끝났기 때문에 이번에는 모두 아니오 모릅니다 하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설교자는 회중들에게 모르면 알려고 노력하시오 하고 설교를 마쳤다고 합니다.

두 번씩이나 초대했어도 설교를 듣지 못한 교회에서 세 번째로 또 설교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 강단에 서게 된 설교자가 다시 회중들에게 여러분 오늘 제가 무슨 설교를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교인들의 절반은 예 라고 대답을 하고 절반은 모른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설교자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치십시오 하고 설교를 마쳤다고 합니다.

매년 부활주일을 맞이합니다.

설교자도 설교를 듣는 교인들 모두 감동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부활의 증인입니다.

부활이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남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합니다. 그러나 사전의 정의는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소생이란 것도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후에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증인이란 두 가지 정의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증거가 되는 사람

둘째는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는 사람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증인이란 부활의 증거가 되는 사람입니다. 부활의 증거가 되려면 부활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부활을 알 수 있습니까?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 기원 후 63년경에 누가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일어나고 대략 30년이 지난 시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일어나고 2000년이 지난 후에 머물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부활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아덴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아덴이란 도시는 현재의 아테네를 말합니다. 아테네는 철학의 도시입니다. 기원전 469년에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태어났고 427년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태어난 곳입니다. 아덴이란 희랍의 철학이 발달한 도시였고 우상 숭배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바울이 증거 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도저히 받아드려지지 않았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철학과 이성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앙입니다. 신앙이 아니면 부활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이 너희들 속에 믿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주셨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이 성경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여러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게바, 12 제자, 주의 형제 야고보, 바울 그리고 500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더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행적에서 더 놀라운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활의 몸 즉 육체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육체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여 있던 집안으로 순식간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의 몸은 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또한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를 구워 함께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분명한 육체가 있다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40일이 지났을 때에는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왜 하늘을 바라보느냐 이제부터는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한 육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문을 통과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아무런 도구도 없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몸은 신비한 몸입니다.

부활 때에는 우리 모두가 이렇게 신비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실험실의 비밀이란 짧은 교육 영화를 소개합니다.

사람의 몸에는 전류가 흐르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강한 전류라고 사람의 몸에 흐르고 있는 전류의 파장에 맞춰서 전기를 통과하면 사람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의 손에 나무 막대기를 들게 하고 2만 볼트의 전기를 흐르게 하면 사람의 몸은 그대로 있는데 손에 들고 있는 나무에는 불이 붙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문을 통과하지 않고 들어가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나타날 수 있는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부활의 증인이란 부활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부활을 증거 하려면 부활의 실체는 예수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왜 하늘만 쳐다보느냐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것은 보혜사 성령입니다.

이제부터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할 때까지 부활의 증인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와 충만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모두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 새로운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