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뿌리 청교도의 신앙과 삶(1)
청교도운동의 시작과 발전
청교도(淸敎徒, Puritan)란 영국의 종교개혁자들과 그의 후예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청교도 개혁운동은 영국의 종교개혁 운동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청교도들은 영국 종교개혁의 완성의 주역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중세교회 안에서도 선구자들의 종교개혁이 있었듯이 영국 내에도 몇몇 선구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영국의 종교개혁은 1534년 헨리 8세가 개인적이며 정치적인 이유에서 잉글랜드의 교회의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결별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534년의 수장령(首長令, Acts of Supremacy)에 따라 영국은 국왕을 최고 우두머리로 하는 독립교회가 되었는데 이것이 영국 국교회(성공회)이다. 영국에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나 국교회 내에는 여전히 천주교적인 요소가 교회에 잔존하여 있었다. 반쯤 이루어진 종교개혁에 반하여 철저하고 완전한 종교개혁을 이루기 위하여 등장한 무리들이 청교도들이다.
로이드존스(D. Martyn Lloyd Jones, 1899-1981)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혁은 먼저 의식들과 예복들에서 시작되어 끝내는 영국 국교회의 전체 상태에 대한 의문으로 나아갔고 철저하게 개혁하려는 열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청교도는 부분적으로 개혁된 교회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하게 개혁된 교회를 원하였다.”
청교도 교회 개혁은 더욱 발전하여 엘리자베스(Elizabeth I, 1533-1603) 여왕이 다스리던 1560년대에는 청교도 운동이 하나의 조직된 운동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결국 영국 국교회 내에서의 청교도 운동은 1662년 대 추방령으로 종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688년 명예혁명이 일어남으로 청교도들에게 설교하고 독립교회를 세울 수 있는 권리가 다시 주어지고 국교회 밖에서 계속된다.
이렇듯 청교도는 한 세기 반가량 영국에서 진행된 개신교 종교개혁운동이다. 청교도운동은 그들의 정신과 사상을 이어받은 그의 후예들에 의해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청교도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된 시기는 1564년으로 추정되는데 이 이름은 처음에 영국 국교회에 비타협적인 개신교도들을 내리깎는 경멸조의 적개심이 가득한 호칭이었다. “까탈스러운 사람들, 비판적이고 고집불통의 사람들”, “국교에 반대하는 비판적이고,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작당들”이라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처음에 사용되었을 때에 대적자들에 의해서 붙여진 경멸조의 이름이었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광스러운 표현이 되었듯이 청교도들이라는 경멸의 표현도 얼마 후에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었고 그 이후의 세대에게 영광스러운 이름이 된 것이다.
2. 청교도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청교도들을 알아야한다. 왜 그들을 알아야 하는가? 조셉 파이파(Dr. Joseph A. Pipa)는 청교도들을 알아야하는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상황 속에 살면서도 효과적으로 복음사역을 하였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은 우리의 신앙고백적인 표준서들의 발원(發源)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임스 패커(J.I. Packer)는 다음과 같이 일곱까지 이유를 들었다.
– 그들은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델이다.
– 그들은 신학적 통합성을 추구했다.
– 그들의 영적 표현의 질이 뛰어났다.
– 그들은 효율적 행위에의 열정을 가졌다.
– 그들은 가정생활의 안정을 위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 그들은 인간의 가치에 대한 지각을 가졌다.
– 그들은 교회 갱신의 이상을 가졌다.
이처럼 우리가 청교도들을 알게 되면 참된 성도의 삶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의 삶을 알아야한다.
(1) 청교도들은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의 샘슨(Dr. Thomas Sampson)은 청교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들은 그 누구도 정당하게 잘못을 찾을 수 없는 교리와 생활을 지닌 형제들이었다.” 라이큰(Leland Ryken)도 이렇게 말했다. “청교도들은 이 세상의 성자들(Worldly Saints)이다. 그들은 세속 오염으로부터 격리된 거룩한 양심을 소유한자들이었다. 초대교회로부터 물려받은 사도적 순결과 거룩한 양심을 지키려고 세속으로부터 격리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어떠한 것이라도 거부했다.”
