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도와 주신다’ ‘여호와의 낫게 한 자’ 또는 ‘고치시다’ 라는 의미입니다.
유대 왕 아몬의 아들로(마 1:10), 요시야는 8세에 왕위에 올라 31년 동안 통치했습니다.
요시야는 유다 왕들 중에서 가장 경건한 왕입니다(왕하 23:25).
선지자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성실함에 비추어 요시야의 무가치한 후계자들을 정죄하였습니다(렘 22:15).
역대기에서 요시야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히스기야의 모든 장점들을 지닌 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의 조부 므낫세는 55년간이나 왕위에 있으면서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하다가 말년에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나라에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과거에 범한 죄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우상 숭배하던 백성들의 마음은 좀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들 아몬도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2년 만에 죽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이런 사악한 배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평생 하나님만 섬기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요시야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다윗의 길로 행하였습니다. 그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확고부동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선대의 악한 왕들이 섬기던 우상을 제하고 우상을 섬기던 제단을 훼파하였습니다. 그리고 퇴락한 성전을 수리하고 정결케 하였습니다. 이 개혁은 유다 뿐 아니라 북국 이스라엘에 까지 미쳤으며 앗수르의 세력을 배제하는 운동이기도 하였습니다.
제사장 힐기야는 백성들이 여호와의 전에 연보한 돈을 꺼내다가 모세의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책을 서기관 사반이 왕 앞에서 읽으니 왕은 옷을 찢고 발견된 율법책에 비취어 볼 때에 자기와 그 백성과 그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여호와께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 말씀대로 살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요시야 왕이 여호와께 알아보기를 원했던 유다 백성들의 장래는 여선지자인 훌다가 예언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살지 않고 사신 우상을 섬긴 결과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히 자신의 옷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죽을 때까지는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을 예언 했습니다.
요시야 왕은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하여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모든 백성을 모은 후에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먼저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웠습니다. 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로 언약했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아가 사는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후 애급 왕 바로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려고 유대국을 통과하는 것을 막다가 므깃도 전투에서 죽으니 전 국민이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대하 35:24-25).
종교개혁을 단행한 요시야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시대적 배경
B.C. 640- 609년경, 애굽(이집트)과 바벨론(바빌로니아), 앗수르(아시리아)가 근동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패권을 다투던 시기입니다.
2. 생애
① 부왕 아몬이 암살당하자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대하 34:1)
② 즉위 8년째 부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정을 펼쳤습니다.(대하 34:3)
③ 즉위 12년에 모든 이방 우상을 파괴하고 이교의 예배를 폐함(대하 34:3- 7)
④ 18년에 성전을 수리함, 이때 율법서를 발견하고 대대적인 신앙개혁 운동을 펼침
⑤ 애굽과 교전 중인 앗수르를 돕기 위해 므깃도 전투에 참전했다 전사하였습니다.
3. 성품과 행적
① 선왕들의 실책과 우상숭배오 인해 퇴락된 성전을 수리하여 예배의식의 규율을 확립하였습니다.
② 율법서를 발견하여 대대적인 회개운동을 일으키고 종교개혁을 실시하였습니다.
③ 온갖 악행으로 범죄한 선대의 두 왕들과는 달리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율례대로 선정을 베푼 어질고 신실한 왕입니다.
