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될 일(요한계시록 1:1, 22:6) / 설교 원고(2019-03-31)

 속히 될 일(요한계시록 1:1, 22:6)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The angel said to me, "These words are trustworthy and true. The Lord, the God of the spirits of the prophets, sent his angel to show his servants the things that must soon take place."   

* 속히 될 일(What must soon take place) - 곧 일어날 일

속담에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를 하나로 연결해야만 바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두 주일에 소개했던 설교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요한계시록은 오직 예수로만 읽어야 합니다.

프리즘(Prism)은 빛을 굴절 분산시키는 광학도구를 사용하여 햇빛을 통과시키면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은 무지개 색으로 분해되어 영롱하게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들었던 성경에 관한 모든 단편적인 정보들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렌즈로 통과시켜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일까?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말씀입니다. 계시란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계획이란 비밀을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예언이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주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의 말씀입니다. 편지는 직접 찾아가서 전할 수 없는 내용을 글로 적어 보낼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였고 예언하셨던 말씀을 글로 적어 보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속히 될 일’이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는 먼저 요한계시록의 범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성경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성경의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속히 될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속히”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과 성경에서 사용된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속히”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 수가 본문을 포함하여 8구절로 소개됩니다(1:1, 2:6, 3:11, 11:14, 22:6, 22:7, 22:12, 22:20).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모든 구절들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때문에 설교의 주제에 합당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속히 될 일’이란 22장 6절에서 “속히 되어질 일” 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어서 “속히 될 일” 이란 3장 11절, 22장 7절과 12절 그리고 20절에서 “속히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될 일”은 “속히 오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가 대략 기원 후 96년이라고 합니다. 2천 년 전에 속히 될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속히 될 일 즉 주님의 재림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시간(時間) 개념(槪念)

속히 될 일에 대해서 시간 개념으로 해석하면 ‘빠르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루어질 일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아니면 내 생전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목격했던 제자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제자들은 그들이 만났던 주님에 대한 증거를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복음서를 시작으로 신약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만일 주님이 제자들 생전에 오셨다면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실 주님이 오시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인위적인 방법이므로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6∼7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장소(場所) 개념(槪念)

속히 될 일에 대한 해석을 시간적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오실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어디에’ 오실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특별한 장소를 마치 계시를 통해 받은 것처럼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과천, 피지 섬, 브라질, 계룡산과 같은 곳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인물(人物) 개념(槪念)

속히 될 일을 시간과 장소로 해석하면 그 다음에는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1992년 시한부종말론의 이장림,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상낙원 피지 섬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사례(은혜로교회 신옥주), 두 증인 중 한 사람이라며 영원불멸의 교주(전도관 박태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므로 교인들은 전 재산을 정리해서 브라질에 마련한 4천만평의 땅으로 집단 이주하여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교회도 있습니다.

영적(靈的) 개념(槪念)

속히 될 일이란 시간과 공간과 인물 중심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묵시문학의 특징인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시간 개념과 장소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히’라는 말은 ‘확실히’ ‘틀림없이’ 라는 속뜻으로 ‘반드시 될 일’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속히” 라는 의미를 ‘문자적’으로 또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면 본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묵시문학의 특성을 전제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묵시문학에서 “속히” 라는 의미는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 라는 뜻으로 “속히 될 일”이란 “반드시 일어날 일”이란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속히 될 일’이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이므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천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기에 아마 오시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실현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전개 이야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중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녀가 살던 마을에 백인 선교사의 가족들이 우리 마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이 분노하여 가뭄이 계속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은 점점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삽, 곡괭이, 쇠스랑 등 농기구를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국 출장 중이라 집에는 어머니와 어린 펄벅밖에 없어서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준비하고 케이크와 과일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한 것처럼 대문과 집안의 모든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린 펄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하시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잡았습니다.

얼마 뒤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대문이 굳게 잠기고 집안은 깜깜할 것이라고 여기고 횃불을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문이 열려있어 마당으로 들어섰더니 모든 방문이 열려 있고 방마다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또한 방마다 차와 케이크 그리고 과일이 차려진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멈칫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정중하게 마을 분들을 맞이하며 “어서 오십시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씩 드시면서 말씀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 더 어리둥절 하는데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횃불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도 그를 뒤따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과일을 먹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조금이라도 도망칠 방법이 있었다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다른 골목에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인지라 모든 것을 각오하고 그런 용기를 내어 보았단다.”

그리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이 말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속히 될 일은 속히 오리라는 약속으로 반드시 오실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았다는 것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오시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속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 급히(ταχύ) 사화하라 - 속히(ταχύ) 사화하라 

(현대인 성경) 타협하라
(공동번역) 화해하여라
(새번역) 화해하도록 하여라

‘사화하다’(유노온, 능동형)는 상처를 준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사화(사과)는 상처를 준 사람이 해야 하고, 화해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사화와 화해가 이루어진 것을 합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 빨리(ταχύ) - 속히(ταχύ) 

성도들이 속히 해야 할 일은 부활의 소식을 빨리 가서 알려야 합니다. 종말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부활의 소식을 빨리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적인 종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지라도 여전히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함께 나누며 주님 오실 그 날을 함께 준비할 수 있는 믿음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속히 될 일이란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는 사건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속히 오실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까?

20:15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1: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이름은 등과 기름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등과 기름을 예비하기 위해서 속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것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신앙생활의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다면 교회에 다닌다는 것뿐이지 신앙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부족한 것이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자랑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요한계시록을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사람들이 “속히 될 일”에 대한 주제를 현실 세계에서 나타는 현상과 징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의 징조와 현상은 잘 몰라도 등과 기름을 예비한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비유의 가르침과 같이 “속히 될 일”을 말씀하신 감추어진 은혜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속히 될 일”이란 용어가 요한계시록에서 두 번 사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 속히 될 일
22:6, 속히 되어질 일

속히 될 일 또는 속히 되어질 일은 무엇인가?

3:11,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7,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12,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20, 속히 오리라(I am coming soon.) 


속히 될 일은 속히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때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를 기준으로 대략 2천

년 전의 예언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언한 내용이 아직도 성취되지 않았다면 그 예언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말 그 예언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 또는 90이라고 한다면 속히 오실 것이란 예언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속히 오리라고 예언하셨을까요?