“오늘날 청교도들이 누구인가?”라고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2000년 교회역사 속에서 성경 밖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성경적인 사람들이다.” 즉 성경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 1899-1981)의 말처럼 “청교도는 언제나 신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헤른(James Heron, D.D)은 “청교도들이 원했던 것은 가능한 성경 속에 나타난 원리들에 적합한 교리는 물론이고 교회의 규율과 행정조직을 갖기 원했던 것이다.“라고 했다.
청교도들은 이처럼 오로지 성경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복음적인 관점에서 보았던 사람들이다. 즉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성경의 권위가 온전히 드러났다.
(2) 청교도들은 온전한 개혁을 이루려고 한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이 살던 당시의 로마 가톨릭의 사제들은 정치적이고 형식적이었고 반쯤 개혁된 영국 국교회(성공회)도 이러한 잔재가 남아 있었다. 또한 왕이 교회의 통치자가 되어 교회를 국가의 시녀로 전락시키었다. 놀라운 것은 당시 성직자들 가운데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도 많았다고 한다. 결국 설교 없이 의식만 거행되는 예배가 만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빈곤 및 도덕성의 상실로 사회와 경제적인 불안이 심각하였다.
이러한 암흑의 시대에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예배의식을 반대하고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다. 또한 성경을 연구하고 그 성경을 기초로 죄와 회개와 구원의 은혜를 중심한 설교를 강조하였다. 또한 이들은 거룩과 경건을 생활의 절대적인 요소로 삼았다. 결국 청교도들에 의해서 종교개혁의 모토인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오직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Soli DEO Gloria)라는 온전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비록 영국 국교회 내에서는 그들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지만 영국 개신교 교회에 종교개혁의 주역들이 되었다.
(3) 청교도들은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설교한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다른 어떤 자이기 전에 먼저 설교자였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교회가 성경의 권위아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드러내는 설교의 권위를 되찾게 되었다. 특히 이것은 강단위의 위의 설교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청교도들은 무혈적이고 영적이고 구두적인 개혁을 설교를 통하여 이룬 자들이다.
그들의 설교시간은 예배시간과 동의어로 사용될 정도로 예배에 있어 설교는 핵심요소였다.” 그들은 설교를 공예배의 절정으로 간주했다. 즉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 수반되는 말씀 선포와 그 말씀으로 부터 오는 교훈을 구원관 성화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다.” 그래서 강단위의 청교도들은 설교를 위하여 성경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선포했고 그들 모두는 ‘죽어가는 사람으로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설교하였다.”고 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의 말처럼 설교했다.
그들은 철저하게 성경의 진리를 설교함으로서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강조하고,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유일한 대상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고, 신앙인의 삶의 방향이 경건과 거룩임을 일깨웠고, 철저한 직업 소명의식을 일깨우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건전한 가정생활을 하게하고, 세상의 쾌락과 사치로부터 돌아서게 했다. 설교된 성경의 진리에 의해서 실제적으로 설교자들은 가장 성경적인 삶을 살았음은 물론이고 회중속의 청교도들도 그와 같이 살았다.
(4) 청교도들은 삶의 전반에서 경건한 의무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단어는 ‘의무’라는 단어였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의무가 성경의 내용대로 순수한 신앙을 지키며 이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요 그 대가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한 신앙이 가정과 교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실현되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원하고 싸웠던 것이다.” 청교도들은 교회와 가정에서 청교도의 삶의 의무를 실제적으로 강조하였다.
한편 목회자들은 설교에서 공통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 순종과 충성을 강조했으며 양떼들에게 신앙과 의무를 이행하라고 강조했다. 즉 청교도들이 철저하게 자신들의 의무로 삼았던 것들은 1) 성수주일, 2) 예배, 3) 기도, 4) 경건한 가정, 5) 거룩한 삶이었다.