④ 하나님께 옷을 찢고 눈물로 회개하는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앞서 성급하게 행동하는 일면도 있었습니다.(왕아23:29)
4. 종교 개혁자로서의 요시야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반기를 든 종교 개혁가들의 보편적인 사상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인본주의적인 악습과 제도를 개혁함과 동시에 평신도를 위한 성경 번역 및 성경적인 교리 체계를 수립하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개혁 정신이 온 세계 교회를 변화시켰고 세계 도처에 많은 개신교들을 융성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개혁의 기치로 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사상은 일찍이 유다 왕 요시야의 치적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유다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성군(聖君)이였으며 또한 하나님께 인정받은 인물로서, 오늘날 개혁 교회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 하나님 중심
요시야 종교 개혁의 첫 번째 목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순종하다는 말은 '따르다'(삼상 30:21), '좇다'(신 11:28) 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요시아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다는 신념을 굳히고 이것을 종교 개혁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이 매사에 하나님의 뒤를 따를 큰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2) 말씀 중심
요시야 종교 개혁의 두 번째 목표는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시야는 말씀을 부흥시키고 또 그 말씀을 실행하는 데 목표를 두었습니다. 요시야 이전의 왕들은 우상을 섬기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망각하였지만, 요시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그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중세 암흑 시대에 교회의 부패에 의해 가려 있다가 종교 개혁자들의 개혁으로 다시 부흥하게 된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요시야는 말씀 중심의 개혁가였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이념은 종교적 형식주의에 안주하던 종교가들을 질타하는 세례 요한에게서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그 원리는 다시 정립되었고 후에 교회사 가운데는 또다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종교 개혁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로부터 약 오백년,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 상태는 어떻습니까? 과연 성경이 보여 주는 개혁 정신을 따라 하나님과 말씀 중심의 신앙 위에 굳게 서 있습니까? 우리 안에 그 어떤 부패적인 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과감히 그것을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타락한 존재이므로 개혁하지 않으면 점점 더 부패의 정도는 심해집니다. 또한 신본주위(神本主義) 신앙은 사라지고 말씀은 우리 삶에 더 이상 영향력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개혁가의 자세로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의 신앙에 바로 서야겠습니다.
5. 여호와를 향해 힘을 다한 사람 요시야
요시야는 불과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어 3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면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긴 왕입니다. 요시야의 할아버지는 므낫세로 55년간 유다를 통치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무죄한 사람들까지 마구 죽여(21:16) 유다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 유명했습니다. 므낫세가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과 신하들은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아몬 역시 그 아버지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우상숭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신하들은 대단히 실망했습니다. 그 아버지처럼 수십 년간 이런 사람을 왕으로 섬기고 이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신복들이 왕을 반역하였습니다. 왕을 궁중에서 죽였습니다. 그러자 국민들은 또 반역한 신복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요시야가 비록 어리지만 그에게 왕관을 씌워 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 된 요시야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22:2에 기록된 종합평가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그가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살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그는 선왕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버지가 불과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 요시야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이 왜 왕을 죽였을까요? 할아버지에게 고생한 사람들이 아버지에게도 큰 소망이 없음을 알 때 살해한 것이 분명함을 알았을 때 요시야는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 이상 백성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정직하고 백성들에게는 선정을 베풀기로 다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배나 조상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나로 저분처럼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것과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것인데 요시야는 후자의 교훈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신하들이나 백성들에게 신뢰받기는 어차피 어려운 일이니 하나님께라도 인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나님을 향해 힘을 다한 왕이라는 칭호를 결정적인 동기가 된 것입니다.
첫째, 요시야는 여호와의 전을 깨끗이 수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히스기야가 죽은 이후 누구에 의해 청소되거나 수리된 일이 없었습니다. 60여 년이나 누가 돌보지 않았으니 지저분하고 낡을 대로 낡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옛날 요아스가 성전 수리를 위해 헌금을 모았듯이(12:4-14) 요시야도 성전 보수를 위해 은을 모았습니다. 요아스는 어머니(아합의 딸) 아달랴가 우상숭배 정책을 쓰면서 낡아진 성전의 보수를 위해 20세 이상의 장정에게서 주민세 성격의 은을 받았고 서원한 사람들이 몸값으로 드리는 은과 자원하여 드리는 은을 제사장들이 받아 성전 수리하는 데 쓰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지 그 교회의 성전을 보면 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의 신앙 수준이나 교역자의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식어진 교회는 건물도 사방 구석이 낡고 지저분한 채로 있습니다. 누구나 청소하는 사람이 없고 덜렁거리는 창문을 고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열심이 있는 교회는 항상 건물이 깨끗하게 청소 정리되었고 부서지고 낡아진 곳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가 성전 관리하는 모습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청소를 해도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모습과 그저 할 수 없이 한 사람의 모습은 큰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둘째, 요시야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을 청소하고 보수하다가 율법 책을 발견했습니다. 성경이 흔치 않던 시대에 발견된 이 율법 책은 대단한 선물이었습니다. 수십 년, 아니 그 이상 성전의 어느 구석이나 창고에 처박혀 있던 것이 보수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것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이 율법 책 때문에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율법 책을 읽어본 서기관 사반은 왕 앞에서 읽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요시야는 옷을 찢었습니다.