미래에 나타날 현상과 징조들을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짧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속히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은 무엇일까요?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성경에 소개된 말씀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시험을 치룬 줄 압니다. 시험 일자가 발표되면 모든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합니다. 시험 일자가 중요합니까? 시험을 잘 치룰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합니까? 시험이 목적이 아니라 시험을 통하여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속히 될 일은 반드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오실 주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합니다.

속히 오시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에게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하고 질문했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속히 오실 주님의 때와 기한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을 받고 증인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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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요한계시록 1:1∼4) / 설교 원고(2019-03-24)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요한계시록 1:1∼4)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지난주일에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라는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반드시 ‘예수로 읽어야 합니다.’ 예수로 읽어야 할 이유를 혈액형에 대한 이야기를 비유로 소개했습니다.

봄베이(Bombay) O형의 부모가 낳을 수 있는 자녀들의 혈액형은 O형뿐만 아니라 A형, B형, AB형의 자녀들이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혈액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배우자를 의심하여 단란한 가정이 파탄날 수 있습니다. 만일 요한계시록에 대한 성경적인 지식이 없다면 마지막 때에 부끄러운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예수로 읽는다는 것은 예수 이외에는 구원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가르치면서 어느 특정한 인물과 교회와 교단과 장소를 제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을 읽으면서 세 개의 단어에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세 개의 단어가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인가를 알려주는 키워드(Keyword)가 됩니다.

1절에서는 계시(啓示, revelation)
3절에서는 예언(豫言, prophecy)
4절에서는 편지(便紙, epistle)

요한계시록은 계시, 예언, 편지라는 정의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997년 이란 단기 선교에 참여했던 ‘댄 바우만(Dan Baumann)’은 간첩죄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9주간 동안 고문을 받았는데 그때의 일을 회고하며 ‘아름다운 능력의 길 예수’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댄 바우만은 감옥에서 속히 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마음속에 ‘내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댄 바우만은 그들에 대해서 알고 싶지 않았고 감옥에서 빨리 나가는 것만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하나님, 억울한 죄를 뒤집어씌우고 고문하며 폭행하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댄 바우만은 자신을 심문하던 그 사람들의 영혼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옥과 같은 몇 주를 보내고 어느 날 감방에 들어와서 쓰러져 있는데 밖에서 간수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할 수 없어. 그들은 매를 맞고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자꾸 오는지.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죽이려 하는데도 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그때 댄 바우만은 자기 방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방에서자기를 고문하던 간수와 이란을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

을 모두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또 다른 간수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좀 알아. 전에 한번 들은 적이 있어.”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놀란 것은 그 중에 세 명이 예수를 영접했다고 합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고 복음을 나누면서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싶어.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나도 가지고 싶어.” 

그렇게 9주가 지났습니다. 이제 마지막 사형 판결을 받는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데 무혐의로 석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와서 댄

바우만을 끌어안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열렸기 때문에 댄 바우만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던 이란의 감옥에서 영적으로 자유로운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오직 예수로 읽어야 합니다. 예수로 읽는다는 것은 예수는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며 영원한 생명이 되신다는 믿음과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오실 것을 확신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을 때 댄 바우만과 같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는 고통과 질병과 가난과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영적으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Ⅰ.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일부분(2절)

②.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 중의 한 권으로 정경(正經, κανων. canon)으로 공인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경이란 “하나님의 영감을 통해서 특정한 기간에 저술된 한정된 수량의 현존 문헌을 가리키는 것”을 말합니다(요세푸스 contra Apionem 1.42, 43).

구약 성경 39권은 AD 90년 얌니아 랍비 회의에서 공인되었습니다.
신약 성경 27권은 AD 397년 카르타고회의에서 공인되었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2.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Ⅱ. 요한계시록은 특별한 책(1절, 3절, 4절)


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③.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④.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1. 계시의 책 - 계시서(啓示書)

계시란?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계획을 말합니다.

2. 예언의 책 - 예언서(豫言書)

예언이란? 믿음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예언이 필요한 때는 좋은 시절이 아니라 힘들고 두렵고 고통스런 날입니다. 이런 때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언입니다.

3. 편지의 책 - 서신서(書信書)(2:1, 8, 12, 18, 3:1, 7, 14)

편지란? 말씀을 듣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방법으로 전달 할 수 없었던 시대에 편지를 써서 전달하므로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도미티안 황제 때에 가장 극심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도미티안 황제는 로마의 황제가 너희들의 주(Lord)가 되신다고 강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계시란 무엇인가?

계시를 다른 말로 묵시(黙示, Απōκάλυψις, apocalypsis, 아포칼립시스, 잠잠할 黙, 보일 示)” 라고도 합니다.

계시란 숨겨진 어떤 것이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이라고 하기 때문에 마치 요한이 계시의 주체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시의 주체는 요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계시가 필요할까요?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계시를 다른 말로 묵시라고도 합니다. 계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할 수 있기 때문에 계시를 주셨습니다. 어떤 계시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방법입니다.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계시란 구원의 방법을 각 시대에 따라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묵시는 아무 때나 주어진 것이 아니라 특별히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끝까지 참고 견딜 수 있는 믿음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묵시가 왕성하게 주어진 시대는 구약의 마지막 말라기 선지자의 활동이 끝나고 더 이상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아 백성들은 신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환상(幻想. 변할 幻, 헛보일 幻. 생각 想)을 통한 묵시가 발달했습니다. 이 시대에 묵시문학이란 장르가 생겼습니다.

예언(prophecy)이란 무엇인가?

미래에 되어질 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근거로, 현재에 경험되고 또한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구속사건을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그리스도와 구속의 이야기 그리고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예언(豫言) -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
예언(預言) - 말씀을 맡아 전하는 것

성경에서 예언을 말할 때는 주로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신이란 무엇인가?

서신이란 편지(便紙)를 말합니다. 편지는 사적 편지와 공적 편지로 구분합니다. 사적 편지는 개인에게 보낸 것으로 받는 사람이 읽어야 합니다. 공적 편지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공적 편지로 회람 서신이라고 합니다. 회람 서신이란 아시아 일곱 교회가 편지를 돌려가며 읽는 것을 말합니다.

(맺는 이야기) 이솝 우화 ‘까마귀와 여우’

까마귀가 고깃덩이를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여우가 어떻게 하면 고기를 빼앗아 먹을까 하고 꾀를 냈습니다.