– 철저한 주일 성수의 의무
리차드 백스터의 자서전에서 입증되듯이 안식일의 엄숙한 준수는 사실상 청교도 활동 중 가장 우선적이고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그들은 주일을 영혼을 위한 장날이요 단체의 찬양과 기도로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날로 생각했다. 청교도들이 체계화시킨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The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제118문은 이점을 분명히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주요한 의무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제118문 : 왜 가족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특별히 주어졌습니까?
대 답 : 가족의 어른들과 다른 윗사람들을 향해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 이 특별히 주어진 것은 그들 자신에게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있 을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솔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로 안식일을 지키게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며, 그들 자신의 일로 아랫사람들 의 안식일을 방해하는 일이 흔히 있기 때문입니다.
또 소요리문답 제60문과 대요리문답 제117문에서는 어떻게 안식을 거룩히 지켜야하는 지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제117문 : 안식일 혹은 주일을 어떻게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까?
대 답 : 안식일 혹은 주일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온 종일 거룩히 쉼 으로 할 것이며, 언제나 죄악 된 일을 그칠 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 합당한 세상일이나 오락까지 그만두어야 하며, 부득이한 일과 자선 사업에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시간을 전적으로 공사간 예배하는 일에 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마음을 준비할 것이며, 세상일을 미리 부 지런히 절제 있게 배치하고 적절히 처리하여 주일의 의무에 보 다 더 자유로이 또는 적절하게 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주일성수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금지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소요리문답 제61문과 대요리문답 제119문은 이렇게 말한다.
제119문 : 제4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무엇입니까?
대 답 : 제4계명에서 금지된 죄들은 요구된 의무를 하지 않는 모든 것과 모든 부주의와 등한함과 그것들을 무익하게 이행함과 이에 지쳐 괴로워함이며 또 게으름과 죄악 된 일을 하는 것과 세속적인 일과 오락에 대하여 필요 없는 일, 말, 생각들을 함으로써 그 날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청교도들은 주일성수를 의무로 여기며 철저하게 지킨 좋은 정통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주일성수에 대한 의무와 철저한 준수는 리차드 박스터가 사역하던 키더민스터의 변화된 모습을 통하여 확인된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주일날 거리에서 전혀 무질서가 보이지 않게 되었고 거리를 지날 때 수많은 가정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설교를 되풀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 예배의 의무
청교도들은 형식적이고 의식에 치우친 예배를 배격하고 성경에 근거한 순수한 예배, 간결한 예배를 사모하였다. 카튼(John Cotton, 1585-1652)의 표현처럼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예배는 사모함이다.” 청교도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기독교 예배의 세 가지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곧 지역교회에서의 공적예배와 가족 단위의 가정예배와 골방에서의 개인예배인 것이다.
이중 공적예배가 가장 중요하다. 공적예배는 주일의 중심이다. 주일은 아침과 오후 혹은 저녁 공적예배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음적인 예배는 중생한 자들만의 특권이며 동시에 의무였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발견하는 특징가운데 그들은 가정에서 중요한 의무도 예배였다.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보면 “모든 가정이 통상 아침과 저녁에 시행하야 하는 가정예배는 기도와 성경읽기와 찬양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말한다.
청교도들은 가정에서 매일 예배하였다. 리차드 백스터는 “가정예배를 위해 단지 2명만 있어도 된다.”고 하며, 죠지 휫필드는 “마음만 올바르게 갖추어져 있다면 가정예배를 건덕스럽게 드리는데 있어 다른 어떤 비장한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다.”고 했다. 죠엘 비키(Joel R. Beeke)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부모들이 가정예배를 지속적으로 시행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제시한다. “부부와 자녀들의 영원한 복락을 위해, 선한 양심의 만족을 위해, 자녀 양육의 도움을 위해, 주어진 시간이 짧기에 하나님과 그의 교회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가정에서 매일 지속적으로 예배해야한다.”
– 기도의 의무
청교도들은 국교회의 고정된 기도서를 거절하고 즉석기도를 했다. 그들은 주일은 물론 일주일 내내 개인기도와 가족기도로 충만했다. 청교도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낙스(John Knox, 1513-1572)처럼 청교도들은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특히 청교도들은 “경건한 생활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냈으며 기도의 의무 실천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의무가 대요리문답 제185문과 제186문에 잘 나타난다.
