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2020-03-15)
경건의 연습(디모데전서 4:7∼8) |
(개역 한글)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개역 개정)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경건에 관한 중요한 용어 몇 가지를 살펴보면 “경건의 연습(딤전 4:7)” “경건의 비밀(딤전 3:16)” “경건의 모양(딤후 3:5)” “경건의 능력(딤후 3:5)” 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난 한 주간 “경건이란 무엇일까?” 이런 주제를 생각하며 여러 사람에게 “당신은 경건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제가 들었던 대답은 “영혼 앓이” “영혼의 몸살” “하나님이 인정하는 신앙생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대답으로 마음에 울림이 없어 계속적으로 나 자신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얻은 대답은 “경건(敬虔)이란 육(肉)과 영(靈)의 조화(調和)” 라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이야기 #.1)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오늘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기도하게 했습니다. 얼마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러보셨을 때 모두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는 제자들을 깨우고 책망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Watch and pray so that you will not fall into temptation. The spirit is willing, but the body is weak.
제자들이 기도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마음의 생각이 육신을 따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성도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삶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 이야기 #.2)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가이사랴에 이탈리아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를 가리켜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렇게 소개했습니다(사도행전 10:2).
“고넬료(Cornelilus, 뿔)”를 경건하다고 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바이러스를 두려워합니다.
둘째는 백성을 많이 구제(물질을 나눌 수 있는 신앙)
물질을 나누는 모습보다는 오히려 마트로 몰려가 평소보다 더 많은 물건들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물건은 진열대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셋째는 항상 기도(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간구하는 신앙)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 가족들이 안전하기만을 먼저 기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경건이란 무엇일까요?
(현실 이야기 #.1)
“황수안”이라고 하는 열일곱 살 된 소년이 너무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건너왔을 때 마침 중국에서 사역하던 한국인 선교사를 만났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이 소년을 만났을 때 육체적으로 너무 연약하여 우선 건강을 회복시켜야 하겠다고 판단하여 잘 먹이고 쉬게 하면서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3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20살이 되었을 때 ‘황수안’이란 소년은 말씀으로 무장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동안 보살펴주던 선교사에게 성경책 한 권을 달라고 하더니 나는 이제 북한으로 돌아가서 진리를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전해야 하겠다며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가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황수안’이란 청년은 성경책을 갖고 북한으로 건너갔습니다. 3년 동안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다시 고향에 나타났기 때문에 보위부에서 체포하여 심문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무엇을 하였느냐?
누구를 만났느냐?
성경공부를 했느냐?
성경책은 갖고 있느냐?
어디에서 묵고 있었느냐?
‘황수안’이란 청년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솔직하게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보위부원들은 ‘황수안’ 청년이 잠시 머물렀던 친구의 집을 수색하여 성경책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갖고 있었고 더구나 중국에서 선교사를 만나서 성경공부를 했다고 하면 반드시 공개 총살을 시키는 것이 관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5년 형을 받고 함경북도 회령시 무산리에 위치한 전거리 교화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전거리 교화소는 탈북자들에게는 그곳에 들어가면 죽어야 나올 수 있는 곳이라고 알려진 악명 높은 수용소라고 합니다.
교화소에서 지내는 동안 다른 죄수들은 가족들이 면회를 와서 먹을 것을 주고 돈을 주고 가는데 ‘황수안’ 이란 청년은 찾아올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죄수들이 먹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배가 고프기 때문에 “하나님, 제게도 먹을 것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것 같은데 이 청년은 오히려 “하나님, 먹고 싶은 생각을 없게 해 주세요!” “하나님, 먹고 싶은 생각을 없게 해 주세요!”
사람에게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있다고 합니다.
세 가지 기본 욕구가 무엇일까요?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성욕(性慾)” 이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욕구는 “식욕”입니다. 다른 죄수들이 배부르게 먹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하나님 내게도 먹을 것을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 청년은 “하나님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나게 해 주세요!” 이렇게 절제하는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15년 형을 언도 받았으나 감형을 받아 9년 8개월 만에 교화소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한에 정착한 ‘황수안’ 청년의 누나가 브로커를 통하여 동생을 찾게 되었고 결국 남한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교화소에서 훈련된 절제의 삶은 남한에서 살아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훈련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남한에서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결코 먹는 것에 탐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북한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며 동시에 9년 8개월 동안 “먹고 싶은 생각을 없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던 것이 먹을 것이 풍부한 남한에서도 먹는 것으로 유혹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갖고 북한으로 들어가면 사형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경책을 갖고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믿음(信仰)일까요? 아니면 용기(勇氣)일까요? 아니면 만용(蠻勇)일까요?
북한에서 강력범죄에 해당하는 죄가 성경책을 갖고 있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경책을 갖고 있기만 해도 강력범죄가 된다는데 이 청년은 성경책을 갖고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에게는 여섯 가지 감옥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자기도취의 감옥
자기도취는 “공주병” “왕자병”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둘째는 비판의 감옥
다른 사람의 단점과 비판을 좋아하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셋째는 절망의 감옥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넷째는 과거지향의 감옥
현재보다는 옛날이 좋았다고 옛날을 그리워합니다.
다섯째는 선망의 감옥
내가 가진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커 보이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질투의 감옥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처럼 남이 잘 되는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경건이란 마음이 원하는 것을 육신이 따라가는 것으로 육과 영의 조화라고 하겠습니다.