여우는 까마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까마귀님, 까마귀님, 어쩌면 그리 아름다우십니까? 당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한 번만 들어보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밑에서 들려오는 온갖 감언이설에 한껏 우쭐해진 까마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까악, 까악” 하고 울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까마귀가 물고 있던 먹이는 아래로 떨어져 여우의 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단이 바로 이런 것을 노립니다.
무엇인가를 주는 것 같지만 우리가 그것을 잡으려는 순간 우리가 가진 것을 빼앗아가는 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신비하게 해석하는 것처럼 성도들을 미혹하게 한 후에 구원의 신앙을 교주와 교단과 교회로 바꾼 후에 기존 교회들을 비난하고 오직 구원은 여기에만 있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면류관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세속의 것을 붙잡으려고 영생의 면류관을 내려놓으면 사단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빼앗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일부분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예언과 계시와 편지의 형식으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하며 마지막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치는 말씀입니다.


계시 -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
       * 구원의 방법과 계획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골로새서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예언 - 믿음을 지키게 하려는 것
       * 예수에 대한 믿음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서신(편지) - 말씀을 듣게 하려는 것
             *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

요한계시록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니라.
2:11, 17, 29. 3:6, 13, 22.

인 - 어린 양, 징조(sign)
나팔 - 천사, 경고(warning)
대접 - 천사, 심판(judge)

♪ 235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한계시록 1:1, 22:21) / 설교 원고(2019-03-17)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한계시록 1:1, 22:21)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도입 이야기)
부모의 혈액형이 모두 O형인 경우 태어날 자녀의 혈액형은 반드시 O형이어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O형 부모에게서 A형 자녀와 B형의 자녀가 태어났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가정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응급실에 입원했습니다. 수혈을 받기 위해 아들의 혈액형을 검사했는데 B형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의 혈액형과 아내의 혈액형이 모두 O형이었는데  아들은 B형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남편은 “이 아들은 과연 누구의 아들일까?” 하고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집안의 분위기가 갑자기 냉랭해지면서 아내를 보면 자꾸만 어떤 남자일까? 하는 생각이 치솟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나는 절대로 다른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며 이혼했다고 합니다.

몇 년 후에 남편은 O형의 부모에게서 A형이나 B형 자녀가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더구나 부모 중 한 사람이 ‘봄베이(Bombay) O형’인 경우에는 A형도 B형도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두 사람 모두 ‘봄베이(Bombay) O형’ 이라면 AB형도 태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 남편은 이혼할 때보다 더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혈액형이 B형인 것은 아내의 부정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전개 이야기)
봄베이(Bombay) O형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한 가정의 비극적인 이야기처럼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지식 때문에 교회를 떠나거나 심지어 가족들과 헤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10월 28일 시한부종말론의 가르침에 따라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자녀들을 다니던 학교에서 자퇴하였고, 직장인들은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심지어 집을 팔아 전 재산을 바친 후에 주님과 함께 휴거될 것이라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종말론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믿음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

최근에는 남태평양 피지섬이 지구상에서 마지막 도피처로 예비 된 곳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그곳으로 교인들을 집단 이주시킨 후에 함께 합숙하며 농장의 일을 하거나 상점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시키며 심지어 집단 구타를 행하므로 인권을 유린했다는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도 있었습니다(은혜로교회 신옥주목사).

이러한 사건의 배경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믿음과 지식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읽기 전에 먼저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만일 잘못된 정보와 지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봄베이(Bombay) O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아내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생각하여 이혼 할 뿐만 아니라 행복했던 가정을 한 순간에 포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르침이 아니라 종말에 대한 믿음을 깨우치기 위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신앙과 지식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선지식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지식과 정보들 몇 가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칼빈이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은 이유

칼빈은 성경 66권 중에서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65권의 주석을 발표했지만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못한 것은 요한계시록이 난해하고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칼빈이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은 다양한 이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칼빈이 활동하던 시대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너무 많이 소개되어 어떤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므로 개혁자 츠빙글리와 루터는 요한계시록을 정경으로 받아드리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때에 칼빈은 또 다른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을 소개하여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통계시를 받아 칼빈도 하지 못한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잘못된 가르침이 교인들을 유혹하기도 합니다.

둘째, 부분적인 가르침과 해석

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또는 설교자들이 요한계시록 전체를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여 가르치고 설교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대한 궁금증만 더 커졌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가는데 교회에서 들을 수 없었던 내용을 마치 신비하게 해석한다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며 교회를 떠나고 심지어 가족들과도 헤어질 수 있는 용감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사례가 나타나게 됩니다.

셋째, 종말에 대한 잘못된 신앙

요한계시록의 결론은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합니다. 문제는 주님이 언제 어디에 오시는지 알려고 하는 지나친 관심과 호기심이 신앙의 질서를 흔들게 됩니다.

종말과 마지막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말일(The Last Day)은 최후 심판의 날을 말합니다.
말세와 종말(Last Day)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종말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한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를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도가 주님과 함께 들어간 그 낙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말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부터 마지막 날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실 그 때까지 그 모든 기간이 종말의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어느 날 어느 장소에서 누구와 함께 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강조하는 것은 성경적인 종말 신앙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도 그 날과 그 시는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이 알고 계신다고 분명하게 밝혀주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No one knows about that day or hour, not even the angels in heaven, nor the Son, but only the Father.)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통계시(直通啓示)가 아니라 요한계시록을 성경 전체의 한 부분으로 읽을 수 있는 ‘통전적(通全的) 성경 읽기’ 라고 하겠습니다.

통전적(通全的)이란 ‘통할 통(通), 온전 전(全), 과녁 적(的)’이란 한자어로 성경을 성경 전체의 문맥과 주제를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통전적 성경 읽기라는 말을 평소에 자주 듣지 못하는 용어이기에 오히려 “예수로 성경 읽기” 라고 소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주제는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에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말씀합니다.
신약에서는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예수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읽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반드시 예수로 읽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을 예수로 읽지 못하는 대표적인 거짓 정보는 짐승의 수 666과 베리 칩에 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16∼18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구원의 기준은 베리칩(VeriChip, Verification Chip) 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입니까?
구원의 기준이 분명하면 베리칩이나 다른 어느 것에 의해서도 흔들릴 수 없습니다.