제185문 :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대 답 :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엄숙한 이해와 우리 자신의 무가 치함과 필요한 것들과 죄에 대한 깊은 의식과 통회하며 감사하는 열띤 마음을 가지고 이해, 믿음, 성실, 사랑과 인내로써 하나님을 바라며, 그의 뜻에 겸손히 복종함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제186문 : 하나님께서 기도의 의무에 관한 우리의 지침으로 어떠한 규칙 을 주셨습니까?
대 답 :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기도의 의무에 관한 지침으로 사용되지만, 특별한 기도 법칙은 우리 구주 그리스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의 양식인데 곧 주기도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경건한 가정의 의무
청교도들은 가정을 사회의 기본적인 단위인 동시에 하나의 교회로 보았다. 그들은 남편을 목사로 아내를 전도사로 하는 작은 교회라고 주장했다. “남편의 의무는 가족을 신앙으로 이끌고 주일날 그들을 교회에 데리고 가고 가정에서 그날 온종일 성별하도록 감독하고, 자녀에게 교리문답을 하고 믿음을 가르치고 설교를 들은 후에 가족 전체의 시험을 보아 얼마나 기억하고 이해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부족하면 이해시키고, 매일 가정 예배를 이상적으로 하루에 두 번 인도하고, 언제나 모든 문제에어서 근실한 모범이 되는 것이다.”
왓슨(Thomas Watson, 1620-1686)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라면 자녀들을 그들의 자녀로 만들기보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위해 애쓴다.”고 믿었다. 설교자들은 가정을 경건한 가정으로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다.
– 거룩한 삶에 대한 의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물론이고 오웬(John Owen, 1616-1683)도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땅의 삶 동안 그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은 성화이다.” 그는 또 말했다. “거룩은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이기도 하며 인간에게 명해진 의무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이 의무를 실행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바르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은혜를 주시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인이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를 억제하여야 하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청교도들은 이것을 하나의 교리로 다루어 ‘죄 죽임의 교리’(A doctrine on mortification)를 강조한다. 이 땅에서 완전한 거룩이 불가능하지만 그들은 거룩의 최고봉에 이르기 위한 열망으로 완전한 거룩을 추구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그들은 성경이외의 교회사에서 가장 거룩한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탁원한 거룩은 그들의 특징인 동시에 그들의 능력이 되어서 자신들의 시대는 물론 지금껏 남긴 글을 통하여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청교도들은 개신교회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었다.
초기 청교도들은 장로교도였다. 헤른(James Heron)은 독립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로빈슨(John Robinson, 1576-1625)의 말을 인용한다. “교황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교황에게, 신교도들은 감독들에게, 청교도들은 장로회에, 우리들은 교회로 불리 우는 다수의 회중의 몸에 그것을 두었던 것이다.” 그는 장로정치가 초기의 청교도들의 특생이었음을 말한다.
로이드 존스는 말한다. “청교도주의는 궁극적으로 하나의 정신구조요 하나의 정신입니다. 저는 주장합니다. 참된 청교도주의는 궁극적으로 장로교회 안에서 발견됩니다. 특히 존 낙스에게서 말입니다.” 초기의 청교도들이 칼빈주의적인 전통을 따르는 장로교였으나 이후에 여러 개신교의 산실이 되었다. 물론 다른 시각에 바라보면 더 초기적인 형태의 청교도는 침례교도라고 말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오늘날의 개신교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고향을 등지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의 미국으로 떠나 오늘 날의 미국교회와 미국의 정치, 교육,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교회 내에서도 장로교회, 영국의 회중교회, 분리주의교회, 감리교회 등에 영향을 미쳤다.
