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9월 15일, 주일) - 요한복음 21장


오늘은 요한복음 21장과 신명기 25장 그리고 시편 76편을 읽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이 고백하는 예수가 아니라 내가 고백하는 예수이어야 합니다.

상식적인 예수가 아닙니다.

고백적인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씩 반복하여 질문하신 것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수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예수를 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예수님처럼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따른다는 의미는 첫째는 버린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가려고 배와 그물을 버렸습니다.

버린다는 것은 떠나는 것입니다.

모압 지방의 여인 룻은 그의 고향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 지방을 떠났습니다.

엘리사는 소 열두 겨리로 밭을 갈다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부름을 받을 때 소 열 겨리는 내버리고 한 겨리는 잡아서 연장을 불살라서 고기를 구어 다른 사람들과 나눠먹고 그곳을 떠나 엘리야를 따라나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약속의 땅을 가기 위해 애급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먼저 내 자리 즉 죄악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탕자는 자기가 선택했던 쾌락의 세상을 버리고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려고 죄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버리고 떠난 후에는 항상 동행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동행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동행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입니다.

신앙을 위하여 주님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다른 사람을 보려고 하지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자기 일에 태만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일에 흥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내 일에 분주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의 시간을 주님을 따르고 배우는 것들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Daily Bread & Prayer(Sep. 15. 2013) Sun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한복음 21:15)

 - 예수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You know that I love my Lord.(John 21:15)

 - I love Jesus, love others also. 



오늘의 묵상(9월 14일, 토) - 요한복음 20장


오늘은 요한복음 20장과 신명기 24장 그리고 시편 75편을 읽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이 모인 다락방에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팔일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사람은 믿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만일 믿음이 없다면 그 삶은 공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에 대한 정보가 없던 때에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께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누가 부활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실 것에 대해 가르쳐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한 것은 당연한 결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의 의심을 믿음으로 바꿀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못 자국이 난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그의 손으로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도마가 만졌던 손과 옆구리는 부활의 임재이며 동시에 부활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도마의 경험은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 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믿음을 갖는 순간 사람은 바뀌게 될 것입니다.

나를 바꿀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세상 끝 날까지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핍박자 사울은 바울의 믿음으로

주를 부정하던 베드로는 순교자로

목동 다윗은 위대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믿음으로

의심의 도마는 복음의 증인으로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세우려고 하실까요?

주의 부름에 대한 응답을 드러내는 은총의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Today's Bible &Prayer(Sep. 14. 2013) Sat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한복음 20:21)

 - 평강을 전하는 삶을 이루게 하소서!

Peace be with you! As the Father has sent me, I am sending you.(John 20:21)

 - I hope that show the peace for all by my life. 




오늘의 묵상(9월 13일, 금) - 요한복음 19장


오늘은 요한복음 19장과 신명기 23장 그리고 시편 74편을 읽습니다.


‘비아 돌로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갔던 길을 말합니다.

많은 순례자들은 그 길을 걸으며 주님의 고난을 체험하려고 합니다.

고난의 길을 걷는다고 주님의 고난이 체험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길을 걷는 까닭은 주님을 좀 더 알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주님을 알려고 노력했으면 이제는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몸으로만 걷지 말고 영혼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이 어디를 말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골고다라는 말은 ‘해골의 장소’라는 뜻으로서 해골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형이 해골처럼 생겼다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의 죽음의 장소를 ‘성문 밖’ 또는 ‘진 밖(outside the camp)’으로 소개하면서 그 장소의 제의적인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과연 ‘진 밖’은 어디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갈라졌습니다. 성전에는 모두 13개의 휘장이 있었으며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었는데 길이가 18m 폭이 9m 정도였으며 두께는 한 뼘 만큼 되었다고 탈무드에서 소개합니다. 청색 자색 홍색 및 가늘 베실(하얀색)로 짜여 졌고 그룹들이 수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휘장을 드는데 만도 300명의 제사장들이 동원되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휘장을 예수께서 운명하시는 순간 하나님의 손이 찢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어버린 것입니다(에베소서 2:14).

이 날 예수의 십자가 처형의 책임을 맡았던 한 백부장은 ‘이 사람이야말로 실로 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고백했는데 이 백부장은 그 휘장이 얼마나 두꺼우며 또 그 휘장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갖고 그는 ‘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백부장의 외침은 그가 성전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목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 밖(성문 밖)’에서 이 휘장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면 아마 감람산 맞은편인 서쪽이 된다고 합니다(Greg Killan, East to the Mount of Olives).

이와 같은 추정이 가능한 것은 성전 문은 매우 컸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제물을 바칠 때 그 피는 휘장 옆에 있는 분향단에 뿌리도록 하였으며 그 고기는 진 밖에서 태우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 제물을 태우는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제사장이 피를 제단에 뿌리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후 제물을 불살라야 했습니다(민수기 19:1-10). 따라서 백부장이 성전 안의 휘장이 찢어지는 것을 보았다면 그 장소는 감람산 서편이 가장 유력합니다. 전통적으로 골고다로 알려진 곳은 예루살렘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 이르는 길을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라고  부릅니다.