구원에 대한 두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둘째는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두 명제를 놓고 구원의 기준이 예수님이라면 베리 칩이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예수로 읽어야만 합니다.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십사만 사천이란 수

요한계시록 7:4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요한계시록 14: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문자적 해석 방법

십사만 사천이란 수를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정확하게 십사만 사천 명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특정한 교단과 교주에게 소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상징적 해석 방법
십사만 사천이란 수를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라는 수를 곱하면 144가 됩니다. 144에 가장 많은 수 최고의 수 1000을 곱하면 십사만 사천이 됩니다. 따라서 십사만 사천이란 구약의 백성과 신약의 백성들 중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제 요한계시록 1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계시록은 누구의 계시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석 방법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주체가 직통계시를 받은 교주가 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어떤 특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요한계시록을 해석하실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그 주체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1∼7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양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요한계시록 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인으로 봉한 것을 누가 뗄 수 있습니까?
어느 교단도 아니고 교주가 아니라 그 어린 양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린 양은 2천 년 전에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종말의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치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The grace of the Lord Jesus be with God's people. Amen.)   

요한계시록은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시작하여 22장 21절에서 ‘주 예수의 은혜’로 막을 내립니다. 성경 전체의 주제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요한계시록의 주제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이외의 것을 가르칠 때 주의해야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 예수의 은혜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요한계시록 22:16∼20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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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물의 정체(요한계시록 4:6-11) / 주일설교 원고(2019-06-2)

네 생물의 정체(요한계시록 4:6∼11)


‘요한계시록’을 ‘계시록(啓示錄)’ 이라고 합니다. 계시록은 비밀이 아닙니다. 비밀(秘密)이란 보여주면 누구든지 알 수 있는 내용을 말합니다. 반면에 계시(啓示)란 보여줄지라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가르치거나 설명해 주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말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비밀록(秘密錄)’이 아니라 ‘계시록(啓示錄)’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은 404구절 입니다. 404구절 중에 구약에서 인용한 말씀이 278구절 입니다. 278구절은 대략 68% 분량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구약과 관련된 말씀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구약의 말씀을 읽었을 때는 요한계시록처럼 어렵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구약에서 계시와 환상은 부분적으로 소개되었으나 요한계시록은 집중적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연관된 구약의 말씀과 함께 읽어가면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도입 이야기)
어느 장로교회 목사님이 천국 문 앞에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천사와 다투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사가 “왜 천국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느냐?” 하고 물었더니 목사님의 대답이 “천국에 24장로들이 있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장로교회에서는 당회에서 모든 것을 결정을 합니다. 당회는 목사님과 장로님들로 구성된 교회에서 최고의 의결기관입니다. 목사님이 장로님들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겠느냐 하는 우스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지난주일 설교 요약)

지난주일은 ‘하늘 보좌’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하늘 보좌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들은 세 개의 보석, 무지개, 24장로들 입니다.

세 개의 보석에는 ‘벽옥(Diamond)’은 ‘하나님의 거룩, 의, 빛’을 상징합니다. ‘홍보석(Ruby)’은 ‘하나님의 심판, 구속’을 상징합니다. ‘녹보석(Emerald)’은 ‘하나님의 자비, 은혜’를 상징합니다. ‘무지개(Rainbow)’는 ‘언약’을 의미합니다. ‘24 장로’들은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구약 시대에 성전 제사를 돕기 위하여 제비를 뽑아 선택된 수를 의미하며 동시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하는 ‘천상적 존재(天上的 存在)’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네 생물의 정체’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6∼11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묵시문학이란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후 100년 사이에 형성되었습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속에 대한 내용을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징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눈’의 기능은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눈이 네 생물의 안과 주위에 가득하다는 것은 ‘통찰력’을 말합니다.

오늘의 본문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구약의 말씀은 에스겔 1:4∼11입니다. 에스겔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에스겔 1:4∼11
4. 내가 보니 북방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면에 비취며 그 불 가운데 단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6.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7. 그 다리는 곧고 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며,
8. 그 사면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행할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11. 그 얼굴은 이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요한계시록 4장에서 소개된 네 생물의 정체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 에스겔서에서 소개한 네 생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

기원전 597년 여호야긴 왕 시대 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 성은 포위되고 유다의 귀족들과 청년들 일만 여명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때 붙잡혀간 포로들 가운데 제사장 부시(멸시)의 아들 에스겔(하나님이 강하게 함) 선지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에스겔의 나이가 30세쯤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그발 강(경계)가에서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세 개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에스겔 1장). 세 개의 환상이란 ‘네 생물에 대한 환상’과 ‘바퀴에 대한 환상’ 그리고 ‘보좌에 대한 환상’ 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기원 후 90∼96년 경 로마 황제의 기독교 탄압으로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을 본 때는 기원전 597년이었고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본 때는 기원 후 90∼96년 이었으므로 대략 그 시기의 차이는 700년입니다.  

첫째, 네 생물의 환상(에스겔 1:5, 10, 참조 4∼14절)

5절,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10절,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탈무드에서 네 생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사람(Man)은 피조물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존재를 상징합니다.
사자(Lion)는 들짐승가운데 가장 용감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소(Cow)는 모든 가축 중에서 재물과 헌신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소를 ‘송아지’라고 합니다.
독수리(Eagle)는 새(鳥類)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존재를 상징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복음서를 네 생물에 비유하여 가르쳤습니다.

마태복음의 수신자는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마태복음을 ‘사자복음’ 이라고 합니다.

마가복음의 수신자는 로마인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섬기려고(종)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마가복음을 ‘황소복음’ 또는 ‘송아지복음’ 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의 수신자는 헬라인들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의 관심은 철학이었습니다. 철학은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자(人子) 즉 사람의 아들로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사람복음’ 또는 ‘인자복음’ 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의 수신자는 모든 인류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라고 하여 ‘독수리복음’ 이라고 합니다.

복음서의 특징으로 표현된 네 생물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자는 하나님의 통치의 지존하심
송아지(황소)는 하나님의 통치의 능력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의 지혜
독수리는 하나님의 통치의 신속함(탁월함)

그런데 오늘날은 에스겔 선지자 시대처럼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대가 아닙니다. 사도 요한의 시대처럼 밧모 섬에 유배되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네 생물을 통해서 오늘의 성도들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을 본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요한계시록 4:8)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묵시문학에서 눈은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임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도행전 1:11). 그런데 하늘로 올라가신 그 예수님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신다고 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1:4, 16:5, 4:8). 지금 이 자리에서 날마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 들어야 하고 지켜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을 네 생물처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자와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자는 모든 동물들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합니다. 힘이 강하다는 것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한 영적인 힘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의 힘과 말씀의 능력은 악한 영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말씀의 능력으로 악을 물리치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나님의 말씀을 송아지와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송아지와 황소는 예로부터 재산과 부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송아지와 같이 깨닫는다는 것은 말씀에 부요한 신앙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자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 말씀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요한계시록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명하여 더러운 귀신아 나오라!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에게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렇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과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과 같이 깨닫는다는 것은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최고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신앙이 지혜로운 성도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시편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나님의 말씀을 독수리 같이 깨달아야 합니다.