- 글쓴 이 /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미국의 뿌리 청교도의 신앙과 삶(2)
청교도들의 신앙과 가정교육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정의 붕괴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세계는 어머니이고 그 다음으로는 가정이다. 그 안에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의 질서, 사람의 의무 등을 교육받음으로써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살 수 있도록 준비된다. 그러한 가정은 하나님의 통치를 반영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들을 가르쳐줄 수 있는 가정의 기반이 지금 급속하게 해체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속 정신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가정을 거짓된 세속의 가치관으로 물들게 하거나 붕괴시키기 때문이다. 세속 정신에 물든 기독교 가정은 다음 세대에 참된 교회의 영적 번영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위해 헌신할 자녀들이 자랄 수 없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가정을 중시했던 사상으로 되돌아가 성경적 가정교육을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가정교육
기독교 신앙의 개혁을 부르짖었던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자녀에 대한 종교교육의 책임을 부모들에게서 찾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언약백성들을 당신의 백성답게 살아가게 하시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교육적 책임과 역할에 대해 각성하도록 만든 사람은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였다. 그는 부모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의무가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교회와 학교가 도울 수는 있으나 결코 가정교육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보았다. 자녀들은 부모와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가정을 교회와 함께 하나님이 주신 신적인 두 기관으로 이해했다.
칼빈(John Calvin, 1509-1564)도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교육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는 부모의 신앙고백을 통해 유아세례를 받음으로써 자녀들이 언약백성으로 공동체 속에 포함된다고 여겼다. 이러한 언약의 맹세는 자녀들에게는 부모의 기독교적 가르침에 순응할 것을 그리고 부모에게는 자녀에게 기독교신앙을 가르칠 것을 맹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목사의 직무는 교회 안에서 이런 일들이 올바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피고 감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쉬넬(Horace Bushnell, 1802-1876)은 가정이야말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신앙교육의 현장이며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언약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모는 교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서 참된 신앙인이 되지 않는다면 가정교육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더 나아가 자녀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교육할 때 그 방법도 신앙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부모는 하나님께서 자녀들 각자에게 주신 다양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신앙적인 삶과 성품을 형성해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정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통치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자녀들을 올바로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다.
2. 청교도와 가정
청교도였던 매더(Increase Mather, 1639-1723) 목사는 국가의 건강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사회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복음화 된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하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필요하고 그러한 세상의 변혁을 위해 섬길 수 있는 좋은 그리스도인은 가정을 통해서 배출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1679년에 타락한 가정들을 보며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가정은 교회와 국가의 양성소입니다. 가정을 잘 관리하십시오. 그리하면 나라는 보다 훌륭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뉴잉글랜드에서 경험하는 많은 상처와 커다란 불행들은 가정이 신앙적으로 무질서하기 때문입니다.”
(1) 남편과 아내
중세 가톨릭에서는 결혼의 제일 목적을 자녀 생산으로 보았지만 청교도들은 결혼의 제일 목적을 거룩한 친교에 두었다. 그러므로 청교도들의 주요 관심사는 그들의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방해받을 정도로 사랑하는 것은 잘못된 것으로 여겼다. 하나님만이 자신들의 가장 고귀한 사랑과 경배를 받으실 분이었고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인간이나 피조물이 차지하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출산 중에 죽어가고 있을 때 쉐퍼드(Thomas Shepard, 1605-1649) 목사의 다음과 같은 참회는 청교도들의 정신을 잘 반영한다. “나는 더 큰 약속을 바친 내 하나님보다 아내를 나의 영혼으로 기뻐하며 그래서 은밀하게 오만해지고 마음이 육욕으로 가득 차는 것을 깨달았다.” 청교도들에게 아내를 얻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내를 얻는 것을 하나님을 섬기는 데 더 훌륭한 준비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으며 아내를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청교도 남편은 법적으로 가정을 대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자녀들과 종들을 포함하여 자기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가족의 우두머리이며 주인이었다. 남편은 영적인 지도력과 통제권을 행사할 것을 기대했고 가족을 적절하게 부양할 책임이 있었다. 청교도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위로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아내를 때리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2) 가정과 질서
청교도 가정의 질서는 부부간의 질서와 부모와 자식 간의 질서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과 위로를 받으며 남편에게 복종해야 했다. 그들은 남편과 아내의 친교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해 설명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이로써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가게 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남편들은 모든 가족구성원들보다 뛰어난 열심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교회는 남편들을 통해 아내와 자녀들의 신앙을 돌보고자 했다. 또 하나는 자녀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이었다. 그들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 살도록 가르쳐야 했다. 그리고 자녀들이 하나님을 스스로 찾도록 신앙적으로 격려했다.