다 이루었다는 외침과 더불어 가상칠언(架上七言) mr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셨던 일곱 말씀을 소개합니다.


첫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3-39)

Father, forgive them, for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doing.(Luke 23:34)

둘째,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39-43)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Luke 23:43)

셋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25-27)

Dear woman, here is your son,... Here is your mother  (John 19:26-27)

넷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5-49)

Eloi, Eloi, lamah sabachthani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Matthew. 27:46)

다섯째, 내가 목마르다(요한복음 19:28)   

I am thirsty.(John 19:28)

여섯째,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29-30)   

It is finished. (John 19:30)

일곱째,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44-49)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Luke 23:46)


Today's Bible &Prayer(Sep. 13. 2013) Fri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 내게 맡겨진 모든 일을 마칠 수 있게 하옵소서!

It is finished.(John 19:30)

- I wish that finished my work that give to me from you.




오늘의 묵상(9월 12일, 목) - 요한복음 18장



오늘은 요한복음 18장과 신명기 22장 그리고 시편 73편을 읽습니다.


빌라도와 예수님과의 대화를 소개하는 내용이 요한복음 18장입니다.

재판관의 위치에서 질문하는 빌라도는 전형적인 정치꾼이었습니다. 유대의 역사학자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시리아에 파견된 로마의 원로원 초청으로 오랫동안 정치 훈련을 받았고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남달랐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유대의 총독으로 파견되어 가이사랴에 총독부가 있음에도 예루살렘에 관청을 두고 유대인을 통치해왔습니다. 이때에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빌라도에게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이 네 스스로의 말인가? 아니면 누구에게서 배운 말인가를 묻고 나의 나라는 이 세상이나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다시 “그러면 네가 유대인의 왕이 아닌가?”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왕이니라.”고 하시고 이를 위하여 즉 진리를 위해 세상에 왔다고 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물으면서 예수님의 무죄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기 지위와 권력 유지를 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놓았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왕권이 인정되고 그의 권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이며,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물리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진리가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Today's Bible &Prayer(Sep. 12. 2013) Thu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한복음 18:37)

- 진리를 증거 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I came into the world, to testify to the truth. Everyone on the side of truth listens to me.(John 18:37)

- My life, I will witness about the truth!


오늘의 묵상(9월 11일, 수) - 요한복음 17장


오늘은 요한복음 17장과 신명기 21장 그리고 시편 72편을 읽습니다.


거룩이란 겉모습이 아닙니다.

거룩은 내면의 세계 즉 영혼이 거룩해야 합니다.

영혼이 거룩해지려면 반드시 주 보혈의 은혜로 거듭나야 합니다.

육신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바뀌어야 합니다.

겉 사람을 거룩하게 보이려고 거룩한 복장으로 나를 감쌀지라도 도저히 거룩함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비록 겉 사람은 누더기를 걸쳤어도 속사람이 새롭게 되면 내면의 세계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몰로카이 섬에서 다미엔은 기도합니다.

문둥병자들의 형제가 되기 위하여 자기 몸에도 문둥병이 나타나기를.....

드디어 그의 몸에 문둥병이 나타나는 순간 나도 지금부터는 저들과 같은 모습이며 형제가 되는 거룩한 아픔을 갖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자기 몸을 포기하는 속사람의 아름다움 앞에서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묵상합니다.

주님!

나의 삶의 자리가 인간의 탐욕으로 얼룩진 그늘이 아니라 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밝은 땅으로 나타나기를.......

성도들의 삶은 거룩한 자리를 만드는 곳입니다.

나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오늘도 새 힘을 얻어 일어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오늘의 말씀과 기도 / 2013년 9월 11일(수)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한복음 17:17)

Sanctify them by the truth; your word is truth.(John 17:17)

-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 Please sanctify me by your truth word!



오늘의 묵상(9월 10일, 화) - 요한복음 16장

오늘의 묵상(9월 10일, 화) - 요한복음 16장


오늘은 요한복음 16장과 신명기 20장 그리고 시편 71편을 읽습니다.


죄란 무엇일까요?

어린 시절 죄란 무엇인가 잘못한 것들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거짓말, 남의 것을 훔치는 것,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동생들과 싸우는 것 등으로.......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 죄는 어릴 때의 잘못한 것들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음 즉 거짓말과 도적질과 불순종과 다툼과 같은 것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잘못된 것을 알지 못하고 마치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생각은 자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은 내 영혼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서 형성된 것이므로 생각을 다듬어야 합니다.

생각을 다듬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죄를 다스릴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에 심어 놓고 그 말씀이 자라날 수  있도록 마음에 영양을 쏟아 넣을 수 있는 삶의 기쁨이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과 기도 / 2013년 9월 10일(화)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한복음 16:9)

In regard to sin, because men do not believe in me.(John 16:9)

- 주 예수를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만 살아가게 하소서!