독수리 같이 깨닫는다는 것은 분별력(分別力)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독수리는 높은 하늘에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작은 동물 닭과 쥐와 같은 것도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날아와서 낚아챕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력을 회복하여 악한 영의 가르침과 지배를 받지 않고 거룩한 영의 가르침과 지배를 받아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열왕기상 3: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둘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요한계시록 4:9∼11)

9.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네 생물들과 24장로들은 하늘 보좌 주위에서 찬양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이사야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네 생물의 정체

요한계시록 4:6∼7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에스겔 1:5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에스겔 10:15
그룹들이 올라가니 그들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생물이라.

에스겔 10:20
그것은 내가 그발 강가에서 보던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래에 있던 생물이라 그들이 그룹인 줄을 내가 아니라. 

그룹(케루빔, 중보자)과 스랍(세라핌, 불타는 자)

그룹이란 하나님을 호위하는 천사 즉 수호천사
예를 들면 ‘낙원을 지키는 천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창세기 3: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또 다른 예는 ‘성전과 성물을 지키는 천사’로 소개됩니다(출애굽기 25:18~20, 열왕기상 6:23~28)

스랍이란 무엇인가?
스랍이란 찬양을 맡은 천사
하나님 보좌 곁에서 찬양하는 일을 하는 천사



로마 시대 10대 기독교 핍박 사례

로마 시대 10대 기독교 핍박 사례

Ⅰ. 고대 최초의 핍박 사건

1. 64년, 네로(Nero)황제의 치하에서 
2. 로마와 그 변두리에서만 발생. 

 3. 기독교인들이 로마 방화의 희생양이 됨. 

 4.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네로 황제의 정원을 밝힐 정도. 

 5. 주요 순교자 - 바울, 베드로

Ⅱ. 두 번째 박해

1. 약 90∼96, 도미티안(Domitian) 황제 치하에서
2. 주로 로마와 소아시아 지방
3. 황제 신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음
4. 성전 세를 황제에게 바치도록 강요하므로 유대교와 기독교의 반발
5. 주요순교자 - 로마의 클레멘트, 요한(밧모 섬으로 유배)

Ⅲ. 세 번째 박해

1. 98∼111, 트라얀(Trajan) 황제 치하 
2. 산발적으로 번짐 
3. 애국심에 대해서 의심받던 다른 단체들과 함께 수난 당함
4. 기독교인들은 발견되기만 하면 형 집행 당함. 그러나 쉽게 발각되지는 않았음. 
4. 주요 순교자 - 이그나시우스, 시므온, 소지무스, 루푸스 

Ⅳ. 네 번째 박해

1. 117∼138, 하드리안(Hadrian)황제 치하 
2. 산발적으로 번짐 
3. 트라얀 황제의 정책이 고수됨 
4. 기독교인에 대해서 거짓 증거 하는 자도 처벌 
5. 주요 순교자 - 텔레스포루스 

Ⅴ. 다섯 번째 박해 

1. 161∼180,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황제 치하
2. 황제 자신이 스토아 철학자였기에 기독교를 반대함 
3. 자연재해의 원인이 기독교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비난함
4. 주요 순교자 - 저스틴 , 포티누스, 블랜디나 

Ⅵ. 여섯 번째 박해

1. 202∼211, 셉티무스 세베루스(Septimus Severus) 황제 치하 
2. 기독교 개종 금지 
3. 주요순교자 - 레오니다스, 이레니우스, 페르페투아 

Ⅶ. 일곱 번째 박해

1. 235∼236, 트레스출신의 막시미누스(Maximinus)황제 치하 
2. 기독교 성직자를 처형하라고 명령
3. 기독교인들이 암살당했던 전임황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박해받음 
4. 주요 순교자 - 우르술라, 히폴리투스 

Ⅷ. 여덟 번째 박해

1. 249∼251, 데키우스(Decius)황제 치하 
2. 처음으로 제국전역으로 박해가 번짐 
3. 황제신 외의 다른 신에게로의 경배가 금지 
4. 이교주의에로의 열정적인 복귀는 기독교를 박멸하고자 함. 
5. 주요 순교자 - 파비아누스,  예루살렘의 알렉산더

Ⅸ. 아홉 번째 박해

1. 257∼260, 발레리안(Valerian)황제 치하 
2. 기독교인의 재산 압수 
3. 기독교인의 집회 금지 
4. 주요 순교자 - 오리겐, 키프리안, 식스투스2세 

Ⅹ. 열 번째 박해

1. 303∼311, 디오클레티안 갈레리우스(Diocletian Galerius)황제 치하 

 2. 최악의 박해시기 

 3. 교회들은 무너지고, 성경이 불태워짐 

 4. 모든 기독교인의 권리가 정지됨 

 5. 기독교인은 이교신에 대한 희생제물이 됨 



하늘 보좌 #.1(요한계시록 4:1-5) / 주일설교원고(2019-05-19)


하늘 보좌(요한계시록 4:1∼5)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두 가지 구조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계시의 구조와 둘째는 공간적(위치) 구조라고 하겠습니다. 계시의 구조는 본 것(1:19∼20)과 지금 있는 일(2∼3장)과 장차 될 일(4∼22장)을 말합니다. 공간적 구조는 밧모섬(1∼3장)과 하늘(4∼11장)과 땅(12∼22장)에서 펼쳐질 일들을 말합니다.

밧모 섬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요한에게 열린 하늘 문으로 하늘 보좌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보여주신 이유를 당시 로마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11대 도미티안(도미티아누스, 51. 10. 24∼96. 9. 18) 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극심하던 때에 계시와 예언과 환상으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었는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앉아 있는 하늘나라의 보좌를 본 것입니다.

보좌(寶座)란 무엇인가?