(3) 가장의 신앙적 책임
남편의 가정에 대한 지도권은 그가 가족들의 신앙에 대해 깊은 의무감과 책임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그들은 일찍 결혼하지 않았다. 10대의 남자가 결혼하는 일은 거의 없었고 17세 미만의 여자가 아내가 되는 일도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다. 평균적으로 신랑의 나이는 신부보다 세 살 정도 많았으며 뉴잉글랜드의 이주민들의 경우 신랑의 평균 연령은 약 24세였다.
그들은 조혼을 거부하고 성숙한 나이의 결혼을 권장했다. 남편이 한 가정을 책임지는 데 가정을 부양할 경제적인 능력을 갖출 뿐 아니라 한 가족을 목회할 수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함양할 것을 요구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편으로서 아내를 가르치고 아버지로서 자기의 자녀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었다.
청교도 남편들을 가장으로서 가족공동체를 무질서와 혼란에서 보호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가정생활의 경건을 통해 온 땅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가정의 경건한 개혁을 위한 두 가지 열쇠가 있었는데, 그것은 질서와 교육이었다. 청교도들의 가족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넓은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족은 단지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는 것이 한 가정을 이룩하는 성경적인 모범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에 한국과 같이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서 사는 대가족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부모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심지어는 사망한 배우자의 시집이나 처가와도 친밀한 가족관계를 유지했다. 그들의 가족의 개념에는 자신의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까지 모두 포함되었다.
청교도 남편들은 이러한 가족구성원들 전체에 대한 신앙적인 인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선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위해 자녀를 기르고 자신들의 가정 속에 하나님이 가슴 아파하시는 어떠한 죄가 자라지 못하도록 했다.
(4) 자녀에 대한 신앙교육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된 부모들에게는 대체로 선택받은 자녀들을 주신다고 믿었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부패한 성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절하게 교육하지 않으면 죄와 부패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께는 자녀만 있을 뿐 손자는 없으시다.”라는 사상은 신앙이 혈통과 가문으로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회심과 신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앙은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각 세대마다 각기 하나님 앞에서 회심이 요구되는 것이며 부모들의 경건한 신앙을 통해 자녀가 저절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다.
리처드 매더(Richard Mather, 1596-1669)는 부모들이야말로 자녀들의 영적인 운명을 인도하는 효과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어린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과 씨름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어머니의 기도와 눈물이 자녀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신다.”
인크리스 매더(Increase Mather, 1639-1723)의 다음과 같은 지적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황무지와 같은 신대륙으로 건너온 것은 후손을 위함이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한 세대를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조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경건한 부모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유익과 격려 아래 있습니다.”
또한 카튼 매더(Cotton Mather, 1663-1728)의 충고는 그 당시 부모들에게 절실한 것이었다. “충분한 권위를 유지해 여러분의 말이 자녀에게 법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렇지만 여러분의 권위를 무자비와 난폭함 같은 것으로 잘못 생각해 자녀를 실망하도록 만들지 마십시오. 우리의 자녀를 가혹한 행동으로 노예처럼 취급해 우리 앞에 나올 때 항상 떨고 피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우리의 권위는 친절과 온유와 애정으로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자녀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두려워하고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은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녀들이 하나님께도 고통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당시 부모들이 자녀들의 응석을 너무 많이 받아주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녀가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이 극도로 큰 죄악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자녀들을 향해서는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때가 이르기 전에 대개 죽임을 당합니다.”라고 권고했다. 인크리스 매더는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자녀가 주님을 저버릴 때 경건한 아버지의 눈물은 영원한 불길이 그 자녀의 영혼에 영원토록 더 맹렬하게 타오르도록 만들 것입니다.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내릴 것입니다.”