거기에는 율법을 범하는 자들에게 내릴 경고와 저주의 말씀인 신명기 28장이나 레위기 26장 같은 내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곧 이 말씀에 대하여 하나님께 묻도록 하였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여선지 훌다를 찾아갔습니다. 선지자는 왕이 읽은 재앙과 진노가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시야는 이 재앙에서 제외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왕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을 모았습니다. 다시 율법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언약을 세웠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율법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기로 하였고 백성들은 그 언약을 따르기고 했습니다.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요시야는 먼저 여호와의 전에 있던 우상숭배에 쓰이던 물건들을 꺼내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아세라 상을 내다 불사르고 미동(남창)의 집을 헐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전에서 시작된 개혁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3:4-20까지 읽어 보면 얼마나 철저히 우상의 뿌리를 뽑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셋째, 요시야는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제까지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의미도 바로 기억하지 못하고 해마다 형식적으로 지켜온 절기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깨끗이 수리하고 전국에 있는 우상의 제단을 헐어 버린 요시야는 온전한 마음으로 유월절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요시야는 백성들에게 명령하기를 이 언약 책에 기록된 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였습니다. 그들이 유월절을 지킨 모습은 역대하 35장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아무튼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습관적이고 관례적인 주일 성수나 절기를 지키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 주일에 하루, 주일을 성수하게 하시고 여러 기념할 절기를 주신 것은 그 의미를 바로 헤아려 하나님과의 신앙에 유익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미 없이 형식적으로 지나치는 절기는 차라리 지키지 않은 만도 못한 것입니다.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된 그날의 감격을 잊지 않고 지켜지는 유월절, 일 년의 풍성한 수확과 소출을 감사하여 드리는 수장절, 율법을 받아 언약 백성이 된 것을 잊지 않고 지키는 칠칠절이 의미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주어진 절기마다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진정한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절기를 지키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수리하고 우상의 잔해를 제거하는 종교개혁, 다시 새롭게 지켜진 유월절, 이 모든 것은 모세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려한 요시야의 값진 업적이었고 하나님은 이런 요시야를 인정하시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아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
우리가 요시야를 통해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1. 요시야 왕은 태어나기 약 300년 전에 이미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해 “요시야란 아들이 태어나 우상숭배하는 제사장들을 죽여 그 뼈를 태우리라”(왕상13:2)하였습니다. 그 예언대로 요시야는 멸망직전에 있는 유다왕국을 바로잡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통치하려고 힘썼습니다. 그는 16세 때 여호와를 찾기 시작했고 20세 때는 예루살렘의 여러 우상들을 훼파하였으며 6세 때는 각 지방에 있는 우상과 그 단들을 다 훼파하였습니다. 이만큼 그는 일찍부터 신앙생활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2. 등극한 요시야는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 뿐 아니라 교회의 지체된 마음의 성전까지도 깨끗이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의 마수가 뻗치는 곳은 어디든지 가지 말고, 죄악된 사람과는 교제를 끊는 단호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3. 요시야 왕은 즉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이런 행위는 깊은 후회와 자책의 표시입니다. 요시야는 왜 그토록 자책을 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한 기준을 듣는 즉시, 유다 왕국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거역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요시야가 단지 느끼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인가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즉시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원하시는 바를 따르기 위해 결단했고, 명령을 내려 행동을 취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의 응답은 즉각적이었고, 과감했습니다. 말씀을 듣거나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우리는 단지 즉석에서 우리 삶에 적용하기 위한 진리를 찾고는 끝나지 않는가요? 또는 ‘며칠안에 시작하도록 하자. 언젠가 행동을 바꿀꺼야. 이건 그 당시에나 가능해’라면서 꾸물거리거나 적당히 합리화시키지 않는가요?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결단할 것은 결단하자. 하나님은 당신으로 하여금 즉시, 그리고 온전히 순종 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4.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엄숙한 서약을 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표현했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심령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시든지 순종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의 신령한 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5. 요시야의 개혁이 왕국분열 이후 전대미문의 대대적이고 전국적인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 다시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그의 개혁이 외형에 치우친 미완성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요시야의 개혁은 국가 외적인 생활에만 작용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음 속에 까지 파고드는 힘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를 완전히 소생시키거나 구원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정한 개혁이란 마음으로 부터 시작되는 개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6. 요시야가 거의 60여년 동안이나 사회의 곳곳에 뿌리박힌 온갖 우상숭배와 악한 제도를 철저하게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악에 물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호한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7. 요시야는 비록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지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왕하22:2)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신앙관을 가졌기 때문에 과거의 오랜 악습과 부정을 척결할 수 있었습니다.