보좌(寶座)란 한자어의 의미는 ‘보배 보(寶)’, ‘자리 좌(座)’ 즉 ‘보배로운 자리’ 라는 뜻입니다. 보좌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세 가지로 정의합니다.
1. 임금이 앉는 자리
2. 부처가 앉는 자리
3. 하나님이 앉는 자리
그런데 로마 황제의 보좌는 사전적 의미와 한자의 의미를 능가하는 엄청난 자리를 말합니다. 과연 로마 황제의 보좌(寶座)는 어떤 자리이었을까요? 로마 황제의 보좌를 설명하기 위해서 몇 개의 단어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쿠리오스(κύριος)

‘쿠리오스’ 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습니까? ‘쿠리오스’란 ‘주(Lord)’ 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애급 왕을 ‘바로’ 라고 불렀고, 로마 황제는 ‘가이사’ 라고 불렀습니다. 도미티안 황제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황제가 주가 되신다(도미누스 에트 데우스, dominus et deus)” 라고 불러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을 황제 우상화 작업이라고 합니다.

황제가 곧 하나님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심지어 황제를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오른 손과 이마에 표를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그 표가 짐승의 수 666이라고 합니다. 만일 666표를 받지 않으면 상거래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물건을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먹을 것도 구할 수 없는 처참한 삶을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 사도 요한은 가이사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거부하여 밧모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10대 핍박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64년 네로 황제의 핍박입니다.
이때는 로마와 그 주변에 대한 핍박으로 기독교인들의 몸에서 기름을 짜내어 네로 황제의 궁을 밝혔다고 합니다. 네로 황제의 핍박에 순교한 사도는 바울과 베드로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90∼96년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입니다.
이때는 로마와 소아시아에 대한 핍박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이미 무너졌는데도 성전세를 황제에게 바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가이사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도미티안 황제의 핍박에 클레멩트가 순교했고 사도 요한은 처형 받기 전에 밧모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 때에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신사에 가서 참배하도록 강요하는 것과 비슷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신사에 참배하면 편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참배를 거부하면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받거나 아니면 죽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로마 시대에도 동일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둘째,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라는 단어는 주로 ‘왕의 임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성경에서는 ‘파루시아라’ 라는 단어가 ‘재림’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로마 황제가 어느 도시를 방문할 때 황제가 등장하면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라고 외쳤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Hosanna)’ 하고 외쳤던 것처럼 로마 황제가 어느 도시를 방문할 때마다 황제를 향하여 ‘파루시아(παρουσίᾳ)’ 하며 외쳤습니다. 이것은 로마 황제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황제는 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가 되신다는 믿음을 배반하는 것이므로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입니다. 로마 황제의 엄청난 권력 앞에서 황제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아피아가도

‘아피아가도’란 기원전 312년 ‘아피우스’라는 설계사에 의해서 건설된 군사도로를 말합니다. 그 길이가 대략 550km 이었다고 합니다. 아피아가도는 세계 최초 포장도로라고 합니다. 이런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All road lead to Rome)”는 말이 사용됩니다. 또한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 이런 말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 2월 1일 착공하여 1970년 7월 7일에 완공한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이라고 합니다. 공사 기간이 2년 6개월이었기에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로마의 아피아가도는 기원전 312년 경부고속도로보다 2천 년 전에 건설된 포장도로이었고 경부고속도로보다 무려 100km 더 긴 도로라고 할 때 당시 로마의 권력과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인들은 아피아 가도를 ‘도로의 여왕’ 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로마 황제의 보좌는 대단한 권력과 위엄을 갖는 자리로 두려움과 공포의 자리이었습니다. 마치 로마 황제의 보좌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력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의 보좌는 세 가지를 자랑했습니다.

첫째는 통치(統治)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은 로마 황제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로마 의 군사력은 막강한 힘을 갖고 세계를 제패하려고 했습니다.

둘째는 심판(審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명제에서 당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한은 오직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로마 황제가 사형을 명령하면 죽임을 당하고 석방을 명령하면 살인자도 자유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셋째는 영광(榮光)

로마 황제가 되어 그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당시 최고의 영광을 누리는 자리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믿는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있습니다. 이러한 사도 요한에게 하늘 보좌를 보여주셨다는 것은 로마 황제가 속한 땅의 보좌와 하나님이 계신 하늘 보좌와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위대한 것인가를 알려주시는 환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집무하는 백악관(White House)을 방문했던 사람의 우스개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예전에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원들이 백악관을 방문한 후 숙소로 돌아와서 손을 씻지 않기에 왜 그러느냐? 하고 물었더니 이 손이 미국 대통령과 악수한 손이라고 자랑하더랍니다.

한국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은 청와대(Green House)라고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 청와대 에 초청을 받아 당시 유행했던 점심 식사는 칼국수이었는데 한 번은 어느 목사님이 청와대에 초대를 받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칼국수를 먹었는데 양도 적고 너무 긴장해서 청와대에서 나오자마자 근처 식당에 가서 칼국수 한 그릇 더 먹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백악관에 초청을 받아도 그것은 땅에 속한 보좌입니다.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도 그것은 땅에 속한 보좌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힌 초라한 모습이지만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서 하늘 보좌를 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얼마나 감격했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의 발아래에 죽은 자같이 엎드린 상태에서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린 하늘 문으로 인도되어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고 있습니다.

밧모 섬에 갇혀 있을 때는 이 세상을 통치하는 사람이 로마 황제 가이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늘 문이 열리고 하늘 보좌가 있는 곳으로 인도된 사도 요한은 로마 황제의 보좌가 아니라 하늘 보좌 즉 하나님의 보좌를 목격합니다. 세상에서는 로마 황제가 절대 권력을 갖고 통치하는 것 같았지만 하늘 보좌를 보는 순간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지금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습니까?