경건의 연습을 세 가지로 설명한 영성학자가 있습니다.
그 학자가 미국의 리차드 포스터(Richard J. Foster) 라고 합니다.
“영적 훈련은 삶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다!”
경건의 연습에는 “내적 연습, 외적 연습, 집단 연습”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을 소개한 책이 “영성훈련과 성장”이란 책입니다. 오늘 이 책을 한 가정에 한 권씩 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사순절 남은 기간 동안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 다음으로 참고서처럼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내적 연습의 대표적인 것은 묵상(黙想)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면 병을 고칠 수 있는 특별한 약을 제조할 수 있는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은 약을 받았다면 그 약을 선반에 올려놓고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약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묵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 1:2).
외적 연습의 대표적인 것은 복종(服從)
믿음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복종과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가 8:34).
단체 연습의 대표적인 것은 예배(禮拜)
예배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을 삶과 죽음으로 설명한다면 삶이란 살아 있을 동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심판을 통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황수안이란 청년은 3년 동안 중국에서 경건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믿음으로 복음을 듣지 못한 북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알려주려고 성경책을 갖고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전거리 교화소에서 15년 형을 받고 9년 8개월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심지어 교화소 안에서는 죄수들끼리 무슨 죄를 지어 들어왔느냐 하며 서로 이야기하는데 ‘황수안’씨는 종교 유포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감형을 받고 9년 8개월 만에 교화소를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화소에서 죄수들이 서로 싸울 때가 있는데 주먹으로 때리고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침을 뱉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먹은 것이 없어 배가 고프기 때문에 힘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침을 뱉는데 끝까지 계속하여 침을 뱉는 사람이 이긴다고 합니다.
남한에 정착하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닫는 것은 교화소에서 지낼 때 먹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어났다면 아마 지금까지 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교화소에서 먹고 싶은 식욕을 없애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지금도 아주 적은 양에 만족할 수 있는데 이런 훈련에 의해서 남한 생활이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합니다.
“황수안”씨와 같은 탈북자들이 경험한 신앙과 삶이 곧 경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먹을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싶은 생각이 없게 해 달라는 기도를 9년 8개월 동안 계속할 수 있었다는 것에서 경건이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 식욕에 대한 것을 억제할 수 있는 기도는 경건한 삶을 위한 능력의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경건의 예화)
심리학자들이 실험을 하려고 “곤들메기(catfish)”를 잡아 커다란 수족관에 넣고 그 수족관 안에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잡아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며칠 후 이 ‘곤들메기’와 먹이인 작은 물고기 사이를 얇은 유리 막으로 차단했습니다. ‘곤들메기’는 바로 눈앞에 먹이가 있었지만 아무리 잡아먹으려고 해도 유리막에 부딪힐 뿐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후 유리 막을 치워버렸습니다. 얼마든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곤들메기’는 먹이를 향해 돌진을 하여 포식할 때까지 사냥을 계속할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었습니다. 바로 머리 위에 놀고 있는 작은 물고기들을 보고도 이 ‘곤들메기’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곤들메기’에게 이들 작은 고기들은 이미 잡아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쯤으로 세뇌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끝내 ‘곤들메기’는 그 풍성한 만찬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이 주일쯤 되는 어느 날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습관이라는 무서운 것입니다.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경건의 습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전서 4:7∼8)
채찍질을 하지 않고 말을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압력을 가하지 않고 수증기나 기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갈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동력기를 통과하지 않고 물을 빛이나 힘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어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헌신하고 훈련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박쥐로부터 전염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전염병을 성경에서는 “온역(pestilence)”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발생했던 각종 전염병은 모두 동물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1:11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There will be great earthquakes, famines and pestilences in various places, and fearful events and great signs from heaven.
빌게이츠(Bill Gates)
인류가 멸망한다며 핵전쟁에 의한 것이 아니다. 동물의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 때문일 것이다. 동물의 바이러스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마비시킬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야생동물에게는 160만 개의 이상의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동물에게 전이되면서 사람에게 침투할 수 있는 바이러스로 변이된다(인수침투바이러스).
14세기
흑사병(Black Death)) - 검은 쥐로부터 발병 확산, 7500만명∼2억 명
1차 대전 말(20세기)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 - 조류에서부터 발병 확산 5천만 명 이상
메르스(Mers) - 낙타(camel)
에볼라(Ebola) - 박쥐(bat), 침팬지(chimpanzee)
사스(Sars) - 사향 고양이(Musk cat)
에이즈(Aids) - 원숭이
조류독감(Premature ejaculation flu) - 철새
광우병(Mad cow disease) - 소(cow)
구제역(Foot and mouth disease) - 소(cow), 돼지(pig)
코로나 바이러스 19(Corona Virus 19) - 박쥐(bat)
동물계 바이러스에 의해서 사람들은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징조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지켜야 합니다.
언약에 의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도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한 이해를 생각해 봅시다.
예로부터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
짐승은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무당은 죽으면 한복을 남긴다."
무당의 죽음은 아주 초라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죽음 이후에 반드시 있을 심판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이 세상에 믿음의 발자취를 새겨야 할 것입니다.
구약에서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예언 : 456회
하늘에 오르신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란 예언 : 1518회
신약에만 300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40일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남은 예언은 메시아로 오셨던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