- I want to live that only by faith in the Lord Jesus!



오늘의 묵상(9월 9일, 월) - 요한복음 15장



오늘은 요한복음 15장과 신명기 19장 그리고 시편 70편을 읽습니다.


예수님과 나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가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가지에서는 싹이 솟아납니다.

생명이 있는 가지에서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습니다.

생명이 있는 가지에서는 무성한 나뭇잎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줍니다.

추운 겨울 생명이 있는 가지도 마치 죽은 것 같지만 봄이 되면 싹이 나고 무성한 잎으로 자기 몸을 장식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나무가 되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서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Today's Bible & Prayer(Sep. 9. 2013) Mon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 15:4)

- 항상 주 안에서 생활하게 하소서!


Remain in me, and I will remain in you.(John 15:4)   

- I wish that want to live with Jesus Christ always!


오늘의 묵상(9월 8일, 주일) - 요한복음 14장


오늘은 요한복음 14장과 신명기 18장 그리고 시편 69편을 읽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먼저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주의 계명이란 곧 주의 말씀 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녀는 부모의 말에 순종합니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녀는 부모의 말들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언어가 아니라 행동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하늘에서 벌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여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지키는 것입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한마디 한마디를 잊지 않고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랑을 주님이 원하십니다.

사랑을 찾아 헤매는 인생이 아니라 사랑을 확인하고 그 사랑을 위하여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줄 수 있습니다.

들추어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입니다.

서로 서로 덮어주는 사랑이 풍성한 계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과 기도(2013. 9. 8) 주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

- 주의 계명을 잊지 말게 하소서!


If you love me, you will obey what I command.(John 14:15)

- Do not forget your commands in my life!    



오늘의 묵상(9월 7일, 토요일) - 요한복음 13장


오늘은 요한복음 13장과 신명기 17장 그리고 시편 68편을 읽습니다.


사람은 생각에 따라 그의 삶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언어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합니다.


마귀는 유다에게 잘못된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유다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을 알지 못하고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마귀의 교활한 모습과 역할을 유다에게서 생각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Bible Thinking이라고 합니다.

성경적 사고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할 때에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성경을 읽어야 하고 묵상하며 실천하는 훈련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그 아이가 내 삶의 거침돌과 같다는 생각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넘어서는 성경적 사고는 어린 아이에게서 배우라 또는 어린 아이를 외면하지 말고 그 아이를 마치 주님을 영접하듯 대하라는 가르침을 생각하며 아이를 마주볼 때에 잘못된 생각을 떨쳐버리게 됩니다.

만일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일시적인 충동에 따라 어긋난 행동을 할 것입니다.


토요일 새벽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체험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Today's Bible &Prayer(Sep. 7. 2013) Sat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한복음 13:35)

- 주님의 제자로서 거듭나게 하여 주옵소서!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John 13:35)

 - I want to be a disciple of the Lord as born again.




오늘의 묵상(9월 6일, 금요일) - 요한복음 12장


오늘은 요한복음 12장과 신명기 16장 그리고 시편 67편을 읽습니다.


베다니에서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 가치가 무려 300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그 가치를 일 년치 월급을 모아야 살 수 있는 아주 귀하고 값비싼 것이라고 합니다.

한 제자가 그 값비싼 것을 쓸데없이 허비하느냐 차라리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느냐 하고 비웃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시며 이 여인이 행한 일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행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이 행한 것에 대하여 비웃고 조롱하려는 사악한 마음을 갖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와 같은 본성을 버리기 위해서는 마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죽지 않았기에 나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향기가 아니라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나를 꺾을 수 있는 믿음을 기도합니다.


1865년 아주 추운 겨울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영국의 사우스 웨일즈라고 하는 곳의 언덕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갓난아이를 안고 가던 길에 그만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날을 어둡고 길은 찾지 못하여 추위에 떨다 그 여인은 죽었습니다.  눈보라가 멈춘 후에 사람들은 여자가 앉아서 죽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자가 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아기를 살리려고 자기의 옷을 벗어 아이를 감싸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죽었는데 아이는 살았습니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잘 키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자라서 1916년 영국의 수상이 되었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눈밭에서 벌거벗고 죽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했습니다.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 내 대신 죽으셨다. 그것도 벌거벗은 몸으로 죽었다며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에 감격하며 어려울 때마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 죽어서 또 다른 사람을 살리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문제가 많은 것은 죽어야 할 내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죽일 수 있는 지혜와 믿음을 간구하며 오늘도 희망을 갖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성구와 기도 / 2013. 9. 6(금)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한복음 12:45)

 - 내 삶에서 주님을 보게 하옵소서!

 When he looks at me, he sees the one who sent me.(John 12:45)

 - Please let me see the Lord in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