8.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말씀을 주십니다. 다음을 묵상합시다.
① 당신은 성경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가?
② 당신의 경우 말씀의 즉각적인 적용과 순종에 방해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
③ 당신의 습관 중 당장 변화되어야 할 것들을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자.
9. 그토록 신실했던 요시아 왕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다가 죽었습니다. 애굽 왕 느고가 팔레스틴의 지배권을 획득하려고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 왕을 치러왔을 때, 요시야 왕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군사를 이끌고 나아갔습니다. 즉 앗수르에 반감을 지녔던 요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채 인간적인 생각으로 바로느고의 행진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느고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요시야 왕에게 전하여서 전투에서 물러서게 하십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치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 전쟁을 하다가 적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뜻보다 자신의 뜻이 앞서는 것은 항상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생의 순간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라"(롬12:2)
또한 요시야처럼 신실했던 자도 넘어진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허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신격화하거나, 의지하지 말고, 신앙생활에서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쉬지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요시야는 기도하기를 잊어 인생을 수치스럽게 마감했습니다.
참고로 요시야라는 동명이인으로 두 사람이 있습니다.(대상4:34, 슥6:10)
지금 우리는 ‘교회 성장 감소’라는 위기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래도 이런 위기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무감각한 지도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맞이하고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에 빠지지 말고, 요시야 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정의 회복과 도덕성의 회복,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목회의 역량을 집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순교적 신앙의 유산으로 이러한 것을 되살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한국교회여! 다시 부흥을 일으킵시다! 다시 뜁시다! 다시 일어납시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려면 교회 안에서는 신자인데 교회 밖에서는 신자가 아닌 이중적인 생활을 회개하고 앞으로는 신앙과 생활이 일치해야 하겠으며 특히 목회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회개운동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섬김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섬기기 위해서 오신 예수의 몸입니다. 따라서 섬김의 종으로 오신 예수의 몸된 교회는 마땅히 섬기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섬김을 거부하는 교회는 스스로의 존재의 의미를 부정하는 교회요 예수의 정신에서 떠난 것입니다. 성령이 떠난 교회는 영혼이 떠난 몸과 같습니다. 교회는 섬김의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가장 시급히 갱신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와 같이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그리고 섬김의 공동체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와 성도가 하나님과 이웃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과 뜻대로 순종하고, 복음을 가지고 앞장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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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5월 31일 제헌 국회가 개회할 때 기독교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장의 제안에 따라 의원이 기도하므로 모든 의원들이 함께 기도를 하였다는 역사적 사건을 기리며 그 날을 국가 기도의 날로 정하도록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관심을 갖고 새로운 한국을 세워나가야 하겠다.
기도 제목 / 이제는 달라지겠습니다!
1. 손해 보더라도 정직하게 살겠습니다!(경제 분야)
2. 막말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하겠습니다!(언어생활)
3. 퇴폐문화 멀리하고 깨끗하게 살겠습니다!(문화 분야)
4. 방황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하겠습니다!(가정 회복)
5. 외면하지 않고 이웃을 돕겠습니다!(사회봉사)
6. 불편하더라도 참고 아끼겠습니다!(환경 공해)
7. 대한민국을 사랑하겠습니다!(조국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