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의 자리(시편 150:1-6) / 금요찬양기도회 원고(2018-10-19) 이승혁목사


                                                                                                                                                        금요찬양기도회 / 2018-10-19

 찬송의 자리(시편 150: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종교개혁자 칼빈(Jean Calvin. 1509. 7. 10∼1564. 5. 27)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영국의 성서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 1966. 10. 28~1714)는 시편 150편을 “시편의 기록 목적을 보여주는 시” 라고 정의했습니다.

시편은 150편 제5권으로 구성된 말씀
5권으로 구성된 것은 모세오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제1권은 시편 1편부터 41편
제2권은 시편 42편부터 72편
제3권은 시편 73편부터 89편
제4권은 시편 90편부터 106편
제5권은 시편 107편부터 150편

시편을 시의 성격에 따라 분류

미즈모리 - 시
쉬르 - 노래
마스길 - 명상시
믹담 - 풍자시
테필라 - 기도
테힐라 - 찬양

반주할 음악의 지시에 따른 분류

영장으로
셀라
현악
관악
뭇랍벤에 맞춘 노래
스미닛에 맞춘 노래
깃딧에 맞춘 노래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
아엘렛새할 곡조로 부르는 노래
수산 에둣 곡조로 부르는 노래
아요낫 엘렘 르호깃 곡조로 부르는 노래
알다스헷 곡조로 부르는 노래

시편 1편 첫 구절은 “복 있는 사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편 150편의 마지막 구절은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시편의 구성에 따라 복 있는 사람은 할렐루야 라고 외치는 사람입니다.

할렐루야”는 ‘찬송하라’는 “할랄”과 ‘너희들’ 이라는 “”와 ‘하나님’이란 “”라는 세 단어가 합성하여 만든
너희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시편의 결론은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 이라고 하겠습니다.

찬송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사람이라는 한 가지 예룰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는 곳으로 가던 길에 귀신들려 점치는 여종을 만났습니다.
여종은 점을 치고 복채를 받아 주인에게 바치므로 주인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이 바울과 실라를 향하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 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 날을 계속하자 바울은 그 여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왔고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으므로 여종의 주인은 자기의 수입원이 없어졌기 때문에 바울과 실라를 관가로 끌고가 관원에게 우리의 성을 요란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고소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고 깊은 옥에 갇혔습니다.

밤중 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할 때 감옥 안에 있던 모든 죄수들이 기도와 찬송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옥의 터가 흔들리며 지진이 일어났고 감옥의 문들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고 있는 것들이 모두 풀렸습니다.
찬송을 부른 바울과 실라에게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찬송을 들었던 죄수들에게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환경은 도저히 찬송을 부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찬송을 불렀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도들에게도 늘 찬송할 수 있는 즐겁고 행복한 환경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바울과 실라와 같이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운 환경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성도들이 찬송할 때 그 찬송이 울려 퍼지는 그 지역에도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디에서 찬송을 해야 할까요?

시편 150편 1절을 읽겠습니다.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성소에서 찬양하라

성소란 구약 시대에는 성막과 성전을 말합니다.
성막과 성전이 신약 시대에는 교회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부터 찬송은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몸이 성전이라고 깨우쳤습니다.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이 성전이므로 우리들이 교회에 모였을 때는 모이는 교회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회를 떠나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됩니다.
따라서 찬송은 교회에서 시작하여 내 삶의 자리까지 확산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곧 찬송해야 할 장소라고 하겠습니다.

궁창에서 찬양하라

궁창은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찬송하기 위해서 비행기 또는 우주선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서 찬송해야 할까요?
권능의 궁창이란 하늘이 권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이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하라는 말씀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나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찬양하고 교회 밖에서도 찬양하라

이렇게 찬양이 울려 퍼질 때 그 찬양을 듣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는 마치 감옥의 터가 흔들리고 죄수들을 묶었던 밧줄이 풀려진 것처럼 죄악의 사슬에서 해방될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찬송의 놀라운 위력

저희들이 와이스톤에서 거주할 때 어느 날 수맥을 검사하는 사람이 방문하여 엘 로드(L Rod)를 양손에 들고 집안에 수맥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이 집터에 수맥이 분명하게 지나가는데 잡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근처 집에서는 수맥이 잘 잡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혹시 교회에 다니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 라고 대답하자 “역시 그렇군요! 집안에 찬송가와 성경이 있으면 수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찬송가를 집안에 놓고 있었는데도 수맥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 찬송을 부르고 그 말씀을 묵상할 때에 더 크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소와 권능의 궁창에서 찬양하라!

성도들이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찬송의 자리이며 그 찬송으로 구원의 은혜가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능력의 찬송을 부르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1. 내 삶의 자리가 찬송으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2. 뉴욕의 모든 교회들마다 찬송이 회복되게 하옵소서!
3.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찬송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Don't you know that you yourselves are God's temple and that God's Spirit lives in you?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Do you not know that your body i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who is in you, whom you have received from God? You are not your own; you were bought at a price. Therefore honor God with your body. 

시편 150:1∼6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찌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찌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찌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Praise the LORD. Praise God in his sanctuary; praise him in his mighty heavens. Praise him for his acts of power; praise him for his surpassing greatness. Praise him with the sounding of the trumpt, praise him with the and lyre, praise him with tambourine and dancing, praise him with the strings and, praise him with the clash of cymbals, praise him with resounding cymbals. Let everything that has breath praise the LORD. Praise the LORD.