하늘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하늘의 반대는 ‘땅’입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를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은 세상에서 가장 큰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와 크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풍자하는 우스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정신병원에 두 환자가 입원했다고 합니다. 한 환자가 ‘내가 예수다!’ 하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또 다른 한 환자가 ‘나는 너와 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 하고 소리쳤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예수라고 하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내가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의 차이와 크기를 모르는 사람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한다는 우스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늘 보좌와 땅 보좌의 차이를 모르고 하늘 보좌와 땅의 보좌의 크기를 모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4장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땅의 보좌와 하늘 보좌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현실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며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하늘 보좌를 보게 된 것은 땅의 보좌보다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은총의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영광스러운 예수님께서 그 오른 손에 일곱 별 즉 일곱 교회의 사자와 일곱 금 촛대 즉 일곱 교회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이 끝난 후 사도 요한은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가 하늘 보좌를 보게 됩니다.
4장부터 요한계시록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고 하겠습니다. 왜 하늘 보좌부터 보여주셨을까요? 그것은 하늘 보좌와 땅 보좌의 엄청난 차이를 알려주시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늘 보좌와 땅 보좌의 차이와 크기를 환상과 계시가 아니면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에게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권력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의 감격스런 마음으로 오늘의 본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寶座)’ 라는 단어가 신약 성경에 45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35번은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하늘 보좌는 하나님의 주되심(Lordship)과 통치(統治)와 권능(權能)과 권력(權力)을 말합니다. 로마 황제의 보좌와 비교할 때 로마 황제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와 비교할 수 없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게 하는 환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로마 황제로부터 핍박을 받아 밧모 섬에 갇힌 초라한 신세 같지만 하늘 보좌를 보여주시므로 영원한 왕이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며 끝까지 인내하며 이긴 자에게는 승리의 상급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부귀영화와 비교하지 말고 하늘 보좌를 생각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은 고난 속에서 하늘 보좌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솔직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신앙은 고난과 아픔을 감성적으로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아픔을 내가 경험하면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감정을 흔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참된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뿌려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이 뿌려질 수 있는 땅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땅을 회복하는 지름길은 회개라고 하겠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하늘 보좌를 경험하는 은혜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늘 보좌 #. 2(요한계시록 4:1-5) 주일 설교 원고(2019-05-26)


하늘 보좌(요한계시록 4:1∼5)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요한계시록은 전체 404구절입니다. 그 중에 278구절은 구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도 특히 유대 묵시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유대 묵시문학이란 기원전 200년부터 기원 후 100년 사이에 형성된 문학 형식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장부터 22장까지의 몇 가지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Ⅰ. 조직신학적 구조
기독론 ; 1장(영광스런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모습)
교회론 ; 2∼3장(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종말론 ; 4∼22장(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새 하늘과 새 땅)

Ⅱ. 공간적 위치에 의한 구조
밧모 섬에서 ; 1∼3장
하늘에서 ; 4∼11장
땅에서 ; 12∼22장

Ⅲ. 환상과 계시에 의한 구조
본 것 ; 1장
지금 있는 일 ; 2∼3장
장차 될 일 ; 4∼22장

지난주일에는 하늘 보좌에 대한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소개했습니다. 먼저 말씀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지난 주일의 설교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늘 보좌는 로마 황제가 앉아있는 땅의 보좌와 비교하여 어느 보좌가 더 위대한가를 알려주기 위한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로마 황제의 보좌는 세 개의 단어로 그 권위를 자랑했습니다. 첫째는 로마 황제는 주님이시다! 라는 ‘쿠리오스’, 둘째는 로마 황제가 여기에 입성하셨다! 라는 ‘파루시아’, 셋째는 기원전 312년 세계 최초의 군사 포장도로 550km를 건설한 ‘아파가도’ 라는 세 단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늘 보좌는 하나님이 통치하는 자리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갇혀 있습니다. 로마 황제가 밧모 섬에 있는 요한을 불러내면 즉시 처형당할 긴박한 상황입니다. 요한이 환상을 통하여 하늘 보좌를 보았을 때 땅에 속한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지상의 교회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4장과 5장은 하늘의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지상의 교회에서는 칭찬과 책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상의 교회에서는 책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천상의 교회와 같은 교회로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하여 영적 싸움에 승리해야 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고 몸부림치며 나아갈 때 21장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아직도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이 분명하지 않으면 이상한 가르침에 유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입 이야기)
최근 한국에서 ‘백궁 명패’를 구입하는 사람은 죽어서 심판에서 제외된다고 선전하는데 ‘백궁 명패’ 한 개의 가격은 300만원이며 두 사람이 함께 구입할 때는 할인가 500만원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백궁 명패’를 구입한 사람은 모든 질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고 선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백궁 명패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백궁 명패를 구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건물 6층과 그 근처에 강의실 건물을 구입했는데 강의실 건물 하나에 9억 원이라고 합니다. 강의실을 두 개를 구입했으면 18억 입니다. 백궁 명패 몇 개를 팔아야 18억이 될까요? 600명 이상이 구입했다고 하겠습니다. 더구나 경기도 양주에 ‘하늘 궁’ 이란 집을 소유하고 있고 그 주위에 많은 땅을 매입하여 ‘우주 대통령’ ‘세계 황제’의 마을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주말에 ‘하늘 궁’에 입장하는 비용은 10만원이라고 합니다. 하늘 궁에 입장한 사람들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기념으로 나눠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199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기발하고 엉뚱한 공약을 제시했던 ‘허경영’씨입니다.

(전개 이야기)
사도 요한은 유대인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구약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에 익숙하다는 것은 구약의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마다 구약의 어느 부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에(메타 타우타, Μετὰ ταῦτα, After these things)’는 ‘이 일들 후에’ 라는 복수형으로 크게 두 가지 해석이 한국교회에서 소개됩니다.

첫째는 ‘휴거 이 후에’

이러한 해석은 세대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요한계시록은 역사적인 사건의 순서대로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소아시아 지역에 핍박을 받는 일곱 교회 중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와 연결할 때 가능한 해석입니다(3:21).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역사 시대적 배열이 아니라 환상과 계시의 순서에 따른 배열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해석이 아닙니다.

둘째는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사도 요한은 영광스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발아래 죽은 사람처럼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이 말씀과 연결하는 해석입니다(1:17∼19).

열린 문 -요한계시록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늘에 열린 문’은 항상 열려있습니다.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臨在)
하늘에서 볼 때는 내려가기 위한 출구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입문(入門, 들어가는 것)
땅에서 바라볼 때는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열린 문으로 누가 들어갈 수 을까요?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우스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서울 예수’라는 책에서 소개한 이야기 중에 어느 날 천국에서 갑자기 거대한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천국에 이미 올라와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올 때는 잔치를 열어주지 않았는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올라오기에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는가 하며 어느 장로님이 잔치를 준비하던 천사에게 ‘도대체 누가 올라오는데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준비합니까?’ 하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잔치를 주관하는 천사가 “오늘 모처럼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에서 목사 한 사람 올라온다.”고 대답하더랍니다.