3. 가정예배를 통한 자녀교육
자신의 자녀들을 향한 가장으로서의 영적인 지도력은 그들의 가정예배를 통해 잘 나타났다. 가정의 신앙교육과 실천은 가정이 마땅히 담당해야 할 필수적인 의무로서 중요하게 여겼다. 가장은 교회의 신앙교육을 보좌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교회는 자주 회중들에게 가정을 신앙으로 돌보는 의무들을 행하도록 일깨웠다.
매일 아침과 저녁, 성경봉독과 기도, 시편 찬송으로 이루어지는 가정예배가 있었으며, 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때때로 자녀들을 포함하는 가족들은 예배활동의 일부분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인도하기도 했다.
청교도 가장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고유한 질서를 유지했고 가족들이 건강한 신앙의 상태를 간직하도록 의무를 다했다. 간혹 교회들은 가장들에게 가장으로서 가정신앙의 의무들을 이행하겠다고 공적으로 서약하도록 지도했는데, 1680년 인크리스 매더 목사가 목회하던 보스턴교회의 다음과 같은 언약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온전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에서 분명하게 요구하시는 대로 우리의 가정에서 기도와 성경읽기를 중시하며,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힘입어 끊임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또한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양육함으로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진정한 헌신으로 주님의 이름을 받는 자들이 되도록 우리의 책임을 행할 것이며, 그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주님을 경외하고 섬기도록 권하고 명하며, 그들 앞에 거룩한 모범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들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많이 기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청교도들에게 가정예배의 중요한 내용은 세 가지다. 기도, 성경봉독, 찬송이다. 이 세 가지를 기본으로 한 단순한 형태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청교도들은 가정예배와는 별도로 자녀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중시했다. 이러한 교리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컸다. 실제로 키더민스터의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의 경우 ‘어머니의 교리문답’(Mother’s Catechism)이라는 항목의 문집을 만들어서 활용했는데 약 100페이지 분량의 내용들이었다.
리처드 백스터는 자신의 설교를 십 수 년이나 들어왔던 사람들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각 위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 자신 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무식한 처지를 개탄하며 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를 힘썼다. 어른들은 교회를 통해 교리를 배워야 했고 자녀들은 부모와 교회를 통해 학습해야 했다. ‘어머니의 교리문답’(Mother’s Catechism)이라는 제목 아래 이러한 해설적인 성격을 띤 부제가 붙어 있다. ‘하나님과 그들 자신과 성경에 관한 지식에서 자녀들을 교리로 가르치는 친근한 방법’(A Familiar Way of Catechising of Children in the Knowledge of God, Themselves, and the Holy Scripture)
이 교리학습서는 엄마와 어린아이가 문답식으로 주고받는 이야기체로 되어 있는데 창조와 성경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 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공통적으로 가정예배를 통해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를 힘썼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리처드 백스터 목사가 주중에 자기 교구의 가정들을 심방했다. 그리고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교리를 올바로 배우고 있는지 문답으로 확인했다. 만약 자녀가 적절히 대답하지 못하면 그 부모들이 주일예배 때 서서 예배를 드리게 했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의지를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는 가장과 아내들이 자녀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정기적인 가정예배는 이러한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통로다.
맺는 말
자녀들에 대한 신앙교육이 반드시 가정예배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식사의 자리에서 부모와 함께 대화하며 기독교 교리를 한 가지씩이라도 가르친 후에야 식사한다. 모든 가정이 그리하지는 않겠지만 오늘날처럼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는 시대에는 되새겨볼 가치가 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신앙적인 문화와 가정을 파괴하려는 여러 가지 사회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경쟁적인 삶은 가족 간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 남편들이 가장으로서의 영적인 책임을 통감하고 가정예배를 통해 가족들 간의 영적인 유대를 공고히 하고 무엇보다도 자녀들을 바른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들이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자녀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할 것이며 기쁨으로 가정예배에 참여하도록 지도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의 기독교 신앙의 보존을 위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참된 회심과 중생이 강조되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글쓴 이 / 김남준 목사(한국 열린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