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언약궤(요한계시록 11:19) / 추수감사주일 설교 원고(2019-11-24)


하나님의 언약궤(요한계시록 11:19)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
(the ark of God's covenant)
ἡ κιβωτὸς τῆς  διαθήκης αὐτοῦ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聖殿)이 열리니 성전(聖殿)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言約櫃)가 보이며 또 번개와 움성(音聲)들과 뇌성(雷聲)과 지진(地震)과 큰 우박(雨雹)이 있더라. 

계 15: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히 9:4, 금향로와 사면을 김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아론의 싹 난 지팡이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계 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추수감사주일을 준비하며 요한계시록에서 감사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았더니 “감사(感謝)”라는 단어가 사용된 말씀은 “4장 9절7장 12절 그리고 11장 17절”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感謝)라는 헬라어 단어는 “유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 2169. eucharistia)” 라고 합니다. ‘유카리스티아’란 “감사” 또는 “감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체(聖體)’ 라는 영어 단어 “eucharist”의 어원입니다. 성찬예식을 “유카리스트” 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감사에 대한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9,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세세토록 사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올리는 존재는 ‘생물들’입니다.

요한계시록 7: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12절에는 누가 감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하는 존재는 ‘모든 천사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1: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17절에서 누가 감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큰 권능을 잡고 왕 노릇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는 보좌에 앉으신 ‘24장로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 머물고 있던 성도들이 아니라 생물들(4:9)과 모든 천사들(7:12)과 이십 사 장로들(11:17)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당시 예수를 믿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받는 성도들과 또한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어느 날 새벽 요한계시록을 읽던 중 제 마음을 사로잡았던 말씀은 11장 19절이었습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다고 합니다.
하늘 성전에 왜 하나님의 언약궤가 왜 있었을까요?

성경에 언약궤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사건은 요시야 왕솔로몬 성전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 이후에 언약궤에 대한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들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예루살렘 성전 산 밑에 묻혀 있다.
둘째는 에디오피아 악숨 “시온의 성모 마리아 성당”에 있다.
셋째는 아일랜드 전통에 의하면 “타라 언덕”에 있다.
넷째는 갈보리 산 아래에 있다.
다섯째는 비스가 산에 있다.
여섯째는 하늘에 있다.

이와 같이 언약궤가 있다고 하는 것은 추측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을까요?
요한계시록의 말씀 때문에 어떤 해석은 '언약궤'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결코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까?
만일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면 오늘 내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분명하게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언약궤(言約櫃)에 대한 두 가지 믿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언약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둘째는 “언약궤 뚜껑은 무엇인가?”

첫째, 언약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가?(히브리서 9: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아론의 싹 난 지팡이언약의 비석들이 있고.

언약궤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언약궤 안에 세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는 것은 구약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신약 히브리서에 근거한 것입니다.

첫째,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
둘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셋째, 언약의 비석들

둘째, 언약궤 뚜껑은 무엇인가?(출애굽기 25:21∼22)

속죄소를 궤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레위기 16: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언약궤의 뚜껑” 즉 “덮개”를 “속죄소(贖罪所)” 라고 합니다.

속죄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일 년에 한 번씩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짐승의 피를 갖고 속죄소 위에 뿌리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확인하는 거룩한 만남의 장소를 말합니다.

왜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라는 하는가?

언약궤의 뚜껑을 히브리어로 “카포레트(Kapporeth)” 라고 합니다. ‘카포레트’는 “뚜껑” “덮개” 라는 뜻입니다.

언약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과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습니다.
세 가지 물건이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저한 타락죄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죄악을 담은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라고 하는 것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는 약속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일서 4:8, 16)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은 덮어주는 것(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언약궤에 들어있는 세 가지 물건이 상징하는 죄악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
- 백성들의 방자(放恣)한 불순종의 죄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약속의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광야에 머물던 백성들은 40일 동안 지도자 모세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할 지도자를 찾기 위하여 애급에서 숭배하던 송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금을 모아 커다란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제부터 금송아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할 것이라며 금송아지 주위를 돌며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산에서 내려가라 하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오다가 백성들의 방자한 광경을 목격하고 그 돌판을 던져버렸기 때문에 깨지고 말았습니다.
언약궤에 들어있는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은 두 번째로 받은 것입니다.
첫 번째 돌판이 백성들의 죄로 깨졌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두 돌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방자한 죄악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불순종의 죄악을 말합니다.

둘째, 만나를 담은 항아리
- 불평(不平)으로 은혜를 잊어버리는 망각의 죄

만나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던 음식입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감사를 모르고 애급에서 먹던 부추와 마늘과 같은 음식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받은 은혜보다는 애급에서 노예로 살면 먹었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따라서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며 감사할 줄 모르는 타락한 삶을 연상하게 합니다.

셋째, 아론의 싹 난 지팡이
- 패역(悖逆)한 백성들의 원망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의 죄
- 고라는 아론의 사촌, 르우벤은 12지파의 장자

* 패역(悖逆) ; 어그러질 패(悖), 거스릴 역(逆)
패역이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름.” 

아론의 지팡이가 싹이 나게 된 배경은 고라 자손의 반역 때문이었습니다.
고라 자손이 주동이 되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만 지도자로 세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모세는 화로를 준비하고 고라 자손의 화로와 아론의 화로를 준비한 후 하늘에서 화로에 불이 내림으로 지도자가 누구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라 자손과 그들의 모든 것은 땅이 갈라져 삼켜버렸습니다(민수기 16장).

그 후에 각 지파를 상징하는 지팡이 12개를 취하고 레위 지파의 지팡이에는 아론의 이름을 적고 회막 안 증거궤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지팡이에 싹이 나는 사람을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라고 증명하신 사건이 고라 자손의 반역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14,700명이 죽었습니다.

따라서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고라 자손들의 반역죄를 상징합니다.
언약궤 안에 담겨진 세 가지 물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을 상징하는 물건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이 담겨진 언약궤 위 뚜껑을 속죄소로 덮었습니다.
모든 죄가 반드시 용서받아야 할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하늘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가 있다는 것은 모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은혜 가운데 지내온 것도 감사할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감사는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하늘 성전에 있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되는 죄에 대한 용서를 위한 언약궤의 뚜껑 속죄소(贖罪所)에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에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은혜를 되새기며 이제부터는 날마다 하나님의 언약궤의 은혜에 감사하므로 승리하는 파트리스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자가(十字架)는 언약궤 뚜껑 즉 속죄소의 결정적인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죄와 죽음은 원인과 결과가 분명합니다.
문제는 죄를 지은 것은 사람 즉 내가 지었지만 죽은 것은 내가 아닌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가 됩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신 것을 확신하는 것이며,
평강이란 은혜가 이룩한 것을 하나님과 더불어 또 다른 사람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한 화해가 천국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 성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었다는 것은 진노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들이었지만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값을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 흘리시고 죽으셨다가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셨고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힘입어 우리들의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고 최고의 감사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생각하며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