우스개 이야기를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다고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목사라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연 누가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렇다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열려진 하늘 문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불못(지옥)에 던져 진다(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짐승(우상)에게 경배한다(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마땅히 될 일 - 요한계시록 1:1 / 반드시 속히 될 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이리로 올라오라 =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4:2∼3, 보좌(寶座)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다니엘 7:9(王座)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사람들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이 본문에서 소개됩니다.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입니다. 그렇다면 하늘 이외에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책이 아니라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 속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속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유대인의 전통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출애굽기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이와 같은 전통을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 하나님을 뵙고 고백한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디모데전서 6:15∼16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보좌는 통치와 심판과 영광의 자리를 상징합니다.
하늘 문이 열렸을 때 사도 요한은 하늘 보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목격했던 하늘 보좌를 지금 이 자리에서 보고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양을 특별히 세 가지 보석과 보좌 주위를 둘러있는 무지개로 설명합니다.

철학자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B.C 428년)은 하늘 보좌의 세 가지 보석을 “파이돈(Φαίδων)”이란 저서에서 ‘보석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에스겔 1:26∼28, 남보석, 무지개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그러나 성경적인 의미로 세 가지 보석은 구약 전통에 따라 하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에 익숙했던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모양을 오직 보석으로만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돌과 보석의 차이는 무엇인가?
돌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지만 보석이란 갈고 닦아서 광채가 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의 문자는 돌과 같지만 성경의 문자를 읽고 듣고 지킬 때에 보석이 될 수 있습니다.

벽옥(碧玉)(Diamond)(리도 이아시피디) - 요한계시록 4:3, 21:11, 18, 19
‘벽옥’은 귀한 보석이라고 합니다(21:11). 벽옥은 희고 투명한 유리 같은 보석으로 빛과 거룩함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홍보석(紅寶石)(Ruby)(리도 사르디노) - 요한계시록 4:3, 21:20
‘홍보석’은 붉은 빛의 보석으로 구속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녹보석(綠寶石)(Emerald)(리도 스마라 그디노) - 요한계시록 4:3, 21:19
‘녹보석’은 푸른색의 보석으로 자비와 선하심과 소망을 상징합니다.

무지개(Rainbow)(이리스) - 언약

무지개는 언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재판장이 되십니다. 창세기 9장에서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으로 보여주신 것이 언약의 무지개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으로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도 앞으로도 우리는 그 언약적인 사랑을 힘입어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할 수 있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비록 사도 요한처럼 밧모 섬에 갇혀 있지만 밧모 섬이 전부가 아닙니다.


4:4, 흰옷을 입고 금관을 쓴 24장로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요한계시록은 유대묵시문학이란 장르에 속합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상징’을 많이 사용합니다. 물론 24란 수를 상징 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4장로
- 장로(prosbuteros, πρεσβυτέρος) elder
- 보좌에 앉아있으며 금관을 머리에 썼다.
- 24란 수의 의미
1. 구약 12지파와 신약 12사도를 상징
2. 성전 제사에 수종 제사장의 수(역대상 24:7∼19)
3.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
4. 완전 수(12+12, 3X4)

첫째는 구원(救援)받은 백성들의 대표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더하면(+) 24가 됩니다. 또한 12지파와 12사도를 곱하면(☓) 144가 되며 144에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그러므로 구약과 신약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수라고 해석합니다.

둘째는 천사(天使)

하나님이 거느리는 수많은 천사들 중에 마치 보좌 주위를 지키는 24 수호천사라고도 합니다.

셋째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수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24라는 수는 성전 제사에 반드시 필요한 수를 의미합니다.
역대상 24:7∼19
첫째로 제비 뽑힌 자는 여호야립이요, 둘째는 여다야요, 셋째는 하림이요, 넷째는 스오림이요, 다섯째는 말기야요, 여섯째는 미야민이요,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아홉째는 예수아요, 열째는 스가냐요, 열한째는 엘리아십이요, 열두째는 야김이요, 열셋째는 훕바요, 열넷째는 예세브압이요, 열다섯째는 빌가요, 열여섯째는 임멜이요, 열일곱째는 헤실이요, 열여덟째는 합비세스요, 열아홉째는 브다히야요, 스무째는 여헤스겔이요, 스물한째는 야긴이요, 스물두째는 가물이요, 스물셋째는 들라야요, 스물넷째는 마아시야라. 이와 같은 직무에 따라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의 아버지 아론을 도왔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더라. 

제비를 뽑아 성소에서 섬길 자를 뽑았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성소를 담당할 사람은 24명이었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흰옷과 세마포의 의미

요한계시록 7:13∼15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요한계시록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밧모 섬과 같은 곳에 갇혀 있을지라도 열려진 하늘 문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시련과 연단의 과정을 끝까지 인내하므로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5, 일곱 등불 하나님의 일곱 영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번개와 뇌성과 음성 - 출애굽기 20: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요한계시록 16:18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요한계시록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요한계시록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욥기 37:4
그 후에 음성을 발하시며 그의 위엄 찬 소리로 천둥을 치시며 그 음성이 들릴 때에 번개를 멈추게 아니하시느니라.

일곱이란 수는 ‘하늘의 수 3’과 ‘땅의 수 4’를 더한 것으로 ‘완전수’ ‘충족수’ ‘만족수’ ‘행복의 수(Luck Seven)’ 라고 합니다. 따라서 일곱 영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성령을 상징합니다.

일곱 영에 대한 다른 명칭
첫째, 일곱 등불(요한계시록 4:5)
둘째, 일곱 눈(요한계시록 5:6, 스가랴 4:10) - 참조 스가랴 4:2∼10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스가랴 4:1∼10
①.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②.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③.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④.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⑥.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⑦.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⑧.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⑨.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⑩.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일곱 영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일곱 영은 일곱 가지 성품을 말합니다. 일곱 가지 성품이란 성령의 다양한 기능을 말합니다. 성령은 열매를 맺게 하는 영이라고 하겠습니다.

1. 여호와의 영(the Spirit of the Lord)
2. 지혜의 영(the spirit of wisdom)
3. 총명의 영(the spirit of understanding) - 슬기, 명철
4. 모략의 영(the spirit of counsel) - 모략, 상담
5. 재능의 영(the spirit of power) - 권능, 용기
6. 지식의 영(the spirit of knowledge)
7.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the fear of the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