여호와를 찬양하라(시편 150:6) . 제 3차 금요찬양기도회 설교 원고

2018-9-21(금요찬양기도회) 오후 8:00-9:30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시편 150:1∼6)

1.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찌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

4.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찌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찌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편 150편 6절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이렇게 마칩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주제는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주제를 달리 말하면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 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금요찬양기도회에 참석하신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이심을 확신하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150편의 특징을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는 할렐루야 시
둘째는 찬양의 시
셋째는 호흡의 시

150편에 대한 세 가지 특징 중에서 오늘은 호흡의 시에 대하여 소개합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호흡이란 히브리 단어는 ‘네페쉬’ 라고 합니다. ‘네페쉬’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소개합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사람을 만든 재료는 흙입니다.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만드실 때에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창 2:19). 그런데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흙으로 만든 후에 사람에게는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생기를 불어넣는 순간 사람은 살아있는 영이 되었습니다. 영적 존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동물과 새는 살아있지만 생기가 없기 때문에 동물적 존재 즉 육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육적 존재는 죽으면 끝입니다. 그러나 영적 존재는 죽은 후에 전혀 다른 세계로 옮겨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전도서 3:19∼21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 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은 생령이 된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생령이 되기 위해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시편을 영혼의 해부학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생령이 된 자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호흡이 멈추면 찬양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 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호흡이 있다는 말은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이 있는 것의 특징은 살아있다는 것을 소리로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말을 못하는 어린 아이가 우는 것은 아이의 상태를 알리는 표현입니다.
개가 멍멍 하고 짖는 것은 개가 살아있다는 표현입니다.
고양이가 야옹 야옹 하고 소리하는 것은 고양이가 살아있다는 표현입니다.
새가 지저귀는 것도 새가 살아있다는 표현입니다.
부엉이가 부엉 부엉 하고 소리 내는 것도 살아있다는 표현입니다.
호랑이가 어흥 하고 소리 내는 것은 호랑이가 살아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살아있다는 표현을 소리로 나타냅니다.

그런데 시편은 영혼의 해부학으로 사람이 살아있다면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느냐? 그 소리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각종 들짐승들과 각종 공중의 새는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살아있는 사람과 동물과 새가 살아있다는 표현을 합니다.
동물은 동물의 특유의 소리로 표현합니다.
새는 새의 특유의 소리로 표현합니다.
사람도 사람의 특유의 소리를 표현해야 합니다.

사람이 표현해야 하는 소리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생기는 영을 말합니다.
거룩한 영이 사람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 영으로 살아있다는 표현을 해야 합니다.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소리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려면 사람의 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의 회복이 없이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소리와 새의 소리와 같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라고 하겠습니다.

금요찬양기도회가 거듭난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은혜의 시간이며 그 시간에 우리 모두의 영이 온전하고 거룩하게 회복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를 찬양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내 모습을 돌이켜 보며 내 삶에서 하나님은 찬양하지 못한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이 찬송은 존 뉴턴 목사님이 지은 찬송시를 Amazing Grace라는 곡에 가사를 붙여 부른 찬송입니다.
1.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2.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3.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4.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존 뉴턴은 1725년 영국 런던에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인 아버지와 독실한 개신교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성직자로 키우려 했으나 그가 여섯 살 되었을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존 뉴턴의 아버지가 상선을 타고 바다에 나간 후 계모의 손에 자랐습니다. 계모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존 뉴턴은 아버지처럼 배를 타기 위해 선원 학교에 다녔습니다. 열한 살이 되었을 때(1736년) 존 뉴턴은 상선의 선원인 아버지를 따라 도제로 배를 타고 여러 곳을 다녔습니다. 그 후 존 뉴턴은 흑인노예를 수송하는 노예무역에 종사했습니다.

당시 노예로 납치된 흑인들은 가축 이하의 대우를 받았으며 수송선의 위생상태가 열악해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간염, 탈수증,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하는 노예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존 뉴턴은 노예들을 마구 다루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1748년 5월 10일 그가 22세가 되었을 때 존 뉴턴은 그의 배가 폭풍우를 만나 좌초될 위기를 만났습니다.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이때 크리스천의 삶을 다짐했습니다.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어머니로부터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진실한 기도를 하지 못했던 존 뉴턴은 풍랑의 위기를 만나 처음으로 진실한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풍랑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무사히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날을 제2의 생일로 기억하면서 그 후 6년간 노예무역을 계속하면서 노예들이 노예선에서 당하는 불편을 개선했다고 합니다.

1755년 존 뉴턴은 병을 이유로 하선하였고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회의 사제가 되었습니다. 1772년 흑인 노예무역에 관여한 것을 깊이 후회하며 그것과 상관없이 사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이러한 찬송시를 작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830년 경 찬송시에 이미 널리 알려진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곡에 가사를 붙여 지금 우리가 부르는 찬송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뉴턴은 환상 중에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 가지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첫째는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

나와 같은 사람의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했다고 합니다.

둘째는 천국에 있어야 할 성도가 없다는 것

세상에서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 중에 먼저 세상을 떠났던 성도들을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들을 천국에서 만날 수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천국에 없을 것 같았던 성도가 있다는 것

신앙생활을 저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천국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